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더치페이

더치페이(Dutch pay)는 ‘더치트리트(Dutch treat)’에서 유래한 말이다. 더치(Dutch)는 네덜란드인을, 트리트(treat)는 한턱내다, 대접하다라는 뜻이다. 더치트리트는 다른 사람에게 한턱을 내거나 대접하는 네덜란드인의 관습이었다. 그러나 영국 문화가 섞이면서 원래 뜻이 바뀌었다. 네덜란드는 1602년 아시아에 동인도회사를 세우고 영국과 식민지 경쟁에 나섰다. 두 나라가 경쟁을 하면서 갈등이 깊어졌고 영국인들은 네덜란드인을 비하하기 위해 ‘더치’라는 말을 부정적으로 사용했다. 영국인들이 대접하다라는 뜻의 트리트(treat) 대신 지불하다라는 의미의 페이(pay)로 바꿔 사용하면서 더치페이는 함께 식사를 한 뒤 자기가 먹은 음식 비용을 각자 부담한다는 뜻이 됐다. 같은 뜻으로 일본의 ‘뿜빠이(分配)’라는 표현이 있다. 일본도 더치페이 문화가 일상이다. 남녀가 데이트를 할때 비용을 절반씩 부담한다. 부부, 친구, 가족 사이에서도 더치페이 문화가 자리 잡았다. 남한테 폐 끼치는 걸 유난히 싫어하는 일본인들은 밥이나 술을 얻어먹게 되면 빚지는 것 같아 불편해 한다. 중국에는 ‘AA제(制)’라는 게 있다. 더치페이의 한국식 표현은 ‘각자내기’다. 더치페이는 한국문화와는 다르다. 우리는 함께 식사를 할때 남자가 여자에게, 직장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선배가 후배에게 사는게 관례였다. 친구들 모임에서도 한 사람이 비용을 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근래 많이 바뀌었다. 젊은층에겐 더치페이가 더 익숙하다. 데이트 비용도 나눠내고, 친구들 모임에서도 1/n 하는 경우가 많다. 서로 부담을 안주니까 오히려 편하다는 반응이다. 체면과 관계없는 실리적이고 합리적인 나눔과 책임 문화라고 말한다. 더치페이가 일상화 되다보니 회사주변 점심시간 식당가는 각자 카드 결제를 하느라 한바탕 전쟁을 치룬다. 단체로 온 손님들이 5천~6천원짜리 밥값을 따로 내느라 줄을 길게 서있고, 식당 주인은 일일이 메뉴를 확인하며 계산을 하느라 진땀을 뺀다. 그래서 어느 식당엔 ‘개별 결제 불가’라는 안내문까지 붙였다.계산하려는 손님들로 식당 입구가 복잡하자 식사하러 왔다가 발걸음을 돌리는 손님이 생기기 때문이다. 일부 식당은 자구책으로 식당 입구에 식권 자동판매기까지 설치했다. 경기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직장인들 지갑이 얇아져 더치페이가 확실히 자리매김한 모양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119 황당신고

장난전화가 끊이지 않고 있다. 배달업체에 많은 음식을 주문하고 엉뚱한 주소를 알려준다든지, 지하철역에 폭발물이 설치됐다든지, 가족 누군가가 납치됐다든지 하는 전화들이 빈번하다. 초등생이 집에 불이 났다고 전화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사람한테 총 맞았다’고 전화하고는, 다급해하는 119대원에 ‘그래서 가슴이 아프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예전보다 줄었다고는 하나 장난전화는 여전하다. 며칠 전 인천소방본부가 ‘119 황당신고 베스트10’을 발표했다. 올바른 119신고문화 정착을 위해 작년 4월 1일부터 올 4월 30일까지 전화로 접수한 54만2천477건 가운데 투표를 거쳐 베스트10을 선정했다. 1위는 “남자친구에게 전화 한 통 부탁드려요. 번호 알려줄게요. 한 번 만요.”다. “등을 많이 다쳤다. 병원비하게 10만원만 보내 달라”, “영화배우 안성기씨 있죠. 바꿔줘요. 얼른”, “산 속에서 휴대전화 분실했어요, 산에 와서 찾아주세요”, “대리운전기사가 안 와요. 도와주세요” 등이 2~5위에 올랐다. “85세 노인이다. 아이들이 바람피운다고 난리다. 도와 달라”, “오늘 밖에 나가려는데 큰 개가 문 앞에 있는지 없는지 봐 달라”, “집에 가려는데 비가 많이 와 택시가 안 잡힌다. 데려다 달라”, “집안에 있는 바퀴벌레가 완전 크다. 여자 혼자 사는데 도와 달라”, “오전에 농협 텔레뱅킹 신청했는데 안 된다. 도와 달라” 등도 베스트 10에 포함됐다. 정말 황당한 내용들이다. 코미디가 따로 없다. 이런 황당하고 무분별한 신고 때문에 119에선 긴급 환자에 소방력을 집중하지 못할게 뻔하다. 119에 전화한 사람은 장난을 즐길지 모르지만 또 다른 곳에선 생명이 위급한 환자가 죽어갈 수도 있다. 피해를 보는 사람이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이런 전화를 할 수 있을까? 인천소방본부에 접수된 119전화 54만2천477건 중 긴급출동 신고는 19만3천798건(35.7%)에 불과했다. 33만669건(61.0%)은 상담ㆍ민원성 전화였다. 내용이 없는 반복 전화나 욕설·폭언을 일삼는 악성 전화도 많았다. 악의적이고 상습적인 장난전화는 엄벌해야 한다. 한시라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화재와 구조ㆍ구급에 비상 출동대기를 하고 있는 소방관들을 놀려먹어선 안된다. 119장난전화는 출동대원에게 스트레스가 되고, 정말 도움이 필요한 어떤 사람은 골든타임(현장도착 5분이내)을 놓칠 수 있어 범죄행위나 다름없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가스공사 LNG탱크 증설 논쟁

인천시 연수구와 한국가스공사 인천LNG탱크 증설 공사 관련 논란이 수년째 계속되고 있다. 주변에선 인천시도 연수구도, 가스공사도, 주민들도 모두 지쳐간다고 한다. 심지어 이를 보도하는 기자들도 지쳐간다. 논란은 계속 불거지는데 뭐하나 결론이 나지 않고 질질 끌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8일 가스공사는 인천시에 행정심판 재심 청구를 했다. 지난 4월24일 시 행정심판위원회가 결정한 내용에는 ‘구가 가스공사의 건축 신청에 대해 처분행위를 해라’고만 되어 있는데, 처분 행위 날짜를 정해달라는 게 재심 청구 이유다. 당시 행심위가 가스공사의 건축허가 신청에 대한 구의 잇따른 보완조치가 부작위 위법이라고 결정함에 따라 구는 건축허가에 대해 승인 또는 거부 결정을 내려야 하지만, 아직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다. 가스공사는 아예 행심위가 처분 행위 날짜까지 지정하는 등 시에서 책임을 져달라는 것이다. 이 같은 입장은 연수구도 비슷하다. 2014년 시 도시계획위원회가 안전기준적용 및 주변지역 보상지원, 주민 의견수렴 등 두루뭉술한 조건을 내걸어 승인을 해줬는데, 이는 시가 연수구에 폭탄 돌리기를 했다는 것이다. 이번 행정심판 결과도 마찬가지다. 정말 구가 위법을 했다면 시가 ‘구는 건축허가를 승인해라’고 결정하면 되는데, 이 역시 구가 결정하라고 하는 등 시는 계속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어찌 됐건 현재는 구에 공이 넘어와 있다. 구도 주민과 가스공사의 사이에서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언제까지 계속 고민만 할 순 없다. 무조건적인 찬성 또는 반대는 바라지 않는다. 다만 후세에 ‘합리적인 결정’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주민과 가스공사 사이에서 중재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대로 계속 가면 행정심판이 아니라 행정소송으로 가는 등 장기화 될 것이고, 결국 모두가 지치고 지쳐 있다가 자의와 상관없이 법원의 판단에 따라 결정되게 된다. 이때는 승자가 의미가 없다. 주민과 가스공사 모두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이민우 인천본사 사회부장

[지지대] 그녀는 딸, 아내, 어머니다

△지난주 말, 목포발로 전해진 섬마을 20대 여선생의 강간 사건은 ‘이 사회가 도대체 어떻게 되려고 이러는지?’라는 걱정을 또다시 하게 했다. 40대 학부모를 필두로 3명의 남자가 힘없는 것은 둘째치고 라도 자신의 아이를 가르치고자 먼 바닷길을 마다하지 않고 고생을 감내하며 사명감에 충만해 달려왔던 20대 여선생을 그렇게 무참히 짓밟을 수 있나 하는 어른으로서 창피함과 분노, 그리고 반성이 한꺼번에 몰려왔기 때문이다. 가해자와 동성이라는 사실로 고개조차 들지 못하게 한다.△그녀는 누군가의 딸이다. 아들놈과 나이를 비교하면 아마도 엇비슷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 누군가의 딸이자 대한민국의 딸이니 나의 딸이라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그녀는 시간이 흐르면 누군가의 아내가 될 것이고 그 후에는 어머니가 될 것이다. SNS 상의 댓글에 적지 않은 중년들이 분노를 표출하고 관용 없는 처벌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마도 그래서일 것이다.△우리 선조의 성범죄 처벌 전례에 비추어 보면 이들은 모두 교형(교수형)이다. 조선시대는 성범죄를 대명률(大明律)에 따라 처벌했다 한다. 여성이 원치 않는데도 강간을 하면 교수형에 처하고, 강간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한 경우(미수)에도 곤장 100대를 치고 3천 리 밖으로 쫓아냈다. 강간범은 사형이었고, 미수범도 중형이었던 것이다. 조선이 대명률에 따랐다면 중국 역시 성범죄에 대한 강력한 처벌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동양의 성범죄에 대한 처벌은 그렇게 단호했다.△예나 지금이나 의무교육 과정을 거친 모든 이는 여성은 보호하고 지켜줘야 할 대상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것이다. 이는 신체적 약자일 뿐만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이자 남자의 삶 과정에서 본인과 더불어 가장 크고 깊은 축을 형성하기 때문이다.여자는 그래서 보호되고 존중받아야 한다. 중년들이 대한민국의 성범죄 처벌이 너무 가볍다며 벌써부터 사법부를 견제하고 나선 이유다. 가해자들은 남자로서의 자존감과 책무를 모두 포기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 사회가 줄 수 있는 대답은 하나뿐이다. ‘엄벌(嚴罰)’이다. 정일형 지역사회부 부국장

[지지대] 순대-지동

골목이 흡사 동굴처럼 길다. 차양이 맞닿아 하늘을 가린다. 그 붉은 차양에 얼비친 골목도 붉다. 양옆으로 식당이 빼곡하다. 영업장이랄 것도 없다. 절반이 지붕 없는 집이다. 비라도 오면 난장판이다. 질척대는 바닥엔 곳곳이 물골이다. 천막에 고인 물은 짓궂은 장난거리다. 우산으로 올려진 천막 위 물이 어딘가에 물벼락을 때린다. 그 골목 사이로 어깨가 맞닿을 듯 사람들이 몰려든다. 그리고 저마다의 단골집으로 찾아 들어간다. ▶가게 입구 좌판이 곧 차림표다. 큼직한 돼지 머리는 기본 장식이다. 비닐에 덮인 순대가 김을 뿜어낸다. 덤으로 나갈 간과 내장도 소쿠리에서 대기 중이다. 4명씩 앉는 상 4개가 식당 안 전부다. 술상 모퉁이로 막걸리 병이 쌓인다. 고함을 질러야 대화가 된다. ‘더치페이’는 몹쓸 서양문화다. 누군가 한턱을 낸다. 배부르다 싶으면 1만원이다. 아니면 4인상 7천원으로 끝이다. 1970년대 수원 지동시장 순대 골목은 그랬다. ▶1990년대 말. 시장에서 LP 가스통이 사라졌다. 도시가스로 교체됐다. 진흙 바닥도 사라졌다. 수평 잡힌 콘크리트로 정리됐다. 뒤뚱거리는 나무 의자도 없어졌다. 온돌로 쩔쩔 끓는 방바닥이 놓였다. 후텁지근함을 참을 필요도 없어졌다. 상가 전체를 감아 도는 냉방이 서늘하다. 도(道)가 준 시설개선자금 5억원이 그렇게 바꿨다. 이제 목이 쉬어라 떠들지 않아도 된다. 옆 사람과의 불쾌한 무릎 접촉도 없어졌다. 가족 단위도 많고, 연인도 많고, 외국인도 많다. 지금은 가장 유명한 순대 타운이다. ▶그곳 토박이 ‘은주네’가 요즘 걱정이다. 장사가 예년 같지 않다고 한다. 시장 맞은편 통닭 골목에 치인다는 것이다. 그럴 만하다. 수년 전부터 뜬 수원 통닭이 가히 열풍이다. 방송 몇 번 타면서 최고의 관광코스가 됐다. 달콤한 통닭부터 고소한 통닭까지 다양하다. 여기에 시원한 호프까지 곁들여진다. 통닭집 앞에 늘어선 줄은 이제 일상이다. 그런 만큼 순대 골목에 빈자리가 난다. “지동 순대 골목도 잘 돼야 하는데…걱정이에요.” ‘은주네’ 얘기만 아니다. 순대 타운 상인들이 다 걱정한다. ▶그래도 어떤 이들에게는 순대 골목이 여전하다. 자리 틀고 앉아 담소를 나누는 곳이다. 막걸리에는 역시 오소리 감투가 최고다. 지글지글 볶아대는 철판순대만한 회식 메뉴도 없다. 말만 잘하면 순대 한 접시가 슬그머니 들어온다. 그때나 지금이나 순대 골목에만 있는 ‘정’과 ‘역사’라는 맛이다. 그 정과 역사에 취한 순대골목파(派)들이 오늘도 약속한다. ‘오늘 저녁 순대볶음에 막걸리 한 잔 어때?’ 김종구 논설실장

[지지대] 생리대 인권

얼마 전부터 ‘생리대’가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뜨겁게 달궜다. 곤궁한 처지의 여성 청소년들이 생리대 살 돈이 없어 말 못할 고통을 당한다는 숨겨진 이야기들이 드러났다. 발단은 지난달 23일 국내 1위 생리대 제조업체인 유한킴벌리가 생리대 가격을 6월부터 8%가량 올릴 예정이라는 발표로 시작됐다. 트위터 등 SNS에는 비싼 생리대 때문에 겪어야 했던 안타까운 사연들이 이어졌다.생리대 값이 없어서 한 달에 일주일씩은 학교를 빠지고 수건을 깔고 집에 누워 있어야 했다는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어떤 소녀는 돈 없는 부모에게 생리대를 사 달라고 할 수 없어 신발 깔창을 속옷 아래에 넣고 다녔다고 했다. 학교 화장실의 화장지를 말아 생리대 대용으로 쓰는가 하면, 생리대 하나로 하루를 버텼다는 내용도 있었다. 예민한 시기의 청소년들이 선뜻 털어놓기 어려웠을 ‘아픈’ 사연들이다. 이들은 여성으로서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월경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이런 이야기들을 SNS에 털어놓으며 수치심도 느꼈을 것이다. 많은 헌법학자들은 “수치심은 인간 존엄성을 저해하는 감정이며 시민이 수치심을 겪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은 사회의 의무”라고 주장한다. 생리대에 얽힌 가슴 아픈 사연들이 알려지자 많은 어른들이 죄책감과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했다. 밥을 굶는 아이들 이야기는 들었어도 생리대를 사지 못하는 아이들은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생리대를 사기 어려운 형편의 저소득층 여성 청소년(15~19세)은 전국적으로 6만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저소득층의 생리대 문제는 단순 복지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의 문제라며 여기저기서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1인당 연 30만원 정도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 시장은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구김없이 자라야할 청소년들의 이런 아픔을 지금까지 몰랐다니 어른으로서 특히 정치행정가의 한 사람으로서 마음깊이 반성한다”고 했다. 이 시장의 몇몇 정책을 포퓰리즘이라고 지적했던 사람들조차 이번 발빠른 조치에 대해선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생리대 문제가 커지자 유한킴벌리는 가격 인상을 철회한다고 발표했다. 저소득층 청소년을 위한 중저가 생리대도 출시하기로 했다.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언제까지 기업체의 선의에만 맡길 수는 없다. 이제라도 정부와 사회가 나서서 근본대책을 찾아야 한다. 반짝의 관심이 아니라 인권 차원에서 접근해야 함이 옳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복싱영웅’ 무하마드 알리

‘복싱의 전설’ 무하마드 알리가 3일(현지시간) 미국의 병원에서 74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20세기 최고의 복서 알리는 은퇴 3년만인 1984년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투병해 왔으며, 2014년 12월에는 폐렴으로, 지난해 1월에는 요로 감염으로 치료를 받는 등 최근 수년간 건강이 악화됐다. 복싱 영웅의 타계에 전 세계가 추모하고 있다. 알리의 죽음을 세계가 애도하는 건 그가 복싱 영웅이어서만은 아니다. 올림픽 금메달과 세계 챔피언 벨트를 거머쥐었지만 링 밖에선 인종차별과 싸운 진정한 복서였기 때문이다. 1942년 켄터키 주 루이빌에서 태어난 알리는 본명이 캐시어스 마셀러스 클레이였다.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심한 곳에서 태어난 알리는 가난과 무시 속에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12세 때 아마추어 복서 생활을 시작했고, 1960년 로마올림픽에서 라이트 헤비급 금메달을 획득했다.이후 흑인해방운동가 말콤X를 만나 이름을 무하마드 알리로 바꾸고 이슬람교로 개종했다. ‘캐시어스 클레이’라는 이름을 버리면서 ‘노예의 손자’ 운명을 벗어나고자 했던 것이다. 그는 말콤X와 교류하며 피부색을 떠나 흑백이 공존하는 미국을 꿈꿨다. 알리는 프로로 전향해 3차례에 걸쳐 헤비급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쥐고 통산 19차례 방어에 성공하면서 1960~1970년대를 풍미했다. 1967년에는 베트남전쟁 참전 통고에 양심적 병역 거부로 타이틀을 박탈당하고 프로복서 자격마저 상실했다.이후 3년의 공백을 딛고 1970년 링에 복귀했고 1974년 조지 포먼을 8회 KO로 물리치고 세계 챔피언에 복귀했다. 프로 통산 전적은 56승(37KO) 5패이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겠다”는 1964년 2월 25일 WBAWBC통합 챔피언인 소니 리스턴에게 도전해 승리하기 전 인터뷰에서 한 말로, 그를 늘 따라다닌 수식어였다. 그는 화려했던 복서 생활은 물론 인종차별과 싸운 인권운동가로서도 많은 일화를 남겼다. 1960년 로마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뒤 금의환향했을때 식당 출입을 금지당하자 메달을 강에 던져버렸다. 국제올림픽위원회는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남자농구 결승전 하프타임 때 그에게 다시 금메달을 수여했다. 안타깝지만 알리는 떠났다. 하지만 인권운동가 제시 잭슨 목사가 알리의 삶을 “링 안에서는 챔피언, 링 밖에서는 영웅”이라고 말한 것처럼, 알리는 세계인의 가슴에 영원한 챔피언이자 영웅으로 남을 것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임대주택 전성시대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도 주거 등급이 있다고 한다. 대형건설사가 지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아이들은 임대주택에 사는 아이들을 ‘휴거’(휴먼시아에 사는 거지)라고 부르면서 ‘집따’(집으로 왕따를 하는 것)를 놓는다고 한다. 임대주택을 저소득층의 전유물처럼 생각하는 부모들의 잘못된 발상이 만든 사회적 현상이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전해진 것이다. 사는 곳이 사람들의 등급으로 대변되는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임대주택이 바뀌고 있다. ▶임대주택의 패러다임을 바꾼 일등공신은 바로 ‘행복주택’과 기업형 임대주택이라고 불리는 ‘뉴스테이’다. 특히 뉴스테이는 민간이 정부로부터 토지를 매입해 짓는 아파트로, 민간 건설사의 브랜드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일반 분양 아파트의 기능과 큰 차이점이 없다는 장점이 있다. 뉴스테이는 최대 8년 동안 거주가 가능하고, 임대료 상승률도 연 최고 5% 이내로 제한되는 등 전월세난에 지친 중산층에게 단비와도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 행복주택을 포함한 공공임대주택도 바뀌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이하 LH)는 최근 SK텔레콤과 공동주택의 지능형 스마트홈 구축을 위한 업무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양 기관의 협약에 따라 내년 상반기부터 LH가 공급하는 공공아파트에도 스마트폰으로 가전제품 등을 제어할 수 있는 지능형 스마트홈 서비스가 도입된다. 임대주택의 획기적인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지난해 천정부지로 치솟던 부동산 시장이 올해들어 차츰 시들고 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향후 3년 안에는 절대 집을 사지 말라고 충고(?)까지 했다. 집을 사면 바보라고 막말까지 하면서 말이다. 베이비붐 세대가 중대형 시장에서 빠져 나가고, 과잉공급에 따른 미분양 아파트가 늘면서 자연스레 아파트 거품이 빠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일부 부유층을 제외하고 30대 사이에서 스스로 집을 살 수 있는 인구가 몇이나 될까. 집을 산 이들의 실소유주는 은행일텐데 말이다. 우리는 집을 산 이들을 ‘집바(집을 산 바보)’라고 부르지 않는다. 시대는 변하는 것이다. 임대주택이 변하듯 말이다. 더 나은 임대주택이 확대돼 앞으로는 사는 곳으로 사람됨을 평가받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김규태 경제부 차장

[지지대] 경기 공공박물관의 비애

‘전우’라는 옛날 드라마가 있다. 고지를 놓고 적과 목숨을 건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 실탄이 모두 떨어지고 만다. “소대장님! 실탄이 떨어졌습니다.”라고 외치지만 더 이상 실탄은 보급되지 않는다. 결국, 전우들은 장렬히 전사한다. 지난달 31일 열린 공공뮤지엄의 위기와 미래전략 간담회에서 모 박물관장이 경기도 공공 뮤지엄들의 현실을 이렇게 비유하자 청중 사이에서 자조 섞인 웃음이 터져 나왔다. 경기도가 산하기관 경영합리화 방안 중 하나로 경기도 공공 박물관 일부를 민간 위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경기문화재단 뮤지엄본부가 주최한 이날 간담회는 경기도 공립 뮤지엄의 효율적 경영을 모색하기 위해 열렸지만 경기도의 문화기관에 대한 무차별적인 통폐합과 민간위탁 방침에 대한 성토의 장이 됐다.문화기관 뮤지엄에 대한 이해 없이 효율성에만 맞춰진 왜곡되고 졸속으로 작성된 경영합리화 방안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경기 공공박물관 예산은 지난 2008년 78억원에서 지난해 26억원으로 급감했는데 뮤지엄의 근간이 되는 소장품 구입예산은 최근 3~4년 동안 ‘0’원에 그치고 있다. 이미 허리띠를 졸라매고, 마른 수건을 짜서 근근히 버티고 있었는데 이제 성과를 못내니 민간에 넘기겠다? 뮤지엄 관계자들은 억울하고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경기도 경영합리화 방안에는 현행법상 민간 위탁 자체가 어려운 박물관 민간위탁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국가문화유적지(사적 제268호) 안에 위치한 전곡 선사박물관과 문화재보호구역(경기도 기념룰 제7호)에 위치한 실학박물관은 현행법상 민간이 시설을 운영할 수 없다. 백남준 아트센터는 소장품 저작권자와 계약상 백남준 아트 센터 사업권을 문화재단으로 한정해 민간 위탁이 힘들다. 이밖에 민간에서 운영할 경우 입장료 인상과 공공성 훼손 문제 등은 아예 검토되지 않았다. 경기도 공공 뮤지엄들은 한때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서 벤치마킹 할 정도로 대한민국 문화계를 선도했다. 그러나 지금은 옛날 이야기가 됐다. 오히려 다른 지역 문화계 인사들로 부터 위로를 받는 처지로 전락했다. “어쩌다 경기도 뮤지엄들이 이렇게 됐습니까” 경영합리화는 필요하다. 그러나 문화기관의 특성에 맞는 방식으로 추진해야 한다. 문화를 선도했던 경기도가 문화를 퇴보시킨 경기도로 남지 않길 바란다. 이선호 문화부장

[지지대] 6개 市 ·400만 票

수원 118만. 성남 100만. 고양 100만. 용인 99만. 화성 54만. 과천 7만. 지방재정 개편의 불교부단체와 인구다. 모두 합치면 478만명이다. 이 가운데 80% 전후가 이번 총선의 유권자였다. 수원 94만5천304명. 성남 80만954명. 고양 82만7천751명. 용인 75만3천733명. 화성 45만4천775명. 과천 5만5천845명. 6개 지자체의 총유권자는 383만8천362명이다. 대한민국 전체 유권자(4천189만3천936명)의 약 9.2%다. ▶1987년 이후 6번의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결과를 가른 표 차이는 대개 한 자리 %p였다. 13대(노태우 당선) 8.6%p. 14대(김영삼 당선) 8.2%p. 15대(김대중 당선) 1.6%p. 16대(노무현 당선) 2.3%p. 17대(이명박 당선) 22.6%p. 18대(박근혜 당선) 3.6%p. 17대를 제외한 모든 대선이 한자릿수 %p 차이로 끝났다. 두 번은 8%p, 세 번은 3%p 이내였다. 6개 불교부단체 유권자 9.2%라면 17대를 제외한 모든 대선 결과를 뒤바꿀 수 있었다. ▶투표장을 향하는 심리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당선시키려고 가는 투표’가 있고 ‘떨어뜨리려고 가는 투표’가 있다. 정권 말 치러지는 총선에서는 통상 여당이 참패한다. 정권에 실망한 유권자가 ‘떨어뜨리는 투표’를 하기 때문이다. 16년만의 여소야대(與小野大)를 만든 이번 총선도 이 논리에 들어맞았다. 그때마다 권력자는 ‘잘한 것도 있는데 몰라준다’며 서운해했다. 하지만, 소용없다. 유권자는 받은 건 잊고 잃은 것만 기억하기 때문이다. ▶지방재정제도 개편에 따라 6개 불교부단체들이 받는 피해는 크다. 수원시는 1천800억원이 줄어든다고 계산했다. 과천(300억원)을 제외한 나머지 지자체들이 계산한 손실도 700~1천500억원이다. 해당 지자체들마다 피부로 와 닿는 설명으로 주민을 동참시키고 있다. ‘○○행사 사라지고, △△도로공사가 중단된다’는 식이다. 이런 설명이 그대로 먹혀들고 있다. 지방재정개편안을 ‘나의 손해’라고 느끼는 시민들이 점점 동참하고 있다. ▶지방재정제도 개편에는 이득 보는 지자체와 손해 보는 지자체가 있다. 유권자는 이득의 기억 대신 손해의 기억을 남겨 놓는다. ‘손해 본 400만표’만 오롯이 19대 대선 투표장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하필 그 표의 크기가 9.2%다. 근래 대선(大選)의 당락을 가른 표 차이를 교묘히 넘는다. 지방재정제도 개편에 정치공학적 셈법을 대입한다면 그 답은 여권의 마이너스(-)로 갈 가능성이 크다. 김종구 논설실장

[지지대] 신인류 ‘○○충(蟲)’

“어느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이 흉물스러운 벌레가 돼 있음을 깨달았다. 등딱지는 딱딱했고, 누운 자세에서 조금만 고개를 든다면 곤충처럼 올록볼록 솟아있는 자신의 갈색 배도 볼 수 있을 터였다. 몸집에 비해 처량할 정도로 얇은 다리는 제멋대로 움직였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의 첫 대목이다.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날 아침 침대에서 한 마리의 벌레로 변하게 된다. 소설 중 ‘눈 감았다 뜨니 벌레가 돼있더라’는 내용은, 요즘 한국 사회와 꼭 닮아있다. ‘맘충’ ‘한남충’ ‘급식충’ ‘노인충’ ‘진지충’ 등 인터넷과 SNS엔 온갖 벌레들이 득시글거린다. 대한민국에 등장한 신(新)인류 ‘○○충’은 멀쩡한 단어에 벌레라는 의미의 충(蟲)을 붙여 대상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고 있다. 예전에도 ‘책벌레’라는게 있었지만 개념이 다르다. 이때 벌레는 ‘덕후’의 의미가 강했는데, 요즘 ‘충’의 의미는 비하와 경멸, 차별의 의미로 쓰인다. ‘맘충’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mom)를 벌레에 비유한 것으로 ‘자신의 아이만 아는 몰지각한 엄마’를 칭한다. 식당이나 극장 등에서 냄새나는 기저귀를 갈고 테이블 위나 통로에 놓고 나가는 엄마, 커피숍 한 가운데서 컵으로 아이 오줌을 받는 엄마, 카페에서 아이들이 시끄러워도 수수방관하며 수다 삼매경에 빠진 엄마, 아이가 공공기물을 파손하자 몰래 도망치는 엄마 등 맘충의 사례는 많다. ‘가부장적이고 여성을 배려할 줄 모르는 한국 남성’을 뜻하는 ‘한남충’도 혐오의 대상이다. ‘맘충’은 주로 남성이, ‘한남충’은 주로 여성이 사용하며 서로를 벌레로 여길 만큼 남녀갈등의 심각성을 보이고 있다. ‘설명충(모든 일을 설명하려드는 사람, 잘난척 하는 사람)’, ‘진지충(매사에 진지한 사람)’처럼 특정 성향의 사람을 지칭하기도 한다. ‘노인충(또는 틀니충)’, ‘급식충’처럼 사회약자를 대상으로도 한다. 혐오 용어는 처음엔 일부 누리꾼의 장난처럼 인식됐지만 최근엔 비하 대상이 되는 집단 전체를 지칭하는 용어처럼 사용되면서 사회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 언어에는 그 사회의 모습과 의식이 투영돼 있다. ‘○○충’의 유행은 요즘 세대, 특히 젊은 세대가 혐오 수준을 넘어 분노가 심하다는 반증이다. 남에게 ‘벌레 충’ 자를 붙이며 키득대는 모습은 척박한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이자 사회병리현상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황당한 학교 성교육

‘이성 친구와 단둘이 집에 있을 때: 단둘이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 ‘친구들끼리 여행 갔을 때: 친구들끼리 여행을 가지 않는다’ ‘채팅 중 직접 보고 싶다며 만남을 제안할 때: 낯선 사람과 채팅은 가급적 삼간다’ ‘지하철에서 성범죄를 당했을 때: 가방끈을 길게 뒤로 멘다. 실수인 척 (가해자) 발등을 밟는다’ 교육부가 내놓은 성폭력 대처법이다. 어이없고 황당하다. 지하철 같은 밀집된 공간에서 성추행을 당하면 곧바로 신고하거나 소리치는 게 아니고 가방을 뒤로 메거나 발을 밟으라니 교사들도 어떻게 교육할지 난감해한다. 교육부가 체계적인 성교육을 하겠다며 지난해 3월 ‘학교 성교육 표준안’을 내놓았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교사들이 학생들의 발달단계에 따라 성교육을 지도하는 가이드라인이다. 6억원을 들여 만들었다는데 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기는커녕 현실과 맞지 않거나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내용이 많아 비판이 거셌다. 일례로 초등학교 3~4학년 지도서 초안에선 아빠의 역할을 못 박기, 전구 갈기, 가구 옮기기 등으로, 엄마의 역할은 음식 만들기, 옷장 정리하기, 빨래 개기 등으로 구분했다. 고등학교 지도서에선 ‘인간의 건강은 선천적으로 자궁에서 결정된다’ ‘임신 전부터 자궁 관리가 중요하다’라며 출산을 여성의 책임으로만 규정했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이러한 내용들을 포함해 150여 곳을 수정해 개정된 성교육 표준안을 내놨지만 여전히 엉터리가 많다. 중학교용을 보면 ‘여자는 무드에 약하고, 남자는 누드에 약하다’는 표현이 있다. 술자리 농담에서나 오가는 말이다. ‘성 욕구를 성관계를 통하여 해결하는 것은 성인이 되어 결혼할 때까지는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내용도 나온다. 우리나라 초혼 연령이 남녀 모두 30세가 넘는다는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내용이다. 자료는 전반적으로 남성은 성에 굶주린 듯한 느낌으로, 여성은 판단력이 미약한 듯하게 묘사했다. 또 비현실적인 금욕 강조와 함께 피임 위주의 교육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성교육 표준안으론 제대로 된 성교육, 생명교육을 할 수 없다는 말한다. 성차별적이고 남녀의 성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 내용으로 청소년에게 오히려 그릇된 성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 비판한다. 각계각층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아 실효성 있는 성교육 가이드를 내놓던지 아니면 없애는 게 나을듯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편견

영국의 명작가 제인 오스틴이 스무 살 때 쓴 소설이 있다. 바로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이다. 영국의 가장 위대한 명작 중 하나로 오늘날까지 사랑받고 있는 작품이다.소설은 영국의 시골 롱본(Longbourn)을 배경으로 한다. 이곳에 사는 베넷 일가의 삶, 특히 딸(다섯 자매)들이 배우자를 찾게 되는 과정 속에 그들이 느끼고 가졌던 편견과 오만을 생각하게 된 내용이다.주인공은 둘째딸인 엘리자베스다. 그녀는 경제적 사정이야 어찌 됐던 결혼은 곧 사랑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 곁에 다가온 남자 다아시가 가족을 경시하는 오만함(pride)에 편견(prejudice)이 싹트기 시작한다. 다아시는 그녀의 지성과 위트있는 재치에 매력을 느껴가지만, 그녀는 다아시의 첫인상에 대한 편견(prejudice)이 굳어져 절대 결혼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소설의 시작은 이렇다.우리는 삶을 살아가며 쉬이 편견을 접하게 된다. 편견으로 판단이 흐려지고 또 결과적으로 좋지 못한 리액션을 맞는 경우가 많다.최근 경기도와 경기중소기업지원센터는 지난주 인도 뭄바이 현지에서 도내 중소기업들의 해외 수출사업 장려를 위해 ‘2016 지-페어 뭄바이’를 개최했다.지난 16일부터 이틀 동안 뭄바이 현지 행사장에서 개최된 박람회는 당초 기대했던 것보다 많은 바이어들이 운집, 현지를 찾은 업체들과 미팅의 시간이 진행됐다. 애초 인도를 찾은 상당수 기업인들은 인도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을까? 하는 일부 편견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교통과 통신 등 대부분의 사회 인프라가 현저하게 떨어져 통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감이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본 결과, 현지 바이어들은 줄을 이었고 싱담 실적도 지난해 대비 뚜렷한 신장세를 보였다. 지난해 3천여건에서 4천여건으로 30% 이상의 신장이었다.우리는 오지의 세계에 대해 동정감이 앞서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현실과 맞지 않아 편견에 치우치는 것도 현실이다. 고든 올포트는 편견을 ‘충분한 근거 없이 다른 사람을 나쁘게 보는 생각’이라고 정의했다. 결국, 편견과 오만은 건강한 사회의 장애물이다. 모두가 편견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빠르게 이를 되돌릴 수 있는 지혜와 각성이 필요하다. 그래야 직장은 발전되고 사회가 건강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동수 정치부 부장

[지지대] 수원화성과 두브로브니크성

꽃보다 할배에 이어 고인이 된 김자옥을 비롯해 윤여정, 김희애, 이미연, 이승기 등의 여행기를 그린 꽃보다 누나가 방영(2013년11~2014년1월)된지도 2년이 훌쩍 흘렀다. 「이 TV프로는 터키 이스탄불과 크로아티아의 여정을 담아냈고, 두 곳은 한국인의 인기 여행지가 됐다.」 특히 크로아티아 아드리아 해안과 두브로브니크 시의 구시가지를 모두 조망할 수 있는 경관이 빼어난 두브로브니크 성은 인기절정이다. 성벽을 포함한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1979년)됐으며, 도시 전체를 원형으로 감싸고 있는 성벽의 총길이는 1.949㎞, 최고높이 6m로 수원화성과 규모면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왠지 모르게 유사한 느낌을 주고 있다. 꽃보다 누나로 크로아티아를 찾던 한국인 관광객이 방송 전에 연 7만 명에서 지난해 35만 명으로 급증했고, 이중 두브로브니크에는 지난해 4만6천 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올해로 축성 220주년을 맞은 수원화성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1997년)된 지 내년이면 20년이다. 성곽길이 5.74㎞, 높이 6.2m에 이른다. 정조의 효심을 느낄 수 있고, 거중기를 이용해 축성된 수원화성은 스토리가 다양하다. 하지만 두브로브니크처럼 외국인 관광객으로 넘쳐나지는 않는다. 남경필 경기지사가 19대 국회의원 시절이던 2012년 6월 1호 법안으로 대표 발의한 세계유산 보존ㆍ관리ㆍ활용에 관한 특별법안이 오는 29일 자동 폐기 수순만을 남겨 놓고 있다. 수원화성뿐만 아니라 남한산성, 조선 왕릉 등 세계유산 주변이 모두 혜택을 볼 수 있는 법안이었기에 아쉬움이 더 크다.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고 있는 수원화성에 대한 접근 방법도 달라져야 한다. 수원화성 관련 특별법안 통과가 어렵다면, 방화수류정, 연무대, 팔달문과 장안문 등 선택과 집중을 통한 개발 및 보존이 필요하다. 또한 20대 국회에서 남 지사와 김진표 당선인을 비롯한 수원지역 5명의 국회의원이 수원화성에 대해 한 목소리를 내고 지혜를 짜낸다면 수원화성 특별법 통과도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푸르른 5월 가족, 직장동료 등과 함께 서장대에 올라 동양 성곽의 백미 수원화성을 품어 보자. 정근호 정치부 부국장

[지지대] 적의 처리

십수년도 더 된 얘기다. A는 구속 중이었다. 방송 언론에 나올 정도로 떠들썩한 사건이었다. 지병이 있었던 A가 보석을 신청했다. 판사 출신의 변호인이 일을 맡았다. 담당 판사가 검찰 측 보석 의견을 물었다. 변호인은 “검찰 쪽에서 의견이 좋게 나오면 가능할 것”이라며 가족들을 안심시켰다. 변호인이 말한 검찰 쪽 좋은 의견은 ‘기각하심이 상당하다고 사료됨’이었다. 그러나 다음날 전달된 검찰 의견은 A4 용지 두 장이 넘었다. 구구절절 풀어주면 안 될 사유를 설명했다. ▶보석 신청은 결국 기각됐다. ‘기각하심이 상당하다고 사료됨’의 뜻이 그렇게 컸다. 문구상 뜻은 ‘기각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된다’다. 보석 또는 구속적부심에서 피고인을 풀어주지 말라는 단어다. 그런데 법조계-적어도 그즈음 법조계-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고 있었다. 피고인의 죄질, 상습성에 품성까지 파헤친 장문의 의견서가 진정한 ‘기각 의견’이다. ‘기각하심이 상당하다고 사료됨’의 13자는 ‘풀어주어도 괜찮다’는 의사 표시로 통하고 있었다. ▶‘적의 처리’라는 말도 있다. 적의(適宜)란 ‘맞고(適) 마땅한(宜) 처리’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게 법조 언어로 사용되면 느낌이 달라진다. 검찰이 적으면 ‘법원이 풀어주어도 무방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십수년전의 ‘기각하심이 상당하다고 사료됨’과 그 쓰임이 닮았다. 결국, 보석으로 석방되고자 하는 피고인이 검찰에 가장 원하는 의견-바꾸어 말하면 검찰이 피고인 측에 가장 크게 인심을 쓰는 의견-이 바로 ‘적의 처리’ 또는 ‘기각하심이 상당하다고 사료됨’이다. ▶정운호(51)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사건의 중심에도 이 ‘적의 처리’가 있다. 정 대표가 법원에 보석허가 신청을 했고, 이에 대한 검찰의 의견이 ‘적의 처리함이 상당하다’였다. 1, 2심에서 모두 실형을 선고받은 피고인이다. 그를 석방해도 무방하다는 느낌의 의견을 낸 것이다. 검찰은 해명했다. 관련 수사에 도움을 받은 점, 도박 재활 프로그램에 2억원을 제공하겠다고 한 점 등을 감안했다고 했다. 하지만, 검사장 출신 변호사의 입김이 만들어낸 ‘문구’라는 의혹은 사라지지 않는다. ▶중요한 대목이다. 수임료 50억, 100억 얘기는 있는 자들의 얘기다. 국민의 진짜 관심은 그 돈이 법의 잣대를 흔들었느냐는 것이다. 여기서 ‘적의 처리함이 상당하다’는 문구가 발견됐다. ‘봐주기 의견’의 상징처럼 된 이 문구가 하필 정운호 기록에 남아 있다. 50억, 100억씩 변호사 선임료를 뿌려댄 피고인 기록에 남아 있다. 돈이 법을 흔들었다는 증거 아닌가. 그렇게 해석하는 게 더 상식적이지 않나. 정운호 기록에 ‘적의 처리’는 수십억원짜리 문구 일수 있다. 김종구 논설실장

[지지대] 수원청개구리

우리나라에는 두 종의 청개구리가 있다.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해 있는 일반 청개구리와, 수원ㆍ안성, 충남 천안 일대에 주로 서식하는 수원청개구리다. 두 청개구리는 모습은 비슷하지만 구분되는 특징이 있다. 수원청개구리가 몸집이 조금 더 작고 머리가 뾰족하다. 청개구리와 달리 턱 아래에 노란빛이 도는데 울음소리도 다르다. 짧은 간격으로 저음을 내는 청개구리와 달리 수원청개구리는 긴 간격으로 고음을 낸다. 청개구리 노래는 ‘뺍뺍뺍’으로 들리고, 수원청개구리 노래는 ‘챙챙챙’ ‘깽깽깽’으로 들린다. 노래를 할때도 청개구리는 논둑에서 하지만, 수원청개구리는 모나 풀을 부여잡고 논 한가운데서 한다. 수원청개구리는 청개구리가 없는 낮 시간에 노래를 하고, 짝짓기를 하려고 한다. 해가 지고 청개구리가 논에 몰려오면 수원청개구리는 논의 안쪽으로 이동한다. 논 안에는 흙과 같은 지지대가 없기 때문에 모를 부여잡고 노래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두 종은 원래 서식지가 달랐다고 한다. 청개구리는 주로 숲에 살면서 번식할 때만 근처 습지에 내려왔다. 이에 비해 수원청개구리는 늪과 유사한 서식지에서 1년 내내 지냈다. 두 종이 서로 마주치게 된 건 이 땅에서 논농사를 시작하면서부터다. 자연습지가 대부분 논으로 바뀌면서 두 종은 논에서 서로 경쟁할 수밖에 없었다. 수원청개구리는 한국 고유의 종으로 일본학자 구라모토가 발견, 1980년 ‘수원청개구리’로 이름 붙여졌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고유학명에 수원이란 지명(Hyla Suweonensis)이 들어가는 종이다. 수원청개구리는 노래하는 수컷의 수를 모두 셀 수 있을 정도로 그 수가 많지 않다. 급격한 도시화로 개체 수가 급감하자 환경부가 2012년 멸종위기종 1급으로 지정했다. 최근 수원청개구리 서식지를 인공 복원하는데 성공했다. 지난해 여름 실험실에서 번식시킨 개구리를 인공으로 조성한 습지에 풀어뒀는데 동면을 마친 수원청개구리들이 무사히 살아남은 것이 확인됐다. 서식지 복원 성공으로 멸종위기종의 개체 수가 늘어나게 돼 참으로 다행스럽다. 수원시의 캐릭터 ‘수원이’는 수원청개구리를 상징화한 것이다. 장안구 율전동엔 수원청개구리 공원도 있다. 수원청개구리 보존과 서식지 복원엔 환경운동가 출신 염태영 시장의 관심과 노력이 컸다. 이젠 수원시민들이 수원청개구리가 편안히 번식하도록 서식지 보호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술병 경고문구

술을 많이 마셔 병을 얻게 된 알코올 중독자 26명이 2014년 8월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와 주류회사가 술 판매에 대한 적절한 규제를 하지 않아 병을 얻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주류업체가 대대적인 광고를 하면서도 술병에는 보기 어려울 정도의 작은 글씨로 경고문구만 써놨다”면서 “알코올 중독으로 직장을 잃었다”고 주장했다.그러면서 1인당 3천만원에서 최고 2억5천만원까지 모두 21억원을 배상하라고 요구했다. 법원은 이유없는 신청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알코올 피해자로서 주류 판매 금지까지 구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 영향도 있었을까? 술병의 과음 경고문구가 바뀐다. 1995년 이후 21년만으로 임신 중 음주와 청소년 음주, 음주로 인한 질병 위험 문구가 추가된다. 이는 술병에 ‘임신 중 음주는 태아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경고문구를 표시하도록 의무화하는 국민건강증진법이 국회를 통과해 9월 3일부터 시행되기 때문이다. 현재는 술병에 ‘음주가 건강에 해롭다’는 내용만 의무 표시 대상으로 규정돼 있다. 현행 경고문구는 △지나친 음주는 간경화나 간암을 일으키며, 특히 청소년의 정신과 몸을 해칩니다 △지나친 음주는 간경화나 간암을 일으키며, 특히 임신 중의 음주는 기형아 출생률을 높입니다 △지나친 음주는 간경화나 간암을 일으키며, 운전이나 작업중 사고 발생률을 높입니다 등 3가지다. 주류회사는 이중 하나를 골라 술병 라벨에 표시해야 한다. 복지부는 임신 중 음주 외에 ‘간경화나 간암’이라고만 돼있는 질병명에 다른 질병을 추가하고 청소년 음주 폐해 관련 내용도 더 경각심을 높이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술병 외에 다양한 광고 매체에도 과음 경고문구를 표시하는 방안도 생각하고 있다. 한국인의 술사랑은 지극하다. 2013년 기준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연간 맥주 소비량은 148.7병, 소주는 62.5병에 이른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술을 1급 발암물질로 지정하고 있다. 알코올이 인체 유전자를 파괴하거나 발암물질이 쉽게 침투할 수 있게 해 간암, 대장암, 식도암, 직장암 등을 유발하기 때문이다.이에 적정 음주량을 권하고 있지만 우리 국민 3명 중 2명은 WHO가 제시하는 음주 권장량(남자 40g, 여자 20g 이하)을 크게 초과하고 있다. 새롭게 바뀌는 과음 경고문구가 음주량을 줄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순풍순풍 따복하우스

남경필 경기지사가 오는 2020년까지 경기도 전역에 1만 호의 따복하우스를 건설해 신혼부부와 대학생, 사회초년생, 고령자, 취약계층에게 공급한다고 지난 17일 밝혔다. 남 지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부가 5년간 60조를 쏟아 부었지만 저출산 문제는 아직도 국가적 위기”라며 “대한민국에서 아이 낳는 것이 왜 두려운 일이 되었는지, 청년들이 왜 결혼을 미루는지에 대해 토론을 거친 결과 경기도에서 대한민국 저출산 문제 해결의 표본을 만들기 위한 첫 걸음을 떼기로 했으며 그 결과가 바로 따복하우스다”라고 말했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신혼부부를 위한 주택이 필요하다는데 절대적 공감을 표시한다. 쌍수를 들어 환영한다. 그것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출발이기 때문이다. 젊은 남녀가 결혼할 시점에 가장 고민하는 것은 ‘의(衣)ㆍ식(食)ㆍ주(住)’ 가운데 단연 ‘주’이다. 그래서 주거복지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계층 중 하나가 ‘신혼부부’인 것이다.그런데 문제는 이들 신혼부부가 들어갈 수 있는 임대주택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 정부나 지자체가 공급하는 임대주택에 들어갈 수 있는 대상에 대한 제한이 저소득층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어 입주할 수 있는 조건이 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신혼부부에 대한 주거공간만큼은 대상자의 조건 등을 완화해 보다 많은 사람이 혜택을 받게 해 줄 필요가 있다.저출산 극복을 위해서는 젊은 남녀가 결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고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주거, 보육, 교육, 의료, 건강, 여가 등 아이를 키우기 위한 다양한 복지 정책이 저출산 극복이라는 맥락에서 한줄기로 구축돼야 한다. 남 지사도 이 같은 맥락에서 따복하우스 건설을 추진하는 것 같다. 남 지사는 따복하우스를 건설하면서 대한민국 저출산 문제 해결의 표본이 될 것이라고 했다. 남 지사의 따복하우스 사업이 성공적으로 정착돼 아이들의 소리가 넘쳐나는 경기도가 되길 기대해 본다. 최원재 정치부차장

[지지대] 식품범죄 소탕작전

유명 가맹점 빵집이 유통기한을 넘긴 제품을 보관하다 적발됐다. 인천의 한 예식장 뷔페는 유통기한이 무려 403일이나 지난 향신료를 보관하고 있었다. 조리실 내 방충망을 설치하지 않거나 식품을 취급하는 조리장·냉장고·세척실을 비위생적으로 관리한 음식점도 걸렸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최근 전국의 뷔페 음식점과 패스트푸드점을 점검한 결과로 163곳이 행정처분을 받았다.▶수입산 쇠고기가 국내산 한우로 둔갑하고, 수입산 돼지고기는 한술 더 떠 제주산 흑돼지로까지 둔갑해 판매된다. 중국산 고춧가루를 국내산으로 거짓 표시해 판매하기도 하고, 값싼 수입산 참깨에 국산을 섞어 짠 기름을 순수 국산 참기름인양 버젓이 판매하다 적발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수입산을 국내산으로 둔갑시켜 판매하는 이유는 하나다. 둘 사이의 가격 차가 크니 그만큼 이윤을 많이 남길 수 있어서다.▶이윤에 눈이 멀어 상도덕을 저버리는 행위에 경기도가 칼을 빼들었다. 이재율 경기도 행정1부지사는 “도민의 건강은 뒷전이고 눈앞의 이익만 앞세워 부정불량 식품을 교묘하게 제조ㆍ유통ㆍ판매하는 범죄가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다”면서 “경기도에서만큼은 부정불량 식품이 사라질 수 있도록 6월1일부터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일명 식품범죄 소탕작전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이번 소탕작전의 의지는 대폭 늘어난 단속 인력만 봐도 알 수 있다. 기존 일회성 단속을 시리즈 단속 시스템으로 전환한 것도 눈에 띈다. 도는 특사경과 식품담당부서 직원 104명, 시ㆍ군 식품담당공무원 386명 등 490명 규모의 정규단속반을 편성했다. 소비자 식품위생감시원 등 2천240명과 2만1천236명의 모니터링 단체 회원들도 제보자로 나선다니 가히 민관합동작전을 방불케 한다.▶불법행위자에 대한 처벌도 강화된다. 기존 영업정지 등의 행정처분이 아닌 입건 후 검찰 송치 방식의 형사처벌 형태로 바뀐다. 적발된 업체도 위반사항과 함께 공개할 예정이다. 불량 식품 유통, 원산지 허위 표시는 고의적인 속임수로 용납될 수 없다. 유통기한을 넘긴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판매하는, 소위 먹는 것 가지고 장난치는 건 더 나쁘다. 이참에 그런 업체는 아예 문을 닫게 해야 한다. 박정임 경제부장

[지지대] 트럼프 逆 교훈

가까운 예(例)는 문창극씨다. 문씨는 지난해 국무총리 후보에서 낙마했다. 문제는 ‘말’이었다. 교회 강연에서 한 ‘일본 식민지는 주님의 뜻’이라는 부분이었다. 야당과 일부 언론에 의해 ‘친일 논란’으로 불거졌다. 강연 동영상 전체를 보면 ‘친일’의 정서를 찾기 어렵다. 하지만, 앞뒤 잘린 동영상이 들풀처럼 번져갔다. 그때도 여전하던 반일 감정이 여론 악화에 기름을 부었다. 결국, 문씨는 지명 14일 만에 사퇴했다. ▶총리나 장관 지명자가 낙마하는 사유는 다양하다. 위장 전입, 부동산 투기, 논문 표절 등은 단골 메뉴가 됐다. 그런데 문씨에겐 이런 비위 논란이 없었다. 지명부터 사퇴까지 온통 ‘친일 발언’ 논란이었다. 그의 조부는 독립운동가 문남규(文南奎) 선생이다. 이 사실이 보훈처에 의해 확인된 것은 그가 사퇴하고 난 뒤다. 성공한 총리가 됐을지, 실패한 총리가 됐을지는 알 수 없다. 중요한 ‘팩트’는 ‘말꼬리’였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결과를 냈던 정운찬 총리가 있다. 2010년에 취임한 정 총리의 초반 화두는 ‘말실수’였다. 국회 답변에서 ‘일본군 731부대’를 ‘독립군 부대’라고 말했다. 4선의 독신인 국회의원 빈소를 방문해서는 ‘초선’이라 부르고 ‘자제들이 어린데…’라고 말했다. 그는 말솜씨와는 거리가 있는 경제학자다. 이명박 정부가 그를 선택한 이유도 경제였다. ‘말실수’ 고비를 넘긴 그는 그 후 대권 후보군으로까지 성장했다. ▶트럼프의 막말이 국내에서도 화제다. 툭하면 여성 비하 발언을 한다. 멕시코인에게는 인종 차별적 발언을 이어간다. 한국 안보를 말하며 비아냥거린다. 동원되는 단어 자체가 저속하기 짝없다. 그런 트럼프가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됐다. 미국도 시끄럽다. 공화당이 골머리다. 미국 못지않게 우리 언론의 비난도 끊이지 않는다. 트럼프 관련기사의 대부분이 부정적이고, 그 대부분 중 대부분이 막말 논란이다. ▶이 속에서 역(逆)의 교훈을 본다. 우리 정치는 너무 ‘말’에 갇혀 있다. 말꼬리 잡는 데 너무 익숙해 있다. 그러다 보니 매사 본질에 접근하지 못하고 겉만 핥는다. 문창극의 능력 검증보다 말 검증이 중요했을까. 정운찬의 말실수와 국정 능력이 관련 있다는 증거는 나왔나. 미국 정치는 트럼프를 후보로 뽑았다. 그 미국 정치가 괴이하다고 볼 객관적 증거는 없다. 되레 ‘말꼬리’로 재상(宰相) 후보를 날리는 우리 풍토가 더 괴이할 수 있다. ▶트럼프의 막말 정치만 비난하지 말고, 한국의 말장난 정치를 고쳐야 할 때다. 말꼬리 잡기, 말실수 부풀리기, 없는 말 만들어내기…. 이것처럼 무의미하고 저급한 정치 기술은 없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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