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엄마 찬스

아이를 키우면서 일을 병행하는 워킹맘들은 가끔 엄마 찬스를 쓴다. 불가피하게 야근을 하게 되거나, 아이가 갑자기 아플 때는 친정엄마 찬스나 시어머니 찬스를 꺼낼 수밖에 없다. 제도적으로는 출산휴가, 육아휴직, 유연근무제 등 선진국 수준의 법적 기반을 갖췄지만 실제 직장에서 맘놓고 쓰기란 쉽지 않다. 엉성한 사회 시스템 탓에 긴급할 때는 엄마 도움이 필요하다. 소위 능력있고 배경있는 사람들은 엄마 찬스를 입시에도 쓴다. 수도권 사립대생이던 A씨는 대학교수인 엄마의 제자들이 쓴 논문에 단독저자로 이름을 올린 경력 등이 인정돼 지난해 서울대 치의학전문대학원에 합격했다. 치과대를 나오지 않아도 치전원 과정을 밟으면 치과의사가 될 수 있어 엄마가 힘을 보탠 것이다. 그러나 지난 3월 교육부에 부정입학 사실이 적발됐다. 서울대 입학고사관리위원회는 7월 A씨에 대한 입학 취소 처분을 의결했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딸 입시 특혜 논란으로 시끄러운 가운데 이번엔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딸에 대한 교육입시를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지난 30일 인사청문회에서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당은 이 후보자 딸이 고3 재학 당시 발간한 책 미, 명문고 굿바이-나는 한국으로 돌아간다와 관련된 의혹을 문제 삼았다. 딸 김모양은 2003년 3월2005년 1월 미국 고등학교를 다닌 뒤 귀국, 2007년 유학 경험을 담은 책을 냈다. 책 추천사는 압둘 칼람 전 인도 대통령과 조영주 전 KTF 사장이 썼다. 이듬해 이 후보자 딸은 연세대에 글로벌인재전형으로 입학했다. 한국당 송희경 의원은 책 출간 과정에서 엄마 찬스가 활용됐다고 지적했다. 송 의원은 자녀가 부모 인맥을 활용해 입시용 스펙을 쌓는 것을 엄마 찬스라고 하는데, 이 후보자 딸은 인도 대통령 추천사 등 엄마 찬스를 여러 번 썼다고 했다. 딸이 이 후보자 지인을 통해 대형출판사에서 책을 낸 점, 이 후보자와 책을 세 차례 공동 집필한 언론사 논설위원이 딸의 책 칭찬 칼럼을 쓴 점을 꼽았다. 이 후보자는 압둘 칼람 대통령의 자서전 불의 날개를 번역한 인연으로 책 추천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후보자는 칼람 대통령 추천사는 내가 도왔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대학이 추천사만 보고 합격시킨 것이라 생각하지 않지만,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처신에 깊이 반성한다고도 했다. 이 후보자 딸 역시 입시 과정이 국민 정서에 어긋난다. 불법이 아닐 지 몰라도 국민들 눈에는 반칙이고 특권이다. 엄마 찬스를 쓸 수 없는 많은 청소년, 청년들은 다시 태어나야 하는거냐며 분노한다. 엄마 찬스를 주지 못하는 부모들은 자녀에게 왠지 미안한 마음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기업 살리는 게 최고 복지

일본 미에현 가메야마(龜山)시는 기업의 운명으로 생사를 오간 상징적인 도시다. 지난 2004년 일본 대표 전자업체였던 샤프가 주력공장을 이곳에 지으면서 가메야마시는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도시로 일순간 떠올랐다. 말 그대로 시골 동네였던 도시는 수많은 근로자가 찾아왔고, 샤프 시로 불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았던 가메야마시의 호시절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2008년부터 샤프의 경영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면서 도시도 덩달아 동반 추락해 죽은 도시로 변하기에 이르렀다. 일본 가메야마시의 사례는 기업이 살면 도시가 살고, 기업이 몰락하면 도시도 몰락하는 궤를 같이한다는 점을 여실히 나타냈다. 최근 우리 기업들의 사정은 어떠한가? 최저임금 인상과 주52시간 노동시간 단축 등 정부 정책을 시작으로 미ㆍ중 무역 전쟁, 일본의 수출 규제 등으로 악재들이 잇따르고 있다. 기업들이 더 큰 보복 조치가 있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 속에 이번에는 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을 파기하면서 더 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물며 대기업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중소기업들은 그야말로 최악의 시기라 할 수 있다. 대기업이 불안해하며 바짝 엎드리면서 행여나 어떤 불이익이 튀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불안과 초조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최근 만나본 도내 중소기업 대표들의 말은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실제 29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기업 경제심리지수는 지난 2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고, 금융위기 직후 수준으로까지 악화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제심리지수는 기업이 인식하는 경기를 보여주는 지표다. 무작정 기업들의 편을 들자는 얘기가 결코 아니다. 기업이 몰락하면 기업이 있는 도시의 지역경제는 파탄이 나고, 나아가 국가 경제도 혼란에 빠지게 된다는 점을 잊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야 한다. 일자리든 성장이든 기업을 살리는 게 최고의 복지가 아닐까. 일본 가메야마시의 교훈을 되새겨봐야 할 시점이다. 권혁준 경제부 차장

[지지대] 검찰의 시시비비(是是非非)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와 관련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를 끌어내리려는 그룹과 그를 옹호하는 그룹 간의 설전이 난무한다. 솔직히 필자는 이 두 그룹 모두 하는 행태가 볼썽사납다. 의혹에 대해 명확하게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리면 될 일 아닌가. 옳은 것은 옳다, 그른 것은 그르다고 하면 될 일이다. 조국 후보자와 관련한 각종 의혹에 대해 사리(事理)를 공정(公正)하게 판단(判斷)하면 되는 것이다. 검찰이 27일 수장이 될지도 모르는 조국 후보자에 대해 전격적ㆍ동시다발적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늦은 감도 있고 시기적으로 검찰의 의도가 불순(?)해 보이기도 하지만 어찌 됐든 조국 의혹에 대해 시시비비를 따져 보겠다고 한다. 검찰은 조국 후보자의 딸 논문 1저자 등재 의혹, 대학원 입시 장학금 수령 의혹과 관련해 단국대와 고려대, 서울대 환경전문대학원과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등을 대대적으로 압수수색했다. 또 조 후보자 어머니가 이사장으로 있는 경남 창원시의 웅동학원에 대해서도 수사를 진행했다. 이와 함께 조국 후보자 가족이 투자한 사모펀드인 코링크프라이빗에쿼티(PE)가 지분을 매입한 가로등 점멸기 업체의 본사도 압수수색 중이다. 검찰 관계자는 본 건은 국민적 관심이 많은 공적 사안이고, 여러 건의 고발이 제기됐으며 제기된 의혹에 대해서 객관적 자료에 토대를 두고 사실 관계를 규명할 필요가 있다며 객관적 자료 확보가 늦어진다면 사실 관계에 대한 진상 규명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 신속한 증거보전 차원의 압수수색이 필요했다고 판단했다. 그 외의 다른 사정은 별도로 고려한 바 없다고 강조했다. 검찰의 의도가 명확하게 무엇인지 판단하기 어렵지만 검찰 관계자의 말처럼 제기된 각종 의혹에 대해 사실 관계를 명확히 규명해 주길 바란다. 사실 조국과 관련해 문제가 되고 있는 의혹들을 청와대가 모르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의혹이 명확히 가려지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 검찰 개혁에 나서겠다는 조 후보자에 대한 수사 결과가 언제,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검찰이 그들 조직의 수장 후보자에 대한 칼자루를 제대로 휘두르길 바란다. 옳은 것은 옳다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 하고, 그렇게 시시비비가 제대로 가려지길 기대한다. 그것이 검찰 개혁의 시작이다. 최원재 문화부장

[지지대] 아버지 눈물

쳇 별별 놈이 다 있군. 젊은 면접관이 푸념처럼 내뱉었다. 20대 여성이 접수한 지원서다. 면접장에 입장한 것은 중년의 아빠다. 허드렛일을 하는 일용직 근로자로 보인다. 그래도 다른 면접관이 질문했다. 502번 김정은씨 맞나요. 눈치를 살피는 아빠, 청각장애인이다.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낸다. 그 속에 면접 당사자 여성이 나온다. 아마도 면접을 준비하며 찍어둔 영상인듯하다. 저는 한국 대학교 일어학과를 졸업했으며. ▶10년 후의 자기 모습은 어떨 거 같나요. 휴대전화를 뒤진 아빠가 다시 영상을 내민다. 딸이 아빠에게 남긴 말인듯싶다. 나, 이 회사에 합격했을 거야. 연봉 6천에 커리어우먼 돼 있을걸. 밝게 시작한 딸 음성이 점차 떨린다. 그런데 아빠미안한데, 아빠가 이 영상 볼 때쯤난 아마 아빠 곁에 없을 거 같애아빠 미안해너무 무서워. 굳이 결말을 연상할 필요도 없다. 수많은 사람이 이 동영상에 울었다. 마지막 면접이다. ▶어린 아기를 둔 젊은 아빠들을 설문했다. 아동 발달에 대한 설문이라고 속였다.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이 뭔가요 지금 아이의 사진이 몇 장 있나요. 모두들 미소 가득한 표정으로 답을 써내려갔다. 이어 질문의 대상자를 바꿨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식이 뭔가요 지금 아버지의 사진이 몇 장 있나요. 젊은 아빠들의 표정이 숙연해진다. 열심히 써 가던 손이 멈췄다. 순간, 사무실 한 켠에 모니터가 켜진다. 그들의 아버지였다.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초로의 아버지다. 부모로서 뭔가를 충분히 해줘야 되는데, 그걸 못해줘서 마음이 아픕니다. 계속 부족한 게 부모 마음 아닐까요, 죽는 순간까지 너무 엄하게 했던 게, 그게 제일 미안해요. 영상 속 아버지들은 눈물을 삼키며 참아낸다. 모니터 앞 젊은 아빠들은 뜨거운 눈물을 쏟아낸다. 잠시 뒤, 아버지ㆍ젊은 아빠ㆍ아기가 만난다. KB 은행이 사원들을 주인공으로 만든 동영상-하늘 같은 든든함, 아버지-이다. ▶마지막 면접은 떠난 딸을 기억하는 아버지다. 힘없고 배경 없는 자신의 슬픔을 그린다. 하늘 같은 든든함, 아버지는 성공한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다.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자신들의 미안함을 그린다. 둘 다 꽤 된 영상이다. 이미 많은 이들이 가슴을 저몄다. 세상 아버지가 다 그렇다. 자식 앞에 늘 부족하다. 세상 능력 없음을 자책한다. 실패한 자식 앞에도 죄인이고, 성공한 자식앞에도 죄인이다. 아마 1% 아버지를 빼곤 다 그럴 거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감각공해

미세먼지가 얼마나 심각하게 건강을 위협하는지는 잘 알려져 있다. 때문에 미세먼지 농도가 짙은 날이면 마스크를 쓰고 외출하거나, 아예 집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하지만 인공조명, 소음, 악취 등 감각공해에 대해서는 관심이 덜하다. 빛과 소음은 심혈관질환ㆍ우울증ㆍ암 등을 발생시키는 요인인데도 무딘 편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2위 빛 공해 국가지만 인식은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현란한 인공조명은 현대인의 스트레스 요인 중 하나다. 빛에 노출되면 가장 큰 문제는 깊게 잠들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장기간 이어지면 면역력이 낮아지면서 질병 위험이 높아진다. 네덜란드 레이던대 의대 연구에 따르면, 인공조명에 노출된 생쥐는 골밀도와 골격근이 크게 감소했으며 만성염증이 발생했다. 연구진은 빛 때문에 오랫동안 숙면을 취하지 못할 경우 호르몬 분비, 혈압, 세포 활동 등에 관여하는 생체주기가 교란받는다며 심혈관질환, 소화기장애 등 각종 질병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빛 공해는 암을 유발한다는 연구도 있다. 고려대의대 이은일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빛 공해가 가장 심한 곳에 사는 여성은 유방암 발생률이 빛 공해가 가장 덜한 지역의 여성보다 24.4% 높았다. 남성은 전립선암 발병 위험이 크다. 소음은 스트레스 호르몬 코르티솔 분비를 유도해 심혈관질환 위험을 높인다. 코르티솔 분비가 많아지면 심장 박동, 혈압, 혈당 등을 높이는 교감신경이 활성화된다. 이런 상태가 잘 때도 지속되면 협심증동맥경화 등 심혈관질환 발병률이 높아진다. 2011년 세계보건기구는 소음이 심혈관질환을 유발한다고 발표했으며, 2015년 유럽환경청은 소음 노출로 인한 심장 문제로 매년 최소 1만명이 조기사망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감각공해는 도시인의 숙명같지만 농촌도 안전하지는 않다. 농촌에선 가축 분뇨같은 악취가 건강을 위협한다. 소와 돼지, 닭 등의 가축 사육지 인근은 유독가스로 인한 대기오염뿐 아니라 수질오염이 심각하다. 감각공해의 심각성은 커지고 있는데 관련 대책은 답답하다. 인공조명에 의한 빛 공해 방지법이 2013년 도입됐지만 실행이 안되고 있다. 환경부의 관심 부족에다 지자체들이 2020년까지 법 적용을 유예했기 때문이다. 악취 방지법도 2005년부터 시행됐지만 실효성은 없다. 법은 무용지물이고, 주민들의 고통은 여전하다. 감각공해 위험에서 벗어나려면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 주변환경을 개인이 개선할 수 없기에 정부와 지자체가 적극 나서야 한다. 개인이 안대와 귀마개, 암막 커튼을 이용하거나 전자기기 사용 줄이기 등으로 빛과 소음을 차단할 수도 있다. 이런 실천이라도 해야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700살 빙하의 장례식

지난 18일 아이슬란드에서 빙하 장례식이 열렸다.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 북동쪽에 있는 오크(Ok) 화산을 700년간 덮고 있었던 오크 빙하다. 오크 빙하는 1980년대까지 해발 1천198m의 오크 화산 정상 일대를 넓게 덮고 있었다. 한때 면적이 16㎢에 달했다. 하지만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면적과 두께가 서서히 줄었고, 2014년 빙하 연구자들로부터 죽은 빙하(dead ice) 판정을 받았다. 현재 오크 화산은 정상에 있는 분화구에만 얼음이 덮여있는 상태다. 오크 빙하의 장례식은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경고하기 위해 미국 라이스대학 기후학자들이 마련했다. 오크 화산 정상 부근에서 열린 장례식에는 카트린 야콥스도티르 아이슬란드 총리를 비롯해 전 세계 기후전문가, 환경운동가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오크 빙하 앞에는 미래로 보내는 편지라는 제목의 동판 추모비도 세웠다. 동판에는 오크는 아이슬란드에서 최초로 빙하 지위를 잃었다. 앞으로 200년 사이 아이슬란드의 주요 빙하가 같은 운명에 처할 것이다. 이 추모비를 세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인식하고 있음을 알린다는 내용을 새겼다. 그 아래엔 2019년 8월이라는 날짜와 함께 최근 관측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415ppm을 넣었다. 이는 1년 전보다 대폭 상승한 수치다. 오크 빙하가 2014년 소멸 판정을 받았을 때만 해도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지난해 라이스대학 소속 인류학자인 시멘 하우, 도미닉 보이어가 사라진 빙하를 소재로 낫 오케이(Not Ok)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면서 화제가 됐고, 추모비 아이디어도 나왔다. 보이어는 사람들은 동판에 업적이라든지 대단한 사건을 새긴다. 빙하의 죽음 역시 좋다고 할 수 없지만 인간이 이룬 일이라며 이 빙하를 녹게 한 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기후변화였다고 말했다. 그는 오크빙하가 녹기 시작했다는 점에 비춰볼 때 다른 유명 빙하들도 곧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아이슬란드엔 2000년 당시 300개 넘는 빙하가 있었는데 2017년까지 작은 빙하를 중심으로 56개가 녹아 사라졌다. 지구온난화가 계속되면 남은 빙하들도 200년 내에 모두 사라질 것으로 전문가들이 진단했다. 기상관측 사상 가장 무더운 여름인 올해 북극권 지역에선 빙하가 녹아내리는 양이 급증했다. CNN은 지난달 그린란드에서 녹아내린 빙하만 총 1천970억t에 이른다고 전했다. 빙하 장례식, 별 장례식 다 있네라며 가볍게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우리는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기후변화로 인한 많은 피해를 경험하거나 목격했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정유라가 억울하겠다”

다른 건 다 떠나서 딸 학교 비리문제는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 정말 화가 납니다, 부모 배경없는 내 자식이 불쌍해요, 씁쓸하고 허무하다, 정유라가 억울하겠다, 정유라는 메달이라도 땄지, 한국의 인맥과 재력의 능력치가 새삼 큰 무기이구나 싶어요, 수시 줄이고 정시 확대하는 걸로 바꿔야 한다, 멀쩡하게 열심히 산 사람 바보로 만든 거죠.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딸의 고교-대학-의전원 진학을 놓고 논란이 뜨겁다. 고3 수험생을 둔 학부모들의 분노는 인터넷 사이트나 포털의 블로그카페 등 온라인에서 더 뜨겁다. 그럴만도 한 게 시기적으로 8월 말은 고3 수험생과 학부모들에겐 피 말리는 시간이다. 대학마다 제각각인 수시전형을 앞두고 자기소개서 쓰랴, 수능 공부하랴, 학생부종합전형 스펙 쌓으랴 다들 하루하루 전쟁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수시 지원을 앞두고 골머리를 앓고 있을 평범한 고3 수험생들 중에는 자소서 쓰는 템플스테이를 가는 학생들도 있다. 평범한 대다수의 고3 수험생들은 학업능력, 잠재력, 성장과정, 리더십 도전 등 고치고 다시 쓰느라 밤잠 안 자고 자소서 쓰기에 죽기 살기로 매달리고 있다. 돈 많은 친구들의 경우 입시컨설팅 학원을 통해 뚝딱 해치워 그나마 수월한 편이다. 그 가운데 준비할 것이 많은 수시 학종은 금수저 부모를 둔 학생들이 유리하다. 정보, 인맥, 개인그룹 과외지도 등 그들만의 카르텔이 잘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부모 경제력이나 지위, 학교 수준에 따라 달라지는 금수저 깜깜이 전형으로 확인된 학종에 고3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은 절망하고 있다. 그 절망에 더 큰 절망이 더해졌다. 고려조선시대 특권층의 후손을 우대해 관리로 뽑는 제도를 음서제도(蔭敍制度)가 요즘 사회에도 횡행하고 있다는 것을 수험생들이 현재 리얼하게 목격하고 있다. 본인의 실력으로 공정한 경쟁 속에 대입을 준비하고 있는 대한민국 수험생에게 제2의 정유라는 없어야 한다. 강현숙 사회부 차장

[지지대] 시승격 70년 수원, 삼성을 극복하라

1949년 8월15일 수원읍이 수원시로 승격됐다. 인구 5만여 명이 거주하던 작은 농촌도시 수원은 시승격 70년을 맞은 현재, 125만 명의 시민이 살고 있는 전국 최대 기초자치단체로 우뚝 섰다. 시승격 70주년을 맞아 수원시는 다양한 행사를 개최했다. 지난 13일 공식 기념식을 개최했고, 시민 대토론회도 가졌다. 국제 학술 심포지엄도 열였고, 특별 전시회도 개최됐다. 수원시는 이처럼 대외적으로 시승격 70년을 축하하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지만, 사실 속은 새카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수원시 세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삼성전자의 실적이 부진, 내년도 세수 확보에 초비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일본의 경제 보복조치 등 각종 악재로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이 6조6천억 원으로 전년대비 55.6% 감소했다. 이에 삼성전자가 수원시에 납부할 내년도 지방소득세가 올해보다 2천억 원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수원시 전체 지방소득세가 5천300억 원 규모다. 이 중 2천억 원이 줄어든다니 비상이 아닐 수 없다. 수원시는 이러한 위기를 강력한 세출 구조조정으로 극복하겠다는 계획이다. 행정운영경비와 행사성 경비 축소는 물론 대규모 투자사업을 축소하거나 시기를 조정할 방침이다. 각종 행사를 다 취소한다니 당분간 수원시민들이 웃을 일도 줄어들 것이다. 단 한 개 민간기업의 표정에 따라 시 전체가 흔들리는 것에 대해 시민들은 어떠한 생각을 할까. 제아무리 세계적 기업 삼성이라지만 125만 명의 삶의 질이 한 개 기업 실적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 더욱이 우리나라 최대 기초자치단체임을 자부하는 수원시 아닌가. 시승격 70주년을 맞았다. 언제까지 삼성만 바라보며 응원하고 있을 것인가. 수원의 미래를 위해 이제는 삼성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새로운 세수창출을 모색해야 할 때다. 영원한 제국은 없다. 이호준 사회부 차장

[지지대] 주식과 조국

2017년 이유정 변호사가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됐다. 청문회가 시작되면서 곧바로 주식 문제가 터졌다. 가짜 백수오 파문으로 유명한 네츄럴엔도텍 주식이다. 이 변호사가 소속된 법무법인이 관련 사건을 맡고 있었다. 상황 파악을 못했던 개미들이 무더기로 돈을 날렸다. 하지만, 이 변호사는 절묘한 거래 타이밍으로 5억원의 수익을 남겼다. 논란이 커지자 이 변호사는 사퇴했고, 결국 올해 3월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주식 거래 혐의(자본시장법 위반)로 기소됐다. ▶2019년 이미선 변호사가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됐다. 또 주식 문제가 불거졌다. 부부 총자산 42억여원 가운데 35억여원이 주식이었다. 전체 재산의83%다. 이번에도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주식 거래 의혹이 불거졌다. 이테크 건설이 2천700억원 규모의 사업 프로젝트를 공시하기 직전 주식 7억여원 어치를 산 게 논란이었다. 박지원 의원으로부터 차라리 남편과 워런 버핏이나 조지 소로스처럼 주식이나 하라는 조롱을 받기도 했다. 이 변호사는 청문회를 통과했다. ▶두 청문회는 닮은 꼴이었다.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주식 대박 논란이 똑같이 일었다. 당시 여당 일부에서조차 인사 검증 책임론을 제기했다. 이유정ㆍ이미선 후보자를 지명할 때 인사 검증 라인 책임자가 조국 수석이었다. 주식 보유 현황은 재산 신고의 기본 요소다. 못 볼래야 못 볼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런데도 두 번씩이나 닮은 꼴 주식 논란을 빚었다. 그래서 더 이상한 인사 사고였다. 당시 조 수석이 인사 검증 책임 공격에 뚜렷한 해명을 내놓은 보도는 없다. ▶이제 그 조 수석이 후보자가 됐다. 법무부 장관의 자격을 검증받게 됐다. 그런데 그에게서도 주식 논란이 나온다. 2017년 8월 재산공개 내역에는 8억5천여만원의 주식이 신고돼 있다. 이듬해 3월에는 이 주식의 대부분을 팔았다고 신고했다. 여기에 사모펀드도 도마 위에 올랐다. 청와대 민정수석 취임 2달 뒤 74억을 넣겠다고 약정한 것이 쟁점이 되고 있다. 이 펀드에 실제 소유자가 조 후보자의 친척 아니냐는 의혹부터 출처가 알려지지 않은 50억 입금설까지 보도된다. ▶돌이켜 보면 모두 주식으로 연결된 잡음이다. 검증 비난을 받았던 두 헌재 재판관도 주식에 휘말렸고, 조 후보 자신의 재산 내역에도 주식과 연결된 내용이 많다. 어쩌면 이런 배경 때문에 그 스스로 주식에 대해서는 관대한 검증을 하게 된 것 아닌가. 이런 의심을 품는 여론이 괜한 억지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국민을 납득시키기에 상당한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난폭운전·보복운전

운전을 하다보면 칼치기 운전자를 가끔 만나게 된다. 차와 차 사이에 갑자기 끼어들어 추월하는 칼치기 운전은 위험천만이다. 부딪칠뻔한 상황에 깜짝 놀라 보통은 크락션을 울리게 된다. 하지만 요즘은 자제하는 편이다. 상대방 운전자가 도로 한복판에 차를 세워놓고 무슨 짓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제주에서 주행 중 갑작스런 끼어들기에 놀라 항의하는 운전자를 보복 폭행한 영상이 유튜브와 인터넷 등에 퍼지면서 공분을 사고 있다. 칼치기 운전을 한 30대 카니발 운전자는 도로에서 내려, 항의한 승용차 운전자에게 생수병을 던지고 주먹으로 폭행을 가했다. 또 피해 가족의 휴대전화까지 빼앗아 던져버렸다. 피해자 승용차 안에는 운전자와 아내, 8살과 5살 자녀 2명 등 가족이 함께 있었다. 가장이 무차별 폭행 당하는 장면을 눈앞에서 목격한 아내와 아이들은 심리적 충격에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위협 운전에 보복 폭행 장면까지 담긴 영상이 인터넷 등에 퍼지자 가해 운전자를 엄벌해달라는 요청이 줄을 잇고 있다. 여론이 들끓는 건 도로 위에서 비슷한 피해를 경험한 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고속도로에서 대형차가 칼치기해 들어오면 생명의 위협까지 느낀다 깜빡이(방향지시등)를 켜기는커녕 오히려 경적을 울리면서 칼치기해 사고 날 뻔했다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 난폭운전에 항의도 제대로 못한다는 내용 등 난폭운전자로부터 위협을 당했다는 글이 많이 올라왔다. 최근 2년간 보복운전 범죄가 9천여 건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정인화 국회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전국에서 보복운전이 8천835건 발생했다. 이중 약 30%에 달하는 2천555건이 경기도에서 발생했다. 위반 유형별로는 진로방해나 고의 급제동, 폭행 등 다양한 유형이 종합된 기타가 4천651건(52.6%)으로 가장 많았다. 기타 유형에는 여러 행위가 중복돼 일어나는 것 뿐만 아니라 경적을 울리거나 침을 뱉는 행위 등 다양한 보복행위가 포함돼있다. 그 뒤를 이어 많은 유형이 고의 급제동 2천39건(23.1%), 서행 등 진로방해 1천95건(12.4%) 등이다. 운전자의 신체나 차량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는 폭행이나 협박, 재물 손괴, 교통사고 유발도 1천50건에 달했다. 보복운전은 도로 위 모든 이에게 큰 위협이 되는 범죄행위다. 난폭운전에 대한 경고 차원에서 보복운전을 하거나, 상대방의 보복운전에 대응해 똑같은 보복운전을 해도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자칫 인명이 희생되는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난폭운전과 보복운전에 대한 경각심이 필요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후쿠시마 오염수

2020년 7월24일부터 8월9일까지 일본 도쿄에서 하계올림픽이 열린다. 도쿄올림픽은 1964년에 이어 56년 만에 두 번째다. 2020 올림픽에서는 33개 종목에서 339개 세부종목이 치러진다. 일본은 1964년 도쿄올림픽이 세계대전 패전 후 일본경제를 일으켜 세웠듯, 2020 도쿄올림픽을 통해서도 장기불황에 빠진 일본경제의 부흥을 꿈꾸고 있다. 내년 도쿄올림픽이 내건 캐치프레이즈는 부흥과 재건이다. 일본은 경제 부흥과 함께 후쿠시마 재건에 몰두하고 있다. 올림픽을 통해 2011년 대지진때 큰 피해를 당한 후쿠시마 등 동일본 지역의 재기를 세계에 알리려는 것이다. 도쿄올림픽조직위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지점으로부터 20여㎞ 떨어진 J 빌리지를 성화봉송 출발지로 정했다. 대지진 당시 사고대책본부가 있던 곳이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67㎞ 거리의 아즈마경기장에서는 올림픽때 야구와 소프트볼 경기를 치를 예정이다. 일본은 후쿠시마 농산물을 올림픽선수촌의 식탁에 올리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후쿠시마 지역은 곳곳에 방사능으로 오염된 흙과 폐기물이 쌓여 있고, 아직도 방사능 수치가 기준치를 넘는 곳이 있어 논란이 거세다. 경기장을 찾는 사람들이 방사능 노출 위험을 우려하는데 후쿠시마 농산물이라니 황당하다. 후쿠시마는 회복되지 않았다. 그곳에 살던 일본인들 중 아직 돌아가지 않은 이들이 상당수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빚어진 환경 재앙은 8년 5개월이 지난 지금도 진행형이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지난 1월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 위기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지난 8년간 방사성 오염수의 오염 물질을 제거하려 했지만 실패했고, 그 결과 오염수 규모가 111만t에 이른다고 했다. 방사성 오염수는 원전 안에 남아있는 핵연료를 식히기 위해 쏟아부은 물과 지하수 등이 합쳐진 것으로 그 양이 하루 170t씩 늘고있는 상태다. 이를 물탱크에 넣어 원전 부지에 쌓아놓고 있는데, 물탱크가 1천기 가까이 된다고 한다. 더 충격적인 일은, 일본 정부가 원전 부지에 쌓아놓은 고준위 방사성 오염수 100만t을 바다에 방류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오염수가 해류를 타고 바다를 순환하기 때문에 태평양 연안 국가들은 방사성 물질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오염수가 방출되면 1년 안에 우리 동해에 유입될 거라는 분석은 끔찍하다. 우리 정부는 오염수 현황 등의 정보 공개를 요청하고, 국제사회와 연대해 일본이 오염수 방류를 못하게 압박해야 한다. 물탱크를 증설하면서 방사성물질 정화 기술을 개발하는 것만이 해법이라고 한다. 아베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 문제를 감추면서 재건 운운해선 안 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잊혀지지 않을 권리, 잊지 않을 의무

전국민 10명 중 9명 이상이 인터넷을 이용한다는 대한민국에서 잊혀질 권리는 이제 익숙한 말이 됐다. 2010년 스페인 변호사 마리오 코스테자 곤잘라스는 세계 최대 포털사이트 구글에서 자신의 이름을 검색하다 과거 연금을 제 때 내지 않아 집이 경매에 나왔던 신문기사를 발견한다. 12년이 지난 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흔적. 스페인 개인정보보호원은 기사를 삭제하는 것 대신 구글에 검색 결과를 삭제하라고 결정했다. 하지만 구글은 이에 항의해 소송을 냈다. 유럽연합(EU) 최고 법원인 유럽사법재판소는 곤잘레스의 손을 들어줬다. 잊혀질 권리에 대해 처음으로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사건이다. 그런데 요즘 문득 잊혀지지 않을 권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14일 자주 가던 편의점에 들렀더니 평소에 보이지 않던 태극기 함이 눈에 들어왔다. 주인 아저씨는 내일이 광복절이고, 때가 때이니 만큼 태극기를 가져오셨단다. 꽤 깨끗하게 보관한 태극기함에 그래도 보관을 잘 하셨나봐요 했더니 사실 전에 있던 태극기가 안보여서 새로 사온 거야라고 머쓱해 하신다. 순간 우리 집 태극기를 어디에 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꽤 마음이 뜨거운 열혈 국민인 줄 알았는데, 정작 꾸준한 관심은 없었던 거다. 광복절을 맞아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올해는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수출우대국가 명단) 제외에 따른 불매운동까지 겹쳐져 그 어느 때보다 우리의 아픈 역사와, 광복의 기쁨에 관심을 두는 이들이 많다. 실체 모를 뭉클한 감동이 밀려오다가도 문득 이 관심이 얼마나 지속할까하는 걱정이 앞선다. 수십년간 독립운동을 연구해온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친구는 금방 식을 열기라며 우리의 역사에게 잊혀짐이란 오랜 시간 함께 해온 악연과 같은 것이라고 표현했다. 이맘때가 되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거나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같은 말을 가장 많이 듣는다. 바쁘다는 이유로, 원래 잘 모른다는 이유로, 관심이 없다는 이유로 우리가 이 아픈 역사를 잊어선 안되는 것 아닐까. 우리의 터전을 만들고, 지금의 우리를 만든 선열들의 아픈 역사는 잊혀지지 않을 권리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잊지 않을 의무가 있다. 김경희 인천본사 차장

[지지대] 주52시간 근무제 유감

대한민국 전문 체육의 근간인 학교체육이 일대 혼란에 빠졌다. 지난 7월부터 도입된 주52시간 근무제도의 시행에 따라 운동 선수를 지도하는 학교운동부 지도자들에게도 예외없이 적용됐기 때문이다. 이 제도가 시행된 지 불과 두 달도 채 안됐지만 현장에서는 이로 인한 부작용과 문제점이 속출하면서 지도자와 학부모들이 아우성이다. 교육 당국이 제도 시행에 앞서 일선 학교에 보낸 안내문에는 주52시간 근무제도를 준수하지 않고 위법사항이 발생할 경우 학교장에 대해 처벌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학교장들로써는 몸을 사릴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로 인해 각급 학교에서는 운동 선수들의 대회 불출전 포기가 속출하고 있고, 매년 동ㆍ하계 혹한ㆍ혹서기를 피해 시행하던 전지훈련도 줄어들고 있다. 대회 출전ㆍ전지훈련 축소가 불가피해지면서 선수와 학부모, 지도자 등 체육계에서는 한국 체육의 근간이 고사 위기에 처해있음을 우려하고 있다. 더욱이 정부가 초중고 학생선수들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대회 개최를 주말에 하도록 권고하고 있는 상황에서 주말 대회 개최는 지도자들의 주52시간 초과근무가 필연적이지만 이에 대한 고려없이 제도 시행을 강행하고 있다. ▶전문 지도자들은 체육의 특성상 일정의 훈련 과정과 노력 속에서 기량을 발전시켜야함을 강조하며 국내ㆍ외 경쟁력 강화를 위한 대안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이와 관련 교육계에서는 주52시간 근무제도 시행에 있어서 학교 체육지도자들에 대해 예외 조항 마련 또는 탄력적인 운용을 요구하고 있으나 아직 해결책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노동 관련 부처에서 다른 분야에서는 (주52시간 근무제도를) 다 환영하는데 왜 체육계만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답변을 들었다는 소식만 전해진다. 한마디로 체육의 특수성을 모르는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다. ▶이에 한 전문 지도자는 현실을 외면한 제도 강행에 대해 우리가 후배들의 미래를 위해 더 많은 시간 지도를 하겠다는 데 왜 법으로 이를 금지시키는지 납득이 가질 않는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또한 자녀의 운동 특기 적성을 살려 세계적인 선수로 키우기 위해 운동을 시키고 있다는 한 학부모는 이제 선수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마음 놓고 운동할 수 있는 곳을 택해 유학이라도 보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고 우려했다. 법은 모두에게 평등한 것은 법치국가에서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 법도 분야별 특수성과 상황에 따라 변화해야 하는 것 아닌가. 체육인들의 우려와 간절한 목소리를 정부가 외면해서는 안 된다. 황선학 체육부장

[지지대] 뒤끝 작렬 미국

1985년 5월23일, 서울 미문화원이 점거됐다. 남녀 대학생 73명의 기습이었다. 이후 나흘간 농성을 계속했다. 광주사태 책임지고 미국은 공개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이른바 서울 미문화원 점거 농성 사건이다. 주동자 20명이 구속기소됐다. 서울대 물리대 학생이던 이 변호사도 그 중 하나다. 어느덧 35년의 세월이 지났다. 출소 후 어렵던 시절도 보냈다. 복학ㆍ졸업 후 학원 강사도 했다. 진로를 바꿔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지금은 평범하게 살아가는 50대 변호사다. ▶그에게 끝나지 않은 벌(罰)이 있다. 미국 입국 불가란 형벌이다. 미국이 내렸는데, 만기(滿期)가 없다. 아직도 미국을 갈 수 없다. 그 시절 동료들이 다 그렇다. 풀어야 한다는 여론도 많았다. 미국은 입장 불가만을 반복했다. 간접적으로 전해진 전제 조건이 있다. 오고 싶으면 유감 표명 정도라도 하라. 35년간 가해진 차별이다. 살아가며 불편한 게 한둘 아니다. 다 같이 모일 때면 논쟁이 벌어진다. 유감 정도는 해도 되지 않나. 하지만, 결론이 늘 똑같다. 술 한잔 들어가면 그냥 이대로 살자로 끝나버려(이 변호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방미가 제한됐다. 미국 정부가 밝혔다. ESTA(전자여행허가제) 적용 대상에서 제외했다. 관광ㆍ비즈니스 목적으로 최대 90일간 비자 없이 미국을 방문할 수 있는 제도다. 앞으로는 매번 미국 대사관을 찾아가야 한다. 영어 인터뷰를 하고 비자를 받아야 한다. 이 부회장과 최 회장의 방북이 원인이다. 지난해 9월 대통령 특별 수행단으로 갔었다. ▶2019년 6월 30일 오후 3시 45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에 갔다.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 땅을 밟았다. 스스로 그 순간을 세계에 내놓고 자랑했다. 그래놓고 우리 대통령 따라간 우리 기업인엔 제재를 가했다. 따지고 보면 어제오늘 일도 아니다. 지겹도록 봐온 미국 제일주의 오만이다. 요 며칠도 그렇다. 우리가 일본 경제 보복에 허덕이고 있다. 여기에 대고 천문학적 방위비 분담을 밀어붙이고 있다. 어제는 한국에서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를 받는 게 (월세 받는 것 보다)더 쉬웠다며 조롱까지 했다. ▶영원한 우방이라는 미국이다. 태극기 행렬에 성조기가 함께 하는 한국이다. 그런 한국을 대하는 미국의 태도라 더 실망스럽다. 독도 영유권에 모호하게 답하고, 방위비 인상에 가혹하게 몰고, 미국 방문에 담을 쌓아놓고 있다. 이 변호사는 미국 가는 걸 포기한 모양이다. 이제 얘기가 나와도 뒤끝 작렬 미국이라며 웃고 만다. 그러면서 말한다 나는 오사마 빈 라덴 급 테러리스트야. 김종구 주필

[지지대] 1400번째 수요집회

광복절 하루 전 날인 8월14일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다. 고 김학순(1924~1997) 할머니가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일본군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한 날이다. 1990년 6월 일본이 일본군은 위안부 문제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발표하자, 격분한 김학순 할머니는 1991년 8월14일 기자회견을 통해 일본군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했다. 잊고 싶고, 숨기고 싶은 과거였겠지만 김 할머니는 당당히 역사의 증언대에 섰다. 김학순 할머니는 베이징에서 일본군에게 끌려가 성노예 생활을 했다. 다행히 4개월 만에 빠져나왔고, 그때 탈출을 도왔던 평양출신 조선인과 결혼해 딸, 아들을 낳았다. 한국전쟁 때 남편을 잃고, 서울 종로구의 판잣집에서 궂은 일을 하며 힘겹게 생활하던 김 할머니는 일본이 위안부 문제의 진실을 부정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파렴치한 행태를 보이자 위안부 범죄 폭로를 결심했다. 할머니의 용기있는 고백으로 위안부 생존자들의 증언이 이어졌고, 은폐됐던 위안부 문제가 세계로 알려지게 됐다. 김 할머니의 증언 이후 1992년 1월8일 당시 일본 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수요집회가 시작됐다. 그날 이후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주최로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매주 수요집회가 열리고 있다. 김 할머니는 집회에 빠짐없이 참가하며 일본 정부의 사죄와 보상을 촉구했고, 1991년 12월 일본 도쿄지방법원에 출석해 피해 사실을 증언하는 등 국제사회 문제로 확대하는데 여생을 바쳤다. 2012년 12월 제11차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는 김 할머니의 최초 증언일인 8월14일을 세계 일본군위안부 기림일로 지정했다. 세계 각지에 있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를 기리기 위한 날이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에서야 국가기념일로 지정했다. 14일은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자 1천400번째 수요집회가 열리는 날이다. 두 날이 겹친 것은 처음이다. 올해는 일본의 수출규제로 촉발된 반일 정서와 일본 국제예술제에 출품된 평화의 소녀상 전시가 하루 만에 중단된 것 등이 영향을 미쳐 집회 규모가 커졌다. 서울ㆍ수원ㆍ안양 등 한국의 12개 도시와, 일본ㆍ미국ㆍ영국ㆍ대만 등 세계 9개국 21개 도시에서 동시에 열린다. 정의기억연대는 1천400번째 수요집회에서 일본정부에 전쟁범죄 인정, 공식 사죄와 배상을 포함한 법적 책임을 인정하도록 촉구할 예정이다. 일본은 여전히 망언을 일삼고 뻔뻔하게 외면할 것이다. 그들이 역사의 진실을 은폐하고 사죄하지 않는 한 수요집회의 불길은 더 커질 것이다. 우리는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휴가철 바가지요금

최근 가족과 강릉을 찾았던 박모씨가 바가지요금에 여름휴가를 망쳤다며, 다시 오면 성을 갈겠다는 내용의 글을 강릉시청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렸다. 박씨는 4인 가족으로 숙소를 예약해 1박에 25만 원을 결제했다면서 현장에 가니 아이들 1인당 2만 원인 4만 원, 바비큐 1인당 8만 원 등 1박에 41만 원을 받았다고 했다. 이어 맛은 개판, 가격은 바가지에 완전히 망쳤다며 이런 종류의 글을 쓴다고 뭐가 변하겠느냐. 단속 이런 것은 기대도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속초로 휴가를 갔다는 한 네티즌은 아이랑 갈만한 숙소는 20만30만 원대미쳤다. 아무리 성수기라도 너무 한다며 앞으로는 베트남 휴양지 리조트로 가겠다라고 온라인 커뮤니티에 불만을 표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평소 4만 원도 안 하는 창고같은 모텔이 20~30만 원이라니, 바가지요금이라고 욕하지 말고 안 가는 게 답이라고 했다. 반(反) 일본 정서가 고조되면서 일본여행이 급감하고 국내여행이 증가하고 있다. 정부는 일본여행 자제 분위기를 기회 삼아 국내관광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문화재청이 25일까지 고궁종묘 등을 무료 개방하고, 문화관광부는 테마여행 10선 등 다양한 여행정보를 제공하고 여행비 지원 이벤트도 열고 있다. 하지만 1년에 한 번뿐인 여름휴가를 애국심에만 호소할 수는 없다. 올해도 피서지 바가지요금이 극성이어서 여행객들의 불만이 거세다. 해수욕장의 컵라면이 5천~1만 원이나 하고, 테이블 있는 파라솔 하루 대여료는 5만 원이다. 시간 단위 대여가 안돼 어쩔 수 없이 하루 이용료를 내야 한다. 계곡 평상도 바가지가 심하다. 무허가 여부를 떠나 유명 계곡의 평상 하나가 10만 원씩 한다. 닭백숙도 10만~15만 원선이다. 주인 멋대로, 부르는 게 값이다. 한철 대박 장사를 노리는 그릇된 상술이 매년 되풀이되고 있다. 개선되지 않는 피서지 바가지요금은 국내관광 활성화에 걸림돌이다. 올해는 특히 반일감정이 고조되고 침체된 경제 걱정에 국내 피서객들이 많은데 좋은 일에 동참하려는 마음이 바가지요금 때문에 싹 가셨다고 분통을 터뜨린다. 지역 관광지들의 바가지 상혼에 지쳐 도심으로 휴가를 가는 역귀경 휴가객이 늘어나는가 하면, 내년엔 동남아 등 해외로 가겠다는 의견도 많다. 국내 피서지로 발길을 돌렸던 여행객들이 배신감과 실망감에 해외로 떠나는 건 국가적으로나 상인들 모두 손해다. 눈앞의 이익만 보고 바가지요금을 근절하지 않으면 부메랑이 돼 상인들에게 되돌아간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집중 단속도 중요하지만, 상인들 스스로 바가지 씌우는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이웃사촌 福’도 없는 대한민국

이웃사촌은 서로 가까이 살면서 정이 들어 사촌 간이나 다를 바 없는 관계를 말한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우리나라는 이웃사촌 복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이웃사촌격인 중국과 일본이 번갈아 가며 우리나라를 괴롭혔다. 특히 치욕스러운 36년간의 일제강점기는 지금까지 목에 걸린 가시처럼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작금에 와서도 이들 이웃사촌 때문에 대한민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중국은 그동안 한반도에서 남북 간 긴장과 갈등이 발생하면 냉정한 대응과 당사자 해결 원칙을 강조해왔다. 그러던 중국이 우리나라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배치 문제에 대해서는 마구잡이 경제보복에 나서는 등 비이성적인 행동으로 일관했다. 최근에는 미국의 중거리미사일 한국 배치 움직임에 제2의 사드 사태를 경고하며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최근 일본은 대한민국에 경제전쟁을 선포했다. 한ㆍ일 관계는 지난 2012년 말 아베 신조 정부가 들어선 이후 급격히 냉각됐고, 두 나라 국민 간 갈등의 골도 더욱 깊어졌다. 지난달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수출을 규제한 데 이어 이달에는 백색국가(화이트 리스트) 명단에서 한국을 제외한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의결해 2차 경제보복에 나섰다. 그동안 양국 간 위안부, 소녀상, 징용 등으로 정치적 갈등은 계속돼 왔지만, 이를 경제와 결부시키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번엔 정치적 갈등이 경제로까지 확대되면서 결국 양국 간 경제전쟁으로 확산됐다.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로 대한민국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전국이 일본제품 불매운동으로 뜨겁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불매운동은 손해를 감수하겠다는 소상공인, 초중고등학교 학생들까지 가세하면서 파급력이 더욱 커지고 있다. SNS상에는 연일 반일(反日), 극일(克日)을 논하는 글이 봇물을 이룬다. 정치권과 지자체도 반일 캠페인에 동참하고 나섰지만, 시민들로부터 역풍을 맞았다. 정치권과 지자체가 할 일은 일본 국민에게 불필요한 오해를 줄 수 있는 반일 캠페인에 동참하는 것이 아니라 양국 간 얽힌 매듭을 푸는 일이다. 불매운동은 국민의 자발적 영역으로 남겨둬야 한다. 촉발한 경제전쟁의 규탄 대상도 일본 국민이 아니라 일본 정부라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일본은 여전히 가깝고도 먼 나라다. 이관식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최근 일본 정부가 화이트리스트(수출 절차 간소화 우대국)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등 경제 보복에 나서자 국내에서 일본 제품 불매 운동 등 반일 감정이 불타오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나오는 여러 의견 중 가장 인기 있고 귀에 속속 들어오는 말이다. 이 말은 원래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로 영국 경제학자 앨프리드 마셜이 평생의 덕목으로 삼았다는 말이다. 간단하지만 쉽지 않은 얘기다. 냉철한 이성과 따뜻한 마음 사이 어디쯤에서 균형을 잡아야 할까 고민하게 하는 말이다. 현재 네티즌들은 이 말의 앞뒤를 바꿔 반일 운동의 자세를 언급하고 있다. 가슴은 뜨겁게 반일 운동을 하고, 다만 머리는 냉철하게 유지하는 지혜를 갖자라는 의미로 쓰고 있다. 지난 7월23일 오후 인천 남동구에서 자신이 타던 일본산 렉서스 승용차를 쇠파이프로 때려 부수는 퍼포먼스가 있었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 중 하나로 상인회가 준비한 행사였다. 이를 두고 네티즌들은 사드 갈등 당시 한국산 제품을 불태우던 중국인들의 행동에 빗대며 비이성적이라는 비판과, 속이 후련하다는 반응이 엇갈렸다. 이 중 가장 큰 공감을 얻은 댓글 중 하나가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제발 이성적으로이다. 또 서울 서구청이 NO JAPAN 배너기를 달자 네티즌들은 같은 말을 했다.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돌발적 행동을 했다는 비판이 섞인 뜻이다. 이번 반일 운동뿐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이 말을 적당히 적용하면 좋을 듯하다. 예를 들어 기자는 취재과정에서 어려 고충을 겪고 사건에 몰입하다 감정이 격앙된 상태로 기사를 쓸 때가 있다. 하지만 글을 쓸 때는 냉정하게 제3자의 시각에서 써야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축구 등 각종 종목에서 운동선수가 순간의 흥분을 참지 못하다 경기를 망치는 경우를 종종 봐왔다. 우리 모두 직장에서, 가정에서, 친구와 모임에서 항상 이 말을 떠올리며, 화가 나더라도 한번 심호흡을 하고 냉정하게 대처하는 지혜를 가질 필요가 있다. 우리 국민 모두가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민우 인천본사 정치부장

[지지대] 대기업·소기업, 진짜 상생

초음파센서는 첨단 과학이다. 자동차, 로봇, 중장비 등에 쓰인다. 그 중에도 후방 주차용 센서가 중심이다. 2000년대 초까지 초음파센서는 일본의 기술이었다. 세계 모든 시장을 무라타 등 일본제품이 독점했다. 이 시장을 한국의 작은 기업이 접수했다. 엄종학씨의 센서텍(부천시 원미구 부천테크노파크)이다. 2001년 창업 이후 국내 시장을 장악했다. 국내 자동차의 절반 이상을 파고들었다. 경쟁에서 밀려난 일본 기업은 철수를 검토 중이다. ▶엄 대표는 대학원에서 센서를 공부했다. 대기업에서도 센서를 연구했다. 관건은 판로였다. 이미 일본제품으로 규격화된 자동차 시장에 뛰어드는 게 숙제였다. 이 숨통을 트여준 게 현대 자동차다. 자동차의 부품 국산화에 회사 명운을 걸고 있었다. 센서텍에도 기회를 줬다. 엄 대표와 직원들이 연구에 매달렸다. 2006년, 납품이 시작됐다. 그리고 이제 LG, 삼성에까지 납품한다. 2018년부터는 인도 타타모터스에도 납품하고 있다. ▶부품의 국산화는 현대 자동차의 기업 정신이다. 기술의 국산화가 국가에 기여하는 것이다.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이 회고록에 남긴 말이다. 부품 국산화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정몽구 회장이 늘 강조하던 말이다. 국내 최초 자동차 모델 포니의 국산화율은 85%였다. 1991년 독자적인 엔진도 개발했다. 1995년 2세대 아반떼의 국산화율은 99.9%였다. 2018년 수소전기차 넥쏘 국산화율도 99%다. 그 기업 정신이 센서텍을 키웠다. ▶일본의 경제 보복으로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주력 수출품목인 반도체, 디스플레이가 직격탄을 맞았다. 화이트리스트 배제로 인한 충격은 얼마나 될지 가늠도 어렵다. 이런 때 굳건히 버티는 업종이 있다. 자동차다. 7월까지 자동차 수출액은 255억 1천만 달러다. 전년 대비 8.9% 늘었다. 일본의 핵심소재 수출 규제가 시작된 7월만 놓고 보면 21.6%나 늘었다. 일본산 자동차 소비가 줄면서 매출 증가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센서텍은 현대자동차의 배려로 보호됐다. 지금 현대자동차는 센서텍이 있어 보호된다. 흔히 대기업과 소기업의 기생관계로 본다. 경제적 주종(主從) 관계로 보기도 한다. 그게 아님을 보여준다. 일본의 부품 수출 규제에 정신없이 휘둘리는 우리 기업이다. 현대-센서텍이 주는 교훈을 절절히 여겨야 한다. 그래야, 제2ㆍ제3의 일본 경제 침탈을 이겨낼 수 있다. 그 기특한 소기업 센서텍이 경기도에 있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제로 웨이스트 투어

2013년 미국에서 발간된 제로 웨이스트 홈(Zero waste home)은 샌프란시스코 인근에 사는 비 존슨이 남편과 두 아이와 쓰레기 줄이는 삶을 살아가는 과정을 담았다. 한국에선 나는 쓰레기없이 살기로 했다라는 제목으로 나왔다. 책은 세계 25개국에서 출간, 저자와 같은 삶의 방식을 지향하는 많은 이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1년에 1리터만의 쓰레기를 만들어내며 살아갈 수 있을까? 비 존슨은 이 놀라운 삶을 실천하고 있다. 그는 2006년 제로 웨이스트를 알게 된 후 쓰레기 줄이는 노력을 시작했다. 불필요한 것들을 최대한 줄이고, 꼭 필요한 것들은 직접 만들거나 재사용하고,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발생되는 쓰레기들은 퇴비로 만들었다. 샴푸, 화장지 등의 대용품을 찾느라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으나, 시행착오 끝에 실천 가능한 방법들을 터득했다. 비 존슨이 지난 7월 서울에서 강연을 했다. 그녀는 1리터짜리 작은 유리병을 들고 나왔다. 1년 동안 4명의 식구가 집에서 배출한 쓰레기였다. 그가 주장하는 제로 웨이스트 실천방법은 5R로 요약된다. 필요 없는 물건을 거절하고(Refuse), 쓰는 양은 줄인다(Reduce). 일회용 대신 여러 번 쓸 수 있는 제품을 산다(Reuse). 재사용이 불가능하면 재활용으로 분류한다(Recycle). 나머지는 썩는 제품을 사용해 매립한다(Rot). 비 존슨만큼은 아니어도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단지 귀찮고 불편해서, 또는 습관적으로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버린다. 하지만 쓰레기산, 환경 파괴, 환경 호르몬 등 많은 부작용을 생각하면 잘못된 습관을 고쳐야 한다. 나부터, 가정에서부터, 작은 것부터가 중요하다. 최근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도보여행가 김남희씨는 세계 어디를 가든 대나무 빨대, 텀블러, 에코백을 필수품으로 챙긴다. 현지에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오래전부터 실천하고 있다. 일회용품 사용이 특히 많은 카페들도 플라스틱프리를 선언하고 있다. 서울의 카페 딥블루레이크 커피&로스터스는 테이크아웃용 컵과 비닐봉지, 빨대를 모두 옥수수 전분을 원료로 한 PLA(폴리락트산) 제품으로 바꿨다. 일회용 포장지를 쓰지 않는 제로 웨이스트 숍도 늘고 있다. 본격적인 휴가철이다. 바닷가마다 먹고 마신 맥주 캔, 배달음식 포장재, 테이크아웃 컵이 나뒹굴고 있다. 해양환경공단에 따르면 매년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해양 쓰레기는 14만5천t, 이 중 수거되는 쓰레기는 60%에 불과하다. 휴가철이면 자연은 쓰레기 전쟁터가 된다. 올 여름, 쓰레기 없는 제로 웨이스트 투어를 실천해보자.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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