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기아차 이전 재검토했으면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이 고부가가치 위주로 생산라인을 개편하면서 부가가치가 떨어지는 일부 품목의 생산라인을 이미 해외나 타지역으로 이전했거나 이전을 추진중에 있어 수원지역 경제에 심각한 파장이 예상된다. 지난 97년 냉장고, 세탁기 등 백색가전 생산라인을 광주광역시로 이전한데 이어 전자레인지 생산라인도 올 4월 필리핀으로 이전하여 지역경제에 타격을 주었다. 더구나 삼성전자는 최근 노트북PC, 에어컨, 액정표시장치(LCD) 모듈 라인을 중국으로 옮기는 작업을 진행중이어서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이 변신을 꾀하는 것은 인건비 등 생산에서 경쟁력이 없어진 탓이지만 이렇게 생산 라인의 ‘脫수원’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수원사업장에서 생산직 근로자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삼성전자는 2005년말 준공을 목표로 건축중인 지하 5층, 지상 35층 규모의 디지털미디어연구소가 들어서면 7천여명의 연구인력이 추가로 배치돼 지역 경제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지만, 생산직 근로자가 극소수라는 점에서 삼성전자의 생산라인 이전을 동의하기가 심히 어렵다. 여기에다 기아자동차(기아차) 광명 소하리 공장마저 충남 서산으로 이전설이 나와 경기도 경제를 더욱 흔들고 있다. 만일 기아차가 이전할 경우 현재 15만평에 달하는 소하리 공장 부지가 그린벨트에 묶여 있어 부지 활용에 대한 대안이 없는데다 이 일대 상권 붕괴가 불보듯 뻔하다. 특히 광명 지역 유일의 대기업인 기아차가 이전한다면 지역 경제 파탄은 물론 광명지역의 베드타운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돼 심히 걱정스럽다.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이나 기아차의 광명공장이 자사 경영상 생산라인을 이전하려는 계획을 물리적으로 반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삼성전자 수원공장과 기아차 광명공장이 경기도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하는 점을 감안하여 국외나 타도로 모든 생산라인을 이전하는 문제에 대해 재검토가 있기를 바란다.

‘제발 얼굴만은 때리지 마세요’

경찰병원에 근무하는 젊은 치과의사가 시위 때 부상을 입고 수술차 들어오는 전·의경들의 비참한 광경을 보고 인터넷에 올린 글이 새삼 국민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있다. 얼마나 많은 전·의경들의 얼굴들을 꿰맸는지 살덩이 꿰매는 것도 무감각하다고 하면서 제발 전·의경들의 얼굴만은 때리지 말아 달라는 의사의 호소는 시위로 인하여 야기되는 각종 인명사고에 대하여 우리 사회가 얼마나 무감각한가를 나타내고 있다. 젊은 의사는 호소한다. 시위도 좋고 정부의 정책을 반대하는 것도 좋지만 왜 쇠파이프, 각목과 낫을 들고 죄없는 전·의경들을 때려 얼굴에 중상을 입혀 젊은이로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 있는 지 알 수 없다. 시위가 격렬한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상호간 피를 흘리면서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각목과 쇠파이프를 휘둘러 중상을 입히는 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했다. 최근 부안사태와 관련하여 시위가 격화된 지난 7월 이후 전·의경이 무려 400여명이 다쳤으며, 주민도 23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그동안 시위 때 사용되지 않았던 화염병이 난무하고 각종 각목과 쇠파이프가 등장하여 흡사 전쟁터와 같으니 이미 합법적 시위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군복무를 위하여 병역의무를 행하고 있는 전·의경이 무슨 죄가 있기에 시위주민들은 그렇게 악착같이 젊은이들의 얼굴을 때려 상처를 내고 있는지 묻고 싶다. 그들은 시위 주민들의 아들이고 동생이며 또한 조카들이다. 이제 시위문화는 변해야 된다. 지금은 폭력을 행사하지 않아도 이익을 표출할 수 있는 통로가 많다. 관련자들을 직접 만나서 대화도 할 수 있고 안되면 법에 호소할 수 있는 민주주의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힘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는 구태의연한 시위문화다. 정당한 과정과 절차를 통하여 자신들의 의견을 개진할 때 사회질서와 규범이 유지될 수 있으며, 동시에 자신에게도 이익이 되는 것이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불러 온다는 평범한 진리를 우리는 생활습관속에 가지고 있어야 된다. 선진국이 되기 위해선 더 이상 시위가 폭력화되지 않도록 시위문화부터 개선해야 할 시점이다.

11월 26일 경기만평, 당구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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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장외투쟁, 자승자박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조건부’란 것을 단 것은 궁색하다. 거부면 거부 지, 조건부 거부란 헌법에도 없는 소리다. 이는 자신의 측근비리를 두둔하는 게 아니라는 은유적 표현으로 보이나, 어떻든 자신의 측근비리 특검법안을 자신이 거부한 것은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보기좋은 건 아니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강경 일변도 대응 역시 보기가 좋지 않다. 2004년도 정부 예산안을 비롯, 정치개혁 입법안 등 갖가지 의안이 산적해 있다. 이런 마당에 국회 의사일정의 불참 선언은 무책임한 처사다. 의원직 일괄 사퇴라는 것도 책임있는 자세라 할 수 없다. 장외투쟁도 그렇다. 노동자들이 길 거리에 쏟아져 나오고, 농민들이 길 거리에 쏟아져 나온다. 여기에 국회의원들까지 길 거리에 쏟아져 나오는 것은 민생을 더 더욱 불안케 한다. 대통령 탄핵도 아직은 말할 일이 못된다.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뇌물설은 심증일 뿐 확증이 없다. 설사 증거가 드러난다 해도 대통령은 재임 중 형사 면책권을 갖는다. 직무상 불법행위와 관련된 탄핵사유가 충족된다고 보기엔 아직 미흡하다. 한나라당의 강경 투쟁은 오히려 무덤을 스스로 파는 결과가 되기 쉽다. 국회를 뛰쳐나온 국회의원들에게 박수를 칠 국민은 별로 있을 것 같지 않다. 장외투쟁이 장기화되면 대통령을 탓하든 국민들도 종국엔 한나라당을 더 원망하게 된다. 청와대는 이를 노리고 있을 가능성이 많다. 특검법안 거부정국이 처음엔 대통령에게 불리했던 게 역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헌법에 따라 거부권을 행사했으면 한나라당 역시 국회에서 헌법대로 재의에 붙이면 된다. 재의 통과의 전망이 투명하든 불투명하든 그런 것을 먼저 계산하는 것은 순리가 아니다. 설령 재의가 의결되지 않는다 해도, 재의에 부치지도 않고 장외로 가는 좌절보다는 정치적 의미가 더 강하다. 설령 실패한다 해도 특검법안의 폐기는 그래도 역시 청와대 부담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전근대적 방식의 강경투쟁만이 능사가 아니다. 한나라당은 이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 어떤 이유로든 정기국회에 우선할 수 있는 명분은 없다. 자승자박의 어리석음은 뭐고, 난국타개의 현명함은 뭣인가를 잘 헤아려야 할 것이다.

道 문예진흥委 운영 신중 기해야

전문예술법인·단체 지정 후 행정 및 재정 지원을 골자로 하는 경기도문화예술진흥조례가 최근 개정됨에 따라 ‘경기도문화예술진흥위원회’가 곧 탄생한다는 본보의 보도(25일자 11면)가 있었다. 전문예술법인·단체 지정시 기부금에 따른 세제 혜택이 주워지는 등 장점이 예상되지만 우려를 금할 수 없는 것은 이 위원회의 업무가 단순히 전문예술 법인과 단체를 지정, 심의하는 데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문화예술진흥에 관한 기본시책 및 계획 심의,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지역문화예술 육성, 기타 문화예술진흥에 관한 중요사항 등 방대한 재량을 갖고 있어 경기문화재단의 사업내역과 중복된 부분이 상당히 많을 뿐 아니라 집행과정에서 마찰이 야기될 것 같은 우려가 든다. 구성원도 문제점이 있다. 도문화관광국장, 도문화예술회관장, 도의회 문화여성공보위원, 예총도지회장, 문화원연합회도지회장 등 현 경기문화재단 이사회와 거의 중복돼 있어 위원회 구성의 당위성이 심히 의심스럽다. 더구나 도 문예진흥위원장은 행정1부지사이고 경기문화재단 이사장은 도지사다. 경기문화재단보다 상위개념에서 경기문화예술진흥을 논할 경우가 많다고 보아 직급상에도 격이 맞지 않는다. 올해 안으로 위원회가 구성되면 가장 우려되는 곳이 사업내용과 역할이 중복되는 경기문화재단이다. 위원회가 심의에 초점을 맞췄다고는 하나 도내 문화예술의 주요 정책을 심의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 이상 재단의 각종 사업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끼칠 것은 분명한 일이다. 특히 전문예술법인 단체가 선정될 경우 모든 평가와 추천이 도에서 이뤄지는 만큼 재단의 역할과 의미가 대폭 축소될 것이다. 만일 경기문화재단의 무용론까지 제기된다면 사태는 여간 심각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경기문화재단과 경기도문화예술회관, 경기도박물관 등 도내 문화예술계를 총괄하는 조직체계의 필요성도 대두된 만큼 도문예진흥위의 구성이 시사하는 의미가 없진 않다. 새롭게 부상되는 시민문화 단체 등의 지원창구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만큼 ‘옥상옥’이라는 의구심을 불식시키고 형평성을 조율하는 역할에 충실을 기할 수 있도록 사전 대책을 완비하기 바란다.

11월 25일 경기만평, 당구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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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모’의 돼지저금통 망령

돼지저금통 모금은 이미 법원의 유죄 판결이 난 바가 있다.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가 지난 대통령 선거에 이어 또 돼지저금통 배부에 나선 것은 법 질서의 위해로 보아 우려되는 바가 크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일반인을 상대로 돼지저금통을 배부하는 것은 위법이라는 것이 중앙선관위의 유권해석이다. 특정 단체가 특정 정당 입후보 예정자와 연계해 돼지저금통을 배부하는 것은 단속 대상이라는 것이 한결같은 선관위의 입장이다. 이러 한데도 ‘법에 저촉될 일이 없다’는 ‘노사모’측의 주장은 다분이 자의적이다. ‘정치적 공세에 밀려 불법인양 호도하고 있다’고 강변하기도 한다. ‘노사모’가 또 다시 돼지저금통 배부를 획책한 것은 내년 4월 총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우당인 열린우리당 입후보자를 지원하기 위한 것임은 다 알만한 일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에게 원내 안정세력을 제공하려는 충정의 ‘노사모’ 활동 방법이 법질서 문란을 바탕으로 하는 것은 심히 위험하다. 대통령이 강조하는 공명선거 다짐을 대통령 주변 사람들이 망치는 게 과연 대통령을 위한 길인 지 거듭 심사숙고가 있어야 한다. 선관위의 경고와 단속을 무시하면서 어거지로 벌리는 돼지저금통 모금이 결코 공명선거일 수는 없는 것이다. 대통령 사람들부터가 스스로 법을 어기면 다른 당이나 다른 입후보자의 불법을 말할 수 없는 사실을 ‘노사모’는 깊이 유념해야 한다. 돼지저금통 망령의 아집에서 해방되는 것도 용기임을 ‘노사모’ 사람들은 알아야 한다.

수능 재채점, 공신력 추락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오답 시비가 제기된 언어영역 17번 문제에 3·5번의 복수 정답을 인정키로 했으나 뒷처리가 매끄러울 지 의문이다. 우선 63만여명에 이르는 수험생 답안지의 재채점과 성적 재처리를 해야 한다. 평가원측은 차질없이 진행해 당초 예정일인 오는 12월2일 수험생들에게 성적을 통지하겠다고 밝혔다. 일단은 믿을 수 밖에 없지만, 만에 하나라도 기일을 어기면 2004학년도 대입 일정 자체가 뒤틀리게 된다. 1994년 수능 도입이래 처음 발생한 채점후 정답 변경의 초유사태는 수능에 대한 신뢰도를 크게 떨어뜨려 다른 문항까지 정답 시비가 날 공산이 없지 않다. 그렇지 않아도 사회탐구 영역의 문제 중에 복수정답 인정 요구가 제기되고 있는 판이다. 평가원측의 언어영역 17번 문항에 대한 복수정답 결정 경위는 다른 문항에 대한 이런 의문의 시비 가능성을 더욱 짙게 해준다.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정답 3번 외에 5번도 정답으로 인정하기로 결정했다’는 발표는 다른 문항에도 비슷한 예가 없지 않을 개연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평가원측은 비록 ‘다른 정답엔 이상이 없는 것으로 확인했다’고 강조했으나 객관적으로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 것인지는 역시 의문이다. 사설학원 강사를 출제위원으로 위촉한 사실이 밝혀져 물의를 빚더니, 정답 소동까지 일으킨 것은 참으로 유감이다.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이에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가를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정대 스님의 다비식

중도 여러 가지다. 산중에 칩거만하는 산승(山僧)있다. 불학(佛學)에 조예가 깊은 학승(學僧)이 있고, 참선지도를 일깨운 선승(禪僧)이 있다. 이런가 하면 집집마다 찾아 목탁을 두드리며 시주를 받는 탁발 수도승으로 걸승(乞僧)이 있다. 또 중은 중이지만 속태를 벗지못한 중으로 속승(俗僧)이 있다. 고매한 중으로는 걸출한 중을 일컫는 걸승(傑僧)이 있고, 학행이 드높은 고승(高僧)·성승(聖僧)이 있다. ‘부처의 눈엔 부처만 보이고 돼지의 눈엔 돼지만 보인다’고 했다. 이러므로 사물을 통해서 일깨움을 받는다면, 예컨대 하잘 것 없는 창녀를 통해 깨친 바가 있으면 창녀 또한 부처라는 것이다. 하물며 속인도 아닌 중을 두고 구분하는 것이 큰 속절이 있을까 마는 그래도 중 또한 중 나름인 것 같다. 이 시대 불교의 표상이었던 성철 스님이 고승이라면 얼마 전에 입적한 장좌불와 1일1식의 청화 스님은 선승인 것이다. 두 스님 다 또 산승이기도 하다. 이에 비해 지난 22일 화성 용주사에서 다비식을 가진 정대 스님은 동국학원 이사장 등을 맡아 현대 불교사에 큰 공을 세운 대표적인 학승이다. 조계종 총무원장인 법장 스님이 “산에 큰 나무가 쓰러진 것처럼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고 한 정대 스님의 법체도 이젠 사리만 남긴 채 한 줌 재로 돌아갔다. 불가에서는 이승을 떠나는 열반을 중인의 괴로움과 번뇌를 끊고 불생 불멸의 법성을 증험하는 해탈의 경지로 설명한다. 그러나 석가가 사라쌍수 아래서 열반한 열반도에도 제자들과 천룡 귀축 등이 통곡하는 모습이 그려진 것을 보면 이승에 남는 사람들로써는 역시 슬픔이 아닐 수 없다. 가면 또 온다던가, 큰 중이 가면 작은 중이 큰 중이 되어 중생을 제도하겠지만, 어떻든 큰 중들이 자꾸 떠나는 게 허전해진다. 비단 불교만이 아니다. 종교계의 거인들이 좀 더 장수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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