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도덕

오는 8월부턴 길거리에 침을 뱉거나 쓰레기 무단투기는 7점, 아파트 애완동물 사육엔 5점, 공공장소에 빨래를 걸면 3점의 벌점을 매긴다. 국내 얘기가 아니다. 외신이 전한 홍콩 정부의 ‘공중도덕 벌점제’다. 이리하여 16점을 넘기면 공공아파트 입주 자격을 박탈하는 등 주민생활에 불이익을 준다. 길에 침을 뱉거나 방뇨 등을 하는 위생사범에는 특히 벌점은 벌점대로 매기면서 종전에 9만6천원이든 벌금을 24만원으로 올렸다. 그러므로 홍콩시민이 길에 침을 세번 뱉다가 적발되면, 공공아파트에서 쫓겨나야 하고 외국인이 침 뱉다가 들키면 벌금 24만원을 내야한다. 홍콩 정부의 이같은 조치는 사스(중증 급성호흡기 증후군) 곤혹을 한바탕 치르고 나서 재발 방지를 위해 공중도덕 위반사범의 처벌을 강화한 것이다. 우리의 공중도덕은 더욱 엉망이다. 길에 침뱉는 것쯤은 약과다. 거리마다 담배 꽁초와 휴지가 널브러지고 골목마다 제멋대로 내다버린 쓰레기 더미가 수북하다. 공중전화기 같은 공공기물은 성한 게 드물만큼 망가뜨려지고 공중화장실은 불결하기 짝이 없다. 공중도덕의 실종 사례는 이외에도 허다하다. 홍콩의 ‘공중도덕 벌점제’는 형벌이 아닌 행정벌이다. 공중도덕은 원래 형벌이든 행정벌이든 강제적 규제력 없이 양심에 의해 발현이 기대되는 것이긴 하다. 하지만 이같은 기대가 불가능하면 공공의 이익을 위해 강제적 규제가 불가피할 수가 있다. 법률은 언제나 도덕률의 마지노선이기 때문이다. 형명법술(刑名法術)을 주창한 순자(荀子)의 형명사상은 ‘법이 엄격하여야 사회가 밝다’고 하였다. 벌이 강한 게 꼭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지만 시세에 따라서는 생각해볼 만도 하다. 만약 국내에서 침을 길에 세번 뱉다가 적발되어 시영이나 주공 등 공공아파트에서 쫓겨나거나 입주권을 박탈 당한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 사회의 공중도덕에 실로 깊은 연대적 반성이 있어야 할 것 같다./임양은 주필

광교산의 아침/老馬之智와 상부상조

경기중소기업지원센터, 경기신용보증재단, 경기지방공사, 경기개발공사, 경기문화재단…. 도청이 발간하는 안내 책자들을 보면 이들 기관들의 설명을 유관기관 내지 직속(直屬)기관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그런데 공무원들이나 도의원들, 심지어 언론에서 조차도 이들 기관을 도 본청의 산하기관이라고 칭하기 일쑤다. 직속기관이든, 산하기관이든 그것이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도 본청이 이들 기관을 어떻게 생각하고 대접하는가가 문제다. 지난주에 이들중 한 기관을 방문했을 때 일이다. 손학규 지사가 취임한 이후, 골머리를 앓았던 44년생 처리문제와 관련된 한 인사를 만났다. 그의 이야기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나도 공직생활 30~40년하면서 실·국장과 부단체장을 다 거친 뒤 뒷전으로 물러났지만 도 본청의 위세가 이 정도인지는 몰랐다”며 “나도 그랬는지 다시한번 반성해 본다”고 말했다. 이야기인 즉슨 얼마전 도 본청에서 업무협조가 왔는데 실·국장은 아니더라도 과장·계장들 만이라도 선배가 있는 만큼 (직접 찾아오기는 바라지 않지만)전화 한통이라도 해 관련업무에 대한 설명을 할 줄 알았는데 덜렁 6급 직원이 결재서류랍시고 들고와 서명을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는 서류를 결재하면서 웬지 ‘왜 이자리에 있나’하는 서러움과 자괴감이 앞서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나마 ‘나는 선택된 사람’이라며 굳이 했던 말을 못 들은 것으로 하라는 부탁을 했다. 그에게 이런 말을 듣고 나와 다른 직원을 만나보니 ‘도의 위상(?)’은 더한층 고조됐다. “산하기관이든 직속기관이든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업무를 추진하는 도의 행태는 ‘명령’에 가깝다”는 것이었다. 도지사 지시사항으로 생색을 내기위해 관련 실·국에서 장시간 갖고 있다가 뒤늦게 처리가 어려우면 ‘산하기관’이라는 명분으로 ‘이 일을 처리하라’는 식으로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흥분된 목소리로 “우리 기관에 있는 직원들은 공무원들보다 전문성이 뛰어난 인재들”이라며 “일을 시키려면 최소한 서로 이해하고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항변했다. 그러면서도 그 역시 ‘도가 자금을 출연해 만든 기관이라…’며 말을 맺지 못했다. 노마지지(老馬之智)라 했다. 이말은 제나라 명제상 관중과 붕습 두 사람이 길을 잃었을 때 늙은 말을 풀어 길을 찾았다는 고사에서 비롯된 말이다. 많은 경험을 갖고 있는 늙은 말이 그 만큼 지혜를 갖고 있다는 것으로 두 제상은 늙은 말을 후하게 대접(?)했다 한다. 공직생활 30~40년을 한 뒤 손 지사가 그를 발탁해 쓴 것은 그에게 무엇인가 배울 것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 본청 직원들이 그를 ‘옥상옥(屋上屋)’으로 생각한다던가 그의 경력을 무시한다던가 해서는 얻을 것이 없을 것이다. 또 서로 의지하고 도우면 어려운 일도 쉽게 해 낼 수 있다는 상부상조(相扶相助)란 말도 보편화된지 오래다. 수장에게 잘 보이려 하는 속성은 모든 공무원들이 갖고 있는 생태라 치부할 지라도 그 일을 보다 효율적이고 성공적으로 이루어 내기위해서는 도 본청과 유관기관과의 협조와 공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강조하고 싶지는 않다. 공무원은 유사이래 국민들이 생각해온 표준이다. 이는 사회적 위치뿐 아니라도 생활이나 도덕적 잣대에서도 가장 보편타당하다는 것이다. 유관기관과 그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과의 관계개선을 위한 도 본청 직원들의 개혁적 사고를 기대해 본다. /정일형.정치부장

천자춘추/자전거 타기 어려운 도시

우리나라는 1970~90년대 사회가 발달하고 소득수준이 향상됨에 따라 자동차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그에 따른 교통난, 환경공해, 물류비용의 증가 등이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특히 승용차의 폭발적 증가는 도시의 교통난과 그에 따른 환경공해를 부채질하고 있다. 21세기에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 방법 중의 하나가 도심에서 자전거 등 인간의 힘을 동력으로 하는 이동수단의 활성화이다. 인천시의 경우 자전거 전용도로가 약 700Km 설치되어 있다. 자동차 도로에 비할 바 아니지만 적지 않은 길이다. 그러나 문제는 도심에서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드물다는 것이다. 그 원인을 몇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먼저, 자전거 전용도로가 형식적으로 설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인도를 따라 인도의 한 부분을 차지하면서 설치된 전용도로는 모양만 갖추었을 뿐 별 효용성이 없다. 인도에 그어진 자전거 전용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상점에서 내 놓은 물품을 만나게 되거나 불법 주차해 놓은 자동차들을 만나게 된다. 도로와 인도의 턱과 버스 정류장을 지날 때 사람사이를 지나게 되는 위험 정도는 당연히 감수해야 한다. 짜증과 위험을 몇 번 거쳐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짜증과 위험을 피해 차도로 나서게 되는데, 이는 목숨을 건 모험이다. 자동차 운전자들은 자전거정도는 안중에 두지 않는다. 형식적인 자전거 전용도로를 이용하는 것은 인내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두번째는 자전거 전용도로가 대중교통과의 연계를 고려하지 않고 여가 개념으로 설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출퇴근 시간대에 이용할 수 있는 주거단지와 전철역 등을 고려한 자전거 전용도로는 자전거 이용 인구를 늘릴 수 있는 방안이다. 지금도 지하철역과 전철역 등에는 자전거가 주차해 있는 장면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자전거 전용도로는 주거단지와 지하철역을 고려하지 않고 설치되어 있다. 여가 개념보다는 생활로 이용할 수 있는 자전거 전용도로 설치가 필요하다.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가 자전거 이용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자전거 전용도로 설치 등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일회성 또는 형식적인 것에 머물러서는 자전거 이용의 대중화는 요원하다. 자전거 전용도로의 경우에도 형식적으로 설치하기보다는 지금쯤은 설치되어 있는 전용도로를 활성화 시킬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고 고민할 때이다. 21세기 인류의 화두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큰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 자전거 이용을 활성화 시키는 것이 그 출발일 수 있다. /박길상.평화와 참여로 가는 인천연대 사무처장

열린글밭/홍난파 생가 조속한 복원을

제9회 난파동요제가 화성시청 대강당에서 화성문화원 주최, 화성시 후원으로 합창 8팀, 중창 7팀이 각 학교의 명예를 걸고 나와 열렸다. 해를 거듭할수록 수준이 향상된 어린 천사들의 하모니는 강당을 꽉 채운 관중들을 감동의 물결로 가슴 뜨겁게 했다. 특히 감동받은 일은 홍난파 생가 정화추진위원장(정희준)이 소망 2가지를 말했는데 첫째, 어릴때 동요를 많이 부르고 자라서는 클래식음악을 많이 부르고 둘째, 난파 생가에 복숭아꽃 살구꽃 피는 꽃대궐 같은 집을 짓는 것이라고 했다. 홍난파(홍영후) 선생은 화성시 활초리에서 태어난 우리나라 근대음악의 선구자이다. 요즘 친일파 대열에 님을 놓고 흠집을 내는 안타까움에 천상에서 얼마나 서러운 눈물을 흘리실까. 그 문제를 가지고 계속 시시비비를 논한다면 지방 문화의 손실이요 국익에 이로울 것이 없다고 본다. 격동하는 시대적 배경속에 암흑과 불안에 예술의 힘을 마음껏 펼치지 못하고 가신 님의 한은 얼마나 클 것인가 생각해야 한다. 또한 그가 방송국에 근무할 당시 흥사단 단가를 작곡한 일로 도산 안창호 선생과 옥고를 치르면서 고문당한 일도 우린 알아야 할 것이다. 일제의 36년의 설움을 ‘봉숭아’ 노래로 표현한 업적, ‘고향의 봄’ 등 주옥같은 음악들은 지금도 모르는 이 없다. 얼마전 우리 화성시 사회단체들이 생가 주변에 꽃동산을 만들면서 생가 복원 사업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에 얼마나 기뻐했던가. 필자는 봉숭아씨를 초가 생가 울타리에 뿌리고 그해 여름 흐드러지게 핀 봉숭아 꽃무리속에서 활짝 웃으신 님의 얼굴을 본 듯 했다. 우리나라 최초로 교향악단 지휘를 했고, 최초 조선동요집을 냈고, 최초 음악잡지를 낸 문학가요 음악가인 홍영후 선생의 생가 복원 사업이 속히 이루어져 아름다운 생가에서 어린 꽃들의 난파 동요제가 활초리에 메아리칠 날을 염원해 본다. /지현숙.대한어머니회 경기도연합회장

6월 17일 경기만평, 당구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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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빚 범죄, 강력 대처를

신용카드 빚으로 인하여 각종 범죄가 발생하고 있다. 최근 언론에 보도되는 부모살인, 형제살인 또는 친지살인의 끔찍한 범죄는 대부분 신용카드 빚으로 인하여 발생하고 있다. 지난 15일 경기도 부천에서 발생한 조모와 어머니 살해범도 카드 빚 4천여만원을 부모에게 대신 갚아 달라고 하다 거절당하자 살해하였으며, 아버지까지 살해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더욱 기가 막힌 사실은 아버지 살해계획이 실패하자 천연덕스럽게 PC방에 가서 여자친구에게 계획대로 아버지를 살해하지 못하여 미안하다는 이메일까지 보냈다고 하니 이런 패륜아에게 무슨 말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이런 극도의 패륜적 카드빚 범죄가 연일 언론에 보도되고 있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있나를 실감하게 되며, 자식들의 카드 빚 대납에 시달리고 있는 부모들은 혹시나 하면서 불안해하고 있다. 또한 카드 빚이 많은 신용불량자들이 어린 학생들은 물론 부녀자들을 납치하여 돈을 뜯어 낸 후 살해하는 사례가 점차 증가하고 있어 학부모들의 불안 역시 대단하다. 이런 현상이 전국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어 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이와 같이 신용카드 빚으로 인한 범죄가 증가하고 또한 범죄 수법도 더욱 흉악해지고 있는데도 당국은 물론 사회전체가 이에 대한 강력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어 조속한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 특히 최근 금융감독원 통계에 의하면 카드연체가 전달보다 무려 16.9%로 더욱 증가하고 있다고 하니 카드빚 범죄의 증가 가능성은 더욱 높다. 카드빚 연체자들은 카드 회사들의 연체 대금 회수에 더욱 압박을 받을 것이며 이 때문에 연체자들의 범죄 유혹 역시 증가할 것이 예상되어 더욱 사회방어가 요구된다. 신용카드 빚 범죄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체계적인 대책을 범사회적인 차원에서 강구해야 된다. 신용카드 빚에 대한 제일차적인 책임은 신용카드 소유인 개개인에게 있으나 카드회사나 정부 당국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개인의 신용도 제대로 체크하지 않고 돈놀이에만 급급, 카드 빚을 양산시킨 카드 회사는 카드 대금 회수만 몰두하여 갖가지 압력을 가해 카드 연체자들을 괴롭히기 보다는 장기적 차원에서 연체 대금을 회수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된다.

영화산업 ‘수구주의’ 탈피해야

국내 영화계의 수구주의적 생각은 아무래도 옳다고 보기가 어렵다. 그동안 줄곧 스크린쿼터의 보호막 속에서 성장해 왔으면 이젠 능히 자생력을 갖출 때가 됐다. 국내 영화관의 방화상영 의무 일수를 연간 106일에서 73일로 줄인다고 한국 영화산업의 기반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아직껏 그만한 경쟁력을 지니지 못했다면 그것은 영화계의 책임이긴하나 그토록 허약하다고는 믿지 않는다. 한·미투자협정(BIT) 체결을 두고 미국측이 제기한 스크린쿼터 이의에 문화는 흥정의 대상이 아니라는 영화인들의 생각 또한 맞지 않다. 영화산업 역시 엄연한 경제행위의 범주에 든다. 새삼 대미 수출액 330억달러의 수출 의존도와 BIT 체결에 따른 40억달러의 투자유치 효과를 말하는 정부측 설명이 아니어도 영화산업만이 기득권을 고수하려는 것은 시대 착오다. 국제사회에 개방되지 않은 산업분야가 없다. 농·수산업도 완전히 노출되고 있다. 심지어 대학도 조만간 개방되어 경쟁관계에 들어간다. 영화도 미국 영화만 더 들어오게 되는 게 아니다. 지난 한·일정상회담에서 합의된 일본 대중문화 확대 도입의 후속조치가 이루어지면 ‘짠짠 바라바라’ 사무라이(武士) 영화도 들어올 것이다. 국가경영을 위한 총체적 대외정책에 의해 거론되는 스크린쿼터에 대해 국수주의적 애국심만을 고집하는 것이 애국일 수는 없다. 영화계에서 말하는 정신문화의 혼은 영화인들의 의지가 있으면 더 개방된 영화산업 환경에서도 얼마든지 꽃피울 수가 있고 또 그러한 경쟁력을 보일 때 더욱 빛을 뿜는다. 어쩌다가 스크린쿼터는 영화인들의 집단이기주의라는 말까지 나왔는지 참으로 답답하지만, 스크린쿼터는 방화의 생명선이므로 절대 포기못한다는 영화인들 주장이 얼마나 사회정서에 합치될 것인지는 심히 의문이다. 방화상영 의무 일수를 없애는 것도 아니고 줄이자는 것이다. 또 이에 문제가 있으면 탄력적인 방안을 강구해 보자는 것이다. 이런데도 무작정 현행 스크린쿼터제만을 우기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정부의 조속한 단안을 촉구해 둔다.

만석공원에 이것을

만석공원의 저녁 나절은 약동의 시작이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여든 시민들은 저마다 탁 트인 도심 속 공간에서 해방감을 즐긴다. 수원시 장안구 송죽동에 있는 11만여평의 만석공원은 레포츠 공원이기도 하다. 축구장 농구장 테니스장이 있는가 하면 묘기시설까지 갖춘 롤러 스케이트장이 있다. 배드민턴 전용체육관은 지금 짓고 있다. 자전거를 빌려 자전거 타기를 하는 청소년들도 많다. 노천무대가 있어 가끔은 산책객의 시선을 끄는 무료공연을 하기도 한다. 편의시설도 그런대로 잘 되어 있다. 옛 물왕저수지 호반따라 만든 1천315m의 일주도로는 좋은 달리기 코스이기도 하고 산책로이기도 하다. 수원시내엔 다른 도시보다 공원이 비교적 많다. 그 중에서도 만석공원은 첫손 꼽히는 호반의 공원이다. 이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들고 만석공원을 찾으면 사람들 가운데서 사람 사는 맛을 느낀다. 다른 공원을 가령 정적(靜的)이라고 하면 만석공원은 동적(動的)인 공원이다. 모든 게 살아 꿈틀거리는 듯한 분위기인 것이 만석공원의 특성이다. 푸르고 드넓은 잔디 역시 일품이다. 그렇다고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무가 적다. 공원으로 조성된지 얼마 안된 탓도 있겠지만 나무 심기를 덜 했다. 공직자나 일반 시민이 기념 식수를 한 나무들이 더러 있다. 승진 기념으로 심었다고 돌에 새긴 팻말도 있고 부모 회갑을 기념해 심어 기증했다고 새긴 팻말도 보인다. 중단된 이런 기념식수운동을 재개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물론 시에서도 더 많은 나무를 심어야 한다. 또 한가지는 호수에 생활하수가 흘러들어 혼탁해지고 있는 점이다. 호수를 곱게 간직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수원시의 대책이 시급하다. 나무가 많고 깨끗한 호수의 수질을 자랑할 수 있는 이런 만석공원이 되기를 많은 시민들은 바라고 있다./임양은 주필

기고/'도민의 얼' 담김 소나무림

한 나라의 문화가 나무나 식물로 대표성을 띤다면 우리 한국의 문화는 아무래도 ‘소나무 문화’에 가까울 것이다. 비록 매화·난초·국화·대나무가 사군자로 사랑 받는다고 해도 한국 문화를 ‘매화문화’ ‘대나무문화’라고 이르기엔 무리가 따른다고 하겠다. 러시아의 자작나무, 북구의 전나무, 남구의 올리브, 영국의 장미, 열대 지방의 야자수가 각각 그 나라를 대표하듯이 우리의 상징은 소나무가 제격인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소나무와 함께 일생을 보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나무로 집을 짓고, 솔가지로 군불 지핀 방에서 태어나 소나무 장작불에 밥지어 먹고, 배고픈 날은 송지를 벗겨 허기를 때우기도 했다. 명절이면 송편을 빚고, 소나무 잎과 꽃과 순으로 송엽주, 송화주, 송순주를 담가 일미를 즐겼으며, 소나무 뿌리에 기생하는 복령을 만병통치약으로 알았고, 송이버섯을 채취했다. 그러다가 생을 마치면 송판으로 만든 관에 담겨 땅에 묻혔던 것이다. 우리나라 지명에는 송(松)자가 유난히 많은데 조사결과에 의하면 전국에 680곳의 지명이 송자를 포함한다 하니 소나무는 우리와 불가분의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우리도에도 송중, 송포, 송산, 송정 등 소나무를 상징하는 마을이 곳곳에 있고, 애국가 2절 에도 ‘남산 위에 저 소나무~’란 구절이 엄연하다. 산림청이 재작년 3월에 실시한 ‘산림에 관한 국민의식 조사’에 의하면 대상자 1천814명 가운데 58.7%가 가장 좋아하는 나무로 소나무를 꼽고 있다. 2위인 은행나무 6.8%와 비교하면 압도적이라 할 만 하다. 그런데 우리나라 삼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우리와 밀착돼 있는 소나무가 환경오염, 병충해 등으로 점점 메말라 가고 있으며, 도시화 산업화에 따른 각종 개발의 영향으로 솔밭도 많이 사라져 가고 있다. 특히 우리도의 경우 수도권의 지역적 특성으로 그 정도가 더욱 심한 편이라 하겠다. 우리도에는 팔달산, 남한산성, 홍유릉, 칠장사, 용주사 등 유적지와 청계산, 용문산, 평택항 주변 등에 총 486㏊의 우량 소나무림이 분포되어 있다. 일부는 잘 보존되어 있는 곳도 있으나 대부분 특별관리가 필요한 실정으로 연차별 계획에 의거, 2002년부터 2007년까지 28억 1천900만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그 첫해인 작년에 남한산성 등 10개소 58㏊에 토양개량제 투입, 비료주기, 수간 주사, 병해충방제 등 식생여건 도모와 생육환경을 개선하였으며, 금년에도 용주사 주변지역 등 16개소에 6억200만원을 투입하여 65㏊의 우량 소나무림 보존사업을 추진중에 있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생태계의 변화는 한대림인 침엽수종을 우점해서 아열대림인 활엽수종을 번성시켜, 백년쯤 뒤에는 소나무가 지금의 10분의 1로 줄어들 수도 있다”는 우울한 보고도 있다. 전 지구적인 온난화문제를 한 지방자치단체가 나선들 모두 해결될 수는 없겠지만 우리의 향토수목인 소나무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될 것이다. 소나무가 사라진 우리 문화를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덕영.경기도 농정국장

천자춘추/새벽을 열며

오늘따라 잠이 오지 않았다. 새벽공기를 마시고 싶어 창문을 여니 할머니 한 분이 보였다. 이 신새벽에 몸도 제대로 못 가누면서 폐지를 줍고 있는데 차가 지나가는 것도 모르고 있다. 저 연세정도면 손자들의 보살핌을 받을 나이가 아닌가. 자식들은 알고 있기나 하는건지…… 생활의 과학화와 의료산업의 발달로 평균수명이 길어지고 핵가족화 되면서 ‘孝’의 개념은 무너지고 노인들의 노후생활은 예전처럼 보장받을 수 없게 되었다. 1세대 독고노인이 늘어나면서 자식들에게 생활보조금을 받는 축은 그래도 다행이다. 국가에서 주는 생계보조도 받지 못하는 노인들은 스스로 생계비를 벌어야만 한다. 능력있는 사람들도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이때, 힘없고 병든 노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하루에 몇 천원 버는 재활용품을 줍는 것 말고는 무엇이 있겠는가. 아마도 저 할머니는 다른 사람들 보다 하나라도 먼저 줍기 위해 새벽녘에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노년기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 경제, 양질의 삶일 것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저출산국가인 유럽에서는 노인의 문제를 연금, 국가보조금 등의 복지로 정부에서 해결해 노인의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해 주고 있으며 우리도 이 문제를 더 이상 노인, 자식들의 개인에게 돌릴 수 는 없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버스표나 동별로 경로당, 노인복지센터를 세우면서 관심을 보이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선진국가에 비해서는 훨씬 미흡하다고 할 수 있다. 노인의 문제가 어디 건강과 경제 뿐이겠는가. 양질의 삶 속에는 노인들의 성문제도 간과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얼마 전 70대의 성을 다룬 영화 ‘죽어도 좋아’가 많은 논란 끝에 개봉 되었다. 노인의 성에 대해 ‘노인이 되면 초연해 지겠지’라고 무의식속의 생각 때문에 젊은이들의 성과는 다른 충격으로 왔다. 하지만 노인의 성은 더 이상 감출 것도 부끄러운 것도 아닌 젊은이와 똑같은 자아개념이며 노인복지 문제 또한 삶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권의 문제로 접근해야 함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모든 노인문제는 머지 않아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일이다. 현재가 있게 하는 역사의 현장에서, 미래를 위해 자식들 키우는 일에 전념하며 하루하루 살아간 그들의 노후는 당연히 국가가 책임져야 할 것이다. /권은수.경기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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