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수년전 개봉된 ‘쉰들러’라는 영화가 있었다. 꽤 좋은 영화였는데도 누가 감독인지 잘 기억되지 않는다. 쉰들러는 나치에 무기 등을 팔아먹는 장사꾼이다. 돈밖에 몰랐던 그가 인간애에 눈을 뜬 것은 대량학살 되는 유태인들이 무더기 무더기로 처형소로 끌려가는 처참한 광경을 자주 목도하고 나서다. 마침내 고위 장성을 매수하여 죽음의 길목에든 유태인 대열을 목숨 걸고 빼돌린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쉰들러가 처형대열에서 빼돌리는 유태인 군상 가운데는 한겨울에 발가 벗기운채 추위에 떠는 남자들의 성기가 드러나기도 한다. 영화 ‘거짓말’의 음란성여부를 수사중인 검찰이 제작사 대표와 감독을 조사한데 이어 오늘 영상물 등급분류위원들을 소환했다. 두차례 등급분류끝에 ‘18세이상 관람가’등급을 내준 경위를 조사한다. 논란속에 개봉된 ‘거짓말’은 원조교제가 줄거리다. 음란성 여부는 검찰이 알아서 판단할 일이겠으나 음란성 시비가 일때마다 걸핏하면 ‘표현의 자유’, ‘창작의 위축’을 들먹이는 방패막이 또한 경계해야 한다. 음란성을 그같은 겉포장으로 위장하는 것이 참다운 창작활동일 수는 없다. 성적 수치심 유발은 음란성여부의 한 척도가 된다. 영화 쉰들러에 나온 남성의 성기는 관객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주기보단 오히려 죽음의 공포에 떠는 적나라한 인간심리를 리얼리티하게 전해준다. ‘거짓말’이 어떤 사실적 전달보다 작위적 성묘사위주로 흘렀다는 평가를 듣는다면 음란성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검찰수사의 추이가 주목된다. /백산

세계를 위한 우리

서울 합정동에는 외국인 묘지가 있다. 대부분이 선교사들의 무덤이다. 우리나라에서 일생을 바친 선교사들은 거의 여기에 묻히고 싶어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역사를 생각해 보면 외국인 선교사들은 우리나라 근대화의 실질적인 추진자들이었다. 학교나 병원, 그리고 나환자들이나 맹·농아를 위한 진료소의 설립, 위생을 위한 수원지의 건설 등을 추진했다. 우리에게 민족의 긍지를 심어주다가 추방당하는 등 일제의 탄압을 받은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33인을 돕던 스코필드는 일제의 가혹행위 때문에 정신이상으로 모국 캐나다에 이송됐고 그렇게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한국선교의 첫 발걸음을 내디뎠던 호레이스 언더우드는 연희전문학교를 세우고 병세악화로 본국 미국에 갔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최후로 “거기 가고 싶다”고 말하고 눈을 감았다고 한다. 한국에 가서 천국에 가겠다는 말이었다. 그의 뜻은 85년만에 이루어졌다. 그의 유해는 외국인 묘지에 이장되었고 그 가문은 거기에 가족묘역을 마련했다. 그런데 누구든지 합정동 외국인 묘지에 가본 사람은 가슴이 메어져 오는 것을 느낄 것이다. 돌보지 않는, 버려진 묘지같기 때문이다. 우리를 위해 몸 바친 외국인들의 묘지가 이렇게 잊혀지고 있는 것이다. 6·25 전란을 겪은 우리나라의 폐허를 보고 봅 피얼스는 미국에서 수 많은 미국인들에게 1달러, 2달러 씩을 모금하여 한국 고아들, 전쟁미망인, 전쟁포로, 불구자들과 나환자들을 도왔다. 그것이 선명회, 곧 월드비전으로 사업을 잇고 있다. 우리는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다. 이제는 우리가 나서야 할 때이다. 후하게 받은 그 덕을 남에게 되돌려 주어야 한다. ‘세계를 위한 나’, ‘세계를 위한 우리’라는 의식을 갖고 살아야 할 때가 왔다. 2000년대에는 그래서 더욱 할 일이 많다. /청하

거지 聖者의 말

“자연이야말로 최상의 스승이다” “자연을 해치는건 제 생명을 해치는 일이다”. 거지 성자(聖者)로 알려진 독일의 페터 노이야르가 한국을 떠나면서 한 말이다. 지난해 11월 한국을 찾은 페터 노이야르는 유일한 옷이자 이불인 누더기 망토차림으로 두달간 지리산의 고찰 등지를 만행(卍行)하다 며칠 전 출국, 20여년 전의 수행지인 독일 쾰른의 호숫가 나무밑으로 돌아갔다. 노이야르는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지리산의 천년고찰 실상사에서 귀농학교를 일구는 도법스님을 비롯, 송광사 방장 보성스님, 대흥사 일지암 여연스님, 쌍계사 국사암의 월호스님, 섬진강의 김용택시인, 경남 하동에서 태평농법을 실천하는 이영문씨 등과 교유했다. 노이야르는 부다(Buddha)의 삶을 좇아, 가진 것이라고는 망토 한벌밖에 없는 철저한 무소유를 실천하며 큰스님 못지않은 내공을 보였는데 산에 심은 밤나무의 병충해를 방제하기 위해 비행기로 농약을 뿌리거나, 맑은 섬진강의 강둑에 발라진 시멘트 등으로 상징되는 한국의 자연파괴를 안타까워 했다. 현대인의 반자연적인 삶의 병폐를 치유하는 가장 훌륭한 교육의 장일 수도 있는 벽지 분교를 눈앞의 합리화와 효율만을 좇아 폐교하는 우리 정부의 근시안적인 정책을 강력히 비판하기도 했다. “문지기가 태평하게 잠자는 동안 그의 집은 불타는데, 그는 잠을 자면서 나의 집에는 아무 일도 없다고 말한다”는 비유로 우리의 환경 현실을 풍자했다. 인류의 환경 파괴는 자기 집 불태우면서도 태평하게 잠자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이라고 지적한 것이다. ‘모든 생명이 나의 생명인데 내가 어떻게 나 자신을 해칠 수 있겠는가’라는 노이야르의 말은 우리를 깊이 뉘우치게 한다. /청하

여성시대

‘미성년자 매매춘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미아리 텍사스촌에서 진두지휘하고 있는 서울 종암경찰서 김강자서장과 티켓다방, 러브호텔을 중심으로 미성년자의 매매춘 단속에 나선 양평경찰서 김인옥서장의 활약상은 대단하다. ‘가만두지 않겠다’는 일부 업주들의 협박전화는 여성경찰서장을 더 화나시게 한게 분명하다. 위협을 느끼기는 커녕 되레 자극을 주었다. 김강자서장은 서울지역의 첫 여성경찰서장이고 김인옥서장은 경기도의 첫 여성경찰서장이어서 더욱 화제가 되고 있다. 2000년에는 드디어 여성시대가 활짝 열릴 것 같다. 야당에선 4·13 총선선거용이라고 비난하고 있지만 정부에 여성부가 신설되면 여성지위와 권익이 크게 향상될테니 얼마나 좋은가. 경기도 박물관 3개관장에 여성이 발탁된 일도 유쾌하다. 신임 이인숙관장은 지난 96년부터 도박물관의 학예실장을 역임하면서 최초로 외국인을 초빙해 워크숍을 개최하는 등 아주 열성적으로 일한 석학이다. 교육학박사인 40대의 여교사 김현옥씨가 군포흥진중학교 교장으로 발령난 일도 교육계와 여성계의 경사다. 특히 경기도의 여성정책을 종합적·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경기도여성발전기본조례’가 10일 공포된 것은 여성시대의 쾌거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법이나 제도가 없어서 여성발전이 잘 안된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기본적인 사항을 조례로 정함으로써 도정의 모든 영역에서 남녀평등을 촉진하고 여성발전의지를 법제화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은 아닌게 아니라 옛말이 되었다. 이제는 ‘암탉이 울어야 아침이 온다’고 말을 바꿔야 하겠다./청하

총선 ‘群舞’

신문기자로 꽤 유능한 선배가 있었다. 공화당정권때 대구에서의 일이다. 그는 당시 이효상 국회의장 선거구에서 총선에 도전했다. 주위사람들이 극력 말렸다. 막무가내였다. ‘무슨 소리냐?’는 것이었다. 누구는 구시대 인물이고 아무개는 부패인사고 또 어떤이는 무능하고…, 이런식으로 상대를 짚어가면서 참신한 새인물은 나밖에 없으므로 능히 선거 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그런것이 아니라고 주변 사람들이 만류하자, 나중엔 ‘당신네들은 내가 국회의원 되는 것이 그토록 시샘나냐!’고 역정을 내며 친지들을 마치 원수대하듯이 해 피하는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주변에 몰려드는 사람들은 듣기 좋은 말만 일삼는 선거브로커들이었고 결국 그는 적잖은 돈을 탕진한 끝에 참패했다. 돈키호테형이라 할 수 있다. 또 다른 부류가 있다. 총선때만 되면 어김없이 얼굴을 내미는 ‘계절병 환자’같은 군상들이다. 이 가운데는 당선에 미련을 못버리는 미련형도 있지만 덮어놓고 나서고 보는 무작정형, 성명 세자나 알리자는 매명형, 표를 몰아주겠다고 허풍치는 뚜쟁이형등 가지가지다. 4·13총선을 앞두고 벌써부터 대부분의 선거구에서 가지가지 유형의 인물들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이 가히 가관이다. 그중엔 누가 봐도 국회의원선거에 나설 계제가 못되는, 그렇고 그런 이들이 이당 저당을 기웃거려 자천해가며 끼어들어 유권자들의 실소를 자아낸다. 선거라는게 이런 희극적 요소가 있어 재미있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선거는 연습이 아니다. 총선이 본격화하는 후보자 등록대열에는 제발 나설만한 사람들만 나서는 그럴싸한 선거판이 됐으면 좋겠다. /백산

시어머니

고부간의 갈등은 영국이라고 하여 다를바가 없는것 같다. 한 조사에 의하면 며느리를 나쁘게 평가한 시어머니가 10명인데 비해 좋게 평가한 시어머니는 3명 비율이었다. 그 시어머니들이 보통 여성들은 아니다. 젊은 시절엔 선구자적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며 여권신장을 목소리높여 외쳤던 여성들이다. 그러나 막상 시어머니가 되고 나서는 자신이 그토록 거부했던 전통적 부덕을 며느리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케임브리지대학이 지난 70년대의 여성운동가 등 6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가 이러한 것으로 보도됐다. 사회적 성취욕을 중요시하던 여성들도 정작 시어머니 입장에서는 며느리의 사회적 성취욕구보다는 아들을 극진히 위해주는 주부역할을 더 주요시 한다는 것이다. 한 심리학자는 이를 시어머니의 이중성이라고 설명했다. ‘시어머니가 된 많은 여성은 자신의 입장을 얘기할땐 여성으로서 겪는 갈등을 동정적으로 말하면서도 며느리에 대해서는 남편과 아들을 잘 돌보는 일을 우선해서 말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성취욕도 이루고 남편과 아들을 잘 돌보는 가정적 성취도 다같이 병행하면 더 말할 수 없이 좋을 것이지만 그게 아마 어려운 모양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가정의 안정없는 사회적 성취는 뿌리없는 허상이라는 사실이다. 여자도 그렇고 남자도 그렇다. 인간은 그 누구도 가정을 떠나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케임브리지대학의 조사내용은 우리에게도 시사해주는 일깨움이 없지 않다. 시비가 어떻든 음미해 볼만 하다. /백산

밀레니엄 이변

소한 추위를 톡톡히 치렀다. 눈이다 바람이다 하여 이 며칠새 밀어닥친 강추위는 겨울맛이 물씬했다. 소한 추위와 함께 들이닥친 밀레니엄 독감이 휩쓸고 있다. 국내 독감환자가 날로 늘어 병원마다 약국마다 독감환자로 만원이다. 가히 세계적인 독감이다. 일본 열도가 독감공포에 싸였다. 미국은 병원마다 독감환자가 평소보다 세배나 많이 찾아 줄을 잇달고 있다. 영국은 독감환자가 8백만여명에 이르러 입원실이 모자라 복도에 간이침대를 놓고 치료하는 지경이다. 독감 예방접종을 맞은 사람도 걸릴만큼 무서운 이번 독감은 연초 연휴이후, 다중이 접촉하면서 급속확산된 것으로 보도됐다. 독감도 독감이지만 밀레니엄 벽두 기상이변 또한 대단했다. 중동 골란고원에 눈이 펑펑 쏟어졌는가 하면 태국, 방글라데시, 인도, 파키스탄 등지에서 기온이 영하로 갑자기 떨어져 동사자가 나왔다. 방글라데시는 60여명, 인도, 파키스탄만은 280여명이 얼어죽은 것으로 전해졌다. 상하의 나라에 눈송이가 내리고 얼어죽는 사람이 사태난 것은 이만저만한 이변이 아니다. 지구남반부 브라질 등 남미에서는 새해들어 대홍수가 곳곳에 일어나 수십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우리의 독감은 그래도 일본 미국 영국 등에 비하면 좀 낫지않나 싶다. 열대지방에서 동사자가 나오는 것에 비하면 이번 소한 추위쯤은 예사다. 열대 기상이변의 밀레니엄 현상이 어떤 지구촌의 조짐인지 몰라 그것이 걱정이 된다. /백산

‘바꿔’바람

최근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테크노댄스 가수 이정현이 부르는 노래 가운데 “바꿔 바꿔 모든걸 다 바꿔”라는 가사가 있는데 이 ‘바꿔’라는 노래의 열기가 전국 지방자치단체에도 이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서기 2000년을 맞아 나무, 꽃, 새 등 시·군 상징물 교체바람이 갑자기 불고 있어 하는 말이다. 수원시의 경우 시의 상징나무를 은행나무에서 소나무로, 상징새는 비둘기에서 백로로 바꿨다. 상징꽃 역시 철쭉을 진달래로 바꿨으며 심벌마크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화성(華城)을 새로 도형화했다. 의왕시도 시꽃(市花)을 종전의 개나리에서 철쭉으로, 심벌마크는 21세기 테크노 전원도시로 발전하는 의미를 담은 심벌로 바꿨다. 충남 금산군은 군 상징물이었던 까치, 목백일홍, 은행나무를 파랑새, 모란, 소나무로 바꿨으며, 전북 장수군은 종전 은행나무와 까치를 소나무와 비둘기로 바꿨다. 충북 충주시는 매화, 은행나무, 까치를 국화, 사과나무, 원앙으로 각각 교체했다. 묵은 때가 잔뜩 묻은 옛 상징물을 과감히 떨쳐버리고 새 상징물과 함께 새 천년을 시작해 보자는 각오이며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자’는 뜻이라고 한다. 이러한 상징물 교체바람은 계속 불 것 같은데 시·군(市·郡) 이름들은 새 천년을 맞아 왜 바꾸지 않는지 모르겠다. 하기야 수천년동안 이어져온 경기도 강화군이 인천광역시 강화군이 되었고, 다시 경기도 강화군으로 환원될지도 모르는 판국이니 시·군명이 바뀌지 말라는 법도 없다. ‘바꿔’ 열풍이 어쩌면 멀쩡한 애인과 친구들도 새로 바뀌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치상황에 따라 자주 바뀌는 정당명처럼 나라이름을 새로 바꾸자는 엉뚱한 주장이 나오지 않는 것만도 천만 다행이다. /淸河

‘전부 싫다’

지난 날 선거에 출마했던 사람들은 기분 나쁘겠지만 대다수 기권자들은 찍을 사람이 없어서 그랬었다고 말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찍어야 할 후보자가 마땅치 않아 기권을 하기는 했으나 국민의 의무를 다하지 못해서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고 한다. 투표하지 않은 사람은 현실정치를 비난할 권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일 수록 더욱 그렇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나는 이번에 출마한 후보가 전부 싫다”는 의사표시를 할 수 있는 권리가 유권자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즉 투표용지에 후보자 이름을 나열한 다음에 ‘전부 싫다’는 칸을 하나 더 만들어 거기에 찍을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이다. 그리고 투표 결과 ‘전부 싫다’의 표수보다 득표 수가 적은 후보자는 일정기간 동안 피선거권을 박탈하거나 제한하자는 것이다. 또 국회 및 지방의회 의원 선거에서 ‘전부 싫다’의 표 수가 1위가 되면 그 지역은 의회에 대의원을 못내게 하는 불이익을 준다. 지방자치 단체장선거에서 ‘전부 싫다’가 1위가 된 경우에는 중앙정부가 임명권을 갖게 하여 무책임하고 감정적인 투표행위에 제동을 건다. 대통령 선거의 경우 만일 ‘전부 싫다’가 1위가 되면 입후보했던 사람은 전부 실격되고 새로운 입후보자들로 재선거를 치른다. 이러한 주장들은 그럴듯 하고 일리가 있다. 기성개념에 굳어 버린 계층에서는 피선거권의 침해라고 하겠지만, 오죽하면 유권자들이 이러한 생각을 하겠는가. 국회의원이건 지방의회의건, 심지어 대통령이건 ‘후보자 모두가 싫다’는 칸이 투표용지에 하나 더 만들어진다면 엄청난 숫자의 거부권이 행사될 게 분명하다. 16대 총선에 뜻을 둔 사람들은 ‘전부 싫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유권자가 많음부터 먼저 알고 출마채비를 갖춰야 한다./청하

동해를 일본해라니

일본 시마네(島根)현의 일부 주민들이 우리나라 독도(獨島)로 호적을 옮긴 사실은 아무리 너그럽게 생각해도 정부의 무대책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하여 우리 정부가 보낸 항의서한에 일본 정부는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명)는 일본 땅’이라는 공식회신을 보내왔다고 한다. 일본의 이같은 처사는 한·일 우호관계를 심각하게 해치는 일이다. 물론 일본인의 독도 호적이전이 국제법상 효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본인들이 후일을 위해 명분축적과 기록축적을 위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래 저래 정부의 온건한 대처가 못마땅한 터에 얼마 전에는 철도청이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한 홍보책자를 제작·배포한 기가 막히는 일을 벌여 놓았다. 지난 10월 서울의 한 디자인 회사에 1천8백50만원을 주고 5천부를 제작·배포한 홍보책자 ‘철도화물운송’표지에 그려진 지구본에 동해를 ‘Sea of Japan(일본해)’으로 표기한 것이다. 그런데도 철도청은 이같은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채 이 책자를 전국 주요 역과 화물운송업체 등에 배포했다. 철도청이 뒤늦게 그것도 철도청 인터넷 홈페이지 ‘고객의 소리’에 실린 글을 읽고난 뒤에야 사태를 파악, 홍보책자를 부랴부랴 수거하면서 영문표기를 모두 뺀 그림을 다시 제작해 표지를 바꾼 뒤 재배포하는 소동을 한바탕 피웠다. 우리나라와 일본이 독도문제와 동해문제로 심각하게 대립하고 있는 판국에 철도청이 대국민 홍보물을 제작하면서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한 지구본 형상을 이용한 것은 실수라고 하기에는 이해를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국제적인 실수가 과연 철도청에만 있을 것인가. 대국민, 대외적인 홍보물에는 더욱 세밀하고도 각별한 신경을 써야 한다. ‘독도’를 ‘죽도’로 표기하는 실수가 또 생길 것 같아서 안심이 되지 않는다. /淸 河

조령모개

작은 정부를 표방했다. 구조조정을 한다고 했다. 재경부와 통일부 장관의 부총리제를 없앴다. 총리실의 조정기능으로 없앤 부총리 역할을 대신한다고 했다. 2000년 들어 신년 벽두에 한다는 것이 이를 뒤엎는 일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신년사가 많은 희생을 낸 정부 구조조정을 번복하는 것이었다. 그럼 그간의 희생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재경부와 교육부 장관의 부총리제 부활은 한마디로 조령모개다. 여기에 한술 더 떠 대통령직속의 여성특위를 여성부로 신설한다고 했다. 잘은 몰라도 세계 어느나라 정부조직에 여성부가 있다는 말을 들은적이 없다. 여성전담부처가 없어 여성문제의 개선에 장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청와대 비서실도 축소시킨 직제를 슬금슬금 늘리더니 이젠 정부조직을 늘린다. 이같은 몸집 불리기는 국민의 세부담으로 돌아간다. 일언반구의 국민들 눈치는 살피지 않고 속된 말로 ‘누구 맘대로’해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중앙정부부터 이렇게 나오면 각급 자치단체에서 구조조정으로 줄인 기구를 부활하겠다고 나설 경우 무슨 말로 막을 것인가. “나는 바담풍이라고 해도 너희들은 바람풍이라고 해야 한다”고 했던 어느 시골 훈장처럼 말할 것인지. 국민과 한번 약속하고 제도를 고쳤으면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극복해 내는 것이 정권의 참다운 권위다. 조령모개가 되어서는 신용을 잃는다. 재경부와 교육부 장관이 부총리가 아니고 여성부가 없어서 정부가 일을 제대로 못한다고 볼 사람은 별로 있을 것 같지 않다. /白山

자전거 議員

국회의원이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국회의사당에 주차장이 아닌 자전거보관소가 즐비하게 따로 마련돼 있다. 의사당 등원도, 관련 부처방문도, 정당 회합도 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일을 보고는 역시 자전거를 타고 퇴근하고는 이튿날 또 자전거로 등원한다. 공부도 한다. 하루 4시간 이상을 자신이 소속된 상임위 업무에 관해 연구하는 것은 하루의 일과로 돼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 얘기가 아니다.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는 말을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다. 자전거가 뭔가. 고급승용차 관용차에 기사 월급이며 기름값같은 유지비까지 국비로 대준다. 공부가 다 뭔가. 국회 도서관은 항상 텅텅 비어 있고 각종 자료도서는 먼지만 쌓여 있다. 일찍이 공부하는 국회의원이 있다는 말을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 고급 관용차로 어딜 쏘다니는지 항상 바빠 공부할 틈이 없다는 것이다. 자전거 국회의원, 공부하는 국회의원은 독일 연방의원들 얘기다. 그들은 그같은 모습이 새삼스럽지 않은 당연지사로 인식돼 있다. KBS 1TV 원단기획, ‘새천년을 연다’ 기획물 첫편의 ‘정치도 서비스시대다’란 부제로 독일 국회의원들 얘기가 방영됐었다. 프로그램의 취재, 편집, 연출이 돋보인 수작이다. 독일이 우리나라보다 못사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독일보다 잘 사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독일 국회의원은 자전거를 애용하고 대한민국 국회의원은 고급 관용차를 애용한다. 이러기는 다음 16대 의원들도 마찬가지다.

Y2K

안양 평촌의 한 아파트단지에서 지난 1일 Y2K문제가 발생, 한동안 온수시설이 가동못해 주민들 고생이 막심했다. 만일의 경우, Y2K가 일어나 정전되면 일상 생활에서 촛불신세를 져야하고 모든 가전제품은 쓸모가 없어져 방은 냉구들을 져야 하며 취사도 못하고 빨래도 힘들어 의식주가 당장 곤란해진다. 고층아파트는 승강기가 움직이지 못한다. 상수도 공급마저 어려워져 식수도 식수이지만 수세식화장실은 엉망이 된다. Y2K는 이처럼 생활의 반란을 유발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교통 통신등 사회생활 수치나 기록은 질서가 파괴된다. 국방산업은 명령계통에 오류가 생길 수 있다. 행정관리도 일대 혼란이 일어난다. 병원에서는 수술하지 않으면 숨져가는 환자를 손도 대지 못한채 방관만 해야 한다. 금융권은 장부가 없어지는 것과 다름 없게 된다. 기업은 생산이 마비된다. 2000년 1월 1일 0시를 기해 이런저런 일이 우려됐던 Y2K가 평촌의 한 아파트 단지 온수시설에 문제가 있긴 했으나 큰 탈없이 넘어가는 것 같다. 전력 및 에너지, 국방, 행정, 상하수도 등 분야는 어제 0시를 기해 안정권에 들어갔다. 오늘 0시가 이제 마지막 고비다. 고비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금융 및 기업분야만 잘 넘기면 Y2K공포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21세기 첫해가 엄청난 Y2K혼란으로 시작됐다면 그 불행을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각 분야에서 이에 대비하는 노고가 많았다. 오늘 자정까지 마저 잘 넘겨 새천년의 축복에 걸맞는 새해벽두가 될 것으로 믿는다. /白山

새 천년 나무 느릅

나무과에 속하는 낙엽교목인 느티나무를 한자어로는 괴목(槐木)·규목(槻木)·귀목이라고도 한다. 가지가 고루 사방으로 자라서 수형이 둥글게 되는 경향이 강하다. 유목(幼木)때 성장이 빠르며 햇볕을 좋아한다. 지난날 우리나라의 마을에는 대개 큰 정자나무가 있었는데 정자나무로서 가장 뛰어난 기능을 발휘한 것이 느티나무였다. 수관이 크고 고루 사방으로 퍼져 짙은 녹음을 만들며, 병충해가 없고 가을에는 아름답게 단풍이 들기 때문이다. 느티나무 아래서 마을사람들이 모여 의견을 나누고 때로는 서당의 선생이 강학(講學)을 하기도 했다. 느티나무는 결이 곱고 단단해서 밥상·가구재 등으로 쓰였고, 불상을 조각하는 데에도 쓰였다. 느티나무잎은 사월초파일에 먹는 절식의 하나인 느티떡을 만드는데 쓰였다. 쌀가루에 느티나무 잎을 넣어서 찐 시루떡으로 유엽병(楡葉餠)이라고도 했다. 이러한 느티나무를 산림청이 새 천년동안 우리 민족의 발전과 번영을 상징할 대표나무, 밀레니엄 나무로 선정한 것은 매우 적절한 일이다. 산림청이 새 천년을 맞아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밀레니엄나무를 선정키 위해 인터넷 홈페이지 등을 통해 국민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 느티나무가 으뜸으로 뽑힌 것이다. 우리나라 자생 수종으로 1천년 이상을 장수하는데다 모양새가 아름다운 거목으로 성장, 나라의 발전과 번영을 잘 상징한다는 나무로 결론이 나왔다고 한다. 느티나무는 많은 시인들의 작품에도 자주 나온다. 내년부터 천연기념물·보호수 등으로 지정된 전국의 느티나무로부터 1백여만 그루의 후계수를 길러 전국에 보급하고 또 식목일에는 전국 시·도별 상징나무와 함께 느티나무숲을 대대적으로 조성할 방침이라고 한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느티나무가 푸르게 자라면 사람들 가슴도 싱그럽게 푸르게 물들겠다./淸河

총재회담

여야총재회담 치고 신통한 예가 없었다. 오죽했으면 ‘만나서 악수하고 사진찍고 밥먹고 나오면 그만이다’라는 말이 나왔을까. 또 있다. 면전에서는 덕담하고 복배해서는 험담하는 것이 여야총재회담이었다. 과거엔 그랬다. 구밀복검(口密腹劍)이란 말이 있다. 십팔사략(十八史略)에 나오는 말로 입으로는 달콤한 말을 하면서도 뱃속으로는 칼을 품고 있다는 뜻이다. 당(唐)나라 현종때 양귀비에게 뇌물을 바쳐 재상이 된 간신 이임보(李林甫)가 충신들을 경계해 입으로는 좋은말 하면서도 뒤로 모사를 꾸며 하나하나씩 주살했다는 고사에서 연유한다. 과거의 여야총재회담이 국민들 눈에는 악수하며 웃음짓지만 속으로는 칼을 품는듯 했다. 그러다보니 쇼아닌 쇼로 그쳐 되는 일도 없고 안되는 일도 없는 맹물회담이 되곤 했다. 과거엔 그랬다. 대타협의 실행으로 정국전환의 발전적 틀을 잡는 것이 여야총재회담이다. 대타협은 서로가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정치협상이다. 상대의 말을 듣기보단 자기의 생각을 더 많이 말하거나 덜주고 많이 얻으려고만 하는 것은 협상이 아니다. 연내 여야총재회담을 두고 말들이 많은 것 같다. ‘물건너 갔다’고도 하고 ‘두고 봐야한다’고도 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과거와 같은 여야총재회담은 아무 쓸모가 없다. 굳이 연내로 못박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언제해도 상관없다. 여야총재회담다운 참다운 회담의 면모를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국민들에게 정치복원의 신뢰를 주는 그런 여야총재회담이 될 수 없으면 아예 갖지 않는것이 더 낫다./白山

오빠부대

겨울스포츠는 주로 실내경기다. 배구슈퍼리그가 곧 개막된다. 오빠부대는 이색 관중이다. 지역경기마다 제각기 스타플레이어를 환호하는 아니 열광하는 오빠부대들이 있다. 좋아하는 선수의 이름이 적힌 피켓이나 현수막을 내거는 것쯤은 약과다. 미친듯이 몸부림치며 연호하기가 예사다. 선수대기실이나 체육관통로를 점검, 사인공세를 벌이기가 일쑤다. 천마리의 학을 접은 선물같은 것을 전하지 못해 안달인 오빠부대 팬들도 있다. 여고생의 우상은 잘 알다시피 대중가요 가수들에게도 많다. 우상이 남자가수인 경우, 오빠부대가 움직인다. 극성팬은 참으로 집요하여 용케도 집을 알아내어 아침저녁으로 대문을 두들기지만 문은 열리지 않는다. 옛날의 스타들도 그랬다. 가수 조용필, 배구선수 장윤창은 20년전 사단규모의 오빠부대가 동원된 슈퍼스타였다. 조용필은 콘서트를 마쳤으나 문마다 오빠부대가 점거해 경비중인 전경의 옷과 방석모를 빌려 전경으로 위장, 간신히 탈출하기도 했다. 경기장 및 공연장의 이같은 오빠부대 학생을 두고 걱정스럽게 보는 눈들이 많다. 하지만 지나치게 걱정할 것까지는 없다. 오히려 운동선수든 가수든 우상이 있는한 적어도 이들이 다른데로 탈선할 틈은 없다. 그리고 때가 지나면 다 추억으로 남는다. 엊그제 오랜만에 조용필콘서트가 텔레비전으로 방송됐다. 30대후반의 여성들이 아이를 데리고 남편과 함께 관중석을 찾는 다복한 모습이 많았다. 그들중엔 왕년의 오빠부대도 있을 것이다. 농구큰잔치, 배구슈퍼리그를 찾는 지금의 오빠부대들 역시 이상스럽게 볼 것은 없다. 다만 그들은 이색관중일 뿐이다. /白山

TV드라마

한국텔레비전방송연기자협회에 가입된 탤런트가 약 8백명이다. 이 가운데 배역을 갖는 출연자는 평균 2백여명이다. TV3사의 드라마 편성률은 높다. 주간 방송시간대의 27%가량을 드라마가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배역을 갖는 탤런트는 4분의1밖에 안된다. 항상 4분의 3은 배역이 없는 잠재실업자인 셈이다. 드라마출연이 없으면 수입이 없다. 탤런트들에겐 방송사가 출연여부에 관계없이 전속금을 주는 전속계약제가 없다. 배역 따내기가 가히 경쟁적이다. 톱스타급을 제외하고는 배역얻기가 쉽지 않지만 따지고 보면 톱스타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KBS별관이나 MBC, SBS로비는 이를테면 탤런트들의 사랑방이다. 따로 탤런트방이 있긴 있어도 대개는 로비에서 지낸다. 로비라지만 소파며 탁자같은 응접세트가 수십개가 놓여 마치 개방형 응접실 같다. 커피도 마시고 한담을 나누며 시간을 때운다. 새로운 배역자리를 두고 혼자 신경을 쓰던 PD가 지나다가 마침 적역을 발견하곤 하는 곳이 바로 로비다. 로비는 탤런트들의 캐스팅장소이기도 하다. 이런 일이 있었다. “감독(PD)이 마침 잘 만났다며 당신 고정(고종)이니까 이따 보자고 해서 연속극에 고정출연이란 말인줄 알고 갔더니 고종왕 역할이었다”는 것은 그 탤런트의 얘기다. 새천년을 맞는 연말연시를 앞두고 탤레비전방송마다 특집극이 쏟아져 나온다. 특집극은 비록 단막극일지라도 배역의 활성화에 조금은 숨통이 트인다. 그렇긴 하나 식상한 국내 텔레비전 드라마의 세가지 병폐가 제발 시정되면 좋겠다. 엿가락처럼 늘리기, 비슷비슷한 소재, 그 얼굴이 그 얼굴인 것은 고질적인 3大 병폐다. /白山

올리브나무

기원전 2세기의 작가 파우사니아스의 기록에 따르면 당시 아크로폴리스에는 아테나 여신이 심은 올리브나무가 있었다. 그 나무는 페르시아군의 공격을 받고 에리크토니오스의 사당과 함께 불탔다. 화재가 나고 나서 하루가 지났다. 아테네 사람들이 아크로폴리스로 올라가보니 타버린 나무 줄기에서 길이 50㎝가량의 가지가 돋아나 있더라고 했다. 산불이 지나간 자리에서도 제일 먼저 새 가지를 뽑아올리는 ‘올리브나무’를 그리스에서는 ‘엘라이아’라고 부른다. 로마시대에 쓰였던 라틴어로는 ‘올레움’이다. 이 ‘올레움’이 현대 이탈리아에서는 ‘올리오’로 변했다. ‘기름’을 뜻하는 ‘오일(oil)’의 진화사 정점에는 올리브가 있는 셈이다. 우리 말로는 한역(漢譯)하여 감람(橄欖)나무라고 한다. 감람나무는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나무이기도 하다. 히브리에서는 올리브 도유의식(塗油儀式)을 받은 사람을 ‘마시악’이라고 부른다. ‘메시아(구세주)’라는 말은 여기서 나왔다. 이 마시악을 그리스어로 번역하면 ‘크리스토스’, 즉 그리스도가 된다. ‘도유의식을 받은 이’ ‘기름 부음을 받은 이(anointed one)’ 곧 ‘성별(聖別)된 이’라는 뜻이다. 이 도유의식에 쓰이는 기름은 올리브 기름이다. 올리브는 그리스와 떼어놓고는 상상할 수 없는 나무다. 현자(賢者) 솔론이 아테네를 다스리고 있을 당시 시민들은 올리브 나무를 자를 수 없었다. 올리브나무가 서 있으면 반경 3m 안에는 다른 나무를 심어서도 안되었다. 크리스마스날 아침에 올리브나무가 생각난다. 교회 다니는 아이들이 ‘감람나무 열매되어 귀엾게 자라세’라는 찬송가를 부르고 다니던 어린 시절도 떠오른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올리브나무가 어려운 처지에 있는 한국인들의 가슴 속에 살아 있었으면 좋겠다. /청하

스님과 크리스마스

서울 조계사 주지대행 지홍(至弘)스님이 최근 남다른 칼럼을 썼다. 불교주간신문 ‘불교신문’에 게재한 ‘예수님 오신 날을 축하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지홍스님은 “ ‘예수탄생’자체가 인류에 대한 구원의 메시지이다. 고통에 시달리는 인류를 위해 대속(代贖)하고 구원하기 위해 낮은 데로 임하고, 기꺼이 십자가에서 고통을 감내하고자 했던 것이 바로 예수님의 삶”이라고 말했다. “십자가는 우리에게 한없는 ‘사랑’을 가르쳐 주고 있다”고도 강조했다. 지홍스님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 삭발 염의(染衣)를 한 타 종교인이 감히 성탄절을 축하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예수님의 사랑은 인종과 민족, 부유함과 빈곤함의 차별없이 모든 이들의 가슴에 품어야 할 덕목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종교의 진리는 영원하고 절대적인 것일 수 있으나 종교자체로 절대화되거나 맹신하게 되면 종교의 껍질은 남을지 모르나 사람은 없어지는 웃지 못할 결과를 낳게 된다는 지홍스님은 연말을 맞아 캐럴에 맞춰 예수님의 ‘사랑’을 떠올리고, 사월 초파일이 되면 부처님의 ‘자비’를 실천하자고도 말했다. 조계종이 성탄절을 축하하기 위해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앞 우정국로와 전북 김제시 금산사 정문 등 주요사찰 주변에 ‘아기 예수님 탄생을 축하합니다’는 문구와 함께 연등을 든 동자승이 산타클로스에게 축하인사를 건네는 캐리커처를 그려 넣은 대형 현수막을 내건 소식도 감동을 준다. 용봉(龍鳳)이란 스님이 기독교인 환자에게 신장을 기증했는가 하면, 수행중인 또 다른 스님이 만성 신부전증으로 투병중인 기독교인 환자에게 신장을 기증한 미담도 들려왔다. 이렇게 불교가 축복해주는 1999년의 크리스마스가 더욱 성스럽게 느껴진다. /淸河

광교산

해발 582m의 수원 광교산(光敎山)은 수원 시가지를 품에 안고 있는 명산이다. 원래 이름은 광악산(光嶽山)이었다. 고려태조 왕건이 후백제의 견훤을 친정(親征)하고 환궁하는 길에 광악산 행궁에서 군사들을 위로할 때, 이 산에서 광채가 하늘로 솟아 올랐다는 고려야사가 있다. 이 광경을 본 왕건이 부처의 가르침을 주는 山이라 하여 명산광교(名山光敎)라고 사명(賜名)하였다고 전해 온다. 광교산에는 창성사(彰聖寺)를 비롯한 89암자가 있었다는데 지금 89암자의 자취는 찾을 수 없다. 다만 몇 군데의 절터와 산중에서 가끔 기왓장과 와당(瓦當)이 출토되어, 불령(佛靈)과 호국의 얼이 어려있는 산이라는 전설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사시사철 삼림이 울창하여 옛날에는 인근의 5개 부읍 주민들이 땔나무 걱정없이 살았으며, 오늘날은 많은 사람들의 등산코스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광교산이 무속인들 사이에 계룡산에 이어 굿이 잘 듣는 명산으로 소문나면서 무속인들이 연일 찾아오고 있다고 한다. 이들 무속인들은 산림감시가 소홀한 밤을 이용해 형제바위, 약사암 등에서 굿판을 벌인다는 것이다. 광교산이 명산인 것은 사실이지만 굿판에 사용했던 돼지머리, 떡, 약과, 색실 등이 산속에 마구 버려져 있는 것은 산림도 훼손되지만 보기에 흉칙스럽다. 더구나 굿에 사용했던 촛불을 켜둔채 하산한다 하니 산불이라도 나면 어쩌려는가. 산불감시원들의 단속보다는 밤에 입산, 굿을 한다는 무속인들의 자제가 먼저 필요하다. /淸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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