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경기도국악당의 힘찬 출발

경기도의 전통문화예술 계승 발전과 국악 진흥을 위해 막중한 역할을 하게 될 ‘경기도 문화의 전당 국악당(경기도 국악당)’이 오늘 개관한다. 지난 2002년 6월에 착공, 2년여만에 완공해 문을 여는 경기도국악당은 268억원의 사업비를 들인 지하 1층, 지상 2층, 연면적 1천722평 규모로 481석의 공연장과 국악단원 연습실, 교육공간 등을 두루 갖추고 있다. 국악당은 용인시 기흥읍 보라리 한국민속촌 입구에 위치해 있다. 인근에 경기도박물관이 있으며 또 그 옆에 백남준미술관이 들어설 예정이라 하니 자리 하나는 잘 잡은 것 같다. 앞으로 이들 기관과 잘 연계하면 더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도민들에게 선사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다.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도 우리 음악의 멋과 맛을 한껏 향유케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영통, 분당, 수지, 죽전과 앞으로 들어설 동탄과 동백까지 감안하면 관객확보도 문제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도민들에게 적극적으로 홍보한다면, 주변 토양이 워낙 좋기때문에 경기도국악당의 꽃은 금방 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다. 경기도립국악단원 및 경기도의 국악인, 우리 음악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의 숙원이었던 국악당을 완공하고, 내빈들을 모시고 개관 축하행사를 갖자니 가슴이 벅차오르면서 무한한 기쁨을 느낀다. 그러면서 막중한 사명감도 갖게된다. 전국적으로 국악당이란 기관이 별도로 있는 곳은 드물다. 서울의 국립국악원과 그 분원인 남원 국립민속국악원, 얼마전 개관한 진도의 국립남도국악원, 전북도립국악원 정도다. 경기도가 전통문화예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타 지방자치단체에 비해 일찍이 국악당을 개관하는 것은 앞선 문화행정으로 경기도민의 자랑거리다. 사실 경기지역의 국악(樂·歌·舞)은 서울이나 남도에 뒤지지않는 많은 문화자산을 갖고있다. 대표적인 것이 경기와 서울 지방을 중심으로 불려지던 음색이 맑고 경쾌한 경기민요(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로 도립국악단내에도 민요팀을 두고있다. 경기소리 외에도 경기도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포천 메나리, 양주 상여·회다지소리, 고양 송포호미걸이, 김포 통진두레놀이 등에서 볼 수 있는 농요(農謠)나 상여소리 등 다양한 소리들이 산재한다. 또 웃다리(경기·충청지역)의 대표적인 풍물인 평택농악(중요무형문화재 제11호)이 농악의 명맥을 잇고 있고, 소리와 음악과 춤사위가 빼어난 경기도 도당굿(중요무형문화재 제98호)도 널리 사랑받고 있다. 이러한 전통문화의 토양을 갖고있는 경기도에 경기국악의 맥을 잇고 이를 계승 발전시킬 경기도국악당이 개관한다니 역사적이고도 가히 흥분되는 일이다. 경기도국악당의 개관은 그동안 서울과 호남 중심의 국악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돼 있는 중부지역 국악을 활성화 시키고 경기국악의 우수성을 계승 발전시키는 역할을 하게될 것이다. 경기도국악당은 단지 경기도에 국한된다기 보다는 인천을 포함한 서해안 지역, 강원도, 충청도 지역 그리고 통일시대를 앞두고 황해도까지를 망라, 중부지역 국악의 메카로서의 중추적 역할을 해야하는 중요성을 갖고있어 개관의 의미가 더욱 크게 다가온다. 국악당은 개관과 함께 20일간 축하공연을 마련했다. 전통음악부터 실내악, 창극, 경기소리, 사물놀이, 명인의 밤, 퓨전콘서트 등 국악의 다양한 장르를 맛볼 수 있게 풍성한 잔칫상을 차렸다. 또 전통예술교육강좌를 통해 어린이, 청소년, 노인, 교원, 가족 등 대상별로 특화한 프로그램을 마련해 단순한 감상차원에서 벗어나 직접 배워볼 수 있는 체험기회도 마련했다. 경기도국악당은 지역사회와 도민들의 무한한 애정과 관심이 뒷받침 돼야 무럭무럭 자라고 발전할 수 있다. 많은 사랑과 이용을 당부드린다. /곽태헌.경기도국악당 운영본부장

천자춘추/평화는 어디서 오는가

평화로움이란 인류 역사 속에서 누구나 갈망하고 희망하는 상태일 것이다. 그런데 전 인류가 한 명도 싫어하지 않고 바라는 평화가 우리의 실제 생활에서는 왜 실현되지 않는 것일까? 생각하면 사실 답답하고 화도 날 법한 일이다. 원불교의 좌산 종법사는 금년 초에 우리 모두가 평화를 생산하는 사람이 되자는 요지의 말씀을 하시면서 이러한 현실을 이렇게 진단하셨다. 그것은 사람들이 겉으로 주장하는 명분이나 말과 실제로 행동으로 다투는 내용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예를 들면 평화를 주장하면서 실제의 행동은 평화를 파괴하고 있고, 통일을 이야기 하면서 실제는 분단의 사고와 행동을 하는 것과 같다라고 말이다.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바라는 평화로운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실제로 우리 모두가 평화를 생산해내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어느 특정한 사람이나 특정 집단에게 미룰 일도 아니고 힘 있는 국가나 단체나 통치자만이 할 일도 아니다. 결국 그것은 우리 모두가 한 사람도 빠짐없이 개인적으로 또는 가정에서 국가에서 사회에서 일터에서 어느 곳에서나 이 일에 동참하고 함께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을 해나가는 가운데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평화를 생산하는 길이 될까? 불교에 오렴수(汚染修)란 말이 있다. 수행을 하는데 참 수행을 해야지 오렴수를 하면 천년만년을 해도 도를 이룰 수 없다는 뜻이다. 비유하자면 청소를 할 때 맑은 물로 씻어내면 깨끗해지지만 청소를 한다 하면서 더러운 물로 씻으면 아무리 씻어도 깨끗해지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우리가 평화를 이루려면 마음에 평화가 생산되어 밖으로 베풀어야지 마음에 불평과 원망과 미움과 갈등으로 투쟁하면서 평화를 이루려한다면 마치 더러운 물로 깨끗하게 씻으려 하는 것과 같아서 아무리 노력해도 결코 평화는 올 수 없다. 우리 모두 마음에서 미움과 원망과 투쟁을 몰아내자. 이 세상 모두가 알고 보면 다 나를 살려주고 있는 거룩한 은혜의 덩치임을 자각하자. 그래서 모두에게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은혜를 갚자. 평화는 원하지 않아도 저절로 찾아올 것이다. /김주원.원불교 경인교구장

독자투고/‘경기 분도론’에 마음 아파…

한수이북에서 일부 도민들이 ‘경기분도론’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 발상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지금까지 경기도는 선진 웅도로서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유지해 왔다. 과연 분도가 된다고 가정하면 그러한 정통성과 정체성을 유지해갈 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고 본다. 경기도는 서울을 둘러 싼 위성도시가 많아 수도권으로 결집되어 있는 지역이다. 경기도와 서울은 상호 보완의 관계속에서 계속 성장 발전해 왔다.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면서 성장해 온 셈이다. 물론 한수이북은 이남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낙후되고 발전이 덜 된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도 않다고 본다. 한수이북도 나름대로 많은 성장과 발전을 가져왔다. 특히 관광과 전원도시로서의 많은 발전을 가져 온 것이 아닌가. 어느 지역에 예산만 많이 투여했다고 해서 그것이 꼭 발전을 가져 온 것이라고 해석할 수는 없다고 본다. 설령 한수이남에 비하여 발전이 덜 되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삶의 질을 좌우하는 지표는 못 된다고 본다. 오히려 한수이북이 관광과 전원도시로서의 면모를 잘 갖추고 있어 한수이남보다도 더 살기가 좋다고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얼마든지 성장과 발전의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다. ‘경기 분도론’을 제기하는 움직임을 보고 경기인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깝고 마음 아팠다. 이제는 ‘경기 분도론’을 제기할 것이 아니라 통일시대에 대비하여 보다 더 조화로운 발전을 위하여 우리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해야 할 때다./권혁범·시인

7월 14일 경기만평, 당구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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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이전 정권연계 ‘올인’ 길이 아니다

이 정부가 잘못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나라의 수치이기 때문이다. 이 정권이 실패하길 바라지도 않는다. 민중사회의 살림이 더 곤궁해지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중 물러가기를 바라는 것 역시 아니다. 헌정사의 불행한 전철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듣기 싫은 말을 한다. 천도 수준의 신행정수도 문제 또한 이에 속한다. 행정수도로 재미를 보았다는 것은 전에도 말했지만 노무현 대통령 자신이 한 말이다. 행정수도란 모호한 개념으로 한동안 민중 감각을 무디게 하면서 해당 지역 도민의 부푼 기대심리를 포괄적으로 한껏 이용하였다. 대선에 이어 총선도 끝났다. 천도의 부당성이 지닌 경제적·지리적·역사적 이유는 이미 수차 밝혔다. 지금은 ‘신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이 상위법인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국민투표 대상이란 것이 쟁점이다. 국민투표에 부치는 것은 대통령의 재량이라지만 사항이 수도 이전이고 보면 마땅히 국민투표 부의의 기속력을 갖는 것이 헌법정신으로 본 견해 역시 피력한 바가 있다. 이러한 법리적 의문의 판단은 이제 헌법재판소로 넘어갔다. 여기서 생각되는 것은 탄핵재판 때와 같은 혼돈이 또 다시 재현되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특히 방송에서 탄핵규탄 일색의 전파를 쏘았던 것처럼 헌소 규탄 일색의 과오를 되풀이 하여서는 안된다. 촛불시위 같은 것도 옳지 않다. 헌재 심리에 행여라도 영향을 주어서는 안될 뿐만이 아니라 민중사회를 이분법적 논리로 선동하여선 안되기 때문이다. 특히 여권에서 막가는 말을 하는 건 심히 당치 않다. 수도이전 반대는 서울 복판에 거대 빌딩을 가진 신문사나 서울 부자들을 위한 것도 아니며, 이들이 벌이는 “저주의 굿판” 이란 것에 놀아나는 것도 아니다. 민중은 결코 그토록 어리석지 않다. 다만 가뜩이나 경제회복의 전망이 어두운 판에 치명적 국민경제의 부담을 안는 천도가 과연 통일 한반도의 미래를 위해 적절한 가에 부정적 확신을 갖기 때문인 것이다. 이 정권은 수도 이전이 아니어도 소임이 많다. 이 정부는 행정수도 말고도 해야 할 일이 참으로 많다. 대통령은 신행정수도의 미련을 버려도 평가를 받아야 될 과제가 실로 허다하다. 항차 수도이전에 정권의 명운을 스스로 거는 것은 자승자박이다. 정부와 여당은 수도이전 문제 말고도 산적한 당면의 국정 현안에 크게 힘써야 할 것으로 안다.

연 이자가 1500% 넘는 고리사채

사채시장의 고금리가 법 무서운 줄 모른다. 아니 되레 법을 조롱한다. 사채 연 이자가 1500%가 넘는다면 도대체 말이 되지 않는다. 살인적이다. 법정 상한선인 연 66%를 초과하는 대출 계약은 불법이기 때문에 이를 초과한 부분은 무효라고 금융감독원은 말하고 있다. 초과부분 이자에 대해서는 이자 지급 전이라면 이를 이행할 필요가 없고, 이미 지급했다면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고 한다. 고금리 피해 예방을 위해서는 반드시 시·도에 등록된 대부업체를 이용하라고 권한다. 그런 걸 누가 모르는가. 사채시장에선 그 법이 통하지 않는 게 문제다. 지난 5월 말 무등록 대부업자들이 적용하는 사채 평균 금리는 연 260%로 지난해 5월의 164%보다 무려 96%나 높아졌다. 등록 대부업자들이 적용하는 이자율도 같은 기간 연 129%에서 164%로 35% 포인트 상승했다. 무등록 업자는 물론 등록 업자들도 모두 법을 어기고 있다. 폭증하는 사채금리는 사채업자들의 횡포 탓이기는 하나 서민들의 급전 수요가 그만큼 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려는 서민들에게는 금리 수준은 나중 문제다. 더구나 서민들이 빌리는 급전은 대부분 소액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며칠만 쓰면 될 것이라는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경우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고리채의 늪에서 빠져 나올 수 없게 된다. 실제 P씨의 경우 지난 5월 초 사채업자로부터 70만원을 빌리면서 열흘 후 100만원을 상환하고 하루 1만5천원의 연체이자를 지급키로 약속했다. 이는 연 1500%에 해당하는 금리다. 사정이 여의치 못한 P씨는 열흘 단위로 계약을 연장하며 두달 사이 이자로만 130만원을 지급했으나 여전히 사채업자로부터 원금상환 요구에 시달리고 있다. 정부가 2년 전 대부업법을 만들어 시행에 들어갔지만 그 결과는 이렇게 참담하다. 법정 상한선을 위반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는데도 이처럼 불법 이자가 성행하고 있는 연유를 당국은 직시해야 한다. 해결사를 동원한 사채업자들의 횡포로 신변 위협을 느끼는 피해자들에게 신고 만을 기대할 수는 없다. 법을 만들었으면 그 법이 지켜지도록 능동적으로 관리 감독을 해야 할 것 아닌가.

국선변호인

국선변호인 선임 요건으로 형사소송법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미성년자, 70세 이상 고령자, 농아자, 심신장애의 의심이 있는 자 등이 변호사를 선임치 못했을 때 법원이 직권으로 국선변호인을 선임하게 된다. 또 극빈 등 사유로 변호인을 선임할 수 없는 상태에서 피고인의 청구가 있으면 법원은 국선변호인을 선임한다. 열악한 피고인에게 국비로 변호사를 선임해주는 형사정책이다. 가히 인권보호의 백미라 할 수가 있다. 그러나 국선변호인의 현실은 법정심리의 절차적 요식행위로 충당될 뿐 변론 덕을 보았다는 피고인은 별로 있지 않다. 선임된 국선변호인이 미처 나오지 않으면 다른 사선사건으로 법정에 나온 변호사가 즉석에서 선임되기도 한다. 조서는 고사하고 공소장마저 살펴 볼 틈이 없다. 그저 죄명만 보고 ‘관대한 선처를 바란다’는 틀에 박힌 말만하고 끝낸다. 설령 지정된 국선변호인이 나온다 해도 잘 해야 공소장만 보고 몇마디 반대신문하는 것이 고작이다. 심지어는 피고인이 자신을 위한 국선변호인인 지 뭔지 모르는 경우도 없지 않다. 대법원 산하 사법개혁위원회 제2분과위원회가 기소돼 재판중인 피고인 뿐만이 아니고 수사기관에 체포되어 구속영장이 청구된 피의자들까지 국선변호인 선임을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중인 것으로 전한다. 참 좋은 말이지만 실질적 효과가 문제다. 피고인 단계에서도 실질 효과가 의문인 마당에 피의자까지 확대한다 해서 더 잘될 것으로 보기는 지극히 어렵다. 국선변호인이 제 구실을 못하는 것은 일부 변호사들의 의식에도 문제가 있지만 턱없이 낮은 선임료가 더 큰 이유다. 점심값 정도밖에 안되는 선임료로는 소기의 목적을 이루기란 사실상 기대난이다. 개혁은 탁상이론보다는 실제상황을 바탕으로 해야 개혁의 목적을 달성할 수가 있다. /임양은 주필

광교산의 아침/그해 여름의 가설

그해 여름도 올해처럼 지루한 장맛비로 시작됐었다. 하늘은 온통 짙은 회색으로 찌푸려져 있었고 사람들은 우산을 꼭 쥔 채 총총 걸음으로 귀가를 서둘렀다. 늘 축축했던 아스팔트에는 차에 치인 쥐 1마리가 며칠동안 방치되어 있었고 TV에선 연일 물가가 날개를 달았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90년대 한반도를 강타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미국에 의해 살해됐다’는 가설, 그리고 김진명. 그를 만난 건 바로 그럴 즈음이었다. 다들 도서관에서 취업 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그는 바깥 세상 돌아 가는 사정은 영 관심이 없는듯 보였다. 신문들마다 ‘여소야대(與小野大)’니 ‘호헌정국(護憲政局’이니 하는 찌푸둥한 제목들이 차지하고 있었고 푹푹 찌는 더위에도 오후마다 어김 없이 시위는 계속됐고 그때마다 학교 앞에 빽빽하게 심어진 쥐똥나무들 위로 매캐한 최루탄 가루가 하얗게 내려 앉곤 했었다. 부산이 고향이었던 그로부터 충격적인 ‘주장’을 들은 건 바로 그때였다. “혹시 박 전 대통령을 저격한 건 미국의 공작이 아니었을까?” 불쑥 던진 이 말의 파괴력은 대단했다. 졸업을 하고 한참이 흘렀는데도 그 가설은 늘 상념의 바다를 송두리째 뒤집어 놓곤 했었다. 그 말이 남긴 여운을 애써 부정하며 “설마”란 어줍잖은 표현으로 일축은 했지만…. 과연 사실일까. 만약 사실이라면 현대사를 다시 써야 하는 것 아닌가. 상상의 도약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우리들에게 “백범 김구 선생도 미국이 죽였다”는 주장으로 가세했고 그때마다 논리는 날개가 달린듯 비약됐었다. 그를 다시 만난 건 공교롭게도 신문 지면을 통해서였다. 그로부터 4~5년 정도 지나간 시점이었다. 부산 모 지방지에서 기자로 근무하다 그만 두고 펴낸 소설책이 간략하게 소개됐었다. 제목이 좀 특이했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그것 이외에는 별다른 호기심도 당겨지지 않았고 관심도 없었다. 그로부터 1~2년 정도 지났을까. 이휘소 박사라는 물리학자의 암살을 둘러싼 음모와 핵무기를 개발하려다 미국의 미움을 사 박 전 대통령이 암살당했다는 가설 아닌 가설이 장안을 뒤흔들었다. 소설이 던진 파장이었다. “미국이 설마…” 술자리 화제를 온통 장악하던 그 얘기는 그래서 늘 월급쟁이들의 술자리에선 최고의 안주였었다. 반신반의하면서도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는 결론으로 자연스럽게 마무리되곤 했었다. 소설은 날개 돋친듯 팔려 나갔고 그는 가끔씩 면도도 제대로 못해 꺼칠한 모습으로 TV에 얼굴을 비쳤고 한때는 모 정당으로부터 국회의원 공천을 제휴받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 가설은 서서히 잊혀져 갔다. 그로부터 정확하게 8년이 지난 엊그제 그로부터 한통의 전화가 걸려 왔고 서울 한복판 을씨년스러운 골목 모퉁이 찻집에서 재회, 쓴 커피잔을 기울였다. 시간의 공백만큼이나 긴 터울의 침묵 속에서 그가 또 불쑥 한마디를 던졌다. “지난 87년 발생한 KAL기 공중 폭파사건, 좀 이상한 구석이 많다고 생각되지 않어?” 그랬다. 몇년 전인가 일본 자유기고가가 이 사건에 대한 석연찮음을 지적한 책이 국내에서도 번역돼 발간됐고 그러잖아도 요즘 일각에선 심심찮게 이 사건이 거론되고 있던 참이었다. 그래서 바짝 다가 앉아 “또 무슨 가설이냐”고 물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별다른 얘기는 돌아 오지 않았다. 그와 헤어진 그날 저녁 9시뉴스에는 요란스럽게 화장한 여자 아나운서가 등 푸른 고등어 고르는 방법을 자상하게 가르쳐 주고 있었다. 마치 KAL기 공중 폭파사건에 대한 또 다른 가설을 기다리는듯…. /허행윤 제2사회부장

천자춘추/물에 대한 짧은 잡담

얼마 전부터인가 경기지역 내 한 온천호텔에서 엄청 큰 플래카드를 걸어놓고 광고를 하고있다. 내용인 즉, 지하 1천m에서 끌어올린 온천수를 선보인다는 거였다. 1천m 지하 암반을 뚫고 나온 청정온천수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내가 지금 서있는 이곳에서 1㎞ 떨어진 곳이라면 그곳의 사람의 존재조차 식별이 가지 않을 거리인데, 지하 수직으로 그 깊이까지 파고 들어가야 겨우 물길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지하온천수가 고갈 되었다면? 이곳뿐 아니라 역사를 자랑하는 전국 유명 온천지역마다 물을 끌어대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으로 버티고 있단다. 이미 몇 지역은 더 이상 온천지대가 아니다. 생명체가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아주 희박한 가능성을 믿고 우주선 패스파인더호는 몇 년을 날아 화성에 도착했다. 정말 화성에 생명체가 살고 있을까 하는 질문에 대한 가장 큰 단서는 화성에 물분자가 존재하는가 하는 것이라 한다. 말 그대로 물이 없으면 생명도 없다는 거다.(No Water, No Life.) 다행히도 이 지구는 생명체가 살 수 있는 기온이나 공기, 그리고 여타 조건과 함께 물을 가지고 있는 태양계내 유일한 행성이다. 그래서 많은 생물체들이 왕성한 생명활동을 벌일 수 있기도 하다. 하지만 지구상의 모든 물의 97%는 바다에 있고 너무 짜서 식수나 농·공업용수로 사용할 수 없다. 나머지 3%에 해당하는 담수마저도 남극과 북극에 만년빙과 만년설로 68.7%를 차지하고 지하수가 30.1%, 영구 동토층 지하의 얼음이 0.9%에 해당하니 자연적으로 취할 수 있는 물은 담수중의 0.3%밖에 안된다. 현재 지구상의 인류가 당면한 가장 급박한 문제는 당장 쓸 수 있는 물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마시는 물을 비싼 음료수 값을 내고 사먹기 시작했고 지금은 한술 더떠 더비싼 외국산 수입식수까지 사 먹는 형편이다. 이제는 어린 시절처럼 뒷동산 계곡에서 흐르는 물을 받아 먹는건 고사하고, 깨끗한 물을 퍼다가 정수하고 소독까지 해도 더 이상 먹을 수 있는 물이 없다는 처참한 고백이 아닐까. 그래서인지 이제는 그 전보다는 물의 소중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늘고 있기는 하다. 우리가 물 쓰듯 마구 버린 물 때문에 비싼 값을 치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기 시작한 것이다. /김용.이천환경운동연합 상임의장

독자투고/조합장 선거, 선관위 관리 바람직

내년부터 지역의 농협과 축협이 조합원 직선으로 조합장을 선출할 경우 과열혼탁 선거 양상을 예방하기 위해 선거관리는 일선 선거관리위원회가 맡을 수 있게 된다. 최근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한 농업협동조합법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됨에 따라 곧 국회에 제출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개정안은 조합장선거와 관련한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제272조(선거범죄의 조사 등)와 선거관리위원회법 제14조(선거법 위반행위에 대한 중지·경고 등)의 규정을 준용하여 단속과 조사를 실시토록 하였다. 지금까지 조합이 자체적으로 선거관리위원회를 구성해 선거를 관리하는 과정에서 끊이질 않고 나타난 부작용과 비리, 과열·혼탁선거 양상 등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매번 전국적으로 수백개의 농·수협과 산림조합이 공직선거 직전에 조합선거를 치르게 됨에 따라 공직선거 입후보자들의 사전 과열·혼탁선거운동 등 부작용이 크게 우려되고 있던 것이 사실이다. 지난해 치러진 경북 의성축협 조합장 선거과정에서 금품선거로 20여명이 무더기로 구속되고 100명 이상이 입건되는 등 조합장선거 때마다 불거진 ‘돈선거’가 조합비리를 확대 재생산하는 원인이 되었다. 금품선거로 당선된 일부 조합장들은 임기내 본전을 뽑으려는 생각에 대출비리 등 독직행위를 저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또 조합장선거의 유권자 대부분이 공직선거 유권자이기 때문에 공직선거 입후보예정자들의 이들 조합장선거를 빌미로 사전선거운동을 하려 하기에 조합장선거가 공직선거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조합은 이번 농업협동조합법개정을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자기반성을 계기로 삼고 선관위와 사직당국도 돈쓰는 사람이 있다면 단호하고 엄정하게 대처해 선거문화를 고치고 국가와 농민을 위하여 협동조합을 살찌우는 조합장이 당선되기를 바란다./박태은·포천시선거관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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