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스토리가 글의 가치를 높인다

몇 번 보지는 않았지만 보통 가정을 찾아가 그 가정의 이야기를 듣는 ‘한끼줍쇼’라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쇼트트랙 국가대표 최민정 선수와 심석희 선수가 태릉선수촌 주변 동네를 찾았을 때, 바로 그 동네에 살았던 절친한 친구는 참으로 아쉬워했다. 한 길만 건너서만 왔어도 자기 집 문을 두드릴 확률이 높았다는 것이다. 이 친구에게 그들이 왔다면 무슨 이야기를 할 거냐 물었더니, 5년 정도 태릉선수촌에서 봉사를 했던 이야기를 할 거라 했다. 두 선수의 동료인 다른 쇼트트랙 선수들과 교류했던 이야기도 있다고 한다. 내가 다 아쉽다. 내 친구의 집은 제작진 입장이라면 그 동네와 그 선수들에게 맞춤한 이야기를 펼쳐 놓을 수 있는 구미가 당기는 좋은 가정이었다. 유명인들의 이야기는 늘 인기지만 보통 사람, 보통 가정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 프로그램이 인기 있는 건 의외일지 모른다. 처음엔 인기 있는 진행자와 매주 바뀌는 유명 연예인들의 힘만으로도 한두 번 볼 수 있다. 하지만 나와 같은, 내 이웃 같은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공감을 끌어내는 데 실패했다면 지금만큼의 인기는 없었을지 모른다.다들 앞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며 사는 삭막하고 냉랭한 일상에서 이 프로그램은 보통 사람들의 다채로운 생활과 살아온 이야기를 통해 시청자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덥히고 내 삶을 돌아보고 응원하게 만들며, 때로 타인에게 마음을 내줄 여유를 되찾게 한다. 사람들은 왜 그렇게 이야기를 좋아할까? 이야기는 사람을 끌어당기고 집중하게 만드는 힘을 가졌다. 쉽고 흥미롭기 때문이다. 한번 들은 이야기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 중간에 듣다 만 재미있는 이야기는 안달이 날 정도로 뒷이야기가 궁금해진다.고대 유물 같은 골동품의 가치가 천문학적인 건, 희소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 희소성을 뒷받침하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 유물이 얼마나 오래됐느냐보다 그 유물을 어디서 누가 어떤 때 사용했는지가 훨씬 중요하고, 그래서 이야기가 있는 물건은 비싸게 거래된다. 말하고 듣고 읽고 쓰는 모든 행위에서도 스토리의 위력은 변함이 없다. 이 모든 행위가 본능적으로 이야기에 열광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글쓰기도 사실만을 나열하면 독자의 마음을 설득할 수 없다. 설득은 ‘느낌’이 한다. 그런 ‘느낌’을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은 스토리텔링이다.지금은 모든 일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잘 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내가 쓴 글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감성을 자극해야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감성을 자극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이야기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마음으로 들음으로써 감성이 자극되면 공감이 일어난다. 개인이 스토리를 활용하는 방식도 이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나를 홍보하는 자기소개서, 한 장의 기획서를 잘 쓰려면 이처럼 자신과 기획서의 가치를 높여줄 자기만의 스토리 발굴이 필요하다. 나를 관심 갖고 바라보게 하려면 스토리의 힘을 빌리는 것이 확실히 효과적이다. 딱딱하고 건조한 스타일에서 벗어나 말랑말랑하고 촉촉한 감성을 가진 이야기로 풀어가는 방식의 글쓰기는 최종 독자의 마음에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설득력을 높이고 가치를 드높인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다. 잘난 사람이든 그렇지 못한 사람이든 이야기의 색깔은 달라도 이야기의 분량은 있다. 오늘 한번 생각해보자. ‘한끼줍쇼’라는 프로그램에서 내 집 문을 두드린다면 나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그 상상을 통해 정리한 나의 스토리를 차분하게 글로 옮겨보자. 전미옥 중부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경기시론] 열등감과 희망, 미래이력서

우리 모두는 각자 나름대로의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 열등감은 신체적인 것일 수도 있고 정신적인 것일 수도 있다. 당신의 열등감은 무엇인가. 건전한 열등감은 자기성장의 기회를 주지만 병적 열등감은 자신을 초라하게 만든다. 오스트리아의 정신의학자며 심리학자인 아들러는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로, 누구나 어떤 측면에서 열등감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열등감은 자신의 어떤 부분이 남들에 비해 못났다는 것이고, 건전한 열등감은 자신의 못난 부분을 보완하면서 밝은 곳으로 나가려는 동기 유발의 상태를 뜻한다. 병적 열등감은 자신의 못난 부분에 집착하고 그것에 사로잡혀 자기를 괴롭히는 상태를 말한다. 병적 열등감의 결과는 삶의 위축과 불행뿐이다. 열등감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사람은 모두 열등감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라. 이것은 반대로 보면, 너무 열등감에 휩싸이지 말라는 뜻도 된다. 열등감에 휩싸이지 말라. 열등감에 집착하면 희망은 설 곳이 없다. 열등감을 극복하는 첫걸음은 열등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래, 나는 그것이 제일 큰 열등감이다.근데 뭐가 잘못이냐”라는 마음으로 자신을 지켜내야 한다. 그리고 열등감을 극복하겠다는 마음의 의지, 즉 희망을 키워나가야 한다. 그러면 열등감이 별거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자격지심에서 벗어날 수 있다. 희망의 불길이 타오르려면 열등감을 극복하겠다는 정성 어린 마음이 있어야 한다. 정성이란 지금의 자신보다 더 밝아지고 성장하기를 염원하는 마음가짐이다.정성 어린 마음으로 살아가면 어떤 어려움에 처해도 희망이 사라지는 법이 없다.누가 뭐라던, 마음 밖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든, 언제나 희망을 태우며 살아갈 수 있다. 정성은 슬픔이나 역경을 경험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의 불길을 놓지 않는다는 뜻이다. 일찍이 영국의 극작가인 셰익스피어는 “불행한 사람을 치료할 약은 희망밖에 없다”라고 했다. 일본의 불교학자이며 작가인 이케다 다이사쿠는 “모든 것을 잃었다 해도 희망만 남아 있다면, 거기에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희망은 새로운 출발이자 영원한 시작이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이며 의미치료 심리학자였던 프랑클 역시 “살아 있는 것은 고통이다. 그러나 그 고통 속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 곧 살아 있는 것이다. 사람은 미래의 희망을 보아야 살 수 있다”라고 하면서 삶의 의미와 희망적 목표를 찾지 못하면 심리적으로 병적 상태에 있을 수밖에 없음을 강조했다. 따라서 열등감은 희망 속에 녹여낼 수 있다. 사느냐 죽느냐는 육체적인 힘에 달려 있는 것도 아니고 열등감에 달려 있는 것도 아니고, 바로 희망에 달려 있다. 그러니 희망을 가지고 앞으로 전진하라. ‘하면 할 수 있고, 최선을 다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회복하라. 당신의 자아를 믿으라. 자아는 창조적인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열등감을 극복하고 자기완성을 이루려는 성향이 있다. 희망의 미래이력서로 작성해보고 실천해보라. 미래이력서는 내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는 인생의 스케줄을 의미한다. 그 순간부터 뭔가 또 다른 느낌이 다가올 것이다. 그러면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살아갈 수 있고, 내가 내 인생의 희망이 되어 살아갈 수 있다. 열등감은 객관적 조건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나를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느냐의 문제다. 당신은 잘 계획된 희망의 미래이력서를 가지고 있는가. 김청송 경기대학교 청소년학과 교수

[경기시론] 재활용 쓰레기 대란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지난주 필자가 살고 있던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공지문이 하나 붙었다. 재활용 플라스틱 쓰레기를 더 이상 배출하지 못한다는 내용이었다. 주민의 민원을 의식한 듯, 공지문 옆에는 재활용 쓰레기 수거업체의 통보 공문이 함께 붙어 있었다. 집에서 재활용 쓰레기 배출을 담당하고 있는 필자는 이 공지문을 본 순간 꽤 당황했다. 집에 들어가니 필자의 아내도 그 공지를 봤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왔다. 하지만 환경을 전공했고, 환경 분야에서 20여 년 밥을 먹고 살고 있는 본 필자로서도 마땅한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가능한 한 빨리 상황이 변하기를 마음속으로 바라며, 집에 플라스틱 쓰레기를 어디에, 얼마나 더 쌓을 수 있을지 계산하는 정도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상당한 무기력감과 분노가 일어났다.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이 지경이 되었는가. 그리고 이런 상황을 어떻게 불과 며칠 전에 통보할 수 있단 말인가. 다행히도 이 일은 금방 해결(?)되어, 이번주부터는 다시 플라스틱과 비닐을 분리배출 할 수 있게 되었다. 필자의 가정에도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하지만 관련 기사에 따르면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조만간 이 문제는 다시 불거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정부와 지자체가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비닐과 플라스틱을 포함한 모든 재활용 쓰레기를 다시 받는 것으로 결정했지만, 이렇게 모은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서는 방안이 마땅치 않다고 한다. 자칫 애써 모은 재활용 쓰레기가 땅에 그대로 묻히거나 소각될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번 재활용 쓰레기 대란이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보도에 나오는 것처럼, 중국에서 전 세계의 재활용 쓰레기 수입을 막았기 때문일까. 우리나라 재활용 업체들이 영세하기 때문에 이 정도의 변동성을 받아낼 만한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정부의 자원재활용 정책의 실패 때문일까. 이런 것들도 원인이었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일회용품을 너무 많이 또 너무 쉽게 사용해서 수많은 재활용 쓰레기를 배출하는 우리의 삶의 방식에 있는 것 같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일회용품 사용에 대한 경각심을 거의 갖지 않게 되었다. 일회용품을 사용하더라도 분리배출을 잘하면 된다는 일종의 면죄부가 있어서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게 되었다. 우리는 우리가 잘 모르긴 하지만 분리 배출된 쓰레기는 잘 정리되고 처리되어 다시 온전한 제품이 될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실상은 우리의 이런 생각과 다소 거리가 있다. 분리 배출된 재활용 쓰레기는 생각보다 많은 과정을 거쳐야 다시 사용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상당량은 재활용되지 못하고 폐기된다. 또 재활용 쓰레기를 모아서 처리하는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고 인력도 필요하다. 즉 재활용되는 과정에서도 크건 작건 환경에 영향을 주게 되기 때문에 애초에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는 것이 재활용 쓰레기와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렇다고 이번 재활용 쓰레기 대란의 원인을 온전히 개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고, 개인의 행동 변화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은 아니다. 이번 기회에 국가 수준에서 자원재활용 시스템을 다시 정비해야 하며, 이는 매우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 시민들도 정부가 묘책을 내놓을 것이라 기대하며 손 놓고 있기보다는, 보다 책임감 있는 소비생활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내친김에 오늘 아침 출근길에 개인 컵을 챙겨보는 것은 어떨까. 조성화 수원시기후변화체험교육관 관장

[경기시론] 이름 짓기의 양면성

어느새 교정 곳곳에 연한 푸른 기운이 퍼져가고 산수유에 이어 개나리 진달래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죽은 듯 황량하던 풍경이 푸르른 기운과 알록달록한 꽃으로 되살아나는 모습, 특히 죽은 가지처럼 보이던 가지에서 움과 순과 싹이 터오는 기적(奇蹟)을 실감하는 나이가 어느덧 된 모양이다. 그 전에는 보여도 보지 않았고, 설령 본다 한들 기적을 생각해보는 경우는 없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새 봄 새 생명의 탄생에서 설레는 기적이 보인다.그러고 보면 나이를 먹는다는 게, 다시 말해 늙어간다는 게 그렇게 서러워할 일만은 아닌 듯하다. 개나리나 진달래는 알아도 여러 다양한 꽃들을 보며 이름이 궁금해지곤 한다. 나름 시골에서 자랐지만 꽃 이름은 많이 모른다. 김춘수 시인의 ‘꽃’처럼 한낱 몸짓이 의미 충만한 꽃이 되듯, 이름을 알면 그 꽃과의 만남이 더 깊고 넓은 의미의 장에서 벌어질 수 있을까? 그러고 보면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그 대상과 의미 있는 관계의 장에 들어선다는 이야기고, 그런 의미에서 참 소중한 일이다 싶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레이코프)라고 하면 더더욱 코끼리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그것이 이른바 ‘프레이밍(framing)’을 빗댄 비유다. 영화 ‘인셉션(inception)’에서는 상대방의 무의식에 생각의 씨를 심는 일을 ‘인셉션’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면 그 무의식이 자라나 마침내는 그 사람의 행동을 바꾼다. 좋은 프레이밍, 행복한 생각의 씨앗을 심어준다면 나쁠 것 없지 않을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같은 물을 독사가 마시면 독이 되고, 젖소가 마시면 우유가 된다던가? 그렇다면 그릇된 프레이밍과 불행한 생각의 씨앗이 될 수도 있기에 그래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생각을 멋대로 조작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용납되어선 안 된다. 우리도 그런 일을 참 많이 겪었다. 좌파, 좌빨, 용공, 친북, 보수 꼴통, 분단 장사치… 특히 앞에 있는 쪽의 말들은 입에서 나오는 순간 그 대상은 프레이밍에 갇히고 심지어는 옥에도 갇히고 마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그리고 그 영향력은 아직도 제대로 가시지 않았다. 일례로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 이른바 ‘지공거사(地空居士)’도 저 부당한 이름 짓기와 프레이밍의 하나다. 그 이유를 꼽아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무임손실’이라는 말은 개념적으로 성립되지 않는 말이다. 회계에 애초 들어 있지도 않은 것을, 노인승객 수로 운임 곱해보면 3천 몇 백 억이 되니까, 그만큼 손실이라는 식일 뿐이다. 둘째, 복지제도를 비용과 손실의 측면에서만 바라본 결과다. 셋째, 게다가 노인들에 대한 인상마저 더 부정적으로 만드는 일이다. 실제 보지도 않은 손실을 노인 탓을 하여 사회적, 세대적 갈등을 만들면서까지 조금이라도 더 이익을 보려는 술수라고 비난받을 수도 있다. 봄에 꽃을 보며 그 이름을 생각하다가, 이름 짓기의 폭력성에 이어 교통복지와 지공거사 문제로 새고 말았다. 그리고 나조차 이미 프레임에 갇혀버려 쓰지 않아야 할 저 이름을 두 번이나 부르고 말았다. 부르면 부를수록 독이 되는 이름이 있는가 하면, 이름을 부르는 순간 의미의 만남이 되어 서로 의미를 주고받게 하는 이름도 있다. 우리 스스로 의미를 주는 이름을 짓고 부르는 노력, 그리고 독을 퍼트리는 이름을 짓지 말고 있더라도 부르지 않는 노력 밖에 내겐 달리 길이 보이지 않는다. 김근홍 강남대 교수·한국노년학회 회장

[경기시론] 고독과 외로움, 인생 선택

고독이란 무엇인가? 고독은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외롭고 쓸쓸한 마음 상태를 말한다. 고독의 사전적 의미는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 관계, 연락 없이 홀로된 상태’를 의미하지만, 그 역도 성립한다. 즉, 다른 사람들과 긴밀한 관계를 주고받아도 고독을 느낄 수 있다. 군중 속에 고독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이 말은 인간관계로부터 속박을 받지 않고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함축된 의미가 들어 있다. 외로움이란 무엇인가. 외로움은 내가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함에도 불구하고 일종에 거절당한 소외를 의미한다. 소외란 개인이 그가 속해 있는 사회와의 관계에서 통합되지 못하거나 거리가 있는 상태를 뜻한다.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게 되면 그것을 사회라고 한다. 고독과 외로움은 스스로 만들어내는 측면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인간관계의 파동이 그 핵심 물줄기다. 즉, 인간관계의 파동을 이겨내지 못하고, 거기에 치여서 다른 사람이 나를 필요로 해도 응답하지 않는 것이 고독이요, 내가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해도 그가 나에게 응답하지 않게 되면 그것이 외로움이다. 고독은 자발적인 자기 소외를, 외로움은 비자발적인 자기 소외와 관련되어 있다. 고독과 외로움은 힘든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그것은 삶의 의미를 찾는 것에 있다. 육체적 고통보다 훨씬 더 괴로운 것은 인생을 헛되이 보내고 있다는 것, 즉 아무런 목적 없이 살고 있으며, 그래서 인생이 무의미한 것으로 느껴지는 정신적 고통이다. 이것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삶의 의미를 찾아야만 한다.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는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나온 자신의 얼룩진 삶을 회고하면서 인생을 낭비했고 망쳤다는 회환에 묻힐 것이다. 남는 것은 고독과 외로움뿐이다. 1964년 노벨상을 수상한 프랑스의 철학자 사르트르(J. P. Sartre, 1907∼1990)는 “인생은 출생과 죽음 사이에서 선택이다”라고 했다. 인생은 죽을 때까지 선택의 연속이다. 어떻게 죽을 것인지도 하나의 선택이다. 가장 현명한 사람은 선택을 잘하는 사람이다. 주위를 한 번 살펴보라.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람들이 그 얼마나 많은가. 선택하라. 인생을 되는대로 살 것인가, 아니면 가슴 뛰고 마음 설레는 삶을 살 것인가. 응답하라. 현명한 선택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겠다고. 자신의 길을 발견하라. 삶이란 끊임없는 도전이며, 그 도전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실천하라. 실천은 정성어린 마음에서 비롯된다. 정성 어린 마음은 삶의 의미와 희망을 사라지지 않게 한다. 삶의 의미와 희망이 없으면 마음은 위축되고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반대로 삶의 의미와 희망이 있으면 어떤 어려움도 어려움이라고 할 수 없다. 인생은 수많은 순간들과 선택들의 총합이다. 오늘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바로 나에게 달려있고, 그 선택에 따라 나의 인생도 달라진다. 모든 변화는 올바른 선택에서부터 시작되고, 선택하면 이루어진다. 진심으로 선택하고, 포기하지 않고 실천하면, 자신이 선택한 인생에 한 걸음씩 가까워질 수 있다. 다시 시작하기에 늦은 인생은 없다. 인간관계의 파동도, 고독과 외로움도 삶의 의미와 희망 속에 녹여낼 수 있다. 당신은 오늘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가. 하루하루의 선택들이 모아져서 훗날의 행ㆍ불행을 가름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특히, 중요한 의사결정을 요하는 선택은 당신의 미래를 결정하고, 운명을 결정한다. 후회를 줄이는 삶은 선택을 잘 하는 삶이다. 또한 선택을 했다면 책임을 져야 한다. 책임 전가는 고독과 외로움의 상처만 남길 뿐이다. 김청송 경기대학교 청소년학과 교수

[경기시론] 인간 이외의 종들이 미투 운동에 합류한다면

요즘 전 세계적으로 미투(me too) 운동이 한창이다. 우리나라도 오랜 기간 암묵적으로 자행되던 성폭력 사건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고, 많은 가해자들이 심판대 위에 서고 있다. 본 필자도 개인적으로 미투 운동을 지지하며, 이번 기회에 우리 사회가 더 진보할 수 있길 바란다. 미투 운동을 통해 밝혀지는 사건들 중에서 우리를 특히 더 화나게 하는 경우는, 사건에 권력이 개입된 경우다. 권력을 갖고 있는 강자가 그렇지 못한 약자를 대상으로 성적 폭력을 행사했을 때 우리는 더 크게 분노한다. 권력이 피해자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침해했을 뿐 아니라 그 상황에서 피해자는 어떤 해결 방안도 찾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만약에 우리 인간 이외의 종에게도 미투 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도로변 나무, 하천 속 물고기, 하늘의 새는 누구를 가해자로 지목하며 미투 운동을 벌이게 될까. 답은 너무나 분명하다. 우리 인간이 가해자로 지목될 것이다. 우리 인간은 인간 이외의 종에 대해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은 그들을 대할 때 우월한 지위와 권력을 십분 활용한다. 우리가 그렇게 해도 되는 이유는 인간이 다른 종에 비해 더 똑똑하고, 합리적이며, 뛰어난 존재라고 믿기 때문이다. 인간이 더 뛰어난 종이기 때문에 그렇지 못한 종은 당연히 마음대로 할 수 있고 다른 종들은 이 강제적인 관계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이런 모습은 요즘 미투 운동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와 매우 유사하다. 인간 이외의 종에게 권리를 줘 보자는 말이 다소 황당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인권이라는 말도 있으니, 권리는 우리 인간에게만 주어진 것이라고 믿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역사를 돌이켜 보면 모든 인간에게 권리가 있다는 생각도 극히 최근에 정립된 것이다. 오히려 상당기간 동안 권리는 인간 중에서도 극히 일부에게만 주어졌다. 인류 역사의 상당 기간 동안 여성은 차별받았고, 유색 인종은 노예 생활을 했다. 국가와 사회에 절대 넘을 수 없는 신분이 존재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지금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정당한 권리를 갖도록 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이제 우리는 시야를 조금 더 확장할 시점에 있다. 권력에 의한 인간 내부적인 차별뿐 아니라 인간과 다른 종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하는 것이다. 우리 인간에게는 다른 종과 지구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 그리고 인간이 권력을 갖고 다른 종을 해치거나 지구를 파괴하는 행위는 정의롭지 못하다. 또한 요즘은 인간이 지금까지 행한 행동들이 다른 종이나 환경뿐 아니라 인간 자신에게도 심각한 위기가 되어 돌아오고 있다. 다행히도 아직까지 다른 종들이 미투 운동에 가담하지 않았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우리의 관점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 보는 것은 어떨까. 조성화 수원시기후변화체험교육관 관장

[경기시론] 좋은 죽음과 좋은 삶을 위한 인식변화

축복 속에 온 이 세상길, 마지막 순간에도 축복 속에 떠나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누구나 한번은 겪는 마지막 순간의 죽음을 어떻게 준비해야 축복 속의 떠남, 곧 좋은 죽음이 될 수 있을까? 흔히 죽음을 의식한다고 하지만 나를 보더라도 그 의식은 그다지 절실하지 않았던 것 같다. 병원에 누워있을 때 잠시 절실하기도 했고, 주변 사람들에게 좀 더 친절하고, 신앙심도 더 키우며 살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러나 불과 몇 달 지나지 않아서 내 뇌리에서 죽음은 사라지고, 내 생활은 도로 그 전과 마찬가지다.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보면 그런 속성은 비단 나만의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듯하다. 일리치가 죽었다고 부음(訃音)을 받은 사람들이 그의 장례식에서 하는 생각이란 게 누가 그의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 하는 것일 뿐, 자기도 언젠가 죽게 되리라든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든가 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일리치 자신도 그렇게 살아왔다. 적당히 순수하고, 적당히 타산적이고, 적당히 도덕적이며 적당히 방탕한 삶, 판사가 돼 적당히 인맥을 쌓고 적당히 돈을 모아 적당한 여자와 결혼해 외관상 별 탈 없는 가정을 꾸리며 승진도 하는, 한마디로 꽤 괜찮아 보이는 인생을 살았다. 그러나 평생 아무도 진정 사랑하지 않았고, 아내와 자식들에게조차 진정한 사랑을 준 적이 없었다. 그러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고통에 울부짖으며, 아무도 자기를 동정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심적으로 고통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도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는 깨달음이 고통을 더 키운다. 그러나 톨스토이는 그래도 일리치를 구원한다. 마지막 한 시간을 남겨두고 무관심을 넘어 냉담하게 밀쳐냈던 아들이 다가와 손에 입 맞추며 흘린 눈물이 피부에 닿는 순간 폐부 깊숙한 뉘우침이 일었다. 그러면서 스스로의 잘못된 삶과도 마침내 화해하며, 죽음의 고통이나 두려움이 아니라 환한 빛을 본다. 나는 과연 일리치처럼 죽음의 순간에 빛을 볼 수 있을까? 아니, 그에 앞서 나의 하루하루는 일리치의 ‘적당히 괜찮은’ 생활과 다를까? 아직 기회가 있을 때 하루하루를 좀 더 의미 있고 더 사랑하며 산다면 굳이 죽음의 순간에서야 빛을 보는 게 아니라 죽음조차도 두렵지 않은 인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좋은 죽음은 그러니까 죽음을 당겨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더 잘 살고 난 끝에 맞이하는 죽음일 것이다. 그리고 좋은 삶이란 또 죽음을 당겨 생각하며 하루하루가 마지막일 수 있다는 마음으로 정성껏, 지성으로 사는 삶이 아닐까. 그렇다면 죽음에 대해 침묵하고 금기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겠다. 오히려 밥상머리부터 죽음에 대해 편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인식변화가 필요하다. 죽음을 미리 상상하고 구체적으로 생각하면서 준비할 수 있는 지적능력을 소유한 존재는 아마도 인간밖에 없을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내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에 대해 미리 생각하고 주변인들과 의견을 교환한다는 것은 인간만이 가진 특권이다. 따라서 우리가 죽음에 대해 침묵하는 문화를 바꿔 죽어가는 순간, 곧 임종의 순간마저 삶의 질에 포함시킨다면 떠나는 길이 그저 고통과 슬픔과 두려움만은 아닐 것이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도록 얼마 전 시행된 연명의료결정법이 아직은 시행 초기단계라 문제점이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법이 너무 엄격하다보니 관련자들이 ‘엮이기’를 꺼리는 것이 가장 두드러진다. 선진국처럼 규칙을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꾸는 선행 작업이 있고서야 법의 취지를 살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기에 죽음에 대한 인식, 죽음 문화에 대한 변화도 필요하다. 김근홍 강남대 교수·한국노년학회장

[경기시론] 경기도 연정의 성과와 한계

경기도 연정의 종료 시점이 다가왔다. 일부 언론에서는 ‘파국’, ‘파기’, ‘졸혼’ 등의 표현으로 마치 연정이 파탄난 것처럼 보도하고 있으나 사실과는 다르다. 연정의 공식 종료 시점은 연정 계약 주체들의 임기가 끝나는 올해 6월이다.아직까지 연정 계약 자체를 파기할만한 중대한 사정 변경은 없다. 다만, 반드시 필요한 마무리 평가작업을 위해 종료 수순을 밟는 것이다. 경기도 제3연정위원장으로서 연정의 성과와 한계를 짚어 본다. 먼저, 경기도 연정의 시작 배경에 인식의 오해가 있다. 2014년 6·4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남경필 후보는 새정치민주연합 김진표 후보에 0.87% 차이로 신승했다. 경기도의회는 새누리당 50석(39%), 새정치민주연합 78석(61%)으로 여소야대가 됐다.남지사로서는 안정적인 도정 운영과 정치적인 수세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연정을 제안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나 역시 그렇게 알고 있었으나 남지사는 새누리당 후보로 공천되는 날 이미 연정을 공약으로 제시했다가 정확한 팩트다. 선거결과가 여대야소로 나왔어도 남지사가 연정을 했겠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그거야 남지사만이 알 일이다. 경기도 지방장관제를 박근혜정부가 가로막고 나선 점은 여전히 유감이다. 2016년 5월 나는 남지사에게 무보수 명예직 지방장관제를 제안했다. 연정협약 과제의 이행을 점검·관리하여 연정의 정치·행정적 책임성을 보장하는 필수 장치로 의원이 집행부에 참여하여 관련 부서를 통할하는 의원 내각제 실험을 본격적으로 하자는 취지였다.당시 박근혜정부는 정부 혁신 방안과 법정계획인 지방자치발전종합계획에서 지방자치단체의 기관구성 형태를 획일적인 기관대립형에서 의원내각형 등 통합형 모델로 다양화하기 위해 지방조직 제도개선을 하겠다는 계획을 스스로 수립해 놓고 있었다. 그런데도 행자부는 막상 경기도가 지방장관제를 하려 하자 ‘지방장관’이라는 명칭까지도 사용을 반대하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 어쩔 수 없이 연정위원장이라는 명칭으로 대체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지방의원내각제 실험을 할 수 있었다. 실제 연정위원장은 경기도의회 소속이 아니라 경기도지사가 임명장을 받아 도지사 보좌기관으로서 집행부의 역할을 수행했다.도지사 주재 도정점검회의에 참석해 부지사 및 실국장과 주요 도정 현안과 업무를 논의하고, 수시로 소관 연정과제의 이행을 점검하고 관리했다. 의원의 기본 책무와 역할이 견제와 감시로 한정될 수밖에 없는 의회 대 집행부간 대립형 기관구성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값진 경험이다. 다만, 법제의 미비로 연정위원장의 업무 결재권이 없어 정책 목표의 달성 및 수행에 간접적으로 기여할 뿐 정책에 대한 최종적인 책임을 질 수 없는 점은 한계로 남는다. 또한, 의석수 과반이 넘는 다수 야당이 연정에 참여함으로써 초래되는 투표민의의 왜곡과 야당 없는 의회의 출현의 문제, 집행부 고유의 예산 편성권을 의회협력예산이라는 이름으로 의회에 위임하여 의회가 스스로 편성하고 심의·의결한 913억 원의 ‘셀프 예산’, 의회에서 증액한 452개 사업 2천600억여 원의 예산에 대한 집행부의 무더기 부동의 사태 등은 문제로 남는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도 연정은 권력독점, 승자독식, 극한대립과 충돌이 일상화된 정치풍토에서 상생과 통합, 협력의 정치로 전환하는 정치실험이었다는 평가에서 별다른 이론이 없을 것이다. 생활임금제, 공공기관장 인사청문회, 반값 또는 무상교복 시행, 공공임대상가제 등 실질적인 정책성과도 적지 않다. 오는 6·13 지방선거에서 경기도민은 어떤 평가를 하고 투표로 심판할까. 시험지를 낸 수험생의 심정으로 채점 결과를 기대해 본다. 양근서 경기도의원

[경기시론] 출생의 비밀과 인생 경로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세상에 태어난다. 어찌 되었든 내가 태어난 것은 부모의 결실 때문이다. 부모 없이 태어난 사람이 어디 있으랴? 당신은 부모가 원해서 태어났는가? 대부분의 아이들은 부모가 원해서 태어난다. 이를 원했던 아이(wanted baby)라고 한다. 그러나 부모가 원치도 않았는데 임신해서 어쩔 수 없이 태어나는 아이들도 많이 있다. 이를 원하지 않았던 아이(unwanted baby)라고 한다.부모와 자녀 간의 사랑은 애착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애착은 부모가 임신한 사실을 안 순간부터 싹트기 시작한다. 뱃속의 아이가 원하는 임신이었을 경우, 그 아이는 태내에서부터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자라서 부모와의 안정 애착을 잘 형성해나갈 수 있다. 그러나 자기 뱃속에 든 아이가 원하지 않는 아이라면, 아이를 향한 어머니의 마음은 사랑스러울 리가 없다. 이런 아이는 애초부터 부모와의 원만한 애착형성이 어려울 것이다. 당신은 부모가 원했던 아이였는가? 원하지 않았는데 태어난 아이였는가? 당신은 출생의 비밀, 출생의 진실을 정확히 알고 있는가? 많은 경우 심리상담 장면에서는 과거력 조사를 통해 내담자의 출생 비밀을 확인하고자 한다. 그래야만 그의 인생발달 경로를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10대 미혼모의 아이는 부모가 원해서 태어난 것인가? 입양아는 부모가 원해서 태어났는가? 원치도 않았는데 임신을 한 어머니는 죄책감, 부정, 분노로 반응하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아이를 거부하고자 한다.임신을 시킨 아버지는 나 몰라라 하고, 출생 후에도 어머니와 아이를 회피하고, 자신의 능력에 대해 회의감을 품게 된다. 원치도 않았는데 이렇게 태어난 아이들은 이후의 발달경로에서 학대와 방임의 희생자가 되기 쉽고, 쓰라린 인생 여정을 걷게 된다. 특히, 가난과 궁핍은 이들에게 쓰라린 고통을 더욱 가중시키는 촉매 역할을 한다. 부모도 행동유전학의 희생자다. 부모 역시 어린 시절의 학대와 방임, 거부적이고 무책임한 부모의 양육, 부모의 이혼이나 별거로 인한 한부모 양육 또는 위탁양육, 열악한 생활조건과 낮은 자존감, 그리고 가정폭력의 희생자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세대 간의 대물림, 즉 악순환을 어떻게 예방하고 차단할 것인가? 사람에 따라 인생 경로에 대한 적응패턴은 크게 5가지로 나타난다. 첫째는 안정된 적응이다. 이들은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지속적으로 양호한 적응을 나타내는 유형이다. 즉, 밝은 곳에서 밝은 곳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이다. 둘째는 지속적인 부적응이다. 이들은 자신을 항상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만성적인 어떤 문제들에 시달리는 유형이다.즉, 어두운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이다. 셋째는 일시적인 부적응이다. 이들은 중심을 잃고 어떤 유혹에 빠져 부적응이 초래되지만 다시 적응패턴으로 복원되는 유형이다. 즉,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갔지만 다시 밝은 곳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이다. 네 번째는 적응의 쇠퇴다. 이들은 지금까지 잘 적응해오던 패턴이 어떤 역경이 초래됐을 때 그것에 치여서 적응이 퇴조하는 유형이다. 즉,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이다. 마지막 다섯 번째는 부적응의 반전이다. 이들은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어떤 대오각성을 통해 부적응의 사슬을 끊고 긍정적 결과로 변모하는 유형이다. 즉,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당신의 출생 비밀은 어떠한가? 인생 경로에 대한 적응패턴은 어떠한가? 김청송 경기대 청소년학과 교수

[경기시론] 저탄소, 그린, 지속가능한 평창 동계올림픽

성화가 타올랐다. 성화가 먼 그리스에서 시작해 우리나라 곳곳을 누비고,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점화될 때의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다(성화는 본 필자의 이름이기도 해서 감회가 더 남달랐다). 이번 동계올림픽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의미를 주고 있다. 시간적으로 서울 올림픽 이후 30년 만에 치러지는 올림픽이고, 공간적으로 남과 북이 평화의 물고를 트는 계기가 되고 있으며, 기술적으로 IT 강국으로서 우리나라의 기술력을 전 세계에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평창 동계올림픽이 이러한 의미 이외에 ‘저탄소, 그린, 지속가능한 올림픽’을 천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 하다. 사실 올림픽은 환경적인 측면에서 보면 최악의 이벤트다. 단 몇 주간 진행되는 올림픽을 치르기 위해 수 년 동안 엄청난 자원과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연환경이 훼손되고, 대량의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올림픽이 끝난 후에는 이러한 시설들이 잘 활용되지 못하고 방치되는 등 또 다른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짧은 기간의 스포츠 행사를 치르기 위한 대가치고는 결코 작지 않은 문제들이다. 이렇게 올림픽이 환경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부각되자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는 올림픽헌장을 수정해서 2000년부터 올림픽을 유치하려는 모든 도시는 반드시 환경보호계획을 제출하도록 의무화하였다. 이에 따라 평창 동계올림픽 역시 탄소를 적게 배출하고, 친환경적인 올림픽으로 기획되었다. 우선 올림픽 전 과정에서 배출될 것으로 예상되는 온실가스(약 159만t) 전량을 감축 및 상쇄할 계획을 수립하였다. 또 기존 시설물을 최대한 활용하여 자원과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알파인 스키 경기장을 신설한 가리왕산의 경우 올림픽이 끝난 이후 모든 시설을 철거하고 다시 원래 모습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올림픽의 지속가능한 운영을 위해 민관협력 거버넌스를 구축하였다. 물론 이런 계획들이 실제로 충실하게 이행되는지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사후 평가가 엄격하게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평가가 잘 진행되기 위해서는 우리 국민들이 평창 동계올림픽의 친환경적인 운영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아쉽게도 평창 동계올림픽이 친환경 올림픽으로 기획되어 운영 중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다. IT 강국으로서의 한국, 남북 대화와 평화의 장, 스포츠 강국으로서의 한국을 알리는 것 못지않게 환경친화적이고 지속가능한 올림픽을 위해 노력하는 한국의 모습을 알리는 것은 매우 중요해 보인다. 약 2주 후 올림픽이 끝났을 때, 우리 선수단이 목표로 하고 있는 종합 4위를 달성했길 희망하며, 평창 동계올림픽이 친환경 올림픽의 대표적인 사례로 후대에도 회자될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란다. 조성화 수원시기후변화체험교육관 관장

[경기시론] 죽음 복지에 대한 짧은 생각

‘연명의료결정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지난해 병원 신세를 좀 지면서 지금까지 떠오르지 않았던, 혹은 떠올리지 못했던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바로 죽음이다. 아버님 먼저 보내드리면서도 그리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스스로 생각을 막은 것인지, 용량이 형편없는 지각능력 탓에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것인지는 지금 생각해보아도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치매에 대한 책을 집필하면서 잠시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았던 시간이 있었다. 치매에 걸린 아내와 함께 손 꼭 붙들고 연탄가스의 힘을 빌려 죽음을 억지로 부른 장면이 아직도 인상에 깊이 남아 있다. 그렇지만 그때까지도 연구의 대상 혹은 치매와 연결시켜 따져 보아야 할 사안이었을 뿐, 구체적인 일로 다가오지 않았다. 나는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려는가? 죽음을 맞을 각오는 되어 있는가? 죽음 뒤에는 어떻게 될까? 생각해보면 우리의 문화와 가치관이 더 큰 원인이 아닐까 싶다. 어려서 할아버지나 할머니는 집안에서 임종하셨다. 최근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집에서 임종을 맞이하고 싶은 바람이 60% 정도지만 실제로는 75%가 병원 등 의료기관에서 임종을 맞이한다. 어려서 처량한 만가(挽歌) 소리 울려 퍼지고 흰 깃발들 나부끼는 가운데 상여 나가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보곤 했다. 모르긴 해도 나 역시 병원이나 요양원에서 죽음을 맞을 공산이 크다. 우선은 자식이며 주변 사람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그러고 싶은가? 죽음에 대해 생각해본 일이 드문 만큼 이런 생각 역시 생경하기만 하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연명치료의 문제도 내 문제로 다가왔다. 내 죽음이 가족들이며 주변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 있는가? 전혀 아닌 것 같다. 한 마디로 준비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유언장도 없고, 연명치료나 장례 절차 등에 대해서도 책에서는 준비해야 한다고 썼으면서 정작 준비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면 찾아올 죽음을 어떻게 맞고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먼저 자서전이라도 쓰듯 내 인생을 찬찬히 돌이켜 보며 씻어야 할 흔적과 바로잡아야 할 일들을 찾아서 처리해야 하겠다. 그러면서 하루하루를 언제 찾아올지 모를 손님 기다리듯 정리하며 살아가야 하겠다. 유럽의 경우 중세부터 죽음은 서양화 속에 자주 등장한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즉 죽음을 생각하라, 기억하라는 정신과 이어진다. 그것은 인생의 허무, 죽음의 비극을 떠올리자는 게 아니라 언제 죽을지 모를 인생이니 그만큼 더 알차게 살자는 태도로 해석된다. 그럴듯하다. 우리 조부모 세대만 해도, 아니 부모님 세대까지만 해도 수의며 묏자리를 준비하는 것이 전혀 낯선 일이 아니었다.그런데 지금의 사회 분위기에서는 느닷없이 죽음을 맞아 경황없이 떠나버리는 것이 더 일상이 된 것 같다. 그렇지만 그런 인생 마무리는 아무래도 스스로의 인생을 더 하찮게 만드는 동시에 주변 사람들에게 짐이며 허물을 남기는 일이다. 죽음을 터부시하기만 한다면 개인들이 그런 준비가 쉽지 않다. 결국 제도와 문화 차원에서도 죽음 또는 임종의 복지는 중요하다. 인생의 마무리와 임종에 복지의 혜택이 미쳐 저마다 아름다운 마무리를 할 수 있다면, 그것은 개인 차원의 복이요, 사회와 공동체의 건강에도 큰 덕이 된다. 김근홍 강남대 교수·한국노년학회장

[경기시론] 4인 선거구제, 경기도의회가 결자해지해야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분권형 개헌과 함께 중요한 이슈가 또 하나 있다. 바로 2인 선거구로 쪼개졌던 기초의원 선거구를 4인으로 다시 늘리는 문제다.박원순과 이재명 등 유력 광역단체장 후보들이 나서고 있고, 시민사회 요구도 거세지는 등 여론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2인 선거구제가 거대 양당만의 독점 체제를 강화시켜 정치 신인과 개혁적인 군소정당의 의회 진입을 가로막아 왔다는 점에서 개선이 시급하다. 지난 2005년 8월 통과된 개정선거법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기초의회 소선거구제를 2~4인 중선거구제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당시 입법 취지대로라면 당연히 4인 선거구 비중이 꽤 컸을 법 한데 어찌된 영문인지 영 딴판이 돼버렸다.현재 경기도 기초의원 선거구는 모두 155개로 2인 선거구는 91개, 3인 선거구는 62개다. 이 중 4인 선거구는 평택과 화성에 각 1개씩 고작 2개에 불과해 사실상 전무하다. 도대체 무슨 꿍꿍이가 있었던 것일까. 시간을 거슬러 2005년 12월19일 경기도의회 자치행정위원회로 돌아가 보자. -위원장 김부회 : 경기도 시·군의회의원 선거구와 선거구별 의원정수 조례 전부개정조례안을 상정합니다. -임정복 위원 : 현재 지역구 수는 139개, 그 중 2인은 62개, 3인은 68개, 4인 선거구는 9개인데 왜 유독 4인 선거구를 9개로 규정을 해야 되는지 설명 바랍니다. -자치행정국장 최태열 : 우리 도의 기본적인 입장은 풀뿌리 민주주의나 생활정치를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것은 선거구가 법률이 정한 가장 기초적인 단일선거구로 분할돼야 한다는 것이 저희들 입장입니다. 도의 기본적인 입장은 4인 선거구는 분할돼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위원장 김부회 : 10분간 정회를 선포합니다. (정회 후)성원이 되었으므로 회의를 속개하겠습니다. 수정안이 발의됐습니다. 제안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임정복 의원 : 본 위원을 비롯해서 심규송 위원, 양태흥 위원, 고오환 위원, 정홍자 위원 등 5인이 발의한 수정동의안에 대해서 제안설명을 드리겠습니다. 4인 선거구 31개 시·군 중 22개 선거구는 2인 선거구로 분할한 반면 7개 시·군의 9개 선거구는 분할하지 않았다는 점에 문제가 있습니다.대부분의 4인 선거구를 2인 선거구로 분할하면서 9개 선거구만 단일선거구로 확정된 것은 분할선거구의 형평성 등의 측면에서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생각됩니다. 또한 이미 서울시와 인천시에서도 4인 선거구를 2인 선거구로 모두 분할했다는 점을 감안해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따라서 본 위원을 비롯한 5인의 발의자는 성남시 사선거구 등 9개 선거구를 각 2인 선거구로 분할 조정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당시 김문수지사 집행부와 한나라당 의원들이 발의한 이 수정안은 상임위를 통과한 후 이틀 뒤 본회의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했다. 결국 당초 31개이던 4인 선거구 가운데 22개를 2인 선거구로 분할한데 이어 남은 9개마저 모두 다시 쪼개 없애 버린 것이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2인 선거구로 치러진 다음해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은 압승을 거뒀다. 양당 구조의 한 축인 열린 우리당 역시 최대 수혜자였다. ‘4인 선거구 전멸’의 전모를 들여다보면 양당 독점구조가 왜 기득권 카르텔이 될 수밖에 없는지 드러난다. 지금이라도 2인 선거구들을 모아 다시 4인 선거구로 획정하는 것은 경기도의회의 입법권능 안에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경기도 연정도 끝나가는 마당에 최소한 결자해지는 하고 떠나야 하지 않을까. 연정 실험에 열심이었던 경기도의회 선배, 동료의원들께 제언해 본다. 양근서 경기도의원

[경기시론] 분노와 용서의 심리

당신은 평소 짜증이 많이 나는가? 화를 자주 내는가? 아니면 짜증나고 화가 나도 그것을 참고 사는가? 짜증나고 화가 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그것은 자신이 생각한 머릿속의 기대가 어긋났을 때 치밀어 오르는 실망과 좌절의 표현으로, 흔히 분노감과 연결되어 있다. 분노표현 방식은 사람에 따라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 분노억제다. 분노억제는 화가 나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속으로 삭이는 것이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화병이 생기고 몸과 마음이 망가진다. 둘째, 분노표출이다. 분노표출은 분노유발 대상에게 직간접적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다. 심하면 타인과 자신을 손상시키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셋째, 분노조절이다. 분노조절은 빨리 냉정을 유지하고 분노감을 진정시켜서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분노감정은 일차적으로 인간관계에서 발생한다. 상대가 내 머릿속의 기대대로 따라주지 않을 때, 반대로 내가 상대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을 때 발생한다. 분노의 결과는 오직 상처뿐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남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상처를 입기도 한다. 상처의 괴로움과 불행을 어떻게 차단할 것인가? 그것은 진정한 용서뿐이다. 용서의 사전적 의미는 ‘지은 죄나 잘못을 벌하거나 꾸짖지 않고 덮어주는 것’이다. 용서를 한자로 나타내면, 容恕인데 이는 얼굴 ‘용’, 용서할 ‘서’다. 특히 恕라는 글자에는 ‘헤아려 동정하다’라는 뜻이 담겨 있다. 용서는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살다보면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상대에게 받은 상처와 배신감이 깊어서 생각할 때마다 몸과 마음이 떨리는 순간들도 있다. 머리로는 용서하고 싶어도, 가슴은 거부하는 것이다. 그래서 용서는 가짜용서와 진짜용서가 있다. 머리로는 용서했지만 가슴은 아닌 경우가 가짜용서다. 가슴으로 용서하고 마음속에 따뜻한 이해심이 들어 있는 경우가 진짜용서다. 따뜻한 이해심은 자비로운 마음의 필수조건이다. 진짜용서는 상처를 치유하는 확실한 지름길이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그대에게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있거든, 그가 누구이든 그것을 잊어버리고 용서하라. 그때 그대는 용서한다는 행복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진짜용서는 반복되는 고통을 되풀이하지 않게 하는 힘이 있다. 복수의 유혹은 매우 강렬하며 그 열매는 마약처럼 달콤하다. 그러나 아무리 복수를 해도 남는 것은 피폐함밖에 없다. 왜냐면 복수가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소득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진짜용서야말로 가장 고귀하고 아름다운 사랑이다. 그 보답으로, 말로는 다할 수 없는 평화와 행복을 얻게 될 것이다. 진짜용서는 자비로운 마음에서 일어나고, 따뜻한 사랑에서 비롯되며, 어진 마음에서 머물며, 참지 못하는 것을 돌이켜 나를 내려놓게 하는 힘이 있다. 진짜용서가 어렵다면, 욕망의 수준을 한 번 낮추어보라. 그것만으로도 진짜용서를 해야 할 일이 줄어들 수 있다. 김청송 경기대학교 청소년학과 교수

[경기시론] 가상화폐 신드롬이 말해주는 것

가상화폐가 열풍이다. 시민들, 특히 젊은 세대들은 가상화폐를 인생 역전의 기회로 생각하는 것 같다. 정부는 이를 투기성 도박에 비유하며 근절을 위해 다양한 정책들을 펴고 있다. 필자는 가상화폐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가상화폐의 문제점이나 가치, 블록체인 기술의 향후 전망 따위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제4차 산업혁명과 우리나라 경제 발전 같은 것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다만, 이번 가상화폐 신드롬으로 우리의 삶이 빠르게 가상의 공간으로 넘어갈 것이라는 것은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삶이 가상의 공간으로 대체된다는 것이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은 무엇일까? 혹시 오래전에 꽤 유명했던 ‘매트릭스’라는 영화를 기억하는가? 주인공이었던 키아누 리브스가 검은 옷을 입고, 선글라스를 끼고 총알을 마구 피하던 그 영화 말이다.영화의 배경은 자연환경이 극도로 파괴된 지구에서 인간들이 기계의 관리(?)를 받으며 평생을 캡슐에 누워 살아가는 것으로 그려진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기계가 설정해 놓은 가상의 공간을 살아가고, 자신들이 가상의 삶을 산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며 살고 죽는다. 몇몇 주인공들이 이런 상태를 깨닫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인공지능과 사투를 벌인다는 것이 영화의 주요한 내용이다. 영화 매트릭스에서처럼 우리에게 가상의 공간이 중요한 무대가 되면 여러 가지 변화가 생길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중에서도 자연환경의 극심한 훼손은 많은 전문가가 예측하는 변화 중 하나다. 그도 그럴 것이 가상의 공간에서 모든 삶이 가능해진다면 실제 자연환경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인간이 생물학적인 몸을 버리고, 신과 같은 존재가 되지 않는 한 우리는 자연환경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데 있다. 즉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도 자연환경과 분리될 수 없으며, 자연환경과 우리를 분리하려고 하면 할수록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미 ‘도시’로 대변되는 인공 환경을 만들고 자연과 우리의 삶을 최대한 분리시키는 방식으로 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정수기 물과 공기청정기를 거친 공기를 마시며, 제습기와 가습기로 습도를 맞춘다. 또 온풍기와 에어컨으로 온도를 조절하며 야외에서 마스크를 통해 호흡한다. 어떻게든 자연과 분리되려는 삶의 방식들이다. 이런 삶의 결과는 어떠한가? 구태여 본 지면을 할애하지 않아도 우리는 그 결과들을 힘겹게 몸소 겪어 가고 있다. 인류는 점점 더 살기에 극단적인 환경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이 정도인데 만약 우리의 삶이 가상현실로 전환되면서 자연환경을 더 배제시키게 된다면 어떤 결과가 발생할까? 가상화폐든 가상현실이든 제4차 산업혁명이든 다 좋다. 이러한 변화가 큰 흐름이고 우리가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이러한 변화에서 자연환경의 가치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 매트릭스에서처럼 머리 뒤에 큰 호스를 끼우고 죽을 때까지 캡슐에 누워 가상의 공간에서 행복하게(?) 살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조성화 수원시기후변화체험교육관 관장·한국교원대학교 겸임교수

[경기시론] 창업교육의 필요성

오늘날 창업교육은 전 세계 국가가 경쟁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Babson College가 1999년 전 세계 최초로 창업학부를 설립해 창업교육을 실시한 이후 MIT, 스탠포드 대학 등 400개 이상의 학교에서 창업 과목을 정규 교과목으로 채택해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있으며, 창업국가라 칭하는 이스라엘은 테크니언공대를 필두로 대학생들에게 창업가 정신을 가르치고 군대를 창업사관학교로 탈바꿈시켜 세계시장을 겨냥 창업을 하도록 동기부여를 하고 있다. 핀란드는 청년실업 돌파구를 창업에서 찾은 나라로 알토대학을 중심으로 ‘하나의 큰 노키아를 10개의 작고 강한 노키아로’ 슬로건 아래 창업교육을 독려하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아시아의 실리콘밸리를 건설하려는 목표를 위해 초·중·고 대상으로 기업가 정신교육 강화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고, 중국은 2014년 9월 리커창 총리 주도하에 ‘대중의 창업, 만인의 혁신’ 기치 아래 수십조 원의 국가신흥산업 창업투자 인도기금을 조성해 창업자금을 지원하며 대기업 CEO들이 엔젤투자자로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특히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은 2015년 1월 항저우에 창업인재 육성을 위한 창업사관학교 ‘후판(湖畔) 대학’을 설립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출산율 저하와 빠른 고령화 등으로 급격하게 성장 동력이 약화되고 있는 현실에 직면해 있으며, 이러한 현실을 극복해 세계 일류국가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요인으로 창업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 첫째, 개인적 요인이다. 인공지능과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평균 수명이 늘어 100세 시대인 지금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에 취업해서 50대 중반~60대 초반까지 직장에 다니다 퇴직한 이후 노후를 준비하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에 생계형 창업에 내몰리게 되는데 그들이 학창시절 창업교육을 받음으로써 창업실패를 줄일 수 있다. 평생직장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에서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창업가 정신이 투철한 젊은이들에게 국가 및 지자체가 창업 생태계를 조성해 그들에게 기회를 제공해 줄 필요가 있다. 둘째, 사회적 요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기업가에 대한 잘못된 부정적인 인식이 있으며 사회 전반적으로 도전보다는 안정적인 직업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젊은이가 창업을 하고자 할 때 부모의 강력한 반대 주장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적기 때문에 다른 경쟁국가들보다 청년창업가를 찾기가 매우 어려운 현실인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창업교육이 필요하다. 셋째, 경제적 요인이다. 이제 우리나라는 성장 동력이 약화되어 대기업에 의존해서는 해결되지 않는 고용 없는 성장 시대로 진입, 경제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은 한계점에 봉착했다. 미국, 유럽, 이스라엘의 경우 GDP 2만불 시점에서 3만불을 돌파하기 위해 청소년부터 대학생까지 체계적인 기업가정신 및 창업교육 활성화하고 있으며 대학의 경우 ‘기업가정신 및 창업과목’을 정규 교과목으로 편성해 GDP 성장 목표를 달성했다. 우리 민족의 장점인 높은 교육열과 부지런함 및 불굴의 의지와 한 번 하면 끝까지 해내는 특유의 신명나는 정신에 누군가 불을 붙인다면 세계 어느 국가에 절대 뒤지지 않을 것이며 훌륭한 창업가가 배출될 것이다. 그 시작(始作)은 창업교육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도 최근 많은 대학교에서 창업 및 기업가정신 과목을 정규 교과과정으로 편성해 수업하고 있으며, 11개 대학교가 창업대학원을 운영해 국제적인 수준으로 올라가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학생들의 의식이 눈에 띄게 변화하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므로 내실있는 창업교육의 방법이 절실하다. 홍종순 동남보건대학교 총장

[경기시론] 무술년 추구하고 싶은 구도자의 삶

‘무술년’이라고 했지만, 엄밀히 따지면 2월16일이 돼서야 정식 무술년이다. 그 날은 달이 지구와 태양 사이에 위치하는 날(삭)을 기준으로 삼은 음력으로 새해 첫날, 설이다. 전에는 계속 길어지던 밤이 마침내 줄어들기 시작하는 동지를 새해의 첫날로 삼기도 했다. 그에 반해 양력 1월1일은 왜 그 날이 새해 첫 달의 첫 날인지 기준이 좀 막연하다. 서기(西紀)는 예수님이 태어난 해를 기준으로 하려고 했다. 그렇다면 태어나신 날, 즉 12월25일(크리스마스)을 새 시작의 날로 정하는 게 마땅해 보인다. 실제로 영국과 독일, 스위스, 스페인 등에서는 16세기까지 그러기도 하였다. 그리고 1691년 교황 이노첸시오(Innocentius) 12세가 오늘날의 1월1일을 새해 첫날로 정했다. 이유 붙이기 좋아하는 사람들에 따르면 그 날이 예수님이 할례 받으신 날(circumcisio)이다. 아무튼 현재로서는 이슬람교와 불교를 국교로 삼는 나라들과 그 외 몇 나라 빼고는 이 날을 새해의 첫날로 삼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물론 이 날을 공식 첫 날로 삼더라도 아직 전통의 설을 민속 명절로 삼는 나라들도 많다. 우리는 왜 시작을 중시하여 한 주, 한 달, 한 해, 한 세기의 시작에 큰 의미를 둘까? 곰곰 생각하니 예배와 같은 의미가 아닐까 싶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예배란 아무 때고 자주 드리는 게 좋겠지만, 적어도 정해진 하루, 주일만큼은 빠지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와 묶여 있다. 예배의 순간에는 감히 하나님 눈이라고 하진 못하더라도 가능한 나를 벗어나 하나님 향한 눈으로 나를, 지난 한 주를 되돌아본다. 얼마나 오만하며 교만하고 태만하였는지. 그리고 하나님께 그에 대해 회개하고 약속 삼아 다짐한다. 다음 새로 시작되는 주의 월요일부터는 하나님 기준에 좀 더 마땅한 쪽으로 다잡아 살겠다고 말이다.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말이 ‘작심삼일’이다. 사실 주마다, 예배마다 하는 다짐들이 다 이루어졌다면 이미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 공자님도 70이 되어서야 이루었다는 수준, 그러니까 하고 싶은 대로 맘껏 해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수준이 되지 않았을까? 그렇지 못한 현실로 보아 역시 작심삼일은 예사로운 일이었다. 그렇다면 어차피 그럴 바엔 아예 하지 않는 편이 낫지 않느냐? 작심삼일이란 말을 쓰는 사람이 내비치고 싶은 속내이겠다. 그러나 그 작심삼일이 모여 오늘날의 우리가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조차 하지 않았다면 더 형편없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다고 작심삼일을 장려할 마음은 없다. 다만 그런 다짐이 쌓이고 쌓이면 불혹에 지천명 그리고 이순(耳順)의 수준에 이를 수 있지 않을까. 아마 그 정도에 이르면 모든 사람이 다 예수님처럼 보이지 않을까. 인생의 길이 무엇인지 바로 아는 것을 도통(道通)한다고 한다. 산다는 것은 옳은 일을 찾아가려는 부단한 노력의 과정이다. 옳은 길을 정도라고 한다면, 큰 길은 대도라고 한다. 인생의 옳은 길, 큰 길을 바로 걸어간 어른들을 우리는 인생의 스승이라고 일컫는다. 석가나 예수 그리스도가 존경을 받는 이유는 이 분들이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결코 살지 않으셨다는 점이다. 따라서 무술년에는 우리도 구태 한 마음 벗어던지고 바른 길 정도에 길로 구도자(求道者)의 삶을 추구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김근홍 강남대학교 교수·한국노년학회장

[경기시론] 제주자치경찰과 지방분권 개헌 사기극

올 한해 충격적인 경험 중 하나를 꼽으라면 제주자치경찰단의 일이다. 동료의원들과 분권형 개헌안을 준비하기 위해 제주를 방문했을 때의 황망함과 배신감 같은 걸 잊을 수가 없다. 우리나라 자치분권 모델로 알려진 그곳에서 정반대의 실상을 봐 버렸기 때문이다. 그동안 제주자치경찰은 자치분권의 상징처럼 묘사되고 인식돼 왔다. 그러다 보니 심지어 우리 같은 지방의원과 지방분권세력들 머릿속에도 제주자치경찰은 자치분권과 자치경찰제의 모범으로 머릿속에 그려져 왔던게 현실이었다. 그러나 모든 게 허상이었고, 조금 더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지방분권 사기극을 보는 느낌이었다. 제주자치경찰은 지난 2006년 7월 제주특별자치도와 함께 출범했다. 새해 들면 10년의 짧지 않은 역사이지만 제주자치경찰은 ‘자치’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무늬만 자치경찰인 것에 놀랐다. 도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치안주체가 아니라 치안보조 수준의 역할에 머무르고 있다. 범죄 예방과 진압, 범죄 수사권은 없고(이제 본연의 경찰 권한일진데 국가경찰에게만 있다), 생활안전 범주 내 순찰활동과 주민 참여 방범활동에만 권한이 국한돼 있는, 말 그대로 치안 보조 역할이다. 구체적인 권한과 역할을 보면 지역축제 등 행사 때 질서 유지나 교통 관리하는 일부터 교통범칙금 부과 등 기초단속 권한만 행사할 수 있다. 음주측정권은 있지만 조사권은 없고, 제복입은 기마경찰대가 관광 안내하는 수준이다. 이밖에 환경, 산림분야 특사경 역할도 있지만 행정직 공무원에게 주어지는 권한과 다를 바가 없다. 권한은 국가경찰이 다 갖고 무늬만 자치경찰이 상존하다보니 제주도의 치안종합성과는 전국 하위권이다. 이쯤 되면 동네에서 자원봉사하는 민간 자율방범대를 경찰이 직영하는 수준과 뭐가 다를까 하는 참담한 심정이었다. 제주자치경찰제의 허와 실을 제대로 알려달라는 제주자치경찰단장의 호소가 아직도 생생하다. 새해는 지방분권 개헌의 해이다. 대통령부터 거의 모든 정치인과 관료들이 연방제 수준의 강력한 분권형 개헌을 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제주자치경찰제의 진실을 알고 나면 과연 말대로 제대로 될까라는 강한 의문과 회의감이 들 수밖에 없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모두가 외치지만 현실은 분단이 고착화돼 온 것처럼 자치분권형 개헌 역시 똑같은 전철을 밟지 않을까 심히 걱정된다. 사실 지방분권에 대한 이해관계는 진보와 보수 같은 이념이나 정당, 여야 위치에 따라 특정되지 않는다. 중앙집권으로 특권을 누리는 국회의원과 중앙정부 관료 등이 모두 중앙집권세력이고 반지방분권 세력들이다. 겉으로는 지방분권을 주장하지만 속내는 권력과 권한을 지방에 내줄 생각이 별로 없어 시늉만 하는 것이다. 이들의 실체는 지방분권 개헌안 각론으로 들어가 권한 다툼이 일어날 때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반면 가장 강력한 지방분권세력은 국민이다. ‘파사현정(破邪顯正)’과 ‘제구포신(除舊布新)’. 사악하고 그릇된 것을 깨어 바른 것을 드러내고, 묵은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펼쳐낸다‘. 교수신문이 뽑은 올해와 새해의 사자성어이다. 두 해 연속 ‘변화’가 키워드로 올해는 적폐청산, 새해는 개헌이 시대적 과제임을 분명하게 제시하는 촛불 민심이기도 하다.변화를 갈망하며 깨어있는 국민들 앞에서 더 이상 자치분권 개헌 사기극은 통하지 않는다. 제대로 된 분권형 개헌만이 해답이다. 국민들은 여전히 촛불을 끄지 않고 지켜보고 있다. 양근서 경기도의원

[경기시론] 인생 향유와 나를 지켜내기

당신은 ‘재·색·명·위’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재(財)는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욕망을 뜻한다. 색(色)은 남녀관계에서 자신의 육체적 욕망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명(名)은 인기를 얻고 싶은 마음, 명예를 쌓고 싶은 마음, 즉 유명해지고 싶은 욕망을 뜻한다. 위(位)는 보다 높은 지위를 차지하려는 욕망을 뜻한다. 즉 자신의 직위, 직급, 신분 등을 높여서 권력을 추구하려는 것을 뜻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무엇을 추구하고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가? 알고 보면, 재·색·명·위의 네 가지 범주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재·색·명·위는 사람들에게 동기를 유발하고, 활력을 일으키며, 부지런하게 움직이도록 만든다. 그러나 이러한 욕망을 잘 다루지 못하면, 인생은 번뇌의 길로 빠지고, 결국 자신을 상하게 만들고 피폐해진다.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없고, 하늘에 떠있는 구름을 볼 수 없고, 꽃이 피고 지는 것도 볼 수 없게 된다. 마음이 괴롭고 불행해지는 것이다. 재·색·명·위의 욕망과 집착은 진정한 성공이 아니다. 왜냐면 그것은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상대적인 기준이기 때문이다. 재(財)의 경우를 보자. 사람은 돈을 많이 벌면 벌수록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은 욕망에 빠지게 된다. 옛말에 “99마지의 논을 가진 사람이 1마지의 논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100마지기를 채우려는 욕망에 눈이 어두워져 괴로움에 빠지게 된다”는 말도 있지 않는가? 색(色)은 항상 애정의 이중성과 관련돼 있다. 남자든 여자든 평생 동안 회피할 수 없는 것이 애정문제, 사랑문제다. 애정은 구애, 연애, 결혼, 바람, 이혼, 성욕의 문제로 연결돼 있다. 만족하지 못하고, 색의 욕망에 사로잡히게 되면 그것은 애정이 아니고 미친 증상으로 변하게 된다. 색의 욕망은 마약과도 같아서 취해있는 동안은 황홀하고 기분이 좋지만 약효가 떨어지면 몸과 마음이 황폐해지는 것과 같다. 명(名)은 유명해져서 인기를 끌고 싶은 욕망의 문제다. 사람은 남들로부터 화려하게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고 싶은 잠재적 욕망이 있다. 그러나 명성에 집착할수록 마음은 계속 쪼들리고 인생 향유는 사라지게 된다. 위(位)는 지위와 권력의 문제다. 사람들은 왜 더 높은 지위를 차지하려고 애쓰는가? 그것은 지위가 높아질수록 더 많은 권력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권력에 집착하는 것은 아침이슬 같고 아지랑이와 같다. 높은 지위는 지속성이 짧아서 금방 사라지기가 쉽고, 그것이 사라지기 전에 권력을 남용하기가 쉬어서 자칫하면 신세를 망칠 수가 있다. 많은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는 ‘멈춤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재·색·명·위의 욕망은 끝이 없기 때문에 욕망이 클수록 심리적 압박도 커지고 괴로워지게 된다. 따라서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를 아는 것, 어느 지점에서 만족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 이것이 바로 인생 향유의 비결이다. 인생은 수많은 순간들과 선택들의 총합이다. 재·색·명·위에 사로잡히는 것은 진정한 성공이 아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괴롭게 살아가는 이유는 재·색·명·위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욕망에 발목이 잡혀서 지금껏 인생을 향유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늙다가 죽게 된다면 그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무수한 현재는 지나가고, 어느 날 갑자기 병이 들거나, 늙었음을 깨닫게 되거나, 그런 욕망의 부질없음을 느끼게 되면 그 얼마나 후회스러운 인생인가? 재·색·명·위의 욕망, ‘그 어느 지점에서 만족하고 멈춰야 되는지를 아는 것’이 괴로움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지혜롭게 나를 지켜내는 길이다. 김청송 경기대학교 청소년학과 교수

[경기시론] 우리는 똑똑한 죄수가 되어야 한다

‘죄수의 딜레마’라는 말을 한 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는 죄를 지은 두 명의 혐의자가 붙잡혀서 각각 심문을 받는 상황에서 죄수들이 빠지게 되는 딜레마 상황을 말한다. 검사는 죄수들에게 죄를 시인하면(자백하면) 형량을 낮춰 줄 것이고, 옆방의 동료는 이미 죄를 시인했기 때문에 만약 당신이 끝까지 죄를 시인하지 않으면 형량이 더 높아진다는 말을 한다. 이 말을 들은 죄수는 옆방의 동료와 의사소통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고민을 하다가 결국 자백을 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자백을 해서 형량을 조금이라도 낮추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기 때문이다. 만약 두 공범 모두 끝까지 죄를 시인하지 않으면 무죄가 될 수도 있지만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상대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갖기가 어렵고, 잘못하면 자기가 더 큰 피해를 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죄수의 딜레마 상황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죄를 짓지 말고 착하게 살아야 하며, 만약 죄를 짓더라도 공범을 만들지 말라는 것일까? 죄수의 딜레마가 우리에게 주는 본질적인 시사점은, 개인의 입장에서는 최선의 선택이 전체적인 입장에서는 최선의 선택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딜레마 상황은 공공의 영역, 특히 환경과 관련된 분야에서 주로 발생한다. 예를 들어 자가용을 구입하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개인이 자가용을 구입하는 이유는 자신의 삶의 질을 높이고, 편안하게 이동하며, 이동에 따른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이다. 이를 위해 많은 돈을 지출해야 하고, 교통사고 등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가용 구입에 대한 여러 측면을 검토한 끝에 자가용을 구입하게 된다.이런 개인의 선택은 별다른 문제가 없고 지극히 합리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선택들이 모인 결과는 미세먼지 발생, 교통체증, 소음문제 등으로 나타나며, 이는 사회 전체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좋지 않은 선택이 된다. 개인적으로 합리적이었던 선택이 사회 전체적 입장에서는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선택이 된 것이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지금 모두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 빠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딜레마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좋은 방법은 죄수가 조금 더 똑똑해지는 것이다. 만약 죄수가 변호사를 선임하고,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찾고, 가능한 범위에서 정보를 얻어 갈 수 있다면 딜레마 상황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이는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시민들이 어떤 공공의 문제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얻고, 능동적으로 참여해 갈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면, 그 결과 시민들이 그 문제에 대해 더 똑똑해진다면 우리는 우리 사회가 빠져 있는 여러 딜레마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개인은 똑똑한 죄수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사회는 개인이 더 큰 관점을 갖고 판단하며 행동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조성화 수원시기후변화체험교육관 관장·한국교원대학교 겸임교수

[경기시론]유라시아 협력과 한반도 통일 위한 대학의 과제

▲ 홍종순 대한민국 헌법 제66조 3항을 보면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에 대통령의 이행을 명시하고 있다. 통일을 지향하는 주체는 대한민국이고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므로 평화적 통일을 위해 힘써야 할 사람은 5천만 국민과 3만명의 탈북민에게 있다. 우리가 현재를 파악하고 역사의 악순환을 깨고 제대로 된 선택을 하여 새로운 통일한국의 위대한 역사를 만드는 것은 지상과제다. 정부는 2013년 유라시아 시대의 국제협력 콘퍼런스에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선포하고 부산에서 출발해서 북한, 중국, 러시아,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철도, 도로, 공항을 포함해 복합 물류 시스템으로 연결되는 ‘실크로드 익스프레스(SRX)’를 제안하면서 대한민국의 새로운 대륙지행의 외교정책 비전을 선포하였다. 이를 통해 한반도 평화통일의 기반조성, 동북아 평화와 유라시아 대륙 국가들과의 협력 확대를 주요 목적으로 하고 교통, 물류, 천연가스와 석유에 대한 네트워크를 통해 경제통합과 경제협력의 구조를 가지고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다. 이처럼 포괄적이고 다양한 영역에서 협력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도모하고 통일한국이 유라시아의 번영과 평화에 기여하는 선순환적인 유라시아 협력구상이다. 이는 통일준비이면서 통일 이후에 국가발전 전략으로 이어지는 장기적인 통일외교 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 보건의료계에서는 2016년 ‘유라시아 보건의료포럼’을 발족하고, 2017년 초 국내 보건의료단체들의 유라시아 지역 지원을 다짐하는 협약식과 통일을 대비한 보건의료 교류협력 방안을 논의하는 장이 열렸다. 정치 분야와 다르게 보건의료는 중립적 가치와 인도적 개념을 동시에 지닌 분야다. 보건의료 분야의 인도주의적 교류협력은 통일시대를 대비하는 오늘의 민·관 전체 구성원들이 반드시 이루어야 할 소명이다. 현세대와 차세대의 중요과업 중 하나는 통일한국을 만드는 것이다. 이에 대해 대학의 준비와 교육자의 역할은 무엇인지 재고해 보고자 한다. 먼저 온 통일세대인 탈북민 3만명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남북한 출신 보건인과 대학청년들이 통일한국과 남북통합 사회를 조성하여 미래지향적 사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 과업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북한사회의 붕괴를 예측하고 있고 이를 대비하기 위한 사회안전망 및 국민재난관리 시스템 구축 연구를 하고 있다. 이는 통일과 남북통합사회가 한국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나게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학과 지역사회 안에 교육을 통해 통일준비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구체적인 실천방안이 있어야 한다. 통일에 대한 깊은 통찰과 상상력은 이 문제가 좀 더 가까이 왔을 때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첫째, 탈북민(새터민통일민북향민)에 대한 이해와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할 지역사회 일원임을 알고 공동체 의식을 바탕으로 이들이 남한 사회 안에서 잘 정착하고 통일시대의 리더로서 성장하도록 수용성의 확대와 통일역량 지수를 높여야 한다. 둘째, 청년대학생이 졸업 후 전문직업인으로 성장해서 북한의 심각하게 붕괴된 의료시스템의 재건과 통일 한반도 건설에 대한 부푼 비전을 갖는 것이다.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걸고 찾아온 탈북민이 이 땅에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살도록 따뜻한 이웃과 친구가 되어줄 수 있는 포용적 자세와 함께 통일과 남북의료 통합 및 재건을 함께 만드는 비전공동체가 형성되어야 한다. 홍종순 동남보건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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