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정치 집회와 돼지 열병

중앙일보가 일일이 셌다. 군중 하나하나에 붉은 점을 찍었다. 사진 앞부분 1천100명을 묶었다. 가장 먼 부분도 1천100명 묶었다. 나머지는 곱해서 계산하라는 힌트다. 작은 점을 찍고 있는 기자들의 모습이 연상된다. 첨단 시대에 보는 원시 셈법이다. 그 점 위에 독자들의 시선이 머물렀다. 이 셈법이 가장 정확한 것 아니냐고도 한다. 특종 기사가 아닐런지는 모르지만, 특별한 기사였음은 틀림없다. ▶촛불 시위 참여자 수 논란이다. 월요일 하루, 대한민국 화두는 200만이었다. 서초동 검찰 청사 앞에 모인 사람 수 논란이었다. 민주당과 정의당은 주최 측 추산 150만명에서 200만명이 참가했다고 했다. 검찰 개혁을 향한 거대한 물결이라고도 했다. 그러자 한국당이 5만명에 불과하다며 반박했다. 서울교통공사 자료가 공개됐다. 교대역과 서초역에서 10만 2천여 명이 내렸다. 이러니 점을 찍어가며 센 것이다. ▶만원이었다는 사실은 이견이 없다. 도로를 사람들이 채웠다. 검찰청사 앞에서 이뤄진 역대 최대 규모 시위였다. 한국당도 이 점은 부인하지 못한다. 숫자 뻥튀기라 공격하는 속 뜻도 그래서다. 맞불 집회를 꺼내 들었다. 3일 광화문에서 문재인 정부 규탄 대회를 열기로 했다. 벌써부터 150만명 참가를 공언하고 있다. 한국당과 보수진영에는 총동원령이 내려진 상태라고 한다. ▶지금 한반도는 남북 할 거 없이 전염병 광풍이다. 아프리카 돼지 열병이 반도 전역을 휩쓸고 있다. 경기 북부에서 시작돼 경기 남부를 거쳐 충청도까지 침투했다. 유럽의 돼지들을 몰살시켰던 전염병이다. 이후 동남아, 중국 등이 참담한 피해를 당했다. 현재 속도로 보면 우리도 비슷해질 가능성이 크다. 언제나처럼 사람ㆍ가축 이동이 전면 통제됐다. 크고 작은 집회ㆍ행사가 모조리 취소됐다. ▶9월과 10월은 1년 중 행사가 가장 많은 때다. 지역에 크고 작은 이익을 창출하는 행사들이다. 행사 하나 취소될 때마다 파장이 크다. 야광봉 파는 행상, 포장마차 차량 상인, 솜사탕 장수. 밥줄이 끊긴다. 통닭집 사장, 순댓국집 사장, 만두집 사장. 타격이 심각하다. 그래도 모두 감내한다. 가축 전염병을 막으려면 참아야 한다고 받아들인다-이 예방법의 효율성은 논외로 하자-. ▶화성의 축산농 A씨가 사실상 감금됐던 28일, 그날 200만명(또는 5만명)이 국토를 오갔다. 돼지 열병 전염이 수인성(水因性)이라는 분석이 있다. 물 뿌리는 태풍이 지나간다는 3일, 150만명이 또 전국을 휘젓는다고 한다. 이럴 거면 100명 200명 모이는 지역 행사를 왜 초토화시킨 건가. 아프리카 돼지 열병 와중에 200만 군중 대결하는 정치권, 할 말도 없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걱정되는 20대 정신건강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책이 20대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다. 1990년생, 백세희 작가가 쓴 두 권짜리 에세이다. 지난해 한 권, 올해 또 한 권을 냈다. 그녀는 10년 넘게 기분부전장애(2년 이상 지속되는 경도의 우울증)와 불안장애를 앓으며 정신과를 전전했고, 2017년 잘 맞는 병원을 찾아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떡볶이다. 죽고 싶지만은 정신과 치료과정에서 저자와 의사와의 상담 내용을 옮긴 것이다. 일종의 치료 기록으로, 작가는 상담을 통해 자신이 변화되는 과정을 객관화하고 싶었다고 한다. 겉보기에는 멀쩡하지만 속은 곪아있는, 지독히 우울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사람들을 위한 책이며,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불완전하고, 구질구질한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저자는 힘내라는 말, 자신감을 가지고 위축되지 말라는 말은 때론 독이다. 그렇지 못한 사람의 속내를 파고드는 상처다. 모자라도 괜찮고 서툴러도 괜찮다라고 말한다. 이 책의 주요 독자층은 20대다. 다수의 20대가 공감을 표하고 있다. 저자의 20대가 우울증과 불안감에 힘겨웠던 것처럼 우리나라 20대 청소년의 정신건강은 걱정되는 수준이다. 정신질환으로 병원을 찾는 20대가 급증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공황장애ㆍ불안장애ㆍ우울증ㆍ조울증으로 진료받은 환자는 총 170만5천619명으로 집계됐다. 이중 20대가 20만5천847명으로 2014년(10만7천982명)보다 무려 90.6% 늘어났다. 정신질환 문제는 자살 시도 등 심각한 결과로 이어지곤 한다. 보건복지부의 최근 5년간 자해자살 시도 응급실 내원 현황에 따르면, 2014~2018년 자해자살 시도로 응급실을 찾은 환자 14만1천104명 중 20대가 2만8천82명(19.9%)으로 가장 많았다. 정신질환을 앓거나 삶을 포기하고 싶어하는 20대가 계속 늘어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취업, 학업, 극심한 경쟁,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 갈수록 커지는 스트레스가 젊은 층을 숨막히게 하고 정신질환으로 내몰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신적 불안 증세가 심해지면 개인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20대 청소년들은 우리 사회 미래 동력이다. 이들이 위태로운 환경 속에서 무너지는 걸 방치해선 안된다. 정신질환 예방치료를 위한 정부의 총체적 대책이 필요하다. 청년 일자리 창출 등 경제ㆍ사회적 환경을 개선하는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전자담배

전자담배는 전기를 이용해 피우는 담배로, 열을 이용해 발생한 증기를 흡입한다. 보통 니코틴이 들어있는 액상을 끓여 수증기를 흡입하는 액상형과, 압축한 담뱃잎을 가열해 수증기를 흡입하는 궐련형으로 나뉜다. 액상 팟(POD)을 교체하는 방식의 CSV 전자담배가 인기인데 미국의 쥴ㆍ한국 KT&G의 릴 베이퍼 등이 대표적이다. 전자담배 제조사들은 일반 담배 대신 전자담배로 흡연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은 물론 카트리지의 니코틴 양을 차츰 줄여가는 원리로 담배를 끊을 수 있다고 광고했다. 일반 담배와 비교해 냄새가 덜 나고 유해물질이 적다는 인식이 확산되며 대중화됐다. 그러나 전자담배는 판매 초기부터 유해성 및 금연효과 효용성 논란이 계속돼 왔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전자담배가 효과적인 니코틴 대체요법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연구가 없으며, 증기에 독성물질을 포함하고 있어 적법한 금연 도구가 아니라고 했다. 우려했던 것처럼, 미국에서 전자담배를 피우던 사람들이 폐질환에 걸리는 사례가 잇따라 보고되고 있다. 지금까지 숨진 사람이 13명이고, 기침과 호흡곤란 등을 동반한 폐질환자가 800명을 넘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18세 미만 환자 비율이 16%에 이른다는 보고다. 과일이나 풍선껌의 향이 첨가된 전자담배가 최근 청소년층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쥴의 경우 USB 드라이브와 유사한 모양인데다 냄새가 거의 안 나 부모나 교사의 눈에 잘 띄지 않아 통제가 쉽지 않다. 미국에서는 액상 전자담배 사용 및 판매를 금지하는 추세다. 현재 판매가 금지된 지역은 뉴욕주, 미시간주, 로드아일랜드주, 워싱턴주 등이며 점차 확대되고 있다. 월마트와 코스트코 등 대형마트에서도 전자담배 판매를 중단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전자담배를 시장에서 퇴출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미국뿐 아니라 인도도 전자담배 판매를 전면 금지했고, 중국은 특정 제품의 판매를 금지하며 규제를 확대하는 등 전자담배 유해성 논란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5월 쥴의 한국 진출 이후 액상 전자담배가 큰 호응을 얻자 보건복지부가 사용자제를 권고했다. 대한금연학회도 지난 26일 액상형 전자담배사용 관련 중증 폐질환 및 사망사건에 대한 성명서를 발표, 전자담배 사용자제를 권고했다. 전자담배를 포함한 담배제품 관리 및 규제 강화를 위한 효과적인 정책을 국회 및 정부가 마련할 것도 촉구했다. 덜 해로운 담배는 없다. 우리 정부도 전자담배 위험성에 더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국민 건강, 생명과 직결된 문제다. 다른 나라는 사용 및 판매 금지까지 하는데 사용자제 권고로는 미약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적반하장의 기술?

여보세요. 김경희씨죠? 네, 누구시죠? 여기 창원지검이고요. 저는 수사관 OOO입니다. 창원. 가본 적도 없고 연고도 없는 곳의 검찰청에서 어느 날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법조 기자로 출입한지 수년째. 어쩌면 전에 검찰에서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인가 싶어 좀 더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경희씨 계좌가 보이스피싱 범죄에 이용됐어요. 통장에서 2천400만 원 1번, 7천만 원 1번 이렇게 빠져나갔는데, 알고 계셨어요? 아, 이게 보이스피싱인가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던 그때, 수화기 넘어 쉴 틈 없이 몰아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게 지금 연루된 사람만 수백 명이에요. 굉장히 심각한 일입니다. 아시겠어요? 마침 인천지검에서 일하고 있던 터. 제가 지금 인천지검에 있는데, 누구시라고 했죠? 다시 물었다. 그러자 수화기 너머 사람의 목소리가 커진다. OOO이라고요. 지금 이게 가벼운 일이 아닌데, 이런 식으로 하시면 본인한테 불리할 수 있어요. 수백 명이 연루되고, 그 정도 사안이라면 정식으로 출석요구서를 보내는 게 일반적이지 않을까 싶어 물었더니 갑자기 화를 내기 시작한다. 보이스피싱이란 사실을 충분히 인지했음에도 마음 한 켠에 혹시나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한참을 이야기하다 문제가 있다면 정식으로 소환통보를 하라고 말하자 소환장 갈 거니까 출석 제대로나 하라는 날선 말이 돌아온 후 통화는 마무리됐다. 전화를 끊고 나자 나름 오랜 시간 사회부에서 일했던 기자조차 흔들리게 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고민이 들었다. 방송에서 보는 것과 달리 너무나 유창했던 우리말, 속사포처럼 범죄 혐의를 쏟아내던 디테일함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적반하장의 태도였다. 분명 사기를 치고 있으면서도 마치 장난스럽게 전화를 받는 필자의 잘못이란 듯한 태도. 당당하게 소리 높여 필자를 꾸짖던 목소리. 그것이 흔들림의 원인 아니었을까. 우기면 사실이 되는 세상,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기는 세상을 사는 현실이 그들의 적반하장식 영업(?)을 가능하게 한 것 아니었을까 하는 씁쓸함이 돌았다. 김경희 인천본사 차장

[지지대] KT 위즈의 변신과 과제

선두 경쟁의 막판 대혼전과 치열한 가을야구를 향한 5위 다툼으로 2019 KBO리그는 더욱 흥미로웠다. 정규리그 종착역을 앞두고 여전히 선두 경쟁이 오리무중인 가운데 가을야구 막차(와일드카드)의 주인공이 NC로 확정됐다. 창단 5시즌 만에 첫 포스트시즌 진출을 노렸던 KT 위즈의 꿈이 아쉽게 무산됐다. KT는 2015년 데뷔 시즌부터 3년 연속 최하위에 머물다 지난해 탈꼴찌에 성공했으나, 기존 팀들과의 거리감은 여전했다. ▶만년 약체로 실망감을 안긴 KT는 불과 1년 만에 놀라운 변신을 했다. 그 중심에 3대 사령탑인 이강철 감독이 있다. 이 감독은 현역 시절 4년 연속 15승 이상, 10년 연속 10승, 10년 연속 100탈삼진 이상을 기록한 전설의 잠수함투수 출신이다. KIA, 키움, 두산 등 강팀에서 코치로 지도자 수업을 쌓았다. 그는 초보 감독이지만 선수와 코치로 쌓은 화려한 경험을 바탕으로 부임 첫 해 KT의 도약을 이끌어냈다. ▶비록 첫 가을야구 진출에는 아쉽게 실패했지만, 구단의 새 역사를 써내려 가고 있다. 팀 최다승(59승)을 훌쩍 넘어 69승으로 첫 70승 고지도 눈앞에 두고 있다. 또한 잔여 3경기서 2승을 거두면 팀 첫 5할 승률도 달성한다. 구단 최초 9연승 기록과 10승 투수도 3명이나 배출했다. 불펜진도 안정을 이뤘고, 모처럼 외국인 농사도 잘 지었다는 평가다. ▶달라진 KT의 모습에 홈 팬들은 어느 해보다도 행복한 한 시즌을 보냈다. 그리고 가을야구에 대한 희망을 넘어 첫 4강 진입에 대한 기대감도 가지게 됐다. 10구단 추진위원들이 삭발을 하고 정치인과 경제인, 시민사회 관계자, 언론 등 전 경기도민이 함께 나서 유치한 막내구단 KT가 데뷔 5시즌 만에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강철표 KT 야구는 더 큰 목표를 향한 진행형이다. ▶KT는 2019시즌을 통해 희망을 봤고, 기존 선수들과 더불어 젊고 새로운 선수들의 성장에 미래 가능성을 확인했다. 반면, 선발 마운드와 포수진의 불안정, 타선에서의 해결사 부재, 고액 연봉 선수들의 부진 등 해결해야 할 과제 또한 많다. 지난 6개월 KT 위즈로 행복했던 수원 야구팬들은 이강철 감독과 구단에 더 큰 도약을 위한 변화와 준비, 과감한 투자를 주문하며 다음 시즌을 기다리고 있다. 황선학 체육부장

[지지대] 잘한 경찰-잘 못한 경찰

강호순은 부녀자 10명의 목숨을 빼앗았다. 노래방 도우미(3명), 회사원(1명), 주부(1명), 여대생(2명), 공무원(1명) 등이다. 이들 외에도 2명을 살해했는데 장모와 처다. 보험금을 노리고 화재로 위장한 살인이다. 2005년 10월 장모 집에서 일어났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의혹이 많은 화재 현장이었다. 하지만, 경찰은 단순 실화로 마무리했다. 4년 뒤, 강의 연쇄살인 사건을 수사하던 중 방화로 인한 살인 사건이었음이 드러났다. ▶강을 검거한 것은 경찰이다. 언론이 연일 수사 상황을 썼다. 그러던 중, 장모ㆍ처의 방화 살해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때부터 경찰이 말을 아꼈다. 방화 살인을 확정한 건 검찰 단계에서다. 그즈음 기자가 수사 책임자에게 물었다. 장모ㆍ처 방화 살인 사건이 제대로 처리됐으면 나머지 살인은 막을 수 있지 않았겠는가. 그의 답변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 식으로 보면, 강호순을 낳은 엄마가 제일 큰 잘못 아니냐. ▶강 검거는 분명히 쾌거다. 탐문수사와 과학수사의 결실이다. 그런 분위기에서 장모ㆍ처 살인 의혹이 불거졌다. 경찰이 곤혹스러울 수 있다. 기자 질문이 짜증스러울 수 있다. 생생한 건 또 있다. 당시 브리핑 현장이다. 대부분 언론이 이 부분을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갔다. 엄마 잘못을 말한 경찰 책임자는 되레 당당했고, 수사 책임을 물은 기자는 오히려 민망했다. 편집 책임자던 내게 남은 불쾌한 강호순 추억이다. ▶화성 연쇄 살인 사건에서 그 기억이 얼비친다. 단군 이래 최악의 미제라던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이 특정됐다. 30년 전 천 조각에서 찾아낸 DNA 증거다. 수사 역사에 길이 남을 쾌거다. 반면 다른 상황도있다. 30년 전 수사팀의 책임이 얘기된다. 용의자 이춘재를 잡을 수도 있었다. 화성에 살던 이가 청주에서 살인했다. 잔악한 성폭행 살인 수법이 화성 사건과 닮았다. 수사팀도 이 부분을 주목했던 듯했다. 그런데 왠지 흐지부지됐다. ▶DNA처럼 첨단 과학 분야도아니다. 그냥 수사 공조다. 이 당연한 걸 빼먹었다. 수사 과정의 명백한 실수다-이춘재를 수사한 기록이 나왔다고 하니, 자세한 판단은 다시 살피기로 하고-. 그때 잡았다면 공소시효 특별법도 따질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아쉽다. 잘한 것은 잘한 것이고, 못 한 것은 못한 것이다. 30년 만의범인 특정, 잘한 것이다. 공조 수사 허술ㆍ혈액형 오판, 잘 못한 것이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위안부 망언

류석춘 연세대 교수가 강의 도중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을 매춘 여성에 비교하는 발언을 해 공분을 사고 있다. 류 교수는 지난 19일 발전사회학 강의 중 (위안부 관련) 직접적인 가해자는 일본(정부)이 아니다라며 (위안부는) 매춘의 일종이라고 말했다. 매춘부와 과거 위안부를 동급으로 보는 것인가라는 학생 질문에는 그런 것과 비슷하다고 답했다. 그는 또 일본이 좋은 일자리를 준다고 속여 위안부 피해자를 데려갔다는 학생 반발이 이어지자 지금도 매춘 들어가는 과정이 그렇다. 매너 좋은 손님 술만 따라주고 안주만 주면 된다고 말해서 접대부 되고 매춘을 시작한다고도 했다. 질문한 여학생에게 궁금하면 한번 해볼래요라는 막말도 했다. 류 교수 발언이 알려지자 규탄과 해임 요구가 거세다. 시민단체 서민민생대책위원회는 류 교수를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 성희롱 등 혐의로 서울서부지검에 고발했다고 23일 밝혔다. 이 단체는 류 교수가 역사를 왜곡해 허위사실을 퍼뜨렸고,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명예를 훼손했으며, 질문한 여학생을 상대로 성희롱을 했다고 주장했다. 연세대는 류 교수의 해당 강의를 중단시켰다. 류 교수 발언은 매국적 망언이다. 젊은이들을 가르치는 대학교수이자 지식인이 그릇된 역사인식을 갖고 황당한 강의를 했다는 사실이 개탄스럽다. 학문의 자유가 있는 대학내 발언이라고 해도 도저히 용납하기 어렵다. 그동안 많은 피해자들이 강제로 납치되거나 속임수에 넘어가 위안부 생활을 강요받았음을 증언했다. 일제강점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은 1993년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 담화 등을 통해 일본에서도 인정했다. 일본군 위안부는 국제사회에서도 전시 성노예라는 인식이 정립된 사안으로, 지난해 8월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일본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충분한 사죄와 보상을 하지 않았다고 공개 비판했다. 일본도 아닌, 최대 피해국인 우리나라에서 아베 정부를 대변하는 듯한 위안부 망언이 가끔 튀어 나온다. 이영훈 이승만학당 교장 등이 펴낸 책 반일 종족주의는 위안부 성노예 부정 등의 주장으로 반발을 샀다. 이철순 부산대 교수는 반일 종족주의 북 콘서트장에서 위안부 문제가 뒤늦게 뻥튀기되고 부풀려졌다는 취지의 말로 논란을 불렀다. 정상혁 충북 보은군수는 위안부 배상 문제와 관련, 아베 정부 입장을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해 곤욕을 치렀다. 이들은 어느나라 국민인가 싶다. 역사의 진실을 왜곡하는 행위는 역사에 대한 폭력이다. 굴절된 역사인식을 갖고 교단에 서는 건 옳지 않다. 류 교수는 궁색한 변명 대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사죄부터 해야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기후 파업

올해 16살인 스웨덴 소녀 그레타 툰베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청소년 환경운동가다. 유력한 노벨평화상 후보로도 거론된다. 그녀의 작은 행동이 세상을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툰베리는 지난해 8월부터 매주 금요일 학교에 가지 않고 스웨덴 국회 앞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책을 촉구하는 1인 시위 프라이데이즈 포 퓨처(Fridays for Futureㆍ미래를 위한 금요일)를 시작했다. 피켓에는 기후변화를 위한 등교 거부라는 문구가 쓰여있다. 툰베리는 우리가 앞으로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미래를 위해 공부를 해야 하는 걸까요? 지금 미래를 구하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말이죠라고 말한다. 우리 집(지구)에 불이 났는데, 어른들은 왜 딴짓만 하고 불을 끌 생각을 하지 않나요?라고 묻기도 한다. 툰베리의 1인 시위는 반향을 일으켜 3개월 만에 스웨덴 100여 개 도시로 확산됐고 올해 초엔 144개국 2천500여 개 지역에서 집회가 열렸다. 세계 각 나라의 학생들은 비록 투표권이 없어 정치에 직접 영향을 주지는 못하지만, 등교 거부를 통해 기성세대가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을 져달라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런 기후 파업(Climate Strike)이 세계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툰베리는 23일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2주 동안 소형 요트를 타고 대서양을 횡단해 또 한번 화제가 됐다. 지구촌이 직면한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항공기나 유람선 등 배기가스를 대량으로 배출하는 교통수단을 피하고자 화장실도 없는 친환경 소형요트로 북대서양을 건너는 모험을 시도한 것이다.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를 사흘 앞둔 20일 전세계 수많은 젊은이들이 미래를 지키자며 기후 파업에 돌입했다. 호주의 110개 도시에선 학생과 직장인이 학교나 회사에 가지 않고 거리로 나왔고, 해수면 상승으로 생존 자체가 위협받고 있는 남태평양 솔로몬제도에선 어린이들도 시위에 동참했다. 타이에선 청년 200여 명이 환경부 청사 바닥에 드러누워 죽은 척하는 방식으로 시위를 펼쳤다. 20~27일 기후위기 주간에 전 세계 139개국에서 4천638개 집회가 열린다. 우리나라는 330개 단체로 구성된 기후위기 비상행동 집회가 21일 서울 대학로에서 열렸다. 참가자들은 NO EARTH, NO LIFE!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등의 피켓을 들고 기후위기에 침묵하는 정부와 온실가스 다배출 기업 등을 비판하며 비상상황 선포를 정부에 촉구했다. 기후위기는 절박한 생존의 문제다. 내일이면 늦는다. 툰베리의 호소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국민에게 믿음을 주는 나라인가?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는 말이 있다. 믿음이 없으면 살아나갈 수 없다라는 뜻으로, 논어(論語) 안연편(顔淵篇)에 실린 공자(孔子)의 말에서 비롯됐다. 자공(子貢)이 정치(政治)에 관해 묻자, 공자는 식량을 풍족하게 하고(足食), 군대를 충분히 하고(足兵), 백성의 믿음을 얻는 일이다(民信)라고 대답했다. 자공이 어쩔 수 없이 한 가지를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먼저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공자는 군대를 포기해야 한다고 답했다. 자공이 다시 나머지 두 가지 가운데 또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 묻자 공자는 식량을 포기해야 한다며 예로부터 사람은 다 죽음을 피할 수 없지만, 백성의 믿음이 없이는 (나라가) 서지 못한다(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고 대답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단행한 장관급 인사를 보면 국민의 믿음을 저버린 것으로 밖에 비치지 않는다. 야당과 국민의 반대 여론을 외면하고 배우자의 사모펀드와 딸 입시 관련 의혹마저 무시한 채 검찰개혁의 적임자라는 이유로 조국 법무부 장관을 임명을 강행했다. 조 장관 가족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임에도 문 대통령은 명백한 위법행위가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의혹만으로 임명하지 않는다면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고 말해 국민은 실망감을 넘어 배신감을 감출 수 없었다. 대통령의 국정 성패는 장관을 포함한 정부의 중요 직책의 인사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사만 잘해도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역사 이래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인사로 국론분열 상황은 더욱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교수들은 사회 정의와 윤리가 무너졌다며 시국선언을 하고, 대학생들은 조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믿음을 저버린 결과다. 무신불립(無信不立), 국민의 믿음이 없으면 나라는 존립할 수 없다. 국민에게 믿음을 줘야 나라다운 나라가 될 수 있다. 평등ㆍ공정ㆍ정의로움 기조가 사라진 문재인 정부에게 국민이 묻고 있다. 이게 믿을 수 있는 나라인가? 이관식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진짜 정치인과 가짜 정치인

인천 정치판이 조금씩 들썩이고 있다. 제21대 국회의원 총선이 7개월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지난 추석 명절에 전통시장 등 지역 곳곳에선 이름이 낯익은 인물들이 자주 출몰(?) 했다고 한다. 대부분 정치판에서 명함 좀 내밀었던 인물들이다. 선거가 있을 때마다 출마하겠다고 나섰고, 이후 선거에서 낙선했거나 완주하지 않고 중도 하차한 그들이다. 이들을 기억하는 시민들은 그들의 이번 명절 출몰에 손가락질을 한다. 평소엔 얼굴도 내비치지 않다가 꼭 선거때만 나타나 손을 꼭 붙잡기 때문이다. 나름 지역에 영향력이 있을테니 지역에 문제가 생겼을 때 도와줬으면 했는데, 그때는 아무리 찾아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던 그들이 선거를 앞두고 되돌아온 것이다. 특히 나름대로 한 지역에서 꾸준하게 정치활동을 해 왔던 진짜 정치인들에게도 이들은 눈에 가시다. 수년간 한 꽤 많은 돈을 써가며 지역에서 조직도 꾸리고 많은 활동을 했지만 그들이 불안해서다. 만약 그들이 윗선 줄이라도 잘 잡고 있다면 자칫 자신은 공천도 못 받고 낙동강 오리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종종 그들이 선거가 본격화하면 정치 브로커로 변신하기도 한다. 즉 선거에 나가는 척만 하고 후보 단일화 등으로 물러나며 선거에 도움을 주겠다고 제안을 하는 것이다. 비록 함께 하기는 싫지만, 이 달콤한 유혹을 이길 수가 없다. 결국 선거 캠프에서 한 자리를 맡긴다. 적과의 동침을 시작하는 순간이다. 어느 후보가 철새처럼 선거때만 반짝 나타나는 가짜 정치인인지, 혹은 어떤 후보가 꾸준하게 활동하는 진짜 정치인인지. 결국 유권자 등 시민이 현명하게 판단해야 한다. 이제 곧 더욱 많은 정치인들이 선거판에 뛰어들텐데, 시민은 물론 우리 언론도 누가 진짜이고, 누가 가짜인지 잘 살펴봐야 한다. 이민우 인천본사 정치부장

[지지대] 계곡 펜스 철거

TV에 나온 집이라고 써 붙인다. 이게 우후죽순처럼 늘었다. 한 집 건너 한 집꼴이다. 이러니 웃지 못할 현수막도 등장한다. TV에 나올 집. 그만큼 TV 출연은 명소(名所)의 기본 요건이다. 식당만 그런 게 아니다. 유명한 관광지, 휴양지도 똑같다. 용인 고기리 계곡도 그런 곳이다.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 나왔다. 유재석, 박명수가 물놀이를 했다. 수박도 깨 먹으며 놀았다. 옆 식당에는 현수막이 붙었다. 무한도전에 나온 곳. ▶얼마 뒤, 젊은 학생들 대여섯 명이 계곡을 찾았다. 모두 이런저런 짐을 잔뜩 들고 있었다. 문제가 생겼다. 계곡으로 내려갈 통로가 없었다. 계곡 옆 도로를 따라 찾아봤지만, 허사였다. 주민에게 계곡에 어떻게 내려가요라고 물었다. 길 없다는 답을 들었다. 그랬다. 고기리 계곡은 들어갈 수 없는 계곡이다. 정확히는 못 들어가게 막아놓은 계곡이다. 길이 2㎞가 넘는 전체 계곡이 펜스로 막혀 있었다. 방송과 다른 모습이었다. ▶가평, 포천 등 도내 곳곳에 계곡 명소가 있다. 대부분 이렇다. 도로와 계곡사이에 펜스가 설치돼 있다. 명분은 안전 펜스인데, 실제는 출금 펜스다. 혹여 펜스를 넘어들어갈라치면, 금방 불호령이 떨어진다. 여기는 사유지다. 당장에 나가든지 음식을 시켜라. 인근에서 영업하는 식당 주인이다. 펜스 대부분은 지자체가 설치했다. 공적 시설인 펜스가 식당엔 보호시설인 셈이다. ▶경기도와 지자체가 벌인 계곡 불법 퇴치 운동이 성과를 냈다. 독버섯처럼 퍼져 있던 계곡 불법 상행위가 사라졌다. 70여 곳이 경기도 특사경에 철퇴를 맞았다. 지자체 계도에 따라 자진 철거한 곳도 많다. 잘한 일이다. 그런데 부족한 면이 있다. 계곡 불법 퇴치에 나선 궁극적 목적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이 운동을 주도했던 이재명 도지사가 이렇게 강조했었다. 계곡과 하천을 시민에게 돌려 드리겠다. ▶맞다. 펜스를 뜯어내는 것이 이번 운동의 끝이다. 시민들이 언제든, 어디로든 계곡에 닿을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나름의 대책은 엿보인다. 하천 진ㆍ출입 통로와 계단을 만들겠다는 지자체도 있다. 하지만, 이것도 문제가 있다. 어느 식당 쪽은 터주고, 어느 식당 쪽엔 계단을 놔줄 건가. 기본적으로 모든 펜스를 철거해야 한다. 차량 안전은 볼라드 등 장치로 하면 된다. 자연친화적인 시설들도 널려 있다. 펜스를 뜯어내야 한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입시 스펙은 고고익선?

올해 서울대에 수시 전형으로 입학한 학생들은 고교 3년간 학교에서 평균 30개의 상을 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방학과 입시에 반영되지 않는 3학년 2학기를 제외하면 보름에 한 번 상을 받은 것이다. 서울대 합격생들이 학교에서 받은 상은 2015년 23개, 2016년 25개, 2017년 27개, 2018년 30개 등으로 매년 늘고 있다. 가장 많이 상을 탄 학생은 3년간 108개 상을 받았다. 고교 1년 수업 일수가 180일인 점을 감안하면 4일에 한 번 상을 받은 셈이다. 민주당 김병욱 의원실이 2019학년도 서울대 수시 합격생 현황을 공개했다. 서울대는 합격생 10명 중 8명을 내신 성적과 학교생활기록부 등으로 선발하는 수시 모집의 학생부종합전형(학종)으로 뽑고 있다. 여기엔 교내 수상, 봉사, 동아리 활동 등이 포함된다. 서울대 합격생의 3년간 평균 봉사활동 시간은 139시간이었다. 봉사활동 시간이 가장 많은 합격생은 489시간이었다. 하루 4시간씩 할 경우 3학년 1학기까지 122일 넘게 봉사활동을 했다는 뜻이다. 동아리 활동 시간은 평균 108시간으로 집계됐다. 동아리 활동을 가장 많이 한 학생은 3년간 374시간이었다. 합격생 자료를 보면 입시를 준비하는 고교생들이 공부하랴, 스펙 쌓으랴 얼마나 정신없이 바빴겠나 안쓰럽기도 하고, 이걸 본인이 다 했을까 의구심도 든다. 스펙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학교마다 각종 대회를 남발하고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에게 상을 몰아주는 경향이 있다. 봉사나 동아리 활동에 부모의 경제력이나 사회적 지위가 영향을 미쳐 금수저 전형이라는 비판도 있다. 교육부가 2022년도 대입제도 개편 방안을 통해 교내 상과 동아리활동 등의 스펙 기재를 제한했지만 헛점이 많다. 학종의 명확한 합격기준이 애매하다보니 학부모들은 입시 스펙은 고고익선(高高益善)이라 생각해 스펙 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일단 최대치로 준비하고 보자는 스펙 인플레이션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학생도, 부모도 지친다. 학종은 서울대의 경우 신입생의 약 79%, 서울 주요 10개 대학에선 40%를 뽑을 만큼 비중이 크다. 학생의 재능과 잠재력을 종합 평가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깜깜이 전형이라는 불신이 크다. 재능과 잠재력이 제대로 평가되는지 의문이고, 평가기준이 모호해 공정성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조국 법무부 장관의 딸 문제 등 학종에 대한 비판이 커지면서 대학이 평가 기준을 공개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다. 대입 정시 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공정성과 투명성이 훼손된 대학 입시, 대입과 고교교육 전반에 걸쳐 손질이 필요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명절 가족 갈등

추석은 1989년부터 사흘 연속 공휴일이다. 2014년 대체휴일제까지 도입돼 가을 휴가와 같다. 추석 연휴는 모처럼 만난 가족ㆍ친지와 정을 나누는 즐거운 시간이지만 귀성ㆍ귀경 전쟁에다 차례 준비, 손님 대접 등으로 몸과 마음이 지치는 힘든 시간이기도 하다. 특히 배려심 없는 말과 행동으로 상처를 주고 얼굴을 붉히고, 그러다 갈등이 폭발한다. 사소한 말다툼이 칼부림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고, 명절 후 이혼하는 부부도 상당수다. 추석 다음날인 지난 14일 고양의 한 아파트에서 부부싸움을 하던 남편이 아내를 흉기로 찌른 뒤 자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40대 부부인 이들은 새벽에 심하게 싸움을 벌이다 남편이 부인의 등을 흉기로 찔렀고, 범행 직후 자해를 시도해 둘 다 중상을 입었다. 추석 당일인 13일 청주에서는 어머니가 사는 아파트에 불을 지른 40대 방화범 아들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 남성은 15층짜리 아파트의 9층 어머니 집에 들어가 불을 지르고 빠져나왔고, 어머니는 다행히 외출 중이었다. 방화로 아파트 주민 200여 명이 긴급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고, 30여 명이 병원 치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왜 부부싸움을 했고, 왜 어머니 집에 불을 질렀는지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명절이면 가족간 갈등으로 인한 사건이 종종 일어난다. 명절은 부부 갈등, 고부 갈등, 세대 갈등, 남녀 갈등이 폭발할 수 있는 시기다. 표면 아래 있던 반목과 갈등이 명절을 계기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추석 연휴가 끝났지만 많은 이들이 오랜만에 만난 가족 간에 생긴 갈등으로 우울감을 호소한다. 정신과를 찾는 사람도 많고, 법원을 찾는 부부도 많다. 통계청의 최근 5년간 이혼 통계를 보면 설과 추석 명절 직후인 23월과 1011월의 이혼 건수가 바로 직전 달보다 평균 11.5%나 많다. 지난해 추석 다음 달인 10월에 협의이혼 신청은 총 1만2천124건이다. 전월(9천56건)보다 33.9% 늘었다. 같은 기간 법원에 접수된 이혼 소송은 3천374건으로 전월(2천519건)에 비해 27.6% 증가했다. 명절에 가족이 모이는 과정에서 부부간 갈등이 새로 생기기도 하지만 평소 쌓인 앙금이 악화돼 폭발하는 경우가 많다. 명절증후군의 부작용이 많이 알려져 갈등을 만들거나 증폭시키지 않으려 조심한다는데도 쉽지 않다. 때문에 추석을 없애자는 국민청원에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고, 차례 문화를 거부하는 가구도 늘고 있다. 명절 자체가 무슨 죄가 있겠는가.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하지 않도록 서로 조심하고 배려하는 수밖에. 부부ㆍ가족 간의 대화와 소통, 배려는 늘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웃음 전도사의 폐암

1980년대 후반쯤이다. 대학로 한 켠에서 그를 봤다. 기타 하나 들고 공연을 하고 있었다. 지금은 길거리 공연이 자리를 잡았다. 그때는 그렇지 않았다. 길거리 공연을 걸인 취급했다. 그 어색한 일을 그는 당당하게 했다. 노래도 하고, 개그도 하며 행인을 즐겁게 해줬다. 익살스런 이문세 모창이 특히 기억난다. 입장료 없어 연극도 못 보던 연인들에게는 더 없는 공짜 공연이었다. ▶방송에 진출한 것은 한참 뒤다. 1994년 MBC 공채 5기 개그맨으로 데뷔했다. 몇몇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다할 인기를 끌지 못했다. 결국, 길거리로 돌아왔다. 그의 스탠딩 개그 멘트에 이런 게 있다. 내달부터 인기프로그램 ○○○가 가을 개편합니다. 여러분, 제가 그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싶습니다. 우스갯소리지만 웃을 수 없는 대목이다. 방송에 출연하고 싶다는 표현이었다. 한국의 방송사들은 그를 끝까지 외면했다. ▶같은 길거리 예능인 윤효상을 만났다. 그 즈음 길거리 공연에 대한 인식도 좋아졌다. 그들의 모습이 인터넷에 오르기 시작했다. 수만건의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청테이프를 붙인 기타, 너덜너덜해진 드럼이 그들의 궁핍한 생활을 대면했다. 그런 속에서도 소년소녀가장과 무의탁 노인들을 도왔다. 이런 멘트도 있다. 한쪽에서 모금 시작하면 반대쪽에서 가십니다. 그래서 양쪽에서 동시에 걷겠습니다. 모금도 즐겁게 엮어간 개그였다. ▶김철민씨(55)다. 그가 폐암 4기라고 한다. 자신의 SNS에 직접 밝혔다. 오늘 아침 폐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노래하겠다. 그를 아는 모든 이들이 받은 충격이 크다. 일찍이 TV가 외면한 길거리 스타였다. 어렵고 고됐을 인생이었다. 그러면서도 많은 이들에게 준 게 많다. 웃음을 줬고, 도움을 줬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 왜 하필 그에게 몹쓸 병이 왔을까. 너무 잔인하지 않나. ▶지금도 인터넷에 남아 있는 그의 명언들이 있다. 여러분,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해지는 거래요. 여러분들 지금 힘들고 외롭더라도 그건 잠시입니다. 이 아름다운 세상은 여러분 겁니다. 여러분, 올해는 하시는 일 다 잘 돼서 여러분 모두가 지겨워 하는 회사 때려치우시기 바랍니다. 세상엔 황금도 있고 소금도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소중한 건 지금입니다. 그가 하루빨리 회복해 세상이 공정함을 입증해 보였으면 좋겠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나홀로 추석

자발적 고립을 택해 식사, 여가 생활 등을 홀로 즐기는 문화를 나홀로 문화라고 한다. 나홀로 문화와 더불어 나타난 신조어로 혼술ㆍ혼밥 등이 있다. 일반적으로 혼-을 붙여 홀로 하는 행위임을 나타낸다. 함께가 아닌 혼자를 즐기는 이들을 혼족이라 한다. 혼족이라는 신(新)인류는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술을 마시고, 혼자 영화를 보고 혼자 쇼핑을 즐기며, 혼자 여행도 하는 등 혼자 활동하는 성향이 강하다. 혼족은 1인 가구가 늘면서 더 뚜렷해졌다. 현재 우리나라 1인 가구는 585만여 명에 이른다. 전체 가구의 30%다. 1인 가구 급증으로 사회 트렌드가 크게 바뀌었다. 취업난과 경제불황,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도 혼족 증가에 한몫했다. 혼족은 혼자 사는 1인 가구와는 개념이 좀 다르다. 사회적ㆍ문화적으로 보다 폭넓은 의미를 지닌다. 의식주 활동은 물론 문화생활과 놀이, 여가활동 등 모든 부문에서 혼자 활동한다. 이들은 타인을 크게 의식하지 않고, 가족보다 자신의 건강과 경험을 중요시하며 인생을 즐긴다. 취미나 자기계발 등을 위해서 과감하게 지갑을 열어 관련 시장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친다. 12일부터 추석 연휴다. 명절 연휴를 맞아 고향집에 다녀오거나 가족모임에 참석할 수도 있지만 국내외 여행을 떠나거나 취업ㆍ결혼 등을 묻는 명절 스트레스를 피해 나홀로 추석을 보내는 혼추족도 많다. 유통가에선 혼추족을 위한 소용량, 간편식 제품이 다양하게 출시돼 경쟁이 치열하다. 한 편의점은 9가지 명절음식으로 한상가득도시락을 내놨는데 매년 명절 도시락 매출이 200% 이상 늘고 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최근 직장인, 대학생, 취업준비생 등 성인 남녀 2천83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9.8%가 추석을 혼자서 보낼 예정이라고 답했다. 남성(22.4%)이 여성(17.3%)보다 더 많았다. 취업 여부로 보면 취업준비생이 28.5%로 가장 많았고, 직장인 20.2%, 대학생 12.7% 순이었다. 또한 미혼이 기혼자보다 약 7배 많았다. 잡코리아가 직장인과 알바생 1천192명을 대상으로 한 다른 조사에서는 아르바이트생 64.7%, 직장인 45.0%가 추석 연휴에 출근한다고 답했다. 추석 연휴 출근은 직장이 정상 운영해서가 57.1%, 추가 수당을 받기 위해 자발적으로가 40.6%였다. 스트레스와 번거로움을 피해 나홀로 추석을 즐기는 이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혼자여서, 어쩔 수 없이 일하게 돼서 홀로 추석을 지내는 이도 많다. 이들에겐 명절에 스트레스가 더 크고 더 우울하다. 혼추족을 부러워할 것만은 아니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도쿄올림픽 욱일기 논란

욱일기(旭日旗)는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중 사용한 전범기로 일본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깃발이다. 일본 국기인 일장기의 태양 문양 주위에 퍼져 나가는 햇살을 형상화한 것으로, 떠오르는 태양이라는 의미가 있다. 욱일승천기라고도 한다. 1870년 일본제국 육군 군기로 처음 사용됐으며 1889년에는 해군 군함기로도 사용됐다. 일본은 태평양전쟁 등 아시아 여러 나라를 침략할 때 욱일기를 전면에 내걸고 전쟁을 벌여 세계적으로 전범기(戰犯旗)로 인식되고 있다. 1945년 일본이 전쟁에서 패하고 육해군이 해체되면서 욱일기 사용은 중단됐다. 하지만 1954년 창설된 육상자위대와 해상자위대는 욱일기를 군기로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다. 현재 육상자위대는 태양 문양 주위에 8줄기 햇살이 퍼지는 욱일기를, 해상자위대는 16줄 햇살이 그려진 욱일기를 사용한다. 히틀러의 나치 독일이 전범기로 사용한 하켄크로이츠가 엄격히 금지되는 것에 반해, 욱일기는 현재도 침략 역사를 부정하는 일본의 극우파, 혹은 스포츠 응원에서 종종 사용되고 있다. 욱일기 문양은 옷, 신발, 모자 등 일본의 각종 상품에도 새겨져 있다. 내년 도쿄올림픽에서 욱일기가 펄럭일 것으로 보인다. 2020년 도쿄올림픽ㆍ패럴림픽 조직위원회는 응원 도구로서 욱일기를 금지하지 않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조직위는 앞서 욱일기를 떠올리는 패럴림픽 메달을 공개했다. 올림픽경기장 곳곳에 욱일기가 휘날리고 욱일기가 그려진 메달을 수여하는 장면이라니, 일본은 지구촌 축제인 올림픽을 군국주의 부활을 위한 선전장으로 만들려고 한다. 일본은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한국, 중국,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국가들에게 씻을 수 없는 공포와 분노를 불러 일으켰다. 욱일기는 침략전쟁과 학살, 반인륜적 범죄의 상징이다. 욱일기는 그 자체로 식민지배를 받은 국가와 국민들에게 악몽이고, 큰 상처와 고통을 준다. 피해를 입힌 국가에 사죄를 해도 모자랄 판에 올림픽경기장에 욱일기가 휘날리게 하겠다니 제정신인가 싶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때 자국 관광객 안전수칙으로 욱일기 사용을 자제한 바 있는 일본이다. 욱일기가 주변 국가를 얼마나 자극할지 잘 알면서도 이를 허용하는 심보가 참 나쁘다. 도쿄올림픽에 욱일기가 나부끼게 하는 것은 올림픽정신에 어긋난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정치 행위와 표현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IOC는 이번에 제재 의사를 보이지 않고 방관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국제사회와 연대해 욱일기 사용을 막아야 한다. 전쟁 범죄의 상징인 욱일기는 평화와 화합을 위한 지구촌 스포츠 축제에 가당치 않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내로남불’의 시대에 살다

극렬하게 갈렸지만 한쪽은 오픈(OPEN) 태세를, 또 다른 한쪽은 샤이(SHY)를 택했다. 2019년 9월을 사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비단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 관련된 이야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전통적인 방식의 정치와 국민과의 거리는 이미 그 경계가 사라진 지 오래다. 인터넷의 발달,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일반화는 오히려 경계를 넘어 무서울 정도의 내로남불의 시대를 창조했다. 90년대 정치권에서 유행하던 내로남불이 헤게모니로 승화돼 2019년 대한민국을 완전히 집어삼킨 것이다. 내로남불이 무엇이냐.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뜻으로, 남이 할 때는 비난하던 행위를 자신이 할 때는 합리화하는 태도를 이르는 말이지 않은가. 내가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내가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사고의 이분법적 분리만이 대한민국에 남아 있다. ▶필자의 직업도 기자다. 그런데 이 내로남불의 시대에 가장 이분법적 프레임에 갇혀 욕을 먹는 직업이 돼 버렸다. 기자보다, 기레기라는 단어로 회자되기 때문이다. 기레기 탄생 비화를 더 깊숙이 파고 들어가고 싶지 않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 기자들이 놓치고, 방관했던 과정이 존재했기에 그 같은 프레임 속에서 일정 수의 국민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는 대상이 됐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훨씬 많은, 상당수의 기자들이 아주 쉬운 표현으로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현장에서 지금도 열심히 답을 찾고 있다고 믿고 싶다. ▶얼마 전 민의의 전당인 국회 정론관 복도에서 한 국회의원이 출입기자의 질문에 이러니 기레기 소리를 듣는 것이다라는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그 의원 역시 내로남불의 시대에 살며, 안타깝게도 이분법적 프레임에 갇힌 희생자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출입기자의 질문이 본인과 소속 정당, 현 정부의 입맛에 맞지 않았기에 이 같은 공격적 성향의 발언이 나오지는 않았는지. 역으로 조국 후보자와 관련해 답변하기 좋은 달콤한 질문이었다면, 그 기자는 아주 능력 있는, 정권의 나팔수로 회자됐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내로남불의 시대에, 본인들의 이념과 함께하지 않는 기자들이 기레기라면 국민은 뒷전이고, 나라 살림은 못 챙기고, 이분법적 분리에만 혈안이 된 일정 수의 국회의원들도 국레기(국회의원+쓰레기)라는 신조어로 평가받아야 하지 않을까. 작은 그릇에서 벗어나 넓고 넓은 파란 하늘 전체를 바라보는 혜안이 아쉬운 오늘이다. 김규태 정치부 차장

[지지대]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1988년 11월17일 열린 국회 5공 비리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 현장. 대한민국 헌정사상 처음으로 텔레비전을 통해 생방송 된 청문회는 전두환 전 대통령 친동생 전경환씨의 새마을운동 중앙본부 비리와 관련한 구속으로 이뤄졌다. 특히 광주학살을 무자비하게 자행한 전두환 정권을 심판하고 민낯을 낱낱이 밝혀줄 특위에 국민의 눈과 귀가 쏠렸다. 하지만 증인들의 도도하고 뻔뻔한 자세, 불성실한 답변은 국민을 분노케 하고 강압적 자세로 호통만 일삼는 일부 의원들의 질의 아닌 질타는 역시나 하는 허탈감과 함께 실망감만 안겨주었다. 하지만, 보자기를 들고 들어오는 한 의원은 달랐다. 이제 정치 입문 6개월 만인 초선의 노무현 의원. 그가 보자기를 풀면서 쏟아내는 질의는 철저하게 준비된 객관적 자료를 바탕으로 증인들을 몰아세웠다. 이종원 전 법무장관, 장세동 전 안기부장, 정주영 현대그룹 사장 등을 상대로 정곡을 찌르는 질문은 청문회를 답답하게 지켜보던 국민의 맘을 시원하게 뚫어줬다. 요즘 말로 사이다 질의다. 5공 비리 특위는 노무현 의원을 국민적 스타로 만들었고 청문회란 이런 것이라는 모범 답안을 보여줬다. 2019년 8월부터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놓고 정치권이, 국민이 갑론을박하고 있다. 인사청문회는 대통령의 인사권 남용을 막고 고위 공직자들이 공직에 취임할 만한 도덕성과 정책 수행 능력을 갖췄는지를 검증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듣지도 보지도 못한 청문회 아닌 청문회가 열렸다. 후보자가 자청해 마련한 기자 간담회. 국회의원과 달리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기자들의 질문은 한계가 있고 상대적으로 후보자는 여러 의혹에 대한 해명, 설명만 할 뿐이다. 이런 자리가 8시간을 넘든지 사나흘 동안 한다 해도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인사 청문회는 보수, 진보 간의 진영싸움이 아니다. 비리나 불법 행위를 저지른 인물이 고위 공직자가 된다면 국민 삶만 고단하다. 더욱이 법무부 장관이라면 어느 인사보다 높은 도덕성이 요구된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이 있다. 때문에 조 후보자를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일반인이 아닌 법무부 장관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이 왜 있겠는가. 김창학 경제부장

[지지대] 이강철 감독

KT 위즈 야구가 역사를 써가고 있다. 창단 최초인 9연승 기록까지 세웠다. 처음으로 8월 승률 5할도 달성했다. 이제 가을 야구에 도전하고 있다. NC 다이노스와의 5위 경쟁이 숨 막힌다. 팬들도 신났다. 1천300만 도민의 열정이 꽃을 피워가는 순간이다. 그 중심에 이강철 감독이 있다. 만년 꼴찌(2018년 9위)를 여기까지 끌고 왔다. 누가 뭐래도 그는 이 순간의 명장이다. 그런데도 욕을 듣는다. 이런저런 지적을 받는다. 개별 상황에 대한 탓이다. ▶어떤 타자가 한 경기에서 다섯 번 삼진 당했다. 쉽게 나오는 기록이 아니다. 게다가 나머지 한 번은 병살타였다. 이날만 부진했다면 괜찮을 텐데, 그게 아니다. 최근 10경기 타율이 1할 6푼에 머문다. 25번 나왔는데 안타 4개가 전부다. 어떤 투수는 한 경기에서 16.20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최근 10경기 평균자책점이 6.48이다. 삼진을 24개 뽑는 동안 볼넷을 20개 줬다. 안 그래도 투수 의존도가 높은 KT 위즈다. 그래서 이 투수의 부진이 더 커 보인다. ▶그 타자의 7월 타율은 무려 4할 3리였다. 그야말로 불방망이였다. 그 투수의 7월 평균자책점은 3.86이었다. 다들 KT 위즈의 미래라고 칭찬했다. 잘할 때도 있고 못할 때도 있다. 그게 야구다. 그런데 팬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 가을 야구의 초 치기가 시작된 요즘이라 더 그렇다. 경기마다 5, 6위가 바뀐다. 그러다 보니 팬심에 여유가 없다. 경기에 지면 그대로 원성이 된다. 모두 이강철 감독을 향하는 비난이다. 두 선수를 고집하지 말라는 댓글이 많다. ▶전임 감독이 있었다. 연패를 거듭했다. 홈경기에서 2대 20으로 지기도 했다. 창단 이후 최악의 기록이다. 그때도 원성은 감독을 향했다. 그의 자율야구가 도마 위에 올랐다. 다들 감독이 없다며 비난했다. 선수 교체도 뜸했고, 작전도 뜸했다. 지금 이강철 감독은 다르다. 적극적이다. 선수 교체나 작전 지시가 수시로 이뤄진다. 성적도 좋다. 그런데도 욕을 먹는다. 그 타자 그 투수 때문에 듣는 욕이 특히 많다. ▶가을 점퍼 입고 싶다. 팬 석 원장의 희망이다. 모든 수원팬의 마음이 그와 같다. 그 기대를 온몸에 지고 있는 이강철 감독이다. 그래서, 이래도 저래도 욕먹는다. 어쩌면 모든 야구 감독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덜 욕 먹으려면 어째야 할까. 물러섬의 자세가 필요하다. 감독은 연출자에 머물러야 한다. 주연 배우가 되려 하면 안 된다. 이 자제를 잃으면 과한 간섭으로 이어진다. 빼지 말아야 할 선수 빼고, 빼야 할 선수 안 빼게 된다. 김종구 주필

[지지대] 신종사기 ‘로맨스 스캠’

한 일본인 여성이 2016년 온라인 펜팔 사이트에서 시리아에 파병 온 미군 장교라고 소개한 테리 가르시아를 알게 됐다. 둘은 몇주 동안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온라인상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어느 날 가르시아는 시리아에서 다이아몬드가 든 가방을 발견했고, 밀반출을 위해 도움이 필요하다며 여성에게 돈을 요구했다. 이 여성은 10개월간 수십 차례에 걸쳐 터키와 미국ㆍ영국 계좌로 20만 달러(약 2억4천만 원)를 송금했다. 친척친구전 남편에게까지 돈을 빌렸다고 한다. 가르시아는 사기꾼이었다. 모든 게 거짓말이었다. 일본 여성은 이른바 로맨스 스캠(Romance Scam)에 당한 것이다. 연애를 뜻하는 영어 단어 로맨스와 신용 사기를 의미하는 스캠의 합성어인 로맨스 스캠은 온라인에서 친분을 쌓아 믿음을 갖게 한 뒤 연애 등을 미끼로 돈을 요구하는 신종 금융사기다. 미국에서 최근 로맨스 스캠 사기단이 적발됐다. 대부분 나이지리아인으로 구성된 사기단은 80여 명으로 미국과 나이지리아 등 각국에 거주하며 사기행각을 벌였다. 이 가운데 17명은 사기 공모, 자금 세탁 공모, 신분 도용 등의 혐의로 미국에서 체포됐다. 이들은 사기에 취약한 나이든 여성이나 사업체로부터 최소 600만 달러(약 72억 원)를 사취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일본 여성도 이 사기단에 걸렸다. 이들은 기업을 상대로 회사 이메일 시스템을 해킹하고, 직원 사칭 등의 범행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로맨스 스캠은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났다. 소셜미디어에서 영국인 남성을 가장해 여성들에게 호감을 표시하며 접근, 두 명의 여성에게 1천392만 원을 뜯어낸 3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혀 최근 실형이 선고됐다. 붙잡힌 영국 남성의 정체는 아프리카 모잠비크 난민이었다. 이 남성은 영국 사는 남자라며 접근했다. 관계가 진전되면서 당신과 한국에서 살고 싶다고 했고, 나중엔 선물을 한국으로 보내고 싶은데 통관료를 먼저 지급해주면 한국에 가서 돌려주겠다고 요구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런 사기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페이스북 등에서 여성들에게 무작위로 메시지를 보내 시리아에서 포상금을 받은 퇴역 미군 거액을 상속받은 미국 외교관이라고 신분을 속인 뒤 걸려드는 여성들에게 항공료통관료 명목으로 거액을 요구하는 식이다. 로맨스 스캠 피해자 가운데는 심리적으로 외로운 중장년층이 많다고 한다. 은퇴했거나 은퇴를 준비하는 중장년층의 노후자금은 사기꾼들의 매력적인 목표물이다. 사기 수법도 다양하고 교묘해지고 있다. 나는 당하지 않는다고 과신하지 말고,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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