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부터 ‘2022 경기 시각예술 집중조명 프로젝트’에 선정된 기슬기, 천대광, 김시하 작가의 신작 발표전 ‘달 없는 밤’이 경기도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올해로 두 번째를 맞은 경기문화재단과 경기도미술관의 경기작가집중조명전은 사진, 조각,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다뤄온 10년 이상 경력의 중진 작가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서로 다른 시공간에 존재하는 별빛이 지금 우리에게 와 닿는 것처럼 각기 다른 시작점에서 출발해 경기도미술관으로 모여든 세 작가들이 관람객들과 만난다. 하늘을 수놓는 별이 또렷하게 눈에 담기는 ‘달 없는 밤’, 세 명의 작품 세계를 지금 여기서 살펴본다. 기슬기 작가는 카메라의 뷰파인더 안을 어떻게 채워 넣을지 고민하는 작업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사진을 찍은 이후의 과정에도 줄곧 매달린다. 인화된 사진을 재촬영하거나 원본 이미지에 조작을 가한 뒤 다시 사진으로 출력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하나의 이미지에 녹아든 시공간의 궤적을 조명한다. 기 작가는 전시장에 설치와 조명 작업을 마친 뒤 액자 속에 걸린 9점의 사진을 다시 찍었다. 작가는 이렇게 액자 속 원본과 유리에 비친 모습이 겹쳐 있는 작품을 빚어냈다. 한 장의 사진에 전시공간과 작업을 이어온 시간의 흔적이 뒤섞인 채로 겹겹이 쌓여 있다. 관람객들은 유리를 통해 비치는 자신과 나를 둘러싼 전시장의 모습도 발견한다. 무엇이 프레이밍됐을 때 사진이라고 할 수 있는가. 과연 어디까지가 재현이고 어디까지 복제인가. 기 작가의 사진은 이처럼 사진 매체의 근간을 들여다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천대광 작가는 개인의 내면이 묻어나는 요소들이 바깥 세상과 호응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지켜보려고 한다. 그가 전시장에 마련한 ‘사람의 집’엔 작가 본인의 유년 시절 기억이 투영돼 있다. 1970년대 급격한 산업화 시기, 곳곳에서 건물이 지어지는 광경을 보며 자란 기억을 더듬으며 작업에 임한 천 작가는 이번 작업에서 당대 양옥에서 주로 보였던 슬래브 건축 양식을 녹여냈다. 형형색색의 유리와 통일되지 않은 인테리어가 정제되지 않은 천 작가의 내면과 맞닿아 있다. 천 작가가 만들어낸 구조물은 단독으로 존재할 수 없다. 관람객들은 그가 빚어낸 공간에 스며들 기회를 얻는다. 방을 드나들고, 계단을 올라가면서 빈 곳을 채우는 관람객들로 인해 작가의 개인적인 표현 양식들이 재구성되거나 다시 의미를 획득하기도 한다. 개인이 펼쳐놓은 시공간에 관람객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접속할 수 있다는 점이 작품의 매력이다. 김시하 작가는 대형 설치 작업을 이어오다가 최근 들어 물성에 주목하고 있다. 그는 조각 작업을 무대로 올려 작품의 존재성을 가늠해보는 자리를 마련하는 데 관심을 보인다. 존재의 본질은 곧 경계와 이어진다. 그는 자연과 인공, 중심과 주변 등 이분화된 개념이 무대의 경계를 넘나드는 과정을 알아본다. 김 작가는 이번 작품 ‘조각의 조각’을 만드는 데 있어 지금껏 제작해 온 작품들의 파편을 재활용해 무대를 꾸몄다. 무엇이 쓸모있고 무엇이 쓸모없음을 말하고 있는가. 조명과 조각들로 채워진 무대 공간에서 관람객들은 작품의 일부이자 작품 바깥의 관찰자를 오가는 존재가 된다. 전시 공간과 작품 그리고 관람객의 속성을 구분 짓지 않으려는 김 작가의 고민이 묻어난다. 김선영 경기도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세 명의 중진 작가들이 구축해 온 작품 세계를 조망하면서도 현 시점에 어떤 생각으로 작품을 풀어내는지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밝혔다. 전시는 내년 2월12일까지. 송상호기자
11월 마지막 주 수요일 ‘경기도 문화의 날’을 맞아 한 주간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이 열린다. 저렴한 비용으로 가족이 알차게 즐길 수 있는 문화 체험을 알아봤다. ■ 군포문화재단 연극 ‘아버지와 살면’ 군포문화재단은 오는 30일 오전 11시 군포문화예술회관 철쭉홀에서 2022년 ‘네버랜드 in 군포’ 시리즈의 마지막 공연인 연극 ‘아버지와 살면’을 무대에 올린다. 연극 ‘아버지와 살면’은 일본의 셰익스피어로 불리는 이노우에 히사시의 원작 희곡의 느낌을 그대로 살려낸 작품으로, 사단법인 문화프로덕션 도모가 제작한 작품이다. 일본 내에서도 500회가 넘게 공연이 진행됐으며, 전쟁 반대 메시지를 감성적으로 전달, 일본은 물론 해외 여러 국가에서도 호평 받고 있다. 이 작품은 히로시마 원폭에 대한 이야기를 배경으로 전쟁의 아픔을 이야기한다. 공연에서는 정치적‧역사적 배경에서 벗어나 전쟁의 아픔에 중점을 두고자 의상부터 세트, 소품까지 일본의 가정집을 그대로 재연해 낸다. 특히 히로시마 원폭 3년 후의 여름을 배경으로, 원자폭탄에 목숨을 잃고 유령이 되어 딸을 찾아온 아버지 타케조와 혼자 살아남은 것에 대한 죄책감을 가진 딸 미쓰에가 나누는 대화로 극이 진행된다. 장난스러운 일상의 대화 속에서 부녀 간의 전쟁에 대한 기억을 역설적으로 이야기하며 일상과 가족의 소중함, 그리고 아픔을 딛고 살아 나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공연 입장료는 문화가 있는날 특별가로 1인 1만원이다. ■ 어린이 전통 체험 한가득~ ‘경기소리전수관’ 경기소리전수관에서는 지난 28일에 이어 다음 달 1~2일 도내 미취학 아동과 가족을 대상으로 ‘얼쑤! 전수관 체험’을 진행한다. 오전 10시부터 정오까지 다양한 전수관 프로그램을 통해 민속 놀이 등을 체험할 수 있다. 윷놀이, 제기차기, 땅따먹기, 투호던지기, 버나돌리기의 5가지 전통놀이를 체험하는 민속놀이, 민요 ‘아리랑 배우기’인 전통예술 교육, 전수관 체험을 상상을 더하는 상상더하기, 국악팀 사부작단의 어린이 국악극 ‘향기장수 이야기’ 공연 등이 이어진다. ‘향기장수 이야기’는 향기가 풀풀 나는 뷰티풀 왕국의 향기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다. 외모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내면의 아름다움을 살피자는 내용을 전하는 어린이 국악극이다. 정자연기자
‘음악명상콘서트 (Concert Meditation)’를 표방한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의 ‘반향’이 올해 ‘반향 2022 : 묵(黙)’으로 다시 관객과 만난다. 올해 주제는 묵(黙), ‘침묵’이다. 경기시나위오케스트는 2019년 처음 반향을 선보인 이후 음악명상콘서트라는 큰 틀 안에서 매회 새로운 주제로 음악을 통한 명상의 시간을 선사하고 있다. 올해 무대는 한국 창작음악의 방향성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작곡가 이건용의 음악을 중심으로 무대를 선보인다. 12월 2일 경기아트센터 대극장, 3일 남양성모성지 대성당(화성)에서 펼쳐지는 ‘반향 2022 : 묵(黙)’을 미리 만나본다. ■ 음악을 통한 반향…한 해를 돌아보는 경험 ‘반향’은 연말, 벗어나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반추하는 명상음악회 콘셉트를 도입했다. 특히 콘서트임에도 관객이 명상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요소를 배치한 게 특징이다. 작곡가이자 예술감독으로 참여하는 이건용은 “생각과 마음을 다스리는 행위가 ‘침묵’이라고 볼 수 있고, 반면에 음악은 소리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침묵과는 정 반대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면서 “침묵의 수행을 음악으로 구현하고자 그동안 작곡하면서 늘 적용해오던 음악의 논리와 정해진 형식, 문법을 다 버리고 마치 유목민이 배낭 하나 둘러메고 초원이나 황무지처럼 아무 표지판이나 길도 없는 곳을 가는 느낌으로 작업에 임했다. 이번 공연은 음악공연이 아니라 음악을 통한 반향(Reflection)이 청중들에게 전달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 독주부터 74인조 대편성 관현악…다양하게 만나는 침묵의 소리 이번 공연에서는 말과 음악을 통해 명상음악에 깊이를 더할 신작 ‘천둥의 말’과 국악관현악곡 ‘묵(默)’ 외에도 과거 이건용이 작곡했던 ‘저녁노래’ 시리즈 중 첼로 독주를 위한 ‘저녁노래 2’와 가야금 4중주를 위한 ‘저녁노래4’를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신작 ‘천둥의 말’은 작곡가 이건용이 T.S 엘리엇의 시 ‘황무지’에서 영감을 얻은 곡이다. 시의 가사내용을 토대로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성악앙상블 소리봄(6인)과 타악기의 앙상블로 선보이는 무대다. 공연의 하이라이트 ‘묵(黙)’은 국악관현악 편성으로 구성된 대작이다. 침묵하는 동안에는 겉으로 조용히 있어도 머릿속에서 오히려 더 많은 생각들이 각자 요란하게 소리를 내지르게 되는 점이 음악으로 표현된다. 20여 분간 연주 될 이번 곡은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원일이 직접 지휘에 나선다. 연주는 74인조 대편성으로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의 깊이 있는 사운드로 경험할 수 있다. 공연이 열리는 장소도 눈 여겨 볼 만하다. 2일 경기아트센터 대극장에서는 좌식무대와 조명, 스크린을 통해 이건용의 작품세계로 관객들이 몰입할 수 있다. 3일 공연이 열리는 남양성모성지 대성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성모마리아 순례지로 자연과 빛이 어우러진 공간, 별도의 음향장비 없이도 울림이 아름답다. 공연은 경기아트센터 누리집과 인터파크를 통해 예매할 수 있다. 남양성모성지 공연은 사전예매자에 한해서만 관람할 수 있다. 정자연기자
김포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국악앙상블 달섬(대표 문수지)이 전통 창작극 ‘나의 넋 꽃이 되어’를 18일 오후 7시 통진두레문화센터 무대에서 처음 선보인다. 달섬의 ‘나의 넋 꽃이 되어’는 올해 김포문화재단의 전통문화공연 창작지원사업 선정작으로 김포지역 문화예술계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 공연은 북녁을 코앞에서 내려다보이는 김포시 월곶면의 애기봉에서 전해 내려오는 전통설화를 바탕으로 한국무용, 국악, 연희, 현대극 형식이 결합된 전통 창작 예술극이다. 김포 애기봉 평화생태공원에는 이 설화의 주인공인 애기의 넋을 기리는 비석이 있다. 당시 이 설화를 들은 대통령이 사연에 감복해 직접 휘호를 썼을 만큼 애틋하고 안타까운 사연을 갖고 있는 애기봉 설화를 상상력과 국악, 전통춤, 창작 곡을 더해 다원 예술극의 형태로 만들었다. ‘나의 넋 꽃이 되어’의 줄거리는 한 문화재단에서 일하는 주인공 주원의 일상에서 시작된다. 어느날 주원은 전통무용대회에 심사위원으로 참석하게 된다. 일에 치여 피곤한 일상 속에 허겁지겁 도착한 공연장. 주원은 지루한 낯빛으로 경연을 지켜보다 눈을 뗄 수 없는 한 여인을 만나게 되고, 어디선가 분명히 그녀를 본 듯한 느낌을 받는다. 과거, 조선시대 평안도. 최연소 평안감사로 부임한 주원은 자신을 환영하는 마을 행사에서 독무를 추는 기생 설화를 만나게 된다. 주변의 무엇 무엇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독보적이고 아름다운 설화의 춤에 주원은 첫눈에 반한다. 그날 밤, 주원은 설화를 자신의 거처로 불러들이고 이에 설화는 자신을 예인이 아닌 한낱 유곽의 기생으로 생각하는 거냐며 주원을 차갑게 대하면서 극을 끌어간다. 문수지 대표는 “애기봉 설화 속에 담긴 다양한 공연을 통해 전통예술을 보다 가까이에서 듣고 보고 즐기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양형찬기자
진흙 속에서도 꽃은 아름답게 피어난다. 정치적 내분으로 2년 가까이 고통받고 있는 나라, 미얀마에서도 예술은 활짝 피어나고 있었다. 경기아트센터 갤러리가 9일부터 진행한 전시 ‘미얀마 작가 초대전-치유의 순간’은 미얀마를 대표하는 작가 6인의 수준 높은 작품을 내걸었다. 재한 미얀마 학생회가 주관한 공연 ‘미얀마의 봄’ 등 지난해 3월부터 재한 미얀마인들과 함께 미얀마의 현실과 민주화의 가치를 연대하고 지지하며 공연, 전시 등을 선보여온 경기아트센터가 다시 한번 ‘미얀마’를 주제로 다룬 전시다. ■ 치유의 순간...세계 곳곳에서 상처입은 이들을 위로 전시는 ‘치유의 순간’을 주제로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재난 상황과 사회적 충돌로 상처입은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기획됐다. 작가들의 고향인 미얀마는 최근 군부 쿠데타에서 비롯된 사회적 갈등과 자연 재해 등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작품을 통해 미얀마의 독특한 문화적 요소들에 더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예술과 창작 활동을 놓지 않은 작가들의 열정과 희망이 전달된다. 전시는 미얀마의 전통문화와 자연환경, 미얀마 미술의 현 시점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작가 6인의 풍경화·인물화·추상화·사진 등 60여점으로 구성됐다. 열대 기후와 아열대 기후라는 특성을 가지며 불교 기반의 버마족과 135개 소수민족이 결합한 연방제 국가 미얀마는 종교적, 문화적 특색이 뚜렷하고 자연이 매우 아름답다. 미얀마의 순수한 아름다움은 작품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나는 특정 장면을 볼 때, 나를 덮쳐오는 감정을 그린다. 가끔, 내 감정이 폭발하고 내 눈앞에 펼쳐진 언덕이 빛과 색으로 울려오는 것 같다.” 미얀마 현대미술의 거장이자 미얀마에서 국제적으로도 인정 받는 작가 조 윈 페(Zaw Win Pe)는 미얀마의 아름다운 자연을 힘 있는 나이프 페인팅과 감각적 색채언어로 표현하며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전한다. ■ 여섯 작가 모두 “한국에 작품 선보여 기쁘다” 풍경을 주로 다루면서도 감정에 기반해 선, 형태, 색 무늬를 표현하는 작가 쪼 린(Kyaw Lin)의 작품에는 미얀마의 시골 풍경이 녹아 있다. 그는 “한국 드라마가 미얀마에서 많은 인기를 끌고 수많은 이들이 시청하듯 작가인 우리도 한국에 관심이 많다”며 “한국의 가을은 정말 아름다울 것 같다. 한국의 시골 풍경을 캔버스에 표현하면 어떨지 많이 생각한다”고 국내에 대한 궁금증과 관심을 전했다. 무생물 물체에 초점을 맞추는 작가 에이 녜인 민(Aye Nyein Myint)은 무생물에 아름다운 붓 터치와 다채로운 색감을 더해 마치 살아있듯 생생하게 표현한다. 미얀마의 꽃들을 찾아 자주 그려왔던 작가는 기회가 된다면 한국의 아름다운 꽃들을 주제로 작업해보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 정 많고 순수한 미얀마 사람들을 담다 이번 전시에는 앞선 다섯 작가들의 작품이 탄생한 배경적 이해를 돕는 작가 아웅 쪼 오(Aung Kyaw Oo)의 사진 작품들이 전시 전반의 서술을 더한다. 사진 작품을 통해 모든 작가들에게 영감이 됐을 미얀마의 아름다운 자연과 불교 유적지, 사람의 삶과 전통이 담긴 사진들이 국내의 우리에게 전달된다. “미얀마 대도시의 사라져 가는 공간을 기록하고 시간의 현실을 그 순간의 모습으로 남겨두고 싶다”는 작가는 아름답고 순수한 미얀마를 담아내 정치적 아픔이 흔들기 전의 고유한 그곳의 얼굴을 기분 좋게 전해준다. 작가를 선정하고 작품을 고르며 실질적으로 이번 전시의 기획을 담당한 엘웨이브 갤러리 김진형 실장은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서양 위주 예술 세계에 시선이 사로잡혀 있었다”며 “이러한 관성적 시각에서 벗어나 아시아적 관점을 다잡고 새로운 가치와 발견의 기쁨이 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미얀마 현지에서 작가들의 작품을 비행기로 운송해 오는 과정이 결코 쉽지는 않았지만 어려움 속에서 예술을 꽃피운 작품이 분명 우리에게 감동을 선사해주리라 기대하며 전시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전시는 경기아트센터 갤러리에서 21일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이나경수습기자
한 획 한 획 쓴 붓글씨에선 글씨만큼 올곧은 자세가 담겼다. 어떤 글씨는 따스한 삶의 언어가 글의 획과 함께 춤추며 마음을 적신다. 모두 우리가 일상에서 활용하고 마음에 새길 삶의 이야기다. ‘길이 아니면 가지 마라’, 도덕에 맞지 않으면 행하지 마라는 뜻을 담은 ‘非道不行’(비도불행),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하는 ‘새해 축시’, 노오란 수선화와 함께 수놓은 듯 적혀있는 신위 선생 시 ‘수선화’까지. 특유의 미감이 담겨 있는 서예로 살아 움직인다. 각종 기기가 발달한 시대. 서체에 깃든 가치와 혼으로 울림을 주는 박옥남 서예가의 ‘오당 박옥남 서예 50년’ 전시가 15일부터 20일까지 수원 팔달문화센터 강당에서 열린다. 서울교육대학교를 다니며 서예에 입문한 박 서예가는 1974년 문화공보부 주관 국전에 한문 서예 부문에 입선해 서예가의 길로 들어섰다. 졸업한 후 초등학교 교사를 하면서도 붓을 놓지 않았다. 대한민국서예대전초대작가전, 서울국제서예전, 한국서예큰울림전, 이서회전, 서연회전 등에 매년 다수의 작품을 출품했다. 대한민국서예대전 심사위원을 역임했으며 한국서가협회 초대작가로 활동 중이다. 한국서예박물관에 작품이 전시돼 있고 저서로 ‘오당 박옥남 서예 오십년’을 발간했다. 때론 빠르고 힘찬 필력으로 자형을 자유자재로 변화시키며 예술성을 담아내지만, 그의 작품에는 그가 말하는 삶의 이치가 담겼다. 붓을 대하는 순수한 자세와 법과 예의 이치로 빚어낸 획이다. 그는 “세월의 변화는 피할 길 없지만, 디지털 기기가 가질 수 없는 깊은 가치와 사유는 서예만이 가질 수 있다”면서 “서예는 앞으로도 전통과 깊은 울림의 정신적 가치를 계승·발전시켜야 하며, 서예만이 가질 수 있는 예와 법의 이치를 후세에 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시 개막일 오후 4시에는 그의 남편 무애 박태수의 수필집 ‘느림의 모놀로그’(2020)와 ‘새벽의 고요’(2022) 북 콘서트도 열린다. 무애 박태수는 보건학 박사로 국민건강보험공단 경기·인천지역 본부장을 역임했고 경기대, 연세대 등 겸임·외래 교수로 30년 간 대학강단에 섰다. 북 콘서트에 소개되는 ‘새벽의 고요’에는 아내인 박옥남 서예가의 붓글씨가 함께 수록돼 있어 글에 분위기를 더한다. 세계를 여행하며 눈과 귀, 마음으로 느낀 이야기를 많은 이들에게 전하고자 경기일보에 ‘시간이 멈춘 카리브의 섬나라 쿠바 여행 에세이’에 이어 ‘찬란한 고대문명과 콜로니얼 문화가 공존하는 멕시코 여행 에세이’를 연재 중이다. 정자연기자
맥간 공예의 아름다움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예맥회의 서른 번째 이야기 ‘빛과 보리의 만남’展이 오는 22일부터 27일까지 청주시한국공예관에서 열린다. 맥간 공예는 자연 고유의 소재인 보리의 줄기를 이용해 모자이크 기법과 목칠 공예 기법을 합해 작품을 만드는 독특한 예술장르다. 화려함과 은은함을 동시에 자아내며 소재 특성상 섬세한 부분까지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해 이를 응용한 장식용 액자, 보석함, 병풍, 가구 등 예술적 아름다움을 곁들인 다양한 생활용품을 만들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상수 맥간공예연구원장을 비롯한 26명의 예맥 회원이 보릿대로 다양하게 만든 작품 30여점을 선보인다. 예맥회는 보릿대를 예술작품으로 만드는 맥간공예연구원의 전수자들로 구성된 모임으로 작품 제작기법 전수, 취미생활 공예 강좌, 전시 활동 등을 한다. 수원과 청주, 천안, 안양, 광양에 지회를 뒀다. 맥간공예연구원은 지난 1991년부터 창시자 이상수 원장이 전수자 5명과 수원문화원 전시실에서 첫 창립전을 개최한 이후 매년 예맥회전을 열어 맥간공예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며 대중화에 힘 쏟고 있다. 이상수 맥간공예연구원장은 “청주지회 회원들과 청주시민들에게 코로나로 힘든 일상을 극복하고자 함과 용기, 행복을 바라는 마음을 담아 선보이는 전시인만큼 많은 관심을 바란다”고 전했다. 정자연기자
용인문화재단이 창립 10주년 기념 콘서트 ‘시민참여콘서트 <with you>’를 오는 20일 오후 4시 용인시 평생학습관 큰어울마당에서 선보인다. ‘시민참여콘서트 <with you>’는 대중 가수들의 공연과 더불어 관객들의 일상을 담은 이야기를 나누며 풍성한 이벤트까지 펼치는 이색 콘서트다. 11월 공연은 <with you> 콘서트의 ver.1으로 특유의 음색과 독특한 가사, 꾸밈없이 솔직한 매력으로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으며 시대의 아이콘으로 자리잡고 있는 싱어송라이터 미노이가 출연한다. ‘DOOL’, ‘busy guy’, ‘우리집 고양이 츄르를 좋아해’ 등 미노이만의 색깔이 담긴 음악으로 관객들과 호흡할 예정이다. 또한, 수준 높은 연주를 기반으로 완성형 퍼포먼스를 보이는 4인조 밴드 소란이 ‘나만 알고 싶다’, ‘리코타 치즈 샐러드’, ‘프린스’ 등 감성 가득한 곡으로 일상에 지친 시민들에게 따뜻한 여유와 위로를 선사할 예정이다. 8세 이상 관람가이며 티켓 가격은 1층 5만원, 2층 3만원, 2023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수험표를 지참한 수험생 본인에 한해 전석 50%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 공연 예매는 용인문화재단 누리집과 인터파크 티켓을 통해 가능하다. 정자연기자
수원시립공연단의 정기 공연 ‘봄의 노래는 바다에 흐르고’가 오는 16일부터 20일까지 수원SK아트리움 대공연장에서 관객들과 만난다. 연극은 일제 강점기 말인 1944년, 외딴 섬에서 이발소를 운영하면서 사는 한 가족과 섬에 주둔하던 일본인 헌병들 사이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조명한다. 어두운 시대의 그늘 속에서 힙겹게 휩쓸려 갔던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기회다. 구태환 수원시립공연단 예술감독은 이번 공연을 통해 인간 내면을 섬세하게 잡아내는 정의신 작가의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 무대 위에선 수원시립공연단의 이경, 전지석, 유현서 등 단원들과 베테랑 배우 손병호가 합을 맞춘다. 구태환 감독은 정의신 작가와의 협업에 관해 애정 어린 마음을 표현했다. 구 감독은 “정의신 작가는 개인적으로 너무 존경하는 분이다. 대학교 1학년 때 선생님이 몸 담으셨던 극단 ‘신주쿠양산박’이 한강 고수부지에서 공연했던 ‘인어전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면서 “그 이후 사적인 계기로 선생님과 연이 닿아 교류가 이어졌고 ‘넓은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내 마음은 춤춘다’뿐 아니라 이번 작품도 무대에 올릴 수 있게 돼 영광”이라고 말했다. 이번 공연에서 구 감독은 관객들이 연극을 생생하게 즐길 수 있도록 무대와 객석의 거리를 좁히는 데도 특히 신경썼다. 무대와 객석의 크기, 위치, 구조 등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블랙박스 극장 시스템을 온전히 구현할 수는 없지만, 최대한 무대 위 배우들과 함께 호흡하는 느낌을 수원 시민들에게 선사하고 싶어서 객석 약 200석이 무대를 둘러쌀 수 있도록 기획했다. 무대 위의 배우들이 관객과 소통하는 것 만큼이나 배우들이 서로 교감하는 일도 중요하다. 공연에 참여한 손병호 배우는 수원시립공연단 단원들과 서로 합을 맞춰가다 보니 점점 편안함을 느꼈다고 전했다. 그는 “기존 단원들끼리 빚어놓은 색깔과 호흡을 흐트러놓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면서 “연습을 거듭하다 보니 지금은 서로 쳐다만 봐도 교감이 이뤄진다”고 웃어 보였다. 이에 구 감독은 “단원들에게도 너무 좋은 기회다. 우리끼리만 공연하고 연습하면 몰랐던 것들이, 외부 인력과 함께할 때는 보이기 시작한다”면서 “경계를 허물고 교류하는 과정이 공연단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연을 맡은 배우들은 최근 간담회 자리를 통해 극 중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았다. 홍길 역의 손병호 배우는 신체적인 한계를 안고 있는 첫째 딸 진희와 일본 군인의 사랑이 인상깊었다고 전했다. 그는 “한국과 일본 사이 관계를 생각해보면 양국 사이의 복잡한 갈등과 교차하는 감정들을 두 사람의 사랑을 통해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영순 역을 맡은 이경 배우도 “벚꽃이 무대 위로 흩날리는 환상적인 장면에서 관객들이 작품에 스며든 메시지를 떠올리고 많은 생각을 함께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극 중 인물들은 봄에 관한 대사를 읊는다. 봄이 오면 다 잘되겠거니 낙관하기도 한다. 결국 연극에서 봄이 어떤 의미로 관객 각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걸까. 봄의 의미는 단순한 조국 광복부터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사소한 꿈까지 다양한 형태로 각자의 마음 속에 가닿을 수 있다. 무대 위 인물들은 각자 가슴속에 품고 있던 ‘봄’을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구태환 예술감독은 “역사의 외면에 머무르지 않고 그 내면으로 들어가고자 했다. 그 속에서 몸부림친 사람들의 삶을 통해 역사를 다시 얘기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면서 “과거의 일들은 지금과 어떤 방식으로든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그 점이 와닿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송상호기자
국립발레단이 낭만발레의 정수라 불리는 ‘지젤’을 오는 11일부터 13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 올린다. ‘지젤’은 19세기 프랑스 시인 고티에의 작품을 원작으로 낭만주의 흐름을 타고 탄생한 작품으로1841년 파리오페라극장에서 초연됐다. 국립발레단은 파리 오페라극장 발레단 부예술감독이었던 파트리스 바르 버전을 지난 2019년 이후 3년 만에 무대에 올린다. 순박한 시골 처녀 지젤은 마을을 찾아온 귀족 청년 알브레히트와 사랑에 빠진다. 알브레히트는 신분을 속이고 지젤에게 자신을 로이스라고 소개한다. 지젤을 사랑하는 사냥꾼 힐라리온은 알브레히트를 향해 질투심을 느끼고 그의 정체를 의심한다. 힐라리온은 알브레히트가 숨겨둔 칼을 찾아내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그의 정체를 폭로한다. 진실을 알게 된 지젤은 충격을 받아 죽게 된다. 이어지는 무덤가와 환영. 결국에 지젤은 강력한 사랑의 힘으로 알브레히트를 지켜내고 새벽이 밝아오는 종소리가 울리자 지젤은 알브레히트와 영원히 이별하고 윌리들과 함께 무덤으로 사라진다. 숭고한 사랑을 지키려는 ‘지젤’과 진실한 사랑을 깨닫게 된 ‘알브레히트’. 이들의 애절한 파드되와 사랑에 배신당한 ‘윌리’들이 선보이는 황홀한 백색발레의 매력에 빠질 수 있다. 공연에서는 총 세 커플이 3일간 이어지는 4회의 무대에 오른다. 11일과 13일에는 국립발레단의 간판 무용수 박슬기가 ‘지젤’ 그 자체의 모습을 선보이며 수석무용수 허서명과 호흡을 맞춘다. 또 부상을 딛고 ‘지젤’ 첫 데뷔를 앞둔 수석무용수 박예은과 환상의 파트너링, 깔끔한 테크닉을 자랑하는 수석무용수 김기완이 커플로, 최근 국립발레단의 크고 작은 공연에서 주요 배역을 안정적으로 소화해내며 평단의 호평을 받고 있는 심현희와 깊어진 연기로 무대를 사로잡는 수석무용수 박종석 등 세 커플이 서로 다른 매력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국립발레단 관계자는 “2011년 초연부터 매 공연마다 전석 매진을 이뤄내며, 명실공히 국립발레단의 대표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번에도 지난 9월6일 티켓 오픈 이후 순식간에 전회차 전석 매진을 이뤄내 관객들의 무대에 대한 기대감을 알 수 있었다”고 전했다. 정자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