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높아지는 ‘폭염 위험도’

2014년 프랑스의 한 TV 프로그램에서 2050년 여름 날씨에 대한 가상 기상예보를 방송했다. 당시 기상 캐스터는 2050년 8월18일의 날씨를 전하면서 프랑스의 여름 기온이 최고 42도까지 치솟을 것이라고 예보했다. 지구 온난화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자는 취지에서의 방송이었다. 그런데 이 가상 예보가 30년이나 앞서 2019년에 맞아 떨어졌다. 지난 7월25일 파리는 섭씨 42.6도를 기록했다. 6월 하순 프랑스 빌르비에이유의 기온은 45.1도로 사상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유럽 여러 나라들이 올 여름 40도 안팎의 폭염에 고통을 겪고 있다. 유럽 일부 지역의 위성사진은 대륙이 펄펄 끓고 있음을 보여준다. 폭염으로 사람이 숨지고 산불이 속출하자 초비상 사태다. 폭염경보, 열파(heat wave)주의보, 휴교령 등 피해를 줄이기 위한 각종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녹록지 않다. 폭염은 한반도도 덮쳤다. 지난 주말 우리나라도 폭염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숨이 턱턱 막혔다. 아베 때문에 더 덥게 느껴졌다. 정부는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 특보가 발효되자, 폭염 위기경보 수준을 가장 높은 심각 단계로 상향했다. 폭염 위기경보는 관심-주의-경계-심각 단계로 상향된다. 심각 단계는 최고기온이 지역적(특보구역 중 40% 이상)으로 35도 이상이거나 일부지역에서 38도 이상인 상태가 3일 이상 예보되면 내려진다. 폭염 경보가 심각 단계에 이르자 행정안전부는 3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비상 1단계를 가동했다. 올 여름 폭염으로 중대본이 가동된 건 처음이다. 행안부는 폭염에 따른 인명ㆍ재산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관계 중앙부처지방자치단체와의 공조체계를 강화했다. 폭염 취약계층 상황에 대한 감시 활동도 확대했다. 우리나라 폭염 위험도는 향후 10년간 더욱 커질 것이라고 한다. 환경부가 기상청 기후 전망 시나리오를 활용해 229개 시ㆍ군ㆍ구를 대상으로 20212030년 폭염 위험도를 평가한 결과, 63%가 높거나 매우 높은 폭염 위험에 노출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폭염 위험도는 기후 변화뿐 아니라 나이, 독거노인, 기초생활수급자 같은 인구 구성과 도시화 면적, 녹지 면적, 재정자립도 같은 사회적 인프라까지 반영했다. 폭염 사망자가 노인과 저소득층에 집중되는 현실을 고려하면 올바른 접근법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일상화된 폭염은 재난이다. 지구온난화로 폭염의 빈도 및 강도는 계속 높아질 것이다. 정부는 온실가스 저감 정책뿐 아니라 사회적 요인으로 인한 불평등한 폭염 해소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국민의 적극적인 동참도 당연히 필요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노쇼’ 호날두 그리고 대한민국은 없었다

필자는 축구마니아이다. 집 거실에 있는 대형 텔레비전도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전 경기를 보기 위해 지름신을 강림시켜 구매했다. TV에 나오는 각종 예능이나 드라마는 전혀 모른다. 오직 EPL(잉글랜드), 프리메라리가(스페인), 분데스리가(독일), 세리에 A(이탈리아), 리그 앙(프랑스)만이 존재할 뿐. 솔직히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팬(유벤투스)은 아니다. 그래도 축구 좀 안다고 자부하는 입장에서 호날두는 레벨이 다른, 소위 볼 좀 잘 차는 선수로 인정해왔던 것은 사실이다. 적어도 2019년 7월 26일 오후 8시50분까지는 말이다. ▶프로의 세계는 냉정하다. 잘하는 만큼 대우(돈)를 받고, 못하면 가차없이 팽이 되는 곳이다. 그래서 신계에 도달했다고 하는 호날두나 메시 같은 선수들은 감독보다 더 높은 지위를 갖기도 한다. 승부의 냉혹한 세계에서 그런 선수를 보유한 감독은 우승 트로피 적립이 쉬운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바로 프로의식이다. 프로 스포츠는 절대 구단과 선수로만 운영될 수 없다. 팬이 없는 프로 스포츠는 육수만 있고 면이 빠진 평양냉면과 같은 것이다. 완전체가 될 수 없다는 얘기다. 미국 프로농구(NBA)의 전설 마이클 조던은 전성기에 잔여 경기가 남은 상태에서 우승이 확정됐는데도 시즌이 끝날 때까지 거의 풀타임 경기를 뛰었다. 오늘 마지막으로 경기장을 찾아온 이들에 대한 예의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노쇼 호날두? 이제 안 보면 그만이다. 유벤투스? 그냥 세리에 A의 한 클럽으로 치부하면 그만이다. 다만, 자존심에 상처 받은 대한민국 국민들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는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노쇼 호날두 사태를 보면서 심히 걱정되는 대한민국이다. 국회는 각 정당의 입장차만 확인하며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평행선을 달리는 노쇼 입법기관으로 치닫고 있다. 청와대는 경제 회복 대신 북한 바라기에 열중하는 노쇼 행정기관이라는 비아냥을 받고 있다. 그리고 수출 규제로 인한 대 일본 대응 역시 노쇼 대한민국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문제들이 글로벌 코리아 패싱으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호날두에게는 프로의식을, 대한민국에는 국민의식이 먼저 확립되길 기대해 본다. 김규태 정치부 차장

[지지대] 이래저래 국민이 피곤하다

1983년 9월 1일 새벽 2시 7분.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에서 이륙한 대한항공(KAL) 007여객기는 정상루트 통과지점인 캄차카 앞바다의 니피(북위 4941, 동경 12919)를 통과하였다고 도쿄 국제통신국 나리타 관제소에 타전한다. 이 비행기에는 승객 246명과 승무원 23명 등 269명이 타고 있었다. 그로부터 한 시간 조금 못된 3시 12분. 정상 항로를 벗어나 소련의 사할린 근처 영공에 들어선 KAL기를 추적 중인 소련 전투기 조종사가 대한항공기를 육안으로 발견하였다고 지상기지에 무전 연락한다. 이후 소련 전투기는 지상기지와 조준을 맞추어라등의 3차례에 걸쳐 교신을 주고받았다. 몇 분 뒤 기수를 사할린 상공으로 트는 KAL기에 미사일을 발사한 소련 조종사는 명중하였다. 목표물을 파괴하였다며 지상기지에 타전했다. 격추된 여객기에 탑승한 승객은 전원 사망했다. 소련 정부는 사건 발생 8일 만에 자국 영공을 침범한 KAL기가 착륙 유도에 불응해 취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발표했다. 이처럼 참담한 뉴스를 접한 국민은 할 말을 잊었다. 이날 사할린의 차가운 바다에 떠있는 승객들의 유품과 비행기 잔해는 텔레비전을 보는 국민을 분노케 했다. 이에 앞서 1978년 4월 20일. 소련은 파리에서 출발해 서울로 향하던 KAL 707여객기를 자국 영공 침범을 이유로 전투기를 띄워 미사일로 공격했다. 다행히 KAL기는 왼쪽 날개가 파손된 채 무르만스크 남쪽의 얼음호수에 비상착륙했지만, 이 과정에서 비행기에 타고 있던 승객 110명 중 2명이 사망하고 13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2019년 7월 23일 오전 9시 1분. 러시아 항공우주 방위군 소속 조기경보기 A-50이 대한민국 동해 독도 영공을 두 차례 7분간 무단 침범했다. 타국의 군용기가 우리 영공을 무단 침범한 것은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처음이다. 영공침범 이틀 뒤인 25일 우리 군 당국이 러시아 정부에 군용기의 독도 영공 침범 사실을 입증할 자료를 전달했다. 돌아온 답변은 영공 침범은 없었다. 참 뻔뻔한 오리발 외교다. 경제가 어려운데다 국회 정쟁으로 열을 받는데 일본 갈등은 깊어가고 북ㆍ중ㆍ러까지 흔들어대니 이래저래 국민은 피곤하다. 김창학 경제부장

[지지대] KT위즈파크의 여름

KT위즈파크의 2018 여름은 화려했다. 대형 호수로 관중석에 물을 뿌렸다. 더위를 식히려 시작한 폭염 대책이었다. 이게 대박이 났다. KT위즈파크만의 서머 페스티벌이 됐다. 화려한 물놀이 복장이 관중석을 덮었다. 연인들에겐 워터파크 그 자체였다. 물줄기를 즐기는 외국인 팬도 크게 늘었다. MLB에도 없는 여름 축제라는 평이 나왔다. 그때까지 여름은 관중 없는 계절이었다. 이 고정관념을 깬 게 KT위즈파크의 2018년 여름이었다. ▶그때, 그 흥겨운 축제장을 숙연하게 만든 모습이 있었다. 관중석에 한 팬이 들고 있던 푯말이다. 진정한 팬서비스는 승리입니다. 그랬다. 그때 KT위즈 성적은 엉망이었다. 시즌 초반 반짝하던 순위가 줄곧 최하위에 머물렀다. 팀 타율, 팀 방어율 등 모든 면에서 꼴찌였다. 경기를 풀어갈 전술도 없었다. 급기야 홈경기 2대 20 대패라는 굴욕까지 겪었다. 총체적 난국이 따로 없었다. 그즈음 나온 팬의 외침이다. 그 절절했던 표정이 생생하다. ▶2019 여름이다. KT위즈파크는 또 흥겹다. 축제는 한층 세련되게 진화했다. 2019 KT 5G 워터 페스티벌-수원 해수욕장이라고 명명됐다. 비치 존이 설치됐고, 고압 살수포도 등장하고, 워터 슬라이드도 운영된다. 말 그대로 해수욕장 야구다. 후반기 첫 두 경기가 장맛비 속에 치러졌다. 우중충한 날씨였다. 그래도 KT위즈파크를 찾은 관중의 즐거움은 막지 못했다. 야구 선진국으로의 이벤트 역수출을 말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다행히 성적표도 좋다. 47승 1무 51패다. 꿈만 같던 승률 5할이 멀지 않다. 탈꼴찌에 매달리던 건 옛말이다. 30일 현재 전체 6위다. 가을 야구 조건인 5위가 눈앞이다. 전체 흐름도 과거와 다르다. 5월 이후 퇴보 없는 상승이다. 9연승이라는 대기록까지 세웠다. 우승후보 두산엔 싹쓸이 승까지 거뒀다. 강백호도, 황재균도 빠져 있다. 부상병동에서 만들어가는 성적이라 더 값지다. KT위즈 팬들의 기대가 높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요기 베라(Yogi Berra)가 한 말이다. 꼴찌 뉴욕메츠를 월드시리즈에 진출시키던 해 말했다. 주로 희망을 얘기할 때 쓴다. 정반대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해 메츠는 우승을 놓쳤다. 그 이듬해 요기 베라는 쫓겨났다. 어쩌면 진짜 끝은 거기였을 수 있다. KT위즈가 곱씹어야 할 대목이다. 2019 시즌의 끝은 아직 멀다. 다시 등장해선 안 될 추억이 있다. 진정한 팬 서비스는 승리입니다란 2018년 푯말이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아빠 육아휴직

육아는 더 이상 엄마의 고유노동이 아닌 부모의 일이 됐다. 육아에 있어 조력자에 머물렀던 아빠들이 최근 육아 전선에 뛰어들어 아내와 역할을 분담하는 추세다. 육아휴직자 5명 중 1명이 아빠라고 한다. 고용노동부가 올 상반기 민간부문 육아휴직자 5만3천494명 중 1만1천80명(20.7%)이 남성이었다고 밝혔다. 20%를 넘긴 건 올해가 처음이다. 육아휴직제도는 고용보험에 가입한 근로자를 대상으로 아이를 키우러 잠시 일터를 떠날 때 급여를 주는 제도다. 2001년 11월 처음 도입됐다. 시행 첫해엔 남녀 구분 없이 육아휴직을 하면 월 20만 원을 지급했다. 첫해 민간부문 육아휴직 신청자는 25명이었고, 이 가운데 남자는 2명이었다. 이후 해마다 남성 수가 늘어 2009년 500명을 넘기고(502명), 2011년 1천명을 넘겼다(1천402명). 2017년엔 1만명 선을 깨뜨려 1만2천42명, 지난해엔 1만7천662명을 기록했다. 올해는 2만명을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고용노동부 수치는 고용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남성 공무원과 교사 등은 제외한 것이어서 실제 남성 육아휴직자는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아빠 육아휴직자의 증가는 맞벌이에 이어 맞돌봄 문화가 확산되고, 육아휴직 기간에 받는 급여가 올라간 것이 큰 영향을 줬다. 정부는 남성 육아휴직 활성화를 위해 2014년 아빠 육아휴직 보너스제를 시행했다. 부모 가운데 육아휴직을 두 번째로 사용하는 사람에게 첫 3개월 동안 육아휴직 급여를 월 최대 200만 원까지 주는 제도다. 올해부터는 상한액을 월 250만 원으로 올렸다. 첫 3개월을 뺀 나머지 기간(최대 9개월)에 받을 수 있는 육아휴직 급여도 올해 70만~120만 원으로 월 20만 원씩 올렸다. 1년간 최대 1천830만 원까지 받을 수 있다. 남성 육아휴직은 중소기업보다 대기업에서 활발하다. 올 상반기 남성 육아휴직자 과반(56.7%6천285명)이 300인 이상 대기업 직원이었다. 10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장은 1천440명(13%), 10인 이상 30인 미만은 905명(8.2%) 등으로 수가 적었다. 한국 남성의 육아휴직이 늘어나는 추세지만 북유럽에 비하면 아직도 낮다. 아이슬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등은 40%가 넘는다. 여성의 육아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장치 중 하나가 남성 육아휴직이다. 아이들과 관계도 회복하고 가정에서 재충전 시간도 가질 수 있다. 엄마들의 독박 육아를 덜어줘야 출산율도 높아진다. 아빠 육아휴직을 더 늘리려면 휴직으로 인한 소득감소, 중소기업의 대체인력 확보 문제 등 해결 과제가 많다.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불화수소가 주는 교훈

불화수소는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세정에 사용된다. 불필요한 부분을 깎아내는 에칭(etching, 식각) 공정과 불순물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사용되는 독성이 강한 부식성 기체다. 국내에서는 환경규제로 생산이 쉽지 않아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오래 보관할 경우 물질 특성이 바뀌기 때문에 필요한 양만큼만 수입해 사용한다. 고순도 불화수소는 에칭가스라고도 부르는데 이를 사용하면 생산량 대비 결함없는 제품 비율이 높아지고 품질도 신뢰할 수 있게 된다. 현재 고순도 불화수소는 대부분 일본에서 생산된다. 국내 화학재료 업체가 일본에서 수입, 정제해 완제품으로 만들어 삼성,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제조사에 납품하고 있다. 일본이 이달 초 느닷없는 경제보복의 하나로 불화수소 등 3개 품목의 한국 수출을 규제하고 나섰다. 고순도 불화수소의 대일 의존도가 높은 한국 반도체 기업에 타격을 주겠다는 의도다. 우리 반도체 산업이 직격탄을 맞았다. 재고가 바닥나면 더 이상 반도체 생산이 불가능해진다. 자칫 반도체 신화가 무너지고, 국민 경제가 흔들릴 수 있는 심각한 위기 상황이다. 한국 반도체 기업이 올해 초 5개월 동안 일본에서 수입한 반도체 공정용 불화수소 규모는 2천844만 달러 정도다. 전 세계 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우리 반도체 기업에는 결코 크다고 할 수 없다. 실제 반도체 원가에서 불화수소가 차지하는 비중은 계산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작다. 하지만 반도체 공정에서 없어선 안되는 특수소재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일본이 수출규제를 통해 한국을 위협하고 있다. 세계 자유무역 체제를 정면으로 거부하고, 한국을 공개적으로 모욕하는 일본의 졸렬한 만행을 용납할 수 없다. 일본의 괘씸한 행태에 분노한 국민들이 보이콧 재팬(일본제품 불매)을 외치며 광화문 촛불집회까지 다시 열고 있다. 정부는 아베 정부를 비난하며, 뒤늦게 소재ㆍ부품 국산화에 나섰다. 이전에도 소재ㆍ부품ㆍ장비의 국산화 정책을 폈지만 예산, 인력, 규제 등 여러 문제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일이 터지고 나서야 심각성을 인식한 정부가 매년 1조 원을 투입해 국산화를 서두르겠다고 하는데 하루 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라 답답하다. 소재부품 분야에서 이런 사례가 또 일어날 수 있기에 걱정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이번 사태를 똑바로 직시하고 현실적 대안을 찾아야 한다. 소재ㆍ부품 국산화 관련, 중장기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미국이나 WTO 회원국들이 우리 입장을 대변해줄 것이라는 기대는 갖지 말아야 한다. 복잡한 이해 관계로 뒤엉킨 국제사회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냉혹하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팜스테이로 떠나자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10여 년 전 한 카드 회사의 광고문구를 다들 기억할 것이다. 치열한 삶 속에서 업무에 파묻혀 살아가는 우리네 팍팍한 인생살이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와 강한 인상을 남겼다. 휴가는 긴 문장 속의 쉼표와 같다. 쉼표가 있어야 끊어 읽기가 수월하다. 그야말로 휴가는 바쁜 일상의 원동력이다. 본격적인 휴가철이다. 그렇다면, 이번 여름휴가는 어디로 정할까? 자식들 등쌀에 떠밀려 해외로 떠나자니 불경기에 더욱 얇아 보이기만 하는 지갑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국내로 눈을 돌려 강원도나 남해 해수욕장을 알아보자니 이 또한 호텔이나 콘도는 빈방을 잡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숙박비에 식비 등 들어가는 경비가 절대 만만치 않다. 또 유명 관광지 일대 도로는 주차장이나 다름없다. 영혼을 재충전하러 나온 휴가가 아니라 오히려 스트레스만 쌓인다. 이런 이유라면 해외나 유명 관광지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 벗어나 보자. 여기 농협이 운영하는 농촌체험 프로그램 팜스테이가 몸과 마음이 지친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다. 농장을 뜻하는 팜(Farm)과 머문다는 뜻의 스테이(Stay)의 합성어인 팜스테이는 농가에서 숙식하며 농사와 생활, 문화체험, 마을축제에 참여하는 농촌체험 여행 프로그램이다. 경기도에는 15개 시ㆍ군에서 47개 팜스테이 마을이 운영되고 있다. 양평 외갓집체험마을에서는 인절미 떡메치기와 감자 캐기, 뗏목 타기 등 일반 휴가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체험과 각종 먹을거리가 가득하다. 연천 푸르내마을에서는 대추방울토마토 수확, 보석바 비누 만들기, 물놀이 등을 하며 가족애를 더욱 돈독하게 다질 수 있다. 도내 팜스테이 모두 가족 단위 휴가객에게 안성맞춤이다. 자 이제 떠났다면 모처럼 산과 강 언저리에서 가족 간에 나누지 못했던 대화를 나누는 것은 어떨까? 잠시 스마트폰은 내려놓고 말이다. 해외여행을 못 가 아쉬워했던 가족들이 푸근한 농촌의 정까지 느껴 어느새 엄지척을 하고 있을 것이다. 권혁준 경제부 차장

[지지대] 스시·일본식 커리도 NO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반도체ㆍ디스플레이 소재 등의 수출규제와 관련해 자국에 주재하는 각국 대사관 직원을 대상으로 일제히 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대대적인 여론전에 나서고 있다. 이에 맞서 한국도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을 비롯해 국회와 경기도의회, 수원시 등 지방자치단체와 각종 단체에서 수출 규제 철회를 요구하며 규탄대회를 벌이고 있다. 특히 일본의 수출 규제 경제보복에 대한 반감으로 인해 국내에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인 일본 NO가 확산되고 있다. 일본 여행은 물론 일본 제품, 심지어 일본 음식까지도 먹지 말자는 분위기다. SNS 단톡방에는 바코드에 표기된 일본 국가 번호인 45, 49를 올리고 물건을 살 때 일본 제품이면 구매하지 말자고 호소(?)하고 있다. 지난 22일 한 단체의 자문회의가 있었는데 이에 앞서 지난 주말 중식 메뉴를 묻는 문자가 필자에게 왔다. 담당자의 수고를 덜어 주기 위해 메뉴를 빠르게 스캔한 뒤 1등으로 답변을 남겼다. 제일 먼저 고른 메뉴는 함박스테이크와 일본식 커리라이스였다. 두툼한 함박스테이크에 치즈 그리고 계란이 올라간 커리라이스라는 설명을 보고 단숨에 골랐다. 그런데 참석자들이 모두 이 메뉴를 고르는 것이 아닌가. 괜히 제일 먼저 메뉴를 골라 나중에 독박(?)을 쓰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요즘 같은 분위기에 일본식 커리라이스를 선택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회의 당일 한 참가자가 지난 주말 쇼핑센터에 갔는데 유니클로 매장에 손님이 없었다면서 우리 일본식 커리를 먹으면 안 되는 것 아니냐며 메뉴 선택이 잘못된 것을 지적해 왔다. 뭔가 불안한 예감은 항상 적중하는 법이다. 일본식 커리 선택이 문제가 된 것이다. 농담처럼 오가는 얘기 중에 일본 제품은 물론 스시를 비롯한 일식도 먹으면 안 된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 같은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보다 확산되면 닛산이나 도요타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에 대한 테러도 일어날 판이다. 확실히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는 우리 국민 정서상 나올 수 있는 사회 현상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우리는 본질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그들의 수출 규제를 현실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카드가 필요하다. 일본 제품 불매나 규탄은 단순히 정서적인 문제다. 정부와 기업은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하고 일본을 압도적으로 굴욕 시킬 수 있는 카드를 준비해야 한다. 그런 카드가 우리에게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최원재 문화부장

[지지대] 이상한 반도체 사랑

수원시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시청 대강당을 가득 메웠다. 한목소리로 일본을 규탄했다. 일본 수출 규제 조치의 부당함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외쳤다. 일본 제품 불매 운동에도 수원시민이 앞장서자고 결의했다. 참석자들마다 손팻말을 들었다.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심장, 수원을 지키자 일본 NO. 삼성에 대한 수원시민의 정서다. 삼성 일이라면 언제나 발 벗고 나선다. 수원시주민자치위원장협의회 회원이 대거 참가했다. ▶일본의 경제 보복의 핵심 타깃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다. 모두 삼성의 지배력이 절대적이다. 수원 말고도 용인, 화성, 평택에 공장이 있다. 이날 현재까지 일본 규탄대회가 열린 곳은 수원 한 곳이다. 용인, 화성, 평택시에서는 없었다. 이를 두고 뭐라 할 건 못 된다. 일본의 경제 보복에 대응하는 모습은 다양하다. 규탄대회 말고도 극일(克日)의 의지는 얼마든지 보여줄 수 있다. 수원의 삼성사랑이 극성이다라는 비웃음도 있긴 하니까. ▶그런데 그 규제 대상을 살펴보면 좀 이상하다. 일본이 막은 수출규제 물질은 3가지다. 불화수소, 레지스터, 불화 폴리이미드. 모두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생산의 재료다. 반도체가 생산되는 곳은 삼성전자 용인ㆍ화성ㆍ평택 공장이다. 수원에서는 반도체를 만들지 않는다. 스마트폰, 가전제품 개발을 위한 연구만 한다. 일본이 막은 물질의 사용처는 화성ㆍ용인ㆍ평택 공장인 것이다. ▶당연히 직격탄도 용인ㆍ화성ㆍ평택 공장이다. 극단적으로 볼 때 이번 사태로 멈춰 설 공장이 이 3곳이다. 각각 1만(용인)ㆍ3만(화성)ㆍ5천(평택)명이 일하고 있다. 관련 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도 엄청나다. 유사시 대규모 실업난이 생길 곳도 이들 지역이다. 당장에 4천600억(화성시)ㆍ2천600억(용인시)ㆍ1천500억(평택시)-이상 2019년 기준-에 달하던 세수(稅收)도 급감할 지역이다. 그런데 이 3곳은 조용하다. ▶온 나라가 비상이다. 그 중심 피해 지역이 도내 반도체 市다. 반도체란 게 워낙 복잡하다. 시민들은 모를 수도 있다. 그래도 지자체만큼은 알았어야 했다. 그래서 시민에 일러줬어야 했다. 입만 열면 자체 대응을 강조해오던 지자체들 아닌가. 불화수소, 레지스터, 불화 폴리이미드를 쓰는 공장이 우리 동네에 있는데. 그 물질이 없으면 내 동네 공장이 멈추는데. 규탄대회를 안 해서가 아니라 그 근본을 모르는 것 같아 씁쓸하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이해충돌방지법

전남 목포의 문화재 거리 부동산 투기 논란과 관련, 무소속 손혜원 의원이 지난 6월18일 부패방지법과 부동산실명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기소됐다. 이 지역 부동산을 사들인 손 의원 보좌관과 부동산업자도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에 따르면 손 의원은 목포 문화예술인들과의 간담회에서 목포시의 도시재생 사업 계획을 알게 된 뒤 목포시와 함께 사업을 추진하면서 일반에 공개되지 않은 보안자료를 얻게 됐다. 이를 토대로 사업구역 내 토지 26필지와 건물 21채 등 14억 원어치 부동산을 남편의 재단과 지인들이 사들이게 했다. 검찰은 공무상 알게 된 비밀을 이용해 재산상 이득을 취한 것으로 보고 부패방지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검찰 수사 결과 발표를 보면 손 의원의 행위가 부동산 투기에 해당하는지 애매한 부분이 있다. 그렇다고 문화재 보존을 위한 순수 공익적 행위라고 보기도 어렵다. 설사 공익적 목적을 위한 행동이었다 해도 자신이 직접 부동산 구매에 나선 것은 이해충돌의 소지가 다분하다. 유무죄 여부와 별개로 부적절한 행동이었다는 여론이 우세하다. 이해충돌은 업무수행 과정에서 사익을 추구하는 행위다. 국민의 위임을 받아 공적 업무를 수행하는 정치인이나 공직자들에게는 엄격한 이해충돌방지법이 필요하다. 올해 초 손혜원, 송언석, 장제원 등 여러 국회의원의 상임위 활동과 관련한 이해충돌 의혹이 불거지면서 여야가 앞다퉈 이해충돌방지법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들 법안은 논의 테이블에 오르지 않았다. 국회에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 아니냐는 비아냥거림이 있었는데 틀리지 않았다. 손 의원이 직무상 얻은 사전 정보로 부동산을 사들인 의혹이 제기됐을 때, 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을 적용해 처벌하지 않느냐는 문제 제기가 있었다. 이는 김영란법을 만들때 국회 논의과정에서 의원들이 자신들을 대상에서 제외했기 때문이다. 김영란법이 반쪽짜리가 됐다는 비판이 거셌다. 국민권익위가 지난 19일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 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공직자가 직무수행 중 알게 된 비밀을 사적인 이익을 위해 이용하거나 제3자가 이용하도록 하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는 내용을 담았다. 김영란법 때 빠진 이해충돌 방지 규정을 입법화한 것으로, 고위공직자에는 국회의원과 광역단체장, 교육감, 기초단체장이 포함된다. 여야 정치권은 일단 환영의 뜻을 표했다. 하지만 국회 문턱을 넘게 될 지는 모를 일이다. 20대 국회 초반 특권 내려놓기를 떠들다가 용두사미가 된 사례처럼 또 사그라지는 건 아닌가 우려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교묘해진 탈세

여성 접객원만 수백 명에 달하는 호화 룸살롱 실소유주 A씨는 같은 장소에서 영업을 하면서 걸핏하면 개업과 폐업을 반복했다. 개업할 때마다 친인척 명의를 빌려 룸살롱 소유주가 달라진 것처럼 위장했다. 여러 사람 명의로 나눠 수입 금액을 줄이면, 적용 세율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A씨는 손님에게 팔 술을 사들일 때 세금계산서 등 증빙서류를 남겨두지도 않았다. 술을 팔아 얼마나 벌었는지 감춰야 세금을 덜 내기 때문이다. 이 업자는 실제 매출액이 기록된 회계장부를 별도 비밀사무실에 보관하는 등 세금을 안 내려고 치밀하게 준비했다. 하지만 국세청에 덜미가 잡혀 소득세 400여억 원을 추징당하고 검찰에 고발됐다. 유명 DJ 공연으로 젊은층이 많이 몰리는 나이트클럽의 실소유주 B씨는, MD(Merchandiser)로 불리는 영업사원이 인터넷 카페나 SNS에서 조각모음을 통해 테이블(지정좌석)을 판매하고 술값은 모바일 결제를 통해 MD 계좌로 받는 수법으로 세금을 빼돌렸다. 역시 국세청에 적발돼 30억 원을 추징당하고 고발 조치됐다. 유명 영어학원 원장 C씨는 고액 학원비를 9살 조카, 2살 지인 자녀 등 미성년자 명의 차명 계좌로 받고 현금영수증 발급을 거부하다 적발됐다. C씨는 세금 12억 원과 함께 수억원대 현금영수증 미발급 과태료까지 추징당했다. 대부업자 D씨는 다른 직업이 있는 부모나 형제 등 일가족을 대부업자로 등록하고 자금난을 겪는 영세업체에 고리로 급전을 빌려주고는 이자는 현금이나 우편환 등으로 받다 적발됐다. 국세청이 서민 생활에 피해를 주는 민생침해 탈세 혐의자 163명에 대한 전국 동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민생침해 탈세자는 유흥업소, 불법 대부업체, 예식장, 장례식장, 학원 등 서민을 상대로 영업을 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도 조세를 회피하는 범죄자를 말한다. 이들은 주로 자영업ㆍ중소법인 형태로 영업을 하는데 탈세 수법이 교묘하고 기상천외하다. 과거엔 신용카드를 받지 않고 현금으로 상품서비스를 판매한 뒤 매출액을 숨기는 방식을 썼다면, 최근엔 종업원 명의를 빌려 지분 쪼개기 등을 통해 명의를 위장하는 형태도 등장했다. 2살배기 계좌로 학원비를 받은 황당한 수법도 있다. 이번에 적발된 탈세자들은 많이 버는 사람들이다. 축적한 부를 통해 사치생활을 하면서 납세의 의무를 지지 않는 것은 용납돼선 안된다. 대다수 성실 납세자에게 상실감을 주고, 경제적 약자인 서민층에게 2차 피해를 야기한다. 끝까지 추적해 처벌하고, 불법으로 얻은 수익은 철저히 환수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선전포고… 그 후

지난 11일 한국프레스센터에 염태영 회장(수원시장)을 비롯한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임원들이 모였다. 이날 이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기초지방정부 위기극복을 위한 5대 선언을 발표했다. 현장에서 느낀 기자회견의 분위기는 비장하다라는 표현이 적합할 듯하다. 회견장 플래카드에 그려진 위태로워 보이는 심전도 그래프가, 대한민국 기초가 위기다라는 문구가, 그리고 기자회견에 나선 시장들의 표정에서 이번 기자회견이 단순히 말로 그치지 않을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기초지방정부 위기극복을 위한 5대 선언에는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의 조속한 통과 △기초지방정부와 협의에 의한 재정분권 추진 △사회적 공론화를 통한 복지대타협 △지방소멸 위기에 적극 대응 △지방분권형 개헌 등이 담겼다. 염태영 회장은 그동안 기초지방정부들은 중앙정부 눈치를 봐야 하는 현실에 좌절해왔다며 최근 중앙정부는 재정분권 추진 과정에서 기초지방정부를 배제했다. 자치경찰제, 교육자치 등의 정책을 결정할 때도 소외됐다. 현재 상황은 지방분권의 위기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제는 행동으로 나서겠다. 전국을 돌며 토론회를 개최하고 시민단체와 협력해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장의 이 같은 발언은 중앙정부를 향한 일종의 선전포고로 해석된다. 지방분권형 개헌이 동력을 잃어가는 시점에서, 지방자치법 전부 개정안이 국회에 표류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시장ㆍ군수ㆍ구청장들의 이번 외침은 적지 않은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반면 우려되는 부분도 크다. 시장군수들이 보여주겠다는 행동이 전국을 돌면서 토론회를 여는 것이 전부라면, 과연 중앙정부가 이들의 외침에 응답하겠는가. 또 세금을 내는 시민들은 혜택만 받으면 되지, 그 혜택이 중앙정부 주머니에서 나온 돈인지, 시ㆍ군 주머니에서 나온 돈인지 중요하지 않다. 시장ㆍ군수ㆍ구청장들에게 가장 큰 무기는 시민들의 지지일 텐데, 시민들에게 적극적인 지지를 끌어내기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어쨌든 선전포고는 했다. 만약 이번에도 단순한 외침에 그친다면 향후 중앙정부는 더욱더 시장ㆍ군수ㆍ구청장들의 목소리를 외면할 가능성이 크다. 염태영 회장을 비롯한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의 다음 행보가 그래서 더 중요하다. 이호준 사회부 차장

[지지대] 판사 견책·경찰 파면·공무원 감봉

대법원이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현직 판사에게 징계를 내렸다. 징계 사유는 법관으로서 품위를 손상하고 법원의 위신을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징계 수위는 견책이다. 견책은 징계 사유에 대해 서면으로 훈계하는 처분이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대법원이 내린 징계 수위가 논란이 되고 있다. 형사처벌도 아닌 징계에 불과하지만, 대법원의 판단과 국민의 법 감정과는 거리감이 상당한 듯하다. 지난해 9월25일 새벽 2시25분께 부산 해운대구의 한 오거리에서 술(0.134%)에 취한 운전자가 BMW 승용차로 횡단보도에 서 있던 윤창호씨(22)와 친구를 치고 담벼락을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했다. 젊은 청년의 죽음은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렸다. A 판사가 음주에 적발된 시점은 윤창호 사망사고가 발생한 지 불과 한 달 후다. 지난해 10월27일 밤 11시20분께 서울 강남구 청담동 도로에서 면허정지 수준인 혈중알코올농도 0.056% 상태로 승용차를 200m가량 몰다가 경찰에 적발됐다. 윤창호씨의 안타까운 죽음을 계기로 음주운전 단속 기준을 강화한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나왔고, 지난 6월25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로 인해 국민의 음주운전에 대한 인식은 상당히 많이 바뀌었다. 일단 저녁에 마시는 술 문화가 시나브로 변화되고 있다. 폭음이나 과음은 자제하는 분위기다. 출근길 숙취로 인한 음주 단속에 걸릴까 노심초사하는 모습도 새롭게 등장했다. 특히 법 시행에 발맞춰 공직사회에서는 음주운전에 대해 더욱 엄격한 잣대를 만들고 적용하고 있다. 음주운전 단속 주체인 경찰은 그야말로 강력하다. 첫 적발에 정직, 두 번째부터는 혈중알코올농도와 사고 여부 등에 따라 강등에서 최고 파면까지 중징계를 내린다. 검찰은 지난 4월 음주운전에 세 차례 적발된 현직 검사를 해임 처분하기도 했다. 경기도나 수원시 등 지방공무원은 징계 수위를 한 단계 높였다. 가장 경미한 견책 처분은 없어졌고 한 단계 높아진 감봉부터 징계가 이뤄진다. 경기도교육청은 법에도 없는 0.03%~0.05% 구간에 대한 징계 기준을 추가했다. 술을 한 잔이라도 마시면 운전대 잡지 말란 의미다. A 판사의 견책은 국민들에게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질까. 이명관 사회부장

[지지대] ‘親北=빨갱이·親日=매국노’

1970년대 중후반. 그때 이미 반공(反共)을 넘었다. 멸공(滅共)이 국가 목표로 제시됐다. 멸망할 滅(멸)자 아닌가. 북한을 멸망시키자는 구호다. 아이들도 그렇게 학습됐다. 곳곳에서 멸공 웅변대회가 열렸다. 북한 욕하기 대회였다. 뭘 안다고, 그 어린 애들이 책상을 치며 분노했다. 간혹, 손가락을 깨물어 멸공을 쓰는 애들도 있었다. 오죽하면 대회에 앞서 혈서 금지라는 안내가 붙기도 했다. 그 시절의 빨갱이다. ▶2019년에도 남은 듯하다. 간혹 문재인 대통령을 빨갱이로 몬다. 3ㆍ1절 기념사 때도 그랬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원봉을 언급했다. 그러자 우파 논객-차명진 전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인터넷에 썼다. 그런 놈-김원봉-을 국군 창설자라고? 이게 탄핵 대상이 아니고 뭐냐? (한국당) 입 달린 의원 한 명이라도 이렇게 외쳐야 한다. 문재인은 빨갱이! 참, 언제적 빨갱이론인가. 사회과학 서적 좀 읽었다는 사람인데, 저런 말장난을 하고 있다. ▶2019년 7월7일. 친일은 당연한 것이고 정상적인 것이다. 반일이 반대로 비정상이다. 이병태 교수가 말했다. 국교정상화를 했으면 친하게 지내야 평화롭고 공동번영이 가능하다고도 했다. 비난이 쏟아졌다. 끔찍하다. 처참하다. 이런 자들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 교수가 친일 매국노로 몰렸다. 1960년 충북 출생, 서울대 졸업, 카이스트 학장. 특별한 이력이 없다. 친일파로 볼 흔적은 더 없다. 그런데 친일파로 난도질당한다. ▶토착 왜구라는 말이 있다. 우리 땅에서 일본 왜구를 도와 반역행위를 한 자란 뜻이다. 나베란 말도 있다. 아베 일본 총리와 나경원 원내대표의 합성어다. 일본과 친해지자는 사람들을 주로 향하는 말들이다. 많은 경우 그 내용은 친일(親日)을 언급한 수준이다. 일본과 상호 우호 관계를 강조한 상식적 주장이다. 그런데도 댓글은 나라 팔아먹을 친일파(親日派)로 몰아간다. 적(敵) 없는 공간에서의 말장난이다. ▶멸공의 이념은 이 시대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빨갱이가 아니다. 대부분 안다. 그런데도 그렇게 말한다. 그래서 챙길 이익이 있는 사람들이다. 친일파는 과거의 역사다. 현재의 친일은 친일파와 무관하다. 누구라도 그 차이를 안다. 그런데도 그렇게 말한다. 역시 그래서 챙길 이익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 때문에 국력이 흐트러진다. 일본이 2차 경제 보복을 준비하고 있는 지금인데. 김종구 주필

[지지대]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

때려치워 이 XX야, XX놈이 말로 하니까 안 되겠네 어디서 6급 따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요구를 해? 육아휴직 내면 돌아올 자리는 없어 빨리 관두는 게 회사에 도움되는 거니까 출근 하지마. 다른 직장 알아봐 노동전문가, 노무사, 변호사들이 주도해 만든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 제보된 직장 내 괴롭힘 사례들이다. 막말과 모욕, 협박에다 폭행을 당했다는 직장인까지, 갑질 제보가 줄을 잇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은 고질적 문제로 지적돼 왔다. 대한항공 오너 일가의 폭행, 양진호 위디스크 회장의 엽기적 갑질 행각, 태움 문화로 인한 간호사의 자살 등 그동안 드러난 사건만 봐도 심각함을 넘어 충격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직장 내 괴롭힘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직접적인 직장 내 괴롭힘 피해 경험이 66.3%에 달했다. 유형별로는 명예훼손모욕 등 정신적 괴롭힘이 24.7%, 사적인 일을 시키거나 지나치게 많은 업무를 지시하는 등 과대한 요구가 20.8%로 나타났다. 직장 내 괴롭힘이 반복해서 불거지며 사회적 이슈가 되자 지난해 12월 국회 본회의에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근로기준법 등 개정안)이 통과됐다. 6개월간의 유예 기간을 거쳐 오늘부터 시행된다.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하면 사용자는 즉시 사건을 조사해 피해 직원의 희망에 따라 근무지를 바꿔 주거나 유급휴가 등 적절한 조처를 해야 한다. 괴롭힘이 발생한 사실을 신고하거나 피해를 보았다고 주장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주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폭행과 폭언, 협박 등이 직장 내 괴롭힘의 대표적인 행위다. 근로계약서 등에 명시돼 있지 않은 허드렛일만 시키거나 일을 거의 주지 않는 것도 포함된다. 의사와 상관없이 음주, 흡연, 회식 참여를 강요하거나 집단 따돌림, 신체적인 위협, 업무 성과를 인정하지 않거나 조롱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 흔히 있는, 모임이나 회식에서 노래 등 장기자랑을 억지로 시키거나 폭탄주를 강요하는 것도 안된다는 얘기다. 상사의 흰머리 뽑기, 라면 끓이기도 당연히 안된다. 누구든지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사용자에게 신고할 수 있다. 익명 신고가 어렵고 가해자가 사용자일 때도 사용자에게 신고해야 하는 건 한계다. 사용자가 직장 내 괴롭힘을 인지했지만 그에 따른 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과태료나 벌금 등으로 처벌할 수 없는건 문제다. 애매한 법 조항 때문에 시행 초기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다. 본격 법 시행으로 갑질, 왕따, 부당지시 같은 낡은 조직 문화가 개선될 지 주목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전자발찌는 장식품인가

한번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다시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높다고 한다. 특히 성범죄의 경우 재범률이 높다.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은 사람을 지속적으로 감시하면 재범을 낮출 수 있겠지만 경찰이나 정보기관의 인력은 크게 부족하다. 이들을 완벽히 감시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특정인을 쉽고 효과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수단이 생겼는데, 바로 전자발찌(Ankle monitor)다. 범죄 가능성이 있는 사람의 발목에 채워 위치를 추적하는 도구다. 우리나라에선 2008년부터 특정 성범죄자를 대상으로 전자발찌 착용을 강제하는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전자발찌를 찬 사람이 이동하면 위치가 위치추적관제센터에 표시된다. 하지만 전자발찌를 착용하고도 범죄를 저지르는 사례가 많아 관리시스템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10일 밤 광주의 주택가에서 전자발찌를 찬 50대 남성이 침입해 모녀를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 발생했다. 이웃 주민의 신고로 붙잡힌 범인은 3차례 성범죄 전력을 포함해 전과 7범이었다. 2010년 성범죄를 저질러 징역 5년, 전자발찌 부착 10년을 선고받고 2015년 출소했다. 이후 차고 있던 전자발찌를 훼손해 재수감되면서 2026년까지로 착용기간이 연장됐다. 재범 가능성이 높은 위험인물임에도 야간 외출조차 제한받지 않고 주택가를 활보했다니 충격이다. 범인은 체포 당시 미수범이라 (교도소에서)얼마 안 살고 나올 것이라는 말까지 했다. 성범죄 처벌 법과 제도가 얼마나 만만했으면 그런 말을 했을까. 전자발찌의 허술한 관리가 자주 도마에 오른다. 관리 대상자가 크게 증가하면서 전자발찌를 훼손하고 도주하거나 재범을 저지르는 사례가 늘고 있다. 감사원의 여성 범죄피해 예방 제도 운영실태 감사 결과에 따르면, 전자발찌를 차고도 성범죄를 다시 저지른 이들이 2013년 30명(재범률 1.71%)에서 2018년 67명(10월31일 기준재범률 2.3%)으로 증가했다. 가장 큰 원인은 관리인력 부족이다. 전자발찌 착용자는 지난 6월 기준 전국에 3천846명이지만 이들을 감시관리할 위치추적관제센터 인력은 69명뿐이다. 전자발찌를 찬 성범죄자가 출입금지구역에 들어가거나 전자발찌를 훼손하면 울리는 경보음이 1년에 약 400만건인데 비해 턱없이 모자란다. 제대로 대처가 안된다고 봐야한다. 인력도 충원하고, 법무부와 경찰 간의 공조도 강화해야 한다. 전자발찌 착용자들의 야간 외출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법률도 개정해야 한다. 전자발찌는 장식품에 불과하다는 조롱을 언제까지 들을 것인가.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괴롭히지 마세요

지난해 서지현 검사(46사법연수원 33기)가 8년 전 검사장에게 당했던 본인의 성추행 피해를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미투운동이 확산됐다. 서 검사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가장 큰 두려움은 진실이 끝끝내 밝혀지지도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고, 가장 큰 절망은 어떤 것도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서 검사는 두려움과 절망 가운데서 많은 변화들을 목격했다. 가해자가 법정 구속됐고, 사회 각계각층에서 권력자의 성추행ㆍ성폭력이 폭로됐다. 또 대법원 판결에서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했고, 성범죄 신고가 역대 최고로 늘었다. ▶성희롱에 한 국민적 감수성이 많이 높아졌음에도 여전히 사회 전반에 걸쳐 성희롱ㆍ성추행 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007년부터 성희롱 시정권고 사건에 대한 결정례집을 발간하고, 최근 여덟 번째 성희롱 시정 권고 사례집을 공개했다. 37건의 사례를 보면 초등학교 교감, 요양원 사회복지사, 직장 상사, 수영강사, 예술감독, 원무과장, 교수 등 피진정인 대상이 광범위했다. 성희롱의 발생기관의 경우 기업, 단체 등 사적 부문이 63.2%를 차지하는 한편, 공공기관과 교육기관 등 공적 부문도 36.8%에 달해 성희롱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발생 장소는 직장 내인 경우가 44.6%를 차지하고, 회식장소가 22.3%로 나타났다. ▶이처럼 직장 안에서 이뤄지는 성희롱 등 갑질 행위를 근절하기 위한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근로기준법산업안전보건법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오는 16일부터 본격 시행된다. 사내 괴롭힘은 흔하기에 그동안 특별한 제재 없이 방치됐다. 이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피해자들을 생산했다. 뿐만 아니다. 사내 성추행 등의 성적 괴롭힘으로 이어졌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성희롱ㆍ성추행 없는 직장 문화를 만드는데 나름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 덧붙여 성인지 감수성 향상으로 국가인권위원회가 더는 성희롱 시정권고 사건에 대한 사례집을 발간하지 않는 그런 시대를 기대해 본다. 강현숙 사회부 차장

[지지대] 이재명과 인디밴드

최근 경기도가 인디밴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지난 4월 간부회의를 통해 인디밴드가 많은데 대중에 공연할 기회가 없으니 밴드가 설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하라는 지시가 있은 뒤다. 이어 경기도 인디밴드 지원계획이 나왔다. 도는 지난 8일 (가칭)경기 인디뮤직 페스티벌 구상안을 발표했다. 오는 2020년 6월 경기북부에서 1박2일 규모의 인디음악 축제를 개최한다는 것이다. 행사 개최 이유에 대해 도는 인디밴드 등 젊은 음악인들이 합당한 대우를 받으면서 음악활동을 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인디밴드의 인디는 영어 independence의 줄임말이다. 인디밴드는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추구하기 위해 기획사에 소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활동하며, 자신들의 개성을 담긴, 비상업적인 음악을 목표로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인디밴드도 마니아 팬들은 있다. 자신들만의 노래 스타일을 주변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밴드와 팬이 함께 즐기며 열광하고 성취감을 느낀다. 인디밴드 중에는 대중적으로 크게 유명해진 밴드도 많다. 노래 말 달리자로 유명한 그룹 크라잉 넛 등은 인디밴드로 시작해 대중적으로 크게 인기를 얻어 성공한 인디밴드의 면모를 보여줬다. 이재명 지사가 인디밴드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나 계기는 알 수 없다. 단지 우연히 만난 음악적으로 재능 있는 젊은 친구들이 실력을 펼칠 무대가 없다는 사실이 측은해 보였는지도 모른다. 우연인지 몰라도 이재명 지사와 인디밴드는 이미지가 겹치는 부분이 있다. 이 지사가 평소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는 것, 대한민국 정치적으로 보면 주류는 아니라는 것, 마니아 팬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 등이 닮았다. 경기도가 인디뮤직 페스티벌 장소로 선정한 경기북부 역시 인디밴드와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다. 그동안 안보라는 이유로 개발에서 소외된 비주류 지역이라는 점이다. 경기도가 문화 소외 지역 경기북부에 인디밴드 페스티벌을 개최한다는 계획을 환영한다. 이와 함께 이재명 지사가 성공한 인디밴드처럼 정치적으로 장기간 인기를 얻을지도 흥미롭게 지켜볼 관심사 중 하나다. 이선호 정치부 부장

[지지대] 2019년 이순신

왜(倭)가 쳐들어왔다. 육군 정규 병력만 15만8천700명이다. 해전에 대비한 수군이 9천명이다. 후방 경비를 맡을 병력도 1만2천명이다. 대략 20만명에 달한다. 1592년 4월14일 오후 부산 앞바다에 그들이 나타났다. 선발대 병선 700척이 바다를 덮었다. 임진왜란의 시작이었다. 정발(鄭撥ㆍ부산진 첨사), 송상현(宋象賢ㆍ동래부 부사)이 전사했다. 왜군을 막을 장수는 아무도 없었다. 5월2일 고니시의 부대가 서울에 진입했다. ▶도륙과 약탈이 강토를 휩쓸었다. 백성의 참혹함이 역사로 기록돼 있다. 부자가 서로 잡아먹고 부부가 서로 잡아먹었다. 뼈다귀를 길에 내버렸다(징비록). 굶어 죽은 송장이 길에 널렸다. 한 사람이 쓰러지면 백성들이 덤벼들어 그 살을 뜯어 먹었다(난중잡록). 명나라 군사들이 술 취해서 먹은 것을 토하면 주린 백성들이 달려들어 머리를 틀어박고 빨아 먹었다. 힘이 없는 자는 달려들지 못하고 뒷전에서 울었다(난중잡록). ▶굶주리고 있기는 수군도 마찬가지였다. 이순신이 임금에 올린 장계와 일기에 실상을 적어놓고 있다. 경상우도의 여러 고을은 군량이 이미 바닥났습니다. 군사를 모집해온들 무엇으로 먹이겠습니까. 답답하고 또 답답합니다(1593년 11월17일ㆍ장계). 영남의 여러 배에서 격군과 사부들이 거의 굶어 죽게 되었다. 참혹하여 들을 수가 없다(1594년 1월19일ㆍ난중일기). 하지만, 그는 싸웠다. 배를 만들고 작전을 세웠다. ▶그가 희망이었다. 나 홀로 연승이었다. 고니시 부대가 서울에 입성한 직후 첫 승전보를 올렸다. 1592년 5월4일에서 8일에 걸친 해전이었다. 이순신 함대는 이 격전에서 적선 37척을 파괴하고 이겼다. 이후 정유재란에 이르는 7년간 이순신은 모두 이겼다. 그 기간 격파한 왜 수군 함선이 1천163척이다. 사망한 왜 수군은 4만9천~11만명으로 추정된다. 우리 쪽 피해는 함선 격파 0척, 사망자 52명이다. ▶임금은 서울을 버렸다. 그 임금을 백성이 버렸다. 백성에게 희망은 이순신이었다. 불안해진 백성들이 수영으로 나를 찾아왔다. 또 백성을 버리고 떠날 작정인지, 백성들은 울면서 물었다. 백성들은 수영 마당을 이마로 찧으며 통곡했다. 나는 숙사 툇마루에 걸터앉아 우는 백성들을 바라보았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소설 칼의 노래 중에서). 마지막 노량해전을 위해 고금도 덕동수영을 떠날 때 백성들의 모습이다. ▶일본이 쳐들어왔다. 이번엔 경제다. 반도체를 죽여 우리를 도륙 내겠다고 덤빈다. 또 한 번의 이순신이 필요해졌다. 적진에 침투할 이순신, 23번 싸워 23번 이길 이순신이 필요해졌다. 그런데 없다. 대신 온통 구호뿐이다. 경쟁력 높이겠다는-언제 될지 모르는-구호, 강경 대응하겠다-국내 언론에만 보도되는-는 구호뿐이다. 말장난만 하던 420년 전 조정(朝廷)이 생각난다. 그 조정은 결국 신주(神主) 싸들고 의주로 내뺐었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인권사각 결혼이주여성

베트남 출신 이주여성이 두 살배기 아들 앞에서 한국인 남편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한 사건에 국민적 공분이 일고 있다. 공개된 영상에는 남성이 여성의 빰과 머리, 옆구리를 주먹과 발로 마구 때리는 모습이 담겼다. 어린 아이가 엄마, 엄마를 외치며 우는데도 남성은 아랑곳 않고 발길질을 멈추지 않았다. 피해 여성은 한국말이 서툴다는 이유로 남편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한다. 폭행 당하는 영상은 베트남 피해 여성이 찍은 것으로 지인에 의해 페이스북에 공개돼 급속도로 퍼졌다. 지인은 게시물에 베트남어로 한국 정말 미쳤다고 적었다. 페이스북 측은 폭력성이 심해 영상을 삭제했지만, 누리꾼들이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에 영상을 퍼나르며 논란이 커졌다. 한국에 온 이주여성들의 인권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지난해 12월엔 경남 양산에서 필리핀 출신 이주여성이 집에서 남편이 휘두른 흉기에 살해된 사건도 있다. 이 여성은 한국에서 7년 동안 살았지만 철저히 고립됐었다. 시신을 고향 필리핀으로 운구할 돈도 모자라 지자체가 성금을 모아 가까스로 고향에서 장례를 치렀다. 건강한 여성을 한국으로 시집 보냈는데 7년 만에 시신으로 돌아오니 가족들은 얼마나 비통해하며 울분을 토했을까.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결혼이주여성 10명 중 4명이 가정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폭행, 흉기 협박, 성적 학대를 당하는가 하면 욕설 등 심리언어적 폭행을 겪고 있다. 2007년부터 약 10년간 국내에서 폭행 등으로 숨진 결혼이주여성이 19명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 가해자는 대부분 남편이었다. 때리지 마세요가 결혼이주여성들의 일상어, 필수어가 됐다고 하는데 참담하고 부끄럽기 짝이 없다. 하지만 이들의 폭력은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남편이나 시댁에서 여권을 압수해 꼼짝 못 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결혼이주여성을 위한 정책이 있기는 하다. 상담 전화를 개설하고, 폭력을 당하거나 갈 곳 없는 여성을 위해 쉼터도 운영한다. 외국인 신부를 맞는 남성에게 문화 다양성, 인권, 가정폭력 방지 교육도 한다. 그러나 이런 지원 방안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여성들이 많다. 안다 해도 외부 도움을 요청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국제결혼은 매년 전체 혼인의 7~11%를 차지한다. 저출산 고령화로 외국인 노동력은 더 늘어나고 국제결혼 증가로 결혼이주여성도 더 많아질 것이다. 외국인 이주자와 다문화가정의 자녀는 우리 사회 주요 구성원이다. 이들을 보듬고 함께 가야한다. 당연히 인권도 존중돼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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