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8월30일 저녁 8시쯤, 한 청년이 “나 이강석인데…”하고 경주 경찰서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국회의장 이기붕의 장남이자 이승만 대통령의 양자인 이강석의 갑작스러운 출현에 화들짝 놀란 서장은 청년이 있다는 다방으로 달려갔다. “귀하신 몸이 어찌 홀로 오셨나이까.” 황송해하는 서장의 인사에 청년은 “아버지의 밀명으로 풍수해 상황을 시찰하고 공무원의 비리를 내사하러 왔다”고 대꾸했다. 자유당 정권이 무소불위의 권세를 누리고 있을 때 였다. 청년은 3일동안 경주에 머물렀다. 경주는 물론 영천·안동·봉화 등지를 돌며 경찰서장과 군수로부터 향응과 칙사 대접을 받았고 40만환이나 되는 거액도 받았다. 9월1일 밤, 청년은 경북 도지사의 관저에 여장을 풀었다. 이날 청년은 가짜 이강석인 것으로 밝혀져 현장에서 체포됐다. 경북 도지사의 아들이 이강석과 고등학교 동기동창이라는 사실을 청년은 미처 몰랐기 때문이었다. 청년은 “용돈이 궁해서 꾸민 연극인데 그렇게 굽신거리고 쩔쩔맬 줄 몰랐다”고 둘러댔지만 9월18일 구속돼 징역 10개월을 살아야 했다. 진짜 이강석은 3년 뒤 4·19혁명 직후 아버지 이기붕과 어머니 박마리아, 남동생까지 권총으로 사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운의 주인공이 됐고, 가짜 이강석도 3년 뒤 자살을 선택함으로써 죽음까지도 진짜를 따라하는 기이한 인연을 맺었다. 가짜 이강석 사건은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옛날이야기지만 최근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노씨 성을 가진 39세의 여인이 ‘노무현 대통령의 친조카(대통령 친형 노건평씨 딸)’로 행세하고 다니다가 덜미를 잡혔다. 그녀는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부터 부쩍 광주 노씨 해음공파 종친회에 자주 들러 노 대통령의 친조카 노릇을 했다. 고졸, 연예인 의상 코디네이터가 경력의 전부인 그녀가 한미문화예술교류재단 주최로 지난 6월26일 워싱턴 미 의회 의사당에서 열린 한인이민 100주년 기념행사준비위원장 자격으로 한국측 대표로 참석, 연설까지 한 사실이 드러났다. 재단측이 현지 호텔비와 항공비 등 2천800여만원을 대신 지급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가짜 노릇한 사람보다 속아 넘어간 사람들이 더 더욱 한심하다. /임병호 논설위원
지방언론의 주축인 지방지 효시는 국내 최초 신문인 독립신문이 서재필 등에 의해 1896년 창간된 13년 뒤 1909년 진주서 발간한 구 慶南日報(경남일보)다. 일본에 외교권을 빼앗긴 을사보호조약을 개탄하여 황성신문에 유명한 ‘是日也放聲大哭’(시일야방성대곡)의 사설을 쓴 국내 최초의 신문논객 장지연 등이 창간했다. 그러나 한·일합병 후 1914년 일제가 慶南日報를 폐간한 뒤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중앙지는 생겼으나 지방지는 맥이 끊겼다. 일제 때 木浦日報(목포일보)같은 지방지가 더러 있긴 하였지만 모두 우리 말이 아닌 일어로 간행되어 국내 신문의 정통 명맥으로 인정되지 못한다. 지방지가 활성화한 것은 1945년 광복이 되고 나서다. 중요한 것은 지방지도 중앙지와 마찬가지로 시대적 변화를 동반한 사실이다. 한국의 신문은 크게 계몽·저항지(전기 1896~1914·후기 1920~1936), 이념지(1945~1950), 독재저항지(1960년대), 상업지(현재)로 나눌 수 있다. 1970년대 산업사회 들어 두드러지기 시작한 상업지화는 1999년까지를 1기로 친다면 정보사회로 치닫는 금세기는 상업지 2기다. 상업지의 특성은 매우 예민하다. 계몽·저항지, 이념지, 독재저항지 시절의 신문기자는 일종의 동지적 관념이었다. 월급이 적거나 밀려도 개의치 않았다. 상업지 들어서는 완전히 달라졌다. 직업적 관념이 뚜렷하여 처우를 따진다. 논조 역시 비상업지 시절엔 ‘천인공노’니 ‘통탄’이니 해도 독자에게 먹혀 들어갔다. 그러나 상업지 들어 지금 그같은 개탄만으로는 통하지 않는다. 비분강개하기 보다는 논리가 앞서야 한다. 이러므로 신문기자 역시 전문화·세분화하는 프로 의식을 요구받는다. 여기에 지방지는 지역사회와 피부를 맞댄다. 지역사회와 한다리가 건너뛰는 중앙지하고 달라서 지역에 더 강도 높은 윤리성을 압박받는다. 지방지의 소명인 지역사회 문제의 심층 보도는 외면의 사실보도 보다는 내면의 진실보도에 있다. 사실 중엔 작위적 사실이 있으나 실체적 진실은 허구가 용납될 수 없다. 예컨대 주민행정·생활행정·참여행정으로 집약되는 지방자치 이후 넘쳐나는 님비현상을 사실보도에 그쳐서는 갈등만 부추긴다. 진실보도를 추구해야 한다. 해결의 실마리가 그래야 제시된다. 단순보도 만으로 밥이 끓든 죽이 끓든 방임하는 것은 중앙지 같으면 그럴만 하다. 그러나 적어도 지방지가 그처럼 무사안일해서는 지역사회로부터 멀어진다. 자치행정의 커뮤니케이션 활성화는 지방언론의 책임이다. 아담 스미스는 ‘나라를 부강케 하는 것은 개인의 자비심이 아니라 이기심’이라고 했다. 행정수요의 다변화, 주민계층의 다양화로 야기되는 이기적 갈등을 지역사회 공동체 이익의 극대화로 여과시킬 줄 아는 지방지가 지역주민의 관심을 끈다. 어느 지방지고 할 것 없이 정치·경제·사회·문화·체육면 등으로 획일화한 제작 관행은 이제 새롭게 검토할 만 하다. 좀 더 지방지답기 위해서는 좀 더 폭넓게 그리고 좀 더 깊이있게 전 지면이 지역 대중에게 새로운 틀로 밀착되어야 한다. 지역주민이 지방지를 안보면 주민생활에 손해를 본다는 인식을 갖게할 만큼의 정보가 풍부한 지방지를 만드는 게 말처럼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지방지 천국인 일본이나 독일의 지방지 모델이 전혀 남의 것만은 아니다. 그들이나 우리나 다 같은 상업지이기 때문이다. 중앙지와 또다른 지방지 특유의 프로의식이 얼마나 철저하느냐가 관건이다. 언론연구원 조사는 외부 요인보다 내부 요인에 문제가 훨씬 더 많은 것으로 파악되었다. 한국신문 107년 사상 새로운 위상 개척의 시점에 서있다. 지방언론의 주축인 지방지는 이를 정보사회와 걸맞게 잘 극복하여야 미래가 있다. /임양은 주필 ※이 원고는 경기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에서 행정이론을 강의하는 우호태 화성시장님으로부터 지방자치와 관련한 ‘지방언론’ 주제의 초청 강의를 요청받고 한 내용을 요약한 것임. ※강의 말미에 정부의 ‘지방언론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에 대한 질문을 받고 사견임을 전제, 언론사가 정부 지원을 받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며, 정부예산을 이런데 쓰라고 국민이 세금을 낸 것은 아니라는 답변을 하였음. 아울러 지방언론 육성은 일간지 설립에 자본·시설·처우 등 분야에 상응한 수준을 요건화한 정간법 강화가 첩경임을 피력한바 있음.
황희는 재상의 지위에 있으면서도 아랫사람에게 자상하고 너그러운 인품을 지니고 있었다. 하루는 집안 하인들이 하찮은 일로 싸우다가 그중 한 명이 상대방의 비행을 말하며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자 “과연 네 말이 옳다”고 말하고, 또 다른 하인이 자기의 옳음을 주장하자 “과연 네 말도 옳다”고 하는 것이었다. 이를 지켜보던 부인이 “사물에는 일시일비(一是一非)가 있는 법인데 모두 옳다고 하니, 그렇게 판단력이 흐리고서야 어떻게 막중한 국사를 처리하십니까”라고 항변하자 태연스럽게 “과연 부인의 말도 옳소”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우리는 학교 다닐 때부터 이것 아니면 저 것일 뿐이라는 식의 이분법적 시각에 길들여져, 내가 옳고 너는 틀리다거나, 정답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는 흑백논리에 익숙해 있는 실정이다. 그 속에서 우리 아이들이 절름발이 사고, 경직된 사고에 젖어 병들어 왔는지 모른다. 이 아이들이 자라나서 자신들의 이익만을 좇아 끊임없이 자기합리화를 시도하고 상대방의 의견은 무조건 비판하고 상대방의 조그마한 잘못이라도 발견하면 사회적 매장이라도 시킬 기세로 덤벼들기도 한다. 과연 우리 사회가 이대로 가도 되겠는가 생각해봐야 할 때다. 이젠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이나 다른 사람의 의견에 대해서도 존중할 줄 아는 ‘똘레랑스’ 정신이 더욱 강조되어야 할 보편적 가치라고 생각한다. 남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자세, 여유와 너그러움을 갖는 자세가 선행돼야 상호간의 신뢰와 타협의 가능성도 열릴 것이다. 홍세화씨는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란 책에서 똘레랑스 정신을 이렇게 설명했다. “남을 존중하시오. 그리하여 (남으로 하여금 당신을) 존중하게 하시오! 이게 바로 똘레랑스 정신의 출발점입니다”라고…. 똘레랑스는 자기 자신의 생각과 행동만이 옳다는 독선의 논리로부터 스스로 벗어나기를 요구하고, 자신과 다른 것들도 인정하라는 정신이다. 그리고 소수에 대한 다수의, 약한 자에 대한 강자의, 가난한 자에 대한 가진 자의 횡포로부터 개인을 보호하자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도처에 만연해 있는 갈등과 감정대립 등 많은 과제를 똘레랑스 정신으로 극복해 나갈 수 있었으면 한다. /소병주.경기도의회 사무처장
가히 단풍철 행렬의 절정이라 할 요즘에 국도와 지방도는 몸살을 앓고 있다. 경찰이 소통위주의 교통관리를 하다보면 언제부턴가 어엿한 인기 업종(?)으로 자리잡은 옥수수장수니 오징어, 음료수 장수들로 인해 교통관리가 수월하지가 않다. 경고를 하고 도로교통법을 적용하여 단속을 하여도 단속의 불이익보다 영업수익이 많아서인지 그때 뿐이다. 도로상에서의 위험도 위험이거니와 지체와 정체로 인한 시간과 연료소비는 당연하고 가을햇살의 더위와 매연 속에서 모두가 짜증나는 시간과 장소를 마치 틈새공략의 아이디어인양 영업수단으로 삼는 행상의 모양새가 좋지 않다. 엄연한 도로교통법이 있고 국민 대다수가 보다 빠르고 안전하게 도로를 이용하도록 고안한 도로교통법인즉, 어찌 있는 법을 무시하고 단속을 피하면서 지체를 더 조장하는지 답답하다. 옥수수 하나를 팔려고 차를 잡아 가격을 흥정하고 잔돈을 치루는 20~30초 사이에도 신호는 한번 바뀌고 뒤따르던 수십대의 차량은 선의의 피해와 곤경에 처한다. ‘나 하나는 괜찮겠지’하는 방관 속에서 수많은 차량이 더욱더 발이 묶이고 짜증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불편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권오현·가평경찰서
건축허가를 받은 골프연습장도 문화재 훼손 우려 땐 철거해야 한다는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은 고무적이다. 문화재 보존이라는 공익이 앞선다면 행정관청의 명백한 잘못에서 비롯됐다 하더라도 개인 재산권 침해를 일정 부분 감수해야 한다는 취지여서 법원이 문화재 보존에 더욱 전향적인 잣대를 적용할 것으로 평가된다. 구리시 동구릉 옆에 70억여원을 들여 골프연습장을 지은 충일건설이 ‘행정관청이 내준 허가대로 건축했는데도 문화재청의 반대를 이유로 사용승인을 내주지 않은 건 부당하다’며 구리시를 상대로 낸 위반건축물 시정명령처분 취소청구 소송에서 최근 서울행정법원이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린 것이다. 충일건설은 1999년 12월과 2000년 7월 동구릉 외곽경계 86m 지점에 골프연습장 건축허가를 구리시로부터 두 차례 받아 지상 4층짜리 골프연습장을 지었다. 하지만 구리시가 건축허가시 문화재청과 협의해야 하는 문화재보호법 규정을 이행치 않은 사실이 드러나 문화재 훼손을 이유로 연습장 철거를 촉구했고, 이에 따라 구리시는 골프연습장 사용승인을 거부해 왔다. 서울행정법원은 판결문에서 “구리시의 허가대로 완공된 건축물이라 해도 공익과 비교해 개인적 이익을 희생시키는 게 부득이할 경우 건축허가 취소는 물론 사용승인까지도 거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업체가 입게 될 경제적 손해보다 문화유산의 보존을 중시한 것이며 건축허가 과정에서 발생한 중대한 하자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건축행정상 필요성 등 공익이 훨씬 더 크다고 판결한 이번 사례는 향후 문화재 관련 업무에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동구릉은 1408년 조선 태조 이성계의 능이 조성된 이래 60여만평의 대지에 9기의 왕릉을 비롯, 모두 17기의 능이 조성된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 보기 힘든 대규모 왕릉군이다. 이러한 문화재 구역에 대한 검토를 소홀히 하여 골프연습장 허가를 내준 구리시 담당 공무원에 대한 문책은 당연하다. 업체에 골프연습장 건립비용 70억여원을 국가가 배상해야 하는 원인행위를 유발한 책임도 결코 적지 않다. 이는 경기도, 인천시, 각 시·군 등 지방자치단체가 문화재 주변의 건축허가 민원업무를 처리할 때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서울행정법원의 명쾌한 판결을 거듭 환영해 마지 않는다.
정부는 어제 강금실 법무부 장관을 비롯, 행자부 장관, 노동부 장관 공동명의로 최근 노동계 움직임과 관련하여 동투(冬鬪)의 자제를 요청하는 담화문을 발표하였다. 이 담화문에서 정부는 최근 노동계 일각에서 자살·분신 등이 발생하는 등 노동운동 양상이 극단적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에 대하여 우려를 표명함과 동시에 귀중한 인명을 담보로 하는 노동운동 행위는 하지 말 것을 주문하였다. 예년 같으면 지금쯤은 노조가 각 기업별로 임금협상 등을 대부분 타결하여 노동분규는 일부 사업체를 제외하면 거의 없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또한 각 기업들도 연말 마무리를 준비하느라고 상당히 회사 일에 분주할 시점이다. 노동계의 노동운동은 봄, 늦어도 여름까지 가면 대부분 마무리되는 것이 일종이 관행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예년과 달리 일년내내 노동계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노동운동의 강도가 더욱 극단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어 상당히 우려되는 점이 많다. 과거에는 없던 추운 겨울에 노동운동이 전개되는 소위 동투까지 등장하고 있을 정도이니 그 강도를 짐작할만 하다. 이에 한편으로 오죽하면 노동자들이 그렇게 하겠느냐는 생각도 들지만 최근 악화되는 경제환경에 비추어 볼 때 여러 가지로 우려되는 문제가 역시 많다. 최근 각 사업장에서 구조조정 차원의 비정규직이 증대되면서 이의 철폐를 주장하는 노동계의 목소리를 기업도 적극 수용할 필요는 있다. 노동의 유연성은 인정하지만 비정규직만 양산하면 노동자들은 불안할 수 밖에 없다. 또한 각종 파업시 사측이 노조에 제기하는 손해배상청구소송 및 가압류는 불법에 책임을 묻는 것이긴 하나, 노동자들에게는 위협적인 요소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노동계가 극단적인 파업을 자제해야 한다. 일년내내 노동운동에 시간을 모두 소비하면 기업은 물론 노동자 자신들도 결국 피해의 당사자가 된다. 외국 투자가들이 보는 국내 노동계에 대한 인식은 긍정적이지 못하다. 기업과 노조는 적대적 관계가 아닌 동반자적 관계이다. 정부·기업 그리고 노조 모두 하나의 공동체로서 상생의 원리를 추구할 때 한국사회의 노동문화 또한 선진화될 수 있다.
장사에도 유행이 있는 것 같다. 무슨 장사가 좀 잘된다 싶으면 너도 나도하며 쏠리는 것을 본다. 하지만 소문이 났을 땐 이미 늦다. 이 무렵쯤 되면 가게를 비싼 권리금을 받고 팔아넘긴 주인은 또 다른 아이디어의 장사를 모색하는 것을 보곤한다. 장사를 하는데도 요즘은 이처럼 두뇌를 쓴다. 대학에서 중국어과가 홀대받던 시대가 있었다.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그랬다. 당시엔 중국을 중공이라 불렀고 물론 국교도 없었던 시절이다. 중국과 선린관계를 가질 것이라는 전망조차 어려웠으므로 중국어과는 인기가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도 야심을 갖고 중국어과를 선택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언젠가는 중국과의 교류가 불가피하다고 본 그 무렵의 중국어과 학생들이 지금 중국관계에서 큰 역할을 하는 것은 그같은 선견지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라크 파병을 앞두고 아랍어 전공자가 칙사대접을 받게 된 것은 희소가치성이 얼마나 높은가를 또 말해준다. 이즈음은 대학의 이·공계 지망이 줄어들고 있다. 심지어는 이·공계로 진학했다가 그만 두고 의대로 다시 입학하는 사례까지 있다. 전국 대학의 물리학과 학과장 70여명이 물리학을 비롯한 기초과학의 육성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낸 것은 의미심장 하다. 교육인적자원부의 제7차 교육과정에서조차 기초과학으로부터 멀어진 것을 경고한 대목은 정부가 특히 귀담아 들어야 한다. 기초과학은 첨단 기술의 기본이다. 금세기 정보사회에서 생산의 부가가치를 드높이는 것은 기초과학에서부터 시작된다. 부존자원이 없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자연과학의 발달만이 장차 나라가 먹고 살 길을 열어준다. 공부 잘하고 생각이 깊은 학생일 것 같으면 의대나 법대, 인문과학도 좋지만 자연과학을 탐구하는 것이 더 장래성이 있는 점을 깊이 헤아릴 필요가 있다. 시대를 앞서 보는 눈, 그리고 희소가치성이 중요하다. 지금 인기가 있는 학과를 무작정 눈앞의 인기만 보고 선호하는 것은, 한창 잘 되는 장사가 곧 한물가게 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임양은 주필
지역신문 활성화 작업이 점차 구체화되고 있다. 지난 9월20일 고흥길의원 등 한나라당 의원 11명이 ‘지방언론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발의한데 이어 최근 10월18일에는 김성호의원 등 여야의원 27명이 ‘지역신문발전지원법안’을 국회에 제출한 것이다. 법안 명칭이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지역신문에 대한 지원과 발전을 골자로 하는 내용은 대체로 유사하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고흥길 의원 안은 지원대상을 지역일간지 및 발행부수공사에 가입한 신문으로 국한하고 있는데 반해 김성호 의원 안은 지역일간지와 주간지를 모두 포괄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무튼 법안발의로 제출된 두 법안은 공청회를 거쳐서 단일화 법안으로 조율될 것으로 보인다. 지역신문의 발전과 활로모색에 대한 노력은 그간 부단히 있었다. 지속적으로 문제제기가 있었지만 이렇다할 대안 없는 탁상공론으로 끝나 버리기 일쑤였고, 설령 대안이 제시됐어도 그때 마다 이런저런 이유로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볼때 최근 제출된 법안들은 지역신문의 활로와 미래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현실적 의지가 담긴 실천적 대안이라는 데 큰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국회에서의 단일 입법화 노력 외에도 지역신문이 헤쳐 나아가야할 문제는 적지 않다. 신문지배 구조 개혁 및 편집권 독립, 취재시스템 개혁과 언론인 전문성 제고, 관언유착 근절, 독자주권확보, 신문판매시장 정상화 등과 같은 현안과 개혁과제들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지역신문에 대한 지원논의를 두고 일각에서는 우려의 시각도 갖고 있다. 지원법 논의가 시작되자마자 일부 지역신문에서는 개혁적인 부분들은 뒷전으로 한 채 발전기금지원에만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만일 그런 안이한 태도로 기금지원에만 관심을 갖는 신문이 있다면 그들은 크게 오산하고 있음을 알아야한다. 객관적으로 검증가능한 철저한 기준과 평가의 계량화작업 등을 거쳐 차등적 지원이 이뤄질 것이며 이에 따라 일정기준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신문은 지원의 대상에서 제외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깨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기준미달 신문에 대한 지원이 오히려 지역신문시장의 부실을 더욱 고착화시키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지만 이는 법안에 담긴 진의를 이해하지 못한데서 나온 말이다. 건전한 신문은 지원하여 살리되 그렇지 않은 신문은 신문시장에서 자연적으로 퇴출되도록 하겠다는 뜻도 동시에 이 법안에 담겨져 있다는 것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즉 건전한 신문으로 발전하도록 유도한다는 지원의 기회를 제시하는 반면 부실한 신문 스스로에게는 자정의 기회가 된다는 두 가지 참 뜻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일부 거대 중앙신문들은 지역신문 지원에 모종의 정치적 의도가 숨어있는 것이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하고 있지만 이는 사실을 크게 왜곡하는 처사이다. 지역신문발전을 위한 노력은 오랫동안 부패의 온상이 되어왔던 기자실문제 등 관언유착의 고리를 끊는 데에도 역점을 두고 있다. 신문개혁 실천에 대한 노력 없이 지역신문발전을 위한 지원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또 지방분권이 이루어져 재정과 권한이 이양된다고 해도 관언유착이 근절되지 않는 한 결국 ‘그들만의 잔치’가 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지역신문의 개혁과 발전은 마차의 양 바퀴와도 같다. 어느 하나라도 부실하면 붕괴되는 공동체적 관계에 있다. 개혁과 발전이 성공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법·제도를 통한 국가적 차원의 지원노력도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힘들다. 사회시민단체, 학계, 정치권 등은 물론이며, 특히 개혁과 발전의 주체인 지역신문이 각고의 노력을 경주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다. 무엇보다 지역신문들 스스로 개혁적이며 능동적인 참여가 절실히 요청된다. /최경진.대구카톨릭대 교수.언론학
대부분 종교의 탄생과정에는 박해와 탄압의 역사가 숨어 있다. 그래서 종교는 순교자의 죽음을 거름으로 꽃을 피운다. 우리나라 종교도 예외는 아니다. 생애의 대부분을 인도 캘커타의 빈민가에서 빈자의 성녀로 살다 간 테레사수녀에 대한 복자(福者)의 반열에 오르는 시복식(諡福式)이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거행된 장면을 얼마전에 TV를 통해 보았다. 자그마치 30만명이 넘는 인파가 운집했다. 시복은 카톨릭에서 신앙이나 순교로 이름이 높은 이에게 복자라는 칭호를 내리고 그를 공경하도록 선언하는 종교의식이다. 성인의 전 단계인 시복을 받은 순교자가 우리나라에도 79위가 있다. 안성시 양성면 미산리 골짜기에 위치한 미리내 성지에 그를 기념하는 경당이 자리하고 있다. 그곳은 우리나라 최초로 천주교신부가 되었다가 병오(1846년)박해 때 순교한 김대건 신부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는 곳이다. 밤이면 달빛 아래 불빛이 은하수처럼 보인다 해서 붙여졌다는 미리내가 요즘 심한 몸살을 앓고 있어 시끄럽다. 세계적인 종교성지 턱 앞에 골프장을 만든다는 것이다. 참 무식한 일이다. 무식(無識)이 무언가. 상식도 없고, 지식도 없다는 뜻이다. 1백여년전에 천주교회당이 설립되어 지금은 25만평의 부지에 한국순교자 103위시성기념 성당, 성 안드레아 김대건신부 묘소와 한국순교자 79위 시복기념 경당이 자리하고 있다. 이제는 축령산 자락에 성지로서의 면모를 뚜렷하게 갖추고 있고 다른 나라 성지에 비교해도 뒤처질 게 없을 정도로 잘 가꿔져 있어 기도와 순례의 성소로서 많은 국내외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성지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 곳이 아니다. 종교적 관점에서 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현장에서 신앙의 위대함과 영원함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성지는 주변 환경조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신심을 달구는 거룩하고 성스런운 땅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몇 해전 이곳은 홍수가 나서 마을과 논밭을 휩쓸어 간 적이 있는 수해위험지역이기도 하다. 수해방지를 위해서 뿌리가 긴 나무를 심어도 될까말까 할텐데 이곳에 뿌리가 얕은 잔디를 심어놓는다면 어찌 될 것인가. 도대체 그런 발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다. 골프장을 허가해 줘 세수(稅收)증대에 얼마나 보탬이 되는 지는 몰라도 오히려 국내외 순례자가 찾아와 평화와 위로를 얻고 가는 세계적인 성지로 만들어 가는 편이 훨씬 바람직한 방향일 것이다. 엎지른 물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훈동.수원예총회장
불우이웃돕기 성금, 수해성금, 연말연시 성금에서부터 지난해엔 월드컵 열풍으로 모금된 유소년 축구성금 등 무슨 일만 생기면 앞장서 돈을 모으는 것은 방송국이다. ARS를 통해 모금한 액수를 보면 많게는 수천억원에 이르는 일도 있다. 과연 이 돈이 본래의 취지에 맞게 올바로 쓰이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지금껏 그렇게 모인 돈이 어떻게 쓰였는지 투명하게 밝힌 일이 없었다는 점에 미루어, 사람들의 작은 정성 하나 하나가 보람된 일이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ARS를 통해 모금한 돈은 단돈 천 원이 아니라 진정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원하는 간절한 바람과 따뜻한 마음의 표출이라고 생각한다. 그 돈이 혹시나 제 갈 길을 잃고 엉뚱한 곳에 쓰였다면 푸근한 민심마저 외면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에 씁쓸하다. 각종 성금모금을 하는 방송들은 누가 얼마만큼 많이 냈는지를 혈안이 돼서 칭찬해주고, 경합시키기 보단 국민 한사람 한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따뜻하게 쓰였는지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국민들도 보람을 느끼고 더 적극적인 모금활동 및 봉사활동에 나설 것이다. /안미정·대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