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언론의 패가망신

김 기자가 햇병아리 시절이었다. 한 법무사의 비위를 검찰이 수사했다.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법원이 기각했다. 법무사가 얼마 전까지 계장으로 근무하던 법원이었다. 기자실에는 자기 식구 출신 감싸기라는 평이 돌았다. 두 개 신문사가 이를 보도했다. 그 중 하나가 김 기자였다. 영장은 재청구됐고 법무사가 구속됐다. 1년여 뒤, 항소심이 무죄를 선고했다. 법무사의 손해배상 청구에 그 법원이 1천만원을 주라고 판결했다. ▶90년대 1천만원. 김 기자 연봉의 절반에 육박하는 돈이다. 어렵게 대출을 받아 전부 물어줬다. 김 기자를 평생 따라다니는 공포다. 높은 자리에 올라서도 그때의 공포를 잊지 못한다. 비단 김 기자만의 얘기는 아니다. 수많은 기자들이 오보와 책임이라는 공포 속에 산다. 55년을 언론인으로 산 조선일보 방우영 회장이 자서전을 냈다. 2008년 출간된 이 책의 제목이 많은 언론인의 공감을 샀다. 나는 아침이 두려웠다. ▶박원순 서울 시장이 언론 관련 발언을 했다. 25일 한 팟캐스트 방송에 출연해서다. 왜곡해서 (기사를)쓰면 완전히 패가망신하는 그런 제도들이 도입돼야 한다고 했다. 미국식 징벌적 배상제도를 덧붙여 설명했다. 누가 얘기하면 무조건 쓰고 나중에 무죄로 판결이 나와도 보도하지 않는 것이 언론의 문제라고도 했다. 김 기자처럼 경험이 있는 기자들에겐 듣기만 해도 가슴 철렁하는 소리다. 오보 쓰면 패가망신한다. ▶맞는 말이긴 한데. 이 상황에서는 딱히 적절한 언급은 아니다. 그가 전제한 것은 조국 논란을 보도하는 언론 행태다. 조국 보도의 논점은 오보가 아니라 논조다. 표창장 위조 의혹은 오보가 아니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다. 어떤 신문은 일반화돼 있는 작은 문제라 쓰고, 어떤 신문은 천인공노한 큰 문제라 쓴다. 그 견해의 차이를 패가망신의 예로 설명하면 안 된다. 논조(論調)를 막는 건 언론자유 침해다. ▶무죄 비보도 지적도 오류다. 몇 해 전 국감에서 이런 지적이 있었다. 무죄선고를 받은 피고인 1천585명 중 4.5%인 72명만이 무죄 사실이 공시됐다. 통계는 맞다. 다만, 원인에 대한 분석이 부족했다. 많은 피고인이 무죄 공시를 원치 않는다. 잊힌 기억을 되살리기 싫다는 이유에서다. 언론도 똑같다. 무죄 보도를 원하면 안 해 줄 재간이 없다. 많은 당사자가 두 번 죽이는 보도라며 원치 않으니 안 쓰는 것이다. 언론인에겐 폼 나는 순간보다 무서운 순간이 훨씬 많다. 요즘 언론인은 특히 더하다. 박 시장은 언론인인 적이 없다. 그러니 공포감 없이 저런 말을 하는 것 같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아파트 이름 바꾸기

아파트 이름을 월드메르디앙, 힐스테이트, 로얄팰리스, 아크로타워 하는 식으로 붙이는게 유행하던 무렵이다. 나이 지긋한 엄마들이 모임을 갖으면서, 아파트 이름이 어려워 아들집 찾아가기도 힘들다고 푸념을 했다. 그때 한 사람이, 그게 뭐 어렵냐며 영어로 된 아파트 이름을 줄줄이 읊었다. 같이 있던 친구들이 역시, 이대 나온 여자라 다르네 해서 웃었다고. 우리나라 아파트 이름은 너무 어렵다. 영어를 왜 이렇게 많이 쓰는 건지 지나치다. 근래엔 더 길어졌다. 외국어 단어 두 세개를 나열해 무슨 뜻인지 알 수도 없고 기억하기도 힘들다. 예전엔 래미안, 힐스테이트, 푸르지오 했던 것이 래미안 라클레시, 래미안 아델리체, 힐스테이트 프레스티지, 힐스테이트 센트럴파크, 푸르지오 더프레티움, 푸르지오 클라테르 하는 식으로 길어졌다. 아파트 단지에 개명(改名) 바람이 불고 있다. 아파트는 브랜드에 따라 이미지가 달라지고, 곧 집값 문제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예전에도 법원 소송까지 불사하며 이름을 바꾸는 경우가 있었지만, 아파트 브랜드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더 거세지는 추세다. 이름을 바꾼 후 집값이 오르는 사례가 나오면서 브랜드가 곧 집값이라는 인식이 강해졌다. 대형 건설사들도 치열한 분양시장에서 고급화 이미지를 통해 프리미엄을 높이고 차별화를 꾀할 수 있어 네이밍 마케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서울 동작구 상도엠코타운 센트럴파크와 상도엠코타운 애스톤파크는 지난 7월 각각 힐스테이트상도센트럴파크, 힐스테이트상도프레스티지로 이름을 바꿨다. 울트라건설이 지은 서울의 서초에코리치는 울트라건설을 호반건설이 인수한 이후, 호반의 아파트 브랜드인 호반써밋으로 바꿨다. 공공임대아파트 브랜드는 이름 지우기에 한창이다. 대구의 칠성 휴먼시아는 지난 6월 대구역 서희스타힐스로 이름을 바꿨다. 분양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 브랜드 휴먼시아 대신 시공사 서희건설 브랜드로 바꾼 것이다. 수원의 LH해모로와 부산의 범일LH오션브릿지도 LH를 떼고 해모로, 오션브릿지로 개명했다. 임대 아파트를 많이 짓는 부영도 마찬가지다. 위례신도시의 위례부영사랑으로는 지난해 위례더힐55로 이름을 바꿨다. 아파트 이름은 주민 80%가 찬성하고 구청 승인을 받으면 바꿀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아파트는 핵심 자산이고 어느 브랜드에 사느냐에 따라 심리적 만족도까지 달라지다 보니 이름 바꾸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아파트 품격과 가치는 이름만으로는 부족하다. 부실 공사를 안하고 조경이나 시설 업그레이드 등 내실이 중요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장수 지팡이

올해 100세를 맞은 오창민 할아버지는 1919년 인천 옹진군에서 태어나 17세 때부터 55년간 배를 몰며 어부로 살았다. 슬하에 6남 2녀를 뒀고, 지금은 인천 중구에서 아내와 막내딸과 함께 산다. 할아버지는 요즘도 집 앞 텃밭에서 고추ㆍ채소 등을 가꾸고, 가끔 갯벌에 나가 조개나 굴을 잡으며 건강하게 노년을 보내고 있다. 할아버지는 2년전 공중파 TV의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에도 나왔다. 인천 앞 갯벌은 내가 접수했다라는 제목으로. 젊은 사람도 걷기 힘들다는 갯벌에 거침없이 걸어들어가 갯벌에 손만 넣었다 하면 낙지가 따라 올라오는 모습이 방영됐다. 오창민 할아버지는 지난 2일 노인의 날 기념식에서 올해 100세를 맞은 노인 1천550명을 대표해 문재인 대통령 내외의 친필 서명이 담긴 축하카드와 청려장(靑藜杖ㆍ장수 지팡이)을 받았다. 청려장은 명아주라는 1년생 잡초의 줄기로 만든 지팡이다. 명아주는 1년생이지만 줄기가 굵고 반듯하다. 재질이 단단하고 가벼운 데다 모양 또한 기품이 있다. 가지를 제거한 옹이 부분은 지압효과도 있다. 본초강목에 청려장을 짚고 다니면 중풍에 걸리지 않는다는 기록이 있고, 민간에선 신경통에 좋다하여 귀한 지팡이로 여겼다. 때문에 예로부터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노인들을 위한 선물로 널리 이용됐다. 통일신라부터 조선시대까지 왕이 장수 노인에게 청려장을 전달했다고 전해진다. 근래에는 1993년부터 노인의 날을 기념해 100세 노인에게 대통령 명의로 청려장을 주고 있다. 지난해에도 100세를 맞은 장수 노인 1천343명에게 전달했다. 올해 8월 말 기준으로 100세 이상 노인인구는 총 1만9천776명이다. 여성이 1만5천43명, 남성은 4천733명이다. 100세를 넘어서는 노인은 점점 늘고 있으나 처한 상황은 열악하다. 단순히 오래사는 것을 넘어서 건강하고 기운찬 노년을 희망하며 9988(99세까지 팔팔하게)을 외치지만 현실은 다르다. 통계청 노인실태조사 결과, 노인 10명 가운데 9명이 만성질병을 갖고 있다. 노인 1명당 평균 2.7개의 만성질병을 앓고 있다. 치매 사망률도 점점 높아진다. 어떤 이들은 고령화가 저주라고 말한다. 만성질병을 앓으며 빈곤 속에서 외롭고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는 노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노인빈곤율 1위, 노인자살률 1위라는 기록이 대한민국 노인 삶의 어려움을 말해준다. 이런 어려움을 해소하고 노후생활을 안정적으로 누릴 수 있도록 정부 정책이 강화돼야 한다. 노인이 행복한 세상, 지팡이로 뚝딱! 해결되면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경제성장률과 ‘金추’

추락하는 것엔 날개가 없다고 했다. 우리나라 경제성장과 관련된 얘기다. 한때 대한민국은 아시아의 용으로, 동북아 경제를 이끌어 나갈 국가로 주목 받았다. 한강의 기적을 이뤄내고, 냉전의 시대에 둘로 나눠진 이념을 하나로 묶어낸 88 서울올림픽의 성공 개최를 만들어냈다. 또 2002 한일 월드컵과 2018 평창동계올림픽까지 세계 4대 스포츠 축제를 모두 경험한 그랜드슬램 국가로 우뚝 서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 징후가 속속 나타나고 있다. 실물경제가 너무나도 오래 정체돼 있고,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은 IMF 때보다도 경기가 어렵다고, 현금이 전혀 돌지 않는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 하듯이 올해 정부가 마지노선으로 정했던 경제성장률 2%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3분기 경제성장률이 0.4%로 둔화되면서 사실상 2%의 성장은 물건너간 모양새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대형마트에 다녀왔다. 오르는 것에는 날개가 있었다. 금값이 된 배추 얘기다. 포기당 6천 원을 넘어서고 있다. 그야말로 金추다. 경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주부들 사이에선 올해 김장은 포기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대한민국 식탁에서 김장 김치를 볼 수 없는 현상이 어쩌면 올 겨울 현실이 될 수 있는 상황까지 온 것이다. 가을 태풍으로 인한 수급의 불안전성과 나쁜 작황의 여파로 배추는 지금보다 더 비싸질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현장 경제는 어려운데 아이러니 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경제성장률이 좋아지고,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이 튼튼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 무슨 지표를 근거로 이같은 낙관적인 전망을 내리는 것인지 궁금하다. 필부필녀(匹夫匹婦)가 다니는 마트나 재래시장의 실물경제를 제대로 보기는 하는 걸까. 축구 감독이 필드에 나설 선수단과의 미팅은 뒤로 하고 혼자 방안에 앉아 보드판에서 이기는 축구를 상상하는 꼴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빨간불은 파란불로 바꾸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력이라는 과정이 필요하다. 빨간불을 오래두면 기다리는 차들로 도로는 과포화 상태가 되고, 결국 폭발한 운전자들은 성난 민심을 표출할 것이다. 먹고 사는 문제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필부필녀(匹夫匹婦)에게는 최고의 고민거리다. 이제라도 경제에 대한 제대로 된 진단을 내려 환부는 도려내야 한다. 보편적 복지는 잠시 뒤로 하고 金추를 다시 배추로 돌려놓는 경제 정책을 실시해야 한다. 촛불의 힘이 다시 어디로 향할 지 모른다는 점을 반드시 인식해야 할 시점이다. 김규태 경제부장

[지지대] 우방국과 적대국

▶1985년 5월23일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사건이 발생했다. 전국적인 학생운동조직인 삼민투쟁위원회 주도로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서강대, 성균관대 등 5개 대학생 73명이 서울 미국문화원을 기습 점거한 것이다. 절대 우방이자 동맹국인 미국이기에 사회적 충격은 더하고 연일 뉴스를 장식했다. 광주학살 책임지고 미국은 공개 사죄하라는 등의 구호를 적은 종이를 창문에 붙인 이들은 주한 미국대사 면담과 내ㆍ외신 기자회견을 요구하며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그들은 72시간 농성 끝인 26일 자진 해산하며 경찰에 연행됐다. ▶1990년 5월9일 서울 미문화원 앞 도로를 점거한 학생ㆍ시민 등 2천여 명의 시위대 중 일부가 미문화원에 화염병 10여 개를 던졌다. 이로 인한 화재는 1층 490여㎡ 중 미국농업 무역관사무실(AT0) 내부 30여㎡를 태우고 1시간 35분 만에 꺼졌다. 퇴근시간 이후라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자칫 양국 간 외교 문제로 번질뻔한 상황이었다. ▶지난해 9월에는 조선족 여성에 의해 미국 대사관저가 무단 침입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대사관저는 대사관과 마찬가지로 치외법권지역으로 국제협약에 따라 폭력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그런데 13개월 만인 지난 18일 국가적 망신이 또 일어났다. 한국대학생진보연합 소속 대학생 17명이 주한 미국대사관저에 난입해 해리스(주한 미국대사)는 이 땅을 떠나라, 미군 지원금 5배 인상 규탄 등의 반미 구호를 1시간 넘게 외쳤다. ▶이승만 시대를 거쳐 서슬 퍼런 독재 유신ㆍ군사 정권에 제일선에 맞선 이들이 대학생이다. 그들의 열정과 염원이 밑거름돼서 대한민국 민주화가 한 걸음 더 빨라졌다. 그렇게 민주화의 봄은 왔고 시대를 주도한 386세대는 노무현ㆍ문재인 정부의 주축이 됐다. 하지만, 시위문화는 과거와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헌법에 보장돼 있는데도 떼법ㆍ불법이 여전히 판치고 있다. 명분이 있더라도 불법이 전제된다면 국민적 공감은 얻을 수 없다. 탈북민 취업박람회 때 들은 얘기다. 북한 핵실험이나 미사일 시험 때 왜 침묵함까. 거기가 좋다면 가서 사시면 되잖씀까. 오죽했으면 목숨 걸고 내려왔겠씀까. 대한민국 우방국과 적대국 구별이 어려운가. 김창학 정치부 부장

[지지대] 황영조의 일본 운동화

그때, 황영조 우승을 더 빛나게 한 역사가 있다. 극일(克日)로 표현된 몇 가지 기록이다. 한국인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은 손기정이다. 그땐 일장기를 달고 뛰었다. 56년 만에 황영조가 땄다. 이번엔 태극기를 달고 뛰었다. 손기정 경기일은 1936년 8월9일이다. 황영조 경기일도 1992년 8월9일이다. 황영조가 마지막에 따돌린 경쟁자가 하필 일본 모리시타다. 황영조의 금메달은 이래서 더 국민에게 극적으로 여겨졌다. ▶당시 황영조가 신고 뛰었던 운동화 얘기가 있다. 코오롱 스포츠가 만든 한국산으로 알려졌다. 1억 원의 개발비가 들었다고 했다. 마라토너들에게 운동화는 유일한 도구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신은 운동화 상표는 그 순간부터 명품이 된다. 당시 세계 시장은 일본 아식스가 장악하고 있었다. 그 시장에 우리 상표가 파고들 신호탄이 된 것이다. 황영조가 만든 경제 극일이었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알고 좋아했다. ▶그때, 모 언론에 작은 기사가 났다. 황영조는 그날 코오롱 운동화를 신지 않았다. 코오롱이 개발한 운동화가 아니었다는 기사다. 확인 결과 사실이었다. 연습 때는 신었지만 올림픽에서는 신지 않았다. 여러 가지 불편함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결국은 다른 운동화를 신을 수밖에 없었다. 그 운동화 상표가 하필 일본산 아식스다. 언론은 더 보도하지 않았다. 모처럼 조성된 극일 자신감을 감안했던 것 같다. ▶지난 12일, 세계 마라톤계가 시끄러웠다. 인간의 한계라던 2시간대 기록이 깨졌다. 케냐 선수 엘리우드 킵초게의 1시간59분40.2초다. 마라톤계의 획을 그을 일이지만 논란이 일었다. 기록만을 위해 기획된 행사였다. 특히 운동화가 문제였다. 기술이 워낙 좋아 기록으로 칠 수 없을 정도였다. 기술 도핑이라는 지적까지 나왔다. 나이키가 만든 야심작이다. 운동화 선진국들 간의 경쟁은 지금도 이렇게 치열하다. ▶1992년, 황영조가 뚫지 못한 극일은 운동화 산업이었다. 우리 운동화 산업은 지금도 변방에 있다. 일본 아식스는 여전히 군림하고 있다. 더구나 그 상징적 역사의 소재로 황영조를 써먹는다. 2004년, 아식스 오니츠카 회장이 방한했다. 언론에 자랑했다. 60년대 아베베, 90년대 황영조가 아식스를 신고 월계관을 썼다. 극일의 마당은 넓다. 반도체 말고도 이겨야 할 분야가 산적해 있다. 마라톤에서 찾아본 극일 이야기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공공기관 외국어 오남용

방탄소년단 감사합니다! 너희들 때문에 한국어 공부를 계속하고 싶어(인도네시안 아미), 저는 중국 팬입니다. 강다니엘이 한국어를 좋아하기 때문에 계속 공부하겠습니다 올해 573돌 한글날을 맞아 SNS 트위터에는 한글 손글씨 인증사진이 수천건 올라왔다. 방탄소년단과 강다니엘 등 외국에서도 인기 많은 아이돌 팬들이 한글날을 기념해 한글 쓰기 인증 릴레이를 펼친 것이다. 삐뚤빼뚤한 손글씨는 철자법이 틀리기도 하고 어법을 어기기도 했지만 한글 사랑은 지극했다. 케이팝이 이끄는 한류 열풍 덕에 세계 곳곳에서 기념하는 한글날이 됐다. 한글을 바르게 쓰고 확산시키는데 앞장서야 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에서 외래어ㆍ외국어를 오남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책이나 사업 이름에 외국어, 국적 불명의 외래어, 신조어를 마구 써댔다. 우상호 국회의원이 한글문화연대와 1~8월 정부부처 보도자료를 살펴본 결과, 자료 한 건마다 평균 6회 외국어를 썼다. 외국어를 가장 많이 남용한 부처는 중소벤처기업부로 보도자료 한 건당 평균 19.6회였다. 지자체도 보도자료 한 건당 2개꼴로 외국어를 썼다. 가장 많이 사용한 기관은 서울시(692개), 대구시 및 경남(462개), 경기도(431개), 부산시(396개) 순이었다. 경기도의회가 최근 경기도와 공공기관의 각종 문서를 살펴본 결과, 역시 외래어와 신조어를 남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커톤 캠프 청년 플리마켓 버스킹 토크 콘서트 청년비서관 노(NO)스펙(SPEC) 전형 등 부지기수로 선뜻 이해가 어려운 것들도 있다. 경기도 자치단체 31곳 중 10여곳은 도시 상징에 외국어를 섞어 쓰고 있다. 과천시(I AM 과천), 광주시(Clean Gwangju), 군포시(O₂Gunpo), 동두천시(Do Dream 동두천), 부천시(Fantasia 부천), 수원시(휴먼시티 수원), 의왕시(Yes! 의왕), 연천군(HI♡연천) 등이다. 도의회는 2014년 경기도 국어 바르게 쓰기 조례를 제정, 경기도 및 공공기관 공문서는 일상생활에 널리 쓰이는 국어를 사용하고 무분별한 외래어와 외국어, 신조어 사용을 피하도록 했지만 지켜지지 않고 있다. 외국어ㆍ외래어 남발은 한글 사랑에 역행하는 것이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한글날 기념사에서 불필요한 외국어 사용을 줄이고 전문용어도 쉬운 우리말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한글을 갈고 닦는 일은 나라의 힘을 키우는 일이다. 일제강점기 목숨 걸고 우리말 연구를 한 조선어연구회는 우리말큰사전 말머리에 말은 사람의 특징이요, 겨레의 보람이요, 문화의 표상이라고 했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금배지도 대물림인가

문희상, 지역구 세습을 보장받기 위해 문 정권의 시녀로 자처하려는가.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12일 페이스북에 문희상 국회의장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문 의장이 사법개혁안 신속 상정 의지를 밝힌 것과 관련해서다. 홍 전 대표는 패스트트랙에 대해 민생법안이 정치적 이해관계로 표류하고 있을 때 이를 타개하기 위해 채택된 제도지 선거법, 공수처법, 검경수사권 조정과 같은 정치관련법 처리를 위해 채택한 제도는 아니다라면서, 문 의장이 지역구를 아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정권에 충성한다는 식으로 썼다. 홍 전 대표는 평상시 하고 싶은 말을 그냥 쏟아내는 편이고, 막말 논란에 휩싸인 적도 많다. 사법개혁안 패스트트랙에 대해선 저마다 견해가 다를 수 있다. 문 의장은 자신의 지역구를 아들에게 물려주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말 아들 문석균씨가 문 의장 지역구인 민주당 의정부갑 상임부위원장에 임명됐다. 아들 문씨는 의정부에서 서점을 운영해왔다. 지역구 상임부위원장이 된 이후엔 국회의장직 수행을 위해 탈당한 아버지를 대신해 지역행사에 얼굴을 내밀고 있다. 지역정가에선 6선을 지낸 문 의장이 아들에게 국회의원 승계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보고 있다. 내년 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정치 금수저들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부모의 자산과 신분 등이 자녀에게 대물림되는 한국 사회를 빗댄 수저계급론이 정치판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2, 3세 정치인들을 바라보는 유권자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정치 유전자를 물려받았을 것이란 긍정적 측면보다, 권력 대물림과 불공정 세습이란 부정적 시선이 우세하다. 현 20대 국회에서 2, 3세 정치인으로 금배지를 단 의원은 14명이다. 더불어민주당 3명(이종걸노웅래김영호), 자유한국당 7명(김무성정우택정진석김세연이종구장제원김종석), 바른미래당 3명(유승민이혜훈김수민), 우리공화당(홍문종) 1명 등이다. 이혜훈 의원의 경우는 시아버지가 4선을 지낸 고 김태호 전 의원이다. 내년 21대 총선에도 현역 2, 3세 정치인을 비롯해 다수 원외 인사가 출정을 벼르고 있다. 8선의 서청원 의원(화성갑) 아들 서동익씨도 출마를 채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학계, 종교계, 정치계 등 사회 곳곳에서 부와 권력 등이 대물림 되는 것은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아니다. 부모 잘 만나야 성공하는 나라가 되면 희망은 사라지고, 불만과 분노가 가득차게 된다. 금배지까지 대물림되는 여의도 세습정치, 바람직하지 않다. 문 의원, 서 의원 6선, 8선 했으면 됐지, 뭘 또 이게 많은 국민의 생각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고독사

고독사는 홀로 살다가 쓸쓸하게 맞이하는 죽음을 말한다. 2000년대 들어 고독사로 백골이 된 망자들이 발견되면서 사회문제로 드러나고 있다. 과거 고독사는 독거노인에게 집중됐지만 최근엔 저소득층이나 고소득층, 젊은층이나 노년층을 가리지 않고 일어난다. 1인 가구의 증가 때문이다. 통계청의 인구총조사에 따르면 전체 가구 중에서 1인 가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도 15.5%에서 2005년도에 20%로, 2010년에는 23.9%, 2015년 27.2%로 지속적인 증가 추이를 보이고 있다. 1인 가구의 증가로 한국도 고독사 사회로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고독사 통계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한 해 500~1천여 명 정도가 고독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을 뿐이다. 파주시 광탄면 혜음로의 서울시립승화원 용미리1묘지 100구역에는 무연고 추모의 집이 있다. 친인척 없이 고독사하거나 유가족이 있음에도 경제적 부담 탓에 장례를 거부한 시신들의 유골이 안치된 곳이다. 무연고 사망자는 경제불황 장기화와 핵가족 증가 등의 이유로 2015년 1천676명에서 지난해 2천386명으로 3년 새 42.3% 증가했다. 경기도 역시 무연고 사망자가 2015년 297건, 2016년 325건, 2017년 399건, 지난해 453명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무연고 사망자 유골은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10년간 추모의 집에 봉안하는데, 기간 내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정해진 지역에 유골을 뿌리는 산골(散骨) 작업을 통해 처분한다. 파주 무연고 추모의 집에는 1년에 300~400명의 무연고 사망자 유골이 들어오는데 이 중 연고자가 유골을 찾아가는 것은 2~3건에 불과하다. 이렇듯 고독사에 대처하는 사회적 안전망과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대책은 미비한 것이 현실이다. 고독사는 결국 가족의 해체와 공동체의 해체에서 나온 현상이다. 정부와 자치단체는 최근 마을공동체를 구성하기 위한 방안을 구상하고 활성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거창할지 모르겠지만 공동체의 해체는 인류 운명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이웃과의 소통, 마을 공동체의 활성화가 해체된 가족, 고독사의 적절한 처방이라 생각한다. 최원재 문화부장

[지지대]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지난주 한국기자협회와 우즈베키스탄기자협회 교류 차원에서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를 비롯해 우르겐치 히바성, 사마르칸트를 다녀왔다. 우즈베키스탄은 인구가 3천200만 명 정도이고 면적은 우리나라의 2배 정도 된다.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Shavkat MIRZIYOYEV) 대통령이 지난 2017년 한국을 방문했고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4월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했다. 양국은 두 대통령의 방문을 계기로 의료 분야 등 활발한 교류를 준비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과 한국 교류의 중심에는 고려인들이 있다. 우즈베키스탄 기자협회에 따르면 고려인의 비율은 전체 인구의 약 3%(약 100만 명)에 달한다고 했다. 소련 체제의 붕괴 이후에 우즈베키스탄(Uzbekistan)의 고려인 지도층은 고려인 사회의 소통을 시도했다. 당시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전략적으로 소수민족의 문화협회 창설을 독려했는데, 이 때 고려인 사회를 대표하는 공식 기구로 설립됐다. 현재 고려인의 전통을 유지하면서 한국과의 교류를 이끌고 있다. 1991년 8월31일에 독립을 선포한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120여 소수민족을 통제하려고 소수민족들이 문화협회를 조직하도록 장려하면서, 이들 문화협회가 우즈베키스탄 정부 기관인 소수민족문화부흥지원센터에 등록하도록 했다. 이러한 정책의 일환으로 우즈베키스탄에 거주하는 고려인들은 1991년 11월에 고려인문화협회를 발족한 것이다. 현재 협회는 고려인 사업가는 물론 대한민국 정부의 지속적인 지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다. 특히 고려신문을 소유하면서, 고려인과학자협회, 청년협회 등을 지원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전국에는 26개의 지부가 있다. 협회는 주로 고려인의 전통과 풍습을 유지하는 행사를 열고 있다. 곧 자체적으로 한글 교육을 실시하면서, 한편으로는 우즈베키스탄 주재 한국 대사관과 함께 한글대회를 개최하는 등 문화 사업에 힘쓰고 있다. 아울러 한국 기업과 교류를 통해서 고려인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1930~1940년대에 러시아 고려인 강제이주로 4천여 ㎞ 떨어진 척박한 이국땅에 그들이 정착했다. 우리 정부도 국민도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우리 민족으로 기억하길 간절히 바란다. 최원재 문화부장

[지지대] 별건 수사와 먼지떨이

A씨는 현직 안산시장이었다. 수원지검 특수부가 수사했다. 업자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의혹이었다. 이미 업체 이름까지 다 공개됐다. 수사가 자꾸 엉뚱한 곳으로 번졌다. 관계없어 보이는 시청 부서가 압수수색을 당했다. 소환되는 공무원들도 중구난방이었다. 브리핑에서 기자들이 물었다. 새로운 수사를 하는 것이냐. 미국 유학파 출신 특수부장이었다. 그 김 부장이 이렇게 설명했다. 이건 미국에서 하는 감사원식 수사다. ▶기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감사원식 수사 적용이라고 쓴 언론도 있었다. 1990년대 검찰과 언론이 그랬다. 별건 수사(別件搜査)를 아무렇지 않게 했다. 그저 특수수사의 중요한 기법으로 여겼다. 결국, A 시장의 측근이 진술했다. 업체에서 돈을 받아 시장에 전달했다. A 시장은 구속됐다. 수감생활을 하던 A 시장에게 법원이 판결했다. 무죄. 전달자로 지목했던 측근은 자살했다고 알려졌다. 비극적 결론이다. ▶조국 동생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야권이 연일 비난한다. 서울고등법원에서의 국감은 조국 동생 국감을 방불케 했다. 영장 발부 기준을 밝히라는 등의 공격을 이어갔다. 영장 담당 판사를 출석시키라는 요구도 나왔다. 야당은 그럴 수 있다. 그런데 다른 시각이 있다. 판사가 이 사건을 별건 수사로 봤을 수 있다는 해석이다. 실제로 웅동학원 교사 채용비리는 조국 사태와 어울리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말한다. ▶이런 별건 수사가 조국 검찰개혁안에 등장했다. 다른 건 다 익숙하다. 반부패수사부 신설도 알려진 구상이다. 심야 수사 제한도 지겹도록 듣던 제도다. 하지만 별건 수사 제한은 다르다. 본건 수사와 다른 별건 수사를 엄격히 제한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명문의 규정을 신설하겠다고도 한다. 피의자들에게 주는 여유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심문은 본건과 무관한 수사이니 답변 않겠다는 항변을 가능하게 터 주는 것이다. ▶A 시장 사건부터 몇 해 뒤, 그 김 부장이 다시 수원지검에 왔다. 차장검사로 부임했다. 소주잔을 기울이던 중 그때의 얘기를 했다. 감사원식 수사? 미국에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냥 한 말이지. 웃어넘겼지만, 그 찜찜함은 오래갔다. 죄 없는 시장을 열 달간 수감했던 사건, 허위 진술했던 제3자가 죽음을 선택 한 사건 그 비극의 시작에 별건 수사가 있었다. 억지로 짜낸 먼지떨이식 수사. 이제라도 별건 수사는 제한되는 게 맞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로또 1등의 비극

지난 11일 전주에서 50대 형이 9살 아래 친동생을 흉기로 마구 찔러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끔찍한 사건은 숨진 남성의 아내와 초등학교 1학년 딸이 보는 앞에서 벌어졌다. 형제의 비극은 돈 때문이었다. 로또 1등 당첨이 비극의 씨앗으로 밝혀졌다. 2009년 형은 로또 1등에 당첨돼 세금을 제하고 8억 원을 수령했다. 이 가운데 3억 원을 누나와 숨진 동생, 또다른 남동생에게 각각 1억원씩 나눠줬다. 형은 나머지 돈으로 식당을 열었으나, 식당 경영이 어려워져 폐업 직전까지 몰렸다. 형은 당첨금을 보태 산 동생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4천600만 원을 빌려 식당 운영에 썼다. 그래도 식당 경영은 나아지지 않았고, 최근엔 몇달간 대출이자도 못냈다. 형이 빌린 돈 때문에 은행 독촉이 계속되자 형제는 자주 다퉜고, 사건이 일어난 날도 형은 만취상태에서 통화를 하며 언쟁을 벌이다 동생을 찾아가 흉기를 휘둘렀다. 형이 로또 당첨이 되지 않았다면? 아마 이런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로또 당첨금을 나눠줄 정도로 형제간 우애도 좋고, 형이 당첨금을 흥청망청 쓴 것도 아니어서 안타깝지만 사건은 로또 당첨금이 발단이 됐다. 많은 사람들이 로또 1등 당첨을 꿈꾼다. 어느날 갑자기 벼락부자가 되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거라 믿으며, 매주 복권을 산다. 지난해 복권 판매 금액아 4조 원을 넘었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을까? 돈만 있으면 행복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로또 1등 당첨이 비극이 된 사례는 많다. 성실하게 일하던 자장면 배달부가 로또 1등에 당첨돼 세금을 떼고 13억 원을 받았다. 그는 당장 배달 일을 그만두고, 술집 등을 전전하며 방탕한 생활을 했다. 하는 일이라고는 로또 복권을 사는 것뿐, 재혼한 부인을 상습 폭행해 경찰에 구속됐다. 실수령액 18억 원을 거머쥔 남성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개인사업을 벌이다 2년만에 모두 날리고는 목욕탕 탈의실에서 목을 매 숨졌다. 14억 원을 받은 남성은 도박과 유흥에 빠져 8개월만에 당첨금을 모두 탕진한 뒤 도박 자금과 유흥비 마련을 위해 금은방을 털다 붙잡혀 감옥에 갔다. 15억 원을 받은 50대 남성은 손위 동서가 휘두른 흉기에 숨졌다. 로또 1등 당첨으로 화목했던 가정이 파탄나는가 하면, 거액을 흥청망청 쓴 뒤 목숨을 끊거나 범죄 유혹에 빠져 인생을 망친 사람들이다. 행운이 찾아와도 현명하게 행동하지 못하면 복이 독이 된다. 세계 각국에서 횡재가 심리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결과, 복권 당첨자의 행복 수치는 눈에 띄게 변하지 않았다. 다만 삶의 만족도는 좀 높았다.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복권에 당첨되지 않더라도 실망하지 마시라.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비운의 쿠르드족

터키군이 지난 9일(현지시간) 시리아 국경의 쿠르드족(族)에 대한 군사 공격을 개시했다. 평화의 샘이라 명명한 군사작전으로 사상자가 속출하는 가운데 쿠르드족 피난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간단한 가재도구와 옷만 트럭에 싣고 떠나는 사람들로 도로가 가득 차고, 차 없는 사람들은 등짐을 지고 걸어서 피난길에 올랐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7만 명의 쿠르드족이 피난을 떠났다고 밝혔다. 구호단체 국제구조위원회(IRC)는 30만 명이 피난길에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쿠르드족이 미국과 동맹을 맺고 이슬람 극단세력 IS 격퇴전을 벌일 때만 해도 터키는 쿠르드족을 건드릴 엄두도 못 냈다. 시리아 쿠르드족은 민병대를 조직해 미군과 2017년 IS 수도인 락까를 탈환하고, 지난 3월엔 IS의 최후거점인 바구즈를 함락시키는 데 일조했다. 5년에 걸친 IS 격퇴전에 쿠르드족은 병력 15만 명을 동원했고 1만1천여 명이 전사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쿠르드족에게 엄청난 돈과 장비가 들어갔다. 우리 이익이 되는 곳에서만 싸울 것이라며 미군 철수를 결정했다. 쿠르드족은 미군 철수에 대해 혈맹이 등에 비수를 꽂았다며 배신감을 표했다. 미 공화당에서조차 동맹에 대한 배신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토사구팽(兎死狗烹) 당한 쿠르드족은 풍전등화의 위기에 내몰렸다. 중동의 집시 쿠르드족은 독립국가를 갖지 못한 세계 최대 민족이다. 주로 터키 남동부, 시리아 북동부, 이라크 북부, 이란 남서부, 아르메니아 남서부 등 5곳에 흩어져 사는데 전체 3천만4천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쿠르드족은 20세기 초 쿠르디스탄이라는 독립국을 세우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연합국과 동맹국이 서명한 세브르조약엔 쿠르드족의 독립국 건설을 보장한다는 내용이 담겼으나 서방국가들이 약속을 어겼다. 쿠르드족은 독립국 약속을 믿고 서방국가와 함께 싸웠으나 전쟁 후 토사구팽 당해 지금처럼 흩어져 살게 됐다. 쿠르드족의 절반에 가까운 1천500만 명은 터키 동남부에 거주한다. 터키는 쿠르드족 분리ㆍ독립을 주장해온 쿠르드노동자당(PKK)을 테러단체로 지목해 탄압해 왔다. 시리아 쿠르드와 PKK가 손을 잡으면 국가 기반이 흔들릴 우려가 있어서다.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도 PKK 제거를 공공연히 언급했다. 수천만이나 되는 쿠르드족은 국가를 건설하지 못해 전쟁에 휘말리고, 강대국들 사이에 배신 당하는 역사만 되풀이하고 있다. 나라가 없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전쟁은 참혹하다. 대규모 살상은 막아야 한다. 수십만 명의 난민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IS가 다시 창궐할 수도 있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국감의 본질

지금 완전 전쟁터 아닙니까 바깥에서 보기에는 돼지 몇 마리 죽고 살처분하고 그러나 보다 생각할 수 있지만, 일선에 나와 보면 정말 숨 쉴 틈도 없을 만큼 심각하다. 지난 4일 경기도청에서 열린 10월 공감ㆍ소통의 날 행사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국회에 국정감사를 미뤄달라며 한 말이다. 지금 경기도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과 전쟁 중이다. 파주 5곳, 김포 2곳, 연천 2곳 등 도내 9곳의 농가에서 ASF가 발생했고, 10만 1천 마리의 돼지가 살처분됐다. 살처분 현장에 동원된 인원만 2천500여 명이다. ASF는 현재 진행 중이다. 한글날인 9일에도 연천군에서 의심신고가 접수돼 확진 판정됐고, 같은 날 농림축산식품부는 고양ㆍ포천ㆍ양주ㆍ동두천ㆍ연천군 등 ASF 발생 농가 반경 10㎞ 지역을 완충 지역으로 지정, 모든 차량의 농가 출입 통제와 대대적인 집중방역을 예고했다. 상황이 이렇기에 이재명 지사는 도의 모든 행정력을 ASF 방역에 집중할 수 있도록 국정감사를 미뤄달라고 국회에 요청한 것이다. 그럼에도, 일주일 뒤인 18일 경기도청에서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국정감사가 실시될 것으로 보인다. 애초 16일 예정됐던 환경노동위원회의 국정감사는 ASF를 이유로 취소됐지만, 행안위는 경기도 국정감사를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곳도 아닌, 전국 최대 지방자치단체인 경기도이기에 국정감사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행안위의 심정도 이해는 된다. 그러나 반대로 어느 상임위원회보다 행정을 잘 아는 행안위이기에 ASF 사태 속에서 국정감사를 기여코 하겠다는 모습이 아쉽기도 하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정감사를 보자. 검찰과 법원의 국정감사에서도 조국, 금융감독원 국정감사에서도 조국(펀드), 심지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인사혁신처 국정감사에서도 조국(호칭 문제)이 모든 이슈를 집어삼켰다. 국정감사의 본래 기능을 망각한 채 여야 모두 정치적 논리에 의해 국감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경기도라고 다를까. 경기도의 수장은 여권 내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이자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는 이재명 지사다. 2천여 명이 10만 마리의 돼지를 묻고 있는, 이 전쟁 같은 현장에서 열리는 국정감사가 자칫 이재명 국감이 되지는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경기도민들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ASF의 최대 피해 지역인 경기북부는 전통적으로 현 야당에 큰 지지를 보냈던 곳이다. 총선이 반년도 채 남지 않았다. 이호준 정치부 차장

[지지대] 살인의 추억

화성연쇄살인범 이춘재가 교도소에 복역 당시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을 봤던 것으로 알려졌다. 2003년에 개봉해 51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던 영화다. 영화 관람 당시 재소자들 사이에서도 영화 속 용의자로 알려진 박현규(박해일 분)에 대한 비난과 야유가 쏟아졌다고 한다. 이춘재는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보면서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영화 속 박현규와 이춘재는 모두 진안1리 출생으로, 군대를 막 제대한 20대 초반 청년이었다는 설정이 일치한다. 영화 속 서태윤 형사(김상경 분)가 박현규에게 네가 군 제대하고 이 동네 공장으로 온 뒤부터 여기서 사건들이 줄줄이 일어난 셈이란 말이야라고 말하는데, 실제로 이춘재는 군을 제대해 귀향한 직후에 연쇄살인사건을 저질렀다. 이춘재는 전기부품제조회사에 다녔고 영화 속 박현규는 레미콘 공장에 근무하는 걸로 보이는데, 이춘재가 다녔던 회사 옆에 레미콘 공장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춘재는 6차 사건이 벌어진 1987년 5월 이후 탐문과 행적조사 등을 통해 용의자로 지목돼 수사지휘부에 불려갔으나 혈액형과 족적이 달라 수사 선상에서 제외되는데, 이는 영화 속 박현규가 수사대상에 올랐다가 제외되는 과정과도 유사했다. 갖은 노력에도 사건의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자 당시 형사들이 나름 용하다고 하는 무당을 찾아가 범인이 누구인지 알려달라고 부탁하고, 심령술사의 제보 한마디도 수사에 반영했다는 사실 역시 영화 속에서 그대로 재연됐다. 향숙이, 향숙이 이뻤다는 짧지만 인상적인 대사를 남긴 영화 속 가장 인상 깊은 캐릭터 중 하나인 백광호(박노식 분)는 지하실에서 고문을 당하고 범인으로 내몰린다. 8차 사건의 진범으로 잡혀 20년 가까이 복역한 윤모씨가 연상된다. 이춘재가 이 사건도 자신이 했다고 진술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이에 대한 진실 또한 밝혀지리라 믿는다. 이춘재는 자신의 행적을 그대로 옮겨 놓은 영화 속 리얼리티에 감탄을 하며 카타르시스를 느꼈을지,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지 새삼 궁금해진다. 이명관 사회부장

[지지대] ‘장관 가족’ 따라하기

공개소환은 인격적 살인이다. 수사단계에서 이미 죄인으로 몰아간다. 무죄 추정 원칙에 위배됨은 물론이다. 일명 포토라인도 언론의 편의를 위한 제도였음이 사실이다. 이를 폐지한 검찰의 결정은 옳다. 심야 수사 역시 없어져야 할 폐습이다. 정상적인 진술권을 심리적으로 위축시킨다. 과거에도 숱하게 문제가 제기됐던 관행이다. 그런데도 좀처럼 없어지지 않았다. 이를 폐지한 결정 역시 검찰의 옳은 선택이다. ▶왜 하필 지금이냐는 논란은 있다. 첫 수혜자가 조국 법무장관의 가족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실체적 진실의 오류다. 아니면 의도적인 과장이다. 공개 소환 금지나 심야 수사 금지는 전국 검찰청에서 동시에 시작됐다. 검찰에는 오늘도 수많은 피의자들이 소환되고 수사받는다. 그들 모두에게 이 개정 규칙은 적용된다. 관찰의 시각을 오로지 조국 가족에게만 맞추다 보니 이런 착시가 생긴다. ▶사실, 이보다 걱정되는 건 따로 있다. 조 장관 가족들이 보여주는 수사 회피 기법이다. 조국 장관의 동생 조모씨가 영장 심사 연기를 요청했다. 심사 당일 디스크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이유다. 조씨는 웅동중학교에 교사 채용을 빌미로 돈을 받은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궐석심사가 열렸지만, 일반 피의자들에겐 준 엉뚱한 힌트가 있다. 영장 심사 날 수술날짜를 잡아 시간을 번다는 기술이다. ▶조 장관 부인 정경심씨도 조서 열람의 특별한 기술을 보여줬다. 두 번째로 소환된 5일 정씨가 검찰에 머문 시간은 15시간이다. 이 중 실제 조사는 2시간 40분이다.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앞서 받았던 조서를 열람했다. 4시부터 조사가 시작됐으나 6시40분 다시 중단됐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다시 4시간 30분간 조서를 열람한 뒤 그대로 귀가했다. 피의자들에겐 조서 열람을 통한 수사 지연이 전술로 비쳤음직하다. ▶법무장관은 검사들의 인사권을 갖는다. 검찰총장을 통해 개별 수사를 지휘한다. 국민에 주는 상징성이 크다. 그런 장관과 가족의 수사인 만큼, 일반인에 주는 영향도 크다. 혹시 너도나도 흉내 낼까 봐 걱정이다. 나도 조서 읽으며 시간 끌겠다. 법무장관 부인이 그렇게 하더라라고 할까 봐. 나도 구속영장심사 때 수술하겠다. 법무장관 동생이 그렇게 하더라라고 할까 봐. 과거의 경험을 보면 이런 흉내는 급속히 유행하는 경향이 있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찌아찌아족 한글 채택 10년

인도네시아 부톤섬의 소수민족 찌아찌아족은 한글을 부족어 표기법으로 채택하고 있다. 1만7천여 개의 섬으로 이뤄진 인도네시아는 본래 사용 언어가 700여 개나 됐는데, 로마자로 표기하는 인도네시아어를 공용어로 지정한 뒤 소수민족 언어가 급감했다. 찌아찌아족도 독자적 언어는 있지만, 표기법(문자)이 없어 고유어를 잃을 처지였다. 부톤섬의 바우바우시는 2009년 훈민정음학회의 건의를 받아들여 찌아찌아어를 한글로 표기하는 방안을 채택했다. 한글 수출 1호 사례다. 한글 도입 첫해에는 교재 집필에 참여한 현지인 아비딘씨가 학생들을 가르쳤고, 2010년 부터 정덕영씨가 유일한 한국인 교사로서 10년째 현장을 지키고 있다. 찌아찌아족이 한글을 부족어 표기법으로 채택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초기에는 한글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린 사례로 화제를 모았다. 중앙정부지자체 등에서 부톤섬에 문화원을 설립하고 도시개발을 해주겠다는 등 온갖 지원을 약속했다. 그러나 제대로 지켜진 게 하나도 없다. 정씨는 2014년 지인과 동창이 주축을 이뤄 출범한 한국찌아찌아문화교류협회를 통해 소액기부금을 후원받아 교육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까지 1천여 명이 한글을, 또 다른 1천여 명이 한국어를 정씨로부터 배웠다. 한글을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이 많지만 교사가 모자라는 상황이다. 정씨는 부톤섬을 떠나게 될 때, 한글한국어 교육의 맥이 끊길까 걱정이다. 현지인이 한글한국어 교수법을 제대로 배워 가르치는 것이 효과적인데 이를 정씨 개인이 하기엔 어려운 일이다. 찌아찌아족이 알파벳 대신 한글을 표기 언어로 선택한 이유는, 한글이 어떤 글자보다도 소리를 명확하게 표기할 수 있어서다. 한류문화가 확산되면서 해외 대학에 한국어과, 한국어센터 등이 개설되고 있다. 얼마 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상하원에서는 10월9일 한글날을 한글 데이(Hangul Day)로 제정하는 결의안이 통과됐다. 우리말과 글이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를 타고 전 세계로 퍼지고 있다. 한글의 우수성은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세계적인 과학전문지 디스커버리는 1994년 6월호에서 한글을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인 문자라고 극찬했고, 미국의 저명한 언어학자 로버트 램지 교수는 2013년 한글보다 뛰어난 문자는 없다. 세계를 아우를 수 있는 알파벳이라고 말했다. 유네스코에서는 문맹 퇴치에 공이 큰 사람이나 단체에 세종대왕상이라는 이름으로 시상을 하고 있다. 정부는 한글의 세계화라는 구호만 외칠게 아니라 실효성 있는 정책과 함께 적극 지원을 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DMZ 야생 멧돼지

인천 강화군에는 돼지가 단 한 마리도 없다. 지난달 24일 송해면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발생 이후 5농가에서 확진 판정이 나자 강화군내 39곳 농장의 4만 3천602마리 돼지를 3일까지 모두 살처분했다. 마지막으로 삼산면의 한 가정집에 애완용 돼지 1마리가 있었다. 주인은 애정을 갖고 길러온 돼지를 살처분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강화군은 삼산면에서 돼지열병이 발생해 위험하다며 주인을 설득했으나 끝까지 거부하자 4일 행정대집행을 통해 이 돼지를 안락사 시켰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 국내 첫 발생 지역인 경기북부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농축산식품부는 파주ㆍ김포시 관내 돼지도 모두 없애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돼지를 전량 수매후 정밀검사를 거쳐 도축 혹은 예방적 살처분을 한다는 것이다. 지난 2일 연천군의 비무장지대에서 발견된 야생멧돼지 폐사체에서 ASF 바이러스가 검출됐다. 발생 2주가 넘도록 찾지 못했던 감염경로를 밝힐 중요한 단서를 찾은 셈이다. 휴전선을 넘어온 멧돼지는 ASF 발병 초기부터 유력한 감염경로로 여겨졌으나, 국방부가 DMZ내 철책은 멧돼지가 넘어올 수 없는 구조물로 설치돼 있다며 이동 가능성을 일축했다. 하지만 2018년 이후 지난달까지 GOP 철책 중 13곳이 파손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대규모 살처분이 이뤄진 강화군 접경 해안가에서 북에서 넘어온 것으로 보이는 멧돼지 3마리가 발견됐다. ASF 바이러스는 감염 멧돼지뿐 아니라 새쥐파리 등 야생동물들이 감염된 멧돼지 사체나 배설물에 접촉했을 때도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다. 살아있는 멧돼지가 철책에 막혀 DMZ를 넘나들기 쉽지 않다고 해도, DMZ내 방치된 멧돼지 사체가 돼지열병 확산의 원흉이 될 가능성이 있다. 멧돼지를 통한 바이러스 전파 우려에 정부가 멧돼지 대응책에 부심하고 있다. 국방부는 DMZ 철책을 통과하려는 야생멧돼지를 발견하면 즉시 사살하라는 지침을 내린 상태다. 총성으로 인한 우발적 충돌을 막기 위해 이런 내용을 북측에 군 핫라인으로 통보했다. 군은 또 연천 중부일대 DMZ내에 헬기를 투입해 방역을 시작했다. DMZ 멧돼지는 겨울철에 GOP부대에서 음식물 찌꺼기를 먹이로 주는 등 한때 장병들의 보호까지 받았다. 그러나 GOP지역에 첨단 경계감시 장비가 설치되면서 툭하면 경계음이 울려 5분 대기조가 출동하는 등 군인들을 괴롭히고 있다. 이젠 돼지열병 바이러스 전파 우려까지, 그야말로 골칫거리다. 농가에서 사육하는 집돼지 잡기에만 집중했던 방역당국이 DMZ 멧돼지까지 차단해야 하는 심각한 상황이다. 일이 훨씬 커지고 복잡해졌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1년에 5번씩 운동회 하고 싶어요”

어제 운동회를 하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게 만든 마음. 올해는 작년 체육대회보다 더 재미있었다. 개인 달리기, 장애물 달리기, 어르신들이 하는 경기, 청백계주 등 특히 4학년 언니, 오빠들은 정말 재미있게 달리는 것 같았다. 1년에 5번씩 체육대회를 하고 싶다. 왜냐하면 더워도 재미있고 신나면 더운 것을 모른다. 내년 체육대회는 어떨까? 올해보다 재미있으면 좋겠다. ▶초등학교 3학년 딸 아이의 일기장을 몰래(?) 봤다. 요즘 초등학교 운동회는 점점 간소화되고 전문 이벤트 행사업체에서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꼭두각시 공연도 없고 김밥, 과일 등의 간단한 음식 반입이 일체 금지된 학교도 있다. 솔직히 엄마, 아빠 입장에선 운동회가 노동의 시간에 가깝다. 안 하던 운동을 갑자기 하면서 심한 근육통이나 피로함을 호소하기 때문이다. 반면 아이들은 다르다. 친구들과 선생님과 함께 뛰고, 달리고, 던지고, 잡고, 넘어지고, 일어나고 그 자체에 행복하고 좋다. 아빠가 줄다리기 하면서 꽈당 넘어지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훌라후프를 돌리는 엄마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깔깔깔 배꼽 잡고 웃는다.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몸으로 노는 시간만큼은 학원 갈 걱정도 시험을 잘 봐야하는 욕심도 없었다. ▶서울시교육청의 기초학력진단평가 실시 방침을 놓고 교육계가 정면 충돌하고 있다. 전교조를 비롯한 진보 단체들은 학교 서열화, 사교육비 유발 등 폐해를 지적하며 강한 반대 의사와 함께 행동에 돌입했다. 반면 교총은 제대로 된 진단이 필요하다며 찬성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진단보다 해법에 중점을 두고 일제고사식 기초학력 평가는 절대 없다고 못 박았다. 이 같은 교육계의 찬반논란에 정작 주인공인 아이들은 없다. 아이들은 시험을 어떻게 하면 잘 보고, 얼마나 자주 보느냐가 고민이 아니다. 우리 아이들의 최대 고민은 학원 안 가고 그냥 친구들과 해 떨어질 때까지, 배고플 때까지 뛰어노는 것이다. 참, 1년에 5번씩 운동회를 하고 싶다는 딸 아이의 소원은 남북통일보다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강현숙 사회부 차장

[지지대] 2019 가을 잔혹사

가을은 축제의 계절이다. 하지만 올해 9, 10월 가을은 유독 안 좋은 소식들 탓에 우리 사회가 뒤숭숭하다. 치료 백신도 없는 가축전염병 공포, 법무부 장관 임명과 관련된 국론분열, 반일 운동을 촉발하게 한 한일 갈등 심화, 경제 위기론 등이 2019년 가을 잔혹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치사율 100%에 달하는 가축전염병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지난달 17일 파주의 한 농장에서 확진 판정을 받은 뒤 불과 3주가 흘렀다. 그 사이 연천, 김포, 강화 등에서 추가 확진판정을 받으면서 아프리카돼지열병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아직 치료 백신도 없고 정확한 발병 경로도 파악되지 않으면서 지금으로선 살처분과 발병 농장과의 접촉 차단만이 확산을 예방하는 유일한 방법이 되고 있다. 이날 현재(2일)까지 경기도에서만 27개 농장, 5만 5천마리가 살처분됐다. 경기도 전역을 중점관리지역으로 지정하는 등 방역당국은 ASF 확산 방지에 안간힘이다. ASF는 비단 돼지 농가에만 피해를 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있다. 경기도를 비롯한 각 지자체들이 ASF 확산을 우려해 대규모 인파가 몰리는 행사를 취소하거나 축소, 연기하면서 해당 사업을 준비하던 단체나 업체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가을 지역축제와 체육 행사 취소로 인해 어림잡아 수십에서 수백억 원의 예산이 집행되지 않은 것으로 추산됐다. 당장 축제를 바라보고 준비했던 업체들의 경제적 고통도 가중되고 있어 지자체를 비롯한 공공기관들은 이들에 대한 지원 대책 등도 마련해야 한다.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에 따른 사회 갈등도 진영 싸움으로 번지면서 국론 분열 양상으로까지 번졌다. 최근 조국수호, 검찰개혁의 목소리를 내는 진보 성향의 국민들이 검찰청 앞에서 대규모 촛불 집회를 열자, 보수 성향의 단체들은 3일 광화문 광장에서 대규모 반 조국 합동 집회를 예고하는 등 사회 갈등이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또 일본이 우리나라를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면서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벌어지는 등 국내외 갈등도 심상치 않다. 게다가 경기 침체에 따른 경제 위기론 역시 확산되면서 불안감이 커지는 상황이다. 이처럼 올가을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갈등과 위기는 치료 백신이 없는 아프리카돼지열병처럼 뾰족한 해법이 없다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다. 이선호 지역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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