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엔 어머님 생신을 맞아 시골에 다니러 간 기회에 짬을 내어 중고시절에 다니던 길을 걸어보았다. 오래 전부터 별러오던 일을 근 40년 만에 마침내 실행에 옮긴 것이다. 이십리 길. 까까머리 중고생, 꿈 많던 시절에 나는 6년 동안 이 길을 매일 힘든 줄도 모르고 걸었다. 그 길의 절반은 허허벌판이고, 나머지는 야트막한 구릉이었다. 집안에 시계 하나 없어 원불교 새벽 종소리를 듣고 일어나신 어머니께서 싸주시는 도시락을 책가방에 넣고 학교로 향하면 도시락반찬 김치 국물이 벌겋게 책 속에 스며들어 그 날 공부는 잡쳤지만 그래도 그 속에는 우리의 꿈과 희망이 자라고 있었다. 오솔길을 예쁜 단발머리 여학생들이 하얀 교복 깃을 나풀거리며 지나가면 쑥스러워 말 한번 걸지 못했어도 마음속엔 그리움과 연정이 피어나던 동화 같은 시절이었다. 그런 학생들이 이제 중년이 넘었지만 그 길은 우리에게 꿈과 낭만이 있었던 길이다. 이제 그 길을 다시 걸었다. 그 시절엔 찐빵, 풀빵, 만두, 자장면이 왜 그리도 먹고 싶었던지, 그 옛날 일들이 주마등처럼 아련히 떠올랐다. 고구마, 왜무를 서리해 먹던 일,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핀 과수원을 지날 땐 우리 학교 최고령이시던 최 선생님은 시를 읊조리셨다. 수리조합 수로에서 미역 감던 일, 그때 겨울은 어찌나 추웠던지 두툼한 속내의도 소용없었다. 비오는 날엔 운동화에 진흙물이 배어 창피하기도 했었다. 지각해서 선생님에게 야단맞던 일. 노인들 장기훈수 두다 혼쭐이 났던 일. 통학 길이 멀다보니 자전거 가진 친구가 무척 부러웠었다. 추억의 잿등 방앗간, 오상리 주엽나무, 영등이 과수원, 소라단 종축장, 남중동 벽돌공장은 모두 사라졌고 영등이 쪽부터는 이미 시가지가 되어 아파트가 들어선 터라 머릿속의 잔상과 지금 펼쳐지는 광경은 전혀 다른 모습이고, 옛 기억과는 멀어져버렸다. 그렇게 넓어 보였던 하천도, 꽤 길었던 다리도, 고래 등 같았던 기와집도, 드넓었던 학교운동장도 이젠 초라하게 작아 보여 마치 소인국에 간 느낌이었다. 변변치 않은 공부 실력에 커서 무엇이 될지 답답하기만 했던 소년시절의 나로 돌아가 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을 가진 것이다. 끝없는 갈증으로 연속되었던 인생에서 내가 걸었던 옛길을 찾아가 보는 일, 참 눈물나는 일이었다. /소병주.경기도의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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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일보
2003-12-20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