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신문’에 비친 세상의 변화

[경기시론] 반헌법행위자 재산환수특별법이 필요한 이유

요즘 불안해서 잠을 설치는 사람 중 갑은 누구일까. 이미 문제에 답이 나와 있지만 MB가 아닐 듯싶다. 국민들이 ‘쥐를 잡자 특공대’며 ‘이명박심판국민행동본부’ 등을 만들어 추운 거리에 쏟아져 나와 구속 수사를 촉구하는 국민운동까지 벌이고 있으니 말이다. BBK와 다스를 숱한 거짓말로 눙치고 국방부와 국정원을 동원해 여론조작과 정치공작을 일삼을 때는 쥐구멍에 몰리는 날이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어찌보면 MB의 적폐는 유치하고 애교스러운 수준에 불과하다. 국민으로부터 선출된 최고권력이 전투기와 탱크 등으로 중무장한 군대와 정보기관을 동원해 고작 댓글이나 달고 있었다니…. 오죽했으면 그의 측근인 이재오는 변호랍시고 ‘MB가 동네 잡범이냐’고 항의했을까마는. 하지만 반헌법행위자들에 비하면 MB는 확실히 ‘동네 잡범’ 수준이다. 반헌법행위자열전편찬위원회가 올 초에 발표한 총 405명의 반헌법행위자(집중검토대상자)에는 △학살 △내란 △고문 및 간첩조작 △부정선거 △언론자유침해 △문민정부 이후 반헌법 사건으로 최근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 사건 연루자들까지 포함돼 있다.이들 중에서도 갑의 갑은 여전히 전두환, 노태우, 이희성, 정호용 등 신군부 세력이다. MB가 어두운 골방에서 댓글부대나 운용했다면 이들은 벌건 대낮에 보란듯이 헬기와 탱크, 총칼로 무장한 군대를 동원해 시민들을 학살하고 다니며 권력을 찬탈하고 헌정을 유린했던 자들이다. 한마디로 ‘동네 양아치’ MB에 비하면 ‘조폭’ 수준이고 적폐 중의 적폐, 구악 중의 구악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여전히 불법과 편법, 특권으로 호사스러운 인생을 구가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5·18 광주항쟁 당시 육군참모총장겸 계엄사령관으로 광주항쟁 진압을 공모·지휘한 공으로 교통부장관, 주택공사 이사장 등을 지낸 이희성이다. 12·12군사반란과 5·17내란을 통한 헌정 유린, 광주학살, 삼청교육대, 10·27법난사건의 고문조작까지 반헌법행위 4관왕으로 전두환 등과 함께 내란목적 살인 등으로 대법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았지만 여전히 권력을 향유하고 있다. 이희성과 공범 관계인 정호용도 마찬가지. 5·18 당시엔 특전사령관으로 12·12군사반란과 5·17내란, 광주학살 등 2관왕인 그는 이희성과 2㎞ 이웃한 과천시 문원동 대저택에서 평화로운 말년을 보내고 있다. 대한민국정부수립이후 헌정 70년사 동안 지배권력에 의한 반헌법행위는 일상적으로 자행돼 왔다. 개헌도 중요하지만 헌법의 가치를 지키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헌법을 파괴하고 유린하여 국민의 생명과 재산, 기본권을 약탈한 반헌법행위자들에 대해서는 범죄 시효를 두어서는 안 된다. 응분의 죗값을 치르게 하고 역사의 단죄를 받게 해야 한다.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재산환수에 관한 특별법’이 본보기가 될 수 있다. 지금은 조사활동이 사실상 종료돼 사문화돼 있다. 이 법을 ‘반헌법행위자 재산환수에 관한 특별법’으로 부활시키자. 반헌법행위자들이 온갖 특혜와 불법, 편법으로 쌓은 검은 부의 형성과정을 추적해 규명하고, 국민과 역사의 이름으로 심판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적폐 청산이 아닐까. 양근서 경기도의원

[경기시론] 감사와 행복한 삶

당신은 평소 진정 ‘감사합니다’라는 마음으로 살아가는가? 아니면 불만과 근심, 또는 바쁘다는 이유로 감사한 마음을 잊고 살아가는가? 유대교의 생활규범을 집대성한 탈무드(Talmud)를 보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다. 감사란 무엇인가? 감사(gratitude)란 느낄 감(感)과 사례할 사(謝)로 구성된 한자어로 국어사전에는 ‘고마움을 나타내는 인사, 고맙게 여김, 또는 그런 마음’이라고 제시돼 있다. 즉, 감사는 베풀어진 다른 사람의 수고와 배려를 인식하고 고마움을 느끼는 능력을 말한다. 감사는 은총, 친절, 고마움을 의미하는 라틴어 ‘그래티아(gratia)’에서 유래됐다. 감사는 너무 흔한 처방이지만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선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걸을 수 있어서 감사하고,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고 있어서 감사한 것이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고 잠깐만 마음을 내려놓으면, 감사할 일은 우리 주위에 너무도 많다. 감사는 인생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힘이 있다. 감사하는 마음은 행복의 씨앗이고, 풍요로운 행복을 보장하는 가장 확실한 비결이다. 생명을 다해가는 사람도 감사한 마음을 지닐수록 더 평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생명이 다해가는 사람도 그런데, 건강한 사람들이 왜 그렇게 할 수 없는가? 사람이 태어날 때는 주먹을 쥐지만, 죽을 때는 편다. 오늘 지금 이 순간 두 발로 건강하게 걸을 수 있다면 정말 감사해야 한다. 인생 최고의 성공은 다른 것이 아니다. 바로 오늘 건강하게 살아있는 것이다. 그러니 오늘도 건강하게 살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성공이고, 그 성공에 감사한 마음을 지니면 마음이 기뻐지고 행복에 다가갈 수 있다. 그러면 자기가 하는 일도 더 잘 풀린다. 그러니 아침에 눈을 뜨면 살아 있는 것에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할 일을 떠올려보라. 감사는 간단한 마음가짐을 통해서도 길러질 수 있다. 혼자 있으면 혼자 있어서 감사하고, 같이 있으면 같이 있어서 감사하고, 만나면 만나서 감사하고, 헤어지면 헤어져서 감사하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곧 감사의 습관이요, 행복의 습관이 된다. 행복한 삶은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는 것이며, 매일매일 감사하며 살아가면 삶이 충만하고 온전해짐을 느낀다. 평범한 일에도 감사하면 할수록 마음이 편해지고 즐거워진다. 감사한 마음으로 사는 것이 재미있고 행복하게 사는 지름길이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감사한 마음이 바로 행복과 직결되는 것이다. 감사한 마음을 지닐수록 흥미, 흥분, 이타심, 자부심, 자존감 같은 긍정적인 감정들이 더 많이 생기고, 마음이 재충전된다. 감사는 정신적, 신체적 건강 증진과도 인과적으로 연결돼 있다. 왜냐하면 감사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중화시키고 해독시키며 자신을 뒤돌아보게 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감사하며 살아가면 다른 사람을 용서할 일도, 복수할 일도 줄어든다. 일주일만이라도 매일매일 감사하는 사람이 되도록 한 번 연습해보라. 그러면 감사의 효과를 몸소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감사성향은 감사한 마음으로 반응하는 비교적 지속적이며 안정적인 일반화된 경향성(정서 특성)을 뜻한다. 감사성향은 감사를 강하게 느끼는 강도(정도), 자주 감사를 느끼는 빈도, 삶의 여러 영역에서 감사를 느끼는 범위, 한 가지 일에 대해 여러 사람에게 감사를 느끼는 밀도의 4가지 측면과도 연관돼 있다. 그렇다면 평소 당신의 감사성향은 어떠한가? 김청송 경기대학교 청소년학과 교수

[경기시론] 교육 받을수록 행복해지는 삶

우리는 교육에 있어서는 중독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엄청난 열정을 보인다. 어린 아이부터 은퇴자까지 교육이 일상에서 반복되는 삶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뱃속 아이를 위해서 ‘태교’를 하는 마당에 더 말해 무엇하랴.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렇게 엄청난 기간 동안 교육을 하고, 받는 것일까? ‘좋은 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취직하기 위해, 승진하기 위해’ 등 다양한 답을 할 수 있겠지만, 결국 ‘보다 나은 삶을 위해 혹은 보다 행복한 삶을 위해’가 결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교육받는 이유는 우리의 삶이 교육을 받기 전보다, 받은 후에 보다 행복하지고 좋아질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정말 교육이라는 것이 삶을 행복하고 좋아지게 만드는 것이 맞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태어나기 전부터 죽는 순간까지 교육에 집중하고 있다면, 우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당신 주변의 사람들은 교육을 받으며 기뻐하는가? 우리나라는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행복해지기는커녕 OECD 최하위의 행복지수와 높은 자살률을 보이고 있고, 교육을 받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시간과 비용이 낭비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교육은 어떤 것을 학습해서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교육을 받는 이유는 내가 다른 사람보다 어떤 것이 더 뛰어난지를 확인받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교육이 지속될수록 행복해지기는커녕 더 불행해진다. 그래서 결국 교육은 어떻게든 빨리, 좋은 성적으로 끝내버려야 하는 ‘일’이 되어 버렸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당면한 교육계의 문제를 완화하고, 교육을 행복을 위한 활동으로 되돌릴 방법이 있다. 그건 바로 ‘지속가능발전교육(Education for Sustainable Development: ESD)’으로 우리의 교육 전체를 전환하는 것이다. 지속가능발전교육은 우리의 발전 방식을 ‘지속성’의 관점으로 다시 바라보고, 이러한 관점을 학습자가 갖도록 하는 교육의 영역이다. 필자의 지난 시론(우리는 긴 시간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9월25일자)에서 이미 이야기했던 것처럼, 어떤 일에서든 지속성을 고려하게 되면 보다 본질적이고 가치로운 것들이 부각된다. 또 이러한 본질과 가치를 교육하게 되면 사회와 국가, 지구의 지속성이 확보되고 결국 개인의 삶을 오랫동안 행복하게 유지할 수 있다. 아직은 지속가능발전교육이라는 말이 그 자체로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겠지만, 이미 전 지구적으로 지속가능발전교육을 보다 강화하자는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고, 지속가능발전이라는 가치는 지구의 핵심적인 목표가 되었다. 지속가능발전교육은 세계적인 흐름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에 만연해 있는 비정상적인 교육을 정상적인 교육으로 바꿀 수 있는 교육이기도 하다. 교육을 통해 경쟁을 가르치고 있던 우리의 교육을 하루빨리 상생과 협력을 가르치는 지속가능발전교육으로 바꿔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조성화 한국교원대 환경교육과 겸임교수

[경기시론] 시민 참가형 에너지·환경 교육의 필요성

현재 한국경제는 1970년대 이후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지속적인 고도성장을 유지 해오면서 1970년~2017년 기간 중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7.3%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며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였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에너지환경에 대한 청소년과 일반인들의 인지도는 개발도상국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고 판단되어 환경교육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한 예로 미세먼지 문제를 ‘과학적 이성’이 아닌 ‘사회적 감성’으로 인지하고 해결하려는 모습 속에서 아직도 우리 국민과 정부의 태도는 환경문제에 발 빠르게 접근해결하려는 선진국과는 거리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원인의 하나는 에너지환경문제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인지하려는 노력과 환경교육에 대한 효율적이고 실질적인 재정지원과 전문가들의 교수법의 부재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환경문제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태도는 교육을 통해 형성되고 환경교육을 단순히 학습자들을 모아 놓고 단편적인 내용을 전달하는 강의 중심의 지식 위주 전달로만 치우친다면 학습효과는 물론 문제에 대처하는 능력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체험을 통해 환경과 자연을 이해하면서 스스로 생각하는 사고의 범위를 넓혀가야지만 이를 통해 에너지환경문제에 대한 올바른 태도와 가치관이 습득된다.따라서 교육자의 입장에서 보면 체험학습이 바람직한 교육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나 이 역시 여러 가지 제약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에 들어 각 지자체마다 ‘기후변화 체험 교육관’ 등을 운영하고 있지만, 여전히 야외 생태에 관한 학습이 주를 이루고 있어 지구온난화, 산성비, 오존층 파괴와 같은 환경과학기술이 접목된 능동적 학습은 결여되어 있다고 하겠다. 우리가 사는 아름다운 지구에 대한 진정한 녹색기술은 국민의 환경권 보호를 위해 지역규모의 대기환경 개선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지만 지구규모에 대한 개선 노력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이유는 가정 내 실내규모의 공기오염부터 도시규모, 광역규모, 더 나아가 지구규모까지 하나의 선순환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너지환경문제에 대한 교육은 환경보전뿐만 아니라 인간과 환경의 상호관련성, 환경문제 발생에 대한 책임인식, 유한한 자원의 올바른 이용과 보전에 대한 노력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에너지·환경문제 교육의 극대화를 위해서는 이론적인 주입식 교육을 피하고, 학습자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주체적으로 참가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지금까지 주로 이루어져왔던, 강의실 환경교육과 자연학습 및 탐방과 같은 현장 환경학습도 중요하지만 학습자가 손쉽게 다룰 수 있고 원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구제적인 에너지환경교육 교구의 개발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에너지환경 교육은 환경보전뿐만 아니라 인간과 환경의 상호 관련성, 환경문제 발생에 대한 책임인식, 유한한 자원의 올바른 이용과 보전에 대한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미국과 유럽의 경우는 초기 학령기부터 환경교육을 수업과정에 포함시켜 가르치고 있고, 민간 교육캠프 등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 교육은 연령집단을 교육대상으로 지식보다는 가치와 태도에 중심을 두어 지속적으로 그리고 모든 생활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지역에 위치한 환경관련 학과가 있는 대학에서 주도적인 프로그램을 갖고 초등학교 저학년에서부터 성인을 대상으로 경진대회 등을 개최하거나 평생교육과정을 개발하여 지속적으로 운영하는 방안과 아울러 지자체의 전폭적인 재정지원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홍종순 동남보건대학교 총장

[경기시론] 노후의 여가

여가란 스트레스 해소나 피로회복 등 산업사회의 생산력 회복을 위한 수단일 뿐만 아니라 인간이 마땅히 누려야 할 당연한 법적 권리다. 그러니까 인권과 기본권에 대한 존중과 여가에 대한 존중은 궤를 같이 한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사람이라면 무조건 존중부터 하고 보아야 한다는 인권의식이 부족할수록 여가는 그저 생산력 회복을 위한 수단에 가까운 것으로 인식되기 쉽다. 우리 사회는 유난히 부지런함, 근면을 강조한다. 그래서 노동자라고 해도 될 것을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이란 의미의 근로자란 말이 굳어질 정도다. 올 추석에는 연휴와 대체휴일에 임시공휴일까지 더해져 열흘이란 ‘황금연휴’를 누렸다. 시작 전부터 ‘생산 감소’, ‘수출 둔화’를 한쪽으로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내수경기 진작’ 또는 ‘소비 회복세 개선’ 등이 임시공휴일 찬반의 논거로 제시됐다. 여가는 아직 수단 차원을 벗어나지 못한 셈이고, 마땅한 권리 차원에서 접근하는 시각은 눈에 띄지 않는다. 어르신들 여가는 어떨까? 노후가 길어졌기에 여가활동은 노후 삶의 질에 결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실에서 노후의 여가가 그렇게 중요한 영역으로 취급을 받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주의를 기울여 둘러보면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조용히 앉아서 홀로 시간과 싸우는 어르신들이 적잖이 보인다. 거꾸로 소리소리 지르면서 노익장을 과시하려는 분들도 있고, 그늘막이나 양지를 찾아 화투를 치는 분들도 보인다. 물론 경로당과 노인복지관에서 유익하게 보내는 분들도 적지는 않다. 그럼에도 노후의 여가가 지닌 의미의 무게만큼 정책 차원에서나 개인 차원에서 공을 들이는 모습은 아쉽다. 노후 여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 또는 노후 여가의 근본 토대라면 아무래도 노후소득이다. 여기에는 결국 연금이 중요하다. 연금을 납부해야 했던 시간에는 잘도 통장에서 꼬박꼬박 알아서 받아 갔는데 줄 때가 돼서는 신고를 해야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은 아무래도 행정편의주의다. 부정수급이나 어떤 다른 문제 때문일 수도 있겠고, 또 고지 의무화나 기간 연장 등의 노력도 보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원칙적으로는 받아야 할 분들을 찾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마땅하다. 역시 여가, 특히 노후 여가는 이런 기본적인 제도와 행정의 자세와 연결된다. 그리고 그런 문화가 교육과 언론 및 여론을 통해 개인들의 의식과 사고에 파고들게 된다는 점에서 변화가 더디고 힘들다. 앞서 보았듯 아직도 여전한 휴일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결국 그동안 우리 사회와 문화에 확고히 자리 잡았고, 그것은 우리 세대 이상의 사람들 책임이 크다. 노동만 중요한 게 아니라 여가도 중요하고, 성장만 중요한 게 아니라 복지와 분배도 중요하다는 걸 우리는 한편으로는 억지로 떠밀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길들어버린 나머지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온 것이다. 그 결과 여가생활을 아예 모른 채 노후를 맞은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이상한 무력감이나 피로감과 지루함에 빠져 힘겹게 시간을 퍼낼 수밖에 없다. 우리 휴일은 유럽은 물론 아시아권에서 보더라도 매우 적다. 앞으로 8년 뒤에나 이번처럼 긴 휴일을 누릴 수 있다고 한다. 소득균형을 비롯해 걸리지 않는 것이 없겠지만, 우선 여가에 대한 인식 변화조차 없다면 앞으로도 노후 여가는 축복보다 저주로 작용하기 쉽다. 그러기에 우리 생각과 행동부터 먼저 바뀌어야 한다. 김근홍 강남대학교 교수·한국노년학회 회장

[경기시론] 남한산성에 갇힌 긴장과 공포

기나긴 추석 연휴 동안 나는 남한산성에 갇혀 있었다. 영화 ‘남한산성’을 보면서 느꼈던 감정에서 쉬이 벗어나지 못했다. 이 감정은 나와 내 나라가 처한 현실에 대한 처량함이나 무기력감 같은 것이었는데 몸도 마음도 공포영화를 본 것처럼 스산하기만 했다. 영화의 원작인 소설 ‘남한산성’의 작가 김훈의 감정도 비슷했던 모양이다.그는 소설의 여는말에서 “밖으로 싸우기 보다 안에서 싸우기가 더욱 모질다”고 했고, “세계악에 짓밟히는 약소한 조국의 운명 앞에 무참하였다”고도 했다. 정말 그랬다. 병자호란 당시 상황과 지금의 북한 핵위기를 둘러싼 한반도 정세를 오버랩하면 그런 감정들이 더욱 증폭되며 의문을 낳았다. 사회 지도층과 지식인들이 느끼는 감정의 정도가 이러할진대 국민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소설가 한강은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칼럼에서 국민들이 느끼는 감정의 일단을 그려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보기에 북핵위기에 처한 한국인들이 평상시처럼 생활하고 있어 안보 무관심인 것 아니냐는 시각에 대한 변론의 글이다. 그녀는 한국인이 오히려 ‘수십년간 축적된 긴장과 공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를 놀라운 자제력과 평정심으로 다스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이 긴장과 공포가 어디로부터 나온 것인가인데 그 근원의 역사적 사건을 쉽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병자호란으로부터 10년 전인 정묘년에도 인조는 후금의 침략을 받고 강화도로 피신했다. 이윽고 적장 앞에 나아가 형제의 나라가 되기를 맹약하는 굴욕을 당했다. 병자호란 때도 후금은 산성을 제쳐두고 그대로 대로를 내달려 또다시 단 며칠 만에 한강까지 쳐들어왔다. 인조는 결국 군신관계를 맺는 항복식을 하고야 목숨을 부지했다. 임금과 조정 대신들이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다가 똑같은 수에 나라를 내준 것이다. 굴욕의 역사는 한국전쟁 때도 반복됐다. 이승만 대통령은 “국민은 군과 정부를 신뢰하고 조금의 동요도 없이 직장을 사수하라”고 안심시켜 놓고 전쟁이 터진 다음날 새벽을 틈타 대구까지 피신했다. 그 다음날에는 지금의 북한군의 남하를 막을 요량으로 지금의 한강대교를 폭파해 600~700명의 국민이 희생됐다. 영화에서 김상헌이 송파나루를 건넌 후 여진족의 도강길을 알리지 못하게 할 요량으로 늙은 뱃사공을 베어 냈던 것처럼. 한강이 말한 한국인의 긴장과 공포는 수십년간 형성된 것이 아니다. 수백년간 지속돼 온 것이다. 그 공포감의 뿌리도 외부의 적이 아니라 오히려 내부의 모진 권력자들에 있을지도 모른다. 나라와 백성의 생명과 안전은 아랑곳도 하지 않고 사적 이익과 일신의 영달만 추구하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부패한 권력층들 말이다. 국민들은 이들에게 나와 가족의 안전과 생명을 맡겨도 되는지 긴장되고 공포스러운 것이다. 긴장과 공포는 유능하고 선한 권력만이 평화적 방법으로만 해소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햇볕정책의 성과를 통해 놀라운 경험을 하고 있다. 연일 계속되는 전쟁 위협 속에서도 생필품 사재기 하나 없는 국민들의 절제력과 통찰력의 근원이 무엇일까. 일부 외국인이 보는 것처럼 그것은 안보 불감증이 전혀 아니다. 햇볕정책을 통한 200만명 이상의 금강산 관광, 5만명 이상의 남북노동자가 교류하는 개성공단 등 평화적 교류를 통해 상대를 알게 되면서 북한으로부터 현실적으로 느끼는 긴장과 공포가 줄었기 때문이다. 북핵위기 속에서도 남북화해와 평화적 교류를 기조로 한 제2의 햇볕정책이 추진돼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양근서 경기도의원

[경기시론] 나의 새로운 발견, 성장하는 삶

나는 이 세상에 어떻게 태어났는가? 인간이라는 하나의 생명체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어머니의 임신 과정이 필요하고, 태아는 어머니의 태내에서 40주(약 280일) 동안 머물다가 세상에 태어나게 된다. 인간발달은 이렇게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는 수정의 순간부터 시작되고, 어머니의 태내 환경에서 약 40주 동안 머물다가 신체적 탄생을 하게 되면, 이후부터 죽을 때까지 환경적ㆍ심리적ㆍ사회적 세계의 복잡한 영향을 받으면서 살아가게 된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세상에 태어난다. 내가 태어난 것은 부모의 결실 때문이다. 부모 없이 태어난 사람이 어디 있으랴? 사람은 세상에 태어난 이상 죽을 때까지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 나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태어났지만, 나는 나의 인생을 의지대로 살아갈 수 있다.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는 나의 의지에 달려 있다. 고통과 불행 속에서 머물 것인지, 환희와 감격으로 행복에 다가갈 것인지는 모두 나에게 달려 있다. 나의 인생을 대신해서 살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니, 전진하고 도약하고 비상하라. 삶의 목적과 의미를 찾아라. 언제까지 움츠려들고만 있을 것인가? 인생을 되는 대로만 살 것인가? 아니면 가슴 뛰고 마음 설레는 삶을 살 것인가? 인간발달은 임신한 순간부터 시작되어 죽는 날까지 한 평생 계속된다. 전생애 인간발달의 주요 특징은 무엇인가?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일들과 사건들을 만나게 되고, 그 속에는 삶의 전환점이 되는 중요한 발달과업들이 존재하고 있다. 이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 자기이해야말로 인생을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 하나의 등불이요, 곧 나를 지켜내는 지름길이다. 그러므로 인간발달의 올바른 지식을 습득하고, 나 자신을 잘 파악하여 인생의 해법과 지혜를 얻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자기를 이해한다는 말은 무엇인가? 그것은 ‘내가 나 자신을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Socrates, B.C 469~399)는 ‘너 자신을 알라!’라고 했다. 이 말은 남을 빈정거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잘 이해해야 세상 살아가기가 편하다는 말이 함축되어 있다. 나는 나 자신을 잘 이해하고 있는가? 내가 나 자신을 잘 이해한다는 것은 자아존중감과도 직결되어 있다. 자아존중감, 즉 자존감은 ‘자기존재에 대한 느낌’을 뜻한다. 내가 나 자신을 가치 있고 긍정적인 존재로 느끼고 있는가, 아닌가의 감정적 평가를 의미한다. 나는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인가? 나를 사랑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자존감이다. 자존감이 무너지면 마음이 병들고, 자존감이 회복되면 마음이 건강해진다. 자존감은 자신감과 직결된다. 자신감은 ‘무엇인가를 해낼 수 있다’, 즉 자신이 있다는 느낌이다. ‘나는 못났어, 나는 무능해’와 같은 열등감도 자신에 대한 부정적 감정 때문에 생긴다.왜 나는 나를 아프게 만드는가? 자존감과 열등감은 객관적 조건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나를 어떤 시각에서 자신을 보느냐의 문제다. 당신은 자신을 어떤 관점에서 보는가? 자존감이 더 큰가, 열등감이 더 큰가?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김청송 경기대학교 청소년학과 교수

[경기시론] 우리는 긴 시간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얼마 전 휴일 저녁에 TV를 보다가 한 홈쇼핑 광고를 보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홈쇼핑에서 보험 상품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쇼호스트들이 나와서 자신들의 보험 상품을 설명하는 와중에 ‘120세까지 보장합니다’라는 문구가 큼지막하게 화면을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100세도 아니고 120세라니! 문제는 보험회사에서 120살까지 보장하는 상품을 열심히 판매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그보다 훨씬 더 오래 살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우리가 앞으로 얼마만큼 건강하게 살 것인가에 대해 알고 싶을 때, 보험회사의 말은 다른 어느 전문가의 말보다 믿을 만하다. 지금까지 경험을 통해 우리는 보험회사의 보장 기간 안에는 보통 별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보험이 필요해질 나이가 되면 항상 보장기간이 지나버렸던 경험들을 떠올려보라. 보험회사는 평범한 사람이 몇 살까지 별다른 일 없이 살아갈 것인가를 귀신같이 계산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 시기를 잘못 계산하면 회사가 파산하기 때문이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 모두에게 전례 없이 엄청난 시간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보통 30년을 한 세대로 계산하는데, 앞으로 우리는 4~5세대를 경험하게 됐다. 내 자식의 자식의 자식의 자식의 자식까지 보며 살게 된 것이다. 정말 놀라울 정도로 긴 시간이다. 자, 그럼 이렇게 긴 시간이 주어졌으니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오래 살게 됐으니 돈을 더 많이 저축해야 할까? 120살이 아니라 150살까지 보장하는 보험을 찾아 가입해야 할까? 높은 이율이 보장되는 연금을 더 많이 가입해야 할까? 지금까지는 보통 이런 경제적인 관점만으로 길어진 인생을 준비하고 있는 듯하다. 아주 틀린 방식의 준비는 아니지만 이런 식의 관점은 다분히 물질적 지속성만을 반영한 것이다. 사실 긴 시간이 주어지게 되면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보다 본질적인 것, 가치를 담고 있는 것이 더 중요해진다. 만약 무슨 일이 있어도 결혼생활을 30년간 유지해야 하는 부부와 90년간 유지해야 하는 가상의 두 부부가 있다고 치자. 이 두 부부는 결혼생활에서, 배우자를 고르는 관점에서 어떤 차이를 보일까? 30년은 과거 우리 부모 세대가 유지했던 결혼생활 기간이고, 90년은 지금 우리 세대가 유지해야 하는 결혼생활 기간이다. 아마 30년간 결혼생활을 유지해야 하는 부부에게는 경제력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하지만 90년간 결혼생활을 유지해야 하는 부부에게도 가장 중요한 요소가 경제력일까? 물론 경제력은 여전히 중요하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배우자와의 신뢰와 믿음, 사랑, 헌신 등이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지 않을까? 이런 것이 없이는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결혼생활을 유지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긴 시간이 주어지면 결혼에 대해 보다 본질적인 가치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무슨 말이냐 하면, 똑같은 행위라도 긴 시간이 주어지면 그 행위에서 보다 본질적인 것이 부각된다는 것이다. 이제 너무 긴 시간을 부여받은 우리는 남은 삶을 이런 관점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내가 하고 있는 일, 만나는 사람, 가족과의 관계, 내가 속한 사회에서 보다 본질적이고 가치로운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말이다. 이런 준비를 하지 못하고 짧은 시간을 살았던 삶의 관점을 유지한다면 우리는 그 긴 시간을 감당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지금 많은 노부부들이 황혼기에 예상치 못하게 남아 있는 긴 시간을 감당하지 못하고 이혼하며 지속성을 잃어가는 것처럼 말이다. 조성화 한국교원대 환경교육과 겸임교수

[경기시론] ‘유학 선진국’으로 가는 길

홍종순 IMF가 발표한 2016년 추산 GDP 세계 11위인 대한민국은 제3국의 학생들에게는 꿈과 기회의 나라이다. 우리나라에 들어와 공부를 하고, 직장을 갖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무척 많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12만명 정도의 외국인 유학생들(2017년)이 유학 중으로 명실공히 유학을 가는 나라에서 유학을 오는 나라가 되었다. 유학생 유치는 한국의 문화와 지식을 세계에 우호적으로 수출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며, 학령인구가 줄어드는 우리 대학의 학생 자원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며, 글로벌 사회에서 우리 학생들이 다양한 문화를 쉽게 접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교육부는 2023년까지 외국인 유학생 20만명을 목표로 외국인 유학생 유치에 힘을 기울이고 있고, 대학도 이에 발맞추어 다양한 방법으로 유학생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국립국제교육원이 주최하는 유학박람회에 참여하여 홍보하고, 현지 유학원들과도 협력하고 있다. 현지 대학과도 학점교류 및 교환학생편입학 교류를 하고 있고, 현지에 대학명의의 한국어 교육원도 설립하고 있다. 또한 많은 대학에서 한국어 어학당을 만들어 외국인 어학연수생을 받고 있고, 이 중 한국어 실력이 기준 이상이 되는 학생들(TOPIK 3급 이상)을 외국인 특별전형으로 대학에 입학시키고 있다. 유학생들은 한국 입국을 위해 거액의 통장잔고 증명을 해야 하고, 학비와 기숙사비를 선입금 해야 한다. 그래서 제3국의 부모는 아이를 유학시키기 위해 큰 빚을 진다. 또한 한국의 높은 생활비를 지원해줄 능력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유학생들은 대부분 아르바이트를 한다. 현재 법무부에서 어학 연수생은 출석률 90%, 학부 유학생들은 출석률 70% 이상자이며 평균학점 C학점 이상인 학생들만 주 20시간 이내로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시간을 넘어 불법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이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또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도 드문 학구열의 나라로, 유학생들은 한국의 학업량을 따라가기 힘들어한다. 또한 유학생들과 같이 공부하는 한국 학생들 입장에서는 이들과 팀워크를 하면 성적이 나쁘게 나올 수 있고, 교수가 외국인 학생들의 언어부족으로 인한 부분을 감안한 학점 부여를 하면 역차별을 겪는 경우도 있으니 기피하고 싶은 학우가 된다. 교수의 입장에서도 유학생들은 자격증, 면허증 취득률이 한국 학생에 비해 떨어지니 학과 평가가 낮아지게 되어 부담스러운 존재가 된다. 또한 국가 기관의 정책을 보면 교육부는 외국인 유학생을 많이 뽑으라 하고, 법무부는 불법체류를 걱정하며 각종 규제를 하고 있고, 노동부는 유학생의 노동을 제한하고 있다. 현재 대학은 유학생의 유치, 교육, 체류관리를 한다. 이 중 대학에서 가장 어려워하는 것은 불법체류 문제이다. 불법체류가 생기면 학교와 출입국사무소가 협력하여 학생을 찾고 송환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 노동부는 합법적으로 유학생이 공부하고 일할 수 있도록 터전을 마련해 주어야 하고, 이 범주를 넘어가면 법무부는 강력한 처벌을 해야 한다. 우리도 과거 선진국으로 유학을 가서 주경야독하며 학위를 따서 귀국했다. 유학을 한 나라의 지식은 우리나라의 법이 되고 규범이 됐다. 이제 우리나라도 문화와 지식과 기술을 보다 합리적으로 수출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홍종순 동남보건대학교 총장

[경기시론] 치매극복의 날

9월21일이면 치매 극복을 위한 기념일이 어느덧 열 돌을 맞는다. 기념(記念)이란 잊지 않고 마음에 간직한다는 말, 나라의 경사를 기념하는 국경일과 달리 기념일에는 경사스러운 일보다는 해결하거나 꼭 잊지 말아야 할 문제며 사건과 관련되는 일이 많다. 우리의 47개 공식 법정 기념일에는 노인의 날(10월2일)이 있다. 세계치매의 날(World Alzheimer’s Day)이기도 한 치매극복의 날은 그 다음 개별법으로서 치매관리법에 의거한 기념일이다. 노인문제가 더 크고 중요하다는 의미이지만(2017년은 65세 이상 노인 인구비중이 14%로서 고령사회 원년이 됨), 치매 역시 국가와 사회 차원에서 심각한 도전(65세 이상 치매환자 72만5천, 2024년 100만, 2050년에는 270만 전망)으로 보고 대처한다는 일종의 각오라 보아도 좋겠다. 2008년 1차 치매관리종합관리 대책이 발표된 뒤 전국 보건소에 ‘치매상담센터’가 설치되기 시작하였고, 2012년 2차 종합계획으로 중앙 및 광역 치매센터 17개소가 순차적으로 설치 완료되었다. 현재 제3차 치매관리종합계획(2016~2020)이 진행 중이다. 여기에는 중요한 계획이며 정책들이 많아 그 자체로만 보면 선진국에 비해 손색이 없다.문제는 구체적으로 실행되지 못한 것들이 많고, 또 실행되더라도 선진국들에서 보이는 효과와 정도 차가 크다는 점이다. 예컨대 현재 치매환자가 정부로부터 받을 수 있는 서비스로는 장기요양서비스, 치매상담센터의 가족상담 및 사례관리, 자조모임, 가족교실 그리고 중앙치매센터의 치매상담콜센터 상담 및 사례관리 서비스 등이 있다. 특히 치매상담콜센터의 경우 24시간 언제든지 치매와 관련된 모든 궁금증을 전화로 상담할 수 있어 치매가족들에게 많은 도움이 된다. 그러나 정작 필요하지만 이런 사실조차 잘 모르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또 제3차 종합계획의 경우 OECD의 치매정책 전략과 방향을 바탕으로 하면서 ‘치매환자에게 안전하고 수용적인 지역사회 조성’을 첫째 전략으로 세웠다. 정책 방향을 세웠다고 바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긴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현실이 치매환자, 노인, 여성, 소수자 등 약자에게 안전하고 수용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거의 언제나 예산 문제가 이유로 꼽히곤 하지만, 대부분의 정책과 마찬가지로 치매정책도 예산 문제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철학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예산에 여유가 있더라도 철학에 따라 완급과 정도의 순서가 바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성장을 중시하는 철학에서 치매관리에 할당되는 예산은 가능한 한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지금 아껴서 성장의 불쏘시개로 쓰면 나중에는 더 많은 재원을 치매관리 예산으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나 충분히 만족할 성장의 단계에 도달할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에, 결국 그 철학에서 치매관리 예산이 넉넉해질 날은 오지 않는다. 새 정부 공약으로 제기된 ‘국가치매책임제’의 실천 과정을 보면 아마도 이런 문제 원인을 좀 더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된다. 지금 절실히 기대되는 대책들로는 치매안심센터와 치매전문병동의 확충 그리고 치매노인의 비용 지원 등인데, 이름만이 아니라 선진국 만큼에는 이르지 못하더라도 피부에 와닿을 정도의 확충과 지원이다. 제대로 된 정책과 자세로 접근한다면 비온 뒤에 땅이 더 굳듯이 치매가 있더라도 한결 더 사람 살 만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김근홍 강남대 교수한국노년학회장

[경기시론] 도시재생뉴딜과 경기도형 공공임대상가

문재인 정부가 역점을 둔 도시재생뉴딜이 앞으로 논란이 될 것 같다. 해마다 10조원씩 5년간 50조원이 들어가는 천문학적 국책사업으로 일단 덩치부터 이명박 정부의 핵심사업으로 22조원이 들어간 4대강 사업의 2배가 넘는다.투자 규모가 크다 보니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저마다 대응전략을 짜는데 부심하고 있고 유관업계는 이미 치열한 각축을 벌이고 있다. 게다가 사업후보지로 거론되는 구도심과 노후 주거지의 부동산 값이 벌써부터 들썩이고 있다. 물론 도시재생뉴딜이 추구하는 정책목표와 사업 방식은 전형적인 토건사업인 4대강사업과 대개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약탈’로 귀결되곤 하는 재개발, 재건축사업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하지만 매년 10조원의 재원 중 정부 재정부담은 2조원인 20%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주택도시기금 5조원, LH 등 국가공기업 3조원 등 80%가 이른바 회수해야 하는 투자재원 성격이라 자본의 이윤을 추구하는 기존의 도시개발사업과 뭐가 얼마나 달라지겠느냐는 회의적인 비판도 있다. 기존 가로망 등 공간조직은 원칙적으로 유지한다고 하지만 전면철거를 허용하는 방식도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한다. 이보다 더 뼈아픈 지적은 이 사업의 주도세력이 여전히 과거 개발시대의 잘못되고 실패한 도시개발정책을 추진해 왔던 세력이라는 점이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전상인 교수는 우리가 과거부터 추진해 온 도시재생정책의 결정적 승전보를 이제껏 들어본 적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며 그 이유로 국토교통부를 비롯해 이해관계가 걸린 유관업계와 단골 전문가, 운동가 등 늘 비슷하거나 같은 무리들이 도시재생을 시작하고 마감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있다.시대가 바뀌고 정권이 바뀌어 정책의 패러다임과 가치가 달라졌는데도 불구하고 똑같은 사람들이 과거에 대한 반성은커녕 해명도 없이 이어달리기를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와 경기도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에서 도시재생뉴딜사업을 설계할 때 근본적으로 성찰해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경기도가 추진하고 있는 공공임대상가정책은 도시재생뉴딜에 대한 이같은 비판과 우려를 감안하고 반영한 것이다. 도시재생뉴딜은 구도심과 노후 주거지를 살리겠다는 도시재생에 뉴딜까지 포함시켜 경제활력 회복과 일자리 창출까지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다용도 정책이다. 문제는 과연 이게 가능한가인데 경기도형 공공임대상가정책이야말로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정책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경기도형 공공임대상가는 경기도 연정과제로 주택에만 한정돼 왔던 공공임대의 범위를 상가에까지 확장한 정책이다. 도심을 지나는 철도나 고가도로 하부의 죽은 공간에 모듈러나 컨테이너 방식의 조립식 건물로 상가를 조성해 지역 특성과 수요에 맞게 공급하자는 것으로, 경기도는 실태조사가 끝나는 대로 올해 안에 시범사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철도나 도로로 단절된 도시공간을 연결해 통합해 주는 창의적인 도시재생 정책이다. 상가가 구축되면 주로 청년 메이커들의 스페이스 몰과 같은 혁신적인 창업 플랫폼, 문화공간, 상업공간 등으로 구성할 계획인데 청년 등에게 다양한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뉴딜정책이라 할 수 있다. 도시재생뉴딜이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를 위해 공공임대상가 등 상생거점 공간 설치와 일자리 창출사업을 의무화하고 있는데 경기도와 의회의 정책제안이 반영된 것이다. 경기도 연정과제가 국정과제의 세부사업에까지 포함시켰다는 점에서도 의미 있는 일이다. 도시재생뉴딜은 경기도가 선도하고 있다. 양근서 경기도의원

[경기시론] 자녀와 부모, 모두 행복한 교육

여전히 국민은 불안하다. 새 정부 100일이 지났음에도 바뀐 것이 없다. 대학입시 개선에 대한 불소통, 살충제 계란, 생리대 발암물질, 침묵의 살인 석면가루, 심지어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인간 삶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의식주 자체를 위협받고 있다. 국가가 곧 국민이라는데 국가의 정책은 국민 개개인의 삶 속에 깊이 관여하고 있음에도 국민의 삶을 보호하고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다. 지금의 사태가 현 정부만의 문제이고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억지이다. 어떤 정부가 집권을 하든 국민을 위한 국가시스템은 국민 삶의 행복 보장을 위한 방향으로 절로 운용되어야 한다. 이에 국가시스템 개조를 위한 교육개혁정책으로, 필자가 지난 1년 동안 (글로 남긴) 교육에 대한 제도 개혁을 나름 정리하는 차원에서 다음과 같은 문제점과 그 대안을 제안한다. 우리나라는 학연과 학벌주의 등으로 인해 좋은 대학 졸업이 곧 인생 성공의 기반이란 잘못된 인식이 만연하다. 이는 지나친 입시경쟁위주의 교육풍토를 조장하고 학생들을 사교육으로 내몰고 있다. 또 다른 문제점 중 하나는, 학교교육이 특히 중등과정이 되어갈수록 단순암기·주입식교육 위주로 행해지고 있어 창의력 개발은 뒷전이라는 점이다. 특히, 4차산업혁명 시대인 지능정보사회에 적응시키기 위해 창의력 향상이 필수인데, 우리나라의 교육은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교과과정 수준은 일반 국민이 습득할 필요가 없는 정도로 어렵게 편성되어있는 것도 문제이다. 삶과는 동떨어진 어려운 교과과정을 편성해 놓고 다양한 학생들을 한 울타리에 가두어 놓고 배움을 강요하고 있다. 이처럼 중·고등학생의 학습효율을 전반적으로 저하시키는 현 학교교육시스템은 사교육을 제한 없이 시킬 수 있는 부유층에게 유리한 교육제도일 수밖에 없다. 당면한 교육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은 중·고등학교에서 우열반을 편성하여 능력에 맞게 창의력향상 위주의 교육을 하는 것이다. 우리 헌법 제31조에서는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우열반을 편성하여 교육을 하더라도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 교과과정은 개념위주로 쉽고 짧은 기간에 습득할 수 있게 개편해야 한다. 교과 진행은 교사의 재량대로 창의력을 향상시키는 방식으로 가르치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교사가 어떤 내용을 창의적으로 가르칠지를 모르기 때문에, 학생들이 학원에 갈 의미가 없어진다. 지금처럼 모든 학생이 학원에 가는 사교육이 필요 없게 되는 것이다. 대학입시를 위한 수능고사는 폐지하고, 쉽게 편성된 교과서의 기본개념만 학습하면 누구나 쉽게 통과할 수 있는 대학입학자격고사를 신설하여야 한다. 자격고사를 통과한 학생에 한해 대학입시 자격을 부여하고, 대학입학자격고사의 성적은 일체 입학사정에 반영하지 않도록 한다면, 대학에서 학습할 기본적인 학습능력은 유지될 것이다. 국가는 인구절벽위기 극복을 위한 마지막 기회로 교육·노동·복지 체계 혁신으로 자녀 양육·교육을 국가책임시스템으로 구현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과의 소통보다는 현 정부의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위한 과업 실현과 교육 체계 혁신을 오로지 5년 안에 이루고자 하는 무소불위의 뿔처럼 가고 있지 않은지 각성해야 한다. 부모가 지금 자식과 소통하고 자식을 행복하게 하기 보다는 자식의 장래(미래)를 위해 현재의 힘겹고 버거운 삶을 강요하며 사교육으로 부모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대신하고 있는 잘못처럼 말이다. 서정미 안양대학교 교수

[경기시론] 한국 피로감과 코리아 패싱

이옥남 ‘한국 피로감’은 워싱턴 정가에서 한일관계개선의 필요성과 일본 정부의 거듭된 사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계속 일본에 사과를 요구하면서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다는 일종의 한국 책임론을 일컫는 말이다. 이에 더해 한국은 우방국이어야 할 일본과의 관계 개선보다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더 힘쓴다는 중국 편향적 외교에 반감을 나타낸 표현이다. ‘한국 피로감’은 한일관계에서의 남한 책임론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지속적으로 비정상적인 행태를 보여 온 것에 대해 국제사회가 대응할 수 있는 한계에 대한 무기력감을 나타낸 용어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 한반도에 감도는 북한의 언어 및 무력 도발 수위와 미국의 반응이 심상찮다. 북한 전략군은 지난 10일 “8월 중순까지 괌도 포위 사격하는 방안을 최종 완성해 공화국 핵 무력의 총사령관 동지께 보고드리고 발사대기 태세에서 명령을 기다릴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행정부 관료들은 군사 옵션 장전 발언으로 대응했다. 행동에는 행동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예측이 어려운 양 정상의 스타일로 미루어 짐작건대 한반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짐작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한국 내 안보 위기만 고조되어 간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한반도 정세에서 주변 강대국들이 당사국인 한국을 자연스럽게 배제하는 이른바 ‘코리아 패싱’ 현상에 대해 우리 정부는 진지하게 반추해 보아야 할 것이다. 최근 들어 정부는 북한의 지속적인 무력 도발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와 동떨어진 대북정책을 고수했다. 심지어 대북 유화책에 북한마저도 냉소적인 반응을 보여도 군사회담제의 등 일방적 대북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에 한반도를 둘러싼 주요국은 ‘코리아 패싱’ 현상을 만들어내며 운명의 당사자는 빠진 채 한반도 운명이 논의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당초 문재인 정부가 주장했던 ‘한반도 운전석론’은 ‘운전석은커녕 조수석에도 앉지 못하는 처지로 전락’해버린 현실에서 무의미한 수사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렇듯 ‘코리아 패싱’을 불러온 국제사회의 징후는 단기적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관계에 있어 꽤 오랫동안 피로감을 야기한 한국과 북한에 의한 ‘한국 피로감’에 대한 국제사회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한국과 북한은 국제사회가 ‘한국 피로감’에서 벗어나게 해 정상적인 외교관계를 복원하도록 피로감을 떨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우선, 한국은 과거 정부의 ‘동북아 균형자론’이나 ‘운전석론’ 과 같이 현실을 제대로 읽지 못한 한국 역할론에서 벗어나 백척간두에 놓인 운명의 당사자로 돌아가야 한다. 또한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과 핵무기 보유가 북한을 ‘게임 체인저’로 변신시키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국제사회의 위험적 존재로 전락시킨다는 사실을 주지해야 할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는 당사자의 의지와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는 평범한 사실을 한국과 북한만 무시하는 듯하다. 이옥남 바른사회시민회의 정치실장

[경기시론]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군 개혁

군인은 주권자 국민이며 인권의 주체로서 시민이다. 국방의 의무는 주권자로서 국민의 자기방어 의무다. 다만 의무의 구성은 인권과 다르다. 예를 들면, 동료시민의 양심의 자유를 존중하기 때문에 많은 나라에서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한다. 최근 공관병에 대한 인권 침해 문제는 관련 지휘관의 책임을 묻는 선에서 봉합해서는 안 된다. 가혹행위 때문에 병사가 자살하거나 제때 의료적 조치를 받지 못해 생명을 잃는 사건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방위산업체 비리와 군의 부패 문제 또한 심각한 지경임이 드러나고 있다. 고위 관료의 병역 면탈 문제와 군대 내에서 성폭력과 성희롱 사건 또한 끊이지 않는다. 정당한 입헌주의와 법치주의를 확립하지 못한 곳에서 투명성과 공정성을 담보하기는 어렵다. 군에서의 각종 사건사고는 군의 특수성을 빌미삼아 인권과 법치를 배제하고 군의 존재이유를 뛰어넘어 위계질서를 강요하는 등 전근대적이고 군사주의적인 잔재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군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며, 병사의 안전은 물론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다. 헌법은 대한민국이 세계평화를 지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함을 전제로 하여 군에게 국토방위의 의무를 명령하고 있다. 그럼에도 헌법에는 군사주의 잔재가 남아 있다. 그 조항들은 대개 일제의 잔재이거나 쿠데타 이후 독재정권 아래에서 개악된 것이다. 헌법상 ‘통수’ 표현은 일본 메이지헌법에서 내각의 통제를 배제하는 제도에서 유래한다. 우리 헌법상 통수는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야 하기 때문에 크게 문제 삼지 않을 수도 있다. 즉 헌법 개정도 중요하지만, 그 문제점은 상당 부분 국회의 통제 또는 법률 제정이나 개정을 통해서 해소할 수도 있는 것이다. 군인 인권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을 제정하기는 했지만, 동법은 인권을 보장하기보다 인권을 군사적 직무에 종속시키고 있다. 군의 위계구조상 국가와 지휘관 등의 법적 책무가 더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규율하지 않았다. 시민사회에서는 군인의 인권을 보장하고 군의 입헌주의 준수를 보증하는 장치로서 국방감독관 제도 도입을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군의 반대로 실패했다. 상급자 아니면 징계도 처벌도 하지 못하는 제도는 시대착오적이다. 군의 ‘내부적인 자기 개혁’은 효능이 없다. 헌법이 현역군인을 국무총리나 국무위원으로 임명할 수 없도록 한 것은 군이 ‘군인, 특히 상급자들의 조직’이 아니라 주권자 국민의 안전을 위한 조직임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군대는 전시 군의 작전활동에서도 인권규범을 준수해야 할 의무가 있다. 군의 기본질서는 군사적 이념과 가치에 따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인권과 민주주의 원칙을 존중하는 전제조건 위에서 형성해야 한다. 군인은 시민으로서의 기본적 권리를 향유해야 한다. 그것은 국민의 안전과 평화적 생존을 지키기 위해 평화를 파괴하는 여하한 것에 대해서 결연히 맞설 수 있는 ‘헌법적 방어무기’다. 국토방위는 인권의 방어다. 인권은 군의 전투력을 훼손하는 것도 군기를 흐트러뜨리는 것도 아니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하는 군인만이 스스로의 생각과 판단으로 동료와 협동하면서 행동할 수 있다. 국민의 관점에서는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군대가 가장 강한 군대다.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경기시론] 공론화를 통한 교육정책 개혁

여름휴가 시즌이다. 북한 미사일 발사에도 대통령조차 여름휴가를 떠났다. 일단 떠난다는 것만으로도 일상으로부터의 해방감을 만끽한다. 짧은 재충전은 한 해의 나머지 절반을 살아갈 힘이 된다. 그러나 이런 기회를 포기하는 가족들이 있다. 바로 대학입시 수험생을 둔 가정이다.자식 중 한 명이라도 고등학생이 되면 가족들 휴가는 자동 반납이다. 고3 수험생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고등학생만 되면 대입전형을 위하여 봉사활동, 스펙 쌓기 등은 물론 조금 더 높은 혹은 자신이 받은 등급을 지키기 위하여 학원비로 휴가비를 반납한다. 얼마 전 문재인 정부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발표하였다. 다른 건 차치하더라도 5대 국정목표 중 3번째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가 눈에 들어온다. 이를 위한 5대 국정전략으로 ‘모두가 누리는 포용적 복지국가, 국가가 책임지는 보육과 교육, 국민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안심사회, 노동존중·성 평등을 포함한 차별 없는 공정사회, 자유와 창의가 넘치는 문화국가’를 내걸고 있다. 모든 국민은 이와 같이 행복하게 살아갈 희망과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다. 고등학생도 국민의 한 사람이고 분명 행복할 권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능, 내신(과목별 수행평가 등), 수시 제도, 자기소개서, 학교생활기록부, 봉사활동, 동아리, 임원 등 대입 철인 10종 경기에 참여를 강요당하고 있다. 자기 학대를 통해서만 이 사회의 진정한 일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국가가 파놓은 늪에 빠져 있다. 국가가 고등학생의 삶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그 가족들의 삶까지도 힘들고 어렵게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학입시 역사를 보면 우선 해방 직후 1945년부터 1953년까지는 정부의 관여 없이 대학별로 자율적인 단독시험을 치렀다. 1954년 국가연합고사 선발 후 본고사, 1962년부터 1963년에는 대학입학 자격고사, 1964년부터 1968년까지 대학별 단독 고사, 1968년 예비고사제, 1980년 본고사 폐지, 1981년 단순암기식의 학력고사 그리고 새로운 국가고사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1994년부터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실시되고 있다. 그러나 입시제도가 개편될 때마다 가진 자를 위한 변화라는 비난이 있어 왔다. 과거 ‘개천에서 용 났다’라는 말은 빈말이 되었다. 배움조차 부모 잘 만나고,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되어버린 것이 아니냐는 자조 섞인 말들까지 나오는 서글픈 현실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현 대학입시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해결하고자 ‘대입전형의 간소화’를 교육개혁 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선거 때 약속한 국민과의 대선 공약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교육정책의 당사자인 부모와 학생, 그리고 일선 교사들이 배제된 정책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국민적 합의 없이 개혁 정책이 추진된다면 정부와 국민, 국민과 국민 간의 갈등과 대립을 겪는 일은 명약관화하다. 그러기에 공론조사를 통하여 국민 대다수가 행복할 수 있는 교육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과정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어떻게 지속적으로 행복감을 느끼며 인생을 영위해 나아가야 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이고 구체적인 물음이 있는 이슈로 전 국민이 학습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국민적 의견 일치를 이룬 뒤에야 교육정책 개혁의 내용을 결정해야 한다. 정책 추진에 앞서 부모와 학생 그리고 교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정부 주도의 공론화 과정이 절실한 때이다. 서정미 안양대학교 교수

[경기시론] 피로사회, 여름 휴가나기

삼복더위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더위는 그 도를 더하고 있어 벌써 여름휴가를 떠난 사람들도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한 2017년 여름휴가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2%가 7월 말에서 8월 초에 휴가를 갈 예정이라고 한다.경기가 좋지 않아 삶이 팍팍해져도 어김없이 본격적인 여름휴가철이 돌아온 것이다. 가족이나 가까운 친지들과 함께 일과 가정에서 쌓였던 스트레스와 피로를 푼다는 점에서도, 2017년 남은 후반기를 힘차게 살아 갈 에너지를 재충전한다는 점에서도 휴가는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 여름휴가 모습은 어떤가? 계획을 세워 휴가가 시작되자마자 급히 달려가 먹고 마시고 놀다 보면 정해진 휴가시간이 다 지나고 파김치가 돼 돌아와 다음 날 출근한다. 힐링이나 충전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방전이 돼 더 피곤해지는 ‘휴가 후유증’을 겪는 것이다. 한 일간지가 주관해 20~50대 직장인 1천여 명을 설문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휴가후유증을 경험한 비율이 무려 70.9%에 이른다. 그래서인지 이번 여름휴가에서 가장 원하는 것은 설문에 응한 직장인의 57.3%가 선택한 ‘휴식(休息)’이다. 재미나 보람보다 심신회복, 그냥 푹 쉬고 싶다는 것이다. 지친 심신이 보내는 요구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이기도 하다. 미국 뇌과학자 마커스 라이클 박사는 2001년 뇌영상 장비로 휴식하거나 잠자는 등 뇌에 아무런 정보가 입력되지 않을 때 활성화되는 뇌의 특정 부위(default mode network)를 발견했다. 컴퓨터를 리셋하면 초기설정(default)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평소에 뇌가 인지활동을 하고 있을 때는 서로 연결되지 않던 뇌의 각 부분이 연결되어 창의력과 통찰력이 더 발휘된다는 것이다. 아르키메데스는 목욕탕에서 부력의 원리를, 뉴턴은 사과나무 밑에서 쉬다가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다고 한다. 현대인은 지하철이나 버스를 탈 때에도, 심지어 화장실에서도 스마트폰으로 무언가를 검색하느라 정작 문제나 고민 해결에 필요한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있다. 재독 철학자 현병철 교수는 저서 피로사회(2010년) 첫 문장에서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질병이 있다’고 말한다. 현대를 피로사회이자 자기착취사회로 규정하며 고유질병인 우울증은 긍정성의 과잉에 시달리는 사회의 질병으로 자기 자신과 쉼 없이 전쟁을 벌이고 있는 현대 인간을 반영한다고 지적한다. 일이든 휴가든 쉬지 못하는 불 안병에 걸려 피로가 누적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는 여느 국가보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여 단기간에 초고속 성장을 한 만큼 만성 피로감도 더 쌓여 있다. 점진적인 성장을 이룩한 영국, 미국, 일본에 비해 성장기간이 짧은 만큼 기성세대와 청년세대가 살아온 삶의 차이 또한 크다. 그 차이만큼 공감대 부족으로 세대 갈등도 늘어나 피로가 쌓이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인터넷에 떠도는 두 교수의 소위 헬조선에 대한 반박 글과 재반박 글은 그 갈등을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요즘 집이나 근처에서 머물며 휴식을 취하는 감금휴가가 새로운 휴가 유형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한다. 올 여름휴가는 쌓인 피로를 씻는 심신회복에 초점을 맞춰보면 어떨까. 공정률 30%의 신고리 5, 6호기 건설공사를 중단하는 등 새정부 탈원전 정책이 속도를 내고 있다. 찬반 갈등도 고조되고 있다. 인수기간도 없이 쉬지 않고 달려 온 새정부도 성과를 위해 서두르기보다는 더 큰 통찰력을 위해서라도 잠시 쉬면서 되돌아보는 여름휴가가 필요하다. 이정호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 회장

[경기시론] 朴 전 대통령의 재판과 文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계속 고공 행진 중이다. 매주 약 80%를 넘나들고 있다. 소위 ‘내로남불’ 식 인사원칙으로 대선 공약인 고위공직 배제 5대 원칙에 부적합한 장관후보자를 내놓고 임명을 강행해도 높은 지지율은 크게 영향 받지 않는다. 북핵문제와 관련해 국제기조와는 다소 다른 유화정책을 피력하고, 독일 연설 후 질의과정에서 한미관계에 대한 질문에 대해 엉뚱하게 한중관계에 대한 답변을 해도 높은 지지율은 끄떡없다. 비틀린 성의식을 갖고 있는 문 대통령 측근인 청와대의 행정관에 대한 여성가족부 장관 등 여성계의 계속된 사퇴요구를 무시해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탈원전 관련 원전공사 일시 중단 결정을 국무회의에서 단 20분 만에 끝내도 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은 꺼지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특정한 정책이 아직 시행되기 이전이므로 특별한 정책효과 때문으로 볼 수도 없다. 그렇다면 이유는 무엇일까. 누가 도와주고 있는 걸까.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사실상 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을 견인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국정농단과 관련된 재판의 내용은 연일 쏟아지고 있다. 뇌물, 비선진료, 비선실세 최순실의 딸의 입시비리 등 모두 낯 뜨거운 이야기다. 국민들의 정치 지향점은 보수를 떠나 다른 곳으로 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군다나 박 전 대통령의 재판태도는 보수층을 더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 설령 개인 박 전 대통령에게는 이득이 될지 몰라도 보수층 전체에게는 창피한 일일 것이다. 법과 원칙을 외치며 국가를 책임졌던 보수 정치지도자의 상(像)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보수층이 정말 위축될 수밖에 없다.김종필 전 총리도 보수가 수세에 몰린 상황에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병원에 입원 중으로 알려졌다. 발가락을 다쳤다는 이유로 재판에 출석하지 않는 모습에서는 법을 무시하는 웰빙적 특권의식을 국민은 보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즉시 오버랩 될 수밖에 없는 장면이 있다. 바로 참모들과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청와대를 산책하는 문 대통령의 모습이다. 특권과 탈권위의 이미지로 양자는 너무나 선명하게 대비된다. 높은 지지율의 견인요소다. 높은 지지율은 구조적으로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사회개혁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가 강할 때 국정지지도가 높은 것이 국내 정치현상의 특징인데, 현재 국정농단에 대한 수사와 재판은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면세점 선정을 둘러싼 관세청의 점수조작에 대한 박 전 대통령 주변에 대한 수사가 12일 다시 시작되었고, 14일에는 청와대가 지난 정부 민정수석실에서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문건 300여 종을 발견했다는 기자회견이 있었다. 현재 특검은 재판의 증거로 제출하기 위해 분석 중에 있다. 국정농단과 관련된 실체 진실이 밝혀져야 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혹시 재판과정의 단순한 반사적 효과 때문에 대통령이 높은 지지율이 유지되고, 이를 근거로 정책을 밀어 붙이게 된다면 이것은 국익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국가가 높고 멀리 안정적으로 날기 위해선 이념적으로 균형 잡힌 왼쪽과 오른쪽의 날개가 모두 온전히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한국 사회의 보수는 무기력해 보이고 위축되어 있다. 얼마 전 한 보수야당의 전당대회에서도 막말 또는 신발 벗고 노래하는 모습이외에 다른 것을 보여주지 못했다. 보수 가치에 대한 콘텐츠 빈곤의 해결과 새로운 인물의 충원이 현재 한국정치의 쏠림 현상에 대해 균형을 잡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웅혁 건국대학교 경찰학과 교수

[경기시론] G20 아베의 블루리본과 6·25 납북자

지난 7~8일 양일간 독일 함부르크 시에서 G20(Group of 20) 정상회담이 열렸다. 세계 주요 정상들이 모인 자리인 만큼 각국 정상들은 양자 회담 등 다양한 기회를 통해 외교의 장을 펼쳤다. 우리나라는 한미일 3국 공동성명 채택을 통해 북한의 무력도발에 대해 3국이 지속적인 안보 협력을 발전시켜 나가기로 약속했다. 언론에 보도된 3국 정상 공동성명 채택 기념사진에서 아베 총리의 양복 상의에 달려 있는 ‘블루리본’이 눈에 띄었다. 사실 아베총리와 일본의 내각 장관 대부분은 블루리본 배지를 거의 상시 달고 다닌다. 블루리본 배지는 북한에 의해 납치된 일본인 피해자의 조기 석방과 구출을 기원하기 위한 것이다. 푸른색은 납치 피해자와 피해자의 가족, 일본인들이 일본과 북한 사이에 국경 없이 이어진 푸른 하늘과 바다를 바라보며 재회의 시간을 기다린다는 의미다. 일본 정부에 의하면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은 사망자를 포함해서 17명이다. 일본 정부는 이들의 송환을 전담하기 2006년 ‘납치문제대책본부’를 정부 조직 내에 개설하고 연간 약 12억 엔(약 121억)의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일본 정부는 대북관계에 있어 ‘납치문제 해결없이 국교정상화는 없다’는 원칙을 대북방송 ‘일본의 목소리’를 통해 반복해서 내보냈다. 북한이 이에 요구할 가능성이 적기 때문에 일본은 북한에 대해 제재, 무역전면 중지, 선박 왕래의 전면 금지 등 대북 강경책을 고수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납북자 송환 노력은 전 세계 납북 피해자들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하다. 한 미국 NGO의 조사에 의하면 북한은 6·25전쟁 이후 현재까지 전 세계 12개국으로부터 약 18만여 명을 납치했다. 이 중 상당수는 한국인이다. 6·25전쟁 당시 우리 정부의 공식적 기록에 의하면 북한은 약 8만여 명의 남한 민간인을 납치했다. 북한은 체제 수립을 위해 심각한 인재부족 상황에 직면했고, 부족한 인재를 6·25 전쟁 중 남한의 주요 인사 및 민간인 납치를 통해 충원했다. 납북 피해 가족들은 6·25 전쟁 당시 납북된 직후부터 가족회를 결성해 납북자 송환활동을 펼치다 1960년대부터 약 40년간 활동이 중지된 후 2000년에 재결성됐다. 가족회는 미 의회에 납북자 송환 결의안을 1년 만에 통과시키는 등 왕성한 국제 활동을 펼쳤다. 특별법에 의해 2010년 ‘6·25 전쟁납북피해진상규명 및 납북피해자명예회복위원회’가 국무총리 산하에 설치돼 약 7년 동안 납북진실 규명활동, 납북피해 및 피해 가족들의 명예회복과 기념사업 등을 추진하고 올해 12월 활동종료를 앞두고 있다. 납북사건이 발생된 지 60년도 더 지난 시점에서의 진실규명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뒤늦게라도 정부차원의 진상규명이 이뤄진 것은 고무적인 일이지만 활동 종료를 앞둔 납북진상규명위원회는 성과와 함께 과제도 남겼다. 가해자에 대한 책임 문제다. 8만여 남한 민간인을 납북한 후 단 한명도 송환하지 않은 북한에 대해 피해자는 책임 문제가 해결돼야 비로소 온전한 과거사 정리가 될 것이다. 과거사 정리에 있어 주요한 과제는 ‘재발방지’다. 6·25 이후에도 북한은 전 세계 민간인을 납치하거나 현재에도 억류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인 대학생 웜비어의 희생도 있었다. 북한에 의한 납치범죄는 비단 한 나라의 문제는 아니다. 북한 핵문제 만큼 국제공조가 절실한 부분이다. 이옥남 바른사회시민회의 정치실장

[경기시론] 교육정책 개혁을 통한 오뚝이 삶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는 한 후보자의 학창시절 있었던 ‘돼지 발정제’ 성범죄 모의가 이슈가 되었다. 요즘 청문회에서는 음주운전 경력 등의 과거 흠결이 있는 사람이 장관 후보로서 인사 검증을 받고 있다. 과거 잘못된 선택과 행동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후보자나 장관도 될 수 있는 너그러운 사회이다. 그러나 작금의 교육현실은 미래를 짊어지고 갈 학생들이 혼돈기에 겪은 혼란과 그로 인한 작은 실수를 받아들이는 면에 있어서 너무나 인색하다. 교육은 시대적 환경과 학자에 따라 다양하게 정의된다. 도덕적·인격적 면을 중시한 칸트, 문화와 지식면에 치중한 슈프랑거, 생명과 생활경험면에 중점을 둔 듀이, 개인주의 심리학적 입장에 입각한 루소나 케이, 사회적 세계관을 가진 페스탈로치, 신학적·종교적 견지에서 윌먼이나 마리탱 등 제각기 교육에 대하여 정의를 내리고 있지만 한가지 공통점은 ‘인간을 대상으로 한 인간형성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교육은 끊임없는 사회 개조의 과정이고 경험을 사회적·실용적으로 넓히며 깊게 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교육을 통한 사회 개조와 경험에 의해 바람직한 인간형성의 과정을 거쳐 이 사회의 동량으로 성장한다. 미래의 버팀목들이 삶을 경험하고 삶의 과정을 밟으려면 어느 정도 학생 스스로 자발적 행동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교실에는 무기력함을 호소하는 수많은 학생들이 책상 위에 엎드려 있다. 밤에 충분히 자고 낮에는 몸을 움직여 이것저것 경험할 시기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쉬는 시간 없는 일상으로 아이들은 다양한 경험의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다. 새로운 정부의 교육정책은 학생들에게 경험의 기쁨과 행복을 되돌려주는 것이 되었으면 한다. 제도권에 있는 학생들은 학교를 행복한 경험의 공간이라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제도권 밖 학생들에게도 다시 ‘교육’이라는 경험의 과정에 재진입하고자 하는 열망을 불러일으키는 교육정책이 필요하다. 문재인 대통령 교육정책의 주요내용으로 대학입시, 초중고교정책, 대학정책, 교육부 개혁 등이 제시되어 있다. 늦어도 두 달 안에는 가닥이 잡혀갈 듯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어디에도 ‘패자(?) 부활’에 대한 배려가 보이지 않는다. 지금과 같은 ‘승자독식’의 사회 시스템이었다면 학창시절과 청년시절 잠깐의 잘못된 선택을 했던 그들이 지금 이 순간에 대통령 후보자나 장관 후보자가 될 수 있었을까? 교육은 끊임없는 경험 개조의 과정이라 하였다. 누구나 잘못된 판단과 실수를 한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다. 질풍노도의 시기에서의 선택과 실패 역시 발전을 위한 경험이다. 한순간 우리 아이들의 잘못된 선택과 행동이라면 이를 감싸 안고 더 나은 삶에로의 교육 기회를 확대해야 하지 않을까. 또다시 사회의 역군으로 제대로 사는 삶을 살 수 있는, 사회 여러 시스템에서 구제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의 경험과정이 체계화되어야 할 것이다. 막심 고리키의 작품 ‘밑바닥에서’ 어느 배우의 “인간은 왜 사는가?”라는 질문에 “인간은 더 나은 삶을 물려주고자 산다”라는 순례자의 말이 가슴 한 켠에 ‘쓰림’으로 남는다. 대한민국의 교육정책이 제도권과 제도권 밖 학생들에게 다시 한 번 ‘인간’ 속에서 삶의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 포용의 기회를 제공하여야 한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도록 끊임없는 재고로 정책을 수정하고 보완해 가기를 바란다. 서정미 안양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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