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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무자의 도덕적 해이’ 현상을 막기 위해 이른 아침이나 심야시간대에도 전화, 방문 등을 통해 빚 독촉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정부의 방침에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금융기관의 채권 추심원들이 채무자의 출퇴근 전후에 보다 자유롭게 채무자와 연락을 취할 수 있도록 오전 8시~밤 9시로 한정돼 있는 채권추심 허용시간을 오전 7시부터 밤 10~11시로 2~3시간 늘린다는 게 골자다. “연체자들이 낮이나 저녁시간대엔 채권추심 전화를 받지 않거나 의도적으로 피해 다니는 경우가 많다”는 카드업계의 고충을 감안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채무자의 사생활 및 인권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가정이나 직장을 가리지 않고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그야말로 시도 때도 없이 빚 독촉 전화를 걸게 한다는 것은 횡포를 방조하는 것이다. 채무자가 빚 갚기를 고의로 회피할 경우 채무사실을 직계가족 등에게 알린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 방법은 채무자가 출근, 집에 없는 시간대를 이용해 의도적으로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금융기관임을 알리는 등 이미 오래 전부터 사용해 왔다. 물론 소위‘배째라’식의 채무자와 고의 회피자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하지만 이런 채무자들도 결국은 금융기관의 채권회수 망에서 빠져 나갈 수 없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극소수의 상습적인 도덕 해이자 관리는 별도의 규제 방법을 마련해야 지 이를 빌미로 전체 채무자에게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사채업자들이 채권회수 전담반을 고용하여 심한 경우 채무자를 폭행하거나 감금·납치하는 등 각종 불법, 비인간적인 채권추심이 빈발하여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판국에 제도권 금융기관에서마저 빚 독촉을 강화한다면 부작용이 속출할 것은 명약관화하다. 죄인취급보다 더한 인권을 침해하는 빚 독촉 성화는 각종 범죄를 조장하거나 가정 파탄을 일으켜 사회병폐의 요인이 되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KBS가 해도 정말 너무 한다. 지난 주말 방영한 K-1TV ‘인물현대사-침묵으로 살다·학살유족 7인의 할머니’ 프로그램은 충격이다. 완전 좌경화하였다. 자유민주주의의 국가 기간방송이 맞는지를 의심할 지경이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 후 국군과 인민군이 서로 밀고 밀리는 혼란의 과정에서 우익단체에 의해 일어난 일부의 보도연맹·여순반란사건 관련자, 부역자 등 학살사건을 다룬 내용은 사실이다. 그러나 방송은 당시 좌익단체 역시 그에 못지않게 자행한 군경가족, 지주 및 우익인사들 대한 학살사건은 간과하였다. 심지어는 이른바 빨치산이라고 한 도처의 무장 공비들이 보급투쟁한다며 외딴 마을을 습격, 양식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양민을 학살하거나 납치해가기도 했다. 이 무렵 좌·우익간의 집단학살은 실로 아비규환의 참상이었다. 지난 50여년 세월을 눈물로 보낸 미망인들의 한(恨)은 비단 우익진영에 의해 남편을 학살 당한 할머니들만이 아니다. 좌익진영에 의해 남편을 학살당한 부지기수의 할머니들도 마찬가지다. 이런데도 좌익진영의 피해만 크게 부각시켜 우익단체를 살인마처럼 매도한 것은 의도적 좌파 편향의 프로그램 제작이다. 방송은 인권을 말하면서 재판도 없이 죽였다고 했다. 당시의 각박한 전쟁 상황을 지금과 같은 평시와 비유하는 것 자체가 논리의 비약이다. 토착세력의 좌·우익 학살이 서로 가능했던 이유가 질서와 법의 지배가 미칠 수 없었던 사회적 진공상태에 기인한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또 연좌제가 폐지된 지 이미 오래된 마당에 마치 아직도 무슨 불이익의 공포에 시달리는 것처럼 방송한 것은 과장이다. 참으로 우려스런 것은 반공을 광기로 왜곡한 점이다. 대한민국은 북의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공산주의에 반대하여 세운 나라다. 여기에 남침까지 감행하여 무려 3년여에 걸친 동족상잔을 벌였다. 공산주의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한 시대사적 반공이 왜 광기로 묘사돼야 하는 지, 국기를 부인하지 않는다면 차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방송이 일방적으로 부각시킨 양민 학살의 불행은 알고보면 한국전쟁의 발발에 연유했다. 이런데도 그 발단이 된 북의 남침에는 단 한마디 언급이 없다. 이 모두가 실로 가슴 저미는 과거의 역사다. 중요한 것은 다신 이같은 불행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한 민족화해다. 이런 터에 KBS가 우정 좌경화 프로그램을 방송한 것은 민족화해를 저해한다고 보아 간과하기 어렵다. 정연주 KBS사장이 이념논쟁을 유발하여 이 사회를 좌경화로 몰고 가고자 한다면, 나라의 정체성을 지켜야 하는 국가 기간방송의 책임자로는 심히 부적절하다. 물러가야 한다.
‘이솝’은 기원전 6세기경의 그리스 사람으로 원래는 노예였다. 하지만 이야기를 하도 재밌게 잘하여 자유의 몸이 됐다고 전한다. ‘이솝 이야기’중에서 많이 알려진 것으로 ‘신포도’가 있다. 배고픈 여우가 선반 위에 있는 포도를 먹으려고 하였는데 키가 닿지 않자 “저건 덜 익은 신포도다”라고 내뱉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는 얘기다. 그 뒤로 맘속으론 탐이 나면서도 제 힘으로 안될 때 ‘저까짓 것!’하는 태도로 악평하는 사람을 여우에 비유하게 되었다. 여우는 지구상에서 비교적 온대지방에 널리 퍼져 서식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 곳에서나 이 짐승은 좋은 평을 받지 못하고 교활하고 약삭빠른 대명사처럼 돼있다. 이것은 목축이나 농업을 주로 하는 종족에게 아주 오래 전부터 여러가지 피해를 주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프랑스어로 여우를 르나르(renard)라고 한다. 르나르란 이름은 독일말로는 라인할트인데 이는 어엿한 기사의 이름이다. 그리스말은 아로페크스, 라틴말로는 우루페스, 이탈리아말로 버르페이다. 프랑스만이 좀 다른 것은 여우 이름이 설화에 기인한 것이다. 르나르는 중세의 유명했던 못된 여우의 이름이다. 그리스에서는 여우가 활약하는 이야기가 많은데 역사상에서도 용사 아리스토메네스를 구한 여우의 이야기가 있다. 이솝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여우는 특히 유명하다. 임금이 되고 싶어 하는 원숭이를 놀려 먹고 골탕 먹이는 여우의 이야기가 있고, 함정에서 제 꼬리를 잘린 것이 분해서 다른 여우들의 꼬리를 모조리 짧게 잘라 버리려고 한 여우의 이야기도 있다. 여우라는 동물의 체질을 잘 나타낸 것이라 하겠다. “저건 덜 익은 신포도다”라고 내뱉은 여우의 말은 ‘신포도’에 관한 서양 고사성인데 무릇 인간의 마음이 그와 같을 것이다. 특히 정치판에선 ‘저건 신포도다’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그러나 사실은 신포도가 아니다. 잘 익은 포도를 그렇게 비하시키는 여우와 같은 언행이 교활하기 이를 데 없다. 그래서 측은하고 불쌍하다. /임병호 논설위원
이라크 전투병 추가파병은 국익을 위한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이들과 어떠한 이유든 명분없는 전투병 파병을 해서는 안된다는 측과의 논쟁이 치열한 요즘, 평화의 상징으로 비둘기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기러기아빠가 아닌, ‘비둘기아빠’라는 말을 혹시 들어본 적이 있는지. 언젠가부터 기러기아빠가 생겨났는지 모르지만, 우리 주위에서도 기러기아빠를 어렵잖게 만날 수 있다. 얼마전 어느 기러기아빠의 쓸쓸한 죽음이 보도되어 여러 사람의 심금을 울린 바 있다. 기러기아빠의 의미에 대하여는 우리가 잘알고 있다. 그러나 비둘기아빠라는 용어는 우리에게 생소하다. 다양한 문명사회에서 다양한 인간생존 방식이 생기게 마련이다. 기러기아빠와 비둘기아빠는 복잡하고 다양한 사회의 산물이다. 기러기는 일정한 계절마다 돌아오는 철새다. 외국에 처자식을 놓아두고 아빠 혼자 고국에서 고군분투하며 돈벌어 처자식에게 보내고 기껏해야 1년에 한 두번 만나는 자발적 이산가족의 아빠를 일컬어 기러기아빠라는 표현이 생겨났지만, 주말이 되어야 가족상봉이 가능한 직장인을 비둘기아빠라 부르는 이유가 궁금하다. 백과사전에 의하면 비둘기과에는 총289종이 있다고 한다. 비둘기아빠가 된 사연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대부분 맞벌이 부부이기 때문에 비둘기아빠가 된 경우가 제일 많을 것이다. 타지로 발령이 날 때마다 비둘기아빠가 탄생된다. 비둘기아빠의 변은 대개 비슷할 것이므로 더이상 논하지 않겠다. 중국 후한서(後漢書)에 의하면 국가의 공신이나 원로대신으로서 70세가 넘은 사람이 벼슬에서 물러날때 손잡이 꼭대기에 비둘기모양이 새겨진 지팡이를 임금이 하사하였다 한다. 비둘기는 음식을 먹어도 체하지 않으므로 체하지 말고 건강하라는 뜻에서 비둘기가 새겨져 있는 구장(鳩仗)을 주었다고 한다. 비둘기아빠(기러기아빠 포함)는 다른 아빠들에 비해 생활이 불규칙 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집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없으니 퇴근후 자연스럽게 술자리에 참석하는 횟수는 늘어 난다. 비둘기아빠들은 챙겨주는 사람도 없는데 술을 조금씩 먹고 규칙적인 식사와 적당한 운동으로 쉽지않은 이 세상을 건강하게 살아야 할 것이다. 철새와 대조되는 새는 텃새다. 기러기는 철새, 비둘기는 텃새다. 텃새에는 비둘기외에 참새, 까마귀, 까치, 박새, 꿩, 올빼미, 부엉이 등이 있다. 참새아빠,올빼미아빠보다는 비둘기아빠가 기러기아빠와 어우러져 자연스럽다. 1년에 한두번 가족과 만나는 기러기아빠에 비해 비둘기아빠는 꽤 행복한 편이다. 비둘기는 귀소본능(歸巢本能)이 있어 일찍부터 통신용으로, 특히 전신용으로 쓰여졌다고 한다. 1분간에 약1㎞를 날며 제집으로 찾아오는 본능이 있다. 비둘기아빠들도 주말이 가까워지면 귀가본능이 발동된다. 가정의 행복을 위해 본능적으로 음주가무를 자제하며 몸만들기에 들어간다. 복잡한 사회에서 점점 늘어나는 비둘기아빠와 기러기아빠들! 가족을 위해 어차피 가야할 길이라면 행복한 기러기아빠, 비둘기아빠가 되도록 하자. /조국증.한국토지공사 용인사업단
예전에 도서관은 단순히 책만을 수집하여 대출·보존 하는 곳이었다면 오늘날의 도서관은 사회 각 분야에 대한 다양한 자료를 수집·정리·보존하여 지역주민에게 정보의 이용, 조사, 연구 등을 제공하는 장소며 생활문화시설이기도 하다. 주민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여러 가지 문화적 혜택을 손쉽게 누릴 수 있는 공간이 도서관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도서관 문화의 현주소는 도서관으로서의 기능보다는 독서실의 기능을 하는 경우가 많다. 시험 기간에 도서관 좌석을 얻기위해 길게 줄을 늘어선 학생들이나 이런 저런 취업 준비로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이 아직도 도서관의 대다수 이용자인 것이다. 열람실은 도서관의 책을 보기 위한 장소가 아니라 시험공부를 위한 독서실로 전락했다. 도서관은 독서실이 아니다. 설령 개인 사정으로 도서관에서 입시 공부나 취업 준비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일반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면 유감이다. 시험공부나 입사 준비는 독서실이 더 제격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도서관은 바뀌어야 한다. 책을 비치하고 정보를 찾는 공간이 더 늘어나야 한다. 앞으로 주 5일 근무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도서관은 평범한 시민들에게 여가를 즐길 수 있는 더 없는 문화공간이 될 것이다. 선진국들 치고 도서관이 발달되지 않은 곳이 없다. 곳곳에 도서관이 있고 시민들은 자유롭게 도서관에서 좋은 책들을 빌려 본다. 또 도서관 주변에 작은 공원이 있어서 시민들에게 쉼터를 제공하기도 하고 아이들은 나무 그늘에서 책을 읽는다. 주부들이 자전거를 타고 와서 책을 빌려 가는 광경이 그렇게 보기 좋을 수 없었다. 이렇게 책을 가까이 하는 주민들에게 교양과 윤리, 사물을 판단하는 지혜들이 쌓여갈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이다. 그들 가운데에서 창의력 있는 아이디어가 나오고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덕목이 나온다. 도서관은 그런 의미에서 눈에 띄지는 않지만 주민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풍요롭게 하고 국가 경쟁력을 그 기초로부터 튼튼하게 받쳐주는 버팀목이 된다. 따라서 도서관이 바뀌기 위해서는 바로 도서관 문화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도서관은 자기가 관심 있는 책을 찾아 자유롭게 그것을 읽고 즐기는 곳이어야 함을 이용자가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김명래.인천시중앙도서관장
단풍이 곱게 물들은 수원 광교산에는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등산을 즐긴다. 그러나 광교산 입구와 주변도로는 등산객이 몰고온 차량들로 등산 초입부터 얼굴이 찌푸려진다. 특히 주말이나 휴일이면 5천여대의 차량이 몰리지만 공영주차장은 240여대 밖에 없는 현실에서 매번 극심한 혼잡을 빚고 있다. 인근 경기대에도 주차가 가능하지만 유료주차장이어서 등산객들이 주차를 꺼리는 바람에 등산로 입구 도로는 주차할 곳을 찾는 차량들로 뒤엉켜 극심한 정체현상을 빚고 있다. 주차공간을 찾기 위해 교육청 사거리와 1번 국도, 북문 주변 도로가 연쇄적으로 막히고 이곳을 지나는 운전자들의 불만 또한 높다. 또 평일의 경우에는 차량들이 광교산 주변 농민들의 농작물을 밟고 지나가거나 볏짚을 허락없이 몰래 차량에 싣고 가져가는 바람에 농민들이 시청에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일부 몰염치한 등산객들은 차량에 싣고 온 생활쓰레기 등을 광교산에 몰래버리기도해 빈축을 사고 있다. 수원시는 광교산을 살리고 쾌적한 산행을 위해서 기존 주차장 이외의 대안 공간 마련과 함께 불법 주·정차하는 차량을 강력히 단속하는 등의 물리적인 방법도 병행해야 한다. /이재영·수원시 장안구 연무동
여성 근로자가 가정·직장 생활을 동시에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마련한 모성보호법이 시행 2주년이 되도록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것은 기업체의 책임이 적지 않다. 2001년 11월 남녀고용평등법, 근로기준법, 고용보험법 등 모성보호 관련법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논쟁이 많긴했다. 하지만 직장 여성의 출산은 개인이나 고용주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가 나누어 맡아야 할 과제라는 인식과 합의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도입이 가능했다. 그러나 올 9월까지 산전후 휴가 급여를 받은 사람은 전국적으로 2만3천782명, 육아휴직 급여를 받은 사람은 4천914명에 불과하다. 출산 전후 휴가를 이용하는 여성이 전체의 절반 수준이며 육아 휴직 이용자는 열 명에 한 명꼴인 셈이다. 산전·후 휴가 등의 기간 중 발생하는 인력 공백과 대체인력 확보 문제, 그리고 낮은 임금, 열악한 작업 환경 등이 걸림돌이 되고 있지만 정작 원인은 고용주가 이를 꺼려 하는 데 있다. 한국여성개발원에 따르면 모성보호제도의 이용률이 특히 저조한 사업장의 경우 출산 후 노골적인 퇴직압력 등 모성보호제도에 대한 이해 부족이 주원인인 것으로 조사됐다. 육아휴직이 잘 이용되지 않는 이유는 기업분위기상 육아휴직을 신청하기 어렵고 휴직 후 복직이 보장되지 않는 것이다. 또 육아휴직제가 아예 없거나 육아휴직을 허용하지 않는 경직된 직장문화 등이 주요인인 것으로 밝혀졌다. 저조한 산전후 휴가 이용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현재 고용주가 부담하는 2개월분의 근로자 임금을 고용보험에서 지급해야 한다. 현재는 90일간의 휴가기간 중 60일분은 기업주가, 30일분은 고용보험이 지급하고 있으나 이는 속히 개선돼야 한다. 이와 함께 당국은 모성보호제도의 이행을 확인하고 성차별적 관행을 근절하기 위한 지속적인 지도·감독을 실시해야 한다. 특히 모성보호 사회의 실질적 정착을 위해 여성인력 활용이 기업 및 국가경쟁력 강화의 핵심적 과제라는 인식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성이 행복해야 가정도 사회도 발전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화성학(華城學)은 정조사학(正祖史學)이다. 우리 지역사회의 뿌리이면서 한국사의 찬란한 맥락을 형성한다. 계몽군주인 정조의 실사구시, 개혁사상은 근대적 민본주의를 이룬 위대한 선각자다. 개혁왕정과 문화중흥을 꽃피운 정조의 치도(治道)는 대왕이 서거한 지 200여년이 지난 오늘의 민주정치와도 크게 상통한다. 한성(漢城)의 부도(副都)로 축성한 화성은 정치·산업·사회·문화·군사적 의미가 크게 함축된 도시계획에 의한 신도시다. 수원과 화성·오산은 이토록 유서깊은 화성의 터전이다. 이에 정조사의 권위자인 최홍규 경기대 교수를 소장으로 하는 ‘경기대학교 부설 화성학연구소’가 어제 발족한 것은 매우 뜻깊다. 지역사회의 역사문화, 경제산업, 건축과학, 예술관광 등 모든 부분을 심층적이고 체계적으로 연구 개발할 수 있는 명실공히 지역학 센터의 역할을 기대할만 하다. 연구소 출범은 또 화성의 세계문화유산 등록에 이어 웅대한 화성행궁이 1차복원사업 완공으로 개관된 시점과 함께하여 참으로 시의 적절하다. 개소 기념 심포지엄의 주제를 ‘화성의 외래관광객 유치 잠재력 방안’으로 설정, 성황을 이룬 것은 지역사회 산학(産學)활동의 긍정적 반영으로 평가된다. 관광자원으로서의 화성과 화성행궁의 역사적 의의 관광자원으로서의 회령전의 건축사적 의의 관광수지 개선 측면에서 본 화성의 역할 외래관광객 유치를 위한 화성의 고유 이미지 창출 화성의 외래관광객 유치 가능성과 전략 등으로 나누어 가진 전문가들의 열띤 각 부문 발표와 토의는 미래산업 지향의 좋은 좌표를 설정해 주었다. 화성학연구소가 앞으로도 이같은 지역학 센터의 기능을 다해주길 바라는 것은 그 연구 내용이 비단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고, 앞서 밝힌 정조사학의 새로운 정립으로 오늘의 맥을 되돌아 보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뜻이 깊기 때문이다. 만약 정조의 실학사상이 후대에 그대로 계승됐다면 일제에 침탈당하는 일도 없어 오늘의 역사 또한 달라졌을 것이다. 역사의 가상은 부질없지만 정조사, 즉 화성학을 재조명하는 것은 역사를 보는 현대인의 슬기다. 화성학 탐구에 수원시와 경기도 등 지방행정 당국과 지역사회의 많은 관심이 마땅히 있어야 할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