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미야와키 메소드

숲은 ‘수풀’의 준말이다. 수풀은 ‘나무들이 무성하게 우거지거나 꽉 들어찬 것’을 말한다. 숲은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산소 공급원이다. 이뿐 아니다. 지구의 습도조절, 수질정화 기능 등 삶을 지탱하는 근간이기도 하다. 숲은 먼지를 흡착해 내는 보물단지다. 숲은 지구 전체 면적의 약 9.4%, 육지 면적의 약 30%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한 평의 숲은 연간 10㎏의 먼지를, 또 1의 숲은 어림잡아 4t의 먼지를 흡착해 낸다는 보고가 있다. 숲은 물질적 유익함에다 정서적 평온함까지 주고 있다. 실로 살아가는 데 있어 절대적 가치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물질문명의 발달 속에 숲은 자꾸만 뒤처져 가는 형국이다. 생태 숲이 빌딩 숲으로 변하면서 하나 둘 파괴되고 있다.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을 잃고 사는 우리의 편리함 때문일 것이다. 숲 찾기 운동이라도 해야 할 판국이다. 이러한 때 눈여겨 볼만한 소식이 있다. 밀식 등의 방법으로 다양한 수종의 어린나무를 초고속으로 성장시켜가는 기법이 경기도에 상륙했다. 단기간 내에 생태 숲을 조성할 수 있는 급속생장법, 이른바 ‘미야와키 메소드(방법)’다. 보통의 숲 조성보다 10배 이상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는 기법이다. 이 기법이 7일부터 개최되는 제4회 경기정원문화박람회에 국내 처음으로 시연된다. 박람회 부지 약 1천400㎡ 면적에 급속 생태 숲을 조성한다. 미야와키 메소드는 일본의 생태학자인 미야와키 아키라 박사가 최초 창안했다. 관목과 교목을 골고루 섞어 단위 면적당 수종은 최대 100배, 밀도는 30배 높게 묘목을 심어 최대 10배 빠르게 숲을 조성할 수 있다. 이런 기법은 인도 태생인 ‘슈벤두 샤르마’가 국제사회에 전파하면서 경기도까지 상륙했다. 그 중간에 양근서 도의원(안산)의 중개 역할도 한몫했다. 경기도는 한해 공원유지관리비만 800~900억 원에 달한다. 막대한 혈세가 투입되고 있다. 미야와키 메소드가 경기도에 꼭 필요한 이유다. 김동수 정치부 부장

[지지대] 현세의 리더십 상하동욕

▲요즘 리더십 부재, 지도력 실종이라는 비난과 비판이 곳곳에서 제기된다. 북핵문제도 이렇다 할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그저 사드 운운하고 갈등만 조장하고, 강도 5.8의 지진이 발생해 경주를 중심으로 전 국민이 ‘지진 배낭’을 준비할 정도로 불안해하고 있지만 뾰족한 대안도 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다.청렴 국가를 목표로 한 김영란 법이 본격 시행되면서 식당, 화훼농가, 소기업 등 여기저기 서민이 ‘죽겠다’고 아우성이지만 정확한 기준조차 없어 우왕좌왕이고 극적으로 타협했다며 국정감사 정상화를 선언한 국회는 민생은 외면한 채 벌써부터 내년 대권을 위한 정쟁을 재개해 또다시 외면을 자초하고 있다. 이쯤 되면 전쟁이나 재난을 아닐지라도 국난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국민을 안심시킬 리더십이 필요한 시기다.▲리더십을 단정적으로 정의할 수는 없다. 시대적 상황이나 국민적 성향에 따라 그 덕목이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옛 고서들이 전쟁이나 위난은 물론이고 태평성대를 되새기며 당시의 임금이나 황제 등을 지칭해 지장(智將), 덕장(德將), 용장(勇將) 등으로 구분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일 것이다. 문제는 요즘은 이 리더십을 발휘하기가 과거와 같이 단순하지 않다는 데 있다. 국제적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국내만 보아도 금수저ㆍ흙수저 운운하는 빈부격차, 갈 곳 잃은 청년 실업, 100세 시대의 고령화 등 갈등과 분열 요소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현세의 리더십은 과연 어디서 찾아야 할까? 하는 고민은 가정이든, 기업이든, 국가든 그 조직의 리더라면 누구나 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상하동욕(上下同欲)은 깊게 고찰해 볼만한 성현의 제안이 아닌가 싶다. 이 말은 손자병법에 나오는 고사성어로 상하조직의 상층부와 하층부가 같은 욕심, 같은 목표, 같은 꿈을 꾼다면 반드시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그 근간은 사람 간의 화합인 인화(人和), 국가의 화합인 국화(國和)다. 대립과 반목만을 조장해 국민의 불안과 불만, 심지어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청와대와 정부, 그리고 국회 등 권력 상층부는 작금에 한 번쯤 상하동욕의 동기를 국민에게 주고 있는지 곱씹어 보아야 한다. 정일형 지역사회부 부국장

[지지대] 220년간 못 볼 수도…

뜨거운 늦여름에 시작했다. 연습장은 학교 운동장이었다. 모래 섞인 마사토가 지열을 토해냈다. 간혹 쓰러지는 학생도 있었다. 그래도 학생들은 재미있어 했다. 역할을 정할 때 특히 그랬다. 정조대왕 역은 역대로 ‘가장 잘생긴 학생’이라고 인정됐다. 궁녀(宮女) 역의 학생들은 요즘 표현으로 ‘최고의 꽃미남’이었다. 나머지 500여명에게도 역할은 있었다. 지금이었다면 ‘학생 동원 중단하라’며 들고 일어날 일. 그게 80년대 ‘정조대왕 능행차’였다. ▶수원의 수성고등학교가 행사를 도맡았다. 당시 유일한 공립 인문계 고등학교였다. 관(官)이 동원하기 좋다는 점이 선택의 이유였다. 불만도 많았다. 시민들 앞을 지나며 느낀 부끄러움이 있었고, 금쪽같은 시간을 빼앗겨야 하는 불안감이 있었다. 위대한 역사의 재현이라는 소명감은 너무 먼 얘기였다. 30년쯤 흐른 뒤, 그 일이 역사를 잇는 끈이었음은 비로소 알게 됐다. 그 행사가 올해로 53회째를 맞는 화성문화제-당시 화홍문화제-다. ▶지난 9월 23일 수원시청에서 특별한 협약식이 열렸다. 경기도와 수원시, 안양시, 의왕시가 참여했다. 서로의 인사말이 닮은 듯 달랐다. 안양시는 ‘안양에 온 정조’를, 의왕시는 ‘의왕에 온 정조’를 말했다. 앞서 서울시, 금천구도 같은 협약식을 했다. 역시 서울은 ‘서울에서 출발한 정조’를, 금천구는 ‘금천구에 온 정조’를 말했다. 정조대왕능행차라는 단일 행사에 서울, 금천, 안양, 의왕, 수원이 이렇게 뭉쳤다. 화성문화제 53년 만에 처음으로 선 뵈는 탈(脫) 수원 문화제다. ▶처음 재현되는 모습도 많다. 창덕궁 출궁 의식, 한강 배다리, 지역별 정조 맞이, 백성의 현장 상소, 무사들의 격쟁 시범 등이 처음으로 이어진다. 한강 배다리는 군(軍)이 지원하면서 가능해졌다. 교통난은 지자체와 경찰이 나서면서 풀렸다. 전체 행렬 구간 47.6㎞, 총 참여 인원 3천69명, 동원되는 말만 408필이다. 을묘원행정리의궤로만 남았던 모습이 220년만에 눈앞에 현시(顯示) 되는 것이다. ▶최초의 지자체간 협력 능행차라 해도 좋다. 최초의 군민(軍民) 합동 능행차라 해도 좋다. 어떤 곳에 의미를 두든 모아지는 결론은 하나다. 220년만에 처음 보여지는 행사다. 그래서 220년간 볼 수 없는 행사일 수 있다는 불안감도 커지는 행사다. 역사의 끈은 끊어지게 마련이고, 끊어진 끈은 언젠간 연결되게 마련이다. 그 연결됨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시대를 살아가는 행복일 것이다. 설렘으로 기다려지는 주말이다. 김종구 논설실장

[지지대] 교원 치유 지원센터

지난해 A학교의 수업 도중 학부모 B씨가 여교사 C씨의 뺨을 때리고 머리카락을 잡고 머리를 벽에 부딪히는 등 폭언과 폭행을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C교사가 지시를 이행치 않은 자기 자녀에게 꿀밤을 때린 데 불만을 품고 학교에 찾아와 C교사를 폭행한 것이다. B씨는 현장에서 체포됐지만 사건 이후 불안감에 시달리던 C교사는 3주간의 병가를 냈고, 이후에도 상담 치료를 받는 등 힘겹게 생활하고 있다. 매 맞는 교사들 얘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학생들은 물론 학부모까지 학교에 찾아와 교사의 멱살을 잡는 일이 빈번하다. 학교 측과 피해 교사는 바깥에 알려지는 것을 꺼려 쉬쉬하는 경우가 많다. 학교 이미지와 신뢰도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학생 지도를 포기하거나 아예 교단을 떠나는 교사들도 적지 않다. 교단에 서기가 겁난다는 이들은 자부심은커녕 자괴감만 든다고 토로한다. 교권 붕괴 행태도 다양하다. 교사들이 폭행과 욕설은 물론 성추행까지 당하고 있다. 이들 피해 교사들은 해당 학교에서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전보나 병가·휴직을 하는 경우가 많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안민석(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교권 침해 피해 교원에 대한 조치 내역’에 따르면, 교권 침해를 당한 교사들의 전보·병가·휴직 등의 건수가 지난 2013년 405건에서 2014년 434건, 2015년 950건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학생과 학부모의 폭행·폭언·성희롱 등 교권 침해 건수는 2013년 5천562건, 2014년 4천9건, 2015년 3천458건으로 집계됐다. 교육부가 교권을 침해당한 교사들을 위해 ‘교원 치유 지원센터’를 운영한다. 부산 제주 대구 대전 등 4곳에서 시범 운영하던 것을 내년에는 전국 시ㆍ도 교육청으로 확대키로 했다. 학부모와 학생으로부터 폭행ㆍ협박ㆍ폭언ㆍ성희롱 등을 당한 피해 교사에 대한 상담ㆍ치유ㆍ사후 관리 등을 맡는다. 센터에는 전문상담사들이 상주하며 교권 피해 교사를 대상으로 심리검사와 집단상담, 심리극, 치유캠프 등 다양한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건 교권 침해를 막는 것이다. 교권이 무너지면 학교가 무너지고 결국 국가의 미래도 암울해진다. 공교육 정상화도 힘들다. 상처받은 교사의 치료와 안정적 복귀를 돕는 것도 중요하지만 안심하고 교육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교권 보호를 위한 대책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종부세 내는 미성년자

종합부동산세는 일정 기준을 초과하는 토지·주택 소유자에게 지방자치단체가 부과하는 세금 외에 별도의 누진율을 적용해 부과하는 국세다. 1가구 2주택자로 공시지가의 합이 6억원을 넘으면 종부세 납부 대상이 된다. 한 채의 부동산만 있어도 기준시가가 9억원을 넘으면 종부세 대상이다. 나대지·잡종지 등 종합합산토지 가액이 5억원을 넘거나 상가·사무실의 부속 토지 등 별도합산토지 가액이 80억원을 초과해도 종부세를 내야 한다. 종부세를 낸다면 좀 산다고 봐도 된다. 종부세 내는 이를 보면, ‘나도 종부세 내고 싶다’며 부러움 섞인 우스갯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여필종부가 요즘엔 ‘여자는 필히 종부세 내는 남자를 만나야 한다’는 뜻으로 바뀌었다. 물론 농담이지만 ‘쩐(錢)’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부모 등으로부터 거액의 부동산을 물려받아 종부세를 내는 미성년자가 지난해 기준 159명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내야 하는 세액도 2014년 3억2천900만원에서 지난해 3억6천만원으로 늘어났다. 지난해 1억원 이상을 증여받은 미성년자는 1천586명으로 집계됐다. 이 중 10억원이 넘는 재산을 증여받은 미성년자는 92명이고 이 중 5명은 50억원 넘는 재산을 받았다. 국세청의 ‘2015년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종부세 대상자 미성년자는 154명이었다. 4살짜리가 5층짜리 임대주택 주인으로 등록돼 월 임대수익이 1천만원을 넘는 경우도 있었고, 3살짜리가 서울 강남에 20억대 아파트를 소유하기도 했다. 부동산을 포함, 예금이나 주식을 증여받은 미성년자는 5천554명이고, 이 중 10세 미만도 1천873명이나 됐다. 부모 경제력에 따라 자녀의 경제력도 좌우된다는 ‘수저 계급론’을 보여주는 자료다.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를 물고 나왔지만, 자식에게 물려줄 것이 없는 일반 시민들은 상대적 박탈감에 빠지게 된다. 미성년자에게 부동산이나 주식을 증여하는 것은 절세를 위한 것이다. 어릴 때부터 조금씩 물려주면 세금 폭탄을 피할 수 있다. 부의 대물림 현상이 고착되면, 우리사회는 출발점이 불공정한 사회로 인식돼 역동성을 잃고 만다. 노력하면 계층 상승이 가능하다는 믿음이 사라질 때 청년층은 열심히 일할 의욕이 꺾이게 마련이다. 부의 세습 문제에 대해 우리사회가 고민해봐야 한다. 고액 재산가들의 변칙 상속과 증여에 대한 과세당국의 철저한 감시와 과세를 위한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 내 이름을 찾아주세요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폭주(?)한 골프 약속 덕분에 스코어카드에 8자를 그리는 데 성공했다. 탄력받았을 때 자주 필드에 나가 싱글의 반열에 올라야 하는데 지난 28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본격 시행되면서 그것이 여의치 않게 됐다. 10월과 11월 골프 약속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골퍼들은 캐디백에 보통 이름을 쓰는데 일부 공직자들과 자신의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꺼리는 사람들이 종종 본인의 이름이 아닌 가짜 이름을 쓰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실명은 ‘홍길동’인데 캐디백에는 ‘임꺽정’을 써 놓은 경우다. 골프 접대로 김영란법 적용의 첫 사례(?)가 되지 않기 위해선 앞으로 가명을 써야 하느냐는 고민에 빠진다. 과거 즐겨 보던 만화 슬램덩크의 주인공들의 이름이 떠올랐다. 강백호, 서태웅, 송태섭 등 이중 하나 골라잡아 백네임을 바꿀까. 그런데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었다. A선배도 골프백 이름을 바꿀 생각이라며 ‘최경주’로 한다고 했다. 또 B후배는 미국식으로 ‘우즈팍’이라고 짓겠다 했다. 다들 농담이었지만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남의 이름을 도용할 사람들이 꽤 있는 것 같다. 지난달 지인들과 라운딩을 갔는데 스코어카드에 전혀 모르는 여성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이 아닌가. 내심 기대하고 있는데 우락부락하게 생긴 ‘상남자’가 인사를 하며 다가왔다. 같이 간 선배도 급실망했다. 백에 가명을 적어 놓았는데 그것이 여성스러운 이름이었던 것이다. 이 같은 불상사(?)를 막기 위해 골프장에서 실명 쓰기 캠페인이라도 벌여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자신의 이름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골프를 치는 것 자체가 떳떳하지 못한 행동이다. 친목을 도모하고 자신의 건강을 위해 즐기는 스포츠에서 가명을 써야 하는 이유가 뭘까. 김영란법 시행으로 공정하고 투명한 사회로 가는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공정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 차량 트렁크에 실려 있는 골프백에 자신의 이름을 찾아주는 것은 어떨지 제안해 본다. 최원재 정치부차장

[지지대] 김영란법 괴담

김영란법이 시행될 경우 사정기관에서 정보를 미리 파악하고 대대적으로 경찰을 풀어 골프장 이용자들을 집중적으로 감시할 예정이니 시범사례로 걸리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공무원과 공공기관이 많은 세종시 월세 원룸이 이사철도 아닌데 동이 났다? 그 이유는 김영란법 신고 포상금을 노리는 ‘란파라치’가 몰렸기 때문이다? 이는 요즘 나돌고 있는 김영란법 괴담들이다. 사람들은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공포심을 느낀다. 아무도 가보거나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해 공포 정도는 커질 수밖에 없다. 김영란법 시행 초기에 각종 괴담에 흉흉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28일 부정청탁 및 금품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이른바 김영란법이 시행됐다. 사람 사이의 정, 의리 등 온정 문화에 익숙한 우리사회에 기존 관행처럼 이뤄졌던 이해 당사자 간 식사자리, 선물 등 행위 자체가 이제 불법으로 규정된다. 부정청탁 금지, 예방 차원이다. 법의 취지는 이렇다. 누구나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청렴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대한민국 사회가 보다 깨끗하고 청렴한 사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청렴사회로 만들 법이 시행됐지만 좀처럼 해당 공직자들의 걱정과 고민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되레 김영란법 괴담이 확대 재생산되는 듯하다. 각종 괴담이 도는 것이 김영란법만은 아니었다. 과거 미국산 쇠고기 수입시 돌았던 광우병 괴담, 최근에는 사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설치 관련, 전자파 괴담 등 무수히 많은 괴담들이 난무했다. 대부분의 괴담은 괴담으로 끝나기 일쑤였다. 괴담공포는 사람들이 현실을 경험하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양상을 보여왔다. 결국 대한민국이 경험하지 않은 김영란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자연스럽게 괴담도 사그라질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김영란법 적용을 받은 당사자들이 괴담에 떨기보다 당당히 법을 지켜나가면 된다는 인식전환이 중요하다. 김영란법 취지에 맞게 법을 지켜나갈 때 결국 청렴사회가 정착될 것이다. 이선호 문화부장

[지지대] 유명무실한 ‘관광특구’

‘관광특구’라는 게 있다. 외국인 관광객을 늘리기 위해 관광 관련 서비스 및 안내ㆍ홍보활동 등을 강화할 필요가 있는 장소를 시장ㆍ군수 신청에 따라 시ㆍ 도지사가 지정하는 지역이다. 1993년 관광진흥법이 도입돼 이듬해인 1994년 8월 제주도, 경주시, 설악, 유성, 해운대 등 5곳이 처음 지정됐다. 2004년 10월 관광진흥법이 개정되면서 지정권한이 문체부에서 광역지자체로 이관됐다. 지정요건은 외국인 관광객 수가 최근 1년간 10만명 이상이고, 임야ㆍ농지ㆍ공업용지ㆍ택지 등 관광활동과 직접 관련 없는 토지 비율이 10% 이하이며, 관광안내시설ㆍ공공편의시설ㆍ숙박시설 등이 관광객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 관광특구로 지정되면 규제가 완화되고 특구지역 공모사업을 통해 일부 국ㆍ도비가 지원된다. 광고물 설치가 다소 자유로워지고 음식점 옥외영업도 허용되고, 축제ㆍ공연을 위한 도로통행도 제한할 수 있다. 2016년 1월 현재 관광특구로 지정된 곳은 전국 13개 시ㆍ도에 모두 31개소다. 경기도엔 동두천, 평택시 송탄, 고양, 수원화성 등 4개의 관광특구가 있다. 하지만 거의 이름만 관광특구일 뿐 유명무실하다. 외국인 관광객 유치도 제대로 못하고 관련 사업도 미흡하기 짝이 없다. 1997년에 지정된 평택시 송탄관광특구(신장1·2동, 지산동, 송북동, 서정동 일원)는 지난해 국비 5천만원이 국ㆍ도비 지원의 전부다. 동두천관광특구(생연4동, 보산동, 상봉암동 일대)는 한 푼도 없다. 특히 내년 주한미군 이전이 예정된 동두천은 계속 관광특구를 유지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외국인 관광객 집계도 주먹구구식이다. 평택시와 동두천시는 지난해 송탄관광특구에 104만명, 동두천관광특구에 28만명의 외국인 관광객이 다녀갔다고 밝혔으나 상인회 등이 주장하는 것으로 그대로 믿기 어렵다. 지난해 8월 지정된 고양관광특구(한류월드, 중앙로, 장항동 일대)는 비즈니스, 컨벤션, 박람회, 한류관광이 융합된 관광특구로 키운다는데 아직 기대에 못미친다. 역시 지난해 1월 지정된 수원화성관광특구는 ‘2016 수원화성 방문의 해’를 통해 활성화를 기대해 보지만 성과가 대단해 보이진 않는다. 지정만 해놓고 예산도, 관리도, 대책도 없는 관광특구를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 관광특구 제도를 재검토하거나 지정 취지에 맞게 실질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정부와 광역ㆍ기초 지자체가 대책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여군 1만명 시대

대한민국을 지키는 여군이 1만명을 넘어섰다. 국방부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여군은 총 1만263명으로 파악됐다. 각 군별로는 육군 6천915명, 해군 1천264명, 공군 1천694명, 해병대 390명에 이른다. 계급별로는 장성이 2명(준장), 영관 823명, 위관 3천924명, 준사관 24명, 부사관 5천490명 등이다. 여군은 전체 군인의 5.5%로 장교 7.4%, 부사관 4.5%에 불과하지만 남자군인들의 보조 역할에서 벗어나 지휘 일선에서 맹활약 중이다. 초저출산으로 인한 병역자원 부족으로 여군은 앞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다. 남성 영역으로 인식돼온 군이 여성에게 문호를 확대하는 것은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활발한 시대적 분위기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실제 여군의 인기는 날로 높아지고 있다. 4전5기, 5전6기 하는 여성들도 있다. 직업적 안정성이 작용했지만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군인 직업에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다. 현재 육·해·공군 일부 병과를 제외하고 여군은 대부분의 병과에 진출해 있다. 육군의 경우 보병연대장, 헬기조종사, 법무관, 군종장교 등 직책에 제한 없이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군대 내 양성평등 문화는 갈 길이 멀다. 아직 핵심 보직이나 필수 직위가 여군에게 활짝 개방돼 있는 것은 아니다. 유리천장도 뚫리지 않았다. 군대 바깥 조직에 있는 여성들이 겪는 유리천장과 여군들이 겪는 유리천장은 크게 다르지 않다. 여군을 동등한 능력과 역할을 수행하는 인격체로 보지 않는 인식도 여전하다. 3성 장군 출신인 송영근 전 새누리당 의원의 ‘하사 아가씨’ 발언에서 알 수 있듯 상당수 군 엘리트층은 권위주의에 사로잡혀 있다. 여군 대상 범죄도 끊이지 않고 있다. 서영교 국회의원이 발표한 ‘최근 5년간 여군 및 여군무원이 피해자인 사건’ 자료에 따르면, 2012년 41건이던 사건이 2013년 48건, 2014년 83건, 2015년 105건으로 급증했다. 군대 내 여성대상 범죄가 느는 것은 여군을 넘어 군 전체의 불안감을 키우는 일이다. 성관련 범죄뿐 아니라 모욕과 항명, 명예훼손과 같은 군 기강 관련 범죄에 대한 확실한 대책이 필요하다. 현대전은 전자전으로 전쟁 양상이 옛날과 크게 다르다. 전산ㆍ통신 등 섬세한 지혜를 갖춘 여군의 활약이 기대된다. 이 같은 변화에 맞춰 우수한 여성 인력을 여군으로 흡수하려면 선진화 된 여군 정책이 절실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각자도생(各自圖生)

집으로 가는 길, 갑자기 터널이 무너졌다. 영화 ‘터널’은 무너진 터널 안에 고립된 한 남자와 그의 구조를 둘러싸고 변해가는 터널 밖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터널 안 남자가 구해주겠다는 말을 믿고 버티는 동안, 그의 구조를 둘러싼 터널 밖의 상황은 오늘 한국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특종ㆍ단독 보도에 혈안이 된 언론과 부실공사로 물의를 일으킨 시공업체, 그리고 구조는 뒷전인 채 윗선에 보고하기 급급한 정부 고위 관계자들까지 현 세태를 리얼하게 풍자한다. 제대로 된 대처 매뉴얼 없이 우왕좌왕하며 시간을 허비하는 터널 밖 사람들의 모습은 터널 안에서 생사를 다투는 남자와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며 관객의 분노를 일으킨다.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이 영화를 보며 관객들은 ‘각자도생(各自圖生)’을 얘기했다. 대한민국에서 개인의 생계와 안전은 각자가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면서. ‘각자가 살아나갈 방법을 모색한다’는 뜻의 각자도생은 세월호와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사회의 키워드처럼 자리잡았다. 지난 12일 경주에서 규모 5.8의 강진이 일어난데 이어 400건이 넘는 여진이 계속되면서 국민들은 불안과 공포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진공포가 전국을 강타하고 있는데 대피요령 등을 안내해야 하는 국민안전처 홈페이지는 ‘먹통’이고, 긴급재난문자 역시 늑장 발송으로 ‘뒷북’이다.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도 여야를 막론하고 매뉴얼도, 골든타임도, 사후대책도 없는 정부의 ‘3무(無)대책’을 질타했다. 지진에 우왕좌왕하는 정부 대응에 실망하고 불안감을 느낀 시민들이 ‘생존배낭’을 꾸리며 각자 살 방법을 모색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삐걱거리는 국가 재난 컨트롤타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목격했기 때문이다. 온라인몰에선 생존배낭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생존배낭은 재난재해시 구조를 기다리며 72시간을 버틸 수 있는 물품을 담은 비상배낭이다. 생수와 라면, 참치통조림, 초코바 등 비상식량과 활동복, 담요, 응급약품, 손전등, 호루라기 등 생존도구가 담긴다. SNS엔 ‘재난에서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것들’이란 제목으로 국민안전처보다 훨씬 자세한 내용의 생존배낭 꾸리기 요령이 올라와 있다. 일본에서 만든 지진 어플 ‘유레쿠루 콜(Yurekuru call)’도 기상청보다 믿을만하다는 입소문을 타고 인기다. 긴급재난 발생시 국민들이 경각심을 갖고 비상대응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정부를 믿을 수 없어 ‘각자도생’이라니 씁쓸한 생존 전략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좋아요

자신의 활동이나 관심을 알리기 위해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등 SNS(Social Network Services)를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SNS가 사회활동을 넓혀주는데 기여하는 바도 있지만 페이스북 계정 관리가 되지 않으면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최근 한 퇴직 공무원은 등록만 하고 제대로 사용치 않던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동료 공무원들에게 무차별로 낯 뜨거운 사진이 발송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이상한 사진을 받게 된 동료 공무원들에게 일일이 설명할 수도 없고 난감해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선출직인 기초자치단체장 등의 SNS 활용도 늘어나고 있다. 단순 문자나 사진에서 라이브 방송까지 도입하면서 도정, 시정에 매진하는 대신 자신 알리기에 급급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일고 있다.한 기초단체장은 무더위가 한창이던 여름, 4컷의 출근하는 멋진 사진을 올렸다. 셀카도 아닌 것으로 보아 출근길에 공무원이 촬영했을 것으로 짐작됐다. 해당 사진에는 수백여 명이 좋아요를 눌렀고, 시장님 파이팅 등 수십건의 다양한 댓글이 올라왔다. 하지만 몇 시간이 지난 뒤 4컷의 사진 중 한 장의 사진이 SNS에서 사라졌다.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는 사진을 늦게 발견한 것이다. 좋아요를 누른 시민 중에는 교통법규 위반을 하는 시장의 사진을 무심코 넘긴 사람도 있겠지만, ‘이런 사진을~’ 하며 안타까워 한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한 단체기관장은 페이스북을 활용해 자신을 홍보하는데 열중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서글프다. 해당 기관직원들은 댓글과 좋아요를 눌러주는 것이 힘들었다고 하니 얼마나 압박이 가해졌을지 짐작이 간다. SNS를 통해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공유하거나 힘들 때 잠시 미소를 지으며 쉬어갈 수 있는 장으로 자리 잡았으면 한다. 오늘은 좋아요를 누르지 말고 하루를 버텨보자. 정근호 정치부장

[지지대] 반기문盃

말레이시아 ‘메르데카컵(Merdeka Cup)’, 태국 ‘킹스컵(King’s Cup)’, 대한민국 ‘박스컵(Park’s Cup)’. 1970년대 축구 팬들을 흥분시키던 아시아 3대 축구대회다. ‘메르데카(Merdeka)’는 말레이어로 ‘독립’을 뜻한다.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기념해 1958년에 창설됐다. 킹스컵은 태국 국왕이 주관하던 대회로 1968년 시작됐다. 박스컵은 1971년 시작된 대회로 1회 대회 공식 명칭은 ‘박정희 대통령배 쟁탈 아시아 축구대회’다. ▶말레이시아는 국왕의 생일을 휴일로 지낸다. 태국은 쿠데타의 마지막 절차가 국왕의 인증이다. 국왕이 갖는 상징성이 그렇게 크다. 하지만 축구대회에 국왕의 실명은 들어가지 않는다. 통치자의 실명-박정희-이 들어간 대회는 대한민국의 ‘박스컵’뿐이었다. ‘오바마盃 국제 축구대회’ ‘시진핑盃 국제 축구대회’인 셈인데…. 독재권력에서나 있을법한 추억이다. ▶지난 9월 3일과 4일 충북 음성에서 유소년 축구대회가 있었다. 전국에서 60개 유소년 클럽이 참가해 성황을 이뤘다. 그런데 대회 명칭이 ‘제1회 반기문컵 하반기 전국 유소년 축구대회’다. 현직 유엔사무총장의 이름을 땄다. 반 총장이 주관했을 리 없다. 그래도 ‘반기문컵’이라는 실명을 공식적으로 내걸고 있다. 축구뿐만 아니다. ‘반기문 태권도대회’ ‘반기문 마라톤대회’ ‘반기문 동요대회’에 ‘반기문 백일장’ ‘반기문 리더십학교’까지 있다. 이게 충청도, 그리고 음성의 현재 정서다. ▶반기문 대망론이 추석 보름달처럼 차올랐다. 연휴 직전 여론 조사에서 반 총장이 다른 후보군을 압도했다. 경쟁자들이 반 총장 흠집 내기에 들어갔다. ‘정치 경륜이 없다’ ‘카리스마가 없다’ 등의 부정적 평가를 쏟아낸다. 실제로 그렇다. 반 총장에겐 정치 경륜도 없고 카리스마도 없다. 하지만 긍정론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세상없어도 반기문 대세론은 흔들리지 않는다’며 절대적 지지를 보낸다. 그들 스스로 쑥스러워 말하지 않지만 이유는 단순하다. ‘충청도 표’다. ‘반기문컵 축구대회’에서 짐작케 되는 충청도의 압도적 지지다. ▶충청도를 얻는 후보가 권력을 쥐었다. 김대중 후보에게는 ‘충청-호남 연합’이 있었고, 노무현 후보에게는 ‘충청 수도이전’이 있었다. 이제 그 충청이 변수(變數)가 아닌 상수(常數)로 등장하려 한다. ‘대통령 만드는 충청’이 아니라 ‘대통령 되는 충청’이 되려고 한다. 이게 반기문 대망론의 실체다. 충청 여론을 독재하지는 않지만 독점하고 있는 그의 힘이다. ‘박정희盃’ 이후 처음 보는 ‘반기문盃’가 대망론의 요체다. 김종구 논설실장

[지지대] 병역면제용 국적포기

1968년 한국에서 태어난 김모씨는 17살이 된 1985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이후 10년 동안 병역 의무를 미룬 채 1995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귀화한 김씨는 1997년 돌연 귀국해 한국에 눌러앉았다. 영어강사 등으로 돈벌이까지 하며 ‘한국사람’ 행세를 했다. 외국 국적을 취득한 사람은 국적상실 신고를 해야 하지만 이를 계속 미뤄 2002년에야 김씨의 한국 국적이 말소됐다. 병역 의무는 2006년 만38세가 되자 자동 면제됐다. 미국 시민권을 얻어 군대를 면제받은 가수 유승준의 사례와 판박이다. 황당한건 김씨가 2014년 “다시 한국인이 되고 싶다”며 국적 회복 신청을 한 것이다. 하지만 법무부는 ‘병역을 기피할 목적의 국적 상실이 명백하다’며 국적 회복을 불허했다.김씨는 이에 불복해 소송까지 냈지만 법원도 김씨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법원은 지난 8월 “병역 의무가 생기기 1년 전에 미국으로 이민했고 미국 귀화 이후에 한국에서 계속 체류해온 점, 병역 의무가 면제된 지 2년 만에 국적 회복 신청을 한 점 등을 비춰보면 병역 기피 목적이 다분하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김씨처럼, 국적을 포기해 병역을 면제받은 남성이 매년 수천명에 이른다. 2013년 3천75명, 2014년 4천386명에 이어 올해는 7월까지 4천220명이나 된다. 올해 입영자 수가 27만 명인 것을 감안하면 입영 자원 65명 중 1명이 국적 포기로 입영 대상에서 제외된 셈이다. 지난 5년간 병역의무 대상자(18~40세) 가운데 국적 포기자는 1만7천229명에 이른다. 이중 유학 등 장기 거주로 외국 국적 취득 후 한국 국적을 포기한 경우가 90.4%(1만5천569명)에 달한다.부모의 경제적 여유와 사회적 지위가 뒷받침돼야 자녀가 유학 등으로 장기 체류할 수 있음을 감안하면, 결국 금수저·흙수저론이 병역의무에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병역 불평등’에 대한 한탄이 나올만하다. 병무청은 국적 포기를 통한 병역 회피를 막기 위해 이른바 ‘유승준 방지법’을 추진하고 있다. 병역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상태에서 국적을 이탈·상실한 사람에 대해 상속세와 증여세 등을 중과세하고 국적 회복을 금지하겠다는 것이다. 고위 공직자의 아들일 경우 공직자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병역면제를 위한 국적포기자가 늘수록 국민의 분노도 높아진다. 권력층과 사회지도층 자제의 병적 관리 강화가 시급하다.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명절 후유증

추석 연휴가 끝났다. 이번에도 명절 후유증이 만만찮은 것 같다. 가족과 함께 즐겁게 보내야 할 명절이 신체적ㆍ정신적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통과의례로 바뀐지 오래다. 명절이 배우자의 가슴을 멍들게 하는 ‘멍절’로 전락해 버렸다. 설이나 추석 명절을 지내고 난 뒤 사이가 나빠지는 부부들의 사례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시가 및 처가와의 갈등이 부부 불화로 이어지고, 깊어진 갈등의 골은 이혼 증가로 이어져 ‘명절 이혼’이란 신조어까지 생겼다. 명절 이혼은 이제 우리 사회의 보편적 현상으로 고착화되고 있다. 통계청이 얼마 전 발표한 ‘최근 5년간 이혼통계’에 따르면 설 명절인 2월과 그 다음 달인 3월, 추석 명절인 9월과 다음 달인 10월 사이 이혼건수를 분석한 결과 전달 대비 평균 이혼건수가 11.5%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대법원 통계도 이를 뒷받침한다.설 연휴인 2월 접수된 이혼 소송 건수가 2천540건인데 반해, 다음 달인 3월 접수된 이혼 소송 건수는 3천539건으로 무려 39.3% 증가했다. 설 연휴만큼은 아니지만 지난해 추석연휴가 끼었던 9월에서 10월 넘어가는 사이 이혼 소송 건수는 3천179건에서 3천534건으로 소폭 늘어났다. 이런 추세는 지난 10년간 이혼 소송 증가율 통계에서 꾸준히 나타나고 있다. 명절 연휴에 서로의 가족을 만나며 화목을 다지기보다 서로 만나지 않으며 감춰왔던 감정이 폭발하는 경우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부부간의 불신과 불만 등 해묵은 감정들이 명절을 지나면서 회복하기 힘든 앙금이 되고, 결국 파국적 결말로 나타나는 것이다. 명절 이혼은 여전히 여성에게 집중되는 가사 노동과 이로 인한 고부갈등이 주된 원인으로 지목되지만, 최근엔 처가와의 갈등 등으로 남성이 먼저 이혼을 결심하는 경우도 늘어나는 추세다. 명절이 화합의 시간이 되기도 하지만 어떤 가족에겐 그동안 쌓였던 불만이 폭발하는 계기가 된다. 그러므로 평소 갈등이 생길 때 충분한 대화로 문제를 풀고, 매년 명절을 어떻게 보낼지 상의하고 조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우리 사회의 남녀 성평등 의식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명절을 남성 위주, 시가 위주로 지내는 관습은 여전하다. 명절 직후 부부관계가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선 미리 합리적인 명절 계획을 수립하고 서로에게 많은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부부간의 대화와 소통, 배려는 늘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패럴림픽 2연패 최광근

지난 11일 브라질에서 열린 ‘2016 리우패럴림픽’ 유도 시각장애 남자 100㎏급 결승전은 열광의 도가니였다. 2012년 런던패럴림픽 챔피언 최광근(29·수원시청)과 패럴림픽에서 금 4, 동 1개를 따낸 안토니오 테노리오(46·브라질)가 맞붙은 경기였기 때문이다.경기장을 가득 메운 브라질 홈팬들은 ‘테노리오’를 외쳤다. 하지만 최광근은 주눅들지 않았다. 경기 시작 47초만에 상대선수의 지도를 이끌어낸 그는 1분21초만에 발뒤축후리기로 한판승을 거뒀다. 경기 후 최광근은 감독의 부축을 받고 매트에서 내려와 관중석에서 응원하던 아내 권혜진씨(37)에게 다가가 끌어안고 키스를 했다. 두 사람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시상식 후 남편은 “내가 많이 부족한데 결혼해 줘서 고맙다”며 아내의 목에 금메달을 걸어줬다. 펑펑 울던 아내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두 사람은 2012년 런던패럴림픽에서 처음 만났다. 권씨는 대한장애인체육회 직원으로 최광근의 전담 통역을 맡았다. 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한 권씨는 영어와 일본어에도 능통했다. 올림픽 후 최광근은 권씨를 계속 만날 방법을 궁리하다 “영어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고, 8살 위의 여자를 ‘쌤’(선생님)이라고 불렀다.그 인연으로 작년 1월 결혼했다. 결혼반지도 없고, 신혼여행도 생략한 소박한 결혼식이었다. 최광근은 이번 대회 전 아내에게 결혼반지 대신 금메달을 선물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남편은 이를 지켰다. 최광근은 아들의 살을 빼려는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유도를 했다. 강릉 주문진고 2학년 때부터 두각을 나타낸 그는 그해 전국체육대회를 앞두고 3학년 선배와 연습 경기를 하다 왼쪽 눈을 크게 다쳐 시력을 잃었다.이후 오른쪽 시력도 약해져 바로 눈앞의 사물도 구별 못하는 정도가 됐다. 그래도 유도를 포기하지 않았다. 울면서 다시 도복을 입고, 2010년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일반선수들과 맞섰던 그는 장애인 무대에서 단숨에 두각을 드러냈다. 2010 세계선수권, 2010 광저우 패러아시안게임, 2012 런던 패럴림픽 등 나가는 대회마다 우승을 차지했다. 불의의 사고가 그의 시력을 빼앗아갔지만 최광근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장애인 유도의 간판이 됐고, 두번이나 올림픽 금메달을 딸 수 있었다. 그보다 더 소중한 건 그에게 사랑과 희망, 가족을 선물했다는 것이다. 한편의 영화같은, 감동 드라마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로또의 비극

우리나라에 로또(Lotto)가 등장한 건 2002년이다. 1969년 주택복권이 처음 나왔고, 1990년대 즉석복권이 나오면서 복권이 18종으로 난립하자 로또로 통합했다. 로또의 등장으로 2002년 9천796억원이던 복권 판매액은 2004년 3조2천984억원으로 늘어날 만큼 광풍이 불었다. 수년간 2조원대를 유지하던 로또는 지난해 3조2천571억원으로 1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로또 1등 당첨 확률은 길 가다 벼락 맞아 죽을 확률보다 낮은 814만5천60분의 1이다. 그런데도 ‘로또 명당’은 늘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씁쓸한 건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복권을 찾는 이들이 더 늘었다는 것이다. 가게에 손님이 줄고 공장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잦아들어도, 복권 판매점의 로또 발급 단말기는 힘차게 돌고 있다. 로또는 불황상품 중 하나다. 경기가 나빠질수록, 살기가 어려울수록 잘 팔리기 때문이다. 박탈감, 소외감, 불안감 등을 술과 담배로 잊으려고 하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경기 불황에 고용불안ㆍ취업난 등에 지친 국민들이 인생역전, 일확천금을 노리고 복권을 사는 것이다. 더 우울한 건 로또에 당첨된 후 혈육이 갈라서고, 가족이 풍비박산 나는 일이다. 고소, 폭행에 심지어 살인까지, 로또 당첨을 둘러싸고 가족 간에 비극이 일어나고 있다. 실제 지난달 경남 양산시청 앞에서 노모가 ‘패륜아들 ○○○를 사회에 고발합니다’라는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였다. 아들이 40억3천448만원의 로또 1등에 당첨된 뒤 연락을 끊었다는 것이다. 수소문 끝에 아들이 사는 아파트를 찾아갔지만 문전박대를 당하자 피켓시위를 벌였다고 했다. 아들은 파주에 살다가 로또 당첨 이후 본인을 찾아왔지만 다른 가족들과 당첨금 분배 문제로 갈등을 빚자 거주지를 몰래 옮겼다는 게 노모 주장이다. 이런 노모에 대해 아들은 형사 고소와 신고로 맞섰다. 아들은 노모가 양산시청과 본인 집 앞에서 공개 시위를 하며 자신을 패륜아로 몰았다며 모욕 혐의로 경찰에 고소장을 냈다. 경찰은 노모 등 가족 4명을 조사해 모두 불구속 입건했다. 그전엔 인천에서 로또 당첨금을 함부로 썼다며 40대 남편이 아내를 주먹과 발로 수십 차례 때린 폭행 사건도 있었다. 또 포항에선 로또에 당첨된 50대 남성이 동서가 휘두른 흉기에 숨지는 사건도 발생했다. 도대체 로또가 뭐길래…. 이쯤 되면 로또는 인생역전이 아니라 인생 파멸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한완상 前 부총리가 남긴 교훈

경기문화재단이 설원기 신임 대표이사 취임을 두고 고민에 빠졌다. 대표이사에게 임명장을 줘야 할 이사장이 아직도 공석이기 때문이다. 대표이사 직무 대행 중인 경영본부장이 직속 상관에게 임명장을 주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 다른 방법으로 임원추천위원회를 열어 확정하기까지 시간 지체라는 단점이 있다. 어떤 방식이든 이사장이 대표에게 임명장을 주는 통상적 수순은 밟기 어려워 보인다. 경기도, 문화재단 모두 이 같은 상황에 당혹스러워한다. 불과 2주 전만 해도 이사장 ‘내정자’로 알려진 한완상 전 부총리가 먼저 취임해 설 대표에게 임명장을 주는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한 전 부총리는 앞서 남경필 도지사의 제안을 수락, 이사장 공모에 단독 지원했다. 모두 함구했지만 한 전 부총리의 신임 이사장 취임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언론 역시 남 도지사의 ‘대권을 향한 균형 맞추기 인사 영입’이라는 분석을 집중 보도하며 그의 취임을 기정사실화했다. 그러나 한 전 부총리는 지난 5일 돌연 이사장직을 고사했다. 예상 밖 전개에 도와 문화재단은 골머리를 앓고 있다. 나는 다른 이유로 머리가 지끈거린다. 문화재단은 2012년 도지사가 당연직 이사장으로서 대표이사를 임명했던 임원 선출 방식을 인사추천위원회를 먼저 거치는 것으로 전환했다. 기관장 임용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이자 의지였다. 그런데 인사추천위원회를 거치기도 전 도지사가 제안하고 이를 수락한 내정자가 존재했다. 이를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그 동안 지자체장이 공공기관 임원 인사를 보은하기 위해 자기 사람 앉히기 혹은 미래를 위한 포석쯤으로 여긴 고질병이 만연했던 탓이다. 매번 이같은 인사에 기관 직원이나 도민 모두 무뎌진 탓이다. 이사장 공모는 원점이 됐다. 남 도지사가 지자체장들이 기관장을 개인적 입맛으로 좌지우지하는 상식 밖 행동을 부수는 기회로 삼으면 어떨까. 도지사가 솔선수범하면, 도내 지자체장이 추진하는 불합리한 인사에 대해 최소한 부끄럽게 여기진 않을까. 더 이상 명퇴 공무원이나 지자체장 측근이 아닌 문화예술 전문가를 영입했다는, 당연한 것을 유의미하게 바라보는 기사 따윈 쓰지 않기를 바란다. 류설아 문화부 차장

[지지대] 당신은 명절 앓이 중?

추석이 코앞이다. 올여름 최악의 무더위도 견뎠는데, 최근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배가 아픈 것 같기도 하고, 소화도 안 되고, 목에 뭔가 걸린 것 같다고도 한다. 온몸에 힘이 쭉 빠져나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도 한다. 여러 증상을 하소연하면서도 꼬집어 설명하지는 못한다. 딱히 병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매년 정기적으로 겪는 일이다 보니 만성병인가 하는 걱정도 든다고 한다. 명절증후군이다.▶명절증후군을 여자만 앓는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남성과 여성 모두가 앓지만, 증상이 다른 것뿐이다. 주부들은 명절 때면 준비할 것도 많은데 시댁에 빨리 가자고 재촉하는 남편의 얼굴만 봐도 울화가 치민다고 한다. 시댁에 가서도 여자들은 온종일 부엌에서 동동거리는데 남자들은 술 마시고 고스톱 치는 게 전부처럼 보이니 화가 날 수밖에 없다. 명절을 지낸 후에는 손목 통증에다 두통, 요통까지 온갖 통증에 시달린다. 심하면 몸살로 앓아눕기까지 한다.▶남편이라고 편한 것만은 아니다. 오랜만에 부모님과 형제들을 만난다는 것은 좋지만, 명절 때면 극도로 날카로워진 아내의 비위를 맞추는 게 영 피곤한 게 아니다. 사소한 일에도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아내와의 다툼이 잦다 보면 자신도 기분이 우울해지기 십상이다. 명절을 치르고 집에 돌아와서도 아내와의 냉전 상태가 계속되니 명절이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명절 후 이혼율이 급증했다는 보도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즐거운 날이어야 할 명절이 가족 구성원들에겐 스트레스만 주는 날이 됐다. 그렇다고 명절을 없앨 수도 없는 일. 모두가 서로에게 스트레스를 안 주려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얼른 짝 찾아야지’, ‘졸업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집에 있니?’, ‘올해 고 3이지’, ‘집은 샀어?’ 등등 위로라고 던지는 말들이 당사자에겐 스트레스라는 것도 명심하자. 특히 명절 때 모든 일의 부담이 여성에게만 전가되는 현실이 명절증후군을 키우는 만큼 적극적으로 일을 나누어 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여자가 편해야 집안이 편안하다는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박정임 경제부장

[지지대] 삼성 입사 ‘팁’

삼성전자는 대학생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직장이다. 그는 그곳의 인사팀 임원이다. 지원자 면접을 몇 년째 하고 있다. 그의 결정에 지원자들이 울고 웃는다. 그에게 ‘아주 편한’ 자리에서 ‘아주 특별한’ 질문을 했다. “내 아이가 지원자라면 어떤 준비를 시킬 것인가”. 식상한 답변도 있었다. “솔직하게 면접해야 한다” “학벌은 거의 보지 않는다”…. ▶“그런 것 말고 100% 통할 팁을 얘기해 달라”고 했다. 잠시 생각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전공과목 이수를 많이 해야 한다. 득점이 쉬운 교양과목으로 전체 학점을 관리하는 유형은 입사하기 어렵다. 요즘은 (전공을 보는) 비중이 더 커지는 추세다. 입사 관리부서에는 지원자의 성적에서 전공과목 점수만을 걸러내는 별도의 팀이 있을 정도다”. “봉사나 동아리 활동 이력도 도움이 되나”고 묻자 미간을 찌푸린다. “그건 최종 면접관에게 얘깃거리를 주는 정도밖에 안 된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이런 조사 결과를 내놨다. 인사 담당자들이 채용 서류를 검토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기업 인사담당자 367명이 답했는데 평균 13분이었다. 이 13분에 읽어야 할 서류가 학력 증명, 이력서, 자기소개서 등이다. 4년-4년제 대학 졸업자의 경우-을 공들여 만든 학력 증명서다. 한 줄이라도 더 채우기 위해 없는 시간 쪼개 만든 이력서다. 전문가에 돈까지 줘가며 작성한 자기소개서다. 이런 서류를 단 13분 훑어 보고 끝낸다니 지원자에겐 허무할 따름이다. ▶결국 ‘모든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볼 것만’을 본다는 얘긴데…. 여기에도 ‘전공 능력’이 들어간다. 같은 조사에서 인사담당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평가한다고 밝힌 항목은 이랬다. 지원직무 관련 경험(34.1%), 보유기술과 교육이수 사항(18.5%), 전공(13.1%), 보유 자격증(7.9%). 그 임원의 귀띔과 연결된다. “전공과목 이수를 많이 하면 유리하다”는 조언이 괜한 말이 아니었다. ▶학력, 학점, 자격증, 연수, 봉사…. 취업 준비생은 어느 것 하나 버리지 못한다. 전부 해놔야 할 것 같아 붙들고 늘어진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대부분 버려진다고 한다. ‘화려한 스팩’이 ‘면접관에게 주는 얘깃거리’일 뿐이라고 한다. 기업 한 곳, 임원 한 명의 얘기이지만 리얼한 팁일 수 있다. ‘전공을 많이 듣고 높게 따 놔라.’ 김종구 논설실장

[지지대] 삼성의 통 큰 리콜

1995년 3월 9일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운동장. 2천여 명의 삼성전자 직원이 ‘품질 확보’라는 머리띠를 두른 비장한 모습으로 속속 집결했다. 운동장엔 15만대에 달하는 휴대폰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10여 명의 직원이 쌓인 휴대폰에 해머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박살난 제품들에 불을 붙였다. 모두 500억원어치의 휴대폰이 재가 됐다. 삼성전자 휴대폰 성장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애니콜 화형식’ 장면이다. 당시 애니콜은 초기 모델이었던 탓에 제품 불량률이 11.8%에 달했다. 이에 “시중에 나간 제품을 모조리 회수해 공장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태워 없애시오”라는 이건희 회장의 불호령에 따라 불량 휴대폰들이 공개 화형에 처해졌다. 타고 남은 재가 소중한 밑거름이 되듯 잿더미 속에서 애니콜은 다시 태어났다. ‘불량은 암이다’라는 구호를 앞세워 품질경영에 나섰고, 불구덩이 속에서 살아난 휴대폰의 성장사라는 이름에 걸맞게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현재 삼성전자의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1등이다. 승승장구하던 삼성 휴대폰이 또 한번 위기를 맞고 있다. 최근 출시된 갤럭시노트7 일부에서 배터리 결함이 발견돼 전량 리콜을 결정한 것이다. 100만대 중 24대가 불량이어서 불량률은 0.0024%에 그치지만 삼성은 첫 폭발 사고 발생 9일 만에 ‘250만대 전량 리콜’이라는 신속하고 통 큰 결정을 내렸다. 전대미문의 대규모 리콜에 적게는 1조 5천억원, 많게는 2조 5천억원이 들 수도 있을 것이란 추정이다. 경쟁사 애플이 신제품을 내놓은 시기와 리콜 시점이 겹쳐 손실은 더 커질 수도 있다. 이번 배터리 폭발은 삼성전자에 뼈아픈 사건이다. 갤럭시노트7은 삼성 스마트폰 최초로 홍채 인식이라는 혁신적인 기술 탑재로 세계인들의 주목과 찬사를 받았고, 물량이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그렇기에 출시 한 달 만에 이뤄진 리콜로 삼성전자는 큰 비용 부담과 함께 제품과 기업이미지에 타격이 예상된다. 하지만 신속하게 리콜을 결정하면서 소비자에게 제품의 완벽성과 안전을 우선시한다는 믿음을 줬다. 제품에 대한 불안감에 일시적으로 등을 돌릴 수도 있지만 삼성의 진정성이 받아들여지면 장기적으로는 제품의 신뢰성과 브랜드 이미지 개선에 득이 될 수 있다. 삼성의 통 큰 결정이 전화위복의 계기가 돼 향후 삼성이 벌이고 있는 다양한 신사업 분야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일으키길 기대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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