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지역주의-총리 망국

○○도 출신 총리. 또 이런 평(評)의 계절이 왔다. 총리 교체 때마다 반복된다. 역대 총리를 지역별로 나눈다. 그 수치를 대며 지역을 부각한다. 총리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다. 선택의 전부가 대통령 맘이다. 이를 비집는 선전전이다. 내용을 보면 압박이다. 우리 지역 출신을 앉히라는 협박이다. 논리는 화려하다. 영남 대통령-호남 총리론 영호남 견제 충청 총리론. 둘의 공통점이 있다. 정치 공학만으로 따진 셈법이다. ▶영남 대통령-호남 총리론. 이 선택의 시작은 다소 뜻 밖이다. 전두환 정권이 효시다. 1982년 김상협 총리를 임명했다. 전북 부안 출신이다. 헌정 사상 첫 호남 총리다. 후임 진의종 총리도 호남이다. 전두환 정권 총리는 6명이다. 평안남도 출신이 두 명이다. 경기(남덕우)와 서울(김정렬) 출신이 1명씩이다. 숫자로는 분명 호남 우대였다. 세상이 다 아는 배경이 있다. 5ㆍ18에 분노한 호남을 껴안아 보려는 여론 무마용 선택이었다. ▶영호남 견제 충청 총리론. 모든 정권에서 통했던 논리다. 특히 90년대 이후 정설처럼 됐다. 권력의 축이 영호남을 오가면서다. 김대중 정부의 김종필, 노무현 정부의 이해찬, 이명박 정부의 정운찬, 박근혜 정부의 이완구가 이런 논리로 선택됐다. 이들은 전두환 정권 호남 총리와 달랐다. 대부분 실질적 권한을 휘둘렀다. 대망론의 당사자로 거론되기도 했다. 충청 표가 있었다. 야당도 쉽게 건드리지 못했다. 선거에서 충청도가 돌아설 수 있어서다. ▶아무 쪽에도 끼지 못하는 지역이 있다. 경기도다. 경기도 출신이 총리여야 할 어떤 논리도 없다. 하다못해 수도권 배려에도 못 끼어든다. 사실상 서울만의 수도권이다. 1948년 이범석 이후 71년이다. 이낙연이 45대 총리다. 경기 출신은 4명이다. 2천년대에는 1명이다. 이한동 총리(2000~2002년)다. 이마저도 대통령의 선택이 아니다. DJP연합의 몫이었다. 그렇게 보면 이홍구 총리(1994~1995년)가 끝이다. 마지막 경기도 총리였다. ▶그래서 경기도 출신이 돼야 한다? 나라를 망치려는가. 우리에게 총리는 없었다. 진정한 행정의 책임자는 없었다. 어차피 지역과 정치로 선택됐다. 그래서 지역 총리로 놀고, 정치 총리로 놀았다. 복지부동형 허세 총리로 지냈고, 차기 대권형 정치 총리로 지냈다. 이제는-아니면 이번에 한 번만이라도-진짜 총리를 앉혀야 한다. 대통령을 보좌할 총리, 지역을 초월할 총리, 국민을 잘살게 할 총리, 그리고 대권 꿈 안 꿀 총리 말이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청소년의 운동부족

초등학교 시절, 몸이 약했다. 조회시간에 운동장에서 쓰러진 적도 있다. 체육시간에는 자주 그늘에 앉아있었다. 건강 체질이 아니기도 했지만 운동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다. 달리기를 하면 거의 꼴찌였고, 재미도 없었다. 그러다보니 체육시간만 되면 머리가 아픈거 같고 배도 아픈거 같고, 그래서 선생님께 말씀 드리고 그늘에서 쉬는 날이 많았다. 중ㆍ고등학교 때도 그렇고, 성년이 된 이후에도 운동을 별로 하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 운동의 필요성을 느꼈을 땐 운동을 하는게 힘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운동에 흥미를 갖을걸, 운동을 즐길줄 알았더라면 좋았을걸, 뒤늦게 후회했다. 한국 청소년들의 운동 부족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보건기구(WHO)가 2016년 세계 146개국 1117세 남녀 학생의 신체 활동량 통계를 분석한 결과, 81.10%가 WHO 권고 수준에 못 미치는 것으로 파악됐다. 며칠전 영국의 의학 전문지 랜싯에 실렸다. WHO는 청소년의 신체정신 건강발달과 생애 전반에 미칠 효과를 고려해 매일 평균 60분 이상 중간정도 이상(중간격렬) 신체활동을 하라고 권장한다. 그러나 청소년 5명 중 4명은 신체활동이 충분하지 않다는 게 WHO의 조사 결과다. 한국 청소년의 상황은 최악이다. 운동 부족으로 분류된 학생 비율이 94.2%로, 146개국 중 가장 높았다. 특히 한국 여학생은 97.2%로 100명 중 3명을 제외하고는 신체활동이 미흡했다. 일반적으로 국가의 소득 수준과 청소년 운동 부족 비율은 반비례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한국은 국민소득이 높으면서도 청소년 운동 부족이 심각한 사례로 꼽혔다. WHO는 청소년 운동 부족이 개선되지 않는 배경으로 정보기술 발전과 문화적 요인을 들었다. 연구를 수행한 WHO의 생활습관병 전문가 리앤 라일리는 전자혁명이 청소년이 더 오래 앉아 있게 운동 행태를 바꾼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남녀 격차는 여학생들이 운동을 하려면 탈의실이 갖춰져야 하는데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는 점을 들었다. 체력은 국력이라고 했고 건전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고 했다. 그런데 컴퓨터와 스마트폰 등 기계문명의 급속한 발달로 눈과 손가락만 움직이는 시대가 되다보니 신체건강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특히 한국 청소년들은 입시위주 교육에 내몰리고, 체육시간이 줄어 학교체육이 활발하지 않으면서 운동부족이 심각한 상황이다. 부모의 무관심과 수수방관, 학교와 정부의 무책임한 교육 등이 청소년들의 건강을 악화시킨다. 청소년들의 운동 부족으로 인한 건강 적신호는 국가 미래에도 영향을 끼친다. 더 늦기 전에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민식이 엄마의 눈물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9일 2019 국민과의 대화에서 첫 질문자로 스쿨존 교통사고로 아들 김민식(9) 군을 잃은 박초희씨를 선택했다. 질문 내내 울먹이며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아들 얘기를 이어간 민식이 엄마는 스쿨존에서 아이가 차량에 치여 사망하는 일이 없어야 하고, 놀이공원 주차장에서 차량이 미끄러져 사망하는 아이가 없어야 하고, 아이가 다치면 빠른 안전조치를 취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 아이가 타는 모든 통학 차량 등 학원 차량은 안전한 통학버스이기를 바란다며 아이가 안전한 나라를 대통령에게 요청했다. 박씨는 아이를 잃고 대한민국에서 자라나는 아이를 지켜달라고 외치는 태호, 해인이, 하준이 부모님이 여기에 와있다. 유족들은 아이들 이름으로 법안을 만들었지만 단 하나의 법도 통과하지 못한 채 국회에 계류중이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국회에 법안이 아직 계류 중에 있고 통과되지 못해 많이 안타까워하실 것 같다며 국회와 협력해 법안들이 통과되게끔 노력해 나가겠다고 했다. 또 스쿨존에서 아이들 안전이 훨씬 더 보호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초등 2년생인 민식군은 지난 9월 11일 충남 아산의 한 초등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차에 치여 숨졌다. 맞은편에 김군의 부모가 운영하는 치킨집이 있어 가게에 있던 김 군의 엄마와 두 살 어린 동생이 사고 현장을 지켜봤다. 이후 김군의 가족은 청와대 국민청원과 기자회견을 통해 스쿨존에서의 교통사고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을 촉구했다. 지난달 사고 지역인 아산을 지역구로 둔 민주당 강훈식 의원이 민식이법을 대표 발의했다. 스쿨존 내에 신호등과 과속단속카메라 설치를 의무화하고, 사망 사고 발생 시 3년 이상 징역 등 처벌을 강화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이다. 국회 행정안전위에 계류돼 있던 법안은 국민과의 대화에서 민식이 엄마의 눈물 호소 이후 21일 행안위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했다. 스쿨존(School Zoneㆍ어린이보호구역)은 교통사고 위험으로부터 어린이를 보호하기 위해 차량 통행과 속도 등이 제한되는 구역이다. 전국에 1만6천700여 곳이 있다. 그런데 지난 5년간 스쿨존에서 교통사고로 숨진 어린이가 34명에 이른다. 설치된 과속단속카메라는 불과 820대(4.9%) 뿐이다. 어린이보호구역이라는 이름이 무색하다. 민식이법 통과까지는 행안위 전체회의와 본회의가 남아있다. 민식이 부모의 마음으로 신속하게 처리해야 한다. 법안 통과와 별도로 스쿨존 과속단속카메라 설치, 과속방지턱 보완 등의 예산도 확보돼야 한다. 운전자들은 30㎞ 이내 속도 제한 등 안전수칙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수원, 그리고 정약용

수원하면 떠오르는 상징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수원화성. 또 수원화성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바로 정조와 바로 이분, 다산 정약용(丁若鏞)이다. 조선을 대표하는 실학자인 정약용은 당초 10년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됐던 수원화성 공사를 28개월 만에 완료했는데, 공사를 초고속으로 완료할 수 있었던 것은 당대의 최첨단 기자재가 도입됐기 때문이다. 특히 정약용이 도입한 거중기는 현대의 기중기와 같은 용도로, 화성을 건설하는 동안 인력을 아끼고 무거운 물체를 수월하게 다뤄 작업능률을 5배 이상 높였다고 알려졌다. 또 정약용은 수원화성이 다른 성곽과 차별화될 수 있도록 상업적 기능과 군사적 기능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평산성(平山城) 형태를 기본으로 했다. 우리나라 성곽은 전통적으로 평상시에 거주하는 읍성과 전시에 피난처로 삼는 산성을 기능상 분리했는데, 수원화성은 피난처로서의 산성을 따로 두지 않고 평상시에 거주하는 읍성의 방어력을 강화시켰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성곽에서는 보기 드물게 많은 방어시설을 갖추고 망루는 물론 총구멍도 설치해 적의 침입에 대비했다. 이와 함께 정약용은 수원화성을 지으면서 성을 쌓는 방법과 재료까지 자세히 기록(화성성역의궤)으로 남기기도 했다. 이처럼 수원화성과 다산 정약용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이러한 다산 정약용에 대해 17년간 연구ㆍ교육활동을 해온 다산연구소가 오는 28일 수원시로 이전한다. 그러나 이전을 앞둔 연구소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다. 애초 사무실 이전이 자의가 아닌 후원 중단으로 인한 이전이고, 사무실을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해오던 차에 경기도의 도움으로 옛 경기문화재단 건물에 사무실을 마련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대부분의 후원자가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어 후원자들과의 접근성도 떨어지게 됐다. 이러한 이유로 사무실 이전을 앞두고 일부 직원은 연구소를 떠났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다산연구소 관계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다산 정약용에 대한 수원시의 무관심이다. 수원화성과 정조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홍보ㆍ연구하는 수원시지만, 정작 수원시 어디에도 다산 정약용에 대한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그 흔한 조형물 하나 없다는 것이 다산연구소 관계자들의 말이다. 다산연구소가 수원시에 새 둥지를 튼다. 이것이 수원에서 다산 정약용이 새롭게 조명되는 계기, 수원화성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이호준 정치부 차장

[지지대] 노조의 무기

노동운동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전태일이다. 60~70년대 정부마저 근로기준법을 무시하던 시절, 열악한 노동 환경 개선을 외치며 1970년11월13일 분신했다. 목숨을 내놓은 전태일은 이후 대한민국 노동운동의 예수와 같은 상징적인 인물이 됐고, 노동운동이 활성화되는 계기가 됐다. 산업화 과정에서 희생당하던 노동자들의 삶은 점차 개선됐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보낸 지금도 곳곳에서 노사 갈등은 빚어지고 있다. 임금인상 등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노동자 대표 노조와 회사를 운영하는 경영자 사측과의 협상과정에서 갈등이 표출되기 일쑤다. 최근에는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최저임금 인상 관련 내용이 주요 쟁점이다. 52시간 근무제를 하려면 직원을 더 채용해야 하고,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임금 또한 자연스럽게 올라야 하지만 경제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 노사가 충돌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때문에 노사 갈등을 빚는 경우가 잦아졌다. 노사협상 과정에서 노조 최후의 무기는 파업이다. 파업으로 사측에 타격을 입혀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는 것. 노조입장에서는 가장 효과적인 무기다. 그러나 파업으로 인한 타격이 사측을 넘어 애꿎은 시민들에게까지 미치고 있어 문제다. 특히 공공부문 노조의 파업의 경우가 그렇다. 고양의 한 버스운수회사 노조는 지난 19일 노사 협상이 결렬되자 파업을 선언했다. 이 회사 버스는 20개 노선 270대가 운행하는데 올스톱됐다. 이로 인해 버스를 이용하던 고양시민 8만여 명이 갑자기 추워진 날씨 속에 대체 교통수단을 찾는 등 불편을 겪어야 했고, 다음날까지 불편은 이어졌다. 21일 철도 노조도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출퇴근시간 열차와 인력을 집중적으로 투입해 불편을 최소화한다고 하지만 시민 불편은 불가피하다. KTX는 평시대비 68%, 새마을호는 58%, 무궁화호는 62%, 화물열차는 31% 수준으로 운행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공공 노조의 시민을 담보로 한 파업은 어제오늘 이야기는 아니다. 거의 매년 반복된다. 노조의 이런 행태에 보내는 시선이 곱지 않다. 대기업 노조들을 향해선 귀족노조라는 지적이, 공공 부문 노조는 시민을 볼모로 하는 파업 등이 비난받고 있다. 노조의 생존권 주장도 이해한다. 다만 방식에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자신의 목숨을 내놓은 과거 전태일과 시민을 볼모로 협상을 벌이는 지금의 공공 노조와는 큰 차이가 있다. 이선호 지역사회부장

[지지대] 추억 386

2000년 4월 어느 선거 캠프. 분위기가 심상찮았다. 선거 공보에 넣을 문구 문제였다. 386 후보라는 표현을 두고 시작된 토론이었다. 30대 나이ㆍ80년대 학번ㆍ60년대 출생이 조건이다. 후보의 출생연도가 문제였다. 1960년생으로 꼭 40세가 되는 해였다. 후보는 만으로 따지면 넣어도 된다고 했다. 참모는 허위 경력으로 문제 될 수 있다고 했다. 결국, 공모물 귀퉁이에 게재됐다. 며칠 뒤, 그는 16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그 4년 전에도 그랬다. 386이 화제였다. 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 김민석 의원이 등장했다. 15대 최연소였다. 그 4년 뒤인 17대도 그랬다. 노무현 탄핵 역풍이 불었다. 이른바 탄돌이의 상당수가 386이었다. 386은 이렇게 15ㆍ16ㆍ17대 선거를 지배했다. 당시 386의 다른 뜻은 젊음이었다. 늙은 정치 나가라였다. 무수한 거목이 사라진 게 그때다. 경력도, 능력도 쳐주지 않았다. ▶한 번 터 잡더니 놓을 줄 몰랐다. 국회의 빗장을 걸어 잠갔다. 30대를 더는 허락하지 않았다. 17대 국회 30대 의원은 23명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급감했다. 18대(2008년) 7명ㆍ19대(2012년) 9명이었고, 20대(2016년) 3명이다. 어느덧 한국 정치의 모든 걸 독점했다. 당(黨)의 요직도 장악했다. 지금 여야의 면면이다. 권력의 핵심도 차지했다. 청와대 핵심이 그들이다. 그 사이 이름을 슬쩍 바꿨다. 나이만 바꾼 586이다. ▶그 철옹성에 구멍이 보이기 시작한다. 386 대표 주자들이 불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임종석 전 청와대 실장이 상징이다. 자신의 SNS를 통해 공개했다. 김세연 한국당 의원도 선언했다. 당을 향해 좀비라는 독설까지 남겼다. 언론은 기다렸다는 듯이 386 정치를 주어에 올린다. 잘나가는 386들에게 마이크를 대기 시작했다. 당신은 출마 할거냐고 묻기 시작한다. 남은 386이 난데없이 궁지에 몰렸다. ▶20여 년 전. 386은 늙은 정치를 재물 삼았다. 그때 늙은 정치의 나이가 50대, 60대였다. 지금 그들의 나이가 50대, 60대다. 이제 공격받는다. 88만원 세대가 묻고 있다. 386 선배들은 무엇을 했느냐. 돌아보면 그때 너무 그러는 게 아니었다. 그때 쫓겨난 늙은 정치 중에도 참된 정치가 얼마나 많았는데. 젊은 정치가 잘했다는 증명은 한국 정치사에 없다. 386들을 이런저런 추억에 젖게 하는 요즘이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흑사병

중세 유럽에서 크게 유행해 많은 사망자를 냈던 흑사병이 중국 네이멍구에서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확진 판정 환자가 3명이다. 중국 보건당국이 정확한 원인과 전파 경로를 공개하지 않아 흑사병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중국에선 2009년에 12명이 발병해 3명이 사망했고, 매년 1~2건씩 발병한다. 자칫 우리나라로 전파되는게 아닌가 걱정이다. 흑사병(Black Dearth)은 페스트균에 의해 발생하는 급성 열성 감염병이다. 주된 전파 경로는 페스트균을 보유한 쥐벼룩이 사람을 물어서 전파된다고 하는데, 다른 소형 포유동물과의 접촉에 의한 전파도 있다. 감염되면 살갗이 검게 변하기 때문에 흑사병(黑死病)이란 이름을 얻게 됐다. 이 병은 감염자의 재채기나 기침을 통해 사람간 전파가 가능해 금방 퍼질 수 있다. 흑사병은 1346년에서 1353년 사이 유럽에서 절정을 이뤘다. 중앙아시아에 떠돌고 있던 페스트균이 동방원정에 나섰던 십자군 병사들을 따라 1343년경 유럽 크림반도로 전파된 것으로 보고 있다. 크림반도에 정박했던 화물선 안의 쥐들에게 페스트균이 옮겨졌고, 지중해 해운망을 따라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흑사병은 순식간에 번져 3년만에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스위스, 벨기에, 네덜란드, 덴마크, 러시아까지 전파되며 당시 유럽인구 3분의 1의 목숨을 앗아갔다. 쥐 벼룩과 소형 포유동물, 사람 등 3가지 경로를 통해 흑사병이 퍼졌다. 19세기말 흑사병 치료법이 개발됐다. 이로 인해 대규모 확산은 없을 듯 했으나 2012년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에서 256명이 흑사병에 걸린 사례가 보고됐다. 이 중 60명이 목숨을 잃었다. 2017년에도 500명이 걸렸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마다가스카르에서 매년 400여건의 흑사병 감염이 보고된다. 이곳에서 계속 발병하는 이유는, 파마디하나라 불리는 독특한 장례문화때문이다. 마다가스카르 사람들은 7년마다 망자의 시신을 무덤에서 꺼내 씻기고 새 옷을 입힌다. 그 후 옆에서 춤을 추며 의식을 치르는데 이 과정에서 흑사병에 걸렸던 망자의 체액에 노출되며 병이 전염되는 것으로 진단됐다. 흑사병은 2010년대에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대륙에서 부분적으로 발생했다. 2012년 미국에선 감염된 길고양이에 물려 발생했다고 추정하는 림프절 페스트 환자가 보고됐다. 올해는 몽골에서 설치류의 생간을 먹은 사람이 페스트에 걸려 사망했다. 이에 한국인 관광객도 예방적으로 격리된 바 있다. 페스트 발생지역 여행객들은 철저한 위생관리 등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 국내 발병 사례는 아직 없지만, 페스트가 여전히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수능 필적확인 문구

대학수능에서는 수험생의 부정행위 방지를 위해 필적을 확인한다. 답안지에 필적 확인란이 있어, 주어진 문구를 기재토록 하고 있다. 14일 시행된 2020학년도 수능 필적 확인 문구는 너무 맑고 초롱한 그 중 하나 별이여였다. 박두진의 시 별밭에 누워에서 인용했다. 필적 확인은 2005년 6월 모의평가 때부터 도입됐다. 2004년 치른 2005학년도 수능에서 대규모 부정행위가 발생하자 수험생 본인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첫 문구는 윤동주의 서시 중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이었다. 부정행위 같은 부끄러운 일 없이 시험을 치르라는 의미로 읽혔다. 필적 확인 문구는 수능 출제위원들이 정한다. 필적 확인에 필요한 기술적 요소가 담긴 문장 중 수험생에게 용기와 힘을 줄 수 있는 문장을 선택하고 있다. 2006학년도 수능 필적 확인 문구는 정지용의 향수에서 따온 흙에서 자란 내마음 파란 하늘빛이었다. 이 문구는 2017학년도에 한 번 더 사용됐다. 2007학년도 수능 때는 같은 시 첫 구절인 넓은 벌 동쪽 끝으로가 활용됐다. 정지용은 필적 확인 문구에 가장 많이 인용된 작가다. 2008학년도는 손금에 맑은 강물이 흐르고(윤동주의 소년), 2009학년도는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윤동주의 별 헤는 밤), 2010학년도는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유안진의 지란지교를 꿈꾸며)였다. 2011학년도는 날마다 새로우며 깊어지고 넓어진다(정채봉의 첫 마음), 2012학년도는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황동규의 즐거운 편지), 2013학년도는 맑은 햇빛으로 반짝반짝 물들이며(정한모의 가을에)가 제시됐다. 이어 2014~2016학년도는 각각 꽃초롱 불 밝히듯 눈을 밝힐까(박정만의 작은 연가), 햇살도 둥글둥글하게 뭉치는 맑은 날(문태주의 돌의 배), 넓음과 깊음을 가슴에 채우며(주요한의 청년이여 노래하라)였다. 2018학년도는 큰 바다 넓은 하늘을 우리는 가졌노라(김영랑의 바다로 가자)였다. 지난해엔 김남조의 편지 중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였다. 유난히 어려웠던 수능을 치른 응시생을 다독인 문구였다. 수능일은 결전의 날이다. 긴장되고 민감해 질 수 밖에 없다. 올해 수능 샤프가 바뀌는 것 때문에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하고, 수능일에 시험 직전 옆 수험생이 코를 너무 자주 훌쩍여 시끄럽다는 112신고가 접수됐을 정도다. 필적 확인 문구는 아름다운 구절이 많지만 수험생들에겐 별로 들어오지 않을 수 밖에 없다. 시험이란게 그렇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혁신학교와 엄마들

혁신중은 호불호가 나뉘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아서 피해 이사 왔는데요, 갑자기 모두 혁신중으로 바뀐다고 하니 멘붕입니다.(혁신학교 반대) 전 일반 학교 보내다 혁신초 보내고 있는데 너무 만족합니다. 수업 커리큘럼 자체가 틀리고 선생님들의 열정, 수업방식, 시험출제유형 모두가 다 달라요. 아이도 좋아하고 수학여행, 졸업여행 또한 접근 방식이 다릅니다.(혁신학교 찬성) 국내 도입 10년째인 혁신학교를 보는 시선은 극과 극으로 엇갈린다. 혁신학교를 피해(?) 이사 가는 엄마도 있고, 혁신학교를 찾아 전학 온 엄마들도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해 12월, 9천 가구 규모의 서울 송파구 헬리오시티 단지 내 신설 학교 3곳을 모두 혁신학교로 직권 지정하려다 반발에 부딪혀 결국 일반고로 운영된다. 최근 경기도 내 일부 지역에서도 경기도교육청의 혁신학교 확대에 대한 반발 움직임들이 감지되고 있다. ▶혁신학교는 2009년 김상곤 당시 경기도교육감이 13개 학교에 처음 도입했다. 교사들은 학생들의 평가방법을 바꾸면서 학생들이 시험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만들었다. 교육청은 혁신학교에 행ㆍ재정적 지원을 아낌없이 했다. 학급당 학생 수를 25명으로 낮추고, 교육과정의 편성에 자율권을 주었다. 2019년 기준 경기도 내 혁신학교 수는 664개로 전체 학교의 27%를 차지하고 있다. 이 같은 양적 급성장에도 불구하고 혁신학교에 대한 엄마들의 막연한 불안감은 떨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내 아이가 입시 위주의 교육을 받아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공고히 자리 잡고 있는 지독한 학벌주의는 엄마들을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부터 단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래서 아이를 혁신학교에 보내는 부모들조차 혁신학교의 교육에 대해서는 만족하면서도 입시에 불리할 것이라는 인식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다. 경기도에서 태어나 10년째 대한민국 학벌사회와 싸우고 있는 혁신학교는 과연 지속 가능한가. 여전히 명쾌한 답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슬픈 현실의 방증이다. 대학 간판이 평생을 좌우하는 나라, 학벌위주의 서열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혁신학교의 싸움은 앞으로도 무척 외로운 싸움이 될 것이다. 강현숙 사회부 차장

[지지대] 이런 민선 체육회장이 필요하다

2020년 1월 16일이면 전국 17개 광역 시ㆍ도체육회와 228개 시ㆍ군ㆍ구체육회는 민선 체육회장 체제로 새롭게 출범하게 된다. 그동안 지방자치단체장이 겸하던 당연직 체육회장이 사라지고 개정된 국민체육진흥법에 따라 민간인 회장이 선출돼 체육행정을 이끌게 된다. 이에 각 지방 체육회는 내년 1월 15일까지 새로운 회장을 선출해야 하고, 선거에 출마할 체육단체 임원들은 선거 60일 이전 현직에서 사임해야 한다. 광역 시ㆍ도와 시ㆍ군ㆍ구체육회들은 선거관리위원회를 구성해 가동하며 본격 선거 모드에 접어들었다. 이번 주말이면 체육회장 선거에 나설 인사들의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이에 체육인들의 관심은 누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지역의 체육회장에 출마하는지에 쏠리고 있다. 그동안 자천타천으로 거론되던 예비 후보자들의 출마 공식화와 더불어 후보자들 간 단일화 노력 등 물밑 접촉이 이어지고 있기도 하다. 이와 함께 회장 후보자에 대한 자격과 역할에 대해서도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거론되는 예비 후보자 중에는 선수ㆍ지도자 출신 체육인도 있고, 생활체육 동호인이나 기업인으로 경기단체장과 체육회 임원을 역임한 인사들이 주류를 이룬다. 체육인들이 주목하는 것은 회장의 자질과 경제력, 체육 발전을 위한 봉사자세다. ▶당초 민선 지방 체육회장제의 도입 취지는 체육단체가 정치로부터 독립돼 정치 조직화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따라서 정치에 깊숙이 개입된 인물이나, 정치인은 당연히 배제돼야 한다. 또한 민선 체육회장을 직업으로 삼는 생계형이나, 개인의 입신양명(立身揚名)의 수단으로 여기는 인물 역시 제척해야 한다. 과거 체육 관련 단체에서 물의를 일으키거나 비위 전력이 있는 인물 역시 당연히 걸러져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주민의 혈세로 지원하는 체육회 예산을 축내지 않고 경제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능력과 어느 정파에도 속하지 않은 탈정치적 인사, 체육단체 임원 활동을 통해 검증된 인물, 선거로 분열될 수도 있는 체육계 통합과 체육인의 화합을 이룰 수 있는 소통에 능한 인사가 필요하다. 더불어 지방 체육 발전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자질까지 갖췄다면 굳이 선거를 치르지 않아도 합의 추대형식으로 선출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각 체육회마다 신망 있는 첫 민선 체육회장의 옥석을 고르는 일과 그에 따른 미래의 체육발전 청사진은 전적으로 체육인들의 의식 있는 선택에 달려있음을 알아야 한다. 황선학 체육부 부국장

[지지대] 욱학규

2004년 2월 26일. 손학규 경기지사 토론회가 있었다. 지방 언론사 논설위원ㆍ정치부장 등이 패널로 참석했다. 사회는 주관 방송사인 경기방송 보도국장이었다. 영어 마을, 대권 구상, 선거 자금, 측근 출마 등이 거론됐다. 손 지사의 답변은 능수능란했다. 대권 질문에는 도지사 일을 재밌게 하고 있다며 넘어갔고, 선거 자금 추궁에도 쓸 만큼 썼다며 피해 갔다. 그의 노련한 말솜씨는 패널-나를 포함-들을 무력화할 정도였다. ▶그러다가 사달이 터졌다. 토론회 중반 사회자 질문에서다. 분도론에 대한 의향을 물었다. 손 지사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말을 막았다. 사회자가 북부 주민들이 도지사 얼굴도 좀 보고라며 설명하자 다시 버럭 했다. 그런 말 하지 마라. 도민 중에 도지사 얼굴 보는 사람이 몇이나 되나고 쏘아붙였다. 느닷없는 버럭에 토론장 전체가 어색해졌다. 옆자리 여성단체 패널이 내게 필답을 건넸다. 이거 막 가자는 거네. ▶2011년 4월 21일. 분당 아름방송 스튜디오에서 토론회가 열렸다. 4ㆍ27 재보선 후보자들이 참여했다. 한나라당 강재섭 후보와 민주당 손학규 후보도 거기 있었다. 토론 중반, 강 후보가 천안함 폭침은 북한의 소행이냐고 물었다. 갑자기 손 후보가 거칠게 답했다. 질문하는 의도가 뭐냐. 색깔론이냐.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격앙된 목소리였다. 분위기가 쎄해졌다. 강 후보는 토론회 뒤 다시는 안 하겠다며 빠져나갔다. ▶경기도지사 시절, 손 지사가 남긴 몇 가지 행동 특징이 있다. 상대방의 손을 꽉 잡는 버릇이 있다. 식사 도중 밥상 아래서 손을 잡혀 본 사람이 여럿이다. 질문을 받으면 한 박자 쉬었다가 답하는 버릇도 있다. 간혹 질문한 기자가 민망해지는 몇 분을 겪기도 한다. 그리고 또 하나가 바로 느닷없는 욱이다. 2004년 도지사 토론회 때도, 2011년 후보 토론회 때도 그랬었다. 대부분 상대방을 멘붕 상태에 빠뜨렸다. ▶청와대 만찬의 진실은 뭘까.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언쟁을 벌였다. 누구에게 원인이 있는지는 밝혀지지 않는다. 손 대표는 정치를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 나라 생각 좀 해달라고 했다고 하고, 황 대표 측은 (손 대표가)우리 당 안에 대해 그것도 법이라고 내놓았냐고 했다고 한다. 아마도 시간 지나면 다 밝혀질 거라 본다. 그러면서도 또 한 번의 욱학규가 발동한 건 아닌지 추측하게 된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모병제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이 며칠전 모병제(募兵制) 도입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냈다. 모병제는 인구절벽 시대에 정예 강군으로 나아가기 위한 시대적 과제이자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밝혔다. 오는 2025년부터 징집인원이 예상 복무인원보다 적은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에 징병제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병제 전환은 군가산점 역차별과 병역기피, 남녀 간 갈등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사병을 18만명 감축하면 GDP(국내총생산)가 16조5천억원 상승한다며 경제적 효과도 있다고 했다. 모병제가 내년 총선 공약으로 검토되고 있다는 얘기나 나오면서, 20대 남성층 표심을 노린 선거용 아니냐는 의구심을 샀다. 정치권에선 갑론을박이 이어졌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찬반 여론이 거셌다. 민주당은 공식적으로는 총선 공약에 모병제 도입을 포함할지 논의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당은 논평을 통해 민주당은 인구 탓을 모병제 근거로 들고 있지만, 실상은 일자리 정책이고, 속내는 총선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국방부는 입장문을 통해 모병제 전환을 위해서는 군사적 필요성에 대한 검토 선행 후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있어야 가능할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네티즌들은 찬반 의견이 팽팽했다. 모병제 찬성 측은 인구절벽을 고려할 때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 월급을 높여 취업난을 타개해야 한다, 무기가 첨단화돼 전시병력 필요성이 줄었다, 직업군인이 의무복무병보다 동기부여가 커 책임감있게 국방을 지킬 것이다라는 주장을 했다. 반면 반대 측은 안보가 걱정된다.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 있는 한 징병제 유지는 필요하다, 젊은 층 표가 궁해져 내놓은 포퓰리즘 공약이다, 모병제 하면 금수저는 빠지고 없는 집 자식들만 군복무 하는것 아니냐는 등의 의견을 내놨다. 리얼미터가 지난 8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 501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한 결과(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4.4%p), 사병에게 월급 300만원 가량을 지급하는 모병제 도입을 묻는 질문에 52.5%가 반대, 33.3%가 찬성했다. 리얼미터는 모병제 찬성은 2012년 8월 조사에서 15.5%, 2016년 9월 27.0%, 이번에는 33.3%로 지속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모병제가 국방부가 아닌 특정 정당 싱크탱크에서 나온 얘기여서 총선과 상관없다고 말하긴 어려울 듯하다. 모병제는 우리 군 체계를 흔드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모병제를 선거에 이용하려고 서둘러선 안된다.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우선이다. 국방력에 미칠 영향, 재정, 인구 추이 등을 종합해 중장기적으로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돌아온 부국원 괘종시계

수원시 팔달구 교동에 100년 가까이 된 부국원(富國園)이 있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지어진 2층 콘크리트 건물, 옛 부국원이다. 당시 유행하던 신고전주의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는 건물로 삼각형의 아치형 박공지붕 등 독특한 외관이 멋스럽다. 부국원은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곳이란 뜻이다. 그 나라가 당시는, 대한민국이 아닌 일본이다. 종자와 비료 같은 물품을 판매하던 주식회사 부국원이 사용하던 건물로, 식민지시대 일제의 농업 침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문화유산이다. 부국원 건물은 해방 후 1952~1956년 수원 법원과 검찰 임시청사로 사용됐다. 1957~1960년에는 수원교육청이, 1974년에는 공화당 경기도당이, 1979년에는 수원예총이 사용했다. 그러다가 개인에게 팔려 1981년부터 오랫동안 박내과 의원으로 쓰였다. 박내과는 이후 서울로 진출했고, 병원이 떠나자 한 인쇄소가 들어서 간판을 바꿔 달았다. 그 간판이 건물의 마지막 명패가 됐다. 개인 소유였던 건물이 개발로 인해 2015년 철거 위기에 놓이자, 일제강점기 수원 역사가 담긴 건물을 보존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수원시가 매입해 복원했다. 옛 부국원 건물은 2017년 10월 등록문화재 제698호로 지정됐다. 수원시는 이 건물을 근대역사문화 전시관으로 재탄생 시켰다. 최근 부국원에 경사가 났다. 부국원의 벽걸이 괘종시계가 80여 년 만에 돌아온 것이다. 일본 야마토사 제품(1938~1939년 제작 추정)의 태엽장치 시계인데 상태가 양호하다. 수원 영통에 사는 이모씨가 시계를 비롯한 부국원 관련 유물 140여 점을 시에 기증했다. 유물 중엔 부국원 화재해상보험 주식회사가 발행한 보험증서, 지역농회와 거래한 농산물 내역이 담긴 거래 검수서, 부국원 야구부 운동기구 구입 영수증, 부국원 수취 엽서봉투, 우표도 있다. 이씨는 1926년부터 1940년대 후반까지 부국원에 근무했던 故 이OO씨의 손자다. 수원 출생인 이씨 할아버지는 신풍초등학교와 화성학원(수원고 전신) 졸업 후 1926년 부국원에 입사해 20여 년간 근무했다. 할아버지는 성격이 워낙 꼼꼼해 근무하는 동안 주고받은 서류를 버리지 않고 모아뒀고, 해방 후 부국원이 문을 닫자 집에 보관했다. 1996년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엔 이씨가 유품을 보관했다. 이씨는 얼마 전 옛 부국원 앞을 지나다 전시관으로 바뀐 사실을 알았고, 부국원 관련 유물이 적은 것을 보고는 할아버지 유품을 기증하기로 마음먹었다. 한 시민의 기증으로 할아버지 유품이 빛을 보게 됐고, 부국원의 유물이 풍부해졌고, 시민들은 귀한 볼거리가 생겼다. 감사한 일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몽골 헌법재판소장의 뻔뻔함

요즘 몽골만큼 우리나라에서 자주 언급되는 나라가 있을까 싶다. 지난 10월 31일 대한항공 여객기 안에서 승무원의 엉덩이를 만지는 등 강제추행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드바야르 도르지 몽골 헌법재판소장(52) 사건 때문이다. 헌법재판소장. 우리나라를 기준으로 보면 국가의 근간이자 국민의 기본권을 규정한 근본 규범을 다루는 조직의 수장이다. 몽골과 우리나라 헌법의 역사가 다르다곤 하지만, 몽골 역시 헌법이 이 같은 역할을 함에는 다름이 없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세계법제정보시스템에서 몽골헌법을 찾아봤다. 1992년 1월 12일 생긴 후 한 번도 개정된 적 없는 몽골헌법은 우리 헌법과 결이 같다. 조국의 독립과 주권, 인간의 권리와 자유, 정의, 민족적 단일성 등 국가의 근간을 규정했다. 인도적이고 시민적이며 민주적인 국가사회 건설을 바라면서 만든 것이란 대목도 나온다. 헌법이 이처럼 엄중한 의미를 지닌다면, 헌법재판소장 역시 명망 높은 인물이 아닐까. 실제로 몽골에서 헌법재판소장은 상당한 권력을 가진 인물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가 한 행동을 보면 과연 헌법기구의 수장이 맞는지 의문이 든다. 그는 사건 당시 강제추행한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통역을 맡아준 몽골 국적 여승무원에게 몽골에 돌아가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성 발언까지 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줄곧 범행을 부인하더니, 2차 조사에서는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단다. 문화가 다르고 언어가 다르다고 해도 원하지 않는 신체적 접촉과 폭언이 범죄라는 건 만국의 진리다. 그는 지난 7일 마라톤 조사 후 경찰청사를 빠져나가며 취재진의 영어 질문에도 입을 굳게 다물었다. 간단한 영어 회화를 알아듣지 못했을 리가 없지만, 그는 입을 다물었다. Танаас хлцэл чье. (타나-스 훌첼 으츠이사과드립니다), Тэр миний алдаа. (테르민-이 알다-제 잘못입니다) 이 짧은 두마디, 지금이라도 그가 뱉어야 할 말은 그 뿐일 것이다. 김경희 인천본사 차장

[지지대] 시제(時祭)

지난 주말 경남 양산에 있는 선산에 시제를 모셨다. 어렸을 때 시제에 가면 할아버지 형제, 아버지 형제, 같은대 형제들 수십 명이 시제에 쓸 음식을 들고 산에 올라갔던 기억이 난다. 시제는 한식 또는 10월에 5대조 이상의 묘소에서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한식 또는 10월에 정기적으로 묘제를 지낸다고 하여 시사(時祀), 시향(時享)이라고도 한다. 이는 5대 이상의 조상을 모시는 묘제(墓祭)를 가리키며, 4대친(四代親)에 대한 묘제를 사산제(私山祭)라고 구분하기도 한다. 그래서 묘사(墓祀), 묘전제사(墓前祭祀)라고 하며, 일 년에 한 번 제사를 모신다고 하여 세일제(歲一祭), 세일사(歲一祀)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부터 묘제를 중시해 사시마다 묘소에서 절사를 지냈기 때문에 사시제와 중복되는 경우가 많았다. 2월에는 한식, 5월에는 단오, 8월에는 추석, 11월에는 동지와 중복되어,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경우 설과 단오에는 사당에서 차례를, 한식과 추석에는 절사를 지내도록 했다. 나아가 시제와 속절 차례 및 절사를 절충하면설, 단오, 추석, 동지에는 사당에서 차례를, 한식 및 10월에는 묘제를 지내기도 했다. 필자의 집안의 경우 추석과 음력 10월 첫 일요일에 묘제로 시사를 모신다. 필자는 경주최씨 정무공파 기자복자 종중의 32대손인데 복자기자 할아버지는 21대 손이다. 할아버지 밑으로 자손이 많았는데 이번 시사에는 총 8명의 자손이 참가했다. 큰집의 사촌이 종손이라 특별한 일이 없으면 시사에 같이 참석하고 있는데 시제 참여 인원이 매년 줄어들고 있다. 일년에 두번 지내던 묘제도 음력 10월초 한번으로 줄였다. 참석 인원이 매년 줄어드니 한 어른이 양산 어곡산단개발로 토지보상이 엄청 나게 이뤄지니 시제에 참석하라고 알리라 하셨다. 시제 참석 인원이 줄어드니 답답한 심정에 하신 말씀 같다. 전국 각지에서 시간을 내 시제에 참석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제사를 비롯해 많은 유교 문화가 사라지고 있다. 예전에 복잡했던 제례 절차를 간소화하고 친지들 간 모임을 할 수 있는 특별한 스포츠 활동 등의 이벤트로 시제를 대신하자는 제안도 있었다. 가족 해체의 시대에 조상과 자신의 뿌리를 되돌아 보는 시제와 같은 효와 예의 문화가 새로운 형태로 우리사회에 자리 잡길 기대해 본다. 최원재 문화부장

[지지대] 대통령 모시기

차지철이 경호실장에 오른 건 1974년이다. 육영수 여사가 사망한 지 일주일만이다. 박정희 대통령에겐 저격에 대한 공포가 컸다. 그 공백을 충성으로 파고들었다. 경호실장 방에 새로운 표어를 붙였다. 각하를 모시는 것이 국가를 지키는 것이다. 스스로 작사한 충정가를 경호실 단가로 삼았다. 딛으시는 걸음 걸음마다이 한 목숨 다 바쳐 충정으로. 유명 목사들을 초청해 조찬 기도회도 열었다. 역시 대통령을 위한 기도였다. ▶1979년 부산과 마산에서 소요사태가 일어났다. 유신 철폐ㆍ독재 타도를 외친 시위였다. 그에게 대통령에 대한 반기는 곧 국가에 대한 반란이었다. 그만의 충성 어린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에 반기를 든 불순 세력의 난동이라며 군을 투입해 쓸어 버리면 해결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시위 현장을 점검한 중앙정보부는 달랐다. 체제에 저항하는 심각한 민란이라고 보고했다. 박 전 대통령의 선택은 차지철의 해석이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도 차지철이 있었다. 장세동 경호실장이다. 5공 청문회에서 보여준 충성심이 유명하다. 전두환으로 가는 청문은 그를 넘지 못했다. 모든 혐의를 내가 했다. 각하는 모르신다며 막았다. 결연한 의지도 불태웠다. 어른(전두환)을 구속하려 들 경우에는 내가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죽는 한이 있더라도 막을 것이다. 노태우 정권과 막후 협상도 그에게 맡겨졌다. 전 전 대통령에게 남은 유일한 충성동이였다. ▶과한 충성은 왜곡을 부른다. 민심은 주군의 입맛에 맞게 각색된다. 민심의 분노가 일부의 일탈이 되고, 정권의 위기는 곧 마무리될 소란이 된다. 급기야 주군은 파멸한다. 박 전 대통령은 총에 맞아 사망했고, 전 전 대통령은 역사의 죄인이 됐다. 각하가 곧 국가라던 차지철, 죽어가는 주군을 두고 화장실로 도망갔다. 역사 수레바퀴에 깔려 죽겠다던 장세동, 주군이 구속됐지만, 대통령에 출마했다. 다 부질없는 충성 놀이다. ▶청와대 참모는 대통령 측근이다. 대통령이 곧 국가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 과한 충성이 언제나 문제다. 여론을 가리고 대통령을 파괴한다. 그 증명의 역사가 차지철ㆍ장세동 역사다. 그런데도 사라지지 않는다. 과한 충성이 여전히 권력 주변을 떠돌고 있다. 왜 그럴까. 뭔가 다른 이유라도 있을까. 그 추론 역시 차지철ㆍ장세동 역사에 있다. 막강한 권력이다. 충성의 대가로 주어지는 두툼한 선물이있다. 그래서 지금도 저러는 것 같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술병 여성 연예인 사진

예나 지금이나 소주 광고 모델은 여자 연예인이다. 소주병마다 예쁜 사진이 붙어있다. 소주 소비층 상당수가 남자란 점을 고려했기 때문이란다. 남자 연예인이 모델로 나선 적도 있다. 1971년 당대 스타였던 탤런트 노주현이 진로 소주 모델로, 2012년 강남스타일로 폭발적 인기를 누렸던 싸이가 참이슬 모델을 했다. 소주업계에서 광고 경쟁이 치열해지기 시작한 건 진로가 1998년 참이슬을 출시한 이후다. 진로는 당시 최고 인기를 구가하던 이영애를 모델로 내세웠다. 산소 같은 여자가 한잔 드리고 싶어요라는 광고 카피로 애주가들을 공략(?)하니 효과가 대단했다. 이후 박주미, 김정은, 김태희, 성유리 등이 뒤를 이었다. 그때는 청순하고 맑은 이미지의 모델을 선호했다. 트렌드가 바뀐 건 2006년 두산(현 롯데주류)이 처음처럼을 출시하며 섹시스타 이효리를 모델로 내세우면서부터다. 이효리 기용은 출시 초기 처음처럼의 인지도를 높이고, 이후 참이슬과 양강 구도를 형성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처음처럼이 섹시 콘셉트로 재미를 보자 참이슬도 전략을 수정했다. 2006년 모델이던 남상미부터 김아중, 김민정, 하지원, 이민정 등으로 계보가 이어졌는데 모델의 몸매나 노출을 부각했다. 최근엔 다시 청순 콘셉트로 돌아간 분위기다. 몇년 전 아이유는 화제와 논란을 불렀다. 어린 여성 연예인을 앞장 세워 음주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24세 미만 연예인이 술 광고에 출연하는 것을 금지하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일명 아이유법)이 발의됐다. 이를 두고 지나친 제재라는 비판과, 음주 조장을 막기 위해선 필요한 조치라는 의견이 맞섰다. 지금도 소주병에는 인기 여성 연예인들의 사진이 붙어있다. 활짝 웃으며 술을 권하고 있다. 술병에 연예인 사진 부착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한국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인순 국회의원은 최근 국정감사에서 연예인 같은 유명인들은 아이들과 청소년에게 큰 영향을 주며 소비를 조장할 수 있기에 술병에 연예인을 기용한 홍보를 해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보건복지부가 음주가 미화되지 않도록 술병에 연예인 사진을 부착하지 못하게 하는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우리나라는 음주 폐해가 심각하지만 정부의 절주정책은 금연정책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미온적이라는 지적 때문이다. 담배와 술은 모두 1급 발암물질로, 국민건강을 위협하는 암ㆍ고혈압 등 각종 질병을 유발하는데 술과 담배를 대하는 태도에 차이가 크다. 담뱃갑에는 흡연경고 그림으로 암 사진을 붙이는 등 금연정책이 강화되고 있지만 소주병에는 여성 연예인 사진이 붙어있는 게 현실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청소년 무면허 운전

지난달 28일 새벽 울산에서 중학생이 몰던 승용차가 도로 옆 가드레일 등을 들이받는 사고가 일어났다. 차에 탄 남녀 중학생 5명 중 2명이 숨지고 나머지 3명도 중경상을 입었다. 운전 미숙으로 차를 제어하지 못해 갓길로 돌진하는 바람에 사고가 났다. 지난해 6월에는 안성에서 고등학생이 운전하던 승용차가 도로변 건물을 들이받아 10대 4명이 숨지고 1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망자 모두 남녀 중고생이었다. 올해 3월에는 강릉에서 10대 남녀 5명이 탄 승용차가 바다에 추락해 모두 목숨을 잃은 일도 있었다. 청소년들이 무면허 운전을 하다 일으키는 교통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차량을 몰래 훔쳐 몰다가 뺑소니 사고를 내는 경우도 있지만, 지인의 인적사항을 이용해 차를 빌렸다가 참변을 당한 경우가 많다. 렌터카 업체 등에서 본인 확인을 좀 더 철저히 했다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 사고가 상당수여서 어른들의 책임이 가볍지 않다. 청소년 무면허 사고는 2012년부터 2017년까지 5천578건에 달한다. 이에 따른 사망자 수는 135명, 부상자는 7천655명이나 된다. 연평균 1천건에 육박하는 청소년 무면허 운전 사고는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소수의 일탈 행위로 치부해선 안된다. 청소년들의 운전 욕구를 비정상적으로 여겨서도 안된다. 청소년들은 호기심이 많고 에너지가 넘치기 때문에 자동차와 운전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이들이 현실적으로 운전을 배울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에서 운전면허 취득은 만 18세 이후에야 가능하다. 청소년들의 무면허 사고를 줄이려면 자동차가 순식간에 무서운 흉기로 돌변할 수 있으며, 면허없이 운전석에 앉는 건 자신뿐 아니라 남의 생명까지 앗아갈 수 있는 중대 범죄라는 사실을 일깨워줘야 한다. 친구들과 어울려 재미로 하는 운전이 아주 잠깐이라도 돌이킬 수 없는 참극을 빚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시켜야 한다. 이와함께 면허취득 연령을 하향 조정하는 등 제도를 손질할 필요가 있다. 고등학생이 되면 운전 욕구가 한창 커지는데 무조건 못하게 하기 보다 운전하는 법을 제대로 배울 수 있게 하는 것이 무면허 사고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미국과 유럽의 여러 나라는 면허취득 가능 연령이 우리보다 낮다. 우리도 면허시험 응시 연령을 16세나 17세로 낮춰야 한다는 전문가 제언이 있고,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도 비슷한 청원이 종종 올라온다. 청소년들의 무면허 운전은 무조건 막는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보다 현실적인 해법이 필요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생명을 살리는 일, 우리 모두 나서자

암울했던 10월이 지나갔다. 의정부에서 50대 어머니와 아들이 숨진 채 발견됐고, 부산에서는 초등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서울에서는 한 유명 여자 연예인이 심경을 담은 메모를 남겨놓고 극단적 선택을 했으며, 대전에서는 40대 남성이 유서를 품고 목숨을 끊었으며 숨진 남성의 집에선 아내와 아들, 딸의 시신이 발견되는 등 안타까운 소식이 잇달았다. 이 같은 상황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국가 중 1위라는 사실은 오래된 일이다. 지난해 자살 사망자는 전년대비 9.7% 증가한 1만 3천670명에 달했다.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6.6명으로 9.7% 상승했다. 특히 10대 학생들의 자살률은 전년대비 22.1% 증가해 다른 연령대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여성 자살률도 인구 10만 명당 10명을 넘는 나라는 우리나라(15명)가 유일할 정도로 심각하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1990년대 후반부터 경제 위기가 촉발한 사회문화적 변화, 의료와 복지 사회안전망 미비 등으로 급격하게 치솟아 2003년 이후 OECD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자살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어나고자 2011년 자살 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정부와 지자체, 학교 등에 자살예방센터가 설치됐고, 보건복지부에는 자살예방정책과가 생겼다. 그럼에도, 자살률이 증가한 것은 정책의 실효성이 미흡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중앙부처에 전담 부서가 생겼으나 실질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지자체에 자살예방 전담 인력은 거의 전무하다. 기타 정신건강 업무와 겸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의료와 복지 현장에서 발견한 자살 고위험군을 적정 서비스로 연계하는 제도도 미흡하다. 자살률은 그 사회가 얼마나 살만한 곳인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숫자다. 자살률을 줄이기 위해서는 학생들을 극도의 경쟁체제로 내모는 대입 제도와 학교 폭력 등을 개선해야 하고, 생계난에 신음하는 저소득층을 위한 사회안전망도 촘촘하게 구축해야 한다. 기업과 사회 곳곳에 뿌린 내린 갑질 관행도 척결하고, 사회경제적 양극화와 승자독식의 사회구조도 바꿔야 한다. 생명을 살리는 일,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드는 일에 모두가 나서야 한다. 10여 일 후면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다. 수능 시험이 끝난 후 성적비관 자살 뉴스가 더는 들려오지 않았으면 한다. 이관식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국제관광도시 유치, 공정한 경쟁을

인천시가 정부의 국제관광도시 유치에 도전한다. 도전자는 인천시대전시광주시대구시울산시부산시 등 6개 광역시로 경쟁률은 6대1이다. 인천은 인천국제공항을 비롯해 크루즈 접안이 가능한 인천항 등 우리나라의 관문 도시다. 특히 영종도의 복합 리조트, 송도의 국제회의 복합지구, 168개 섬을 비롯한 해양관광과 지붕 없는 박물관 강화도 등 다양한 관광 콘텐츠를 갖고 있다. 특히 인천은 앞으로 남북 화해 모드가 다시 만들어지면 북한과의 연계 상품 가능하다. 하지만 경쟁자인 부산이 만만치 않다. 관광 콘텐츠 등이 부산의 강점이 아니다. 어처구니 없게도 지역 균형발전 논리다. 인천이 수도권이라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되레 부산에겐 장점인 셈이다. 거기다가 부산을 밀어주려는 듯한 정부의 모습도 보인다. 지난 문화체육관광부가 7월 연구용역에서 수도권을 국제관광도시에서 뺀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또 현 정부들어 대통령과 부산과의 인연이 부각되며, 부산은 한아세한정상회담을 유치하는 등 각종 수혜를 입고 있다. 이번 국제관광도시 유치전은 최소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벌어지는 경기가 아니길 바란다. 지난 4월 문재인 대통령이 송도국제도시에서 열린 국제관광 전략회의에서 발언한 인천의 관광 콘텐츠에 대한 칭찬 탓에 인천은 국제관광도시 유치에 한껏 고무된 상태다. 특히 인천출신으로 박남춘 인천시장과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동창생인 박양우 문체부 장관이 현명한 판단을 했으면 한다. 박 시장과 사석에서 편하게 말을 나누는 사이이니, 인천에 특혜를 달라는 것이 아니다. 이번 공모는 공정한 경쟁이 필요하다는 것 뿐이다. 정치적 논리나 균형발전 논리가 아닌, 공정하게 관문도시 여부나 관광 콘텐츠 등으로 반드시 승부가 이뤄져야 한다. 이민우 인천본사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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