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선생님, 우린 감사하지 않아요”

수능 교재가 무거워서 선생님용 엘리베이터를 탔다는 이유로 교복 치마를 입고 있던 학생들을 엎드려 뻗치게 하고 위에서 웃던 선생님. 하나도 감사하지 않습니다. 요즘은 여자랑 스치기만 해도 성희롱 교사가 된다. 참 세상이 어떻게 되는 건지라고 말한 선생님. 저는 선생님께 단 하루도 감사할 수 없었습니다. 쌤, 집에 데려다준다고 차 태워준 건 고마운데 거기서 제 허벅지를 만진 건 하나도 안 고마워요. 당신이 교사라서 제가 참 걱정이 많습니다. 대학시절 밥 사달라는 여자 후배에게 열달 동안 배부르게 해줄까라고 말한 걸 자랑스럽게 얘기해주신 고등학교 수학선생님. 그때는 멋모르고 웃었지만 지금은 그 말에 웃은 제가 소름끼칩니다. 교사에게 감사를 전하는 스승의날(5월15일)을 앞두고, 스쿨미투 운동을 전개해 온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청페모)이 우리는 감사하지 않습니다라는 주제로 편지쓰기 캠페인을 하고 있다. 폭력을 행사하거나 성희롱을 일삼는 스승을 존경할 수 없다는 것을 전파하기 위해서다. 지난 11일에는 서울의 한 카페에서 그것은 교권이 아니다라는 제목으로 토크 콘서트도 가졌다. 청페모는 스승에게 감사를 전하는 스승의 날이지만 스쿨미투가 해결되지 않는 한 진정으로 감사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성폭력과 성차별은 교권이 아니다. 더 이상 폭력과 혐오를 휘두르는 스승은 존경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선 스승에게 보내는 편지쓰기 캠페인에 참여한 일부 편지가 공개됐다. 편지에는 공공연하게 성폭력적인 발언과 행동을 일삼는 교사들의 행태가 낱낱이 드러났다. 청소년과 교사가 교권이 무엇인지에 대해 토론하며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지난해 4월 창문에 포스트잇을 붙여 스쿨미투(#Me Too)에 불을 붙인 서울 용화여고의 스쿨미투 1년을 되짚어보는 시간도 가졌다. 청페모는 스쿨미투 고발을 교권침해로 고소하는 교사, 교원평가에 스쿨미투를 적지 말라고 지시하는 학교, 폭력을 교권으로 오인하는 사회까지. 여전히 학교는, 교육은 바뀌지 않았다고 밝혔다. 용화여고에서 촉발된 스쿨미투 운동으로 지금까지 78곳의 중고교에서 교사의 성폭력에 대한 폭로가 나왔다. 성적 수치심을 야기하는 언어와 신체접촉 폭로는 여학생의 일상이 얼마나 차별, 혐오, 폭력에 노출됐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하지만 가해자로 지목돼 수사를 받은 교사 상당수가 불기소 처분을 받아 복귀하는 등 정부의 스쿨미투 대책이 미적지근하다. 학생들이 교사에게 감사할 수 없는 편지를 얼마나 써야 하는건가. 감사한 스승도 많은데 묻히는 것이 안타깝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기적

최종 스코어 4대 3. 안필드의 기적이 일어났다. 그리고 정확하게 만 하루 뒤에도 암스테르담에서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 축구, 유럽 챔피언스리그의 일이다. 리버풀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함께 현존하는 최고의 축구선수로, 신계의 영역에 있다는 리오넬 메시가 속한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믿을 수 없는 뒤집기에 성공했기에 안필드의 기적은 축구 역사에 새로운 페이지를 장식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암스테르담의 기적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인 손흥민 선수가 속한 토트넘이 적지에서 지단의 레알 마드리드(16강)와 호날두의 유벤투스(8강)를 잇따라 꺾고 올라온 아약스를 상대로 거둔 대역전승이라서 더욱 의미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같은 기적을 발판으로 토트넘은 이번 대회 최고 언더독의 반란으로 평가 받는다. ▶그런데 사람들이 동전의 양면을 한 번에 같이 볼 수 없는 것처럼, 기적과 관련해 간과하는 점이 있다. 축구를 빗대어 얘기해보면 공이 둥글기 때문에 어떠한 일이 벌어질 지 모른다고 하나, 사실은 그 이면에 준비된 자에게만 기적이 찾아온다는 점은 쉽게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클럽을 향한 자부심, 승리할 수 있다는 믿음, 팬들을 위한 존경심 그리고 스스로를 절제해 만든 최고의 몸 상태가 잘 어우러져 있을 때만 기적이 찾아오는 것이다. 그리고 리버풀과 토트넘은 각각 안방과 적지에서 이같은 모습을 완벽하게 보여줬다. 그리고 기적이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은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준 것이다. ▶법은 공처럼 둥글지 않다. 그래서 법과 관련해 기적을 바라는 것은 어쩌면 요행을 쫓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때로는 법이 틀안에 정한 형량을 맞추는 것이 아닌 큰 그림을 보고 판단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징역 1년 6월, 벌금 600만 원. 지난달 검찰이 이재명 도지사에게 구형한 형량이다. 그리고 오는 16일 1차 선고 공판이 열린다. 민선 7기가 시작된 이후 이 지사는 도민을 위한 다양한 정책과 미래 세대를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이는 모두 1천300만 도민을 위한 자부심과 믿음, 그리고 존경심에서 발현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적과 같은 법원의 판단이 내려져 하루 빨리 정상화된 민선 7기 경기도의 미래 비전을 보고 싶은 것은 나만의 욕심일까. 김규태 정치부 차장

[지지대] 공짜에는 대가가 따른다

2007년 대선 때다. 결혼 수당 1억 원, 출산 수당 3천만 원, 주택자금 2억 원 무이자 지원, 전업주부수당 월 100만 원 지급, 만 65세 이상 노인 연금 70만 원. 1천300조 가계부채 무이자 융자 전환. 어느 후보의 공약 일부이다. 어찌 보면 황당한 공약이었지만 일부 청년들은 이참에 결혼하고 주택도 마련할 수 있는 절대적 찬스(?)라며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월급쟁이도 동료들과 커피 한 잔을 마시면 으레 대선후보 공약을 얘기하며 주택 담보대출 부담을 덜 수 있는 기회라며 담소를 나눴다. 평생 주택 대출 갚기에 허리가 굽을 투명 지갑의 직장인 비애를 벗어나고픈 바람인지도 모른다. 웃픈현실이 그대로 반영됐지만, 당시 유권자 사이에서는 황당하다면서도 웃음을 짓게 한 공약으로 기억된다. 결과는 낙선. 꿈이 현실이 된다지만 그 공약이 현실로 이뤄진다고 예상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하지만, 지금도 심심치 않게 회자하고 있으니 참 파격적이긴 했나 보다. 2018년 6.13 지방선거(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졌다.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이었다. 광역ㆍ기초단체장, 광역ㆍ기초의원까지 싹쓸이했다. 자유한국당이 시대의 흐름과 국민정서를 읽지 못한 탓이다. 선거결과에 국민은 대한민국이 바뀔 것이다며 환호했다. 이에 호응하듯 지자체장마다 복지예산을 대폭 증액하고 분야별로 복지 정책을 쏟아냈다. 반값 대학등록금, 청년배당, 청년수당을 넘어 농민 수당까지. 지자체장과 의원들은 마치 경쟁을 하듯 앞다투어 새로운 정책을 내놨다. 주민들도 타지자체의 복지정책을 비교하며 자신의 지역구 의원과 단체장을 평가한다. 복지사회 실현은 국가와 지자체의 가치이자 당연한 몫이다. 정책이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다. 과잉정책에 따른 재원을 어찌 마련하는가 하는 문제다. 세상에 공짜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다. 오죽하면 우리나라 속담에 공짜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말이 있을까. 한번 집행된 복지예산은 단체장이 바뀐다 해도 멈출 수가 없다. 2015년 전 세계 이슈가 됐던 그리스 경제 파탄의 주 원인 중 하나가 무리한 복지정책이었다. 공짜에는 대가가 따른다. 그리스를 반면교사(反面敎師)해야 할 이유다. 김창학 경제부장

[지지대] 어버이날 선물-‘취업’

취준생 앞에 느닷없이 영상이 켜진다. 내가 여기서 거리가 멀다 보니까. 늘 걱정만 할 뿐이지, 가보지도 못해요. 이불을 두껍게 덮고 자는지, 얇게 덮고 자는지. 마음이 많이 아프고. 또 다른 엄마의 모습도 이어진다. 우리 아들에게 가장 미안한 것은, 대학 1학기 때 알바하면서 등록금 모으면 2학기 시작하고, 그런데도 아들아, 힘들지라는 말 한마디를 못했어요. 그게 제일 미안해요. 보는 취준생들이 모두 눈물을 쏟아낸다. ▶아버지는 벙어리다. 딸을 대신해 면접장에 들어선다. 답변 대신 동영상을 튼다. 취준생 딸이 찍어둔 모습이다. 마지막 질문이다. 10년 뒤 자기 모습은 어떨 것 같나요. 영상 속 딸이 답한다. 이 회사에 합격해 있을 겁니다. 돈도 많이 받고. 하지만, 이내 운다. 그런데 아빠, 아빠가 이 영상 볼 때쯤 난 아마, 아빠 곁에 없을 거 같애. 아빠 미안해. 딸의 마지막이다. 아빠가 눈물로 면접관에 인사한다. 고마스니다. 고마스니다. ▶누구의 엄마인지 중요하지 않다. 누구의 딸인지 중요하지 않다. 취준생을 둔 모든 엄마들의 얘기다. 직장을 못 구한 모든 젊은이들의 얘기다. 취준생 앞 엄마들은 스스로 죄인이다. 뒷바라지를 못해서라고 자책한다. 그런 엄마 모습에 취준생들도 슬프다. 낡아 늘어진 옷소매로 눈물을 닦는다. 보는 이들의 가슴까지 메어진다. 취업을 했더라도 옛 기억에 가슴이 아려온다. 언제부턴가 유튜브 앞에서 슬퍼지는 우리의 모습이다. ▶3월 말, 청년 실업률 10.8%다. 47만 3천명이 취준생이다. 90만쯤, 혹은 그 이상이 그들의 부모다. 대한민국 청년과 부모들이 처한 현실이다. 유로존의 3월 실업률은 7.7%였다. 2008년 이후 최저라고 한다. 독일(3.2%), 네덜란드(3.3%), 체코(1.9%)의 청년이 모두 우리보다 낫다. 아들, 미안하다에 우는 젊은이, 아빠, 미안해에 우는 부모가 모두 우리만의 모습이다. 감동이라는 표현도 차라리 사치다. 고통이고 안타까움이다. ▶어버이날이다. 받고 싶은 선물 순위가 매겨진다. 현금, 전화, 편지 순이다. 받기 싫은 선물 순위도 있다. 책, 케이크, 꽃다발 순이다. 꽃으로 퉁 칠 생각 마라라는 소리도 그래서 나왔나 보다. 취준생 47만3천명은 현금을 선물 할 수 없다. 90여만 부모들은 현금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 청년들과 부모들이 하고 싶고, 받고 싶은 선물은 하나다. 엄마 나 합격했어요라는 전화 한 통이다. 우리 애가 취직했어요라 소리칠 소식이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가족이란?

아버지가 되고 싶은 남자가 있다. 엄마가 되고 싶었던 여자도 있다. 이들은 남편과 자식에게 버림받고 혼자 사는 할머니의 연금을 노리고 그 집에 빌붙어 산다. 생계를 위해 좀도둑질을 일삼고, 심지어 어린아이들에게 도둑질을 가르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어느 가족(원제 좀도둑 가족)은 친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데려다 키우는 어른들이 가족을 이루며 살아가는 이야기다. 어느(날 문득) 가족(이 된 사람들). 어디선가 모인 6명의 가족은, 어떤 사연으로 어떤 식으로 함께 살게 됐는지 막내 소녀를 제외하고는 보여주지 않는다. 사회 통념으로 보면 그들은 가족인 척하는 가짜 가족이지만, 버림받은 가짜들끼리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진짜(혈연관계)보다 더 진짜 같은 가족이 돼간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가족은 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는 관계이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가족은 불가항력이다. 어떤 이는 가족 안에서 따뜻함과 행복을 느끼기도 하지만, 어떤 이는 가족 때문에 힘들고 괴롭고 불행하다. 어린이날인 5일 새벽 시흥의 한 농로에서 30대 부부와 4살, 2살 자녀 등 일가족 4명이 렌터카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문이 닫힌 차량 안에서 번개탄이 발견된 것으로 미뤄 일가족이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유서는 없었으나 부채 때문에 어려움을 겪어왔다는 유족 진술로 보아 연관성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지난달 말에는 의붓아버지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살해돼 저수지에 버려진 12살 소녀의 죽음이 세상을 비통하게 했다. 소녀의 친모는 재혼한 남편을 도와 딸을 살해한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중학교 1학년이었던 소녀는 친부의 폭행과 계부의 성적 학대에 시달렸다. 가족은 그녀에게 고통만 안겼고, 가족에 의해 살해까지 당했다. 아동학대 사례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01년 2천105건이었던 아동학대는 2014년 1만건을 넘어섰고, 2017년에는 2만2천367건으로 늘었다. 학대로 숨진 아동은 2001년부터 2017년까지 총 216명에 달한다. 놀라운 것은 아동학대 행위자 70% 이상이 부모라는 점이다. 아이를 인격체로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사회의 기초단위인 가정이 황폐화되고 있다. 경제위기와 이혼, 가정폭력 등 다양한 요인으로 가족 해체가 가속화하고 있다. 가족윤리가 바닥에 떨어져 패륜 범죄가 심각한 사회병리 현상이 된 지 오래다. 해마다 5월이면 이런 문제를 걱정하지만 나아진 것이 없다. 건강한 가정 없이 건강한 사회는 없다. 가족? 어렵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노동·경영계 모두 웃을 수 있는 산안법

작년 12월 홀로 야간 순찰을 하다 변을 당한 태안 화력발전소의 하청노동자 故김용균 청년. 비정규직이던 24살 청년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면서 대한민국은 다시 한 번 안전 후진국의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많은 변화가 시도됐다. 가장 큰 틀은 이른바 김용균 법으로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개정이다. 산업 현장의 안전규제를 대폭 강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최근 시행령 개정안이 입법예고되면서 법안이 공개됐다. 내년 1월부터 전면 시행된다. 그런데 이 산안법 개정안을 두고 경영계가 크게 2가지 문제를 제기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중대재해 발생 시 작업중지 명령을 내리는 구체적 기준이 마련되지 않아 감독관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작업중지가 지속될 것이란 우려와 작업중지 해체를 요청하려면 작업 근로자 과반수의 의견을 청취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어 자칫 노사 갈등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이다. 노동계는 노동계 나름대로 불만이다. 개정안의 도급 제한ㆍ승인 업종 범위가 너무 좁아서 별로 달라질 게 없는 법이라는 얘기다. 현 개정안대로라면 김용균 청년이 일했던 화력발전소도 포함되지 않는다. 원청의 안전 책임을 강화한 건설 기계 종류도 사고가 빈번한 지게차와 덤프트럭 등은 빠졌다. 지금 이 시간에도 각종 현장에서 발생하는 산업재해로 수많은 근로자가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당하고 있다. 현 정부는 지난 2017년부터 오는 2022년까지 매년 산업재해 사망자 수 절반 감축을 목표로 공격적인 산업재해 예방 대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사망자 수는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더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임서정 고용노동부 차관은 예고도 없이 지난달 말 고용노동부 경기지청을 찾아 유관기관, 현장 관계자와 머리를 맞대기도 했다. 내년부터 산안법이 시행돼 사고가 났다 하면 며칠씩 공장을 세워야 할 판이네. 가뜩이나 제조업 경기가 바닥을 치는데 이제는 정말 공장 문을 닫아야 할 시기가 온 것 같아. 우리 사회에 제2의 김용균은 다시는 나와서는 안 된다. 또 30여 년간 건실하게 제조업을 일궈온 중소기업 K 대표의 한숨 섞인 말도 흘려 들어서는 안 된다. 노동계와 경영계 모두 웃을 수 있는 산안법 제정이 이토록 어렵단 말인가. 권혁준 경제부 차장

[지지대] 메이데이(May Day)

열악한 노동환경과 적은 보수에 시달리던 미국의 노동단체는 8시간 노동 실현을 위한 총파업을 결의한 후 1886년 5월1일을 1차 시위의 날로 정하고 파업에 돌입했다. 이틀 후 3일 시카고에서 21만 명의 노동자와 경찰이 충돌하면서 유혈사태가 벌어졌다. 이후 1889년 파리에서 열린 창립대회는 이를 기념하고자 5월1일을 △기계를 멈추자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투쟁을 조직하자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하여 노동자의 권리 쟁취를 위해 동맹파업을 행동하자는 세 가지 연대결의를 실천하는 날로 선언했다. 이를 계기로 1890년 5월1일 첫 메이데이 대회가 개최됐고, 이후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5월1일 메이데이를 기념해 오고 있다. 한국은 1923년 5월1일 조선노동총연맹이 2천여 명의 노동자가 모인 가운데 노동시간 단축, 임금 인상, 실업 방지를 주장하며 최초의 행사를 개최했다. 1945년 해방 이후에는 조선노동조합 전국평의회의 주도 하에 노동절 기념행사가 열렸다. 정부는 1958년부터 대한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의 전신) 창립일인 3월10일을 노동절로 정해 행사를 치러오다 1963년 노동법 개정 과정에서 그 명칭을 근로자의 날로 바꾸어 기념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1964년에는 미국처럼 5월1일을 법의 날로 정하기도 했다. 이후 노동단체들은 근로자의 날 의미가 왜곡되고 그 명칭마저 바뀐 것에 반발, 5월1일 노동절을 되찾기 위한 노력과 투쟁을 계속했다. 그 결과 문민정부가 들어선 1994년부터 근로자의 날은 3월10일에서 다시 5월1일로 변경됐으나, 그 명칭은 노동절로 바뀌지 않고 근로자의 날 그대로 유지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미국에서 130년 전에 투쟁했던 8시간 노동 시간 실현이 대한민국에서는 주 52시간 시행으로 지금에야 이뤄지고 있다. 세계 노동절 129주년인 1일 전국 각지에서 노동자의 권리 향상과 근무 환경 개선을 촉구하는 등의 집회 및 행사가 열렸다. 노동자의 권리 향상과 근무 환경 개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노동자가 너무나 많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지도부는 대기업 노조와 거대 공공노조 대표들이 장악하고 있다. 진짜 힘없는 노동자들은 얘기할 곳도 항변할 곳도 없다. 메이데이(May Day)는 국제적 긴급 구호 신호로도 사용된다. 메이데이는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는 힘 없는 노동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날이어야 한다. 최원재 문화부장

[지지대] 술집 말고 집술

집술-家酒- 주당들이 늘고 있다. 술집은 돈 날리고 몸 버린다. 집술이 돈 아끼고 몸 챙기는 길이다. 일찍 들어오라는 가족의 독촉도 없다. 눈치 봐야 할 윗사람도 없다. 통계청 자료도 집술 증가를 증명한다. 주점의 서비스업 생산지수는 최저다. 대신 가계의 주류 소비지출이 역대 최고다. 안주류 판매도 1년 새 급증했다. 육포가 25%, 자연 치즈가 21.3% 늘었다(이마트). 족발(25%), 튀김류(17.1%)도 늘었다(롯데마트). ▶김치쪼가리에 깡술-이 말도 옛말이다. 제법 품격 있게 차려 먹는다. 안주 레시피가 유행이다. 가라아게(닭튀김)는 일명 국민집술 안주로 통한다. 베이컨 숙주 볶음도 인기다. 5분 만에 만들 수 있다. 와인에 곁들이는 멜론 프로슈토도 있다. 멜론에 감아 먹는 돼지다리 안주다. 소주 안주로는 나가사키 짬뽕이 있다. 사골육수와 라면 면, 새우, 청경채 등이 소개된 재료다. 가히 황제 술상이다. ▶참이슬 출고가격이 6.45% 오른다. 처음처럼도 오를 듯하다. 2016년에도 참이슬을 따라 울렸다. 회사 측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예상되는 슈퍼마켓 가격은 1천500원이다. 기존보다 100원 오른 가격이다. 파장이 큰 곳은 식당이다. 현재 소주의 식당 가격은 4천원이다. 이게 1천원 오른 5천원이 될 듯하다. 이미 5천원을 받는 곳도 많다. 6천~8천원까지 받는 고급 식당도 있다. 소주(燒酒)가 아니라 금주(金酒)다. ▶맥주 가격도 오를 전망이다. 하이트와 클라우드가 이미 예고했다. 맥주의 현재 식당 가격은 4천~5천원이다. 직장인들이 가볍게 여겼던 퇴근 술자리가 무거워졌다. 1만원짜리 소맥(소주+맥주)시대다. 통닭집 회식이 안주 가격보다 술값 부담이 크다. 통닭 값 2만원인데 술값만 3~4만원 나온다. 지갑 얇은 직장인들의 갈 곳이 사라졌다. 해답은 슈퍼마켓이다. 1천500원 소주와 2천200원 맥주가 답이다. ▶담뱃값 인상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금연 열풍도 오래가지 못했다. 어디서 피우든 지출은 4천500원이다. 그런데 소주값은 다르다. 술집 소주는 5천원, 집술 소주는 1천500원이다. 선택할 여지가 확실하다. 소주값 인상이 많은 것을 바꿀 것 같다. 유행하던 집술에 더 가속도가 붙을 것 같다. 적응만 하면 나름의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일 수 있다. 다만, 술에 불호령 내는 배우자가 있는 직장인들에겐 예외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아이돌보미

서울 금천구에서 밥을 잘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14개월 된 영아의 뺨을 때리거나 머리채를 잡는 등의 학대 혐의로 50대 아이돌보미가 지난 8일 구속됐다. 이 여성은 정부에서 지원하는 맞벌이 부부의 아이돌보미로 일하면서 2월17일부터 3월13일까지 한달여간 30회 이상 학대를 했다. 많게는 하루에 10번까지 영아를 폭행했다. 이같은 사실은 피해 부모가 집안에 설치한 폐쇄회로(CCTV)를 통해 확인됐다. 아이돌보미를 고소한 부모는 아이가 수저를 보면 뭐든 잘 안먹으려고 한다. 밥을 먹는 시간에 자기 손으로 자기 뺨을 내리친다고 말했다. 상습적 폭행에 충격을 받은 부모는 지난달 아이돌보미 영유아 폭행 강력 처벌 및 재발방지안 수립을 부탁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학대 장면이 담긴 CCTV 영상은 국민적 공분을 샀다. 아이돌보미의 영유아 학대 사건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10월에는 30대 베이비시터가 생후 15개월 된 여아를 열흘간 식사를 제대로 주지 않고 수차례 폭행해 결국 숨지게 한 사건도 있었다. 이 여성은 18개월 된 남아를 뜨거운 물에 밀어 넣어 심각한 화상을 입히고, 6개월 된 여아의 코와 입을 틀어막고 욕조에 넣은 뒤 휴대전화로 촬영하는 등 엽기적 행각을 벌였다고 검찰이 밝혔다. 금천구 따귀돌보미 사건의 후속 대책으로 정부가 아이돌보미 채용시 인적성 검사를 실시해 부적격자를 걸러내기로 했다. 표준 면접 매뉴얼을 마련하고, 면접시 아동학대 예방이나 심리관련 전문가를 참여토록 할 방침이다. 아동학대 예방교육도 강화하고, 현장실습 시간도 10시간에서 20시간으로 늘린다. 또 아이돌보미의 근무태도와 활동 이력 등을 담은 통합관리시스템을 구축해 필요하면 부모에게 정보를 제공한다. 여성가족부가 26일 발표한 안전한 아이돌봄서비스를 위한 개선대책이다. 하지만 허점이 많아 실효성이 의문시 된다. 자필시험으로 인성 평가가 부적절할 뿐 아니라 전문 인성시험 문항도 개발되지 않은 상황에서 내달부터 적용한다니 제대로 될까 싶다. 아이돌보미 채용시 CCTV 설치에 동의한 사람을 우선 배치한다는 계획도 탁상공론 같다. 정부 대책이 아이돌보미의 자격 검증과 처벌 강화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고, 아이돌보미의 처우개선은 소홀하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 지원 아이돌보미보다 10배나 많은 민간 베이비시터는 관리 사각지대라는 점도 문제다. 영유아를 돌보는 직업 특수성을 감안해 선진국처럼 민간 베이비시터에 대한 정부의 체계적 관리가 필요하다. 한 달여만에 급조된 정부 대책, 이래저래 보완할 게 많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日 ‘레이와 시대’

아키히토 일왕이 30일 물러나고 나루히토 왕세자가 5월 1일 즉위한다. 이에 따라 일본은 30년간 계속된 헤이세이(平成ㆍ현재 연호) 시대가 저물고 레이와(令和)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일본에선 한 일왕의 재위기를 규정하는 연호(年號)를 서기 연도와 함께 생활 속에서 광범위하게 쓴다. 연호 사용은 세계에서 유일하다. 연호 제도 때문에 일왕이 바뀌는 것은 일본인들에게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가 바뀐다는 의미를 갖는다. 일본은 30일과 5월 1일 이틀에 걸쳐 상징 덴노(象天皇)로 불리는 일왕의 교대의식을 국가행사로 치른다.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 일왕의 즉위는 종신 재위로 인해 상중(喪中) 분위기와 축제 분위기가 겹쳤지만, 이번엔 아키히토 생전에 왕위를 물려주게 돼 축제 분위기다. 일본 역사에서 202년 만의 생전 퇴위다. 곧 물러나는 아키히토는 1933년생으로 올해 12월 만 86세가 된다. 그는 태평양전쟁 등 침략전쟁의 책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히로히토 왕(1901~1989)의 맏아들이다. 1989년 즉위했고 125대 왕이다. 아키히토는 1995년에 원자폭탄 피폭지인 나가사키와 히로시마를 찾았고 중국, 필리핀 등 일본이 저지른 전쟁으로 피해를 본 나라를 방문했다. 그는 전쟁에 대한 반성과 한국과의 인연을 거론한 적이 있다. 2001년에 내 개인으로서는 간무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續日本記)에 쓰여 있는데 대해 한국과의 연(緣)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2005년에는 사이판의 한국인 전몰자 위령지인 한국평화기념탑에 참배했다. 2012년에는 왕비와 함께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한 것으로 일본 매체가 보도한 바 있다. 성사되지는 않았다. 지난해 8월 15일 일본의 2차대전 패전일에 열린 희생자 추도식에서 아키히토 왕은 과거를 돌이켜보며 깊은 반성이라는 표현을 썼다. 지난해 85세 생일 기자회견에서는 헤이세이가 전쟁이 없는 시대로 끝나게 된 것에 안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직접 사과 등 파격적 수준의 과거사 관련 반성 및 사과는 상당히 미흡했다. 새롭게 왕위를 이어받게 될 나루히토 왕세자는 1960년생이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태어난 전후세대로 그가 어떤 행보를 보여줄지 주목된다. 재임 중 전쟁이 없었던 부친의 연호 헤이세이(平成)의 평(平)을 자신의 연호 레이와(令和)의 화(和)로 완성해 나갈 것인가가 관건이다. 한 시대가 가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일본은 기대와 욕구가 꿈틀거린다. 지금, 우리는?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불부터 끄자

지난 22일 오후 6시께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리 DMZ 내 북한지역 임야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 불은 DMZ 내 450㏊에 달하는 산림을 태우고서 약 21시간이 지난 23일 오후 3시께야 진압됐다. 이번 화재를 빠르게 진압하지 못한 것은 DMZ의 경우 UN군사령부의 관할 구역인 탓에 화재가 발생한다 해도 비행 승인을 받지 않으면 소방헬기가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산림청은 화재 발생 후 12시간가량이 지난 23일 오전 6시께가 돼서야 UN군사령부의 승인을 얻어 헬기를 현장에 투입할 수 있었다. 그 사이 인근 주민들은 DMZ 내 지뢰가 화재로 인해 폭발하면서 발생하는 폭발음을 들으며 두려움에 떨어야 했고, 지자체와 소방당국, 군 당국은 DMZ가 불타는 것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분단 이후 민간인의 출입이 전면 통제된 탓에 각종 멸종 위기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는 곳. 한반도의 생태계 보고로 불리는 DMZ가 화재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매년 10여 건의 화재가 DMZ 내에서 발생해 수백 ㏊가 소실되고 있지만 화재 발생 시 신속하게 소방헬기를 투입할 수도 없고, 소방헬기가 투입되더라도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지역으로 이동할 수 없어 북한지역 화재에 대해서는 손도 대지 못한다. 불길이 북한지역을 넘어 남측으로 내려와야지 비로소 진압에 나설 수 있다. 환경단체들이 DMZ 화재 관련해서는 정치적 관점이 아닌 안전ㆍ재난 분야로 접근해 남북이 신속히 소통할 수 있는 핫라인을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이유다. 최근 한반도에는 그 어느 때보다 남북 화해무드가 조성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정부는 분단 이후 단 한 번도 민간에 개방되지 않았던 DMZ를 개방, DMZ 평화둘레길 조성계획을 발표했다. 경기도 역시 DMZ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켜 자연생태환경을 보호하겠다는 방침이다. 둘레길을 만들고,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다 하더라도 불타 사라지면 그만 아닌가. 다른 그 어떠한 것보다 DMZ 화재 진압을 위한 남북 핫라인 구축이 시급하다. 급한 불부터 끄자. 이호준 사회부 차장

[지지대] 백색가루의 유혹 ‘마약’

1800년대 중반 중국에는 아편이 성행했다. 당시 영국에서 중국의 비단차도자기에 대한 인기는 대단했다. 이에 영국의 돈은 끊임없이 청나라로 흘러갔다. 영국은 무역적자 해소를 위해 결국 아편을 몰래 청나라에 팔았고, 전쟁으로까지 이어졌다. 이른바 아편전쟁이다. 이후 중국은 홍콩을 영국에 넘기는 등의 불평등 조약인 난징조약까지 체결케 된다. 마약 탓에 전쟁이 발발함은 물론이고 굴욕적인 조약까지 맺는 사건(史件)이 벌어졌지만 2019년 대한민국 역시 마약 문제로 술렁대고 있다. 마약 파문이 연예계에서 재벌가까지 퍼지는 모양새다. 우선 클럽 버닝썬 VIP인 부유층 자제들이 마약 일탈과 성범죄를 저질렀고, 공권력이 그 뒤를 봐줬다는 의혹이 수사로 이어지고 있다. 버닝썬에 시선이 집중된 이유는 승리라는 연예인이 연루된 탓이다. 또 다른 강남 대형클럽에서도 마약을 하는 일은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황하나 사건도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남양유업 창업주의 외손녀인 황씨는 2015년에 마약으로 적발됐는데 무혐의를 받았고, 2018년엔 경찰에 황씨 마약 제보가 들어왔는데 검찰이 압수수색 영장을 두 번이나 기각해 수사 진행이 안 됐다. 다만 이번엔 구속 상태에서 수사 중이다. 이후 논란은 황씨의 한때 피앙세였던 박유천에게 옮겨졌다. 마약은 절대하지 않았다며 기자회견까지 가진 박유천은 국과수 감정 결과 양성반응이 나왔다. SK그룹과 현대가 재벌 3세도 마약 투여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이뿐이 아니다. 가정주부나 학생 등 일반인까지 마약이 퍼져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온라인에서는 마약을 표현하는 은어가 넘치며 시중에 쉽게 유통되는 모습이다. 실제 트위터를 찾아보면 마약 생산자유통자공급자를 뜻하는 가스배달꾼의 부탁으로 공장 일을 마무리했다는 글, 대마물뽕 등 작업제를 판매한다는 글을 찾는 것이 어렵지 않다. 검거된 가스배달꾼(밀조밀수밀매사범 등 공급사범)은 2016년 4천36명, 2017년 3천955명, 2018년 3천292명 등으로 3천명이 훌쩍 넘는다. 이들로부터 압수한 양만 해도 평균 298kg 상당이다. 2015년도부터 우리나라는 이미 마약청정국 자격을 잃은 셈이다. 마약 중독은 투약자뿐만 아니라 그 가족이나 연인에게도 고통과 피해가 미친다. 한때 천하를 호령했던 나라까지 휘청거리게 만들었던 역사적 교훈을 보라. 이명관 사회부장

[지지대] 직장인의 입조심

직장 내 괴롭힘이 법률의 지배를 받는다. 개정 근로기준법의 7월 시행이다. 법 제76조의 2가 취지를 설명한다. 사용자 또는 근로자는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ㆍ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동조 3은 조치 사항을 열거했다. 대체로 사용자가 갖는 조사 권한과 조치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양진호 회장이 떠오른다. 한국미래기술의 대표다. 직원을 폭행하는 영상이 떴다. 전직 남자 직원을 구타했다. 직원들에게 닭을 도살시키는 장면도 있다. 소름 돋는 그의 행위에 국민이 공분했다. 마커그룹 고 송명빈 대표의 영상도 공개됐다. 직원을 폭행하는 듯한 모습이 찍혔다. 송 대표가 조사 과정에서 자살했다. 우리 회사 양진호 우리 회사 송명빈이 곳곳에서 속출했다. 법 제정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실제 법은 구체적이다. 금지하는 행위의 범위가 대단히 폭넓다. 취업규칙에 반영토록 예를 적시해놨다. 눈여겨봐야 할 게 말이다. 개인사에 대한 소문을 퍼뜨리는 등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를 벌하도록 적시했다. 개인 연애사가 여기 포함된다. 다른 사람의 연애사는 흥미롭다. 누가 누구와 깊은 관계라더라. 아무개가 불륜이라더라. 뒷담화의 단골 소재다. 7월부터는 처벌과 징계 대상이다. ▶조롱하는 행위도 처벌 대상이다. 관계 기관에 접수된 사례가 많다. 학벌을 가지고 자주 농담을 한다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발언을 한다 듣기 싫은 별명을 반복해 부른다. 일상생활에 많이 젖어든 행위다. 신고된 사건 가해자들의 답변이 한결같다. 늘 하던 농담이었다 기분 나빠 하는 줄 몰랐다. 죄가 되는 줄 몰랐다는 취지다. 무의식중에 이뤄지는 직장 내 언어다. 7월부터는 처벌 대상이다. ▶양진호 회장은 구속됐다. 형법상의 폭행죄가 적용됐다. 고 송 대표도 경찰에 입건됐었다. 역시 형법이 적용 법규였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아니었다. 과도한 폭언과 폭행은 어차피 처벌받았다. 그러다 보니 이런 법까지 만들어야 하냐는 지적도 있다. 대신 법이 시행되면서 시끄러워질 영역이 생겼다. 말이다. 지어내는 말 조롱하는 말이 처벌받게 됐다. 직장인들에게 다가온 입 조심 시대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고려인 독립유공자 유해 봉환

이제야 모시러 왔습니다 카자흐스탄을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21일(현지 시각) 수도 누르술탄(옛 아스타나)에서 독립운동가 계봉우 선생과 황운정 선생 부부의 유해를 봉환했다. 문 대통령은 유해 봉환식을 주관하며, 추모사에서 네 분을 모시는 것은 대한민국 정부가 당연히 해야 할 임무이며 독립운동을 완성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머나먼 이국땅에서 생을 마감하신 독립운동가들의 정신과 뜻을 기리고, 최고의 예우로 보답하겠다고 했다. 카자흐스탄에 안장된 독립유공자의 유해가 국내로 봉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는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카자흐스탄 애국지사 봉환 사업을 추진해 왔다. 함경남도 영흥 출신인 계봉우 선생은 한글학자이자 역사학자로 1919년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북간도 대표로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했다. 1937년 연해주 고려인의 중앙아시아 강제이주 이후에는 조선문법 조선역사 등을 집필했다. 함경북도 온성 출신의 황운정 선생은 연해주에서 무장투쟁을 했다. 정부는 계봉우, 황운정 선생에게 1995년과 2005년 건국훈장 독립장과 건국훈장 애족장을 각각 추서했다. 정부는 두 애국지사와 배우자 등 4기의 유해를 대통령 전용기 2호로 국내로 모셨다. 유해는 국립묘지에 안장된다. 대한민국의 오늘이 있기까지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다.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등에 살았던 고려인들 또한 일제강점기 혹독한 수난 속에서 항일독립운동에 앞장섰다. 하지만 고려인들은 그동안 모국의 관심과 지원을 크게 받지 못했다. 고려인의 역사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1937년 소련의 스탈린은 연해주 일대에 거주하던 고려인들이 일본의 간첩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17만명을 화물열차에 태워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시켰다. 이때 많은 사람이 추위와 기아로 숨졌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소련의 적성국(일본) 출신이라는 이유로 거주지를 제한당하는 등 차별과 억압이 심했다. 고려인의 공민권 획득은 1956년에야 이뤄졌다. 현재 고려인은 50여만명에 달한다. 우즈베키스탄에만 18만명이 산다. 문 대통령이 중앙아시아 3개국을 순방하면서 특별히 고려인을 챙겼다. 후손들과 만나 고려인 1세대는 모두 애국자이고 독립유공자라고 역설했다. 정부가 31독립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년을 맞아 고려인 1세대 항일독립운동가 예우에 나선 것은 환영할 일이다. 애국지사를 고국에 모시게 돼 다행이다. 정부는 카자흐스탄과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도 추진하고 있다. 독립운동가 한 분 한 분을 기억하는 것은 우리의 긍지와 자부심을 일깨우는 중요한 일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대학생 반값등록금

안산시가 지역 내 대학생들의 반값등록금을 추진한다. 윤화섭 안산시장은 17일 기자회견을 열고 요즘 대학생들은 비싼 등록금과 생활비 마련에 학업과 미래 설계에 전념하지 못하고 있다며 전국 시(市) 중 최초로 안산시 학생 반값등록금 지원 조례를 제정해 소득수준과 관계없이 관내 모든 대학생에게 본인 부담 등록금의 50%를 지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전국의 지자체 중에 전북 부안군과 강원도 화천군이 일부 대학생을 대상으로 등록금의 절반이나 전액을 지원하고 있다. 재산ㆍ소득과 관계없이 모든 대학생에게 지원하는 곳은 안산시가 처음이다. 안산에 살면서 다른 지역 대학에 다녀도 상관없다. 안산시의 전체 대학생은 2만300여명이다. 시는 올해 하반기부터 장애인ㆍ저소득층 가정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우선 지원하고, 재정 여건에 맞춰 4단계로 나눠 모든 대학생으로 점차 확대할 계획이다. 시는 올 하반기엔 29억원이, 추후 모든 대학생의 반값등록금 지원엔 335억원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했다. 지원금은 한국장학재단 등 다른 기관에서 받는 장학금 외에 본인부담금의 50%이다. 연간 지원금을 최대 200만원으로 정했다. 안산시의 반값등록금은 수혜자 및 예산 규모에서 파격적이다. 이를 두고 찬반 논란이 거세다. 안산의 대학생을 둔 가정에선 크게 환영할 것이다. 반값등록금을 공약했던 정의당도 적극 환영 입장을 밝히며, 전국의 대학생으로 확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지방자치단체의 현금 살포 포퓰리즘이 극에 달했다며 비판이 거세다. 안산시가 연간 335억원 지원은, 올해 본예산 2조2천164억원의 1.5%에 불과하다고 했지만 인건비 등 고정지출을 제외한 가용재원(올해 2천900억원)의 12%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안산시 재정자립도가 57.8%로 전국 평균(53.4%)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고, 지역경제를 지탱하는 반월공단이 심각한 경영난을 겪는 상황에서 정책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대학을 못 갔거나 안 간 사람들에게 세금을 걷어 대학생 등록금을 지원하는 게 공정한가를 묻는 이들도 있다. 부자들까지 무조건 지원에 대해선 거부감이 크다. 안산시의 반값등록금 배경엔 인구감소 문제도 있다. 시의 내국인 인구가 2013년 71만여명에서 지난해 말 기준 66만여명으로 5만3천여명(7.4%) 줄어 젊은층 유입을 기대하는 것이다. 물론 일시적 유입 효과가 있겠지만 지원만 받고 다른 곳으로 이사가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현금복지로 인구 늘리기는 한계가 있고, 근본 해결책이 아니다. 무조건 공짜복지, 현금복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경기꿈의학교

▶기자는 초등학교 3학년 때 꽃집 주인이 되고 싶었다. 그 다음엔 떡집 주인이 꿈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10살의 기자는 예쁜 꽃과 말랑말랑한 떡이 좋았다. 그런데 담임은 엄마와 상의해서 다른 꿈을 찾아오라고 했다. 이상했다. 선생님과 어른들은 분명 여러분 꿈을 가지세요라고 말했는데 내 꿈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통용되지 않았다. 내 꿈이 의사, 대통령, 과학자 등 두 세 글자의 꿈이 아니라 네 글자라서 그랬을까. 이후 기자는 계속 꿈꿔야 하는 이유 대신 꿈 깨는 소리를 들으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초등학교 3학년 딸 아이의 꿈의 변천사는 그 스펙트럼이 넓다. 바나나부터 초콜릿, 삼겹살, 요리사, 패션디자이너까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종착점이 어디일까 참 궁금하다. 아이의 꿈이 무엇이든 어른 시선에서 깨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래서 무엇을 하든, 무엇이 되든 네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라고 말한다. 최근 종영한 JTBC 스카이캐슬의 예서 엄마가 들으면 아마 기함을 할 것이다. ▶최근 아이가 말을 타고 싶다고 했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탄 말 3마리가 약 36억 6천만 원이라고 하는데 기자엄마는 사설 승마장 50분 체험비 10만 원을 계산할 때 손이 부들부들 떨린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2019년 경기꿈의학교 문을 두드렸다. 지난 4월 5일 오후 2시, 꿈을 찾아 나선 경기도 내 초ㆍ중ㆍ고 학생과 학령기 학교 밖 청소년과 학부모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접속자 폭주로 인해 서버가 다운됐다. 기자는 무려 2시간 도전 끝에 승마프로그램 신청에 성공했다. 경기꿈의학교는 학교 안팎 학생들 꿈을 실현을 위해 스스로 참여하고 기획ㆍ운영하는 학교 밖 학교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꿈 깨는 엄마가 아닌 꿈 키워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면 지금 당장 경기마을교육공동체 홈페이지(http:village.goe.go.kr)에서 우리 자녀들의 꿈을 함께 찾아보자. 강현숙 사회부 차장

[지지대] 마약 김밥

맛있어서 자꾸 먹게 되는 김밥, 떡볶이, 통닭 등 맛있는 음식에 대해 우리는 무심코 마약이라는 단어를 붙여 마약 김밥, 마약 떡볶이, 마약 통닭이라고 불렀다. 아마도 맛있는 음식을 먹어 본 사람들이 음식에 어떤 양념을 넣고 어떻게 조리했는지 모르지만 자꾸 생각나는 것이 마약의 중독성과 흡사한 점을 떠올려 정말 맛있다는 의미로 마약과 비교했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중독성이 강한 마약이라는 단어를 아무렇지 않고 친근하게 사용했다. 그래서였을까? 마약은 이제 먼 해외나 폭력 조직,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우리 주변에서 쉽게 유통된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서울 강남의 유명 클럽 등에서 신종 마약이 유통되는 것이 경찰 조사에서 밝혀지는가 하면 재벌 3세, 아이돌, 귀화한 외국인 등 연예인들의 마약 사건이 연일 이슈가 되고 있다. 마약 사범은 마치 고구마 줄기에 달린 고구마처럼 줄줄이 나오는 형국이다. 마약 투약 혐의로 해외로 추방된 모 연예인은 최근 SNS 글을 통해 현재 활동 중인 연예인과 함께 마약을 했다는 폭로성 글을 올리는 등 웃지 못할 상황까지 연출되고 있다. 마약을 장기간 사용하면 점차 그 양을 늘리게 되고 결국 마약을 투약하지 않으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돼 개인은 물론 사회에 큰 해를 입히게 된다. 문제의 심각성은 마약 사건의 주요 범죄자들이 연예인, 재벌가 2세, 3세 등 공인과 소위 말하는 가진 자들이라는 점이다. 청소년들로부터 인기를 끌었던 연예인들과 재벌가의 마약 투약은 청소년들은 물론 사회 구성원들에게 마약은 해도 괜찮다는 인식을 심어 줄 수 있다. 그동안 마약 사건으로 신문 사회면을 장식하고 나서 다시 대중 앞에서 활동하는 연예인을 우리는 쉽게 접해 왔다. 대마초의 경우 합법화하자는 주장까지 펼치기도 한다. 이러다 마약은 한번쯤 해도 되는 것이라는 인식이 일반화될까 우려된다. 마약 유통은 점점 교묘하고 은밀해지면서 우리 사회에 마약 사범은 더 증가할 수 있는 요인이 많아졌다.이럴 때 일수록 마약에 대한 폐해 등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마약 사범에 대해서는 엄중한 처벌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동안 무심코 사용했던 마약 김밥 이라는 표현도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 이선호 정치부 부장

[지지대] ‘노트르담의 꼽추’

콰지모도는 꼽추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졌다. 노트르담 성당 돌계단이다. 부주교 프로로가 키웠다. 흉측한 모습을 감추고 살았다. 성당의 종을 치는 게 일이었다. 성당 광장에 에스메랄다를 봤다. 춤추는 집시 처녀다. 프로로가 납치해오라고 시킨다. 경비대장 페뷔스에게 발각된다. 콰지모도가 대신 감옥에 갇힌다. 채찍질로 만신창이가 된다. 에스메랄다가 돌봐준다. 이 일로 콰지모도는 그녀에게 모든 걸 바친다. ▶페뷔스가 에스메랄다와 사랑을 나눈다. 이를 염탐하던 프로로가 페뷔스를 죽인다. 에스메랄다가 죄를 뒤집어쓴다. 힘없는 집시 여인의 편은 없다. 교수형을 선고받는다. 콰지모도가 구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그 역시 힘없는 인간이다. 결국, 에스메랄다는 처형됐다. 광장 교수대에 그녀가 매달렸다. 이를 보며 콰지모도가 소리친다. 내가 유일하게 사랑한 사람이다. 세상 부조리를 향한 힘없는 자의 절규다.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 배경은 노트르담 성당이다. 고딕 양식의 종교 건물이다. 높은 도덕성의 상징이다. 주인공이 종탑에서 일한다. 세상을 관조하는 작가의 시각이다. 광장에는 귀족들이 축제를 벌인다. 폭도들이 반란을 일으킨다. 죄수들이 죽어나간다. 인간사 온갖 군상이다. 작가 빅토르 위고의 선택을 짐작할 수 있다. 가증스러운 지도층의 이면, 소외된 인간의 고통, 사라진 국가의 정의. 이를 표현하기엔 더 없는 배경이다. ▶노트르담 성당은 1163년 착공됐다. 완공은 1345년이다. 1790년대 들어 홍역을 치렀다. 프랑스 혁명에 의해 구시대 유물로 규정됐다. 성당의 종은 대포를 만드는 데 쓰였다. 28개의 유다의 왕들은 목이 잘려나갔다. 성당 자체가 철거될 위기에 놓였다. 그러던 1831년, 노트르담의 꼽추가 출간됐다. 빅토르 위고가 말했다. 기념물에는 왕에 대한 기억과 민족의 전통이 모두 붙어 있다. 대대적인 복원이 시작됐다. ▶15일(현지시간) 노트르담 대성당이 불에 탔다. 96m 높이의 첨탑까지 무너져내렸다. 비보를 접하며 꼽아 보는 숫자가 있다. 188년 전에 노트르담의 꼽추가 출간됐다. 그 직후 복원이 시작됐다. 복원부터 화재까지 대략 180년이다. 착공부터 완공까지도 대략 180년이었다. 엮어 넣기인 줄 잘 안다. 그런데도 자꾸 계산을 맞춰본다. 아마도 아쉬움이 커서일 것이다. 위대한 건축물을 잃은 아쉬움, 그와 함께 위대한 작품의 배경이 사라진 아쉬움. 김종구 주필

[지지대] 4·16 ‘그날’ 기억하기

2014년 4월 16일, 그날이다. 인천에서 제주로 가던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하면서 승객 304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일어난 날, 바로 오늘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흐릿해져 가겠지만, 또 다른 많은 사람들 기억 속에선 아직도 생생하고 또렷하다. 기억하자고, 잊어선 안된다고 행동에 나서는 이들도 있다. 그날 세월호에 타고있던 안산 단원고 2학년생 장애진씨는 올해 동남대 응급구조과를 졸업했다. 원래 장래희망은 유치원 교사였으나 세월호 사고로 친구들을 잃은 후 꿈이 바뀌었다. 지난해 응급구조사 자격증을 딴 그녀는 소방공무원이 돼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구하고 싶다고 한다. 그녀는 지난 주말 세월호 5주기 기억문화제에 참석해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노란 리본을 나눠줬다. 영화 생일은 2014년 4월16일에서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참사 이후 남겨진 이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아냈다. 세상을 먼저 떠난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힘겹게 일상을 버텨내고 있는 가족 이야기, 이종언 감독은 그날 이후 삶이 뒤틀린 한 가족의 상처를 통해 관객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참사를 기억하고 아픔을 공감토록 하고 있다. 영화는 지난 8일부터 박스오피스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예술인들은 세월호 참사 5주기 추념전 바다는 가라앉지 않는다를 기획했다. 37팀(명) 예술가가 참여해 안산문화예술의전당과 서울 5개 전시장에서 열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 어머니들의 모습을 그린 흑표범의 Drawing of the MOTHERS, 송상희 영상 신발들, 성남훈 사진 어서 돌아오렴 사랑한다_팽목항 등 아프고 슬픈 작품들이 마음을 흔든다. 한쪽에선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희생자를 기리는가 하면, 또 다른 한쪽에선 관련 시설을 반대하는 이들이 있다. 세월호 참사 기억공간이 서울 광화문광장을 제외하고 지지부진이다. 안산시 화랑유원지에 조성될 추모공원 416 생명안전공원은 봉안시설 유치를 반대하는 일부 주민 반발로 표류하다 2월말에야 조성계획이 마련됐다. 숨진 단원고 2학년 250명이 다니던 교실을 재현한 기억교실 등이 꾸며질 416 민주시민교육원은 9월쯤에야 본격화된다. 팽목항의 기억공간은 진도군이 항구 확장공사에 걸림돌이 된다며 반대해 조성 자체가 불투명하다. 기억공간은 참사 희생자에 대한 기억을 잊지않기 위한 참회와 다짐의 공간이다. 베를린에 홀로코스트 기념비를 세우고, 뉴욕에 타이타닉호 침몰사고 추모 공원을 조성한 것도 같은 이유다. 어찌 세월호 참사를 잊을 수 있겠는가.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후쿠시마 수산물

1986년 4월 26일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에서 원자로 폭발사고가 있었다. 세계 최대 방사능 참사로 수천명이 사망하고 수십만명이 암 발병, 기형아 출산 등 각종 후유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의 일부 지역에서도 낙진이 검출됐다. 사고 발생 33년이 됐지만 체르노빌의 방사능 피해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사고 당시 방사능 낙진에 노출된 어린이들의 발암 위험성을 추적 조사한 결과 피폭량이 많을수록 암에 걸릴 위험이 높고, 수십년이 지난 후에도 발암 위험이 낮아지지 않았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방사성 물질은 눈에 보이지 않고 냄새로도 구분되지 않는다. 사람을 통해, 또는 바람과 물을 타고 다른 지역으로 옮겨갈 수 있다. 때문에 방사성 물질 피해가 언제까지, 얼마만큼 확산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우리가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방사능 대량 유출 사태를 우려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2013년 9월 우리 정부는 후쿠시마현을 포함한 인근 8개 현에서 잡힌 28개 어종 수산물에 대해 수입 금지조치를 내렸다. 방사능 오염 논란이 있는 수산물을 밥상에 오르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 내에서도 후쿠시마 인근 수산물 신뢰도가 높지 않으니 당연한 조치다. 게다가 사고 직후 몇 차례 바다로 흘려보내고도 100만 톤이상 남은 원전 오염수 처리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다. 후쿠시마 등 일본 8개 현의 수산물을 수입하지 않는 나라는 한국, 미국, 중국 등 22개 나라다. 그런데도 일본은 우리나라만 찍어서 수입금지 조치가 부당하다고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 WTO는 지난해 2월 1심에서 일본 손을 들어줬다. 우리 정부는 상소했고, 분쟁대응팀이 적극 대응해 이번엔 승소했다. WTO 상소기구는 지난 11일 한국의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가 타당하다고 판정했다. 무역분쟁의 최종심 격인 상소기구는 한국의 조치들이 일본산 식품에 대한 자의적 차별에 해당하지 않으며 과도한 무역제한도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명태ㆍ고등어 등 후쿠시마 원전 인근 수산물 수입이 앞으로도 전면 금지된다. 정부는 일본산 모든 수입식품에서 방사능이 미량이라도 확인되면 검사증명서를 계속 요구할 방침이다. 그동안 일본산 식품에서 방사능이 검출돼 통관이 거부되는 사례가 많았다. 정부가 쉽지 않은 싸움에서 총력을 다해 대응해 우리 국민 식탁은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방심하면 안된다. 이번 소송을 검역주권을 공고히 하고 수입식품 안전성을 확보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일본은 항상 우리를 노리고 있을 것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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