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들어온 외국인 산업연수생들이 속속 산업현장을 이탈하고 있어 중소기업체에 비상이 걸렸다. 정부가 외국인 고용허가제를 도입, 불법체류자들을 사실상 합법화시키겠다는 입장을 밝힌 후 외국인 근로자들이 보수가 적은 산업연수생 신분을 기피하기 때문이다. 최근까지 기협중앙회를 통해 국내에 들어온 산업연수생은 4만4천여명으로 이들 중 상당수가 생산현장을 이탈, 잠적한 것이다. 지난 1월 851명, 2월 770명이었던 이탈자 수가 3월에는 1천121명, 4월에는 1천680명으로 늘어 났다니 불법체류자 증가면에서도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니다. 건설업종의 경우 월 평균 10~30명에 그쳤던 이탈자 수가 올해는 80명으로 늘어 대한건설협회가 회원사들에게 ‘연수생 이탈 방지 및 예방책’을 담은 공문까지 발송했다고 한다. 하지만 산업연수생으로 들어온 외국인 근로자들이 “기협중앙회 등에서 정해준 기업체에서 적은 월급을 받고 일하는 것보다 불법체류자로 낙인이 찍히더라도 월급을 더 많이 주는 곳에서 일하는 것이 낫다”고 공공연히 말할 정도다. 이로 인해 염색·가구·도금 등 노동집약 중소기업, 특히 외국인 근로자들이 많은 경기도지역의 경우 기존 산업연수생마저 이탈하면서 생산에 막대한 차질이 생기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기존의 산업연수생 제도 폐지와 고용허가제 실시 계획을 밝혀만 놓고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아 인력난과 외국인 관리에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재정 국회의원이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허가 및 인권보호에 관한 법률안’을 이번 임시국회에 제출했지만 여야 국회의원들이 여전히 시각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어 통과여부가 불투명한 상태다. 더구나 여야 모두 신당 창당과 당권을 둘러싼 여러가지 현안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정작 입법에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문제는 고용허가제 입법이 이번 국회에서도 무산되면 오는 8월말까지 출국기한이 유예된 불법체류자 20만여명에 대한 일제단속 및 강제 출국 조치가 불가피한 점이다. 그렇게 된다면 산업 인력 공백에 따른 중소기업의 인력난과 외국인 관리에 혼란이 가중될 게 심히 우려된다.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허가 등에 관한 법률안 통과가 무엇보다 시급하다.
널리 알려진 문학작품 특히 소설과 시는 실제로 그 작품에 지역과 자연이 무대와 배경이 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박경리 작 대하소설 ‘토지’는 경상남도 하동군 평사리가 배경이고, 이효석 작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은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이다. 경기도 지역만 해도 명작의 고향이 시·군 도처에 있다. 홍성원의 대하소설 ‘먼동’은 수원과 남양을 공간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이다. 수원의 광교산, 팔달문, 장안문,종로네거리 등 수원 풍경이 실제로 등장한다. 시인이며 소설가인 박석수의 시집 ‘술래의 노래’와 장편소설 ‘철조망속의 휘파람’등의 배경은 평택의 송탄(쑥고개)이며, 김명인의 시집 ‘동두천’의 무대는 바로 동두천시 전역이다. 안산시 사동 샘골 마을(본오동)은 심훈의 장편소설 ‘상록수’의 무대로 유명하다. 명작으로 일컬어지는 문학작품의 배경이 되는 지역은 문학사적 의미 뿐 아니라 지역민들에게도 긍지와 정서를 심어준다. 최근 황순원의 단편소설 ‘소나기’의 배경이 양평이라는 주장이 나온 것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반갑다. ‘소나기’는 시골 소년과 도회지에서 이사를 온 소녀의 잔잔한 첫사랑을 그린 소설로 시골의 풍경이 아름답게 묘사된 작품이다. 고(故) 황순원씨가 생전에 교수로 재직했던 경희대 국문과 출신 문인들과 제자들은 “‘소나기’가 씌어진 1952년 당시 양평의 개천과 산 등이 소설에 묘사된 풍경과 흡사하다”며 근거로 작품 후반부에 실린 ‘어른들의 말이, 내일 소녀네가 양평읍으로 이사간다는 것이었다’라는 대목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한국의 문호 황순원씨의 문학을 기리기 위해 ‘소나기’의 배경인 양평에 ‘소나기 마을’을 조성, 다양한 문학행사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한다. 작고한 예술인들의 생가를 복원하거나 상징 표석을 세우는 일 등은 만인을 위한 문예운동이며 귀중한 정신적 자산이다. 예부터 산자수명한 양평에 ‘소나기 마을’이 조성되면 문학발전에 기여함은 물론 또 하나의 관광자원으로도 각광 받을 것이다. 양평군 당국의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하고자 한다.
지난 일요일의 두 스포츠 소식 중 하나는 감동적이었고 하나는 실망스런 것이었다. 미국 전역의 메이저리그 팬들 가슴을 뜨겁게 달군 시카고 컵스의 최희섭 감동투혼, 타자의 뜬 볼을 잡은 공은 의식을 잃고도 글러브에 꼭 쥐어 있었고 의식을 잃기 직전엔 맞부딪힌 동료는 괜찮은지 물었다는 그의 투혼은 진주빛보다 영롱한 감격 스토리다. 이런 인간승리의 감투정신에 힘입어 짜릿한 역전의 승전보를 최희섭이 입원한 병원을 찾아가 전했다는 팀 선수들 얘기 역시 드라마틱하다. 이에 비해 서울월드컵구장서 우루과이와 가진 한국 대표팀의 축구 친선경기는 정말 졸전이었다. 마치 미련스럽도록 씩씩거리기만 하는 멧돼지가 약삭 빠른 여우에게 이리저리 당한 형상을 방불케한 것이 0-2 완패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공격력이 우세하고 슈팅 수만 압도적으로 많으면 무슨 소용이 있나. 찬스 뒤엔 위기가 따르는 것이 구기종목의 게임 이치다. 득점을 해야할 기회에 골문도 아닌 엉뚱한데 차곤 한 것은 골 결정력 미숙의 고질병이 도졌다기 보다는 정신상태의 이완을 드러내는 것이다. 게임도 경제적으로 해야한다. 내력없이 체력만 소모시키는 비경제적 게임은 조직력이 없는데 기인한다. 또 대표팀엔 게임 리더가 없어 보인다. 뛰는 게 모두가 제멋대로다. 축구 대표팀의 이런 위기는 불화에 있는 것으로 진단된다. 이번만이 아니다. 안정환의 결승골로 간신히 이긴 일본과의 경기에서도 많은 선수들이 저마다 스타플레이어 의식에만 젖어 대표팀 특유의 세트 플레이가 연출되는 것을 볼 수가 없었다. 직업정신이 해이해진 탓이다. 축구 대표팀의 당면 과제는 무엇보다 인화가 시급하다. 프로의식을 구심점 삼아 마음을 모아야 한다. 최희섭이 그랬다. 땅에 쓰러진 채 정신을 잃은 그가 들 것에 실려 앰뷸런스로 옮겨질 때 시카코 컵스 홈 구장의 3만9천여 관중들은 일제히 기립박수를 치고, 그 중엔 눈물을 글썽이는 관중도 TV화면에서 볼 수 있었다. 최희섭의 투철한 직업정신이 그들을 그토록 뜨겁게 감동시킨 것이다./임양은 주필
햇수로 벌써 20년도 훨씬 지난 시절의 얘기다. 청량리역에서 기차에 몸을 싣고 중앙선을 달리다 보면 양평까지 오른켠엔 늘 강이 따라 왔었다. 지금이야 아파트단지들이 들어 서 흔적을 찾아 볼 순 없지만 30년 전만 해도 연탄공장들은 왜 그리 많았는지. 청량리를 지나 현재의 남양주시로 들어서기 전까지, 아니 더 정확하게 기억하자면 청량리부터 사이좋게 펼쳐지던 레일이 춘천으로 가는 길목에서 한줄은 중앙선으로, 또 한줄은 경춘선으로 갈라 지기 전까지는 후줄근하고 꾀죄죄한 도회지 건물들 사이로 연탄공장들이 즐비하게 늘어 서 있었다. 차창으로는 주근깨같던 석탄가루들이 덕지덕지 달라 붙었다 떨어졌었고 수십분을 그렇게 시달리다 견디지 못하고 결국 눈을 감고 억지로라도 잠을 청하곤 했었다. 잠깐 잠이 들었지만 꿈도 총천연색이 아닌 시꺼멓던 기억…. 그러다 화들짝 놀라 잠이 깨는 지점이 있었다. 강, 그리고 양평.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쳐 진다는 ‘양수리(兩水里)’. 오염되지 않고 때 묻지 않은 순결함이 풍겨주는 특유한 체취때문이었을까. 산보다는 유유히 흐르는 강이 더 정겹기도 했지만 강변을 따라 가쁜 숨을 내뱉으며 달려 오는 바람이 꽤 삽상했었다. 강. 중앙선은 한마디로 ‘강’그 자체였고, 양평은 그 한복판에 있었다. 지금도 서울에서 불과 1시간 남짓 떨어진 곳에 이처럼 맑고 깨끗한 청정구역이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뜨거워진다. 황순원씨의 단편소설 ‘소나기’의 무대가 양평이란 주장이 제기돼 화제다. 사춘기에 접어든, 그래서 이성에 대한 그리움에 막 눈이 뜨는 소년과 소녀와의 풋사랑을 그렸던, 그래서 아득한 시절 첫사랑의 초상화로 기억되고 있는 ‘소나기’를 읽어 보지 않은 젊은이들은 없을듯 싶다. 바로 이 작품의 배경이 양평이란 얘기다. 이같은 주장은 작품의 후반부 귀절을 토대로 하고 있다. ‘갈밭머리에서 바라 보는 서당골마을은 쪽빛 하늘 아래 한결 가까워 보였다. 어른들의 말이 내일 소녀네가 양평읍으로 이사간다는 것이었었다. 거기 가서 조그마한 가겟방을 보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양평읍 원덕리가 바로 소녀네가 살던 곳이었고, 양평읍 소재지로 이사간다는 게 자연스럽게 추측될 수 있다. 문인들은 작품중 윤초시 문중이 있던 곳으로 서종면 노문리를 거론하고 있다. 실제로 이곳에는 갈밭마을과 서당골마을이 실존했었고 소설 속에서도 이 명칭들이 등장했었다. 소설이 묘사하고 있는 풍경도 양평과 몹시 흡사하다. 황순원씨 후배들은 이같은 사실이 학문적으로 입증되지 않더라도 양평에 ‘소나기 마을’을 조성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늦은 감이 있지만 꽤 반가운 소식이다. 다른 지자체들은 벌써 몇해 전부터 이같은 이벤트를 시작하고 있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의 고장, 평창군 봉화와 김유정의 ‘동백꽃’의 배경인 춘천 등을 비롯, 최근 들어선 조정래 장편소설 ‘태백산맥’의 전남 벌교 등이 문학적인 토양과 배경 등을 바탕으로 테마마을과 박물관 등을 속속 건립중이고 작품 속의 지명과 하다 못해 작가가 잠깐 머물렀던 공간까지도 볼거리로 조성하고 있다. 이젠 문화콘덴츠로 승부를 걸 때이다.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의 성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21세기는 누가 뭐라고 해도 문화콘덴츠시대다. /허행윤.제2사회부장/heohy@kgib.co.kr
학동 흰 파도 / 검은 조약돌에 부서질 때마다 / 사락사락 입맞춤하는 소리 / 진저리쳐지도록 싱그러운 / 망산의 초록빛 뜨거운 혀를 / 해금강물 깊숙이 들이밀다가 / 홍포 절벽 앞에 / 봉곳봉곳 떠 있는 / 젖무덤에 머리를 쳐 박고 / 울어버리다. 시 한 수 끄적거리며 거제도 해안가를 거닐고 있을 때, 젊은 연인이 흰 파도 앞에 앉아 깊게 포옹을 나누고 있었다. 흘끔흘끔 쳐다보는 내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제는 여자가 뒤로 가서 남자의 등에 가슴과 얼굴을 묻고 한참동안 끌어안고 있었다. 참 편안해 보였다. 어느새 뜨거운 불덩이 하나 내 속에 들어와 온몸이 떨려 왔다.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의 그림 ‘키스’는 장식적인 화려한 색채감과 남녀의 에로틱한 모습을 통해 신비하고 오묘한 관능적 충동을 일으키게 한다. 커피 색 하늘에 금빛 보석이 뿌려졌고 풀밭에는 온갖 꽃이 만발한데, 한 쌍의 연인이 포옹한 채 입술을 맞대기 직전의 감미로운 순간이다. 여자의 움츠린 어깨와 얼굴을 두 손으로 다소곳하게 감싼 그림 속의 남자 옆모습은 여자들이 원하는 전형적인 남성상이다. 눈은 살풋 감고 남자에게 입술을 찍히려 교태를 부리듯 넓은 망토 안에 몸을 반쯤 숨긴 여자야말로 여성의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는 요염한 자태다. 매달리듯 팔을 남자 어깨 뒤로 돌리고 무릎을 꿇은 여자의 맨발이 풀밭 끝 벼랑에 떨어질 듯 닿아있다. 남자에게 매달리지 않거나 남자가 포옹을 풀어버리면 벼랑 아래로 떨어질 듯 위태로워 보인다. 숨막히는 사랑의 절정이다! 이 그림은 금빛을 주조로 각양각색의 색채를 맞추어 만든 조각보를 보듯 화려한 색채감이 보는 이들을 우선 압도한다. 남자의 망토 중 왼쪽은 주로 직사각형의 문양 속에 물결무늬를 섞었고, 몸에 꼭 끼는 여자 옷은 겹을 이룬 동그라미와 별을 그려 넣었다. 이러한 무늬와 색채감이 풀밭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그 조화로움과 화려함을 더해준다. ‘키스’에서 클림트는 겹겹의 옷 속에 은밀하게 감추어져 있던 여성의 관능을 대담하게 밖으로 끌어내어 남성의 지배 아래 놓였던 여성의 평등과 화해를 시도했다. 즉 그는 여성을 통해 시대정신을 표출하면서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새로운 시대에 주체로 여성성을 부각시켰던 탁월한 화가였다. 이 그림을 보면서 첫 키스의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려 보라. 몸과 몸이 닿는 사랑의 황홀한 떨림, 부드러운 격려와 편안함이 느껴지지 않는가. 몸이 말하는 대로 사는 것만큼 정직한 게 또 있을까. 오늘 사랑하는 이에게 가장 섹시하게 이렇게 고백해 보라. “키스해 주세요!” /장병용.수원 등불교회 목사
최근 ‘무차별 음주운전 단속’에서 ‘선별 음주운전 단속’으로의 전환에 대해 국민들이나 일선 경찰관들이나 반기는 입장이지만 일부 시민들과 경찰관들의 마찰이 심심치않게 일고 있다. 일선 경찰관들이 최근 음주운전 단속 현장에서 제일 난감해하는 부분이 운전자들로부터 “TV에서 그러는데 음주단속 안한다는데, 이제 하는 거예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라고 한다. 이면도로지만 뒤에 줄지어 대기한 다른 차량들을 고려할 때 그런 질문에 일일이 대답해 주어야 하는 운전자들이 한 두명이 아니기 때문이다. ‘선별 음주운전 단속’은 시행 초기단계라 좀더 그 효율성과 효과에 대해 시간을 두고 결과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최선의 대안이고 현 시대에 적절한 민주주의형 음주운전 단속 방법이다. 선별 음주운전 단속의 대상으로는 운행중 이유없이 도로상에 정지하는 차량, 앞차의 뒤를 너무 가까이 또는 너무 멀리 따라 가는 차량, 과도하게 넓은 반경으로 회전하는 차량, 차로에 걸쳐 운전하는 차량, 지그재그로 운전하는 차량, 교통신호나 도로표지에 올바르게 반응하지 못하는 차량, 크게 음악을 틀거나 요란하게 떠드는 차량 등 30여개 사항들의 사례에 따라 선별하여 단속하는 방법이다. 경찰은 변화하는 시대에 걸맞는 선택을 한 것이다. 차량이 많은 대로를 차단하고 하는 무차별 단속이 아닌 유흥가 주변, 이면도로, 심야 시간만이 아닌 대낮 수시 단속 등 시민들의 불편은 최소화 하면서 단속은 강화하는 것으로 과거에 비해 훨씬 더 노력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시민들도 단속의 제외대상에 만족하는데 그칠 것이 아니라 올바른 정책에 적극 협조해 주길 당부드린다./안승태·부천남부경찰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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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한·일정상회담의 ‘외화내빈’ 논평에 이어 오늘 다시 일본 사람들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들 스스로가 각오를 다지기 위해서다. 노무현 대통령을 국빈 초청한 일본 정부와 일본 사회는 국빈 예우에 걸맞는 3박4일의 일정에 소홀함이 없었다. 비록 두 나라 정상회담에 가시적 내실은 없었으나 우리의 국가 원수에 대한 배려만은 극진하였다. 일본이 지고무쌍하게 여기는 그들 왕과의 면담도 그렇고, TBC-TV를 통한 일본 국민과의 대화 편성도 그렇고, 일본 국회에서의 연설도 역시 그같은 예우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생각을 갖는다. 이미 거론한 유사법제 등은 중복을 피해 여기선 제외하더라도 고이즈미 일본 총리는 우리의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지 세시간도 안되어 자위대 이라크 파견법 제정을 지시하였다. 집권당인 자민당 총무회에서는 창씨 개명을 조선인이 원했다는 아소 간사장 발언을 두둔하는 말들이 또 나오기도 했다. 상대국 국빈을 초청하여 자기 나라에 체류하고 있는 상황에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언행이 노 대통령이 일본에 머물고 있는 시각에 자행됐다. 격식을 파탈하여 이해하는 것도 역시 격식이 있어야 하며 격식은 속내를 표현하는 그릇인 점에서 단순히 외형상으로만 간주할 수 없는데 문제가 있다. 실속없는 겉치레엔 머리를 끝없이 조아리면서도 실속있는 일에는 고개를 바짝 들며 눈 하나 가딱않고 처리하는 것이 일본 사람들의 이중성이다. 그러나 그런 이중성을 우리가 탓할 건 없다. 그렇게 해옴으로써 오늘의 부강을 일군 말하자면 저들의 살아가는 방법이 원래 그렇기 때문이다. 다만 한가지 마음에 캥기는 것은 일본 국민과의 TV 대담에서 대통령이 우리의 국민성을 절하시켰다는 사실이다. ‘내편 네편으로 편을 갈라 남북으로도 모자라 동서로까지 갈라져 국민간의 토론문화가 아쉽다’는 말을 자국 이익에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일본에 가서 굳이할 필요가 무엇이냐는 강한 의문을 갖는다. 때 맞춰 국내 정치권에서 유사법제의 폐기를 촉구하는 강력한 반발이 있지만 문제는 우리의 국력이다. 일본 사람들이 진실로 이중성으로 대할 수 없는 진지함을 우리에게 갖게하기 위해서는 일본에 대한 말 성토보단 우리의 국력이 그만큼 더 강력해져야 한다. 대통령의 이번 방일을 계기로 국력 배양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갖는다.
한나라당이 내일부터 대표 경선에 돌입한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6명의 후보가 당 대표로 등록하여 13일 동안 공식적인 선거운동을 하게 된다. 이번 당 대표 선거는 지난 해 12월 제16대 대선에서 패배한 한나라당이 그 동안 과도체제로 운영하여 오던 당체제를 새로 정비하여 본격적인 야당의 모습을 갖추기 위한 첫번째 시도이기 때문에 정치권의 관심은 대단하다. 현재 한나라당은 원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원내 제1당이다. 비록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하기는 하였지만 원내 제1당으로서 국회를 사실상 책임지고 있다. 한나라당이 국회를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의회운영 행태는 변하게 된다. 따라서 당의 지도부가 어떻게 바뀌느냐는 것은 한나라당 자체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정치권에 대한 변화를 예측할 수 있어 이번 대표 경선은 한나라당 자체의 행사만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타난 한나라당의 변화 모습은 국민들에게 호의적이 아니다. 여당인 민주당이 신당 문제로 갈팡질팡하고 있는 상황에서 야당인 한나라당이 국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는 대안세력으로 등장하여야 됨에도 불구하고 구태의연한 모습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어 실망하고 있다. 대선패배를 변화의 기회로 삼아야 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원내 다수의석에 안주하는 모습만 나타내고 있어 안타깝다. 특히 최근 대표 경선에 참여하고 있는 후보자들간의 상호비방, 흑색선전과 과도한 선거비용 사용문제 등은 아직도 한나라당이 국민의 변화욕구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는 증거이다. 물론 당 대표를 23만명의 대규모 선거인단의 직접 투표를 통하여 선출하게 되므로 다소의 잡음은 예상되지만 이미 상당한 수준의 혼탁한 경선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어 비판을 받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번 당 대표 선출과정을 변화의 전기로 삼아야 한다. 대표 경선 과정이 절차상의 변화일뿐만 아니라 내용상의 변화까지 수반되어야 한다. 당 선관위도 엄정한 선거관리를 통하여 깨끗한 당 대표 경선을 실시함으로써 변화된 한나라당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며 당원 역시 마찬가지이다. 야당인 한나라당이 집권 여당을 견제하는 건강한 대안세력으로 자리매김할 때 국민들은 야당에 지원을 보낸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특별보좌’를 줄인 말이 특보다. 문제는 특보가 ‘특별보좌관’이냐 ‘특별보자역’이냐에 있다. 특별이란 말이 붙었든 안붙었든 간에 ‘보좌관’에 벼슬관(官) 자가 들어가는 것은 국가기관이나 자치단체 같은 공공단체에 한한다. 가령 주택공사 같은 국영 기업에서도 벼슬관 자는 해당이 되지 않은다. 이런 데서는 보좌역으로 부릴역(役) 자가 들어간다. 일반 사회단체는 더 말할 게 없다. 민간 기구에서 보좌관이니 특별보좌관이니 하는 것은 잘 못이다. 보좌역 또는 특별보좌역이라고 해야 맞다. 정당도 마찬가지다. 정당은 국가 기관이 아니다. 다만 국가가 인정하는 정치인의 집단조직으로 예컨대 정당 문서는 공문서가 아닌 사문서다. 대통령 선거 등 큰 선거 때면 정당마다 넘쳐 나는 것이 ‘특보’다. 흥미로은 것은 그냥 ‘특보’라고만 하지 ‘특별보좌역’이라고는 않는 점이다. 부릴역 자를 붙이자니 어쩐지 격이 뭣하고 그렇다고 벼슬관 자를 붙이자니 당치않고 하여 약칭을 겸해 통상 ‘특보’라고만 지칭하는 게 정당마다의 관행이다. 또 흥미로운 건 이같은 정당의 선거용 ‘특보’가 명함용 직함이라는 사실이다. 선거 캠프에 끌어들일만한 사람이지만 마땅한 직책이 없으면 으레 특보로 위촉하곤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특보들은 저마다의 능력에 따라 자유활동을 하면서 행세하기 마련이다. 한동안 청와대가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고생한 사람들 중 상당한 수를 ‘특보’로 임명할 것이라고 해서 논란이 있었다. 아무리 명함용 무보직·무보수 ‘특보’로 한다지만 대통령이 임명하면 당당한 ‘특별보좌관’이 되는 특보다. 이러므로 무보직·무보수 특보를 두는 것에 공권 조직의 문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었던 건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청와대는 장고 끝에 무보수 특보 임용을 유보한 것 같다. 사실상 철회한 것 같기도 하다. 청와대가 ‘특보’ 임용을 안한 것은 백번 잘 한 일이다. /임양은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