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달 보고 있는데 불현듯 들리는 풍물소리 누군가 이마에 수건 하나 질끈 동이고 무작정 퍼 올리는 그리움 모두 어디 갔나 둥구산 중턱 자욱이 번지는 밥 짓는 저녁연기 밥 먹으라고 부르는 정겨운 어머니 목소리 마을을 송두리째 깔고 누운 서해안 고속도로 시치미 뗀 길은 사뭇 바쁘기만 한데 가슴 속 추억 한 근 뭉텅 베어낸 안주 사람 없는 두레상에 앉아 달빛은 외로워 밤새 제 몸 두드린다 구향순 2007년 창작과 의식으로 등단 시집 귀향연습 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 현재 수원시인협회 사무국장.
비좁은 땅과 조선의 긴 역사를 여기저기 긁고 다닌다 찬 서리엔 헛간에서 겨울잠 자다가 씨앗보다 먼저 달려가 아낙네의 젖은 가슴 파 헤진다. 이성순 창조문학(시), 문예한국(수필)등단. 국제PAN한국본부, 한국문인협회, 소우주시, 편지마을회원.
살면서 기뻤던 날들을 이처럼 샅샅이 찾아 봤었음 좋을 뻔했다 오가면서 살가웠던 사람들을 이처럼 꼼꼼히 챙겨 왔었음 좋을 뻔했다 코스모스 손 흔드는 교외 어느 볕바른 산등성이엔 밤나무 두 그루가 사이좋은 오누이 모양 서 있고 새벽 골짝 맑은 물소리에 귀를 쫑긋거리며 오롯한 아람 속 밤새 달빛 머금어 토실토실 살이 오른 산밤 가족도 놀고 있었다. 임덕원 1954년 안성 출생, 1981년 한국문학 신인작품상 당선, 동인시집 내혜홀 놋마을 한국시 그 흔들림 속에 가득한
산발치 길 따라 동산 숲길 돌아서면 팔달산 재 너머 산허리에 청량한 구름 걸리고 동산에 향기롭게 모인 우리들 가슴마다 태양을 안고 있었다 물결치듯 외쳐대는 구구단 함성은 창문 밖 운동장에 메아리쳐 울리고 나무처럼 하늘 보며 서장대에 오르면 꿈만으로 한 낮이 지치도록 좋았다 이제는 하얗게 바랜 인생의 언저리 젊음도 정열도 점점히 도망치고 다시 뛰고 싶은 추억의 응시가 유년의 그리움으로 투명하다
전쟁의 유물들 상흔들 아픈 가슴들 너무 깊게 너무 허무하게 박혀버린 땅 허리 잘린 민족의 영토 살아가는 역사 한줄기에 철마는 다시 달릴 것이다. 서울역에서 도라산역을 지나야하고 평양역을 지나야하고 두만강역으로 가서 꿈의 철길, 꿈의 미래로 유라시아로 가는 철마를 기다리며 한민족의 영특한 지혜를 갖춰 철마는 곧 달릴 것이다. 민통선을 지워가며 삼팔선을 지워가며 군사분계선을 지워가며 우리의 소원을 콧노래로 아리랑을 힘차게 비목의 가곡을 부드럽게 황성옛터를 보란듯이 부르며 저 철마는 분명 빠르게 달릴 것이다. 방극률 한글학회 한국문인협회 경기문학인협회 회원. 경기시조시인협회 이사. 시집 괜찮아요 아빠 외 5권.
가는지 오는지도 모르고 살 았었네 봄 여름 가을 겨울 꽃가루 날리면 봄인가 찾아온 개나리 진달래 꽃구 경 생각보다 아이들 마스크 먼저 씌우고 단단히 문 닫아 걸고 집 안에 서 쓸쓸히 봄을 봄인 줄 모르고 보냈네 비만 내리면 여름인가 기나긴 장마 속에 빨래 걱정 눅눅한 집안 걱정 무더운 여름을 바다 한번 못 쳐다보고 그져 집안 걱정에 흐려져 여름도 보냈네 가을은 어찌 오고 겨울은 또 어찌 왔던가 반백년 넘게 살아왔건만 나의 계절은 어디로 지나갔 는가 그 옛날에는 가면 아쉽고 오면 반가워 살았더라네 봄이면 들로 산으로 소가고 여름이면 개울에서 물장구 치고 가을이면 밤을따고 겨울이면 썰매타고 봄 여름 가을 겨울 툭툭툭 노란 개나리 위로 떨어지던 봄비 소리인줄 알았던 그 소리가 그 소리가 아니었네 여덟 살 소풍 가던 날 매정하게 개나리 위로 떨어 지던 봄비가 이제야 다시 찾아와 나를 두 드리네 툭툭툭 나를 두드리네 다시 내 인생의 봄을 두드리네 계절을 돌고 돌아 다시 봄으 로 돌아왔네 나도 봄으로 돌아왔네 김수연 제34회 경기여성기예 경진대회 시 부문 우수상 수상작.
밀봉된 꽃잎이 울음처럼 팡, 터진다. 칠월 어느 밤 반지하방의 황달 든 노인, 목젖이 다 보이도록 입을 벌린 채 피어 있다. 달빛이 젖은 입을 보듬는다. 배우식 2003년 시문학으로 등단. 200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문학박사). 시집 그의 몸에 환하게 불을 켜고 싶다, 시조집 인삼반가사유상, 문학평론집 한국 대표시집 50권. 작품 북어가 중학교와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각각 수록. 현재 중앙대문인회 사무처장.
거리에서 행인들의 옷을 바라보면 꽃과 단풍잎 생각이 난다. 붉은 옷을 바라보면 장미꽃과 단풍잎 생각이 나고 분홍빛 옷을 바라보면 진달래꽃 생각이 난다. 노오란빛 옷을 바라보면 개나리꽃과 단풍든 은행잎 생각이 나고 흰옷을 바라보면 아카시아꽃과 찔레꽃 생각이 난다. 보랏빛 옷을 바라보면 도라지꽃과 라일락꽃 생각이 나고 주황빛 옷을 바라보면 나리꽃 생각이 난다. 남빛 옷을 바라보면 나팔꽃 생각이 나고 초록빛 옷을 바라보면 창포꽃 생각이 난다. 행인들의 옷을 바라보면 꽃과 단풍잎 생각이 난다.
그날 밤 우리는 무리 지어 숲속을 걸어 지났다 호수의 물내음이 희끗희끗하게 어둠을 타고 올라왔고 수목들은 밑동을 밝힌 전등불 속에 저마다의 빛깔을 낮추고 모여 서 있었다 그 듬성한 녹색의 불빛 곁을 걸어 지날 때였다 나무들의 웅웅거림과 밤공기를 타고 솟구치는 새들의 날카로운 외침이 사방에서 들려왔고 보문 호수를 비추는 적당히 달아오른 달빛과 둘둘 말린 파라솔의 날개들이 밤새의 소리를 따라 일제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위대한 시인의 시구와 유명한 교수의 강의를 잠재우는 더 위대한 어둠을 걸치고서 우리들은 조촐하게 날아올랐고 이만일천일백칠십칠 일 중에 축제의 날이 며칠이나 되는가를 헤아리며 호반을 떠다녔다 숲이 오슬오슬 한기를 느낄 즈음에야 불이 켜진 숙소가 눈에 들어왔고 우리는 날개를 접어내렸다 더없이 긴 그림자를 숲에다 남기며 길을 돌아와 계단을 오르고 방문이 딱 하고 열리는 소리를 들었고 아, 이제 축제는 끝났어 하는 희미한 독백을 들어야 했다 어둠을 걷어내고 들어선 방 안에는 그러나, 불 밝힌 서울행 티켓과 거실까지 길게 이어진 현수막이 펄럭이고 있었다 -귀가행 축제에 오른 것을 환영합니다 먼 숲에서 새벽별이 날아내리는 소리가 하나 둘 들려왔다 전정희 부산 출생. 단국대 졸업. 시집 바람이 머문자리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국제PEN한국본부 한국현대시인협회 나래시조 한국문학비평가협회 회원.
온 세상 둘러봐도 하늘은 하나인데 겹겹이 쌓여있는 장막 없는 울타리를 걷어낼 꿈을 간직한 한 여인을 보았네 넓고 큰 숙제 하나 심지 낮춰 밝혀 두고 호수처럼 깊은 눈에 노스탤지어 얼비추며 요람을 흔들거리는 한 엄마를 보았네 낯설고 물도 선데 상처까지 동여매고 애환을 희망으로 뭉치고 또 뭉쳐서 한 걸음 꽃길을 피운 한 아내를 보았네 서러움 삼킬 일이 어디 그 뿐이었으랴 넉넉한 고향 닮아 넓고 깊어 푸르른 꿈 영원히 산화하지 않을 빛 한 줄기 보았네 나는 보았네, 장막에 뜬 무지개를 신의 산 알아르차* 날려 보낸 비둘기를 너와 나 다름을 인정하는 날 허물어질 겹 울타리. *알라르차 : 텐산 산맥에 있는 키르기스의 국립공원 최희선 현대시조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조시인협회, 전국공무원문학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낭송위원. 시조집 고독의 城. 2004년 현대시조 작품상, 2016년 경기시조 대상 수상.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파도가 밤새도록 뒤척이다 데려간 건 너와 내가 흘리고 간 추억만은 아니다 조용히 물 밑으로 오는 순례길을 보아라 금방 떠난 막차처럼 열망들을 가둬놓고 모든 것에 때가 있음을 온몸으로 증명한다 우리의 젖은 발목은 그래서 더 황홀하다
사람이 그립다고 꽃들은 피어나고 목소리 그립다고 새들은 날아든다 빈집엔 바람만 저 홀로 대문을 여닫는다 숨결이 빠져나간 둥지의 빈껍데기 사람을 그리다가 몸뚱어리 주저앉아 잡초만 소문처럼 웃자라 빈 뜰을 지킨다 밤새 눈물짓다 주저앉은 양초처럼 수만 번 가라 해도 너울져 오는 파도처럼 불현 듯 가슴 파고드는 첫사랑 내 어머니 서기석 충남 공주 출생. 문예춘추로 등단. 희망의 시인세상 동인. 수원문인협회사무차장.
날계란 깨질까 걷던 그 길에 실바람, 어디선가 등꽃 내음이 싱그럽게 퍼져옵니다. 어머니, 넘나시던 태장면 고갯길에 등나무 꽃이 피었습니다. 고갯길 넘는 112번 버스길 눈 비바람 맞으며 광주리 이고 이 고개를 넘으셨다는 어머니. 내일 팔 계란이 깨질까 언덕배기 이 길을 몇 번이나 쉬었을까 힘겹게 걷던 모습이 울컥 울컥 가시로 피어납니다. 밤마다 쑤시는 관절을 매만지며 가파른 삶 푸념하다 첫새벽 후다닥 광주리이고 나가시던 어머니.. 태장면 고개에 포도송이처럼 영근 등꽃이 그리운 얼굴로 피었습니다. 허정예 강원도 홍천 출생. 문파문학으로 등단. 시집 詩의온도. 한국문인협회, 국제PEN한국본부 회원.
아침나절 아내는 1층 공방에서 홀로 도자기 빚고 사내는 2층 작은방에서 홀로 시를 쓰고 점심 먹고 아내는 1층 공방에서 홀로 도자기 빚고 사내는 2층 작은방에서 홀로 시를 쓰고 저녁에 아내는 1층 공방에서 홀로 도자기 빚고 사내는 2층 작은방에서 홀로 시를 쓰고 내일도 모레도 해가 뜨고 달이 지고 정성수 서울 출생. 경희대 국문학과 졸업, 동 대학원수료. 월간문학 신인작품상 당선, 중3때 낸 시집 개척자를 비롯 사람의 향내 세상에서 가장 짧은시 누드 크로키 기호 여러분 등 12권. 현재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국제PEN한국본부 자문위원.
기다린다는 건 목을 빼는 일이다 햇살이 산 등 살에 눌려 수축하는 저녁 발걸음 소리가 나면 담 너머로 귀가 쫑긋해지는 것이다 어둑한 골목, 지상의 별자리 하루를 버겁게 문대고 귀가하는 가장은 거북목으로 정년을 넘겨야 하고 이력서 한 칸을 채우기 위해 곱사등을 한 청년은 밤의 칠 부 능선을 힘겹게 넘는 것이다 우리가 지상의 별로 살면서 고개를 숙이는 이유라면 어둠에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서, 돌부리에 걸려 쓰러지지 않기 위함이다 정유광 1955년 광주 출생. 2016 국제문학을 통해 문단에 나옴. 2018년 시조 시학 등단 전국 시조백일장 대상 자랑스러운 수원 문학인상 수상. 시조집 가슴에 품은 꽃 시집 가슴에 품은 진주 현 수원 문인협회 부회장.
[시(詩)가 있는 아침] 봄 비 겨우내 참았던 눈물을 드디어 쏟아낸다. 회색빛 세상 속 나 혼자 외로웠다고 그 힘든 계절을 버텨줘 고맙다고 거친 땅 헤집고 올라와 환한 미소 전하는 여리고 순진한 생명들에게 뚝뚝뚝 마음을 전한다. 이제는 내 눈물 받아 줄 친구들 생겼다며 말갛고 고운 얼굴들 위로 마음껏 눈물을 흘린다. 조윤수 제 34회 경기여성기예 경진대회 백일장 시부문 최우수작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두 모퉁이 돌고 돌아 모아진 뜨거운 물 에움길 돌아 구릉길 너머로 제멋대로 하염없는 지평선을 향해 흐른다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심장의 어긋난 마음 물의 숨통을 연다 흔들리며 끓어오르던 붉은 용암처럼 잠시 얽은 자국 보이고 다시 마음의 늪으로 돌아가 생명의 물줄기 모은다 장선희 문파문학으로 등단. 제15회 동남문학상 수상. 문파문인협회, 동남문학회, 한국경기시인협회, 수원시인협회 회원. 수원문학아카데미 시인마을 동인.
봄을 입고 생기 움트는 겨울나무처럼 우리, 변신하러 가자. 꽁꽁 여민 가슴 봄비로 풀어 헤치고 시냇물 되어 강물 되어 바다로 가자. 천년 바위로 야위어 버린 고독한 망부석아 눈부신 봄빛 머금고 녹아 흘러보자. 이 봄이 가면 여름 갈 지나 또 앙상한 겨울이 오고 말테니 우리, 한번쯤은 봄의 향연에 주저 없이 변신하러 가자.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폭죽 터지 듯 피어나는 꽃 잔치 한껏 부풀은 여인들 구례 벚꽃 길에 나섰다. 섬진강 물길 따라 흘러가는 십리 벚꽃 뭉게뭉게 꽃구름 피고 개나리 진달래 일렁이는 고운 빛에 꽃물이 든다. 깃털 털 듯 하르르 흩날리는 꽃비, 함께한 여인들의 볼에서 꽃잎 같은 탄성이 튀밥 튀듯 폭발한다. 깍지 낀 손마다 연분홍 그리움 지긋이 고이고 꽃잎 같은 사랑 겹겹이 파고드는 가슴 안고 아쉬움 디디며 돌아오는 길에 섬진강 꽃바람이 따라 나선다. 양길순 한국문인으로 등단. 경기여류문학회. 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 수원문학아카데미 시인마을 동인.
은빛 물결이 살아 온 흔적만큼 살랑거린다 맛집 나루터매점에서 카푸치노 마시며 존바에즈의 더리버인더파인을 듣는다 마법에서 풀린 듯 되살아나는 지난 시간들 색 바랜 원천유원지 안내판이 흐릿하게 보이고 사라졌던 추억들이 호숫가를 맴돌고 있다 수천광년을 달려와 밤하늘을 수놓았던 별들 범바위집과 가오리와 방패연, 언덕위 카페촌, 오리배 아직도 저수지속에서 단꿈을 꾸고 있다 푸른 웃음으로 가득한 호수 그리움 잔뜩 배인 저녁노을이 매점 앞 나루터를 붉게 물들이고 있다. 정겸(본명 정승렬) 화성 출생. 경희대대학원 사회복지학 전공. 격월간 시사사로 등단. 시집 푸른경전 공무원 궁평항. 공무원문예대전 시부문, 시조부문 행정안전부장관상, 경기시인상 수상. 현재, 한국경기시인협회 이사. 칼럼니스트로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