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Together

△얼마 전 동네 슈퍼에서 빙그레 웃음 짓게 하는 아이스크림이 눈에 띄어 집어들었던 적이 있다. ‘Together’였다. 1973년도에 처음 나온 이 아이스크림에는 추억이 많이도 묻어있다.어쩌다 한통이 생기면 나와 동생은 서로 더 먹겠다고 으르렁거리기를 마다하지 않았고 아이스크림 스푼이 너무 작아 밥숟가락으로 푹푹 떠먹던 생각이 잔영처럼 떠오른다.아이스크림과 같이 흘러나오던 ‘엄마, 아빠도 함께 Together, Together~’하던 노랫가락은 아직도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생생하다. 물론 처음 맛본 바닐라 맛은 지금도 입맛을 다시게 한다. △요즘 케이블 방송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응답하라 1988’에서도 이 아이스크림이 등장한다.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슈퍼 아줌마는 “Together가 겨울임에도 꽤나 잘 나간다”고 한마디를 던진다. 아이스크림 Together는 그렇게 잊혀질듯, 사라질듯하면서도 장장 40년을 넘게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유구한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Together의 의미는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함께’다. 아이스크림 하나도 가족이 ‘함께’ 나눠 먹어야 더 맛있고, 어려운 일도 ‘함께’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다. ‘함께’하면 비록 과정은 소란스러울지 몰라도 결과는 항상 창대하다. 오죽하면 아프리카에는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속담이 있을까. Together란 이름이 이 아이스크림이 그 오랜 시간 사랑받는 비결, 그 자체인지도 모르겠다. △올해 교수들이 선정한 송년 사자성어는 혼영무도(昏庸無道)다. 나라가 온통 어지럽다는 뜻이다.선정이유는 묻지 않아도 알만하다. 굳이 올 한해까지 되짚어 보지 않고 작금의 현실만 보아도 충분하다. 혼영무도의 가장 큰 원흉은 정치권이자 정치인이라고 감히 단정해도 그 누구도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들은 배지를 달 때만 해도 ‘국민과 함께’를 외쳤다. 그러나 그 행태는 4년 내내 국민을 분열시키고 불만만 쌓았다. 이런 정치가 오랫동안 사랑받을 리 없다. 약속을 어겼으니 국민들도 정치에 관심조차 없다. 생명력을 다한 것이다. 내년 봄,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 국회를 국민과 함께 하는 얼굴로 확 바꿔보자.정일형 지역사회부 부국장

[지지대] 삼성전자 이전 ‘說’

10월 3일. 모 경제신문 기사로 시민의 관심이 집중됐다. ‘[단독]삼성전자, 본사기능 서초에서 수원으로 이전’이란 제하의 기사였다. 삼성전자 서초사옥의 주요 지원기능이 수원으로 옮긴다는 내용이었다. 기획, 홍보, 법무, IT 서비스 등 구체적 이전 분야까지 지목됐다. 최대 수혜지역은 수원 영통 지역이라는 후속 기사들이 뒤따랐다. 가장 예민하게 반응한 것은 부동산 시장이었다. 수원 영통, 망포 등의 아파트 거래가가 올랐고 매물이 사라졌다. ▶그리고 두 달여. 지역 내 부동산 경기는 다시 가라앉았다. 매물은 늘었고 거래는 중단됐다. 수원지역만의 현상은 아니다. 정부의 대출 규제 방안이 구체화됐다. 미국 연방준비위원회가 기준금리를 올렸다. 겨울이라는 계절적 요인까지 겹쳤다. 전국의 모든 부동산이 얼어붙었다. 그런데도 수원 지역의 부동산 심리는 약간 다르다. 두 달 전 보도됐던 삼성전자 본사 이전설을 여전히 기웃댄다. 전체 상황과 관계없는 수원만의 부동산 호재가 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 ‘삼성 본사만 오면…’. ▶조용한 두 달이 지나자 관심이 다시 기사로 옮겨간다. ‘과연 믿을 수 있는 기사냐’부터 ‘오보나 과장 보도 아니냐’는 의심이 커진다. 들여다보면 어느 기사에도 정확한 취재원은 없었다. 그저 ‘삼성 관계자’ ‘고위 관계자’ 등의 익명만 있었다. 삼성 전자 수원 사업장의 관계자들 입장도 비슷하다. ‘우리도 기사 보고 알았다’ ‘내부적으로 이전에 대한 어떤 입장도 전달받지 못했다’는 말뿐이다. ▶그렇다고 부정적인 결론을 내기도 뭣하다. ‘이전에 대비해 일부 사무실을 리모델링 하고 있다더라’라거나 ‘기자들이 서울에 있는데 공보 기능만 수원으로 온다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더라’는 등의 말도 나온다. 이전이 수원에 미칠 영향력에 대한 평가들도 흘러나온다. 500~1천명 수준으로 지역에 미칠 이전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언도 있고, 본사 기능의 이전이라면 연관 기업의 동반 이전을 유발해 상당한 파괴력이 있을 것이라는 전언도 있다. 물론 이런 평가자들 역시 ‘개인 생각이니 기사에 쓰지 말라’는 당부를 곁들인다. ▶돌아보면 늘 그랬다. 월급봉투가 있던 시절, 삼성전자의 월급날은 남문 재래시장 상인들엔 대목이었다. 삼성전자가 실적호조로 2조원대 보너스를 받았다던 몇 해 전, 수원 사업장 일대 원룸 가격이 일제히 오르기도 했다. 주가 총액 20%를 움직이는 삼성, 지역 경제 20%를 담당하는 삼성의 위력이다. 그 삼성전자발(發)-출처가 확인되지 않았지만- 본사 이전이라는 화두가 또 한 번 지역을 뒤흔들고 있다. 김종구 논설실장

[지지대] 크리스마스 씰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를 보면 주인공 콰시모도는 등이 많이 굽었다. 결핵의 후유증 때문이다. 우리 몸의 기둥이랄 수 있는 척추뼈에 결핵이 생기면 뼈가 녹아내려 한 덩어리가 되고 등이 굽는다. 예술 작품 속엔 결핵에 걸린 주인공이 많이 등장한다. 푸치니 오페라 ‘라보엠’의 미미는 결핵으로 죽어가는 청순가련형으로 묘사되고,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 영화 ‘레미제라블’의 팡틴도 결핵을 앓다 죽어간다. 결핵에 걸려 일찍 사망한 예술가도 많다. 제인 오스틴(42세), 샬롯 브론테(39세), 모딜리아니(36세), 프란츠 카프카(41세), 이상(27세), 이효석(35세) 등이 그렇다. 결핵은 산업화가 본격화된 18~19세기 유럽에서 크게 유행했다. 사람들이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지 못해 건강이 나쁜데다 작업환경이 좋지않은 공장에서 일하다 보니 결핵이 극성이었다. 결핵은 공기로 전염되기 때문에 공장, 학교, 군대처럼 사람이 집단을 이룬 곳에서 많이 발생했다. 우리나라에선 한국전쟁 후 가난으로 결핵환자가 대량 발생했다. 정부가 결핵퇴치사업을 펼치고, 경제성장과 국민 식생활 개선 등으로 보건의식이 향상됐지만 아직도 인구 10만명당 100명의 환자가 발생한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중 결핵발생률, 유병률, 사망률 모두 1위다. 결핵하면 크리스마스 씰이 생각난다. 유럽에 결핵이 만연할 때 코펜하겐의 우체국 직원이던 아니날 홀벨이 결핵퇴치 기금 마련을 위해 1904년 12월 10일 세계 최초로 발행했다. 우리나라에선 1932년 처음 도입됐다. 이후 1953년 대한결핵협회가 창립되면서 씰은 국가 주도의 국민적인 성금 운동으로 확대됐다.1990년대까지만 해도 성탄카드 옆에 우표와 나란히 붙여졌던 씰은 손편지가 자취를 감추면서 추억 속으로 사라져갔다. 씰 발행량은 2006년 2천200만장에서 계속 줄더니 2014년 1천59만장까지 감소했다. 모금액도 같은 기간 61억원에서 34억원으로 급감했다. 결핵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올해 크리스마스 씰은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K-리그 소속 12개 구단 마스코트를 활용해 발행됐다. 강인한 폐, 건강한 폐활량을 상징하는 축구를 통해 폐 건강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다. 올 연말엔 크리스마스 씰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도 좋겠다. 결핵환자도 돕고 아름다운 기부에 동참할 수 있는 즐거움을 줄 것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혼용무도

교수신문은 연말이면 ‘올해의 사자성어’를 발표한다. 지난 한 해 우리 사회의 세태를 풍자하는 사자성어는 촌철살인의 네 글자로 국민들의 공감을 얻고있다.2008년에는 ‘병을 숨기면서 의사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뜻의 ‘호질기의(護疾忌醫)’가 선정됐다. 괴담을 근거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에 어설프게 대응한 정부 비판 여론이 거센 해였다. 천안함 폭침, 민간인 불법사찰이 있었던 2010년의 사자성어는 ‘장두노미(藏頭露尾ㆍ머리는 겨우 숨겼지만 꼬리가 드러나 보임)’였다. 국민을 설득하는 대신, 진실을 감추려 하는 정부를 비판한 말이다. 박근혜 정부 1년차인 2013년에는 ‘순리를 거슬러 행동한다’는 뜻인 ‘도행역시(倒行逆施)’가 선정됐다. 2014년의 사자성어는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다’는 뜻의 ‘지록위마(指鹿爲馬)’가 꼽혔다. 세월호 참사, 정윤회 국정개입 사건 등 온갖 거짓이 진실인양 우리 사회를 강타했던 해였다. 교수신문은 2015년 한해를 되돌아보는 사자성어로 ‘혼용무도(昏庸無道)’를 꼽았다. ‘마치 암흑에 뒤덮인 것처럼 온통 어지럽고 무도하다’는 뜻이다.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를 가리키는 혼군(昏君)과 용군(庸君)을 함께 이르는 ‘혼용’과, 세상이 어지러워 도리가 제대로 행해지지 않고 있음을 묘사한 ‘논어’의 ‘천하무도(天下無道)’ 가운데 ‘무도’를 더한 표현이다.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의 실정으로 나라 전체의 예법과 도의가 무너져버린 상태를 의미하고 있다. 역사가들은 ‘혼용무도’의 표본으로 중국 진(秦)나라의 두번째 황제 호해를 든다. 기원전 210년 진시황이 지방에 순행갔다가 갑자기 병사하자 환관 조고는 유서를 조작해 적장자가 아닌 호해를 후계자로 옹립하고 뒤에서 국정을 농단했다. 호해는 환관 조고의 농간에 귀가 멀어 실정과 폭정을 거듭하다가 즉위 4년 만에 반란군의 겁박에 의해 자결하고 진은 멸망하게 된다. ‘혼용무도’를 추천한 이승환 고려대 교수는 “연초 메르스 사태로 온 나라의 민심이 흉흉했으나 정부는 이를 통제하지 못하고 무능함을 보여줬다. 중반에는 여당 원내대표에 대한 청와대의 사퇴 압력으로 삼권분립과 의회주의 원칙이 크게 훼손됐고, 후반기에 들어선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으로 국력의 낭비가 초래됐다”고 밝혔다. 혼용무도의 사회, 우리 국민들은 올 한해 얼마나 힘들었을까. 토닥토닥, 수고했다고 스스로를 격려하자.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수원 화성, 알고 보면 다르다

최근 수원 화성을 갔다. 자주 가는 곳이지만, 이번 화성 방문은 특별했다. 해설사와 함께 해서다. 막연히 날 좋은 날 지인들과 함께하는 산책과는 달랐다. 정말 달랐다. 창룡문부터 장안문을 거쳐 서북공심돈, 팔달산 정상에 있는 서장대까지 2시간 넘게 돈 수원 화성은 감탄을 자아냈다. 그 중 백미는 방화수류정이라 불리는 동북각루. 그리고 화홍문이었다. 인공호수인 ‘용연’ 위에 있는 동북각루는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잔치에 맞춰 지은 곳이다. 편액은 꽃을 찾고 버드나무를 따라 노닌다는 뜻의 방화수류정이라고도 불린다.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화려하고 우아한 정자인 이곳은 정조가 연회를 하면서 직접 활을 쏘기도 한 곳이다. 이곳은 왼쪽과 오른쪽이 불균형이어서 통상적인 정자와는 모습이 달랐다. 그 의문은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풀렸다. 정자 중앙에서 볼 때 왼쪽은 영의정을 포함한 3정승이 앉는 곳이어서 좁았고, 오른쪽은 수원의 관료들이 좌정하는 곳이어서 훨씬 넓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독특한 평면과 지붕형태를 갖춰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바로 옆의 화홍문도 압권이었다. 이곳은 화성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수원천 위에 만들어진 곳이다. 화강암과 벽돌로 쌓은 이곳은 7개로 물이 나뉘어지는 칠간수문으로 만들어졌다. 수문 내부에는 쇠창살을 설치해 외부로부터 침입을 차단하도록 했다. 수문ㆍ교량으로 이용되고 비상시에는 총포와 대포를 갖춘 군사시설로 활용됐던 이곳은 실용적 기능성과 아름다운 외관이 조화된 곳이었다. 이곳을 중심으로 당시 정조는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전국적 규모의 큰 시장과 상인들을 유치해 신도시로 발전해 나가도록 했다. 이후 일제 치하에는 유명한 요리집과 기생들이 공생하기도 했다고 한다. 2016년은 수원 화성 방문의 해다. 조상들의 슬기와 지혜가 담겨 있는 수원 화성은 알고 보면 더욱 큰 의미로 다가온다. 이명관 사회부차장

[지지대] 체육단체 통합과 인적 쇄신

오랫동안 줄다리기를 해온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의 통합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런 가운데 경기도체육회와 경기도생활체육회도 12월22일 각각 이사회와 대의원총회를 열어 통합과 현 단체의 해산을 결의한 뒤 오는 29일 통합체육회를 출범시킬 예정이다.시ㆍ도지사가 단체장인 체육회와 민간인 회장인 생활체육회가 진정한 통합을 이루는 것은 전국 17개 시ㆍ도 가운데 경기도가 최초다. ▶그러나 양 단체가 통합을 이룬다 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다. 하부 조직인 시ㆍ군 체육회와 생활체육회, 각 종목단체의 통합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특히, 종목단체간 통합은 상당수 단체의 통합과정에 진통이 예상된다. 아직까지 중앙 조직의 가이드 라인이 명확하지 않아 경기단체의 통합 갈등이 수면위로 떠오르진 않고 있다. 하지만 도 단위 경기단체 중 일부는 이미 치열한 물밑 샅바싸움을 전개하며 주도권을 잡기 위해 전략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겉으로는 희생과 봉사를 외치면서도 내면으로는 ‘밥그릇 싸움’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몸부림 치는 이중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25년 만에 통합을 이루게 될 양대 체육단체에 소속될 종목단체의 통합에 있어서 간과해서는 안될 중요한 한 가지가 있다. 단순한 기구의 통합이 아닌 ‘인적(人的)’인 통합이다. 기자는 지난 25년동안 체육현장을 뛰면서 수 많은 체육인들을 접해왔다. 진정으로 체육을 사랑하고 자기를 희생하면서 봉사하는 참체육인들이 있는가 하면, 체육단체를 자신의 이권과 출세를 위한 ‘입신양명(立身揚名)’의 수단으로 삼고 있는 사람도 많았다.▶양 체육단체의 통합을 기점으로 경기단체장으로서 출연금도 제대로 내지 않은 채 직위를 이용해 사회적인 명성을 과시하고 정치적인 도구로 활용하려는 ‘명함용 단체장’과 경기인 출신이면서 직을 이용해 군림하려는 ‘제왕적 단체장’은 통합 논의에서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또한 경기단체의 실무를 맡고 있는 전무이사(또는 사무국장)의 직업화와 장기집권을 통한 조직의 사유화도 이번 통합 과정서 반드시 제척해야 할 부분이다. 통합체육회의 출범이 단체를 일원화해 효율성을 높이고, 체육 발전의 시너지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인적 쇄신도 반드시 함께 이뤄져야만 한다. 황선학 체육부장

[지지대] 울어라 1988

옆집 엄마(김선영 분)의 부업은 목욕탕 청소다. 아들(고경표 분)이 알아선 안 됐다. 몸 약한 엄마를 끔찍이 챙기는 효자라서다. 하지만, 비밀은 오래가지 못했다. 우연히 엄마의 부업을 알게 됐고 목욕탕을 찾아갔다. 아들의 눈앞에 엄마의 일하는 모습이 목격됐다. 텅 빈 목욕탕에서 허리도 펴지 못하고 청소하는 엄마였다. 아들의 눈에서 폭풍 같은 눈물이 쏟아졌다. 아들의 대학 등록금 마련을 위해 고생하는 엄마였다. 아들은 계속 모르는 척, 철없는 척하기로 한다. ▶딸 보라(류혜영 분)는 서울대생이다. 지적 자만심이 교만에 이를 정도다. 데모를 하지 말라는 아버지에게 “아버지가 뭘 알아. 내가 뭘 잘못했어”라며 대들었다. 그러다가 잠복 중이던 사복경찰에 체포됐다. 그때 엄마(이일화 분)가 달려와 막아섰다. “우리 애는요, 가난해서 학원 못 보내도 공부 잘한 착한 앱니다. 나쁜 애 아닙니다.” 비를 맞은 엄마의 발에선 피가 흐르고 있었다. 결국, 딸은 눈물을 머금고 시위 생활을 정리한다. ▶아버지(성동일 분)는 모친상을 당하고도 태연했다. 조문객과 어울려 술 마시고 웃고 떠들었다. 딸(이혜리 분)의 눈에 여간 이상하지 않았다. 할머니의 죽음 앞에 태연한 아버지가 야속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눈물은 숨겨져 있었다. 미국에 있던 큰아버지가 뒤늦게 귀국했다. 그제야 아버지는 큰아버지 품에 매달려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형, 고생만 하다 간 우리 엄마 불쌍해서 어쩐대”. ▶주인집 아버지(김성균 분)는 철이 없다. 늘 TV 유행어나 입에 담고 사는 실없는 어른이다. 그런 그가 생일만 되면 우울해했다. 가족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생일 우울증’은 치료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발견된 녹음테이프를 들었다. 아들의 어릴 적 재롱이 담긴 테이프였다. 아버지가 말했다. “엄마 목소리. 엄마 목소리가 들린다.” 그제야 생일 우울증의 원인이 밝혀졌다.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응답하라’ 시리즈 3탄, ‘응답하라 1998’이다. ‘1997’ ‘1994’와 전혀 다르다. 앞의 것들이 되살리는 것이 젊은 날의 추억이었다면 ‘1998’은 젊은 날의 슬픔이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의 슬픔, 가족을 떠안았던 아버지들의 슬픔, 자식에게 모든 걸 헌신했던 엄마들의 슬픔…. TV 앞에 40대 시청자들이 울고 있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 모를 그때의 엄마 아버지를 생각하며 울고 있다. 여전히 가족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린 채 울고 있다. ‘실컷 울어라 1988’이다. 김종구 논설실장

[지지대] 수소폭탄

‘북한판 걸그룹’ 모란봉악단의 베이징 공연이 불과 몇시간 전에 전격 취소됐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의 총애를 받는 모란봉악단은 12일 오후 7시30분 베이징 국가대극원에서 공연 예정이었으나 공연 3시간 전에 3일간의 일정 전체를 취소하고 귀국했다. 모란봉악단은 2012년 김정은의 특별 지시로 창단됐고, 김정은의 ‘옛 애인’ ‘첫사랑’으로 알려진 현송월이 단장을 맡아 중국ㆍ한국은 물론 외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공연을 보기 위해 암표값이 1만5천위안(약 271만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의 공연 취소로 모란봉악단의 해외 첫공연은 물거품이 돼버렸다. 북한의 공연 취소는 중국 당국이 공연을 보기로 했던 최고 지도자급 수위를 부부장급(차관급)으로 낮췄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 10일 김정은의 ‘수소폭탄 개발’ 발언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중국 측이 김정은의 발언에 격분해 공연 참석자의 격을 떨어뜨렸고, 이에 김정은이 공연단 귀국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이 최근 평양 평천혁명사적지를 시찰하면서 “오늘 우리 조국은 나라의 자주권과 민족의 존엄을 굳건히 지킬 수소탄(수소폭탄)의 거대한 폭음을 울릴 수 있는 강대한 핵 보유국이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미국 등 여러 국가에서 북의 수소폭탄 보유 가능성에 대해 신뢰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미 백악관 대변인은 “상당히 의심스럽다”며 가능성을 일축했고, 러시아 상원 국방안보위 제1부위원장도 “허풍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이 기존 원자폭탄의 위력을 증강시킨 ‘증폭 핵분열탄’을 개발하고 있고, 이 핵무기 개발에 진전을 이뤘을 가능성은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증폭 핵분열탄은 플루토늄이나 우라늄으로 둘러싸인 원자폭탄의 중심부에 삼중(三重)수소와 중(重)수소를 넣어 폭발력을 높인 핵무기다.일반적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의 중간 단계이며 소형화가 용이해 미사일 탄두로 사용하기 좋다. 현재 북한이 보유한 원자폭탄은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것과 비슷한 10~20㏏(킬로톤) 수준일 것으로 추정된다. 수소폭탄은 원폭에 비해 위력이 100배 이상이다. 북한이 수소폭탄을 보유했을 수도,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북한은 원자폭탄을 가진 것만으로도 위험하고 불안하다. 모란봉악단 공연 취소에서 보여준 것처럼 김정은은 ‘예측 불가능하고 즉흥ㆍ충동적’이기 때문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혐오사회

2015년 한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온라인을 통해 본 2015년 대한민국은 ‘혐오사회’였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에 이어 올해 메르스를 겪으면서 국민들은 의심했고 분노했다. 인터넷에는 여성혐오가 넘치고 이를 참다못한 여성들은 남성혐오로 맞공격했다. 빈 주먹에 흙수저 밖에 쥘 게 없는 이들은 ‘지금 여기가 지옥’이라고 외쳤다. 이 모든 감정의 기저에는 혐오 감정이 깔렸다. 빅데이터 분석업체 다음소프트가 올해 SNS 등 온라인 공간에서 회자된 키워드를 분석,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핫 이슈’ 10개를 선정했다. 그 결과, 연간 키워드 중 1위는 총 489만1천684회 언급된 ‘세월호’였다. 세월호 참사는 1년 반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를 무겁게 짓눌렀다. 관련어로는 ‘추모’ ‘기억하다’ ‘침몰’ ‘안전’ ‘분노’가 언급됐다. ‘메르스’는 431만9천515회로 두 번째로 언급량이 많았다. 연관어로는 ‘확산’과 ‘격리’ ‘의심’ ‘공포’ 등이 언급됐다. 3위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로 관련어는 ‘반대하다’ ‘올바른’ ‘논란’ ‘강행’ ‘나쁜’ 등의 순으로 나왔다. 4위는 국정원으로 연관어로 ‘의혹’과 ‘불법’이 언급됐다. ‘김치녀’ ‘된장녀’ 등 여성을 혐오하는 인터넷 남성 댓글부대를 미러링(똑같이 따라 함)한 메갈리아도 화제였다. 연관어로는 ‘여혐’이 많았다. 자신의 노력보다는 타고난 환경이 인생의 모든 것을 결정짓는다는 ‘수저론’도 온라인을 달궜다. 흙수저로 태어나 희망없는 이들은 대한민국이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시대와 다를 바 없다며 ‘헬(hellㆍ지옥)조선’이라 했다. 관련어로 ‘미치다’ ‘열받다’ 등이 언급됐다. 우리는 누군가를 ‘혐오’한다는 말을 너무 쉽게 한다. ‘극도로 혐오한다’며 ‘극혐’이란 저주에 가까운 말을 퍼붓기도 한다. 예전엔 혐모의 감정이나 대상이 정부, 지역, 시설 등 단순했는데 지금은 성, 계급, 인종, 개인의 취향 등 복잡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적으로 인식하고 편 갈라 싸우는 모습이 마치 좀비 영화를 보는 듯하다. 한국사회가 혐오사회가 된 것은 자신의 욕망과 노력이 반영되지 않는 사회구조가 사람들 마음 속에 혐오감정을 키웠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현실을 극복할 뾰족한 방법이 없기 때문에 분노 등 부정적 감정이 팽배하다는 것이다. 혐오사회는 불행한 사회다. 함께 희망을 만들어 나가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자가격리자

참 지독한 눈병이었다. 한여름도 아닌 늦가을에 불쑥 찾아온 눈병(악성 결막염)은 한 달 가까이 기자를 괴롭혔다. 보통 3~4일에 끝나 버린 무수한 결막염은 ‘새발의 피’였다. 전체가 붉게 물든 눈동자는 기본이고,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에다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정도의 눈부심 현상은 기자를 왕따 아닌 왕따로 만들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10일간의 병가를 써야 했기 때문이다. 두문불출(杜門不出)식 하루 일과는 이랬다. 먹고 자고 화장실 가고, 틈틈이 눈에 약 넣고 음악을 듣거나 선글라스를 낀 채 TV를 보는 것이었다. 지인들로부터 웬 호강이냐고 엉뚱한 부러움도 샀지만 당사자에겐 크나큰 고통이었다. 눈이 불편한 것을 떠나 온종일 밀려드는 고독함 때문이었다. 눈병으로 인한 자가격리의 심적 고통도 이랬건만, 지난 5월 이후 전국에 몰아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자가격리자들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싶다. 당시 자가격리자는 전국적으로 1만6천693명이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자가격리 기간동안 아무도 없는 세상에 버려진 것 같았고, 무슨 엄청난 전염병의 원인이라도 된 듯 당혹감과 공포를 경험했다고 입을 모았다. 게다가 보건당국은 일정 분량의 라면과 즉석밥, 반찬, 체온계, 마스크, 손소독제 등 생필품을 가져다주고 하루에 단 두차례만 상태를 검사했을 뿐 심적 고통을 위한 해결책은 없었다고 한다. 특히 격리 지침이 허술해 위생 관리와 감염 예방은 상당 부분 개인의 몫으로 떠넘겨져 자가격리자로 하여금 불안감을 한층 더 가중시켰다. 이런 자가격리자에게 나라와 지자체가 보상을 해준다고 한다. 메르스 통합정보시스템(PHIS)에 등재된 해당자에 한해 관련법에 따라 1인 가구 40만 9천원, 4인 가구 110만 5천600원 등 긴급생계비를 차등 지원했거나 절차를 밟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자가격리자들의 마음의 병이 수개월 후에 지급되는 보상금으로 치료될 부분은 아니다. 일단 덮고 지나가려는 식의 대책은 우리 사회를 더 병들게 할 것이다. 보건당국은 메르스와 보상까지의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타산지석(他山之石) 삼아 국가 재난 시 국민의 마음부터 보듬을 수 있는 단단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이용성 사회부장

[지지대] 아는 만큼 보입니다

지난 11월27일부터 3일간 서울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천일의 앤, 불운의 왕비 앤불린의 이야기인 오페라 안나 볼레나가 공연됐다. 오페라 안나 볼레나의 초연은 1830년 12월26일 이탈리아 밀라노였고, 국내에서는 초연이다. 줄거리를 요약하면 이렇다. 영국 왕 헨리 8세 여섯명의 부인 중 두번째 부인이었던 앤블린이 왕으로부터 버림받은 후 단두형으로 생을 마치는 스토리다.공연 자체만으로도 감동을 받기에 부족하지 않다. 단순한 공연관람 이전에 작곡가 도니제티, 헨리 8세, 당시 영국의 시대 상황 등을 파악하고 공연을 즐긴다면 관객의 감동은 더했을 것으로 본다. ▶지난 7일 서울의 한 공연장에서 1천여명의 중학생이 단체관람하던 뮤지컬 공연장. 객석에서 무대와 스태프를 향해 비비탄이 발사됐다. 첫번째 비비탄은 공연이 시작된지 얼마 안돼 무대로, 두번째 비비탄은 공연 종료를 얼마 남기지 않은 시간에 스태프에게 날라왔다. 제작사 측이 공연 종료 직후 인솔 교사들과 합의하에 소지품 검사를 했고, 비비탄을 쏜 학생 4명과 비비탄 총 4정을 압수했다. 관객들이 크게 동요하거나 안전을 위협하는 상황은 아니었다지만 배우들이 정성들여 준비한 공연에 집중하기 힘들었을 것이며, 공연을 보던 다른 학생들도 집중을 못했을 것으로 예측된다. 연말을 맞아 연극, 콘서트, 뮤지컬, 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의 문화예술공연이 열리고 학생들의 단체관람도 이어지고 있다. 학생뿐만 아니라 관객들이 문화예술 공연을 관람하기에 앞서 공연에 대한 작품을 인지하고, 공연 에티켓을 숙지한다면 편안하고 힐링이 되는 공연 관람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2015년 12월 가족들과 시간을 내어 가까운 문화예술 공연장을 찾아 힐링하면 어떨까. 아는 만큼 공연도 보인다. 정근호 정치부장

[지지대] 호남향우회

아무도 손학규 후보의 패배를 예상하지 않았다. 김용남 후보와의 대결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들 했다. 그러나 7ㆍ30 보궐선거(2014년)의 결과는 손 후보 패배였다. 경기도의 심장 수원에서, 경기도의 수장이던 손 후보가 졌다. 젊은 시절 민주화 운동의 가시밭길을 걸었던 그다. 대권을 앞두고는 탄광을 옮겨가며 고역을 마다않던 그다. 포기라곤 모르던 그에게도 ‘수원 패배’는 컸던 모양이다. 선거 다음날 정계은퇴를 선언했고 지금은 전라도 토담집에 있다. ▶돌아보면 패배를 경고한 서곡이 있었다. 선거 운동 초반 수원지역 호남향우회 인사들과 후보 간의 식사 자리가 마련됐다. 그런데 30여개 예약 자리가 대부분 비었다. 집단 불참이었다. 손 후보가 ‘그럴 수 있습니다’라며 주선자 ‘이 사장’을 위로했다. 하지만, 참모들의 충격은 컸다. 더 공개적인 비토도 있었다. 수원시 호남향우회연합회가 “보궐 선거에서 정치적 중립을 지키겠다”고 선언했다. 말이 중립이지 사실상 손 후보를 밀지 않겠다는 공개발표였다. 그렇게 선거가 치러졌고 손 후보는 졌다. ▶호남 향우회는 해병전우회, 고려대 동문회와 함께 ‘저승에서도 뭉칠 3대 모임’이라고 얘기된다. 호남 향우회는 그중에도 정치적 성향이 뚜렷하다. 투표장을 찾는 충성도와 특정 후보를 향한 통일성이 무섭다. DJ(김대중) 정신을 계승한 야당에게는 언제나 든든한 ‘굳은 자’(화투판에서 소유가 확정돼 있는 패)였다. 새정치민주연합이라고 다르지 않다. 당 장악은 친노(親盧)라지만 표 뒷받침은 호남(湖南)이다. 물론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언젠가 사라져야 할 지역주의다. 하지만, 정치판에 엄존한다. 인정할 수밖에 없다. ▶문재인-안철수 충돌의 중심에도 호남이 있다. 총선판이 곧 시작되지만 호남 향우회는 한쪽 발을 빼놓고 있다. 여차 하면 천정배 신당 혹은 안철수 신당으로 옮겨갈 태세다. 문 대표에겐 계륵이고, 안 의원에겐 무기다. 선택의 여지랄 것도 없다. 이겨 보려면 뭉치는 것이고 질려면 갈라서는 것이다. 2014년 그때, 선거를 며칠 앞두고 손학규 후보 측 인사에게 물었다. ‘호남향우회를 저렇게 두고 선거를 치를 것인가’. 그 인사가 대답했다. ‘그럼 어떻게 하나. 싫다고 돌아서 있는데’. 선거 패배를 예상했어도 그랬을까. 어떻게든 잡으려 들지 않았을까. 정치학-Why-과 정치공학-How-이 다르다는 걸 모를 리 없는 인사였는데…. 김종구 논설실장

[지지대] 자선냄비

거리에 구세군의 자선냄비 종소리가 들리면 12월이구나, 또 한해가 가는구나를 실감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빨간 자선냄비가 등장했다. 한국구세군은 지난 1일 서울광장에서 시종식을 갖고 12월 한달 동안 자선냄비 성금모금에 들어갔다.시종식에서 배우 김수현은 자선냄비에 사랑의 쌀 1004포(11.1톤)를 기부하며 첫 테이프를 끊었다. 구세군의 올해 모금 목표액은 지난해보다 2억원이 늘어난 70억원이다. 자선냄비도 지난해보다 100개 많은 450개를 전국 거리에 설치했다. 자선냄비는 1891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해안에서 배가 좌초하자 구세군 사관 조셉 맥피 정위가 거리에 쇠솥을 걸고 ‘국솥을 끓게 합시다’라는 문구로 난민을 위한 기금을 모은 게 시초다. 이후 전 세계로 퍼진 자선냄비는 120여 개국에서 매년 성탄이 가까워지면 실시하는 이웃사랑을 위한 모금 운동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에선 1928년 12월 한국구세군 사령관이었던 박준섭 사관이 명동과 종로 등 서울시내 20여 곳에 자선냄비를 설치해 812원을 모금한 것이 처음이다. 자선냄비 활동은 지금까지 87년째 이어지고 있다. 요즘은 자선냄비에 지폐를 넣는 대신 현장에서 신용카드를 이용해 즉석 기부를 할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상품권이나 로또 복권을 넣기도 하고, 금반지를 넣는 사람도 있다. 그런가 하면 술에 취해 모금활동을 하는 자원봉사자에게 시비를 걸거나, 시민들이 낸 기부금을 슬쩍하는 경우도 있다. 3년 전엔 한 청년이 길거리의 자선냄비를 들고 도망간 사례가 있다. 그는 공중화장실에서 드라이버로 냄비를 뜯어 20만원을 꺼내 갔다가 다른 범죄혐의와 함께 기소돼 징역 1년 6개월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법은 지하철 2호선 서초역에서 자선냄비를 넘어뜨리고 발로 밟은 60세 여성에게 재물손괴 혐의로 지난달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이 여성은 종소리가 시끄러워 이 같은 행동을 했다고 한다. 노숙인들이 자원봉사자에게 와서 “정말 불우한 이웃은 나다. 날 도와달라”며 돈을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경제가 어렵고 세상이 각박해졌다지만 어려운 이웃을 향한 따뜻한 손길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대기업이나 부자들의 거액 기부보다는 보통 시민들의 작은 정성과 사랑이 모아지고 있는 것이다. 올해도 자선냄비가 끓을 수 있도록 작은 정성을 보태보자. 내 맘이 훈훈해질 것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DMZ 궁예도성

‘비무장지대(DMZ) 안에는 한국전쟁과 동시에 멈춰 서버린 금강산 가는 철길도, 버려진 경원선 열차도 녹슬고 부식된 몸체로 누워있다. 주인을 잃어버린 무기도 철모도 나뒹군다. 이제 그 무기와 철모들이 허허로운 여운을 남긴 채 자연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다. 그들의 주인이 그랬던 것처럼. 비무장지대엔 또 하나의 역사가 잠들어있다. 궁예가 건설한 태봉 궁예도성이다. 일제 강점기때 펴낸 책에는 궁예궁터 앞의 석등 사진이 실려있으나 지금은 어찌 되었는지 짐작해볼 도리가 없다. 도성과 유물은 남북의 어떤 책에도 실리지 않은 채 분단으로 긴 세월 잊혀져 왔다. 많은 역사학자들은 궁예와 철원과 태봉, 그리고 DMZ안 베일에 싸여있는 궁예궁터에 주목한다. 남북 공동조사를 통해 궁예도성의 실체를 파악하고 역사적으로 재조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2004년 9월 13일자 경기일보에 썼던 글이다. ‘한반도의 보고 한탄강’ 시리즈를 연재하며 24번째로 ‘DMZ의 궁예도성’을 실었다. 북한에서 발원해 DMZ을 지나 철원을 흐르는 한탄강 취재를 위해 당시 철원을 자주 찾았다. 자연스럽게 궁예를 만났다. 궁예는 한탄강을 끼고 발달한 옥토가 대평원을 이루는 철원에 그가 꿈꾸는 이상사회를 건설하려 했다. 그래서 만든 것이 궁예도성이다. 궁예도성은 ‘고려사지리지’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대동지지’ 등의 옛문헌과 일제가 펴낸 ‘조선보물고적 조사자료’ 등에 나와있다. 1918년 일제가 작성한 지도와 1951년 찍은 항공사진, 1991년 군이 제작한 지도를 토대로 보면, 궁예도성은 군사분계선을 거의 정확히 반으로 나눠 반쪽은 북한, 반쪽은 남한 땅에 위치해 있다. 도성은 남북으로 갈린 것도 서러운데 경원선 철로가 동서로 또 잘라 놓았다. 궁예도성의 규모는 외곽성이 12.5km, 내곽성이 7.7km에 달한다. 한성백제의 풍납토성(전체둘레 3.5km), 신라의 경주월성(1.8km), 고구려의 국내성(2.7km)은 비교도 안될 정도다. 궁예가 ‘영원한 평화가 깃든 평등세계’ 대동방국(大東方國)을 건설하려던 프로젝트가 얼마나 야심찼는가 짐작할 수 있다. 궁예도성의 남북 공동 발굴조사 얘기가 나오고 있다. 개성 만월대에 이어 공동조사가 이뤄질 경우 전쟁과 분단ㆍ냉전의 유산이 화합과 평화의 상징으로 바뀔 수 있다. 이는 민족의 동질성과 역사 정체성을 찾는 중요한 작업이기에 반드시 이뤄지길 기대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경기천년, 천년경기

역사 속 ‘경기’라는 표현은 고려시대 때 등장한다. 서기 1018년 고려 현종 때 개경 주변 지역을 경기라고 불렀다고 한다.학자들은 이때 경기라는 지명이 한국 역사에 처음 기록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후 세월이 흘러 고려, 조선시대를 거쳐 지금의 경기도에 이르고 있다. 오는 2018년은 처음 경기라는 지명이 사용된 이후 천년이 되는 해이다. 경기지역은 천년의 역사가 흐르는 동안 한민족의 영욕을 함께 품었다. 문화를 꽃피우기도 했고, 민족분단의 아픔을 겪기도 했다. 한민족 역사의 크고 작은 장면들이 경기지역에서 이뤄졌다. 그 역사적 흔적은 지금도 경기지역 곳곳에 고스란히 서려 있다. 이같이 역사적 의미가 있는 경기의 천년을 기억하고 기념해야 한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기념해야 하는가 방법론에서는 막연한 것이 사실이다. 통계를 보면 2014년 OECD 국가의 평균 기대 수명은 80.2세, 대한민국은 81.3세로 조사됐다. 100세 시대를 살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까지 백수를 누리는 것이 큰 복으로 여겨진다. 100년도 못사는 사람들이 천년을 논하는 것 자체가 와 닿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경기천년을 새기고 앞으로의 천년을 준비하는 것은 우리 세대를 넘어 미래 세대까지 연결고리를 만들 수 있는 중요한 작업이다. 경기일보와 경기학회는 최근 ‘경기천년, 새로운 천년을 향하여’라는 주제로 ‘2015년 경기천년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50여 명이 넘는 학자, 전문가가 한자리에 모여 경기천년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벌였고 경기천년 기념사업의 방향 등에 대해 의미있는 결과를 내 놓기도 했다.우선 경기천년의 의미를 도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고 도민들의 공감대 속에 제안된 사업 등을 도민들과 함께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경기천년 기념사업은 경기도를 넘어 대한민국 역사에도 중요한 사업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이번 경기천년 학술대회가 경기천년과 새로운 천년을 준비하는 초석이 되길 기대해 본다. 이선호 문화부장

[지지대] 좀비기업 구조조정

되살아난 시체를 뜻하는 ‘좀비’는 육체는 살아 움직이지만, 영혼은 죽어 있는 괴물이다. 반쯤 죽은 것 같은 무기력한 사람을 일컫기도 한다. 지난 1968년 조지 로메로 감독의 영화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Day of The Dead)’에 첫 등장한 좀비는 전자의 경우다.영화는 무덤을 박차고 나온 시체(좀비)들의 공격을 받은 인간의 절망과 공포를 다뤘다. 2013년 국내 개봉된 ‘웜 바디스(Warm Bodies)’는 좀비 소년과 인간 소녀가 만나 사랑을 키운다는 로맨스 영화다. 후자의 좀비지만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는 훈남 좀비로 변해 국내 좀비 열풍이 불었다.▶영화나 소설 속에서나 등장했던 좀비가 최근 경제계를 위협하고 있다. 번 돈으로 은행 이자도 못내 건물 등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가며 버티는 기업이 크게 늘고 있어서다. 비단 중소기업만은 아니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2014회계연도 기준 국내 30대 그룹의 1천50개 계열사(금융회사 제외) 가운데 이자보상배율이 1이 되지 않는 곳이 236개(22.5%)나 됐다. 1 미만은 기업의 연간 영업이익이 이자 비용보다도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190개 공공기관 중에서는 40개사(21.1%)가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82개 준정부기관 중에서는 15곳(18.5%)이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내지 못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많은 기업이 빚에 허덕이고 있다. 국제금융협회에 따르면 GDP 대비 우리나라 비금융 기업의 부채 비율은 106%로, 선진국의 90%를 크게 웃돌았다. 우리 기업이 내년에 갚아야 할 빚은 210억 달러로 18개 신흥국 중 가장 많았다. ▶문제는 좀비가 사람을 물면 물린 사람도 좀비가 되는 것처럼 좀비 기업이 성장기업의 발목을 잡는다는 데 있다. 기업을 유지하려고 금융권 등에서 끊임없이 자금 지원을 받다 보면, 정작 자금이 필요한 기업은 제대로 된 금융지원을 받지 못해 기업환경은 악화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야 저금리로 이자 부담이 적어 버틸 수 있었지만, 전망대로 이달 중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후폭풍을 피하기 어렵다. 우량기업마저 위험에 빠뜨리는 부실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한다. 박정임 경제부장

[지지대] 영원한 시장

“○○○부장이 누구십니까.” 모자를 눌러쓴 낯선 이가 편집국에 들어섰다. 나를 찾고 있었다. 내게 건넨 것은 쪽지였다. 심재덕 수원시장이 보낸 것이었다. 48시간째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그였다. 노트를 찢어 쓴 쪽지 한 면에 억울함이 빼곡했다. 또렷이 기억나는 마지막 대목은 이랬다. ‘나는 돈을 받지 않았다. 검찰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그때 모자를 눌러 쓴 이가 누구인지는 지금도 모른다. ▶심 시장은 그날 구속됐다. 건설업체에서 돈을 받은 혐의였다. 몇 달 뒤 1심 판결도 유죄였다. 7개월 만에 보석(保釋)으로 석방됐지만, 다들 시장직은 끝났다고 봤다. 그런데 그가 2002년 6월 선거에 다시 나섰다. ‘나는 죄가 없다. 시장으로 일하고 싶다’며 유세장을 누볐다. 상대 후보의 공세는 가혹했다. ‘심재덕 후보는 당선되더라도 시장실에 들어갈 수 없다’고 몰아세웠다. 결과는 낙선. 무죄가 확정됐을 때 그는 더 이상 시장이 아니었다. ▶야인이 된 그의 명예를 회복시킨 건 시민이었다. 2년 뒤 총선에서 국회의원으로 만들었다. 남들 부러워하는 중앙 정치인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생각이 달랐다. 인계동의 한 식당에서 소주를 곁들일 때다. “조사 도중에 병원에 후송됐는데 엘리베이터 앞에서 쪽지를 복도로 던졌어. 누가 전달했는지는 나도 몰라.” 그러면서 이런 말도 했다. ‘국회의원 배지가 명예회복이 될 순 없어.’ 수원시장에 다시 도전하겠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운명은 그에게 더 이상의 시장을 허락하지 않았다. ▶심 시장에겐 분명 국회의원보다 시장이 컸다. 정당의 유혹에도 무소속을 고집했다. 스스로 ‘수원시민의 당’이라고 말했다. 행사장에서는 늘 국회의원보다 상석(上席)을 고집했다. 행사를 준비하는 공무원들이 곤혹을 치렀다. 시청을 방문한 경기도지사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시정(市政) 설명을 부시장에게 시켰다가 두고두고 갈등을 빚었다. 그런데 수원시민의 자긍심만큼은 그때가 높았다. ‘문화시장’이란 말과 함께 ‘문화시민’이란 말이 나오던 시절이었다. ▶요사이 그런 시장을 보기 어렵다. 틈만 나면 ‘여의도’를 기웃거린다. 때론 3선 때문에라는 이유를, 때론 큰일을 위해서라는 이유를 댄다. 심지어 임기도 안 채우고 총선 판에 뛰어들려고 한다. 스스로 지방정치를 중앙정치의 시녀로 전락시키는 짓이다. 말로는 지방 분권을 얘기하면서 행동은 중앙집권을 갈구하는 짓이다. 그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내던지려는 시장직. 그것이 고(故) 심재덕 시장에겐 ‘암(癌)’ 앞에 멈춰버린 ‘영원한 시장’에의 꿈이었다. 김종구 논설실장

[지지대] 남성 육아휴직

페이스북 창립자이자 최고경영자인 마크 저커버그가 최근 “조만간 태어날 딸을 위해 두 달간 유급 육아휴직을 쓰겠다”고 밝혔다. 그는 하버드대 동문인 중국계 미국인 프리실라 챈과 2012년 결혼, 3번이나 유산의 아픔을 겪었다. 어렵게 얻는 딸이라 큰 결심을 했을 수도 있지만 미국사회에서 남성의 육아휴직은 이제 자연스런 일이다. 저커버그는 그의 페북에 “일하는 부부가 새로 태어난 아기와 시간을 보낼 경우 아이들과 가족 모두 만족도가 높아진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소개했다. 페이스북은 이어 내년부터 4개월의 유급 육아휴직 제도를 전 세계 직원들에게 확대 적용한다고 발표했다. 정규직 여성 직원들에게만 적용됐던 4개월 유급 육아휴직제가 남성 직원, 동성부부, 올해 자녀를 입양한 직원에게 모두 적용되는 것이다. 페이스북의 행보는 넷플릭스, 야후, 아마존 등 IT 기업들의 뒤를 이은 것이다. 넷플릭스는 아기 출산 혹은 입양시 최장 1년까지 유급 휴가를 준다고 발표했다. 야후는 여성 직원의 출산휴가를 8주에서 16주로 늘리고, 남성 직원에겐 8주 유급 휴가 제도를 도입했다. 아마존은 6주간의 남성 유급 육아휴직제를 새로 도입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IT 기업의 근로 문화가 가정이나 개인 생활과 양립이 불가능하다는 편견을 바꾸기 위한 조치라고 보도했다. 서양에서는 육아를 하는 젊은 아빠들이 인기다. 기저귀를 갈아주는 아빠라는 뜻을 가진 ‘다이퍼 대디(diaper daddy)’, 육아에 적극적인 북유럽 아빠들을 일컫는 ‘스칸디 대디(Scandi daddy)’는 유행어가 됐다. 브래드 피트같이 기저귀 가방을 들고 다니는 할리우드 남성 스타들도 파파라치에게 자주 포착됐다. 우리나라도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남성 육아휴직을 독려하고 있지만 현실은 쉽지않다. 잡코리아 설문조사에 따르면 남성 직장인 78%가 육아휴직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회사에 눈치가 보여서(53.1%), 경제적으로 힘들어서(31.5%), 승진이나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을까봐(10.3%) 등의 이유였다. 실제 지난해 남성 육아휴직자는 3천421명으로 전체 육아휴직자 중 4.5%에 불과했다. 아이를 낳고 키우기 쉬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남성의 ‘가정 진출’이 불가피하다. ‘육아는 여성의 전유물’이라는 고정관념도 깨져야한다. 일ㆍ가정 양립문화를 만드는데 기업이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헝그리 정신

서울 동대문시장 구석 1평짜리 가게에서 옷을 팔면서도 브랜드 의류 사업을 꿈꿨다. 시장 옷이라는 시선에도 아랑곳않고 소재와 디자인을 고급화하고 여성 캐주얼 브랜드 ‘크로커다일 레이디’ 등으로 미시ㆍ중년 여성을 공략해 대박을 터트렸다.지난 6월엔 60년 전통의 국내 대표 제화 에스콰이아를 인수했다. 최병오 패션그룹형지 회장은 ‘장사로 최고가 되겠다’는 일념과 포기를 모르는 헝그리 정신이 지금의 성공을 이끌었다고 믿고 있다. 최 회장은 전경련 특강에서 “이제는 사람들이 잘 쓰지 않는 헝그리 정신은 어릴 때 가난하고 못 배운 나 자신을 바꾼 말”이라고 말했다. 지난 25일은 정주영 탄생 10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여러 언론에서 정주영 회장을 추모하며 불굴의 도전정신을 집중 조명했다. ‘이봐, 해봤어?’는 정 회장의 기업가 정신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실패가 두려워 노력도 해보지 않고 쉽게 포기하는 부정적 사고에 대한 직격탄이다. 정주영식 경영철학은 헝그리 정신, 용기있는 도전 정신, 통념을 뛰어넘는 창조 정신 등으로 요약된다.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도 헝그리 정신을 강조했다. 그는 매킨토시 컴퓨터로 성공을 거뒀지만 독단적인 기업운영으로 자신이 세운 회사에서 해고되는 아픔을 겪었다. 훗날 위기에 빠진 애플을 구하기 위해 복귀한 그는 아이폰과 아아패드를 출시하며 IT 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그가 경영 일선에 복귀하고 혁신적인 제품을 선보였던 바탕은 배고픔에 대한 옛 기억이다. ‘Stay hungry, Stay foolish(배고픔을 유지하라, 우직함을 유지하라)’는 헝그리 정신을 잘 표현하는 명언이 됐다. 한국 노동자들의 노동 의욕이 세계 최하위권으로 드러났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2015년 세계 인재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61개국 중 54위를 기록했다. 브라질(50위)ㆍ아르헨티나(56위)ㆍ베네수엘라(59위) 등의 남미 국가와 비슷한 수준이다. 한국 경제의 주된 경쟁력이었던 근면하고 의욕 넘치는 근로자는 이제 옛이야기가 됐다. 대다수 언론이 헝그리 정신이 부족하다는 기사를 쏟아냈다. 하지만 노동 의욕이 낮은 것을 젊은이들의 헝그리 정신이 부족한 탓으로만 돌려선 안된다. 열심히 일해도 삶이 나아질 희망이 사라진데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정부와 기업이 좋은 일자리를 공급하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농업&경기도 실세(?)

“예산확보가 이래서 되겠는가? 농업에 관심 없고 안 하려면 농정국 없애라!”(염동식 의원), “넥스트 경기농정을 위해 필요 예산이 100억이라 했는데 고작 5억만 반영됐다.이렇게 하다보면 남 지사 임기가 다 끝나겠다”(원욱희 위원장), “농정예산이 도 전체 일반회계의 3.2%란 정해진 실링안에서 예산을 편성하다 보니 반드시 편성해야 될 사업도 제대로 반영돼지 못했다”(원대식 의원), “농정에 대한 무관심을 넘어 홀대 기조가 올해도 재현됐다. 의원들이 나서 지사를 설득시키겠다”(조재훈 의원), “농업예산 문제는 농업에 대한 남 지사의 인식 부족이라 생각한다”(한이석 의원). 도의회 농정해양위가 2016년도 본예산 심의장에서 발끈하고 나섰다.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어조의 반발이다. 여기에는 여야 의원들이 따로 없었다. 송유면 도 농정국장 이하 집행부 공직자들을 질타한 말이 아니다. 그 칼끝이 농업에 대한 경기도정 민선6기 실세(?)로 향했다. 나아가 농업에 대한 이들의 철학에 대한 아쉬움의 표현이다. 도는 지난해 세수 호조세에 힘입어 근래 보기 드문 예산 황금시기를 맞고 있다. 예산이 넉넉하다 보니 지자체 처음으로 의회에 예산편성권까지 전격 부여했다. 소위 예산권력을 일부 할애한 셈이다. 그 여세는 내년도 본예산까지 이어지고 있다. 줄잡아 전년대비 8% 이상의 예산 증액이 각 부문별로 이뤄졌다. 사업추진에 숨통이 트인 셈이다. 하지만 농업부문은 그 혜택에서 소외됐다는 게 의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수치상으로 전년대비 3% 밖에 증액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일몰사업도 상당부문 뒤따랐다. 주어진 실링에 꽤맞춘 결과다. 농업은 생명산업이다. 6차 산업으로 그 중요성은 날로 증대되고 있다. 과거 60년대 배고픔을 통일벼로 해결했고 녹색, 백색혁명으로 국가발전의 밑거름을 제공했다. ‘농자천하지대본’이란 말이 있다. 농업이 근본이란 뜻일 게다. 이번 예산심의장에서 의원들의 울분은 예산 그 자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관심과 애정이 아직도 요원함을 질타한 것이다. 농업에 대한 민선6기 경기도 리더들의 특별한 구애를 기대해 본다. 김동수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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