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박수근, 이응노, 이중섭, 장욱진, 천경자 등 한국 근현대 미술의 거장 50인의 명작 80점이 한자리에 모였다. 고양문화재단의 ‘2023 한국근현대명화展 : 사시산색(四時山色) 그리고 바람’이 12월17일까지 고양아람누리 고양시립 아람미술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회는 기획부터 작품 섭외까지 꼬박 1년이 걸렸다. 고려대학교 미술관을 비롯한 14개 기관과 윤중식 작가의 유가족이 작품을 제공했다. 전시는 1부 ‘사시산색(四時山色)을 그리다’, 2부 ‘그리고 그리다’, 3부 ‘바람을 그리다’로 이어지며 한국 화단의 거장들이 바라본 자연과 예술, 삶이 펼쳐진다. 전시 중인 한국미술 거장들의 작품은 김환기의 ‘월광’을 비롯해 천경자가 신혼 초에 그린 ‘전설’, 이응노의 추상화 ‘창조’, 박수근의 ‘고목과 여인’, ‘복숭아’, 이중섭의 ‘바닷가의 아이들’, 두 어린이와 복숭아’, ‘꽃과 노란 어린이’ 등이다. 특히 ‘복숭아’는 무채색의 화가 박수근이 색채를 사용한 흔치 않은 작품으로 유명하다. 전시회를 기획한 정채경 큐레이터는 이숙자 작가의 세 작품 ‘청맥’, ‘황맥’, ‘백맥’을 가장 먼저 추천했다. ‘보리밭 작가’로 유명한 화가 이숙자는 고양시에서 활동 중인 원로작가다. 특히 작품 ‘황맥’은 1980년 중앙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고 리움미술관의 소장품이 됐다. 보리알 5만개에 하나하나 입체감을 줘 그려낸 역작이다. 리움과 6개월간 협의 끝에 이번 전시회에 내걸 수 있었다. 전시회를 찾은 이숙자 작가는 “오랜만에 내 작품을 볼 수 있게 돼 기쁘고 고맙다”고 전했다. 이건희 컬렉션에 포함된 오지호 작가의 ‘항구’와 BTS의 멤버 RM이 사랑하는 화가로 유명한 윤형근의 ‘번트엄머&울트라마린’도 만날 수 있다. 전시회를 찾은 김훈 소설가는 “귀한 전시회”라고 평했다. 그는 “고양시민이라면 꼭 봐야 한다. 서울에서 열렸다면 몇 십만 명이 왔을 것”이라며 “오늘이 다섯 번째인데 계속 보러 올 것”이라고 말했다. 관람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관람료는 일반 5천원, 청소년·어린이 4천원으로 고양시민은 50%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고양문화재단 김백기 예술경영본부장(대표이사 직무대행)은 “오랜 시간 공들여 준비한 이번 전시로 고양시민들에게 한국 근현대 명작들을 소개하게 돼 기쁘다”며 “특히 고양 원로작가들의 작품도 전시돼 의미가 더 크다”고 밝혔다.
돌과 캔버스에 백두대간의 생태, 삶과 역사를 표현해온 권용택 화백의 개인전 ‘산넘고 물건너’가 15일부터 30일까지 서울 아트스페이스 감에서 열린다. 1974년 수원문화원에서 첫 개인전을 열고 현실 참여 미술을 오랫동안 해온 권용택 화백은 환경·생태 문제에 관심을 갖고 평창 백석산 작업실 하오개 그림터에 정착했다. 산책과 등산을 하며 시간을 보내던 그는 정착 초기 백두대간 겹겹이 굽이치는 산과 깊은 산 속의 폭포, 또 크고 작은 계곡들을 만났다. 그 속에 기대어 살아가는 물까마귀와 고라니, 산양, 멧돼지, 수달, 황조롱이, 물까치, 어치 등 온갖 생명들의 아우성 역시 보고 들으며 이를 작업에 녹여냈다. 권 화백의 대표 작업이 된 돌작업은 이때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자연 속에서 살고 자라는 생명들을 직접 마주하면서 우연히 발길에 채인 돌을 재료 삼아 자연을 녹여내기 시작한 것. “권용택의 돌그림은 자연 이미지의 환영이기 보다 실제적인 자연에 기초한 실제의 존재,즉 실재가 된 것”이라고 밝힌 김성호 미술평론가의 평처럼 돌의 형태와 굴곡을 따라 백두대간 곳곳을 담아낸 그의 돌그림 작업은 권 화백만의 독특한 형식으로 평가 받고 있다. 캔버스 작업에서도 권 화백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역사적이거나 지나간 삶의 궤적을 표현한다. 수묵기법을 차용해 밑 작업을 한 후 아크릴이나 유화로 덧입히는 최근의 평면 회화 작업 역시 과거와 현재, 거시적인 것과 미시적인 것 등 중층적인 표현 방법으로 소통을 중시하는 작가의 생각을 드러낸다. 권 화백은 24번의 개인전과 2회의 부스 개인전, 광주비엔날레, 평창비엔날레, 강원국제 트리엔날레 등 500여회의 전시에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며 자연과 인간에 대한 독자적 회화철학을 지금까지 펼쳐 내고 있다. 박은충 스페이스 감 관장은 “생태계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으로 작가만의 생태미술이 체계화 됐다. 전시엔 이에 따른 내용과 형식을 조화롭게 진전 시키는 작가의 고민이 잘 드러나 있다”고 전했다.
㈔경기민예총이 제7회 2023평화통일장승축제 ‘100년의 기억, 만년의 희망’을 4일 오후 1시 이천시 독립운동의 산실 관동학교 앞마당에서 개최한다. 경기민예총 주최, 평화통일장승축제추진위원회 주관, 경기도·이천시 후원으로 열리는 이번 행사는 지난 2017년부터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장승제 아홉마당’ 축제로 시작해 매년 매향리, 대추리 등 평화와 생명을 상징하는 지역을 순회하는 경기도내 주요 문화예술축제로 자리매김해왔다. 올해 펼쳐지는 축제는 이천 독립운동 기념사업회와 협력해 이천시의 독립운동사를 재조명하고, 항일운동부터 분단 그리고 현 시점까지 100년을 돌아본다. 또 향후 100년과 그 이후를 내다보며 추구해야 할 가치를 모색하겠다는 차원에서 기획됐다. 식전 공연에서는 의정부민예총이 국악앙상블, 대금 및 스트릿댄스 등 장르를 넘나드는 무대로 포문을 연다. 이어지는 기념식에선 길놀이, 비나리, 시낭송, 고천문 낭독 및 소지 등이 수놓는 ‘장승축제 열림굿’이 이어지며, ‘장승세우기와 통일 비나리, 대동 한마당’을 통해 축제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추진위원장을 맡은 이덕규 ㈔경기민예총 이사장은 “이번 장승축제는 지난 독립운동의 물결을 들여다보며 선조들이 지켜낸 평화를 기념하고, 만년의 희망을 깎고 새긴 평화통일장승을 관동학교 옛 교정에 세우고 기리는 의미 있는 시간”이라며 “이천시민을 비롯한 많은 경기도민이 부담 없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교류의 장으로 마련한 만큼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편안히 즐기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경기도극단이 2023년 레퍼토리 시즌 마지막 작품인 연극 ‘맥베스’를 2~12일 경기아트센터 소극장에서 선보인다. 지난해 초연한 맥베스는 인간의 욕망과 두려움의 본질을 담아낸 작품으로,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가장 화려하고 잔혹한 작품으로 꼽힌다. 악의 유혹에 빠진 ‘맥베스’라는 인물을 통해 인간의 추악한 욕망, 그와 대결하는 고귀한 양심의 갈등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한태숙 감독이 연출하는 맥베스는 인간 내면을 치밀하게 파고들며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가 돋보이는 현대적인 연출을 시도해 새로운 맥베스를 창조했다. 원작의 중세 배경은 현대의 잔혹한 전쟁터로 옮겨가 기관총과 폭탄이 등장하고, 대량 살상의 전투가 벌어진다. 군사들이 자신의 욕망을 위해 총을 들고, 힘과 권력이 곧 정의가 되는 디스토피아를 만들어냈다. 시종일관 어둡고 연기가 자욱한 무대를 배경으로 해 산 자와 죽은 자, 환상 속 존재들이 뒤섞여 현대사회의 잔혹성과 부조리성을 나타냈다. 특히 고귀한 존재의 파멸을 통해 인간의 비극적 조건에 대해 연민과 동시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며, 인간 본성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을 던진다. 이번 한 감독의 맥베스는 원작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배경, 극적 상황, 캐릭터, 작품의 메시지 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동시대성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재창조했다는 평을 받는다. 주인공인 맥베스 역에는 호소력 있는 연기를 펼치는 경기도극단 수석단원 윤재웅이, 맥베스 부인 역은 초연과 동일하게 성여진이 맡아 작품을 이끈다. 또 경기도극단 단원들을 비롯한 21명의 배우들이 밀도 높은 호흡으로 열연해 무대를 풍성하게 채울 예정이다. 경기아트센터 관계자는 “한태숙 감독의 새로운 ‘맥베스’를 통해 배우들의 에너지,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로 인간의 욕망이 초래하는 파멸을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야금의 오늘과 내일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제11회 의정부국제가야금 축제’가 11월2일부터 4일까지 의정부예술의전당에서 열린다. 의정부국제가야금축제는 ‘가야금’에 대한 대중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며 다양한 계층과 문화를 아우르는 대표적인 전통예술축제다. 중요무형문화재 가야금 산조 및 병창보유자 문재숙 명인을 비롯한 다수의 명인이 참석한다. 또 가야금 경연대회가 열려 전통문화 계승발전은 물론 가야금 명인을 꿈꾸는 이들이 기량을 겨루고 이들의 꿈을 격려하는 자리도 마련된다. 축제는 2일 가야금산조 및 병창 보유자 문재숙 명인의 국가무형문화재 공개행사 ‘파랑’을 시작으로, 가야금의 전승 발전을 위한 ‘제11회 의정부가야금경연대회’, ‘이야기가 있는 명인들의 놀이터’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구성해 관객들과 만난다. ‘파랑’ 은 ‘김죽파류 가야금 산조’, 작곡가 나실인의 새롭고 풍성한 편곡이 더해진 ‘가야금병창 中 명기 명창’, 김은혜 작곡의 ‘가야금 삼중주와 타악을 위한 동행’의 초연을 선보이며 관객들에게 전통문화의 매력을 전달한다. ‘제11회 의정부가야금경연대회’는 전통문화 계승 발전과 저변확대를 위해 국악 전공자 또는 예비전공자들을 대상으로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 대학부, 일반부, 사제동행 등 6개 부문으로 나눠 진행된다. 지난해까지 ‘죽파 가야금경연대회’로 진행됐으나 올해부터 명칭을 바꾸고 기악 전 부문에 모든 유파의 지원이 가능하게 했다. 3일 예선에 이어 4일 단심제·본선 및 시상이 진행된다. 축제 마지막 날엔 문재숙 명인과 김정승 서울대 국악과 교수가 함께하는 ‘이야기가 있는 명인들의 놀이터’가 열린다. 이태백 명인이 장단을 맡아 ‘죽파제 문재숙 전승 민간 풍류’, 이종길 명인과 세피리의 고우석 명인의 ‘취태평지곡 단회상’, 김해숙 명인의 ‘최옥삼류 가야금 산조’, 황승옥 명인의 ‘가야금병창 춘향가 中 사랑가’를 연주한다. 공개행사 ‘파랑’과 이야기가 있는 ‘명인들의 놀이터’ 프로그램 관람권은 전석 무료로, 예약은 의정부문화재단 누리집에서 가능하다. 대회 참가 신청 및 자세한 축제 일정은 가야금산조진흥회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위)양점모 작가 _빛으로부터, 양점모 작가와 함께하는 ‘나만의 자개 작품 만들기’ (아래) 노인우 작가_Space 14 series, 최민경 작가_우리가 모르는 소비. 한국등잔박물관 제공 한국등잔박물관이 용인 지역을 중심으로 왕성한 작품활동을 펼치는 예술인을 소개하는 ‘지역작가 조명전’을 선보이고 있다. 전시에는 회화, 설치미술, 공예 분야에서 활동하는 노인우, 남윤승, 이영재, 양점모, 최민경 작가 등 5인이 함께 한다. 5인의 작가는 ‘빛’을 주제로 한 작품을 자신만의 시각과 생각을 담아 선보인다. ‘2023 박물관·미술관 지원사업’으로 지난 18일 개막한 이 전시는 지역 예술인과 지역민의 교류와 소통을 중점에 뒀다. 지역민을 대상으로 한 지역민 교육이 운영돼 양점모 작가와 함께하는 ‘나만의 자개 작품 만들기’, 최민경 작가와 함께하는 ‘업사이클링 브로치 제작’ 교육이 진행된다. 교육대상은 경기도 내 거주하는 성인으로 한국등잔박물관 누리집을 통해 신청할 수 있다. 김혜림 학예연구사는 “이번 지역민 교육은 전시에 참여한 참여 작가와의 만남을 통해 작가의 작품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소통하도록 기획됐다”며 “가족이 함께 방문해 지역의 다양한 작가와 작품을 만나길 바란다”고 전했다. 전시는 11월12일까지.
경기아트센터가 장애예술인의 한계와 장벽을 없애기 위한 ‘2023 경기도장애인음악제’를 30일 대극장에서 선보인다. 경기아트센터가 주최·주관하고 (사)한국음악협회가 주관하는 경기도장애인음악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음악적 소통을 통해 장애의 한계를 뛰어넘고 장애예술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마련됐다. 이번 공연에서는 상하이필하모닉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 장량이 무대에 선다. 또 성남시립교향악단과 경기도 장애인 연주자가 함께하는 장애인연합오케스트라를 필두로 세계적인 프리마돈나 소프라노 신영옥, 테너 최승원, 시각장애인 바이올리니스트 김종훈이 무대를 꾸밀 예정이다. 또 발달장애인 합창단인 하늘소리합창단(하늘소리사회적협동조합)도 함께 한다. 이들은 관객들에게 친숙한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아름다운 나라 등을 연주해 아름다운 선율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에게 희망을 전할 예정이다. 특히 한국장애인재단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재용 아나운서가 곡의 해설을 더해 관객들이 클래식 음악을 보다 쉽게 이해하고 접할 수 있도록 도울 예정이다. 이날 공연에서는 장애인 관람객을 위한 점자 프로그램북을 제공한다. 공연 전석은 선착순으로 진행되며, 문의처를 통해 관람 신청을 하면 된다. 자세한 내용은 경기아트센터와 한국음악협회 누리집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시극 ‘100년 예술제’가 오는 31일 오후 7시 노작홍사용문학관 산유화극장과 2일 오후 7시 수원 진아트센터에서 관객들과 만난다. 이번 공연은 수원과 화성 지역의 협력 사업으로 마련됐다. (사)수원민예총과 (사)화성작가회의가 협업으로 발간한 창작 단편소설집 ‘현대로 온 예술가들’을 바탕으로 진행되는 시극은 10명의 작가가 공동으로 집필한 대본을 기반으로 한다. 또 소설가, 동화작가, 시인 등 두 지역에서 활동하는 문인들이 배우로 직접 출연한다. 소설집 ‘현대로 온 예술가들’은 정수자, 김명철 등 수원과 화성에 거주하는 대표적 작가들이 집필에 참여했다. 소설에선 지난 100년 간 수원 또는 화성 출신이거나, 오래 거주하면서 문화예술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문화예술인들 중 나혜석, 홍사용, 홍난파, 이동안 등 10인을 선정해 현대로 소환해 20세 전후의 청춘으로 형상화한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총괄프로듀서로 사업을 추진한 박설희 (사)수원민예총 지부장은 “이런 방식의 협업이 지역에서 처음 시도되는 만큼, 소설집과 시극을 거친 예술인들의 열정과 혼이 시민들에게 어떻게 전달될지 설레는 마음”이라며 “밀접한 지리적·역사적 배경을 가진 수원시와 화성시의 작가들이 모여 모처럼 마련한 무대를 통해 수원과 화성 지역의 문화적 토양이 더욱 풍요로워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편 시극 ‘100년 예술제’ 공연을 관람하는 시민들에게는 창작소설집 ‘현대로 온 예술가들’이 증정된다.
“실로 그림을 그립니다. 50년대에는 실과 바늘로 기존 틀에서 벗어나는 작업을 했고, 60년대부터는 염색과 직조를 병행하며 ‘나’라는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열정적으로 임했습니다.” 내면의 기억과 풍경들을 ‘짜고, 엮고, 감아내며’ 손의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태피스트리’라는 개념이 없었던 50여년 전, 이신자는 실을 뽑고, 엮는 거칠지만 대담한 방식으로 그림을 그려나가 불모지였던 한국 섬유예술의 새 지평을 열었다. 반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그의 섬유예술 작품 90여점과 아카이브 30여점을 한 데 모은 전시 ‘이신자, 실로 그리다’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리고 있다. ‘1세대 섬유예술가’ 이신자의 대규모 회고전에선 그의 삶의 궤를 함께 한 한국 섬유예술의 발자취와 변천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실과 천을 다루는 일이 오래도록 여성의 몫이자 가사 노동으로 치부돼왔던 것에서 벗어나 섬유예술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다. 주로 자수·염색·매듭·직조 등이 독립적인 섬유미술로 작동하던 1950~60년대에 이신자는 천 위에 밑그림을 그리고 크레스파스를 칠하거나, 자수와 염색을 하나의 화면에 담아 섬유미술의 폭과 깊이를 확장했다. 이신자의 초기작인 ‘장생도’는 사슴, 학, 거북 등 가장 한국적인 정서인 십장생을 현대적인 기법으로 표현했다. 면을 촘촘히 메워가는 전통의 자수 방식에서 벗어나 실의 꼬임과 풀림을 응용하고, 천을 오려 붙이는 ‘아플리케’ 방식으로 작품의 입체감을 살렸다. 특히 1980년대 초 남편과 사별한 이신자는 ‘기구 Ⅰ’, ‘메아리’, ‘화합 Ⅰ’ 등에서 보이듯 강렬한 붉은색과 검은색의 대비를 통해 상실감과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표현했다. 1980년대 후반엔 곡선 형태를 띤 직조의 모양이 직선으로 변하고 푸른색이 더해져 차분함 속에서 강렬한 힘을 드러냈다. 전시장 한가운데 원형으로 자리한 초대형 작품 ‘한강, 서울의 맥’은 63빌딩 등 당시 서울의 전경을 19m 길이로 구현했다.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한 폭의 산수화처럼 보이지만 날실과 씨실의 교차로 건물과 나무 한 그루도 놓치지 않고 입체감을 부여했다. 당시 작가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1990년대 중반부터는 태피스트리에 금속을 고정한 작품이 주를 이룬다. 자연을 관조할 수 있는 하나의 창으로 금속 프레임을 배치해 3차원 세계를 구성, 자연에 대한 확장된 시각을 제공했다. ‘산의 정기’, ‘지평을 열며’ 등은 절제된 도상과 화면 분할, 강렬한 선의 반복으로 구상과 비구상이 공존하는 모습을 보인다.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 김진우씨(38)는 “작품의 뒤를 보면 색색의 실들이 매듭지어 지거나 꼬이면서 또 하나의 작품을 이뤄 신기했다”며 “실로 짠 그림이라는 ‘태피스트리’를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한 섬유예술가의 예술 여정을 되돌아볼 수 있어 전시의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지난 9월22일 개막한 전시는 내년 2월18일까지 이어진다.
(사)수원민예총은 31일부터 다음 달 5일까지 6일간 수원시립만석전시장 갤러리에서 ‘2023동네야놀자展―그대가 꽃’ 을 개최한다. 2005년부터 열린 ‘동네야놀자展’은 문화예술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건강한 문화생태계 견인을 지향하는 수원민예총의 정신을 보여주는 전시회다. 이번 전시는 수원시의 후원으로 진행되며 지역 예술인과 시민들이 작품을 통해 만나고 예술적 경험을 통해 시민들에게 위로와 응원을 보내는 전시다. 수원민예총 시각예술위원회의 작가 32명이 주축이 돼 수원민예총 문학위원회, 성인장애인 평생교육 한빛학교, 수원푸른교실·미술치료연구소와 수원다시서기노숙인종합지원센터가 함께한다. 생명의 소중함을 전달하는 작품과 수원민족미술인협회의 ‘올해의 작가’ 제6회 수상자인 조용상 작가의 단독 부스가 마련돼 예술적 완성도도 경험할 수 있다. 전시 개막식은 11월1일 오후5시에 열리며 자세한 사항은 수원민예총에 문의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