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89초밖에 남지 않은 지구 멸망”

지구가 멸망하기까지 단 89초밖에 남지 않았다는 경고가 나왔다. 핵무기 및 인공지능(AI) 위험으로 역대 최근접이라는 분석에도 무게가 실린다. 물론 상징적인 메시지이겠지만 등골이 오싹해진다. 외신에 따르면 지구촌 핵전문가들의 모임인 핵과학자회는 최근 이 같은 수치를 알려주는 ‘지구 종말 시계(Doomsday Clock)’를 발표했다. 이 시계를 보면 정확하게 초침이 자정 89초 전으로 맞춰졌다. 지난해 90초 전에서 1초 당겨졌다. 이 단체가 이 같은 수치를 발표하는 건 1947년부터다. 인류가 핵전쟁, 기후변화, 생물학적 위협, AI 등 신기술로 멸망할 위험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서다. 이 시계는 자정을 지구가 멸망하는 시점으로 설정하고 자정까지 남은 시간을 표시하는데 이번에 발표한 89초는 1947년 이래 가장 짧다. 핵과학자회는 이처럼 시간을 앞당긴 이유로 핵전쟁 위험 증대를 제시하고 있다. 실제로 러시아가 미국과 체결한 신전략 무기감축조약(New START) 이행을 중단하고, 중국은 핵무기를 빠르게 늘리고 있으며, 미국도 핵무기 확대로 기울고 있다. AI를 무기에 접목하려는 시도와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기후변화 대응정책 우선순위 하향 조정 등도 원인으로 꼽았다. 첫 지구 종말 시계에선 7분이 남았다고 발표했었다. 하지만 옛 소련이 핵폭탄 실험에 처음 성공한 1949년에는 3분 전으로 조정됐다. 인류가 멸망에서 가장 안전했던 시기는 미국과 옛 소련이 전략핵무기 감축에 합의한 1991년이었다. 당시 시간은 자정 17분 전이었다. 2020년 이후 100초 전으로 유지해 오다 2023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핵무기 사용 우려가 커진 점을 반영해 90초로 당겨졌다. 인류 공멸 예방을 위한 명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소중한 행성인 지구를 사랑해야 하는 까닭들이 차고 넘쳐서다.

[시베리아·실크로드, 지구 반바퀴] 시베리아 평원의 품속으로

토탄 불 연기로 자욱한 회색빛 하늘 ‘잠자는 땅’ 시베리아서 문명의 단절 느끼고 마음 평안 찾아 네르친스크 거쳐 우탄으로 서울을 출발한 지 10일째(7월12일)되는 날이다. 시베리아는 관광객이 없기 때문에 여관을 전업으로 하지 않는다. 숲속 길 옆 주유소에서 휴게소, 식당, 여관, 편의점 등을 한곳에서 하고 있다. 휴게소 주차장에는 화물차들이 밤을 보낸다. 오전 4시경이면 위도가 북쪽이라 훤하게 밝아지고 주차장에서 밤을 보낸 화물차들이 이른 출발을 위한 시동 거는 소리가 요란하다. 장거리 운전 화물차 기사는 휴게소에 200루블(3천원)을 주고 여관의 샤워실을 빌려 간단히 목욕한다. 화물차 기사는 휴게소 편의점에서 간단한 음식과 술 몇 병을 사 운전석에서 식사, 반주를 하면서 잠을 잔다. 출발하면서 근처 주유소에서 기름 20ℓ를 넣고 출발한다. 도중에 큰 주유소를 만나면 품질 좋은 디젤을 가득 넣기로 하고. 이것이 오후 내내 우리 일행을 가슴 졸이게 만드는 큰 사건이 될 줄은 몰랐다. 자동차 앞 유리창은 피범벅으로 그냥 두고볼 수 없다. 운전 중 초원에 사는 나방, 곤충, 벌레들이 날아와 앞 유리창에 부딪치기 때문이다. 카메이트 L실장은 매일 새벽마다 세척용 물비누를 사서 출발 전 자동차 앞 유리를 깔끔하게 닦는다. 그래도 한두 시간만 달리면 앞 유리가 벌레들의 핏자국으로 빨갛게 돼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 와일드 시베리아 생태계 영화 ‘와일드 아프리카’에 사자, 악어들의 약육강식 풍경이 자주 나온다. 토탄 산불로 휩싸인 시베리아는 정말로 와일드 시베리아의 야성미다. 새벽부터 토탄 불로 인한 연기와 매연이 자욱하다. 오늘 목적지 ‘우탄’까지 하늘을 덮고 있는 토탄 연기가 600여㎞를 갈 때까지 이어진다. 하늘은 짙은 회색으로 햇빛을 하루 종일 못 보고 있다. 유독한 연기로 인한 건강 위협 때문에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이다. 어떤 곳은 지표면 토탄층 불로 나무가 죽어 가고 오래전 불이 난 지역에서는 새로운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토탄은 생성 역사가 짧은 석탄의 일종으로 열량이 낮아 화석연료로는 사용하지 않는다. 어제 오후부터 오늘까지 약 800㎞에 걸쳐 토탄 연기로 덮여 있다. 정말로 광대한 땅이다. 활활 타는 불꽃은 없어 도로에 화물차 등은 계속 다닌다. 어디까지 ‘시베리아’인지 검색해 보니 우랄산맥 동쪽부터 태평양 오호츠크해까지 9천㎞를 지리학상 시베리아라고 부른다고 한다. 시베리아 지역을 한 단어로 간단히 정의할 수 없는 이유다. 원주민 언어로 시베리아 뜻은 ‘잠자는 땅’이라고 한다. 노상에서 시베리아 야생 딸기, 와일드 베리, 야생 꿀을 사고 싶은데 이런 험악한 상황은 장사는커녕 생명체가 살기도 쉽지 않다. 휴게소를 조금만 벗어나면 인터넷이 끊긴다. 위성항법시스템(GPS)이 안 되니 현재 있는 곳의 위치 정보, 즉 해발고도, 위도, 경도 등 현재 위치를 알 수 없어 답답하다. 인터넷이 단절된 오지는 ‘시간이 직선으로 가지 않고 곡선으로 간다’. 문명과의 단절은 우리에게 시간의 느림, 멈춤을 느끼게 한다. 느림은 나그네의 마음을 평안하게 만든다. 세상과의 단절이 주는 아름다운 고독이다. 시베리아 평원을 가로질러 흘러가는 강들이 자주 나타난다. 이곳의 모든 강은 겨울철 얼음으로 뒤덮인 북극해로 흘러가기 때문에 인간의 경제활동에 도움이 안 된다. 이 강물이 남쪽의 몽골 지방으로 흐른다면 몽골은 매우 살기 좋은 비옥한 나라가 될 것이다. 간혹 강가에 낚시꾼이 보인다. 아버지와 아들이 손잡고 낚시하러 가는 평화스러운 모습을 본다. 낚시는 여름철 짧은 기간의 취미생활일 것이다. 단조로운 풍경이 주는 여유로움이다. 나의 귀여운 어린 손자들이 청소년이 되고, 함께 낚시하러 다니는 조손간에 다정한 관계와 평안한 노후의 시간을 보내는 그림을 상상해 본다. ■ 자동차 디젤 기름 찾아 삼만리 아침 출발할 때 중간에 점심을 먹으며 주유소에서 기름을 채울 생각으로 출발했다. 수백 ㎞를 지나왔는데도 중간에 휴게소와 주유소가 없다. 점심으로 서울에서 가져온 과자 몇 개를 나눠 먹는다. 계기판에 주행거리가 50㎞ 남았다는 경고등이 켜진다. 모든 일행의 마음이 초조해진다. 시베리아 숲속에 고립된다는 게 무섭다. 기름이 거의 없어질 즈음 간신히 작은 주유소를 찾았다. 시골길을 돌고 돌아 2차 세계대전 때나 썼을 법한 초미니 주유소를 발견했다. 주유기 하나가 들판에 덜렁 서 있다. 전화를 하니 주유소 주인이 나타나 정말 어렵게 기름을 넣었다. 아내는 점심을 못 먹어 배고픈 것보다 기름이 없어 차가 멈추는 것이 더 무섭다고 말한다. 매일매일 긴급 상황이 한 가지씩 생긴다. 조용하게 지나가는 날이 없다. 그래도 인터넷이 연결되는 지역의 초미니 주유소를 찾은 것이다. 구글 맵 서비스가 없다면 오지의 여행은 참 힘들 것이다. ‘우탄’에 못 미쳐 ‘네르친스크’ 도시를 통과한다. 1689년 청나라와 러시아가 ‘네르친스크 조약’을 체결한 도시다. 17세기 중반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과 서쪽의 강대국, G2 국가는 청나라와 러시아다. 당시 아무르강에서 조선, 청나라 연합군과 러시아 군대 간에 두 차례 전쟁(나선정벌·1654, 1658년 조선 효종 때 청나라 요청으로 파병돼 러시아군과 벌인 싸움)을 치렀는데 전쟁을 중단하고 국경을 획정하기 위한 국제조약이다. 중국은 종주국으로, 주변 국가는 조공국 위치를 2천년 이상 유지해 왔기 때문에 대등한 국제조약을 맺은 적이 없는 나라다. 중국은 항상 ‘갑’의 위치에서 이민족과 불평등한 협상을 해왔다. 네르친스크 조약은 중국이 타국과 대등한 자격으로 맺은 최초의 국제조약으로 유명하다. 당시 조약문서는 ‘라틴어’로 썼다고 한다. 청나라는 선교차 와 있던 라틴어를 아는 예수회 신부를 데려갔고 러시아 측에도 라틴어를 아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해가 늦게 지기 때문에 오전 9시 반에 도로 옆 위치한 여관 겸 휴게소에 도착했다. 토탄 연기를 뚫고 600㎞를 달려온 셈이다. 저녁 식사를 마치니 오후 11시다. 서울서 가져온 고추장, 김치, 장아찌 등으로 식사를 맛있게 했다. 샤워 중에 여관의 전기가 나가고 물이 끊겨 생수를 가지고 이를 닦는 돌발 사태도 경험한다. 시베리아의 야생문화에 적응하는 방법 외에는 대안이 없다. 불편한 침대지만 피곤함이 숙면을 가져온다. 하루 종일 ‘낭만적 여행’이 아닌 ‘전투적 여행’을 했다.

[함께하는 미래] 광장의 빛을 재생에너지로

최근 미국 국립빙설자료센터(NSIDC)의 데이터를 영국 BBC가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올해 2월13일까지 5일 동안 북극과 남극의 해빙 총 면적은 1천576만㎢로 이는 같은 기간 2023년 1~2월 기록된 종전 최저치인 1천593만㎢를 경신한 수치라고 한다. 2년전보다 무려 우리나라 면적의 약 2배 가까이 해빙이 녹아내린 셈이다. 해빙 면적이 줄어든 만큼 지구는 평형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지구촌 곳곳에 인간이 과학기술로도 예측하기 어려운 천재지변으로 재난을 만들어 낼 것이다. 가속화되는 지구온난화로 모든 지표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데 지구 반대편에선 지난 세기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 나라의 수장이 취임하면서 내뱉은 일성이 우리가 닥친 현실을 다시금 되뇌게 했다. 소위 초강대국 최고 책임자의 기후위기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취임사는 지구상의 모든 국가와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을 다시금 깨닫게 됐다. 그 도발적인 망언은 과거 30여년 동안 힘겹게 기후 보호를 위해 쌓아 온 공든 탑을 도미노처럼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며, 온갖 시련을 딛고 기후 대응을 위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실현하고 있는 대부분의 국가로 하여금 당분간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화석연료로의 회귀에 대한 공포에 치를 떨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다행히 우리 국회 입법조사처는 “미국이 파리기후변화협약을 탈퇴하더라도 에너지 전환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 국익에 부합하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우리나라처럼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나라는 최소한 ‘탄소중립 기본법’으로 정한 에너지 전환을 충실히 이행해 에너지 안보와 탄소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국익에 부합하는 길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수많은 난관이 현실로 다가올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강대국의 패권주의와 일방주의가 횡행하면 약소국은 발등에 놓인 여러 급한 불을 동시에 꺼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현명한 대처 없이는 나라의 존립마저 위태롭게 될 수 있다. 정치 일정이 급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광장을 통해 새로운 사회를 위한 수많은 제안이 쏟아지고 있다. 장기간 불통과 일방통행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누적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간절한 민의의 외침이다. 무엇보다도 우선해서 풀어야 할 과제가 있다. 불과 몇 해 전 수많은 논쟁 및 갈등을 동반한 공론화 과정과 국민적 합의를 통해 그나마 마련한 2050 탄소중립 선언과 계획이다. 최근 무도함에 뿌리까지 흔들리기를 반복했지만 시민 스스로가 키운 불씨는 다행히 완전히 꺼지지 않았고 수많은 난관 속에서도 서서히 싹을 틔우고 있다. 자주성과 지속가능성을 모태로 시민 누구나 주인이 돼 재생에너지를 통해 현재와 미래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하는 에너지협동조합의 활동이다. 이들의 주장은 단순 명료하다. 시민 모두가 에너지 생산과 이용의 주인이 되자는 것이다. 우수가 지나고 곧 동면하던 개구리가 놀라서 깬다는 경칩인데 이 절기에 겪는 한파가 현 시국을 닮았는지 쉽게 끝나지 않고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애태운다. 날씨가 널뛰어도 해는 어김없이 봄을 재촉한다. 서둘러 마무리하고 보습을 닦고 쟁기질을 준비하는 농부처럼 무너진 살림살이와 새까맣게 멍든 마음을 치유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다시는 이 땅에 발을 동동 구르는 일이 반복되서는 안 된다.

[경기만평] 프로 참석러...

[사설] 공사 넘기라고 공무원이 협박? 안산시 이상한 행정

경찰이 안산시 공무원과 민간 공사 업체 관계자를 검찰에 송치했다. 공무원에게 적용된 혐의는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및 건설산업기본법 위반 방조다. 업체 관계자는 건설산업 기본법 위반 혐의 등이다. 이들의 혐의는 생존수영장 공사 관련이다. 에어돔, 관리동, 수영장, 파도풀 등이 갖춰진 안산시 사동의 시설이다. 195억원의 많은 혈세가 투입됐다. 구상 단계부터 전국 최초의 생존수영장 건립이라며 큰 기대를 받았었다. 경찰은 구체적인 혐의에 대해서 발표하지 않았다. 그 대신 앞서 한 업체가 경찰에 제출한 고소장 내용이 알려져 있다. 주된 고소 혐의는 공무원의 공사 포기 종용과 특정 업체 하청 유도다. 업체는 전자입찰 방식으로 선정됐다. 의혹을 제기한 것은 수영장 조성 공사에 낙찰된 업체다. 담당 공무원이 공사 포기를 강요했다는 정황이 담겨 있다.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 “다른 업체에 주고 싶으니 공사를 포기하라”는 내용이다. 공사는 결국 공무원이 지목한 업체로 넘어갔다. 원청자는 계약금의 일부를 이익금 명분으로 받았다. 고소인은 “명의만 내 회사였고 공사는 (공무원이 지명한) 회사가 했다”고 주장했다. 해당 공무원은 “그렇게 처리한 적이 없다”며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하지만 조사를 벌인 경찰이 공무원과 업자를 검찰에 송치했다. 상당 부분 사실이 확인된 것으로 보인다. 황당한 행정이 개입된 공사는 부실로 이어졌고 폭설 피해를 입었다. 지난해 11월27일 에어돔 중앙부가 침하됐고, 에어돔 막재가 찢어졌다. 에어돔 내구 기준은 강수량 50㎝, 폭풍 시 내부 압력 80~100mmAq(최대 120mmAq)다. 당시 적설량은 43㎝였다. 당초 건축설계 제안 공모의 과업지시서에는 융설시스템 설치를 반영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실행 과정에서 무시된 사실이 확인됐다. 전국 최초라는 기대로 시작한 안산 생존수영장이 공무원·업자 입건, 부실시공과 시설 피해로 이어졌다. 흐름이 황당한 만큼 의문도 남았다. 수십억~수백억원에 달하는 대형 공사다. 업계에 지켜보는 눈이 많은 사업이었다. 그런 사업에 공무원이 버젓이 개입했다. 특정 업체에 주라며 회유와 협박까지 했다. 당연히 그럴만한 동기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부분이 명확히 설명되지 않고 있다. 금품이 대가였는지, 또 다른 지시가 있었는지도 알려진 바 없다. 검찰의 보완 수사에서 밝혀내야 할 부분이다. 아무래도 이게 끝이 아닌 것 같다.

[사설] ‘개점휴업’ 뇌혈관센터... 공공의료 지속가능 길은 어디에

공공의료원의 경영 악화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인천뿐 아니라 전국적 현상이다. 필수 의료진조차 채우지 못하니 의료 서비스 질이 떨어진다. 환자들이 덜 찾으니 경영이 더 어려워진다. 악순환이다. 인천의료원이 의료 서비스 향상을 위해 심뇌혈관센터를 새로 열었다. 독립 건물까지 마련한 의욕적인 사업이었다. 그러나 몇 달 되지도 않아 사실상 개점휴업에 직면했다. 전문의료진이 없어서다. 인천의료원 심뇌혈관센터는 필수의료 서비스 강화를 위한 투자였다. 2021년부터 2024년까지 146억원을 들여 지상 6층 규모의 별관동까지 지었다. 1층은 신경외과와 흉부외과 등 외래진료실이다. 3~ 5층은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 등이다. 이런 준비 끝에 지난해 12월 문을 열었다. 그러나 문을 연 지 2개월이 지나도록 전문의는 1명도 없다. 심뇌혈관센터를 이끌 심장내과, 순환기내과 전문의다. 인천의료원은 지난해부터 채용에 나섰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전문의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낮은 연봉, 열악한 근무환경 때문이다. 시중의 심장내과 전문의 연봉은 통상 4억원대 중반이다. 그러나 인천의료원이 제시한 연봉은 3억원대 중후반이다. 심장내과 등은 언제 응급수술이 발생할지 모르는 근무환경이다. 인천의료원 심뇌혈관센터의 채용 인원은 2명뿐이다. 12시간 근무 등 힘든 근무환경이 뻔해 전문의들이 외면한다는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인천의료원은 그간 외부 전문의 파견으로 심뇌혈관센터를 이어왔다. 길병원 심장내과 전문의 3명이 매주 화·목요일 2일만 진료를 봤다. 그러나 파견 전문의들이라 약물 처방 정도에 그쳤다. 수술은 손도 대지 못하는 ‘반쪽짜리’ 심뇌혈관센터 운영이었다. 파견 진료도 이번 달로 끝난다. 길병원도 전공의 사태 이후 전문의 피로도가 심각하다. 불가피하게 파견 전문의 복귀를 결정한 이유다. 3월부터는 전문의가 아예 없는 심뇌혈관센터로 남는다. 많은 돈을 들여 센터를 짓고 장비를 사들였다. 환자가 찾아와도 맞아줄 의사가 없는 인천의료원 심뇌혈관센터다. 이런 경우 지방의회 등에서는 정부나 지자체의 충분한 재정 지원을 촉구한다. 그런다고 다 풀릴 문제는 아닌 것 같다. 20~30년 전만 해도 시립병원이나 도립병원이 적자 걱정은 하지 않았다. 의료 소비시장의 환경이 크게 달라진 것이다. 시립병원이든 대학병원이든 의료 소비자가 기꺼이 찾아야 지속가능하다. 공공의료원이 제3의 길을 찾아야 할 때라는 주장에 공감한다. 그나저나 연봉 3억원대 중반에도 의사를 못 구한다니. 의사가 부족한 것은 틀림이 없나 보다.

[김종구 칼럼] 김동연의 '반도체 사랑'에는 핵심이 빠졌다

김동연 경기지사에는 ‘반도체 도지사’라는 별명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의원이 지난해 붙여줬다. 그도 그럴 게 2022년 취임 이후 그의 반도체 행보는 특별했다. 네덜란드까지 날아가 3조원대 수출 합의를 이뤄냈다. 반도체 클러스터 지원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이런 의지가 집약된 것이 반도체 특별법 추진이다. 반도체 특구 조성, 팹리스 및 중견·중소기업 지원, 반도체 생태계 기금 조성 등이 전부 ‘김동연 구상’이다. 국민의힘(고동진案)과 민주당(김태년案)을 이끌어냈다. ‘반도체 도지사’는 이런 노력에 대한 별칭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산업이 몰려 있는 경기도다. 이런 경기도 수장에 주어진 별명이다. 흐뭇한 영예일 것이다. 그런데 요즘 헷갈리는 일이 있다. 정치로 번진 ‘주 52시간 예외’ 문제다. 사달은 17일 국회 소위에서 일어났다. 반도체 특별법 합의가 불발됐다. 핵심이 주 52시간 예외다. 여야 차이가 워낙 크다. 김 지사가 이 부분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유예 반대’다. 자신의 SNS에서 공개 표명했다. 표현이 거세다. “AI 기술 진보 시대에 노동 시간을 늘리는 것이 반도체 경쟁력 확보의 본질입니까. 시대를 잘못 읽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사흘 뒤에는 ‘주 30시간 기업’을 찾아가 격려했다. 마침 이재명 대표가 주 52시간 유예를 긍정 검토한다던 시기였다. 언론은 일제히 ‘보란 듯이 이 대표와의 입장 차이를 공개한 것’이라고 했다. 맞다. 주 52시간제는 문재인 정부 유산이다. 노동친화적 이념을 실현한 정책이다. 대통령 되려는 김 지사의 언덕도 친문(親文)이다. 정책 승계를 위한 정치적 선택일 수 있다. 그런 선택이라면 평할 건 없다.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반도체 도지사’라고 하니 따져는 볼 일이다. ‘주 52시간 유예’가 현재 국민의힘 주장인 건 맞다. 하지만 그 출발은 반도체 업계다. 업계에서 정치권에 보낸 지원 요청이다. 업계 목소리를 되짚어 보자. 지난해 11월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발표다. -신속한 기술 개발과 생산력 확보가 시급하다. 반도체 산업 내 설계 기업, 제조 기업, 소부장 기업 등의 업무 특성상 획일화된 근로시간 규제에 묶여 있으면 안 된다. 생산 분야도 수출 변동에 따른 근로 유연성이 절실하다-. 노동부 장관 등 정부 관계자들 앞에서 밝힌 호소다. 그날 핵심은 이거 하나였다. ‘52시간 예외 적용’ 외엔 기사에 없었다. 그간 현장에서 나온 증언도 추려 보자. -반도체 R&D는 신제품 개발을 위해 6개월~1년의 집중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핵심 연구 인력은 대체 불가다. 최첨단 D램 개발이 근로시간 한도에 막혀 18개월이나 지연된 적도 있다. 대만 TSMC는 2023년 발열 문제를 두 달 만에 해결했지만 한국의 반도체 기업은 2022년 3월 발생한 발열 문제를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생산에서는 30% 납기 지연이 일상이 돼 버렸다-. 그제(18일) 아침, 삼성전자에 전화했다. ‘주52시간 유예 불발을 어찌 보는가’. “반도체산업협회로 물어봐 달라”며 말을 아낀다. 더는 안 물어봤다. 17일부터 ‘주 52시간 유예’는 정치 문제가 됐다. 업계는 다시 벙어리가 될 수 밖에 없다. 달포 전, 그 삼성전자의 고위 임원들이 국회에 갔더랬다. 의원실을 돌며 문건 하나를 전달했다. 제목은 ‘반도체 특별법 내 근로시간 유연화 관련’이었고, 내용은 “전체 5%에 불과한 연구원들이 일할 수 있게 해 달라”였다. ‘반도체 본질’은 그들이 잘 안다. 그들이 호소한 ‘주 52시간 유예’다. 김동연 지사도 12일 삼성전자를 찾았다. “힘을 실어주러 왔다”고 했다. 힘을 실어주려면 소원부터 들어줘야 하는거 아닌가. 소원의 선택은 업계가 하는 것이고.

[지지대] 키오스크에도 인정이 피어나길

요즘 식당이나 카페에 가면 가장 먼저, 자주 만나는 것 중 하나가 키오스크다. 우리말로 가장 유사한 걸 찾아보면 ‘무인 주문 기계’ 정도가 될 것 같다. 무인, 단어 자체에 사람이 없다. 사람이 없는 이 기계는 이상하리만큼 사람을 위축시킨다. 멀쩡히 잘 보이던 단어가 안 보이기도 하고,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쓰는 게 익숙한 필자에게도 누군가에게 쫓기는 듯한 초조함을 준다. 이런 감정은 어르신들일수록 더할 것이다. 오죽하면 키오스크에서 주문을 하지 못해 햄버거 하나 사 먹지 못했다는 어르신의 사연이 온라인을 달궜을까. 이런 글을 볼 때면 멀리 떨어져 사는 부모님이 떠오른다. 식사 후면 티타임이 일상인 분들인데, 그렇지 않아도 블렌디드에 프라푸치노 같은 어려운 말들 속에서 무인 주문 기계까지 만나 초조함을 느끼다 발길을 돌릴까 하는 걱정이다. 그러다 얼마 전 우연히 이런 장면을 봤다. 어르신 네 분이 카페에 설치된 키오스크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초조해 하고 계셨고 점원들은 음료를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때 그분들 바로 뒤에 선 한 학생이 “괜찮으시면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하며 싱긋 웃었다. 그제야 어르신들의 얼굴에도 안도감 섞인 웃음이 번졌다. 상당한 시간을 기다렸음에도 줄을 선 이들 중 누구도 짜증을 내지 않았다. 무인 기계에 인정이 피어난 것이다.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오늘도 우리 앞에서 초조해할 어르신들이 단단하게 이 땅을 지켜 왔기에 새로운 문화라는 이름의 혜택을 우리가 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그래서 바라본다. “괜찮으시면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저도 아직 어려워요”라며 웃어줄 수 있는 인정이 모든 키오스크에서 피어나길.

[삶, 오디세이] 내게 맞는 교회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부지런하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게으르게 가만히 있으면 안 되도록 쇳덩어리를 가만히 두면 녹이 생기고, 땅을 가만히 두면 엉겅퀴가 자라고, 사람도 때가 되면 머리를 깎아야 하고 손톱을 손질하도록 창조하셨다. 나는 두 달에 한 번쯤 머리를 깎는다. 우리 동네는 시장 안에 남자 전용 미용실이 있다. 오랫동안 단골손님으로 이발을 했는데 어느 날 주인이 바뀌었다. 머리를 깎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친하게 지냈는데 아는 언니가 호주에 있다고 했던 적이 있는데 호주로 이민을 갔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어느 날부터 낯선 미용사에게 머리를 맡기고 인사말을 시작으로 대화가 되지 않는 겉도는 말을 하면서 아직 친해지지 않은 어색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주일 예배를 앞둔 지난 주말, 때가 돼 단골 미용실을 찾았는데 문을 열기도 전에 밖에서 봤더니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어 뒤돌아 왔다. 마침 30년 넘게 운전하며 다니던 골목길에 보이지 않던 보조간판을 본 기억이 났다. ‘남자 전용 이발 구천 원’ 집으로 오던 발걸음을 돌려 새로운 미용실을 들어갔다. 연세 많은 아주머니가 힐끔 쳐다보며 자리에 앉아 기다리라고 하며 나 같은 아저씨 머리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잠시 후 내 차례가 됐다. “어떻게 깎아 드릴까요”라는 물음에 장난기 섞인 대답으로 “잘~ 깎아 주세요”라고 했더니 “뻗치는 머리라서 조금 다듬어 드릴게요”라면서 이미 현란한 손놀림의 가위질이 시작됐다. “조금만 다듬어 준다”는 말이 걱정돼 “그래도 한 달이나 두 달 후에 미용실에 올 수 있게 해 주세요”라고 수줍은 요구를 하나 더했더니 깎고 있던 머리는 더 짧아지기 시작했고 시간이 길어지게 됐다. 처음 만난 손님에게 온 신경을 써서 집중하고 있는 미용사에게 과감하고 정확하게 요구사항을 말씀드렸다. “저는 목사입니다. 잘 부탁해요.” 내가 목사라는 말에 잠시 멈추고 놀란 표정으로 어느 교회이며, 어디에 있는 교회인지, 교인은 얼마나 모이는지, 얼마나 오래됐는지.... 준비하고 있었듯이 질문을 쏟아냈다. 단골 미용실에서도 있었던 질문들이었고, 대부분 사람이 나를 처음 만나 나누는 대화이기에 스스럼없이 대답했더니 본인 이야기를 맨 나중에 했다. 자신도 예전에 교회에 다녔는데 쉬다가 다시 교회를 찾고 있다고. 그리고 주일 예배에 한 번 참석하겠다고 약속했다. 머리를 다 깎을 즈음 대화를 마무리하면서 솔직하게 대답했다. “교회는 이곳저곳 옮겨 다니면 안 됩니다. 본인에게 맞는 교회를 찾아 꾸준히 교회 생활을 해야 믿음이 자라고 유익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알겠다고 대답하고 정말 주일에 일찍 교회에 와서 맨 뒷자리에서 예배를 드리고 갔다. 교회 뒤에 서서 성도들을 관리하는 아내에게 다음 주에 또 오겠다고 하고 갔다고 한다. 교회를 찾고 있는 그분에게 우리 교회가 잘 맞는 교회가 됐으면 좋겠다. 나는 그분과 약속을 했다. “뻗치는 머리지만 잘 다듬으면 멋집니다. 주일에 교회에 오셔서 확인하세요.” 그분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갔을까. 내 머리만 바라보고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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