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깨끗한 수돗물과 함께하는 ‘퇴촌 토마토 축제’

매년 여름 초입에 들어서면 경기 광주시는 토마토의 붉은 활기로 물든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열리는 ‘퇴촌 토마토 축제’가 바로 그것이다. 퇴촌 대표 농산물인 토마토의 가치를 알리고 방문객에게는 색다른 경험과 추억을, 농민들에게는 자긍심과 활력을 전하는 이 축제는 어느덧 광주시를 대표하는 여름 풍경이 됐다. 이 축제는 23년 넘도록 이어지고 있다. 이토록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열려온 데에는 지역주민의 애정과 헌신 이외에도 눈에 잘 띄지 않는 조건이 하나 있다. 바로 물이다. 여름철 축제는 물 없이는 상상하기 어렵다. 더위 속에서 펼쳐지는 야외 행사는 그 자체로 물을 많이 필요로 한다. 토마토를 재배할 때도 물이 필요하고, 축제 인기 프로그램인 토마토 풀장 운영에도 마찬가지다. 손을 씻고, 토마토를 씻고, 물놀이를 하고, 미스트를 뿌리고, 음식도 만들고, 더위로부터 열을 식히고 건강을 지키는 일까지. 축제를 구성하는 수많은 활동이 모두 깨끗한 물과 연결된다. 23년이 넘도록 축제가 지속된 것은 그만큼 안정적인 물 공급 인프라가 작동해 왔음을 의미한다. 광주시는 물론이고 전국 모든 지역의 여름 축제는 이처럼 안정적인 수돗물 체계가 뒷받침하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광주시의 수돗물은 한국수자원공사 광주수도지사가 책임지고 있다. 2009년부터 광주시 전역에 깨끗한 수돗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며 광주시민의 건강한 일상과 지역경제에 힘을 보태고 있다. 정수장은 24시간 운영되고 수질은 실시간 감시 체계를 통해 관리된다. 법적 기준보다 엄격한 ‘글로벌 수질기준’도 적용되고 있다. 이러한 시스템 덕분에 광주시민은 안심하고 물을 마실 수 있고 축제 또한 보다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치러질 수 있다. 광주수도지사는 단순 물만 공급하는 건 아니다.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ESG 경영으로 시민 삶의 동반자가 되기를 지향하며 나눔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이를 위해 ‘수돗물 안심서비스’를 통해 수질 정보와 상담을 제공하고 사회적 배려 계층을 위해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조성한 ‘물사랑 펀드’도 운영하고 있다. 올해 퇴촌 토마토 축제에서는 이 펀드로 지역 농가에서 토마토를 구매해 다시 어려운 이웃에게 나누는 활동도 계획돼 있다. 행사에 참여하면서 동시에 지역경제와 복지에도 기여하는 방식이다. 물은 늘 곁에 있지만 대부분 그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아무런 불편이 없기 때문이다. 올해도 광주의 수돗물은 평소처럼 조용히 흐를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 물이 지나간 자리마다 퇴촌 토마토 축제를 찾은 시민들의 행복한 순간들이 하나씩 피어날 것이다. 함께 웃고, 땀 흘리고, 풀장에 뛰어들며, 먹고 즐기는 그 모든 순간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 바로 그 평범함을 지키는 일이 광주수도지사의 소중한 과제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겨본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시정단상] 동에서 꽃피는 시흥 미래

뜨거웠던 선거의 계절이 지나갔다. 선거는 국민의 손에 권력이 주어지는 일이다. 국민이 대통령 선출이라는 권력을 처음 행사한 것이 대통령 직선제가 시작된 1952년이다. 이후 직접선거와 간접선거가 반복되다 1987년부터 직접선거제가 정착됐다. 그러나 이때에도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여전히 중앙정부가 임명했다. 1995년이 돼서야 비로소 우리 동네 단체장을 우리 손으로 뽑게 됐다. 민선 지방자치제의 시작이다. 이처럼 지방자치의 본질은 중앙에서 지방으로, 다시 시민으로 권한을 나누는 것이다. 단순한 권한의 분산이 아니다. 시민이 내 삶과 지역의 미래를 결정하는 주체로서 권리를 실현할 때 진정한 지방자치가 시작된다. 그 중심에 동(洞)이 있다. 동은 행정의 가장 작은 단위이지만 주민과 가장 가까운 행정이다. 그래서 지방자치가 가장 현실적으로 작동하는 현장이기도 하다. 지난 30년 동안 주민들은 동이라는 자치의 공간에서 다양한 지역 현안에 참여하고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왔다. 특히 코로나19 위기를 지나면서 지방자치의 중요성은 더욱 분명해졌다. 각 동은 방역의 최전선이었고 주민 한 분 한 분이 그 선봉에 섰다. 부족한 마스크를 만들고, 마을 방역을 자처하고, 크고 작은 기부를 이어가며 풀뿌리처럼 지역을 지탱했다. 시흥시는 지방자치가 온전히 실현될 수 있도록 동 중심 기반을 제도적으로 강화하며 실행력을 뒷받침하고 있다. 2015년에는 전국 최초 책임읍면동으로 대야신천행정복지센터를 지정하고 시 본청의 일부 사무를 이관했다. 행정의 무게중심을 동으로 옮기자 주민 편의와 행정 효율이 높아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주민들은 수해 대비, 주차난 해소, 골목 상권 살리기 등 행정의 힘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지역 문제를 행정과 협치하며 10년째 지역 발전을 주도하고 있다. 2016년 3개 동에 불과했던 ‘주민자치회’는 지난해 20개 모든 동으로 확대하며 실질적인 주민 참여 기반을 마련했다. 권한의 한계가 있었던 주민자치위원회와 달리 주민자치회에서는 누구나 마을 의제를 발굴하고, 자치 계획을 실행할 수 있다. 특히 시흥형 주민자치는 주민 스스로가 주민자치회의 필요성을 자각하고 결정하도록 숙의를 거쳐 점진적으로 전환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현재 우리 시는 동마다 주민자치 전담 인력을 배치해 행정이 제도적으로 지원하고 주민이 스스로 실행하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다양한 주민 요구를 세심하게 파악하고 맞춤형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다. 주민이 자신에게 꼭 필요한 행정서비스를 경험하면 지방자치의 효능감을 느끼게 되고 이는 자발적인 참여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우리 시는 2023년 동마다 ‘동장신문고’를 설치하고 동 중심 생활민원책임제를 공표했다. 주민이 직접 시청에 가지 않아도 동장신문고를 통해 빠르고 편리하게 민원을 해결하는 시스템이다. 올해는 ‘책임동장 민원관리제’ 시행으로 민원 처리에 대한 동장의 역할과 책임을 한층 강화했다. 특히 시흥시는 경기도 최초로 동 단위 돌봄을 실현하며 공동체 울타리를 견고히 하고 있다. 2022년 시작한 ‘시흥돌봄SOS센터’는 동마다 배치된 돌봄매니저가 현장을 직접 방문해 돌봄이 필요한 시민 누구에게나 맞춤형 서비스를 지원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사업 초기 서비스 이용 건수는 600여건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1만1천여건으로 증가했다. 시흥형 돌봄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지난해 경기도 누구나 돌봄 사업으로 확대됐으며 올해부터 경기도 29개 시·군에서 추진 중이다. 권한과 예산은 더 과감히 분산하고 참여의 문은 더 넓혀야 한다. 동이 제대로 기능할 때 시민은 권한을 되찾고 도시는 균형을 찾는다. 이것이 시흥의 미래를 밝히는 가장 정직하고 확실한 길일 것이다.

[경기만평] 아들아 미안하다...

[사설] 양우식 경기도의원, 이게 조용히 끝날 거라고 보나

도저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이었다. 그런 말을 도의원이 공무원에게 했다. “쓰○○이나 스○○ 하는 거야?” 언론조차 이 단어를 온전히 옮겨선 안 된다. ‘저속 표현’, ‘풍속 위반 표현’에 해당한다. 어겼다가는 징계·경고·등록취소 등을 받는다. 이런 막말을 한 것은 경기도의회 양우식 의원이다. 공직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공무원 노조가 성명을 냈다. 운영위원장직 사퇴 등을 요구했다. 달포가 지났지만 분노는 여전하다. 공무원들의 생각도 나왔다. 81%가 ‘(의원 자격) 제명이 적절하다’고 했다. 98%는 ‘상임위원장직 사퇴’를 요구했다. 경기도 공무원 925명이 참여한 설문이다. 공무원들의 분노가 도의회로 옮아갔다. 18일 운영위원회가 방호 인력으로 둘러 쌓였다. 양 의원 보호를 위한 것 이냐는 빈축도 샀다. 분노한 공무원들이 위원장 사퇴를 요구했다. 운영위원회가 약 6시간 만에 개회 후 정회했다. 안건 처리가 제대로 됐을 리 없다. 양 의원이 했다는 주장이 있다. 국민의힘 도의원들의 단체방에 남겼다. “국민의힘을 이기는 정당으로 만들기 위해 민주당, 언론, 노조 등과의 싸움은 반드시 필요했다.” ‘언론’과 연결될 논란은 2월에 있었다. “의장 개회사, 양당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1면에 싣지 않으면 홍보비를 제한하라.” 양 의원이 사무처장에게 한 말이다. 이 말을 양 의원은 ‘국민의힘을 위한 언론과의 싸움’처럼 끌고 갔다. 사실과 전혀 맞지 않는다. 당시 도의회 의장은 민주당 소속이었다. 개회사는 민주당 소속 의장의 것이다. 이걸 크게 보도하라는 강요였다. ‘민주당 도의장을 위한 싸움’에 가깝다. ‘국민의힘을 위한 노조와의 싸움’은 더 황당한 논리다. 공무원 노조 반발의 계기는 간단하다. 성희롱 발언이다. 가해자는 양우식, 피해자는 공무원이다. 이 명백한 사건 어디에 국민의힘이 있나. 애초에 국민의힘과 무관한 일탈이다. 당을 끌어들이려는 궤변이다. 무고함을 계속 얘기했다. “법적으로 무혐의를 증명하고 빠르게 명예 회복하겠다.” 죄가 없음을 입증하겠다는 거다. 그런 양 의원이 당으로부터 중징계를 받은 상태다. 당원권 정지 6개월 및 당직 해임이다. 국민의힘 경기도당이 내린 처분이다. 정당이 당원에게 내릴 수 있는 강도 높은 징계다. 무고하다면 이 징계에 대응부터 해야 맞다. 하지만 그런 얘기는 없다. 미래 법적 판단만 말하고 있다. 남은 임기 1년이다. 속 보인다. 억울할 수도 있다. 명예를 회복하는 길은 있다. 의혹된 행위를 부인하면 된다. ‘쓰○○’, ‘스○○’ 발언이 핵심이다. ‘그런 말 안 했다’고 하면 끝이다. 그 말을 하지 못한다. 그러면서 당(黨) 끌어들이고, 탄압 꿰맞추고 있다. 행동이 옳지 않았는데 대처도 옳지 않다. 급기야 경기도 공무원 925명이 사퇴를 요구했다. 가라앉기 힘든 상황에 온 듯하다.

[사설] 교권침해 피해 늘어도... 인천교육청은 행정편의만

학생이 교사를 폭행하는 일까지 벌어지는 시대다. 지난달 경기 수원 한 중학교에서 학생이 교사에게 야구 방망이를 휘둘렀다. 지난 4월 서울의 한 고3 교실에서도 학생이 교사를 폭행했다. 휴대전화 게임을 말리는 여교사를 학생이 휴대전화로 때렸다. 교권침해는 기승을 부리지만 교권보호는 늘 시늉에 그친다. 그래서 교권침해 피해교원 보호조치 비용 지원이라는 제도가 생겨났다. 피해를 입은 교원에게 심리상담, 치료 및 요양에 들어간 비용을 지원한다. 심리상담은 20회까지지만 자살 충동 등 심리위기가 확인되면 추가 5회도 가능하다. 그러나 인천 교사들은 이런 지원조차 사실상 그림의 떡이다. 신청 가능 기간을 박하게 정해 놓아 피해 교사들이 놓치기 일쑤라는 것이다. 인천시교육청의 ‘교육활동 침해행위 보호조치 비용부담 및 구상권 행사에 관한 고시’가 있다. 그런데 피해 교사들이 지원을 신청할 수 있는 기한이 너무 짧다. 지역 교권보호위원회의 조치 결과 통지일로부터 180일 이내로 못 박혀 있다. 그러나 피해교사들 대부분이 이 기간 내에 신청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한다. 막상 교권침해를 당하게 되면 병원 진료나 상담, 휴직 등 황망하게 시간을 흘려 보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비용 지원을 신청하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서류도 너무 복잡하다. 지역 교권보호위원회 조치 결과 통지서, 병원 진단서, 병원 치료 영수증, 신청인 통장사본, 신분증 사본 등이다. 교권침해 피해를 경험한 교사들은 지원 신청 기한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지적한다. 교권침해 피해를 당했을 때는 이를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다. 트라우마까지 겪어 비용 지원 신청 등은 생각할 겨를이 없다는 것이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절차를 알아 보니 이미 180일 기한이 지나 있더라는 교사도 있다. 다른 지역도 그런가 하면 아니다. 인천 외 16개 시·도 대다수 교육청이 교권침해 피해교원 지원 신청 기간을 1년 이상으로 정해 놓았다. 아예 기한을 정해 놓지 않은 지역도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치료 끝난 뒤부터 3년까지다. 경기도교육청도 1년간으로 기한을 정해 놓았다. 강원도교육청은 피해 교사가 언제라도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다른 지역 교육청들은 왜 신청 기한을 충분히 정해 뒀을까. 작다면 작은 일이다. 실제 지원 금액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디테일이 교육현장의 교사들을 더욱 힘들게 할 수도 있다. 그런 엄청난 일을 당한 선생님들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어 보인다. 유명무실한 교권보호책이다. 교육 현장 뒷전 관리감독청의 행정편의주의일 뿐이다.

[지지대] 꿈을 찾는 여정, 고교학점제

국가통계포털(KOSIS) 2024년도 자료에 따르면 중학생의 40%가 ‘희망직업이 없다’고 한다. 그렇게 꿈에 접근하지 못한 중학생이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고교학점제’와 마주해야 한다. 새로운 환경에서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에 선 학생들에게 설렘과 동시에 막막함으로 다가올 수 있다. 고교학점제는 학생이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따라 과목을 선택하고 이수 기준에 도달한 과목에 대해 학점을 취득해 누적하는 방식으로 졸업하는 제도로 올해 고1부터 전면 적용되고 있다. 이로 인해 교실 풍경이 달라졌다. 과거에는 교실에서 학생들이 교과목 선생님들을 기다렸지만 이제는 학생들이 제각각 교과교실을 찾아 이동해야 한다. 장점은 있다. 학교에서 일률적으로 짜여진 수업을 들었던 학생이 이젠 스스로 과목을 선택할 수 있도록 환경이 조성됐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은 진로에 맞는 과목에 더욱 집중할 수 있다. 학교에서 받을 수 없는 소인수 과목은 온라인으로 수강할 수 있다. 게다가 지역사회의 인프라를 이용한 특별한 수업 기회도 제공되고 있어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단점도 있다. 목표가 뚜렷하지 않은 학생은 ‘무슨 과목을 선택해야 미래에 도움이 될까’ 불안하고 곤혹스럽다. 어쩌면 정답을 찾으라고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아직 목표가 없다고 해서 위축될 필요는 없다. 지금의 과정이 자신을 탐색하고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볼 기회로 이어질 수 있다. 때로는 엉뚱한 곳에 심은 씨앗이 열매를 맺기도 하듯이 다양한 경험은 분명 미래의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길은 모두에게 열려 있지만 모두가 그 길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미생’에서 ‘장그래’의 마지막 내레이션이다. 스스로를 믿고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살아가면 꿈은 피어나지 않을까.

[천자춘추] 옛 콘텐츠 된 영화, 존재의 이유

영화에게 2020년은 격동의 시기다. 1919년 한국 영화가 시작된 이래 존재 자체를 생각해봐야 할 정도로 이토록 심각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2020년대는 코로나19 팬데믹의 그림자 아래 시작됐고 극장 폐쇄가 감염시대의 상징적인 사건이 되고 말았다. 영화 제작은 중단되고, 개봉은 지연됐으며, 영화사들은 위험을 피하고 안정적인 장르와 이야기에 기댔다. ‘범죄도시’ 시리즈, ‘서울의 봄’, ‘파묘’ 같은 천만 영화가 나오며 한국 영화산업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는가 했지만 혼란과 위기는 계속돼 장기적으로 이 산업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을지 의문을 남기고 있다. 한국 영화사의 암흑기라 칭하는 1970년대보다도 더 약한 10년을 겪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생충’이 칸영화제와 아카데미영화상의 선택을 받으며 K-시네마가 세계 최고 정점을 차지한 그 순간, 한국 영화가 쇠락해 지금은 K-콘텐츠에서 서서히 밀려나고 있다는 점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러나 퇴조에는 반작용이 따른다. 산업의 폐허 위에서 진짜 목소리를 가진 창작자는 언제나 등장할 수 있다. 암흑으로 끝없이 흘러가던 1980년대에 ‘민중미학’의 시선으로 한국 영화계에 활력을 불러온 흐름이 있었고 이는 코리언뉴웨이브란 이름으로 희망을 선물했다. 소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이야기는 30초 릴스로 압축되며, 플랫폼은 넘쳐나고, 드라마는 시즌제로 이어지며, 유튜브는 개인의 세계관까지 상품화한다. 이런 시대에 두 시간짜리 집중을 필요로 하는 영화는 구식처럼 보인다. 영화관은 점점 낯선 장소가 된다. 그런데도 영화가 필요한 이유는 단순한 오락이 아닌 예술이어서 사람의 감정을 어루만진다는 점이다. 시간을 공유한다는 경험, 재구성된 공간 감각을 통한 시선의 확장, 감정을 나누는 공통의 기억, 언어를 넘어 타인의 내면을 이해하는 가능성 때문이다. 현실이 설명되지 않는 순간, 사람들은 다시 영화로 갈 것이다. 영화는 이미지와 소리라는 도구로 이해할 수 없는 감정과 기억을 붙잡는다. 지금도 어떤 어두운 영화관에서 누군가는 자신의 고통을 이해받고 있을 것이다. 영화언어를 새롭게 정의할 규칙 파괴자들이 등장하길 기다린다. ‘건국전쟁’, ‘신명’ 같은 극단의 정치에 기대는 프로파간다 말고 암흑을 돌파했던 ‘하녀’(1960년), ‘바보선언’(1984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년) 같은 진짜 영화예술의 혁명가들 말이다.

[학습코칭] 6월 모평 이후, ‘9모’ 대비 학습법

6월4일 치러진 6월 모의평가는 국어, 영어, 수학, 탐구 과목 모두 다소 쉽게 출제된 것으로 보인다. ‘킬러 문항’ 배제 방침에 맞춰 EBS 수능 연계 및 고교 학습과정과 공교육안의 범위에서 출제됐다고 평가원은 밝혔다. 6월 모의평가 응시 인원은 역대 최고인 50만3천572명으로 재학생 41만3천685명, N수생 8만9천887명이었다. 작년 응시 인원을 살펴보면 6월 모평 N수생 8만8천698명, 9월 모평 10만6천559명, 실제 수능에서는 18만1천893명이 응시했다. 올해 11월13일 시행될 실제 수능에서 N수생 응시생은 대략 19만명으로 예상된다. 올해 대입은 특히 의대 정원 원상 복귀, 상위권 대학 자연계열 반수생 증가 등으로 최상위권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6월 모의평가 이후는 대입을 준비하는 데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시기다. 이 시점부터는 본격적으로 수능과 수시를 동시에 고려해 자신의 위치를 냉정하게 파악하고 약점을 보완하는 공부법이 필요하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오답 분석을 철저히 해야 한다. 특히 틀린 문제는 유형별로 분류하는 것이 좋다. 개념 부족인지, 시간이 부족했는지, 단순 실수인지 검사해 보자. 또 맞힌 문제라도 운이 좋게 찍어 맞힌 문제인지도 체크해야 한다. 과목별로는 취약 단원을 정리하고 특히 어떤 단원이 부족한지 명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이번 6모에서는 국어, 영어, 수학 모두 EBS 연계율이 높았기 때문에 수능특강을 열심히 공부했다면 좀 더 쉽게 느껴졌을 것이다. EBS 수능특강과 수능완성은 수험생의 필독서다. 이 교재를 중심으로 철저히 내 것으로 공부한 후 변형 문제나 심화 문제를 풀어야 한다. 여름방학 전까지는 수능특강과 수능완성의 전체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분석하는 것을 목표로 공부해야 한다. 수학의 경우 공통수학은 다소 평이하고 미적분이 어렵게 출제돼 최상위권과 중상위권 변별력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 탐구 과목에서 작년부터 사탐런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는데 올해 6모에서 확률과 통계 역시 쉽게 출제돼 사탐런에 이어 확통런이 생길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고3 재학생뿐 아니라 N수생의 사탐 응시 증가도 눈에 띈다. 과탐 선택이 무조건 유리할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예전에 비해 통합형 수능 시대에는 사탐으로의 변경도 고려해 봐야 하는 요소다. 물론 최상위권 대학의 경우 과탐 가산점을 고려한다면 다른 이야기가 되겠지만 수능 최저를 맞춰야 하는 수시전형이 메인일 경우 나쁘지 않은 선택지가 된다. 사탐 응시자가 늘면서 과탐 응시자는 6월 모평에서 24만8천642명이었다. 6월 모평 전체 응시 인원의 59.7%인 36만8천18명이 사탐을 선택했다. 이는 2013년 이래 최고 응시 인원이다. 따라서 과탐의 백분위와 표준점수 확보가 더욱 중요해졌다. 최근 5개년 기출을 꼼꼼하게 풀어보면서 평가원의 문제 스타일에 적응하고 6월 모의고사에서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하는 공부를 7월까지 마무리해야 한다. 7월 중순쯤 방학이 시작되면 수능식 실전 훈련을 하자. 타이머를 활용해 시간배분훈련을 하고 취약 과목을 집중적으로 보완해야 한다. 6월 모의고사로 대략적인 수시 지원 가능 대학을 예상할 수 있긴 하지만 절대적이 아니므로 남은 시간 동안 효과적인 학습을 통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좋다. 수시전형에 지원하더라도 수능최저요건이 있기 때문에 수능 중심 공부는 계속 유지해야 한다. 상위권 대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이라면 모든 과목을 최소 3회독 완료 후 기출 5개년 문제들을 꼼꼼하게 풀어보는 것이 좋다. 6월 모평에서 보여줬듯 EBS 연계 출제는 평가원의 출제 경향, 즉 EBS연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다소 쉬웠던 6월 모의고사로 인해 9월 모평이 어렵거나 수능이 더욱 어려울 것이라는 걱정은 잠시 접어두고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철저한 9월 모의평가 대비다. 앞서 언급했듯 수능 특강과 수능 완성을 철저히 분석하고 학습해야 한다.

[기고] 비상벨은 마지막 수단

도심 곳곳의 공원 화장실, 도서관, 지하철 역사 등 공공시설에는 위급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위한 ‘비상벨’이 설치돼 있다. 말 그대로 긴급한 상황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장치다. 경찰은 이 벨이 울리면 누군가의 생명과 신체에 대한 위험이 임박한 경우로 판단해 신속히 현장으로 출동한다. 하지만 현장에서 마주하는 현실은 다르다. 최근 3개월간 인천삼산경찰서 갈산지구대 관할의 공원 등 화장실에서 비상벨이 울린 사례(43건) 중 98%가 장난, 실수 또는 무의식적인 오작동이었다. 어린아이가 장난삼아 누르거나 청소 도중 잘못 눌리는 경우도 있고 변기 레버로 오인해 누르는 경우, 심지어 몸을 기대다 벨이 눌리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러한 오작동 벨 문제로 인해 순찰차가 긴급히 출동하고 경찰관 두 명 또는 그 이상이 현장 확인에 투입된다. 하루에 몇 건씩 쌓이면 한 달에 수십 시간의 경찰력이 낭비된다. 이 시간 동안 경찰은 실제 위험에 직면해 경찰의 도움이 절실한 누군가의 곁에 없을 수 있다. 오작동 방지를 위해 버튼이 쉽게 눌리지 않게 버튼 위에 커버를 씌우는 등의 물리적인 해결 방안을 내놓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필요한 건 시민 여러분의 주의와 경각심이다. 비상벨은 말 그대로 ‘비상’일 때만 사용하는 ‘긴급 호출장치’다. 갑작스레 통증이 발생한 경우나 몸이 불편한 어르신, 장애인 그리고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설치된 것이다. 호기심이나 단순한 불만 그리고 사소한 부주의로는 절대 눌러서는 안 된다. 그 한 번의 실수로 인해 도움이 절실한 다른 누군가의 생명에는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경찰은 언제나 시민 곁에 있다. 하지만 그 경찰력을 꼭 필요한 순간에 쓸 수 있도록 시민 개개인의 주의가 필요하다. 공중화장실을 사용할 때, 그리고 비상벨을 누르기 전 한 번만 생각해달라. 지금 이 순간이 비상벨을 누를 만한 위급한 상황인가를. 우리의 세심한 주의가 세상의 큰 안전을 만들 수 있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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