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유죄 의심 들지만 직접 증거 없어 무죄”라면

황운하 사건에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있다. 총장 취임 두 달 만인 2019년 11월 본격화했다. 울산지검에 있던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으로 옮겼다. 윤 총장이 꾸린 핵심 수사라인을 투입했다. 청와대의 공약 지원, 경쟁 후보 매수까지 뒤졌다. 추미애 당시 법무장관이 수사팀을 해체했다. 하지만 윤석열 검찰은 황 의원 등 13명을 모두 기소했다. 조국 수사에 이은 문재인 정부 초토화였다. 윤 총장은 영웅이 됐고, 이후 대통령까지 올랐다. 그 황 의원이 무죄를 선고받았다. 징역 3년이었던 1심의 반전이다. 하명 수사에 의한 선거 방해 혐의는 이런 내용이다. ‘송철호 전 울산시장을 당선시키기 위해 황 의원, 송 전 시장, 청와대 관계자 등이 짜고 상대 후보(김기현)의 비위를 청와대에 넘겼고, 이를 하명받아 김기현을 수사했다.’ 판사의 무죄 판결 이유는 이렇다. “직접 증거가 없고 관련 증언 내용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비위 정보를 넘겼다는 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없다”. 언제부턴가 정치인 재판에는 공식이 생겼다. 판결에 불만 있으면 판사 이력부터 들춘다. 뭣뭣 소속이라고 욕하고, 누구누구 계보라며 탓한다. 이번 무죄 주심 판사도 예외 없다.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이라고 공격한다. 장하성 동생 사건, 안태근 검사 사건 판결도 꺼낸다. 글쎄다. 그런다고 판결이 뒤집힐 것도 아닌데. 있는 그대로 해석하는 게 편하지 않겠나. 유죄 의심 들지만 직접 증거 없다고 하지 않나. 판단 자체에 오류는 없다. 사실 세인의 관심은 다른 데 있다. 황운하 판시(判示)를 윤석열 사건에 대입하는 시도다. 판결 직후 이미 유튜브에 등장했다. ‘황운하 무죄면 윤석열도 무죄다.’ 정말 그럴까. 4일 헌재에서 재판이 있었다. 이날 재판이 주목받은 이유가 있었다. 윤 대통령은 공수처 수사에 응하지 않았다. 검찰에도 출두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내란 사건은 각자 주장했다. ‘내란 유죄 윤석열’·‘내란 무죄 윤석열’. 증언·증인이라는 것도 전부 따로 말하는 거였다. 처음으로 부딪힌 게 이날 재판이었다. ‘체포조’를 증명하는 홍장원 국정원 1차장. ‘군 투입’을 지휘한 이진우 수방사령관, ‘요인 체포’ 부대장 여인형 방첩부사령관이 다 나왔다. 보고 싶은 눈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했던가. ‘윤석열이 이겼다’고도 하고, ‘내란이 증명됐다’고도 한다. 각자의 판단인데 함부로 평할 생각은 없다. 게다가 내가 본 기준은 다른 데 있었다. ‘서로 뒤엉키기 시작한 정황’이다. 거기서 윤석열 대통령의 특기가 떠올랐다. 특수부 검사였다.’ 특수 수사의 속성은 말싸움이다. 내란죄를 증명하는 것도 말싸움이다. 그 첫 번째 쟁송이었다. ‘체포조 운영’, ‘군 투입’ 증언이 마구 뒤섞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호수 위 달 그림자 쫓는 느낌을 받았다.” 이 또한 배수의 진을 친 ‘말’이다. 최악에 대비한 방어 논리다. ‘내란 행위는 실행되지 않았다. 지시나 말로 내란 죄는 안 된다’. 초반인데 벌써 증언이 충돌하기 시작했다. ‘충돌시켰다’는 표현이 옳아 보인다. 내란 혐의의 정점에 그가 있다. 증언의 대부분은 전언(傳言)이다. 표현 하나로 모든 게 달라 질 수 있다. 사형 또는 무기를 때릴 중죄라서 더욱 그렇다. 황운하 무죄 판결을 이해하는 이런 견해가 있다. ‘해당 사건은 당사자는 아니라고 하는데 간접 증거로 피고인의 의도를 입증해야 하는 사건이어서 유죄를 인정받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이 견해를 윤석열 내란에도 대입하면 이렇다. ‘내란 사건은 당사자는 아니라고 하는데 간접 증거로 윤석열 내란 의도를 입증해야 하는 사건이어서 유죄를 인정받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적(敵)에서 같은 법리에 올라탄 윤황동주(尹黃同舟)를 보는 듯도 하다.

[천자춘추] 고용의 미래 ‘창업’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일자리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대기업에서 많은 사람을 고용하던 시대는 이제 끝나가고 있다. 기술과 산업이 바뀌면서 대기업은 더 이상 과거처럼 많은 일자리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새로운 방식으로 일자리를 만들어야 할 때다. 그 새로운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창업’이다. 창업은 새로운 회사를 만드는 일이자 기존 대기업과는 다르게 새로운 산업과 기술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스타트업은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기술을 기반으로 빠르게 성장하며 대기업보다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낸다. 실제로 연구에 따르면 스타트업은 일반 회사보다 약 3배나 많은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한다. 현재 정부는 창업을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팁스(TIPS)’ 프로그램이다. 팁스는 초기 자금과 연구개발 지원을 통해 유망한 스타트업의 성장을 돕는다. 팁스에 참여한 기업은 2년 만에 직원 수를 두 배로 늘린 사례도 있다. 이 외에도 정부는 창업 활성화를 위해 여러 정책적인 지원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2025년까지 약 3조원 규모의 예산을 창업 지원에 투입할 계획이다. 이러한 지원은 창업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초기 자금 부담을 줄이고 회사를 성장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창업은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들어 일자리를 창출하고 고용 위기를 극복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창업을 활성화하려면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많은 사람이 창업을 두려워하고 실패를 걱정한다. 특히 창업에 관심이 있는 대학생, 청년, 시니어들에게 창업의 중요성과 도전정신을 가르치는 창업가정신 교육도 필요하다. 창업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려야 한다. 결론적으로 현재의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창업이 꼭 필요하다. 대기업에 의존하던 과거 방식에서 벗어나 창업이 새로운 일자리와 산업을 창출하는 중심 역할을 맡아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창업 지원을 강화하고 창업가정신 교육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이 창업에 도전할 수 있도록 장려해야 한다. 창업은 우리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힘이다. 이제 모두가 창업을 통해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함께하는 미래] AI 빈부 격차

지난주 생성형 인공지능 챗GPT 접속 중단 사태는 현대사회에서 인공지능(AI)이 얼마나 깊숙이 뿌리내렸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챗GPT가 다운됐다고? 그럼 이제 나보고 ‘생각’을 하란 말이야”라는 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유저의 농담은 AI가 현대인의 사고와 업무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생성형 AI가 본격적으로 세상에 등장한 지 2년 남짓. 이제 AI 없는 세상은 점점 과거의 일이 돼 가고 있다. 젊은 세대들이 내비게이션 및 구글 맵 없이 해외여행을 하거나 낯선 길을 운전하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운 것처럼 AI 없이 살아가는 세상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시대가 우리 눈앞에 성큼 다가오고 있다. AI는 인터넷과 모바일 기기만 있으면 누구나 공평하게 접근 가능한 기술로 보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 간의 정보 격차는 점차 심화되고 있으며 AI 활용 능력은 이제 경제적 여건과 밀접하게 연결되고 있다. 챗GPT의 경우 누적 사용자 수가 약 1억8천만명에 달하지만 월 20달러의 유료 버전 사용자는 3~5%, 월 200달러의 프로 버전 사용자는 1% 미만에 그친다. ▲추론 능력 ▲데이터의 질 ▲응답 속도 ▲사용자 인터페이스 등에서 고가의 서비스가 월등히 뛰어난 성능을 제공함은 자명한 사실이다. 보도대로 월 2천달러의 초고가 서비스가 출시된다면 이러한 AI 성능 격차는 개인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더욱 심화될 것이다. 이러한 AI 빈부 격차는 국가와 기업 차원에서 더욱 심각하게 나타난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한국 정부의 연간 예산에 달하는 720조원을 AI 인프라 구축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글로벌 기업 메타는 맨해튼 면적에 버금가는 초대형 데이터센터 구축 등에 약 93조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이에 비해 한국 정부는 민간 영역과 함께 2027년까지 65조원 투자를 목표로 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불균형 속에서 지난주 중국의 AI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는 AI 패권 구도의 전환 가능성을 보여주는 혁신적 사례를 제시했다. 젊은 천재들이 모여 있는 이 회사는 물량보다는 새로운 발상의 전환을 통해 기존 AI 개발 모델의 5% 정도에 불과한 비용으로 챗GPT에 필적하는 성능의 AI를 개발했으며 이를 오픈소스로 공개했다. 개인용 PC와 전기료만 있다면 누구나 최고 수준의 AI를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AI 산업을 주도하던 엔비디아의 주가는 하루 만에 17% 폭락하며 시가총액 900조원이 증발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물론 딥시크의 기술력, 안정성과 신뢰성에 대한 의문, 프라이버시에 대한 우려 등 해결해야 할 과제는 남아 있다. 하지만 딥시크는 창의적 아이디어와 혁신이 막대한 자본과 물량 공세를 넘어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증명했다. 이는 투자와 인프라에서 뒤처지고 있는 한국이 창의적이고 효율적인 전략으로 여전히 국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음을 시사한다. ‘더 많이’와 ‘더 크게’가 어려울 때는 혁신으로 무장한 ‘더 스마트’한 접근이 해결책인 것이다.

[삶, 오디세이] 차별과 폭력의 발아 순간

돌아보면 10대와 20대에는 유독 한국 밖을 경험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중학교 시절 어느 옷가게에서 옷을 구매하고 공짜로 받은 아이비리그 달력이 필자에게는 그렇게 소중했다. 그 달력에는 네이비색 바탕에 미국을 대표하는 아이비리그 대학들의 풍경이 월별로 펼쳐져 있었다. 어느 달에는 초록색 담쟁이 넝쿨이 고풍스러운 빨간 벽돌의 건물을 타고 올라가는 장면이 클로즈업돼 있었는데 그 장면만으로도 막연한 위엄이 느껴졌다. 그때 그 달력을 바라보며 마음속에 다짐 혹은 소원 같은 게 박혔던 것 같다. 언젠가는 나도 저곳에 가리라고. 물론 그것이 현실이 되기까지는 짧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나 자신이 그러한 다짐이나 소원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잊고 한국에서 평범한 대학원생으로 살던 어느 날, 박사과정 지도교수의 추천으로 미국의 한 대학에 펠로우십(일종의 교환연구원 장학)을 지원받게 됐다. 비행기삯만 지불하면 현지에서 생활비를 받으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주변 대학의 연구자들과 함께 공동으로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지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무엇보다 미국 체류 기간에 거주할 수 있는 집 또한 이미 저비용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된 상황이었기에 나로서는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꿈꾸던 것이 현실에서 이뤄진 것이지만 너무나 갑작스럽게 결정된 것이라 인천국제공항에서 애틀랜타행 비행기에 탑승하는 순간까지도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만큼 불안감도 컸지만 기대감만 못했다. 그렇게 부푼 기대를 안고 출발한 미국 생활은 적어도 초반에는 모든 것이 완벽했다. 내가 출근할 학교의 건물은 중학교 때의 그 아이비리그 대학 달력 속 건물과 거의 차이가 없었고 교직원들 또한 하나같이 친절했을 뿐 아니라 거주지의 이웃마저 갑작스럽게 이사온 이방인을 열린 마음으로 대해 줬다. 그런데 모든 일이 그렇듯이 우리 삶에는 늘 좋은 일만 있지는 않다. 나의 미국 생활에서 그것은, 정말이지 이것이 문화 이론서에서만 봤던 문화 적응의 허니문 단계임을 실감하며 미국 생활에 한껏 취해 있을 때쯤 자동차 사고처럼 다가왔다. 거주지 근처에는 마트가 없어 제대로 된 식자재를 사려면 30분쯤 걸어 큰 슈퍼마켓으로 가야 했는데 그날은 오랜만에 그곳으로 가는 날이라 이것저것 사다 보니 비닐봉투에 든 짐이 여러 개가 돼 버렸다. 참고로 미국은 워낙 땅 덩어리가 넓은 나라라 자가용으로 이동하는 인구가 많아서인지 뉴욕 같은 대도시가 아니면 대중교통이 그리 발달하지 않았다. 필자가 거주한 애틀랜타 교외 지역도 예외는 아니었기에 슈퍼마켓 근처에서 버스를 기대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펠로우십 연구원 주제에 한번 타면 기본적으로 100달러는 족히 깨지는 택시를 탈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짐이 든 비닐 봉지 여러 개를 양 손목에 걸치고 두 손으로 잡고 하면서 낑낑대며 집으로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도로를 가로지르던 차량 한 대가 갑자기 멈춰 서더니 안에 타고 있던 청년들이 창문을 내리려고 했다. 내심 내게 도움을 주려고 그러나 싶었지만 정작 돌아온 것은 할리우드 영화로만 봤을 뿐 내 생애 결코 들어본 적도 없는 욕설과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망언이었다. 다행히 그들은 그렇게 내게 조롱 섞인 차별의 말만 남기고 총기 사건 등의 물리적 폭력은 없이 순식간에 떠났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저들은 나를 도대체 얼마나 안다고 저런 저주를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퍼부을까. 자신들이 차별주의자라는 것을 알고는 있을까. 그리고 본인들이 방금 내게 한 것이 범죄에 해당하는 폭력인 것은 인지하고 있을까 등등의 여러 생각이 오갔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 끝에는 내 안에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분노만 남아 있음을 봤다. 그것은 내가 조금만 덜 도덕적이었다면 살기로 이어졌을 것이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다. 차별과 폭력은 누군가의 일상과 행복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며, 그 사람이 다시는 그 사건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만든다. 그렇기에 차별과 폭력을 경험하면 또 다른 차별과 폭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클 수밖에 없으며 누군가의 희생 없이는 그 광기의 사슬은 절대로 끊어지지 않고 또 다른 누군가에 의해 되풀이된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바라보며 그 옛날 나의 미국 생활이 떠오른 것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 지금이라도 우리 각자의 언동 하나하나를 뜯어보고 성찰해야만 또 다른 차별과 폭력의 발아 순간을 막을 수 있다.

[경기만평] 말해봐야 본전도...

[사설] 대남 방송 피해 강화·대성동, 보상해야 한다

북한의 기괴한 대남 방송이 반 년째 이어지고 있다. 여우·까마귀 울음소리, 쇳덩이 긁는 소리, 귀신 곡소리까지 다양하다. 하나같이 듣는 이에게 혐오감과 공포심을 준다. 고대 전쟁사에서나 등장할 법한 유치하고 원시적인 공세다. 이 유치한 공세에 노출되는 주민의 피해가 쌓여 가고 있다. 군사 대치 상황에서 오는 불가피한 피해라며 외면할 수준이 아니다. 그렇다고 삶의 터전을 버리고 떠날 형편도 못 되는 주민이 대부분이다. 분계선으로부터 2㎞ 정도 떨어진 강화도가 그렇다. 2024년 7월 이후 밤낮 없이 공세가 이어지고 있다. 스티로폼을 문에 덧대 방음을 시도해보지만 허사다. 밤에는 귀마개까지 해보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캠핑장, 낚시터 등은 지난해 10월 이후 사실상 폐업 상태다. 주민 민원이 강화군청을 거쳐 국방부에 전달됐지만 돌아온 답장은 매번 같다. “직접적인 해결을 해 드리지 못해 죄송하다.” 이곳보다 더 심각한 피해 지역도 있다. 본보가 취재한 최전방 대성동마을이다. 북한 최전방 기정동마을과 불과 500m 거리다. 소음 피해가 그만큼 크고 직접적이다. 파주시가 지난해 11월 측정한 소음치는 70~80dB이었다. 기준치 초과를 넘어 청력장애까지 유발할 수준이다. 140여 주민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미 건강 이상을 호소한다. 수면제, 두통제를 아예 달고 살다시피 한다. 불안 장애 같은 정신적 질환 증세도 우려된다. 한마디로 일상이 다 붕괴됐다. 북한 대남 방송은 2018년 4월 중단됐다. 판문점 선언의 일환으로 성사된 합의였다. 그러다 2024년 5월 북한이 대남 오물풍선 살포를 시작했다. 이에 맞서 우리도 2024년 7월 대북 방송을 재개했고 북한의 대남 방송도 시작됐다. 같은 방송이지만 내용은 천양지차다. 우리 대북 방송은 여성 아나운서의 선전과 음악이 주를 이룬다. 귀신 곡소리까지 틀어대는 북측에 비하면 우리의 대북 방송은 차라리 음악 방송 수준이다. 북한 ‘귀신 곡소리’의 의도는 분명하다. 남남 갈등을 조장하려는 작전이다. 대북 방송을 무조건 중단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 있다. 그럼에도 엄연히 존재하는 것은 강화도·대성동 주민의 피해다. 파괴된 일상 생활이 벌써 반년을 넘기고 있다. 이 피해가 현실이면 그 보상은 국가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대성동마을 김동구 이장도 “주민 소송을 생각 중”이라고 밝혔다. 자칫 안보 쟁송으로 번질 판이다. 오물 풍선에 이은 귀신 곡소리 방송까지 북한의 야만적 행태를 강력히 규탄한다. 이에 상응하는 우리 군의 대응 작전을 지지한다. 하지만 이런 대의가 특정 지역 주민의 일상 파괴까지 정당화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주민 소송 개시를 기다리지 말고 정부가 선제적으로 나서 주길 권한다. 일단 피해 마을에 가서 실상부터 파악해 보라.

[사설] 대왕고래 예산 ‘0원’... ‘산유국 꿈’도 마땅찮은가

설 쇠자마자 저 남녘 바다에서 새 소식이 날아들었다. 포항 앞바다 울릉분지 일대에 석유·가스가 더 매장돼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마귀상어(Goblin Shark)’ 구조가 가장 유망하다는 조사보고서다. 대왕고래 140억배럴에 51억배럴을 추가, 최대 191억배럴까지 바라볼 수 있다고 한다. ‘산유국 대한민국‘은 1970년대 이래 갈망해 온 꿈이다. 쉬이 이뤄질 꿈이 아님은 국민들도 안다. 그런데 이런 석유 개발 노력조차 곱게 보지 않으려 하니, 알다가도 모르겠다. 대왕고래 예산 ‘0원’ 얘기다. 동해 울릉분지 일대에 최대 51억7천만배럴 규모의 석유·가스가 더 매장돼 있다는 용역보고서가 최근 한국석유공사에 제출됐다고 한다. 미국의 심해 기술 평가 전문기업 액트지오의 ‘울릉분지 추가 유망성 평가’ 보고서다. 액트지오는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대왕고래 유망 구조의 물리 탐사 분석을 진행한 곳이다. 이번에 새로 발견된 유망 구조는 모두 14개다. ‘마귀상어’ 등 신규 유망 구조의 탐사 성공률은 대왕고래 구조와 비슷한 20% 수준이다. 일부 유망 구조는 성공률이 대왕고래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그 이상 수치인 곳도 여럿이라고 한다. 최소 7천만t에서 최대 4억7천만t의 가스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됐다. 원유 매장 추정량도 최소 1억4천만배럴에서 최대 13억3천만배럴이다. 14개 구조 중 탐사자원량이 가장 많은 곳은 ‘마귀상어’ 구조다. 이 한곳에만 최대 12억9천만배럴의 석유·가스가 묻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석유공사는 전문가들에게 이 보고서에 대한 정밀 검증을 의뢰, 더 구체적인 매장량 등을 확인 중이다. 아직은 김칫국부터 마실 때는 아닌 셈이다. 그러나 대왕고래든 마귀상어든 본격 시추까지는 험난해 보인다. 정치가 끼어든 때문이다. 지난해 6월 ‘동해 가스·석유 140억 배럴 매장’ 발표 이후 성공률 20%를 두고도 논란이 빚어졌다. 그러나 자원 탐사 전문가들은 해외 사례에 비춰 ‘매우 높은 성공률’이라는 입장이다. 더 어려운 것은 재원 조달이다. 민주당은 올해 예산에 편성된 정부 몫 1차 시추 예산 497억원을 전액 삭감했다. 이 때문에 한국석유공사는 올해 회사채를 발행, 4억800만달러(5천900억원)를 조달할 계획이다. 동해 석유 개발은 어느 누구의 치적 사업 차원이 아니다. 험난하겠지만 국민들 산유국 꿈이 걸린 사업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이를 위한 예산을 한 푼 남김 없이 잘라 버렸다. 우리 바다에서 석유가 쏟아져 나오는 꼴은 못 보겠다는 건가. 그러면 어느 나라 국회인가. 국민들이 묻는다. ‘그것이 알고 싶다’고.

[지지대] 일본은 왜 시간의 벽으로 도주할까

설 연휴에 우울한 소식이 또 들려왔다. 일본 이야기다. 이 나라의 대법원 격인 최고재판소가 야스쿠니신사에 무단 합사된 한반도 출신 군인·군무원을 명부에서 빼달라는 유족들의 청구를 기각해서다. 최고재판소는 최근 한국인 합사자 유족 27명이 제기한 야스쿠니신사 합사 취소 소송에서 제척 기간인 20년이 지났다며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앞서 원고들은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신사 등을 대상으로 합사 철회, 손해 배상, 사죄문 게재, 유골 양도 등을 요구했다. 이들이 청구한 배상액은 단돈 1엔(약 9원)이었다. 그러나 최고재판소는 원고의 청구 중 야스쿠니신사에 합사자 정보를 제공한 일본 정부의 배상 책임 여부에 관해서만 판단했다. 사안의 핵심인 정보 제공의 위법성이나 야스쿠니신사 합사 문제 등은 다루지 않았다. 양심이 있는 일본 언론들이 비판하고 나섰다. 본질을 회피했다는 게 핵심이다. 야스쿠니신사 합사 철회를 원했던 한국인 원고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일본 사법부에 대해 “‘시간의 벽’으로 도주했다”고 꼬집었다. ‘시간의 벽’은 최고재판소가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정 기간인 제척 기간을 주된 판결 근거로 제시한 것과 연관된 것으로 분석된다. 좀 더 들여다보자. “(한국인) 합사는 1959년 10월보다 이전이어서 이로부터 20년이 지나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됐다는 게 (판결) 이유였다. 합사와 관련해 (최고재판소가) 1심과 2심에선 초점을 맞추지 않았던 옛 민법의 제척 기간을 토대로 위헌 심사를 피한 듯하다.” 판결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 무게가 실리는 대목이다. 언론들은 일제가 전쟁을 벌일 때는 일본 고유 종교인 신도(神道)가 사실상 국교였으나 전쟁이 끝난 뒤 제정된 헌법은 국가와 관련 기관에 ‘어떤 종교 활동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고도 전했다. 이 나라가 경제적으로는 윤택할 수 있어도 결코 문명국 지위에는 올라설 수 없는 까닭은 차고 넘친다.

[말글 풍경] 외래어를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 上

적잖은 사람들이 현행 외래어 표기법에 대해 이견과 의문을 제기한다. 타당성과 일리 있는 부분이 분명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외래어 전반과 우리 외래어 표기법에 대한 오해와 무지에서 비롯한다. 가장 큰 오류는 외래어와 외국어의 의미 구분과 역할 및 기능을 혼동한 채 외래어 표기를 외국어의 적극적 활용을 위한 잣대로 삼으려 한다는 점이다. 가장 중요한 전제가 외래어 표기는 우리 국민의 언어생활을 위해 만든 것이지 외국인이나 외국인용 회화를 위함이 아니라는 것. 이제 세상은 글로벌화됐다. 수많은 경제·사회·문화·정보기술(IT) 분야 신어(新語)들이 명멸한다. 그 많은 용어·개념어를 일일이 순화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가령 Taxi라는 단어를 보자. 보통 그 Taxi는 ‘택시’라는 익숙한 한국어식 발음을 탑재할 것이다. 평범하게 ‘택시’라고 부를 때 이것이 외래어적 쓰임이다. 그런데 만약 어떤 외국인을 위해 “Can I get a Taxi for You?” 했다면 어떨까. 이럴 땐 아마 최대한 영어식 원어 발음으로 Taxi를 구사할 가능성이 높을 터. 이때의 Taxi는 외국어적 활용이라고 하겠다. 정리하면 이제 개별 단어가 더는 외국어인가, 외래어인가의 원천 속성을 타고 나지 않는다. 우리 국민끼리의 의사소통을 위한 한국어식 발음이면 외래어, 외국인용 회화를 위해 원음처럼 소리 내면 외국어인 것이다. 그러니 서로 내국인이라는 조건에서 외국어식 발음을 고집하는 축은 이 기준에 무지하거나 이를 무시·왜곡하는 경우가 되는 셈이다. 10여년 전 불행했던 ‘오렌지·어륀지’ 사건(?)이 바로 이 대목과 관련이 있다. 외래어 표기는 원지음(原地音)에 최대한 가깝게 적되 우리 음운체계와 법칙에 합당해야 한다. 이 둘이 상충하는 경우 후자에 무게중심이 실리는 게 옳다. 가장 논란이 많은 ‘f’ 발음의 경우를 보자. 우리 표기법은 이를 ‘ㅍ’ 하나로 대응시키고 있다. 여기에 대한 불만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f’를 한글이 못 살리니 새로운 기호로 대체하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ㅎ’이나 ‘후’로 적어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새 기호 운운은 외래어 표기를 위해 제 나라 자음을 일그러뜨려야 하는 부담에다 ‘v’ 발음도 고려해야 하며 그 밖의 주요 외국어의 독특한 자음과의 형평성 문제도 발생한다. ‘ㆄ’를 만들어 ‘f’로 하자는 주장은 시기상조다. 무엇보다 새 자음에 대한 필요성이 보통의 국민에게 그토록 절실할까에 대한 의문이다. 그것을 새로 익힌다는 게 얼마나 번거롭고 까다로울 것인가. ‘f’의 ‘ㅎ’ 적용 주장은 설득력이 더 약하다. 예컨대 ‘fight’를 ‘파이트’로 적으면 이상하니 ‘화이트’로 하자고 하면 ‘white’는 어떡할 것인가. 무엇보다 ‘f’가 뒷음절에 자리하면 치명적 결함을 드러내고 만다. ‘커피’, ‘골프’를 ‘커휘’, ‘골후’로 하란 말인가. 결론적으로 ‘f’의 ‘ㅍ’ 대응이 현재로서는 가장 무난한 선택이다. 다음은 파열음과 마찰음 표기 문제다. 라틴 계통의 언어에 있어 특히 무성파열음 ‘p t k’는 ‘ㅃ ㄸ ㄲ’에 가까울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도 더 큰 가치, 즉 외래어 표기의 간결성·체계성·규칙성을 앞질러서는 곤란하다. 우리가 한글로 옮겨야 하는 단어는 너무나 많다. 타갈로그어, 스와힐리어, 플랑드르어까지도 그 대상이다. 그 많고 많은 언어를 이건 격음, 저건 경음 하며 구분하는 게 어차피 불가능하며 필요하지도 않다. 통일해 표기하는 게 바람직하며 설사 원음(原音)과 좀 멀어진다 해도 감수하는 게 나은 길이다. 어떤 언어든 전사(全寫)는 불가능하기에 그렇다. 우리 외래어 표기법은 고심 끝에 격음을 택했고 최선의 방법이다. 경음을 전면적으로 인정해 버리면 기존에 굳어진 ‘피자’, ‘쿠바’, ‘캉캉 춤’ 같은 걸 어떡할 것인가 등 형평성 문제가 다시 불거지는 부작용이 동반된다(물론 호찌민, 푸껫 등 태국어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언어 가운데 약간의 예외가 있긴 하다). 마찰음도 ‘service·써비스’, ‘circus·써커스’가 실제 발음과 가깝다며 쌍시옷이면 깨끗이 해결될 것 같지만 cider·사이다, soda·소다, slump·슬럼프 등이 버젓이 버티고 있다. 또 ‘ㅆ’ 등이 마구 등장하면 소리 자체도 사나운 데다 활자 꼴이 미워지고 거칠어진다. ‘뻐쓰’, ‘쎈쓰’ 등이 만연할 때를 상상해 보면 감지할 수 있으리라. 외래어 표기를 관통하는 굳센 정신은 조화, 타협, 균형임을 기억할 일이다.

[천자춘추] 중기 위한 대중매체의 역할

‘매스미디어(mass media)’라고 불리는 대중매체는 특정되지 않은 일반 대중을 상대로 대량 정보 전달 역할을 수행하는 매개체다. 즉, 대중 사이에서 의사를 전하고, 수용하고, 답하는 도구라 할 수 있다. 대중매체는 인간 상호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도구다. 인간은 생존을 위한 높은 사회성을 바탕으로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도구를 발전시켜 왔다. 대중매체의 발달은 TV의 발명으로 뉴스, 드라마, 영화, 음악 등 영상과 소리를 동시에 접할 수 있게 해 대중매체의 전성기를 열었다. 컴퓨터의 발명은 쌍방 소통이 가능한 디지털 대중매체로서 인간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꿔 놓는 계기가 됐다. 게다가 스마트폰의 등장은 대중매체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정보와 지식, 감정과 의사를 자유롭게 교환할 수 있는 지구촌을 만들었다. 이 획기적인 의사 전달 수단은 인간과 기업에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우리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달리 기업정보를 대부분 대중매체 통해 얻고 있다. 대중매체에서 얻은 정보로 사업 방향을 정하거나 투자를 결정할 때가 많다. 중소기업은 작은 시간이라도 쪼개 써야 하기에 접하는 정보가 참인지 거짓인지 구분할 시간적 여유나 역량도 부족할 뿐만 아니라 검증하기가 참 어려운 게 현실이다. 제대로 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으로서는 특정한 정보를 잘못 알고 투자하거나 시간을 허비하면 되돌리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래서 주로 신문, 방송 등 대중매체에서 전달하는 정보에 민감하다. 문제는 참과 거짓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참에 거짓을 섞어 보내거나 거짓에 참을 섞어 보내면 보통 집중하지 않으면 걸러내기 매우 어렵다. 시간이 지나 걸러낸다 해도 이미 늦어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속성을 교묘히 이용해 대중을 속이는 가짜가 많아지면 그 사회는 불신의 사회가 될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으로서는 치명적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언론은 대중의 정보를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전달해야 할 책무가 있다. 특정 이익을 위해 사실관계가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교묘하게 던져 놓고 도망가 버리면 그 피해는 모두 기업이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신문, 라디오, TV 등 공적 언론매체는 1차적으로 자체 검증을 거쳐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에 신뢰성이 높은 것이다. 우리 경제의 허리와 같은 중소기업을 위해 보다 정확하고 섬세한 정보가 전달되기를 기대한다. 우리는 그 정보를 바탕으로 다시 확인하고 경영 방향을 정하고 투자 여부를 결정하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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