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독감 안성까지, 정부대책 허술하다

조류독감이 급격하게 확산되고 있다. 충북 음성에서 발생한 조류 독감이 충남 천안, 전라도 나주, 경북 경주에까지 번졌으며, 도내 안성 등에서도 조류독감 신고가 들어와 사실상 전국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이대로 가면 전국의 축산농가는 3년전 구제역 파동때 입었던 피해 못지않게 당할 가능성이 있는데도 정부는 뚜렷한 해결책이 없어 전전긍긍하고 있다. 축산 농가들의 피해는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다. 이미 오리나 닭의 소비는 50% 정도 감소 되었으며, 가격도 30%정도 하락하였다. 일본, 대만 등은 한국산 조류 제품의 수입을 금지시킴으로써 축산 농가들의 시름은 이루 표현할 수 없다. 최근 경기가 부진하여 연말 경기를 다소 기대하였는데 이런 사태가 발생하였으니 축산농가들은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 될지 걱정이 태산 같다. 음식점등 유통산업의 타격 또한 심각하다. 끓이거나 삶거나 익혀 먹으면 아무 피해가 없다하니 정부도 이를 적극 홍보할 필요가 있다. 우선 시급한 것은 전염경로의 조속한 차단이다. 이를 위하여 방역당국은 이번 조류독감이 발생한 ‘씨’농장에서 배급된 닭과 오리의 배급 경로를 조속히 파악하여 이를 차단하는데 최우선해야 된다. 그러나 아직도 농림당국이 배급된 조류의 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니 이 얼마나 허술한 방역행정인지 참으로 염려가 된다. 이번에도 방역당국의 초기 대처는 너무도 허술했다. 닭이 집단 폐사한 뒤 무려 일주일 후에나 닭에 대한 이동제한 조치가 이루어진 것은 지나친 늑장 대응이다. 그후 닭의 살(殺)처분 과정에서 당국이 보여 준 인력 동원이나 각종 도구의 사용은 거의 초보적인 수준에 지나지 않아 전혀 대비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 도대체 수년전 구제역 파동 때 얻은 교훈은 어디에 갔는 지 알 수 없다. 이번 조류독감은 철새에 의하여 오염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현재로서는 구체적 오염 경로가 나타나고 있지 않아 우선 방역당국은 이에 대한 오염 경로의 조속한 발견이 요구된다. 이번 조류 독감에서와 같이 전염이 이제는 철새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발생하고 있어, 과거와 같은 원시적 방역 대책을 가지고는 안된다. 축산농가에 대한 시급한 보상책 마련과 더불어 혁신적인 방역대책을 조속히 마련해야 된다.

동지(冬至)

삭풍이 세차다. 겨울 추위가 맹위를 떨친다. 가진 것 없는 사람들에게는 어려운 철이지만 자연의 섭리다. 지구의 온난화 현상이라던가, 그래도 옛날같은 겨울이 아니다. 눈이 무릎까지 쌓이도록 내리기가 예사였던 그런 겨울은 아니다. 강물이 몇겹씩 두껍게 얼어붙는 그런 겨울 또한 아니다. 그렇지만 역시 겨울은 겨울이다. 삼라만상이 얼어붙었다. 녹음을 자랑하던 산천 거목, 그리고 거리의 가로수가 앙상하다. 비단결 같았던 들녘의 잡초도 시들어 대지가 움츠러 들었다. 태양은 여전히 빛나 온누리를 밝히지만 햇살은 휴화산처럼 잠자고, 밤하늘의 달과 별이 유난히 차가워 보이는 겨울이다. 눈덮인 산야가 어떻게 보면 더 정경스럽고, 겨울바다가 더 다감해 보이는 그런 겨울이기도 하다. 어딘가 훌쩍 겨울여행이라도 떠나고 싶지만 막상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이 겨울을 그저 생활 주변에서 음미하며 보낸다. 그렇다. 겨울을 마지못해 보내기 보다는 열린 마음으로 맞이하여 감상하는 게 지혜로운 삶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모진 북녘바람도, 출근길이 걱정스런 눈 사태도, 시냇물이 얼어 흐름을 멈추는 강추위도 두렵게 여길 이유가 없다. 이 또한 대자연 속에 자신의 생활을 확인시켜주는 섭리라고 여기면 되는 것이다. 그 속에 자신이 있으므로 하여 생명력의 가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을이 있었으므로 겨울이 있고 겨울이 있으면 또 봄·여름이 있다. 인간사의 오르막 내리막 길 같은 대자연의 윤회에 제대로 적응하는 것이 현명한 삶의 길이 아닌가 생각한다. 오늘은 동지다. 한해 가운데 가장 밤이 긴 오늘을 넘기면 낮이 점점 길어진다. 올 동지는 음력 동짓달 그믐날로 늙은 동지 중에서도 가장 늙은 동짓날이다. 찹쌀로 빚은 새알에 팥물로 쑨 동지죽은 겨울철의 보양식이다. 동지죽을 쑤는 것은 액운을 몰아낸다고 믿는 조상 전례의 민속이다. /임양은 주필

월요칼럼/큰 별 지면 큰 별 뜬다

올 겨울은 열반의 계절인가. 전국 산사에서 잇따라 열반송이 겨울산의 적막을 깨우고 있어 중생들을 숙연케 한다. 이번 겨울에만 한국 불교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큰스님 여섯 분이 입적하여 불자가 아니더라도 지나온 삶의 자취를 돌아보게 한다. 반세기 이상 장좌불와(長坐不臥·눕지 않고 앉아서 수행)와 일일일식을 한 청화 스님을 시작으로,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동국학원 이사장 정대 스님, 태고종 종정 덕암 스님, 조계종 원로의원 덕명 스님, 조계종 종정을 지낸 통도사 방장 월하 스님에 이어 백양사 방장 서옹(西翁) 스님이 지난 13일 92세에 앉은 채로 열반해 스승 만암 스님에 이어 좌탈입망(坐脫立亡)의 진기록을 남겼다. 서옹 스님은 한달전쯤 성륜사 조실(祖室) 청화 스님의 열반 소식을 듣고 “내가 먼저 가야하는데 청화가 먼저 갔군! 나도 갈 때가 됐어”라는 말과 함께 “임제 스님이 크게 외치니 밝은 눈이 사라지고 / 덕산 스님이 몽둥이로 내리치니 교외별전이 끊어지도다 / 이렇게 와서 이렇게 가니 / 백학의 높은 봉우리에 달빛이 가득하도다”하고 자필 임종게까지 쓴 뒤 떠날 채비를 했다고 한다. 서옹 스님은 입적 직전까지 시자 스님들에게 30여분간 법문을 들려 주었고, 열반 하루 전에도 상좌 스님들과 법담을 나누었다. 백양사 주지 두백 스님은 “서옹 스님은 ‘이제 가야겠다’며 혜권 강사스님을 찾았고 강사스님이 방문 여는 소리와 함께 입정한 그대로 좌탈입망 하셨다”고 입적순간을 전했다. 올 초부터 뭇 중생들에게 깨달음의 죽비를 내리치던 해방 이후 선승 1세대들이 차례로 열반송을 남기고 이승의 옷을 바꿔 입자 선맥계승이 관심사로 떠올랐다. 특히 이 스님들은 조계종의 5대총림 방장과 조실을 지낸 고승들이어서 이들이 비운 자리는 더욱 넓고 크다. 지난 3월말 입적할 때까지 조계종립 특별선원인 경북 문경 희양산 봉암사의 조실로 철저한 수행을 하며 산문을 지켜온 서암(西庵) 스님은 “그 노장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다고 해라”라는 열반송을 남기고 홀연히 떠났다. 영축총림 통도사 방장 월하 스님은 시골 할아버지 같은 모습으로 아무리 어린 사람에게도 말을 낮추지 않았다. 최고령 조계종 원로의원이었던 고송 스님은 파계사 조실로 존경을 받아 왔고, 청화 스님은 ‘살아 있는 부처’로 추앙을 받았다. 1세대 선승들로는 현재 조계종 종정인 가야총림 방장 법전(法傳), 서울 칠보사 조실 석주(昔珠), 화계사 조실 숭산(崇山), 덕숭총림 방장 원담(圓潭) 스님이 있다. 이들의 뒤를 ‘북송담 남진제’로 알려진 인천 용화사 선원장 송담(松潭), 부산 동화사 해운정사 조실 진제(眞際), 봉화 각화사 선원장 고우(古愚), 영천 은해사 기기암 선원장 적명(寂明), 봉화 축서사 주지 무여(無如), 제주 남국선원장 혜국(慧國) 스님 등이 잇고 있다. 일반인들도 열반한 스님들의 빈자리를 누가 메우느냐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유는 불교가 차지하고 있는 국민의 신앙심이 지대하기 때문이다. 열반한 스님들의 49재가 남아 있어 아직 표면화되진 않고 있지만, 종정(태고종)과 조계종 5대 총림 중 방장 2자리, 동국학원이사장 자리 등을 놓고 물밑작업이 한창 진행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지 임명권을 가진 방장 자리는 사중(문중) 회의에 의해 정해지고, 태고종 종정은 내년 2월 소집될 원로회의의 추천을 거쳐 중앙종회에서 최종 결정된다. 방장이나 종정은 감투가 아니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천만분의 하나라도 불교 지도자 자리를 놓고 추호라도 잡음이 생긴다면 열반한 큰스님들의 공덕과 수행에 누를 끼치는 일이다. 큰 별이 진 뒤에는 큰 별이 떠야 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천자춘추/친환경 농산물생산 세계화 대비를

최근 과실종합생산(IFP)과 우수농산물관리제도(GAP)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개념들은 농약과 비료 사용의 증가로 획기적으로 농업생산이 증가하였지만, 환경오염과 식품의 안전성에 대한 의문이 증가되기 시작하였고, 생활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화학적인 수단에 의존하여 생산된 농산물과 친환경적으로 생산된 농산물간의 차별화를 꾀하려는 움직임도 일어나게 되었다. 친환경 농산물의 생산은 소비자들에게는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요구를 만족시키고, 친환경적 재배방법을 통하여 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강화시킨다. 또 지속 가능한 농업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과 새로운 질서에 따라 민간차원에서는 유해 동식물의 생물학적 방제를 위한 국제위원회(IOBC)와 국제원예학회(ISHS)가 공동으로 과실종합생산 지침을 만들어 인증을 실시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국가에서 관리하는 농산물 품질인증 제도가 실시되고 있다. 한편, 1995년 WTO가 출범하면서 조인된 식품 및 동식물 검역의 적용에 관한 협정(SPS)과 무역상 기술장벽에 관한 협정(TBT)에서는 개별 회원국의 규격기준을 국제규격과 조화시키도록 권장하고 있다. 특히 SPS 협정문에서는 Codex를 과학적 타당성을 확보한 국제규격으로서 인정하여 개별국가의 기준표로 활용하도록 하고 있고, 유엔 산하기구인 FAO(유엔식량농업기구)는 최근 화학물질, 미생물 등 각종 오염원으로부터 안전한 식품을 소비자에게 공급하기 위하여 생산에서 소비까지 전 단계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토양·수질관리, 농·축산물 생산, 저장, 가공, 폐기물처리 등에 관한 기본적인 원칙을 제시하는 GAP를 농산물 생산 유통과 관련된 국제질서에 도입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나 시스템들은 이미 독일 등 EU 국가와 미국, 말레이시아 등에서도 도입하여 제도화 해나가고 있으며 특히 중국도 농산물 수출과 관련하여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환경과 보건을 위해 농약과 비료 사용을 최소화하며 고품질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해 안전하고 경제적인 재배체계를 적극적으로 추구해 나가야 하며 더구나 GAP는 새로운 무역장벽으로 발전될 가능성까지도 있으므로 앞으로 이러한 국내외적인 제도변화에 관심을 갖고 적극 대처해야 한다. /임명순.농촌진흥청 원예연구소장

독자투고/법.질서 지키는 사회를 만들자

올 한해 경찰을 소재로한 영화 ‘살인의 추억’과 ‘와일드 카드’ 가 흥행에 크게 성공하였다. 이 두 영화는 경찰의 비리와 부패를 코믹하게 풍자한 투캅스 시리즈와 무능력하게 그린 조폭미화 영화 등 이전의 경찰소재 영화와는 다르다. 이들 영화는 법망을 교묘히 빠져 나가는 범법자들을 제거해 법과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마침내 악의 무리들을 검거해 엄격한 법 집행으로 요즘 같이 혼란과 갈등이 넘쳐흐르는 사회에 법과 정의, 원칙과 질서가 살아 있는 것을 보여주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사명감을 갖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경찰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흐름은 그 시대의 사회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화물연대의 파업, NEIS 문제, 님비현상 등 많은 문제들이 집단이기주의 속에서 법과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것을 보아온 우리 국민들의 불안한 생각이 비록 영화이긴 하지만 법과 원칙, 규칙과 질서가 중요시되고 이것이 경찰들의 노력에 의해 엄격히 집행됨으로써 시원하고 후련함을 느끼게 돼 경찰영화에 대리 만족을 한 것이다. 갑신년 새해에는 우리 모두가 대화와 타협을 통한 성숙한 시민의식을 발휘하여 법과 원칙, 질서와 제도가 영화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도 엄격히 지켜지고 존중되고 살아 있도록 모두가 최선을 다해 이 땅에 법치주의가 바로 서도록 해야할 것이다./이재형·인터넷독자

재외공관 비리 관행을 근절하라

재외공관 근무경험이 있는 외교통상부의 몇몇 직원이 부(部) 내부 통신망을 통해 고발한 공관장과 고참외교관들의 비리 행태는 한마디로 추잡스럽다. 소위 ‘국제 신사’라는 외교관들이 이렇게 치사한 방법으로 공금에 손을 댔다니 참으로 치졸하다. 요즘 그렇지않아도 동남아 국가와 중국 등의 공관 직원들이 한국에 들어오려는 현지인 브로커로부터 돈 받고 비자 발급 서류 등을 위조해 밀입국 시키는 ‘비자 장사’를 하고, 공관장들의 카지노 등에서의 도박행위, 공관 경비를 ‘활동비’로 유용해 지인들에게 선물하는 행위 등이 속속 드러나는 중이어서 이번 내부 폭로는 더욱 실망이 크다. 마치 썩은 생선에 달라 붙는 파리떼들 같아 역겹다. 1박2일 출장예정인데 2박3일로 출장비를 끊어 차액을 챙겼는가 하면, 겸임국 신임장 제정을 위해 동부인 출장시 딸을 동반했다. 문제의 외교관은 이를 위해 출장계획서와 지불결의서에 공관 근무 직원의 이름을 함께 올려 출장비를 탄 뒤 직원 대신 딸을 데려 갔다고 한다. 공관 관저에서 만찬을 하면서 사람 수를 부풀려 추가 경비를 착복하는 사례도 있었다. 외교관이 몇 백 달러를 착복하기 위해 ‘밥장사’를 한 셈이다.공관 직원들이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하기야 오죽하면 이런 비리 내용을 인터넷에 올렸겠는가. “추악한 상사 때문에 나도 더러워졌다”고 고백은 했지만, 상사들의 비리를 답습했다는 사실도 간과할 사안이 아니다. 모든 외교관들의 근무 행태가 똑 같다고 믿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이런 부조리가 관행처럼 굳어져 있다는 데 심각성이 더 하다. 이번에 재외공관장의 치부가 알려지자 외교부 내에서 “뭐 그런 것 까지…”하는 반응이 대다수였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물론 외교부 뿐만은 아닐 것이다. 공직사회에서의 비리 관행은 아직도 많다. 예컨대 출장을 가지 않으면서 출장부를 달아 놓고 그 돈을 모아 과비로 쓰는 경우, 야근하지도 않고 야근 수당을 타는가 하면, 연구비로 사물(私物)을 구입하는 사례도 허다하다.

대통령의 ‘시민혁명론’ 당치않다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 1주년을 기념한 ‘리멤버 1219’ 여의도 행사가 마치 총선 진군령을 방불케한 것은 공명선거를 저해한다고 보아 유감이다. 특히 이 자리에 참석한 노 대통령의 ‘시민혁명론’은 심히 적절치 않다. “저들이 아직도 나를 흔들고 있다”고 한 저들이 한나라당을 지칭한 것이라면, 그리고 반노 정치세력들을 싸잡아 비난하는 것이라 해도 뭐라고 하든 그것은 정치적 자유다. 그러나 국가의 계속성과 헌정 수호의 의무를 지닌 대통령이 감히 혁명을 입에 담는 것은 당치않다. 물론 짐작은 한다. 추락된 지지도 만회를 위해 노무현 지지 열기의 심지불을 돋우고, 나아가 총선에서 우당의 승리를 위한 독려를 ‘시민혁명’으로 표현했을 것으로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포퓰리즘의 선동에도 한계가 있다. 법질서의 위해가 가해지면 안되는 것이다. 대통령 취임후 노동운동이 더욱 극렬해지다 못해 마침내 노동계가 노 대통령을 ‘배신자’로 몰고, 사회 제반의 시위가 날로 폭력화하는 현상이 왜 일어났는 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이 모두가 시민혁명관의 포퓰리즘과 무관하지 않은 사실을 깊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 특히 대통령이 “시민혁명은 끝나지 않았다”며 지난해 대선 당선을 시민혁명으로 비유한 것은 국민을 모독하는거나 다름이 없다. 국민은 대통령선거를 치렀고 결과는 노무현 민주당 후보를 당선시켰을 뿐, 이것이 혁명은 아닌 것이다. 총선을 겨냥한 대통령의 ‘시민혁명’ 강조는 참으로 우려되는 바가 크다. ‘시민혁명’을 빙자한 특정인 낙선 운동 등 갖가지 불법이 벌써부터 우려된다. ‘노사모’는 이미 법원의 유죄판결이 난 돼지저금통을 또다시 돌리는 기세속에 “악랄하게 전진하자”며 칼날을 세우고 있다. 이런 분위기 조성이 공명선거 이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보기는 심히 어렵다. 대통령이 말한 ‘시민혁명’의 순수한 주체는 일반 시민이다. 이런 일반 시민들이 지금 기진맥진해 있다. 이 정권 출범후 갈팡질팡한 제반 정책의 혼돈속에 방향감각조차 상실한 무력감에 빠져 있다. 생활경제와 체감경기는 최악으로 치달아 파산이 아니면 자살이 속출한다. 이런 가운데 한개를 훔친 것은 열개를 훔친 것에 비해 죄가 아닌 것으로 보는 괴상한 논리 여파로 사회위기 수준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일반 시민들은 이제 정치게임에 흥미를 잃어 관심을 가질 여력조차 없다. 문제의 해결은 ‘시민혁명’에 있는 게 아니고 대통령 자신에게 있다.

풍자어

국제사회에서 주목받고 있는 유력 인사들의 이름을 풍자한 신조어가 유행중이다. 명사인 ‘러미’는 이라크 침공에 앞장선 도널드 럼스펠드 미국 국방장관의 애칭인데 “준비나 계획없이 저지르는 위험”을 뜻한다. 용예를 든다면 “그들은 곡괭이 한 자루와 약간의 초콜릿만 지닌 채 에레베스트산을 오르려 했다. 그건 정말로 ‘러미’다”라는 표현이 그것이다. 러미는 또 불필요하게 친구나 맹방을 공격한다는 뜻의 동사로도 쓰이고, 다른 사람들의 말이 들리지 않도록 해주는 머리덮개를 뜻하기도 한다. 형용사인 ‘체니(딕 체니 미국 부통령)스럽다’는 음흉하고 어두우며, 위협적이란 뜻이다. 파월장군(온건파 클린 파월 미국 국무장관)은 주로 외부인을 감동시키기 위해 만든 것으로서 내부적으로는 별 쓸모가 없는 장식물을 말한다. “구석에 있는 파월 장군을 치울 때가 됐다고 생각하는데 어때?”라는 용례가 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주도한 신보수세력을 뜻하는 ‘네오콘’은 정교하고 세밀하며 매우 설득력이 있어 보이는 술수라는 뜻의 명사다. ‘슈워제네거’(캘리포니아 주지사에 당선한 할리우드 액션스타 아널드 슈워제네거)는 종종 충동적인 정치적 행동을 낳는 지나치게 발달한 근육질을 뜻하며, ‘부시’는 단임 대통령이란 명사다. “그는 처음에는 프랭클린 루스벨트(4번 연임한 미국 대통령)처럼 보였으나 결국 또 하나의 부시가 되고 말았다”는 표현이 있다. 미국에선 현 부시 대통령도 걸프전 때 엄청난 인기를 누렸으나 경제문제로 재임에 실패했던 아버지 부시를 닮아가고 있다는 얘기들이 많다고 한다. 이런 신조어를 내놓은 사람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칼럼니스트 제라드 베이커다. 베이커의 신조어를 빌려 한국정치판을 풍자하면 ‘러미’ ‘체니스럽다’ ‘파월’에 해당되는 위인들이 참 많다. 특히 ‘체니스러운’ 정치인이 압도적이다. 국민은 ‘네오콘’ 같은 정치인도 잘 구분해야 한다. 술수에 능란한 게 좋은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임병호 논설위원

기고/‘인구 50만이상 대도시’ 입법 국회 행자委 의결

안산시를 비롯한 대도시시장협의회(회장 원혜영)에서 추진중인 ‘특정시’입법이 지난 12월9일 국회 행정자치위원회(위원장 박종우)에서 ‘인구 50만 이상 대도시’로 수정 의결됨에 따라 앞으로의 입법에 더욱 힘을 얻게 됐다. ‘특정시’란 ‘지방자치법’제10조 제1항 제2호에 규정돼 있는 기초자치단체 중 ‘인구 50만이상의 시’를 의미한 것으로 ‘특례를 규정한 시’를 약칭해 일컫고 있다. 일본의 ‘정령으로 지정한 시’나 ‘지정시’와 유사한 표현이지만 구체적인 내용이나 의미에서는 양자간 차이가 있다. 대도시시장협의회에서 ‘인구 50만이상의 대도시’에 대한 특별법을 추진하게 된 것은 현재의 지방자치법에도 특례가 있기는 하나 일부 사무의 위임에 관한 내용만 규정돼 있을 뿐, 인구 5만을 갓 넘는 도시와 100만에 이르는 대도시의 행·재정에 관한 특성을 규정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행정의 비효율성과 비능률에 대한 대책이 없어 이를 해소하자는 차원에서 올 4월 협의회를 구성하고 본격적인 입법을 추진하게 된 것이었다. ‘인구 50만이상의 대도시’는 상대적으로 다른 지방자치단체에 비해 도시의 거대화에 따른 조직과 예산이 절대 부족해 증가하는 교통·환경·복지·도시계획업무 등에 대한 주민의 행정수요에 적극 대응하지 못해 행정의 효율성과 능률성이 저하되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더욱이 세계화·지방화시대에 유기적이고 능동적으로 국제도시와 경쟁해야 하는 시대적 조류에 현행 특례시는 자율성 등의 면에서 한계를 갖고 있어 이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추구할 필요가 대두됨에 따라 대도시회원 도시인 포항시 이병석 의원을 대표로 국회의원 27명이 입법을 공동 발의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직 홍보의 부족과 입법 추진과정이 얼마 되지 않아 많은 시민들이 ‘인구 50만이상의 대도시’가 되면 무엇이 달라지고 왜 이러한 제도가 필요한지에 대한 의문을 갖는 것도 사실이다. 우선 ‘인구 50만이상의 대도시’에 대한 특례가 인정되면 첫째, 주민생활 관련 사무의 효율적인 처리가 가능해진다. 즉 현행 지방자치법 체제에서는 사회 복지사업 등에 대하여 도의 균형정책으로 인해 ‘인구 50만이상의 대도시’가 적정수준의 사업을 수행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특례가 인정될 경우 주민생활관련 일부사무에 대해 도의 사무가 아닌 ‘인구 50만이상의 대도시’의 직접사무로 처리 가능하고 관련예산 역시 직접 사용할 수 있다. 또한 해당 지방자치단체가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사업에 집중투자가 가능해지는 등 복지 서비스가 한단계 업그레이드된다. 둘째 도세와 시세간 세원을 조정함으로써 세입이 증대돼 ‘인구 50만이상의 대도시’가 주민을 위해 보다 많은 사업을 전개할 수 있게 되고 이를 통해 예산관련 사업을 원활하게 추진할 수 있게 된다. 셋째 행정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조직기구 및 인원의 조정권을 이양받아 주민복지 및 민원관련 기구를 신설하고, 민원담당 공무원을 증원할 수 있게 돼 대민 행정서비스 수준을 현재상태보다 월등하게 향상시킬 수도 있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여러가지 도입에 따른 효과를 살펴 볼 때 ‘인구 50만이상의 대도시’에 대한 국회 입법이 이뤄지면 앞으로는 참여정부와 함께 행정수요가 많은 관련 법령을 현실에 맞도록 재조정하고, 이들 11개 시에 대해서는 여타 기초자치단체와 차별화된 자율적 행정운영을 보장해 줌으로써 도시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 정부는 특정시가 국내 지역발전의 거점도시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세계화시대의 경쟁주체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행정수행방식의 혁신적 변화를 유도하고, 법과 제도적 지원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현재 ‘지방자치법시행령’에 규정돼 있는 19개 사무 외에 ‘인구 50만이상의 대도시’ 행정수요의 효율적 처리를 위해 특례사무범위를 확대하고, 사무와 재원의 동시이양을 의미하는 포괄성의 원칙에 따라 사무특례에 상응하는 재원이전방안을 마련할 필요성이 있으며, 세입·세출 및 재정운영에 있어서도 독자성을 보장하며 지도·감독 등에 대한 관여 최소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송진섭 안산시장

천자춘추/추억의 길

지난주엔 어머님 생신을 맞아 시골에 다니러 간 기회에 짬을 내어 중고시절에 다니던 길을 걸어보았다. 오래 전부터 별러오던 일을 근 40년 만에 마침내 실행에 옮긴 것이다. 이십리 길. 까까머리 중고생, 꿈 많던 시절에 나는 6년 동안 이 길을 매일 힘든 줄도 모르고 걸었다. 그 길의 절반은 허허벌판이고, 나머지는 야트막한 구릉이었다. 집안에 시계 하나 없어 원불교 새벽 종소리를 듣고 일어나신 어머니께서 싸주시는 도시락을 책가방에 넣고 학교로 향하면 도시락반찬 김치 국물이 벌겋게 책 속에 스며들어 그 날 공부는 잡쳤지만 그래도 그 속에는 우리의 꿈과 희망이 자라고 있었다. 오솔길을 예쁜 단발머리 여학생들이 하얀 교복 깃을 나풀거리며 지나가면 쑥스러워 말 한번 걸지 못했어도 마음속엔 그리움과 연정이 피어나던 동화 같은 시절이었다. 그런 학생들이 이제 중년이 넘었지만 그 길은 우리에게 꿈과 낭만이 있었던 길이다. 이제 그 길을 다시 걸었다. 그 시절엔 찐빵, 풀빵, 만두, 자장면이 왜 그리도 먹고 싶었던지, 그 옛날 일들이 주마등처럼 아련히 떠올랐다. 고구마, 왜무를 서리해 먹던 일,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핀 과수원을 지날 땐 우리 학교 최고령이시던 최 선생님은 시를 읊조리셨다. 수리조합 수로에서 미역 감던 일, 그때 겨울은 어찌나 추웠던지 두툼한 속내의도 소용없었다. 비오는 날엔 운동화에 진흙물이 배어 창피하기도 했었다. 지각해서 선생님에게 야단맞던 일. 노인들 장기훈수 두다 혼쭐이 났던 일. 통학 길이 멀다보니 자전거 가진 친구가 무척 부러웠었다. 추억의 잿등 방앗간, 오상리 주엽나무, 영등이 과수원, 소라단 종축장, 남중동 벽돌공장은 모두 사라졌고 영등이 쪽부터는 이미 시가지가 되어 아파트가 들어선 터라 머릿속의 잔상과 지금 펼쳐지는 광경은 전혀 다른 모습이고, 옛 기억과는 멀어져버렸다. 그렇게 넓어 보였던 하천도, 꽤 길었던 다리도, 고래 등 같았던 기와집도, 드넓었던 학교운동장도 이젠 초라하게 작아 보여 마치 소인국에 간 느낌이었다. 변변치 않은 공부 실력에 커서 무엇이 될지 답답하기만 했던 소년시절의 나로 돌아가 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을 가진 것이다. 끝없는 갈증으로 연속되었던 인생에서 내가 걸었던 옛길을 찾아가 보는 일, 참 눈물나는 일이었다. /소병주.경기도의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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