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위에 또 ‘정부’ 있나?

재경부의 법인세 인하 추진에 제동을 걸고 나서는 청와대 처사가 의문이다. 김진표 경제부총리가 수차 밝힌 연내 법인세 인하를 위한 법 개정 추진을 청와대에서 막고 나선다면 국민은 도대체 어떻게 정부 말을 믿으란 것인지 황당하다. 국민은 정부가 정책 집행의 최고기관으로 안다. 그래서 정부 부처가 하는 말은 그대로 실현되는 것으로 믿고 있다. 이것이 정상적 정부 시스템이다. 이런데도 청와대가 걸고 나서면은 정부위에 또 정부가 있는 것인지 실로 괴이하다. 대저 그같은 청와대측 의사의 실체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우리가 알기로는 정부 부처 장관의 말을 가로 막을 사람은 청와대에서 대통령 밖에 없다. 만약 경제관련 비서진에서 나온 것이라면 그같은 말을 경제부총리를 제쳐두고 대외에 밝힐 의사결정 능력이 있을 수 없다고 보는 것이 정상적 국정운영의 시스템이다. 비서진은 수석비서관이라 하여도 대통령에게만 책임을 지고 보필하는 것이지 정부 정책에 직접 간여할 수 있는 지위는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의 청와대측 인사는 법인세 인하 반대는 노무현 대통령의 공약사항이므로 안된다고 했으나 정책 집행 과정에서 상충 요인이 생기면 신축성을 갖는 것이 또한 공약사항이다. 김진표 경제부총리가 대통령 공약사항과 다른 것임을 모르고 추진했을리 만무하며 법인세 인하 추진은 처음 나온 얘기도 아니다. 또 하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장 얼어붙은 경기가 되살아 나는것도 아니어서 기업 투자심리를 살리는데 단기적 실익이 없다는 이유다. 이런 생각을 하는 청와대측은 항상 그처럼 상황논리에 급급한 땜질 단기대책에 치중한 나머지 경제가 더 어려워진 사실을 알아야 한다. 각종 규제조치의 점진적 철폐로 기업 투자를 활성화 하겠다고 하지만 이 역시 원론적 수준의 수사로만 되풀이 되고 있어 국민이 보기에 새삼 신뢰하기가 어렵다. 어떻든 정부 부처 방침을 청와대측이 일일이 간여하는 것은 국정의 신뢰성과 효율성을 위해 긍정적으로 볼 수 없다. 노 대통령은 일찍이 부처 장관의 업무집행을 책임평가제로 평가하겠다고 밝힌 바가 있다. 대통령의 이러한 국정운영 스타일을 저해하지 않는 청와대가 되기를 바란다. 국정운영의 책임은 정부가 지는 것이지 청와대 비서실이 지는 것은 아니다.

건망증

건망증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 건망증은 단기기억장애 혹은 일시적인 뇌의 검색능력 장애다. 뇌세포의 손상으로 인한 치매와는 별개다. 사람의 기억능력이 최고조에 달하는 때는 대략 10대말~20대 초반이다. 이후 뇌기능이 전반적으로 쇠퇴하기 시작하고 대략 25세를 전후로 하여 하루에 수백개의 뇌세포가 죽어가면서 본격적으로 기억력 저하가 일어난다고 한다. 그러니까 노인성 건망증은 자연스러운 현상인 셈이다. 그렇다고 건망증은 꼭 노인에게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멀쩡한 젊은 사람에게도 나타난다. 특히 하루 하루 바쁘게 쫓기며 사는 현대인들에게 건망증은 피하기 어려운 증세다. 일시적 기억장애의 원인은 복합한 환경에서 스트레스와 긴장감으로 뇌가 복잡할 때, 집착이 지속될 때, 격심한 몸의 피로, 수면부족, 과다한 음주 흡연 커피 복용 등으로 생긴다. 그중에서 주된 원인은 역시 스트레스다. 주부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건망증의 경우도 단순 반복되는 가정일로 집중력이 떨어지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가족중 혼자만 낙오돼 있다는 위기감 등의 스트레스가 주된 원인이다. 공부에 시달리는 청소년들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스트레스가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꼴이다. 건망증 가운데 머리 위에 올려 쓴 안경을 두리번거리며 찾는다거나 양복 안팎의 주머니를 열심히 찾는 게 손에 쥔 열쇠라면 보통 건망증이 아니다. 건망증 중증 가운데 수술칼을 뱃속에 넣어둔 채 봉합하는 등의 의료사고는 아연실색할 노릇이다. 노나라의 애공(哀公)이 공자(孔子)에게 “얼마나 건망증이 심한 지 이사가면서 자기 아내를 두고 간 사람이 있다대요”라고 하자 공자는 정색을 하며 말했다. “그보다 더 심한 사람이 있습니다. 하(夏)나라의 걸왕(桀王)이나 은(殷)나라의 주왕(紂王)은 자기 자신을 깜박 잊어 버리는 바람에 나라를 망친 것이지요” 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인들의 건망증은 특히 심하다. 국민과의 약속을 밥 먹듯이 파기한다. 정치인의 건망증은 공자의 말대로 자기자신을 잊어버리는 중증이다. 우리나라에 중증 건망증에 걸린 정치인이 많은 것은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이다. / 임병호 논설위원

광교산의 아침/외교와 국익

미국 유학 당시 알고 지내던 유학생과 교민들이 지난 달 노무현 대통령 방미 기간중 논란이 일었던 ‘저자세 외교’에 대해 기자에게 보냈던 이메일의 요지는 대략 이러했다. “우리라고 왜 미국에 서러운게 없겠습니까. 하지만 자주를 강조하기엔 아직 한국의 힘과 건강함을 더 길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이 노무현 정부의 외교력 미숙과 총선을 앞둔 여야의 속내를 파악못하고서 이런 순진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한 가지 사안에 대해 거리를 둠으로써 객관적인 상황 파악이 용이하다는건 상식에 속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방일기간중 유사법제 등을 통과시킨 일본정부와 정치권측에 강한 메시지를 던지지 못한 자세를 놓고 정치권이 어지럽다. ‘한일양국간 미래지향적 관계정립’이라는 긍정적 반응과 방미에 이은 ‘제2의 저자세 외교’라는 엇갈린 반응이 나오는 등 방미외교 당시와 유사한 분위기가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노 대통령의 방일기간 중 통과된 일본 유사법제를 둘러싼 논란이나 과거사 문제를 우회한 노 대통령의 구체적 방일성과에 대해 총체적 외교미숙이란 평가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부분이다. 게다가 피해의 역사를 가진 우리가 먼저 매듭을 풀기위해 성의와 노력을 보였음에도 일본이 노 대통령의 방일기간 내내 보인 태도는 실망스럽다 못해 참담하단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노 정부 출범 이후 처음 선보인 실용주의 외교노선이 굴욕외교라고만 단정을 내리기엔 ‘냉엄한 계산’이 결여된 듯해 아쉽다는 생각이다. 국제사회에서 외교는 힘이 앞서는 나라가 우선권(Priority)을 쥐는 것이 자명한 이치이다. 한꺼풀 벗기면 약소국이 외교를 통해 내밀 수 있는 카드가 그리 많지 않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노 대통령과 미 부시 대통령의 20분간의 정상회담이 ‘외교적 산물’임에 안주할 때, 부시 대통령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총리를 휴가지인 텍사스주 크로포드 목장으로 초대해 양국의 우의를 세계 만방에 과시했다. 텍사스주는 어떤 곳인가. 알래스카를 제외한 본토에서 가장 큰 주임을 새삼 강조할 필요없이 12시간을 자동차로 달려도 주간 경계선을 벗어나지 못하는 광활한 평원을 드러낸다. 게다가 불모지라면 모르겠으나 한국이나 일본에선 평생 볼 수도 없던 사마귀 형상을 한 석유시추기가 200~300m 간격으로 늘어서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게된다. 뉴욕증권시장은 어떤가. 세계 주식시장 시가 총액 25조 달러의 40% 내외인 10조 달러가 이 곳에서 거래된다. 일본은 2조 달러, 한국은 2천5백억 달러 정도다. 크로포드 목장에서 대평원을 바라보는 고이즈미 총리의 머릿속에는 혹시 과거 하와이 진주만을 공습했던 일본의 무모함이 오버랩되진 않았을까. 자본의 힘으로 이미 핏줄을 이룬 일본이 이번엔 하드웨어인 군사력을 통한 근육 만들기로 몸부림치는 시점이다. 노 대통령이 유사법제 통과로 주변국들이 우려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했건만 일본은 이미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My Way(군사대국화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국가의 원수가 숙련도는 부족할 지언정 외교활동으로 동분서주하고 있는 이 때, 국내에서 ‘등신 외교’라며 망발을 쏟아내는 정치권을 바라보며 일본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정작 국회는 11일 대정부질문에서 의사정족수(55명·재적의원 5분의 1)조차 채우지 못해 유례없이 50분이나 지연되는 ‘지각 국회’ ‘망신 국회’를 자초하고 있다. 미국에서 행정학과나 정치학과가 전공인 대학원생들에게 고전처럼 통하는 제렐 로자티 교수의 ‘미국 외교정책의 정치학’의 서문을 펼치면 다음과 같은 진부한 문장이 나온다. ‘국가는 국익을 위해 존재한다’ 이미 우리 국민은 꼭 1년전 월드컵에서 국익을 위한 초당파적 역동성을 확인한 바 있다. 다음은 정치권이 할 일이다. /송기철.정치부장(국회출입)

천자춘추/자연의 생명력이 바로 '희망'

자연속에는 많은 생명체가 살고있다. 자연은 인간에게도 삶의 터전이며 자연의 한 귀퉁이를 짧은 시간 빌려 쓰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연의 소중함을 망각하고 살고있으며 오히려 무분별한 자연 개발이 삶의 터전을 파괴하고 생태환경까지 바꿔 놓는다. 시화호가 그 좋은 교훈을 주고있다. 87년 시화호 물막이 공사를 착공한 후, 94년 물막이 공사가 끝난 뒤 옛 갯벌은 말라서 금이 가기 시작했고, 이미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는 바닷물이 소금으로 변해 쌓이기 시작하자 염분이 바람에 날려 농작물이 말라 죽어가는 피해가 발생했다. 이렇게 자연은 우리에게 불행만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 희망에 찬 생태변화를 끊임없이 시도해가며 한쪽은 염생식물 군락지로, 또 한쪽은 육상식물이 자리를 잡은지 8년이 지났다. 이러한 자연변화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 진 것이 아니다. 자연의 끈질긴 생명력으로 시화호에 소중한 생명체가 자리를 잡았고 시화호 갈대숲 속에 생명체가 자라기 시작했다. 지금 시화호의 주인이 멧돼지, 산토끼, 고라니, 너구리 등 많은 숫자가 살고 있는 생태공원으로 변모하고 있다. 시화호 주변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동·식물들은 어떻게 변화 될까. 또 시화호에 동물들만이 살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아주 희귀한 나무가 약350여그루 군락을 이루고 있다. 나무의 이름은 자세히 모르지만 중국에서 유입된 것으로 보이는 ‘유성유’ 나무가 확실하다. 과연 이 나무는 중국에서 어떻게 시화호까지 날아 왔는지, 철새들의 먹이 배설물로 인해 군락을 이뤘는지는 의문스럽지만 시화호가 또 다시 신도시 개발이나 다른용도의 개발이 이뤄진다면 많은 동·식물들은 어떻게 될까 걱정이 앞선다. 우리 인간의 편리함 때문에 자연과 함께 공생할 수 없는 개발이 이뤄진다면 자연은 큰 재앙을 불러올지 모른다. 참으로 아름다운 자연의 공간이 사라지는 순간, 우리는 더이상 아름다운 자연을 볼 수 없을 것이다. 부득이 개발을 해야한다면 생태계를 최대한 보존해야한다. 향후 아무런 대책없이 자연과 인간이 서로 공존할 수 없는 개발이 이뤄진 다면 시화호 간석지의 동·식물들은 삶의 터전을 또 다시 잃게 될것이다. /최종인.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독자투고/전기요금 '인터넷 납부' 편리

인터넷의 급속한 성장으로 인한 정보화시대에 맞춰 한전에서 시행중인 전기요금 인터넷빌링 납부제도가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현재 인터넷상의 이메일로 청구서를 받고 있는 인구수가 100만을 넘었다. 인터넷빌링이란 청구서 발행, 송달, 은행납부 등 인력에 의해 수작업으로 이뤄지던 일련의 과정을 인터넷을 활용하여 요금청구서는 인터넷 이메일로 받고 요금납부는 자동이체, 계좌이체, 신용카드 등을 통해 전자로 거래하는 청구 및 납부시스템이다. 자동이체 고객이 인터넷빌링에 가입하면 매월 전기요금에서 자동이체 1% 할인과 동시에 200원을 추가로 할인 받는다. 또한 전기요금 할인 외에도 과거 요금납부사항과 사용량 등을 24시간 인터넷을 통하여 조회가 가능하여 영수증을 따로 보관할 필요가 없다. 부가세 신고기간이 되면 과거 전기요금 영수증을 분실하여 재발급을 받는 사례가 많은데 인터넷빌링을 이용하면 이러한 불편이 없다. 인터넷빌링 가입을 원하는 사람은 한전 사이버지점(www,kepco.co.kr)이나 한국인터넷빌링(www.hanbill.com), 빌코리아(www.billkorea.co.kr) 등 한전과 계약된 빌링대행사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하여 회원 가입을 하고 신청하면 된다. /김기수·한전 경기북부지사 요금과장

6월 13일 경기만평, 당구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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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중생 추모행사는 평화적으로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여중생 신효순·심미선양의 1주기를 맞는다. 그동안 두 여중생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국민적 심정이 전국적인 촛불 시위로 이어진 것은 그 진행과정에서 혼란이 없지 않았으나 대체적으로 보아 순수한 마음의 발로였다. 오늘 또 서울과 전국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린다. ‘미군장갑차 여중생 고 신효순·심미선양 살인사건 범국민 대책위원회’(범대위)는 촛불시위와 토론회 등 추모행사가 평화적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으나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이 오늘을 기점으로 반미투쟁에 나선다는 방침을 정한 데다 어떤 돌발 상황이 벌어질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신효순·심미선양의 사고는 분명히 우리가 처한 비극이며 그래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했다. 하지만 1주기를 맞아 두 여중생의 부모가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심경은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첨에는 순수한 촛불시위였어요. 국민들이 순수한 마음으로 하는 줄 알았는데 한두번 참가하고서 그게 아니었어요. 점점 반미로 가는 것 같아. 우리가 원하는 게 아니었어요. 그 사람들이 애를 그렇게 죽였지만 그런 정도의 적개심은 없었죠.” “솔직히 우리 부모들 마음은 집회를 그만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사회단체에 계시는 분들이 하는 추모집회가 꼭 추모 목적은 아니잖아요. 소파(SOFA) 개정이나 그런 행사니까 우리가 해야 된다 말아야 된다라고 관여할 문제는 아닌 듯 해요.” 두 여중생의 부모는 “국민께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론 죄스럽기도 하지만 과격한 반미는 원치 않는다”고 했다. 또 “집회를 이제 그만 했으면 좋겠으며 소파 개정에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고도 했다. 이들 부모의 마음이 아니더라도 한·미 양국은 두 여중생의 불행을 교훈으로 삼아 한미우호관계 개선은 물론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을 개정하는 데 더욱 진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전국 71개 지역에서 100만명 이상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번 추모행사가 평화적이고 질서를 유지하는 가운데 경건하게 진행되기를 바란다.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치러지는 추모행사만이 돈독한 한미관계, 균형된 동맹관계를 발전시키고 신효순·심미선 양의 불행을 헛되지 않게 하는 길이다.

삼성전자 공장증설, 경제논리로 풀어라

청와대가 삼성전자 기흥공장 증설을 허용하면서 일부 라인의 지방 이전을 조건 삼는다는 소식은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면서도 만일의 경우를 생각하여 한마디 않을 수 없다. 우선 시각이 잘못됐다. 수출 상품의 대표 주자로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정상의 평가를 받고있는 D램 S램 등 메모리 반도체 생산라인을 증설키 위해 공장을 더 세우고자 하는 것이 핵심이다. 국가경쟁력 강화와 직결된다. 그럼 정부가 고맙게 여겨 도와주는 것이 마땅한데도 되레 무슨 은혜나 베푸는 것처럼 이러쿵 저러쿵 군 말을 일삼는 건 정치논리다. 공장을 세우고 말고 하는 것은 전적으로 기업 경영에 관한 일이다. 이런데도 여기다 이 공장을 세웠으면 저기도 똑같은 공장을 세워야 한다는 어거지 논법의 지역 균형 발전론은 정치논리다. 진정한 지역 균형 발전은 지역 특성을 살리는 특화산업 방향으로 모색돼야 한다. 삼성전자 기흥공장 증설 또한 기업 수요의 경제논리가 작용되지 못하고 일부 라인의 지방 이전을 강요하는 따위의 정치논리가 작용되어서는 국가경쟁력을 해친다. 부존 자원이 없어 순전히 수출로 살림을 꾸려가는 나라에서 왜 이토록 배부른 정치논리만을 앞세우는 지 실로 답답하다. 얼마전 노무현 대통령이 서울 언론사 편집국장 및 보도국장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실효성 없는 수도권 규제를 과감히 풀 것”이라고 밝혀 조만간 그렇게 될 것으로 믿었다. 이같은 대통령의 의중을 청와대 보좌진이 방해한다면 대통령 말조차 국민이 믿지 못하게 만드는 정치논리의 폐악이다. 정부의 관련 부처를 제쳐두고 청와대 비서실서 ‘감 놔라 배 놔라’하며 간섭하는 것 역시 바람직스럽지 못한 정치논리다. 청와대측이 민간 공장의 부지까지 일일이 간섭하는 이런 시스템의 경직성은 곧 이 정부가 말하는 개혁의 대상이다. 정부가 실효성 없는 수도권 규제를 과감하게 풀어야 하는 것은 국가이익을 우선하는 조치다. 삼성전자 기흥 공장 증설 역시 되지도 않은 단서를 붙여 괴롭히기 보다는 기왕이면 화끈하게 도와주는 것이 국익을 배양하는 길이다. 경제 살리기의 묘안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경제문제에 정치논리를 철저히 배제하여 경제논리대로 풀어가는 것이 바로 경제 살리기의 첩경임을 알아야 한다.

'소나기'

황순원(黃順元)의 단편소설 ‘소나기’는 이성에 눈 떠가는 사춘기 소년 소녀의 아름답고 슬픈 첫사랑의 경험을 서정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주인공 소년은 개울가에서 물장난을 하고 있는 소녀를 보자 곧 윤초시네 증손녀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벌써 며칠째 소녀는 물장난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다음날 소녀는 물속에서 건져낸 하얀 조약돌을 건너편에 앉아 구경하던 소년을 향하여 “이 바보”하며 던졌다. 소녀는 갈밭 사잇길로 달아나고 한참 뒤에는 가을 햇살에 반짝이는 갈꽃 저쪽으로 사라져 갔다. 소년은 물기가 걷힌 조약돌을 집어 주머니에 넣었다. 소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소년은 주머니 속의 조약돌을 주무르는 버릇이 생겼다. 며칠째 보이지 않던 소녀가 토요일날 개울가에 나타났다. 소년과 소녀는 들길을 달리며 허수아비를 흔들기도 하고, 칡꽃을 따기도 한다. 소년은 코뚜레를 꿰지 않은 송아지를 타고 자랑스러워 하기도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를 피해 수숫단 속에서 비를 긋고 소년은 소녀를 업어 물이 불은 개울물을 건네 주었다. 그뒤 며칠만에 소녀는 핼쑥한 얼굴로 개울가에 나타났다. 그날 소나기를 맞은 탓으로 앓았다는 것이다. 소녀의 분홍스웨터 앞자락에는 소년의 등에 업혔을 때 묻은 검붉은 물이 들어 있었다. 갈림길에서 소녀는 대추를 건네주며 이사를 가게 되었다고 말했다. 소녀가 내일 이사간다는 날 밤, 소년은 잠자리에서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윤초시댁두 말이 아니어. 그 많은 전답을 다 팔아 버리구, 대대로 살아오던 집마저 남의 손에 넘기더니, 또 악상까지 당하는 걸 보면…. 그런데 참 이번 기집애는 여간 잔망스럽지가 않어. 글쎄 죽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잖어? 자기가 죽거든 자기가 입던 옷을 꼭 그대로 입혀서 묻어 달라구….” ‘소나기’는 유년에서 성적 성숙의 징검다리를 건너갈 때면 누구나 겪게 되는 정서적 경험이 서정시적인 여운을 남긴다. 그런데 이 소설의 배경이 양평이고 개울은 ‘원덕리’에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또 양평에 ‘소나기 마을’을 조성한다고 한다. 반가운 소식이다. / 임병호 논설위원

목요칼럼/6월의 노래 ②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 이슬처럼/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 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 지라도/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포크송의 양희은 노래 ‘아침이슬’이다. 지금도 이 노래를 들을 때면 피가 뛴다. 민주화 6월 민중항쟁, 인파의 격랑 속에 퍼부은 최루탄이 서울시청 광장과 프레스센터 주변 태평로를 진동할 때, 매연으로 후두염을 앓아가면서 이리 저리 뛰어 취재했 던 게 생각난다. 또 하나의 6월, 한국전쟁 발발 땐 중학생으로 학도병을 지원하는 선배들 틈에서 ‘학도가’를 부르다가, 인공치하 3개월 동안 ‘김일성장군의 노래’ ‘빨치산 노래’ 등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배워야 했다. 2003년의 6월 지금은 무슨 노래를 불러야 할까, 새 순 없인 뿌리가 있을 수 없고 뿌리 없인 새 순이 날 수가 없다. 1948년 같은 해에 수립된 대한민국은 자유주의 정권, 그리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공산주의 정권으로 오늘에 이른다. 북에선 북조선인민회의 제3차회의가 구성한 인민회의특별회의에서 1948년2월6일 헌법 초안을 만들어 인공을 수립했던 게 그해 9월9일이다. 남에서는 같은 해 5월10일 제헌국회 구성을 위한 총선거를 치르면서 이를 방해한 공산세력들에 의해 무수한 인명이 희생됐다. 남로당 사람들이 투표소를 습격, 죽창으로 선거관리 사무원과 유권자를 닥치는대로 찔러 죽이는 것을 어릴 적에 목격한 내가 살았던 곳 말고도 남쪽 전역에서 이런 참사가 여기 저기서 숱하게 있었다. 해방 후 우익 진영의 반탁과 좌익 진영의 찬탁을 둘러싼 이념 투쟁으로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처럼 죽어간 희생을 치르고도 1948년8월15일 정부 수립을 위한 5·10총선 당시만 해도 실로 수 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리고도 모자라 1950년엔 1천만 이산가족과 300만명의 사상자를 낸 6·25가 터져 3년여동안 국토가 불바다로 폐허화 했다. 이같은 수난과 폐허를 딛고 그래도 오늘만큼 일어선 대한민국의 뿌리는 자유민주주의다. 이런데도 자유민주주의 새 순이 돋아나야 할 대한민국 뿌리에 엉뚱한 인공 뿌리를 접 붙여 공산주의 순을 돋게 하려는 무리들이 있어 보인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엔 무엇이든 끝없이 관대하면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사사건건 트집잡는 이런 무리들은 기실 대한민국 덕분에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이다. 막상 그들보다 못 먹고 못 산 민중은 태극기를 보면 충성심을 갖는데 비해 앞서가는 지식인으로 위장한 그 무리들은 태극기에 절하는 것조차 촌스럽다고 말한다. 남북이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것은 무서운 전쟁 재발을 막자는 것이지 공산주의를 하자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남로당 반란군을 ‘남부군’이라 해도 보아주는 것은 서로의 시대적 희생을 아프게 여겨 그런 것이지 인공 정권을 지지해서가 아니다. 이 틈을 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망가뜨리려는 그들을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자본주의 모순은 자유민주주의의 가장 큰 약점이고 모순의 극복은 가장 큰 강점이다. 대한민국 뿌리에 접 붙이려는 이단의 순은 결코 탄소동화작용을 일으킬 수가 없다. 그 뿌리엔 정체성 지닌 그 새 순이 진정한 이 시대의 새로운 지식인이다. 내년 6월 쯤엔 중도우익 민중의 새로운 저항이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된다. 만일 그렇게 되는 불행한 사태가 생기면 ‘아침이슬’의 노래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설 것만 같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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