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부의 불공정은 구조적 불의에서

주류 경제학은 200년 넘게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라고 가르쳐 왔다. 과연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일까? 이것을 확인하고자 경제학에서 많이 사용하는 최후통첩 게임이 있다. 이 게임은 A와 B 두 사람이 게임에 참여한다. 두 사람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을뿐더러, 앞으로도 만날 일이 결코 없는 사람이다. 진행자는 A에게 1만 원을 공짜로 지급한 뒤 1만 원을 둘로 쪼개 B와 나눠 가져라라고 제안한다. 얼마를 나눠주건 그건 전적으로 A의 자유이다. 그런데 조건이 있는데 파트너인 B가 A의 제안을 거절하면 게임은 무효가 되고 진행자는 1만 원을 회수하여 두 사람은 한 푼도 챙기지 못한다. 수많은 실험 결과 A가 B에게 평균 4천500원을 주고, A가 2천 원 이하의 돈을 B에게 주면 대부분 제안을 거절한다. B가 거절하면 2천 원을 못 받게 되지만 참가자들은 나는 2천 원 못 받아도 좋으니, 나쁜 놈이 8천 원을 가져가는 꼴은 죽어도 못 보겠다고 보복권을 행사한다. 이 실험 결과로 인간은 이기적이다를 전제로 한 주류 경제학에 심각한 도전을 안겨주었다. 실험에 따르면 인간은 난생 처음 본 사람에게 기꺼이 불로소득의 45%를 나눠주는 협력적 존재이다. 또 인간은 2천 원이라는 공짜 돈을 포기하면서 정의롭지 못한 결과, 공정하지 못한 분배에 대해서 저항한다. 세계 인구 중 가장 부유한 1%가 전체 부의 4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가장 부유한 5%가 전체 부의 70%를 소유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세 사람의 자산을 모두 합치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48개국의 국내 총생산을 합친 것보다 더 많다. 매년 600만 명의 5세 이하 아동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다.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대학살이다. 이런 부의 불공정은 구조적 불의가 있기 때문이다. 돈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뒤처지지 않고자 안간힘을 다한다. 스펙을 쌓고, 다른 이들이 누리는 것을 다 누리려 한다. 욕망과 현실 사이의 거리를 메우고자 전전긍긍한다. 거대 기술 사회, 거대 소비 사회는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안락함과 편리함을 쫓는 이들은 돈을 벌고자 가장 소중한 것들을 잃은 줄도 모르고 산다. 숨은 가쁘고, 마음의 여백도 사라졌다. 우정의 기쁨, 공동체 안에서 누리는 평안, 소박한 삶의 즐거움, 아름다움에 대한 경탄, 다른 이들에 대한 존중을 잃은 이들이 너무 많다. 지배적 자리에 서기보다, 낮은 자리에 서서 흉허물없이 어울리며 사는 것, 곁에 있는 이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느끼며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한 삶의 방식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자살자가 있는 연령은 40~50대이다. 이들이 자살하는 이유는 실업이다. 이런 말이 있다. 일자리가 없으면 설 자리가 없고, 설 자리가 없으면 살 자리가 없고, 살 자리가 없으면 묫자리만 있다. 40, 50대에게 일자리는 삶의 존재감으로 다가가고 있다. 아무리 작은 돈이라도 일을 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이들에게 너무나 중요하다. 이 40, 50대는 자신의 존재감을 돈의 가치로 평가받았지 다른 것으로 받아 본 적이 없는 세대인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아무리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서 숙명론적인 자살로 이어지고 있다. 이 40~50대의 자녀가 청소년들이다. 너무 쉽게 사각지대에 놓이는 현실, 그리고 기회가 부재하고, 안전망이 부재한 현실. 부의 불공정은 구조적인 불의에서 시작된다. 이런 사회에 새로운 희망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안해용 경기도교육청 학생위기지원단장

[경기시론]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필자는 결혼 전과 후의 모습이 아주 많이 변할 줄 알았다. 사는 장소가 옮겨지고 새로운 가족이 돼 아내라는 역할이 하나 늘었으니 나의 모습이 변했을 것이라 보았다. 결혼으로 인해 물리적ㆍ환경적ㆍ관계적으론 나의 삶 자체가 완전 다른 삶이 되었으니 나의 모습도 완전히 변했을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올해 4월은 필자에게 잔인했다. 건강한 40대의 동생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냈다. 이후 많은 것이 변할 줄 알았다. 담담한 모습으로 이 글을 쓰는 필자를 보면 살아있는 사람은 살아가기 마련이며 죽고 못 살 것 같던 마음이 그리움으로 변해있을 뿐이다. 필자가 서초와 광화문에서 언론 및 검찰 개혁을 외치며 변화를 희망하는 사람들을 본다. 언론인은 변하지 않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무언가 이슈를 놓고 또 다른 변화의 선상에 놓여 있길 바라는 것 같기도 하고 참으로 어렵다. 얼마 전 S 언론사의 부사장이 우리나라 저출산 고령화의 심각성에 대해 인지하는 많은 언론사가 앞장서야 한다며 필자의 출산운동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제안해왔다. 이 만남은 필자의 지난 10여 년을 돌아보게 했다. 교도소, 헌혈 캠페인, 위기가족상담, 부모교육, 부부교실, 위기청소년 상담, 청소년 동아리, 경기도교육청 꿈의 학교 등 가정회복운동이라 생각하는 자리에 필자가 있었다. 필자의 변화 속 삶이 대한민국 희망의 점 역할이며 감사함의 연속이 되니 더 감사했다. 그러나 S 언론사 부사장은 애초 필자의 사회공헌 자체가 돈이 될 거로 생각했는지, 신문사에 이득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언론사 힘을 과시하는 등 자신의 자녀가 변호사임을 강조하며 80년대쯤 만났을 법한 사람처럼 입에 담을 수 없는 언어를 사용했다. 무언가 큰일이 일어날 것 같은 불안으로 시간을 보내는 내내 많은 것이 변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한국출산행복진흥원은 출산과 출생이 행복한 세상, 우리의 사후 100년이 지나도 우리 자녀의 자녀가 주인공이 돼 이끌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건재해 있기를 바라는 마음 하나뿐인데이로 인해 견디기 어려운 일은 없으며 내실을 기하는 기회가 되었다. 한강의 기적이라면 블루칼라, 두뇌의 힘의 화이트칼라, 그리고 윤은기 박사의 가치를 뜻하는 골드 칼라 그리고 필자가 보는 실버칼라가 미래라 말하고 싶다. 필자가 말하는 실버칼라는 실버 세대를 말한다. 저출산으로 아이들이 줄어들고 실버 세대가 많아지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신세대보다 실버들이 이끌 세상이기 때문이다. 골드칼라는 자유롭지만 실버칼라는 경험의 노하우와 인생의 맛을 알며 진중한 멋이 있다. 화이트칼라는 학력과 경력을 중시하며 관리가 목표다. 이렇기에 인성이 제대로 된 실버칼라들이 청소년과 청년들의 본보기가 돼 초고령사회를 살아가야 함은 틀림없다. 많은 것이 변할 것 같고 순간은 견디기 어렵고 나도 모르게 나를 위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만 지금도 나의 시계는 멈추지 않고 지나가고 있음이다. 태어날 때처럼 빈손으로 가는 세상이라는 점만 기억한다면 처음 사는 오늘 평범함 속 특별함으로 보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중요하고 진정한 변화는 그렇게 많이 일어나지 않지만 변화는 내가 이끌어 내는 것이라는 점을 재차 느낀다. 김양옥 한국출산행복진흥원장

[경기시론] 설검잔혹(舌劍殘酷)

실전무기인 칼의 역사는 인류 문명사로 직결된다. 청동검을 처음 활용한 부족은 주변 세력을 정복했으나 이후 강철검으로 무장한 군대에게 무릎을 꿇었다. 칼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문명을 확장시킨 코페쉬처럼 휘어지기도, 태동기에 막 보급돼 로마제국 팽창의 조역이자 강력한 신무기로 이름을 날렸던 글라디우스처럼 짧아지기도 했다. 이후 전쟁양상에 따라 중세유럽의 양손검 투핸드소드처럼 크고 길어지기도 했다. 현대전에서도 보병 최후의 무기는 결국 총검이다. 전설 속 아더의 엑스칼리버나 지크프리트의 발뭉, 중국 오나라의 간장막야, 월나라 구야자의 어장검 등은 나라의 문화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우리나라에도 백제의 칠지도나 악귀를 베는 사인참사검 등이 인상 깊은데, 소설가 김훈은 왜구를 물리쳐 조국을 지키는 이순신 장군의 장엄한 모습을 칼의 노래로 만들어냈다. 힘없는 백성에게 칼은 무서운 것이었지만 동시에 든든한 것이었다. 칼은 한 부락을 남김없이 몰살시키기도 했지만 적의 침략으로부터 숱한 생명을 구해냈다. 그런데 이렇듯 무서운 칼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다. 바로 혀의 검, 설검(舌劍)이다. 칼에 베인 상처는 시간이 흐르면 낫지만, 혀에 베인 상처는 잘 낫지 않는다고들 한다. 얼마 전에 젊은, 어찌 보면 어리기까지 한 연예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른바 악성댓글이 그 원인 중 하나라는데, 그 파릇한 목숨이 참으로 아깝고 슬프다. 악성댓글은 더 안 좋게 변형된 설검일 것이다. 칼은 몸을 해칠 뿐이지만 설검은 영혼마저 파괴한다. 거짓 비방이나 중상모략으로 훌륭한 인재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행위를 일상에서 드물지 않게 본다. 설검의 형태는 다양하다. 거짓된 허언은 말하는 자와 듣는 자를 같이 망친다. 꾸며낸 교언은 간신의 전유물로서 언제나 나라를 쇠약하게 만들었다. 명심보감에서 남의 험담을 하는 것은 입으로 피를 뿜어 스스로를 더럽히는 것과 같다고 했다. 성경에서는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려있다라고 했으며 법구경에서는 입은 몸을 치는 도끼요, 몸을 찌르는 칼이라고 했다. 인터넷 같은 무한회선을 타고 증식하면서 설검은 더 잔혹해졌다. 질투나 증오, 폭력성 같은 음험한 악의로부터 비롯된 설검이 아무런 제지 없이 함부로 휘둘러진다면 우리 사회는 괴롭고 황폐한 곳이 될 것이다. 비판적 의식을 바탕으로, 부당한 이야기나 떠도는 평가 따위에 현혹되지도,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옮겨서도 안 된다. 움베르트 에코는 대중의 슈퍼맨에서 모든 슈퍼맨들은 대중의 비밀스러운 욕망에 적절히 부응한다고 했다. 슈퍼맨이 그저 창조된 이미지이듯 악인도 대중의 내밀한 욕망을 만족시키는 가짜 이미지에 불과할지 모른다. 설검은 잔혹하나 휘두르는 것은 사람이다. 법에는 법의 도리가, 말에는 말의 도리가 있다. 시민사회의 정당한 비판을 위축시켜서도 안 되지만 반대편끼리 꼭 싸워야 할 때 조악한 설검보다는 신랄하지만 수준 높은 유머로 싸우면 어떨까. 더러운 말에는 귀를 씻고 입으로는 배려하는 고운 말, 정직한 말, 칭찬하는 말을 더 많이 하면 어떨까. 나아가 내 말에 다친 이에게 지금 용기 내어 사과한다면 어떨까. 설검이 잔혹한들 진실을 분별하려는 밝은 눈과 인정어린 따뜻한 심장을 이기지는 못할 것이며 설검이 아무리 잔혹한들 침묵의 고상함속에서는 끝내 무력할 것이다. 김성훈 손해보험협회 중부지역본부장

[경기시론] 아름답고 건강한 뷰티니스 운동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다. 인류는 언제나 아름다움을 추구해 왔고 지금도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망에는 변화가 없다. 아름다움은 신비로운 에너지를 발산하고 인류는 자신이 아름다워질수록 행복해진다고 믿는다. 프랑스의 소설가 스탕달(Stendhal)은 아름다움을 행복에 대한 약속이라 하였다. 많은 지식인이 아름다움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것도 아름다움만의 특별함이 있기 때문인 듯하다. 한때 아름다워지려는 사람들은 코르셋을 이용해 잘록한 허리를 만들었고 영국의 엘리자베스(Elizabeth) 1세는 수은과 납이 들어간 분을 사용했다. 처음에는 하얀 얼굴이 아름답게 보이기도 하였으나, 갈수록 피부가 상하는 것을 감추고자 더 두껍게 분을 사용하다가 결국 변해버린 자신의 얼굴에 분노하여 궁전 안에 있는 모든 거울을 없애버렸다는 일화는 지금도 유명하다. 인류의 아름다움에 대한 광적인 사랑은 뷰티산업을 미래 신성장 산업으로 올려놓았다. 세계적인 화장품 로레알(L Oral)의 2018년 매출은 약 34조 원이나 되고 한국의 화장품도 세계에서 지명도 높은 선호상품이 된 지 오래다. 지금도 고가의 화장품들은 마치 자신을 변화시켜줄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화장품만으로 아름다워지려는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의학의 힘을 빌려서라도 그 욕구를 채우려 한다. 과거 성형은 일부 상류층의 전유물이었지만 이제는 대중적 소비재로 바뀐 지 오래다. 외국인의 성향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강남구청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의료목적으로 방문한 외국인 9만5천237명 중 성형피부과를 찾은 사람이 57.7%나 된다. 강남 주변호텔에 숙박하며 성형외과를 드나드는 관광객의 모습은 여기저기에서 관찰된다. 여기에 비수술적 뷰티성형의 열풍도 불고 있다. 한국의 이러한 세태를 풍자하는 글이 퓰리처상을 받은 저널리스트 조디 칸토르(Jodi Kantor)에 의해 뉴욕타임스에 올라오기도 했다. 4차 산업 혁명시대에 직면한 이제는 누구나 자신의 개성을 뽐내며 창의적인 삶을 추구하는 건강복지사회로 가야 한다. 의학의 도움을 받아 자신을 변화시키기보다는 정신적육체적으로 건강해질 수 있는 뷰티니스(Beautiness) 운동이 필요해 보인다. 뷰티니스는 뷰티(Beauty)와 피트니스(Fitness)의 합성어이다. 뷰티니스 운동은 단지 건강해지고자 운동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답고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자는 피트니스 운동이다. 무분별한 근육의 크기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조화롭고 균형미 넘치는 아름다운 밸런스 운동을 말한다. 뷰티니스 운동은 신체적 만족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안녕감을 가져다주는 데 그 의미가 크다. 뷰티니스는 특별한 운동이 아니다. 지금 하는 운동을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즐기자는 것이다. 운동을 즐기다 보면 아름다운 신체를 만들 수 있듯이 용어상으로만 뷰티니스이고 모두 피트니스 운동이다. 전국에는 스포츠센터, 에어로빅, 필라테스, 헬스클럽, 요가, 줌바, 번지플라이, GX 등의 건강관련 피트니스 매장 수도 약 7천 개에 이른다. 도시주변에는 운동을 즐길 수 있는 공원과 산책로 그리고 하천을 따라 운동코스들이 즐비해 있다. 일주일에 3회, 하루 30분이면 충분하다. 나를 즐겁고 건강하게 해주는 곳이라면 그곳에서 아름답고 건강한 모습의 나를 위해 열심히 운동을 즐겨보자! 공성배 한국뷰티니스예술진흥원장

[경기시론]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는 심리적 이유

사람이 엄마의 뱃속에서 태어난 후 신체적 발달과 함께 뇌의 발달도 일어난다. 뇌가 발달할수록 마음도 성장하고 성장을 할수록 인격이 발달한다. 신체가 잘 발달하고자 영양소가 필요하듯, 마음이 발달하는 것에도 영양소가 필요하다. 양육환경에서 받는 사랑과 관심, 인정과 격려 이런 영양소는 필수적인 요소이며 따라서 어떤 양육환경에서 자랐느냐는 그 사람의 마음상태를 평가할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아기가 태어난 후 처음으로 만나는 대상은 대부분 엄마이다. 아기가 스스로 생존하는 것은 불가능함으로 전적으로 엄마에게 의존한다. 이때 아기가 바라보는 대상은 두 가지로만 존재한다.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좋은 대상(good object), 자신의 욕구를 좌절시킴으로 위협감을 느끼게 하는 나쁜 대상(bod object)으로만 존재하는 것이다. 아기는 아직 좋은 대상과 나쁜 대상을 같은 대상으로 통합하여 인지하지 못한다. 아직 뇌기능이 미숙하여 판단력이 매우 떨어지고 통합의 경험을 아직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때 아기의 보호본능이 본능적으로 발휘된다. 좋은 대상과 나쁜 대상을 마음속에 분리하여 기억하는 것이다. 좋은 대상과 나쁜 대상을 분리하면 좋은 대상과의 관계를 통해 행복감을 느낄 수 있고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좋은 대상과의 상호작용에 의해 자신에 대한 자존감과 자신감도 올라가고 세상에 대한 신뢰도 유지된다. 이런 과정의 결과 실제 엄마는 한 사람인데 아기의 마음속에 엄마는 좋은 엄마, 나쁜 엄마로 분리되고 아기는 이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느낀다. 그런데 나쁜 엄마를 마음속에 분리해 보관할수록 마음은 불안과 위협감을 느낀다. 따라서 분리된 엄마를 통합하는 과정은 필수적이며 꼭 필요하다. 다행히 양육과정을 통해 좋은 엄마가 훨씬 많다는 것을 아기가 점점 느끼게 되고 뇌의 발달로 판단력이 좋아지면 이런 과정은 가능해진다. 좋은 엄마가 점점 강해져 나쁜 엄마를 해독하고 품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아기는 자신이 느낀 나쁜 엄마가 실은 좋은 엄마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은 알게 된다. 그래도 좋은 엄마가 더 마음속에 강하므로 나쁜 엄마가 실은 그리 나쁜 엄마가 아니라는 것도 깨닫는다. 엄마에 대한 통합관점이 생기면 이런 아기는 주변에서 만나는 대상들이 좋은 점도 나쁜 점도 동시에 지니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도 사람은 좋은 사람들이다. 세상은 믿을만한 곳이라는 신뢰가 생기는 것이다. 이를 기본신뢰(basic trust)라고 한다. 기본신뢰가 튼튼한 아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통합의 관점을 잘 지니고 산다. 그런데 이런 기본신뢰, 통합적 관점이 양육환경과 발달과정에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성인이 돼서도 사람이나 세상에 대한 관점이 극단적으로 나뉜다. 좋은 사람이라 생각하다가도 조금만 실망스러우면 그 사람은 매우 나쁜 사람으로 치부된다. 세상에 대한 생각도 자신이 불만스러운 환경이면 매우 부정적인 사회로 느껴진다. 역사를 평가하거나 이념적 진영을 평가할 때도 통합의 관점으로 보지 못한다. 작은 부분이라도 불만족스러우면 전체가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일반화의 오류는 따라서 인간의 기본적, 본능적 방어기제이나 유아기적 방어기제이며 성숙한 기제는 아닌 것이다. 정재훈한국정신보건연구회 정책이사

[경기시론] 올바른 노동 가치를 배우는 교육이 ‘삶의 교육’

청소년을 대상으로 가장 선호하는 직업을 조사했는데 높은 선호도를 보인 직업이 교사이다. 그리고 공무원, 경찰관, 의사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청소년들은 자신의 소질과 적성보다 안정적인 직업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취업의 불안감이 고조되는 이 시대를 반영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현재 청소년들의 직업 선택의 기준이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기준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이런 청소년들의 직업 선택 기준은 자신의 적성과 선호보다 부모들이 생각하는 직업에 대한 가치가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은 돈을 많이 받는 직업을 선호하고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일의 가치보다 일의 결과로 얻는 돈에 대한 관심을 더 둔다. 그래서 존 러스킨은 그대가 일의 대가보다 일 자체를 가장 중요하게 받아들인다면 창조주인 하나님을 그대의 주인으로 삼은 것이다. 그러나 일 자체보다 그 일로 받는 보수를 제일로 친다면 그대는 돈을 주인으로 삼은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일의 가치는 보상으로 주어지는 돈의 양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그러나 가치란 돈으로 다 환산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정말 소중한 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러기에 돈의 가치로 그 일에 가치와 동일하게 생각한 것은 위험 할 수 있다. 오늘날 노동의 가치보다 노동의 결과로 얻는 수입에 더 관심을 둔다. 이것이 자본주의 병폐 중 하나이다. 많은 사람은 인생의 진정한 목적은 많은 돈을 벌어 풍요를 누리는 데 있다. 그리고 편안히 여유를 즐기며 사는 것을 목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일에는 금전적인 보상도 중요하다. 정당한 일에 대한 보상을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일의 가치를 단순히 돈으로 판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인간들이 일하면서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쁨과 성취감을 누리기를 원한다. 앤서니 드 멜로의 우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떤 사람이 실험을 위해 일꾼 한 사람을 고용했다. 그는 일꾼에게 도끼를 주고 저기 통나무 보이죠? 당신이 저 통나무를 쪼개는 것을 내가 관찰할 거요. 그러니 통나무가 다 없어질 때까지 쪼개시오. 그러나 도끼의 날로 치지 말고 머리 쪽으로 치시오. 단 한 시간에 12만 원을 주겠소. 그 일꾼은 도끼 머리로 통나무를 쪼갠다는 것이 어리석은 일처럼 보였지만 돈벌이가 좋아서 승낙했다. 그러나 두 시간쯤 지나자 그는 그만 하겠다고 말했다. 그를 고용한 사람이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임금이 너무 적습니까? 두 배로 올려 드리겠습니다. 그러자 일꾼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닙니다. 임금은 좋습니다. 하지만 도끼로 내려칠 때 나무 조각기 튀는 것을 보지 못하니 일할 맛이 나지 않습니다. 일의 가치는 단순히 금전적인 것으로만 보상으로 될 수 없다. 바로 성취감과 기쁨을 잊어버린 일은 우리를 일에서 소외됨을 느끼게 한다. 인간은 일을 통해서 기쁨과 성취감을 누리고 싶어 한다. 우리는 일을 통해 존재의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 일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점검해 보기를 원한다.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이 우리에게 주신 소명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는지 묵상해 보아야 한다. 학생들은 공부를 통해 성취감과 기쁨을 맛보아야 한다. 이 일을 통해 우리는 삶이 성숙해야 하고, 사회적인 가치를 이루어가는 경험의 순간임을 발견해 가야 한다. 그러기에 학교 현장에서 노동의 가치를 교육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재 청소년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일하고 있고, 앞으로 일하게 될 것이다. 그러기에 노동의 올바른 가치를 교육하는 것이 삶의 교육이다. 안해용 경기도교육청 학생위기지원단장

[경기시론] 여성 주례사

그 남자의 딸과 그 여자의 아들이 만나 내 여자의 남편이 되고, 내 남자의 아내가 되던 날. 다른 문화에 익숙한 두 사람이 새로운 가정문화를 만들 첫걸음마를 내딛는 뜻 깊은 날. 10월12일, 필자가 처음으로 주례를 한 특별한 날이 됐다. 예비신랑신부가 기획하고 진행하며 주례자 없이 양가 부모님의 덕담 형태로 바뀌고 있는 결혼예식. 주례사(主禮辭) 필자의 마음속에 배어 나오는 감동과 느낌이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끝없이 흘러나오고 있다. 자기주관이 뚜렷하고 똑 소리 난 예비신부. 요즘 세대를 대변하는 듯 당당하게 신여성답게 결코 쉽지 않은 주례주문서를 내밀었다. 주례사(主禮辭)가 길고 따분해 하객(賀客)들로 하여금 예식 중간에 식사하러 가지 않도록 해줄 것과 참아야 한다는 등 당연한 말 대신 하객들까지 공감하여 예식을 마치고도 여운을 느낄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어려운 주례사(主禮辭)에 어떤 말과 행동을 하지? 우리 모두 오늘은 처음 살고 있으니 어제 살아봤다는 이유가 아닌 오늘은 철저하게 새롭게 새로운 날로 시작하자고 제안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제를 이어 반복해서 실수도 할 수 있고, 상처를 줄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같은 실수와 상처가 아니라 오늘(현재:present)은 선물(present)인 것이다. 이런 주례가 형식적이어서 사라지는 걸까? 100년 후 우리 역사 속에서만 주례 문화가 있게 될까? 대한민국이 100년도 안 되어 없어지는 판국에 과연 중요한 것은 무얼까? 출산과 출생이 행복한 세상이길 꿈꾸고, 연애와 결혼을 포기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길 바라는 가정회복운동을 해 온 지 어언 10여 년이 넘었다. 결혼을 한 부부들조차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게 현실이다. 주례사나 덕담이든 인생의 선배로서 결혼은 마냥 기쁜 일이고, 결혼을 선택하는 것은 정말 잘하는 일이며, 계속 핑크빛으로 행복할 거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작금(昨今)의 현실에 결혼을 선택한 부부들을 바라보는 필자의 마음은 무겁다. 이런 세상을 만드는데 필자도 방관자였으니 더 미안하다. 오늘 결혼한 부부가 아이를 낳겠지. 행복도 잠시 당장 아이를 맡아 줄 곳, 키워 줄 사람을 찾아 헤매야 하고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는 예비결혼기획자들이 결혼에 대한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국가가 아닌 마을 공동체적 측면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더 구축해야 한다. 그리고 불안한 환경으로 결혼 자체를 포기하는 사람들을 집중 관리한다면 출산 문제에 효과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이 부부는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갔다. 필자는 신혼부부들이 가장 선호하는 1등 여행지인 하와이에서 출산이 행복이길 바라는 We make happy 캠페인을 다음달 22일과 23일 양일에 걸쳐 미국에 있는 ELLO ETI라는 회사와 함께 진행할 예정이다. 한국출산행복진흥원은 대한민국이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100년도 되기 전에 이 지구 상에서 사라질지도 모를 위기를 걱정하며 준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우리의 뜻을 알릴 수 있는 여러 가지 방안들을 모색해서 이번 행사에 참여할 예정이다. 필자는 여성으로서 처음 주례를 한 것보다 더 기대되고 설렌다. 많은 분의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린다. 김양옥 한국출산행복진흥원장

[경기시론] 기도는 마지막 순서

일본의 역사연구가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로마가 오랫동안 강성했던 이유는 시민들에게 빵과 안전을 보장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공화정이나 제정을 불문하고 로마 권력 엘리트의 최우선 과제는 시민이 굶주리지 않도록 이탈리아 또는 이집트의 밀을 확보하는 것, 그리고 안과 바깥으로 시민안전을 확실하게 보장하는 일이었다. 빵과 안전은 사회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최우선순위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맹자는 항산(恒産)이 있어야 항심(恒心)이 있다고 하였다. 좀 속되게 풀어보자면 백성은 먹을 게 있어야 나라에도 충성한다는 뜻이다. 지금도 나라 살림을 풍족하게 만들어 고르게 혜택이 가게 하는 경제와, 시민 생명과 재산, 기본권을 보장하는 안전은 대부분 사회가 유지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두 축일 것이다. 경제와 안전은 전혀 다른 별개 요소가 아니다. 경제가 넉넉해지면 안전을 더 생각하게 되고 확보된 안전은 경제 활성화로 순환된다. 안전의 중요성은 안전 확보가 시민사회의 생명보호로 직결되는데 그치지 않고 관광과 수출 등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에 있다. 가령 우리나라는 안전한 한국(Safe Korea)으로 세계인에게 각인되어 있다. 늦은 밤까지 돌아다녀도 위협적 상황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거리, 탁자 위에 휴대전화를 놓고 잠시 자리를 비워도 분실되지 않는 카페 등에 대해 많은 외국인 친구들이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정책 결정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는 선명히 보인다. 가령 사고가 잦은 도로 위에 안전시설물을 설치하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다. 그전에 위험한 도로를 지목해 내는 것은 더 시급하다. 중앙분리대가 미관상 보기 싫다고 설치를 반대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행위다. 도로 위 과속단속카메라 설치를 반대하는 것 역시 그렇다. 음주운전은 말할 것도 없고 어린이 보호구역에서의 불법 주정차와 속도위반은 위험천만한 것으로 시민사회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 된다. 태풍의 무자비함을 알면서 미리 대비하지 않음은 만용이다. 공사 현장이나 공장에서의 안전준칙 준수는 최소한의 기본이다. 차보다는 사람이, 편리함보다는 안전이 우선이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08년 우리나라 교통사고 사망자수는 5천870명이었다. 최근 2018년 사망자수는 3천781명으로 10년 동안 2천 명 이상 감소하였다. 한 해 2천 명 이상의 소중한 목숨을 살리게 된 것은 경찰을 비롯한 법집행기관과 지자체, 유관기관, 여러 시민단체의 끊임없는 노력과 헌신에 힘입은 바가 크다. 하지만 2017년 기준 우리나라 재난안전사고 사망자는 2만7천154명에 달하여 OECD 36개 국가 중 안전수준으로는 26위의 하위권에 속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행정안전부 등 정부에서는 제4차 국가안전관리기본계획을 수립하고 2020년부터 5년간 재난안전사고 사망자를 40% 감축할 계획이다. 그런데 정부 주도의 정책실행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민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개개인의 절실한 깨달음과 실천이다. 우리의 존재가 우연적인가 필연적인가라는 질문은 철학과 과학의 첨예하고도 오랜 논쟁거리이다. 유물론자와 유신론자, 진화생물학자와 양자물리학자가 각각 다르게 대답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사회 안전을 확고히 하고자 우리는 끊임없이 궁리하고 실행해야 한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을 새삼 환기하지 않더라도 개개인 모두 안전에 대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한 후에야 최종적으로 유일하게 남은 한 가지가 오직 간절한 기도여야 하기 때문이다. 김성훈 손해보험협회 중부지역본부장

[경기시론] 리더일수록 정신건강을 더 잘 유지해야 한다

우리 삶은 유한하다. 그 이유는 태어난 이후 몸은 일정기간 성장을 한 후 노화의 과정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생로병사가 이를 상징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건강하게 살고 싶어 한다. 죽을 때 죽더라도 병에 걸려 고생하다 죽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운동을 하고 영양제를 섭취하고 몸에 나쁜 것은 피하고자 노력한다. 이런 노력을 하지 않으면 몸은 점점 노화가 심해지고 이는 결국 질병으로 연결된다. 이런 신체건강과 동일하게 정신건강도 적용받는다. 정신건강도 유지에 필요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정신은 쇠퇴하고 이는 각종 정신질환을 포함하여 신체질환까지도 연결된다. 정신건강에 큰 어려움이 오면 판단력이나 추진력 등 어떤 상황에서 일을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생긴다. 개인에게야 시행착오 정도로 삼으면 된다. 그러나 회사나 집단, 사회, 국가를 책임지는 리더들이 정신건강에 심각한 어려움이 생기면 상황은 달라진다. 본인의 판단과 결정능력에 장애가 생기면 책임지는 그룹도 영향을 피할 수 없다. 따라서 리더들의 정신건강 유지는 옵션이 아니라 필수다. 외국은 회사의 중요임원이 정신과적 상담을 받는 것을 권유하고 비용도 지원한다. 미국의 대통령은 주치의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를 두고 있고 심리상담전문가도 필요 시 활용한다. 이는 이들이 지휘하는 그룹의 안녕을 위해서다. 우리나라는 반면에 이런 상담이나 치료를 받는 것을 부정적으로 여긴다. 이런 행위에 대해 정신력이 약하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어 정신건강유지를 위한 노력을 잘 하지 않고 버틴다. 기껏해야 취미나 술 정도로 푸는 현상이 지배적이다. 과로사가 발생하는 이유도 신체적 과로에 정신적 과로가 합쳐지기 때문이다. 몸이 힘들어도 정신적 고통이 경감되면 우리는 더 잘 이겨내고 버틸 수 있다. 그렇다면 정신건강을 유지하는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우리 정신이 받는 스트레스는 의식적 스트레스와 무의식적 스트레스가 있다. 의식적 스트레스는 내가 왜 정신적 고통을 받는지 내 자신이 잘 아는 경우다. 이런 스트레스는 정기적 상담을 통해 자신의 감정과 생각들을 이야기하고 때론 객관적으로 판단도 해보면 잘 대처할 수 있다. 두 번째로 무의식적 스트레스가 있다. 이는 본인의 의식적 행동과 생각에 큰 영향을 주고 있으나 정작 본인은 모르는 경우이다. 대개는 어릴 적 받은 큰 충격이나 트라우마가 많다. 또한 본인이 살아온 삶에서 조금씩 쌓여온 스트레스가 모이고 응축되어 형성되는 경우가 있다. 이런 무의식적 스트레스에 현실에서 발생한 의식적 스트레스가 절묘하게 합쳐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대개 엄청난 감정을 폭발시킨다. 대개 이성을 마비시킴으로 정상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에 매우 심각한 어려움을 야기한다. 이런 무의식적 스트레스는 우리가 매일 식사 후 이를 닦듯이 꾸준한 자기 정신분석이 필요하다. 심리상담을 통해 자신의 과거로 돌아가 본인이 가진 깊은 트라우마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너무 빨리 돌아가는 바쁜 세상이지만 적어도 리더들은 이런 과정을 겪어야 한다. 저자도 정신과 레지던트 시절 오랜 기간 정신분석을 받았고 그때 깨달은 나에 대한 무의식과 관련된 문제 해결은 지금까지도 도움이 된다. 무의식적 스트레스가 해결되면 사람은 거듭난다. 본인이 본질적으로 달라짐으로 세상은 달리 보인다. 어떤 의식적 스트레스가 왔을 때 적어도 객관적 판단력이나 분별력이 무의식적 스트레스에 의해 영향을 심각하게 받는 것은 막을 수 있다. 이는 본인들이 책임지는 그룹에도 좋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리더들의 정신건강은 그래서 매우 중요한 것이다. 정재훈 한국정신보건연구회 정책이사

[경기시론] 당신은 특별한 사람

뉴욕의 어느 고등학교 교사가 자신이 담임하고 있는 3학년 학생들에게 상을 주기로 했다. 교사는 먼저, 학생들을 한 명씩 앞으로 나오게 하고는 차례차례로 그 학생이 반에서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가를 설명해주었다. 그리고는 모든 학생들 하나하나에게 파란색 리본을 가슴에 달아 주었다. 그 리본에는 황금색 글씨로 당신은 내게 특별한 사람입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렇게 학생들에게 칭찬을 한 교사는 한 가지 계획을 더 갖고 있었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빠짐없이 세 개의 파란색 리본을 더 주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그 리본을 갖고 가서 주위 사람들에게 달아 주라고 말하면서 일주일 뒤에 그 리본을 전달한 결과를 써내는 것이 숙제라고 말했다. 그중 한 학생은 학교 근처에 있는 회사의 부사장을 찾아갔다. 왜냐하면 그 부사장이 그 학생의 진로 문제에 대해 친절하게 상담을 해 준 적이 있었다. 그 학생은 부사장의 옷깃에 파란 리본을 달아주면서 감사의 말을 드린 후에 두 개의 리본을 더 드리면서 말했다. 이 리본을 부사장님께서 존경하는 특별한 사람에게 달아주시고 나머지 한 리본은 그 사람의 특별한 사람에게 달아 주시면 좋겠다하고 정중하게 말하면서 그 결과를 일주일 후에 자신에게 꼭 알려달라고 말했다. 그날 늦게 부사장은 그의 사장에게로 갔다. 그런데 사장은 직원 모두가 지독한 인물이라 믿고 있는 사람이었다. 부사장은 사장에게 다가가 사장이 가진 천재성과 창조성에 대해 진심으로 존경을 표시했다. 사장은 무척 당황하는 듯했다. 사장은 놀라워하면서도 기쁘게 받으며 말했다. 부사장은 파란 리본을 사장의 가슴에 달아 주고 나서 나머지 한 개의 리본을 더 꺼내어 사장에게 드리며 말했다. 이 리본을 사장님께서 소중히 여기는 특별한 사람에게 달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간 사장은 열일곱 살 난 아들을 불러 앉혀 놓고 말했다. 오늘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어. 부사장이 내 방에 들어와 내가 대단히 창조적이고 천재적인 인물이라면서 이 리본을 달아 주었단다. 그는 당신은 내게 특별한 사람입니다라고 적힌 이 리본을 내 가슴에 달아 주었어. 그리고는 다른 리본을 하나 더 건네주면서 내가 특별히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에게 달아 주라는 거야. 누구에게 이 리본을 달아 줄까 생각하다가 널 생각해 내었지. 그리고 말했다. 난 사업을 하느라 하루 종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그래서 집에 오면 너한테 별로 신경을 쓸 수가 없었어. 하지만 오늘밤 난 너와 이렇게 마주 앉아서 네게 이 말을 꼭 해 주고 싶었어. 너는 내게 누구보다도 특별한 사람이야. 난 널 사랑한다. 놀란 아들은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아버지를 바라본 아들이 울먹이며 말했다. 아빠, 사실 저는 내일 자살하기로 결심하고 있었어요. 아빠가 절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거든요.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어요. 이 감동적인 이야기는 헬리스 브리지스(Helice Bridges)가 당신은 특별한 사람(Who You Are Makes A Difference)란 이란 제목으로 쓴 글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곧잘 자신만이 특별한 사람이며 따라서 존경받고 축복받아야만 할 사람이라 생각한다. 남을 진정으로 존중할 때 남으로부터 진정으로 존경을 받는 귀한 인물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들의 자녀들에게 너는 나에게 특별하고 소중하단다라고 말해보자. 안해용 경기도교육청 학생위기지원단장

[경기시론] 추석! 충격 그 자체…

매년 흩어졌던 가족이 모일 수 있는 명분이 있는 명절 중 하나가 추석이다. 필자의 할머니께서 불린 쌀을 가지고 방앗간을 다녀오시면 우리 4남매는 그때부터 송편 빚기를 시작했다. 이런 풍경이 점점 사라지는 요즘. 20년 후 홀로 지내는 가족이 더 많아진다면 100년도 되기 전에 우리 대한민국의 명절 문화는 어떻게 될까? 2009년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1.14명이었다. 그런데 10년도 안 돼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이 1명도 아닌 0.98명이 됐고 계속 줄어들고 있다. 현재 인구를 유지하려면 합계출산율이 2명 이상은 돼야 하는데 경제협력기구인 OECD 36개 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0명대다. 통계청 장래인구 추계에 따르면 출산율이 계속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하니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심히 걱정이 아니 될 수 없다. 필자의 걱정을 뒤로한 채 명절인사를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지하철 안이다. 아이들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젊은이들은 눈에 띈다. 휴대폰을 뚫어지라 보는 사람, 휴대폰에 연결된 이어폰을 낀 사람, 휴대폰의 엄지족과 검지족 등 대부분 휴대폰과 자신의 몸이 하나가 된 것처럼 보이는 지하철 문화. 각자의 이유로 어디론가 향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매일 만나는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저 사람들을 향해 축복의 언어를 하고, 각자 맡긴 일들에 가치(價値)와 의미(意味)를 부여해 주며, 무한한 겸손(謙遜)과 배려(配慮)적 순종(順從) 그리고 인내(忍耐)를 가지고, 극과 극이 아닌 타협하고 존중(尊重)하는 자세로, 대치(對峙)가 아닌 협력(協力)하면 어떨까? 필자는 두 눈으로 세상을 보며 오십여 년을 살아왔으나 지금은 한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고 있다. 필자가 두 눈으로 보는 세상을 한눈으로 보게 됐을 때 이 세상에 큰일이 일어날 줄 알았다. 하지만 세상은 변한 것이 없다. 나의 불편함만 있을 뿐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있다. 플라톤은 육체의 눈이 쇠퇴하면 정신의 눈이 밝아진다고 했다. 무언가를 잃었다면 그 대신 다른 능력에 눈 뜨게 된다는 말이다. 필자는 분명 한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의 소리에 경청(敬聽)할 수 있는 따뜻한 가슴이 더 열린 것 같아 감사(感謝)하다. 육체(肉體)는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희망(希望)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방법(方法)이 있음을 깨달았으니 말이다. 필자는 모처럼의 휴가로 머리에 가을을 입히고 있다. 늘 그 모양만 유지할 수 없고 어느 때는 파격적인 모습을 하고 싶은 가을이다. 온갖 즐거움이 번지는 계절에 우리 스스로의 욕심으로 인한 결과로 100년 후 대한민국이 사라지고 그나마 존재하는 국민은 명예나 돈의 노예가 돼 있다면. 현세(現勢)를 보라. 모기를 보고 칼을 뺀다는 뜻의 견문발검(見蚊拔劍)처럼 사소한 일에 크게 화를 내며 덤비고, 바늘만 한 것을 몽둥이만하다의 침소봉대(針小棒大)처럼 작은 일을 크게 불려 떠벌리고, 자기 논에 물 대기의 아전인수(我田引水)처럼 자기에게만 이롭게 되도록 생각하거나 행동하고, 윗사람을 농락해 권세를 마음대로 하는 지록위마(指鹿爲馬)처럼 모순된 것을 끝까지 우겨서 남을 속이려는 짓을 하는 것으로. 진실, 좀 더 기다려보면 진실이 진실 될까? 그렇다. 삶을 들여다보라. 계속 들여다보노라면 사람이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이 사람들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것이 삶이지 않을까? 김양옥 한국출산행복진흥원장

[경기시론] 인간의 본성은 원래 이기적인 것이다

아기는 태어난 이후부터 본인의 본능에 충실한 반응을 보인다. 배고프면 울고 기분이 좋으면 웃는다. 자신이 배고플 때 음식을 빼앗아 가면 바로 울면서 분노를 표현한다. 원숭이 실험에서도 배고픔이 극도로 심한 상황이 되면 부모원숭이가 아기원숭이보다 자신들의 배고픔을 우선시한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의 유명한 생체실험에서도 이는 드러났다. 모성애가 가득한 엄마에게 아기를 안겨서 방으로 넣었다. 그 후 방을 뜨겁게 달군다. 엄마들은 최대한 아기를 보호하려고 몸부림을 쳤다. 모성애가 발휘된 것이다. 그런데 거의 죽음 직전의 상황까지 가면 엄마들이 혼미한 상태에서 아기를 바닥에 놓고 위에 올라섰다. 모성애도 강력한 본능이지만 자기보호 본능이 그보다 더 강력한 것이다. 이런 반응들을 볼 때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자신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쪽으로 자신의 본성을 발휘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동물은 이런 본성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반면 인간은 동물에 비해 전두엽이 더 발달되면서 판단력, 계산능력, 자기조절능력 등 이성이 발달했고 이런 능력을 통해 자신의 본성을 이겨내려는 노력을 했다. 그런데 전두엽의 역할은 자신의 본성을 이겨내는 쪽으로만 발달한 것은 아니다. 대부분 전두엽은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논리를 개발하는 쪽으로 능력을 발휘한다. 이런 논리가 마련되면 스스로 마음에 방어기제가 만들어져 자신의 이기적 행동을 합리화한다. 또한 어떤 경우에는 자신도 모르게 선택적 비집중(selective inattention)을 한다. 마음에 불편한 어떤 행동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무시하고 간과함으로 그 일이 발생한 것 자체를 의식적으로는 잘 모르는 방어기제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인간은 자신을 합리화하고 자신의 본능에 충실한 채 살아간다. 법과 제도, 종교, 철학, 사회윤리는 이런 인간의 본성을 경계하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인간에 대한 불신을 전제로 만들어진 것이 법과 제도이다. 선을 넘는 이기주의는 처벌과 규제를 통해 경고하는 것이다. 반면 종교나 사회윤리 등 사회적 가치관은 인간의 본성을 이겨내기 위한 명분을 제공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전두엽이 본성을 합리화하기보다는 이겨내고 승화시키는 쪽으로 힘을 발휘하도록 하는 또 다른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주로 논리만 만드는 전두엽에 강력한 감정을 연결해 주어야 한다. 감정은 뇌의 측두엽에서 주로 발생한다. 이 측두엽이 자극되어야 한다. 측두엽이 전두엽과 연결될 때 감정과 관련된 논리와 이성이 만들어진다. 분노가 자극되면 이성은 그 분노를 표출하는 쪽으로 만들어진다. 반면 자신이나 누군가에 대해 감동, 사랑, 포용 등의 긍정적 경험을 하면 전두엽은 이런 감정에 대한 행동을 하는 쪽으로 힘을 발휘한다. 사회가 이런 분위기가 되려면 중요 리더들이 이런 감정들을 사회구성원들에게 부어주어야 한다. 사랑, 용서, 포용, 희생의 감정을 부어주어야 한다. 남아공의 만델라 대통령이 그러했고, 김대중 대통령이 그러했다. 이들은 자신들을 죽이려 했고 핍박했던 정적들을 권력을 잡은 뒤 예상과 달리 포용하고 용서했다. 조선시대의 정조대왕은 자신을 수차례 독살하려 했던 노론들을 이들도 조선을 구성하는 한 축이라며 용서했다. 자신의 본성을 이겨내고 승화시키면 이는 주변으로 퍼진다. 이것이 사회의 분위기를 형성하면 이는 문화가 되고 이런 문화가 뿌리 깊게 형성되면 이는 사회의 성숙과 발전으로 연결된다.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면서도 힘든 이유이기도 하다. 정재훈 한국정신보건연구회 정책이사

[경기시론] 만세일계의 일본과 민주공화국의 한국

최근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종료키로 한 사건으로 한국과 일본, 미국에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런 시기에 다시 관심의 두게 하는 책이 루스 베네딕트가 쓴 국화와 칼이다. 미국 문화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는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접어든 1944년 6월 미 국무부의 위촉으로 일본 문화의 틀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연구 결과물을 담은 책이 1946년 발간한 국화와칼이다. 베네딕트는 첫머리에서 일본인은 미국이 지금까지 전력을 기울여 싸운 적 가운데 가장 낯선 적이었다고 했다. 민중의 소리 이완배 기자는 이 책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일본인은 최고로 싸움을 좋아하면서도 얌전하고, 군국주의적이면서도 탐미적이고, 불손하면서도 예의 바르고, 완고하면서도 적응력이 있고, 유순하면서도 귀찮게 시달림을 받으면 분개하고, 충실하면서도 불충실하고, 용감하면서도 겁쟁이이고, 보수적이면서도 새로운 것을 즐겨 받아들인다.라며 일본의 이중성을 강조하였다. 일본의 이런 이중성은 왜 탄생한 것일까? 베네딕트는 그 이유를 일본인들이 각자가 알맞은 위치를 갖는다(take ones proper station)는 명제를 너무나 중시하기에 생긴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베네딕트에 따르면 일본은 궁극적으로 사회 구성원들 모두가 각자의 알맞은 위치를 지켜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그래야 평화가 깨지지 않는다. 그래서 각자 알맞은 위치를 지키는 것은 일종의 우주의 질서다. 천민은 천민의 위치에서, 사무라이는 사무라이의 위치에서, 농민은 농민의 위치에서 절대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는 왕조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이른바 만세일계(萬世一系), 일본의 왕통은 영원히 같은 혈통이 계승한다는 뜻이다. 아무리 사무라이의 권력이 강해도 그들은 왕이 되지 못했다. 그게 사무라이로서 지켜야 할 각자의 위치였기 때문이다. 쿠데타로 집권한 사무라이들이 왕이 되지 못하고 쇼군(將軍)이라는 이상한 직책으로, 막부(幕府)라는 이상한 정권 시스템을 운영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본이 왜 전쟁 이후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에 진심으로 참회하지 않았는지도 이해가 된다. 그들은 우리가 미국에 졌지 한국에 진 게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본은 지금도 미국이 최상위 국가, 일본이 그다음, 한국이나 다른 아시아 국가들은 그 아랫것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일본과 살아온 역사가 다르다. 민중들의 저항으로 역사를 바꾸었고, 새로운 시대를 시작한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은 민중들에 의해서 시작하였다. 그래서 시끄럽기도 하고 다양한 저항을 보인다. 이것이 민주주의이다. 그런 의미로 대한민국은 일본보다 민주주의 지수가 높은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것이 진정한 민주주의의 정신이다. 그러기에 우리 미래의 세대들에게 이번 기회로 역사의식과 민주시민 의식을 교육하여 우리가 걸어온 민주주의를 이루어 온 역사에 자부심을 느끼도록 하여야 한다. 일본에 대한 비판에서 이제 우리가 걸어온 역사로 나아가서 미래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출발이 되어야 한다. 안해용 경기도교육청 학생위기지원단장

[경기시론] 세상아~ 詩 어때?

자본주의 시대라 돈 버는 것과 관련되는 직업들 뿐이다. 대학의 학과조차도 거의 그렇다. 인문학의 위기가 아니라 인성의 위기이다. 돈이면 되는 현대인의 물들어가는 삭막한 정신에 치유(healing)와 출산의 행복을 줄 수 있는 무언가가 절실하다 하겠다. 필자는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주변의 승객들을 바라본다. 거의 스마트폰을 한다. 대부분 휴대전화를 통해 그 무언가 다양한 콘텐츠를 즐기는 모습이다. 영상매체의 발달이 우리의 감각적 이미지를 몰입하게 한다. 시대가 변화하는 불확실성의 시대, 스스로 AI에게 인간의 역할을 내주는 위기감의 시대, 개인주의, 1인 가족 사회인 혼라이프의 시대, 사람들과 직접 소통이 줄어드는 시대, 아베의 발언과 북한의 미사일 등으로 국민이 불안한 시기, 이럴 때일수록 예술문화 특히 필자는 시의 사명을 이야기하고 싶다. 필자가 김춘수 꽃, 유치환 행복, 서정주 국화 옆에서 등을 자연스럽게 읊조렸던 때를 떠올려보니 그때 말고는 외운 시가 없다. 아니 생각하지 않았다는 표현이 맞다. 필자는 버스정류장이나 지하철 등 시민의 시를 읽으며 입가에 미소를 진다. 삶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나아가 결혼식이나 장례식 등 생활 속 각종 행사에서 시낭송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면 어떨까? 격조와 품위있고 품격있는 축사나 인사말을 시로 한다면 치유(healing) 되고, 출산이 행복일 수 있는 사회분위기 조성에 크게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시(詩, poetry)란 마음속에 떠오르는 느낌을 운율이 있는 언어로 압축하여 표현한 글이다. 최근에는 시낭송 대회도 많이 열리고, 시낭송가의 활동도 활발해졌다. 참으로 바람직한 현상이다. 시가 우리의 일상 가까이 다가와 우리도 모르게 우리의 삶 속에 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많은 사람이 비교적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시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우리 삶의 현장에서 나온 자작시라면 더 진솔하게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원래 시는 노래다. 그러니까 생활 속에서 짧은 여유시간에 감상할 수 있는 노래가 필요한 것이다. 감동과 깨우침을 줄 수 있는 노래, 사회의식을 반영한 노래, 나의 아픔과 슬픔 대신 울어줄 수 있는 노래, 공감하며 위로해 줄 수 있는 노래, 감성과 지성을 조화롭게 만들어 주는 노래, 우리의 가슴과 머리를 동시에 만족할 수 있는 노래, 따뜻한 마음과 사랑이 묻어나는 노래, 삶의 진지함과 진정성이 풍기는 노래, 화를 누그러뜨릴 수 있도록 포근하게 안아주는 노래, 소통으로 융합할 수 있는 노래, 특히자기 성찰의 노래가 필요하다. 필자에게 있어 시란 정신적 물이다. 우리 정신은 무언가로 채워지고 싶어 한다.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이 있다. 물질 소유만을 가치로 두고 더 많이 가지려고 정신이 없다. 물질을 따라 달리는 마라토너에게 들여 주는 물 한 통. 이는 숨을 고르며 다시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여유이다. 시에 감정을 토로하며 필자 자신은 시로 다시 태어났다. 또한 스트레스로 인한 삶의 여유를 잃었을 때 시 덕분에 숨을 쉬는 구멍이 되었다. 시는 하루의 뒤안길인 밤에 내 본질과 마주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필자는 오늘만이라도 출산이 행복한 세상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함민복의 눈물은 왜 짠가라는 시를 통해 감동을 나누고 싶다. 김양옥 한국출산행복진흥원장

[경기시론] 日 아베 정권과 극우집단의 집단심리와 대처방법

정재훈 최근 일본정부의 행동에 대해 많은 대한민국의 국민이 당황하고 분노하고 있다. 시위도 하고 불매운동도 한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일본의 아베 정권과 극우집단의 의식적/무의식적 집단 심리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함께 이를 고려한 대응을 해야 한다. 과거 2차 세계대전 우리는 일본의 패망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역사를 좀 더 살펴보면 당시 일본은 미국을 포함 연합군에 밀리긴 했어도 패전을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 마지막까지 미국에 대한 기습공격을 준비했고(잠수함을 몰래 미국 해안으로 보내 세균전을 시도하려 했다) 일본에 미군이 상륙하면 엄청난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시간을 끌면 미군도 피해를 크게 볼 것임으로 미국 내 반전 여론이 세지고 미국과 합의함으로써 아시아에서 일정부분의 지분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이런 일본의 생각에 공포감을 심어주고 항복을 유도한 것은 미국이 투하한 핵폭탄이었다. 결국 일본이 항복은 했지만 만약 핵폭탄만 없었으면 자신들은 지금쯤 아시아의 맹주로 자리 잡았고 중국이나 한국은 감히 넘볼 수 없는 일본의 번영을 유도할 수 있었을 것으로 믿고 있다. 다른 나라들도 식민지를 확보했던 시절임으로 자신들의 행동은 당시 세계를 선도하던 국가들처럼 정당했다고 생각한다. 결과는 대가를 필요로 함으로 자신들이 비난받는 행위들은 어쩔 수 없는 희생이었다고 정당화한다. 국가가 중요하고 일본이 중요함으로 인권유린이나 타인의 희생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지금 일본이 시도하는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는 사실 과거 일본이 시도했던 일본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것이다. 이런 것이 되면 자신들의 아버지나 가족 등 전범으로 몰렸던 사람들의 명예가 회복된다고 믿는 것이다. 이는 일본의 극우집단이 가지는 집단적 의식구조이다. 그들끼리는 공유되고 동의가 되는 것이다. 이들은 목표를 달성하고자 철저히 세계를 지배하는 미국과 친하게 지내면서 그들을 이용한다. 두 번째로 무의식적 방어기제에 반동형성(reaction formation)이 있다. 무의식적으로는 매우 싫어하지만 의식적으로는 사랑을 느끼고 좋은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는 싫어하는 마음을 표현하면 심한 처벌이 오기 때문에 실제 감정을 감추고자 발생한다. 일본의 역사에서 보면 전쟁에서 지면 철저히 상대에게 복종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방이 바다인 여건상 도망갈 수도 없고 결국 모든 가족과 가문들이 멸족을 당하기 때문이다. 상대에 대한 분노를 조금이라도 표현하면 바로 들키고 심한 보복을 당하기 때문에 철저히 감춘다. 이를 위해 겉으로는 매우 친절하고 절대 속마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무의식은 인간의 의식을 지배하고 행동을 하게 유도한다. 지금 상황은 일본의 아베 정권과 극우집단의 집단적 의식에 있는 생각과 일본민족의 집단적 무의식에 있는 분노가 맞물린 결과인 것이다. 한국은 철저히 이를 알고 대응해야 한다. 일본민족의 집단 무의식에는 분노뿐만이 아니라 두려움, 공포도 있다. 일본 아베 정권이 공포를 느끼는 요인들을 활용하고 이용해야 한다. 미국의 원자폭탄처럼 한국의 강력한 한방이 우선 필요하다. 단계적 대응은 더욱 분노를 자극할 뿐이다. 매우 강력한 대응을 초기부터 해야 한다. 또한 미국이 한국에 대해 가진 의구심을 일본에 가지도록 해야 한다. 한국의 기독교계 및 친미인사들이 전 방위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공포를 과거 미국이 아닌 한국에서 느끼고 미국이 일본정부의 미국에 대한 분노를 알아챘다고 느낄 때 이 위기는 빨리 끝날 것이다. 정재훈 한국정신보건연구회 정책이사

[경기시론] 세련된 분노의 기술

흔히 남에게 상처주지 말라는 말을 많이 한다. 남의 눈에서 눈물 나게 하면 자기 눈에서는 피눈물이 나올 것이라는 말이 있다. 의도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고자 하는 악의적인 행동은 지탄을 받아야 마땅하다. 일본이 우리에게 가하는 요즘의 행태는 그 어느 때보다 악의적인 공격이어서 국민의 분노가 나날이 커지고 있다. 개싸움은 우리가 할 테니 정부는 당당하고 품격 있게 나아가라고 했던 한 네티즌의 말이 화제와 공감을 불러일으키면서 일본산 불매 운동은 식품의 성분까지 꼼꼼히 따지는 상황까지 가며 나날이 디테일의 힘을 발휘하고 있다. 사람살이에서 일부러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려고 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어찌하다 보니까, 서로 잘해보려고 하던 와중에 예기치 않은 일도 생기고 견해 차이로도 고민할 수 있다. 그러다가 때로는 싸워야 할 일도 생기고 당장 문제로 보았을 때 나쁜 사람이라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그런 것을 인정하고 직장생활을 하면 훨씬 마음이 편안해지고 조바심이 덜 난다. 남에게 상처를 주는 일 못지않게 자신에게 스스로 상처를 입히는 일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적당히 싫은 소리, 증명할 수 없는 일에 대한 부당한 대접에 대해서 적당히 둔해지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화를 내는 일을 감정적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일본에 대한 우리의 대처가 감정적이라고 할 수 없는 것처럼 프로의 세계에서 할 말은 하는 것이 세련된 자세다. 할말도 못 하고 속으로 끙끙 앓다가 업무에 지장을 가져오면 절대 합리적인 행동이 아니다. 조직 생활은 아주 치열한 의견 대립도 있을 수 있고 남들의 의견이 마음에 들지 않아 화가 날 때도 있다. 하지만 당당하지만 품위를 지키며 화를 내는 기술의 디테일이 필요하다. 낮은 목소리, 분명한 의견 표명, 감정을 빼고 팩트만 이야기하며 평정의 감각을 유지하면 된다. 상대가 아무리 목소리를 높이고 흥분해서 소리를 지르고 달려들 듯해도, 내 쪽에서 이성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어쨌든 일을 하고자 계속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 상대라면 낯부끄러운 상황까지 가서는 곤란해진다. 낮고 온화한 목소리로 한결같이 응수한다면 그 영향은 상대에게 바로 미쳐서 그 흥분을 한 단계 낮출 수 있다. 상대가 흥분할수록 나는 더 차분하게 예의를 지키며 대응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싫은 소리 안 하고 좋게 넘어가서 해결되는 게 가장 좋지만 나쁜 동료에 속하는 사람의 특징 중 하나는 대부분 무슨 일을 둔감하고 쉽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자신에 대해 자신감이 과도하고 잘났다 생각하며 되는 대로 행동하는 이들은 대체로 언변이 좋고 어떤 상황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고 웅변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이러면 그 사람이 옴짝달싹할 수 없는 팩트를 잡는 게 중요하다. 실수와 오류의 패턴을 찾으면 더욱 좋다. 모든 문제 동료가 이와 같은 범주에서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라도 아는 팩트를 가지고 접근하면 빠져나갈 구멍이 많지 않을 것이다. 이런 기회를 잡으려면 준비가 필요하다. 참으면서 속만 부글부글 끓일 게 아니라 냉정하게 관찰하고 자료를 모아 준비해야 한다. 참으면서 감정만 키우고 일도 제대로 못 하는 것보다, 공개적인 장소는 피해 개인적으로 감정을 최대한 절제하고 담당하고 엄중한 톤으로 말한다면 최소한 나에게만큼은 함부로 하지 못할 것이다. 전미옥 중부대학교 교수

[경기시론] 사익과 공익 사이, 집단이기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시민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문화들이 속속 생겨나기 시작한다. 밀집된 상가거리, 외부와 소통이 없는 초등학교, 아파트관리를 둘러싼 복잡한 의견들, 그리고 아파트 값에 대한 높은 관심과 거침없는 행동 등등. 이 중 요즘 많이 생각하는 문제가 집값 제일주의라고도 부를 수 있는 아파트 값에 대한 관심이다. 자신이 사는 아파트 값을 올려주는 사업이나 정책은 무조건 좋고, 그 반대는 나쁜 사업이고 정책이다. 심지어 그 나쁜 사업은 저지하여 가격 하락을 막아야 한다. 모여서 행동한다. 그 행동을 조직하고자 섬뜩한 선동도 주저함이 없다. 쓰레기 대란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은 알 바 아니고, 우리 동네에 소각장이나 재활용시설이 들어오면 안 된다. 장애인 가족의 아픔은 그들의 문제일 뿐 집값을 떨어뜨리니 용납할 수 없단다. 필자가 사는 동네도 몸살을 심하게 앓았던 적이 있다. 몇 년 전 인근 지자체에서 장례시설을 짓겠다고 하니 마을 전체가 해골이 그려진 무서운 현수막으로 덮인 적이 있었다. 아이들 등교도 거부하는 행동을 보면서 안쓰러울 뿐이었다. 사익을 넘어 집단의 이익으로 나갔으나 철저하게 집단 안에 생각이 멈추어져 있으니 더 무섭다. 요즘 거리 곳곳에 지방의원이나 국회의원들이 이름과 함께 그 활동을 자랑하는 현수막을 걸어 놓는다. 주민의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그 수고에 박수를 보내고 응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거북한 내용이 적지 않다. 얼마의 예산을 따와서(?) 무슨 시설을 지었다는 자랑이 점점 많아진다. 80억 확보, ○○학교 체육관 건립, 50억 확보 ○○동 복지관 설치 등등. 유권자인 지역주민을 위해 주민이 원하는 시설이나 민원을 해결할 책임을 능력껏 수행하고, 그 성과를 주민에게 알리는 활동은 자연스런 정치과정일 것이다. 다만, 우리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서 좀 더 큰 공동체를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한정된 예산을 나누어 분배하는 일이 정치의 꽃이라 할 수 있을 텐데, 나와 우리 동네만이 유일한 기준이 되어 의정 활동을 하는듯하여 불편하다. 단기적으로 보이는 시설이나 인프라 유치만이 자랑거리가 되고, 긴 안목으로 추진하는 정책이나 사업이 뒷전으로 밀려나지는 않는지 우려된다. 다른 한편으로 동네 민원을 제기하고 여론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 대해서도 잘 살펴봐야 한다. 동네 일에 자주 나설 수 있어 목소리를 높여 왔던 사람들의 민원도 중요하지만, 생활에 파묻혀 동네 일에 나설 수 없는 주민들의 어려움도 함께 파묻혀 뒷전으로 밀리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마을 일은 시간을 자유롭게 낼 수 있고, 일정한 경제력을 갖춘 사람들이 주도하는 현실이다 보니, 직장을 다니는 사람이나 청년과 청소년의 의견을 반영할 통로가 없다. 생활이 어려워 동네 일에 나설 수 없는 주민들의 목소리는 묻히고, 소수 의견이 과잉으로 대표되고 있다. 무릇 정치가 사회적 약자를 감싸 안아 소외되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면, 좀 더 세심하게 마을 주민의 의견을 경청하고 수렴할 수 있어야 한다. 마을에서조차 다수 주민의 이익보다는 소수 적극적 주민의 이익이 우선되지는 않는지 살피고, 또 살펴볼 일이다. 팽배한 집값 제일주의에 갇혀 있는 시민의 생각도, 우리 동네 울타리에 안주하는 정치인들의 업적 자랑도, 마을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소수의 과잉 대표성도 사익과 집단이기에서 벗어나서 올바른 공익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유문종 수원2049시민연구소 소장

[경기시론] 마당을 나온 암탉

마당을 나온 암탉이란 영화는 원래 황선미 작가가 2000년에 먼저 동화로 만든 것을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이 내용은 현재 초등학교 5학년 읽기 교과서에도 수록되어 있다. 주인공인 잎싹이란 양계장 암탉은 자신의 알을 품고 싶은 꿈을 꾸며 마당으로 나가는 꿈을 가진다. 그래서 그는 3일을 굶는 방법으로 나가려고 한다. 양계장에 수많은 닭이 살고 있었지만 양계장 밖 마당으로 나가고 싶어 하는 닭이 없다. 아니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해도 실천하고자 노력하는 닭도 없을 것이다. 양계장은 오늘 우리들의 삶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여기에 나오는 참새 짹이 잎싹에게 하는 말처럼 여기 있으면 먹여 주고 재워 주는데 그냥 알만 낳아주면 되는데 왜! 마당으로 나가려고 하는지 모르겠어라는 말이 가슴에 남는다. 우리는 어느 순간 길들어 가고 있다. 안전하고 안락한 곳에 길들어 모험과 도전을 잊어버렸다. 그래서 삶의 변화와 성장을 찾아볼 수가 없다. 오늘날 학교의 역동성이 부족한 이유일 것이다. 교육공동체인 학생들에게도 꿈을 잊고 익숙함에 젖어 좌절과 절망으로 학습이 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다. 또한 교사들도 학습 된 무기력으로 새로운 변화와 도전을 하지 않는다. 안정된 직장생활에 머물러 있으면서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다. 인생의 변화는 꿈을 꿀 때 시작된다. 황당한 꿈일지라도 꿈을 꾸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고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 나이와 상관없고 환경도 상관없다. 학생들이 꿈을 꾸지 않는 것은 어른들이 꿈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잎싹에게는 마당으로 나가는 것이 꿈이었다면 우리들의 꿈은 무엇인가? 잎싹은 죽을 고비를 넘기며 양계장 밖으로 나와 그의 꿈인 마당으로 나왔지만 그가 생각한 마당이 아니었다. 이 영화의 제목이 마당을 나온 암탉이다. 잎싹은 마당을 나오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는 양계장 밖으로 나와 마당에 살고 싶어 했던 암탉이다. 그의 꿈은 마당에서 사는 것이다. 작가는 여기서 마당의 개념을 재해석하고 있다. 양계장 안에도 마당이고, 마당도 또 다른 마당이다. 그곳에도 양계장과 별반 다름이 없는 삶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도 마당을 나오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우리의 꿈이 이루어질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래서 우리는 꿈을 꾸지요. 마당을 나오기를 애쓴다. 학생들은 학교만 졸업하면 인생이 행복해질 것 같은 착각을 한다. 어른이 되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 할 수 없는 것이 더욱 많아진다. 우리는 지긋지긋한 직장을 퇴직하고 아이들 다 결혼시키면 이제 자유롭게 마당을 나온 암탉처럼 자유롭게 내가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을 한다. 그러나 역시 그곳에도 또 다른 마당이 준비되어 있다. 마당은 내가 만든 마당인 것이다. 환경과 조건의 마당이 아니라 내 안에 마당을 만들고 그 만든 마당 안에 안주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기에 근본적인 성찰을 통해 내가 만든 나의 마당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한다. 그래야 진정으로 마당을 나올 수 있고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며 날아갈 수 있다. 학생들이 다름을 인정하고 더욱더 넓은 생각과 세상을 보면서 세상을 품고 날아오르는 새들이 되어야 한다. 더 많이 보고 더 높이 날아오를 수 있도록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믿어주고 기다려 주는 것이다. 우리들의 자녀가 마당을 나온 암탉인 잎싹처럼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어 펼쳐갈 세상을 꿈꾸어 본다. 안해용 경기도교육청 학생위기지원단장

[경기시론] 자유와 평화를 살 수만 있다면

평화란 말 누구나 운운할 수 있지만, 이 평화 안에서의 자유는 누구의 몫인가? 6월 판문점 깜짝 회담을 지난 2월 말 베트남 하노이회담 결렬 이후 재개(再開)된 북미 간 대화가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에 대한 희망과 기대로 지켜보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위원장의 역사적 만남의 순간에 필자가 한국인임을 재확인해준 시간이어서 떨리기까지 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오는 9월 미국을 방문하여 3차 북미 정상회담을 갖고, 유엔총회에서 연설할 수 있다고까지 한다. 이렇게 한 후에 핵보유를 포기하길 간절하게 바랄 뿐이다. 필자가 회담을 지켜보며 출산이 행복한 세상이길 꿈꾸며 또한 평화통일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되었으니 참 감사하다. 그래서 우리와 처지가 비슷했던 독일을 떠올려보았다. 독일통일에 대한 장단점도 있겠지만, 독일은 통일하기 전부터 동ㆍ서독 간에 활발히 진행되었던 교류와 협력이 있었다. 지금부터 통일을 염원하는 만큼 우리도 남과 북의 교류와 협력이 활발하길 바란다. 미국은 1차 북핵 위기 당시인 1994년도 북한의 핵 시설을 폭격할 경우 시뮬레이션의 결과를 내놓았다. 24시간 안에 군인 20만 명을 포함 한 약 150만 명의 사상자와 일주일 이내 남북한 군인 및 미군을 포함한 100만 명 사망, 남한의 민간인도 500만 명의 사상자 그리고 이것뿐인가? 1천억 달러의 경제적 손실과 3천억 달러의 피해복구비가 예상되어 당시 미국은 전쟁보다는 북한과의 협상을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정하였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2004년 우리나라 합동참모본부도 남북 군사력 평가 연구 시뮬레이션 결과를 내놓았다. 24시간 안에 수도권 시민과 국군, 주한 미군을 포함하여 230여만 명의 사상자로 1994년 피해 추정치보다 1.5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전쟁은 북한을 이겨도 양측의 피해가 크므로 전쟁을 반드시 막아 평화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자유평화를 돈을 주고라도 사와야 할 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시뮬레이션처럼 되지 않고자 평화통일을 준비하는 근원부터 찾아가 보려 한다. 필자는 가출 청소년, 이혼, 조손가정, 해외입양, 폭력 가정, 가부장 등 전반적인 남한의 사회문제의 시작점인 가정의 사랑을 회복하는 운동이야말로 통일을 준비하는 자세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100년을 살지도 못하면서 100년을 걱정하는 평범한 사람이다. 자유평화는 가정 속에서의 실천이 중요하며, 한반도에서의 통일 또한 큰 의미의 가정이기에 가족끼리의 폭력은 절대 없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필자는 출산이 행복한 세상이 될 수 있는 상생구조에 관심을 더 두고 있다. 북한은 출산에 대하여 아버지 김정일의 모성영웅 칭호 수여에서 나아가 노력영웅이라는 우대정책을 내세운 바 있다. 이처럼 일종의 따라 배우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지만, 미미한 복지 혜택에 따라 오히려 출산을 피하는 여성들이 늘어나자, 각종 혜택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나 우리나라나 아이들 키우는 데 드는 돈이 훨씬 많아서 출산장려 정책에 무관심할 수밖에 없다. 이렇듯 남북이 공통으로 고민해야 하는 숙제를 찾아 평화통일을 준비하는 장기계획이 필요하다 하겠다. 김양옥 한국출산행복진흥원장

[경기시론] 자기대상(self object)

심리학의 주요 이론 중에 자기심리학(self-psychology)이 있다. 핵심은 자기를 인정해주고 받아들여 주는 대상을 자기대상(self object)이라고 하는데 인간의 발달과정에서 좋은 자기 대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바보온달과 평강공주이다. 평강공주는 온달에게 좋은 자기대상이 되어주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바보 온달은 자신이 바보가 아님을 알았고 자존감과 자신감이 회복되었다. 인간은 결국 주변의 반응을 통해 자신을 느낀다. 주변의 반응이 자신을 인정해주고 안아주면 자신의 존재감(self-esteem)을 느끼고 자신감(self-confidence)을 가진다. 좋은 리더는 그래서 대중들에게 좋은 자기대상이 되어줄 줄 아는 사람이다. 일제강점시대에 조국 독립을 위해 모든 희생을 감수한 사람들, 6ㆍ25전쟁 속에서 대한민국을 지키고자 목숨까지 버리며 희생했던 사람들, 보릿고개를 더는 겪지 않고 잘 사는 대한민국을 만들고자 노력한 사람들, 국민의 인권을 위해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사람들 등 이 모든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모두 애국과 애민의 관점에서 자신의 희생을 감수한 분들이란 것이다. 자신의 이익보다는 타인의 이익,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감수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어느 쪽으로 방향을 잡던 이들은 모두 애국자들이다. 이런 관점에서 역사와 대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진보와 보수, 우파와 좌파 등 이념에 의해 분류를 할 수는 있다. 그러나 보수적 관점이 있어야 진보적 관점이 빛을 발하고 좌파가 있어야 우파가 빛을 본다. 이는 대립적 관계가 아니라 상호 보완적 관계이기 때문이다. 국민의 성향과 생각은 매우 다양할 수밖에 없다. 다양하면 이견을 조율하고 방향을 정하는데 시간이 더 걸린다. 따라서 속도는 느릴 수 있으나 한번 결정되면 전체의 의견이 모여진 것임으로 발전의 힘은 더 강력해진다. 그런데 자신의 입장에서 선과 악을 나누고 상대를 대하면 상대는 반발할 수밖에 없다. 내가 악이 되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내가 살아온 삶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것이다. 내 신념이 의미 없는 것이면 나라는 사람도, 존재도 사라진다. 이런 과정은 개인의 인격이 무너지는 것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 따라서 악으로 취급받는 사람은 같은 사람들끼리 모인다. 모인 사람들은 이미 자신의 신념과 삶이 부인되는 분노를 경험했기에 더욱 강력한 응집력을 가지고 소위 한이 쌓인 채로 대립적 태도를 보인다. 이런 대립적 관계가 되면 대화는 불가능하다. 완벽한 사람은 없기에 어떤 사람도, 어떤 진영도 명암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역사에는 아픔과 안타까움이 늘 존재한다. 그렇다고 역사에서 한쪽 부분만을 부각하고 그로 인해 전체를 부정하거나 평가절하한다면 그 공동체는 발전할 수 없다. 일제시대반공시대산업화시대민주화시대한반도평화시대복지국가시대는 과거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기에 진행될 수 있었다. 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여 주는 것은 개인의 삶에 대해 노고를 인정해주는 것이다. 개인의 삶이 인정될 때 각 공동체의 삶도 인정된다. 각 공동체의 삶이 인정될 때 우리는 서로 인정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진정한 통합의 길이며 사회갈등의 해결책이다. 이런 역할을 잘할 줄 아는 사람이 바로 진정한 리더다. 대한민국의 역사, 국민에게 자기대상(self-object)이 되어주는 사람 말이다. 한 많은 대한민국의 역사는 되풀이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정재훈 한국정신보건연구회 정책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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