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한파(寒波)

1월 강원도 춘천 102 보충대로 입대하고 화천 훈련소에서 신병교육을 받을 때 일이다. 당시 한겨울 화천의 산하는 영하 20~30도를 넘나드는 매서운 추위가 기승을 부렸다. 말로만 전해 들었던 용변이 바로 얼어버리는 현상을 직접 체험하기도 했다. 훈련 중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입김과 흘린 땀방울 등이 찬공기를 만나면서 눈썹과 코 밑에 허옇게 서리가 내리기도 했다. 혹한의 추위 속에서 훈련을 받는 내내 국방부 시계는 어찌나 더디게 가던지….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혹한기에 입대한 탓에 지금도 겨울이 되면 귓바퀴가 불거지고 가려운 가벼운 후유증이 남았다. 1월 군사훈련을 받을 당시의 한파는 내 인생 최악의 추위였다. 최근 연일 한파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한파주의보는 아침 최저기온이 전날 대비 10도 이상 내려가고 평년보다 3도 이상 낮을 때, 아침 최저기온 영하 12도 이하로 2일 이상 지속할 때 내려진다고 한다.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15도 이하 일대는 한파경보가 발령된다. 기온이 급강하할 때 내려지는 이 같은 한파특보는 이번 달에만 벌써 23차례 발령됐다고 한다. 이는 10년 동안 2위의 기록이다. 기상청은 이달 말까지 특보가 더 발령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측했다. 한반도를 덮은 이번 한파와 관련, 기상학자들은 지구 온난화와 관련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 같은 상황이면 겨울이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분위기다. 날씨뿐만 아니라 누리과정 예산 처리 문제로 준예산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는 경기도, 조직 내부 갈등이 표출된 경기문화재단 등도 한겨울 한파특보가 내려진 형국이다. 작금의 첨예한 갈등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다.결국 해결의 출발점은 도민들의 입장에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소통하는 것이다. 갈등을 갈등으로 끝내지 말고, 조직 발전의 초석으로 만들어야 한다. 1월 혹한의 날씨에 군 입대 한 당시에도 오지 않을 것 같았던 봄은 어김없이 오고, 꽃도 피었다. 이선호 문화부장

[지지대] 가정방문과 변색된 사과

김봉두(차승원 분)는 돈을 밝혔다. 촌지를 받다가 들통나 시골 학교로 쫓겨났다. 부임한 학교는 강원도 산골에 산내 분교다. 가난한 농촌 마을에 전교생은 5명뿐이다. 그래도 촌지 욕구는 멈추지 않았다. 생각해 낸 것이 가정 방문이다. 소석(이재응 분)이 집도 그래서 방문했다. 하지만 기대는 무너졌다. 다 쓰러져 가는 집이다. 엄마는 정신병 환자고, 아버지는 집을 나간 지 오래다. 희망이 사라진 김봉두는 사표를 쓰기로 한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어느 날. 김봉두 집 문틈에 봉투 하나가 꽂혀 있었다. ‘양소석’이라고 적혀 있고 3만원이 들어 있었다. 소석이가 학교를 빠지면서 마련한 ‘촌지’다. 소석이네 집으로 달려갔다. 비에 젖은 채 라면을 끓여 먹는 소석이가 눈에 들어왔다. 김봉두가 회초리를 들었다. “누가 너 더러 이런 짓 하라고 했어” “선생님 잘 못했어요, 근데 가지 마세요”. 둘은 부둥켜 안았고, ‘봉투’ 김봉두는 진정한 스승으로 개과천선했다. 영화 ‘선생 김봉두’(2003년)다. ▶영화에서 가정 방문은 극단적인 두 모습으로 그려졌다. 하나는 촌지를 거둬들이는 수단이다. 도시 학교 시절 김봉두는 가정 방문과 술자리로 촌지를 거뒀다. 시골에서 생각해 낸 수금(收金) 방법도 가정 방문이다. 또 다른 모습은 교사와 학생을 이해와 사랑으로 연결하는 매개다. 엄마가 아프고 아버지가 가출한 소석이의 사정은 가정 방문으로 알았다. 3만원 촌지에 울게 한 것도 가정 방문이었다. 우리 현실 속에 비친 가정 방문도 이렇게 두 모습이다. ▶장기 결석하는 아이들이 방치되고 있다. 교육부가 조사했더니 220명이나 됐다. 7명은 행방이 묘연하다. 그 중 한 명이 냉동실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어느 날 학교에서 사라진 아이다. 당연히 찾아봤어야 했다. 하지만 가정 방문은 한 달이 넘어서야 이뤄졌다. 아버지는 “아이가 한 달쯤 뒤에 죽었다”고 진술하고 있다. 어쩌면 그때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었던 건 냉동실에 갇힌 아이의 참혹한 영혼이었을지 모른다.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의 사랑. 이 사랑을 이 시대 선생님들에게 요구하는 건 과욕일까. ▶필자는 가난했다. 선생님의 방문에 엄마는 바빴다. 어렵게 준비한 촌지는 사과였다. 미리 깎아 두면 안 되는 데 그걸 모르셨던 모양이다. 빨갛다 못해 까맣게 변해 버린 사과가 대접 됐다. 그래도 선생님은 맛있게 드셨다. 그 뒤 필자에겐 엄마의 회초리가 날아들었다. 선생님이 하고 가신 폭로(?) 덕이었다. 그 폭로가 뭐였는지 이제 기억도 없고 물어볼 곳도 없다. 그래도 그 변색된 사과와 선생님 방문, 엄마 회초리가 있어 그나마 지금의 내가 있다. 김종구 논설실장

[지지대] 장기 무단결석

2012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킹스카운티 법원은 초등학교 2, 3학년인 두 아들의 무단결석을 방치한 어머니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킹스카운티 교육감은 법정에서 “두 아이가 116일이나 결석해 학교 측이 수차례 전화를 하고 편지를 보냈으나 이를 무시해 고발하게 됐다”고 말했다. 외국에선 학생들의 무단결석을 ‘범죄’로 취급한다. 미국은 각 주마다 다르지만 대개 무단결석 학생의 학부모에게 징역 30일 이상, 벌금 100달러 이상을 부과한다. 영국은 자녀를 2회 이상 무단결석 시킨 학부모에 대해 과태료를 부과하고, 학부모가 이를 납부하지 않거나 2회 이상 과태료 처분을 받을 경우 학부모를 고발하도록 하고 있다. 이럴 경우 법원은 최대 2천500파운드(약 437만원)의 벌금형 또는 3개월의 구금형을 선고할 수 있다. 독일은 무단결석하는 학생의 부모에게 1천유로(132만원) 이상의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일본도 아동이 3일 연속 무단결석하면 학교가 교육청에 보고하고, 학대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경찰이나 아동상담소에 통보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초ㆍ중학생이 정당한 이유없이 7일 이상 결석하면 학교가 학생의 부모에게 ‘출석 독촉장’을 보내도록 돼있다. 2회 이상 독촉장을 보냈는데도 결석하면, 거주지의 읍ㆍ면ㆍ동장이 해당 가정에 대해 다시 출석 독촉을 하고, 또 2회 이상 독촉했는데 결석이 이어지면 교육지원청 교육장이 시ㆍ도 교육감에게 보고하도록 돼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모든 기관이 ‘출석 독촉’만 할 뿐이다. 아동이 어디에 있는지, 안전한 상태인지 확인하긴 어렵다. 현행법이 무단결석을 방조하고 있는 셈이다. 아버지로부터 시신을 훼손당한 부천의 최모군도 2012년 4월 30일 이후 학교에 나오지않아 학교장이 출석 독촉장을 보내고 교사가 가정 방문을 한 이후에도 무단결석이 계속됐으나 별다른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 무단결석이 90일 이상 지속되자 ‘정원 외 관리 대상’으로 지정했을 뿐, 제도권 관리망에선 벗어나 있었다. 현재 뚜렷한 이유 없이 장기 무단결석하고 있는 초등생이 전국적으로 220명에 이르고, 이 중 20명은 행방이 묘연하거나 아동학대가 의심되는 상황인 것으로 파악됐다. 현행법은 장기결석 학생에 대한 관리에 허점이 많다. 거주 파악이 안되면 경찰조사를 의뢰하도록 하는 아동보호법은 국회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서둘러 관련 법을 손질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각서

각서(覺書)는 약속을 지키겠다는 내용을 적은 문서다. 법률행위나 약속을 성실히 이행할 것이며, 각서를 쓴 사람에게 귀책사유가 발생했을 때 책임을 지고 어떤 이의도 제기하지 않을 것임을 증명하는 양식이다. ‘민법’상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의 지급 및 청구와 관련한 쌍방간의 합의서면도 각서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살면서 각서를 쓰게 된다. 재미로 써보는 사람도 있고, 심각한 문제로 쓰게 되는 경우도 있다. 젊은 연인들은 ‘커플각서’를 쓴다. 연인 외에 다른 남자(여자)를 탐내지 말기, 기념일ㆍ생일은 절대 잊지말고 챙기기, 싸울때 욕과 주먹질 하지않기, 칭찬과 대화 자주하기 등 연인끼리 지켜야 할 에티켓을 담는다. ‘부부각서’를 쓰는 사람도 있다. 부부간의 지켜야 할 내용을 담아 서약하는 것으로 도박을 하지 않겠다거나 가정에 충실하겠다라는 내용 등을 담는다. 이런 각서는 별 효력이 없는 가벼운 약속이다. 하지만 배우자의 부정이나 도박 등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을 경우의 각서라면 다르다. 특히 부부간에 이혼을 결정하고 작성하는 이혼합의각서는 위자료와 재산분할, 양육권 등을 명시하게 되는데 법적인 효력을 위해 공증을 받는 경우가 많다. 요즘엔 부모와 자식 간에 효도계약서도 쓴다. 부모가 자식에게 집을 사주거나 재산을 물려주는 대신, 자식은 부모에게 봉양 의무를 다하겠다고 약속하는 내용을 담은 각서다. 지난 연말 대법원이 효도계약을 어긴 아들에게 부모가 물려준 재산을 돌려주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이 60~70대들의 송년ㆍ신년 모임에서 화제가 되면서 이미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준 부모들까지 효도계약서를 쓰는 경우도 적지않다. 민법상 자식에게 조건없이 증여한 재산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돌려받기 어렵다. 이 때문에 섣불리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줬다가 나중에 홀대받거나 버림받을 것을 우려한 부모들이 안전장치로 효도계약서 쓰기에 나선 것이다. 효도계약서의 기본 내용은 ‘부모가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대신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한다’는 것이다. 각서에 들어가는 효도의 세부 내용은 각각 다르다.어떤 부모는 ‘며느리가 입에 맞는 음식을 차려야 한다’는 등의 내용도 요구한단다. 하지만 법적으로 해석이 모호한 조건을 달면 법적 다툼이 벌어졌을 때 효력을 인정받기 어려울 수 있다. 부모 부양마저 계약으로 이뤄지는 것이 씁쓸하지만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하나의 사회현상이 됐다. 이게 우리 사회 자화상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2016년 신년회 화두

1월은 신년회의 달이다. 크고 작은 단체, 개인 할 것 없이 연초에 신년회 개념의 행사를 열고 또다시 열심히 뛰어보자고 다짐한다.올해 각 신년회에서 나온 공통된 화두는 경기 침체 등 어려운 난관이 예상되니 이를 슬기롭게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관, 단체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불확실한 미래, 위기를 헤쳐나가야 한다는 점이 강조됐다. 이렇게 우리는 신년회를 통해 서로 격려하며 병신년 새해를 힘차게 출발했다. 그러나 올해 1월은 여러가지 이유로 사회 전반에 뒤숭숭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각각의 신년회에서 나온 우려가 연초부터 현실화되면서 불안감이 고조되는 상황이다. 정치권은 올해 4월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당리당략에 빠져 이합집산을 반복하며 민생을 외면하고 있다. 중앙 정치권은 선거구 획정을 놓고 이견을 보이면서 민생법안 처리에 아예 손을 놨다. 경기도의회는 누리과정 예산 편성과 관련 여ㆍ야 도의원들이 각자의 의견을 굽히지 않으면서 경기도 초유의 준예산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도민들이 당할 수밖에 없다. 당장 이달 유치원 보육비 지원 여부가 불투명해 지면서 유치원은 물론 학부모까지 혼란에 빠졌다. 올해 경기도가 추진한 신규 지원사업 등에 대한 예산집행에도 브레이크가 걸렸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핵실험 강행으로 국제사회는 물론 한반도의 위기감을 고조시켰다. 경제분야 또한 연초 중국, 일본 증시가 폭락하는 등 불안한 출발을 보이고 있다. 마치 신년회에서 거론됐던 위기가 연초에 몰리는 분위기다. 말 그대로 총체적 난국이다. 요즘은 ‘위기는 기회’라는 말 대신 ‘위기는 위기’라는 자조 섞인 농담을 하기도 하고 흙수저, 금수저, 헬조선 등 부정적인 신조어가 대거 등장해 현 세태를 조롱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에 시급한 것은 연초 수없이 열렸을 신년회에서 나온 화두처럼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힘을 합쳐야 한다는 사회통합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이다. 이선호 문화부장

[지지대] 돈벼락

12일 오전 수원 1번 국도 대로에 600만원의 현금이 뿌려졌다. 자발적으로 도로에 살포한 것이 아니라 대부업체 직원이 현금 600만원을 트렁크에 올려 둔 사실을 모르고 차량을 5㎞가량 운전 하다 도로에 뿌려진 것이다. 분실된 당일에만 500여만원이 주인에게 전달됐다. 시민들이 도로에 뿌려진 돈을 주워 경찰에 신고한 400여만원과 주변 수색으로 찾은 110여만원, 블랙박스 동영상을 통해 돈을 주워 가져간 시민으로부터 16만원을 회수한 돈 등 모두 500여만원이 돌아왔다. 돈을 잃어버린 사람을 생각하며 경찰에 반납한 시민에게는 표창장이 주어질 수도 있지만, 경찰의 추적으로 16만원을 내놓은 시민 2명에게는 점유이탈물횡령으로 형사입건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시민들이 돈을 주울때만 해도 횡재했다고, 운이 좋은 날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오히려 날벼락을 맞는 상황으로 전개될 수도 있다. 하필이면 그 길을 지나간 것이 후회막심으로 되돌아올 수도 있다. ▶이처럼 하늘에서 돈벼락을 맞았다고 좋아하다 큰 코를 다치는 사람을 종종 볼 수 있다. 은행에 돈을 찾으러 갔다가 앞사람이 현금인출기에 두고 간 현금을 신고하지 않고 보관하다가 점유이탈물 횡령 또는 절도 혐의로 처벌받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국내에서 242억원 로또 당첨자가 5년만에 탕진, 사기범으로 전락한 것을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 수십억에서 수백억원 짜리 복권에 당첨된 행운아 중 상당수가 쓸쓸한 결말을 맞게 되는 보도를 심심찮게 접하기도 한다. 최근 미국 복권 파워볼 1등 당첨금이 1조8천억원을 넘어서면서 국경을 넘어 복권을 구입하는 진풍경이 연출되고 있다고 한다. 미국 현지시각 13일 추첨에서 2억9천만분의 1의 경쟁률을 뚫고 당첨되는 행운아는 과연 돈벼락일까, 날벼락일까. 정근호 정치부장

[지지대] 中 전화기 - 美 B52

오산시 하늘에 미국 전략 폭격기 B52가 떴다. 10일 오전 6시 괌 앤더슨 공군기지를 출발했다. 4시간 만인 낮 12시에 오산 상공을 지나갔다. 우리 공군 F15K 전투기 2대와 주한 미공군 F16 전투기 2대가 호위했다. B52가 훑고 지나간 곳은 휴전선 이남 한반도 전부다. 북한의 4차 핵실험 4일만이다. ‘공대지 핵미사일 폭발력 170kt, 지하 벙커를 뚫고 들어가는 벙커버스터 탑재.’ B52의 가공할 위력이 또다시 지면을 채웠다. 한국민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중국과는 직통 전화가 있다. 2015년 12월 31일 개통한 군사 핫라인이다. 2014년 한ㆍ중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안보장치다. 전화 개통 일주일 만에 북한 핵실험이 이뤄졌다. 전화기의 용도가 실전에서 쓰일 첫 계기였다. 그런데 전화는 안 됐다. 중국이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전화기 시연(試演)까지 했던 한민구 국방장관의 일주일 전 모습이 웃음거리가 됐다. 핫라인이 불통이니 군사당국자간 대화가 있을 리 없고, 북핵 사태에서 중국의 역할이 있을 리 없다. ▶작년 9월 박근혜 대통령은 중국 전승절 행사에 참석했다. 시진핑 주석,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나란히 섰다. 사회주의 국가 원수들 사이에 도열한 유일한 자본주의 대표였다. 미국은 곱지 않게 봤고 일본은 강하게 반발했다. 윤병세 외교장관은 한중 관계를 ‘역대 최상’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 대단원의 백미는 한중간 군사 핫라인 개설이었다. 그랬던 핫라인이 불과 일주일만에 무용지물로 확인됐다. 중국의 행보는 한 발자국도 우리 쪽으로 옮겨지지 않았음이 확인됐다. ▶김용식(1913~1995)이라는 외교관이 있었다. 주영대사-외무장관-유엔대사-외무장관-통일원장관-주영대사-주미대사…. 마지막 임무는 이른바 박동선 게이트 사건의 해결사였다. 대한민국 외교는 힘들고 위기일 때마다 그를 선택했다. 훤칠한 키, 매력적인 콧수염, 유창한 영어 실력, 세련된 매너. 지금도 외교가에선 그를 한국 외교의 레전드라 부른다. 그가 과거 TV 프로그램에서 외교관이 갖춰야 할 첫째 요건을 꼽았다. “외교관은 셈을 잘해야 합니다.” ▶박근혜 정부 외교는 ‘껄끄러운 대미관계ㆍ적대적 대일관계ㆍ친밀한 대중관계’였다. 적어도 위안부 타결 전까지는 그랬다. 북한의 4차 핵실험이 터졌고 그 중 2개의 관계가 민 낯을 보였다. 껄끄러운 미국은 B52를 보내왔고, 친밀한 중국은 직통 전화를 꺼버렸다. 김용식씨가 생존했다면 분명히 ‘셈이 틀렸다’고 지적했을 것이다. 많은 국민들도 ‘셈이 틀린 것 같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한국 외교에 쏟아지기 시작한 우려다. 김종구 논설실장

[지지대] 기간제 교사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5층 객실에 있던 단원고 교사 김초원ㆍ이지혜씨는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4층으로 내려갔다가 구명조끼도 입지 못한 채 숨졌다. 하지만 두 교사는 ‘정규직’이 아닌 ‘기간제’ 교사라는 이유로 순직 대상에서 빠졌다.당시 학생들을 구조하다 희생된 교사들은 모두 순직 처리됐지만 두 사람은 끝내 순직을 인정받지 못했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과 헌신 자세는 정규직 교사와 다를 바 없었지만, 정부는 ‘현행법상 불가능하다’며 외면했다. 기간제 교사는 죽음조차 차별받고 있는 현실이다. 최근 이천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30대 기간제 교사를 빗자루로 폭행하고 욕설을 한 사건이 알려지면서 기간제 교사들의 처우가 주목받고 있다. ‘빗자루 폭행’을 당한 교사는 이번 사안을 적극적으로 문제삼지 않고 학생들의 선처를 요구했다. 제자들에게 폭행과 모욕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확산될 경우 계약해지 등의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워 조용히 넘어가길 바랬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기간제 교사는 정교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을 대상으로 휴직, 파견, 연수, 정직, 직위해제 등으로 정규 교사의 결원이 생겼거나 특정 교과를 한시적으로 담당할 필요가 있을 때 기한을 두고 임용한다. 교육부의 ‘2015 초·중·고 교사현황’에 따르면 전체 교사 37만6천355명 중 4만638명이 기간제 교사다. 9명 중 1명이 기간제인 셈이다. 지난해 초등과 중학교에선 기간제 교사가 전년보다 각각 1.4%, 1.0% 감소했지만 고등학교에선 1천200여명 늘었다. 이는 여성뿐 아니라 남성 교원도 육아휴직을 쓰는 사례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기간제 교사는 교육감의 발령을 거치지 않고 개별학교와 계약을 맺기 때문에 정교사 전환이나 계약 연장 등을 빌미로 과중한 업무를 떠맡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경우가 많다. 이렇다보니 학생들마저 기간제 교사를 차별하고, 심한 경우 폭력ㆍ폭언에 시달리는 교사도 있다. ‘기간제 교사를 때리는게 무슨 잘못이냐’는 SNS 게시물까지 등장할 정도다. 기간제 교사들은 계약직이라는 불안한 고용상황 때문에 학생들로부터 ‘스페어타이어’ 취급을 받는가 하면, 수업태도를 지적해도 무시와 모욕을 당하기 일쑤다. 여교사들은 성희롱도 당한다. 그래도 재계약 불안감 때문에 참고 넘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간제 교사들이 학교 현장에서 더이상 차별과 부당한 대우를 받지않도록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웰다잉법

잘 먹고 잘 살자는 ‘웰빙(well being)’이 유행하더니 요즘은 죽음도 아름답고 품위있게 맞아야 한다는 ‘웰다잉(well dying)’이 화제다. 생의 ‘건강한 마감’을 뜻하는 웰다잉은 죽음의 문제를 무조건 회피할 것이 아니라 미리 준비해 삶을 잘 정리하고 평안하게 맞도록 하자는 것이다. 넓게는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거부하는 존엄사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한다. 죽음을 외면하고 살다보니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죽음에 가족이나 주변인들과 마무리도 못하고 이별하는 경우가 많다. 파생되는 문제도 많다.그래서 최근 정년을 맞이한 베이비붐 세대들은 인생 2막과 함께 아름다운 마무리에도 관심을 갖는다. 자녀들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건강할 때 스스로의 죽음에 대해 고민하고 유언장과 사전의료의향서 작성, 장례나 납골당 준비, 상속 등을 마무리 한다. 건강한 삶을 최대로 유지한 나이를 건강수명이라고 한다. 한국인의 건강수명은 70.7세다. 한국인의 평균수명이 81.2세임을 감안할 때 생을 마감하기까지 10년 정도 병치레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죽기 전 수년 간의 병치레는 자신은 물론 가족까지 힘들게 한다.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의 임종 기간만 늘리는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게 하는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일명 웰다잉법)이 8일 국회를 통과했다. 이로써 환자의 ‘자기 결정’에 따라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등을 중단하고 존엄한 죽음을 맞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1997년 환자 보호자 뜻에 따라 연명치료를 중단했던 의료진이 살인방조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보라매병원 사건 이후 18년 만에 존엄사를 법으로 인정한 것이다. 이 법은 2018년 1월부터 시행된다. 연명의료 중단은 회생 가능성이 없고, 치료해도 회복이 안되며, 사망이 임박한 환자만 가능하다. 임종기 환자 가운데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를 통해 연명의료를 원치않음을 밝혀 두거나, 2명 이상의 가족이 환자의 평소 뜻을 확인해주면 된다. 환자 뜻을 알 수 없다면 가족 전원이 합의해야 가능하다. 웰다잉법은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품위와 가치를 가진 죽음이란 무엇인가 등 ‘죽음의 질’을 고민하며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얻은 결과물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 이는 인생을 잘 사는 법에 대한 고민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병신년 버킷리스트

“아빠는 몇살이야?” 최근 들어 부쩍 말문이 트인 6살 딸아이가 요즘 자주 하는 질문이다. “아빤 38살이야”라는 답변이 “아빤 39살이야”라고 바뀐지도 어느새 일주일이 지났다. 아홉수에 걸렸고, 내년이면 불혹이다. 거참 벌써 40대를 바라보게 된다니 빠르게 흐르는 세월이 무섭기까지 하다.그래서 올해는 예년과는 달리 ‘금연’, ‘운동’ 등 틀에 박힌 새해 다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올 한해, 40대가 되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들을 적어 실천해보는 ‘올해의 버킷리스트(Bucket List)’를 만들어보기로 했다.▶버킷리스트는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을 적은 목록’을 말한다. 버킷리스트는 2007년 개봉한 잭 니컬슨과 모건 프리먼 주연의 할리우드 영화 버킷 리스트 이후 유명세를 탔다. 이 영화는 암에 걸려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은 두 노인이 병원 중환자실에서 만나 각자의 소망 리스트를 실행에 옮겨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사람을 만나고 싶다. 취재현장이든, 지인의 소개 자리든, 출입처든 진심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서로간에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메마른 만남은 피하고 싶다. 어려울 때 힘이 돼주고, 행복할 때 그 행복이 배가 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이게 나의 병신년(丙申年) 버킷리스트 첫 소망이다.▶딸아이의 첫번째 친구가 되고 싶다. 기자라는 직업, 술자리의 연속이다. 그래서 행여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딸아이가 아빠의 빈자리를 느낄까 걱정스럽다. 이건 꼭 지켜야겠다. 짧은 시간을 같이 있더라도 진정성을 가지고 아이와 함께하는 1분, 1초에 집중해야 겠다. 딸아이가 “아빠, 나 어린이집에서 이런 일이 있었어”라는 말을 가장 먼저 해주는 첫번째 짝꿍이 돼야 겠다.▶올해는 20대 총선이 예정돼 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예비 국회의원들도 버킷리스트를 작성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자신을 위한 버킷리스트가 아니라 수저계급론으로 힘들어하는 청년들, 경기불황에 쓰러져가는 자영업자 등 서민들이 행복한 꿈을 꿀 수 있는 버킷리스트를 만들어보라고 말이다. 김규태 경제부 차장

[지지대] 건강이 최고

누구나 그렇듯이 나 역시 새해가 오면 어김없이 ‘결심’이란 걸 한다. 결심이란 게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 경우는 요 몇 년 간 한결같이 ‘살빼기’다. 여성 대다수가 경험했듯이 살빼기만큼 힘든 건 없다. 그래서 번번이 실패하지만, 시작할 때만큼은 의욕이 넘친다. 책상 앞에 평소 선망의 대상인 여배우의 사진( 2013년 잠실야구장 LG트윈스와 두산베어스 경기의 시구 자로 등장한 클라라)을 붙여놓고는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라는 주문을 왼다. 밥 생각이 날 때마다 마음을 다잡는데도 그만한 게 없다.▶그동안 살빼기 결심만 셀 수 없이 해온 터라 관련 상식도 풍부하다. 포도부터 삶은 계란, 사과, 고구마 등 한 가지만 먹는 방법으로 살을 빼는 것부터 쇠고기만 먹는 황제다이어트에 이르기까지 한 번씩은 다 해본 것 같다. 그런데 다년간의 경험을 종합해 보면 운동 없이 살빼기란 불가능하다. 유산소 운동이 가장 좋다고는 알고 있지만, 운동량을 늘리기에는 역부족이다 보니 고육지책으로 택한 게 먹는 양을 줄이는 거다. 빠른 효과를 보려고 아예 저녁 거르기를 감행하는데 그게 오래갈 리가 없다.▶살빼기에 실패하는 원인 중 하나는 자기 위안이다. 스스로 ‘통뼈’를 가졌기 때문에 웬만해선 표도 안 난다고 위로하며 몸무게가 조금 준듯하면 바로 그만둔다. 또 하나는 자책이다. 맛있는 음식을 보면 못 참는 성격 탓에 ‘나는 안 되는 사람’이라며 포기해 버린다. 또 하나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의 발로다. 이제껏 이렇게 살아도 문제없었는데, 이 나이에 누구한테 잘 보이려 먹는 즐거움까지 포기해야 하나 하며 급기야는 ‘먹다죽은 귀신 때깔도 좋다’는 속담까지 끌어와서는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간다.▶비단 나뿐이겠는가. 새해 금연을 결심한 사람들도 이맘때쯤이면 내가 얼마나 더 살겠다고 하며 다시 담배를 꺼내 문다. 헬스클럽 회원권을 끊어놓고 며칠 열심히 러닝머신을 달렸더라도 귀찮아질 때다. 과도한 살빼기는 자칫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실패한 게 오히려 다행이라고 올해도 위안을 삼으면 그만이지만, 금연 결심만큼은 실패해선 안 된다. 건강보다 중요한 건 없다. 요사이 주위에 아픈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라’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 박정임 경제부장

[지지대] 위대한 시민·위대한 유권자

“위대한 시민이 위대한 역사를 만듭니다.” 대통령 선거 유세장에서나 나올 법한 강력한 메시지였다. 한껏 높인 톤과 내용이 듣는 이들을 소름 돋게 했다. 12월 31일 자정 화성행궁 앞 여민각(與民閣)에서다. 해마다 하던 타종식이다. 방방곡곡에서 열리는 행사다. ‘시장’에게도 이미 다섯 번째다. 그런데 이날만은 달라 보였다. 10초 남짓 짧은 인사말 속에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분명했다. ‘송구영신’의 덕담 속에 묻어 버릴 수 없는 뭔가가 있었다. ▶염태영 시장은 설명했다. “여러분 올해는 수원화성 방문의 해가 개최됩니다. 수원 화성 축성 22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입니다. 반드시 성공한 행사로 만들어주십시오.” 소리 소문 없이 4년을 준비했다. 국책연구기관의 타당성 검토도 했다. 시민 서포터스는 어느새 2,200명이나 모였다. 누가 봐도 진득하게 준비해온 수원화성 방문의 해다. 그런데도 염 시장은 노심초사다. ‘요즘 잠이 안 온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2016년 첫날 0시 메시지는 절박했을 게 틀림없다. “위대한 시민이 위대한 역사를 만듭니다”는 그런 절박함이 만들어낸 선창이었다. ▶대한민국 유권자에게 필요한 구호다. 지난 4년간 유권자는 19대 국회를 지켜봤다. 민생 외면하는 국회, 밥그릇 챙기는 국회, 패거리 놀음하는 국회…. 그때마다 유권자들은 결심했다. “너희들 다음 선거 때 두고 보자.” 총선을 100여일 앞둔 지금까지도 그 결기는 유효한 듯 보인다. 모든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0~60%가 ‘현역은 안 찍겠다’고 답하고 있다. 조사 결과를 그대로 대입한다면 20대 국회에 살아 돌아갈 현역은 절반이 안 돼야 맞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표심이란 게 여간 변덕스럽지 않다. 역대로 후한 점수를 받았던 국회는 없다. 거의 모든 여론조사가 ‘현역 배제’ ‘정치 교체’를 강조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면 달랐다. 2선이 3선 되고, 4선이 5선 됐다. 이런 표심을 눈치 못 챌 정치가 아니다. 그러니 ‘현역 교체 요구 70%’라는 여론조사 따윈 거들떠도 안 보는 것이다. 매번 그 얼굴들을 내 보냈고, 그 얼굴끼리 국회에서 재회했다. 이번에도 그렇게 될 거라고 보는 게 확률 높은 배팅인지 모른다. ▶그날 여민각에 시민들은 흥분으로 가득했다. “위대한 시민은 위대한 역사를 만듭니다”라는 시장의 선창에 1천여 시민이 엄청난 함성으로 답했다. 그렇게 해보자는 약속으로 들렸다. 2016 총선 판에도 누군가 선창을 해야 한다. 절박한 마음으로 정치개혁과 국회개혁을 호소해야 한다. “대한민국 유권자 여러분, 위대한 유권자가 위대한 정치를 만듭니다.” 김종구 논설실장

[지지대] 교단이 두려운 교사들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장래 희망직업으로 교사를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 학교진로교육 실태조사’에 따르면 고등학생의 경우 여학생의 15.6%, 남학생의 9%가 희망직업으로 교사를 꼽았다. 중학생도 여학생(19.4%)과 남학생(8.9%) 모두 희망직업 1위로 교사를 꼽았다. 초중고생 학부모들도 자녀의 희망직업으로 교사를 가장 선호했다. 반면 교사들의 직업 만족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꼴찌로 나타났다. 교사의 36.6%, 10명 가운데 4명은 직업을 다시 선택한다면 교사는 하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다. 교사가 된 것을 후회한다는 응답도 20.1%나 됐다. 학생과 학부모가 가장 선호하는 직업이 교사인데 정작 교사의 상당수는 교사라는 직업을 후회하고,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니 아이러니다. 지난달 23일 이천의 한 특성화고에서 학생들이 30대 남자 기간제 교사를 빗자루로 때리며 폭언을 했고, 한 학생은 보란 듯이 이를 촬영해 SNS를 통해 퍼뜨렸다. 수업시간에 교실 안에서 학생들에 의해 이런 폭행이 버젓이 자행된 것을 보면 상습적이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교사 빗자루 폭행’ 사건과 관련, 최근 교권 추락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다시 집중되고 있다. 교육부에 의하면 2010년부터 지난해 1학기까지 총 2만6천411건의 교권 침해가 있었다. 2010년 2천226건에서 2011년에 4천801건으로 두 배 이상 늘더니 2012년에는 7천971건이나 됐다. 2013년과 2014년에도 각각 5천562건, 4천9건이 발생했다. 유형별로 보면 폭언과 욕설이 1만6천485건(62%)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수업진행 방해가 5천538건(21%)이고, 폭행도 436건(2%)이나 됐다. 여교사 성희롱도 375건에 달했으며, 학부모에 의한 교권 침해도 412건이었다. 학부모들은 학교에 찾아와 아이들 앞에서 욕을 하거나 소리치기 일쑤고, 심지어 따귀를 때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매 맞고 욕 먹는 이런 현실에서 교사들이 제대로 스승의 역할을 하기는 어렵다. 교사들은 험한 꼴 한번 당하고 나면 교육적 신념과 의욕이 모두 무너진다고 한다. 교사가 된 걸 후회하고, 교단에 서기가 겁나고, 교단을 떠나고 싶단다. 교사들이 교육에 전념할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더 중요한 건 교권 존중에 대한 밥상머리 교육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새해 소망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한날 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새해가 되면 한번쯤 되새겨보는, 반칠환의 시 ‘새해 첫 기적’이다. 저마다 지난 한해를 다르게 살아왔지만, 우리 모두는 지금 2016년 병신(丙申)년 새해를 맞았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건강하세요, 행복하세요, 대박나세요, 덕담을 건넨다. 그리고 너 나 할 것 없이 분주하게 새해 계획을 세운다. 반드시 취업을 하겠다. 결혼을 하겠다, 금연을 하겠다, 술을 줄이겠다, 살을 빼겠다, 운동을 열심히 하겠다, 책을 많이 읽겠다, 영어회화를 공부하겠다… 등등. 지난해에도 세운 계획이지만 새해를 맞아 새롭게 마음을 다잡는다. 새해는 그런 것이다. 새로운 마음으로 희망을 노래하는 것. 새해가 되면 각 분야에서 ‘새해 한자’를 발표한다. 정치적 상황이나 사회상을 반영해 한 글자로 또는 사자성어로 새해 희망과 각오를 담아낸다. 전국상공회의소 회장단은 새해 한자로 ‘도약하다, 뛰다’의 의미를 가진 ‘跳(도)’를 선정했다. 2015년 한해를 ‘어려웠다’는 뜻의 ‘難(난)’으로 정리하면서, 2016년엔 어려움을 이겨내고 적극적인 도전에 나서 경제 도약을 이루겠다는 바람을 담은 것이다. 跳(도) 이외에 ‘바라다, 희망하다’는 뜻의 ‘希(희)’, ‘살다, 생존하다’는 뜻을 가진 ‘活(활)’도 많은 표를 얻었다. 한국고전번역원은 2016년 ‘올해의 한자’로 ‘살필 성(省)’을 선정했다. 고전번역원은 “2016년은 국회의원 선거가 있는 중요한 해인만큼, 어떤 사람을 국회의원으로 뽑을지 면밀하게 살펴보자는 의미로 풀이된다”고 ‘살필 성’ 선정 배경을 설명했다. 또 “‘성찰’ ‘반성’ ‘자성’ 등에서 보듯 ‘살필 성’에는 지난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고 보다 나은 새해를 맞이하자는 의미도 담고 있다”고 덧붙였다. ‘살필 성’에 이어 ‘밝을 명(明)’과 ‘화할 화(和)’가 2, 3위에 올랐다. ‘명(明)’은 온갖 비리와 부패현상 등의 원인이나 진상이 정확히 밝혀져 투명한 사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화(和)’는 경색된 남북관계와 지역갈등 등이 풀리기 바라는 뜻에서 선택했다는 의견이다. 붉은 원숭이의 해, 뜨겁게 타오르는 열정의 붉은 색과 재주 많고 지혜로운 원숭이처럼 역동적인 한해가 되길 기원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양근서 도의원

최근 경기도의회에 기분 좋은 소식이 전해졌다. 도의원이 의정활동을 하면서 수십억원대의 세외수입 발굴을 이끌어 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바로 양근서 의원(더불어민주당ㆍ안산6)이다. 필자는 올해 지지대를 통해 양 의원을 한번 소개한 기억이 난다. 일회용 생수 사용을 자제하는 대신, 수돗물을 음용하자는 내용의 조례제정 때문이다. 당시 의회내 전반적 분위기는 일회용 생수에 길들여진 탓이라 반응이 그렇게 호의적이지가 않았다. 하지만 양 의원은 뚝심으로 밀어 부쳤다. 자신 스스로 옳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평소 소신과 철학의 표출이기도 했다. 그 결과, 조례안은 1차 부결, 공청회 등의 과정 등을 거치면서 우여곡절 끝에 통과됐다. 이번에도 양 의원에 대한 글이다. 세수 확충에 기여한 공이 인정돼 행자부 장관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다. 선출직으로써는 이례적 일이다. 국회나 지방의회 통틀어 처음이란 것이다. 특별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세원 발굴 규모는 무려 46억9천만원으로 추산된다. 여기에는 OB맥주가 7년 동안 누락해 온 하천수 사용료 43억7천만원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또 도내 일부 시군에서 부과 누락된 하천수 사용료도 포함돼 있다. 이런 공이 인정돼 행자부 장관상을 수여받게 됐다. 옛 고사성어에 내유외강(內柔外剛)이란 말이 있다. 즉, 겉으로는 꼿꼿해 보이나 실상 속을 들여다 보면 부드럽고 순함을 뜻한다. 은근 슬쩍 매력적인 사람을 두고 하는 말로도 통한다. 양 의원이 바로 그런 사람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다. 평소 소신과 뚝심이 강한 개성으로 표출돼 이른바 까탈스러워 보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하다보면 순수함과 인간미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수십년 지난 친구처럼, 올해는 육십갑자 중 병신년(丙申年)이다. 붉은 원숭이의 해로 알려졌다. 병신년 첫날을 맞아 양근서 의원의 왕성하고 족적 있는 의정활동을 기대해 본다. 병신년 우스갯 소리로 “병들지 말고 신나게 1년을 보내자” 김동수 정치부 차장

[지지대] 아동학대

세밑 발생한 인천 아동학대 사건이 대한민국을 씁쓸하게 하고 있다. 게임 중독에 빠진 30대 아빠와 동거녀, 동거녀의 친구는 11살 여린 소녀를 수년째 방치하고 학대했다. 앙상한 몰골의 소녀는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탈출했고, 동네 구멍가게 등을 배회하다 주민의 신고로 수년간의 아동학대 사실이 세간에 알려졌다. 무려 2년 넘게 학교도 보내지 않고 제대로 먹이지도 않고 학대가 이뤄졌다고 하니 충격이다. 일반적으로 금지옥엽 키워도 모자랄 자기 자식을 부모가 학대할까? 의문을 품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사회의 실상은 다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아동학대 발생 건수는 1만27건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0년에 비해 77.2%나 증가 했다. 특히 아동학대 가해자는 부모가 전체 건 중 81.8%를 차지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아동학대 가해자 대부분이 부모라는 통계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자식을 소유물로 여기고 폭력을 훈육으로 포장하는 등 왜곡된 우리나라 교육관이 아동 학대를 키우고 있다고 보고 있다. 가정에서 은밀하게 자행되는 아동학대는 쉽게 드러나지 않아 장기간 학대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사회안전망이 제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아동학대 예방과 피해 아동 보호를 위해 의사, 교사 등 신고 의무자를 지정하고 있지만 실제 아동학대를 의심하고 신고하는 것에 대해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사적인 영역인 가정사에 대해 참견하는 것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전통적인 인식 때문이다. 신고의무자의 신고율이 29%에 불과하다. 이번 인천 아동학대 사건에서도 드러났듯이 장기간 학교를 보내지 않았는데도 누구도 아이를 찾지 않았다. 정부는 장기결석 학생들에 대해 전수조사를 벌이는 등 아동학대 예방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여전히 미덥지가 않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실질적인 아동학대 예방 대책 등 사회안전망이 재정비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고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아이들에 대한 어른들의 관심과 사랑이다. 우리 모두가 아이들을 보살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이선호 문화부장

[지지대] 효도 계약

A씨는 2003년 서울에 있는 자신의 단독주택을 아들에게 물려줬다. 아들은 ‘아버지와 같은 집에 함께 살며 부모를 충실히 부양한다. 불이행을 이유로 한 계약해제나 다른 조치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각서를 썼다. A씨 부부는 2층, 아들은 1층에 살았다. A씨는 주택 외에도 임야 3필지와 주식을 물려줬고, 부동산을 팔아 아들 회사의 빚을 갚아줬다. 하지만 아들은 같은 집에 살면서 식사도 함께하지 않았고, 허리디스크로 몸이 불편한 어머니 간호는 따로 사는 누나와 가사 도우미가 맡았다. 아들은 A씨 부부에게 요양시설을 권했다. 서운함을 느낀 A씨는 주택을 팔아 부부가 함께 살 아파트를 사겠다며 등기 이전을 아들에게 요구했다. 아들은 “천년만년 살 것도 아닌데 아파트가 왜 필요하냐”며 막말을 했고, A씨는 딸 집으로 거처를 옮긴 뒤 아들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대법원은 부모를 잘 모시는 조건으로 부동산을 물려받은 아들이 약속을 어겼다면 재산을 다시 돌려줘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자녀에겐 부모를 부양해야 할 의무가 이미 민법상 규정돼 있어 ‘충실히’ 부양한다는 건 일반적 수준의 부양을 넘어선 것이라며, “아들은 단독주택 소유권 이전 등기의 말소 절차를 이행하라”고 했다. 지난 주말 이런 뉴스를 접한 국민들은 우울했다. 부모 봉양에 각서까지 쓰는 세태가 슬프고, 오죽하면 부모가 소송까지 했을까 씁쓸했다. 하지만 이게 현실이다.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부모ㆍ자식 관계가 점점 이해타산적으로 바뀌고 있다. 증여재산을 둘러싼 부모와 자식의 갈등은 더 이상 드라마 속 얘기가 아니다. 최근 부모가 자식을 상대로 재산반환소송을 냈다 패소하는 일이 잦다고 한다. 부모들은 노후 봉양을 하겠다는 아들, 딸의 말을 믿고 재산을 물려줬다가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자 돌려달라고 소송을 낸다.그러나 노후 봉양을 하겠다는 ‘효도 계약’의 물증이 없으면 대개 부모들이 패소한다. 효도라는 추상적 개념을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에 계약을 지키지 않았다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이 때문에 국회에서는 부양 의무를 저버린 자녀에게 재산을 좀 더 쉽게 돌려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불효자 방지법’이 추진되고 있다. 효도는 계약이 아니지만, 재산을 자식에게 미리 물려줄 생각이면 ‘효도 계약서’라 불리는 각서를 꼼꼼히 챙기는 수밖에 없다. 그게 100세 시대 삶의 지혜란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소녀상 모시기

‘일본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에 대해 계속 사죄와 속죄를 해야 한다’(와다 하루키ㆍ도쿄대 명예교수). ‘상대국의 마음을 완전히 풀리게 할 수는 없어도, ‘그만큼 사죄했으니 이제 됐다’라는 말을 들을 때까지 사죄해야 한다’(무라카미 하루키ㆍ작가). ‘여성을 차별하는 국민성이 있었고 이 때문에 식민지 여성을 동원하는 종군 위안부도 존재했으며 그 과정에서 범죄적인 수단도 발생했다. 앞으로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국민의 의식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오에 겐자부로ㆍ작가). ▶일본인도 용서 못 한 위안부 만행이다. 그 만행을 한국 정부가 용서한다. 한·일 양국이 28일 일본군(軍) 위안부 문제의 담판을 졌다. 합의된 핵심 3가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 통감’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사죄·반성 표명’ ‘일본 정부 예산 10억엔 거출’이다. 위안부 존재 자체를 부정하던 아베 총리로부터 존재 인정과 사과까지 받아냈다. 현실적 배상책임이라 할 수 있는 금전적 지불 약속도 이끌어 냈다. 윤 장관은 “일본 정부가 앞서 표명한 조치를 착실히 실시하는 것을 기초로 이 문제가 최종적,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한다”고 밝혔다. ‘다시는 거론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위안부 소녀상(평화의 소녀상) 철거다. 한국 정부의 입장은 “공관(公館)의 안녕과 위엄 유지 관점에서 (일본 측이) 우려하는 것을 인지하고 대응 방안에 대해 관련 단체와 협의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다. ‘관련 단체와 협의’라는 단서가 붙었지만 사실상 철거 내지 이전에 합의한 것으로 보인다. 소녀상 철거 논의는 외무장관 회담 전부터 일본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우리 정부는 ‘절대 아니다’라고 했다. 결과는 일본 언론의 예고대로다. ▶첫 번째 위안부 소녀상은 2011년 12월 24일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 세워졌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요 시위가 1천번째를 맞는 날이었다. 지금은 미국에 9개, 일본에 1개가 있고 우리나라에는 24개가 있다. 해방 70년이 되어도 반성하지 않는 일본에 대한 항의의 상징이다. 그 소녀상이 탄생한 지 4년여만에 새로운 운명을 맞게 됐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반대하고 있다. 관련 단체들도 반대하고 있다. 총선을 앞둔 일부 정치세력도 반대할 가능성이 크다. 소녀상은 이미 예술작품의 경지를 뛰어넘었다. 뻔뻔한 일본을 향한 국민적 울분을 대신하는 고귀한 상징물이다. 총리 사과문이나 일본 돈 10억엔과 바꿀 수 없는 역사성, 애절함이 묻어 있다. 철거는 안 될 듯하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도록 ‘모시는’ 방안을 찾아보자.김종구 논설실장

[지지대] 정당 후원금

우리나라에서 정당 후원금 제도는 1965년부터 40여 년간 지속됐다. 기업들의 정치 헌금 통로로 활용되면서 ‘정경(政經) 유착’의 폐해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샀다. 실제 1990년대만 해도 주요 정당들이 후원회를 열 때면 기업체 관계자들이 장사진을 치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후원금 내역도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다 2003년 검찰의 대선 자금 수사로 ‘차떼기 불법 정치자금’ 사건이 불거지면서 2006년에 폐지됐다. 옛 대검 중수부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에서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캠프는 2.5t 트럭에 담긴 현금 150억원을 트럭째 넘겨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이 후보측은 기업들로부터 823억원의 불법 대선자금을 받은 사실이 밝혀졌고, 노무현 후보 측은 113억원의 불법 자금을 받아쓴 사실이 공개됐다. 이후 국회의원은 정치자금을 받을 수 있지만 정당은 후원금을 받을 수 없게 됐다. 헌법재판소가 지난 23일 정당 후원금을 금지한 정치자금법 조항(6조)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정당 후원금 금지는 정당 활동의 자유와 국민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과잉 입법”이라며 “국회는 2017년 6월까지 해당 법조항을 개정하라”고 했다. 이에 따라 2017년 12월 실시되는 대통령 선거부터는 정당이 후원회를 열 수 있고, 유권자가 정당에 직접 후원금을 낼 수 있게 될 전망이다. 헌재의 결정 요지는 현행법이 허용하고 있는 국회의원 등 정치인 개인뿐 아니라 정당에 대해서도 유권자가 후원금을 통해 정치적 지지 의사를 밝힐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국고보조금이 주요 정당에만 편중돼 군소 정당 활동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만큼 불평등ㆍ불합리를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헌재의 결정은 원론적인 면에서 맞다. 하지만 그동안 정치 헌금을 매개로 기업ㆍ이익단체와 정치권의 유착이 여러 문제를 낳았기 때문에 우려되는 바가 많다. 정당 후원금이 금지된 지금도 대기업이나 단체들이 입법 로비나 보험 성격으로 직원들 이름을 빌려 국회의원들에게 ‘쪼개기 후원금’을 내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당 후원금이 허용되면 불이익을 당하지 않으려고, 또는 특혜를 노리고 얼마나 더 극성을 부릴까 걱정이다. 정당 후원금이 부활하면 그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해 과거 정당 후원금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정경 유착 시비를 차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악취나는 구태가 반복될 것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크리스마스 선물

이번 크리스마스에 아들의 선물을 고르기 위해 아내와 고민을 했다. 역시 7살 남자 아이들의 대세는 레고시리즈다. 아이들이 레고에 빠지면 집안 거덜 난다는데 아들놈은 크리스마스 한 달 전부터 아빠, 엄마, 할아버지, 할머니, 이모가 사줘야 할 레고시리즈의 이름이 적힌 선물 목록을 전해 준다. 다행인 것인지 할아버지가 사야 할 선물이 제일 비싼 거다. 효자 놈 아빠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했는지 가장 저렴한 것으로 골라줬다. 미국의 UPTV가 최근 ‘메트로 애틀랜타 보이즈 앤 걸즈 클럽(Metro Atlanta Boys & Girls Clubs)’ 아이들을 대상으로 촬영한 영상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해당 클럽에 등록된 아이 10명 중 8명은 저소득층 가정으로 알려졌다.크리스마스 선물은 상상도 못하던 아이들에게 평소 자신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았으면 생각했던 물건과 부모님을 위해 마련한 선물을 눈앞에 내놓았다. 아이들은 기쁨의 몸부림을 쳤다. 그 순간 진행자가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자, 이제 너희는 너희를 위한 선물, 부모님을 위해 마련된 선물 중 하나만 택할 수 있단다” 아이들은 망설였으나 뭔가 결심한 듯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결정했다. 놀랍게도 아이들의 생각은 모두 같았다. 아이들은 자기를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포기하고, 부모님을 위한 선물을 선택했다. 아이들은 왜 부모를 위한 선물을 선택했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파란 옷을 입은 소년은 “레고는 중요치 않아요”라며 “가족이 더 소중해요”라고 말했다. 소년은 “제게는 레고와 가족 중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이냐고 물어보신 거나 마찬가지예요”라고 덧붙였다. 이 장면을 가족들이 지켜보고 있었고 이들 모두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이번 크리스마스 역시 아들의 선물만을 생각한 내 모습이 부끄럽다. 아들의 제일 비싼 선물을 사게 된 장인어른과 장모님, 본가에 홀로 계신 어머니께 크리스마스 아침에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라고 전화 한 통 드려야겠다.최원재 정치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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