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다음 소희’는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으로 콜센터에서 일하다 숨진 홍수연양의 비극적 사건을 소재로 했다. 이 영화를 계기로 감정노동과 실적 압박에 노출된 콜센터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주목받았다. 세계 여성의 날을 하루 앞둔 지난 7일 일선의 콜센터 노동자들은 ‘지금 소희, 콜센터 사업장을 고발한다’는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환경 개선과 건강권 보장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서울지회장은 “전체 노동자의 95% 이상이 여성인 건강보험고객센터의 상담노동자들은 방광염, 신우신염과 근골격계질환 등 질병을 달고 산다”고 했다. 이런 질병에 노출돼 있지만 12개 센터의 용역업체가 각기 다르고 경쟁관계에 놓여 실적 압박은 일상이라고 했다. 악성 민원도 큰 부담이고, 원청과 하청의 위·수탁이라는 고리 속에 갇힌 노동자들은 불안·공황장애,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앓는 이가 많다고 했다. 감정노동자보호법이 시행된 지 5년여 됐지만, 감정노동자의 대표 직종인 콜센터 상담사들은 여전히 폭언과 성희롱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 전화기 너머의 상대방이 욕설이나 성희롱을 할 때도 “사랑합니다, 고객님”이라고 말하며 감정노동을 강요받는다. 전국의 콜센터 상담사는 약 50만명에 이른다. 이 중 77%가 비정규직이다. 국가인권위의 ‘콜센터 노동자 인권상황 실태조사(2021년)’에 따르면 상담사들은 월평균 12회 폭언과 1회 이상 성희롱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감정노동자보호법 시행 전인 2008년보다 폭언 약 62%, 성희롱이 약 14% 증가했다. 공공·민간 부문 상담사 1천990명 가운데 48%가 경제적 어려움과 스트레스 등으로 ‘죽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강도 높은 감정노동에도 콜센터 상담사들의 평균 월급은 217만원(2020년 기준)으로 최저임금 수준이다. 임금도 적은 데다, 극심한 감정노동에 신체적·정신적으로 피폐해져 오래 근무하지 못한다. 평균 근속기간이 6개월, 1년 미만 근무한 상담사가 전체의 89%에 달한다. 여성 집중, 감정노동, 저임금, 비정규직, 간접고용, 전자감시, 높은 이직률 등은 콜센터 상담사를 상징하는 단어들이다. 법이 만들어졌지만 나아진 게 없고, 보호도 못 받고 있다. 법 취지대로 감정노동자를 보호하려면 열악한 근무환경을 개선하고 사업장 내 다양한 보호 조치 등 실효성 있는 대책이 절실하다. 반복적 욕설과 성희롱을 하는 고객 전화는 바로 끊을 수 있도록 ‘원스트라이크 아웃제’가 도입해야 한다. 직접고용, 사업장 내 건강권 보호조치, 저임금과 성 불평등, 근무여건 개선 등 전반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사설
경기일보
2023-03-24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