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5일 경기만평, 당구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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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농가·양계농가를 살리자

‘조류 독감 쇼크’로 인해 오리농가와 양계농가들이 폐농위기에 처했다. 도내 이천에서도 조류 독감으로 의심되는 닭이 발견돼 4만3천여 마리를 긴급 살처분하는 등 비상이 걸렸다. 문제는 조류독감이 확산되면서 오리농가와 양계농가들이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졌을 뿐 아니라 설상가상으로 오리와 닭의 출하가 중단된 사실이다. 더구나 시민들이 오리와 닭 고기를 기피하고 있어 음식점들이 개점휴업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도 심각하다. 그러나 조류 독감은 글자 그대로 새만 걸리는 독감이며, 인체에는 사실상 위험이 없다는 게 정설이다. 국립수의과학 검역원에 따르면 조류 독감이 발생하더라도 두드러진 피해가 발생하는 새 종류는 극히 드물다. 독감에 감염됐을 때 3~4일 내에 집단 폐사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닭과 칠면조 뿐이다. 오리 같은 종류는 감염이 돼도 산란율이 조금 떨어질 뿐 생존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조류 독감에 걸린 오리를 도살하고 있는 이유는 오리를 매개로 독감이 닭으로 번지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다. 역학조사 결과 충북 음성 등에서 독감에 걸린 오리의 배설물에 노출된 닭들이 집단 폐사한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한가지 다행인 것은 닭과 오리, 혹은 달걀 등을 먹더라도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사실이다 바이러스는 열에 약해 섭씨 도에서 분 도에서는 분 분에서는 1분 이상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100도 이상인 펄펄 끓는 물로 조리하는 찜닭이나 통닭 등은 안전하다. 또 독감 바이러스는 고기가 아니라 배설물에만 존재하므로, 설혹 덜 익은 고기를 먹더라도 인체에 바이러스가 유입되지는 않는다. 특히 독감 바이러스는 달걀이나 오리알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예컨대 열을 가하지 않은 상태에서 날달걀을 먹더라도 문제가 없다.게다가 조류 독감에 걸린 닭은 곧바로 폐사하므로, 원천적으로 조류 독감에 걸린 닭이 낳은 달걀은 존재할 수도 없다. 때 마침 닭·오리 사육농가를 돕기 위한 소비촉진 운동이 조류 독감 발생 지역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조류 독감에 대한 방역활동을 강화하는 가운데 사회 지도층도 마땅히 소비촉진 운동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정치개혁 아닌 ‘정치개악’ 안된다

정치개혁을 하겠다는 국회정치개혁위원회가 정치개혁은 커녕 정치개악을 추진하고 있다. 불과 2개월전만해도 자기네 정당만이 정치개혁을 할 수 있는 정당이라고 하면서 개혁의 목소리를 외치던 정당들이 정치개혁의 고고한 외침은 사라지고 당장 내년 4월로 닥친 총선에만 눈이 어두워 정치개혁 아닌 ‘정치개악’을 하고 있다. 금년말까지 선거구 획정을 위한 선거구제와 인구 상하한선을 규정할 선거법을 처리하지 못하면 내년 4월에 실시되는 총선거는 위헌 소지가 있어 잘못하면 총선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도 있다. 이런 상황인데도 국회는 그동안 정치개혁위만 설치하였지, 제대로 활동도 없이 허송세월만 보내다가 이제 막판에 허둥대면서 졸속 처리는 고사하고 개혁 아닌 개악을 하려고 하고 있으니, 국회가 국민을 위한 국회인지 또는 국회의원들을 위한 국회인지 도무지모르겠다. 23일 개최된 정치개혁특위의 아수라장은 오늘의 국회 현실을 나타내고 있다. 의사봉 대신 주먹을 두드려 안건을 상정하는 위원장, 야3당과 이를 저지하는 열린우리당 의원과의 욕설과 몸싸움, 이렇게 하면서 무슨 개혁을 하겠다는 것인 지 한심하다. 자신의 선거구나 지키기 위하여 지역구 의원수만 늘리려는 얄팍한 이기주의 속셈을 국민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국회의장의 자문기구로 출범한 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가 만든 정치개혁안을 거의 무시한 이유는 무엇인가. 불과 한달전만해도 각 정당 대표들은 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가 개혁안을 만들어 놓으면 이를 대폭 수용하겠다고 해놓고 이제 와서 무시하는 처사는 개혁을 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정치개혁특위는 이제부터라도 밤을 새워서라도 다시 회의를 열어 선거구제 협상을 새롭게 해야 된다. 우선 비례대표의원 비율을 높여 국회의 전문성을 향상시키고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고액헌금자는 공개하고 또한 선관위의 불법 선거운동 단속 권한은 더욱 확대해야 된다. 국회의원들이 국민을 위한 개혁은 하지 않고 밥그릇 챙기기만 한다면 국민적 저항을 면치 못할 것이다. 정치개혁이 정치개악으로 변질되는 상황을 국민들은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각 정당은 명심하기 바란다. 정치권이 이렇게 후안무치 할 수 있을까.

'잘 먹고 잘 살자'

‘웰빙(Well being)족’은 몸과 정신의 건강을 동시에 추구하면서 인생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영위하려는 사람들을 말한다. 자연·건강·안정·여유·행복이 웰빙족을 특정 짓는 단어들이다. 이들은 고기 대신 생선과 유기농 식품을 주로 먹고, 화학조미료와 탄산음료를 꺼린다. 동시에 요가와 단학, 아로마 테라피 등을 통해 심신의 안정을 꾀한다. 산업계에서 웰빙 바람이 가장 거센 곳은 신체건강과 직결되는 제품을 생산하는 제식품업계다. 웰빙족은 가격보다 품질을 우선시했고 식품업체들은 상향 조정된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춰 무공해·유기농 재료를 사용한 제품을 쏟아냈다. 올해 유기농 제품은 기존 제품보다 가격이 2∼3배나 비싸지만 불티나게 팔렸다. 현대인에게 값싸고 간편한 음식을 제공하며 사랑받아 온 패스트푸드점은 이제 냉대받기 시작했다. 라면업계도 기름에 튀긴 면을 생면으로 바꾸고, 재료를 다양화하면서 웰빙족에게 구애의 손길을 보내고 있다. 웰빙족은 음료시장의 판도도 바꿔 놓았다. 최대 판매량을 자랑하던 콜라의 올해 매출액은 18%나 급감했고, 커피 음료도 된서리를 맞았다. 반면 녹차음료와 주스·두유·생수 등 건강지향성 음료는 경기침체를 무색케 했다. 특히 칼슘·검은콩·깨 등을 넣은 분유제품이 인기를 끌면서 유업계의 오랜 고민이던 분유재고를 해결했다. 화장품업계도 ‘자연주의’를 내걸고 웰빙족을 부르고 있다. 피부에 자극이 없다는 천연 소재를 사용한 제품들이 속속 등장했고, 친환경 포장도 눈길을 끈다. 패션업계는 천연 섬유와 기능성 소재를 사용한 제품을 늘리고, 디자인과 색상에서도 편안함을 강조하고 있다. ‘잘 먹고 잘 살자’는 깃발을 내걸고 한국사회의 전면에 등장한 웰빙족은 새로운 소비문화를 제시하며 산업계의 핵심 화두로 떠올랐다. 잘 먹고 잘 살자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렇다고 본래의 뜻과는 달리 웰빙이 고소득층의 사치스런 소비 형태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 없는 건 아니다. 내 돈 내가 쓰며 내가 먹고 싶은 음식 내 입맛에 맞게 골라 먹는데 참견하지 말라는 웰빙족이 더러 있는 탓이다./임병호 논설위원

목요칼럼/예수의 구유와 십자가

오늘은 예수 탄생을 기념하는 크리스마스다. 신·구교를 망라한 기독교인은 물론이고 이밖의 많은 사람들이 경외심을 갖는 세계적인 경축일이다. 불교 조계종의 본산 조계사가 절앞에 내건 ‘아기 예수 탄신을 경축합니다’라는 축하 현수막이 무척 좋아 보인다. X-mas는 원래 ‘성찬’이란 뜻이다. 두문자 X는 희랍어 Xristo(그리스토)에서 유래됐다. 아기 예수 탄생의 정설은 물론 2003년 전이다. 이보다 4년 앞선다는 일설도 있다. 분명한 탄생일이 아직 기록상으로는 없다. 성탄을 축하한 것 역시 2세기 무렵부터다. 이땐 성탄일이 5월20일이었다. 12월하순이 된 것은 3세기 들어서다. 북유럽에서는 순수한 종교적 행사로 치렀던 데 비해 남유럽에서는 추수를 마친뒤에 갖는 사육제의 성격이 강했다. AD 325년은 기독교도를 탄압하던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처음으로 공인한 해다. 이 해 가진 제1차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크리스마스를 정식으로 정한 것이 12월25일이다. 다만 이땐 크리스마스날(12월25일) 이라기 보다는 크리스마스 기간으로 하여 기간을 이듬해 1월6일까지로 했다. 1월6일은 세명의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를 참배한 공현축일인 것이다. 그때 아기 예수는 구유에 누워 계셨다. 구유란 말이나 소의 먹이를 담아두기 위해 나무토막을 파서 만든 큰 그릇이다. 이렇게 온 아기 예수는 나이 설흔에 시작된 공생애 3년을 마지막으로 가르바리오 언덕에서 바리새인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박혔다. 십자가에 못박혔을 때 입었던 마포로된 성의는 이탈리아 서북부 토리노 대성당에 안치돼 있다. 예수는 이토록 구유에서 태어나 갈릴리지방 나자렛에서 양부 요셉의 목수일을 돕다가 시작된 공생애를 끝으로 십자가를 지기까지 호사와는 먼 가시밭길의 생애를 보냈다. 국내에선 19세기 후반 흥선대원군 집권시 허다한 천주교도들이 신용산 새남터의 이슬로 사라지면서 동굴에 숨어 미사를 올렸으므로 하여 오늘의 명맥을 잇게 했다. 20세기 초반 외국 선교사들의 포교로 신문화를 이룩한 예수교는 간곤한 계몽운동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오늘날 성당이나 교회의 높다란 십자가는 하늘을 찌른다. 이 웅장한 건물속에서 올리는 미사나 예배가 과연 개척기 같은 성령의 축복이 충만한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유다가 예수를 바리세인들에게 밀고하면서 받은 은화 설흔냥은 노예 한 사람 값이었다. 그러나 유다는 결국 이 돈을 그들의 신전에 냅다 던지고는 예수가 못박히는 날 스스로 목을 매어 회개해 보였다. 얼마전 외지 뉴스위크에서 그녀는 창녀가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된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의 부활을 최초로 지켜본 증인이다. 창녀가 맞다 아니다가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예수의 수제자 베드로는 예수를 세번이나 부인하였다. 그리고도 회개 함으로써 부활 40일만에 승천하는 예수를 다른 제자들과 함께 감람산에서 지켜볼 수가 있었다. 예수의 박애정신은 포용이다. 우리는 얼마나 이같은 삶을 영위하고 있는가를 돌아본다. 신도는 아니지만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가르친 성경 말씀을 제대로 지키지는 못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늘 되새기곤 한다. 성탄절은 연말의 문턱이기도 하다. 어언간 2003년 올 한해가 다 되어간다. 좋은 성탄절 보내기는 자기 성찰의 보람에 있다고 믿는다. /임양은 주필

천자춘추/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Christmas)란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예수성탄 축일을 일반적으로 부르는 말로서 중세 때 사용하던 라틴어 “Christes Masse”라는 단어에서 유래된 것이다. 영어로는 ‘그리스도의 미사’ 즉 그리스도를 예배하고 찬미한다는 뜻이다. 프랑스에서는 ‘노엘’(Noe l), 독일과 스위스 등지에서는 ‘거룩한 밤’(Weihmacht)이라고 부른다. 다시 말하면 크리스마스란 구세주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고 기뻐하는 축제를 의미한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시어 비천한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세상에 오시는 것이다. 점점 각박해지고 이기주의가 만연된 세상에 평화와 사랑을 심어 참인간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시기 위하여 우리 가운데 오신다. 평화의 王으로 오시는 그분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일으키는 분이 아니시며, 돈뭉치를 차떼기로 받는 그런분도 아니시다. 벗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놓는 사랑으로 온 인류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시는 평화의 임금이시다. 그래서 성탄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구세주의 탄생을 기뻐하며 무엇인가 알 수 없는 희망에 들뜨게 된다. 새로운 생명으로 세상에 오시는 그리스도께서 세상 모든 사람들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시고 전쟁과 기아(飢餓)에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시기를 기도한다. 그러나 희망과 바람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희생이 있어야 하고 고통을 함께 나누기 위해서는 그 고통을 함께 울어줄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욕심과 이기심이 가득한 세상에 나보다 너를 먼저 생각하는 사랑으로 자신을 비우는 삶만이 인간으로 오시는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기쁜 성탄과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여 부정과 부패가 가득찬 이 사회와 불신과 반목(反目)으로 가득찬 가정들이 참된 회개와 용서로 서로를 부둥켜 안는 화목한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 /송영오 인덕원성당 주임신부

독자투고/송년회(送年會) 의미 되새기자

다사다난했던 2003년 계미년 한 해도 저물어 가고 있다. 항상 출발 시점에서 원대한 꿈을 가졌지만 막상 마무리 단계에서는 많은 아쉬움이 남게 된다. 올해는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해가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여러가지 면에서 정신을 차려야 할 부분들이 많은 것 같다. 들뜬 분위기에 휩싸여 자신이 찾아가야 할 길마저 잃어버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송년(送年)이란 무엇인가 한번쯤 의미를 되새겨봐야 할 때다. 끝난다는 의미가 아닌 계속 이어진다는 의미로 한해의 좋은 것, 나쁜 것, 기타 모든 일들을 정리하고 반성하며 새해에는 좀 더 나은 방향을 향해서 나가야 하겠다. 이 사회가 모두 감사하는 마음으로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며 존경과 자애로서 이끌어가는 사회, 누구 하나 존귀하지 않는 이가 없는 이 세상에 모두 자기의 일에 충실한다면 이곳이 바로 대한민국 아니겠는가. 우리의 주위를 둘러보면 따뜻한 손길을 원하는 곳이 많이 있다. 특히 비인가 시설인 불우시설에서는 자력으로 운영해 나가기가 힘들다고 한다. 몇몇 시설을 방문하여 담소를 나누고 그 분들의 손을 잡아주고 그분들의 마음을 안아줄 때 그 사랑이 온 누리에 퍼질 것이다. 우리의 모체임을 깨달을 때만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정확히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과거가 없었더라면 현재가 있겠는가. 형편없는 과거사 일지라도 그것을 바탕으로 미래에 대한 설계를 하여야 바른 미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최중윤·인천서부경찰서 경무과장

대통령의 눈물

설흔 여덟살의 정리해고 대상을 일컫는 38선은 평생직장관을 무너뜨렸다. 젊어서 들어간 직장을 천직으로 알고 백발이 되도록 내집 일처럼 땀흘려 일하는 평생직장관은 사회의 미덕이었다. 이런 사회의 미덕이 직장의 장애가 되어 공직에서, 기업에서 정년을 맞기가 무척 어렵게 된 이변속에서 살고있다. IMF사태때 오륙도에서 시작된 정리해고가 사오정으로 가더니 이젠 38선 명퇴가 예사가 돼버렸다. 이른바 구조조정이란 이름으로 뿌려진 눈물이 이루 말할 수 없다.후세인은 체포 당시에 10만달러를 지녔고 해외에 저축한 돈이 400억달러에 이른다. 그 어떤 이유로든 30년 독재의 부정축재를 합리화할 수 는 없다. 그러고도 구차하게 살기를 바라는 후세인, 부시의 침략의도가 어디에 있든 후세인 같은 정치지도자는 말살돼야 하는 것은 틀림이 없다.노무현 대통령이 당선 1주년을 기념하는 노사모 모임에서 눈물을 글썽거렸다더니 엊그제 또 눈물을 글썽거렸다고 한다. 우체국 집배원 그리고 환경미화원 등을 청와대에 초청해 뭔가를 같이 하면서 말을 하다가 그러 했다는 것이다. 집배원, 미화원 등이 고생을 하는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눈물은 청와대에 초청한 이들의 고생을 생각 하기 보다는 말하다 보니 자신이 불우했던 어린시절의 감정이 복받쳐 나왔을 것으로 짐작된다.언젠가 집배원이나 미화원들이 일하는 현장에 가서 손목을 잡아 주겠다는 쇼맨십이 이들을 위하는 길은 아니다. 미화원 모집에 대졸 백수들이 왜 대거 응모하는가를 먼저 깊이 돌이켜야 한다.민중은 지금 죽을 맛이다. 대통령은 한가한 정치도박을 일삼는다. 대통령이 어떤 자리에서 눈물을 보였다고 하여 민중의 지지를 받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대통령의 눈물에 노빠들은 덩달아 감격할 지 모르지만 민중은 전혀 감격하지 않는다. 민중은 사이비 종교 같은 광신도가 아니기 때문인 것이다./임양은 주필

성탄메시지/“온누리에 아기예수님의 은총이...”

구세주의 성탄을 맞이하여 가정과 우리나라와 온 세상에 아기 예수님의 은총과 평화가 가득하시기를 빕니다. 2003년은 전 세계와 우리나라에 기쁨과 희망보다는 불안과 갈등, 전쟁과 죽음으로 인해 어둠과 우울함이 많은 한 해였습니다. 그러기에 어두움에 빛을 주시고 우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시며 죽음의 공포에서 구원해 주실 분을 갈구하게 하는 한 해였습니다.국제적으로는 이라크 전쟁과 그 후에 이어지는 테러 그리고 우리나라는 국운이 걸린 북핵문제와 6자회담에 대한 활동은 미진해 보이는 가운데 대통령 재신임 문제와 위도 핵 폐기장문제, 차떼기 불법 대선자금문제, 이라크 파병문제 등을 두고 집권정부나 정당들이 정치 불안을 야기시키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나라 경제를 위축시켜 서민들은 IMF 환란 때보다도 더 힘든 한 해를 보냈고 중소기업들이 줄을 이어 해외로 떠나고 있으며, 실업자, 노숙자, 이주노동자 등 소외 계층들이 더욱 고통스러운 해였습니다. 그 외에도 만성적인 교육문제, 격렬해진 노사갈등, 카드 빚 문제와 그에 따르는 범죄행위 등 우리사회는 비정상으로, 부정으로, 어두움으로, 죽음으로 가득합니다. 다른 한편, 많은 아파트로 인한 아파트 문화는 우리 가정이 핵가족화 되는 주 원인이고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다원주의의 온상입니다. 그 결과로 이혼율 증가와 출산율 저하, 개인주의 및 이기주의는 그 도를 넘어 국가사회를 위협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종교생활 역시 종교다원주의 흐름으로 인하여 인격적인 하느님과 계시종교의 가르침인 구원이나 영원한 삶보다도 현세에서의 즐기는 삶, 이 세상에서 누리려고 하는 삶으로서 well being을 찾는 사회로 변화되고 있습니다. 신앙인들도 열심한 신앙생활보다도 초월명상, 선, 기 수련, 헬스, 요가, 무공해식품 등의 생활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이웃과 공동체를 이루어 함께 살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며 교회와 사회에 기여하려는 삶의 자세가 점점 사라져가고, 성 도덕, 생명, 환경, 사회질서 등이 급속도로 망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모든 현상과 흐름은 도대체 왜 일어나는 것입니까. 이는 어느 특정인들이나 우리 사회 어느 분야의 탓만은 아닙니다. 이는 우리사회 전반의 문제요 우리나라 사람들의 마음과 삶에서 비롯한 문제입니다. 이런 난관의 근원은 물질위주의 문명추구와 현세적 행복추구, 방종한 개인주의 내지 이기주의입니다. 우리사회의 이런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이를 위해서는 우리사회의, 우리 각자 삶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물질위주의 문명을 추구하고 현세의 행복을 추구하던 삶을 버리고 하느님을 믿고 하늘나라의 영원한 삶을 지향하는 삶으로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리고 모두가 행복해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사회규범과 질서를 지키는 삶으로 바뀌고 학교교육보다 학원에 매달리고, 땀흘려 돈벌기보다 부동산투기로 돈 버는 비정상적인 삶의 길을 버리는 등 정도를 걷는 삶으로 삶의 틀이 바뀌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사리사욕 때문에 편가르고 대립하는 삶을 버리고 이웃과 공동체를 생각하며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봉사하고 희생하여 함께 잘 사는 삶의 틀로 갈 때 살 맛 나는 세상이 되고, 새로운 우리사회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이와 같은 전환을, 극복을 인간과 세계 안에 이룩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느님을 믿고 하늘나라에서의 영원한 삶을, 행복을 향해 살아가도록 하셨고 우리가 모두 하느님의 자녀로서 함께 서로 도와가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임을 가르쳐 주셨으며 당신 삶과 십자가상 죽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패러다임을 잘 보여주셨습니다. 세상의 구원자, 메시아로 오시는 예수님은 겸손하고 가난하게 외양간에서 갓난아기로 태어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오늘도 마음이 겸손하고 가난하며 자비를 베푸는 사람들 안에 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모든 욕심을 버리고 빈 마음으로 이웃의 기쁨과 슬픔, 아픔에 함께 하며 가진 것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사회의 난관은 극복되고 우리는 메시아를 뵈올 수 있을 것입니다./최덕기.천주교 수원교구장

천자춘추/시민없는 시민운동

사회가 발전하면서 사회의 각 세력간의 이해관계도 복잡해지게 마련이다. 민주적인 의사결정과정은 이러한 복잡한 사회의 다원화된 의사를 통합하고 조정해 나가는 과정을 의미하기도 한다. 국민의 의사결정에의 참여나 비판은 전통적으로는 대의제를 통하여 이루어져왔지만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좀 더 다양한 참여방식이 필요하다. 그러한 취지에서도 시민운동은 필요한 것으로 인식되어있고 실제로 우리사회의 각 분야에서 활발한 시민운동이 전개되고 있으며 많은 기여를 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시민운동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시민운동에 대한 가장 많은 비판중의 하나가 시민운동에 시민은 없다는 것일 것이다. 이 이야기는 시민운동이 전문적인 시민운동가나 소수의 엘리트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실제 일반 시민의 참여는 별로 없어 과연 시민운동 단체가 시민들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는 것인가하는 비판에서 출발하는 것이고 실제로 이러한 비판은 어느 정도 타당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의 절차에 대한 훈련이 아직 부족하고 그로 인하여 많은 소모적 논쟁에 휘말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며 의사수렴과정에서도 우격다짐식 억지가 통하는 경우가 많을뿐더러, 국민들은 이 땅의 정치인들이 국민과는 상관없이 자기네들이 만들어놓은 장에서 자기들만의 리그를 벌이고 있다고 느낄 때도 많다. 그러나 한편 생각하면 정치의 문제가 일차적으로 정치인들에게 있다고 하여도 역시 그런 정치인들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된데에는 국민의 책임 역시 크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정치의 수준은 결국 그 사회의 수준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니까. 연말이어서 많은 송년회를 갖게되는 요즈음 술자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안주감 중에서 정치 이야기 만큼 비중이 큰 것도 없다. 나는 그 분들에게 되도록 본인의 입장과 맞는 시민운동 단체등에 참여해주기를 권유하곤 한다. 대부분의 시민운동 단체는 열악한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보려고 노력하고 있고 그들 단체 역시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후원 그리고 비판없이는 그들만의 운동을 계속하며 시민없는 시민운동을 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방관자로서의 비난 보다 참여하는 비판은 좀 더 우리 사회를 성숙하게 만들 수 있으리라 믿는다. /최인수.수원지방법무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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