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벽화마을인가, 낙서마을인가/관리 못할 거면 모두 지워라

​벽화마을의 시초는 2008년이다. 부산 남구 문현동 산 23-1 일대였다. 도시재생사업의 하나로 이 마을에 벽화가 그려졌다. 사진을 찍는 외지인들이 찾았다. 점차 일반 관광객까지 몰렸다. 영화 촬영지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전국에 벽화마을 조성 붐이 일었다. 이 마을의 그 후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사실 10년을 못 가 무너졌다. 낙후 지역이었던 마을이 재개발로 결정되면서다. 이제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기억 너머 마을이다. 멀쩡한 아파트 벽면에 그림을 그리지는 않는다. 낙후됐거나 오래된 주택가가 캔버스다. 자연스레 재개발에 대한 수요가 큰 지역들이다. 머지않은 장래에 없어질 건물들이 대부분이다. 어차피 버려진 골목에 그림 한 번 그리는 성격이 강했다. 지자체로서는 그만큼 접근하기 좋은 사업이었다. 그래서 많은 벽화 마을이 생겼다. 너도나도 예산 들여 만들고 홍보했다. 그렇게 등장했던 벽화마을은 다 어떻게 됐을까. 본보가 몇 곳 봤다. 안양시 만안구 양화로 일대 마을이다. 담벼락에 그려진 그림은 형체도 없다. 페인트가 다 벗겨져 흉물스럽다. 녹물이 흘러내려 그림을 덮어 버렸다. 수원특례시 행궁동에도 벽화마을이 있다. 조성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곳이다. 눈살 찌푸리게 하기는 여기도 마찬가지다. 그림 일부의 페인트가 벗겨져 나갔다. 떨어진 페인트 조각들이 골목에 널려 있다. 행궁동은 전국에 소문난 명소다. 관리 안 된 벽화로 그 명성이 흠집 나고 있다. 지자체에 관리 문제를 물었다. 돌아온 답변이 이랬다. ‘벽화가 조성된 지 10년 전이라 그 당시 자료도 찾기 힘들고, 현재 담당자도 없다. 도시재생을 위한 일회성 사업이었기 때문에 관리 예산을 배정했던 적도 없는 것으로 안다.’ 불과 10년 전에 이뤄진 행정이다. 자료가 없어질 세월이 아니다. 담당자 바뀐다고 행정이 중단되는 것도 아니다. 도시재생은 지역을 살리는 복합 개발 행정이다. 요소 하나하나가 지속·포괄적으로 관리돼야 한다. 개인이 조성한 벽화마을이더라도 마찬가지다. 도시 미관을 지도·관리하는 것도 행정의 영역이다. 지도하고, 관리했어야 맞다. 그랬다면 저렇게까지 버려졌을 리 없다. 벽화마을이 아니라 차라리 낙서마을에 가깝잖나. 애초부터 잘못된 행정이긴 하다. 그렇다고 과거만 타박할 순 없다. 현재 행정이 해야 할 일이 분명 있다. 벽화마을의 실태부터 파악해야 한다. 없앨 벽화는 모두 정리해야 한다. 거의 대부분이 정리 대상일 것이다. 차제에 벽화마을 조성에 대한 절차를 정식화할 필요도 있다. 벽화마을 조성에 앞서 심의위원회를 거치는 등의 방법이다. 전문가와 시민, 동네 주민도 참여하면 더 좋다. 큰 예산이나 많은 인력이 들어가는 일도 아니잖나. 어떻게든 손대야 한다. 저 흉한 벽을 두고 볼 순 없잖은가.

[사설] 학교에 언어재활사 의무 배치 절실하다

의사소통이 어려운 언어장애를 겪는 학생들이 크게 늘었다. 특히 코로나19 유행 기간에 급증했다. 마스크 착용과 대면 접촉 제한으로 학생들이 의사소통할 기회가 줄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언어장애 학생은 매년 늘어나는데 이들을 도와줄 언어재활사는 턱없이 부족하다. 교육당국은 학교 언어재활사 배치가 의무사항이 아니라며 외면하고 있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전국 초·중·고 특수교육 대상자 가운데 언어장애 학생은 2만7천21명(특수학교 5천855명, 일반학교 2만1천166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2만3천966명보다 12.7% 늘었고, 2021년 1만9천102명과 비교하면 41.5% 증가했다.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통합학급)에 다니는 언어장애 학생은 2021년 1만4천440명에서 올해 46.6% 늘었다. 언어장애 학생 10명 중 8명이 일반학교에 다니는 셈이다. 최근 5년간 경기도내 특수교육 대상 학생 중 의사소통 장애를 가진 학생은 2018년 345명, 2019년 402명, 2020년 527명, 2021년 546명, 2022년 606명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이 때문에 2021년 743명이던 도내 언어재활 지원 학생은 2022년 4천223명으로 늘었다. 언어재활을 희망하는 학생이 4천명이 넘는데 도내에 배치된 언어재활사는 고작 4명이다. 언어재활사 1명당 8명만 재활을 받을 수 있어 도움받는 학생은 30여명뿐이다. 현재 언어재활사 규모는 언어장애 학생 증가세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일선학교 현장에는 언어재활사가 없다. 특수학교도 언어재활사 81명이 전국의 언어장애 학생 5천855명을 책임지고 있다. 특수학교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반학교는 더 열악하다. 학교 언어재활사는 의사소통, 읽기, 쓰기 등에 문제를 보이는 학생들을 발굴·진단하고 언어 치료를 담당한다. 언어재활이 필요한 학생들은 조기에 치료해야 한다. 이는 의사소통 문제를 넘어 학습, 교우 관계, 학교 생활 등 더 큰 문제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학교마다 언어재활사를 의무 배치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그러다 보니 교육당국의 무관심 속에 학생들이 방치되고 있다. 1950년대 이후부터 미국, 영국, 캐나다가 공립학교의 언어재활사 의무 배치 제도를 시행하는 것과 비교된다. 우리나라도 2021년 특수학교 또는 시·도 교육행정기관에 언어재활사를 두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발의된 바 있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언어장애 학생들이 제때 효율적인 지도를 받을 수 있게 언어재활사 의무 배치 등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사설] 몸 다치게 하는 노인 일자리는 복지 아니다

74세 할머니가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했다. 수십년간 운영하던 식당을 닫았다. 생계가 막막하던 할머니에게는 새로운 생계수단이었다. 복지관에서 소개해줘서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않아 물건을 옮기다 발목 골절상을 당했다. 일자리는커녕 평상시 활동까지 어렵게 됐다. 생계를 위한 일자리가 생계를 더 위협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마땅히 의지할 가족이나 경제력이 없다. 할머니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사고가 된 셈이다. 경기일보 기자가 확인한 사연만도 여러 건이다.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는 노인이 늘고 있다. 최근 5년간 경기도에서 노인 일자리에 참여한 노인이 38만778명이다. 해마다 그 수가 늘고 있다. 2018년 5만4천736명, 2019년 7만780명, 2020년 7만4천724명, 2021년 8만9천155명, 2022년 9만1천383명이다. 노인 일자리는 노인복지의 핵심이다. 경제적 지원이라는 측면 외에 근로기회 제공이라는 소중한 의미도 있다. 노인 인구가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우리다. 노인 일자리는 앞으로도 확대돼야 한다. 그런데 일자리 현장에서 안전대책은 충분치 못하다. 앞선 할머니의 사례처럼 일자리 현장에서 다치는 노인이 급증하고 있다. 최근 5년간 경기도에서 발생한 노인 일자리 안전사고는 1천25건이다. 2018년 140건에서 2022년 231건으로 늘었다. 이 중 사망자도 2명 있다. 사고 유형별로 보면 골절 56%, 타박상 12%, 염좌 6% 등이다. 전문가들은 노인 일자리 사업과 안전사고 예방은 동전의 앞·뒷면이라고 강조한다. 노인은 신체적으로 약하다. 안전사고 가능성도 그만큼 크다. 신체 건강한 노동자들의 경우와는 다른 수준의 보호장치가 필요하다. 그런데 현실이 따라주지 못한다. 정부와 지자체는 노인 일자리를 늘리는 데만 주력한다. 노인 일자리 참여자를 대상으로 하는 안전교육 규정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5시간 이상 안전교육이 전부다. 교육 이후엔 노인들 스스로 주의해야 한다. 담당 공무원들은 예산 부족을 호소한다. 정부가 지원하는 예산으로는 인건비 지급이 우선이라고 한다. 안전을 위한 조치에 쓸 돈이 없다는 얘기다. 정말 그럴까. 노인 일자리 사업 자체에 노인 안전사고 예산이 포함됐다고 해석해야 옳지 않나. 당연히 사용해야 할 안전사고 예방 예산을 인건비 지급에 모두 털어넣는 것은 아닐까. 노인에게 부상은 영구 질병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차라리 하지 않는 게 나을 뻔한 일자리가 돼선 안 된다. 빙판 길에서 교통안전원으로 일하는 노인, 언제든 넘어질 수 있다. 추운 새벽 대로변에서 휴지를 줍는 노인, 언제든 쓰러질 수 있다. 이들을 보는 시민들은 아슬아슬하다. 이 위험천만한 모습을 보면서 노인복지 천국이라고 말할 사람은 많지 않다. 노인 일자리 숫자를 늘리려고만 하지 말고, 노인 안전 장치 마련도 병행해야 한다. 그게 제대로 된 노인 복지다.

[사설] 샤인머스캣, 마구 심다 보니 위기 초래/포도 농가 공멸 막으려면 대책 토론해라

포도 샤인머스캣은 귀족 과일로 불렸다. 종전 품종에 비해 그만큼 혁신적이었다. 높은 당도와 섭취 편의성이 월등했다. 2014년 국내에서 생산 판매되기 시작했다. 소비자들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판매 가격도 그만큼 높았다. 포도 농가에는 기적의 품종이었다. 그랬던 샤인머스캣의 위상이 갑자기 무너지고 있다. 당도가 크게 떨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소비자 선택도 눈에 띄게 뜸해지고 있다. 소비가 줄고, 가격 떨어지고. 무슨 일이 있는 걸까. 본보 취재진이 심각한 현장을 둘러봤다. 11일 수원특례시의 한 전통시장 청과물 가게다. 판매 가격은 4㎏에 3만5천~4만5천원대다. 4~5년 전만 해도 8만~10만원대였다. 가게 입구에 눈에 띄는 문구가 있다. ‘당도 월등 보장’이라는 안내다. 뿐만 아니다. 사장이 손님들에게 일일이 설명한다. ‘도매시장에서 직접 먹어보고 맛있는 것만 골라왔다.’ 가격은 절반으로 떨어지고, 당도를 일일이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다. 취재하는 동안 판매된 것도 없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자료에 기초한 도매가격 변동을 보자. 가락시장 거래물품을 중심(2㎏)으로 2020년 3만5천56원이었다. 그게 정점이었다. 이후 2021년 3만2천931원, 2022년 2만7천334원, 올해 2만4천13원이다. 비슷한 기간 동안, 포도 농가에 큰 변화가 있었다. 2016년 이후 국내 재배 면적이 늘었다. 2018년에는 묘목 품귀현상도 발생했다. 기존 포도나무를 작파하고 너도나도 바꿨다. 새롭게 시작하는 농가도 많았다. 재배 면적은 2016년 278㏊였다. 이게 매년 급증해 2023년에는 6천576㏊로 늘었다. 전체 포도 농가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급격히 증가했다. 2016년 1.9%에서 2023년 44.4%나 됐다. 많은 양이 생산되니까 값이 싸지는 것은 당연하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맛있는 샤인머스캣을 싸게 먹을 수 있는 조건이 된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제품의 질, 즉 당도 자체가 나빠졌다는 것이다. 소비자, 전문가, 농가까지도 이 사실을 인정한다. 잘못된 재배 남발이다. 샤인머스캣이 식생할 수 있는 조건이 있다. 적당한 기후와 토양, 일조량 등이 맞아야 한다. 이 조건을 무시한 재배는 모양만 같을 뿐 사실상 다른 종류의 포도라고 봐야 한다. 2016년 이후 이런 농가가 급증했다. 키워선 안 되는 곳에서 마구 키우기 시작했다. 지금 시중에 나도는 당도 떨어지는 샤인머스캣이 그렇게 생산된 것이다. 포도 농가 내부에서도 이런 결과를 우려했었다. 다들 ‘올 것이 왔다’는 탄식을 쏟아낸다. 이렇게 된 이상 공론화해라. 까놓고 토론해라. 포도농가연합회, 재배 농가 대표, 지자체 또는 농업 단체가 머리를 맞대라. 안 그러면 기적의 귀족 과일이 전통적 포도 농가까지 씨를 말리는 재앙이 될 수 있다. 가벼이 듣지 마라.

[사설] 국회는 선거법 개정을 조속히 마무리해야

22대 국회의원 선거일이 5개월도 남지 않았다. 내달 12일부터는 내년 4월10일 선거에 출마할 후보자들로부터 예비등록을 받는다. 그러나 아직도 국회는 선거의 기본적인 경쟁 규칙을 규정하고 있는 선거법 개정을 하지 않아 선거에 출마할 후보자들은 물론 유권자들로부터 비판이 쇄도하고 있다. 현행 선거법에는 선거일 1년 전까지 선거구 획정을 비롯한 선거에 대한 기본적인 규칙을 정하도록 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회는 이런 법정 시한을 무시하고 있다. 현행 선거법은 지난 21대 총선에서 보는 바와 같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도’를 둬 ‘위성정당’이라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정당을 출현시켰는가 하면, 선거운동 방식이 현역만 유리하고 정치 신인에게는 불리한 내용으로 규정돼 있어 이에 대한 개정 요구가 정치권은 물론 시민단체 등에서 제기됐다. 이에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그동안 수차례에 걸친 공청회 등을 통해 어느 정도 개정 윤곽을 확정했다. 즉, 여야는 1개의 선거구에서 국회의원 1명을 선출하는 기존 소선거구제를 유지하고 3개 권역별로 비례대표를 뽑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로의 전환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러나 비례대표 의석수와 할당 방식에 대해 여야는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21대 총선에서 문제가 된 ‘위성정당’을 막기 위해 병립형을 주장하고, 또한 의석 수 축소를,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준연동형에 비례성과 대표성 강화를 위해 의석 수 증가를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여야 정당 간 이견에 대해 김진표 국회의장은 지난 9일 각 정당 지도부에 대해 속히 선거제 개편 관련 의견을 정리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늦어도 11월에는 선거법 개정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여야 정당은 선거법 개정 논의는 고사하고 ‘입법 폭거’, ‘탄핵’ 등을 외치면서 서로 정쟁만 하고 있어 선거법 개정은 언제할지 감감무소식이다. 이런 국회의 행태는 마땅히 지탄받아야 한다. 정치권에서는 “21대 국회 때와 똑같은 상황으로 간다”는 말이 흘러나온다. 21대 선거일 39일 전, 20대에는 42일 전에 여야가 선거법 개정에 겨우 합의했는데 이번 역시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선거에서 게임의 규칙은 민주성·공정성·대표성이 전제돼야 한다. 현재와 같이 현역 국회의원들에게 유리하고 정치 신인에게 불리하며, 꼼수 위성정당을 만드는 선거법으로 정치개혁은 안되기 때문에 국회는 속히 선거법 개정을 마무리해야 한다.

[사설] 김동연 “(정부 재정 운용) 중학교 수준”/도의회 국힘 무능이 초래한 혹평이다

경기도 확장재정이 토론됐다. 8일 경기도의회 본회의에서다. 국민의힘 도의원이 문제점을 지적했고 김동연 도지사가 답변했다. 2024년 예산은 총 36조원이다. 올해보다 6.9% 늘어나 역대 최대다. 정부·서울 예산은 다 줄었다. 그런 만큼 관심이 큰 사안이다. 경기도 확장재정을 향한 기대는 크다. 옮고 그름의 판단이 아니다.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던진 결단이다. 잘돼야 한다. 성공해야 한다. 그런 만큼 면밀한 분석과 철저한 견제도 필요하다. 그래서 봤는데 기대 이하다. 야당인 국민의힘이 나섰다. “내년 세수를 15조1천억원으로 설정했는데 장밋빛 미래, 긍정적 예측 아닌가”. 김 지사가 “통계와 분석을 통해 합리적으로 했다”고 답했다. 의원이 다시 “미래세대에 부담, 빚을 전가하는 것 아닌가”라고 따졌다. 김 지사는 “재정만이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답했다. 이런 질의도 있었다. “정치적 행보 아니냐”. 김 지사는 “(정부에) 충정에서 드리는 말”이라고 했다. 새롭지도, 철저하지도 않다. 김 지사도 요즘 윤석열 정부 재정기조를 비판하고 있다. 그 속에 있는 ‘김동연 방식’을 보자. ‘경제성장률 1.4% 전망, 소상공인 폐업 신청 50% 이상 증가, 중소기업 대출연체율 2배 증가’ 등을 전제한다. 확장재정의 성공 사례도 설명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 확장재정의 예다. 두 차례 추경과 수정 예산으로 6% 성장률을 이뤘다. 대표적 항목도 특정한다. ‘지역 화폐 예산 폐지’다. 이에 비하면 경기도의회의 질의는 너무 두루뭉실하다. 듣기 민망한 부분도 있었다. “돈을 풀겠다는 것은 재정 만능주의”라고 도의원이 따졌다. 그러자 김 지사가 “돈을 풀 때는 풀어야죠. 재정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해보세요”라고 훈계했다. 훈계 맞다. 중앙정부를 거론하며 비슷한 면박을 하는 듯한 대목도 있다. “중앙정부의 축소재정은 지금 경제 상황을 악화시킬 것”이라며 “중앙의 재정 운용은 중학교 수준”이라고 했다. 둘 다 적절한 답변은 아닌 듯싶다. 그렇다고 이런 표현에 의미를 둘 일은 아니다. 시급하고 중요한 건 경기도의회 수준이다. 경기도가 36조원의 공룡 예산을 넘겼다. 이걸 도의회, 특히 야당이 받았다. 철저한 분석과 구체적인 지적의 시간이다. 이런 견제가 있어야 경기도 재정이 건전해진다. 그런데 8일 질의는 그 기대를 전혀 충족시키지 못했다. ‘예산 전문가’ 도지사에 버거워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36조원은 엄청난 예산이다. 믿는 도민만큼이나 불안해하는 도민도 많다. 그들에게 어떻게 보였을까. ‘뭘 묻고 따졌는지’ 모를 질의로 비치지 않았을까.

[사설] 김포시 서울 편입, 예산·혜택 줄고 세금은 늘어난다는데

김포시의 서울 편입에 대해 이번엔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이 부정적 입장을 피력했다. 임 교육감은 8일 경기도의회에서 “간단히 제안해 후다닥 해결할 문제가 절대 아니다”라고 밝혔다. 임 교육감은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내는 등 보수로 분류되는 인물이어서 국민의힘 지도부는 또 타격을 입게 됐다. 앞서 국민의힘 소속 유정복 인천시장이 “국민 갈등과 혼란만 일으키는 정치쇼”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고, 여당 내 다른 광역단체장들의 비판도 잇따랐다. 이들의 공통된 의견은 행정체제 개편은 신중한 검토와 협의, 공론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총선용이든 아니든 국정을 책임지는 여당이 ‘아니면 말고’식으로 이슈화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태라는 지적이다. 김포시의 서울 편입이 일부 시민들에게 달콤한 제안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하나하나 따져보면 득보다 실이 많아 보인다. 일단 경기도 김포시에서 ‘서울시 김포구’로 바뀌면 규제가 강화된다. 수도권정비계획법 시행령에 따르면, 서울시는 전체가 과밀억제권역이고 김포시는 성장관리권역이다. 서울시로 편입될 경우 김포는 과밀억제권역으로 바뀌어 산업단지 신규 조성이 금지되고 대형 건축물 과밀 부담금이 거주지의 5~10% 부과된다. 또 서울시의 그린벨트 해제 잔여총량 고갈로 택지개발 등 신규사업이 어렵다. 재정도 크게 축소된다. 김포시는 9월 현재 인구가 48만명이고, 2023년도 예산 총액은 1조6천103억원이다. 인구 규모가 같은 서울 관악구는 올해 예산이 9천715억원이다. 예산이 가장 많은 강남구 예산은 1조2천847억원이다. 김포시와 3천300억원 정도 차이 난다. 예산이 줄면 사회복지예산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지난해 기준 김포시민의 1인당 복지예산은 122만2천원이다. 인구 규모가 비슷한 서울시 자치구의 1인당 사회복지 예산은 강동 106만원, 송파 82만7천원, 강남 83만8천원, 관악 114만9천원, 양천 110만1천원 등이다. 은평(139만4천원)과 노원(148만4천원)을 제외하고 김포보다 모두 낮다. 세금 혜택도 크게 줄어든다. 읍·면 지역은 등록면허세, 재산세, 양도소득세 등에서 다른 동 대비 감면 세율이 반영되지만 서울시로 편입되면 감면 세율이 없어져 세금이 늘어난다. 교육 혜택이 줄어 학생들도 피해를 입게 된다. 김포시의 읍·면 학생은 농어촌 대학입학 특례가 주어지는데 서울에 편입되면 특별전형에서 제외된다. 지난해 김포의 농어촌전형 합격생은 228명이었다. 서울시 편입은 자치·재정 권한 축소가 불가피하고, 주민 복지 혜택도 줄어든다. 조급하게 서울시 편입을 추진하기보다 주민에게 미칠 영향을 꼼꼼하게 따지고 또 따져봐야 한다.

[사설] 위기의 농촌 살리려면 ‘농협법 개정안’ 처리 서둘러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를 통과한 농협법 개정안이 6개월째 법사위에 계류돼 있다. 법사위를 거쳐 본회의에서 의결돼야 법 개정이 확정되는데 사실상 마지막 단계에 묶여 있는 상태다. 농협법 개정안은 총 20개의 법안이 하나로 합쳐진 대안 법안이다. 개정안에는 도시농협 도농상생기금 납부 의무화, 범농협 계열사가 부담하는 농업지원사업비 부과율 상한 상향(2.5%→5%), 도시농협의 농촌농협 생산 농산물 판매 의무화 등 농협중앙회와 금융지주 및 계열사, 농·축협이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비상임조합장 3선 제한, 회원조합 지원자금 투명성 확보, 회원조합 준법감시인 제도 도입 등 내부 통제 강화, 중앙회장 1회 연임 허용의 연임제 등도 담겨 있다. 농민단체들은 농업 발전과 농협의 역할 강화를 위해 필요한 내용들이 담긴 농협법 개정안이 하루빨리 통과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농축산연합회, 축산관련단체협의회, 한국종합농업단체협의회 등의 농민단체는 7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사위에서 ‘농협법 개정안’을 신속 처리할 것을 촉구했다. 이날 경기도내 11개 농업인단체도 조속한 처리를 촉구하는 건의문을 채택했다. 이들은 건의문에서 “국회 농해수위에서 오랜 기간 토론과 논의를 거쳐 법안을 마련했음에도 법사위에서 체계와 자구 심사 범위를 벗어난 문제 제기로 법안 처리가 지연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갈수록 농촌소멸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도시형 농협과 달리 농촌형 농협은 농업인구가 줄고 고령화 돼 수익성이 떨어지고 있다. 역대 정부마다 ‘돌아오는 농촌’ 구현을 외쳤지만 현실은 농촌의 고령화와 공동화가 가속화하고 있다. 농협의 조직 혁신 및 역할 강화로 어려움에 처한 농업인과 농촌의 고충을 개선하기 위해 농협법 개정안은 절실하다. 농촌농협들은 농협법 개정안에 담긴 도시농협의 도농상생사업비 납부 의무화, 농촌농협 농산물 판매 의무화, 농업지원사업비 상향 등이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농협중앙회장의 연임 허용 조항을 두고 일부 의원들의 이견으로 개정안 처리가 늦어지고 있다. 연임제는 제도적 폐해라기보다 개인의 문제다. 단임제가 반드시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연임제 때문에 농협 개혁의 본질이 흐려져선 안 된다. 농협의 주인은 농민 조합원이다. 농업인 지원 확대, 도농 간 불균형 해소 등 농촌의 현안 해결을 위해 농협의 책임과 역할을 강화하려면 농협법 개정안 처리를 서둘러야 한다. 농업·농촌·농촌농협에 활력소가 될 ‘농협법 개정안’이 지연되거나 폐기돼선 안 된다.

[사설] GTX 조기 개통·착공, 선거용이더라도 환영한다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A 노선이 내년 3월 말 조기 개통될 것 같다. 국토교통부가 윤석열 대통령이 있는 간담회에서 확인했다. GTX-A 수서~동탄 구간의 당초 개통 예정은 내년 4월이었다. 이보다 한 달 앞당기는 셈이다. GTX-A 노선은 ‘수도권 30분 생활권’을 구축하기 위한 국토부의 첫 번째 GTX 노선이다. 파주 운정역에서 서울 삼성역을 거쳐 화성 동탄역까지 82.1㎞ 구간을 잇는다. 해당 구간이 착공된 것은 2016년 10월이었다. 이번 발표는 사실상 대통령의 워딩을 통해 공개됐다. 6일 화성시 동탄역에서 ‘광역교통 국민간담회’가 열렸다. 국토부가 광역교통망 구축 추진 성과와 향후 계획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여기에 윤 대통령이 참석했고, 원희룡 국토부 장관도 함께했다. 윤 대통령은 대선 당시 공약했던 ‘수도권 30분 통행권’을 거론하며 “원래 2028년 이후 완공 예정이던 GTX A·B·C 노선을 속도감 있게 추진해 A 노선은 내년 3월 수서에서 동탄까지 먼저 개통한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는 또 기타 GTX 노선의 구상도 앞당길 계획도 공개됐다. GTX 연장 및 신설 노선 계획을 연말쯤 발표한다고 했다. 8호선 암사역~별내역 연장·신안산선·7호선 도봉산역~옥정역 연장 3개 사업을 내년부터 차례로 개통할 계획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출퇴근 지옥철’을 호소하는 참석자에게 “교통 인프라는 국민의 편의뿐만 아니라 전후방 효과가 매우 커 비용 대비 효과가 크기 때문에 재정을 아끼지 않고 과감하고 신속하게 투입하겠다”고 했다. GTX-A가 지나게 될 노선은 수서~성남~용인~동탄이다. 경기 남부권의 거점 도시가 다 해당한다. 여기에 지선으로 연결되는 거미줄 교통망이 있다. 경기 남부권 주민에는 명실 상부한 교통 혁명, 통근 혁명으로 통할 중대사다. 사실 아름아름 알려져온 조기 개통이긴 하다. 새삼스럽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인터넷 등을 중심으로 지역 호재로 전파되고 있다. 여기서 제기되는 정치적 해석은 있다. 총선을 앞둔 선심용 발표라는 시선이다. 일정이 묘하기는 하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비난하거나 트집 잡을 일은 아니라고 본다. 오랜 기간 진행해 오던 사업 아닌가. 혈세를 새로 쏟아붓는 일이 아니다. 개통까지 하루하루가 피해 아니었나. 그 피해의 크기와 시기를 줄이는 일이다. GTX 구상부터 노선까지 모두 여야의 의중을 반영했다. 정치권 모두가 한목소리로 공약해온 현안이다. 이런 SOC 속도전이 정치 때문이라면 그런 영향은 몇 번을 받아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동탄 주민, 용인·성남 주민 생각이 그렇다고 본다.

[사설] “메가 서울은 정치쇼”, 국힘 단체장들도 비판하고 있다

국민의힘 소속 유정복 인천시장이 “김포시의 서울시 편입 구상은 실현 불가능한 허상”이라며 “국민 갈등과 혼란만 일으키는 정치공학적인 접근이자 정치 쇼”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유 시장은 6일 인천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정을 책임지는 여당이 신중한 검토나 협의, 공론화 없이 ‘아니면 말고’식으로 이슈화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고 했다. 유 시장은 20년 가까이 김포에서 정치 활동을 한 인물이다. 1994년 관선 김포군수를 거쳐 1998~2002년 김포시장, 17·18·19대 3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행정안전부 장관도 했다. 여당 광역단체장인 유 시장의 비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역적 이해관계를 떠나, 선거용 ‘서울 확장론’이나 절차를 문제 삼은 것이다. 유 시장은 김포시 서울 편입이 현실적으로 이뤄질 수 없다고 소신 발언을 했다. “김포시를 서울시에 편입하기 위해서는 1년 이상 걸리는 행정 및 입법 절차가 필요하다. 국회에서 의원입법을 통해 법률 개정을 추진하는 것 또한 소수 여당이 단독으로 관철시킬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없다. 김포시의 서울 편입은 실현 불가능한 얘기로, 김포시민에게 기대감을 줬다가 혼란과 실망만 초래할 뿐이다.” 국힘은 김포시의 서울 편입을 위한 특별법 발의를 준비 중인데, 현재 의석 구조에서 원내 1당(168석)인 더불어민주당의 협조 없이 국민의힘(111석)만으로는 법 통과가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정치 ‘표퓰리즘’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나라와 국민을 생각한 정치를 해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총선 앞에 갑자기 튀어나온 구상이 서울 비대화, 수도 방위, 재정, 쓰레기 매립장, 교통망 등 여러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음을 우려한 것이다. ‘메가시티 서울’ 구상에 대해 국힘 소속 지자체장들의 반대가 잇따르고 있다. 충분한 사전 논의나 공감대 없이 수도권 표심을 겨냥한 총선용 정책으로 졸속 추진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김태흠 충남지사도 6일 기자회견을 열고 “지방 메가 시티가 우선”이라며 “지방 분권과 균형 발전의 청사진이 먼저 제시돼야 한다”고 했다. 앞서 이철우 경북지사는 “수도권 빨대 현상을 타파하고 균형 발전을 하려면 지방 도시를 더 확장해야 한다”고 했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이미 메가 시티가 된 서울을 더 비대화시키고 수도권 집중 심화만 초래하는 서울 확대는 시대에 역행하는 정책”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같은 당 소속 광역단체장과 정치인들이 ‘메가 서울’ 방안에 반대하는 이유를 간과해선 안 된다. 재차 강조하지만 신중한 검토와 공론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국민 혼란과 갈등만 초래하는 무책임한 일을 행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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