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푸드트럭’은 청년 기망이었나

경기일보 취재진이 푸드트럭 한 대의 역사를 풀었다. 화성시 한 중고차 매장에 먼지 쌓인 트럭이다. ‘8호 트럭’이라 불리는 이 트럭의 시작은 10년 전이다. 30세 청년이 2천만원을 들여 만들었다. ‘김씨네 닭꼬치’로 시작했지만 곧 코로나19가 터졌다. 결국 문을 닫고 2020년 12월 이곳에 매물로 내놨다. 이후 29세 청년이 800만원에 구입했다. ‘츄츄커피’를 시작했지만 역시 간판을 내려야 했다. 다시 중고 매장에 나왔고 지금은 찾는 사람도 없다. 코로나19 영향이 컸다. 푸드트럭은 기본적으로 길거리 장사다. 오가는 유동인구가 절대 조건이다. 그 중에도 축제·행사는 더없는 요건이다. 그 조건이 팬데믹으로 다 사라졌다. ‘김씨네 닭꼬치’는 그 직격탄을 맞았다. 하지만 ‘츄츄커피’는 사정이 다르다. 유동인구 규제, 축제 규제가 다 풀렸다. 코로나19 위축에 대한 기저 효과까지 있다. 일부 상권은 팬데믹 불황 대비 반등 폭이 더 커졌다. 그런데 ‘8호 트럭’은 살아 남지 못했다. 달리 보인다. 푸드트럭의 생존 조건이 무너진 것이다. 제일 중요한 영업 장소가 사라졌다. 경기도에 한때 79곳의 허가 구역이 있었다. 지금 운영 가능한 곳은 27곳에 불과하다. 65%가 최근 2~3년 새 사라졌다. 경기도에 운영 중인 푸드트럭이 800여대다. 800대가 27곳에 비집고 들어가야 한다. 행사·축제장 입점 비용도 부담이다. 회당 100만원을 내야 하는 곳이 많다. 장소든 비용이든 결국은 기존 상권과의 충돌이 본질이다. 예상 가능했던 문제다. 이렇게 충돌이 뻔한 사업이었다. 이런 구렁텅이에 청년들을 밀어넣었다. 2014년 3월, 정부가 기업 현장 애로 및 유망 서비스 산업 육성을 약속했다. 그 중심에 푸드트럭이 있었다. ‘6천명 이상의 일자리 창출과 400억원 이상의 부가가치 창출 효과가 있다’는 정부 의 청사진도 뿌려댔다. 이걸 지자체가 그대로 받았다. 여기저기 푸드트럭 영업을 허가했다. 그걸 믿고 전국 6개였던 푸드트럭은 2018년 1천개까지 늘었다. 그게 지금 망해가고 있다. 중고차 단지에 켜켜이 쌓여 간다. 임자가 없으니 가격은 갈수록 떨어진다. 3천만원에서 1천만원, 이제 몇백만원이다. 이 가격 저하의 폭이 곧 어느 청년의 고혈이다. 정부·지자체 믿고 쏟아부은 어느 청년의 빚이다. 2015년 이후 창업한 푸드트럭의 40%가 폐업했다. 어떻게 이런 정책이 있을 수 있을까. 그때 그 장관, 그때 그 시장들은 뭐라고 변명할까. 혹시 여전히 괜찮은 미래 산업이라고 우기고 싶을까. 그러기엔 절망적 지표가 이렇게 많은데.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일부 ‘먹방 예능’이 저지른 푸드트럭 기망극이다. 이제 그 참상을 들여다봐야 할 시간이 됐다.

[사설] 육아휴직자 쫓아내는 어느 공기업(GKL)

육아 복지는 이제 ‘좋은 직장’을 가늠하는 척도다. 남성 직장인의 육아휴직도 그 기준에 있다. 얼마나 편하게 쓸 수 있느냐가 비교된다. 삼성전자는 남성육아휴직자가 2021년 이미 1천명을 돌파했다. 2022년에도 1천31명을 기록했다. 현대자동차도 2022년 285명이 사용했다. 포스코도 2019년 33명, 2023년 115명으로 늘었다.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에서 주로 자리 잡고 있다. 당연히 복귀 후 인사에 어떤 불이익도 없다. 남성육아휴직이 일반화된 또 하나의 직군은 공기업이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의 최근 자료를 보자. 339개 공공기관의 남성육아휴직이 5년 새 2배 늘었다. 구체적으로 2019년 2천564명, 2020년 3천149명, 2021년 3천595명, 2022년 5천255명이다. 전체 육아휴직자 가운데 남성육아휴직자가 차지하는 비율도 높아지고 있다. 2019년 14.7%에서 지난해 23.6%로 커졌다. 역시 어떤 불이익도 없음은 당연하다. 그런데 다른 얘기가 있다. 한국관광공사 산하 그랜드코리아레저(GKL) 내 잡음이다. 외국인전용 카지노 ‘세븐럭’을 운영하고 있는 공기업이다. 남성 직원 A씨가 2022년 10월 육아휴직을 썼다. 15년간 카지노 내 부정행위 감시 업무를 했다. 육아휴직이 끝나고 지난해 10월 복직했다. 세 명의 자녀를 양육하느라 근로 시간 단축도 신청해 활용했다. GKL 측이 지난해 12월 정기 인사에서 다른 지역 지점에 딜러로 발령했다. 출퇴근 시간만 1시간30분 가까이 늘어난 지역이다. 딜러는 15년간 그가 해보지 않았던 업무다. 누가 봐도 부당했고 A씨가 항의했다. 그러자 근무지는 원상 회복했는데 딜러는 그대로였다. 결국 A씨가 신고했고 고용노동부도 원직 복직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GKL은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재심을 신청했다. A씨는 “근래 이런 전보의 예가 없다”며 “변호사가 4명이나 붙은 회사 측과 싸우려니 피가 마른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게다가 GKL은 정부의 가족친화인증 기업이다. 여성가족부(한국경영인증원)가 2008년부터 운영하는 제도다. 자녀 출산 및 양육 지원을 위한 시책이다. 선정된 기업은 사업 참여 시 가산점 부여, 은행 대출 금리 우대, 신용보증수수료 감면 등의 혜택도 주어진다. 이런 인증까지 받은 GKL이다. 도대체 이해가 안 된다. 이건 누가 봐도 불이익이다. 고용노동부도 원상복직을 명령했다. 그런데 왜 쟁송까지 하며 맞서는 것인가. 혹여 우리가 모르는 곡절이라도 있는 것인가. 아니면 노골적인 정부 정책 무시인가. 확인이 필요해 보인다.

[사설] 정부•지자체는 공공의료 지원 대책 적극 마련해야

공공의료기관은 저소득층 및 의료 취약계층과 일반 서민들이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는 병원이다. 이들 병원은 수익성보다는 공공보건의료체계 내에서 역할을 하고 있어 어느 의료기관보다도 지역주민들이 거부감 없이 애용하고 있으며, 특히 농어촌 등 지방에서는 지역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최근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공공의료기관 지원이 원활치 않아 공공의료 수행에 심각한 차질을 빚고 있어 이에 대한 지원 대책이 절실하다. 지역거점 공공병원은 전국에 41개가 산재하고 있으며, 경기도에는 경기도의료원 산하 수원의료원 등 일곱 곳의 병원이 있다. 이들 병원들은 코로나19 당시 전국의 환자들을 돌보는 등 공공의료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코로나19가 전국을 강타하고 있을 때 이들 공공병원은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최전선에서 국민건강을 보호하느라 그야말로 사투를 벌이면서 책임을 다했다. 코로나19 사태 당시 정부와 지자체는 공공의료가 행하는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에 대한 대폭적인 지원과 공공병원 및 공공의료 시스템에 대한 개선책을 약속했다. 당시 열악한 환경에 있던 공공병원 의료진은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 약속에 고무돼 코로나19 확산 방지에 최선을 기울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해 5월11일 정부가 코로나19 사태가 종료했음을 의미하는 ‘엔데믹’ 선포 이후 공공병원들은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 소홀로 적자가 눈덩이같이 쌓이고 임금체불까지 발생하는 등 병원 운영에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가 약속했던 대폭적인 지원은 고사하고 손실보상금마저 제대로 지급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지난해 12월에는 보건의료노조가 코로나19 전담병원에 대한 회복기 지원 예산이 대폭 삭감된 것에 반발해 국회 앞에서 단식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공공의료의 중요성은 더욱 증가하고 있다. 더구나 최근 의료파업과 같은 의료분쟁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공공의료의 역할은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는 시점인데, 정부와 지자체가 오히려 공공의료기관을 홀대하는 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사스, 메르스, 코로나19와 같은 비상사태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코로나19와 같은 위기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공공의료기관을 더욱 활성화해야 한다. 공공병원이 지역책임의료기관의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정부와 지자체는 장비와 시설은 물론 임금체계 등 시스템 개선 대폭 지원해야 한다.

[사설] ‘3호선 연장’으로 희망 고문했나

‘서울지하철 3호선 연장·경기 남부 광역 철도’의 밑그림이 알려졌다. 수원·용인·화성·성남시가 공동으로 수행한 용역의 결과다. 지난해 7월 4개 시가 공동 발주한 것으로 새 노선안을 도출했다. 용역에서 제시된 노선은 2개다. 3호선 수서역에서 판교, 수지, 광교, 봉담을 잇는 것이 1안이다. 2·9호선 종합운동장역에서 시작해 수서역을 거쳐 같은 노선을 지나는 것이 2안이다. 4개 시가 협의를 통해 1개 노선을 정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렇게 결정한 노선을 4개 시가 경기도에 전달하기로 했다. 신규 철도망 건설 사업 신청은 시•군이 경기도에 신청하고, 경기도가 취합해 국토부에 신청하는 방식이다. 4개 시•군은 이와 별도로 광역철도 사업에 반영해 달라는 공동건의문도 채택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제5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은 내년 7월께 확정 발표된다. 국토부가 이달까지 광역철도 노선 신청을 받는다. 다음 달에는 지자체 건의 사업 설명회가 예정됐다. 새로운 철도망 계획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하는 결론은 따로 있다. ‘3호선 연장’의 꿈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점이다. 제시된 2개 안 모두 ‘연장’이 아니라 ‘연계’다. 승객이 하차해 서울지하철로 갈아 타야 한다. 당초 ‘3호선 연장의 꿈’은 이런 번거로움이 아니었다. 열차 종류도 다르다. 서울지하철은 10량 규모의 중전철인 데 반해 새 노선은 5량 미만의 전철(MRT)이다. 당초 ‘3호선 연장의 꿈’에는 이런 지역 차별도 없었다. ‘3호선 연장’이 경기 남부권에 등장한 건 2020년 즈음이다.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수서 개발 구상이 시작이었다. 성남•용인•수원시가 움직였다. 용인시는 추진팀까지 가동했다. 진척은 없었다. 거대한 차량기지를 마련할 수 없었다. 21대 총선에서는 해당 지역 공통 공약으로 채택됐다. 이재명 지사와 해당 시장들이 협약까지 했다. 역시 결실은 없었다. 이후 차량기지 상부를 복합 개발하는 이른바 오세훈 구상까지 등장했다. 그런데도 2022년 지방선거에 또다시 나타났다. 화성시까지 ‘부지 내놓을 듯’ 가세했다. 경기도지사와 4개 시장이 협약을 했다. 그 협약의 결론이 이번에 나왔다. ‘3호선 연장 불가’다. 2022년 공무원은 ‘가능성 없다’고 했다. 용인시가 했던 용역에서 사업성 없다고 나왔다. 서울시가 차량기지를 존치한다고 발표했다. 4개 시 합동 용역이 또 사업성이 없다고 나왔다. 뭐가 더 남아 있는가. 더 고문해도 좋을 희망이 있기는 한 것인가. 새로운 노선 설명도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보다 먼저 필요한 설명이 있다. 본래 의미의 3호선 연장은 없어진 것인가. 다음에는 공약하지 않을 것인가. 이 답변부터 듣고 다음 주장을 펴겠다.

[사설] 평택항 세관 경비 허술, 밀수 창구로 악용돼선 안 된다

평택항에서 검거된 수억원대 밀수 용의자가 세관의 조사 과정에서 도주하는 황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밀수품 등을 검문하는 세관 감시초소가 너무 허술하다는 비판과 함께, 관리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달 23일 면세품 등을 밀수하던 50대 남성이 평택직할세관에 붙잡혀 조사를 받던 중 달아났다. 이 남성은 평택과 중국 웨이하이 노선을 운항하는 중국 A선사의 선박 내 면세점에서 물품을 판매하는 매점업주였다. 그는 매점 판매용 담배 등을 선박에서 사용하는 물품 운반차량에 싣고 나오는 수법으로 밀수를 하다 세관에 검거됐다. 사건 당일 남성은 한국산 담배 2천여 보루와 시계, 모자 등 위조 명품, 주류 등 2억원 상당의 밀수품을 차량에 싣고 있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 매점업주는 평택시 포승읍 만호리에 면세점 물품 보관창고도 운영하고 있었다. 그는 조사를 받던 중 창고에 다른 밀수품도 있다며 세관 직원을 창고로 유인한 뒤 직원이 물품을 확인하는 사이 도주했다. 그런데 평택직할세관은 2주가 지나도록 도주 사실을 수사당국에 알리지 않았다. 때문에 은폐 의혹이 일고 있다. 이 매점업주가 밀수품을 반출해 왔는데도 세관 감시초소가 제대로 밀수 차량을 검사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매점업주는 세관 감시초소의 면세점 판매물품 관리 허점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감시초소가 임의로 선정한 일부 제품만 검사하는 점을 악용했다는 것이다. 관세법에 따르면 세관은 선박 내 판매품을 비롯한 선박용품에 대해 전산 또는 수작업으로 검사 대상을 선별하고 있다. 실제 평택직할세관은 밀수 용의자가 신고한 선박 내 판매품 중 전산상에서 임의로 선정한 일부 박스만 확인했다. 여기에 선사가 선박 내 매점을 외주용역으로 관리하며 매점 운영에 관여하지 않는 게 이번 범행으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평택직할세관은 앞으로 선박용품에 대한 검사를 강화할 방침이다. 하지만 매번 모든 선박 내 판매품을 열어 검사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임의 선정 기준을 높여 검사 대상을 늘리는 등 관리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밀수품 등을 검문하는 감시초소가 무방비로 뚫려 그동안 밀수창구로 이용된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우려를 불식시킬 조치를 취해야 한다. 평택항을 통한 교역이 증가하면서 밀수 사범 등도 늘고 있는 만큼 보안 강화도 시급하다. 평택직할세관을 ‘본부세관’으로 승격시킬 필요가 있다. 평택세관은 현재 중국발 직구 폭증 탓에 임계점을 넘었고, 검사 1건에 5초도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업무량 폭증과 심각한 인력부족으로 불법물품의 차단 기능이 한계에 달해 있다. 직할세관을 본부세관으로 승격시켜 효율성을 강화해야 한다.

[사설] 공무원 이름 비공개, 악성민원 막을 근본대책 못 된다

악성 민원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된 지 오래다. 민원에 시달리던 공무원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3월엔 김포시 9급 공무원이 야간 포트홀 공사로 교통정체가 야기되자 다수 민원인들로부터 항의 전화에 시달리고, 온라인에서 신상이 공개되는 등 괴롭힘을 당하다 사망했다. 지난달엔 의정부시청 공무원과 또 다른 김포시청 공무원이 사망했다. 올해 연이어 발생한 사망 사건을 계기로 상당수 지방자치단체가 홈페이지에 공개해 오던 공무원 성명과 업무 등을 비공개로 바꿨다. 일부 기관은 부서 출입문 앞 직원 배치도와 사진도 없앴다. 부산 연제구는 홈페이지에 선출직인 구청장 이름까지 지웠다. 경기도 31개 시·군 중에 12개 지자체가 홈페이지 누리집 조직도에서 직원 이름을 비공개로 전환했다. 김포시와 화성시, 의정부시, 오산시, 과천시, 양평군 등은 ‘김○○’처럼 직원 이름에서 성만 남기고 이름을 익명 표기했다. 수원특례시, 고양특례시, 시흥시, 안성시 등은 직원의 성과 이름 모두를 삭제했다. 직원 이름이 모두 공개된 상태로는 악성 민원으로부터 직원을 보호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직위와 업무, 사무실 전화번호 등만 게재한 것이다. 행정안전부도 이달 초 ‘악성민원 방지 및 민원공무원 보호 강화대책’을 내놓았다. ‘온라인 좌표찍기’의 원인으로 지목된 공무원 개인정보는 비공개 처리가 가능하도록 하고, 민원인이 폭언을 하면 담당 공무원이 먼저 전화를 끊을 수 있도록 한 것이 골자다. 이에 공무원 이름 비공개는 더욱 확산될 것으로 예측된다. 악성 민원은 심각한 인권 침해일 뿐만 아니라 공무방해 행위다. 악성 민원인들로부터 공무원 보호 조치는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무조건 익명 전환이 적절한지에 대해선 의문이다. 자칫 공무원의 책임 회피로 이어질 수 있고, 행정의 투명성을 저해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러잖아도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에 민원 상담을 하려면 담당 부서가 아니라며 전화 ‘뺑뺑이’를 돌리는 사례가 종종 있다. 업무 담당자를 비공개로 하면 익명 뒤에 숨어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공직사회의 익명 전환 추세를 놓고 ‘민원 장벽이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부작용을 막기 위해 각 지자체가 민원인 소통을 강화하는 보완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무조건 비공개로 전환하기보다 지역 사정과 민원 강도에 따라 익명 정도를 달리할 필요가 있다. 공무원 이름 비공개가 악성민원을 근절할 수 있는 근본책이 아닌 만큼 국민 공감대를 이룰 수 있는 실효성 높은 대책을 더 강구해야 한다. 이를 위한 인력, 예산 확충도 뒷받침돼야 한다.

[사설] 인구 4만 연천군, 구석기 문화로 세계를 맞다

작은 돌조각 하나에서 시작된 역사다. 주먹도끼가 발견된 것이 1978년이다. 주한 미군 병사 그레그 보언이 찾아냈다. 발견된 장소가 연천군 한탄강변이다. 이 아슐리안 주먹도끼가 세계 구석기 역사를 바꿨다. 모비우스 하버드대 교수의 이론을 뒤집었다. 서양은 주먹도끼, 동양은 찍개라는 구분이었다. 서양인의 인종적 우월성을 깔고 있는 이론이었다. 아슐리안 주먹도끼가 연천에서 발견됨으로써 동양 구석기 문화 수준이 높아졌다. 46년 흐른 지금, 연천군은 세계의 중심이 됐다. 세계 최고의 구석기 축제를 만들어냈다. 축제는 3일부터 나흘간 연천 전곡리 일대에서 열렸다. 주제는 ‘아슐리안으로부터의 주먹도끼 초대장’이다. 20만㎡의 거대한 유적지가 무대다. 세계 구석기 체험 마당, 구석기 바비큐, 선사 체험 마을, 전곡리안 의상실, 실전 활쏘기 시연·체험 등이 펼쳐졌다. 30만년 전 구석기로 돌아가는 시간여행이다. 어떤 축제에서도 볼 수 없는 현장이다. 30만년 전 한탄강 지역에 살았던 것은 호모 에렉투스다. 주먹도끼뿐 아니라 최초로 불을 사용했다. 이후 호모 사피엔스에게 멸종됐다. 바로 이 호모 에렉투스의 삶을 체험하는 연천 구석기 축제다. 축제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교육이라 할 수 있다. 행사에 참여한 인원만 7만여명에 달했다. 참가자 구성부터 타 축제와 다르다. 학생 등 가족단위 참여가 유독 많다. 남녀노소가 모두 같은 프로그램을 수행할 수 있는 축제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주목할 지점이 있다. 세계인이 인정하는 구석기 축제로의 성장이다. “이 정도의 규모와 지역주민의 참여, 수많은 관광객이 모여 구석기 유산을 주제로 축제를 즐기는 것은 세계적으로 드문 일이다.” 스페인관에서 체험을 시연한 세르다씨의 관전평이다. 그는 박물학자이자 문화유산 관리자다. 스페인 아타푸에르카 선사 유적 전문가이기도 하다. 연천 구석기 축제에만 열 번째 참여다. 세계적 권위자인 그가 내린 축제 평가다. 지방 문화·축제는 지방자치의 꽃이다. 지자체마다 문화를 만들고 축제를 연다. 여기서 심각한 부작용도 생겼다. 근본 없는 축제, 검증 없는 축제가 남발되고 있다. 같은 주제로 중복되는 축제가 충돌하기도 한다. 이런 면에서 연천 구석기 축제는 다르다. 돌도끼 하나를 세계적 문화 축제로 승화시켰다. 의미 있는 구석기 축제, 경쟁 없는 독보적 축제를 만들어냈다. 인구 4만의 연천을 세계에 알리는 쾌거다. 먹거리 만들고, 자긍심 높이고, 지명도 올리는 게 문화라면 그런 문화의 답을 연천군 행정이 보여준 셈이다. 김덕현 연천군수는 “많은 변화를 시도했다”고 했다. 충분히 훌륭했다. 또 ‘내년에도 더욱 다채롭게 준비하겠다’고 했다. 또 기대한다.

[사설] 반대 봇물 평화누리자치도, 사회적 공론화 더 필요하다

경기도가 지난 1일 대국민 공모를 거쳐 경기북부특별자치도(가칭)의 새 이름으로 ‘평화누리특별자치도’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경기도 남북 분도는 김동연 경기지사의 핵심 공약이다. 이에 경기도는 경기 북부의 정체성과 역사성, 미래 지향적인 가치를 담은 새 이름이 필요하다고 보고 대국민 공모전을 진행했고, 총 5만2천435건이 접수됐다. 이 중 10개를 선정해 온라인 투표와 심사위원 심사를 거쳐 최종 대상작으로 ‘평화누리특별자치도’를 뽑았다. 대상 상금은 1천만원으로, 대구에 거주하는 91세 시민이 받았다. 경기 북부지역의 이름으로 ‘평화누리특별자치도’가 발표되자, 반대 여론이 들끓고 있다. 곧바로 경기도민청원 홈페이지에 ‘평화누리자치도를 반대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 글이 올라왔다. 발표 하루도 안 돼 반대 청원은 목표치 1만명을 달성했다. 남양주에 거주한다는 청원인은 “이 분도가 주민들 의견을 반영한 것이 맞느냐”며 “저를 비롯해 이웃 주민 대다수가 경기북도 분리 정책에 반대하는 입장”이라고 했다. 분도 반대 이유로 △인구소멸 시대에 행정력을 나눌 명분이 빈약하고 △경기 북부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근거 또한 빈약하며 △군사지역 및 그린벨트로 면적의 40% 이상 묶여 있는 북쪽에 어느 기업이 투자할 것인지 △도로 확충이나 국가지원 등 청사진도 없으며 △경기남부는 더 발전할 것이나 북부는 이 같은 근거로 더 낙후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김 지사의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는 ‘평화누리 이름을 철회해 달라’, ‘경기 북부 주민들은 평화누리 이름에 반대한다. 누구를 위한 공모전이냐’ 등의 항의가 이어졌다. 연휴 기간에도 여진은 계속됐다. 반대 청원은 7일 오후 4만5천명 가까이 됐고, 해당 청원 외에 평화누리특별자치도 이름 및 경기북도 설치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청원도 수십 개가 올라왔다. 경기 북부지역 커뮤니티별 반대 여론도 거세다. 구리갈매신도시연합회, 양주옥정신도시입주자모임, 왕숙진접오남시민연합, 파주운정신도시 등의 커뮤니티 사이트엔 해당 청원에 동참하자는 내용과 함께 북부특별자치도 반대 글이 넘쳐 나고 있다. 6일부터 미국 출장에 나선 김동연 지사는 도민 청원 답변에 대해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도는 평화누리특별자치도가 확정된 공식 명칭이 아니라며 논란 진화에 나섰다. 경기도는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해야 한다. 경기도지사의 공약이라고 맘대로 진행하면 안 된다. 경기 북부 도민들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은 것은 문제가 많다. 경기도를 남북으로 나누려면 국회에서 특별법을 제정하고 주민투표도 거쳐야 한다. 섣불리 이름 먼저 공모했다가 예산만 낭비하고, 갈등을 키웠다. 충분한 사회적 공론화가 더 필요하다.

[사설] 국힘, ‘영남 지도부’가 낳은 ‘경기 참패’ 기억하라

국민의힘의 차기 당 대표는 누가 될까. 여러 명의 후보가 거론되고 있다. 6선의 주호영 의원(대구 수성갑), 4선에 성공한 김태호 의원(경남 양산을)이 얘기된다. 둘은 영남권을 대표하는 중견 정치인이다. 또 다른 후보군은 수도권 의원·당선인들이다. 윤상현 의원(5선, 인천 동·미추홀)과 권영세 의원(서울 용산), 나경원 당선인(서울 동작을), 그리고 안철수 의원(성남 분당갑)이다. 그리고 절대 강자가 있다.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이다. 정치권의 관심은 온통 한 전 위원장에게 가 있다. 총선에서 형성된 ‘한동훈 계파’가 있다. 당내 세력 분포에서 여전히 절대 우위다. 관건은 본인의 등판 여부다. 당 대표 선거는 현 상태라면 6~8월에 치러진다. 한 전 위원장은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복귀가 너무 빠르다는 여론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그럼에도 ‘한동훈 대표설’은 현 상태의 절대 다수설이다. 한 전 위원장이 전당대회 연기를 부탁했다는 주장까지 전해진다. 경기도 출신 당 대표 탄생은 요원하다. 언론의 ‘수도권 대 영남 구도’부터가 어불성설이다. 수도권 후보라지만 대개 서울 또는 인천 출신이다. 경기도 출신 후보는 안철수 의원이 유일하다. 안 의원의 당선 가능성을 점치는 분석은 많지 않다. 여전히 ‘당내 아웃사이더’ 취급을 받는다. 총선에서 참패했다. 60석 가운데 6석 얻는 데 그쳤다. 이런 경기도에서 당 대표가 탄생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정상적인 분석으로는 대결이 어렵다. 그래서 가는 눈길이 있다. 원내대표다. 당 대표를 보좌해 당을 이끌어 가는 사실상 2인자다. 경기도 출신의 송석준 의원(경기 이천)이 여기 출사표를 던졌다. 이번에 당선돼 3선이 된 송 의원은 경기도당 위원장도 맡고 있다. 경기도 보수를 상징하는 중견 정치인이다. 살폈듯이 경기도 출신 당 대표가 탄생할 가능성은 낮다. 당 대표가 ‘나눠주는’ 지명직 당직에 경기도 당심이 만족할 상황도 아니다. 원내대표를 지켜보는 이유다. 경선 상대로 추경호(대구 달성)·이종배 의원(충북 충주)이 나왔다. 우리가 두 의원을 저평가할 의도는 없다. 단지 경기도 참패의 충격을 상기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해 두려고 한다. 경기도 참패는 그대로 당의 참패가 됐다. 경포당(경기도를 포기한 정당)이라는 자조까지 나왔다. 그랬던 반성이 한 달도 안 됐다. TK와 충청권에 권력을 배려할 여유가 경기도에는 없다. 어찌보면 원내대표는 당이 경기도에 줄 가장 작은 성의일 뿐이다. 이런데도 또 경기도를 떨구고 갈 것인가. 2023년 4월7일의 기억이 생생하다. 원내대표에 대구 출신 윤재옥 의원이 당선됐다. 경쟁자였던 안성 출신 김학용 의원이 떨어졌다. 자유 비밀 투표라지만 그 결과에 우리는 경고했다. ‘1년 뒤 총선에서 경기도 참패가 될 수 있다’. 어쩌면 이번에도 같은 경고를 하게 될지 모른다.

[사설] 가족돌봄청년, 국가와 사회가 무거운 짐 덜어줘야

부모의 보호를 받아야 할 나이에 가족을 부양하고 있는 청년들이 있다. 우리는 이들을 ‘영 케어러(Young Carer·가족돌봄청년)’라 한다. 어린 나이에 생계와 돌봄을 책임져야 하는 이들의 삶은 고달프고 피폐하다. 장애, 질병, 고령 등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가족을 돌보거나 생계를 책임지는 청년들은 학교도 제대로 다니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학업을 마치고 취업을 준비하는 등 미래를 설계할 기회마저 박탈당하고 있다. 영 케어러 문제는 2021년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혼자 간병하다 극심한 생활고에 아버지를 굶겨 사망에 이르게 한 22세 청년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사회 이슈화됐다. 이 청년은 편의점 폐기물로 끼니를 때웠고, 아버지의 대소변을 받아내며 하루하루를 버티다가 결국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 이후 경찰에 신고하고 체포됐다. 청년은 누구보다 도움이 절실했지만 국가의 공적 지원은 닿지 않았다. 보건복지부나 여성가족부 등 정부 부처의 영 케어러 통계나 현황 자료가 전무했다. 이런 상황이니 청년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이뤄졌을리 없다. ‘간병 살인’의 책임이 이 청년에게만 있는 것이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거셌다.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영 케어러는 대략 10만명으로 추정된다. 공부하고 일하며 미래를 준비해야 할 청년들이 주변 도움 없이 고립된 삶을 살고 있다니 안타깝고 씁쓸하다. 경기도에선 현재 영 케어러의 규모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5월 ‘가족돌봄 청소년 및 청년 지원에 관한 조례’를 만든 경기도는 올해 2월에야 실태조사 연구용역 계약을 했다. 아직 본격적인 조사는 시작도 하지 않았다. 당연히 이렇다 할 지원책이 없다. 민간 사회복지단체의 산발적인 일부 지원이 있을 뿐이다. 학업에 열중해야 할 시기에 부양의무를 떠맡아 생계 유지에 나서고 있는 영 케어러를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돌봄 책임을 가족에게만 전가해선 안 된다. 젊은이들에겐 그 시기에 누려야 할 희망의 삶이 있다. 우리의 미래를 이끌어갈 청년들이 이른 나이에 짊어진 무거운 짐을 정부와 지자체가 덜어줘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는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영 케어러를 적극 발굴해야 한다. 그리고 이들이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게 체계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젊은 세대가 비관에 휩싸여 살거나, 무거운 경제적 책임으로 어려운 상황에 홀로 갇혀 살게 해선 안 된다. 국가와 지자체, 이웃이 책임을 분담하고 이들과 함께해야 한다. 경제적인 지원뿐 아니라 부모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심리적 지원책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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