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예술혁명

동양의 서화는 서양미술에 비해 변화도 없고 재미도 없다. 검은 필묵만으로 승부하는 서화는 현란한 색과 구상 추상을 질주하는 아크릴 조형의 결정인 유화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호흡을 길게 해서 보면 거대한 예술혁명의 산맥이자 장강이 동양의 서화다. 경기도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명경단청-그림 같은 그림’을 보면 200년이 넘는 명나라 초기 중기 후기의 서화 산맥을 조망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조선의 겸재 정선이나 추사 김정희에까지 연결되면서 더 큰 태산준령으로 전개됐음도 독화(讀畵)해낼 수 있다. 동기창과 김정희가 만들어낸 국경을 초월한 필묵공동체가 그 사례다. 동기창은 이미 17세기 초반에 초예기자지법(草隸奇字之法·초서, 예서, 초예, 전서와 같은 비일상적인 문자를 쓰는 법)으로 나무는 무쇠같이 구불구불하게, 산은 모래사장에 송곳으로 그어 젖힌 듯 입체적으로 써냈다. 요즘 말로 ‘큐비즘’을 한 것이다. 왜? 전적으로 문인의 기운(士氣)를 드러내기 위함이다. 그 당시 철학 없는 직업화가들의 판에 박힌 그림을 전복시키는 방법론을 동기창은 그림이 아니라 이렇게 초예기자라는 글씨에서 제시했다. 글씨로 그림을 쓰면서 장르를 파괴시킨 것이다. 그래서 미국 클리브랜드뮤지엄 소장 동기창의 ‘강산추제도’ 같은 산수도는 엉뚱하게도 사각 삼각의 벽돌이나 원통 원추의 기하도형으로 해체된 세잔의 생빅투아르산이 연상돼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실제 동기창은 1607년 마테오리치가 한역한 유클리드의 ‘기하원본’과 같은 서학(西學)을 적극 수용했고 현장 사생도 열심히 해냈다. 그 결과 당-오-북송·남송-원-명과 같은 대륙의 역대 그림 고전의 방작(倣作) 위에 기운 생동하는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그림을 혁명시켜 냈던 것이다. 하지만 초예기자는 여전히 산과 나무를 여하히 그로테스크하게 형상화해 문인화가들의 문자향서권기(文字香書卷氣)를 표출해낼 것인가에 방점이 찍혀 있다. 말하자면 초예기자 그 자체로 시서화일체가 되는 이상적인 문인화의 실천은 동기창의 과제로 남아 있었다. 이는 이미지와 텍스트가 한 몸인 글씨가 다시 텍스트가 이미지 뒤로 숨으면서 추상표현주의와 같은 이미지 중심의 그림이 되는 것과 비유된다. 이런 동기창의 200년 묵은 난제는 19세기 중반 조선의 김정희가 왕희지 계통의 글씨와 그 이전 한나라 금석문, 즉 첩학(帖學)과 비학(碑學)을 혼융해낸 추사체(秋史體)로 업그레이드된 초예기자지법으로 난초와 시문을 구분 없이 써냄으로써 해결의 실마리를 풀었다. 그것이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다. 글씨와 난초는 그냥 획(劃)일뿐이다. 그림과 글씨의 구분이 무색하게 불이(不二)의 평등관계다. ‘불이선’이 뭔가를 시각화한 결정이다. 요컨대 동기창이 초예기자로 명나라까지 전개돼온 대륙의 그림 역사를 전복시켰다면 김정희는 다시 동에서 서로 현대미술의 문을 열어젖혔다. 이우환 윤형근의 점·선·바람 시리즈나 획면추상의 단색화가 뿌리를 추사체에 박아내고 있는 것보다 더 큰 서화미술의 혁명도 없다. 서(書)가 예술혁명의 불씨다.

[함께하는 미래] AI 쇄국정책으로 딥시크를 막을 수 없다

지난달 중국의 헤지펀드 회사 환팡퀀트 소속 인공지능 연구기업 딥시크(DeepSeek)가 전 세계 인공지능(AI) 산업에 큰 충격을 줬다. 미국의 반도체 수출 통제 때문에 성능이 낮은 H800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딥시크의 R1 모델이 가장 강력한 성능을 가진 H100 칩을 활용한 오픈AI의 o1 모델과 대등한 기술력을 보여줬다. 더 놀라운 점은 자본금 1천만위안(약 19억9천만원)으로 설립된 딥시크의 R1 개발비가 1천570억달러(약 208조원)의 가치를 가진 오픈AI의 챗GPT 개발비의 5.8%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딥시크 충격에 대한 미국의 대응은 양면적이다. 한편에서는 AI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산업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식 다음 날인 지난달 21일 미국 오픈AI, 오라클, 일본 소프트뱅크가 참여하는 총 5천억달러 규모의 ‘스타게이트(Stargate)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틀 뒤에는 자유로운 기술개발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바이든 행정부의 AI 규제를 철폐하는 ‘AI에서 미국 리더십을 위한 장벽 제거’ 행정명령이 공포됐다. 한편으로는 미국 관공서와 군부대는 딥시크 R1의 사용을 금지했다. 개인정보 수집 및 처리 방식이 불분명해 R1에 보안 침해 가능성과 함께 개인정보 유출이 의심된다는 이유에서다. 기기 정보, IP 주소, 키보드 입력 패턴 등이 불법적으로 수집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면서 미국 의회는 틱톡 금지 법안과 유사한 딥시크 금지 법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산업정책이 논의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AI기본법’을 제정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글로벌 인공지능 3대 강국(G3) 도약, 중소벤처기업부는 AI생태계 활성화를 목표로 올해 대규모 재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반면 행정안전부는 이달 4일 중앙부처와 17개 광역지방자치단체에 생성형 AI 사용에 유의해 달라고 요청하고 이에 외교부, 국방부, 산업통상자원부 등이 외부망과 연결 가능한 업무용 PC에서 딥시크의 사용을 차단하는 등 보안정책까지 언급되고 있다. 미국처럼 대규모 투자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가성비가 훌륭한 딥시크의 사용을 완전히 금지하면 우리나라가 미국은 물론이고 중국과의 격차를 줄이지 못할 것이다. 올해 우리나라 예산 중 AI 관련 예산은 총 1조8천억원으로 미국의 200억달러(약 29조원), 중국의 1천917억위안(약 39조원)에 비해 턱없이 적으며 민간투자(2023년 기준)에서도 우리나라가 13억9천만달러로 미국(672억2천만 달러)은 물론이고 중국(77억6천만달러)보다도 훨씬 적다. 중국 AI 산업의 저력은 풍부한 연구인력에 있다. 중국 내에만 생성형 AI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이 700개가 넘는다. 미국 폴슨연구소의 ‘글로벌 AI 인재 현황 2.0’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미국 기업과 연구기관에 소속된 최상위 AI 연구자의 47%가 중국 대학 졸업자이며 미국 대학 졸업자는 18%에 불과했다. 미중 격차는 앞으로 더 벌어질 것이다. 2025년 처음으로 네이처 인덱스의 2~11위를 중국 대학이 차지했다. 1위인 하버드를 제외한 스탠퍼드(12위), MIT(13위), 옥스퍼드(14위), 도쿄대(15) 모두 중국 쓰촨대(11위)에도 추월당했다. 이런 추세가 지속되면 중국에서 제2, 제3의 딥시크가 나오는 것은 시간문제다. 생성형 AI에 대한 정책은 기술·산업 육성과 보안 침해 방지 사이의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다. 제한된 재원과 인력으로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가성비가 좋은 중국 AI 모델을 적절히 참고해야 한다. 중국 AI 모델의 사용을 완전히 금지하는 쇄국정책은 기술 발전을 촉진하기보다 후퇴시킬 가능성이 더 높다. 정부와 업계는 보안을 강화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 딥시크의 장점을 활용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경기만평] 시작인건가...

[사설] 질환 교원 범죄에서 학생·교사 지킬 시스템이 없다

끔찍하고 안타까운 사건이다. 초등학교 1학년 여학생이 흉기에 피살됐다. 범행 장소는 학생 본인이 다니던 학교였다. 범인은 그 학교에 근무하는 현직 교사였다. 둘은 사건 전까지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우울증을 앓고 있던 교사의 묻지마 범죄다. 자해를 시도한 교사는 ‘내가 범행했다’고 자백했다. 끔찍한 범행 현장을 학생의 할머니가 발견했다. 아이를 잃은 가족의 슬픔이 어떻겠나. 모든 국민이 충격에 빠졌다. 대강의 정황은 확인됐다. 교사는 우울증 등 정신적인 문제로 휴직했었다. 지난해 12월 교과 전담 교사로 복직했다. 며칠 전에도 비정상적인 폭력성을 나타냈다. 지난 6일 웅크리고 있는 자신에게 동료 교사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러자 그 교사의 팔을 꺾는 등 난동을 부려 주변에서 말렸다. 학교 측이 시교육청에 대책 마련을 요청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같은 병력을 이유로 또 휴직은 불가능하다는 게 이유였다. 냉철히 보자. 정신질환자 한 명에 의한 예외적 사건인가. 우리 주변에서 발생할 우려는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질환 교원은 늘 상존해 있고, 이들을 제어할 방책은 어디에도 없다. 기억나는 2023년 초등학교 교사 사망이 있다. 학생 지도 과정에서 받은 정신적 고통이 이유가 됐다. 같은 어려움을 호소하는 교사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당시 분출된 사회적 분노의 방향은 교권 붕괴였다. 그 이면에서 불거진 현실이 있었다. 일선 교사들의 정신건강이다. 통계가 있다. 2023년 우울증 진료를 받은 초등학교 직원이 9천468명이었다. 1천명당 37.2명으로 2018년 16.4명에서 급증했다. 그해 들어 유독 환자가 늘어났다고 볼 수 없다. 그동안 소홀히했던 ‘교단 스트레스’가 그제야 확인된 것이다. 대부분은 간단히 치료될 수준으로 보인다. 아주 드물게 병증이 심각한 경우가 문제다. 교육 현장에서 배제할 수 있는 절차와 근거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런 역할을 담당할 시스템이 없다. 휴직과 복직 등의 결정이 모두 본인 판단에 맡겨져 있다. 정확한 병증의 고지 의무조차 유명무실하다. 어설픈 제도가 있긴 했다. 2000년대 초반에 등장한 질환교원 심의위원회다. 질환으로 직무 수행이 불가능한 교원을 직권 휴·면직하는 제도다. 하지만 2010년을 전후해 대부분 폐지 또는 통합됐다. 실효성이 없다는 이유였다. 2020년 이후 일부 광역 교육청에서 부활했다. 여전히 실효성은 없어 보인다. 환자 본인을 강제할 확실한 근거에 이르지 못해서다. 이런 사각지대에서 빚어진 참변이다. 참으로 어이없는 사건 아닌가. 동료 교사의 팔을 비틀어 모두가 뜯어 말렸다. 그런 상태의 환자가 학교를 계속 돌아다녔다. 끝내 8세 어린 학생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아무 제재 없이 학교를 활보했던 나흘간의 범죄 시간이었다.

[사설] ‘반쪽짜리’ 행복기숙사... 청년들 박탈감만 보탰다

인하대 새 기숙사 건립 사업이 어정쩡하게 결말났다. 인근 원룸 등 지역주민의 반대로 갈등을 빚었다. 결론은 새 기숙사를 짓되 기존의 기숙사는 폐쇄한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반쪽짜리’ 사업이라며 어이없어 한다. 기숙사가 너무 부족해 좀 늘리려던 사업이었다. 결국 이해관계 주민들의 반대를 넘지 못했다. 인하대는 2027년 3월 새 학기까지 새 기숙사를 지으려 했다. 지하 1층~지상 15층짜리 ‘행복기숙사’다. 1천794명 학생들의 새 보금자리다. 기숙사 신축 사업은 낮은 기숙사 수용률 때문이다. 기존 기숙사(웅비재)로는 학생 수용률이 12.6%에 지나지 않는다. 전국 대학들의 기숙사 학생 수용률은 평균 23.5%다. 인하대는 새 기숙사를 지어 수용률을 21.9%까지 끌어올릴 참이었다. 학교 주변 원룸을 중심으로 반대운동이 벌어졌다. ‘기숙사건립반대위원회’다. ‘주민 죽이는 기숙사 건립을 즉각 중단하라’고 했다. 학교 주변 원룸 공실률이 늘어나고 상권이 침체될 것이라 했다. 기숙사 비용이 원룸 임대료와 큰 차이가 없어 혜택도 없다는 걱정도 했다. 기숙사 건립은 재래시장 옆에 대형마트가 들어서는 격이라고도 했다. 용적률 특혜를 줬다며 인천시도 공격했다. 인하대 생활관 학생운영위원회가 학생들 의견을 물었다. 기숙사 학생 340명 중 310명(91%)이 ‘행복기숙사 신축’에 찬성표를 던졌다. 인하대 총동창회도 기숙사 건립 지지 성명을 냈다. 외지에서 입학한 많은 학생들이 주거 문제로 학업에 전념하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는다고 지적했다. 인천시까지 중재에 나서자 결국 인하대가 물러났다. 기숙사 확충이 아닌 새 건물 교체다. 기존 기숙사를 문 닫고 새 기숙사를 열어도 학생 수용률은 16.7%에 그친다. 현재 1천18명인 기숙사 수용 인원이 1천794명으로 늘어날 뿐이다. 학생들은 ‘유야무야’식 타협이라 했다. 학생들은 “우리 의견은 뒤로한 채 주변 원룸 입장만 수용했다”며 반발한다. 교수들도 “이해관계에 밀려 이렇게 하면 앞으로 선례가 될 것이 걱정”이라고 했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새로 짓는 기숙사엔 식당도 두지 않는다고 한다. 이 또한 납득하기 어려운 조치다. 걱정인 것은 기숙사 확충을 기다렸던 학생들의 실망감이다. 객지에서 인천으로 공부하러 와 여러 어려움이 많을 우리 청년들이다. 그 소박한 바람조차 어른들 이해 갈등에 밀려나 버렸다. 안 그래도 어두운 미래에 힘겨워하는 그들이다. 그 청년들이 느낄 박탈감이나 피해의식을 어찌할 것인가. 인천이라는 지역사회의 도량이 드러난 해프닝이다.

[지지대] 기억과 기념

맥켄지의 기록에 의하면 그들은 모두 18세에서 26세 정도의 청년이었다. 영리해 보이고 용모가 단정한 한 청년은 아직도 한국 정규군의 구식 제복을 입고 있었다. 다른 이들은 군복 바지를 입었고 이들 중 두 사람은 흐느적거리는 낡아 빠진 한복차림이었다. 가죽 구두를 신고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설마 이 사람들이 몇 주 동안이나 일본군에 항전할 것을 선언해 온 사람들이라니!’ 1907년 경기 양근군(현재 양평군) 인근에서 의병을 만난 종군기자 맥켄지는 1년 뒤 ‘대한제국의 비극’에 글로 옮겼다. “군인(의병)의 영롱한 눈초리와 얼굴에 감도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봤을 때 나는 확연히 깨달은 바가 있었다. 적어도 그들은 자신의 동포들에게 애국심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 가운데 우리가 이름을 아는 이들은 없다. 무명의 의병들은 나라를 뺏긴 역사와 맞서며 역사를 이어갔지만 역사의 뒤안길에 묻혔다. 이처럼 국가를 위해 희생했으나 기억되지 못한 한말 무명의병을 재조명하고 기념하는 작업이 경기도에서 시작됐다. 1895년 을미의병이 봉기된 이후 본격적으로 의병전투가 시작된 경기도에서 나선 의미 있는 일이다. 경기문화재단 경기역사문화유산원은 12일부터 3주간 매주 수요일 ‘강산의 의로운 장부들: 대한제국기 경기도 무명의병은 누구인가’를 주제로 역사문화강좌를 진행한다. 또 의병과 관련된 실태조사와 무명의병 기념을 위한 중장기 계획이 마련될 예정이다. 한 세대가 태어나기 전에 있었던 과거의 역사적인 사건은 기억할 수 없다. 하지만 윗세대에서 내려오는 기념을 통해 과거의 사건은 재생되고 현재를 성찰하게 한다. 기념은 과거를 현재화하는 힘이 있다. 반복된 기념은 전통이 돼 현재와 미래의 공동체에 정체성과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한다. 광복 80주년과 을사의병 120주년, 을미의병 130주년을 맞은 올해다. 우리가 잊고 있던 이들의 희생과 숭고한 가치가 현재에 어떤 질문을 던질지, 어떤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할지 자못 궁금해진다.

[천자춘추] 진료정보 열람서비스

누구나 한 번쯤은 내가 무슨 약을 먹고 있는지, 내가 앓았거나 앓고 있는 질환이나 기존에 받았던 수술 및 치료의 정확한 명칭이 필요한 상황이 있다. 필자의 경우 혈압·당뇨약을 드시는 부모님과 국내 여행을 간 적이 있었는데 중간에 약이 떨어지는 바람에 근처 병원을 방문했다. 계속 복용하시던 약이지만 부모님도 필자도 그 약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중에 부모님 핸드폰에 심사평가원에서 제공하는 모바일 앱(건강e음)을 설치하고 ‘내 진료정보 열람’을 통해 확인한 처방조제 정보를 의료진에 제공해 기존에 복용하던 혈압·당뇨약을 무사히 처방받을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심사평가원의 내 진료정보를 조회할 경우 도움이 되는 다양한 사례가 있다. 응급 상황으로 병원을 방문하는 경우 투약 이력과 병력·수술 및 처치 이력을 의료진에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어 의료사고를 예방하거나 사보험에 가입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건강 상태 확인을 위해 본인이 활용하는 예도 있겠다. 심사평가원에서 제공하는 ‘내 진료정보 열람’ 서비스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스마트폰이나(모바일 앱 건강e음 설치) PC(심사평가원 홈페이지 접속)를 통해 지난 5년간 받은 진료에 관한 정보를 조회할 수 있는 서비스로 간편인증 등의 본인인증 후 병원이나 약국 방문 없이 즉시 정보 확인이 가능하다. 제공 정보는 기본진료정보(진료일, 병의원 이름, 진료과, 주상병명 등), 처방조제정보(처방·조제기관, 약 이름, 성분명, 투여량 등), 세부진료정보(진찰료, 검사료 등 구체적 진료항목 등)로 구분된다. 다만 병의원에서 심평원에 건강보험비용을 청구해야만 기록이 남으므로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의 진료정보는 확인할 수 없으며 청구 절차에 소요되는 기간을 고려할 때 통상 3개월 정도 시차가 존재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예를 들어 2024년 8월의 진료 정보를 의료기관에서 9월1일 청구 시 통상적으로 2024년 10월27일 이후 열람 가능하다. 이제 ‘내 진료정보 열람’ 서비스를 알게 된 독자들이 모바일앱(건강e음)을 설치해 한 번쯤 시험 삼아 사용해 보길 바란다. 본인뿐 아니라 필자의 경험처럼 부모님에게도 분명 도움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는 지금] 트럼프와 미국 패권의 미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과격 정책이 이어지면서 지구촌 차원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 필요하다고 하지만 오히려 미국을 포함해 지구촌 전체의 안정과 번영의 기반 요소를 스스로 파괴하는 행동으로 보인다. 미국이 이런 식으로 정책을 추진할 경우 미국 주도의 단일 국제질서가 붕괴되고 다극체제가 도래할 것이라는 전망이 커지게 된다. 동맹국 괴롭히기, 독재국가 지도자와 친선 관계 추구, 자유무역을 훼손하는 관세전쟁 유발, 제국주의적 영토 확장 야욕 노출, 다자협력기구 탈퇴, 미국 공공외교 자산 사실상 폐기 등 국제질서 유지 시스템과 국가 번영 시스템을 훼손하고 있으니 그런 우려가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그렇지만 트럼프 대통령 정책 비판이 미국의 패권 상실 전망으로 이어지는 것은 과도하다. 그럴 가능성이 존재하지만 현실적으로 그 가능성은 크지 않다. 우선적으로 트럼프 대통령 정책은 길어야 3년 반, 짧으면 1년 반 이상 이어지기 어렵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어쩌면 올해가 지나가기 전에 트럼프 행정부 정책 기조가 변경될 가능성이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트럼프의 정책이 미국에 손해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정책은 과거 18세기와 19세기 유럽에서 작동했던 세력균형 시대의 정책으로 전형적인 시대착오적인 산물이다.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 이후 유럽에서는 다수의 강대국이 경쟁하면서 세력균형 전략에 집중했다. 마치 기원전 770년부터 기원전 221년까지 중국에 존재했던 춘추전국시대와 유사한 국제질서가 형성됐다. 스페인,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등이 강대국 경쟁에 참여했고 20세기를 전후해 독일, 러시아, 미국도 강대국 경쟁에 뛰어들었다. 당시에도 패권국 개념이 존재했지만 상대적으로 가장 강한 나라라는 의미가 컸다. 패권국 개념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세계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로 양분되면서다. 미국과 소련이 두 진영의 패권국이 됐고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미국은 유일한 패권국이 됐다. 정리하면 지난 400여년 동안 국제질서가 오극체제에서 양극체제를 거쳐 단극체제로 변한 것이다. 패권국은 국제질서 유지 등 공공재를 제공하면서 무료 봉사를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국제 규범을 자국에 유리하게 설정하는 방식으로 이익을 챙긴다. 지난 30여년간 미국은 신자유주의 접근법을 기반으로 세계화를 주도하면서 매년 평균 경제성장률 3.8%를 기록했다. 미국 기업들은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중국과 한국, 대만을 상품 제조 기지로 활용하면서 지구촌 범위에서 부익부 시스템을 관리해온 것이다. 트럼프의 정책은 미국의 번영을 보장하는 대규모 장치를 스스로 파괴하고 상호 의존이 심화된 시대에서 국익 보전에 필수적인 공공외교 지침을 위반하는 것으로 국가 이미지 추락에 이어 국가 발전을 저해할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미국이 쇠퇴의 길을 걷는다 해도 패권 상실로 바로 연결되지 않는다. 흔히 중국이 미국을 대체할 후보로 언급되지만 중국이 현재 겪고 있는 국가적 균열 위기와 혼란을 수습하고 미국에 버금가는 국가 역량을 구축하려면 적어도 2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 사이 트럼프의 자충수 정책에 불만을 가진 미국 내 엘리트 그룹과 기업인들이 세계 최강의 경제력과 기술력, 군사력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패권 회복 프로그램을 작동할 것이다. 자본주의 또는 신자유주의 작동 원리 가운데 자기 수정 요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와 기업, 지식인 엘리트들도 트럼프 패닉에 빠지기보다는 미국의 거대한 기득권 세력이 추진하는 새로운 패권 운영 시스템을 예상하고 가능한 범위 내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물론 한국은 독자적인 국익 계산과 전략을 갖고 있어야 하고 다극 질서를 전제로 하는 외교 전략도 철저하게 준비하는 것도 플랜B 차원에서 당연한 것이다.

[세상읽기] 한의학과 AI, 미래 의료 경쟁력을 높이다

전통 한의학은 선사시대로부터 수천년간 인류의 건강을 지켜온 중요한 의학 체계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현대 의료 시장에서 객관적 검증의 부족, 표준화의 한계 등의 이유로 한의학의 경쟁력은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인공지능(AI) 기술과의 융합을 통해 한의학이 새로운 도약을 할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최근 AI 스크리닝 기술이 신약 개발에 혁신을 가져오고 있다. 기존 신약 개발은 막대한 비용과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만 AI를 활용하면 방대한 데이터를 신속히 분석하고 최적의 후보물질을 찾아내는 것이 가능하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진은 AI를 이용해 기존 항생제보다 더 강력한 신약 후보군을 발굴하는 데 성공했으며 IBM 왓슨헬스도 AI를 활용한 암 치료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들은 AI가 전통적인 신약 개발 프로세스를 혁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는 빠르게 성장하는 전통의약 시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무역협회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세계 전통의약 시장 규모는 5천186억달러이며 2027년까지 7천682억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연평균 성장률은 8.2%에 달한다. 특히 세계 천연물 의약품 시장의 경우 2019년 314억4천만달러 규모이며 2026년까지 413억5천만달러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의 투유유 교수가 전통 중국 의학에서 사용된 한약재 개똥쑥에서 항말라리아 치료제 아르테미시닌(Artemisinin)을 찾아내 201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지만 190회 이상의 실패를 포함해 수많은 수고와 시간을 사용한 결과다. AI가 연계돼 전통 한의학 약재와 치료에 관한 현대 의학적 해석을 연계해 준다면 이러한 수고와 시간의 낭비 없이 수많은 신약이 탄생할 것이다. 한의학과 AI의 융합은 의료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높일 뿐만 아니라 전통의학과 현대 과학이 조화를 이루는 모델이 될 수 있다. AI가 한약재의 효능을 분석하고 복합 처방을 최적화함으로써 보다 안전하고 효과적인 치료법을 개발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특히 AI 기반의 개인 맞춤형 한방 처방이 가능해지면서 환자의 유전자 정보, 생활 습관, 기존 병력을 분석해 보다 정밀한 치료 체계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단순한 연구를 넘어 한의학의 실질적인 임상 적용 가능성을 높이는 중요한 단계다. 그러나 이러한 혁신에도 불구하고 AI 신약 개발에는 한계와 해결해야 할 문제도 존재한다. 그 능력과 정확도가 찾아내는 데이터에 의존하는 AI의 특성이 있기 때문에 데이터의 편향은 위험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로 인해 AI가 일반적인 환자에 대한 잠재적 위험성은 간과하고 특정한 유형의 환자에게만 효과적인 치료법을 제시할 수 있다. 한의학의 경우 AI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방대한 양의 임상 데이터가 필요하지만 현재 한약재의 분자적 작용 기전이나 장기 복용에 대한 연구 데이터는 충분히 확보되지 않고 있다. 다국적 임상 데이터 부족 문제도 글로벌 시장 진출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학계, 산업계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 정부는 AI 기반 한의학 연구를 체계적으로 지원할 환경을 구축하고 연구소 및 대학에서 AI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프로그램을 도입해야 한다. 또 한의학 연구소와 글로벌 바이오·헬스케어 스타트업 간 협업을 강화해 AI 기술을 적용한 한의학 솔루션 개발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특히 중국과 일본에서 AI를 활용한 전통의학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한국도 국제 협력을 통해 연구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현재 세계적으로 웰니스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자연 기반 치료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AI를 활용해 한약재의 유효 성분을 규명하고 이를 국제 표준에 맞춰 개발한다면 한의학은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는 의료 체계로 자리 잡을 수 있다. 기술의 발전이 한의학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그리고 우리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전통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 이제 우리는 AI와 함께 한의학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한다.

[경기만평] 이럴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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