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7일 경기만평, 당구公

{Image}

10만원권이라니?

“차 떼기꾼들 가방 떼기로 편리해서 좋겠네” 서민들의 이런 푸념이 있었다. 만원짜리 한 장 쥐기에도 바쁜 서민들에게 하루 벌이도 더 되는 10만원권 지폐 발행 소식은 정말 화나는 것이었다. “국민의 생활 불편을 덜기위해 10만원권 지폐 발행이 필요하다”고 재경부가 말하는 국민은 얼마나 되는 어느 계층의 국민인 지 궁금하다. 10만원 짜리가 없어 불편을 느끼는 사람이 도대체 얼마나 된다는 것인 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침체된 소비 진작에 획기적 대책이 될 것”이라는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 얘기 또한 무책임하다. 10만원권 발행은 인플레 심리를 낳아 실제 상황으로 악화되는 것이 필연적 수순이다. 쇠뿔을 고치려다가 소를 죽게하는 거나 다름이 없게 된다. 기업 경영에서도 온라인 결제가 대부분이다. 10만원권이 없어 경영에 애로가 많다는 주장은 자기 억지다. “부패문화를 부추긴다”는 일부 시민단체의 반대 주장엔 충분히 이유가 있다. 뇌물 단가가 높아져 부패지수가 더 올라갈 지도 모른다. 차 떼기, 책 떼기 등 대선 불법자금에 멍이 든 서민들 가슴을 더 이상 분노케 해서는 안된다. 수표 발행 비용이 연간 수백억원이 들고 수표의 이서가 아무리 불편하다 하여도 10만원권 발행 검토는 중단해야 한다. 자금의 흐름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한 것이 예금실명제다. 고액권 발행은 예금실명제 취의에도 어긋난다. 그같은 얄팍한 술수로는 성장 잠재력을 해치지 않는 경제회복, 알맹이 있는 서민층의 실질소득 증가를 기할수가 없다. 국내 경기가 나쁜 병리현상의 진단을 10만원권 화폐가 없다고 보는 것은 환부와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돌팔이 같은 위인들이 겁없이 고액권을 만들어 서민층 생계를 더 어렵게 만들 지 않을까 하여 심히 걱정된다. /임양은 주필

"1월 26일 경기만평, 당구公

{Image}

스포츠와 체벌

"운동선수 지도에 가끔 말썽이 되는 게 체벌이다. 감독이 선수들에게 육체적 고통을 주는 토끼뜀이나 허리를 구부려 머리를 땅 바닥에 댄 채 두 손은 뒷짐 지게하는 이른바 원산폭격 같은 기합을 넣는 수가 있다. 심한 경우에는 매를 때리기도 한다. 일본 여자배구 대표팀이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국내 여자배구 대표팀과 게임을 가졌을 때다. 일본팀이 한참 뒤지자 고지마 감독은 작전 타임을 요청했다. 선수들을 불러들인 그는 뺨을 차례로 냅다 갈기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작전 지시는 한마디도 없이 코트로 내보냈다. 관중은 물론이고 체벌을 예사로 알던 국내체육인들도 눈이 휘둥그래진 광경이었다. 고지마 감독은 여자배구에서는 처음으로 유도의 전방회전낙법처럼 몸을 던지며 상대의 볼을 받아치는 롤링 리시브를 주입시킨 사람이다. 훈련시에 두어명을 엎드리게 하여 뛰어넘는 강도높은 이 훈련이 일본 여자배구에서 성공하자 다른 나라에서도 비로소 시작했다. 고지마의 뺨 때리기는 기합을 넣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1980년의 일이다. 지금은 턱도 없는 일이다. 선수 지도에 그땐 주입식이 통했지만 이젠 아니다. 현대의 선수 지도는 개발식이다. 스포츠의 과학화가 이리하여 요구된다. 선수마다 지닌 장점을 최대한 살려주고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선수 개개인을 상세히 파악할 줄 아는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기술지도만이 아니고 정신지도도 마찬가지다. 무턱대고 기합만 넣으면 선수들로부터 무식한 감독이라는 소릴 듣기가 십상이다. 이러므로 스포츠 지도자는 심리학자가 되어야 한다. 칭찬과 질책을 적절히 구사하면서 분위기를 띄울줄 아는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그 자신이 공부를 부단히 해야한다. 개인적 감정이 섞이지 않는 순수한 약간의 체벌이라면 전혀 필요치 않다고는 말하고 싶지 않다. 그 일본 여자배구 선수들도 게임이 끝나자 고지마 감독을 무동 태우며 환호하던 게 생각난다. 그래도 이젠 주입식은 안된다. 도내 어느 고교 축구팀이 중국에서 훈련 중 감독이 선수들에게 몽둥이 찜질을 했다는 현지 보도의 소식이 매우 우울하게 한다. /임양은 주필

"1월 6일 경기만평, 당구公

{Image}

가요와 쇼

"음악의 개념이 동력화 하긴 한다. 예컨대 재즈 편성의 음악이나 고전에서 전승된 무곡(舞曲)같은 댄스음악이 이래서 연유한다. 음악을 주로하는 오락프로그램의 뮤지컬쇼 역시 마찬가지다. 레이저 광선을 이용하여 특수제조된 디스크로 영상과 음향을 텔레비전 화면에 재생시키는 비디오 디스크 플레이어 (VDP) 또한 같다. 이 모든 것들은 동력이 곧 특수성이다. 가수의 요란한 몸짓, 춤꾼의 춤이 이래서 무대배경을 이룬다. 안무(按舞)는 가곡 또는 가요에 따른 무용의 틀이나 진행을 창안하는 무대예술로 각광을 받는다. 일반적으로 노래와 앙상블을 이루는 춤은 장르, 즉 유형이 따로 있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예를 들면 트롯에서도 안무를 수반하는 것이 현대적 대중가요의 흐름이다. 대중가요를 유행가라고 하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대중가요는 지금도 유행가이긴 하나 그 무렵엔 ‘대중가요’란 말이 따로 없었다. 유행가라고 했던 시절의 가수는 제스처가 지극히 빈약했다. 꼿꼿이 선 채 그냥 노래만 부르다시피 했다. 지금은 비록 무대 배치에 춤꾼이 없어도 노래만 그냥 부르는 가수는 없다. 가요의 무대 동력화가 그만큼 보편화하고 있는 것이다. 무대의 동력화는 실로 화려하다. 현장 관객은 물론이고 텔레비전을 통해 보는 시청자들에도 풍성한 눈요기거리를 제공한다. 그러나 분명한 게 있다. 눈요기거리가 가창력을 우월해서는 가요무대일 수 없다는 점이다. 형형색색의 입체조명, 드라이 아이스 등 뭉게구름 피우기, 폭발적인 전기섬광, 남녀 가수나 남녀 보조춤꾼의 섹시한 옷차림 그리고 율동, 실로 현란한 무대 연출이 놀랍도록 발 빠르게 발전한다. 하지만 이런 무대의 주제는 어디까지나 가수의 가창력이다. 가창력은 별 볼품없으면서 무대연출만 요란한 것은 다만 쇼일뿐 가요프로그램이라 할 수는 없다. 텔레비전의 가요프로가 점차 쇼프로화 해간다. 특히 지난해 연말 결산의 가요행사 프로는 거의가 가요잔치이기 보다는 주객이 바뀐 쇼프로화한 경향이 특히 심했다. /임양은 주필

"1월 5일 경기만평, 당구公

{Image}

"1월 2일 경기만평, 당구公

{Image}

육적칠해

"중국고어 중 ‘육적(六賊)’, 즉 여섯가지 나쁜 일은 이렇다. 첫째, 신하가 대규모로 궁실·누각·정자를 짓고 노래와 춤을 즐기게 하여 임금의 덕을 손상시키는 일이다. 둘째, 백성이 농사 짓고 누에 치는 일에 힘쓰지 않고 방탕하게 놀며, 국법을 위반하면서 관리의 지도에 따르지 않는 일이다. 셋째, 신하가 붕당을 만들어 어질고 지혜로운 사람을 가로 막아 임금의 총명을 가려 임금의 권위를 손상시키는 일이다. 넷째, 선비가 반항과 위세로 다른 나라의 군주들과 교제하면서 자기의 임금을 중하게 여기지 않아 임금의 위엄을 손상시키는 일이다. 다섯째, 신하가 벼슬과 지위를 경시하며 관리를 천하게 여기고, 임금을 위해 어려운 일을 하는 것을 부끄러워 하여 공신의 노고를 손상시키는 일이다. 여섯째, 종친이 가난하고 약한 자들의 재물을 빼앗고 그들을 업신여겨 서민의 생업을 손상시키는 일이다. 일곱가지 나쁜 자, 즉 ‘칠해’의 첫째는, 아무런 지략이나 책략도 없으면서 상과 높은 벼슬만을 탐내 경솔하게 전쟁을 벌여 요행으로 승리하기를 바라는 者다. 둘째, 헛이름만 있고 실질은 없으며, 나갈 때와 들어올 때의 말이 다르다. 어진 사람은 덮어버리고 악한 사람은 치켜 세우며, 나아가고 물러감을 교묘히 하는 자다. 셋째, 자기의 몸과 의복을 일부러 검소하고 남루하게 하여 이름도 이익도 바라지 않는다고 말하는 위선자다. 넷째, 기이한 차림새와 말재주로 헛된 논의만 일삼으며, 선한 얼굴로 위장, 궁벽한 곳에 거처하면서 시속을 비방하는 자다. 다섯째, 참소와 아첨으로 관직을 얻고, 큰일은 도모하지 아니하나 이익이 있으면 움직이며, 고상한 말과 헛된 논의만 임금에게 늘어놓는 자다. 여섯째, 장식을 하고 갖은 기교로 호화롭게 꾸며 농사에 지장을 주는 자다. 일곱째, 허위의 방술, 이상한 기술, 방자한 방법 등으로 남을 저주하며, 사악한 도술과 상서롭지 않은 말로 선량한 백성들을 현혹시키는 자다. 왕도야 따로 있지만 신하된 신분으로 이 ‘육적칠해’에 하나도 해당되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완전한 사람은 드물다. 그러나 이제는 가식을 버리자. 2004년 올해는 원숭이해 갑신년이다. / 임병호 논설위원

오피니언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