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政治, 양평 없는 양평 싸움/郡民, 주민투표 투쟁해야

아무것이나 주민투표에 부칠 수는 없다. 주민투표법에 조건이 정해져 있다. 주민에게 과도한 부담 주는 일이다.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일이다. 반면 ‘주민투표에 부칠 수 없는’ 사항도 있다. ‘국가 사무 사항’이 대표적이다. 양평 고속도로 건설은 중대한 일이다. 양평주민에게 미치는 영향도 크다. 주민투표 해야 맞다. 하지만 지방 사무 아닌 국가 사무다. 국가철도망 계획으로 국가가 정했다. 사업에 투입되는 돈도 국가 예산이다. 법률상 주민투표 대상이 아니다. 2020년 6월5, 6일 주목 받는 투표가 있었다. 코로나 속에 치러진 울산 북구 주민투표다. 모두 34개 투표소가 설치됐다. 5월28일과 29일 사전 투표도 진행됐다. 6월1일, 2일 온라인 투표도 있었다. 이 투표, 법률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행위다. ‘월성원전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추가건설 찬반 투표’다. 원전 폐기물 사업과 관련된 국가 사무다. 그럼에도 투표는 강행됐다. 1천872명의 투표 종사원 등 3천여명이 동원됐다. 주민 5만479명이 투표했다. 결과는 청와대 앞으로 갔다. ‘반대 94.8%’라는 수치를 펼치고 사업 반대를 외쳤다. ‘문재인 대통령은 주민투표 결과를 수용하라.’ 울산 북구 주민투표운동본부, 진보당, 탈핵시민운동, 고준위핵폐기물전국회의 등이 함께했다. 이 투표는 뒤에 ‘백서’로까지 남겨졌다. 법에 근거 없는 주민투표, 그래서 법적 구속력도 없는 주민투표, 그걸 울산 북구 주민은 치렀다. 지역 불이익에 대한 자기 의사 표현이었다. 그게 주민투표다. 지역민에게 허락된 아주 작은 투쟁. 빗속에서도 양평주민의 투쟁은 계속된다. 떨어진 현수막 찾아 이어 붙인다. 이 힘든 싸움의 목적은 간단하다. ‘정치는 양평 고속도로에서 빠져라’ ‘양평 고속도로 백지화 철회하라’. 간혹 결이 다른 목소리가 있다. ‘아무개 특혜’라는 현수막이다. 순수한 주민의 목소리가 아니다. 정치하는 양평군민, 정치하려는 양평군민 구호다. 이 양평에 주민투표 얘기가 등장했다. 정치권이 서로 특혜라 비난하는 ‘원안’과 ‘수정안’이다. 주민투표로 선택하자는 주장이다. 훌륭한 차선(次善)이다. 지금의 정치로는 타협에 이를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김건희 로드’로 밀어붙인다. 대통령 영부인의 특혜라며 정권을 조준하고 있다. 때마침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졌다. 국정조사까지 밀고 간다고 한다. 국민의힘도 역공에 나섰다. ‘전직 군수 게이트’라 맞받아치고 있다. 김부겸 전 총리, 유영민 전 청와대 실장까지 등장시켰다. 대부분의 특혜는 실체가 없다. 아니면 말고식이다. 총선이 열 달 남았다. 열 달 끌 것 같다. 2025년 착공 예정이었다. 기약 없이 미뤄졌다. 2033년 완공 보게 될지 모르겠다. 속에서 천불이 나는 건 양평군민이다. 예상컨대 핵폐기물처리장 건설이 이랬을 것이다. 울산 북구 주민 속만 타 들어갔을 것이다. 그때 울산 북구는 주민 투표를 집어 들었다. 근거 없는, 효력 없지만 주민투표를 택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청와대·정치권을 압박했다. 그렇게 양평에도 주민투표가 필요하다. 주민 분노를 표한 통계가 필요하다. 정치권에 던지는 여론이다. 정치권 반응은 시큰둥하다. 야당의 영남 중진 의원이 말했다. ‘이미 확정됐고 동의 받은 사안이다’ 진보 진영 인사가 말했다. ‘양평군민들 싸움 붙이는 나쁜 짓이다.’ 결론은 둘 다 주민투표 반대다. 말이 안 된다. 양평 고속도로 노선은 검토 상태다. 뭐가 확정됐다는 건가. 양평 지역 싸움은 정치권이 붙였다. 그 싸움 끝내자는 것이다. 진짜 주민 생각 물어보자는 것이다. 이걸 왜 반대하나. 말 못할 사정이라도 있나. 혹시 혼란 상태가 유리하다고 보나. 2014년, 삼척 주민투표도 있었다. 원전 유치 문제였다. 2018년, 제주 강정마을 주민투표도 있었다. 국제관함식 개최 문제였다. 앞서의 울산 북구 주민투표와 같았다. 모두 국가 사무였다. 법적 권원도 없었고, 행정 구속력도 없었다. 하지만 모아진 관심은 컸다. 표출된 뜻도 존중됐다. 출구도, 대안도, 희망도 없는 양평 고속도로 논란이다. 오로지 열 달 뒤 표 셈법만 판치는 ‘양평 없는 양평 논쟁’이다. 주민이 시작해야 할 주민투쟁은 곧 주민투표다.

[사설] 보디빌더 영장 기각, 설명 필요하다

영장 발부는 사법부 고유의 판단이다. 사건 전체가 아닌 부분적 사실만으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 영장 기각 사유에 대한 평가도 그렇다. 통상 ‘구속 및 도주 우려’ ‘증거 인멸’을 영장 기각의 기준으로 표현한다. 이걸 두고 옳다 그르다를 판단하면 안 된다. 기본적으로 사건 전체 및 모든 정황에 대한 고찰 기회가 일반인에게는 없다. 피상적인 모습만 인지한 상태에서 전체를 두고 판단한 판사 결정을 비판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런데 그런 논란을 생각하게 하는 상황이 또 생겼다. 이른바 ‘인천 보디빌더 폭행사건’이다. 주차장에서 시비가 붙은 여성을 무차별 폭행한 혐의를 받는 전직 보디빌더 A씨 사건이다. 사건은 5월20일 오전 11시쯤 발생했다. A씨가 인천 남동구 아파트 상가 주차장에서 30대 여성 B씨를 여러 차례 폭행했다. 현장에는 A씨의 부인과 남성 지인이 있었다. 사건 이후 피해 여성은 전치 6주의 병원 진단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장면이 블랙박스에 그대로 남아 있었고,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방영됐다. 시청자들의 공분이 일면서 경찰수사도 본격화됐다. 구속영장이 청구됐는데 바로 이 영장이 15일 기각됐다. A씨에게 적용된 혐의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상 공동 상해다. A씨의 아내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상태다. 인천지법 영장 전담 이규훈 부장판사가 비교적 자세하게 기각 사유를 설명했다. “피의자의 주거·직업·가족관계와 증거 수집 현황 등을 고려했다”, “피의자의 진술 태도나 출석 상황 등을 봐도 도주나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많은 경우 구속영장 기각 사유는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 없다’로 간단히 표현된다. 이번 사건에 쏠린 많은 시선을 감안한 배려 내지 설명인 것으로 보인다. 앞서 밝혔듯이 법원의 구속영장 처리는 고유 영역이며 섣부른 논쟁화는 지양돼야 한다. 그럼에도 이번 사건은 논쟁이 많다. 체육인 출신의 건장한 남성이 여성 주부를 상대로 폭행했다. 머리 끄덩이를 잡아 땅바닥에 끌었다. 충격적이게도 쓰러진 여성에게 두세 차례 침까지 뱉었다. 폭행과 모욕, 모멸의 끝판이다. 이 장면이 블랙박스에 녹화됐다. 더구나 그 영상이 전국에 방영됐다. 영장 기각 소식에 이견이 쏟아질 만한 여건이다. 이 정도 폭행은 구속이 안 되냐는 질문, 묻지 마 폭행에 대한 공포감 등이 얘기된다. 우리도 이 문제를 논평하는 데 조심스러운 점은 있다. 불가피하게 사건 상황을 묘사하면서 특정인에게 불리한 측면만 부각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판사는 사건 전체를 고찰했는데, 우리에게 공개된 정보는 극히 일부분뿐일 수 있다. 그럼에도 다수 국민이 갖는 의아함과 궁금함을 전달해야 할 책임을 갖는다. 기각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 주거, 직접, 가족관계의 어떤 면이 영장 기각의 사유가 됐는지 조금 더 설명해 줘야 한다.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법원이 그렇다. 그럼에도 여론은 원한다. 판사는 법으로 재판하고 결정한다. 그 법은 다수 국민이 만들었다. 많은 국민이 궁금해한다. A씨의 행동이 법에 맞는 행동인지, 국민이 용인할 행동인지, 그리고 구속 영장이 기각돼야 할 행동인지. 설명해줘야 한다.

[사설] 여야는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포기”를 당론으로 확정하라

더불어민주당 비명계 의원 31명이 지난 14일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했다. 이런 선언이 나온 것은 지난 13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에서 당 혁신위원회가 제안한 1호 혁신안인 ‘불체포특권 포기’ 수용 여부를 논의했으나, 의원들의 추인을 받는 데 실패한 것에 대한 반발로 나왔다. 이들은 불체포특권 포기 선언 입장문을 통해 “체포동의안이 제출될 경우 구명활동을 하지 않고 본회의 신상발언에서도 불체포특권 포기 의사를 분명히 밝히겠다”고 했다. 또한 현역 의원 40여명이 참여하는 더좋은미래(더미래)도 14일 성명서를 발표, 오는 18일로 예정된 의원총회에서 불체포특권 포기를 결의하자고 촉구했다. 불체포특권 포기는 이미 당대표가 국회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선언했다. 즉,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6월19일 대표연설에서 “저에 대한 정치수사에서 불체포 권한을 포기하겠다”고 말했으며,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역시 지난달 20일 행한 대표연설에서 “우리 모두 불체포특권 포기 서약서에 서명할 것을 제안합니다”라고 말해 국민들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는 국회의원의 불체포 특권 포기는 여야가 공개적으로 약속한 사항이다. 공개적으로 당대표가 약속한 사항임에도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에서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 혁신위는 6월23일 ‘민주당 의원 전원의 불체포특권 포기와 체포동의안 가결 당론 채택’을 1호 혁신안으로 내놓았다. 또한 박광온 원내대표가 13일 의총에서 혁신안 추인을 호소했으나, 일부 의원들은 “헌법상 권한을 쉽게 포기하면 안 된다”며 반발함으로써 불체포특권 포기 결의가 불발됐다. ‘회기 중 국회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않는다’는 불체포특권은 국회의원의 의정 활동을 보장하는 헌법상 제도다(헌법 제44조). 정권의 탄압에 대비해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갖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그러나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지금은 국회의원들의 ‘특권’으로 인식되는 게 사실이다. 지난 4월16일 출범식을 개최한 ‘특권폐지국민운동본부’는 국회 앞에서 시위를 전개하는 등 불체포특권과 같은 특권을 포기하도록 전국적인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은 헌법을 바꾸지 않는 한, 규정 자체를 없앨 수는 없다. 따라서 불체포특권 포기 약속은 이를 개인의 ‘방패막이’로 삼지 않겠다는 일종의 정치적 서약이다. 민주당은 이미 대선 때 불체포특권 포기를 약속한 바 있으며, 국민의힘 역시 당대표 연설에서 약속했다. 오늘은 제헌절 75주년이다. 여야 국회의원들이 국회에 모여 제헌절 기념식만 거창하게 할 것이 아니라 국민들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는 ‘불체포특권 포기 선언’을 해 국회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바란다.

[사설] 한 정당 두 대표, 경기도의회 도민의짐 당이다

좀 그만 싸울 수 없나. 대화와 타협의 여지는 없나. 정당 대표 자리가 뭐라고. 경기도의회 국민의힘 내홍이 또 불거지고 있다. 11일 새로운 대표에 김정호 의원을 선출했다. 초선인 김 의원은 그동안 국민의힘 정상화추진위원회에서 대표 의원 직무대행을 맡아 왔다. 곽미숙 대표의원의 자격 논란으로 출범한 비상 기구다. 이번 투표에는 78명의 국민의힘 의원 가운데 53명이 참여했다. 단독 출마한 김 의원이 찬성 42표를 얻었다. 반대 9표, 기권 2표였다. 절차상 문제 삼을 소지는 없다. 임기 1년이 정상적으로 시작됐다. 대표의원으로서의 포부도 밝혔다. “대표단을 형평성에 맞게 구성하고 재선·삼선 의원님들 의견을 존중하겠다”고 했다. 총선 승리를 위한 TF를 구성하겠다고도 했다. 하반기 의장을 ‘되찾아오겠다’는 약속도 했다. 다 좋은데 사무실이 이상하다. 대표의원실이 있는데 이를 사용하지 못한다. 회의실에 임시 대표의원실을 차렸다. 12일 오후 의원들과의 회의도 이 임시 회의실에서 했다. 원 대표의원실에는 또 다른 대표가 있다. 곽미숙 ‘대표의원’이다. 정상화추진위원회 출범의 기본 취지는 곽미숙 체제 부정이다. ‘곽 대표’를 선출한 지난해 6월 투표가 위법하다고 주장해 왔다. 여기에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지난해 12월부터 직무가 정지됐다. 본안 판결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곽 대표’는 본안 소송이 나와야 법적 판단이 끝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번 김 대표 선출을 인정하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부당하다”는 내용의 입장문까지 발표했다. 길게 보면 지난해 6월부터 이어지는 싸움이다. 그 1년 중에 1년을 싸웠다. 그 끝자락에 ‘대표’가 두 명인 정당이 된 것이다. 백번을 양보해 그동안 싸움은 집안 잡음이었다고 치자. 이제부터는 아니다. 도민 앞에 두 동강 난 모습을 적나라하게 내보이게 됐다. 안 그래도 의석수가 78 대 78로 같다. 한목소리를 내도 버거운 구도다. 이런 때 대표직 싸움으로 무기력을 초래했다. 도지사가 야당 대우 안 한다고 뭐라 했다. 도지사실 농성도 있었다. 그런 불만 얘기할 자격 있나. 이젠 대표성마저 모호해졌다. 도지사가 ‘대화 상대 없다’고 문 닫아 걸어도 할 말 없게 됐다. 도민의 짐이다. 김정호 대표와 곽미숙 대표에게 주문한다. 대화라도 해봐라.

[사설] 문제 산적한 노후 산업단지, 애물단지로 방치 안 된다

국가경제 발전을 이끄는 데 큰 역할을 해온 전국의 산업단지가 크게 노후화됐다. 낙후된 시설로 인해 어떤 산업단지는 이번 ‘극단적 폭우’에 물난리를 겪고 있다. 낡은 산업단지는 급속히 변화하는 산업 생태계를 따라가지 못해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지 못하고 있다. 애물단지가 돼버렸다. 산업단지는 국가산업단지·일반산업단지·도시첨단산업단지·농공단지 등 4가지로 나뉜다. 20년 넘은 산업단지는 ‘노후 산단’으로 분류되는데 전국에 470여개나 된다. 경기도에도 192개의 산업단지가 있다. 그중 48개가 노후 산단이다. 안성시가 13개로 가장 많고 이어 평택 8개, 파주 7개, 화성 4개, 김포·양주 각각 3개 등이다. 인천에도 16개의 산단이 있는데 남동국가산업단지와 부평·주안한국수출국가산업단지가 대표적 노후 산단이다. 이들 노후 산업단지는 시설 낙후 등 인프라 부족, 청년층 기피, 생산성 및 효율성 둔화 등의 공통 문제를 안고 있다. 노후 산단의 문제는 얽히고설켜 있다. 인프라와 시설 노후화는 청년층 기피 현상으로 인력난을 유발하고, 오래된 시설 탓에 생산성과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도내 대표적인 노후 산단인 반월시화산업단지는 전체 근로자 중 청년층(15~34세) 비중이 12.6%다. 젊은 근로자가 부족한 자리를 중장년층과 외국인 인력이 메우고 있다. 인천의 남동국가산단과 부평·주안한국수출산단도 문화·편의시설 부족 등으로 청년층에 외면 당하고 있다. 남동산단은 일일 불법주차 대수가 1만여대에 육박할 정도로 주차난이 심각하다. 산단의 노후화로 성장성도 떨어지고 있다. 경기연구원의 ‘경기도산업단지 생산성 및 효율성 분석’에 따르면 노후 산단의 열악한 근무환경과 낮은 기술 수준이 노동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분석됐다. 2014~2017년 도내 산단의 생산량 증감률은 평균 3.4%였지만 2018~2021년에는 1.6%로 감소했다. 산업단지는 공장이 모여 있어 밀도가 높다는 게 장점이지만, 시설이 낙후되고 각종 편의시설이 부족하면 청년층을 끌어들이기 어렵다. 청년들이 들어오지 않는 산단은 쇠락할 수밖에 없다. 노후 산단을 활성화시키려면 인프라 개선, 산업 재구조화, 규제 완화, 적극적인 투자가 뒤따라야 한다. 부분적으로 빈 공장 등을 새로운 복합형 산업시설로 탈바꿈시킬 필요도 있다. 이를 산업단지 내 공장들이 하기는 어렵다. 정부와 지자체가 적극 나서서 지원해야 한다. 공적 자금만으로는 구조 고도화 등 리모델링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민간 투자 활성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사설] ‘읽고 걷고 쓰고’... 명품 교육정책 브랜드 기대한다

20여년 전 ‘나는 걷는다’라는 책이 독서계를 풍미했다. 프랑스 언론인 베르나르 올리비에. 퇴직 후 그는 700여년 전 마르코 폴로가 떠났던 실크로드 횡단에 도전한다.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부터 중국 시안까지. 1만2천㎞의 이 길을 1천99일간 걸었다. 1999년 시작해 2002년 마침내 시안에 입성했다. 그 무렵, 실크로드 지역은 정치정세나 치안이 매우 불안했다. 대부분 이름이 ‘스탄’으로 끝나는 나라들이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낯선 땅에서 수도 없이 길을 잃었다. 도둑과 들짐승의 위협, 병마에 시달리기도 했다. 원칙은 단호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걸어서 갈 것, 서두르지 말고 느리게 갈 것. 떠나기 전에는 관련 자료를 읽고 또 읽었다. 힘들여 걷고 난 후에는 그 체험들을 드라마처럼 써내려갔다. 그 기간 그는 ‘쇠이유’ 협회를 설립했다. 소년원에 수감된 청소년이 낯선 나라에서 3개월 동안 2천㎞를 걸으면 석방을 허가하는 프로그램이다. 대성공으로 평가받았다. 걷는다는 것은, 자기 자신과 직면하는 위대한 그 무엇이라는 소신이다. 서두가 길어진 것은 ‘읽·걷·쓰’를 얘기하기 위함이다. 읽고 걷고 쓰고, 인천시교육청의 정책 브랜드다. 읽기를 통해 지식과 지혜를 쌓는다. 걷기를 통해 신체적 건강과 사유의 힘을 기른다. 쓰기를 통해 자신 또는 타인과 소통하고 성찰한다.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학습역량과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는 학생들의 통합 또는 개별 활동이다. 왜 읽·걷·쓰인가. 도성훈 교육감이 설명한다. “챗GPT가 답을 주는 시대, 내 생각을 찾는 교육이 필요하다.” 걷기는 낯선 세계로 건너가 질문하고 상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통합 활동은 함께 글이나 책을 읽고 관련 장소를 답사하거나 생각하며 걷는다. 개별 활동은 읽기 걷기 쓰기가 분절적으로 이뤄지는 활동으로, 더 자율적인 방식의 학습이다. 인천시교육청은 학생 학부모 교직원 시민 누구나 자발적으로 개인 또는 단체별로 읽·걷·쓰에 참여토록 했다. 개인은 자기 SNS에 그날 활동을 기록하고 #읽·걷·쓰 해시태그를 달아 참여한다. 그간 교육 정책도 정치에 물들어 소리만 요란했다. 우리는 우선 이 정책 브랜드가 학생들의 일상에 변화를 끼칠 수 있는 구체성에 주목한다. 단순히 편의점에 가기 위한 걷기가 아닐 것이다. 자기 성찰의 과정이 뒤따르는 오랜 걷기를 경험한다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다. 읽·걷·쓰가 처음의 취지대로 퍼져나가 인천의, 나아가 대한민국의 교육 브랜드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다만, 관료주의가 끼어들어 겉치레 실적 위주로 흐르는 것은 미리부터 경계해야 할 점이다.

[사설] 수도권 공동생활권 협약, 의미있는 성과 보여줘야

김동연 경기도지사, 유정복 인천시장, 오세훈 서울시장이 또다시 만났다. 11일 수원의 옛 경기도지사 공관인 도담소에서 ‘수도권 공동생활권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서’에 서명했다. 정치색이 다른 수도권 3개 광역자치단체장의 만남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들은 지난해 7월 김포 마리나, 9월 인천 월미도, 올해 2월 서울 노들섬에서 만남을 가진 바 있다. 세 단체장은 처음 만남에서 경기-인천-서울 3자 간 대화채널 등 당적을 넘는 협력관계 구축에 뜻을 모았다.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여야나 진영, 이념은 별 의미가 없다고 했다. 경기·인천·서울은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어 이해관계가 얽힌 현안이 많다. 전국 인구의 절반인 2천600만여명이 살다 보니 교통·주거·환경 등 여러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 서울시 경제활동인구의 3분의 1 정도는 경기도에 거주하면서 서울로 출퇴근한다. 교통 문제에 있어 광역버스 노선과 횟수를 늘린다든가, GTX 노선 등 협의할 게 많다. 인천의 수도권매립지 종료 등 쓰레기 문제나 대기·수질오염 문제도 광역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다. 때문에 수도권은 지자체 간 광역행정 협의가 상당히 중요하다. 다양하고 복잡한 행정 수요에 부응하려면 당적을 떠나 지자체 간 협력·협치는 필수다. 수도권 단체장들이 잇단 회동을 통해 산적한 현안을 풀려는 노력은 바람직하다. 이번 만남에서 단체장들은 경기·인천·서울이 하나의 공동생활권임을 확인하고, 수도권 주민 삶의 질 향상에 협력하기로 했다. 이들은 협약에서 10개 과제 해결에 머리를 맞대기로 했다. 우선 공동 현안인 쓰레기매립지 문제와 교통망 확충에 적극 협력하기로 했다. 현재 3개 시·도는 △인천 서구 수도권매립지 종료 문제 △GTX, 지하철 5호선 검단·김포 연장선 등 광역교통 현안 △버스·지하철 등 공공요금 인상 등의 현안을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3개 시·도 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논의가 지지부진하다. 수도권 대체매립지 확보는 단체장 3명의 지난 지방선거 핵심 공약이었지만 환경부와 지자체 간 복잡한 이해관계로 답보 상태다. 3개 시·도와 환경부는 ‘수도권매립지정책 4자 협의체 최종합의서’에 서명했지만 2021년 대체매립지 조성 지자체 공모가 실패한 후 진전이 없다. 지하철 5호선 연장선 역시 노선안 등을 놓고 김포시와 인천시가 이견을 보이고 있다. 이번 협약을 계기로 3개 시·도는 수도권 주민의 불편 해소 등 현안 해결에 실질적인 추진력을 보여야 한다. 협력 운운하며 모여 사진만 찍고 끝나선 안 된다. “수도권은 하나의 공동생활권이자 공동운명체”라고 말로만 떠들 게 아니라 의미 있는 결실을 보여줘야 한다.

[사설] 양평 사태, 경기 동부권 전체가 예의주시/재개 안 하면 10개 시군 분노로 확산된다

전진선 양평군수와 방세환 광주시장, 이현재 하남시장이 모였다. 경기 동부권의 중심 축을 이루고 있는 지역 단체장이다. 목적은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 재개를 위한 연대다. 셋이 공동 입장문을 냈는데 내용은 이렇다. 3개 지자체가 강하IC를 포함한 고속도로 건설에 공동 노력할 것, 중첩규제로 고통받는 주민들의 생활환경 개선과 교통편익 증진에 노력할 것, 교산신도시 교통대책을 위해 고속도로의 ‘선교통·후입주’ 목표를 이행할 것 등이다. 3명은 모두 국민의힘 소속이다. 양평 고속도로 논쟁은 여야로 극명히 갈라진 정쟁이다. 소속 정당이 가는 방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시장 군수다. 또 정부가 정한 궤도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다는 현실적인 한계도 있다. 함께 모였다는 것 자체가 정치행위로 비칠 수 있다. 일부에서 ‘국민의힘 시장 군수 3명이 국민의힘 주장에 거수기를 한 것’이라고 평가 절하를 한다. 정말로 경기 동부권을 덮어온 반세기 지역 차별을 모르는 소리다. 이 하남시장이 말했다. “200만평 규모의 교산신도시 핵심 교통대책이 이 고속도로이기 때문에 이미 국토부와 LH 등에 입장을 전달한 상태다.” 방 광주시장도 말했다. “(광주)지역 주민들의 교통 분산 효과나 시민 편의를 위해 반드시 재개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 양평군수가 말했다. “동부지역의 균형 발전과 인근 여주와 (강원도) 홍천지역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 고속도로 개통에 함께 노력해주셔서 감사하다.” 당(黨)이 아닌 지역 목소리다. 전 군수의 지적이 옳다. 서울~양평 고속도로는 경기 동부지역 공통의 문제다. 여기에 강원도까지 이어가는 광역 교통의 핵심 인프라다. 서울, 경기동부, 강원 서부로 이어지는 중부권을 균형발전시키는 국가 산업자원이다. 가장 넓은 의미의 ‘광역(廣域) 교통’이다. 하남, 광주, 양평의 이날 목소리는 아주 작은 시작에 불과하다. 경기도 동부권 10여 지자체 모두가 들고 일어나야 한다. 가능하다면 강원도 인접 시·군도 함께해야 한다. 이번 논란의 창 끝이 어디를 향할지는 알 수 없다. 야당의 근거없는 의혹 제기를 겨눌 수도, 정부 여당의 무책임한 백지화를 겨눌 수도 있다. 아직 한쪽 방향으로 기울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아마도 이제부터 처리하는 모습에 따라 한쪽으로 쏠릴 것으로 보인다. 동부권 주민이 원하는 방향은 아주 간단하다. 여권에는 고속도로 사업 재개, 야권에는 제기된 의혹의 증명이다. 이거 못하는 쪽에 내년 총선에서 사라질 것이다.

[사설] 고엽제법 개정, 민간인도 피해 지원∙보상해야

고엽제후유증 인정 질병이 현행 20개에서 24개로 늘고 관련 보상과 유족 지원도 확대될 전망이다. 방광암을 비롯한 4개 질병을 고엽제후유증 질병으로 추가 인정하는 내용을 담은 ‘고엽제후유의증 등 환자지원 및 단체설립에 관한 법률(고엽제법)’ 개정안이 지난달 27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국가보훈부는 고엽제 노출과 질병의 상관성을 밝히기 위해 베트남전 참전군인(2세 포함)에 대한 역학조사와 연구를 지속 실시해 왔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갑상샘기능저하증, 다발성경화증, 방광암, 비전형 파킨슨증 등 4개 질병을 고엽제후유증으로 추가 인정하기로 결정했다. 법률 개정이 완료되면 약 2천800명이 고엽제후유증 대상으로 추가 인정된다. 이들은 보훈급여와 의료·취업·교육 지원 등 상이 국가유공자와 동일한 예우·보상을 받게 된다. 박민식 보훈부 장관은 “고엽제 피해에 따른 희생을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고, 보훈대상자의 경제·심리적 어려움을 세심히 살펴 보훈 사각지대가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고엽제후유증 환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대상자가 군인과 군무원으로 국한돼 있다는 것이다. 민간인은 제외돼 있다.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 근처에도 엄청난 양의 고엽제가 살포됐다. 미국과 우리 정부도 인정한 사실이다. 독극물 성분의 고엽제 피해는 다같이 입었는데 그 지역에 살던 주민은 배제한 건 이해가 안 되는 처사다. 고엽제후유증 대상 질병은 폐암, 후두암, 기관암, 만성골수성백혈병, 말초신경병 등 20개나 되며, 새로 4개가 추가된다. 고엽제로 인한 피해와 질병이 이처럼 심각한데도 정부는 민간인에 대해선 방치하고 외면해 왔다. 피해 지역 주민들은 고엽제로 인한 질병을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하고 오랜 세월 고통을 겪어 왔다. 경기일보가 파주 대성동마을의 고엽제 살포 실태를 보도하면서 민간인 피해 문제가 부각됐다. 파주시가 대성동 주민의 피해 지원을 위해 조례를 제정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정 의원(파주을)은 파주시와 함께 ‘고엽제 민간인 피해자 지원방안 마련을 위한 입법토론회’를 개최했다. 파주 대성동마을과 철원 생창리 주민들의 생생한 피해 증언이 있었다. 파주 민관정 대성동마을 주민 고엽제 피해조사단이 구성됐다. 14일부터 본격 활동에 나선다. 이에 앞서 11일 국회를 찾아 박정 환노위원장과 한기호 국방위원장에게 현행 고엽제법에 민간인이 포함되도록 법 개정을 당부했다. 고엽제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도 열었다. 보훈부 장관 말대로 ‘고엽제 피해에 따른 희생을 국가가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민간인만 배제해선 안 된다.

[사설] IAEA 총장, 국민의힘에도 교훈 남겼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가 ‘그로시 방한’을 평가했다. 민주당 등의 국제적 망신이었다고 했다. 실제로 전례를 찾기 힘들었던 험악한 일정이었다. 7일 김포공항에서는 귀빈실이 시위대에 막혔다. 공항 2층으로 우회했지만 역시 막혔다. 고함과 현수막이 일행을 둘러쌌다. 호텔 밖에서도, 외교부 공관에서도 시위는 이어졌다. 시위대와 경찰 간의 몸싸움도 있었다. 정의당 부대표가 연행되기도 했다. 시위대를 피하려는 일행의 민망한 사진들이 세계로 타전됐다. 상황은 민주당 방문에서도 이어졌다. 민주당 지도부의 거친 말이 환영사를 대신했다. ‘중립성을 상실한 일본 편향 검증’, ‘일본 맞춤형 부실 조사’ 등이다. 면담장은 다수 민주당 의원들의 집단 몰아붙이기 다름 아니었다. 그로시도 처음에는 메모도 하며 경청했다. 그러나 질문 내용이 반복되면서 예민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IAEA는 국제기구다. 활동의 근거는 과학 논리다. 핵 비확산 등 활동을 과학으로 제어한다. 그런 기구 책임자에게 보여준 비과학적 정치 행태다. 그로시 입장은 단호했다. 신뢰할 만한 연구소에 시료를 보내 분석했음을 설명했다. 미국 프랑스 중국 등에 한국도 포함됨을 강조했다. “(후쿠시마 방류수 등의) 삼중수소는 모든 국제적인 기준을 넉넉히 충족한다...(식탁 위 물을 가리키며) 저기에도 삼중수소는 들어있다”고도 했다. 한국 정치적 표현을 답에 사용하기도 했다. “나도 마실 수 있고 수영할 수 있다.” 한 발 더 나아갔다. 북핵부터 경계하라고 했다. “(한국인들은) 북핵 문제를 더 걱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쯤에서 국민의힘은 고무된 듯하다. 여론 환기의 계기라 여긴 듯하다. 윤 원내대표의 발언에도 그런 기대감이 있다. 오판이다. 그로시 방한에서 국민의힘도 절절히 배울 점이 있다. 그로시가 인터뷰 등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염수를 방류하면) 일반 대중은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 오염수 공포에 대해 공감을 표하고 있다. “그들에게 계속 설명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이해시켜야 하는 책임을 말하고 있다. ‘괴담·가짜뉴스’라는 표현은 입에 담지도 않았다. 국민의힘은 어땠나. 오염수 방류 반대 목소리를 무조건 ‘괴담’, ‘가짜뉴스’로 몰았다. 이해를 구하기보다는 윽박지르는 분위기로 끌고 갔다. 그렇지 않나. 여야 모두에 부끄러움을 준 그로시 방한이었다. 뻔뻔한 무지로 돌진했던 민주당이 부끄러웠고, 설명 책임 잊고 있는 국민의힘이 부끄러웠다. 한국 정치 전체가 IAEA 앞에 당한 망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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