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4차 산업혁명 시대, 부동산 개념부터 달라진다

얼마 전에 개최된 부동산 관련 세미나에서 부동산 전문가들은 4차 산업혁명 이후, 주거환경의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기대와 우려를 쏟아냈다. 문재인 정부가 앞으로 5년간 도시재생에 50조 원을 쓰겠다고 발표했는데 과연 어떤 성과를 달성하게 될지 의문이 앞선다.왜냐하면 앞으로 부동산의 개념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르게 정의될 것인데 이를 기반으로 설계하지 않으면 조만간 새로운 개념 때문에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은 대체 부동산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 것일까. 지금까지 토지의 가치는 기반시설 여부와 도시기능의 질, 경제적 이유 등에 따라 달라져 왔다. 무엇보다 경제적 그리고 기반시설의 활용 등의 이유로 복잡하고 고비용을 감수하고서라도 도시개발, 도시재생 등에 집중하는 것 아닐까.하지만 새로운 문명은 이런 제한적인 국토활용의 통념을 깨고 매우 광범위한 활용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완전 독립적이고 분산된 소규모 도시의 군집 형태로 부동산개발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고 있으며 이를 위한 모든 기술들이 구현되고 있다. 첫째로 정부가 해 주어야만 했던 기반시설을 민간이 소규모로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게 된다. 신재생에너지나 각종 첨단 기술을 이용해 저비용으로 에너지 독립은 물론 폐기물처리까지 완벽하게 처리되는 첨단자립도시 SITI의 탄생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미 정보혁명은 Anywhere(어디서나), Anytime(언제든)이 가능한 시대를 열었고 원격교육, 의료, 제조 등이 구현되는 데 따른 기술적 한계는 극복되고 있다. 정책과 사회적 통념만 깨진다면 전국 어디에서도 전 세계 최고의 교육이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여기에 사물지능화, 빅데이터, 인공지능, 블록체인 등의 기술로 SITI의 유지 관리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정부의 역할은 매우 축소되겠지만 이 추세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한마디로 지구촌 어디라도 독자적인 기반시설 위에 전 세계와 연결되어 최고 수준의 교육과 의료서비스를 받으면서 경제적 부를 누릴 수 있는, 소규모이지만 관심사가 같은 공동체를 만들어 서로가 협력하는 그야말로 자아실현이 가능한 새로운 첨단자립도시 SITI가 다양하게 탄생되고 이들이 상호 협력적인 군집형태로 연결되는 문명의 변화가 향후 100년간 지속되리라 예상해 본다. 마치 공룡 같은 거대도시는 사라지고 새떼와 같은 SITI의 군집으로 변하는 것이다. 차터 시티라는 신개념의 도시를 주장한 폴 로머 교수는 30억 인구가 지구면적의 3% 정도에 살고 있고 10억 명 정도를 새로운 도시로 유입시켜도 지구의 4%면 된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도 좁은 국토라고 말이 많지만 그중에 도시지역은 16.6% 남짓인데 반해 인구의 90% 이상이 살고 있다. 이는 기반시설, 도시기능, 경제적 기회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런 한계를 뛰어넘는 첨단자립 도시 SITI가 확대되면 더 많은 면적으로 친환경적면서도 동일한 기능을 갖춘 도시지역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기존 도시의 거대하고 비효율적인 기반시설을 인구 1만 명에서 10만 명 정도의 SITI형태로 개발과 도시재생을 추진하면 수천 개의 SITI가 탄생하면서 수평적이고 자율적이고 자아실현이 가능한 공동체 단위로 국가구조를 재편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거주자는 물론이고 정부에도 향후 지속 가능한 인프라 덕분에 작지만 효율적인 정부로 거듭 태어날 수 있다. 전하진 썬빌리지포럼 의장·前 한글과컴퓨터 대표

[아침을 열면서] 과연 변했는가

▲ 최순종 새 정부가 들어선 지 두 달이 지났다. 우리가 문재인 정부에 거는 기대는 남다르다. 지난 정권에 대한 실망감이 컸던 만큼 지금 정부에 대한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이 정권은 어느 한 당에 의해 창출된 것이 아니라 시민의 참여에 의해 만들어진 시민의 승리였다. 그러하기에 현 정부에 거는 시민의 기대 또한 크다. 출발은 시원했다. 권위주의적인 통치구조가 사라진 듯했다. 일방적인 하향식이 아닌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소시민의 입장에서는, 내가 대통령과 함께 차 마시고 식사하면서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논의하는 듯했다. 정부의 의사결정에 나도 참여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기대가 너무 컸던 때문일까. 최근 정부의 모습은 우리가 염원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듯하다. 물론 두 달이라는 짧은 시간을 가지고 현 정부에 대해 평가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러나 과연 지금의 정부가 과거의 정권과는 다른가, 권력의 속성이 변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무엇보다도 현 정부는 모든 국정을 정부가 주도하고자 한다. 물론 정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정부(권력)가 주도하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막스 베버의 말처럼 권력은 저항하는 세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뜻을 관철시키는 힘이다. 그러나 여기서 ‘내 뜻’, 즉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의지는 반드시 정당성을 확보해야만 한다. 민주주의에서 정당성 확보의 가장 좋은(쉬운) 수단은 다수의 지지이다. 그런 면에서 80% 지지라는 여론조사의 결과는 현 정부에 정당성을 제공하는 듯하다. 그러나 우리는 80%라는 지지율에 내재되어 있는 문제점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인기영합주의에 의한 다수의 지지는 물거품이다. 정책운영은 대중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어서는 안된다. 정권창출을 위한 선거과정은 이미 끝났다. 우리는 테이크아웃한 커피를 들고 있는 ‘인기있는 대통령 후보’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명확한 국정철학을 지닌 믿음직한 대통령을 원한다. 때로 큰 새(지도자)는 큰 바람(대중)을 거슬러 날아갈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다수에 의한 전반적 지지만을 정책결정의 수단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사안에 따라서는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소수의 의견이 훨씬 더 중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수의 지지를 등에 업고 정당성을 지닌 소수를 무시하고 가는 것이야말로 권력의 남용이다. 다수와 소수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를 위해 무엇이 더 중요하고 무엇이 더 필요한가가 의사결정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 내 편과 네 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 요구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대통령은 한 당, 한 편의 대통령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대통령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수사적이고 어느 한 쪽 편에 기울어진 대통령이 아니라 모두의 대통령으로서, 장기적 국정 비전을 가지고 사회통합을 위해 고민하는 대통령이 되었으면 한다. 촛불의 힘이 자칫 “정치세력 간 타협의 산물(필립 슈미터)”에 불과하게 되고, 시민참여의 승리가 단지 권력의 이동에 그칠까 두렵다. 최순종 경기대 사회과학대학 교수

[아침을 열면서] 한·미 관계의 핵심은 경제다

최근 한·미 정상회담 내용의 골자는 크게 ‘안보’와 ‘경제’ 사안으로 구분할 수 있지만, 방점이 서로 다르다. 문 대통령은 한ㆍ미 동맹과 북핵문제에 집중하여 공감대를 이끌어 낸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양국 경제협력 방향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데 주안점을 뒀으며 한국과도 적지 않은 이견을 노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ㆍ미 FTA 재협상과 무역 불균형 시정, 방위비 분담 재협상 등을 집중 거론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예민한 문제에 대해 직접 언급하지 않거나 두루뭉술하게 넘어감으로써 향후 미국 측의 요구에 보다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여유를 확보했다. 이번 회담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향후 서로가 ‘주고받을 것’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전개할 외교적 줄다리기의 전초전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실리를 중시하고 자신의 속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직설적으로 협상한다. 그는 한ㆍ미 양국 간 무역 불균형을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천명했고, 미국 정부가 내부적으로 이미 FTA 재협상 관련 절차에 착수했음을 밝히기도 했다.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한국 정부는 노골적으로 자국의 이익을 앞세우는 협상의 달인 트럼프가 이끄는 미국 정부를 상대로 헤쳐가야 할 난관이 수없이 많이 도사리고 있음을 분명하게 확인한 셈이다. 향후 양국 간 재협상 테이블에는 미국이 집중적으로 문제 삼는 품목인 자동차와 철강이 최우선적으로 오를 것이고, 법률시장 개방과 스크린쿼터 제도, 신문·방송 등에 대한 외국 지분 투자 허용 등도 오를 전망이다. 하지만 한국이 미국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들어줄 필요는 없다. 한국도 한ㆍ미 FTA와 관련해 요구할 것이 적지 않다. 재협상이 타결되려면 쌍방의 합의가 필요하다. 우리가 내주는 것이 있다면 그만큼 받는 것도 있어야 한다. 자동차와 철강 수출의 손해를 최소화하고, 적자를 보고 있는 투자ㆍ서비스 분야에서 양보를 끌어내야 한다. 한ㆍ미 FTA 체결 당시부터 논란이 됐던 ISD(투자자-국가 분쟁 해결) 조항도 다시 논의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동맹은 안보에만 있을 뿐, 경제에는 없다. 그에게는 안보도 경제의 종속변수에 불과하다. 그는 복잡한 이해조정과 타협이 요구되는 다자간 협상보다 압도적 군사ㆍ외교ㆍ경제력으로 일대일 힘겨루기를 하는 양자 간 협상을 선호한다. 막무가내로 한국을 밀어붙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끌려다니면 안 되고, 끝까지 믿어서도 안 된다. 2007년 협상에서는 양국이 정한 협상 시한을 믿고 최후의 카드를 내민 한국이 막판에 미국에 허를 찔렸다. 협상 타결에 목을 맨 한국 정부의 태도를 이용해 더 많은 것을 얻어내려 마지막 순간에 미국이 협상 시한을 연기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보다 더하면 더하지 모자라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자국의 경제적 실익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손바닥 뒤집듯이 말을 서슴없이 바꿀 사람이다. 문 대통령과 한국 정부의 당당한 대미 협상외교를 기대한다. 미국의 눈치만 보지 말고 자체적으로 치밀하게 전략과 전술을 세워 우리도 한국의 이익을 위해 부문별로 재협상을 요구하며 치열하게 협상에 임하는 배짱이 필요하다. 윤경우 국민대학교 대외협력부총장

[아침을 열면서] ‘양’이 넘치면 ‘질’로 전환될까

고등학교 시절 얼마 남지 않은 학력고사를 대비한 지리 수업 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선생님께서는 매시간 엄청나게 많은 기출문제를 복사해 오셔서 배경 설명보다는 문제풀이에 주안점을 두셨다. 어느 날 내가 선생님께 “내용에 대한 설명은 없이 문제만 풀어도 될까요”하고 질문을 하였다. 선생님께서는 그날 “양이 넘치면 질로 전환이 되는 법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말씀은 교수가 되어 학생을 가르치는 입장이 된 내게 늘 풀지 못한 숙제처럼 따라다녔다. 과연 양이 넘치면 질로 전환될까. 대학의 국제경쟁력을 나타내는 주요한 요소인 논문의 평가척도는 작성된 논문을 다른 연구자들이 얼마나 인용하였는지를 나타내는 피인용지수가 얼마나 높은가 하는 것이다. 당연히 우수한 학술지에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갖고 지난한 과정을 거쳐 게재된 논문은 피인용지수가 매우 높다. 그러나 그 반대인 경우는 당연히 피인용지수가 낮다. 국내 대학의 국제경쟁력이 노력에 비해 낮은 이유 중의 하나는 논문의 피인용지수가 낮다는 것인데 피인용지수가 낮은 논문을 아무리 많이 써야 피인용지수가 높은 논문과 비교될 수 없다. 또한 피인용지수가 낮은 논문만 쓰는데 익숙한 연구자는 이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는 피인용지수가 높은 논문을 쓰기 어렵다. 한편 우리나라가 늘 관심을 갖는 외래 관광객의 수는 양적으로 매년 엄청나게 늘고 있지만 이들이 우리나라에서 어떤 관광을 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또한 최근 중국 관광객이 감소함에 따라 무슬림 관광객에 눈을 돌리고 있는 정책은 충분한 고민이 뒷받침되고 있는지 우려스럽다. 영국의 빅토리아-알버트 박물관의 한국관에 가보면 한국이 유구한 역사와 독자적인 언어 그리고 명확한 국가정체성을 갖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지만 전시품의 면면만 놓고 본다면 과연 그러한지 부끄럽다. 우리가 항상 자랑하는 정보기술 강국의 면모로써 인터넷 속도는 전 세계에서 수위를 달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해외에서 거주하면서 한국의 웹사이트에 접속해 본다면 개발자들이 사용자의 다양한 사용 환경을 고려하고 있는지 원망스럽다. 암기력과 빠른 계산력이 논리적인 사고보다 앞서는 우리의 수학, 과학 수업이 앞으로 닥쳐올 예기치 못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도 미지수다. 사실 우리는 그동안 양으로 승부하는데 익숙했었고 그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점점 더 글로벌해지는 환경에서 더 이상 양에 안주해서는 우리가 염원하는 국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 양을 질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동안 해오던 관습적인 많은 부분의 일들을 과감히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선생님께는 죄송하지만 양은 아무리 늘어도 절대 질로 전환될 수 없다. 다행히도 우리는 지금까지 수많은 어려움을 겪고도 많은 성취를 이뤘으며 앞으로도 더 잘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고등학교 졸업 정도의 학력으로도 잘 살 수 있었던 유럽이 요즘 내홍을 겪고 있다. 우리보다 일찍이 질 관리에 눈을 떴지만 새로운 도전을 맞이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도 우리끼리만 어울려 살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질 관리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남호 경희대학교 호텔관광대학 교수

[아침을 열면서] ‘망신주기 경연대회’ 청문회는 이제 그만

인사청문회가 정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협치’를 표방하는 문재인정부가 인사문제와 관련 ‘정면돌파’ 의지를 보이고 있어 정부·여당이 야권의 강한 반대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주목된다. 인사청문회 결과에 따라 청와대와 국회, 여권과 야권의 협치 가능성이 더 어려워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 인사청문회를 눈여겨볼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는 문재인정부의 협치와 통합에 거는 국민적 바람이 매우 크다는 데 있다.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이후 등장한 역대급 새 정부가 첫걸음을 산뜻하게 뗄지 파행으로 시작할지 염려하는 국민이 많다. 국민적 기대와는 달리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장면들이 청문회 현장에서 드러난다. 국회의원들의 비합리적이고 유치한 질문, 팩트 검증 없이 등장하는 공세들, 왜곡되고 과장된 공격은 오로지 ‘후보 망신주기’ 목적인 듯 보기 민망할 정도의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청문회를 둘러싼 또 다른 병폐로 무책임한 언론 보도를 빼놓을 수 없다. 언론보도는 확실한 검증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정치인 멘트 중심의 미확인 공세를 앞세우는 보도 행태는 바람직하지 않다. 고위공직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미국에서 먼저 시작됐다. 1787년 헌법제정의회에서 고위공직자에 대한 국회인준권을 규정하면서 출발한 것이다. 미국의 청문회는 우리와는 같은 듯 다른 모습이다. 미국도 대통령이 지명한 장관 후보자 등을 대상으로 의회가 인사청문회를 철저하게 실시하고 있다. 미국의 청문회를 눈여겨볼 만한 점이 있다. 미국의 청문회장에서는 후보 자신의 배우자나 형제, 자식 등 가족이 후보 바로 뒤에 앉아 함께 한다. 청문회는 주로 후보의 능력과 자질, 가치관 검증에 주력하는데, 후보 망신주기식 신상 털기 청문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더구나 ‘아니면 말고 식’으로 후보 주위 사람들을 깎아내리는 일은 보기 어렵다. 공직자는 업무수행능력 외에도 흠결 없는 높은 도덕성을 갖춰야 한다. 그래서 더욱 합리적인 태도로 철저하게 후보를 검증해야 한다. 하지만 청문회장이 ‘후보 망신주기’ 경연대회장처럼 보이는 것은 누구에게도 이롭지 못하다. 특히 공세적 입장을 견지하는 야권에게도 득이 될 것이 별로 없다. 야당이 되면 으레 반복하는 ‘트집 잡기’는 어떠한 이로움도 주지 못한다. ‘반대만을 위한 반대’로 일관하는 악순환적 관행을 바라는 국민이 과연 몇이나 될까. 후보자의 사생활을 들춰내며 흠결 찾기 대결을 벌이는 여·야 힘겨루기는 불필요한 소모전이며 국력낭비라는 인식이 더 많을 것이다. 이제 청문회도 바뀌어야 한다. 합리적인 인사청문회를 위한 시스템 개선과 구체적 매뉴얼 마련이 시급하다. 무분별한 비판 여론을 방지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망신주기식 청문회 더 이상 안된다. 정책 검증과 도덕성 검증 두 부분으로 나눠 진행하되, 도덕성 검증은 비공개로 하자는 일각의 주장도 일리 있어 보인다. 청문회 검증 진행과 관련해 어떤 기준으로 어느 수준에서 무엇을 허용 범위로 정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김정순 신구대 교수

[아침을 열면서] 교육, 이대로 괜찮은가

우리나라 가계소비 중 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다. 정부예산에도 14% 정도가 교육예산이라고 하니 엄청난 돈을 쓰고 있다. 태어나서 겨우 부모 품에서 사랑받을 나이부터 유아원으로 유치원으로 학교로 학원으로 치열하게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는 것을 목표로 모든 아이들이 경쟁한다.교육전문가를 비롯해 정치인, 학부모, 교사들도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만 해결책은 못 찾고 있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외부요인이 기존 교육제도에 큰 충격을 주게 될 것이다. 이제 대학 졸업장으로는 사람보다 훨씬 저렴하고 쉬지 않고 일을 해 줄 로봇으로부터 일자리를 되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지고 말았다. 부모들이 선호하는 의사, 변호사, 세무사 등의 화이트칼라 일조차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다면 대체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 것인가? 가보지 않은 미래라 자욱한 안갯속을 헤매듯 답답하겠지만 따지고 보면 모를 일도 아니다. 우선 로봇이 못하는 것을 찾아야 한다. 아마도 사랑, 창조, 감성, 열정, 나눔 등과 관계된 것들일 것이다. 그저 돈을 벌기 위해 적당히 배우고 일하면 되리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그런 일은 로봇이 다 하고 있을 테니까. 지금까지 돈을 버는 수단으로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일자리 자체가 매우 중요했지만 앞으로는 이렇게 돈을 버는 수단으로서의 일자리보다는 진정으로 일 자체를 즐기며 행복하지 못하면 일할 기회조차 얻기 힘들 것이다. 돈을 버는 것보다 행위 자체로서 행복한 그런 일을 찾아야 될 것이다.그럼에도 최소한 기초생활은 가능해야 한다. 그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불안한 비정규직이라고 봐야 한다. 기초생활이 안정된 상태에서 원하는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직종을 자유직이라고 한다면, 새로운 시대는 이러한 자유직이 주류를 이루는 나라가 선진국이 될 것이다. 이미 유럽의 몇 나라에서는 기초생활비(Basic Income Guarantee)를 나눠주려고 검토 중이다. 그렇게라도 기초생활을 안정시켜야 하는 정부의 입장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더 바람직한 방향은 돈을 나눠주는 것보다는 국가와 개인이 힘을 모아 자급자족하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자급자족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은 자존감을 갖는 첫걸음이기도 하다. 4차 산업혁명은 농사방법이나 에너지 획득 그리고 공유경제 등으로 이 같은 기초생활을 위한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에 스스로 자급자족할 수 있게 정부가 나선다면 지속 가능한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미래 인재는 기초생활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학습이 필요하고 기초생활이 안정된 상태에서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자유직에 종사하게 될 것이다. 기초생활 안정을 위한 여러 가지 행위들 예를 들어 자급농사, 메이커스 활동, 공동체 봉사 등을 학습하며 자존감을 고취하고 어느 정도 안정된 환경에서 자아실현을 위한 다양한 도전을 마음껏 해 본다면 진정한 ‘자아실현 사회’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시대가 이렇게 빠르게 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자녀들에게 ‘로봇과 경쟁해서 승리하라’고 다그치는 것과 같은 일이 되고 말 것이다. 전하진 썬빌리지포럼 의장·前 한글과컴퓨터 대표

[아침을 열면서] 4차 산업혁명과 교육

최근 학술세미나 또는 정책토론에서 자주 등장하는 주제 중 하나는 아마도 ‘제4차 산업혁명’일 것이다.2016년 알파고(AlphaGo)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을 계기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관심이 사회적으로도 보편화되고, 이에 편승해 인공지능과 로봇,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등과 관련하여 일자리, 실업, 심지어는 인류의 미래(불안)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처에서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한 주제를 다양하게 다루고 있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은 새로운 인재상과 새로운 역량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미래사회에 적합한 교육의 본질과 이를 위한 교육(정책)의 방향에 관한 많은 논의가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4차 산업시대에 필요한 인재상으로 전문적 지식의 종합능력, 창의적 사고능력, 타인과 협업할 수 있는 공감능력을 갖춘 사람을 꼽는다. 생각해보자. 이런 인재상이 4차 산업혁명시대에만 필요한가. 사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요구되는 이와 같은 역량은 이전의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로 필요로 되었던 역량이며, 이를 계발하는 것은 시대를 초월하여 교육이 지향해왔던 목표이다. OK! 현대사회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지식사회, 정보화사회를 넘어 인간의 지능까지 대체, 아니 아예 인간의 지능을 초월하는 시대에 도래했다고 치자. 인공지능이 노동을 대체하고, 로봇이 상용화된다고 하자. 그러나 그럴수록 교육의 방향은 본질에 더 충실해야만 한다. 4차 산업혁명의 키워드인 융합(디지털과 아날로그, 가상과 현실 등)은 프로그램에 의해 설계된 것 이상이며 기계적으로 구조화된 것 그 이상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4차산업 혁명시대에 사라지게 될 일자리를 정형화된 지식과 계량화된 기술을 토대로 한 직업들이라고 예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설계된 프로그램에 의해 수천, 수만 가지 경우의 수를 가지고 운용되는 로봇, AI, 알파고와 경쟁에서 인간이 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간은 그들처럼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인간만이 지닌 소위 ‘사고의 불확정성’이라는 자산이야말로 바로 4차 산업시대에 요구되는 가장 핵심적인 역량인 것이다. 그러나 최근 교육 영역에서의 논의를 보면 피상적이고 근시안적이라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제4차 산업혁명을 강조하면서 교육의 가치는 그대로 효율성, 효과성, 성과지향성이라는 3차 산업시대에 기반하고 있다. 일률적인 교육을 지향하는 NCS(국가직무능력표준)가 그러하고 대학에서 인문학 영역을 줄이고 산업연계 교육을 강화하고자 하는 프라임사업이 그러하다. 4차 산업시대에서는 단편적이고 파편화된 지식이 아니라 창의적이고 종합적인 사고역량을 요구한다. 또한 정형화된 지식의 단순한 습득이 아니라 지식과 정보를 스스로 구상해나갈 수 있는 소위 ‘인식의 구상능력’이 강조된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성을 초월하는 초지성을 만들어 내는, 지식정보화사회를 넘어 지능정보화사회인 4차 산업시대의 교육은 오히려 ‘1차 산업혁명시대’에 충실해야 한다. 최순종 경기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교수

[아침을 열면서] 4차 산업의 미래는 대학교육에 달려있다

윤경우 로봇공학, 인공지능, 나노기술, 바이오기술, 사물인터넷, 3D프린팅, 자율주행 자동차 등 디지털 혁명을 기반으로 한 여러 가지 발전된 기술들이 새로운 시대를 여는 큰 변화의 시점에 왔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자동화 시대의 도래는 인간의 삶에 어떤 변혁을 가져올 것인가? 기대와 걱정이 크다. 점점 더 똑똑해지는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이 인간에게 편의를 제공해주는 이기(利器)나 친구에 머무를까? 아니면 결국 인간을 뛰어넘어 우리를 로봇에 종속시킬 흉기(凶器)나 적일까? 그에 대한 제대로 된 답을 찾기도 전에 세상은 이미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중국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삼황오제(三皇五帝)는 문명의 이기를 제작, 보급한 ‘기술 영웅’이었다. 역사적으로 중국은 기술을 끊임없이 갱신하고 진보시키며 오랫동안 전 세계의 기술을 선도해왔다. 하지만 중세 이후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있던 유럽에게 기술 선도자 위치를 빼앗겼다. 중국 근대사가 치욕으로 점철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도 1차 산업혁명에서 소외되어 서구와 크게 벌어진 기술의 격차, 즉 문명 발달 속도의 차이 때문이었다. 반면에 일본은 1차 산업혁명 대열에 재빨리 편승했고, 그 결과 한반도는 정복과 지배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기술을 진화시켜온 인간의 편리함 추구는 인류 문명의 핵심적인 동기이며 동력이었다. 4차 산업시대에는 인공지능에 따른 자동화 기술의 획기적 발전으로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는 속도와 범위가 훨씬 더 빠르고 폭넓다. 4차 산업혁명의 성공에 국가와 민족의 명운이 달려있다. 이러한 시대를 맞아 대학은 어떤 인재 육성이 필요한가? 우선 새로운 산업시대가 학생들에게 기회가 되고 도전의 무대가 될 수 있도록 새로운 경쟁력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어떤 제품과 서비스가 출현하고 대세를 이룰 것인가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교육 내용과 방법을 마련해 실제로 교육에 적용해야 한다. 대학교육이 괜찮은 일자리 경쟁에 대비하는 과정으로 전락하고 있는 현실에서 설상가상의 상황이다. 하지만 더 좋은 교육여건이 마련되기를 앉아서 기다릴 수만은 없다. 유감스럽게도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가하게 4차 산업혁명의 개념이나 실체만을 논하고 있을 때도 아니다. 이미 현실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대학이 주도적으로 4차 산업 기술 발전에 따른 노동시장 변화에 대비하여 새롭게 개발한 교육 내용과 방법을 교육현장에서 실제적으로 구현해야 한다. 상상력과 결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학은 지금까지와 다른 길을 보여줘야 하고, 교육혁신에 걸림돌이 되는 요소는 과감히 제거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문턱에서 미래에 경쟁력이 있는 창의적 융합 인재를 제대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대학 구성원 가운데 특히 교수가 변해야 한다. 교수가 변하지 않고는 시대가 요구하는 탁월한 연구 실적을 올리고 우수한 인재를 배출하는 대학을 만들 수 없다. 정부도 대학이 4차 산업혁명시대 중추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대학이 패러다임 전환기를 놓친다는 것은 국가의 미래를 잃는 것이다. 윤경우 국민대 대외협력부총장

[아침을 열면서] 예측 가능한 조직을 꿈꾸며

개인적으로는 단체관광이 주는 이점보다는 불편함 때문에 일찍부터 모든 것을 내가 계획하고 준비해야 하는 개별관광을 선호해왔다. 최근에는 단체관광에 비해 개별관광이 많이 선호되는 추세다. 그런데 개별관광은 해당 관광지에 대한 충분한 지식이 부족할 경우 예측하지 못한 일이 발생하면 매우 당황스럽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당황스러움을 최소화하고 예측 가능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개별관광을 준비하는 여행자들은 단체관광에 비해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 관광지와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파악해야 한다. 이러한 정보파악은 관광지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확실성을 최소화하여 최대한 예측 가능한 환경을 만들고자 하는 발로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수년 전 겨울에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학회를 참석하기 위해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경유한 적이 있다. 겨울에는 폭설이나 한파 때문에 종종 항공기가 결항되는 경우가 있어 조심스러운데 하필 공항에 도착했더니 이탈리아행 비행기가 결항이란다.당황스러움은 뒤로하고 그래도 나름의 경험을 살려 항공사의 데스크에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보니 몇 가지 질문과 함께 색색의 바우처를 내주었다. 하나는 택시에 제출하고 다른 하나는 호텔에 제출하라고 하며 다음날 출발하는 항공권을 다시 발권해 주었다.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밖에 대기하고 있던 아무 택시에 타서 바우처를 보여주니 익숙한 듯이 호텔로 데려다 주었다. 도착한 곳은 살펴보니 독일에 올 때 이용한 루프트한자 항공의 지정호텔이었다. 호텔 데스크에서 또 다른 바우처를 보여주니 저녁 식당을 이용하는 방법과 다음 날 아침 식사, 그리고 아침에 다시 공항으로 이동하는 셔틀버스 시간을 알려주었다. 객실에 올라가 보니 TV에 내 이름과 함께 환영한다는 메시지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결항으로 인한 불편함과 짜증은 감동으로 바뀌었다. 사실 내가 경험한 서비스는 항공사가 결항이라는 불확실성이 발생했을 때를 대비하여 철저하게 그 대응책을 마련하고 그 결과 여행자가 예측 가능한 일정을 소화할 수 있도록 하였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예측가능성은 일반 조직에도 동일하게 중요하다. 외국에서 공부를 하거나 직장을 다녔던 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들은 우리만큼 열심히 일하는 것 같지도 않고, 개개인의 능력이 우리만큼 뛰어난 것 같지도 않은데 조직의 성과를 보면 우리와 많은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 조직의 외적으로 관찰되는 특징을 살펴보면 적어도 우리보다 더 다양한 상황에 대한 시스템화가 세밀하고 철저하게 되어 있다. 이러한 조직의 시스템화는 조직을 예측 가능하게 만들어 일상적인 업무에서는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꾸준히 성과를 도출할 수 있다. 또한 돌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줄어들어 지도자는 일상적인 업무보다는 미래지향적인 비전창출에 더 집중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특징은 문화적인 차이에 기인한 바도 적지 않아 도입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글로벌 경쟁력이 더욱 절실한 작금의 상황에서 예측 가능한 조직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더 이상의 미래는 없다. 정남호 경희대학교 호텔관광대학 교수

[아침을 열면서] 대선 TV토론과 스피치의 정치학

새 날이 왔다.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세상이 더 좋게 더 많이 달라져야 한다는 국민적 염원이 투표를 통해서 확인됐다. 유권자들이 각자 지지하는 후보는 달랐어도 변화를 향한 간절한 열망은 같았을 것이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 믿음직한 후보의 탄생을 바라는 염원이 다를 수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모 후보 캠프에서 언론특보로 활동했던 터라 표심으로 이어질 보도 동향과 여론 형성 등 후보의 표심 관련 업무를 수행하다 보니 이번 선거의 여러 양상을 심도 있게 관찰할 수 있었다. 특히 선거 마지막 무렵엔 칼럼을 거의 매일 한 꼭지씩 쓸 정도로 나름의 방식으로 집중하며 공을 들인 터라 투표 마감 시간이 지나고 결전의 순간이 다가오자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마음 졸여 TV 출구 조사 결과를 그냥 보고 있기 버거울 정도였다. 불안과 초조함을 견디다 못해 동료 언론특보끼리 각자가 예측한 득표율로 내기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방송 3사가 진행한 출구조사는 1위의 압도적 표차로 나타나는 바람에 승자가 어느 정도 예측된 터라 본격적인 개표 방송은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다. 후보들이 선두 자리를 놓고 엎치락뒤치락하며 경쟁해야 심장이 쿵쾅거렸을 텐데 말이다. 경기 결과를 뻔히 알면서 경기 녹화 영상을 굳이 되돌려 볼 때 느껴지는 것 같은 뭐랄까, 묘한 허탈감으로 개표방송에 집중되질 않았다. 문득 대선후보 중에 미국의 오바마 전 대통령처럼 스피치가 아주 뛰어난 후보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또 안철수 후보가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큼 스피치가 매끄러워 수락 연설 당시의 놀라운 상승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면 대선 결과가 달라졌을까 궁금해진다. TV토론에서 보여준 스피치의 영향으로 지지율 급등과 급락을 경험하며 대선 TV토론에서 스피치의 중요성을 확실하게 일깨워 준 안철수 후보의 사례에 비춰 보면 정치에 있어서 스피치와의 상관관계가 가늠된다. 이번 19대 대선은 모두 여섯 차례의 TV토론으로 여느 때보다도 많은 화젯거리를 제공했는데 토론 결과는 바로 지지율로 나타나곤 했다. 한 매체 여론조사에는 국민 거의 절반이 TV토론이 지지후보 결정에 큰 영향을 끼친다(응답자의 49%)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TV토론의 영향력이 막강해 바야흐로 스피치 전성시대인 듯하다. 후보 시절 문재인 대통령의 스피치 스타일은 달변가는 아니어서 답답할 수도 있지만 친근감과 신뢰감을 주며 이성적이어서 설득력을 얻는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정치가는 무엇보다 정책을 인정받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언어와 비언어적인 요소(표정, 자세, 제스처 등 언어 이외의 모든 것)로 구성된 스피치를 통해서 국민에게 자신의 정책을 잘 전달하고 설득시켜야 한다. TV토론과 정치가의 스피치는 국내외의 국가 지도자를 선출하는 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수단이다. 특히 국내의 경우 이번 대선 후보들이 TV토론에서 보여준 스피치 이미지는 실제로 그 영향이 막강하게 작용하면서 TV토론이 가장 중요한 승부처로 인식되고 자리 매김 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순 신구대학교 교수

[아침을 열면서] 차기 정부에 바란다

곧 새 정부가 들어선다. 새 정부는 인류 문명사적으로 대변혁의 시기에 탄생한다. 따라서 개혁과제들을 강력하게 추진하지 않으면 100년을 앞서갈 수 있는 골든타임을 허망하게 놓칠 수 있다. 그런데 누가 되든 간에 국론 통합을 추진하여 엄청난 국력 낭비를 막고 미래를 향해 힘차게 나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우선 안보관을 통일해야 한다. 한 나라의 국민이라면 적어도 안보관만큼은 이견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각론에서는 현실적 실행가능성에 따라 이견은 있을 수 있겠지만 총론에서만큼은 한목소리를 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그 총론부터 분열되어 있다고 본다. 따라서 여야 정치인 그리고 전문가들이 치열하게 토론하여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그리고 그 백서에 따라 정부와 여야가 같은 목소리를 내야 한다. 적어도 안보에 관한 한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둘째는 정체성에 대한 교육이다. 자기 나라를 잘못 태어난 나라라고 교육하고, 자신들의 역사를 자긍심은커녕 부정적으로 교육하는 나라가 전 세계에 존재할까. 적어도 어린 학생들에게는 자긍심을 고취하는 교육을 시켜야 하고 또 역대 정부의 공과를 가감 없이 교육해야 한다. 솔직히 어린 학생들에게는 공을 더 부각시켜도 되리라 본다. 최소한 이 두 가지 이슈만큼은 여야가 더 이상 정쟁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는 4차 산업 혁명에 대비한 과감한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은 에너지 혁명으로부터 비롯된다. 내연기관 발명으로 촉발된 2차 산업혁명은 약 150년간 석유를 기반으로 이루어졌지만 이제는 신재생에너지와 배터리에 의해 새로운 문명이 건설될 것이다. 이는 부동산 산업의 변화로 이어지고 여기에 인공지능 등 첨단 기술이 접목되어 우리 삶의 환경 다시 말에 삶의 방식을 송두리째 바꾸게 될 것이다. 이후 100년 동안 우리 삶의 터전은 친환경적이고 지속 가능한 형태로 또한 소규모 분산형 공동체 중심으로 재편되고, 이들 공동체가 연결되는 형태로 변화되리라 예상된다. 우리는 이런 신문명을 뒷받침할 모든 기술을 가지고 있는 거의 유일한 국가이다. 만약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우리 기술을 동원해 북한을 신문명의 발원지로 개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전 세계 미개발지역을 중심으로 이 같은 신문명을 보급할 수 있을 것이다. 이후 100년 정도 이와 같은 형태로의 문명의 대변혁이 일어나리라 예상된다. 우리가 이 같은 비전을 제대로 추진한다면 이후 100년을 리드하는 선진국이 될 수 있다. 새 정부가 이같이 이후 100년의 토대를 마련해 준다면 대한민국 역사에 길이 남는 정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기존 기득권의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저항 때문에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우리는 이후 100년의 기회를 놓치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과거 IMF 직후 인터넷시대에 발 빠르게 대응하여 정보혁신을 이루어냈듯이 그때보다 더 큰 개혁이 시기를 슬기롭게 헤쳐 나가야 할 것이다. 국민과 함께 힘을 합쳐 새 시대를 여는 새 정부가 되기를 학수고대해 본다. 전하진 썬빌리지포럼 의장

[아침을 열면서] 성숙한 시민사회를 위하여

최근 한국사회 진단을 위한 키워드 중 하나는 ‘촛불’일 것이다. 촛불이 갖는 정치적·사회적 의미는 차치하고라도, 그 출발과 전개과정에서 한국사회 발전의 한 단면이었다는 것에 대해 이의가 없을 것이다. 한편, 촛불과 더불어 한국사회 진단을 위한 두 번째 키워드는 아마도 ‘사회갈등’일 것이다. 갈등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최근의 화두로서 갈등은 사회의 부정적 단면에 대한 논의인 것이 분명하다. 필자에게는 이 두 가지 화두, ‘촛불’과 ‘갈등’에서 공통적으로 흐르는 기운이 느껴진다. 바로 시민의 목소리, 시민의 참여이다. 여기에서 몇 가지 질문이 제기된다. 왜 시민참여라는 위대한 물줄기가 사회 갈등이라는 부정적인 결과를 동반했는가? 시민사회로 성장하는 것이 그렇게 힘든 것인가? 필자는 세 가지 측면에서 그 대답을 찾고자 한다. 첫째, 한국사회의 시민참여는 지나치게 정치성을 지닌다. 이는 한국사회 시민운동의 태생적인 문제에서 출발한다. 80년대 사회변혁의 주체세력이던 학생운동은 정치운동에서 벗어나 다른 사회운동의 영역, 예를 들어 인권, 환경, 반전·반핵, 평화운동 등으로 전환했어야 했다.그러나 당시 사회운동의 주류인 소위 ‘386세대’ 중 다수가 정치권으로 편입되었고 이들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시민운동은 정치운동의 연장선에서 이루어졌다. 또한 시민운동 태동 당시 기부나 자원봉사와 같은 시민의 자발적 참여가 부족했다. 따라서 시민단체는 재정적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원자로서 정치, 후원자로서 기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와 같은 시민운동의 태생적 한계, 즉 정치성과 재정적 의존성은 이를 활용하는 집단에 의해 점점 더 강화되었고, 정치적으로 양분된 시민참여는 사회갈등을 수반하게 되었다. 둘째, 앞의 원인과 유사한 맥락에서, 시민의 사회참여가 출발부터 이미 이념적 진영을 짠 상태에서, 즉 내 편과 상대편이 명확한 상태에서 이루어진다. 성숙한 시민운동이 되기 위해서는 개인의 가치가 사회적 가치와 만나는 지점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진영논리에서 출발된 시민참여는 각자가 자기(편)의 논리에 의해 옳고 그름, 정의와 불의를 판단하게 된다. 자신만이 정의롭다고 믿는 ‘정의믿음’은 사회갈등을 야기시킬 수밖에 없다. 셋째, 사회참여가 지니는 진지함의 부족이다. 사회참여는 단지 일순간의 기분이나 관심이 아닌 막중한 책임의식과 진지함이 전제되어야 한다. 나의 참여가 우리 사회의 변화와 발전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 촛불집회나 태극기집회에 과연 이런 진지함이 있었는가에 대한 성찰이 요구된다. 시민사회는 시민성을 지닌 시민의 사회참여로 이루어진다. 시민성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의식, 사회참여는 공익성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난 촛불집회나 태극기집회의 시민 참여에서는 이 두 가지 모두가 부족했다. 시민사회로 도약하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책임의식과 공동체적 가치 회복을 위한 시민 스스로의 깊은 성찰이 더욱 요구되는 때이다. 최순종 경기대학교 사회과학대 교수

[아침을 열면서] ‘I Trump You!’의 위력

최근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첫 정상회담이 공동성명도, 공동기자회견도 없이 막을 내렸다. 지극히 이례적인 일로, 실패한 회담으로 평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회담 전후에 전개된 상황과 양국 지도자와 주요 관료들의 발언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보면 실패로 단정 짓기엔 시기상조다. 트럼프의 특별한 성향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트럼프는 타고난 ‘타짜’다. 그는 판을 벌이고, 키우며, 끌어가는 데 있어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상대가 예측하기 힘든 선제공격을 강하게 날리고 상대방의 반격에 대해 거칠게 받아쳐 기선을 제압하고, 처음부터 과감한 베팅으로 판을 흔들어 자신에게 좋은 조건으로 유인하며 끌어가는 경향이 있다. 트럼프는 유세 당시부터 환율조작국 지정, 불공정무역, 중국상품 고율 관세부과 등을 거론하며 중국을 자극했다. 당선 후에는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력하지 않으면 ‘하나의 중국’ 원칙을 깰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트럼프는 중국을 게임에 끌어들여 판을 벌이고 자신의 방식에 말려들도록 하기 위해 가장 예민한 부분을 자극한 것이다. 이에 대한 중국의 반항에는 거세게 되받아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은 대만 등 핵심이익에 간섭하지 않는다면 미국 투자를 확대해 미국 내 일자리를 늘린다는 트럼프의 대선 공약 실현을 돕겠다고 제안했다. 그에 대한 보답으로 취임 직후 트럼프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대만 문제를 중국과 이익 거래에서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협상용 카드로 활용했던 것이다. 이후 트럼프는 또 다른 카드를 꺼내 들었다. 북한 이슈다. 북한 문제 해결을 중국이 도와주면 그 대가로 우호적으로 무역협상을 하고,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지 않겠으며, 비(非)시장경제 지위 변경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제안했다. 정상회담 직전에는 중국이 북한을 압박하지 않으면 미국은 독자 행동할 것이며 선제 타격도 불사함을 시사했고, 회담 첫날에는 빈말이 아님을 보여주려는 듯 시리아에 미사일 공격을 감행했다. 그 결과 트럼프는 중국과 100일 안에 양국 간 무역 불균형을 뚜렷하게 개선하기로 합의했다. 더 나아가 트럼프는 정상회담이 끝난 지 하루 만에 대북 군사행동도 가능하다는 신호를 보내 한반도 전운을 최고로 고조시키며 중국을 압박하여 더 적극적인 협력을 이끌어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의 엄포(bluffing)가 위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미·중 정상회담의 내용과 결과가 외부에 유출되면 안 된다. 특히 북한에 속내가 알려지게 되면 효과가 약해진다. 트럼프의 특기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카드를 지렛대(leverage)로 최대한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미·중 간 협상은 아직 진행 중이며, 트럼프가 주장해온 중국에 대한 경제적 압력들은 아직 철회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살아있는 과제이다. 양국이 경제와 안보를 일부분씩 주고받으며 거래를 한다면 북한문제는 트럼프에게는 하나의 카드에 불과할 수도 있다. 비즈니스맨에서 정치인으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는 협상과 거래의 달인 트럼프가 두려워진다. 윤경우 국민대학교 대외협력부총장

[아침을 열면서] 4차 산업혁명을 위한 발상의 전환

사회과학조사 방법론 중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회귀분석은 원인이 되는 독립변수와 결과가 되는 종속변수 간의 인과관계를 살펴보는 방법론이다. 19세기 프랜시스 갤턴이 키 큰 부모들이 낳은 자식들이 키가 점점 더 커지지 않고 다시 평균 키로 회귀하는 경향을 통해 발견한 개념이다. 회귀분석의 장점은 원인이 되는 독립변수들이 변할 때 결과가 되는 종속변수의 변화를 예측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원인의 변화에 따른 결과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으며 또한 특정한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어떤 원인들의 조합이 필요한지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회귀분석을 현실 세계에서 사용할 때에는 쉽지 않은 문제가 있다. 그것은 원인과 결과가 모호한 경우에 주로 발생한다. 예를 들어, 부모의 키가 큰 경우에 자손의 키가 큰 경우는 부모의 키가 원인이 되고 자손의 키가 결과가 되어 원인과 결과가 분명하다. 그러나 외래 관광객과 국가경쟁력 간의 문제에서는 외래 관광객이 증가하면 국가경쟁력이 증가하는 것인지 아니면 국가경쟁력이 증가하면 외래 관광객이 증가하는 것인지가 모호하다. 사실 우리 주변의 사회현상에서는 이러한 원인-결과 구조가 모호한 경우가 너무 많다. 최근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이하여 우리나라도 교육개혁을 해야 한다는 얘기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배경에는 교육개혁을 원인으로 하고 4차 산업혁명시대의 바람직한 사회상을 결과로 예단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수십 년간 교육개혁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려고 했었던 노력은 큰 성과가 없었다. 오히려 사교육이 가지고 있는 폐단과 한계를 직시하면서도 그 문제의 수렁에 점점 빠져들고 있는 형국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우리가 교육개혁을 통해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가정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닐까? 만약, 우리가 발상을 전환하여 우리가 결과로 간주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시대의 바람직한 사회상을 원인으로 하고 교육개혁을 결과로 두면 어떨까 생각해 보자. 그렇다면 바람직한 4차 산업혁명시대의 사회상은 무엇일까?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있는 현실의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는 노력만으로는 획득하기 어려운 높은 연봉과 사회적 명성 그리고 안정적인 직업을 위해 누구나 애쓴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힘들고 어렵고 더럽게 생각하여 사회적으로 터부시하는 일도 가치를 부여하고 지금보다 높은 생활수준을 영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면 어떨까?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신하는 거창한 4차 산업혁명이 아니더라도 지금까지는 낮은 연봉과 사회적 인식 때문에 기피하던 인간적인 직업들이 인정받는 시대를 준비하면 어떻겠느냐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원인이 되면 실제 교육현장에서 굳이 무리를 해서 누구나 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명문대 진학을 위해 사교육에 투자를 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비록 멋지지는 않지만 내 능력 범위 내에서 얻을 수 있는 직업이 충분히 인정을 받고 생활하는데 문제가 없다면 교육개혁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일어날 것이다. 우리가 변해야 한다. 원인과 결과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새로운 미래를 만든다. 정남호 경희대학교 호텔관광대학 교수

[아침을 열면서] 대통령 후보의 연설과 그 무게에 대하여

2017년도 대선이 한 달이 채 남지 않은 탓인지 대선 후보들이 하는 말 한마디가 각 매체를 장식하며 국민적 관심을 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의 대통령 후보 수락연설문이 표절 논란을 일으키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확산되고 있다. 안 후보 연설문 표절 논란은 놀라움과 당혹감을 준다. 안 후보의 스피치 방식이 너무 단조로워 맥이 빠진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단기간에 목소리까지 신뢰감 주는 음역대로 바꿔가며 패기 넘치는 연설로 주목을 받는 후보여서 더욱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번 연설문이 오바마의 연설문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어 보인다. 일각에서는 오바마 ‘오마주(hommage: 영화 등에서 다른 작가나 감독의 업적과 재능에 대한 경의를 담아 특정 장면이나 대사를 모방하는 일)’ 정도여서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견해도 있지만 윤리적인 비난을 피해가기는 어려워 보인다. 안 후보 측은 “표절이 아니라 영감을 얻은 것이다. 또 오바마가 젊고 매력적인 대통령으로 국민 통합이라는 의미에서 좋은 문구를 인용, 발전시킨 것을 표절이라고 트집 잡는데 어이가 없다”며 가벼운 대응을 보이는데 이러한 자세도 납득하기 어렵다. 대통령 후보 연설이 아닌 가벼운 연설이라도 인용을 밝히지 않고 타인의 아이디어를 차용해서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더구나 대통령의 후보 수락 연설문이나 연설 방식은 흠결이 없어야 한다. 대통령 후보라는 직분에 맞는 무게가 있어야 한다. 대통령 후보로서 국민과의 약속을 천명하는 엄중한 자리인 만큼 온 마음을 담아 자신이 어떤 비전을 가진 후보인지를 알리는 자리여야 하기 때문이다. 또 그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실천의지를 연설을 통해 표명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후보 자신의 신념과 철학을 바탕으로 연설문을 만들고 또 그런 연설이 유권자를 감동시키고 설득시킬 수 있다. 세계의 많은 사람이 미국의 링컨, 오바마 대통령,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연설에 영감을 받았을 것이다. 영감을 받은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에게 감동을 준 이들의 이름을 자랑스럽게 밝히며 당당하게 인용했을 것이다. 한 국가 대통령 후보의 연설은 더욱 그랬어야만 했다. 처음부터 차용했음을 밝히거나 아니면 영감을 준 대상보다 더 갈고 다듬어 연설자의 언어로 재탄생 된 연설문을 만들어야만 했다. 표절 의혹에 대해 ‘트집 잡는다’며 ‘어이없다’는 가벼운 대응 자세는 자칫 대통령 후보 수락연설이 주는 의미를 너무 가볍게 본 것은 아닌지 오해를 살 수도 있다. 해외뉴스에 웃음거리가 되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다. 지난해 7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부인 멜라니아 트럼프가 미셸 오바마 연설 표절 논란 당시 트럼프 측에서는 실수를 인정하며 대국민 사과로 마무리했었는데 안 후보 측의 무성의한 대응과 오버랩 된다. 대통령이 될 사람은 후보의 수락 연설이 갖는 엄중함을 결코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 국민은 대선후보들의 연설을 통해서 누구를 차기 대통령으로 뽑을지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정순 신구대학교 교수

[아침을 열면서] 대한민국은 지속 가능한가

이제 대선 정국이 되었다. 불과 한 달 남짓이면 새 정부가 인수기간도 없이 바로 들어서게 된다. 선거도 볶아치듯 해야 하고, 정권인수도 정신없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려되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이유는 지금의 경제상황이나 일자리감소 등의 현상이 과거와는 많이 다르다는 점이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것이 단지 인공지능 등 기술적 진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보다 더 큰 충격파는 화석연료와 내연기관에 의해 이루어진 문명의 토대가 신재생에너지와 에너지저장장치(ESS) 기반으로 변화되고 있다는 점이다.1, 2차 산업혁명이 증기기관의 발명과 내연기관의 발명에 의해 이루어졌고 2차 산업혁명 이후 150여 년 동안 이 같은 기반 위에 인류 문명이 건설되어 왔다. 그러나 인류는 더 이상 화석연료를 에너지원으로 지속 가능한 발전이 어렵다는 데 국제사회가 동의하고 있다. 2015년 12월 195개국 정상이 파리에 모여 파리기후협약을 통해 지구온도를 2도 이하로 유지하겠다고 합의하는 데까지 이르렀다.이런 약속을 유지하려면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획기적으로 늘어나야 한다. 태양광, 태양열,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는 분산화가 가능하고 발전용량도 매우 가변적이고, 송전 배전 등의 부가적인 인프라 없이 직접 사용도 가능하다. 그러나 불규칙한 발전이 문제였는데 에너지저장장치 (ESS)의 비약적인 발달로 인해 이 같은 문제가 해소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아이슬란드의 경우 이미 89% 정도에 이르고 있고 하와이는 100% 신재생에너지를 사용할 것을 선언하기도 했다. 유럽이나 중국도 빠르게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려나가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 남짓이며 2035년까지의 목표도 겨우 11%에 불과하다. 그런데 정부 산하 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신재생에너지 기술적인 잠재발전량이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의 22배에 달한다고 한다. 1년에 100조 원이 넘는 돈을 에너지 수입에 사용하면서도 에너지 자급률이 3%밖에 되지 않은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다. 발전 잠재량이 22배나 되는 데도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획기적으로 늘리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신재생에너지 기반은 4차 산업혁명 이후의 인류 문명의 기본적인 에너지기반인데 이런 신산업의 기회를 애써 무시하며 화석연료를 고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매년 100조 원의 에너지 수입비용을 태양광으로 바꿔 확 낮출 수도 있을 텐데도 미적거리고 있는 정부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런 정책으로 과연 대한민국은 지속 가능한 나라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제 국민이 나서서 정부가 이같이 잘못된 방향으로 예산을 쓰지 못하도록 압력을 넣어야 한다. 새 정부는 에너지 주권을 되찾는데 모든 정책적 역량을 쏟아부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나라가 외세에 의존하지 않고 지속 가능한 국가 되는 길이기도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신산업을 창출하고 전 세계 새로운 산업을 수출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이런 기회를 놓친다면 우리는 100년을 뒤처지게 될지 모른다. 정말 중요한 이런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속 가능한 대한민국을 보장할 수 없을지 모른다. 전하진 썬빌리지포럼 의장

[아침을 열면서] 왜 우리는 위험하다고 인식하는가

최근 새로운 공공갈등의 요소로 등장한 수원 군(軍)공항 이전 문제를 보면서 위험의 현대적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위험은 모든 시대 모든 사회에서 다양한 양태로 존재했다. 일반적으로 위험은 해로운 것 또는 피하고 싶은 것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만약 위험이 단지 유해하기만 하다면 우리는 아마도 위험성이 있는 사안을 아예 피하거나 생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위험은 긍정적 효과 또는 유익한 결과를 창출하기도 하다. 그래서 인류 역사는 위험을 생산하는 동시에 통제하는 과정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위험은 어떤 사안의 결과가 우리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과 그것이 일어날 가능성에 의해 정의된다. 하지만 위험의 발생가능성에 대한 믿음 정도, 그리고 위험성에 대한 인식은 매우 상대적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는 부정적인 결과가 또 다른 누구에게는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동일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위험에 대한 정보, 지식의 정도 또는 통제가능성 여부에 따라 위험하거나 또는 위험하지 않은 것으로 달리 인식된다. 그렇다면 왜 위험이 과거에 비해 현대사회에서 더 강조되는가? 현대사회에서 위험이 실제로 더 증가했는가? 아니면 단지 우리가 위험이 더 많아졌다고 느끼는 것뿐인가? 자연재해라는 과거의 위험과는 달리 과학과 기술의 발달에 수반되어 나타난 근대사회 위험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인재의 성격이 강하다. 이에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과학과 기술이 중요해졌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위험 극복을 위한 과학과 기술의 발달은 동시에 새로운 위험을 생산하게 되었다. 그러나 새롭게 등장한 현대사회 위험은 언제 어디서 발생될지 알 수 없는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특성을 지닌다. 현대사회 위험의 비가시성, 불예측성, 불확실성 등은 우리에게 불안감을 만들어낸다. 즉 현대사회 위험은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에서 기인한 불안감, 위험의 발생가능성에 대한 불안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현대인의 위험에 대한 인식에서 우리는 수원 군공항 이전 문제(사드배치 문제도 마찬가지로)해결을 위한 중요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즉 대부분 공공갈등의 원인은 공공(정부나 지자체)의 의사결정이 개인(나)에게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에서 시작된다. 그 불안감을 통해 위험의 실재 여부와 관계없이 ‘위험한 것으로 판단되는 것 자체’가 위험한 것이 되어버린다. 이와 같은 심리적 불안감은 정확한 정보의 제공을 통해 줄일 수 있다. 어떤 사안에 대한 정보왜곡이나 이해부족은 불안감을 가중시킨다. 게다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마저 차단된다면 그 불안과 위기의식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결국 정확한 정보 제공과 투명한 정보 개방을 통해 개인의 불안감이 해소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공공의 결정에 대한 신뢰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런 신뢰를 바탕으로 사회적 합의가 가능할 것이다. 수원 군공항 이전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나 관련 지자체는 이 점을 반드시 생각해주길 바란다. 최순종 경기대학교 사회과학대 교수

[아침을 열면서] 사드 문제 해결을 미·중에 맡겨라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보복은 자국에 미칠 손익의 철저한 분석을 바탕으로 수립된 전략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 중국은 자국에 피해가 적지만 한국에는 큰 분야들을 선별하여 단계적으로 보복 수위를 높이고 범위를 확대하며 압박하고 있다. 특히 한국 사회에 가시적인 파급 효과가 큰 분야들을 우선적으로 선별하여 집중 타격하고 있다. 탄핵심판과 조기 대선이 확정된 후에는 한국 경제에 대한 보복을 지속하면서 자국 내 반한 시위를 제재하는 등 더욱 교묘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이 교묘한 중국의 행보에는 한국 대선 과정의 과도기적 정치 상황을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저의와 대선 결과에 따라 사드 해법이 달라질 수 있다는 기대가 깔려 있다. 또한 4월 초 예정된 미·중 정상회담에서 진행될 협상을 대비한 정지작업의 의도도 숨어 있다. 이미 사드 배치가 시작되고 있다. 대선 이후 한국 정부의 노력으로 사드를 원상복귀 시킨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한국은 중국의 본격적인 보복을 견디기 어렵지만, 트럼프가 이끄는 미국으로부터의 압력도 견뎌낼 체력이 없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누가 정권을 잡든 여소야대가 된 상황에서 차기 정부가 사드 문제를 제대로 감당해낼 수 없다. 대선 후 한국 정부는 ‘친미’ 또는 ‘친중’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강요하는 정치권에 휘둘려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다. 북한은 이러한 상황을 즐기면서 계속 도발하며 한국을 극단적 선택을 하도록 몰고 가려고 할 것이다. 중국 정부를 설득해야 한다는 주장은 현실성이 부족하다. 사드 배치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취하는 방어적 조치이고, 사드가 기술적으로 중국에 위협이 되지 않으며, 한반도의 불안정이 중국의 국익에도 해가 된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중국에게는 우이독경에 불과하다. 중국이 사드가 북한 미사일 방어를 넘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미사일방어 체계에 적극 활용될 수 있다고 인식하는 한 한국을 향한 보복은 더 거세지고 집요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그로 인한 한·중 간 갈등 심화는 결국 북한을 이롭게 하는 작용을 할 뿐이다. 사실 사드 문제는 미국과 중국이 수습해야 한다. 중국은 사드 배치가 단순히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처하려는 데에만 있지 않고 미·중 전략 경쟁 구도 속에서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또한 미국이 한국과 일본을 이용해 미래에 중국의 세력을 억제하려고 한다고 우려하고 있다. 중국의 사드 배치 반대가 미사일보다는 고도의 레이더 때문인데, 그 운용권도 미군이 가지고 있다. 중국의 의심을 살만도 하다. 중국이 오해하고 있다면, 그 오해도 미국만이 풀 수 있다. 미국이 전략적 의도를 가지고 있다면, 중국과 협상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결국 한국에 사드를 유지하든 철수하든 미국이 중국과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그래야만 한국도 친미와 친중으로 채색된 국내 정치세력의 냉전적 진영 논리를 극복하고, 미·중의 가교역할을 하면서 동아시아의 번영과 평화에 기여할 수 있다. 4월에 열릴 미·중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역할을 주문한다. 윤경우국민대학교 대외협력부총장

[아침을 열면서] 관광입국의 길목에서

2016년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이 1천700만 명을 넘어섰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사건이다. 2012년도에 처음 외국인 관광객 1천만 시대를 연 이후 불과 4년 만에 달성한 수치이기 때문이다.국내 관광산업의 성장이 큰 의미를 갖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관광산업이 고용유발 효과가 크고 여타 산업에 미치는 연관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특히, 정보기술에 강점이 있는 우리나라의 여건을 살펴볼 때 관광산업과 연계된 4차 산업혁명은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2015년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발표한 여행ㆍ관광경쟁력지수를 보면 우리나라의 관광경쟁력은 이웃나라 일본(9위), 중국(17위) 보다 못한 29위로 나타나고 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환경조성 분야와 자연 및 문화자원분야는 상대적으로 높은 순위를 보여주고 있지만, 관광정책 및 기반조성, 인프라 분야는 매우 낮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강점이 있는 환경조성 분야에는 정보통신기술 분야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 순위는 11위로 상당히 국제적으로도 강점이 있다. 따라서 정보통신기술과 관광산업을 결합하여 새로운 사업을 발굴한다면 우리나라의 관광산업이 진일보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필자가 연구하고 있는 스마트관광은 이러한 정보통신기술과 관광산업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관광생태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국가경쟁력을 강화하는 전략과 정책이 도출될 수 있다. 이미 정부에서도 관광 R&D 사업을 통하여 다양한 가능성을 가진 관광산업분야의 도전적인 아이디어의 연구를 지원하고 있으며 구체적인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사물인터넷을 이용한 지능형 전시장, 박물관을 지원하는 서비스와 빅데이터 기반의 개인화맞춤화된 관광정보제공 등은 4차 산업혁명에서도 매우 필수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특히, 최근에 포켓몬고의 등장으로 각광받고 있는 증강현실, 가상현실, 혼합현실 등도 관광산업과 결합되었을 때 더욱 성장할 수 있다. 이러한 스마트 관광의 성장을 위해서 우리 정부와 우리가 한 번 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는 점이 있다. 첫째, 현재 관광정책의 주요 관심대상은 중국 단체관광객과 쇼핑관광으로 국한되어 있다. 이미 중국관광객들 역시 개별관광객으로 관광패턴이 변하고 있으며, 해외 유명 브랜드를 판매하는 면세점을 지원하는 정책으로는 우리 관광산업이 획기적인 성장을 하기 어렵다. 둘째, 정보통신기술과 관광산업의 결합을 지원하는 정부부처가 분산되어 있어 효율적인 지원이 어렵다. 이러한 행정 편의주의적 지원은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을 어렵게 하거나 중복된 지원을 하게 한다. 끝으로, 관광산업을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에 변화가 필요하다. 대표적인 서비스산업인 관광산업은 무형의 자원을 제공하고 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이다. 그런데 우리는 서비스는 무료라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관광산업과 같은 서비스 산업에 비용을 지불하는 것에 대해 상당히 인색하다. 우리가 정당한 서비스의 대가에 대한 지불을 할 때에 관광산업도 더욱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관광입국의 길목에 서 있다. 정남호 경희대학교 호텔관광대 교수

[아침을 열면서] 김영란법 피하려 ‘애드버토리얼’… 언론사의 꼼수

텍스트 상단에 애드버토리얼(advertorialㆍ기사체로 조판한 광고)이라는 소제목을 달고 하단에 기자 바이라인을 표시할 경우, 이를 광고로 봐야 할까, 기사로 봐야 할까. 얼핏 기사로 착각하고 한참을 읽어 봐도 광고인 듯 광고 아닌 듯 헷갈린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광고 표시와 기사 표시를 동시에 하는 애매한 콘텐츠는 광고 윤리에도, 기사 윤리에도 적절하지 않다. 그 폐해 또한 매우 크다. 무엇보다 이용자들이 광고를 기사로 오인해 실제보다 과장된 광고 내용을 지나치게 신뢰하는 경우가 많아 심각한 피해가 유발될 수 있다. 최근에는 유난히 신문과 잡지 등 온ㆍ오프라인 할 것 없이 에드버토리얼이라는 광고 표시를 소제목으로 한 콘텐츠들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특히 조·중·동 등 대형 일간지 섹션 지면을 중심으로 애드버토리얼이 지면이 확장되는 추세다. ‘애드버토리얼’이라는 소제목을 다는 이유는 ‘청탁금지법(김영란법)’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이 법 시행으로 홍보성 기사가 사라질 것이라는 예상과 다르게 여전히 광고주 협찬을 받는 일부 언론 매체들이 불안했던 모양이다. 협찬 관행이 청탁금지법상 ‘금품 수수’ 항목 위반 가능성이 커지자, 이를 피하기 위해 내놓은 언론사들의 자구책이라고 하니 말이다. 일부 매체사들이 광고주로부터 그동안 받아왔던 협찬으로 ‘애드버토리얼’이란 꼼수를 동원하고 있다는 지적을 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한 매체 보도에 따르면 작년 청탁금지법 시행을 앞두고 당시 국민권익위원회는 “언론사에 협찬 명목으로 금품을 제공한 경우, 정당한 ‘권원(어떤 행위를 정당화하는 법률상의 원인)’이 없는 한 제재 대상”이라고 밝히자 신문사들이 ‘정당한 권원’ 제시를 위해 협찬 기사에 대해 ‘애드버토리얼’이라고 스스로 밝히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협찬사와 협찬 사실을 명확히 밝히지 않은 채 ‘애드버토리얼’을 표시하는 것으로 관련법을 피해 갈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더 큰 문제 아닐까. 이에 대해 권익위는 원칙적으로 절차적·실체적 요건과 협찬사가 드러나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어 앞으로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포털 뉴스제휴평가위원회(네이버와 카카오(다음) 뉴스를 심사)는 애드버토리얼 표시에 대해 스스로 광고로 인정한 것으로 보고 이런 콘텐츠가 뉴스 사이트에서 유통되는 것을 제재하겠다고 하니 애드버토리얼 현상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할 것 같다. 특히 부동산 분양 기사와 애드버토리얼에 제재 수위를 높인다고 한다. 이 같은 뉴스평가위원회의 제재방침에 과도한 규제 아니냐며 일부 언론사는 비판적 목소리를 내고 있다. 기사인지 광고인지 정체가 모호한 콘텐츠가 주는 오인성과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이용자들의 몫이다. 그런 터라 이용자 입장에서는 언론계의 비판적인 반응에 동의하기 어렵다. 애드버토리얼이 청탁금지법을 피하기 위한 언론사의 포장된 꼼수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더욱 그렇다. 오히려 기사인지 광고인지 불분명한 콘텐츠는 더 엄격한 심의를 거쳐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애드버토리얼 표시와 함께 또 다른 관행이 만들어지기 전에 말이다. 김정순 신구대 미디어콘텐츠과 겸임교수

오피니언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