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사태로 두 동강이 난 나라를 보면서 조선이 망한 구한말시대가 떠오른다. 그때와 다를 게 하나도 없다. 무능한 지도층, 수구파와 개화파의 대립, 붕괴된 백성의 삶, 외교안보의 몰락, 열강의 각축 속에 고립무원의 신세였다. 한 가지 다른 것은 깨어 있는 국민이 그때보다는 훨씬 많다는 점이다. 우리의 지난 100년의 역사는 누가 건설했는가. 독립운동가, 625 남침을 막아낸 국군, 앞을 내다본 대통령, 그리고 무엇보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쟁취한 국민들이다. 지금 우리는 박근혜정권 말에 일어난 촛불운동의 뒤를 계승해 나가고 있다. 촛불의 정신은 정의, 공정, 염치였다. 촛불의 힘에 편승한 문재인정권이 이러한 촛불의 정신을 무너뜨리고 있다. 징비록은 류성룡이 쓴 임진왜란 보고서다. 글자 그대로 지난 잘못을 경계해 삼가한다는 뜻이다. 반성백서이자 실패 보고서다. 조선보다 더 예민하게 징비록을 주목한 것은 일본이었다. 징비록은 1695년 일본에서 간행된다. 초판 징비록의 서문에서 가이바라 에키켄은 이렇게 썼다. 조선인이 나약하게 빨리 패하고 무너진 것은 평소 전쟁을 잊고 살았기 때문이다. 1712년 일본에 갔던 조선통신사 일행은 오사카의 거리에서 징비록이 판매되는 모습을 보고 경악한다. 보고를 받은 숙종과 신하들은 조선의 책들이 일본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부산을 떨었다. 류성룡은 징비록을 남겼지만 조선은 이 책에서 전혀 배우지 않았다. 임진왜란이 끝난 지 30년도 안 돼 병자호란을 겪고 가렴주구의 세도정치를 거쳐 구한말 바보 같은 지도층 때문에 결국 나라는 망했다. 역사는 절대로 정의롭지 않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면 참극이 반복된다. 자기보다 저급한 자들의 지배를 받지 않기 위해서도 우리는 역사를 배워야 한다. 조선의 망국사를 공부하지 않으면 우리는 패배하고 패망한다. 망하는 법칙에는 하나의 오차도 없다. 지도자의 무능과 독선, 진영 간의 세력 대결, 헛된 공리공론, 국론 분열에 이은 파국이다. 조국 일가족의 부정과 불법, 위선과 뻔뻔함에 대한 국민의 분노는 이미 임계점을 넘었다. 이런 혼란과 갈등이 두 달 동안 이어지고 있는데도 문 대통령은 해임하지 않고 오히려 비호하고 있다. 광화문과 서초동에서 수십만의 국민이 길거리에 나와 내전상황을 방불케 하는데도 문 대통령은 국론 분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진정 국민의 뜻을 제대로 못 읽는 건지 아니면 애써 부인하는 것인지 어이가 없다. 지금 나타난 극심한 분열은 문 대통령의 잘못된 판단에서 촉발됐다.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사람을 지키려는 대통령의 아집 때문에 나라는 두 동강이 나고 갈등이 끝없이 깊어지고 있다. 문 대통령에게 대한민국은 무엇인가.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간단 말인가. 망국의 길은 먼 훗날의 얘기가 아니다.
사설(인천)
경기일보
2019-10-09 1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