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여행의 계절, 여행의 위대함을 위하여

3월이다. 사람마다 상황이 다르지만 날씨만 놓고 본다면 여행하기에 좋은 시절이 다시 찾아왔다. 여행,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단어가 아닐 수 없다. 누구나 더 많이, 더 자주, 더 좋은 곳으로의 여행을 꿈꾸며 살아간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러하며, 미래에도 여행은 우리에게 그런 존재일 것이다. 여행은 일상의 공간을 벗어나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며 자기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는 과정이다. 여행이 주는 편익은 오랜 기간 다양하게 증명돼 왔으며 특히 청년 세대의 여행은 각자의 인생에 큰 전환점을 제공하는 계기가 된다. 과거 유럽의 그랜드투어나 신라 화랑의 풍류도는 청년 세대들의 여행이 자아 발견과 성장에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지난해 5월, 스카이스캐너가 Z세대 1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기사를 보니 응답자의 약 61%는 이미 부모 없이 해외여행을 경험했으며 대부분 19~21세에 첫 해외여행을 경험한다고 한다. 이들은 ‘새로운 경험과 정신적 충전을 위해, 덜 알려진 여행지보다는 인기 여행지로 떠나고, 스스로 여행경비를 마련해 저렴한 상품을 이용하는 등 가성비를 중요시’한다고 한다. 과거에 비해 젊은 세대의 해외여행에 대한 인식, 접근성, 편의성 등이 얼마나 개선됐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이고, 이들의 여행 경험이 그들의 인생에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렇게 해외여행이 보편화된 시대에 부정적인 영향도 적지 않다. 여행 경험 자체가 문화 자본화돼 해외여행 경험 유무가 또 하나의 스펙처럼 활용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다른 이들의 해외여행 사진을 보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경우도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엔은 매년 3월20일, ‘국제 행복의 날’에 ‘세계행복보고서’를 발표하는데 작년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행복 수준은 전 세계 143개국 중 52위로 여전히 낮은 수준이고 소득 수준에 따른 행복감의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상황과 별개로 ‘세계행복보고서’에 나타난 뚜렷한 현상 중 하나가 세계 젊은 세대의 행복감이 급격하게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연령대별 행복감 그래프가 대체로 ‘U’자 형태로 젊은 세대와 노년 세대의 행복감에 비해 중장년층의 행복감이 현저히 낮았다. 그러나 지금은 청년들의 행복감이 중장년보다 낮게 나타나고 있으며 유럽 및 미국 등에서는 이의 원인 중 하나를 SNS 이용률 증가로 보고 있다. SNS엔 여행의 기록이 넘쳐난다. 멋진 리조트와 테마파크, 이색적인 자연경관, 여행지의 맛집과 카페를 배경으로 자신의 여행을 과시하는 콘텐츠도 쉽게 발견된다. 여행의 진짜 묘미와 가치는 그런 것에 국한되지 않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리고 그런 게시물을 보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을 사람들도 생각하게 된다. 관광 취약 계층에 속한 장애인, 다문화 및 저소득 가정의 아이들이 그들이다. 과거에 비해 다양한 지원제도가 늘었다고 해도 더 세심한 관심이 여전히 필요하다. 여행을 경험해 본 사람들은 안다. 여행이 주는 위대함을. 그 위대함을 더 많은 청년 세대, 장애를 가진 이들도 경험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꼭 해외가 아니어도 우리 주변에 여행 가기에 좋은 곳이 얼마나 많은가. 학교에서부터 다양한 여행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생겨나고 더 쉽게 접근 가능한 정책과 지원사업이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이제부터 본격 여행의 계절이니까.

[인천시론] 이처럼 사소한 말들

거칠고 격한 말들이 귀를 찢는다. 전쟁이라는 끔찍한 단어가 휘저어 놓은 일상이 난리다. 내전이니 내란이니 쉽게 내뱉지만 한마디 한마디에 수명을 단축할 무서운 살기가 실린다. 내전이라는 말은 같은 편끼리 죽도록 싸운다는 뜻이다. 같은 편이라면 등을 보여도 안심이 되는 동료거나 이웃이다. 친근한 얼굴로 다가와 칼을 내미는 서스펜스 영화 장면이 관객을 더 전율케 하듯 바깥에서 온 적보다 안에서 만난 예상치 못한 적이 몇 배 더 무섭다. 공포감에 배신감이 더해지고 미련스럽게 당하고 말았다는 자괴감까지 끼어들면 그런 철천지원수가 따로 없다. 전쟁은 정전협정이 가능하지만 내전에는 정전이라는 개념조차 들어서기 어렵다. 전쟁보다 추스르기 어려운 게 내전에서 입은 상흔이다. 상처를 주고받은 이들이 응어리를 풀어야 새살이 돋는 화해를 도모할 수 있다. 말부터 바꿔야 한다. 악마라는 수식어가 너무 쉽게 나오는 정치는 내전을 부르는 선전포고다. 극한 표현을 써대며 먼저 도발한 이가 누구인가를 서로 따질 때, 우리는 도발이라는 단어 주변부터 서성거려 봐야 한다. 남침, 북침, 도발은 붙어 다니는 전쟁 용어 묶음이다. 오죽하면 악마라고 불렀을까 싶은 감정을 다독이는 편에 서야 2차 도발, 3차 도발을 거치며 확전하는 내전을 예방할 수 있다. 국민저항권이라는 오염된 말에 저항하는 말도 필요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소수자 인권이 아니라 기득권자들에게 인권이라는 날개까지 달아 줄 때, 가치 전도에 저항하는 게 원뜻에 부합하는 국민저항이다. 계몽령은 또 어떤가. 계엄이 무력을 사용해 피를 부르겠다는 말이라면 계몽은 국민에게서 주권을 빼앗아 종처럼 부리겠다는 말이다. 똑똑한 주인이 무지한 종에게 한 수 가르치겠다는 속셈이 ‘계몽이라는 영’을 내리게 했다. 정치적 반대자들을 수거한다는 퇴역 군인 수첩 메모야말로 어긋난 말의 정점을 찍는다. 수거는 대상자들에게서 인격을 박탈하고 개체성을 지워 쓰레기 더미로 만든다. 쓰레기조차 분리해서 수거해야 남은 가치를 되살릴 수 있는데 인간 수거에는 그러한 고민조차 없다. 최근에는 폭탄교사라는 교육계 은어가 언론을 타고 퍼져 나간다. 폭탄은 터지라고 만든 대량 살상 무기다. 표현 하나가 평화로워야 할 학교 이미지를 처참하게 훼손해 버린다. 크고 드센 말들이 작은 소리들을 윽박지르고 있을 때 클레어 키건에게서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 대해 듣는다. 주인공 펄롱은 존재감조차 희미한 어린 사람을 억압하는 사회로부터 구해 낸다. 그는 그저 마음에서 벼르고 벼르던 작디작은 말을 건넬 뿐이다. “나랑 같이 집으로 가자. 세라!” 말 한마디가 밤을 낮으로 바꾸듯 세라의 삶을 진흙탕에서 건져 올려 구원에 이르게 한다. 우리네 일상은 거대한 음성들이 지배하는 듯 보여도 대다수 삶은 ‘이처럼 사소한 말들’이 채워 낸다. 다중을 향해 일방에서 쏟아내는 주장들은 떠다닐 뿐 사회적 의미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 정작 세상을 움직이는 말들은 펄롱이 들은 나지막한 음성이다. “아저씨, 우리 좀 도와주시겠어요?” 펄롱은 이 소리와 함께 들린 내면의 소리에 행동으로 응답한다. 인천은 도움을 청하는 낯선 음성이 늘어나는 도시다. 낯선 외국어에 익숙해지라고 등 떠미는 ‘외국어 친화 도시’보다 다정하게 말하는 인천은 어떤가? 우리끼리 쓰는 같은 말이 다르고 생경한데다가 거칠어지고 있다. <말에 구원받는다는 것>에 나온 표현을 빌리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 어떤 기분 나쁜 말들이 넘쳐흐르는 데 맹렬한 위기감”부터 느껴야 한다.

[경기시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연대감·정체성은 무엇일까

2021년 법무부는 국내에서 출생한 외국인에게 국적을 부여하기 위해 국적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대한민국에서 출생한 자는 ‘부 또는 모(대한민국에서 출생)가 영주자격을 가질 것’과 ‘6세 이하이거나 7세 이상으로서 5년 이상 계속해 대한민국에 주소가 있을 것’이라는 요건을 갖추면 신고 절차를 통해 쉽게 국적 취득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특정 국가 출신의 증가로 인한 정치적 결정이 편향될 수 있다는 여론 등에 부딪혀 입법 추진이 중단됐다. 이러한 논란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연대감과 정체성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민주주의, 법치주의, 인권보호 등 헌법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책임과 의무를 함께 한다는 연대감과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과 국가 간의 법적 유대관계를 규정한 것이 국적법이라고 볼 수 있다. 국적법에 따라 부 또는 모가 대한민국 국민인 사람은 출생과 동시에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다. 해외에서 출생해 교육을 받은 사람이 국내에서 생활할 경우 언어와 문화의 차이로 인한 어려움, 정체성 혼란 등을 겪더라도 혈연이라는 유대를 통해 국민으로서의 연대감과 정체성을 가질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국내 출생자의 부모가 모두 외국 국적을 가지더라도 국내에서 출생해 성장하고 우리나라 교육과정을 이수할 경우 대한민국의 언어, 문화, 헌법적 기본가치 등을 이해하면서 우리 사회에 통합될 수 있다. 그러나 현행 국적법은 그가 미성년자일 때 그의 부 또는 모가 귀화 허가를 신청할 때에만 함께 귀화를 신청할 수 있으므로 부 또는 모가 허가를 받지 않는 한 국적 취득을 할 수 없다. 지난해 11월 이민정책연구원, 서울시, 교육청 등이 함께 개최한 세미나에 참석한 교육 전문가들에 따르면 한국에서 태어나 정상적으로 교육을 받은 이주배경 아동은 한국 언어와 문화에 익숙하고 오히려 부모 국가의 언어와 문화에 익숙하지 않다고 한다. 따라서 이들은 성인이 돼 가면서 차츰 국적으로 인한 정체성 혼란, 소외감, 진로에 대한 불안감 등을 느끼게 된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이주배경을 가진 초·중·고교생 수는 19만3천814명으로 전체 학생 수의 3.8%를 차지한다. 2017년 이주배경 학생 수(10만9천387명)가 전체 학생 수의 1.91%를 차지한 것과 비교할 때 학교에서 이주배경 학생이 차지하는 비중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이주배경 학생 중 부모 중 한 명이 외국인인 ‘국제결혼 가정’의 자녀는 14만6천804명으로 74%를 차지한다. 국제결혼 가정의 자녀 중에서 국내 출생자는 91.8%이고 해외출생자는 8.2%를 차지한다. 그리고 부모 모두 외국 국적을 가진 학생은 4만7천10명으로 이주배경 학생의 24.3%를 차지하며 2020년 21.4%에 비해 증가했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와 역사적 경험을 고려할 때 혈연만을 중심으로 대한민국과 법적 유대관계가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우리 사회의 성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혈통주의 원칙과 함께 보충적 출생지주의를 도입한 국가 사례를 보면 독일은 부모 모두 외국 국적을 가진 국내 출생자는 그 부 또는 모가 8년 이상 독일에서 합법적으로 거주하거나 영주권을 가지고 3년 이상 거주하면 출생과 동시에 국적을 취득할 수 있고 복수국적을 갖게 되면 18세가 된 후 5년 이내에 하나의 국적만을 선택해야 한다. 프랑스의 경우 국내 출생자가 13세까지 프랑스에 거주하면 16세부터 18세까지 국적을 신청할 수 있다. 영국은 부 또는 모 중 한 사람이 영주권을 소지한 경우 출생과 동시에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같은 외국의 입법 사례, 보충적 출생지주의를 도입할 경우의 우려 사항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때 다음과 같은 입법 방향을 고려할 수 있다. 첫째, 국내 출생자가 국내에서 성장하고 교육을 이수했는지를 살펴 국민으로서의 연대감과 정체성을 갖추고 있는지를 봐야 한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에서 출생한 후 대한민국에서 13년 이상 거주하면서 초등 교육과정을 이수하거나 초·중등 교육과정을 6년 이상 이수한 경우 16세부터 18세까지 특별귀화 신청을 허용할 수 있다. 그리고 현재 귀화자는 병역의무가 면제되지만 동 대상자에게는 병역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국민으로서의 연대감과 정체성을 강화할 수 있고 부족해지는 인적 자원을 보충할 수 있다. 둘째, 이 제도를 도입할 경우 우리나라로 원정출산을 오는 문제와 부모가 아동을 국내 정주 수단으로 이용하는 문제를 고려해 우선 부 또는 모가 영주(F-5) 체류자격을 가진 경우로 한정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국회, 정부, 민간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토론을 통해 국민의 대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세부적인 방안을 마련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천자춘추] 파파 하이든의 런던 교향곡

매섭고 혹독한 겨울이 지나면 따뜻한 생명력이 다시 꽃피우는 봄이 온다. 무엇인가 새롭게 출발하고 싶지 않은가. 따뜻하고 자유로운 생명력을 만끽하고 싶은 봄의 시작 즈음 하이든의 런던 교향곡들을 감상해 보면 어떨까. 하이든은 생의 대부분을 에스테르하지 가문에서 음악감독으로 고용돼 성실하게 일하며 차근차근 명성을 쌓아 올렸다. 니콜라스 에스테르하지가 세상을 떠난 후 거의 60세가 돼서야 에스테르하지 가문에서 벗어나 빈에서 자유롭게 활동했던 하이든은 이때 런던의 음악흥행사 잘로몬의 초청을 받아 런던 청중을 위해 93번에서 104번까지 소위 런던교향곡을 작곡했다. 이 12개의 런던교향곡은 하이든 교향곡의 정수로 일컬어지는 걸작이다. 런던교향곡 중 느린 악장의 약박에 갑작스러운 포르티시모의 음향 효과를 넣어 의도적으로 사람들의 마음과 집중력을 사로잡은 94번 놀람교향곡은 새롭고 신선한 요소를 재치 있게 풀어낸 작품이다. 그런가 하면 100번 군대교향곡은 2악장 알레그레토에 이전까지의 교향곡 편성에서는 등장하지 않았던, 고전주의 시대 교향곡으로는 획기적인 다양한 타악기가 등장한다. 트라이앵글, 심벌즈, 베이스드럼이 등장하고 트럼펫은 군대 신호를 연상하게 하는 팡파르를 연주한다. 4악장의 주요 선율은 영국민속무곡집에 실렸을 정도로 이 교향곡은 런던 청중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또 101번 시계교향곡은 2악장에서 시계추처럼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반주음이 끊기지 않고 그 위로 하이든 특유의 소박하지만 우아한 선율이 따뜻하게 노래한다. 이처럼 런던교향곡은 청중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새롭고 신선한 생명력과 특유의 유머감각이 돋보이면서도 교향곡의 아버지라 불리는 하이든답게 탄탄한 구성미와 연륜이 느껴진다. 이와 더불어 따뜻한 인품과 모범적인 통솔력으로 ‘파파 하이든’이라 불리던 그의 품격이 배어 나오듯 담겨 있어 시작되는 봄, 누구나 듣기에 매력적인 작품이라 확신하며 선뜻 권하고 싶다.

[기고] 지도자의 철학

비록 어제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오늘일지라도 슬기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법구경에 심연이 청명하고 조용한 것처럼 양식은 사람의 도를 듣고 빈(貧)을 배워 그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슬기로운 지도자는 편파적인 일에 동요하지 않고 직면한 문제를 대국적으로 판단해 난관을 극복한다. 어리석은 지도자는 눈앞의 일에만 사로잡혀 당황하거나 허둥대다가 일을 그르친다. 사람들은 특히 재산, 지위, 명예 등을 추구하기 마련이지만 사리 판단을 하는 자신을 잃어버리고서는 그 무엇도 할 수 없다. 갈등 속에서 서로의 이익을 위해 닫힌 문을 열지 못하고 상대방에게만 양보와 이해를 요구한다면 문제의 해결은 멀어질 수 밖에 없다. 화해만이 추운 겨울의 봄에 눈 녹듯이 풀릴 것이다. 자신을 돌아보는 겨울 추위와 같은 아픈 매를 스스로 때림으로써 아픔과 기쁨의 가치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무겁고 준엄한 자세로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견디며 맞고 선 나무의 가르침을 배워야 한다. 사람의 생각은 어디라도 갈 수 있다. 그러나 어디로 가더라도 자기 자신보다도 더 소중한 것은 발견할 수 없다. 겨울이 추운 것은 따뜻한 사람들의 온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법이 옳지 않은 도구가 돼서도 안 된다. 법이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닌 사람이 편히 살아가는 울타리가 돼 줘야 한다. 옛날 성스럽고 현명한 군주들은 자신에게 원인을 찾아 행동했다. 자신을 위해 마음을 수행하듯 나라를 다스리면 그것이 최선이었다. 군주의 품행이 단정한데 나라가 안정되지 못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지도자는 오직 모든 사람들이 필요한 철학이 있어야 한다. 중국 당나라 태종은 현명하고 유능한 사람만 뽑아 정사를 맡겼다. 신하들의 혹독한 충고도 받아들였다. 어쩌다 신하들의 지나친 충고에는 칼을 뺐다가 집어넣기를 300회가 넘었다고 한다. 그렇게 참고 경청한 날은 편히 잠을 잘 수 있었다. 옳고 그름의 직언을 받아들이는 리더십이야말로 지도자의 길인 것이다.

[경기만평] 어쩔...?

[사설] 오산 난방비 폭탄, 시민은 ‘봉’이었다

이권재 오산시장이 지난 10일 DS파워를 찾았다. 집단 에너지(난방) 공급자인 민간 기업이다. “지역난방 요금 문제는 시민들의 실질적 생활비와 직결된 중요한 사안이다. 오산 모든 시민이 합리적 요금으로 에너지 복지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DS파워에서도 요금부담 완화를 위해 함께 고민해달라”고 요구했다. 이 자리에서는 열요금 산정방식 공유, 주택용 열요금 조정 방안, 개발지구 지역난방 공급 확대 등에 대한 얘기도 오갔다. 시장이 난방 공급자를 찾아간 이례적 장면이다. 여기엔 상대적으로 비싼 요금 문제가 있다. 대부분의 지자체는 한국지역난방공사(이하 한난)에서 난방을 공급받는다. 민간 회사에서 공급받는 지자체는 8개다. 오산의 공급자는 DS파워다. 이 DS파워의 난방비가 너무 비싸다. 지난해 7월1일 기준으로 1M㎈당 122.43원이다. 한난은 112.32원이다. 차이가 9%에 달한다. 연간으로 보면 오산 1가구당 5만~6만원 더 내는 꼴이다. 이런 추세는 2022년부터 이어지고 있다. 그간 여섯 차례의 난방 요금 인상이 있었다. 이 중 다섯 차례가 한난보다 9% 높았다. 요금 산출 방식을 보자. 한난은 산업부 통제를 받는다. 시장기준요금을 상한선으로 삼아 산정해야 한다. 민간 공급자의 요금 기준도 산업부가 범위를 정해놨다. 한난 요금 대비 110% 이내다. 결국 DS파워가 109% 인상을 유지한 이유가 짐작된다. 산업부 고시 범위의 최고치에 맞춰온 것이다. 민간 회사라고 다 DS파워 같지는 않다. 경기도내 다른 민간 공급자 네 곳이 있다. 세 곳의 요금 변동은 한난과 같았다. 한 곳이 한난보다 높았는데 그 차이는 1.7%에 그쳤다. 난방비 공급체계를 상세히 아는 시민은 많지 않다. ‘9%’의 차이가 매번 인식할 수 있는 크기도 아니다. 게다가 난방비에는 공공성이 있다. ‘설마 오산시만 난방비가 비싸겠냐’는 공공의 신뢰가 있다. 이런 신뢰를 저버리고 수년간 이어진 난방비 폭탄이었다. DS파워 관계자가 경기일보 질문에 답했다. “난방요금은 연료비(LNG)를 비롯한 총괄 원가를 한국 에너지공단에 의뢰해 산정한 결과를 산업부에 신고해 결정한다.” 무슨 소리를 하나. 지금 난방비 산정 공식을 묻는 게 아니잖나. 다른 민간 공급자들은 LNG 연료 안 쓰나. DS파워만 에너지 공단 의뢰하고, 산업부 신고 하나. 우리가 묻는 건 왜 DS파워의 오산 요금만 유독 비싸냐는 것이다. 이게 질문의 요지이고, 분노의 실체다. ‘함께 고민하자’며 끝낼 일인가. 5년 치 요금 체계를 모두 받아 분석해야 한다. 다른 민간 회사의 산정치도 받아 봐야 한다. 특히 ‘9% 인상’을 계속 유지할 것인지 답변 들어야 한다. 필요하면 시민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해야 한다. DS파워는 공급자다. 가격을 결정할 권리가 있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오산시민은 수요자다. 공급자를 바꿀 권한이 있다. 근본적인 대안까지 생각해 보는 이유다. 그리고 궁금한 게 있다. 오산시는 이런 요금 폭탄을 모르고 있었나.

[사설] 선관위, 아들딸 챙기면서 수백 청년 울렸다

선거관리위원회의 가족·친척 채용 비위가 충격적이다. 감사원이 27일 공개한 감사보고서 속에 적나라하다. 17개 시·도선관위가 2013부터 2022년까지 실시한 경력 경쟁 채용(경채)은 167회다. 이를 점검한 결과 총 662건의 규정 위반이 발견됐다. 중앙선관위도 이런 비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2013년부터 2023년까지 124회 경채를 실시했다. 여기서도 비슷한 규정·절차 위반이 216건이나 확인됐다. 내용을 보면 더 충격적이다. 장관급인 김세환 전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의 아들을 채용했다. 김 전 총장 아들은 원래 인천 강화군청에서 8급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러다 2020년 1월 인천선관위에 경채로 입사했다. 중앙·인천선관위는 선발 인원을 중간에 1명 늘리거나 전보 제한을 적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특혜를 줬다. 공고와 다른 기준의 서류 심사를 하도록 유도했다. 또 시험위원을 김 전 총장과 같이 근무한 적이 있는 내부위원으로만 구성하기도 했다. 차관급인 송봉섭 전 사무차장의 딸도 있었다. 2018년 1월 말 충남 보령시 8급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딸이 충북선관위로 가고 싶다고 했다. 송 차장이 충북선관위 인사담당자에게 직접 연락했다. 신분을 밝히고 채용을 청탁했다. 충북선관위는 이 청탁을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송 전 차장 자녀만을 대상으로 내부위원만 면접시험 등에 참여시켰다. ‘비(非)다수경쟁채용’으로 위법이다. 특정인 채용을 위한 조직적 비위였다. 선관위가 이런 비위를 은폐하기 위해 움직인 정황도 확인됐다. 2022~2023년 선관위 고위직 친인척 채용 논란이 생겼다. 진상 규명을 위해 국회에 답변을 제출하고 자체 특별감사를 실시하면서 감사원 감사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서류 파기 지시 등 특혜 사실 은폐를 시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밖에 선관위의 인사 관리도 심각한 상태였다. 부당한 내부 규정을 운영하고, 심각한 복무 위반도 방치하는 등 방만한 인사관리가 드러났다. 선관위는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심판에서 중심에 있었다. 윤 대통령 측이 계엄 사유로 ‘부정선거 의혹’을 들었기 때문이다. 헌재에서 공방은 있었지만 부정선거 특정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국민이 선관위에 신뢰를 보냈다. 우리도 그랬다. 선관위에 대한 신뢰는 사회의 보루이기 때문이다. 그런 신뢰가 크게 배신당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세력에 더 없는 빌미를 주게 됐다. 이마저 부인할 건가. 자신들의 아들딸 채용을 위해 국민의 아들딸 800명을 울렸다. 그렇게 채용한 고위직 아들은 ‘세자’라 불리며 근무했다. 비위를 감추는 데는 조직이 동원돼 한몸이 됐다. 이런 선관위를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가.

[지지대] 캡틴 아메리카

얼마 전 캡틴 아메리카가 구속됐다. 사실은 미국 마블의 인기 캐릭터인 캡틴 아메리카의 복장을 한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 얘기다. 주한 중국대사관과 경찰서 난입을 시도한 혐의로 구속돼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심지어 이 남성은 미국 중앙정보국(CIA) 블랙요원이자 미군 예비역이라고 주장했지만 경찰 조사 결과 육군 병장으로 제대했으며 미국으로 출국한 적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성조기를 온 몸에 두른 듯한 ‘코스튬플레이’는 미국도, 한국도 품지 못한 허황된 몸짓으로 남았다. 세계인의 영웅 캐릭터인 캡틴 아메리카와 전혀 동떨어진, 경찰 수사까지 받는 피의자 신세가 됐다. 최근 개봉한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는 캡틴 아메리카의 동료인 ‘팔콘’ 샘 윌슨이 겪는 새로운 캡틴 아메리카로서의 무게감과 분투를 담았다. 미국을 상징하는 캐릭터로 자리 잡은 캡틴 아메리카는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탄생했으며 평범한 인물이 초인적 힘을 갖고 특별한 방패를 들고 적에 맞서는 모습을 수십년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을 상징하지만 세계의 평화를 상징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상징의 미국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자국 중심주의 관세 정책과 비교하면 거리감이 있어 보인다. 결국 캡틴 ‘아메리카’는 지금 인접국이나 다른 여러 나라에도 불안감을 가져다 주고 있다. 한국도 이 같은 관세전쟁에서 결코 예외는 아니다.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변론 종결이 25일 있었다. 12·3 계엄 이후 사태 수습을 위한 여러 절차를 거치고 있지만 여전히 대한민국은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한국은 미국과 동맹이면서 한때 반미 감정도 있었던 만큼 숙명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2011년 개봉한 캡틴 아메리카 영화의 국내 제목이 ‘캡틴 아메리카’가 아닌, 부제였던 ‘퍼스트 어벤저’인 걸 봐도 당시의 분위기를 알 수 있다. 보수집회에서는 꾸준히 태극기와 성조기가 함께 펄럭인다. 캡틴 아메리카까지 등장해 난동을 부렸다. 다시 한번 미국과 한국에 대한 묘한 괴리감을 느끼게 만든다.

[시베리아·실크로드, 지구 반바퀴] 사강달리, 전투적 여행

눈앞에 펼쳐진 드넓은 초원지대 한 폭 그림 같아 서쪽 하늘엔 타오를 듯한 붉은 노을 러시아 민요 흥얼거리며 땅거미를 기다리는 시간 자욱하던 토탄 연기도 사라지고 아름다운 수목, 초원, 하늘이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났다. 오늘은 670㎞ 떨어진 ‘사강달리’에 도착해야 한다.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므로 평소보다 일찍 출발한다. 자작나무, 소나무, 전나무 숲속을 달리는 구간은 적어지고 초원지대가 펼쳐진다. 차창 밖의 멋진 초원의 야생화를 보면서 달리는 드라이브는 최고다. 위도가 북위 52도로 약간 남서쪽으로 내려가고 있다. 고위도 지역이라 늦게 핀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해 있다. 시베리아 대평원 고위도 지방의 야생화는 대체로 단색이고 옅은 색상이다. 한국 봄날의 화려하고 진한 원색의 야생화는 보기 어렵다. 산들바람이 초원을 스쳐 지나가고 하얀 뭉게구름, 솜털구름이 멀리 파란 하늘과 조화를 이루며 떠 있다. 며칠 만에 보는 한가한 목가적인 전원풍경이다. 서쪽으로 달리면서 소나기가 가끔 뿌리며 지나간다. 소나기 다음에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이 나타난다. 자동차는 연초록색 물결의 평화로운 바다를 달리고 있다. 우리는 현재 자동차 ‘노마드족’이다. 특정 목적에 구애받지 아니하고 자유로운 영혼을 즐긴다. 고요함, 침묵, 자유, 목가적, 광활함, 평화로움, 한가로움, 멈춤, 느림, 여유, 단순함, 원시적, 모성적 대지, 어머니의 품, 사랑, 대자연 등 평안한 단어를 생각하며 달린다. 단어는 보이지 않는 미지의 세계, 무한한 상상력의 경계선을 넘나들 수 있다. 논어에 ‘심재(心齋)’라는 단어가 있다. ‘마음의 비움’을 심재라고 한다. 마음을 비우는 방법으로 공자는 제자 안회에게 말한다. “첫째, 귀로 듣는 것을 마음으로 듣는 것으로 바꾼다. 그다음 마음으로 듣는 것을 기(氣)로 듣는다.” 기는 한국과 중국 등 동양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용어로 생명력, 에너지, 원기 등 우주의 기본적 요소다. 시베리아 대평원의 기를 마음속에 받으며 달리고 있다. ■ 두 번째 심각한 자동차 고장 기쁨과 평안함의 시간은 오전까지였다. O사장의 차는 출고된 지 10년, 주행거리 20만㎞의 오래된 차다. 출발 전에 열악한 도로 사정을 감안해 바퀴 교체, 오일 교환, 엔진 출력 확장 등 많은 돈을 들여 수리한 차라고 한다.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고 러시아 극동군사령부가 있는 군사도시 ‘치타’에서 약 30㎞를 갔을 때 갑자기 O사장의 차가 엔진 출력이 떨어지고, 속도가 줄고, 검은 연기가 펑펑 나온다. 일행이 멈추고 자동차 전문가인 우리 차 카메이트 L실장이 보닛을 열고 살펴본다. 중요한 부품 ‘터보’에 미세한 구멍이 생겼다고 한다. 계속 달리면 차가 도로에 멈추는 상황이 생긴다고 한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치타’ 도시에 한국 기아차 딜러 회사와 정비소가 있다. 치타 정비소에 전화로 예약을 하고 30여㎞를 후퇴해 왔던 길을 되돌아 간다. 뒤돌아가는 일행 모두 불안한 상황이다. 정비사는 구멍 난 터보 부품을 새것으로 교체해야 한다고 말한다. 부품을 서울에서 공급받으려면 2주일이 걸릴 것이다. L실장의 아이디어로 터보의 작은 구멍을 임시로 끈으로 동여매고 가기로 한다. 두 시간 이상을 치타 정비소에서 소비했다. 치타에서 숙소 ‘사강달리’까지 370㎞를 더 가야 한다. O사장 차는 평지나 내리막길은 정상 속도로, 오르막길은 시속 60~70㎞로 느리게 운전해 간다. 이번 여행을 완주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혹시나 해서 가는 중간에 있는 구글로 정비소를 검색해 보고, 전화를 걸어보니 시골 도시 정비소 주인이 응급조치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시골의 자동차 정비사를 만난 시간이 오후 9시다. 이 정비사도 방법이 없다고 한다. 최악의 경우 초반기 여행이 중단되는 비관적인 시나리오가 걱정된다. 터보 수리에 도움도 못 받고 정비소 두 곳을 찾아 헤매는 데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정비소에서 기다리는 시간에 석양의 찬란한 낙조(落照)가 시작됐다. 초원에서 방목하는 말들이 해질 무렵 주인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목가적이다. ■ 석양을 뒤따라가며 낙조를 즐긴다. 위도가 높은 지역이라 해가 완전히 지는 시간은 오후 10시쯤이다. 오후 9시 이후부터 서쪽 하늘에 화려한 낙조의 시작이다. 해가 떨어지는 대평원의 서쪽을 향해 자동차도 서쪽으로 빠른 속도로 달려간다. 우리는 서쪽으로 운전하면서 오후 10시까지 시베리아 대초원으로 해가 넘어가는 붉은 노을을 뒤따라가는 경험을 한다. 이동하면서 관찰하는 대평원의 장시간 낙조는 5분, 10분 짧은 시간에 해가 바다로 떨어지는 서해안 낙조와는 다른 체험이다. 자동차 고장으로 두 곳 정비소를 들르느라 시간을 많이 소모했다. 몸과 마음이 몹시 지쳤는데 그나마 아름다운 낙조를 한 시간여 감상하면서 마음의 평온을 찾는다. 성악 전공의 K교수님이 동화적, 몽환적 석양을 보면서 러시아 민요 ‘더 이브닝 벨(The Evening Bell)’ 노래를 무전기로 얘기한다. 유튜브에서 더 이브닝 벨 곡을 틀어들으며 가니 마음이 안정된다. 가사는 아래와 같다. “저녁 종소리 저녁 종소리/너희는 전해야 할 이야기를 얼마나 많이 전했니/젊음과 집, 그리고 행복한 시간/내가 마지막 너희에게 들려주었던 노래/그 종소리 사라지고 행복했던 지난 날들.” K교수가 ‘검은 눈동자’ 등 여러 러시아 민요곡을 알려줘 유튜브에서 들으며 지루한 마음을 달랜다. 러시아 민요는 전반적으로 애절하며 차분해 우리의 정서와 비슷하다. 오후 11시 늦게 숙소에 도착했는데 최악의 여관이다. 방에 샤워실과 화장실이 별도로 없다. 여관 전체에 샤워실 겸 화장실이 복도에 한 개 있는데 공동 화장실이다. 아내가 화장실에 들어가면 나는 다른 사람들이 못 들어가도록 복도에서 보초를 서야 한다. 화장실이 없는 사막에서 용무가 필요할 때 사용하려고 우산을 준비해 갔는데 시베리아 화장실 환경도 보통이 아니다. 일행 중 두세 명이 배탈이 나 화장실 출입이 잦은데 화장실 여건은 최악이다. 저녁 식사와 샤워를 하고 나니 오전 1시다. 오전과 오후는 낙관과 비관, 천당과 지옥 정반대의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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