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가 나귀와 여우를 데리고 사냥을 했다. 많은 사냥을 한 후 사자가 수확을 나누라고 하였다. 나귀가 똑 같이 세 등분하여 나눴다. 사자가 노하여 나귀를 잡아 먹어 버린 후 여우더러 몫을 나누게 했다. 여우는 사냥한 것을 모두 모아 놓고 큰 덩어리를 사자의 몫으로 정하고 자기는 극히 작은 일부분을 차지했다. 사자가 좋아하며 여우를 칭찬하고 그런 지혜가 어디서 나왔느냐고 물었다. 여우는 “나귀의 신세가 가르쳐 준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얘기다. 가까운 사람의 불행이 나의 분별을 알게 한다는 것이지만 나귀가 눈치를 채고 알아서 사자 몫을 많게 만들었다면 죽임을 당하지는 않았을 터이다. 강한 자가 많은 몫을 차지하려는 것은 동물의 세계 뿐만이 아니다. 사람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니 더 하다. 이 점에서 인간은 늑대나 사자 등에 가까운 동물이다. 결코 토끼나 양이나 소와 같은 유순한 동물은 아니다. 이솝 이야기 속에는 여우 못지 않게 사자가 자주 나타난다. 그 다음이 늑대, 원숭이, 양, 산양, 당나귀, 개의 순서다. 다른 동물들의 출신지는 온대지방인데 사자만은 열대 지방이다. 그러나 옛날에는 지금의 아프리카 뿐만 아니라 동으로는 인도의 변경에서부터 페르시아를 거쳐 소아시아의 산중에 이른 흔적이 있다. ‘페르시아 전쟁지(戰爭誌)’에 “마케도니아에 라이온이 출몰하여 페르시아군의 낙타를 습격했다”고 한다. 이솝 이야기가 씌여진 것은 그리스의 고전기(古典記)를 지난 기원전 3세기 전후이다. 시민 사회가 한창 번영하던 시기에 비하여 사회상은 훨씬 거칠어져 있었다. 당시의 대표적 시인 메난드로스는 ‘무치(無恥)의 여신이 세상을 지배하고 폭력이 지성을 능욕한다’고 한탄했다. 그는 양민들이 모두 힘을 합쳐 폭력과 불법을 추방해야 한다고 선언했으나 그의 말은 세상 사람을 움직이지 못했다. 광범위한 세계에서 나귀를 잡아 먹고 여우를 자기편으로 삼는 사자와 같은 부류들이 많은 탓이다. 오늘날 인간사회는 더욱 심하다./임병호 논설위원
도도히 흐르는 역사(歷史)의 수레바퀴는 무상한 세월속에서 희비의 사연과 숱한 애환만을 남기고 참여 정부 원년인 2003년의 한해도 저물고 있다. 자연의 오묘함 속에서 푸르기만했던 은행나무 가로수 잎은 노랗게 물들고 삭풍에 한잎 두잎 떨어져 아무렇게나 보도에 나뒹굴며 뭇사람들 발에 밟히는 겨울의 문턱 입동(立冬)은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해마다 오고가는 계절의 마디인 입동이건만 올해의 입동은 왜 이다지도 차갑고 공허하고 싸늘하기만 할까. 이는 사람마다 각기 주워진 사연과 여건 속에서 고민하는 감정속에서 살아 남아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적자생존(適者生存) 직장을 잃은 가장의 고민, 신용불량자가 되고만 서민의 감정, 직장을 찾지 못한 채 실업에 헤매는 젊은이들의 분노, 벼랑끝에서 부도라는 사형선고를 받은 중소상인의 처참함, 높은 임금과 데모, 구인난 등 3중고에 시달리다 공장을 낯선 외국으로 옮겨 가야만 하는 중소기업인(中小企業人)의 애달픔, 지하철역을 전전해야만 하는 노숙자들의 처참함, 갈곳없이 내몰리는 외국 근로자들의 방황, 한·칠레 무역협정으로 설 땅을 잃은 농민들의 외침, 거리로 뛰쳐나와 화염병을 던져야만 하는 노사의 갈등, 불가사리처럼 돈을 마구 먹다가 교도소의 문턱을 전전하는 정치인의 군상들, 측근비리, 이라크파병, 재신임 등의 해법을 찾는 노무현 대통령의 무거운 구상과 현명한 결단…. 이 모두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뒷편에 도사린 아우성이자 애환이며 메아리다. 이 모두가 한데 엉켜 우리의 사회를 질식시키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적자생존을 외치고 있다. 30대 주부가 슈퍼에서 단돈 1만원짜리 쌀 1포대를 훔쳤다. 이를 생계성 범죄라고 한다. 장발장이 배가 고파 빵가게에서 빵한쪽을 훔쳐 먹다가 교도소에 갔다. 교도소에서 출소후 또다시 성당에서 은촛대를 훔치다가 경찰에 붙들려 갔는데 피해자 격으로 경찰에 나온 성당의 신부는 이 촛대는 내가 장발장에게 선물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성자(聖者)의 도량이 천당(天堂)과 지옥(地獄)을 드나드는 천사(天使)의 복음(福音)처럼 새삼 떠오른다. 그러나 이와같은 세상 뒷편의 신음과 메아리를 보며 세상 어느 한 구석도 성한 곳이 없다고 많은 사람들은 우려한다. 그 원인이 우리나라엔 정치인은 많지만 정치가(政治家)가 없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또 어느 사람은 국운(國運)의 비색 운명(運命) 같은 것 아니냐고도 한다. 또 어느 사람은 참여정부 원년의 치적 같은 것 아니냐고 혹평도 한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했던가. 영웅이 난세를 다스린다고 했던가. 전자든 후자든 떠나 2004년의 떠오르는 태양(太陽)은 우리 모두에게 희망(希望)의 비전을 안겨다 주는 뜨거운 빛으로 다가와주길 바랄 수 밖에 없다. 가난이 죄(罪)인가 참여정부는 처음 빈부의 격차를 해소하기 위하여 재분배 정책을 펴겠다고 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사회상은 중산층은 무너지고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 간의 갈등과 위화감의 골이 깊어가고 이에 대한 치유의 길마저 잃고 있는듯 하다. 특히 상대적 빈곤층의 증가는 우려할만 하다. 참으로 암담하다. 가난은 자랑거리는 못되지만 죄는 아니라고 했다. 가난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삶의 낙오속에서 헤매며 신음하다 속절없이 ‘엄마, 나 죽기 싫어요’ 하는 죄없는 어린 자식을 품에 안고 아파트 고층에서 몸을 던져야만 하는 처참한 외침을 우리는 다같이 들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의 외침은 그 한 여인, 한 사람만의 절규로 받아 들여서는 아니될 것이다. /안순록 대기자
얼마 전 가정성화에 관한 특별강론을 하면서 자녀는 세명은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적이 있었다. 모두가 하나 아니면 둘을 키우겠다는 현실에서 셋째를 낳으라는 신부의 말이 귀에 거슬렸는지 어떤 자매님이 벌떡 일어나 “신부님, 애를 낳아 줄테니 신부님이 키우세요”라는 말을 듣고는 할말을 잃어 버렸다. 교육비가 얼마인데 자식을 세명이나 키우라고 하는지 세상물정을 모르는 신부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명을 더 이상의 축복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세태(世態)…. 빈틈없이 준비했던 피임의 실패, 계획하지 않는 임신, 낙태로 점점 늘어나는 버려지는 생명들, 급기야 임신된 아기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등장하는 낙태약 시판에 대한 허용의 목소리, 삶의 질적 향상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의 개인적인 가치관과 이기적인 경제논리속에 희생되고 죽어가는 수많은 어린 영혼들…. 누군가는 ‘그만’이라고 외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 보지만, 신부의 빈약한 논리로 태산처럼 밀려오는 저 거센 파도를 어찌 막아야 하는지 고민에 휩쌓이게 된다. 늘어가는 자녀의 존재로 더이상 희생을 강요당하지 않겠다는 젊은이들의 이기적이고 편위주의적 사고방식에서 어떻게 생명을 지켜내야 하는 것인지 답답하기 그지 없다. 아들 하나, 딸 하나 오로지 맏이들로만 가득한 세상에서 이젠 교회가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욕심만으로 자녀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형제간의 우애와 사랑, 그리고 이해와 양보속에 희생을 배우는 가족이어야 하는데…. 내가 세상에 온 것은 “내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하게 하려고 왔다”(요한 10, 10)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셋째를 위해 작은 교회인 가정이 “생명의 성역”으로 제 모습을 찾도록 교회가 나서야 한다. “인류의 미래는 가정에 달려 있습니다.” (가정공동체 86항) /송영오.인덕원성당 주임신부
차량 밧데리가 방전돼 운행할 수 없다는 112신고를 종종 접하게 되는데 얼마 전에도 같은 내용의 112신고를 받고 신고현장에 출동하였다. 현장인 아파트 단지 주차장에 도착해 보니 신고자가 없어 한참을 찾다가 신고자에게 전화를 했다. 그러자 “정말 빨리 오시네요. 차는 그 곳에 있지만 저는 지금 다른 곳이에요. 한 20분 정도 걸려야 도착하겠네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도착하면 연락하라고 연락처를 일러 준 후 나중에 연락받고 차량 시동을 걸어 운행하게 해 준 적이 있다. 각종 사건 발생시 경찰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에 신속하게 출동함으로써 국민의 편안한 삶을 보장하기 위해 112범죄신고제도가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위 경험과 같이 범죄와 관련이 없고 위급하지 않으며(시골 한적한 곳이어서 인적이 없거나 야간이어서 범죄발생의 우려가 있으면 신고해야 하지만) 다른 기관(카센타, 보험회사 등)으로부터 충분히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경우라면 신고 시 한번 더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인원과 장비가 한정되어있는 경찰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시민생활의 안정을 꾀하기 위해서는 위와 같이 경찰관이 꼭 필요하지 않는 경우 신고 및 허위, 장난신고를 자제하여 꼭 필요한 사건에 경찰력이 동원되어 시민의 귀중한 생명과 재산을 보호받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협조를 요청한다. /안병욱·인천 중부경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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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오는 17일부터 불법체류 외국인노동자를 대대적으로 단속하겠다고 밝혔으나 수용 시설 태부족, 인권 침해로 인한 외교문제 발생 등 문제점이 너무 많다. 4년 이상 불법체류한 외국인노동자들이 추방을 앞두고 극심한 불안감과 절망에 사로 잡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상황도 그렇거니와 여러가지 무리가 뒤따를 것이 심히 우려된다. 오는 15일로 불법 체류 외국인 합법화 기간이 만료됨에 따라 법무부. 노동부·중소기업청, 경찰 및 해양경찰청 등 5개 부처가 공동으로 내년말까지 전국 50개 지역별로 경찰 및 출입국관리사무소 등 동향조사요원을 투입, 단속활동을 벌인다고 한다. 그러나 외국인노동자들 상당수가 “죽어도 한국에서 죽겠다”고 결심할 정도로 우리나라 거주에 강한 집착을 갖고 있는 게 문제다. 실제로 강제 출국을 앞둔 방글라데시인이 김포 공장에서 목매어 자살했고, 스리랑카인은 역구내로 진입하던 선로 위로 뛰어내려 전동차에 치어 숨졌다. 타국 땅에서 비참한 최후를 마친 고인들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빚어질 지 모르는 참상이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외국인노동자를 고용하는 중소기업체, 특히 경기지역 기업체의 반발도 간과하거나 과소평가할 수 없는 노릇이다. 숙련된 기능공으로 한국말을 잘 하는 4년 이상된 외국인노동자들을 모두 강제 추방하면 상당수 기업들이 문을 닫아야 할 것은 뻔한 일이다. 고용허가제 범위를 입국 4년 이상 불법체류자에게도 확대하여 이들이 기업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기업체들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인권단체와 외국인노동자들이 “4년 이상 불법체류자 전원 합법화와 단속·강제 추방 철회”를 요구하며 전국 각지에서 벌이고 있는 대규모 항의 농성도 심각한 상황이다. 현재 국내에는 체류확인을 하지 않은 3만7천여명과 4년 이상 불법체류 외국인 7만여명, 밀입국자 등 불법체류자가 12만명이 넘는다. 이들을 쫓고 또 쫓기는 대대적인 단속이 강행될 경우 심각한 사회 혼란 야기는 물론 우리 스스로 인권 후진국임을 증명하는 것이어서 조심스럽다. 대대적인 단속과 강제출국 방침이 능사는 아닌 것 같다. 당장 급한 수용시설 마련 등 신축성 있는 대책이 요구된다.
인천시의 보육지원 등을 내용으로 하는 출산장려 대책은 신선해 보인다. 여성의 사회참여 확대, 영·육아의 건전 육성에 기여가 클 것으로 판단된다. 맞벌이 부부를 위한 초등학교의 전일제 운영을 오후 4시30분에서 7시30분으로 늘리면서, 보육교사 등 외에 보육학 전공 대학생까지 처우개선과 더불어 참여시키는 인력 풀가동은 프로그램 활성화가 기대된다. 저출산의 사회경향은 인구정책 면에서 이미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출산 기피의 주원인이 육아문제로 특히 저소득층에서 더욱 심각하다. 이에 셋째 아이의 보육시설 이용엔 내년부터 매월 24만3천원씩을 다섯살 때까지 지원해주기로 한 것은 실로 괄목할만 하다. 다만 한가지 유념해야 할 것은 지원 대상의 범위다. 중산층 이상, 고소득층까지 지원할 필요는 없다. 이에 대해 어떤 기준이 있는 지 궁금하다. 또 하나 육아사업 복지는 이로 인해 다소간의 인구유입이 예견되지 않을 수 없다. 인천이 아이들 키우기가 좋은 도시로 평판이 나면 인근 지역의 인구가 인천으로 몰려들 수가 있다. 이러다 보면 1천11억3천100만원을 책정한 5개년 계획의 재원에 차질을 가져올 수도 있다. 그러나 당부코자 하는 것은 이같은 어려움이 있더라도 기왕 시작하는 보육지원사업은 지속돼야 한다는 사실이다. 원래 사회복지비 증가는 성장이 전제돼야 한다. 성장이 없는 복지비 증대는 재정악화의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래서 자치단체마다 내년도 예산안 편성은 긴축 예산으로 가고 있다. 경기의 장기 불황으로 세수가 여의치 않은데다가 중앙 의존재원 또한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사회복지비가 압박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복지사업을 꼽자면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만큼 많다. 하지만 인천시가 이번에 착안한 보육사업 이상으로 더 투자효율이 있는 복지사업은 별로 있을 것 같지 않다. 그 무엇보다 우선하여 지속돼야 한다고 보는 이유가 이에 있다. 자치단체의 자치행정은 주민복리의 증진이 으뜸이다. 이 점에서 전국의 자치단체 가운데서 맨 처음 창안한 인천시 보육사업은 행정의 배분가치가 높아 돋보인다. 아울러 인천시의 이런 여성정책사업을 다른 자치단체에서도 용단을 갖고 원용하므로써 파급되기를 바란다. 좋은 시책의 모방은 시행 과정에서 더 좋은 시책을 확대 재생산할 수 있는 것이 행정이다.
“내가 드릴 것은 피와 수고와 눈물과 땀밖에 없습니다.” 1940년 영국 총리가 된 직후의 의회 연설에서처럼 윈스턴 처칠(1871~1947)은 청중의 머리보다 가슴을 향해 직설적으로 호소했다. 처칠은 손수 연설문을 작성했는데 대면 접촉이 아닌 라디오 방송·의회 등을 통해 설득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전란의 폐허가 된 거리에서 눈물을 떨구거나 다우닝가(街) 10번지부터 의회까지 대중 앞을 자연스럽게 활보하는 친밀감이 밴 그의 행동은 대중과 소통했다. “히틀러가 지옥을 범한다면 악마한테라도 아양을 떨겠다”는, 미국의 참전을 이끌어낸 동맹전략과 승부욕도 제2차대전의 승인(勝因)이 됐다. 처칠은 미국이 참전을 결정하기도 전에 이를 확정된 사실인 양 ‘선의의 거짓말’을 남발해 국민들을 다독였다. 처칠의 위대함은 자신에게 거역할 줄 아는 부하를 기용해 그들의 조언을 따른 점이다. 그는 신중하고 열정적인 앨런브룩 참모총장을 중용, 생산적 긴장관계를 통해 자신의 단점을 메웠다. 처칠은 숙적 독일 총통 아돌프 히틀러(1889~1945)를 ‘피와 약탈에 굶주린 탐욕스런 괴수’로, 히틀러는 처칠을 ‘유대인 꼭두각시’로 방송과 공석에서 맹비난했다. 히틀러는 알콜중독자이자 만취 상태에서 총기 오발 사건을 일으켰던 측근을 경호대장으로 기용할 만큼 처신에 문제가 있더라도 자신의 충복에겐 관대했다. 그는 선전장관 괴벨스, 외무장관 리벤트로프, 친위대장 히믈러 등으로부터 개별 보고를 받는 일을 즐겼고 적대적 파벌을 이룬 부하들 간의 경쟁·적개심을 부추긴 뒤 중재자 역할을 함으로써 권위를 다졌다. 히틀러는 장악하려 들었고 처칠은 배분하려 했다. 히틀러는 권력욕에서 비롯된 ‘권위주의적 리더십’이었고 처칠은 성취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는 ‘영감을 주는 리더십’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해군 작전 실패의 책임자이자 1930년대 대부분을 야인으로 지낸 처칠과 1923년 뮌헨 ‘맥주집 반란사건’ 주모자로 1년여간 독방에 수감됐던 히틀러가 보여준 두 종류의 리더십은 지금도 지도자와 대중 모두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임병호 논설위원
대입 수험생들은 고민하는가, 고민해야 한다. 수능시험 성적이 발표되면 더더욱 고민할 것이다. 고민해야 한다. 명색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려하는 데 고민이 없을 수 없다. 마땅히 고민해야 한다. 이러한 고민은 전에도 있어왔다. 지금의 수험생들에게만 주어진 고민이 아니다. 나의 세대에도 책갈피에 코피를 흘리면서 고민한 경험이 있다. 대입 수험생들이여, 책임을 남에게 돌리지 말라, 예컨대 앞으로 발표될 수능시험 성적이 마음에 들건 안들건 간에 그것은 자신의 책임이다. 행여라도 성적이 마음에 들지않는 것을 남의 탓으로 돌려 엉뚱한 잘못을 저지르는 비겁한 순간적 착각이 있어선 안된다. 멀리 보아라, 그리고 크게 보아라. 수능시험은 새로운 인생의 출발일 뿐, 너의 인생의 결과는 아니다. 성적이 좋아서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은 물론 축복받을 일이다. 하지만 성적이 좋지 못해 마음먹은 대학에 가지 못하는 것은 고사하고, 아예 대학 진학조차 못한다 해도 너의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청춘을 마음껏 즐겨라, 청춘의 고민을 또 뼈저리게 경험하라, 이것이 청춘의 특권이다. 그러나 이건 알아야 한다. 거듭 말하지만 너의 인생은 너의 것이라는 사실이다. 부모가 아무리 대입 걱정을 하고, 자녀의 장래를 걱정한다 하여도 너의 인생을 대신하여 살 수는 없다. 부모를 탓하거나 남을 탓할 수 없는 이유가 이에 연유한다. 너희들도 장차 자식을 갖게되면 알겠지만, 그보다 앞서 바라는 것은 그 이 전에 이같은 인생의 지혜를 조금이나마 터득하는 것이 너희들 인생에 도움이 될 것으로 알기 때문이다. 부모와 자녀의 갈등, 기성세대와 잠재세대의 갈등, 이런 것은 너희들 부모, 아니 조상 대대로부터 있어온 인류발전의 성장동력이다. 신문화와 구문화의 갈등은 필연적 숙명인 것이 인류문화다. 신세대들이 새삼 이를 핑계 삼아 노력을 게을리 할 이유가 못된다. 생각해 보자, 너희들 세대의 20~30년 뒤의 생활문화는 어떤 변화를 가져 올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 감히 상상도 못한다. 분명한 것은 국제사회나 국내사회나 경쟁이 더욱 치열한다는 사실이다. 나는 너희들 나이 때 커서 무엇을 해먹고 살 것인가를 두고 밤새워 잠을 못이루면서 번민하곤 한 경험이 있다. 너희들 역시 이런 번민을 해야 한다. 돌파구는 있다. 너희들의 돌파구는 너희들 자신의 것이다. 기성세대에 대한 불만은 너희들 같은 잠재세대 특유의 몫이다. 마땅히 기성문화에 대한 불만을 갖는 것이 시대의 발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만을 불만으로 그치는 것은 불만할 자격이 없다. 도전 정신이 이래서 요구된다. 생각컨대 대학에 진학하는 수험생도 있을 것이고 진학이 좌절되는 수험생도 있을 것이다. 그 무엇이 어떻든, 그게 인생의 성적표는 아니다. 주어진 조건이 무엇인가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주어진 조건에 굴복하지 않는 도전 정신이다. 너는 무엇 때문에 사는가,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이상으로 더 우선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이리하여 저마다 자기 행복의 노력에 충실하는 노력이 결국은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수험생들이여, 대학에 가도 자기 인생의 좌표를 찾지 못하면 결코 행복할 수 없다. 반대로 대학에 못가도 자기 인생의 좌표만 찾으면 불행하려 해도 결코 불행할 수 없다. 젊은이 들이여, 조건이 큰 문제는 아니다. 젊은이다운 야심으로 주어진 조건을 극복하고자 하는 최선의 노력을 가지면 인생의 행복은 결국 너희들 것이다. 게으른자일 수록이 남을 탓하고 부지런한자일 수록이 자신을 탓한다. 미래의 희망을 미래의 주역인 모든 너희들에게 기대한다. /임양은 주필
한국사회에 부자는 있지만 귀족이 없다고 한다. 철학과 도덕성을 갖춘, 존경받는 계층이 없는 것이 오늘날의 한국이라는 말이다. 제대로 된 상류층이 없는 사회는 엔진 없는 자동차 같은 사회이고 희망이 없는 사회이다. 며칠 전 신문에서 돈더미 사진을 보고 모두들 깜짝 놀랐을 것이다. 洪모씨가 거래처에 회사어음을 발행하고 이를 지급한 것처럼 장부를 꾸며 90여억원을 횡령했고, 그 중 75억원을 7백50개의 다발로 쌓아둔 것이었다. 아버지가 천신만고 끝에 창업한 알토란같은 회사에서 그 아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빼내 아버지도, 회사도, 주주들도 속였을 뿐만 아니라 빌라를 금고 삼아 돈더미를 보관하는 어이없는 모습에 아연해질 따름이다. 그렇지만 재벌이 아닌데도 사회공동체에 앞장서 모범을 보인 분들이 있어 실낱같은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전 재산 1천3백5억원으로 교육문화재단을 설립하여 사회에 환원한 송금조 태양 회장이나 교통사고로 잃은 딸을 기리기 위해 사재 50억원을 털어 도서관을 건립하는 이상철 현진어패럴 사장은 가정이란 공간을 넘는 참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사가들은 로마제국이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제국을 유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을 ‘노블레스 오블리제’에서 찾지만 로마 귀족들만 ‘노블레스 오블리제’가 있었던 게 아니다. 조선의 양반들도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에는 목숨을 바쳐 의병으로 봉기했고 하급계층의 어려운 사람들과 아픔을 같이 했던 일이 수없이 많았다. 구례 운조루의 유씨 집안은 뒤주를 마련해두고 굶는 사람들이 망서림없이 퍼갈 수 있도록 했었고, 정읍의 김영채는 흉년이 들자 면 전체의 세금을 내주었으며, 안동의 김계행 집안, 영양의 이시명 집안, 순창의 양사보 집안, 안동의 학봉 집안도 나눔의 철학을 남몰래 실천해온 가문들이다. 이제 우리는 나눔은 부자만이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콩 한쪽도 나누어 먹는다는 말이 있듯이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 이제 추운 겨울을 맞는 시점에서 이런 마음이 합쳐져서 우리 사회도 좀더 훈훈해지길 기대해 본다. /소병주.경기도의회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