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러스트벨트’ 이야기

타다 남은 연료 찌꺼기 더미가 수두룩하다. 그 속에 방치돼 있는 건물의 잔해가 스산하기 그지없다. 폭격을 맞은 듯 전봇대가 길가에 쓰러져 있다. 러스트벨트(Rust Belt)로 불리는 쇠락한 산업단지의 모습이다. 독일 연방의회 총선에서 극우 독일대안당(AfD)의 돌풍 원인이 러스트벨트의 민심 변화라는 분석이 나온다. 외신에 따르면 독일대안당은 예전에는 상대적으로 경제 사정이 좋지 않은 옛 동독에서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선 서부 독일 러스트벨트를 중심으로 지지율이 올라가 원내 제2당의 위치에 올랐다. 해당 정당의 정치적 기반이 동독 바깥으로 확장된 대표적인 곳으로 뒤스부르크가 있다. 독일 러스트벨트를 대표하는 도시다. 라인강과 루르강이 합류하는 곳에 위치해 세계에서 가장 큰 내륙 항만을 배경으로 예전부터 철강산업이 발전했다. 2000년에는 독일 전체 금속의 49%가 이곳에서 생산됐다. 철강산업 등에 종사하는 근로자도 많이 거주해 한때는 중도좌파인 사회민주당의 강력한 지지 기반이었다. 이런 가운데 철강산업이 쇠퇴하면서 뒤스부르크의 정치적 풍향도도 급변했다. 1970년대 뒤스부르크 인구는 60만명이었지만 일자리가 감소한 탓에 현재 50만명으로 줄었다. 가장 크게 바뀐 건 이민자에 대한 태도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튀르키예와 이탈리아 출신 근로자들을 수용하면서 이민자를 환영했다. 이민자의 노동력을 ‘라인강의 기적’을 일군 원동력으로 삼았다. 하지만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가 10년 전부터 중동 난민을 대거 수용하면서 이민자에 대한 시선이 확 바뀌었다. 노동으로 돈을 벌기 위한 이민자가 아니라 난민에게 주어지는 혜택을 받기 위해 독일에 왔다는 부정적인 시각이 확산됐다. 이 같은 분위기는 유럽연합(EU) 난민협정을 거부하고 난민을 추방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독일대안당 지지율을 올린 밑거름이 됐다. 정치는 결국 돌고 돌기 마련이다. 이 같은 열풍이 비단 독일이라는 먼 나라만의 얘기일까.

[함께하는 미래] 실험을 위한 생명의 무게

귀여운 햄스터가 인류와 맺은 최초의 신분은 실험동물이었다는 사실을 아는가. 햄스터는 작고 세대교체가 빠르고 다루기 편하다는 이유로 1930년대부터 실험동물이 됐다. 실험설치류는 햄스터와 기니피그를 포함해 마우스와 래트가 주를 이룬다. 이들은 감염병과 암 치료, 신약 개발, 식품과 화장품의 독성실험 연구에 사용돼 왔다. 연중 사용되는 실험동물은 미국에서만 최소 2천만마리로 추정되며 설치류가 그중 90%를 차지한다. 중국, 러시아, 유럽 등의 자료를 합하면 규모는 몇 배수가 될 것으로 판단한다. 동물실험연구는 오늘날까지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과도한 맹신과 불필요한 이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실제 동물실험 결과가 인간에게 적용되지 않는 연구나 교육 목적의 해부 수업은 굳이 동물을 사용해야 했느냐는 비판을 받는다. 실험을 위해 일부러 질병을 주입하는 동물이 있다. 이들은 사는 동안 큰 고통을 받는다. 실험 특성에 따라 고통의 단계도 다르다. 김진석 박사는 자신의 저서 ‘동물의 권리와 복지’에서 위해의 수준을 4단계로 설명했다. 1단계는 관찰 위주의 실험으로 동물이 해를 입지 않는다. 2단계는 한 번의 표본 채취로 작은 불편이 존재하며 3단계는 표본이 자주 채취되거나 억류되는 실험으로 중간 수준의 불편을 겪고 4단계는 본능적 생리를 박탈함으로써 심각한 위해에 직면한다. 동물들은 실험 내내 숱하게 중등도 이상의 고통을 받는다. 다행히 전 세계적으로 이들을 위한 복지 전략으로 ‘3R’s 체계’를 도입하고 있다. 동물실험을 대체할 방법을 찾고(Replacement), 실험에 이용되는 마릿수를 줄이며(Reduction), 고통과 불편함을 최소화할 수단을 취하라(Refinement)는 뜻이 담긴 이 법은 동물실험윤리위원회를 통해 시행되고 있으나 실험동물에게 실질적으로 적용하기 위한 구체적 조치는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실험동물로 만들어졌으나 실험에 쓰이지 못하는 동물에 대한 대책은 없으며 실험이 끝나 쓸모를 다한 이들이 어떤 죽음을 맞이하는지, 산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한 보장의 노력과 관심은 너무나 적다. 그래서 실험동물의 사전·사후 대책에 관한 최소한의 정책과 관리 방안이 꼭 필요한 실정이다. 위대한 연구일수록 실험동물의 기여는 훌륭하고 이들의 고통이 대신한 비용은 적지 않다고 말한다. 작은 동물의 노고를 인정하는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과학적 성과에 초점을 둔 해석만으로는 실험동물이라는 ‘생명’의 가치를 온전히 헤아릴 수 없다. 그들의 희생이 연구의 성공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 따라서 실험동물의 희생은 값으로 환산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무게로 이야기돼야 한다. 실험동물이 아무리 작고 보잘것없으며 실험의 일부로 평가된다 해도 그들은 물건이 아닌 살아있는 존재다. 태어나기 전부터 누군가를 대신할 운명을 부여받는 생명이 있는가. 우리는 과연 그들의 삶과 죽음을 연구 성과를 위한 필연적인 과정으로만 여겨야 하는가. 실험동물의 희생을 이야기할 때 그들의 존재를 존중하고 책임지는 태도가 먼저 논의돼야 한다. 작은 몸을 가진 햄스터 한 마리, 실험대 위의 쥐 한 마리에게 우리가 지고 있는 빚은 연구 성과라는 명목으로 덮어둘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과정에서 인정하고 갚아 나가야 할 묵직한 몫이 아닐까.

[천자춘추] AI와 안전관리의 진화

지난 1월, 중국의 한 인공지능 개발사에서 공개한 AI 모델 딥시크(deepseek)의 등장으로 온 세계가 들썩였다. 천문학적 비용을 들여 엄청난 자원을 축적해야만 고성능 AI를 개발할 수 있다는 시장의 고정관념을 깨뜨린 이 AI의 등장으로 이제 많은 업계, 분야에서 AI를 개발하고 활용할 수 있는 지평이 열렸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인공지능으로의 대전환 시대를 맞이해 한국농어촌공사에서는 2025년 안전관리 분야에서 또 한 번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공사는 그간 공공 분야에서 선진적인 안전관리 체계를 자랑하며 AI 기술을 적극 활용해 왔으며 올해는 단순한 AI 도구 사용을 넘어 시스템 설계와 실제 업무 접목 단계로 발전할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주목할 점은 AI를 활용한 업무 전문성 및 활용 범위 확대다. 이제 안전관리 시스템 제작 과정에서 전문 지식이 없는 직원도 AI 기술을 활용해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 토목과 안전 분야에서는 전문성을 발휘하지만 코딩이나 AI 기술에는 문외한인 직원들이 ‘대화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그 안에 AI를 적용하는 일이 누구에게나 가능한 현실이 됐다. Grok 3, GPT-4.5 같은 최신 AI 기술의 등장으로 2025년에는 업무 맞춤형 프로그램 제작과 배포가 보편화될 것이다. 이러한 도약의 신호탄으로 이번에 신규 개발한 ‘안전서류 점검 시스템’을 꼽을 수 있다. 건설현장에서는 산업안전보건법, 건설기술진흥법 등 수많은 관련 법령에 얽힌 복잡한 규제로 전문가가 아니라면 어떤 법과 서류가 내 현장에 적용되는지 직관적으로 찾아보기 쉽지 않고, 또 이를 해결해 줄 단일화된 시스템을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신규 개발된 시스템은 공사비 규모 및 시공단계, 관련 공종에 따라 그에 맞는 서류 목록을 직관적으로 제시해줘 현장 관리자의 능동적인 대처를 가능케 하고 점검자의 확인도 어렵지 않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공사에서 이번에 도입한 시스템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공공 분야 안전관리 방식 개선의 일환으로 시행됐다. 이를 통해 공사현장의 안전사고 예방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지만 아직은 시험 단계로 안정화될 때까지 시스템의 보완이 필요하다. 기술 발전에 발맞춰 카메라와 AI를 결합한 고도화 등 지속적인 고민과 노력을 이어간다면 자료의 양뿐만 아니라 질까지 세부적으로 점검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2025년은 단순히 AI 기술을 도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술을 우리의 업무와 사람에게 맞게 재창조하는 해가 될 것이다. 공사에서는 건설현장 안전사고 ‘제로’ 목표 달성을 위해 안전한 작업 환경을 만들기 위한 혁신을 지속할 것이며 이는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우리의 약속이기도 하다.

[생각 더하기] 독립운동가 김상옥 선생의 명예선양 방안

올해는 106주년 삼일절, 광복 80주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해다. 일제강점기 나라를 위해 희생한 독립운동가 중 대표적인 인물로 일제 경찰 1천명과 처절하게 싸우다 순국한 ‘동대문의 홍길동’이라 불리는 김상옥 선생을 소개하고자 한다. 선생의 독립운동 활동을 국가보훈부 공훈록을 중심으로 자세히 살펴보면 김상옥 선생은 서울 종로구 효제동에서 태어나 20세 때 동흥야학교를 설립해 교육운동을 전개하면서 이전부터 종사하던 철물공장을 설립해 이윤을 분배하던 그는 이종소·임용호·손정도 등과 사회계몽·민족독립에 대한 일을 의논하고 실행했다. 백영사를 조직하고 금주·단연 운동을 크게 전개하며 말총모자 공장을 설치하고 국산 모자의 생산·보급에 힘썼다. 그는 3·1독립운동이 일어남과 동시에 윤익중·신화수·정설교 등 동지들과 함께 비밀결사인 혁신단을 조직하고 기관지 ‘혁신공보’를 발행·배포해 독립정신을 고취했다. 1920년 봄에는 만주에서 들어온 군정서원 김동순과 만나 암살단을 조직해 적 기관을 파괴하고 요인을 암살하는 등의 직접 행동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해 나갈 것을 계획했다. 그해 8월에는 미국 의원단 일행이 서울에 들어오는 기회를 이용해 한우석등과 함께 의원단이 남대문역(지금의 서울역)에 하차하기를 기다려 시위와 총격전을 전개하기로 했다. 그러나 의원단의 서울 도착 전날에 일부 동지들이 붙잡혀 실패했다. 그는 일제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 그해 10월 중국 상하이로 망명했다. 그곳에서 그는 김구·이시영·조소앙 등 임시정부 요인들의 지도와 소개로 중국의 지사들과 교유하면서 조국독립을 위한 투쟁을 펼쳤다. 1921년 일시 귀국해 군자금 모집과 정탐의 임무를 수행했고 1922년 겨울 의열단원으로 폭탄·권총·실탄 등의 무기를 휴대하고 동지 안홍한·오복영 등과 함께 서울에 잠입했다. 이때 그는 의열단장 김원봉을 통해 서울에 있던 의열단원 김한과의 연락 협력을 당부받기도 했다. 그리고 동지들에게 연락하며 거사의 기회를 노리다가 이듬해 1월12일 밤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했으며 이후 일경을 피해 10여일간 은신하다가 1월22일 일본 경찰과 교전 끝에 장렬히 순국했다. 순국 후 1924년 상하이 임시정부 외교부장 조소앙은 전(傳)을 지어 간행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살펴본 바와 같이 김상옥 선생은 그 공적이 뚜렷하고 독립운동에 미친 영향이 매우 커 국민을 대상으로 명예 선양 방안이 필요하다. 구체적인 방안을 몇 가지 제시하면 첫째, 김상옥 선생의 경우 독립유공자 서훈 등급은 현행 2등급인 대통령장으로 선생의 공적과 활동을 보훈학적 관점에서 면밀히 연구해보면 1등급인 대한민국장으로 충분한 자격이 인정된다. 이를 위한 방안으로 김상옥 선생 기념사업회에서는 서훈 등급 상향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해 국가보훈부에 기존 신청한 자료 외 독립운동과 관련해 국가기록원, 일본 외무성, 신문 등을 활용해 더 많은 새로운 거증 자료를 추가해 올해 광복절에 맞춰 1등급 대한민국장으로 서훈을 인정받도록 한다. 둘째, 생가 복원 및 기념관 설립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방안으로 서울시에서 먼저 예산을 확보한 후 국가보훈부에 국비를 신청해 늦어도 생가 복원은 2028년, 기념관 설립은 2030년에는 이뤄져야 한다. 셋째, 올해 80주년 광복절을 맞이해 국회 정책세미나 및 정기적인 학술포럼 세미나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김상옥 선생을 소재로 한 뮤지컬이나 연극 공연을 제작해 국민에게 나라사랑정신 함양 등 보훈문화 확산에 기여하도록 한다.

[경기만평] 대환장 토론 될듯...

[사설] 경기도기관장 청문회에 기관 동원, 근거 조례 없다

산하기관장 인사청문회는 이랬다. 소속 기관에서 직원이 동원된다. 청문회에 필요한 자료를 사전에 준비하고, 청문회에 배석해 즉석 답변을 지원한다. 이런 지원이 청문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청문 위원인 경기도의원들도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불만이 쌓여온 건 해당 기관 구성원들이다. 임명이 확정되지도 않은 내정자 검증 청문회다. 거기에 조직을 동원하는 게 맞는지, 법적 근거는 있는지 물어왔다. 경기일보가 이에 대한 법률적 흠결 문제를 지적했다. 직원을 동원할 근거가 없음을 주장했다. 공직 후보자 청문회는 그 근거가 명확하다. ‘국가기관은 이 법에 따른 공직 후보자에게 인사청문에 필요한 최소한의 행정적 지원을 할 수 있다.’ 인사청문회법 제15조의 2다. 장관 후보자를 해당 부처가 지원하는 건 그래서 합법이다. 청문회가 정치 대결의 장이 된 지 오래다. 임명권자의 지명이 청문회에서 거부되기 일쑤다. 지명 철회도 그만큼 흔하다. 이런 불안정한 신분의 권한을 정한 규정이다. 경기도 청문회에는 이게 없다. 산하기관장 청문회는 경기도에서 특별하다. 2014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도입했다. 남경필 경기지사의 ‘연정’을 상징하는 제도였다. 2019년 이재명 도지사도 청문 기관을 대폭 늘렸다. 모두 투명한 산하기관 경영이라는 개혁 명분이 있었다. 하지만 법이 없어 ‘도-의회 간 협약’에 기초를 뒀다. 청문회의 구속력도 현실적이지 않았다. 야당의 의견을 들어주는 수준이었다. 거기에 각급 기관의 청문회 지원 근거가 마련됐을 리 없다. 2023년부터는 사정이 달라졌다. 지방자치법 제 47조의 2를 근거로 청문회가 등장했다. 지방의회가 산하기관장 청문회를 도입했다. 경기도에도 ‘경기도의회 인사청문회 조례’가 생겼다. 인사청문위원회의 권한이 명실상부해졌다. 청문 대상도 19개 기관으로 넓어졌다. 증인 출석 요구 등 권한이 부여됐다. 불성실 청문에 대해서는 임명 철회도 가능해졌다. 그런데 여기서 ‘청문 후보자에 대한 기관 지원’을 규정한 근거가 빠졌다. 경기도는 ‘규정이 생기면 따르겠다’고 했다. 경기도의회 관계자도 ‘보완하겠다’고 했다. 경기도민의 ‘△△재단’이다. 경기도민의 ‘○○센터’다. 혈세 1억여원을 주는 기관의 대표다. 정치·측근 낙하산 인사를 경계해야 한다. 그걸 막으라고 의회에 준 청문회다. 전문성 심사하고 적격성 따져야 한다. 기관 뒤로 후보자가 숨게 두면 안 된다. ‘기관이 후보자를 지원할 수 있다’는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 ‘지원은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규정도 마련해야 한다. 의무 없는 일을 자꾸 시키는 것, 기관 직원들엔 강요일 수 있다.

[사설] NH 지점 전무 영종국제도시... 고객 서비스가 따로 있나

엊그제 흥미로운 중국발 외신기사가 하나 떴다. 난징의 한 은행을 찾은 70대 노인이 2시간 동안 송금을 못하고 헤매다 쓰러져 숨졌다. 유족들이 은행을 고소했다. 창구가 비어 있음에도 직원들이 모바일 뱅킹을 강권한 때문이라 했다. 은행 감시카메라에도 남아 있었다. 노인이 본인 인증을 위해 쩔쩔매며 휴대전화로 자신의 얼굴을 찍는 장면 등이다. 디지털 시대 금융소외의 극단적 사례다. 국내에서도 급격한 은행 점포 폐쇄를 두고 그간 우려가 많았다. 고령층이나 소상공인, 시골 주민 등의 금융소외다. 그런데 인천에는 한 거대 은행의 지점이 처음부터 없었던 지역도 있었다. 그것도 명색이 국제도시인 인천경제자유구역 영종지구에서다. 특히 주요 정책금융 채널인 NH농협은행이어서 주민 불편이 더 크다고 한다. 영종국제도시 주민들은 NH농협은행 일을 보려면 바다를 건너야 한다. 송도·청라국제도시로 원정을 간다. 처음부터 이 은행 지점이 한 곳도 없어서다. 인구 12만명에 여전히 농업 인구도 적지 않다. 영종국제도시에는 인천 중구농협의 4곳 지역농협만 있다. 그러나 지역농협은 NH농협은행과 업무 호환이 안 된다. 대출은 물론 외환, 펀드 등의 업무도 볼 수 없다. NH농협은행이 인천시 제2금고까지 맡고 있어 대면 업무도 많다. 청년전세대출 만기 연장 등 소소한 일에도 섬을 나가야 가능하다. NH농협은행은 1금융권이다. 예·적금이나 대출, 펀드, 외환 등 시중은행과 업무가 같다. 반면 지역농협은 2금융권이다. 예·적금과 영농자금 대출상품 등만 취급한다. 지역농협에서 주민들은 NH농협은행 통장·카드 재발급은 물론 신규 가입 등도 못한다. 특히 대출상품의 경우 지역농협이 2금융권이라 금리도 높다. 개인 신용등급 관리 측면에서도 불이익을 받는다. 영종 지역은 농지가 많아 농업 종사 주민도 아직 많다. 전체 인구도 2024년 기준 12만6천여명에 이른다. 매년 인구 유입이 급증하는 곳이다. 다른 지방에서 온 주민들이 특히 놀란다. “농협 지점이 하나도 없으리라고는 생각 못했다”는 것이다. 지금도 주민카페 등에는 NH농협은행의 지점 개설을 요구하는 글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0년 사이 2천여곳의 은행 점포가 사라졌다고 한다. 디지털 시대,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을 것이다. NH농협은행 측도 수년 전 영종국제도시 지점 개설을 검토는 했다고 한다. 그러나 “내부 사정 등으로 백지화한 상태”라 했다. 내부 사정은 지역농협의 반대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영종의 열성 고객들이 저토록 NH농협은행 지점을 원한다. 더 이상의 고객 서비스가 따로 있을 것인가.

[지지대] AI 원주민 ‘베타세대’가 온다

올해 태어나는 아이들은 ‘베타(β)세대’로 불린다. 2010년 이후 태어난 ‘알파(α)세대’의 다음 세대로 호주의 미래학자 마크 매크린들이 제안한 개념이다. MZ세대의 자녀들이며 2025년부터 2039년까지 약 15년간 태어날 아이들이다. 베타세대는 이전 세대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환경에서 성장한다. 기성 세대가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자유롭게 활용하며 자랐다면 이들은 인공지능(AI)을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시대에 태어난다. 이를 예고하듯 올해 초 등장한 ‘딥시크 R1’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기존 생성형 AI 시장을 위협하며 기술 혁신의 속도를 가속화했다. 이어 생성형 AI 분야의 선두 주자인 오픈AI는 이달 초 ‘딥리서치’를 공개해 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해당 기술을 사용한 연구자들은 대학원생이 몇 달에 걸쳐 수행할 작업을 단 몇 시간, 심지어 몇 분 만에 해결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 같은 변화는 불과 3년 전인 2022년 11월 챗GPT가 출시된 이후 AI 기술이 급격하게 발전한 결과다. 베타세대는 태어날 때부터 이 같은 AI 기술을 자연스럽게 접하고 활용할 것이다. 유아기에 새로운 지식을 익히는 과정은 성인이 돼 배우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베타세대는 마치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 AI를 빠르게 내재화할 것으로 보인다. AI뿐만이 아니다. 이들은 메타버스, 양자컴퓨터 등 미래 기술이 융합된 환경 속에서 성장할 것이다. AI와 협력하며 학습하고 창작하며 심지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혁신을 만들어낼 가능성도 크다. 베타세대는 인류가 가진 문제에 해답을 제시할 잠재력을 갖춘 세대가 될 수 있다. 최근 글로벌 AI 업계는 미국이 선두 주자이고 이를 중국이 바짝 뒤쫓는 형국이다. 캐나다, 네덜란드, 이스라엘 등도 집중 투자를 하며 경쟁에 뛰어들었다. 한국은 지난해 9월 발표된 ‘글로벌 AI 인덱스’에서 조사 대상 83개국 중 6위로 올랐지만 강대국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격차를 줄이기 위해 빠른 국회 입법, 빅테크 기업의 연구개발(R&D)센터 국내 유치 등이 대안으로 떠오른다. 우리는 준비와 지원을 통해 다가오는 베타세대를 맞이해야 한다. 아이들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말이다.

[문화산책] 노당익장, 봄날을 기다리는 청년에게

“신의 나이 비록 62세이지만 아직도 갑옷을 입고 말을 탈 수 있으니 늙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출정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후한서’의 ‘마원전(馬援傳)’에 나오는 마원의 이야기다. 마원은 광무제를 위해 혁혁한 전공을 세운 장군으로 평소 “대장부가 뜻을 품었으면(장부위지·丈夫爲志) 궁할수록 더욱 굳세고(궁당익견·窮當益堅), 늙을수록 더욱 기백이 넘쳐야 한다(노당익장·老當益壯)”고 이야기했는데 여기에서 ‘노당익장(노익장)’이라는 표현이 나왔다. 노당익장은 멀리서 찾을 일이 아니다. “육십 먹어도 잘하면 상 주는 거예요. 공로상이 아니라.” 2024 KBS 연기대상에서 ‘최고령 대상’을 수상한 배우 이순재가 한 말이다. 그는 미국의 아카데미를 언급하며 연기는 인기나 다른 조건이 아닌 연기로 평가해야 한다고 말해 청중의 박수를 받았다. “어쩔 수 없어요. 적절한 배역이 없으면 출연 못하는 거 당연한 겁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기회가 한 번 오겠지 하고 늘 준비는 하고 있었습니다”라는 말로 기회를 기다리며 늘 준비된 자세로 성실히 임해온 그의 연기 철학을 보여줬다. ‘윤여정 신드롬’을 기억할 것이다. 윤여정은 74세의 나이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 시상자로 무대에 올랐다. 윤여정은 자신을 일컬어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tvN ‘현장토크쇼 택시’에서 그가 한 말이다. 생계를 위해 그는 단역도 마다하지 않고, 너무 부끄러울 때는 안경을 벗고 연기했을 정도로 열심히 연기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오스카 시상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들아, 엄마가 열심히 일해 이런 상을 받게 됐단다.”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노력의 결실이었다. 위의 두 노당익장의 사례는 열심히 노력하며 늘 준비돼 있는 자에게 온 기회야말로 천재일우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과연 이 시대의 우리 청년들에게 이 두 배우의 삶은 어떤 메시지로 다가갈까. 필자는 현재 대학에서 음악인의 꿈을 꾸며 학업에 정진하고 있는 학생들과 함께하고 있다. 그중 한 학생은 자신이 그동안 만들었던 곡들을 모아 앨범을 제작했다. 자신의 감성이 가득 담긴 곡들을 만들고 직접 연주해 녹음한 다음 아트웍 디자인까지 뽑아냈다. 유통사를 선정해 계약하는 등 모든 제작 과정을 스스로 해냈다.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 노력의 결과물이 아직은 대중에게 큰 반향을 얻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아쉬움이 남는다. 힘든 환경 속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작금의 청년 음악가가 적지 않다. 그중 대중에게 사랑받을 기회를 얻지 못해 간절히 꿈꿔 오던 길, 그 모퉁이에 주저앉아 포기를 고민하는 이들도 종종 보게 된다. 그럴 때마다 문화예술계에 종사하고 있는 선배로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몰랐어요 난 내가 벌레라는 것을/그래도 괜찮아 난 눈부시니까/그래도 괜찮아 나는 빛날 테니까.” ‘나는 반딧불’의 노랫말처럼 지금 처한 현실이 간절히 꿈꾸는 예술을 펼치기에는 어렵고 힘들더라도 스스로가 눈부신 존재임을 잊지 말자. 늘 준비된 모습의 우리 청년들이 언젠가 찾아올 기회를 천재일우로 만들 수 있길 빌며, 위 노당익장의 이야기가 작은 희망의 씨앗이 됐길 바란다.

[경기시론] 학교폭력, 법적 해결보다 중요한 것

지난 10일 서울행정법원에서 ‘학교폭력 행정소송’을 주제로 학교폭력 실무 관련 강좌가 개최됐다. 학교폭력을 다루는 판사와 변호사를 비롯해 교육(지원)청에서 행정심판 및 행정소송 업무를 다루고 있는 담당자가 다수 참여해 학교폭력 행정소송의 동향 및 학교폭력 사안 처리 관련 실무에 대한 내용을 다뤘다고 한다. 필자 역시 교육청에서 9년 넘게 학교폭력 및 교육법률을 지원하는 변호사로 근무하며 교육 현장의 해석과 다른 법원의 해석에 난감하기도 답답하기도 했던 적이 많았다. ‘법’과 ‘법원’은 참 무거운 것이어서 결국 교육 현장과 괴리가 있는 판사의 해석에 따라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는데 이 같은 강좌 및 협의회 등이 정기적으로 개최돼 간극을 줄이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울행정법원에 접수된 학교폭력 사건의 건수가 2022년 51건에서 2024년 98건으로 2배 가까이 늘어났다고 한다. 이에 따라 서울행정법원에는 학교폭력 전담재판부까지 신설된 상황이다. 그러나 행정소송 단계를 경험했던 피해 학생이나 가해 학생이라면 ‘판결’이라는 것이 결코 분쟁의 해결에 효과적이지 않다는 점에 동의할 것이다. 이번 강좌에서 발표를 맡은 판사들도 이러한 한계를 인정하고 “학생들 간 진정한 화해가 있으면 소송의 형태로 종결하는 것보다 조정이나 자체 해결로 결론을 짓는 것이 교육적 목적에 부합할 것”이라고 말하거나 “학교폭력은 교육의 문제로 재판으로 넘어오지 않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며 학교폭력의 교육적 해결을 강조했다. 학생들 간 관계회복의 가능성이 있는 건이라면 학교폭력예방법에 따라 학교장 자체 해결로 종결되도록 하고 학교장 자체 해결로 종결되지 못한 건이라 하더라도 조정이나 관계회복 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개최 전 심의 취소가 되도록 하며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가 개최된다면 피해 학생 및 가해 학생 측이 납득할 만한 교육적 조치가 나오면 좋겠다. 그러나 이미 온갖 이해관계로 얽혀 있는 학교폭력 관련 교육현장은 그리 녹록지 않다. 학교장 자체 해결로 처리되기 위해서는 학교폭력예방법상 네 가지 요건(2주 이상의 치료가 필요한 진단서를 발급받지 않았을 것, 재산상 피해가 없거나 복구되거나 복구 약속이 있을 것, 지속적이지 않을 것, 보복행위가 아닐 것)을 모두 충족해야 할 뿐만 아니라 신고 학생 측의 서면 동의가 필요하기에 학교폭력으로 보기 어려운 경우라도 학교장은 해당 사안을 학교 안에서 종결할 수 없고, 관계회복의 여지가 있다 해도 네 가지 요건 중 하나라도 충족하지 못하면 자체 해결로 종결할 수 없으며, 경미한 건으로 조정이나 관계회복 프로그램을 운영하고자 해도 양측 모두의 동의가 없으면 시작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일률적인 학교폭력 사안 처리는 피해 학생의 회복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피해 학생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해 도움을 주고 징계가 아닌 방법으로도 가해 학생을 선도할 수 있는 방법은 분명 존재한다. 교육전문가인 학교장 및 교원의 다양한 조정 프로그램의 운영 등을 전제로 학교가 사건을 종결할 수 있도록 법령상 권한이 부여돼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도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심의위원회는 양측의 손해배상에 관련된 합의조정과 그 밖에 심의위원회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항에 대한 조정을 할 수 있는데 교육부는 ‘2025 학교폭력 사안처리 가이드북’ 일부개정을 통해 교육지원청에서 분쟁조정을 담당하는 특별소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다고 안내하며 운영 방법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소개했다. 그동안 가해 학생 조치를 내리는 데 집중됐던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가 학생 및 보호자들 간 갈등이나 분쟁을 해결하는 데 큰 역할을 하기를 기대해 본다.

오피니언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