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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했었다. 중국이 일찌감치 발해(渤海)역사를 삼킬 때부터 그랬었다. 중국은 길래 고구려(高句麗)역사까지 ‘내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기막힐 일이다. 문제는 우리에게도 있다. 그들이 발해사를 손에 넣었을 때 우리는 소곳이 앉아만 있었다. 러시아의 학자 오클라드니코프(Okladnikov A.P)는 변방의 역사를 모짝모짝 삼키는 중국을 맹렬히 비판했었다. 모든 문화의 발상지를 중원으로 보는 그들을 ‘중국 중심주의’라고 몰아세운 것이다. 중국은 생태적으로 ‘중화(中華)’라는 병줄이 깊다. 그런 나라의 전 총리 저우언라이(周恩來)는 1963년 ‘고구려와 발해는 한국의 역사’라고 정리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개방 개혁이후 발해를 자기네 역사에 편입시켰다. 중국 내의 소수민족 동화정책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발해의 시조인 대조영(大祚榮)에 대해 한국과 중국 학계의 견해가 다르다. 구당서(舊唐書)엔 대조영이 고구려계라고 기록되었고, 신당서(新唐書)엔 속말말갈인으로 되어있다. 한국 학계는 구당서를 원용해 그가 고구려사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의 학계는 그렇지 않다고 게정을 부린다. 신라고기(新羅古記)와 제왕운기(帝王韻紀)에도 대조영은 고구려 장수라고 표기되었다. 발해사를 우리역사라고 주장한 것은 조선의 실학자 유득공(柳得恭)이었으며, 그 후부터 우리는 비로소 통일신라와 발해가 병존한 시기를 ‘남북국시대’라고 일컫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발해가 당에 예속되었던 지방정권이라고 악지를 쓴다. 그러나 1980년 발해 3대 문왕(文王)의 넷째 딸 정효(貞孝)공주 무덤에서 발굴된 비문은 그들의 주장을 뒤집는다. 문왕을 ‘황상(皇上)’이라고 비문에 새긴 것이다. 발해의 왕은 당의 왕과 동격이며 발해는 독립국이라는 뜻이다. 중국은 또한 발해는 속말말갈인들이 세웠다고 우긴다. 그렇다면 발해 무왕(武王)이 사신을 통해 일본에 보낸 국서(國書)는 무엇인가. 속일본기(續日本記)엔 ‘발해는 외교문서를 통해 고구려를 계승하였음을 주장 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이 밖에 천장이 꺾음 형식인 고분을 비롯해 석등, 불상 등 많은 유적과 유물들이 어김없이 고구려 양식을 빼쏘았다. 중국이 생떼를 쓴다고 역사가 당장 바뀌는 건 아니다. 그들과 학문적 전쟁을 치러야 한다. 문헌사학과 고고학, 복식사, 건축사 등 여러 분야의 깊은 연구가 있어야 한다.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과 같은 일본의 식민사관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전쟁에 버금가는 학문적 노력을 기울인 경험을 가지고 있다. 필자는 1992년에 한달 남짓 발해유적지를 취재한 적이 있다. 그 때에 가슴을 아프게 했던 건 유적지에 세운 안내판이었다. 좌우에 각각 한글과 한문으로 쓰여진 안내문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된다. ‘발해는 당조 때 속말말갈인이 기원 698~926년 기간에 우리나라 동북과 지금의 쏘련 연해지방에 세웠던 지방정권이다’라고. 또 한 가지는 점심 식사 자리에서 한 명의 중국인 교수가 고구려를 자기네 역사라며 시시덕거린 일이다. 채신없게 들렸던 그 말이 ‘동북공정’이란 이름으로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지린성의 정효공주 무덤을 비롯한 유적지엔 괴문서와 같은 안내판이 그대로 서 있을 것이다. 가련한 역사이다. 역사 자체는 진실이다. 그러나 역사를 도둑맞은 것은 현실이다. 그것을 학문으로 극복해야 한다. 아울러 이참에 고구려는 물론, 발해사도 우리의 역사라고 말해야 한다. / 언론인·소설가
정부 보조나 자치단체의 지원을 받는 시민단체가 많다. 지원의 명분 또한 가지가지다. 하지만 지원사업이 얼마나 내실을 기하고 있는진 의문이다. 간판 뿐인 거의 유령단체나 다름이 없는 데서 돈을 타 흥청망청 써대는 시민단체가 없다할 수 없을 것 같다. 심지어 국가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시민단체에 적잖은 돈을 용역이란 이름으로 주었던 모양이다. 지난해 만도 23개 시민단체에 19억원을 준 사실이 드러나 국회에서 투명성 문제가 제기됐다. 지원이 정실에 흐른 면이 있고 사업 내용도 부실하다는 것이다. 명분이 적절치 않는 것도 있다. 예컨대 병역거부의 이해를 일방적으로 교육하기 위한 프로그램에 1천300만원이 지원된 것은 신중치 못한 처사로 지적됐다. 놀라운 것은 과거사 문제를 시민단체 주도로 조사기구를 두는 것이 열린우리당의 전략이라는 점이다. 당의 ‘주간 현안 및 대응’이란 내부 문건에서 이같이 밝혀졌다는 신문보도가 사실일 것 같으면 전문가도 아닌 시민단체 줄 세우기는 정권의 홍위병 배치다. 신문은 이런 내부 전략으로 인해 당초 국회 안에 두기로 했던 과거사조사위원회를 국회밖으로 돌리는 데 동의함으로써 정치적 부담을 덜려는 전술로 보인다고 전했다. 시민단체의 기본 요건으로 다음과 같은 게 있다. ▲외부의 압력이 없는 자발적 설립 ▲공식조직으로 정규활동을 하는 단체 ▲비영리의 공익성 활동 ▲특정 정치인 또는 정치집단 지지배제 ▲특정 종파단체 제외 등을 꼽는 것이 선진국 시민단체사회의 관례다. 또 권력에 대한 감시·부당한 공권 제한·정책제안·행정서비스 보완 등을 위해 전문성을 배양하며, 재정은 시민단체마다 특정 시민단체를 선호하는 일반 시민들의 후원금으로만 충당한다. 따라서 시민의 선호를 받지못한 시민단체는 도태된다. 권력의 감시 기능을 수행해야 할 시민단체가 권력에 빌붙는 기생단체로 전락해가고 있다. 시민단체가 다 이런 것은 아니지만 시민단체 같지 않은 시민단체가 많은 건 사실이다. 옥석이 뒤섞인 가운데 사이비 꾼들에 의해 시민운동이 훼손되고 있다. 이래서 시민단체는 많아도 시민단체에 시민이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져만 간다./임양은 주필
이념적 좌파 문제 때문에 인정받지 못하는 독립운동을 재조명하는 것에 전면적으로 반대하진 않는다는 것을 밝힌 바가 있다. 그동안 정부가 친일 전력이 드러난 인사들에게 준 독립유공 훈장을 그대로 두면서도 조국독립을 위해 싸운 사회주의 계열 독립투사들에게는 모호한 기준으로 서훈 대상에서 탈락시키는 등 보훈정책이 적절치 못했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좌파 독립운동 규명보다 시급한 문제는 잊혀져가는 독립유공자들의 처우 개선이다. 최근 국가보훈처가 공표한 ‘독립유공자 예우 개선대책’을 보면 예우 개념이 희박할 뿐 아니라 광복 59주년을 맞아 서둘러 내놓은 수박 겉핥기에 그친 전시행정임이 한 눈에 보인다. 독립유공자 예우 개선대책이라는 것이 고작 독립유공자 발굴체계 강화, 청소년 교육활동 강화, 독립유공자와 유족들에 대한 물적 지원 확대 등에 불과하다. 발굴체계·교육활동 강화는 추상적인 수준이고, 물적 지원 역시 생색 내기에 그쳤다. 독립유공자의 명예를 선양·회복하는 차원의 대책은 도무지 찾아 볼 수가 없다. 더구나 독립유공자를 광범위하게 지원코자 했으나 예산 부족 등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보훈처의 해명은 실로 군색하기 짝이 없다. 그렇다면 앞으로 친일파 청산과 좌파 독립운동유공자 선별 작업은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300명 내외의 독립유공자들이 원하는 것은 지원금 몇푼을 인상하는 게 능사가 아니다. 후대 자손들이 독립유공자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이다. 예컨대 독립유공자 전담기구를 설치해 독립유공자들의 명예회복에 우선 순위를 두는 일이 시급하다. 단순한 보상이 아닌 국민통합 차원에서 사안의 본질을 찾아야 한다. 외국 특히 유럽 국가의 경우 독립유공자나 그 유족들이 사망하면 시민장 등의 형식으로 장례가 치러진다. 이렇게 숭고한 희생을 기리는 분위기가 정착될 수 있도록 사회 시스템을 바꿔야 하는 것이다. 독립유공자를 진정으로 위한다면 유공자는 물론 유족들이 자긍심을 갖도록 하면서 ‘독립운동가 피탈재산 회복 보상법’ 등 관련제도 개선이 먼저 추진돼야 한다. 정부는 일의 선후를 분별하기 바란다.
이번 아테네올림픽에 출전한 한국선수단이 겪은 애로 중 의사소통, 즉 영어회화능력의 빈곤이 가장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중학교에서 대학까지 6년~10년동안 영어공부를 하고도 외국인이 말 걸어오는 것에 공포감을 가질만큼 어학력이 떨어진다. 이 바람에 해외 어학연수다, 원어민 교육이다 하여 많은 사교육비가 투입되는 실정이다. 경기도가 세운 (재)경기도영어문화원에서 문을 연 ‘경기영어마을 안산캠프’는 이같은 사교육비 절감에 절대적 도움을 주면서 학생들의 어학력 신장에 크게 기여할 전망이 뚜렷하다. 지난 23일 첫 입소한 평택 신한중, 남양주 별내중 2학년생 200명에 이어 엊그제 두번째로 입소한 수원 정천중, 오산 운암중 학생 200명이 지금 5박6일 일정으로 영어체험교육을 받고 있다. 드라마·음악·미술·과학 등 입소생 스스로가 선택한 취미 분야와 이밖의 생활프로그램 일정을 전적으로 영어로만 의사소통을 하는 신 어학연수 효과가 벌써부터 대단한 것으로 들린다. 옛 공무원수련원을 리모델링한 연 건평 4천여평의 건물에 조성된 호텔·주방·공작실 등 다양한 상황공간에서 놀고 즐기며 배우는 학생들은 외부와 단절된 환경속에 원어민 교사 38명과 내국인 교사 20명이 동고동락하는 것으로 5박6일 일정을 보낸다. 이에 따른 입소생 1인당 부담이 식대도 다 안되는 8만원인 것은 실로 파격적이다. 오는 겨울방학부터 실시되는 한달간의 방학 프로그램 또한 일반의 해외연수비에 비해 10분의1도 안되는 것은 가히 어학연수의 신기원이랄 수 있다. 무엇보다 지식경제 시대에 미래의 인적자원 개발인 점에서 기대가치가 매우 높다. 경기도가 심혈을 기울이는 영어마을 교육은 이처럼 첫째는 생생한 회화교육, 둘째는 사교육비 절감, 셋째는 인재 양성의 역동적 사업으로 보아져 높이 평가할만 하다. 안산캠프에 이어 2006년엔 파주 캠프, 2008년에는 양평캠프가 개원되고 영어광장·영어살롱·영어거리가 또 조성된다. 초등학생에게까지 문호를 개방할 것으로 안다. 경기도교육청의 협조가 물론 절실하다. 명실상부한 ‘영어 1등 도’로 자리매김 하고자하는 손학규 도지사의 마스터 플랜이 순조롭게 이룩되기를 기대한다. 영어구사 능력은 민간외교의 국력이다. 남자체조 경기현장에서 유창한 회화로 오심을 추궁해 제때 정정했더라면 경제적가치가 567억원이라는 양태영 선수의 금메달을 놓치진 않았을 것이다.
한국의 전통적인 가족제도에서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한 가족의 중심이 되는 존재다. 남성우위의 부계친족제사회에서 아내에게는 남편이요, 자식들에게는 아버지다. 가계(家系)의 존속을 강조하는 가족제도에서 아버지는 가계를 물려받은 사람이고 이 가계를 후세에게 이어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어느 가족에게서나 아버지는 먼 과거에서 시작되어 미래로 연결되는 가계의 연결고리다. 가계계승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자식 특히 아들을 가계의 대를 물려줄만한 인물로 키우는 것이 아버지(어머니)의 임무다. (딸 이야기는 차후에 하고)‘아들’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낳은 사내 자식이다. 부자관계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부모 중에서도 부계 위주의 가족제도에선 아버지가 중심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아버지와 아들 간의 관계로 좁혀서 생각할 수 있다. 특히 한국의 가족제도에서 부자관계는 가족 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인간 관계 중 으뜸으로 간주됐고 이의 기초가 된 것이 바로 효(孝) 또는 효도다. 효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전반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자식의 부모에 관한 행위규범이다. 자신을 낳아주고 또한 길러 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식은 부모로부터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 은혜’를 입었다. 부모를 섬긴다는 것은 단지 부모를 모시고 산다거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자식의 모든 행위일체가 바로 효도다. 「천자문」 「동몽선습」 「격몽요결」 「소학」 「논어」 「맹자」 「대학」 「명심보감」 「효경」 「중용」 「예기」 등은 물론 모든 종교의 경전에서 효도가 중시되는 것은 자식에 대한 아버지(어머니)의 사랑이 한없이 깊기 때문이다. 부자관계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문학작품에서 다뤄졌다. 서정주는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돌아오지 않았다”는 詩를 남겼다. 일제 식민 치하에서 무슨 일을 해서라도 식솔들에게 밥을 먹여야 했던 아버지의 생애를 詩로 썼다. 부자관계는 이렇다. 몇해 전, 미국에 입양돼 전문직으로 성공한 아들이 자기를 버린 부모를 찾아 한국에 왔었다. 그러나 어렵게 만난 아버지는 살인범으로 감옥에 있었다. 그 아버지에게 아들은 “아버지가 어떤 분이건 사랑한다”고 말했다. 이것이 부자관계다. 이문열의 소설 ‘시인’은 역모에 연루된 할아버지 때문에 벼슬길이 막혀 평생을 방랑한 김삿갓(김병연)의 생애를 그렸다. 소설에서 김삿갓은 평생 조부를 부인하고 지우려 하지만 결국에는 그를 이해하고 받아 들이는 사람으로 그려졌다. 한승원의 소설 ‘아버지와 아들’에 ‘殺父契’ 얘기가 잠깐 나온다. 일제시절 친일파를 부모로 둔 자식들이 스스로 자기 아버지를 어떻게 할 수 없으니 서로 다른 사람의 아버지를 해치워주기 위해 계를 조직한다는 이야기다. 소설이지만 끔찍하다. 요즘 과거사 청산문제로 친일행적을 남긴 이 땅의 아버지들이 부관참시되고 있다. 자식들이 부자관계를 단절 또는 은폐하고 있다. 친북행위가 본격적으로 거론되면 훨씬 더 많은 아버지들이 저승에서 또 다른 저승으로 떨어질 운명에 처했다. 이미 땅으로 돌아가 흙이 되었을 아버지의 친일·친북 행적으로 진위도 제대로 모르는 아들·딸들이 지탄을 받는 것은 한국의 비극이다. 아버지의 일부 그릇된 과거사가 자식에게 노예문서처럼 승계될 수는 없다. 그렇다 하여도 아버지의 친일 행적으로 고위직에서 물러난 어느 50대의 아들이 “독립투사의 자손으로 태어났다면 훨씬 자랑스러웠을 것”이라고 말한 것은 비록 고백은 했지만 아버지의 과거사를 숨겼던 일 보다 더욱 부끄러운 노릇이다. 사족이지만 기자의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대를 이은 화성군(시) 마도면 금당리의 농부였다. 해방 후엔 도회지의 서민이었다. 자식들에게 유산을 물려 주지는 못했지만 ‘지우고 싶거나 잊고 싶은 과거’가 아닌 참으로 ‘따뜻하고 아름다운 추억’을 남기셨다. 한때 부(富)를 물려주지 못한 아버지를 섭섭하게 생각한 철없던 시절도 있었다. 그래서 요즘 푸른 강물처럼 흐르는 ‘부자관계’를 삶으로 보여 주신 아버지의 목소리가 더욱 그리워진다. /임병호 논설위원
세종대왕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어진 분이요 뛰어난 재능을 가진 분이다. 태종은 양녕, 효령, 충령, 선녕 등 4대군이 있었으나 “충령대군은 천성이 총명하고 학문에 독실하며 정치하는 방법 등도 잘 안다”며 그를 1418년 8월 10일 조선 제4대 왕위에 책봉했다. 세종은 훈민정음 창제 목적에서 처럼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했다. 절대왕권을 가진 당시의 군왕으로서 그러한 생각을 갖는다는 것은 범상한 일이 아니다. 거기다 해시계, 측우기, 혼천의 등을 만든 과학자요, 천문학자요, 아악을 정리한 음악가로 실로 다재다능하며 위대한 인물이었다. 훈민정음의 창제는 세종대왕이 남긴 문화유산중 가장 빛날 뿐 아니라 유네스코(UNESCO)에서 세계유산으로 지정할만큼 유례가 없는 훌륭한 문자로 매년 문맹퇴치에 공이 있는 사람에게 ‘세종상’을 포상하고 있다. 한글은 우리민족의 혼이다. 이 글을 지키기 위해서 일본제국주의와 맞서 옥고를 치르면서 독립운동을 했고, 이 글이 문맹없는 문화민족이 되게 했으니 한글이야말로 세계에 자랑할만한 보배가 아니겠는가. 그뿐만 아니다. 1966년 일본의 천문학자는 새로운 별을 발견하여 그 이름을 붙이는데 세종대왕을 그 당시(14세기) 세계최고의 천문학자로 인정해 ‘세종별’이라고 명명했다. 측우기를 발명해 강우량을 측정함으로써 농업기상학의 괄목할만한 진전을 이루기도 했고 농업서적을 통해 농업기술의 계몽과 권장에도 힘썼다. 친히 정대업 보태평 등 대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근 600년 전에 우리나라를 다스렸던 대왕에 관한 글을 싣는 뜻은 오늘날의 지도자들이 이런 위대한 성군(聖君)에게서 백성위하는 도(道)를 배웠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에서다. 백성들을 위하여 쉬운 글을 만들어 주겠다고 집현전 학사들과 밤을 새우며 안질에 걸릴 정도로 정성을 다바쳤던 대왕을 생각하고 백성을 위해 전 세계에서 인정할만한 대음악가, 천문학자 그리고 어문학자가 됐던 임금님을 생각해 본다. 백성과 나라를 위하는 일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그리고 무언의 꾸준한 행동이 날이 갈수록 백성들의 감동을 자아내게 해야 된다. 한나라의 지도자는 정말 국민을 위하여 신명(身命)을 다 바쳐야 하며 지도자 덕에 이 나라가 하루하루 살기 좋은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는 확신을 심어 주어야 한다. 세종대왕 같은 성군이 정말 그립다. /서일성 경민대학 효실천본부장
깊은 산사 허공 중에 물결치는 청동 물고기 바람이 불어 올 때 마다 스님의 푸른 죽비를 맞듯 다소곳 가부좌를 하여도 흔들리는 마음, 흔들리는 생각. 새파랗게 물 고인 하늘을 바라볼라치면 내 눈은 실눈이 떠지지 않고 점점 커지기만 하는데 자꾸만 몸마저 흔들리면 어쩌라고 정녕 어쩌라고. 키 낮은 바람도 큰 숲을 가만 가만 흔들며 다가와 속삭이는데 오로지 나는 혼자 다라니경을 외울 뿐, 이 적막을 지킬 뿐, 먼 데 세상이 야호 야호 산울림 소식이 울려와도 나는 부처님의 사랑을 한 몸으로 받으며 연꽃 송이도 저만큼 두고 보는데, 참으로 이상하네. 왜 나는 끝내 몸까지도 자꾸 흔들리어 기어코 내 울음 내가 들어야 하는 지. 마음에 절 한 채 짓고 뎅그렁 풍경이 운다. <시인 약력> 경기도 수원 출생 / 경인일보 신춘문예(시조, 1990)· ‘문학예술’ 신인상(시, 1991)· ‘한국시조’(시조, 1993) 신인상 당선 / 경기문학인상 수상(2001 / 시조집 <안개꽃 은유> / 한국문인협회· 한국현대시인협회· 경기시인협회 회원
이천시가 곧 단행될 인사로 시끄럽다. 다음달초로 예정된 6급 공무원 보직 이동을 놓고 홈페이지에 불만을 토로하는 등 불협화음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인사에 대한 공정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천시는 누가 어느 부서로 가고 온다는 등의 루머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한 네티즌은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자신이 내정한듯 부서별 내정자를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로 변형된 이름을 거론하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의 주장이 상당한 설득력을 갖고 누구나 머리를 끄덕이며 공감하고 있다.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이천시는 이번 인사의 공정성을 위해 공무원 직위 공모제를 처음으로 도입, 앞선 인사행정을 펼치려 했으나 오히려 공모제가 형평성을 잃었다는 비난을 사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6급 진급인사에 대한 논란도 끊이질 않고 있다. 시장을 보좌하는 부서 직원들이 우대받고 매일 민원인들과 부딪치고 있는 일선 공무원들은 홀대받고 있는 현상이 수십년째 반복되고 있다는 불만이 논란의 요점이다. 만약 이러한 인사 행태가 사실이라면 인사를 통해 업무의 효율성 확대와 부서간 화합을 이루려는 근본 취지를 망각한 것이다. 오히려 인사로 인해 직원간 위화감 조성과 불협화음을 조성하게 돼 심포니 사회를 이루겠다는 유승우 시장의 약속은 공염불에 그칠 수 있다. 물 흐르는듯한 순리적인 인사가 이뤄지길 기대해 본다. /김태철 기자 kimtc@kg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