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고구려 지키기

중국의 집요한 역사조작의 하나로 추진되고 있는 동북공정(東北工程)때문에 갑작스럽게 표면화된 고구려사 왜곡문제는 절대로 적당히 타협해서 넘길 일이 아니다. 단군으로부터 이어진 우리역사의 뿌리는 북에서는 고조선에서 고구려로, 남에서는 삼한을 거쳐 신라, 백제, 가야 삼국의 역사로 뻗어내려 왔다. 요즘의 국경 개념으로 말한다면, 발해만 일대와 요동반도의 대부분은 고조선의 활동무대이자 국가영역에 해당된다. 통일신라와 남북으로 대치했던 발해는 주무대가 만주벌판이었으니 중국식으로 대처한다면, 요동반도와 만주일대는 모두 우리의 옛 영토라 해도 무방하다. 일본은 심심하면 독도 영유권문제를 걸고 넘어진다. 그들이 죽도(竹島)라고 부르는 독도가 일본영토에 속한다는 증거라고는 막부시절의 도해증서밖에 없고, 그것도 해석에 따라서는 역으로 우리의 소유권을 그대로 인정하는 기록이다. 그런 식으로 연고권을 주장한다면, 삼한의 후예나 가야 백제의 유랑민들이 일본에 건너가 나라를 세웠으니 일본땅 일부는 우리의 영역이 아닌가. 이종무 장군이 대마도를 정벌하고 공물을 받았으므로 대마도까지도 우리 땅이라고 우겨도 좋다. 일본이 세계적으로 자랑하는 나라(奈良)의 정창원보물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한반도의 문물이 너무 많기 때문이라는 이유는 깊이 새겨볼 일이다. 우리는 중국이나 일본처럼 근거도 없이 남의 나라 땅을 자기 땅이라고 억지로 우긴다든지, 남의 나라 역사를 자기네 역사라고 견강부회하는 엄청난 무례를 결코 범하지 않는다. 중국 주변의 나라들 모두가 납작 엎드려 중국의 눈치만 살피지는 않는다. 중국이 세계여론을 무시하면서까지 티벳이나 신강지역을 힘으로 무릎 꿇렸는지는 모르지만, 베트남이나 몽골 특히 우리 한민족은 그들과는 크게 다르다. 중국이 고구려 역사를 그들의 지방정권이라 규정하는 근거로 제시하는 책봉이나 중국식 연호를 오늘에 대입한다면, 오늘날 세계 대부분의 나라는 미국의 식민지요, 따라서 미국의 영토가 되고 마는 셈이다. 사안이 민족의 사활문제에 걸린만큼 이제 우리는 침묵하면 안된다. 왜 북한은 한마디 말도 못하고 침묵하고 있는가? 아니 조용조용 목소리를 낮추고 있는가? 만주 벌판에 있는 고구려유적이 그들 표현대로 중국 변방정권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이라면, 평양을 중심으로 남아 있는 고구려 유적이나 유물들은 변방 정권이 쫓겨 내려와 세운 것이란 말인가? 역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혀를 찰 노릇이요, 억지 생떼주장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남과 북이 힘을 합쳐서 오히려 만주지역이 과거 명백한 우리 영토였음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나설 일이다. 중국 역대정권의 고구려에 대한 콤플렉스는 상상을 초월한다. 오죽하였으면 고구려를 하구려(下句麗)라고 야만시하고 싸잡아 비하하려 했을까? 살수대첩의 영웅, 을지문덕 장군이나 안시성에서 당태종을 패퇴시킨 양만춘 장군등은 이름 그 자체가 중국인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중국을 상대로 혁혁한 무공을 세운 우리 역사의 영웅, 이들이 중국을 받들어 모시는 신하의 나라 군인이었단 말인가? 중국은 아직도 남아 있을 한국에 대한 콤플렉스나 공포심에서 벗어나야 한다. 누가 뭐래도 고구려는 한국의 역사이고, 만주는 오로지 고구려의 옛터전이다. 우리 민족이여, 잠에서 깨어나 주변을 돌아 보라! 우리는 백년전의 오욕의 역사를 다시는 반복하면 안된다. 정치인들은 전근대적인 소모적 당파싸움에서 벗어나 국력을 결집시켜야 한다. 구한말 혼란기처럼 중국, 일본, 러시아가 우리 땅에 발을 붙일 구실을 또다시 주어서는 안된다. 경제인들은 다시 세계를 향해 돌진해야 한다. 우리가 살길은 해외로 진출하는 길뿐이다. 역사가들은 우리의 역사를 사수해야 한다. 고구려 역사를 중국이 멋대로 해석하게 하고, 독도문제로 일본의 눈치를 볼 이유가 없다. /이 종 선 경기도박물관장

아테네올림픽 촌평

제28회 아테네올림픽이 우리 시간으로 어젯밤 새벽 3시 화려하게 폐막됐다. 남자 마라톤을 끝으로 올림픽 시청 때문에 잠못 이루곤 하던 밤도 이젠 끝났다. 한국선수단은 그런대로 선전했다. 아쉬움도 많고 억울함도 없지 않았으나 이제는 지난 일보다 앞으로가 더 중하다. 같은 체격 조건의 동양인으로서 일본과 중국이 수영과 육상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인 것은 주목할 대목이다. 올림픽무대의 수영과 육상은 한국선수들에겐 거의 불모지대다. 이런데도 일본이나 중국은 수영과 육상에서 결선에 오르는 선수가 적잖았다. 수영은 다이빙이 아닌 경영에서도 그랬고 다이빙은 북측 선수들도 출전했다. 육상에서 중국의 류시앙은 남자 110m 허들결선서 경이적인 12초91의 올림픽신기록을 세우면서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트랙에서 동양인이 챔피언에 오르기는 올림픽사상 처음이다. 필드가 아닌 트랙 종목에서는 단거리말고도 5천m 등 중거리는 능히 도전해볼만 하다. 문제는 재목 발굴과 과학적인 지도에 달렸다. 메달 사냥이 가능한 종목에 집중하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메달권이 난망한 종목개발도 적극 나서야 한다. 지금처럼 가다가는 한국스포츠가 세계무대는 고사하고 동양권에서 조차 일본과 중국에 따라 붙지 못할만큼 뒤처질 공산이 높다. 이 점에서 여자수영 400m 개인혼영 결선에 올라 7위를 한 남유선은 우리에게 금메달 못지않은 평가가 가능하다. 폐막식의 한국선수단 기수로 선정된 여자양궁 2관왕 박성현의 담력은 실로 값지다. 마지막 남은 화살 한 대가 70m 떨어진 자기 주먹보다 작은 10점만점 과녁을 맞혀야 중국에 1점차로 이기는 부담스런 단체전경기 막판에서 10점과녁을 보기좋게 꿰뚫은 것은 흔들림이 없는 놀라운 그의 담력을 보여준 것이다. 이젠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있다./임양은 주필

‘포상금 제도’가 능사는 아니다

정부와 국회가 각종 불법행위 단속 수단으로 새로운 포상금 제도를 경쟁적으로 도입하고 기존 포상금의 금액을 크게 올리는 것은 자제돼야 한다. 포상금 제도가 우리 사회의 각종 문제를 해결하는 ‘만병 통치약’으로 변질되는 것도 문제이지만 불합리한 제도가 지속되는 것은 행정이 정체되거나 후퇴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경기 침체가 계속되면서 일부에선 포상금을 부업이나 전업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 전문적인 신고꾼이 나타나고 심지어 포상금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사이트와 인터넷 동아리까지 성행하는 실정이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4월 총선 때 불법 향응의 50배를 주는 포상금 제도가 깨끗한 선거문화 정착에 크기 기여했다고 자평한 바 있고, 재정경제부는 지난 달 속임수를 써서 주가를 조정하는 ‘작전 세력’을 신고하면 최고 1억원의 포상금을 주는 제도를 도입했다. 불량만두 파동 이후 정부는 불량식품을 만드는 업주를 신고하면 5천만원의 포상금을 주는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현재 포상금(30만원)의 150배에 이르는 수준이다. 또 법무부도 앞으로 성매매를 위해 인신매매를 하는 범죄자를 신고하면 최고 2천만원을 줄 계획이다. 현행 포상금 제도는 13종, 도입·확대 추진 중인 것은 5종에 이른다. 포상금 제도는 부정·불법 현장을 고발하는 국민의 신고정신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측면이 없진 않다. 그러나 단기적인 성과만 바라고 도입한 포상금 제도는 행정 편의주의에 안주하는 부작용을 초래할 우려가 크다. 2001년부터 시행된 교통법규 위반 차량 신고제의 경우 전국적으로 500여만건의 신고가 접수되면서 경찰 단속의 사각지대를 메웠지만 지난해 1월 폐지됐다. 정부가 불합리한 교통체계를 고칠 생각은 하지 않고 시민들끼리 서로 감시하는 풍조를 만든다는 지적 때문이다. 포상금을 노려 전문적으로 교통위반을 제보하는 ‘차파라치’가 등장하기도 했다. 신고가 사회에 대한 자발적인 기여가 아니고 돈벌이 수단의 밀고로 가는 경향은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정부가 포상금 제도를 자꾸 도입해 단기적인 효과에만 매달려서는 안된다. 국민이 법을 어기지 않도록 불합리한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불합리한 각종 제도 개선을 먼저 추진할 것을 정부와 국회에 거듭 촉구한다.

창공의 꿈 피우다, 창공에 사라진 ‘두 교수’

지난 27일 낮 고양 한국항공대를 이륙한 ‘보라호’가 약 15분만에 자유로 장항IC 인근에 떨어졌다. 시험비행 중 순직한 은희봉·황명신 항공대 두 교수의 타계는 국내 항공학계의 큰 손실이다. ‘보라호’는 무게 816㎏에 탑승인원 4명의 민간용 경비행기로 세계 최초의 전진익기(前進翼機)식 성공이 연구과제의 핵심이었다. 비행기 날개가 앞쪽으로 꺾여있는 전익기는 이·착륙시 양력이 사라지는 현상을 막는 신개발형의 특징을 갖는다. 항공우주연구원·공군사관학교의 후원과 과학기술부의 지원 아래 이미 세번의 시험비행이 성공한 끝에 불의의 조난을 당했다. 파일럿 출신의 항공인으로서 비교적 편한 길이 있었다. 그러나 국내 항공기술 발전의 일념으로 모험의 길을 택했다. 성실한 연구집념, 자상한 후학지도로 제자들의 존경 또한 한몸에 받았다. 연구에 몰두하면서도 틈틈이 불우 어린이들의 초청비행을 가져주는 따뜻한 가슴을 지녔다. 항공기설계와 공기역학을 전공한 두 분의 항공기계학 교수는 미개척 분야인 국내 항공학의 선두적 개척자다. 첨단 지식산업이 나라의 미래를 좌우하는 시대다. 이토록 요긴한 시대에 항공학의 두 권위자를 잃은 애통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은 교수는 40대후반, 황 교수는 50대 초반의 나이다. 완숙기에 접어든 항공기술의 학문을 본격적으로 기여할 시기에 고인의 꿈을 앗아간 하늘이 정말 원망스럽기도 하다. 두 교수의 순직이 시련을 통해 새로운 담금질을 일깨우는 신의 섭리라면 고인의 뜻을 받드는 후학들의 비장한 노력이 있기를 기대하고 싶다. 오는 9월2일 ‘보라호’ 비행의 공개행사를 앞두고 가진 마지막 시험비행의 결함이 어디에 있었는 가를 아직 속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에 대한 문제점 보완으로 조만간 완전무결한 ‘보라호’의 탄생을 보고자 한다. 이것이 또 먼저 간 두 분에 대한 보답으로 항공학계의 소임이라고 믿는다. 빈소가 마련된 고양 국립암센터에서 오늘 두 교수에 대한 영결식이 한국항공대 학교장으로 엄수된다. 창공에 꿈을 피우다가 창공에서 사라진 은희봉·황명신 두 교수의 명복을 삼가 빈다. 유가족에게 또한 깊은 위로를 보낸다.

8월 28일 경기만평, 당구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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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서호와 문화예술공간

‘서호 납줄갱이’를 아시나요? 서호 납줄갱이는 수원의 서호에서 살고 있다가 1913년 미국의 저명한 어류학자인 조던박사에게 채집되어 신종으로 발표된 후 서호 납줄갱이라 이름 지어진 물고기다. 다 커봐야 길이가 5cm를 넘지 못하는 자그마한 물고기로 한국특산종이다. 그러나 1936년 이후 수원의 서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고있는 물고기다. 한국특산종이 우리나라에서 사라졌다는 것은 그 종이 지구상에서 멸종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표본번호 4566호. 미국의 스탠포드 대학교 박물관에 있는 서호 납줄갱이의 표본번호다. 그것도 단 하나만이 외롭게 남아 서호납줄갱이가 지구에 존재했었다는 증명을 하고있는 것이다. 서호는 지금보다도 그 옛날이 수원 시민의 사랑을 더 많이 받었다. 필자의 초등학교 시절인 1960년대만 하더라도 서호는 수원 최고의 유원지였다. 변변한 공원이 없던 시절 수원시내 각 학교의 봄·가을소풍은 물론 가족 나들이에도 첫 손꼽히는 곳이 서호였다. 한여름이면 많은 사람들이 물고기를 잡고 수영을 하느냐 북새통을 이루었고 겨울이면 두껍게 얼은 호수 위에서 얼음을 지치고 혹은 썰매를 타며 놀던 곳이었지만 1970년대 중반 부터는 더 이상 서호에서 수영하는 사람을 을 수 없게 되었고 급기야 몇년 뒤에는 철조망으로 출입구를 봉쇄해버려 들어갈 수 조차 없게 되었다. 이렇게 폐쇄된 서호는 급속도로 어 들어가기 시작해서 1980년대에 와서는 악취가 진동하는 죽음의 호수가 되어버렸다. 서호 옆에 있는 KT&G 수원공장(옛 수원연초제조창) 자리를 전시장을 비롯한 공연장 박물관 등을 갖춘 복합적인 문화예술공간으로 만들자는 제안이 나오고 있다. 건축가 김동훈씨의 제안으로 시작되어 불과 한달 남짓 사이에 문화예술인들과 시민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며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수원은 인구 100만의 대도시로 발전한데 비해 문화예술공간은 그대로 여서 문화예술공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8만여평의 넓은 대지에 공원을 갖춘 복합적인 문화예술공간이 세워지고 그 옆에 있는 서호를 같은 권역의 문화 공간으로 조성한다면 수원은 세계적인 문화예술공간을 갖춘 꿈의 도시가 될것이다. KT&G 수원공장은 수원연초제조창이란 이름으로 1971년 서호천 옆에 자리 잡아 약 30여년간 서호와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가진 업체다. 수원시민의 힘으로 그 자리를 공원을 비롯한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바꾼다면 그 자체로도 뜻 깊은 일이지만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화성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길이 남을 것이고 또한 서호 납줄갱이에 진빚을 조금은 갚게 되는 일이라 생각된다. 문화예술에 대한 투자는 단기적으로나 가시적으로 투자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또한 이런 일에는 많은 문제점과 적지않은 어려움과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미래와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는 것이 바로 문화예술이기 때문에 이러한 일은 ‘문화예술공간 1㎠ 사기운동’과 같은 시민운동을 통해서라도 반드시 이루어지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것이다. 90여년전 이 땅의 작은 물고기 한 마리를 소중하게 관찰하고 기록한 미국인 조던 박사처럼 우리도 후세에 길이 남을 문화유산을 가꾸도록 해야한다. /남 기 성 사진작가

이봉구

세칭 ‘명동 백작’으로 일컬어진 소설가 이봉구(李鳳九·1916 ~1983)는 경기도 안성 태생이다. 1934년 중앙일보에 단편 ‘출발’을 발표하여 문단에 데뷔했으나 1938년 김광균·오장환·서정주 등과 ‘자오선’ 동인으로 시를 썼다. 그러나 다시 소설로 바꾼 이봉구는 광복 후 신문기자 생활을 하며 작품활동을 병행하였는데, 6·25 전쟁 뒤에는 거의 날마다 서울 명동의 ‘은성’이란 술집에서 살았다. 하지만 술에 취해 흐트러진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명동 백작’ ‘명동시장’이라는 애칭은 그의 깨끗하고 단아한 태도 때문에 붙게 됐다. 6·25 전후의 허무와 절망감에 젖은 문인들의 술자리에서 이봉구는 첫째, 술자리에서 정치 얘기를 꺼내지 말 것. 둘째, 술자리에서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의 험담을 하지 말 것. 셋째, 술자리에서 돈 꿔 달라는 말을 하지 말 것 등 세 가지 철칙을 준수하도록 요구했다. 그는 생전에 다섯 권의 창작집을 냈는데 그 가운데 세 권이 ‘명동 20년’ ‘명동’ ‘명동, 비 내리다’이다. 고혈압으로 쓰러진 뒤 ‘명동 백작’은 수유리 집에서 투병생활을 하다 1983년 1월 29일 이른 11시 예순 일곱의 나이로 삶을 마쳤다. 그날 명동에는 비가 내렸다. 교육방송국 EBS가 9월부터 24부 작 드라마 ‘명동 백작’을 통해 이봉구·김수영·박인환·김광주·이진섭· 김광균·이중섭·오상순·전혜린 등이 등장하는 1950년대 우리 사회를 그리는 것은 뜻 깊은 일이다. 안성 출신 문인들은 꽤 많다. 작고한 박두진·조병화·최태호·임홍재, 그리고 현재 활동 중인 공석하·유병규·윤현조·김경제·정진규·한광구·김유신 안성예총 회장 등이 안성 토박이 문인들이다. ‘명동 백작’ 방영을 계기로 안성에서 이봉구 선생의 삶과 문학이 재조명됐으면 좋겠다. /임병호 논설위원

일·중은 미래사 다툼, 한국은 과거사 사냥

일본과 중국의 패권주의 다툼이 유엔 무대에서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일본의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 노력을 중국은 제2차 대전의 과오를 문제 삼으며 극력 저지하고 나섰다. 가와구치 외상을 단장으로 하는 대책기구를 만들어 엄청난 로비를 기울이고 있는 일본은 연간 유엔 회비의 20%를 부담하는 것을 상임이사국이 될 요건으로 꼽는다. 그러나 중국은 2차대전의 과오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의 군비확장을 문제 삼고 있다.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자위대의 정규군대 개편, 평화헌법개정 추진 등은 안보리 이념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중의 이같은 외교전쟁은 동북아 주도권 쟁탈을 겨냥한 암투인 점에서 주목된다. 일본은 이른바 ‘대동아공영권’의 재건을 꿈꾸고, 중국은 청일전쟁에 이은 중일전쟁 패전의 치욕을 만회하려고 하는 근세사적 역사가 재현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본이나 중국은 모두가 역사 왜곡으로 우리를 협공한다. 일본이든 중국이든 한반도 통일을 진정으로 바라는 나라가 아니다. 남북으로 양단된 것을 오히려 자국의 국익을 위한 정치적 호재로 삼고 있다. 일본은 2차대전의 최대 적대국이었던 미국과 최고 수준의 동맹관계를 유지한다. 초강대국의 배경을 자국경제와 국제외교에서 실리화하는 입장과 일본을 통해 동북아 세력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입장이 서로 맞아 떨어지고 있다. 이에 비해 중국은 오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대회만 성공적으로 끝내면 지구촌에서 더 무서워할 상대가 없다는 자긍심 속에 경제대국 군사강국을 향해 무섭게 치닫고 있다. 일·중 두 나라는 세계무대의 전초전이 되는 동북아의 패권주의 다툼을 위해 이토록 혈안인 데도 우리 나라는 너무나 한가롭다. 이 정권이 화려하게 내세운 물류·산업·금융 복합 모델의 ‘동북아 경제 중심국가 건설’이라는 것도 빛 바랜지 오래다. 일본과 중국, 중국과 일본은 10년·30년·50년 후의 일을 프로젝트 삼아 연구하고 있다. 우리는 당장의 경제난도 타개하지 못한 채 과거사 사냥만 일삼고 있다. 과거사에 지나치게 매달려 영일이 없는 우리를 보고 일본이나 중국이 어떻게 볼 것인 가를 생각하면 참으로 부끄럽다. 일본과 중국의 미래사 다툼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이 정권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공정거래위원회’ 조치는 솜방망이인가

법적 구속력이 없거나, 있어도 규제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정부의 각종 위원회가 과연 존치돼야 되는 것인 지 의문을 갖는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의 경우, 최근 임대아파트 사업자 B사에 대해 “임대 보증금과 임대료를 해마다 5%씩 올리도록 한 계약조항은 불공정하다”고 시정조치를 내린 바 있다. 전국 10만여 가구의 B사 임대아파트의 입주민들은 집값도 하락세에 있으니 임대료가 인하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가졌다. 그러나 B사측은 “공정위의 시정조치는 5% 인상 자체가 부당한 것이 아니라 해당조항을 삭제하라는 시정권고 사항이다” “임대주택법과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라 해마다 5% 내에서 인상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며 물가상승률을 감안해 계약대로 임대료 인상 방침을 굽히지 않았다. 소비자 보호를 위한 공정위의 시정조치가 일선 현장에서 효과를 내지 못하는 사례는 허다하다. 공정위가 지난 7월 27일 허위·과장광고를 일삼은 13개 TV 홈쇼핑 업체에도 시정조치를 내렸지만 이 같은 광고는 홈쇼핑 체널에서 계속 방영 중이다. 또 7월 19일 경품을 미끼로 내건 전화권유판매·방문판매에 대해서도 시정조치를 내리겠다고 발표했지만 신종 불법 전화판매는 사라지지 않고 있어 공정위의 존재가 무색할 지경이다. 공정위의 ‘시정조치 한계’를 놓고 달리하는 유권해석도 문제다. 법조계에서는 ”공정위의 시정조치 형태인 ‘법 위반 사실 공표’는 위법 사실을 대중에게 알려 재발하지 않도록 간접적으로 강제하는 것이 목적”이라며 ”간접적인 실효성 확보수단일 뿐 법 위반을 직접 시정토록 하는 조치로 볼 수는 없다”고 한다. 또 공정경쟁연합회는 “공정위는 사업자의 부당이득이 있다면 과징금 형태로 환수하고 행정재제까지 내릴 수 있는 폭 넓은 재량권을 갖고 있으므로 소비자 보호를 위해 제도를 개선하는 등 적극적인 행정을 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공정위는 “공정위는 사업자의 불법행위나 불공정 약관에 대해 공정거래법을 적용, 일반원칙을 정할 수 있을 뿐”이라는 소극적인 입장이다. 이렇게 공정위의 ‘시정조치’가 구속력이 없고, ‘시정조치의 한계’도 모호하다면 전시행정에 불과하다. 소비자 보호를 위한 조치가 실효를 내지 못한다면 제도 개정은 당연한 일이다.

8월 27일 경기만평, 당구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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