[사설] 안성시의회 이해 안 될 두 얼굴/시민 예산 깎고, 티켓 강매하고

안성시의회와 관련된 두 가지 얘기를 논하겠다. 서로 다를 수 있으나 결코 떼어 말할 수도 없는 주제다. 시의회가 내년도 예산 심의에서 일부 예산을 대거 삭감했다. 지역 발전 또는 시민 생활과 관련된 85억원이다. 공직사회가 전하고 있는 삭감 내용을 보면 이렇다. 1인 가구 지원, 아동친화 마을 만들기, 시정참여 교육·문화 등이다. 분야별로 삭감된 폭이 최대 83%에 이른다. 청년을 위한 정책 및 소통 관련 예산도 30% 가까이 삭감했다. 청년들이 시정에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위한 예산이다. 이 밖에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예산도 대거 삭감됐다. 일례로 도서관 프로그램 활성화와 강좌 예산 9억2천만원이 전액 삭감됐다. 또 마을공동체 활성화와 주민일자리, 주민소득사업과 관련된 6억8천만원도 99.7%나 삭감했다. 사실상 전액 삭감이다. 이 밖에도 창작음악회, 청소년 연극 페스티벌, 세계언어센터 운영, 시민참여위원회와 공익활동 활성화 등도 제동을 걸었다. 또 박두진문학제 등 문화예술행사 지원 예산과 반려동물 정책인 테마파크 조성 관련 예산도 전액 깎았다. 공직사회의 걱정이 많다. 물론 예산 견제는 시의회 고유 영역이다. 삭감의 옳고 그름을 획일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가 지적하려는 것은 조금 다른 방향이다. 예산 삭감이 시의회 권한에 속한다면 시의회가 지켜야 할 도덕성은 책임이다. 예산을 줄줄이 삭감하는 한 편에서 이에 반하는 일이 벌어졌다. 시의회 부의장이 공직자들을 상대로 티켓을 강매하고 있었다. 업무 보고를 위해 자신의 사무실을 찾은 사무관급 공무원에게 20여장의 티켓을 떠넘겼다고 한다. 무엇보다 강매의 방법과 시기가 아주 부적절하다. 티켓이 강매된 지난달은 내년도 예산 설명을 위해 공무원들이 의회를 찾던 때다. 예산 심의나 통과 과정에서 시의원과 공직자들은 갑을 관계다. 이런 상황에서 시의회 부의장이 내민 티켓을 구매하지 않을 공직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살폈듯이 이번 회기에는 의회 곳곳에서 전례 없는 예산 삭감이 이뤄지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부의장은 의회 상황에 티켓 강매를 교묘히 결합했던 셈이다. 권익위원회가 사건을 조사하고 있다고 한다. 공직사회에서도 내부적으로 대응에 나서고 있다고 한다. 그 처리 결과가 어떻게 될지 기다리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에 앞서 부의장 스스로 취해야 할 조치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의사봉을 쥔 대표자의 권한은 이미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어느 공직자가 그에게 의회의 신성한 권한을 인정하겠는가. 더구나 이를 알게 될 시민들이 그와 그가 속한 집단을 용서하겠는가. 어떤 결단이든 그가 먼저 해야 한다. 요즘 시대 있을 수 없는 일이 안성시의회에서 생겼다.

[사설] 지드래곤 두 번 죽이는 경찰의 수사 해명/‘구체적 제보 있었다’ ‘밝히지 못한 것이다’

마약 투약 혐의를 받아온 가수 지드래곤(본명 권지용)에 대해 혐의 없음 결론이 날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경찰청은 다음 주 중으로 권씨에 대해 불송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그동안 권씨를 소환하는 등 수사를 펴왔다. 간이시약검사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정밀 감정 등을 실시했다. 모든 검사 결과가 음성으로 나왔고, 더 이상 수사도 진척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의 불송치 결정은 ‘혐의 없음’에 따라 내리는 수사 종결이다. 권씨는 지명도 높은 연예인인 만큼 수사 초기부터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일부 언론에서는 권씨 주변인들과의 관계까지 거명하며 투약 의혹을 제기했다. 또 권씨의 평소 행동에서 ‘마약 투약자의 반응’이라며 이상행동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권씨에는 치명적인 타격이 가해진 셈이고 실제로 광고 계약 해지 등의 불이익이 거론되기에 이르렀다. 이랬던 수사가 ‘혐의 없음’ 결론으로 끝나가는 것이다. 무리한 수사였다는 법조계 비난이 있다. 경찰이 ‘무리한 수사가 아니었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나섰다. 김희중 인천경찰청장이 직접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수사 종결의 배경을 설명했다. “내사 단계였던 권씨를 정식수사로 전환한 이유는 제보가 구체적이었기 때문”이라며 “다만 구체적인 내용은 말할 수 없다”고 했다. 또 “구체적 제보가 나왔다면 수사에 착수하는 것이 경찰의 의무”라며 “관련자 등에 대해 수사를 했지만 범죄사실은 발견하지 못한 것”이라고도 했다. 대단히 부적절한 해명이다. 김 청장의 해명 속에 권씨에 대한 2차 가해가 있다. ‘(공개 수사를 시작할만한) 구체적인 제보가 있었다’고 했다. 제보의 신빙성에 여전히 비중을 두는 것으로 들릴 수 있다. ‘범죄 사실은 발견하지 못한 것’이라고도 했다. ‘혐의 없음’을 설명하기보다는 ‘혐의를 찾지 못했다’로 들릴 수 있다. 통상 이런 경우 피조사자가 받게 되는 2차 가해가 있다. ‘죄는 있는데 밝혀지지 않았을 뿐’이라는 잠재적 범죄자 취급이다. 내사가 아니라 공개소환조사였다. 그 파장이 정치권에까지 미쳤다. 한 야당 정치인이 ‘수사의 정치적 의도’를 제기하기도 했다. 이렇게 요란했던 수사가 혐의 없음으로 처리되는 상황이다. 수사로 빚어진 당사자 피해가 우선 감안돼야 한다. 당연히 언론도 책임을 피해갈 수는 없다. 추측성 보도에 대해 분명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경찰이야 더 말할 게 있나. 공개수사에 대한 피해를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최소한의 피조사자 인권이다. 묵묵히 수사 종결 절차를 처리해가는 것이 차라리 수사기관답다.

[사설] 인구 절벽,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대책 마련해야

통계청이 지난 14일 발표한 ‘장래인구추계(2022~2072년)결과’는 이미 예상된 것이기는 하지만 가히 충격적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합계출산율이 현재와 비슷한 0.7~0.8명 선에 머무를 경우 우리나라 인구는 지난해 5천167만 명에서 2072년 3천17만 명으로 쪼그라들며, 50년 뒤 국민의 절반가량이 60대 이상이 돼 ‘국가 소멸’을 우려할 정도다. 그뿐만 아니다. 인구 감소 속에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됨에 따라 생산연령인구인 15~64세가 50년 뒤에는 지금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분석됐다. 상기 분석에 따르면 생산연령인구는 2030년대 이후 연평균 50만명 이상 감소해 2072년에는 1천658만명으로 줄어들게 되며, 이는 2022년 3천674만명의 45.1%에 불과한 것이다. 생산연령인구 감소는 경제 활력을 떨어뜨려 저성장을 고착화하고 잠재성장률 하락을 초래, 국가발전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2020년 처음으로 사망자 수가 출생자 수보다 많아져 전년 대비 인구가 감소하는 ‘데드 크로스(Dead Cross)’ 현상을 겪고 있어 2022년 연간 출생아 수가 25만명 선에서 2072년에는 64% 수준인 16만명이 된다. 때문에 생산가능인구 100명당 부양인구가 2022년 24명에서 2072년에는 104명을 부양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으며, 이런 국가는 OECD 국가 중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대한상공회의소가 14일 발간한 ‘출산율 제고를 위한 정책 제언’보고서에서 “한국의 저출산 대응 예산은 지난해 기준 연간 51조7천억원으로 출생아당 약 2억1천만원이 지출되고 있지만, 전 세계 국가 중 가장 아이를 적게 낳는 국가가 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고 밝혔다. 상기 보고서는 생산연령인구 감소는 2050년까지 1인당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연평균 1.13%포인트씩 낮추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은 2026년 합계출산율이 0.59명까지 떨어질 것으로 우려할 정도로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는 심각하다. 이제는 생산연령인구 급감과 ‘국가 소멸’을 말로만 걱정할 때가 아니다. 인구 재앙을 피하고 경제 추락을 막으려면 정부가 절박감을 가지고 가칭 ‘인구부’를 신설해서라도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 저출산 문제의 원인은 일자리, 집값, 사교육 등 복합적이다. 합계출산율이 우리나라보다도 높은 1.2명인 일본은 세 자녀 이상인 가족의 모든 자녀에게 대학 무상교육을 하기로 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정부는 인구 절벽 해결책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선정해 더욱 창의적이고 파격적인 인구 절벽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사설] 장애인시설에 닥친 코로나 마스크 불황/지원 늦었던 정부는 ‘도움 줄 것 없다’

장애인직업재활시설들이 말 못할 고통을 받고 있다. 코로나19 창궐을 기해 뛰어들었던 마스크 사업 얘기다. 수급시기를 적기에 맞추지 못해 부담으로 남아 있다. 발 빠르게 치고 빠진 민간 기업과 대조되는 현실이다. 기본적으로 기업의 상품 판매는 기업 스스로의 책임이다. 판로나 판매 시기를 실기한 것 역시 자기 반성이 우선일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는 다르다. 장애인직업재활이라는 점이 그렇고, 정부 주도 마스크 사업이었다는 점이 그렇다. 코로나19가 우리 현실이 된 것은 2020년 벽두였다. 그해 3월 사회적 거리두기가 첫 시행됐다. 그렇게 마스크 대란도 시작됐다. 5부제 등 마스크 수급 안정화 대책까지 나왔다. 많은 민간 기업들이 마스크 생산에 뛰어들었다. 장애인직업재활시설이 마스크 생산을 준비한 것도 그 즈음이다. 2020년 상반기에 관련 지원금을 정부에 신청했다. 하지만 실제 예산이 투입된 것은 2021년 중반이었다. 정부가 각 시설에 내려보낸 약 55억원이다. 이 돈으로 기계 매입하고 시설 보강·증축하면서 생산을 준비했다. 마스크를 생산하는 장애인직업재활시설 40곳 가운데 20여곳이 이때부터 시작했다. 시기적으로 이미 마스크 대란은 고비를 넘기던 때였다. 2022년 2월에 거리두기가 완화되기 시작했다. 9월에는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전면 해제됐다. 민간 업체들은 대부분 마스크 특수를 누리고 서서히 빠지는 시기였다. 매출은 2021년 678억원에서 2022년 250억원으로 급감했다. 일반 기업체의 사정이라면 우리가 대변할 이유가 없다. 투자와 판단, 예측이 모두 경영 책임에 속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애인직업재활시설은 다르다. 정부의 구난 위에 발맞춘 판단이었다. 정부도 예산을 투입하며 뜻을 함께했다. 이번에 초래된 위기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위기감을 느낀 시설 측이 요구하는 대책이 있다. ‘취약계층 미세먼지 마스크 보급 판매 지원’, ‘생산품 전환 우선 지원’ 등이다. 협의회가 지난 8월 정부에 요청했다. 관할 보건복지부의 입장은 부정적으로 알려진다. 타 단체와의 형평성이 있어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한다. 기능 보강 예산의 의무 사용 기한도 걸림돌이라고 한다. 그나마 생각해 볼 수 있는 방안으로 공공기관 구매 지원, 자자체와의 협조 등을 든다. 판로를 열어 마스크 소비를 돕는 방법이다. 그런데 이것도 정부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지방정부, 지방의 공공기관이 나서야 한다는 얘기다. 정부는 정말 아무 책임이 없는 것인가.

[사설] 도로안전시설 파손 방치, 교통사고 위험 높인다

도로안전시설은 도로교통 안전과 원활한 소통을 위해 조성한 것이다. 보행자 무단횡단, 차량의 불법유턴, 무단 주정차 등을 금지해 안전한 도로 환경을 만들어 교통사고를 줄이는 데 목적이 있다. 볼라드, 표지병, 시선 유도봉(차선 규제봉), 가드레일, 중앙분리대, 충격방지 흡수 탱크 등 시설물의 종류도 다양하다. 그런데 도로 위 시설물들이 파손된 채 방치되거나 관리가 안 돼 오히려 교통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부러지거나 뽑힌 시설물들이 도로를 침범해 사고 위험이 높은데도 관리가 허술하다. 시설물이 파손돼 기능을 상실하면 운전자나 보행자 모두의 안전에 큰 문제가 생긴다. 실제 이에 따른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최근 3년간 안전신문고에 접수된 경기지역의 ‘도로, 시설물 파손 및 고장’ 민원은 총 17만2천398에 이른다. 2020년 3천254건, 2021년 7만8천480건, 2022년 9만664건 등으로 해마다 크게 증가하는 추세다. 본보 기자가 지난 13일 현장을 취재했다. 화성시 반월동 한 도로는 중앙분리대 일부 구간이 파손됐다. 몇몇 시민이 먼 거리에 있는 신호등 대신 파손된 중앙분리대를 이용해 무단횡단을 시도했다. 용인특례시 기흥구 농서동 일대 한 횡단보도도 양 끝 점자블록 위에 설치된 철제 차량 차단봉(볼라드) 8개가 심하게 녹슨 채 방치됐다. 일부는 고무 재질의 보호 덮개가 찢어져 흉물스러웠다. 이 밖에 도로 중앙에 시선 유도봉을 설치해 중앙차선을 구분하고 있는데 일부가 부서져 도로를 침범, 차량들이 피해 가려다 옆 차선 차량과 부딪힐 뻔한 사례도 있다. 부서진 중앙분리대 사이로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도 있고, 뽑히거나 쓰러진 볼라드 사이로 무단 유턴하는 차량도 있다. 이를 지켜보는 운전자나 시민들은 사고가 날까 아찔하다. 도로 안전시설이 제 역할을 못하면 바로 정비해야 하는데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 더 이상 도로안전시설이라고 보기 어렵다. 무단횡단 금지시설과 시선 유도봉 등의 시설물은 정비 보수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파손 및 오염 상태, 노후화 등을 점검해 교체해야 하는데 지자체의 무관심과 예산 확보 어려움 등으로 보강·개량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도로안전시설 관리 소홀은 교통사고 유발 가능성이 크다. 안전을 위한 시설이 되레 안전을 위협하는 만큼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지자체에선 일일이 확인이 어려워 60~70%는 민원에 의존해 관리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시민들의 적극 협조가 필요하다. 사고 및 재해로 변형 또는 파손이 생겨 안전시설 기능을 못하게 되면 즉각 복구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사설] 4·10 총선 시작, 선거구 획정 언제까지 미룰건가

내년 4월10일 치러질 총선 레이스가 예비후보 등록과 함께 시작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 120일 전인 12일부터 22대 국회의원선거 출마를 희망하는 예비후보자들의 등록을 받았다. 등록 첫날 경기지역에서만 102명이 예비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인천에선 16명이 등록했다. 그런데 4·10 총선에 적용될 선거구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여야가 선거구 획정 및 선거제 개편에 합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거구가 변동될 수 있는 상황에서 선거전에 나서야 하는 정치 신인과 유권자들은 혼란스럽다. 한시라도 빨리, 더 많은 유권자에게 얼굴을 알려야 하는 신인들은 어디에서, 누구에게 선거운동을 해야 할지 몰라 답답해하고 있다. 일부 후보들은 “현역 의원들에게 유리한 상황”이라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국회는 선거일 1년 전인 지난 4월10일까지 선거구 획정을 끝냈어야 한다. 하지만 선거구 획정은 8개월이 지나도록 마무리 짓지 못한 상태다. 여야가 의석 수 득실을 따지며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결론은 쉽게 나지 않을 전망이다. 중앙선관위 산하 선거구획정위원회는 지난 5일 지역구 선거구 수를 현행대로 253개로 유지하는 내용의 획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획정안에 따르면 인구 상한선을 넘은 지역 6곳이 분구되고, 인구 하한선에 못 미친 6곳은 합구된다. 지역구가 조정되거나(5곳), 자치구·시·군 내 경계가 조정되는 지역(15곳)도 20곳이다. 경기·인천지역에서는 화성(3→4석)과 평택(2→3석), 하남(1→2석)이 인구 증가에 따라 분구 대상 지역이다. 안산과 부천은 인구 감소에 따라 기존 4석에서 3석으로 줄게 된다. 여기에 동두천·연천, 양주, 포천·가평 3개 선거구를 조정하는 내용과 수원병·무, 광명갑·을 등 선거구 경계 조정도 포함돼 있다. 여야는 선거 때마다 선거구 획정에 늑장을 부리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법정 기한을 지킨 적이 한 번도 없다. 21대 총선에서는 39일, 20대에서는 선거를 불과 42일 앞두고 선거구가 획정됐다. 어떻게 선거구가 뒤바뀔지 모르는 상황에서 예비후보들은 반쪽짜리 선거운동을 해야 하니, 불공평하고 불합리하다. 국회의 직무유기이며,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것인데도 자기들 맘대로다. 선거제 개편 작업도 지지부진하다. 민주당과 국힘은 총선에 적용할 비례대표 배분과 위성정당 방지 여부에 대해 합의하지 못한 상태다. 거대 양당이 협상에 소극적인 것은 소수 야당들의 선거연합이나 제3세력의 신당 창당을 견제하겠다는 계산으로 보인다. 국회는 선거구 획정과 선거제 개편을 하루빨리 마무리지어야 한다. 예비후보 등록과 함께 선거운동이 시작됐는데 선거구도 모른다니 말이 되는가. 자신들의 유불리만 생각해 후보자와 유권자를 무시하고 혼란스럽게 하는 건 민주정치가 아니다.

[사설] 낡은 벽화, 수원은 민관이 다시 살려냈다

‘천지창조-땅의 정령, 하늘의 정령’, ‘악 없는 땅’. 콜롬비아 작가 호르헤 이달고의 작품이다. ‘행궁동 다실바 화분’, 조정은 작가의 작품이다. ‘만파식적’, 박은신 작가의 작품이다. 수원 행궁동 골목에 가면 볼 수 있다. 이전에도 그곳에 있긴 했다. 탈색되고, 훼손돼 보기에 불편했다. 이게 생생히 되살아났다. 전문가들이 현장 조사를 거쳐 8일부터 복원작업을 했다. 행궁동 골목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 사회에 ‘벽화마을’이 익숙해진 건 2000년대 말이다. 부산의 한 마을에서 시작된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이었다. 벽화를 찾는 발길이 잦아졌고 관광 명소로 부상했다. 많은 지자체가 너도나도 벽화마을 조성에 나섰다. 그 수가 늘어나면서 벽화마을의 희소성이 사라졌다. 10년 이상 지나면서 곳곳에서 벽화가 흉물로 전락하게 됐다. 안양시 양화로 일대 벽화마을, 수원특례시 행궁동의 벽화가 그랬다. 우리가 지난 11월 이 문제를 지적했다. 벽화마을의 존치 여부는 지자체 선택이다. 실익 없고 관리 안 되면 없애는 것도 방법이다. 가장 나쁜 것은 이도 저도 아닌 방치다. 페이트가 벗겨지고 그림 형체가 없어졌다. 녹물이 그림을 덮쳐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 지경에 온다면 차라리 깨끗이 지워 버려야 한다. 그런데 많은 지자체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 ‘조성 당시 자료가 없다’거나 ‘과거의 일회성 사업이어서 관련 예산이 없다’는 말 안 되는 핑계를 대고 있다. 그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이런 우리 주장에 수원시가 신속히 응대했다. 수원도시재단이 체계적 관리를 위한 조치에 나섰다. 11월 말 벽화유지 관리 예산 1천만원을 준비했다. 벽화 보수 작업 기본 계획을 세우고 용역을 의뢰했다. 행궁동 벽화마을을 만들었던 작가들도 다시 나섰다. 박은신, 송태화. 김솔, 김은정, 이윤숙 작가다. 일부 지역 주민도 자발적으로 보수 작업에 참여했다. 벽화가 살아났다. 생동감 있는 작품으로 다시 방문객을 맞게 됐다. 벽화는 담장에 작품을 담아 내는 작업이다. 담장은 필연적으로 풍화에 노출된다. 거기 채색된 작품의 훼손도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이런 야외 작품에는 반드시 관리가 따라야 한다. 채색을 보충하고 담장을 보수해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다른 작품으로 대체하는 것도 필요하다. 모든 야외 전시회 작품 관리가 그렇다. 벽화마을에도 당연히 따라야 할 유지관리 행정이다. 수원 행궁동 벽화의 재생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

[사설] 럼피스킨 보상 지연, 농가들 생계까지 곤란하다

소 바이러스성 감염병인 럼피스킨 발생으로 전국의 축산농가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이름마저 낯선 럼피스킨은 10월20일 국내에서 처음 발생한 이후 한 달간 전국 9개 시·군 107개 농장으로 확산했다. 겨울이 되면서 병원균을 옮기는 흡혈곤충의 활동성이 떨어지고, 모든 소에 대한 백신접종 완료로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다행히 추가 확산 우려는 없어 보인다. 농민들은 애써 키우던 소를 잃었다. 사료값과 인건비 등의 부담은 늘고 축산물값이 떨어져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럼피스킨 발병으로 키우던 소를 살처분한 농가들이 많다. 축사는 텅 비어 있고, 한숨은 깊다. 럼피스킨 첫 발병 이후, 정부는 신속한 살처분과 백신 접종을 진행했다. 하지만 피해 농가에 대한 보상은 아직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관련 예산이 바닥난 탓이다. 피해 농가 100여곳 기준 살처분 보상 소요액은 약 300억원으로 추산되는데 농림축산식품부는 현재 예비비 여유도 없어 예산 집행이 불가능하다. 보상금으로 생계를 꾸리려던 농가들은 황당해하고 있다. 이 같은 사정은 경기도 농가들도 마찬가지다. 도내에선 평택·화성·김포시 등 26곳의 축산농가에서 럼피스킨이 발병했다. 300여마리의 소를 살처분한 농가도 있지만 피해 보상은 내년에나 가능하다. 정부는 살처분 농가에 대해 100% 보상을 약속했다. 보상은 국비 80%, 도비 10%, 시·군비 10%로 이뤄지는데 올해 정부의 관련 예산이 소진돼 보상이 어려운 상황이다. 보상액은 경기지역만 해도 최대 100억원으로 추산된다. 농식품부는 “내년도 예산이 나오는 대로 빠른 보상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별도 기금으로 운용 중인 ‘생계안정자금’을 우선 지급한다고 밝혔다. 경기도는 살처분 피해 보상이 미뤄지며 농가들이 어려움을 겪게 되자, 최근 4천300만원 규모의 생계안정자금을 긴급 지원했다. 문제는 11곳의 한우 농가만에만 지급했다는 것이다. 젖소 농가 15곳은 우유 납품 단가 산정 과정 등을 이유로 대상에서 제외했다. 젖소 농가들에선 우유와 소를 팔아 생계를 이어왔는데, 생계안정자금 지원도 못받아 하루하루가 힘겹다고 하소연한다. 가축전염병이 농가를 휩쓸면 농민들은 다시 일어서기 어렵다. 살처분에 대해 100% 보상이라고 해도 현실적으로 농장을 복구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농가가 그렇듯 텅 빈 우사를 두고 매달 대출이자를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다. 생계안정자금 없이는 버티기 힘든 실정이어서 젖소 농가는 더 심란하다. 럼피스킨 발생 농가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최대한 빨리 예산을 확보해 피해 지원에 나서야 한다. 보상금을 지급해도 피해 회복에 상당한 시일이 걸리는 만큼 신속하게 처리해야 한다.

[사설] 축구 메카 지킨 수원FC, 고맙다

축구 메카 수원이 축구 불모지로 갈 뻔했다. 맏형 수원삼성은 이미 2부 리그로 강등됐다. 2023 정규리그에서 최하위를 기록하며 떨어졌다. 아우 수원FC도 형편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1부 리그 잔류를 위해 승강 플레이오프를 거쳐야 했다. 상대는 전통을 자랑하는 부산 아이파크다. 첫 번째 원정 경기에서 암울한 상황이 전개됐다. 선제골을 넣고도 이를 지키지 못해 역전패했다. 2골 이상 차로 이겨야 하는 부담 속에 수원에서 2차전을 가졌다. 모든 언론이 ‘기적’이라 칭송하는 일이 벌어졌다. 경기 시작 15분 만에 부산에 선제골을 내줬다. 종합 전적이 2골 차로 벌어지면서 강등이 현실화됐다. 이때부터 선수들의 경기는 투혼 그 자체였다. 승리의 기운은 자꾸 수원FC를 외면했다. 두 차례의 슛이 골대를 맞고 나왔다. 어렵사리 들어간 골은 오프사이드 판정에 무효가 됐다. 모두가 골대 불운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때 기적이 시작됐다. 후반 33분과 추가 시간, 극적으로 두 골을 넣었다. 이즈음 TV 화면에 관중이 보이기 시작했다. 추운 날씨에 경기장을 찾아온 수원시민들이다. 어린아이부터 나이든 어르신까지 다양했다. ‘1부 잔류로 충분히 자랑스럽다’는 펼침막을 들고 있었다. 후반 동점골에 열기는 극에 달했다. 여기저기 눈물을 쏟아내는 시민들이 목격됐다. 비록 대기업 축구 서포터스와 같은 통일성은 없었다. 하지만 그들에게서 볼 수 없는 투박하지만 진한 애정이 넘쳤다. 연장전의 승부는 급격히 기울어 갔다. 수원이 이겼다. 수원FC는 부족한 게 많다. 재정적 지원에서 특히 그렇다. 몸값 비싼 용병을 쓰기 버겁다. FA시장에 나온 거물 영입도 어렵다. 경기장도 황량한 공설운동장을 쓴다. 그래서 지자체 소속 축구팀 대부분이 2, 3부 리그에 그친다. 이런 상황에서 수원 FC는 이겼다. 경기장을 찾아온 팬들이 눈물을 흘렸다. TV로 경기를 지켜본 수원시민들도 응원 메시지를 보냈다. 김현, 이영재, 이광혁, 정재용.... 무명에 가까운 선수들이다. 이들이 만든 결과다. 동호회처럼 시작한 수원FC의 역사다. 그 긴 세월 시민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시민이 잊고 있어도 그들은 역사를 썼다. 그 역사의 한 지점이라서 더욱 소중하다. 이제 그 감동에 우리 모두가 보답할 차례다. 수원시도 지원을 늘릴 고민을 해보길 바란다. 1부 리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줘야 한다. 시민들의 사랑도 넓어져야 한다. 시민 후원의 손길은 선수들에게 더 없는 응원이 된다. 시민의 자산인 월드컵경기장 사용 문제도 토론할 필요가 있다. 수원FC의 투혼에는 그런 보답을 얘기할 자격이 충분하다.

[사설] 남양주문화재단, 당장 설립해도 많이 늦었다

1992년 지자제가 실시되면서 가장 큰 변화는 문화 행정이었다. 그도 그럴 게, 지방 자치를 계기로 가장 폭발한 게 문화 욕구였다. 여기에 문화 외에는 접근할 방법이 없는 반쪽 지자제의 한계도 한몫했다. 그 욕구와 한계를 현실로 받아들인 곳이 수원시였다. ‘문화도시 창달’을 기치로 내세웠다. 독자적인 행정의 중심을 문화 행정에 집중했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화성(華城)을 등재시킨 것도 그때다. 지자체의 이런 노력은 전담 기구의 필요성으로 이어졌다. 지자체 문화재단 필요성이 제기됐다. 경기도에서 첫 등장은 경기문화재단이었다. 1997년 경기도가 출연해 설립한 재단이다. 이후 기초 지자체의 문화 수요는 계속 팽창했다. 경기도 차원의 재단으로는 31개 시군 욕구를 감당키 어려워졌다. 이런 여건 속에서 먼저 치고 나간 것이 성남시였다. 2004년 성남문화재단을 설립했다. 지역 문화의 산실 역할을 해냈다. 한 발 늦게 수원시도 2011년 문화재단을 출범했다. 이제 시흥, 의왕, 안성, 연천, 가평, 양주, 파주, 동두천, 남양주 등 9곳을 제외하면 모든 시군이 문화재단을 갖고 있다. 대체로 인구, 예산 등이 따라주지 못하는 시군에는 없다. 단 한 곳이 의외다. 남양주시가 문화재단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 이채롭다. 인구 74만명, 경기 동북부 최대 도시다. ‘정말 남양주시에 문화재단이 없느냐’는 반문이 나올 만큼 의외다. 별내·다산 신도시에 이어 왕숙신도시까지 개발되고 있다. 인구 증가 요인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문화 수요가 그만큼 폭발하고 있음을 뜻한다. 경기일보가 보도한 통계 하나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구 10만명 당 문화기반시설수가 남양주는 3.6곳이다. 경기북부 10곳 지자체 가운데 8위다. 경기도 전체 평균 4.2곳보다도 낮다. 문화재단은커녕 문화와 관련된 기반 시설 자체가 열악하다는 객관적인 증명이다. 문화재단을 만들려는 움직임은 있다. 2021년 10월 경기연구원에 설립 타당성 예비검토 용역을 의뢰했다. 연구원이 같은 해 12월부터 분석에 들어갔다. 그런데 아직 결론이 없다. 타당성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결론내면 된다. 그런데 2년 넘게 끌고 있고, 방향조차 알려지지 않고 있다. 좀 더 신속하게 결론을 낼 수는 없는지 아쉽다. 뜻 있는 시민과 관련 공직자들이 목 빠지게 결과를 기다린다. 성남시의 급부상은 분당신도시와 판교신도시였다. 2000년대 초 전국 최초의 ‘2조원 예산 지자체’가 됐다. 하지만 그 부(富)가 곧바로 시민의 삶으로 연결된 것은 아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가장 획기적인 삶의 향상은 문화였고, 그 요람이 성남문화재단이었다. 역사로 남은 문화재단의 순기능이다. 여기에 문화재단이 들어서면서 생길 일자리도 많다. 지역 생산 유발 효과도 물론 크다. ‘74만 남양주시’가 뒤늦게 몸에 맞는 옷을 걸치는 것이다. 당장 설립돼도 많이 늦은 남양주문화재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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