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가구 '삶의 파편들', 예술로 부활...엄미술관 ‘아오노 후미아키 개인전’

어느 것 하나 성한 게 없다. 사람의 발길이 뜸한 어느 곳, 해안의 한 지점, 그 곳에 버려졌거나 떠밀려 온 쓰레기 더미들이 서로 합쳐지고 새 옷을 입어 재탄생했다. 본연의 모습을 없애는 작업이 아니다. 일본 설치미술가 아오노 후미아키(56)는 빈 땅이나 해안 등에서 주워 온 폐기물의 파손된 파편에 고정, 연장, 붙이기, 수리 등의 기법을 적용해 재생과 복원을 한다. 버려진 것들이 내재한 일상과 감정, 기억이 작가만의 독창적인 방식으로 되살아나는 것이다. 화성 엄미술관에서 지난 4일 개막한 아오노 후미아키의 개인전 ‘무지(無知)의 기억이 열리다’에선 사물의 순환- 수리- 변용을 다룬 작가의 작품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지난 2014년 아라리오 갤러리 전시(환생, 쓰나미의 기억)에 이어 한국에서 10년 만에 선보이는 전시다. 작품은 아라리오 컬렉션에서 들여온 45점, 작가가 한국에서 작업한 10점이 전시됐다. 전시는 이전 생활에 대한 기억이나 상실의 흔적들을 관객에게 상기시키며 사물에 대한 무지(無知)의 기억이 열리도록 한다. 낡고 부서진 옷장과 테이블은 연결되고 색칠돼 배의 모양이 됐다. 부서진 옷장과 장롱은 폐기처분된 트럭과 연결돼 새로운 이야기를 품었다. 전시를 위해 미술관에서 며칠 지내던 작가는 수원대 후문과 미술관 뒷산 인근을 돌며 부서진돌과 버려진 봉지 등을 채집해 작품을 만들었다. 깨진 조각, 먹다 버려진 빼빼로 상자, 버려진 커피 플라스틱의 일부, 깨진 유리병은 다른 재료와 연결돼 본래의 기억을 안은 채 복원됐다. 작가는 1990년대부터 일관되게 ‘파괴’, ‘재생’, ‘순환’의 과정을 다루는 ‘복원’을 주제로 작업해왔다. 가구나 자전거, 일용품 등 각기 다른 것을 접합·복원하는 과정에서 그것에 깃든 타인의 기억을 마주하고, 지식이나 상상력으로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 그 기억을 드러낸다. 사라지거나 부서진 흔적을 창작의 원천으로 삼아 ‘수리’라는 형태로 인간과 사회의 관계를 살핀다. 매해 전시에 기후 위기와 환경에 관한 메시지를 전달하며 지역 미술관의 역할을 해온 엄미술관의 고뇌와 작품의 진열과 배치는 복원을 통해 이야기를 품은 예술품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부서진 트럭이 옷장과 결합된 작품의 뒤편에선 벤치에서 잠시 앉아 사색에 잠길 수도 있다. 평소 생각해 볼 필요가 없었던 옷장의 뒷모습을 살펴보고 작품을 다양한 각도에서 재밌게 바라볼 수 있는 요소를 만들었다. 미술관에서 진행한 전시 연계 프로그램도 열린다. 5월 11일 오후 2시에 열리는 프로그램 ‘재탄생: Recycling ’에선 아오노 후미아키가 재해로 버려진 수많은 물건을 수집해 과거의 기억이 공존하는 새로운 생명을 가진 물건으로 복원했듯,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다양한 재활용품으로 과거의 기억이 담겨있는 새로운 의미를 지닌 창작품으로 만들어보는 시간이 마련된다. 진희숙 엄미술관장은 “아오노의 전시를 통해 폐기물이 예술로 변모되는 과정을 접하면서 사물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고, 나아가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예술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이번 전시와 연계 프로그램을 통해 미술관 역시 지역사회의 문화 예술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전시는 6월8일까지.

묵향의 매력에 흠뻑…‘제4회 경기·제주서화교류전’

묵향의 매력이 경기와 제주를 이었다. 경기서화교육협회(회장 김동배)와 (사)제주작가협회(회장 양원석)가 함께한 ‘제4회 경기·제주서화교류전’이 21일 막을 내렸다. 경기·제주서화교류전은 전통예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양 협회 소속 작가들이 적극적으로 교류하고, 지역 대표 작가들이 작업에 전념한 작품을 교류 전시하며 성장과 지역 예술문화 향상의 기회로 삼고자 마련됐다. 지난 16일 개막한 전시는 월봉 김상헌, 양원석 등 제주 지역 작가 22명의 작품 40점, 우암 윤신행, 김동배, 유순덕 등 경기지역 작가 50명의 작품 80점 등 총 120점이 관람객과 만났다. 서예와 문예, 동양화를 주축으로 한 작품들은 오랜 세월 묵을 갈아온 작가들의 고유한 전통적 예술을 품으며 미적감각과 문화의식을 엿보는 기회를 만들었다. 상호교류 전시를 통해 예술가들은 서화예술을 통해 문화예술을 탐구하고 우호 증진을 하며, 지역민들에게 서화의 매력을 알렸다. 특히 제주도와 경기지역 작가들의 작품이 각각 지닌 자연과 생활상, 보편적 예술관 등을 비교해 보는 재미와 함께 자연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공감, 여백의 미, 함축과 은유가 깃들어 있는 서화의 예술적 철학을 느끼게 했다는 평이다. 김상헌 제주작가협회 이사장은 “역사 속 화성의 혼이 담긴 곳에서 경기지역 회원들의 초청으로 1년 동안 공부해 온 작품을 펼치게 돼 감격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더욱 전진하고 영원히 변치않는 우정으로 남길 바란다”고 밝혔다. 윤신행 경기서화교육협회 이사장(기호서화학회 회장)은 “상호교류 전시를 통해 두 도시에서 예술가들이 서화예술을 통해 문화예술의 유익한 탐구와 우호 증진에 도움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고 강조했다.

가족뮤지컬에서 클래식까지…성남문화재단, 5월 프로그램 공개

성남문화재단이 가정의 달 5월을 앞두고 가족과 즐기기 좋은 공연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모험의 세계가 펼쳐지는 가족 뮤지컬부터 쉽고 가깝게 즐기는 콘서트 발레, 놀며 배우는 어린이 클래식 공연까지 성남아트센터에서 즐길 수 있는 공연을 알아봤다. ■ 마법의 옷장 속에서 만나는 추억, 가족 뮤지컬 ‘슈퍼클로젯’ 온 가족이 함께 즐기는 가족 뮤지컬 ‘슈퍼클로젯’이 5월11~12일 양일간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다. 뮤지컬 ‘슈퍼클로젯’은 하늘에서 슈퍼옷장과 함께 나타난 우주 대스타 ‘슈퍼클로’와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소녀 ‘나라’가 함께 재미를 찾아 떠나는 모험을 담았다.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는 통로이자 추억과 시간이 담긴 마법 옷장을 통해 ‘나’만의 세계에 있던 아이들에게 ‘함께’하는 즐거움과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특히 프로젝션 매핑 기술을 활용한 화려한 무대 연출과 개성 넘치는 캐릭터, 뮤지컬 전문 배우들의 유쾌한 연기와 군무가 극의 재미를 더한다. 극 중 워킹맘 ‘지혜’와 딸 ‘나라’의 교감을 통해 마음을 울리는 따뜻한 위로와 공감의 메시지도 얻을 수 있다. ■ 부모와 아이가 함께 즐기는 발레 무대, 콘서트 발레 ‘백조의 호수’ 서울발레시어터와 프라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콘서트 발레 ‘백조의 호수’를 5월 11일 대극장 무대에서 선보인다. 발레 ‘백조의 호수’는 악마 로트바르트의 저주에 걸려 낮에는 백조로, 밤에는 사람으로 변하는 오데트 공주와 지그프리트 왕자의 동화 같은 사랑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차이콥스키의 아름다운 음악과 비극적인 스토리, 고난도의 테크닉과 군무로 세기를 넘어 현재까지 대중의 사랑을 받는 클래식 발레의 명작으로 손꼽힌다. 이번 공연은 차이콥스키의 음악과 발레 장르의 형식은 그대로 유지하되, 전막 대신 작품의 명장면을 중심으로 구성을 간소화했다. 발레를 처음 접하는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부담 없이 쉽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 지휘자 박승유와 프라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음악을, 서울발레시어터 최진수 단장이 연출을 맡는다. ■ 놀면서 배우는 클래식 음악, 키즈 클래식 ‘프렌쥬 클래식 사파리’ 아이들이 함께 노래하고 직접 악기를 체험하며 즐기는 클래식 콘서트 ‘프렌쥬 클래식 사파리’는 5월17~19일까지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열린다. ‘프렌쥬 클래식 사파리’는 EBS에서 인기리에 방영한 애니메이션 ‘쓰담쓰담 동물원 프렌쥬’가 원작이다. 작품의 주인공들이 도레미 탐험대장을 따라 음악으로 가득한 사파리 여행을 떠나는 내용으로 숲속 무도회장에서 춤추는 코끼리와 병아리를 만나 지휘를 배우고 홍학들의 무도회에서 악상 기호를 배우는 등 탄탄한 스토리와 다양한 교구 놀이를 통해 클래식의 기초 이론을 쉽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다. 이번 공연의 테마는 ‘앵무새의 합창 대회’다. 소프라노와 베이스 등 성부의 음계와 이름을 현악 4중주 연주로 알아본다. 공연 관람 후 콘서트홀 로비에서 진행되는 악기 체험을 통해 클래식 음악을 더욱 재미있게 경험할 수 있다.

군포문화재단 브런치클래식 ‘숨은 명곡 찾기’...4월엔 ‘바로크 음악’

군포문화재단이 브랜드 공연인 ‘2024 브런치클래식’의 첫 포문을 바로크 음악으로 연다. 18일 오전 11시 군포문화예술회관 수리홀에서 열리는 올해 첫 브런치클래식 공연에선 ‘진주처럼 빛나는 바로크’를 주제로 예술의 품격과 고귀함을 지닌 바로크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무대에선 이탈리아풍의 밝고 역동적인 분위기가 특징인 ‘테 데움’ 라장조와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중 ‘정령들의 춤’ 등 고상하고 풍부한 음악적 특징을 지닌 연주곡들이 바로크 음악의 빛나는 매력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전용우 충북도립교향악단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가 지휘를 맡고 바이올린 김영기·송화현, 플루트 이예진·손예림 첼로 윤석우, 트럼펫 전석호와 군포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종교 음악이 악기의 발전으로 화려하면서도 힘찬 바로크 음악으로 변화되면서 만들어 낸 역사 속의 진주같은 명곡을 캐낸다. 음악감독이자 작곡가로 활동 중인 피아니스트 송영민의 전문적인 해설은 관객을 음악의 세계로 이끌 예정이다. 브런치클래식은 군포문화예술회관의 상주단체이자 민간 오케스트라로 수준 높은 실력을 인정받는 군포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마티네 공연이다. 매년 다른 주제의 클래식을 해설과 함께 관람할 수 있어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달 공연을 시작으로 5월 ‘바람에 실려온 명장의 숨결’, 6월 ‘러시안의 리듬’ 공연이 연이어 진행된다. 군포문화재단 관계자는“전문적인 해설이 있는 클래식 명곡을 다과와 함께 즐길 수 있는 브런치클래식을 통해 평일 오전 여유롭고 특별한 시간을 보내기 바란다”고 전했다.

이강자 화가가 화폭으로 옮긴 '수원화성의 사계'

자연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수원화성의 아름다움이 유화로 고스란히 옮겨졌다. 이강자 작가의 일곱 번째 개인전 ‘수원화성의 사계’가 16일부터 21일까지 수원시립만석전시관에서 열린다. 2016년 ‘수원화성 안 골목풍경’ 전을 선보인 이후 8년만의 개인전이자 작가의 팔순을 맞아 열리는 전시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수원미술협회, 수원사생회 고문인 이강자는 40여년 동안 유화를 그려온 수원의 대표 원로 작가다. 이번 전시에선 작가가 삶을 일궈온 수원화성의 풍경과 아름다움을 담아낸 작품 35점을 만날 수 있다. 그가 그려낸 수원화성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닌 하나의 풍경이다. 우뚝 서 있어도 왠지 모를 인자함이 넘실대고 단풍나무와 숲과 함께 한 모습에선 자연과 어우러진 배려심이 느껴진다. 버스와 자동차, 오토바이, 사람들이 오고가는 장안문은 평온함을, 주택가를 내려다보는 봉돈은 마을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는 어르신 같기도 하다. 아이와 연인이 함께 등장하는 서장대와 서노대, 눈이 흠뻑 쌓인 남포루까지. 작가가 바라본 수원화성의 아름다움이 따듯하고 서정적인 그림으로 옮겨졌다. 이 작가에게 수원화성은 삶의 일부였다. 작가는 1943년 서울서 태어나 그 이듬해인 해방되기 1년 전부터 수원에 정착했다. 정조가 화성을 짓던 때부터 있었을 법한 팔달문과 종로 사거리 사이에 위치한 초가집이 빨간벽돌로 지어질 때 까지, 어릴적부터 청소년기까지 늘 수원화성 가까이에서 살았다. 그 후 화서문을 드나들며 중·고교를 다녔고, 종종 창룡문을 지나 서원마을까지 걸어서 다니기도 했다. 수원화성은 그가 함께 일궈나간 공간이기도 했다. 헐벗은 팔달산엔 소나무 묘목을 심었고, 송충이를 잡으며 팔달산을 가꿨다. 수원화성의 깨진 기와 한 장까지 사랑하고, 성터 옆 노송 한 그루 베였을 땐 눈물을 흘렸다. 고려대학교 교육학과를 나와 졸업 후 교단에 섰으나 화가의 꿈을 늘 쥐고 살았던 그는 마흔 즈음부턴 늘 붓과 캔버스, 작은 접이 의자를 자연에 놓고 그가 사랑하는 대상을 화폭에 담았다. 교단에서 퇴직한 이후엔 그가 사랑한 수원화성을 본격적으로 그렸다. 간단한 점심과 물 한 병으로 종일 버티며, 4~5시간씩 한 곳을 응시하며 그림을 그리다 보면 이 작가 스스로 화성의 아름다움에 감탄해 화성을 더욱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고. 그렇기에 그가 담아낸 수원화성은 유난히 따스하고 편안한 안식처 같은 느낌이 든다. 작가는 수원화성의 건물 19개 유형의 60개 시설물 중 복원이 안 된 10개를 뺀 50개의 시설물을 모두 그림으로 넣었다. 그동안 수원화성을 그린 작가들 상당수가 경치가 좋은 장소를 택해 일부의 아름다움을 담아냈다면, 수원화성을 온전하고 종합적으로 드러낸 것은 이 작가가 처음이다. 특히 작품의 설명에 한글이라도 풀이가 다른 내용들은 함께 명시해 교육적으로도 도움 되도록 했다. 이 작가는 “수원화성을 보며 느꼈던 마음이 그림으로 그대로 표현된 것 같다. 화성은 세계유산이자 많은 관광객들에게도 사랑을 받는 장소인데, 사진으로는 많이 접하지만 그림으로 표현한 다양한 모습, 종합적인 수원화성을 보여드리고 싶었다”며 “다양한 수원화성의 모습을 감상하고 느껴주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감정에 색과 형태를 담아 예술로 승화하다…‘감정의 순간성’展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감정에 색과 추상적 형태를 담아 예술로 승화한 작품들이 있다. 성남 판교의 갤러리 안단테에서 지난 1일 개막한 UJ(본명 김주희) 작가의 개인전 ‘감정의 순간성’이 그렇다. 전시에서 작가는 무의식 상태에서 붓과 나이프, 스펀지 등의 도구로 순간의 감정을 펼쳐낸 추상회화 25점을 내걸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실용음악을 전공한 UJ 작가는 음악 외주작업을 하며 틀에 맞춰야 한다는 답답함을 느꼈다. 우연히 물감으로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다 자유와 해방감을 느끼게 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이 때문에 UJ작가에게 작품활동은 마음 속 깊이 숨어있는 미약한 감정들을 나오게 해 스스로를 보듬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전시에선 여러 차례 레이어 해 완성한 작품 ‘우연’을 볼 수 있다. 작가는 지난해 완성한 작품에 덧칠을 하며 풍성함과 깊이감을 줬다. 현재는 수많은 과거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과거의 그림에 색을 쌓는 우연의 과정을 거쳐 완성된 작품은 현재의 감정과 가장 맞닿아 있다고 확신한다. 15일 막을 내리는 전시에선 음악과 미술이 결합한 신작 ‘My Music’ 시리즈도 선보였다. UJ작가가 작곡한 음악을 추상회화로 옮겨놓은 작품이다. 작가는 음악은 그림이 될 수 있고, 그림도 음악이 될 수 있다고 믿은 추상회화의 창시자 ‘바실리 칸딘스키’의 작업을 따라 두 가지 예술을 융합해 ‘감정의 순간성’을 포착해내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 외에도 비닐장갑으로 붉은색의 아크릴 물감을 흩뿌려 수험생활의 고통을 표현한 ‘열정과 절망’, 캔버스의 천을 잘라 붙여 작품의 재탄생을 의미한 ‘언제나 희망은 있다’, 태어날 조카를 기대하며 희망을 담은 ‘초록’ 등이 인상깊다. UJ 작가는 “감정이 차올라 모든 것이 복잡하게 느껴질 때 그림을 그리다 보면 캔버스에 감정을 쏟아붓는 것처럼 느껴져 마음이 가벼워진다”며 “관람객들이 전시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느끼고 스스로를 보듬는 시간을 가졌길 바란다”고 말했다.

“모차르트·베토벤, 두 고전주의 거장의 향연”…성남아트리움, 상반기 클래식 라인업 공개

성남문화재단은 올해로 개관 3년차를 맞이하는 성남아트리움의 모차르트와 베토벤 두 고전주의 거장을 주제로 한 2024년 상반기 클래식 라인업을 발표했다. ■ 생애 첫 모차르트 전국 투어, ‘백건우 피아노 리사이틀’ 먼저 ‘건반 위의 구도자’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다음 달 24일 성남아트리움 대극장에서 생애 첫 모차르트 프로그램으로 리사이틀에 나선다. 올해로 피아니스트 인생 68년에 접어들며 자타공인 한국의 대표 연주자이자 세계적인 거장 백건우는 작곡가의 작품과 생애, 음악 세계관에 관한 깊이 있는 탐구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연주를 펼쳐 온 인물이다. 수 십 년간 음악을 연주한 백건우에게도 모차르트는 고민의 대상이었다. 그는 다음 달 생애 첫 모차르트 음반을 발매하고 리사이틀 무대를 연다. 이번 무대에서 그는 고뇌의 대상이었던 모차르트에 도전하며 모차르트 음악 속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함을 손끝으로 표현할 예정이다. ■ 가장 특별한 베토벤을 만나다 ‘작곡가 시리즈 : 베토벤’ 6~7월에는 성남아트리움의 기획공연 ‘작곡가 시리즈’가 두 차례 이어진다. 인물은 친숙한 고전주의 작곡가 ‘베토벤’으로 베토벤의 대표 교향곡과 피아노 협주곡, 바이올린 협주곡 등이 소개된다. 성남아트리움의 기획공연 ‘작곡가 시리즈’는 한 시대를 풍미한 작곡가의 작품을 소개하는 클래식 시리즈로 지난해에는 라흐마니노프와 차이콥스키 작품이 관객에게 큰 호응을 얻은 바 있다. 올해엔 6월26일 베토벤의 중기 대표작이자 생애 마지막 피아노 협주곡인 제5번 ‘황제’와 교향곡 제5번 ‘운명’이 연주된다. 이병욱 지휘자가 이끄는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가 연주를, 2022년 프랑스 롱티보 크레스팽 국제피아노콩쿠르 우승자인 피아니스트 이혁이 협연을 맡는다. 7월27일에는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의 협연으로 베토벤의 유일한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와 환희와 낙관, 리듬의 역동성이 풍부한 ‘교향곡 제7번’이 대미를 장식한다. 공연은 수원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이자 상임지휘자인 최희준이 지휘봉을 잡는다. 서정림 성남문화재단 대표이사는 “성남아트리움이 클래식 기획 시리즈를 통해 국내외 최고 연주자들의 고품격 무대를 선보이며 성남 원도심의 문화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장르의 무대와 지역 예술인들의 활동 기회 확대를 통해 지역 문화예술의 수준 향상에 기여할 것”이라고 전했다.

“두 방랑자의 실체 없는 기다림”…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리뷰]

“이젠 뭘 할까?”. “기다려야지”. “누구를?”. “고도!”. 블라디미르(디디, 박근형)는 무덤에 걸터앉아 무덤으로 끌어내려지는 반복되는 인생에 의문을 제기한다. 디디의 오랜 동반자 에스트라공(고고, 신구)은 더 이상 고도를 기다리는 일을 못 하겠다고 말한다. 또다시 고도를 기다리며 무엇을 할까라는 질문에 디디는 “나무에 목이나 맬까?”라고 말한다. “그러다 고도가 오면?” “우리는 사는 거지”. 대화를 마친 두 방랑자는 “가자”를 외치고 다시 길을 떠난다. 지난 9~10일 화성시 동탄복합문화센터 반석아트홀에서 막을 내린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는 아일랜드 출신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사무엘 베케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희비극이다. “에스트라공(고고)과 블라디미르(디디)라는 두 방랑자가 실체가 없는 인물 ‘고도(Godot)’를 하염없이 기다린다”라는 한 줄 남짓한 줄거리에 담긴 내용은 꽤나 심오하고 이를 풀어내는 방식은 코믹하다. 유쾌하면서도 씁쓸함이 담긴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는 인간의 삶을 ‘기다림’으로 정의하고, 그 끝없는 기다림 속에 인간이란 존재의 특성을 보여준다. ■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사무엘 베케트의 역작, 국내외 최고령 ‘디디’와 ‘고고’가 펼친 두 배우의 열연 ‘고도를 기다리며’는 1953년 파리 첫 공연을 시작으로 전세계에서 다양한 해석의 무대가 펼쳐지고 있다. 국내서는 1969년 초연 이후 50년 동안 1천500회 이상 무대로 사랑 받아온 작품이다. 이번 무대는 지난해 12월 파크컴퍼니가 제작하고 오경택 연출로 막을 올렸다. 대표 배우인 신구(88), 박근형(84)이 처음으로 연기합을 맞춘 작품이자 박정자(82), 김학철(64) 등 출연 배우 네 명의 연기 경력만 총 220년이 넘는 캐스팅으로 화제가 됐다. 서울 국립극장에서 첫 공연을 올린 데 이어 울산, 춘천, 세종, 강릉, 대구, 대전 등 전국 지역 순회 공연을 펼치고 있는 작품은 지난 5~6일 경기도 고양, 9~10일 화성까지 50회차 전석 매진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다음 달 열리는 제60회 백상예술대상의 연극 부문 후보에도 올랐다. ■ “고도란 과연 무엇인가, 존재하기는 한 걸까?” 이름만으로도 기대를 모으는 배우들의 합을 눈 앞에서 볼 수 있다는 설렘 때문일까, 지난 10일 오후 3시께, 무대가 시작되기 직전 객석은 들뜬 표정의 관객들로 가득찼다. 부모님의 손을 잡고 온 어린 자녀부터 백발의 70~80대의 노인까지 연령도 성별도 다양했다. 암전 속 두 배우는 등장만으로 몰입을 자아냈다. 무대에는 앙상하게 비튼 나무 한 그루와 두 노인뿐이다. 만담처럼 끝없이 주고 받는 고고(신구)와 디디(박근형)의 대화는 객석에 웃음을 유발했다. 두 사내는 ‘고도’를 기다린다고 말하지만 정작 두 사람 모두 명확히 고도가 누구인지, 왜 기다리는지는 본인들조차 알지 못한다. 고고는 “우리는 고도, 그 자에게 묶여있어!”라고 외친다. 고도를 기다리는 고고와 디디의 쉼 없는 대화에 몰입하고 있을 때, 목에 끈이 묶인 남루한 노새와 같은 짐꾼 럭키(박정자)와 이를 이끄는 사내 포조(김학철)가 등장한다. 짐을 들고 채찍에 휘둘림 당하며 땅만 바라보는 럭키의 존재는 과연 인간인지 아닌지 헷갈리게 만들고, 포조는 자신과 같은 신이 만든 존재인 동족(인간)을 찾고 있다고 말한다. ■ 다양한 인간 군상…‘포조’가 될 것인가 “수치스럽다!” “어떻게 한 인간을 이렇게 취급해!”라고 디디가 외친다. ‘고도를 기다리며’ 속 캐릭터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여준다. 디디는 낙관적이면서도 선하고, 그러면서도 지적이고 철학적인 사유를 하는 존재이다. 반면 고고는 다소 소극적이고 비관적이며 때로는 염세주의적이다. 적당히 못된, 미워할 수 없는 우리 주변의 캐릭터다. 닮은 듯 다른 영혼의 동반자 두 사내는 어쩌면 한 인간의 양면적인 모습일 수도 있다. 반면 포조와 럭키는 우리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한 심연의 모습과 같다. 포조는 자신과 같은 모든 인간이란 존재에게서 얻을 게 있다고 말하며 디디와 고고에게 신사처럼 굴다가도 럭키를 마치 가축처럼 부린다. 럭키가 시장에 내다버릴 것을 무서워해 불쌍한 척 하며 자신을 괴롭히고 있다고 말하는 포조는 탐욕적이면서도 권위적인 인간의 이중성, 아이러니함을 드러낸다. ■ 주인의 밧줄에 저항하는 럭키 “생각해”라고 다그치는 포조의 채찍질에 럭키는 마침내 입을 연다. 그때부터 10여분간 이어지는 럭키, 박정자의 독백은 가히 압권이었다. 내내 땅바닥만 보던 럭키는 머리에 모자를 쓰게 되자 허리를 꼿꼿이 세운다. 작았다가 커졌다가, 높았다가 낮았다가 마치 방언처럼 알 수 없는 내용의 대사를 쏟아낸다. 흥미로움과 재미로 지켜보던 객석의 표정은 이내 심각해졌다가 슬퍼지는 듯 했다. 포조가 모자를 벗겨내자 다시 럭키는 침묵하고 둘은 사라진다. 국내 무대서 유일하게 여성으로 ‘럭키’ 역을 맡은 박정자 배우는 작품 소식을 듣고 “럭키 역할을 하고 싶다”며 제작사에 적극적인 의사를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럭키를 완벽하게 소화하며 열연을 펼치는 박정자 배우의 모습을 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한바탕 떠들썩함이 지나간 자리 이번엔 소년(김리안)이 찾아온다. ‘고도’가 과연 실체하는 존재인가 의문을 가질 때쯤 고도의 부탁을 받고 찾아왔다는 소년과 그가 들려주는 고도에 관한 묘사는 다시금 고도라는 존재가 실재함을 믿게 만든다. ■ 달라진 아침, 희망은 시작된 걸까 밤을 지나 찾아온 아침. 여전히 두 노인은 고도를 기다리며 서로에게 기대어 있다. 이때 디디는 무언가 변화가 생겼음을 눈치챈다. 말라 비틀어졌던 나무에 오늘은 잎이 달려 있는 것이다. 고도를 기다리며 고고와 디디는 포조와 럭키를 따라하는 놀이도 해보고 우스꽝스런 춤을 추거나 운동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런 두 사람 앞에 알 수 없는 풍파를 겪은 포조 일행이 재등장하고, 다시 소년이 찾아왔다가 소년도 떠난다. 더 이상은 못하겠다는 고고에게 디디는 ‘나무에 목이나 맬까?’라고 말하고, “그러다 고도가 오면 우리는 사는 거지.” 라고 말하며 두 존재는 다시 서로에게 기대 각자를 이끌며 길을 떠난다. ■ 기다림의 끝은 희망일까, 절망일까 2시간30분 가량 이어진 무대는 시간의 흐름을 느낄 새 없이 휘몰아치는 연기로 관객을 이끌었다. 누군가 연극은 관객과의 호흡이 생명이라 한다. 무대가 끝난 후 관객에게 깊이 머리 숙여 인사하는 팔순이 넘는 노배우들의 감사 인사에 객석은 진심 어린 박수를 보냈다. 실체 없는 고도와 같은 극을 이끌어간 것은 배우의 열연이 없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래서 과연 고고와 디디는 고도를 만났을까. 전세계 숱한 이들이 ‘고도’라는 존재에 대해 신, 희망, 구원 또는 죽음, 자유 등 다양한 해석을 내놓지만 원작자 베케트조차 ‘고도’가 정확히 무엇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고도는 두 방랑자를 하염 없이 기다리게 만들면서도 동시에 밤을 지나 또다시 다음날을 살아내게 만들고, 그러면서도 떠날 수 없게 얽매는 존재이다. 결말에 대한 해석 역시 다양하다. 누군가는 또다시 반복되는 하루의 모습에 허무함과 절망을 느낄 수도, 누군가는 조금씩 변화한 모습에서 고도는 결국 만나게 될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발견할 수도 있다. 작품은, 인생 그 자체가 기다림이라 말한다. 어쩌면 우리가 일생 내내 그토록 갈망하는 무언가는 실체 없는 허상을 좇는 것일 수도 있다. 알 수 없는 기다림의 과정에서 우리는 부조리함과 역설을 저지르기도 그러면서도 때로 그 안에는 유쾌함과 즐거움, 행복함도 있다. 작품은 당신이 기다리는 ‘고도’는 무엇이냐고 질문한다. 단일 캐스팅(원 캐스트)으로 지난해부터 쉼 없이 달려온 작품은 이달 26일부터 ‘럭키’와 ‘소년’ 역의 변화와 함께 관객의 호응에 힘입어 열흘간 서울서 9회의 앵콜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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