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의 돋보인 ‘육아’ 여성정책사업

인천시의 보육지원 등을 내용으로 하는 출산장려 대책은 신선해 보인다. 여성의 사회참여 확대, 영·육아의 건전 육성에 기여가 클 것으로 판단된다. 맞벌이 부부를 위한 초등학교의 전일제 운영을 오후 4시30분에서 7시30분으로 늘리면서, 보육교사 등 외에 보육학 전공 대학생까지 처우개선과 더불어 참여시키는 인력 풀가동은 프로그램 활성화가 기대된다. 저출산의 사회경향은 인구정책 면에서 이미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출산 기피의 주원인이 육아문제로 특히 저소득층에서 더욱 심각하다. 이에 셋째 아이의 보육시설 이용엔 내년부터 매월 24만3천원씩을 다섯살 때까지 지원해주기로 한 것은 실로 괄목할만 하다. 다만 한가지 유념해야 할 것은 지원 대상의 범위다. 중산층 이상, 고소득층까지 지원할 필요는 없다. 이에 대해 어떤 기준이 있는 지 궁금하다. 또 하나 육아사업 복지는 이로 인해 다소간의 인구유입이 예견되지 않을 수 없다. 인천이 아이들 키우기가 좋은 도시로 평판이 나면 인근 지역의 인구가 인천으로 몰려들 수가 있다. 이러다 보면 1천11억3천100만원을 책정한 5개년 계획의 재원에 차질을 가져올 수도 있다. 그러나 당부코자 하는 것은 이같은 어려움이 있더라도 기왕 시작하는 보육지원사업은 지속돼야 한다는 사실이다. 원래 사회복지비 증가는 성장이 전제돼야 한다. 성장이 없는 복지비 증대는 재정악화의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래서 자치단체마다 내년도 예산안 편성은 긴축 예산으로 가고 있다. 경기의 장기 불황으로 세수가 여의치 않은데다가 중앙 의존재원 또한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사회복지비가 압박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복지사업을 꼽자면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만큼 많다. 하지만 인천시가 이번에 착안한 보육사업 이상으로 더 투자효율이 있는 복지사업은 별로 있을 것 같지 않다. 그 무엇보다 우선하여 지속돼야 한다고 보는 이유가 이에 있다. 자치단체의 자치행정은 주민복리의 증진이 으뜸이다. 이 점에서 전국의 자치단체 가운데서 맨 처음 창안한 인천시 보육사업은 행정의 배분가치가 높아 돋보인다. 아울러 인천시의 이런 여성정책사업을 다른 자치단체에서도 용단을 갖고 원용하므로써 파급되기를 바란다. 좋은 시책의 모방은 시행 과정에서 더 좋은 시책을 확대 재생산할 수 있는 것이 행정이다.

리더십 두 종류

“내가 드릴 것은 피와 수고와 눈물과 땀밖에 없습니다.” 1940년 영국 총리가 된 직후의 의회 연설에서처럼 윈스턴 처칠(1871~1947)은 청중의 머리보다 가슴을 향해 직설적으로 호소했다. 처칠은 손수 연설문을 작성했는데 대면 접촉이 아닌 라디오 방송·의회 등을 통해 설득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전란의 폐허가 된 거리에서 눈물을 떨구거나 다우닝가(街) 10번지부터 의회까지 대중 앞을 자연스럽게 활보하는 친밀감이 밴 그의 행동은 대중과 소통했다. “히틀러가 지옥을 범한다면 악마한테라도 아양을 떨겠다”는, 미국의 참전을 이끌어낸 동맹전략과 승부욕도 제2차대전의 승인(勝因)이 됐다. 처칠은 미국이 참전을 결정하기도 전에 이를 확정된 사실인 양 ‘선의의 거짓말’을 남발해 국민들을 다독였다. 처칠의 위대함은 자신에게 거역할 줄 아는 부하를 기용해 그들의 조언을 따른 점이다. 그는 신중하고 열정적인 앨런브룩 참모총장을 중용, 생산적 긴장관계를 통해 자신의 단점을 메웠다. 처칠은 숙적 독일 총통 아돌프 히틀러(1889~1945)를 ‘피와 약탈에 굶주린 탐욕스런 괴수’로, 히틀러는 처칠을 ‘유대인 꼭두각시’로 방송과 공석에서 맹비난했다. 히틀러는 알콜중독자이자 만취 상태에서 총기 오발 사건을 일으켰던 측근을 경호대장으로 기용할 만큼 처신에 문제가 있더라도 자신의 충복에겐 관대했다. 그는 선전장관 괴벨스, 외무장관 리벤트로프, 친위대장 히믈러 등으로부터 개별 보고를 받는 일을 즐겼고 적대적 파벌을 이룬 부하들 간의 경쟁·적개심을 부추긴 뒤 중재자 역할을 함으로써 권위를 다졌다. 히틀러는 장악하려 들었고 처칠은 배분하려 했다. 히틀러는 권력욕에서 비롯된 ‘권위주의적 리더십’이었고 처칠은 성취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는 ‘영감을 주는 리더십’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해군 작전 실패의 책임자이자 1930년대 대부분을 야인으로 지낸 처칠과 1923년 뮌헨 ‘맥주집 반란사건’ 주모자로 1년여간 독방에 수감됐던 히틀러가 보여준 두 종류의 리더십은 지금도 지도자와 대중 모두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임병호 논설위원

목요칼럼/대입 수험생들에게!

대입 수험생들은 고민하는가, 고민해야 한다. 수능시험 성적이 발표되면 더더욱 고민할 것이다. 고민해야 한다. 명색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려하는 데 고민이 없을 수 없다. 마땅히 고민해야 한다. 이러한 고민은 전에도 있어왔다. 지금의 수험생들에게만 주어진 고민이 아니다. 나의 세대에도 책갈피에 코피를 흘리면서 고민한 경험이 있다. 대입 수험생들이여, 책임을 남에게 돌리지 말라, 예컨대 앞으로 발표될 수능시험 성적이 마음에 들건 안들건 간에 그것은 자신의 책임이다. 행여라도 성적이 마음에 들지않는 것을 남의 탓으로 돌려 엉뚱한 잘못을 저지르는 비겁한 순간적 착각이 있어선 안된다. 멀리 보아라, 그리고 크게 보아라. 수능시험은 새로운 인생의 출발일 뿐, 너의 인생의 결과는 아니다. 성적이 좋아서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은 물론 축복받을 일이다. 하지만 성적이 좋지 못해 마음먹은 대학에 가지 못하는 것은 고사하고, 아예 대학 진학조차 못한다 해도 너의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청춘을 마음껏 즐겨라, 청춘의 고민을 또 뼈저리게 경험하라, 이것이 청춘의 특권이다. 그러나 이건 알아야 한다. 거듭 말하지만 너의 인생은 너의 것이라는 사실이다. 부모가 아무리 대입 걱정을 하고, 자녀의 장래를 걱정한다 하여도 너의 인생을 대신하여 살 수는 없다. 부모를 탓하거나 남을 탓할 수 없는 이유가 이에 연유한다. 너희들도 장차 자식을 갖게되면 알겠지만, 그보다 앞서 바라는 것은 그 이 전에 이같은 인생의 지혜를 조금이나마 터득하는 것이 너희들 인생에 도움이 될 것으로 알기 때문이다. 부모와 자녀의 갈등, 기성세대와 잠재세대의 갈등, 이런 것은 너희들 부모, 아니 조상 대대로부터 있어온 인류발전의 성장동력이다. 신문화와 구문화의 갈등은 필연적 숙명인 것이 인류문화다. 신세대들이 새삼 이를 핑계 삼아 노력을 게을리 할 이유가 못된다. 생각해 보자, 너희들 세대의 20~30년 뒤의 생활문화는 어떤 변화를 가져 올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 감히 상상도 못한다. 분명한 것은 국제사회나 국내사회나 경쟁이 더욱 치열한다는 사실이다. 나는 너희들 나이 때 커서 무엇을 해먹고 살 것인가를 두고 밤새워 잠을 못이루면서 번민하곤 한 경험이 있다. 너희들 역시 이런 번민을 해야 한다. 돌파구는 있다. 너희들의 돌파구는 너희들 자신의 것이다. 기성세대에 대한 불만은 너희들 같은 잠재세대 특유의 몫이다. 마땅히 기성문화에 대한 불만을 갖는 것이 시대의 발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만을 불만으로 그치는 것은 불만할 자격이 없다. 도전 정신이 이래서 요구된다. 생각컨대 대학에 진학하는 수험생도 있을 것이고 진학이 좌절되는 수험생도 있을 것이다. 그 무엇이 어떻든, 그게 인생의 성적표는 아니다. 주어진 조건이 무엇인가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주어진 조건에 굴복하지 않는 도전 정신이다. 너는 무엇 때문에 사는가,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이상으로 더 우선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이리하여 저마다 자기 행복의 노력에 충실하는 노력이 결국은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수험생들이여, 대학에 가도 자기 인생의 좌표를 찾지 못하면 결코 행복할 수 없다. 반대로 대학에 못가도 자기 인생의 좌표만 찾으면 불행하려 해도 결코 불행할 수 없다. 젊은이 들이여, 조건이 큰 문제는 아니다. 젊은이다운 야심으로 주어진 조건을 극복하고자 하는 최선의 노력을 가지면 인생의 행복은 결국 너희들 것이다. 게으른자일 수록이 남을 탓하고 부지런한자일 수록이 자신을 탓한다. 미래의 희망을 미래의 주역인 모든 너희들에게 기대한다. /임양은 주필

천자춘추/'따뜻한' 나눔

한국사회에 부자는 있지만 귀족이 없다고 한다. 철학과 도덕성을 갖춘, 존경받는 계층이 없는 것이 오늘날의 한국이라는 말이다. 제대로 된 상류층이 없는 사회는 엔진 없는 자동차 같은 사회이고 희망이 없는 사회이다. 며칠 전 신문에서 돈더미 사진을 보고 모두들 깜짝 놀랐을 것이다. 洪모씨가 거래처에 회사어음을 발행하고 이를 지급한 것처럼 장부를 꾸며 90여억원을 횡령했고, 그 중 75억원을 7백50개의 다발로 쌓아둔 것이었다. 아버지가 천신만고 끝에 창업한 알토란같은 회사에서 그 아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빼내 아버지도, 회사도, 주주들도 속였을 뿐만 아니라 빌라를 금고 삼아 돈더미를 보관하는 어이없는 모습에 아연해질 따름이다. 그렇지만 재벌이 아닌데도 사회공동체에 앞장서 모범을 보인 분들이 있어 실낱같은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전 재산 1천3백5억원으로 교육문화재단을 설립하여 사회에 환원한 송금조 태양 회장이나 교통사고로 잃은 딸을 기리기 위해 사재 50억원을 털어 도서관을 건립하는 이상철 현진어패럴 사장은 가정이란 공간을 넘는 참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사가들은 로마제국이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제국을 유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을 ‘노블레스 오블리제’에서 찾지만 로마 귀족들만 ‘노블레스 오블리제’가 있었던 게 아니다. 조선의 양반들도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에는 목숨을 바쳐 의병으로 봉기했고 하급계층의 어려운 사람들과 아픔을 같이 했던 일이 수없이 많았다. 구례 운조루의 유씨 집안은 뒤주를 마련해두고 굶는 사람들이 망서림없이 퍼갈 수 있도록 했었고, 정읍의 김영채는 흉년이 들자 면 전체의 세금을 내주었으며, 안동의 김계행 집안, 영양의 이시명 집안, 순창의 양사보 집안, 안동의 학봉 집안도 나눔의 철학을 남몰래 실천해온 가문들이다. 이제 우리는 나눔은 부자만이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콩 한쪽도 나누어 먹는다는 말이 있듯이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 이제 추운 겨울을 맞는 시점에서 이런 마음이 합쳐져서 우리 사회도 좀더 훈훈해지길 기대해 본다. /소병주.경기도의회 사무처장

독자투고/'순찰지구대' 적극적 주민 홍보를...

최근 파출소단위 체제에서 갈수록 흉폭해져가는 조직범죄와 다중범죄에 대처하기 위해 지역경찰제도인 순찰지구대체제로 바뀐지 3개월여가 경과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지역주민들의 순찰지구대에 홍보가 부족하여 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신고를 하기 위해 관내주민들이 순찰지구대로 전화를 해서 어디어디 지구대라고 응대하면 전화를 그냥 끊어버리거나 재차 파출소가 맞냐고 묻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이에 대하여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간단히 순찰지구대체계에 대해 소개하자면, 한 순찰지구대체제는 보통3-4개의 파출소를 묶어 1개의 파출소를 선정하여 중심파출소인 순찰지구대로 운영하고 있고, 순찰지구대 이외의 나머지 2개 파출소는 치안센타로 변형하여 민원담당관 1명을 두어 월-금(09:00-23:00), 토요일(09:00-19:00), 이외는 휴무를 하고 민원상담 및 민원처리 등의 업무를 하고 있다. 이러한 순찰지구대의 지속적인 홍보부족으로 인해 야간이나 휴무일 등에 치안센타를 찾았다가 문이 잠겨있는 것을 확인하고 발길을 돌리는 사례가 있다. 관계당국인 경찰청 이하 기관과 이러한 언론매체 등에서도 순찰지구대체제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주민들의 불편을 줄이는데 노력을 해야할 것이다. /허성철·의정부경찰서

11월 13일 경기만평, 당구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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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대학가, 취업대책을

요즈음 대학캠퍼스가 초겨울만큼이나 음산하다. 특히 졸업을 얼마 앞둔 4학년 학생들은 취업을 하지 못하여 더욱 우울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도내에 있는 대학도서관은 취업을 앞둔 4학년생들이 수험준비를 하느라 꽉차있고 또 대학 당국은 회사 인사담당자들을 학교로 초청, 취업을 위한 인터뷰 요령 등을 알려주고 있으며, 교수들까지 동원되어 제자들의 취업을 위해 연고를 찾아 회사 방문을 하고 있으나 취업문은 여전히 좁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금년도 취업 경쟁률은 사상 최고라고 한다. 얼마전 실시된 한 기업체의 취업 경쟁률은 무려 385대1이었다. 11명 모집에 4천 200여명이 지원하였다고 하니 경쟁이 아니고 전쟁이나 다름없다. 주요 대기업의 취업 경쟁률도 보통 2~3대 1정도가 되어 4학년생들로서는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도 어렵다고 한다. 특히 지방에 있는 대학졸업생들은 취업원서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얼마나 괴롭겠는가. 최근 대학생을 비롯한 청년실업인구가 위험 수준에 넘어 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년실업자를 비롯하여 약80만명에 달하고 실업군이 사회에 산재하고 있는데,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큰 심각한 사회문제가 아닐 수 없다. 특히 그동안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이제 희망을 갖고 사회에 진출하려는 젊은이들에게 취업자리가 없으니, 얼마나 실망하겠는가. 정부는 대학졸업생들을 위한 특별 취업 대책을 마련해야 된다. 우선 단기직으로 공공자금을 투입해서라도 각 기업이나 관공서들이 인턴형태로 대학졸업생들을 고용할 수 있도록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기업이 고용창출을 할 수 있도록 투자유인책을 마련, 기업에게 각종 혜택을 지원해야 된다. 최근 유한킴버리와 같은 일부 기업에서는 소위 4조 2교대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한 노동의전환을시도, 인력창출과 더불어 고용안정을 꾀하고 있는바, 다른 기업들도 이런 방식을 원용하여 청년실업자들을 흡수해야 된다. 대학생을 비롯한 청년실업자들도 눈높이를 낮추어 일자리를 구하려는 노동 인식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대학생들이 희망을 가지고 사회로 나올 수 있도록 적극적인 취업 대책 마련에 우리 모두 힘을 합쳐야 할 시점이다.

학원강사가 수능 출제위원이라니

국가고시인 대학 수학능력시험의 공정성과 신뢰도에 의문이 제기됐다. 소위 ‘스타급’학원 강사가 수능 출제위원이었다니 이는 출제위원 선정과정에서 최소한의 검증작업조차 거치지 않아 발생한 것으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더구나 이 강사의 석사논문 중 일부가 이번 수능 언어영역에서 가장 까다로운 문제로 알려진 철학지문(4개 문항·9점) 내용과 거의 흡사한 것은 우연의 일치로 보기 어렵다. 의혹은 한 두가지가 아니다. 이 강사가 강의하고 있는 모 입시사이트 인터넷 게시판에 수능 1주일 전부터 ‘언어영역 출제교수 1명이 철학 전공’이라는 글이 올라 왔다는 것은 사실상 명단이 사전 유출된 셈이다. 이 사이트는 47만6천여명의 회원을 갖고 있는 국내 최대의 온라인 입시사이트다. 수능시험 주관기관인 교육평가원이 “학원강사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는 해명과 “지문은 중복될 수 있다”는 해명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수능 전 인터넷 언어영역 강좌에서 ‘칸트 관련 내용은 꼭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됐기 때문이다. 특히 학원 강사가 이 문제를 출제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은 그가 칸트 논문으로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의 석사학위 논문과 수능 지문 내용이 흡사한 점이다. 이번 일로 수능 출제위원 선정 및 운영의 문제점도 동시에 드러났다. 출제위원(교수 86명, 고교 교사 33명)들은 지난달 9일부터 강원도 모처에서 합숙에 들어가 수능당일 제5교시 시험이 시작된 지 10분 뒤인 오후 5시40분 감금(?)에서 해방됐다고 한다. 출제기간 중 이들은 휴대전화도 소지하지 못하고 전화통화 내용도 녹음됐다. 그러나 1개월간 감금생활을 해야 하고 보수도 하루 15만원에 불과한 데다 출제기간인 10∼11월은 대학교수들이 가장 바쁜 프로젝트 결과 제출시기와 겹쳐 있어 출제상 무리가 우려된다. 더구나 원칙적으로 대학 전임교원이 아니면 출제위원이 될 수 없는 데도 서울 모 대학 초빙교수인 학원 강사를 출제위원으로 선정한 것은 책임을 면키 어렵다. 수능 재시험 요구까지 제기될 가능성이 있을 정도로 학원강사 출제위원 선정은 엄청난 파문이 예상된다. 교육평가원은 사실을 해명하고 후속 조치를 빨리 취하기 바란다.

포장마차

신작로(新作路)라 하였던 그 무렵의 국도 등 대로는 모두 사리(砂利)도로였다. 아스팔트가 아닌 자갈 모래를 깔아 도로를 유지했고, 그러므로 해마다 인근 주민들이 부역 나와 자갈 모래를 깔곤했다. 이 신작로 위를 달렸던 게 포장마차였다. 아마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먼지를 뽀얗게 일으키며 달렸던 포장마차를 기억하는 이가 있을 것이다. 당시엔 택시는 고사하고 버스도 아주 드문 때여서 말 방울을 달랑거리며 말이 끄는 이런 포장마차를 탈 수 있는 것도 여간한 호사가 아니였다. 마부가 말 채를 휘날리며 끄는 포장마차엔 대여섯명의 승객이 탈 수 있었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포장마차라고 하면 미국의 서부영화에 나오는 애리조나 마차를 연상하겠지만 우리나라에도 포장마차가 큰 교통수단이던 시절이 있었다. 포장도 없는 가게 술집이 ‘포장마차집’이라는 간판을 단 것을 더러 보는 건 포장마차가 지닌 어떤 낭만성 때문일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말 발꿉 소리에 맞추어 몸이 흔들기며 달리는 승차감은 그런대로 멋이 있었다. ‘포장마차’가 된서리를 맞고있다. 밤이면 말도 바퀴도 없이 포장만 친 ‘포장마차’가 술장사, 음식장사를 일삼고 있어 단속 대상에 오르고 있는 것이다. 인도, 심지어는 차도까지 침범해 가며 의자를 수십개씩 늘어놓고 불야성을 이루는 성업으로 호황을 누린다. 이를 단속하는 게 생존권을 위협한다지만 단속해선 안될 진짜 생계형 노점상은 따로 있다. 가겟세도 안내고 세금도 안내면서 가게 이상으로 재미보는 기업형 포장마차가, 글쎄 단속 대상에서 보호받아야 한다고는 보기 어렵다. 기업형 포장마차의 단속 시비는 서울의 이야기이지만 서울에 국한하는 것만은 아니다. 수원 등 도내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단속도 단속이지만 포장마차 하는 이들의 자제가 어느 정도는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 옛날 진짜 포장마차가 알면 라이센스를 요구할 일이다. /임양은 주필

기고/오페라 세리아와 재벌 회장의 비극

오페라 속 여주인공들의 예술적 기량을 칭송하기 위해 흔히 ‘프리 마돈나’라는 호칭이 사용 되는데 Primary Women 즉 첫번째 여자라는 사전적 의미와도 같이 오페라에서 여주인공의 역할은 공연 전체의 작품성과 완성도를 가름할 정도의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탈리아 오페라의 대부분이 프리마돈나의 처절한 희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는데, 이러한 오페라 세리아(opera seria)라고 하는 비극의 장르가 정착되기까지에는 오페라 도입 초기부터 스토리 구성의 대부분을 그리스 신화 내용이 빈번히 인용되면서 특히 죽음과 자살에 대한 소재가 성행하게 된다. 이를 반증하듯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 중 무려 109명의 신들이 자살했거나 자살을 시도했다고 전할 정도로 스스로의 죽음 그 자체를 영웅적 행위로 미화시킨 영향이 무엇보다 켰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라죠콘다, 리콜렛토, 나비부인, 투란도트 등 청순가련한 여주인공 스스로 자신의 몸에 비수를 꽂아 생을 마치는가 하면 페로달, 주링자 밀러, 일트로바 토레에서는 독약을 마시고 오페라 대미를 극적으로 마감하기도 한다. 이중에서도 베리즈모(Verismo)운동이 한창이던 19세기말 낭만적이면서 탐미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 사실주의적 관점에서 현실세계를 풍자한 푸치니의 토스카에서는 여주인공인 토스카가 비밀 경찰인 스카르파아의 음모와 계략에 빠져 그녀의 진정한 연인 카바라도시 마저 잃고 절벽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하는 비극적인 종말로 구성되어 있다. 오페라 토스카의 시대 배경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정서와는 다소 생소할 수도 있겠지만, 오랜 옛날이나 지금까지도 인간의 삶과 죽음만큼은 개인의 희로애락이나 신체적 수명한계의 범위를 넘어 그 시대의 사회상과 역사성을 대변할 만큼 중요한 시사적 의미를 찾고있는 것에는 어느 누구도 이의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무엇하나 부러울게 없어만 보였던 어느 재벌 총수의 죽음이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그것도 투신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그를 죽음으로 까지 몰고간 것인지 간접타살이라는 세간의 비판과 함께 연일 애절하고 아타까운 사연들이 주홍글씨처럼 그 회장 주검 뒤를 맴돈 것을 기억 할 것이다. 일면식도 없었던 그의 죽음이었지만 우리나라 경제 재건과 대북사업의 프리마돈나로 무거운 현실의 등짐을 짊어진 채 세상을 달리해야 했던 한 인간의 마지막 삶의 비애가 시대와 배경은 달라도 사랑에 대한 박탈감, 그리고 음모와 배신에 몸서리치며 스스로의 몸을 던진 토스카의 절박함과도 그리 무관치 만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수많은 오페라 프리마돈나의 비극적이고 허황한 죽음의 결말과도 같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척박한 무대는 그렇듯 애닯고 절절하게만 느껴진다. 프랑스 비평가 르네지라르는 역사적으로 사회 내부의 긴장을 줄이고 집단 결속력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집단내 특정인의 희생양이 생기게 마련이라는 주장을 폈지만 과연 그의 안타까운 희생으로 우리사회의 결속력이 더욱 강화 되고 그간의 대립과 긴장이 완화될 수 있었는지는 아직도 나로선 의문투성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포플리즘적 양비론에 빠져 집단의 주장과 집단의 이기로 그를 정신적 죽음으로 몰고 간 간접타살의 공범들이 아니었을까. 우리의 삶이 결코 오페라와 같은 예술은 아니다. 그렇듯 그의 갑작스런 죽음 또한 르네지라르의 논리와 같이 희생을 통한 극적 반전을 위함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똑같은 비극적인 삶이었지만 오페라 주인공 토스카에 대한 예술적 감동이 되었던 혹은 2003년 8월 한국사회가 사산해 놓은 그 회장 죽음에 대한 슬픔과 추모의 마음이 되었건 그 모두가 그간 우리들의 편협하고 수축된 의식 속에 새로운 감각의 양분이 주어지듯 또 하나의 내일이라는 작품을 준비하는 계기가 되었음엔 틀림없으리라. /김종구.경기도율곡교육원연수원 예절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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