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인천] 백령도를 평화의 섬으로

오랜 노력 끝에 백령공항 건설이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조사 대상 사업으로 선정되었다. 앞으로의 절차가 순조롭다면 2027년에는 지금처럼 4시간 반이 아니라 1시간 정도면 그 섬에 갈 수 있을 것이다. 천혜의 자연환경에다 접근성까지 좋아지면 오가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은 분명하고, 인천시에서도 이를 준비하기 위해 발전전략 및 기본계획 수립 용역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00A0 숙박, 관광, 레저 등의 틀을 포함할 연구용역에, 다른 어디서나 흔히 만날 수 있는 것 말고 인천백령도만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지향을 담으면 좋겠다. 서해 최북단, 아름다운 생태적 공간이면서도 전쟁의 공포가 공존하는 곳, 남북관계에 따라 일상이 흔들리는 곳, 백령도는 세계 그 어디보다 평화의 소중함을 짙게 경험할 수 있는 섬이니 말이다. 인천평화선언(2011)에 이은 인천평화미술제(2011-2013)가 백령도를 껴안았던 것도 그런 이유이고, 이번 정부의 문화비전 2030에 한반도의 평화를 여는 문화의 섬 프로젝트가 백령도인 것도 같은 맥락일 터이다. 백령도의 의미와 가치는 평화, 그리고 그 평화를 안착시키는 것이리라. 그래서 분단 이후 가슴 졸이며 살아왔던 모든 이의 마음을 포근하게 안아주어야 하지 않을까. 00A0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우선 국내외 예술가들이 단기, 중기, 장기적으로 머물며 작업하는 레지던시를 만들면 좋겠다. 세계적인 건축가가 지은 값비싼 미술관을 갖는 것보다, 세계에서 예술가들이 몰려들게 하는 것이 더 장기적이고 파급력 높은 성과를 만들 것이다. 아름다운 생태가 그대로 살아있는 자연, 하지만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라는 대조적인 현실은 예술가들에게 아주 매력적이다. 백령도의 자연과 역사와 삶은 시각적으로 청각적으로 다양한 장르의 작품에 짙게 때론 옅게 기록될 것이다. 이런 작품이 우리의 감각과 마음과 정신을 흔들어 평소 무심히 지났던 분단과 평화를 다시 생각하게 해줄 것이다. 자연이 빚어낸 황홀한 작품을 만나는데 하루, 예술가가 만든 매혹적인 작품을 만나는데 또 하루, 편하게 오지만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도록, 백령도의 매력에 푹 빠지도록 말이다. 시간과 작품이 축적되면 세계적인 평화선언의 장으로 인천평화예술축제 같은 것을 열면 좋겠다. 그래야 북한과의 본격적인 교류가 시작되고 남북의 작가들이 함께 모일 상징적 공간을 찾을 때 당연히 인천, 당연히 백령도가 되지 않겠는가. 00A0 백령도를 평화의 섬으로, 남북을 넘어 전 지구적 평화의 구심점으로, 그 어떤 차별도 없이 모든 인종과 생명이 존중받는 곳으로 만들어보자. 모든 인천시민이 평화도시민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한상정 인천대 불어불문학과 문화대학원 교수

[함께하는 인천] 올림픽의 가치는 부풀려진 것인가

코로나19 하의 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일본에서 개최되는 탓에 정치적 논란도, 과연 올림픽은 저렇게 해야 하나 하는 지적도 있었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부흥 올림픽을 내세웠다. 이에 한 일본인은 방송에서 올림픽이 부흥을 막고 있다며 정반대의 의견을 피력했다. 후쿠시마 부흥에 쏟아야 할 재정과 인력 등이 전부 올림픽에 사용되어 오히려 후쿠시마의 재건을 가로막는다는 것이었다. 경제효과는커녕 국가발전에 큰 장애가 된다며, 올림픽으로 국가발전을 견인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것이었다. 가난한 한국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 국민의 눈을 스포츠로 향하게 하는 우민정치의 수단으로, 독재정권의 위정자에게 스포츠는 필수불가결하여, 운동선수를 육성하고 관리하는 것은 국가의 몫이 되고, 올림픽 메달획득을 국위선양이라 치켜세워 상금과 연금을 쥐여주며 정당성을 부여한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 많은 국민이 스포츠로 감동을 받고, 국위도 선양된 것으로 생각해왔다. 그런데 올림픽에서 어느 나라의 누가 금메달을 땄는지, 그로 인해 그 나라의 위상이 높아졌는지 관심조차 없다. 분명 메달획득이 자국민에게 감동을 선사하지만, 타국민에게는 정반대로 작용하여, 국위선양과의 접점은 없어 보인다. 올림픽 금메달을 따고, 월드컵 우승을 한다 해서 그 나라가 달리 보이는 일은 없다. 만일 올림픽에 이기는 것이 국위선양이라면 반대로 지는 것은 국위 실추인데, 패자에게 국위 실추의 책임을 묻는 일은 없다. 오히려 위로를 보낸다. 스포츠로 하나 되어 국민의 대립과 분열이 개선되는 일도 없다. 국위선양은 한국인이 아니라 외국인이 판단하는 항목이다. 세계로부터 한국의 힘을 인정하게 하는 것이 국위선양으로, 이는 순간의 감동이 아니라 오래 유지되는 경쟁력에서 나온다.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성취는 많다. 올림픽 메달획득도 그중 하나이다. 하지만 국가 위상을 변화시키지는 않는다. 스포츠계의 성장은 눈부셔 국가의 개입 없이 잘 이루어지고 있다. 경쟁력도 높고 인기도 최고이다. 스포츠의 국가 관리는 이미 개선되었어야 할 폐습이다. 국가의 혜택 또한 스포츠계의 메달리스트가 아니라 선택받지 못한 분야의 소외된 자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칭찬과 격려는 할 수 있지만, 병역이나 연금의 혜택은 온당치 않다. 모든 직업은 본인이 원해서 택하는 것으로 국가가 특정 분야에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불공정일 뿐이다. 국가의 혜택이 없다고 좋아하는 운동을 버릴 것이라면 버리면 된다. 전 세계인이 한국인 가수에 열광하듯이, 한국인도 외국인 운동선수를 좋아하고 응원하는 것이 시대의 글로벌마인드 아니겠는가? 모세종 인하대 일본언어문화학과 교수

[함께하는 인천] 스토킹처벌법, 끝이 아닌 시작

함부로 친절하지 말 것이라는 포스터 속 문구가 인상적인 영화 마담 사이코는 스토킹범죄와 그로 인해 망가지는 피해자의 일상을 보여준 수작이다. 우연히 가방을 찾아준 젊은 여성 프란시스에게 과한 친절을 베푸는 그레타, 하지만 프란스시는 그런 친절이 부담스럽고 무엇보다 지하철에 가방을 두고 내리는 수법으로 사람들을 유인해 친분을 쌓는다는 소름끼치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점차 그레타와 거리를 둔다. 하지만 그레타는 프란시스의 주위를 맴돌며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쫓아다니는 스토커 본색을 보여준다. 경찰에 신고도 해봤지만 직접적 가해행위가 없는 한 개입할 수 없다며 그냥 무시하면 된다는 무책임한 답변뿐이었다. 결국 그레타는 지독한 집착 끝에 프란시스를 납치해 영원한 자신의 소유물로 만들고자 한다. 마담 사이코는 제목이 곧 스포일러라고 볼 정도로 광기 가득한 스토킹의 공포를 날 것 그대로 선사한다. 스토킹은 은밀히 접근하다(stalk)에서 파생된 단어로, 상대방의 의사와 관계없이 자신의 소유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남을 괴롭히는 일체의 행위를 의미한다. 특히 스토킹은 집착에 집착을 거듭하며 폭행협박감금은 물론 성폭력과 살인 등 중범죄로 이어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특히 지난 3월 발생한 노원 세 모녀 사건이 대표적이다. 가해자 김태현이 온라인 게임에서 만난 피해자를 스토킹하던 중 계속된 거절에 피해자의 집까지 찾아가 여동생과 어머니, 피해자를 차례로 살해한 끔찍한 사건이다. 최근 법원이 김태현에게 무기징역형을 선고했지만, 그동안 스토킹을 사적 다툼으로 치부하며 방치해왔던 우리 사회 역시 공범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래서인지 최근 시행된 스토킹처벌법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그동안 스토킹은 경범죄로 분류돼 최대 10만원의 범칙금만 내는 수준이었지만, 이제부터 스토킹범죄를 저지르면 최대 3년 이하의 징역이 내려지고, 만약 흉기 등을 소지했다면 5년 이하의 징역까지 가중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반의사불벌죄 조항이 함께 도입되면서,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도록 했다는 점에서는 미완의 입법으로 평가된다. 가해자가 더이상 괴롭히지 않을 테니 합의해달라고 했을 때 혹시나 모를 보복이 두려워 이를 수락하는 불합리는 어떻게 극복할지 의문이다. 부디 누군가의 희생이 있어야만 이루어지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 입법은 더는 없었으면 한다. 아직 늦지 않았다. 이승기 법률사무소 리엘파트너스 대표변호사

[함께하는 인천] 남이 아닌 내가 보이는 길

길을 걸으면 자동차나 자전거를 타고 다닐 때보다 눈에 들어오는 게 많다. 산책의 즐거움이 걷기 명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자동차를 타고 가면 남이 보이고, 걸어가면 내가 보인다는 어느 도보 예찬론자의 말에 격하게 공감한다. 프랑스에서 플럼빌리지라는 수행공간을 운영하는 베트남 승려 틱낫한은 일상 속에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을 모든 발걸음마다 평화라는 책을 통해 알려준다. 스님은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일상에서 잊고 지내는 마음 챙김을 지금, 여기에서 찾으라고 조언한다. 보행자를 걷기 편하게 하는 도시는 품격 높은 쾌적함을 안겨준다. 이런 도심엔 역사성과 장소성이 살아 있는 거리가 곳곳에 뻗어 있고, 과거의 기억과 흔적을 간직한 건축물이 친숙함을 더해 준다. 근대건축자산을 가장 많이 보유한 인천에도 인상 깊은 거리와 건물이 상당하나 아직 그 가치를 제대로 발하지 못하고 있다.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이끈 미국 보스톤의 프리덤트레일 4km 거리에 독립선언문 낭독 광장, 독립영웅들의 공동묘지, 독립전쟁 기념탑 등 아메리칸 퍼스트 시설이 몰려 있듯 코리안 퍼스트가 인천 개항장문화지구에 즐비하다.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할 때 양키두들이란 음악이 울려 퍼진 화도진, 자장면 탄생지 청관거리, 선교사 아펜젤러 부부가 세운 국내 첫 개신교회인 내리교회, 최초 서구식 호텔인 대불호텔, 국내 최초 철도인 경인철도 착공지, 국내 최초 극장 협률사(현 애관극장) 등이다. 또 청일조계지 계단, 여선교사 합숙소, 제물포구락부 등 역사문화자산이 무궁무진하다. 인천에서 활동하는 젊은 뮤지션들이 구한말~일제강점기 인천에서 불리던 제물포애국가, 경인철도가 등 100곡가량의 옛 음악을 현대적으로 재현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얼마 전 1926년 개항장에서 유행한 인천 아리랑을 소재로 한 창작 뮤지컬 제물포, 더 재즈 예그리나가 송도 트라이보울 무대에 올라 감동을 주었다. 배우들이 부른 다소니 응수, 에바는 슬아 해나 아리아(응수가 사랑하는 사람, 에바는 슬기롭고 아름다운 요정)라는 해석 안 되는 순우리말 가사가 진한 여운을 주었다. 대중음악의 시발지인 인천을 노래하는 것 같았다. 근대문화가 넘쳐나는 개항장거리 인근엔 산업유산도 가득하다. 시민들이 다음달 24일까지 한 달간 일제강점기부터 운영되던 도쿄바우라전기, 조선기계제작소, 동일방직, 삼화제분 공장을 둘러보는 노동자의 길을 탐방하고 있다. 이런 역사적인 길이 평소에도 친숙하게 다닐 수 있는 일상의 공간으로 자리 잡아야 인천에 활기와 생기가 넘쳐날 것이다. 박희제 인천언론인클럽 회장

[함께하는 인천] 캠프마켓, 멋진 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길

인천 부평의 미군기지 캠프마켓에 있던 제빵공장이 지난달 말 경기도 평택의 미군기지로 이사를 갔다. 이 제빵공장은 캠프마켓에 남아있던 마지막 미군 시설이다. 이곳에서 빵을 만들어 다른 여러 곳의 미군기지로 보냈기 때문에 그 이름에 시장을 뜻하는 마켓(market)이 들어간 것이었다고 한다. 이로써 미군이 갖고 있던 우리 땅 캠프마켓을 한국에 반환하는 사업이 일단 마무리됐다. 환경오염조사 등 남은 절차가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이 터는 내년 4월쯤 오롯이 인천시민들에게로 돌아온다. 1945년 광복과 함께 이곳에 미군이 주둔했으니 77년만이다. 하지만 이 땅에 시민들이 마음대로 드나들지 못한 역사는 좀 더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 강점기 말인 1939년 이곳에 인천육군조병창이 생겼고, 광복 뒤 그 조병창 자리 일부에 미군부대가 들어선 것이기 때문이다. 조병창(造兵廠)은 병기(무기:兵)를 만드는造 공장廠이라는 뜻이다. 일제의 조병창은 당시 일본 오사카(大阪)에 있었고, 총이나 화약 등을 만들었다. 그러다가 일제가 조선을 중국 대륙 침략의 병참기지로 삼겠다는 계산에서 이곳에 오사카 조병창의 지역 공장을 만든 것이다. 이 근처에 있는 백마장도 그 무렵에 생긴 이름이다. 부평 땅은 그 이전에 부천군에 속해 있었는데 대부분이 1940년 인천부(仁川府)가 행정구역을 넓힐 때 인천으로 들어왔다. 당시 인천 부윤(府尹:지금의 인천시장)은 나가이 데라오(永井照雄)라는 일본인이었다. 그가 인천의 동네 이름을 모두 일본식으로 고치면서 산곡리였던 이 동네 이름을 백마정(白馬町:하쿠바죠)이라 바꾼 것이다. 그때 이곳에 백마를 타고 훈련을 하는 군대 훈련장이 있어 이런 이름을 붙였다는 얘기가 있지만 분명치는 않다. 이곳이 조병창 일대이니 군사(軍事) 활동과 관련된 상징적인 뜻에서 이런 이름을 지었을 가능성도 있다. 어느 쪽이든, 일본의 제국주의 군대와 관련돼 생긴 이름을 광복 뒤에도 제대로 된 우리 이름으로 바로잡지 않았다. 그 탓에 일본식 행정구역 명칭인 町(정)만 발음이 비슷한 장으로 바뀌어 백마장이라는 이름이 생긴 것이다. 이런 사연과, 이곳 조병창에서 병원으로 썼던 건물의 철거 여부를 두고 요즘 논란이 큰 것을 보면 조병창이나 백마장이나 여전히 진행 중인 역사임이 분명하다. 어쨌든, 그 조병창을 이어받은 미군기지까지 이제 모두 떠났다. 인천시는 이 터에 시민들을 위한 문화공원을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일제의 침략전쟁에 쓸 무기를 만들던 곳, 우리 땅인데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었던 이곳에 멋진 공원이 들어서 이전의 아픈 역사를 말끔히 씻어주었으면 한다. 최재용 인천사랑운동시민협의회 사무처장

[함께하는 인천] 문화예술 예산 1.24%로는 어림없다

인천광역시의회 문화복지위원회와 (사)인천민예총이 함께 주관한 민선7기 인천광역시정부 문화예술 분야 예산정책 토론회가 최근 열렸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올해 7개 특별ㆍ광역시 문화예술 예산 규모의 비교였다. 평균 2.06% 대비 인천은 1.24%이고, 서울시를 제외한 6개 광역시 중 최하위라는 것. 비율만이 아니라 총액으로도 약 1천 억원으로 울산시를 제외하고 가장 적으며 부산시의 절반도 안된다. 인천시 문화예술 예산의 고질적인 취약성만 탓할 게 아니다. 몇 년간 0.7%대에 있다가 2017년에 0.99%, 2018년 처음으로 1.3%가 되었다. 그러나 2019년 1.22%, 2020년 1.27%, 2021년 1.24%로, 2018년 예산이 민선 6기의 결과물이라고 보면 민선 7기 문화예술 예산은 1.3%조차 넘긴 적 없다. 예산상 명백한 퇴보이다. 물론 어느 정도 규모가 적절한지 뚜렷한 기준은 없다. 하지만 광주 3.69%, 부산 2.43%, 울산 2.4%, 대전 2%, 대구 1.75%로 모든 광역시가 인천보다 높다면, 적은 것이다. 예산분배는 전쟁이라고 하던데, 어쩌다 민선 7기는 예산전쟁에서 문화예술 1.3%도 지키지 못했을까. 예산이 정책의 중요도와 상관적이라고 본다면, 예산 비중의 감소는 중요도의 축소를 의미한다. 정책효과가 발휘되었다고 판단한다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문화예술정책의 목표를 거칠게 양분하자면 모든 시민이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 그리고 예술가가 예술 행위를 지속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 이 두 가지이다. 얼마 전 인천에서 유리를 닦던 29살의 노동자가 추락해서 숨졌다. 처참한 일이 반복된다. 이유도 같다. 안전장치가 없어서. 안전장치를 설치하면 작업속도가 더디게 되고, 결국 돈이 더 들게 되니까. 우리는 어쩌다, 이웃의 목숨보다 돈이 더 중요한 시공간에서 살게 되었을까. 이런 끔찍한 문화가 아니라 다른 문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 예술에서 시작할 수 있다. 가장 즉각적으로 감성적으로 이성적으로 세상을 다르게 만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민 모두를 창작자로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작품을 읽고 만지고 듣고 보면서 창의력을 키우고 그를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약자와 타자를 배려하는 다른 세상을 함께 만들자는 의미이다. 이런 시민문화가 계속 살고 싶은 행복한 도시를, 예술가들이 활발히 움직일 수 있는 도시를 만든다. 과연 1.24%의 예산으로 이런 정책목표에 다가갈 수 있을까. 부산과 대구 사이, 최소 2%는 넘어야 하지 않을까. 예산 정국이다. 민선 7기의 마지막 예산, 내년 문화예술 예산 책정에 관심을 기울이자. 한상정 인천대 불어불문학과문화대학원 교수

[함께하는 인천] ‘언택트 시대’ 맞춤형 교육 전략

2020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가천대학교 방사선학과 학과장을 시작하며 조금 더 학과와 학생들을 위하여 노력해야 하는 위치에 있었고, 국내외적으로는 코로나19의 습격으로 인한 혼란이 증가하고 있는 시기였다. 보통의 3월은 화려하게 피는 벚꽃을 생각하며 학생들과 얼굴을 마주하면서 인사하고 북적북적한 캠퍼스의 낭만을 떠올렸겠지만, 주인공인 학생들이 없는 학교의 모습은 팥 없는 찐빵처럼 뭔가 허전하고 쓸쓸했다.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언택트 시대에 학사 일정을 완전하게 정상적으로 운영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고 이를 극복해나가기 위해서는 학교 본부, 교수자와 학생들 모두 함께 생각을 공유하며 가장 좋은 전략을 행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생각되었다. 교육열이 매우 높은 대한민국에서 다방면으로 크게 성장하고 있는 본교에서 학습하고 있는 학생들의 니즈를 완전하게 맞추기는 어려운 실정이었으나, 최대한 소통하며 보완해 나가는 것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필자는 학생들과 소통하는 언택트 시대에 적합한 교육 전략을 찾아보려고 노력했고 두 가지 정도를 공유해보고자 한다. 먼저 멀티미디어를 활용한 수업 콘텐츠를 적극 사용했다. 현재는 휴대전화 및 컴퓨터 클릭 한 번으로 쉽게 영상들을 볼 수 있는 시대이다. 익숙한 형태의 자료들은 학생들이 함께 참여하여 소통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으며, 대면 수업을 준비하면서 멀티미디어 자료들을 깜빡하고 못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는데 언택트 상황에서는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최적화된 수업 형태로 사용할 수 있었다. 특히나, 수업 시작 전 출석체크를 하면서 당일 수업 주제와 맞는 음악을 틀어주어 학생들에게 흥미를 유발하여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반들을 조성하였으며 결과적으로 만족도가 향상되는 결과를 얻게 되었다. 두 번째로 새로운 형태의 Adaptive Learning 교육 시스템을 사용하여 수업에 적용하였다. 학습했던 내용을 최종적으로 난이도에 따라 문제풀이 형식으로 적용함으로써 학생들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자신감을 향상시키고자 했다. 결과적으로 학생들 대다수가 높은 레벨의 문제들도 해결해 나갈 수 있어 수업 만족도를 높일 수 있었다. 앞으로도 언택트 시대에 맞는 학생들과 소통할 수 있는 교육 전략이 개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적으로나 학교 차원에서 다양한 콘텐츠 개발에 많은 투자와 노력이 이뤄져야 하며, 교수자들도 다양한 아이디어와 교육 시스템 확보에 우선순위를 두고 서로 공유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이영진 가천대 메디컬캠퍼스 방사선학과장

[함께하는 인천] 그래도 도시

코로나 팬데믹이 세계 도시지역을 강타하고 있어 탈(脫)도시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벼락 거지로 전락한 신세가 한탄스럽기도 하고, 인공지능(AI) 등 디지털 기반 경제와 재택근무 보편화의 포스트-팬데믹 시대를 생각한다면 도시에 머무를 이유가 없기도 하다. 그럼에도 시민들이 전염병과 안전에 취약한 도시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내 도시거주 인구가 91.8%인 4천7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문명의 혜택을 누리려는 욕망으로 인해 인류 역사는 도시발전의 여정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수원 화성의 설계를 담당하며 거중기, 녹로 등 과학적 기구로 축성하도록 한 다산 정약용 선생은 도시 예찬론다. 다산은 유배지에서 자식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한양 주변을 떠나서는 안 되며, 가능한 한양 한복판으로 들어가 살아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귀양살이 처지에서도 외국문물과 문화 접근이 용이한 교육 환경을 중시했기에 자녀 장래를 위해 한양 사수를 외친 것이다. 21세기 도시민들도 다산 생각과 비슷하다. 고시원에 살지라도 소멸 위기에 처한 지방보다 서울 주변 도시를 선호하고 있다. 금요일이면 지방의 혁신도시에 근무하는 공공기관 직원들은 셔틀버스와 KTX를 타고 수도권 집으로 향하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도시권이 점점 더 확대되는 추세라 개발과 팽창의 성장 담론에서 벗어나 도시를 지속가능한 삶의 터전으로 만들고자 하는 시도가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산불, 홍수, 폭염 등 기후위기 속에서 문화와 역사, 생태, 환경 요소를 중시하는 도시재생사업이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도시재생도 성장 서사와 연결되면서 자본축적에 복무하게 된다는 비판이 있지만, 수십조원이 투입되는 도시재생 뉴딜사업이 들불처럼 전국으로 번져나가고 있다. 쇠퇴한 옛 도심과 노후화된 주거지, 공공용지를 활성화해 도시 경쟁력을 높이려는 과정에서 개발과 보전을 둘러싼 논란 또한 격화되고 있다. 개항기 근대건축물을 전국에서 가장 많이 보유한 인천에서 더 심한 편이다. 강제징용의 역사적 유물인 인천 부평 조병창 내 옛 병원건물, 일제 강점기의 공장시설이 남아 있는 인천 동구 해안가 일진전기와 동일방직, 산업화 과정에서 노동운동 산실 역할을 한 화수화평동 재개발사업 구역 내 인천도시산업선교회 건물 철거를 둘러싼 찬반 논쟁이 뜨겁다. 인천시가 건축자산 보전 및 진흥구역 지정 추진과 별도로 시민공론화 절차를 본격화하고 있으나 합의의 길이 순탄치 않다. 산업유산 가치를 살려 원주민이 떠나지 않고 인천 특색을 살린 도시재생을 고대하는 시민들은 많다. 김구 선생이 인천감리서에서 노역하면서 쌓았던 인천항 1부두 석축을 비롯해 근대화의 길을 열었던 성냥공장, 양조장, 정미소, 군수공장은 도시 가치를 높여줄 역사적 자산이다. 사라지면 회복 불가능하기에 효율성과 시장 논리 중심으로 접근할 사안이 아니다. 박희제 인천언론인클럽 회장

[함께하는 인천] 시민은 문화자산을 구분해서 경험하지 않는다

최근 인천의 문화자산에 관한 논란이 많았다. 애관극장의 공공 매입 여부, 재개발 정비계획에 포함되어 철거에 부딪힌 도시산업선교회, 캠프마켓 조병창 병원의 오염과 보존을 둘러싼 논쟁 등이다. 이에 인천시에서 연말까지 각 부서의 칸막이를 뛰어넘은 근대문화유산 관리 TF(태스크포스)를 구성운영한다고 발표했는데, 진심으로 환영한다. 논란을 막기 위한 즉자적인 대처가 아니라, 긴 호흡으로 인천시 전체의 문화자산 관리에 대한 단계별 설계 방향을 제대로 수립하길 기원한다. 여기에 꼭 감안했으면 하는 게 있다. 우선, 우리가 꼭 보존하고 잘 활용해야 하는 문화자산이 무엇인가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연구와 합의과정이다. 대상이 극장이건 공장이건, 일제강점기건 1980년대까지건, 현재만이 아니라 미래의 시민도 아끼고 사랑할 수 있는 문화자산의 목록을 체계화하는 것이다. 건축유산, 산업유산, 역사유산, 문화유산 따로 분리해서 관리할 일이 아니다. 시민은 구분해서 경험하지 않는다. 그 목록의 제시와 토론, 숙의와 합의 과정이 꽤 소요되겠지만, 꼭 거쳐야만 하는 과정이다. 두 번째, 지정된 문화자산의 보호, 관리, 활용에 대한 제도적 장치이다. 지금까지 보호 대상으로 설정만 했을 뿐 실효성이 적어 중요한 자원이 사라졌다는 비판이 많았다. 어렵더라도 문화자산 목록에 대한 분명한 혜택과 규제의 장치를 아주 꼼꼼하게 만들어야 한다. 세 번째, 인천시민의 일상에 문화자산의 경험을 확장시키는 것이다. 최근 개관한 인천세관역사공원이나 인천시민애(愛)집은 좋은 선례이다. 문화자산이 시민의 생각과 일상에서 소중해져야 한다. 현재의 성인도 중요하지만 아동청소년과 청년이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미래의 무관심으로 이어진다.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도 철거 후 재건축의 절대적인 이익 앞에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는 시민의 판단에 달려있다. 문화자산이 소중한 공유자원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행동할 때까지 인천시와 인천시교육청, 관내 대학교, 평생교육기관, 인천문화재단 등 관련 산하기관에서의 다채로운 노력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아카이브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모든 과거를 남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떤 문화자산들은 현재의 우리에게 중요도가 덜하여 사라질 수 있다. 하지만 누구도 그 판단이 무한히 옳을 것이라고는 단언할 수 없다.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최대한의 체계적이고 세밀한 아카이브가 필수적인 이유이다. 인천기록원 설립 필요성도 그 속에 존재한다. TF에게 주어진 시간이 넉넉하지 않겠지만 필요불가결한 단기, 중장기 설계 방향을 잘 수립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한상정 인천대 불어불문학과문화대학원 교수

[함께하는 인천] 인하대 학교 명예 되찾아야

인하대학교(仁荷大學校)는 우리나라 최초의 이민(移民)인 하와이 이민자들의 피땀과 나라사랑의 마음을 고스란히 보듬고 있는 대학이다. 1953년 하와이 교포들이 보내온 성금 15만 달러가 이 학교를 세운 직접적인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1902년 12월22일 제물포항을 떠난 뒤 1903년 1월13일 새벽 하와이 호놀룰루에 닿아 정착한 우리나라 최초의 이민은 86명이었다. 그리고 그 뒤 1905년 이민이 금지될 때까지 하와이로 이민을 떠난 사람은 모두 7천226명이다. 이들 대부분이 길거리에도 금이 깔려 있는 지상낙원이라고 소문이 난 미국으로 가면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순진한 믿음에서 마음을 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사탕수수밭에서 이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고된 노동에 아주 적은 임금, 백인 감독들의 횡포, 그리고 극심한 인종차별이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비참할 만큼 힘든 생활 속에서 어렵게 번 돈을 조국의 독립운동에 기꺼이 내놓았다. 1918년에는 호놀룰루에 한인기독학원을 세워 광복이 될 때까지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조국의 얼을 잊지 않도록 했다. 그 뒤 하와이 이민 50주년을 맞은 1953년, 그 기념사업의 하나로 이 학원 터를 팔아 얻은 15만 달러를 한국에 보냈다. 조국의 발전을 위한 공업고등교육기관을 세우는 데 보태 써달라는 뜻이었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박사는 1954년 이 돈에 민간 기부금과 정부 보조금을 더한 515만500달러로 인하대학교를 세웠다. 현재의 학교 위치도 이 대통령이 인천시내 후보지 몇 곳을 직접 답사한 뒤 정한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학교의 이름도 인천(仁川)의 인(仁) 자와 하와이의 하(荷) 자를 따서 인하(仁荷)라고 지었다. 당시에 하와이를 한자로 荷蛙伊라 썼기 때문이다. 한자 荷蛙伊는 그 글자들의 뜻과는 아무 관계없이 소리만 빌려 하와이라는 이름을 나타낸 것이다. 그 뒤로 인하대는 이런 사연에 보답하듯 꾸준히 성장해 국내 유수의 대학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런 인하대가 요즘 교육부의 2021년 대학기본역량 진단평가 때문에 큰 혼란에 빠져 있다. 최근까지도 우수하다고 평가했던 교육부가 이번에는 갑자기 무척 낮은 점수를 주어 마치 부실한 대학과 같은 인상을 받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에 교수학생 등 대학 구성원은 물론 동문들과 많은 인천시민이 거세게 반발하면서 평가 경위와 내용을 자세히 밝히라고 요구하고 있다. 당연한 반발이고 요구인 만큼, 하루빨리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가 다시 이뤄져 인하대가 역사와 실체에 걸맞은 명예를 되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최재용 인천사랑운동시민협의회 사무처장

[함께하는 인천] 친일 과잉의 시대

친일파는 일제강점기하에서 일제와 야합하여 그들의 침략약탈 정책을 지지하거나 옹호하며 추종한 무리 내지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을 방해한 자들을 총칭해서 가리키는 말이다. 비록 우리 사회가 친일파를 제대로 척결하지 못한 원죄로 인해 아직까지도 친일 논란이 이어지고 있지만, 적어도 확실한 것은 사전적 의미의 친일파는 이미 죽어 세상에 없다는 것이다. 친일파의 후손조차도 친일재산귀속법에 따라 그 재산을 회수할 수 있을지언정, 친일파라 손가락질하며 연좌제를 적용할 순 없다. 결국, 작금의 친일은 독도는 일본땅 내지 위안부는 자발적 성매매라는 왜곡된 역사인식을 가진 자들에게 붙일 수 있는 역사 앞에 진실되라는 국민의 회초리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친일이라는 낙인을, 역사왜곡이 아닌, 일본 내지 일본인 심지어 일본 문화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내리는 사람에게까지도 무분별하게 확대시키는 듯해 심히 우려스럽다. 특히 국민통합을 위해 애써야 할 정치권이 앞장서 이런 혼란을 부추기고 있는데, 그 단적인 예가 유명 맛 칼럼니스트인 황교익씨의 친일 논란이었다. 처음 황씨가 경기관광공사 사장으로 내정됐을 때, 임명권자인 이재명 경기지사의 보은인사라는 비판부터 자질논란까지 황씨를 사이에 두고 여권 대권주자들 간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다. 공공기관 사장이라는 공인에 이르기 위한 일종의 검증과정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갑자기 황씨의 친일논란이 제기되면, 이는 검증이 아닌 한 인간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쳐버릴 비수로 변모했다. 친일 낙인의 이유는 간단했다. 황씨가 과거 우리 음식이 일본의 아류라는 식의 발언을 한 전력이 있다며, 이를 두고 경기도가 아닌 도쿄관광공사에 적합하다는 사실상 친일파 공격을 한 것이다. 물론 이후 황씨의 대응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정치권에서 역사왜곡도 아닌, 음식에 대한 전문가로서의 견해와 일본 음식을 높이 평가한 기호의 영역에까지 굳이 친일의 잣대를 들이댄 건 분명 선을 넘은 것이다. 만약 동일한 잣대를 기준으로 한다면, 학창 시절 슬램덩크와 드래곤볼 같은 일본만화에 열광하고 만화는 역시 일본이라며 칭찬했던 필자 또래의 세대들 역시도 똑같이 친일이라는 비난을 들어야 하는 것이다. 친일(親日) 과잉의 시대, 친일의 대중화를 통해 정치권이 얻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고단한 민초들의 삶을 친일이란 잣대로 함부로 재단하는 우(愚)를 범하지 말아 달라. 그런 의미에서 오늘 필자의 저녁은 오랜만에 초밥이다. 이승기 법률사무소 리엘파트너스 대표변호사

[함께하는 인천] 국력은 기업의 세계적 경쟁력

변변한 기업 하나 없어 국력이랄 것이 없었을 때처럼, 아직도 국민을 기쁘게 해주는 순간의 사건에는 환호하지만, 국가의 실질적 힘이 되어주는 기업의 성취에는 냉담하다. 혜택을 누리는 한정된 자들만의 리그라며 내가 포함되지 않은 기업의 성공에 칭찬은 없다. 불공정 덩어리인 양 타도를 외치면서도 기업에 사회적 공헌은 요구한다. 기업이나 개인 모두 사회적 역할을 수행해야 하지만, 법적 책무가 아니고서야 강요받을 사항은 아니다. 기업은 자발적 판단으로 사회를 위해 공헌하고 사회는 그에 감사하는 모습이어야 한다. 어느덧 국가의 외교마저도 기업에 의존하고 있다. 국가가 변변한 협상카드 하나 없어 늘 수세적 입장에서 임해온 외교관계에 이제는 써먹을 만한 카드가 생겨 힘을 받는 모습이다. 얼마 전 대통령의 방미 보도는 그간의 의례적인 것과는 달랐다. 미국이 한국기업의 영향력을 인정하여 그 도움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한미관계에서 국민의 어깨가 으쓱하는 순간의 역사적 탄생이다. 정적 대하듯 하던 대기업 덕에 한국 정부가 행세를 하는 모양새였다. 국력 없이는 어떠한 외교력도 발휘하기 어렵다. 기업의 경쟁력이 국력인 시대이다. 정치가의 총합보다 경쟁력 있는 기업 총수 하나가 국가경쟁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호시탐탐 노리는 강대국을 상대할만한 무기도 경쟁력 있는 기업 외에 없어 보인다. 한국에 대한 일본과 중국의 태도도 한국기업의 경쟁력에 달려 있다. 기업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 없어 사회 안정에 기업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언론도 예술과 스포츠도 기업 위에 존재한다. 국내 홍보라 해야 세계가 주 무대인 대기업에는 제한적이다. 기업의 몰락은 국가의 쇠락으로 직결될 수 있다. 대기업이 국가발전의 걸림돌인 양, 권력으로 옥죄고 있지만, 걸림돌은 다름 아닌 정치이다. 정치로 망한 국가를 늘 국민이 고통으로 이겨낸 한국사이다. 정부가 잘 몰라야 기업이 성공한다는 말이 있듯이, 한국기업의 오늘에 정부 역할은 미미하다. 정치권의 기여는 대기업의 발목을 잡지 않는 것 정도일 것이다. 기업의 지배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연 한국에 어떤 형태의 기업이 세계적 경쟁력으로 이어질지 숙고해볼 대목이다. 폐허에서 먹고사는 일에만 매진해온 결과가 오늘의 한국이다. 그 과정을 들여다보지 않는 평가는 결과의 부정이다. 한곳만을 보고 달려오는 과정에서 드러난 공과가 있지만, 과보다 공을 살리는 국가가 되어야 한다. 과에 대한 자아비판적 사고에 매몰되지 말고 향후의 공정성에 눈을 돌려야 한다. 모세종 인하대 일본언어문화학과 교수

[함께하는 인천] ‘침묵의 살인자’ 폭염

2021년 7~8월, TV 뉴스는 폭염(暴炎) 관련 보도로 도배를 한다. 폭염특보가 발효되어 낮 기온이 33~36도 이상 오르는 찜통 더위가 이어진다, 돌풍과 천둥번개를 동반한 소나기가 온다, 밤에는 열대야 현상이 나타난다, 올여름 전력수급 첫 고비 등 내용도 다양하다. 연일 폭염특보가 발효되는 가운데 전력 사용량과 발전량도 올여름 들어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올해 폭염의 강도가 수천년에 한번 꼴로 발생할 정도로 매우 드문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유엔(UN)은 코로나 다음으로 인류 대재앙은 폭염이라고 하면서, 이러한 기후변화가 대규모 사망을 부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기상전문가들은 폭염의 원인으로 열돔 현상을 지목한다. 열돔 현상은 지상 5~7㎞높이의 대기권 중상층에 발달한고기압이 정체하거나 아주 서서히 움직이면서 뜨거운 공기를 지면에 가둬 더위가 심해지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고기압에서 내려오는 뜨거운 공기가 마치 돔(반구형 지붕)에 갇힌 듯 지면을 둘러싼다고 해서 붙은 명칭이다. 이러한 패턴이 오래갈수록 폭염도 길어지고, 기온 또한 나날이 높아질 수 있다고 한다. 자연재난 중폭염을 가장 무서운 재난으로 꼽는다. 폭염은 소리없이 왔다가 소리없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침묵의 살인자라는 별명까지 붙었을까. 그럼에도 폭염의 발생과 소멸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도 명확하게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의 재난에 대한 정의에는 자연재난과 사회재난이 있다. 재난이란 국민의 생명신체재산과 국가에 피해를 주거나 줄 수 있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자연재난에는 우리가 흔히 접하는 태풍, 홍수, 가뭄, 지진 등이 있지만 폭염이 자연재난에 포함된 것은 2018년 9월이다. 폭염의 발생으로 큰 피해가 발생하고 있었음에도 기상청이 폭염을 기상특보에 도입시킨 2008년보다 10년이 늦은 뒤였다.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기본이념인 재난을 예방하고 재난이 발생한 경우 그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기본적 의무라는 것을 소홀히 한 것임이 분명하다. 폭염 피해는 폭풍우나 지진 등과 달리 조용하게 사람을 비롯해 동식물들의 생명을 앗아간다. 경제적사회적으로도 엄청난 악영향을 미치지만 피해액으로 산정하지 못하고 있다. 폭염 피해를 돈으로 환산한다면 천문학적 수치가 될 것이다. 대한민국도 기후변화로 폭염이 일상이 되었다. 그럼에도 국민들과 정부에서는 폭염에 대한 심각성을 느끼지 못한다. 폭염은 사람의 목숨도 앗아가지만 도시도 파괴시킨다. 그래서 폭염에 대한 예방대비책이 더 절실하다. 김진영방재관리연구센터 이사장

[함께하는 인천] 공공언어 개선 노력, 널리 퍼져나가길

인천 남동구가 최근 공공언어 개선을 위한 시민 제보 창구를 열었다. 어렵고 딱딱한 행정용어들을 쉽고 고운 우리말로 바꿔 쓰자는 뜻이다. 구는 구청 홈페이지 소통과 참여란에 공공언어 개선제보 창을 만들어 어떤 용어가 문제가 있는지 제보를 받고 있다. 각 동의 행정복지센터에서도 제보를 받는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모이는 용어들은 인하대학교 국어문화원에서 전문가들의 점검을 받는다. 거기서 새로운 대안이 나오면 앞으로 그 말을 사용하게 된다. 이 창구가 왜 생겨야만 했는지는 행정기관들이 민원서류 양식이나 안내문홍보물 등에서 습관적으로 쓰는 단어와 문장 몇 개만 보아도 금세 알 수가 있다. 담배 무단투척 금지(담배꽁초 버리지 마세요), 익일(다음 날), 부스터 샷(추가 접종), 스마트관광도시(첨단기술 관광도시), 수목식재(나무심기), 척사대회(윷놀이대회), 음용수(마시는 물), 비산먼지(날림먼지), 송도 워터프론트사업(송도 해안 개발사업), 클린업 데이(대청소의 날), 에코 프리 학교(금연 실천 학교), 그린 파킹(내 집 주차장 갖기-그린 파킹의 내용이 이런 것이다), 컴팩스마트시티(도시계획관의 이름이 이렇게 바뀌었다), 수분을 제거한 뒤 쓰레기를 배출합시다(물기를 빼고 쓰레기를 내놓읍시다). ()안의 해석처럼 훨씬 쉽고, 그래서 정확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나 문장이 얼마든지 있는데도 굳이 알아듣기 어려운 말들을 마구 쓴다. 개인이라면 이것이 유식하게 보이고 싶어 하는 열등감의 다른 표현일 뿐이니 그저 웃어 넘겨도 되지만 행정기관은 다르다. 시민들이 그 내용을 잘 몰라서 손해를 보거나, 그 행정 내용이 잘 지켜지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초등학생도 알 수 있을 만큼 쉽고 간략하게 말과 글을 써야하는 곳은 행정기관만이 아니다. 경찰검찰법원에서 쓰는 법률 용어, 병원의 진단서, 예금이나 보험 같은 각종 계약의 약관 등 사람들의 일상과 깊게 관계된 모든 것들이 해당된다. 이런 내용을 어렵고 모호하게 표현한다면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책임을 고스란히 피해자에게 덮어씌우려는 것 같은 꿍꿍이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쉬운 말과 글을 쓰도록 사회 환경을 바꾸는 일은 시민 각자가 스스로의 권리를 지켜내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마침 그 첫발을 뗀 이번 남동구의 공공언어 개선 제보에 남동구민뿐 아니라 인천시민들이 적극적으로 많이 참여해주면 좋겠다. 그리고 이런 노력이 다른 곳, 다른 기관 모두에게로 널리 퍼져나가길 간절히 바란다. 최재용 인천사랑운동시민협의회 사무처장

[함께하는 인천] 짝퉁이 판치는 세상, ‘배드파더스’는 울고 싶다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친다. 1993년 공전의 히트를 친 세상은 요지경의 노래가사 중 일부이다. 여기서 짝퉁 내지 짜가의 사전적 의미는 가짜나 모조품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대표적으로 유명 의류나 가방 브랜드의 상표나 디자인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제품을 의미한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 하지만, 짝퉁은 그 범위를 벗어난 원조가 피와 땀으로 이룬 성과에 숟가락을 얹거나 아예 이를 가로챈다는 점에서 비판의 여지가 크다. 최근 양육비 미지급 부모의 신상을 공개하는 배드파더스의 짝퉁이 나타나 사회적 공분을 얻고 있다. 포털사이트에 배드파더스를 검색하면 (배드파더스)나쁜아빠들이라는 모방 사이트가 최상단에 표시된다. 이 사이트는 양육비 미지급자의 신상정보는 물론 원조 배드파더스 활동을 다룬 기사들까지 소개하며 원조와의 구별을 어렵게 하고 있다. 해당 사이트에서는 이미 bad fathers로 상표권 등록까지 마쳤다고 한다. 하지만 짝퉁은 짝퉁일 뿐, 원조가 가진 깊은 손맛까지 낼 수 있을지 묻는다면, 필자는 단호히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우리 사회가 양육비 문제에 대해 무관심하던 시절, 원조 배드파더스는 양육비가 사인 간 채권채무관계가 아닌 아이의 생존권과 직결되었음을 주장하며, 이 문제를 사회의 중심의제로 끌어올렸고, 그 결과 양육비 미지급 부모에 대한 신상공개면허정지출국금지 등 간접강제 방안을 입법화시키는 쾌거를 올렸다. 원조가 쌓아온 그간의 명성과 성과, 각종 고소고발을 당하며 양육비 문제 해결을 위해 힘써온 역사를 생각한다면, 감히 짝퉁이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있는 것이다. 물론 상표등록을 하지 않았더라도, 국내 수요자들에게 널리 인식된 상표나 상호를 사용할 경우에는 상표법 위반이 되어 상표등록이 취소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원조 배드파더스의 법적 대응 역시 가능하지만, 위법 여부를 떠나 이번 모방 사이트는 원조의 이름값에 무임승차한다는 점에서 짝퉁이라는 불명예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오는 10월이면 원조 배드파더스는 폐쇄된다. 배드파더스의 순기능적인 역할이 제도권으로 편입된 만큼 더 이상 존재 이유가 없다는 구본창 대표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얼마 후면 원조는 사라지고 짝퉁만 남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문득 세상은 요지경의 노래구절이 떠오른다. 인생 살면 칠팔십년 화살같이 속히 간다. 정신차려라. 요지경에 빠진다. 이승기법률사무소 리엘파트너스 대표변호사

[함께하는 인천] 대통령의 일본 방문과 관련하여

한일관계가 파탄상태이다. 개선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과거사에, 오염수 해양 방류, 올림픽의 독도 표기 문제까지 갈등은 증폭되고만 있다. 정상회담으로 일거에 해결할 한일관계가 아닌데, 느닷없는 대통령의 방일 소식에 국민은 귀를 의심했다. 한일관계를 개선하려면 그에 맞는 일련의 행위들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과정들이 없었다. 올림픽 축하를 위한 단순 방문이라도, 일본이 원치 않는데 명분도 없고 자존심에도 반하는 일이다. 많은 국민은 선수들의 올림픽 참가조차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올림픽이 없다고 즐길 스포츠가 없는 것도 아니고, 스포츠가 목숨 걸만한 중요사안도 아니다. 어느덧 스포츠가 정치문제와 얽혀 양국 간 대립을 격화시키는 도구로 변질되고 있다. 일본은 한일 간 합의가 이행되지 않는다며, 굳이 정상회담을 한들 한국 국민의 저항에 부딪히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 것을, 한국이 알아서 하라는 태도이다. 정부는 국가를 대표하여 협정이나 합의 등의 외교 행위를 하는 것이다. 일부 국민이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더라도 합의 당사자인 정부는, 이전 정부의 잘못된 약속이라도 이어받아 그 책임을 다해야 한다. 국민을 다독이든 일본과 머리를 맞대 새로운 해결책을 모색하든 해야 할 정부가 아무 책임질 일이 없다는 듯이 국민 뒤에 숨어 있다. 대통령은 한일관계에 한국의 책임도 말할 수 있어야 하며, 국민의 역사관도 미래 지향적으로 이끄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그런데 현 정부와 여당은 일본에 대한 한국인의 사고를 과거로 회귀시키고 있다. 한일간의 미래를 위해 부정적인 생각도 긍정적으로 바꿔가야 할 일인데, 걸핏하면 친일파, 토착 왜구 등의 단어를 입에 담으며, 친일 프레임을 씌운 집단적 매도를 유발시키고 있다. 한국도 잘못이나 실수를 범할 수 있다는 선에서 한일관계를 봐야 한다. 일본의 선과 악을 구별해서 말해야 한다. 역사문제와 기타문제를 분리해서 대응하자고 말하지만, 그러려면 비 역사문제에 협력적 태도도 보여야 한다. 한일 간 문제가 모두 일본의 잘못이라면 일본과 굳이 외교관계를 이어갈 이유는 없다. 양보 없는 타협은 불가능하다. 김대중 정부는 문화개방에 활발한 교류도 이어가며 한일관계의 새로운 이정표를 썼다. 일본인이 인정하고 존경하는 대통령으로 기억된다. 노무현 정부도 청구권 협정을 들어 징용피해자 문제에 한국 책임을 일부 인정하며 양국 관계를 무리 없이 이끌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적통 잇기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문재인 정부이니 전직 두 대통령의 대일외교를 잘 이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모세종 인하대 일본언어문화학과 교수

[함께하는 인천] 여름철 집중호우

7월에는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된다는 소서(小暑)가 있다. 24절기 중 하나로 작은 더위라고도 불리지만 소서를 전후하여 잦은 집중호우로 많은 인명과 재산손해를 입기도 한다. 집중호우란, 사전적 의미로는 시간과 공간의 규모와 관계없이 많은 비가 연속적으로 내리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짧은 시간 동안 좁은 영역에 일정량 이상의 비가 집중적으로 내리는 것을 말한다. 학문적으로 명확히 정의하지는 않았지만 일반적으로 시간당 30㎜ 이상, 하루에 80㎜ 이상, 연평균 강수랑의 10% 이상이 하루에 내릴 때 통상 집중호우라는 용어를 쓴다. 기상청에서는 집중호우가 예상되거나 강우 상태를 수집분석하여 3시간 강우량이 60㎜ 이상, 12시간 강우량이 110㎜ 이상 예상될 때 호우주의보를, 3시간 강우량이 90㎜ 이상, 12시간 강우량이 180㎜ 이상 예상될 때 호우경보를 발령한다. 북쪽 오호츠크해기단과 남쪽 북태평양기단의 영향으로 장마전선이 형성되면 곳에 따라 집중호우가 빈번하다. 일반적으로 장마전선의 폭은 1천㎞에서 수천km까지 걸쳐 있다. 여러 날 동안 지속되며 폭넓게 중위도의 날씨 변화를 지배한다. 집중호우는 예상치 않은 곳에 쏟아지기도 한다. 1998년 수도권 전역에 국지적 집중호우로 엄청난 손해를 입고 있었을 때 매스컴에서는 게릴라성 집중호우라는 용어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게릴라의 뜻은 스페인어로서 소규모 전투 라고 한다. 나폴레옹이 스페인 원정 당시 스페인 사람들의 무장저항을 게릴라라고 부른 데서 비롯되었다. 게릴라 전술은 예고나 선전포고 없이 소규모 전투병들이 매복해 있다가 적군에게 타격을 입히는 전술이다. 게릴라성 집중호우는 대기가 몹시 불안정하거나 북쪽의 한랭전선이 여름에 남하했을 때 소규모로 생긴 비구름대가 갑자기 엄청난 비를 퍼붓는 경우다. 게릴라성 집중호우는 언제 어느 때 어느 곳에 올지 예측할 수 없다. 또한 비가 오는 시간도 굉장히 짧고 그 짧은 시간 내 엄청난 양의 비가 내리기 때문에 막무가내 피해를 준다. 지난 7월 6일 광주전남지역에 게릴라성 집중호우로 산사태와 하천이 범람하여 2명이 숨졌다. 곳곳이 물바다로 변해 시설물 파손 및 침수가 잇따랐고 하늘길, 바닷길과 철로가 일부 막혀 교통 차질도 빚어졌다는 보도가 있었다. 집중호우는 럭비공과 같다. 어디로 튈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괜찮겠지 하는 안이한 생각은 버려야 한다. 그간 예방대비에 치중했다면 이제부턴 대응복구를 잘해야 한다. 집중호우는 예고 없이 오기도 하지만 재해에 취약한 곳을 파고들기 때문이다. 집중호우 대응의 1차 책임은 나에게 있다는 것을 주지해야 한다. 정부와 모든 국민이 불청객인 집중호우에 예의주시하여 가능한 한 인명피해를 막아야 한다. 김진영방재관리연구센터 이사장

[함께하는 인천] 진정한 물의 도시 인천이 되기를

인천은 물의 도시다. 인주(仁州)라 불리던 이름이 조선 태종 때 인천(仁川)으로 바뀐 것도 물川, 곧 바다가 있는 고을이어서였다. 하지만 요즘 섬 지역을 뺀 인천에서 물을 제대로 보고 느끼기란 쉽지 않다. 무엇보다 해안의 거의 대부분이 담이나 철책으로 막혀 있기 때문이다. 바다를 막아놓은 가장 큰 이유는 안보(安保)와 보안(保安)이다. 북한과 가까운 지리적 상황, 항구와 같은 국가적 중요시설의 안전 때문이니 이해 못 할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아쉬움을 다 떨쳐버릴 수는 없다. 명색이 항구도시인데 마음이 동할 때면 언제든 바닷가에 나가 손발을 담그고 확 트인 풍광을 느껴볼 길이 없는 것일까. 해질 무렵 부두의 벤치에 느긋이 기대앉아 멀리 떠나는 배들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볼 수는 없는 일인가. 인천시민으로 이런 아쉬움을 안고 산 지 무척이나 오래됐다. 인천시와 여러 시민단체가 모여 만든「시민정책 네트워크」가 요즘 인천 앞바다 해안 철책의 철거정비 사업을 정책 과제로 삼아 추진하는 것을 보면 이런 아쉬움이 혼자만의 것은 아님이 분명하다. 세상은 빠르게 바뀌고 있다. 요즘 10년이면 예전 100년이라는 말이 전혀 과장이 아니다. 특히 첨단기술은 일반인들이 상상도 못할 만큼 그 수준이 높아졌고, 어지러울 정도로 빠르게 계속 발전하고 있다. 그런 만큼 안보와 보안의 개념이나 방식도 시대에 맞춰 바꿔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저 담을 높이 쌓고, 철책을 치고, 무작정 사람들이 못 다니게 막는 것보다 훨씬 세련되면서도 효율적인 방식이 없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다가 아직 멀리 있는 형편에서, 물과 관련해 요즘 들린 반가운 소식은 「굴포천 생태하천 복원사업」이다. 지난달 착공식을 가진 이 사업은 굴포천 중상류를 덮고 있는 도로를 걷어내 원래의 개천 형태를 되찾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개천에 맑은 물이 흐르도록 해서, 서울의 청계천처럼 시민들에게 예쁜 휴식공간으로 돌려주려는 사업이다. 굴포천 살리기 운동 시민모임이 20여 년 전부터 벌여 큰 성과를 거둔 생태하천 만들기 사업의 두 번째 단계이다. 첫 단계가 썩은 물에 찌들고 냄새나던 하천을 물고기가 살고 철새가 날아들도록 바꿔놓았으니 이번에도 멋진 성과를 거둘 것이다. 시는 이와 함께 역시 도로로 덮여있는 승기천의 미추홀구 일부 구간에 대해서도 도로를 걷어내는 복원사업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이런 일들이 잘 마무리돼서 바다와 하천이 열리는 날, 비로소 인천은 진정한 물의 도시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최재용 인천사랑운동시민협의회 사무처장

[함께하는 인천] 국회엔 ‘월급루팡’이 있다

프랑스 추리소설 주인공인 괴도신사 아르센 루팡은 등장 자체로 큰 충격이었다. 코난 도일의 셜록홈즈를 비롯한 기존의 추리소설들은 정체불명의 범인을 상대로 미궁과도 같은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사소한 단서를 토대로 범인을 추적하기까지의 과정과 범인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 독자들이 느끼는 전율은 추리소설만이 줄 수 있는 감동 그 자체였다. 하지만 루팡은 달랐다. 루팡의 정체는 만천하가 다 알고 있다. 그럼에도 루팡은 기상천외한 절도행각을 벌이고는 탁월한 변장술과 트릭으로 유유히 범죄현장을 빠져나간다. 누가 범인인지 알지만, 누구도 잡을 수 없는 역사상 최고의 도둑이 탄생한 순간이다. 그리고 이런 루팡이 월급과 결합해 월급루팡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월급루팡은 제대로 일은 안 하면서 월급만 꼬박꼬박 받아가는 사람을 말한다. 일상에서는 주로 하는 것 없이 바쁜척하거나, 동료에게 일을 미루는 얄미운 사람을 뜻하지만, 최근 전 국민의 분노를 유발하는 월급루팡이 나타났다. 지난 4월 이스타항공의 500억대 회사자금을 횡령배임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무소속 이상직 의원이 주인공이다. 이 의원은 지금 2달째 구치소에 수감중이지만, 수감기간에 매월 기본수당과 입법활동비로 1천만원 상당의 세비를 꼬박꼬박 받고 있다. 국회나 지역구가 아닌 구치소에 있음에도, 매월 세비를 지급받은 이유는 간단하다. 현행법상 국회의원은 아무리 중한 범죄로 구속돼도, 세비를 제한할 수 있는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대법원에서 당선 무효형이 확정돼 의원직을 상실하기 전에는 이런 불합리는 계속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미 수차례 같은 문제가 반복됐음에도 관련 입법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굳이 무노동무임금 원칙이나 공직자의 청렴의무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눈앞에 있는 월급루팡조차 방치하는 작금의 국회를 어떻게 봐야 할까? 혹시 알량한 동업자정신이 발휘된 것인지, 아니면 이 역시도 국회의 특권이기에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인지 사뭇 궁금하다. 물론 루팡은 귀족이나 자본가의 저택을 대상으로 절도행각을 벌였지만, 국회는 국민의 혈세로 피의자피고인의 곳간을 채워준다는 점에서 감히 비교대상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국회엔 월급루팡이 있다. 그리고 그 해결책 역시 국회가 가지고 있다. 셜록홈즈같은 유능한 명탐정이 될지, 눈앞에서 범인을 놓치는 루팡 속 무능한 경찰이 될지.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이승기 법률사무소 리엘파트너스 대표변호사

[함께하는 인천] 장마

장마란 여름철에 여러 날 동안 계속해서 내리는비, 혹은 이를 가리키는 현상을 말한다. 장마의 순수 우리말은 오란비이다. 오래란 뜻의 고유어 오란과 물의 고유어 비가 합쳐진 말이다. 장마는 따듯한 공기인 북태평양 고기압과 찬 공기인 오호츠크해 고기압 사이에 만들어진 정체전선 상에서 활성화된다. 북쪽과 남쪽 공기의 온도와 습도가 다를수록 더 격렬하다. 특히, 오호츠크해 기단이 기승을 부리면 강한 비가 내린다. 통계에 의하면 장마는 지역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6월 20일 전후를 시작으로 7월 25일 전후로 종료된다. 이 기간에 비만 계속 내리는 것은 아니지만, 비가 내렸다 그치기를 반복하면서 70㎜가량에서 많게는 1천100㎜가 넘는 강수량을 기록하는 경우도 있다. 2020년 장마는 그간 최장인 2013년 49일 기록을 갈아 치웠다. 기후도 예년과 달리 북쪽은 더 차고 건조해지고, 남쪽은 더 뜨겁고 습해졌다. 기상전문가들은 우리나라 면적의 20배가 넘는 북극의 얼음이 녹아 북극의 기온이 급상승했고, 뜨거워진 공기는 더 강한 고기압을 만들어 북극의 찬 공기를 아시아 내륙 깊숙이 퍼 나르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장마 기간도 길었고 강수량도 많아 엄청난 피해를 안겨준 최악의 장마로 꼽혔다. 매년 어김없이 찾아오는 장마에 예방대비도 중요하지만 장마가 닥쳤을 때의 시기적절한 대응도 잘 해야 한다. 기상청과 한국수자원공사(K-water)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섬진강댐 기습방류로 하류지역인 남원, 구례, 하동 화개장터가 침수되고, 용담댐 방류로 금산지역이 직격탄을 맞았다. 기상청은 오보청이 되었고, 수치모델해상도가 낮아 예보에 한계가 있었다고 장비 타령을 했다. 오보를 할 때마다 늘어놓는 변명에 국민은 속아 넘어가는데 이력이 나 있다. K-water도 핑계 대기에 급급했다. 지방정부도 한몫했다. 부산 동천을 범람 시켰다. 물길을 막아 범람을 자초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부산 초량제1지하차도 침수로 3명이 사망한 피해도 부산시 재난안전대책본부의 안이한 대응이 여실하다. 교통통제지침과 재난메뉴얼 어느 것 하나 작동된 게 없다. 정부지침과 시스템을 부산시가 무시한 처사다. 올해 여름철도 만만치 않다. 이웃 일본은 장마가 시작됐다. 이 장마의 영향으로 장마 시작일이 당겨질 수도 있다. 2020년은 기후변화가 이상기상으로 빈번히 나타난다는 것을 확실히 알려준 해였다. 올해도 봄부터 잦은 강수, 고온과 같은 이상 기후가 계속되고 있다. 2020년 장마를 반면교사로 삼아 홍수는 물론 폭염, 가뭄까지도 살펴보는 세심함이 필요할 때다. 이상기상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김진영 방재관리연구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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