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도시공사, 풍도의 자연 주제…‘섬, 풍도를 만나다’·‘기억 프로젝트 Ⅸ:풍도 몽유도’

안산시 대부도에서 서쪽 방향으로 24km 가량 떨어진 면적 1.84㎢ 규모의 ‘풍도’를 주제로 한 특별기획전이 안산어촌박물관에서 개최된다. 안산도시공사가 풍요로움을 간직한 섬 안산 풍도의 자연을 주제로 한 ‘섬, 풍도를 만나다’와 ‘기억 프로젝트 Ⅸ:풍도 몽유도’를 선보이고 있다. ‘섬, 풍도를 만나다’는 풍도와 도리도의 이주 문화, 풍년과 안녕을 기원하는 풍도 풍어제를 주제로 한 유물을 통해 풍도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와 함께 ‘기억프로젝트 Ⅸ:풍도몽유도’는 현대미술가 오제성 작가가 참여해 풍도의 생태와 민속문화를 현대미술로 재해석 했다. 풍도의 아름다운 자연과 민속 요소를 바탕으로 다양한 도자 작품을 전시해 관람객들에게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이번 특별기획전은 경기도와 안산시의 ‘박물관·미술관 지원 사업’을 통해 기획됐으며, 안산문화원의 ‘안산 풍도 대승배 띄우기 학술 조사(미래 무형유산 발굴 육성사업)’ 자료를 기반으로 꾸며졌다. 또 2025 박물관·미술관 주간사업 ‘뮤지엄X만나다’에 선정된 소장품 ‘목어가족'이 함께 전시돼 관심을 모으고 있으며, 전시장 곳곳에 숨어 있는 작품과 목어가족을 찾는 체험 활동과 함께 한국의 전통문화인 탈놀이에 사용되는 ‘어딩이 탈’을 직접 상상해서 그려보는 색다른 경험도 할 수 있다. 이진욱 안산도시공사 관광레저부장은 “척박한 자연 속에서도 풍요로운 문화를 일궈낸 풍도의 아름다움을 이번 전시를 통해 많은 분들께서 경험하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특별전시와 연계한 다채로운 이벤트를 마련해 안산의 문화유산을 알리는 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한편 풍도는 당초 남양군 대부면에 속했으나 지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부천군에 편입된 뒤 이어 1973년에는 옹진군에 편입됐다가 1994년 2단계 행정구역 조정에 따라 안산시로 편입된 서해안의 아름다운 보물섬이다.

“다시 무대로”… ‘경기인디뮤직페스티벌 2025’ 9월20일 화성서 개막

경기콘텐츠진흥원은 인디 음악 대표 축제인 ‘경기인디뮤직페스티벌 2025’(이하 인뮤페)가 오는 9월20일부터 21일까지 화성시 정조효공원에서 열린다고 22일 밝혔다. 인뮤페는 경기도와 화성시가 주최하고 경기콘텐츠진흥원이 주관하는 인디 음악 축제로, 공연 기회가 절실한 인디 뮤지션들에게 무대를 제공하고 관객에게는 새로운 음악과의 만남을 선사해왔다. 특히 인디신(Scene)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선후배 뮤지션들이 한자리에 모여 호흡하는 무대로 매년 팬들의 큰 기대를 받고 있다. 올해로 5회째를 맞는 인뮤페는 지난 2021년 코로나19 시기 비대면 공연으로 출발해, 짧은 시간 안에 경기도를 대표하는 가을 음악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올해는 화성시로 무대를 옮겨 더욱 다양한 관객층과 만날 예정이다. 지난 20일 공개된 티저 영상을 시작으로, 오는 26일에는 1차 라인업이 발표되며, 27일 오후 2시부터는 인터파크를 통해 얼리버드 티켓 판매가 진행된다. 티켓은 2일권 기준 50% 할인된 가격인 4만원으로, 한정 수량만 판매된다. 지난해 파주 임진각에서 열린 ‘인뮤페 2024’는 YB, 이찬혁, 김수철, 크라잉넛 등 다양한 뮤지션이 출연한 가운데, 이틀간 약 5천 명의 관객을 모으며 성황을 이뤘다. 특히 RE100 친환경 정책에 발맞춰 행사 전반이 친환경 페스티벌로 운영돼 주목을 받았다. 식음료는 모두 다회용기로 제공됐고, 종이팩 생수 배포, 텀블러 세척기 설치, 친환경 기념품 제공 등 환경 인식 확산을 위한 캠페인도 함께 진행됐다. 경콘진 관계자는 “올해 인뮤페는 더 많은 관객과 만나기 위해 콘텐츠와 운영 모두를 한층 강화했다”며 “공연뿐 아니라 지속가능한 축제로서의 역할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번 행사 관련 자세한 정보는 공식 누리집 또는 ‘경기뮤직’ 인스타그램 등 SNS 채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진정한 ‘나’를 찾는 여정…‘내 안의 나: 꿈의 단어들을 상상해요’展

관습이나 사회에서 형성된 ‘나’를 돌아보고, 진정한 자아와 마주하는 전시가 마련됐다. 안상철미술관은 올해 첫 전시로 김숙경·이지현 초대전 ‘내 안의 나: 꿈의 단어들을 상상해요’를 선보이고 있다. 김숙경, 이지현 작가는 한국화를 전공한 중견 여성 화가로, 전통 기법을 현대적 소재에 접목해 각자의 시각으로 개성 있는 화풍을 확립했다. 두 작가는 모두 일상의 삶에 기반을 두고 현실에서 이탈한 가상의 세계를 그린다. 기억 속의 어린 시절, 만화·동화 속 세계, 유토피아 등 진정한 자아를 실현할 이상향 같은 곳들이다. 이번 전시는 현실과 가상, 전통과 현대를 넘나들며 진정한 자아를 찾아 나서는 두 작가의 평면회화 34점을 펼쳐보인다. 먼저 김 작가는 여성의 시각으로 ‘내 안의 나’를 바라본다. 그는 전통 한국화의 재료인 분채를 사용해 여성 인물을 주로 그리는데, 작품에는 여성과 함께 다양한 꽃과 새, 나비, 실타래, 인형, 거울, 그릇 등의 모티프가 자주 등장한다. 꽃은 생명력을, 새와 나비는 자유로운 비상을, 실타래는 끊임없이 계속되는 삶을 비유하는 식이다. 작품 ‘가장 아름다운 시절’, ‘포스트우머니즘’이 대표적이다. 작품 속 여성들이 전하는 이야기는 작가 자신의 삶과 꿈에 관한 것이지만 여성 일반의 서사이기도 하다. 섬세하고 다채롭게 그려진 여인들은 동화 속 공주처럼 화사하고 아름답다. 현실에서 잊고 지낸 내 안의 나, 즉 이상적인 나의 모습이다. 김 작가의 작품은 여성의 시각으로 자아와 세상의 본질을 탐구하는 페미니즘의 관점을 반영하고 있다. 반면 이 작가는 대중문화의 이미지로 유쾌한 위로를 건넨다. 대중문화의 캐릭터를 이용해 현대의 트렌드와 욕망 사이의 접점을 탐색한다. 작품 ‘Amuse15’, ‘Amuse26’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도날드 덕 등 친숙한 만화영화의 주인공을 불러와 친숙한 만화영화의 주인공을 불러와 새로운 맥락에 놓기도 하고 베어브릭 이미지를 전통적 채색화 기법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베어브릭은 귀여운 곰의 얼굴과 블록 모양의 몸을 가진 수집용 장난감으로 오늘날의 ‘키덜트 문화’를 대표한다. 작가는 동심을 지닌 캐릭터를 재창조해 소유와 유희의 욕구를 일깨운다. 작품을 통해 관람자가 즐거움을 느끼고 치유와 위로를 받으며 내면의 순수한 자신과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안상철 미술관 관계자는 “두 작가의 이야기는 조용하지만 밝고 경쾌하다. 또 따뜻한 시선으로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해 편안함과 위로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관람객들이 전시를 통해 일상과 자아실현의 욕구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며 진정한 나를 찾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다음달 27일까지.

[2025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12. 용인 예아리박물관

생명의 기운이 충만한 유월의 숲길을 걸으며 죽음을 생각한다. 죽음은 나와 무관한 듯 살고 있지만 예고 없이 날아드는 부고를 받으면 우리 가까이에 있음을 화들짝 깨닫곤 한다. 장례를 주제로 한 박물관의 풍경이 궁금하다. 인생의 마지막 통과의례인 상례를 전시하는 예아리박물관에 들어선다. 피라미드를 연상시키는 황토 색깔의 건축물이 상상력을 자극한다. ■ 죽음 너머를 상상할 수 있을까 5월부터 시작된 ‘2025년 박물관미술관 지원사업 운남성 소수민족 생활문물전’은 11월 말까지 이어진다. 박물관 맞은편의 체험실에 전시된 중국 소수민족의 독특한 의상을 감상한다. 카페에서 시원한 차를 마시며 뜻밖의 전시물과 맞닥뜨린다. 나비 및 나방 표본과 하얀 목화와 누에고치다. 고치에 들어있던 누에 번데기가 날개를 가진 나방이 되는 ‘우화(羽化)’는 죽음에서의 부활처럼 신비롭다. 고치에서 1천400m에 달하는 0.02㎜의 가는 명주실을 뽑는 특별한 체험은 관람객들이 삶과 죽음을 생각하도록 만들어줬을 터다. 관람객들은 한동안 작가가 돼 자신만의 도자기 만들기에 몰입한다. 초벌을 거쳐 재벌된 도자기에 여러 색상의 유약으로 전시된 유물의 문양 및 형태를 그리고 즉석에서 구워 가는 체험은 인기가 많다. 흙으로 만든 컵이 전혀 다른 성질의 도자기로 변신하는 것도 죽음 그 너머의 세계를 상상하게 만든다. 피카소의 그림 판화 찍기와 소와 쥐를 비롯한 십이지신상 목판화 찍기 체험도 재미있을 것 같다. 중국의 소수민족은 어떤 옷을 입을까. 이족, 묘족, 동족, 요족, 납고족, 회족까지 여섯 민족의 유물을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묘족의 모자는 조선의 유생들이 썼던 유건과 비슷해서인지 정감이 간다. 전시된 옷의 모양과 색상이 화려할 뿐 아니라 문양도 추상적이다. 부츠처럼 생긴 신발도 손으로 직접 만든 수제품이라니 더욱 정겹다. 어깨 부분에 우리나라 전통 베갯잇 비슷한 장식을 단 옷도 시선을 끈다. 장신구의 색깔과 문양이 어쩌면 이처럼 화려하고 정교할까. 18세기 중엽에 제작된 여섯 폭의 화조 병풍은 쉽게 보기 힘든 유물이다. 입체적으로 조각한 새와 꽃이 살아있는 듯 섬세하다. ■ 독수리와 로켓을 타고 하늘로 떠나는 천장과 우주장 장례식의 참뜻은 사람이 죽어 좋은 곳으로 가는 것이니 이를 축복하고 기뻐해 주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가나의 장례문화가 그렇다. 1층 전시실에서 장례식을 축제처럼 즐기는 영상을 감상한다. 임권택 감독이 1996년 장례를 소재로 한 영화 제목도 ‘축제’였다. “아프리카 가나는 특이하고 유쾌한 장례문화를 보여주는 곳입니다. 장례를 엄숙한 분위기에서 치르는 것이 아니라 고인이 좋은 곳으로 간다는 믿음으로 마을 사람들이 장례식에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도 하지요.” 오정교 학예사의 설명을 들으며 장례를 축제로 만든 가나인의 삶을 긍정하는 태도에 공감한다. 도무지 관으로 보기 어려운 관이 여럿이다. 해설에 귀를 기울이니 비로소 의문이 풀린다. “가나 사람들은 고인을 좋은 관에 모시고 싶어 합니다. 고인이 평소 좋아했거나 가지고 싶어 했던 것을 관 모양으로 제작했지요.” 음악에 맞춰 죽은 자를 헹가래 치듯 들었다 놓았다 하고 다 함께 춤을 추기도 하는 충격적인 영상이 나온다. “1950년에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젊은 목수 카네 크웨이는 비행기를 한 번도 타보지 못한 할머니를 위해 비행기 모양의 관을 만들었습니다. 이후 그에게 농부는 양파 모양, 어부는 배 모양의 관을 제작해달라고 요청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이를 ‘아트관’이라 부릅니다.” 아트관 예술가로 국제적 명성을 얻은 파조의 원작 아트관 8개를 살펴본다. 사자, 코끼리, 독수리, 물고기, 비행기, 배, 자동차를 관으로 사용한 저들의 자유로운 상상력이 부럽다. 가마처럼 보이는 상여는 또 무엇일까. “이 좌식 상여는 일본 효고현 히메지에서 1900년대 초에 제작돼 1950년대까지 사용한 것입니다.” 시신을 운구할 때 살아있는 사람처럼 앉히기도 했던 일본의 문화가 재미있다. 세상에 알려진 장례 중에서 ‘천장(天葬)’ 혹은 ‘조장(鳥葬)’보다 놀라운 문화가 또 있을까. 티베트고원 일대에서 행해지는 조장은 고산지대여서 땔감을 구할 수 없어 화장을 하기도 어렵고 땅에 묻어도 쉽게 썩지 않기에 택한 방법이다. 독수리가 가득한 흑백사진을 살펴본다. “사자의 몸을 독수리가 뜯어먹게 하는 천장은 티베트와 윈난성, 쓰촨성에 살고 있는 장족의 장례법입니다. 독수리가 육신을 먹고 하늘로 오르게 한다고 믿었지요.” 흥미롭게도 미국, 일본, 스위스 등 선진국으로 불리는 7개국에서 사람의 유골을 로켓에 실어 우주로 날려 보내는 우주장(宇宙葬)을 시행하고 있다고 하니 천장과 닮은 꼴이다. ■ 한글 소설 구운몽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상여 2층 한국관은 볼거리가 더욱 풍성하다. 이야기는 자주 들었지만 정작 실물은 보기 어려운 칠성판과 마주한다. 일곱 개의 구멍 모양이 밤하늘의 북두칠성이다. 장난감처럼 보이는 자그마한 백자 그릇들은 무덤에 넣었던 부장품이다. 20세기 초에 제작한 100세가 넘은 전남 진도의 상여와 경주 최씨 상여를 가까이서 만나는 것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경주 최부자’로 유명한 경주 최씨의 상여는 실제로 사용했던 유물인데 특별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녹색 치마와 분홍 저고리를 입은 여인을 비롯해 상여 위에서 춤을 추는 있는 여인들은 누구일까. “서포 김만중이 어머니를 위해 지은 한글 소설 ‘구운몽’에 나오는 팔선녀들입니다. 서포는 효자로 유명한 분 아닙니까.” 또 한 분의 효자를 만난다. 바로 18세기 조선의 문예부흥을 주도한 제22대 정조대왕(1752~1800)이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천하의 명당인 화산 현륭원에 모시고 자급자족의 신도시 수원화성을 건설한 효행의 군주. 출판을 비롯한 기록문화를 활짝 꽃피운 정조대왕의 장례를 재현한 것은 아주 멋진 결정이다. “‘정조대왕국장도감의궤반차도’를 바탕으로 3년간 고증과 수작업을 거쳐 국장행렬을 재현했습니다. 행렬에는 20㎝ 크기의 토우 인물 1천384명, 말 341필, 가마 20채가 등장하지요.” 경기감사를 시작으로 이어지는 전체 행렬을 감상하려면 계속 자리를 옮겨 다녀야 한다. 행렬에 여러 가마가 등장한다. 왕의 상여인 ‘대여’와 ‘견여’를 비롯해 왕실 귀중품을 실어 나르는 ‘채여’와 제기를 실은 ‘요여’도 있으니 비교해 보면 재미있다. ■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짐작하듯이 장례를 주제로 한 박물관은 세계에서도 드물다.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삼백로에 있는 예아리박물관은 세계의 상장례 유물 5천여점을 보관 전시하는 전문박물관으로 2013년 4월 문을 열었다. “예아리는 예가 있는 아름다운 울타리라는 뜻이지요. 상장례(喪葬禮)문화를 북돋우고 효와 예를 체험하는 공간입니다.” 상장례문화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절차 및 예법이 시기별 지역별로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이처럼 특별한 장례 전문박물관은 언제 어떻게 세워졌을까. 설립자는 임호영 관장의 부친 고 임준 회장이다. 임 회장은 종합장례용품 회사인 ‘삼포실버드림’을 운영하며 1991년부터 국내외를 다니며 관련 유물과 자료를 수집한다. “설립자는 재산의 사회 환원 차원에서 세계의 상장례문화를 후대에 전하고자 했습니다. 예아리박물관은 경제성과 편의성을 좇으며 본래 의미가 퇴색·변질된 전통 상장례문화를 연구하고 그 참된 의미를 되살리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현대인은 너무 바쁘게 살아 죽음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래서일까. 우리 시대 어느 철학자는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죽음은 삶을 충실하게 살게 하는 원초적인 힘이다. 예아리박물관을 나오며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을 떠올린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김준영(다사리행복평생교육학교)

“프로와 아마추어, 함께 지역 미술 기록”…수원미술협회 ‘2025 수원시 미술단체 아카이브展’ [전시리뷰]

프로와 아마추어가 한데 모여 지역 예술에 의미 있는 발자취를 남겼다. 엘리트 코스를 밟고 현직에서 활동하는 프로 미술작가부터, 각자의 영역에서 분주히 생활하면서도 일상에서 창작 활동을 놓지 않는 아마추어까지. 나이도, 성별도, 사연도 각양각색이지만 미술을 사랑하는 만큼은 하나인 이들이 모여 지역 문화예술의 정체성을 더했다. 지난 15일 성황리에 막을 내린 수원미술협회 주관의 ‘2025 수원시 미술 단체 아카이브 展’은 수원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전문 미술 단체와 아마추어가 함께 어우러지는 교류전이었다. 수원미술협회는 지난 20여 년간 ‘수원시 미술 단체 연합전-따뜻한 동행 展’이란 이름으로 교류전을 이어왔는데, 올해 21회를 맞이한 전시는 ‘2025 수원시 미술 단체 아카이브 展’이란 새로운 이름으로 지역 미술의 흐름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공공의 의미로 확대 발전했다. 전시에는 총 24개 단체, 300여 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관(官)의 주도가 아닌 예술인 스스로가 기획하고 실행한 자발적인 성과다. 현장에는 목공예부터 수채화, 서예, 민화, 서양화 등 다양한 장르의 분야에서 활동하는 동아리 회원들의 작품을 통한 교류가 이뤄졌다. “‘따뜻한 동행’이란 이름의 연합전으로 오랜 세월 이어진 이번 아카이브 전시는 수많은 수원의 미술 단체들에 꿈과 희망의 존재였습니다.” 권청자 화백의 지도를 받는 ‘소망가득’(혜정전통민화작가회) 회원들은 전시의 참여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2006년 결성된 이들은 민화를 통해 서민의 삶과 정서와 소망을 되새기고, 전통문화를 이어가고자 노력하는 데 이번 전시를 통해 공동체 정신과 소박한 철학을 선보였다. 2021년에 결성된 ‘모닝어스’는 14명의 회원이 매주 목요일 모여 일상과 예술을 나누는 공동체다. 주로 직장인들로 구성된 이들은 코로나 시기에도 새벽 6시에 나와 그림을 그리고 출근할 정도로 예술에 대한 애정을 뿜어냈다. 그런가 하면 천원기 작가를 지도 강사로 하는 ‘광교2동 수채화클래스’ 회원들은 수채화를 통해 일상에서 예술의 감수성을 기르고 창작의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1990년부터 활동을 이어온 단체 역시 눈길을 사로잡았다. 수원문화원의 서양화 실기 강좌에 참여한 생활 미술인들로 구성된 ‘문미회’는 전문 작가를 배출하는 등 성과를 이루며 현재는 매주 목요일마다 즐겁게 그림을 그리는 순수미술 동아리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김대준 수원미술협회장은 “미술인과 미술의 변화를 기록하는 것이 협회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며 “공식으로 집계된 적 없는 지역의 미술 단체를 톺아보고, 그림을 전시하고, 도록으로 남기는 의미뿐만 아니라 수원에 어떤 장르의 단체와 생활예술인들이 분포돼 있는지를 파악해 다양한 정책 마련 등에도 활용될 수 있는 기반을 다졌다”고 밝혔다.

인천시 도시역사관, 광복 80주년 기념 ‘되찾은 조국에서 Smile again’ 작가전

인천시 인천도시역사관은 17일부터 광복 80주년을 기념하는 작가전 ‘되찾은 조국에서 Smile again’을 한다고 16일 밝혔다. 이번 전시는 미술인들이 참여해 도시의 이미지를 예술로 담아내는 ‘도시를 보는 작가전’의 하나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인천 출신 그래피티(graffiti) 작가 레오다브(LEODAV)의 작품을 통해 새로운 감각으로 광복의 환희와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마련했다. 1945년 8월15일은 일제의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된 날로, 우리 민족이 역사의 주인으로서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문이 열린 순간이다. 당시에 울려 퍼진 만세소리는 산천을 뒤덮었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그 환희의 이면에는 이름 없는 수많은 이들의 희생이 존재했다. ‘되찾은 조국에서 Smile again’ 전시는 조국의 광복을 위해 희생된 인물들을 통해 그날의 역사적 의미를 다시 되새기게 한다. 전시는 인천도시역사관 2층에 마련한 두 전시실에서 열린다. 1전시실인 아암홀에서는 일제감시카드 인물 가운데 인천 출신 11명을 축구선수로 재탄생시켜 광복의 기쁨과 환희를 축구장의 함성으로 표현했다. 2전시실인 소암홀에서는 레오다브 작가의 대표 작품을 전시한다. 웃음조차 마음 놓고 지을 수 없었던 암흑기를 지나 광복의 순간을 맞은 독립운동가들의 환한 미소를 인공지능(AI) 기술을 통해 영상으로 재현했다. 박진영 인천도시역사관장은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인천 출신 독립운동 관련 인물들을 새롭게 재해석하기 위해 레오다브 작가를 섭외했다”고 말했다. 이어 “인공지능 영상을 통해 웃음을 상상하기 어려웠던 독립운동가들의 밝은 미소를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포천에서 울리는 태평성대의 선율… 정기공연 18일 개최

포천시립민속예술단이 오는 18일 오후 7시30분, 반월아트홀 대극장에서 제22회 정기공연 ‘태평풍류(太平風流)’를 선보인다. 이번 공연은 나라와 백성의 평안과 안녕을 기원하는 태평성대(太平聖代)를 주제로, 전통 예술의 깊이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낸다. 아악곡의 정수인 ‘수제천’으로 막을 열고, ‘태평무’, ‘북두칠성’, ‘적벽가’, ‘설장구’, ‘고의 울림’ 등 다채로운 레퍼토리를 통해 전통의 미학과 에너지를 전한다. 특히 장구와 북의 리듬, 예인의 내공, 정갈한 풍류미가 어우러진 감동의 무대가 관객을 기다린다. 예술단은 이번 공연을 통해 예술의 공공성과 감동의 깊이를 시민들과 나누고, 전통 예술의 현대적 계승이라는 과제를 예술적 감성으로 풀어낼 계획이다. 이중효 포천문화관광재단 대표이사는 “깊이 있는 프로그램으로 시민들에게 감동과 자긍심을 전하고, 우리의 정체성을 되새기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공연은 포천문화관광재단 주최, 포천시 후원으로 진행되며, 5세 이상 시민 누구나 무료로 관람 가능하다. 예약은 포천문화관광재단 누리집 또는 네이버 예약 시스템을 통해 신청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유니온쳄버오케스트라, 평화의 공연 동두천서 펼친다

“전쟁으로 고통받고 있는 우크라이나에 하루 빨리 평화가 오기를 함께 기원해주세요.” 우크라이나 유니온쳄버오케스트라가 오는 18일 동두천 시민회관에서 무료공연을 한다. 우크라이나 평화기원 2025년 대한민국-우크라이나 국제교류음악제로 양국간 활발한 문화교류를 지원하고 있는 동양대학교(총장 최성해)가 주최한다. 또 대한민국과 우크라이나 국제교류 음악제 사업의 일환으로 한국국제예술교류협의회가 주관하며 동두천시와 부산여성실내악단, 주한우크라이나대사관, 문화원(부산), 부산여성실내악단이 후원한다. 유니온 쳄버 오케스트라(지휘자 김현국)는 2003년부터 대한민국-우크라이나 국제교류음악제에 참여한 우크라이나 우수 교향악단 ‘체르니우치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수석주자와 우수한 단원들로 구성된 실내악단이다. 2022년 전쟁 발발 후 우크라이나 평화의 사도로 동서유럽, 그리고 아시아, 한국 초청 연주 등 '세계평화기원 음악제'라는 주제로 세계 곳곳에서 음악으로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날 공연은 김현국 지휘자 아래 플륫 김성식, 소프라노 신선미·양라윤, 피아노 이상미의 협연으로 펼쳐진다. 쇼팽 피아노협주곡 2번, 벨라바르톡 루마니안댄스, 플륫을 위한 베르디 리골레토 환타지, 비발디 사계 중 여름 등의 연주를 통해 동유럽 정통 클래식 악단의 진수를 감상할 수 있다. 최성해 총장은 "활발한 문화적 교류를 통해 전쟁으로 고통받는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등 전세계에 평화가 깃들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한편, 동양대는 중국, 몽골,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네팔 등의 외국인 유학생 200여 명이 재학 중이다. 유학생을 위한 학내의 안정적인 생활환경 조성 및 다양한 유학생지원시스템 운영 등 외국 유학친화적인 글로벌 캠퍼스 조성에 힘쓰고 있다.

연기와 노래, 무예에 퀴즈까지…수원시립공연단 ‘알고나니 수원하다’

“역도의 반역 음모야 새삼 놀랄 것도 없지만, 왕궁의 호위가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가장 실력이 뛰어난 무사들을 뽑아 국왕의 호위 부대를 재편하라!” 통탄함과 분노가 서린 정조의 모습은 보는 이를 한껏 몰입하게 만들었다. ‘역적의 자식’이란 오명 속에 지존의 자리에 올랐지만, 한 번도 편히 잠자리에 들 날이 없었을 조선의 왕은 왕권을, 나라를, 백성을 위한 개혁을 거듭했다. “자 여기서 문제 나갑니다. 조선 후기 1793년(정조 17)에 왕권 강화를 위해 설치한 군영으로 도성을 중심으로 한 내영과, 이곳 수원 화성을 중심으로 한 외영으로 이뤄진 이 부대, 조선 최강의 부대. 이 군영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지난 10일 수원 제1야외음악당 연습실에서 펼쳐진 수원시립공연단의 여민동락(與民同樂) 퀴즈쇼 ‘알고 나니 수원~하다’의 리허설 현장은 신나는 노래와 연기, 웃음을 자아내는 퀴즈에 무예까지 곁들어진 ‘종합 선물 세트’와 같았다. 특히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무예24기 시범단이 눈앞에서 펼치는 무예들은 그 옛날 조선의 서적에서 튀어나온 듯 감동을 더했다. 40분 남짓의 공연에 정신없이 빠져들고 나면 머릿속엔 어느새 수원화성을 근원으로 부국강병을 꿈꾸며 조선의 개혁을 이끌었던 정조대왕의 유산이 남게 된다. 13일부터 정조테마공연장 어울무대에 오르는 수원문화재단·수원시립공연단 공동주관의 이번 공연은 수원시의 문화관광 활성화 전략의 하나로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공연 콘텐츠로 재구성했다. 조선 22대 임금 정조대왕이 품었던 공정한 나라, 부국강병의 꿈을 주제로 관객들은 무대를 통해 역사 퀴즈를 함께 풀어간다. 시원한 야외에서 야간에 펼쳐지는 이번 공연은 수원화성을 방문한 관람객과 시민들이 오가며 편안하게 무대를 즐기고 퀴즈쇼를 풀며 선물까지 챙길 수 있는 ‘재미’와 ‘유익함’을 동시에 선물한다. “안녕들 하셔요, 안녕들 하시지라. ‘여민동락’은 ‘백성과 즐거움을 함께하다’라는 뜻인 걸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 거고요. ‘알고 나니 수원~하다’라는 말은 모든 뜻과 이유를 알고 나니 참으로 속 시원하다는 말입니다.” 공연은 소리꾼의 유쾌한 인사로 문을 연다. 정조에게 수원이란 단순한 장소 그 이상의 의미였다. 그의 꿈이 아로새겨지고,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진찬연이 벌어졌으며 조선 최강의 군대 장용영(壯勇營)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1790년 정조의 명으로 규장각 검서관인 실학자 이덕무, 박제가와 장용영 소속 장교인 백동수 등이 군사의 무예 훈련을 위해 ‘무예도보통지’를 편찬했다. 국내 최초로 무예24기 시범단과 극단이 함께 창단한 수원시립공연단의 무예24기 단원들은 지상무예, 마상무예로 유명한데 이번 공연에선 이들이 펼치는 무예도보통지 속 무예까지 만나볼 수 있다. 외세에 흔들림 없는 조선, 백성을 위한 조선을 이 땅에 세우려고 했던 임금의 꿈과 그의 곁을 지킨 장용영의 군사들은 보는 이에게 감동을 전했다. 공연을 기획한 수원시립공연단의 권호성 예술감독은 ‘재미’와 ‘유익’ 두 가지를 전하고자 했음을 강조했다. 권 감독은 “수원화성에 놀러 온 많은 분이 과거 이곳에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역사적 배경을 알고 나면 도시가 더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었다”며 “정답을 몰라도 충분히 맞출 수 있도록 문제를 구성했다”고 말했다. 이어 “퀴즈를 풀다 보면 정조는 왜 신해통공 정책을 펼쳤고 장용영을 설치했는지 자연스레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연은 무료이며 6월 13~14일, 27~28일, 8월 8~9일과 22~23일, 9월 12~13일, 10월 10~11일 오후 7시에 만나볼 수 있다.

[2025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11. 안산 성호박물관

성호는 무엇이라 말씀하실까. 안산 성호박물관을 찾으며 생각에 잠긴다. 의대 진학을 목표로 7세부터 학원에 다니는 우리의 참담한 현실을 선생은 어떻게 진단하실까. 그 목적이 사람의 소중한 생명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단지 돈을 많이 벌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면 선생은 과연 무엇이라 대답하실까. 3천7편의 글이 실려 있는 ‘성호사설’을 펼쳐보면 성호의 대답을 짐작할 수 있다. 여섯 마리의 좀벌레를 뜻하는 ‘육두’라는 글에서 ‘노비제도’와 ‘과거제도’를 먼저 지적했던 사실을 떠올린다.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다산 정약용은 성호를 이렇게 노래한다. “학식이 넓고 깊은 성호 선생을 백대의 스승으로 나는 모시네.” ■ 청년 성호를 만나는 성호문화제 위대한 실학자 성호 이익(星湖 李瀷·1681~1763)을 기리는 성호박물관은 2002년 5월 안산시가 건립한 1종 전문 박물관이다. 성호박물관으로 가는 길은 여유롭게 산책하기에 좋다. 김홍도미술관으로 이어지는 성호공원에 있는 안산식물원이나 박물관 건너편에 있는 점성공원도 성호와 관련이 깊다. 성호박물관은 다양한 방식으로 관람객과 소통하고 있다. 예컨대 봄이면 입춘첩을 선물하고 사진을 찍어주고 꽃씨를 나눠준다. 매년 안산 성호공원에서 열리는 성호문화제 역시 재미있는 프로그램으로 시민을 불러들이고 있다.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1일까지 ‘제28회 성호문화제’가 열렸다. 행사 프로그램 가운데 ‘성호 할아버지와 함께하는 음악회’와 ‘청년 성호 지식 콘서트’가 있다. 할아버지 성호와 청년 성호를 함께 다루는 것이 흥미롭다. “그렇지요. 우리에게 익숙한 할아버지 성호 선생님이 아니라 고민하고 방황하며 여행을 떠나던 젊은 성호 선생님을 소개합니다.” 이수빈 학예연구사는 성호를 알리기 위해 궁리가 많다. 박물관 벽에 걸린 펼침막에 새긴 ‘고난, 유람, 유산기’와 ‘일상, 거인, 청년성호’라는 글귀가 상상력을 자극한다. ‘삼두회 체험’은 어떤 내용일까. 성호는 20대 청년 시절에 안산군 첨성리(안산시 일동)에 들어와 살면서 평생을 애민정신을 바탕으로 학문 연구에 몰두했다. 손수 닭을 기르고 농사를 지으며 나라가 부강해지고 백성의 생활이 넉넉해지는 개선책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실천적 지식인이다. 특히 그의 사민평등의 인간관은 크게 앞선 생각으로 평가된다. ■ 위대한 실학자 성호의 부드러운 숨결 2층 상설전시실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 성호의 일대기가 새겨져 있다. 성호의 한평생을 살펴보면서 그의 삶도 고난에 찬 삶이라는 사실을 문득 깨닫는다. 상설전시실 입구에 성호의 ‘수결’과 성호 선생의 흉상이 놓여 있다. ‘여주 이씨 성호 이익의 가계도’를 살펴본다. 역사책에서 만난 익숙한 이름이 여럿이다.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 정조대 명성을 떨친 이가환은 성호에게 직접 배운 제자들이기도 하다. 국가유산인 ‘천금물전(千金勿傳)’에는 어떤 사연이 담겨 있을까. 풀잎처럼 곡선으로 이어지는 글씨체 초서(草書)는 마치 추상화 같다. 과연 무슨 뜻을 담고 있을까. 흥미롭게도 성호 이익의 집안은 17세기를 대표하는 서예의 명문가다. 부친 매산 이하진(1628~1682)과 셋째 형 옥동 이서는 특히 유명하다. 이하진의 글씨 ‘청풍(淸風)’을 비롯해 선조들의 소중한 글씨를 책으로 만들어 보존한 후손들의 정성이 가득 느껴진다. 이하진이 남긴 서첩 천금물전은 ‘천금을 줘도 그 사람이 아니면 전하지 말라’는 뜻을 담고 있다. 성호의 셋째 형 옥동 이서(1662~1723)의 다양한 서체를 수록한 서첩도 주목해야 할 유물이다. 포천에 살았던 이서가 안산에서 어머님을 모시고 있는 아우 이익에게 보내는 편지도 눈길을 끈다. 중요민속문화재인 다섯 줄의 거문고는 아주 특별한 명품 유물이다. “마음의 번뇌를 씻어주는 데 거문고보다 나은 것이 없더라.” 옥동금을 비롯해 무려 일곱 개나 되는 이름을 가진 거문고의 뒷면에 새겨진 사연은 무엇일까. 금강산 만폭동에서 벼락을 맞아 고사한 오동나무를 거문고 장인 문현립에게 맡겨 만들었다는 흥미로운 사연과 감리금, 천지금, 벽력금, 군자금, 봉래금, 풍계금이란 이름을 가졌다는 놀라운 사실도 알려준다. 거문고 위에 전시한 반주 악보 ‘우조초삭대엽’도 소중한 유물이다. 한글로 가사와 악보를 새긴 사실이 무척 반갑다. ■ 모두가 안녕하길 성호 이익이 여러 조카에게 부친 편지에는 집안의 혼사에 관련된 궁금한 사항을 물어보고 있다. 성호가 이사문에게 1743년 9월6일에 보낸 편지에는 아들 이맹휴가 다시 관직에 나아간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조용한 곳을 택해 쉼 없이 독서하고 있느냐. 오직 열심히 공부하기를 바란다.” 독서를 열심히 하라는 아버지 성호의 당부가 절절하게 전달된다. 12각 소반에 음식이 놓여 있다. 자세히 보니 콩나물이 담긴 그릇도 보인다. “내가 근래에 삼두회(三豆會)를 마련했으니, 콩으로 죽을 쑤고 콩나물과 된장을 먹으며 친척들을 모아 환담하는 것이다. 우리같이 띠집에 살면서 생계를 이어나갈 전답이 없는 자를 위해 글을 지어 자손에게 경계한다.” 그 옆에 놓인 책이 ‘백언해(百諺解)’인데 성호를 비롯해 박지원, 정약용 등 여러 실학자의 글들을 뽑아 필사한 책이다. 이익이 우리나라 속담을 정리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동행한 문화관광해설사가 편지 내용을 풀이해 준다. “성호 선생님은 편지로 자신의 안위를 전하고 지인들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눈빛이 빛나고 얼굴이 맑은 초상 앞에 선다. 그러나 아쉽게도 성호 이익의 영정은 진본이 아니다. 1780년(정조 4년)에 처음 제작해 소중히 전해오던 영정은 1950년 6·25전쟁 때 불에 타 버렸다. “이 초상화는 성호의 후손인 이돈형이 주도해 성호 유상을 관리했던 사람의 기억과 종손 이삼환의 초상화를 참조해 1989년 다시 그린 작품입니다.” 성호의 초상을 그리면서 참고했다는 종손 이삼환(1729~1813)의 초상을 다시 살펴본다. ■ 아이와 어른이 어울리며 꿈을 펼치는 공간 성호박물관은 옛날 성호 이익의 ‘성호장(星湖莊)’이 있었던 자리, ‘점섬(占剡)’이라고도 불린 곳에 세웠다. 이익의 호 ‘성호(星湖)’는 근처에 있던 호수의 이름에서 비롯된 것이다. 둘째 형 이잠의 호 ‘섬계(剡溪)’와 손자 이구환의 호 ‘섬촌(剡村)’도 마찬가지다. 박물관에서 만난 한 권의 책에서 성호 이익 선생의 뜨거운 숨결을 느낀다. 가난한 이웃을 향한 선생의 갸륵한 마음을 편지에서 찾아낸다. 성호가 존경하고 사숙했던 이수광의 ‘지봉유설’과 유형원의 ‘반계수록’ 같은 문집과 성호의 영향을 크게 받았던 정약용의 ‘여유당전서’를 통해 성호의 사상사적 위치를 가늠해 본다. “소중한 유물을 안산시에 기증한 후손들이 있었기에 박물관을 설립할 수 있었지요. 고 이돈형 선생의 성호 이익의 유물 기증과 기탁은 박물관 설립의 바탕이었습니다.” 안산시는 이러한 박물관의 소장 자료를 바탕으로 성호학 연구 지원사업을 꾸준하게 펼쳐 성호학을 널리 전파하고 있다. 성호를 꾸준하게 공부하는 안산시민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은 무척 고무적이다. 대중적으로 전달하려는 박물관의 노력은 각종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박물관 지하 공간은 어린이 체험과 시민들의 학습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머리가 아니라 손으로 체험하는 어린이 대상 프로그램이 무척 다양하다. 성호사설 서문에 실린 저자의 바람이 뜻밖에도 너무나 소박하다. “지극히 천한 퇴비와 지푸라기라도 밭에서 곡식을 기르고 부엌에서 반찬을 만드는 데 쓰인다. 이 글을 잘 보면 어찌 백에 하나라도 쓸 만한 것이 없겠는가.” 그렇다. 위대한 고전도 자세히 읽고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옛사람의 낡은 소리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새겨 읽으면 영혼을 살찌우는 거름이 될 것이다. 박물관 너머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 잡은 선생의 묘소를 참배하며 선생의 맑고 깊은 눈빛을 떠올린다. 권산(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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