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노인학대 전문 기관·인력 부족, 마냥 방치할 건가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빠른 수준이다. 지금 같은 추세라면 2050년쯤에는 한국이 가장 나이 든 나라가 될 것이란 전망이다.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다. 우리나라는 2018년에 고령사회에 접어들었고, 2025년부터 초고령사회가 된다. 초고령사회 진입을 눈앞에 뒀는데 노인 관련 각종 지표는 낙제점이다.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OECD 국가 중 1위다. 노인자살률도 OECD 국가 중 1위다. 육체적 질병과 정신적·경제적 어려움 등 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다. 빠르게 늘어나는 노인 인구를 지원하는 정책이 뒤따르지 못하는 현실이다.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노인학대다. 보건복지부의 ‘2021년 노인학대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37개 지역노인보호전문기관에 신고된 사례는 1만9천391건으로 전년 대비 14.2% 증가했다. 경기도에서도 매년 수천건의 노인학대가 발생한다. 도내 노인학대 신고는 2018년 1천855건, 2019년 2천151건, 2020년 2천427건, 2021년 2천732건, 지난해 3천51건으로 매년 증가세다. 하지만 노인학대를 담당하는 전문 기관과 인력은 크게 부족하다. 노인학대 관련 업무는 노인보호전문기관에서 맡고 있다. 여기에서 노인학대 신고 접수와 현장 조사, 방문·내방 상담, 학대 예방 활동 등을 한다. 도내에 노인보호전문기관은 수원, 성남, 부천, 고양, 의정부 등 권역별로 5곳에 위치해 있다. 한 기관 당 5개에서 7개 지역을 관할한다. 전문기관 내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전문기관별 9명씩, 45명이 전부다. 지난해 기준 상담인력 1명이 약 67건의 노인학대 사례를 관리했다. 인력 부족으로 학대 유형은 갖가지인데 세심한 관리를 못하는 상황이다. 사후관리도 제대로 안 되고 있다. 학대 행위자와 피해자 격리를 위한 학대피해 노인전용쉼터가 부족하다. 도내 전용쉼터는 의정부와 부천, 용인 등 세 곳이 고작이다. 학대피해 노인전용쉼터에선 노인을 분리시켜 보호하고 심신치유 프로그램, 법률 상담 등을 한다. 입소 기간은 4개월에서 최대 6개월이다. 전용쉼터는 한 곳당 5명씩만 수용이 가능해 시설이 크게 모자른다. 세 곳의 전용쉼터로는 격리를 원하는 학대피해 노인을 감당하기 어렵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1월 보건복지부에 학대피해 노인 누구나 쉼터를 이용할 수 있도록 각 지자체에 노인전용쉼터 설치를 권고했지만 달라진 게 없다. 학대피해 노인을 위한 전용쉼터를 늘리고, 학대를 막기 위한 사회적 제도와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사설] 양평군, 경기도의 감사 착수 납득할까/정치 중립 위반, 남양주 정치 감사 추억

경기도가 양평군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다. 감사 대상은 군(郡) 일부 공무원들의 근무태도다. 정치 중립 의무와 복무 규정 위반 혐의다. 감사 대상은 지주연 부군수와 공무원 10여명이다. 이번 감사청구자는 더불어민주당이다. 민주당 경기도당과 도의회 민주당이 감사를 요구했다. 21일 민주당 도당과 도의회 민주당 ‘서울~양평 고속도로 진상규명 TF’가 도 감사관실에 접수했다. 각하 사유가 없는 한 감사는 일단 진행되는 것이 맞다. 양평 고속도로 사업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지난 9일 전진선 양평군수가 여의도 민주당사를 항의 방문했다. 민주당 규탄 기자회견도 열었다. 지 부군수와 공무원 10여명이 그 자리에 배석했다. 민주당은 ‘부군수와 공무원들이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군의 ‘서울~양평 고속도로 추진 재개 TF’ 소속 공무원 20여명도 감사 대상이다. 이들이 사업 재개 군민 서명 운동을 독려한 것이 공무원 복무규정 위반이라는 것이다. 도는 우선 내사 형식으로 혐의점을 확인하겠다고 한다. 그 후 규정 위반 등이 입증되면 처분에 나서겠다고 설명한다. 이쯤에서 민선 7기 남양주 감사가 떠오른다. 전형적인 정치 감사였다. 경기도가 재난 지원금을 지역 화폐로 지급하기로 했다. 지역 화폐는 이재명 지사의 대표적 정치 치적이었다. 이를 남양주가 거부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감사 과정에서도 정치적 조사 논란이 있었다. 반발하는 남양주 공무원 16명을 무더기 징계했다. 부적절한 발단은 부적절 결론으로 끝났다. 헌법재판소가 ‘경기도 감사 잘못’을 결정했다. 도가 16명에 게 사과했다. 양평 감사에서도 정치 냄새가 진동한다. 의혹은 정치에 따라 쪼개진다. 어느 주장이든 내 편 아니면 상대편 주장이다. 분명한 것은 하나다. 고속도로 사업 재개에 대한 양평군민 소원이다. 양평 공무원은 이걸 받들었을 뿐이다. 감사 청구권자도 더불어민주당이다. 김동연 지사도 ‘의혹’에 의견을 더했다. 그의 발언 역시 상대 정파 눈에는 감사 대상이다. 이런 와중에 탈(脫)정치 감사 결과를 낼 수 있겠나. 민선 8기 김동연호 감사팀 출범 1년 돼 간다. 출범 초기 한 관계자가 말했다. “민선 7기 남양주 감사는 잘못된 것이었다. 민선 8기는 그런 감사 하지 않겠다.” 소신 있어 보여 좋았다. 그런 감사팀에 정치권이 던진 건이 올라왔다. 어느 쪽을 택해도 정치에 휘말릴 건이다. 소신 있게 다룰 수 있겠나. 경기도지사, 양평군수를 걱정하는 건 아니다. 정치와 무관한 경기도 감사팀, 양평군 공무원들을 걱정하는 것이다.

[사설] 안성, 2조4천억 반도체 소부장 산업 품다/정치권 역할 평가하고 정부 결정 환영한다

소재 부품 장비 업종을 소부장 산업이라 한다. 우리 산업의 중심인 제조업의 뿌리다. 반도체 소부장 산업은 특히 그렇다. 그 중요성이 강조된 것이 2019년 7월이다. 일본의 대한(對韓) 수출 규제를 겪으면서다.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자립의 절절함이 제시됐다. 2020년부터 정부가 소부장 으뜸기업을 선정하고 있다. 이 역시 2019년의 ‘소부장 산업 위기’가 낳은 교훈이다. 이 중요한 소부장 산업 중심지가 경기도로 결정됐다. 안성시 보개면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20일 반도체 소부장 특화단지를 지정해 발표했다. 안성시 보개면 동신리 일원이다. 157만㎡ 규모에 사업비 6천747억원이 투입된다. 2026년 착공하면 2030년 준공될 계획이다. 안성 지역이 얻게 될 경제 효과가 엄청나다. 생산유발 효과만 2조4천400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분석된다. 새로 만들어지는 일자리도 1만6천여개로 추정된다. 안성 지역 역사에 남을 대규모 산업 기반 입지 사업이다. 지역민에 돌아갈 이익이 크다. 우리도 정부의 이번 지정을 환영한다. 아울러 지극히 합리적 결정이었음을 높이 평가한다. 용인과 평택은 세계적 반도체 집적 단지다. 이번에도 정부는 국가첨단전략산업 반도체 특화단지로 용인과 평택을 지정했다. 용인 남사(삼성전자), 용인 원삼(SK하이닉스), 용인 기흥(삼성전자), 평택 고덕(삼성전자)이다. 이와 인접해 있는 안성이다. 세계적 반도체 집적단지와의 접근성에서 단연 이로운 지역이다. 여기에 무한한 가능성도 감안됐을 것이다. 이쯤에서 아주 현실적인 평가도 하고 갈까 한다. 유치를 위한 지역의 노력이다. 앉아서 챙긴 결과가 아니다. 치열했던 경쟁이 있었다. 고양, 성남, 평택, 오산도 도전했었다. 평택은 반도체 산업단지 해당 지역이다. 대단지 접근성에서는 오산도 유리했다. 고양과 성남은 노동력 인프라가 풍부했다. 그런데 정부는 안성을 택했다. 유치 과정의 노력이 인정돼야 할 것이다. 김학용 국회의원의 의정 활동과 김보라 시장의 노력이 평가 받아야 할 것이다. 경기도는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중심지다. 삼성전자 수원 시대부터 견인해온 역사다. 하이닉스 이천 시대가 SK로 이어져온 역사다. 위대한 대한민국을 이끄는 경기도의 힘이다. 스쳐가는 정치가 섣불리 논하지 못할 숭고한 역사다. 반도체 소부장 단지 결정이 또 하나의 역사가 됐다. 위대한 경기도에 힘을 보태는 역사가 됐다. 정부의 국가첨단전략산업 반도체 특화단지 용인·평택 지정을 환영한다. 특히 반도체 소부장 특화단지 안성 지정을 환영한다.

[사설] 교권보호 없으면 교육의 미래 없다

지난 18일 서울 서초구 소재 서이초등학교에서 2년 차 교사가 극단 선택을 한 자살 사건이 교육현장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서울교사노동조합 등에 따르면 A씨는 학생의 학교폭력 사안을 처리하던 중 일부 학부모의 지속적인 민원과 압박에 시달렸다. 특히 한 학부모는 자신의 딸이 화장실에 가는 것까지 수시로 체크하고, 수업시간에 자리까지 정했다고 주장했을 정도로 지속적으로 A씨를 위협하고, 또한 집에서 자살하면 개인사로 처리된다고 말했다는 의혹도 인터넷을 중심으로 제기됐다. 최근 학생 간 갈등으로 학부모로부터 교사들이 받고 있는 교권침해 실태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더욱 심한 것은 교내에서 학생들로부터 교사가 폭행을 당하는 사례까지 발생했다. 지난달 인천 소재 한 초등학교 특수반 학생이 교사의 머리카락을 잡고 넘어뜨려 교사가 크게 다친 사건도 발생했다. 이와 같은 교권 침해 사례는 최근 5만건이 넘는다. 2020년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수업으로 잠잠했던 교권 침해 건수가 2021년부터 다시 늘기 시작해 지난 해 상반기에만 1천500여건이 발생했다. 교권침해 유형으로는 학부모의 갑질 등 모욕이나 명예훼손이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가장 많으며, 상해와 폭행도 약 10%에 달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학교 당국은 물론 교육청과 같은 상급기관도 교권보호에 대해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어 교사들의 사기는 최악의 상황에 놓여 있다. 교권침해를 당한 억울한 교사가 소송을 제기해도 교육청이 소송비를 제공한 것은 최근 4년간 불과 31건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이유 등으로 중간에 명예퇴직하는 교사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지난 5월 한국교육개발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2005년 교사 명예퇴직자 수는 879명이었지만, 2021년에는 무려 7.5배 수준인 6천594명으로 교권침해를 주요 요인으로 들고 있다. 이번 서이초 여교사 사망 사건은 우리에게 한 명의 젊은 교사가 교권이 침해된 현장에서 얼마나 힘든 상황에서 살아가고 있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번 사건에 대해 경찰 등 수사당국과 교육청은 철저하게 조사해 사건의 진실을 밝혀야 함은 물론 교권을 침해한 학부모에 대하여는 고발조치해야 한다. 교권침해를 제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장치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 교원지위법을 개정, 학부모에 의한 교권 침해 처리 방안을 규정해야 한다. 이주호 교육부장관은 21일 교원과의 현장 간담회에서 정당한 교육활동이 위축되지 않도록 학생인권조례를 등을 정비하겠다는 약속을 이행해 교권보호에 최선을 다 해야 된다고 밝혔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학부모와 교사 간 상호 존중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소통과 협력을 이루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이다. 특히 학부모들은 교권보호가 없으면, 한국 교육의 미래가 없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설] 같은 경기국제공항인가, 다른 경기국제공항인가

경기국제공항 관련 연구용역이 시작됐다. 경기도가 19일 ‘경기국제공항 건설을 위한 비전 및 추진 방안 수립 연구 용역’을 공고했다. 연구용역 비용은 2억5천만원이다. 내년 8월까지 11개월간 진행된다. 지난달 통과한 ‘경기도 국제공항 유치 및 건설 촉진 지원 조례’에 근거한 용역이다. 당시 조례는 논란 끝에 ‘군 공항’을 제외하는 조건을 달고 통과됐다. 당연히 용역에도 ‘군공항’은 배제될 것으로 해석됐다. 그래서 관심이 컸던 게 용역의 과업이다. 공개된 과업 내용은 이렇다. 경기국제공항 건설의 필요성과 항공 수요 등 여건 분석, 공역권·환경 훼손 최소화·주변 교통 인프라·산업 등의 연계성 등을 종합 고려한 복수 후보지 제시, 후보지별 관광·물류·산업 등과 연계한 환경친화적인 배후지 개발 계획 및 교통 체계 구상 등이다. 군공항을 전제하거나 연계된 부분은 보이지 않는다. 순수 민간 공항 건설을 위한 용역에 충실히 맞춰져 있다.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복수 후보지 제시’ 항목이다. 두 개 이상의 후보지를 올리도록 지시하고 있다. 공역권, 환경, 교통 등을 검토 조건으로 제시하고는 있다. 그러면서도 ‘복수(2개 이상의 후보지)를 명하고 있다. 예상과 다른 부분이다. 경기국제공항의 개념적 출발은 수원군공항 이전이었다. 김동연 도지사의 국제공항 공약도 여기서 출발했다. 6월 조례가 통과된 이후에도 이런 잔상은 남아 있었다. 그런 예상이 ‘복수 후보지 추천’으로 완전히 깨졌다. 후보지 선택부터 시작하는 신규 사업인가. 같은 날 공교로운 일이 있었다. 수원에서 열린 당정 정책간담회다. 이재준 시장이 ‘경기국제공항 사전타당성검토 용역’의 조속한 추진을 촉구했다. ‘예산까지 편성된 관련 용역이 추진되지 않고 있다’며 지원을 호소했다. 김영진·백혜련·김승원 의원이 지원에 나서겠다고 약속했다. 이 용역은 국토부가 추진하는 것이다. 수원군공항 이전을 전제로 추진해온 사업이다. 같은 날 있었던 두 경기국제공항 뉴스다. 헷갈린다. 정리돼야 하지 않겠나. ‘수원 국제공항’은 많이 알려져 있다. 도민의 의사표시도 분명하다. 많은 수원시민이 찬성한다. 많은 화성시민은 반대한다. ‘경기도 국제공항’도 경기 남부 중요 사업이다. 그런데 찬성도 뚜렷하지 않고 반대도 확실하지 않다. 도민의 뜻이나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다. 도가 정리해준 게 없다. 도민 앞에 ‘경기도가 생각하는 경기국제공항’을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다 설명할 수 없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할 수 있는 만큼이라도 설명해야 한다. 수원시가 말하는 경기국제공항이 있다. 경기도가 말하는 경기국제공항이 있다. 같은 경기국제공항인가. 다른 경기국제공항인가.

[사설] 생명존중 ‘자살예방교육’, 직장 의무화도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통계청의 ‘한국의 안전보고서 2022’에 따르면 한국의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24.1명이다. OECD 평균 자살률(11.1명) 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우리나라 청소년(10~24세)의 자살률은 OECD 회원국 중 네 번째로 높다. 10~20대의 자살은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됐다. 지난달 21일 학교에서 자살예방교육을 의무적으로 받도록 하는 ‘자살예방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청소년의 자살을 예방하고 생명존중문화를 조성하기 위한 것이다. 자살예방교육 의무화는 학교와 함께 국가기관, 공공기관에서도 실시된다. 기업은 의무교육 대상에서 빠졌다.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자살 문제도 심각하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2021년 우리나라 근로자 자살위험도 평가’를 보면, 근로자의 사망 외부원인 중 자살이 55.1%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직장인들은 하루의 대부분을 일터인 직장에서 보낸다. 집보다 직장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근로자들은 직장에서 겪는 어려움을 가족에게 털어놓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주변 직장 동료에게도 말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심한 경우 극단적인 선택인 자살로 이어진다. 주요 원인은 직장 내 폭력, 괴롭힘, 감정노동 등이다. 때문에 직장에서도 자살예방교육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폭언·폭력·괴롭힘 등으로 자살을 생각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생명존중교육이 시행되면 직장 갑질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한국형 표준자살예방교육 프로그램인 ‘보고 듣고 말하기’를 보면, ‘듣기’ 부분에서 강조되는 것 중 하나가 듣는 사람의 역지사지 태도다. 주의 깊게 경청하고,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는 것이 상대방과 자신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듣기’로, 이 과정에서 생명 존중을 다시 한번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직장 내 생명존중교육이 의무화되면, 게이트 키퍼(생명지킴이)를 양성해야 한다. 게이트 키퍼는 자살 위험성이 높은 사람을 발견, 자살예방센터 등 전문기관에 의뢰·연계하는 사람이다. 세계적으로 게이트 키퍼 양성은 중요한 자살 예방정책으로 인정받고 있다. 우리도 자살예방교육을 통해 일터에서 게이트 키퍼를 키워낼 필요가 있다. 아직 대부분의 민간기업에선 생명존중교육에 별 관심이 없다. 시·군 자살예방센터에선 교육에 기업 참여를 권고하지만 민간기업의 자발적 참여는 크게 떨어진다. 근로자 복지 차원이든, 직장 내 분위기 쇄신을 위해서든 생명존중교육은 필요하다. 공공기관 의무화에서, 민간기업으로의 확대가 필요하다.

[사설] 186가지 국회의원 특권… ‘더 평등한 어떤 동물’들인가

지난 17일 제헌절 날,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빗속에도 한 집회가 열렸다. ‘국회의원 특권 폐지 국민총궐기대회’다, 물난리에 가려지긴 했지만 “국민의 명령이다. 특권을 폐지하라”고들 외쳤다. 그러나 정작 그 특권의 당사자들은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필시 “아무리 떠들어 봐라” 했을 것이다. 이 나라 국회의원들이 누리는, 그 어이없는 특권들은 그들 스스로 입법권을 휘둘러 치장한 것들이다. 그들 특권을 확대하고 공고화하는 데에는 싸움질도 없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떠올리게 하는 국회다. 그 농장의 일부 살찐 돼지들은 이렇게 강변한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국회의원특권폐지국민운동본부라는 단체까지 생겨났다. 현재 국회의원 특권은 불체포특권을 비롯해 186가지에 이른다고 한다. 하다못해 KTX 승차권 취소 위약금도 국민세금으로 때울 정도다. 지난 10년간 국회는 자신들이 쓰는 예산을 40%나 더 키웠다. 2017년에는 보좌진이 부족하다며 8급 비서관을 신설, 9명이나 거느린다. 코로나19로 국민들이 허둥지둥할 때도 국회의원들은 그들 수당을 또 올렸다. 일본이나 뉴질랜드 의원들이 국민고통을 분담한다며 20% 삭감했던 시기다. 국회의원은 월평균 1천300만원의 수당을 받는다. 차량유지비와 기름값도 월 150만원에 이른다. 설과 추석에는 414만원씩 모두 828만원의 명절 휴가비를 받는다. 의원과 보좌진 9명의 인건비만 의원실 1곳당 7억원 가까이 나간다. 연간 1천여만원의 공무수행출장비도 쓴다. 주로 지역구에 내려가느라 KTX 등 기차를 타는 데 쓴다. 해외 출장을 갈 때는 비즈니스석을 타고 공항 귀빈실을 쓴다. 여간 부지런해서는 186가지나 되는 특권을 다 쓰지도 못할 것이다. 이러니 ‘그깟 정치 현수막 특권쯤이야’ 하며 쇠귀에 경 읽기 식으로 버티는 것이다. 하나하나 뜯어 보면 구차하기까지 한 국회의원 특권들이다. 국민 세금이 아까워서도, 배가 아파서도 아니다. 문제는 그 과도한 특권 때문에 우리 국회의 품질이 갈수록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다. 기름진 음식일수록 쉬파리가 더 꼬이기 마련이다. 땀 흘려 일하는 선량한 시민들은 그 정치 쉬파리들을 당해내지 못한다. 쇠심줄같이 낯이 두껍고 질겨서다. 내년 총선부터는 국민들이 국회의원 단임제를 성취해내야 한다. 모두 물갈이하고 4년 후 또 바꾸는 식이다. 전문성, 국회의원은 필요없다. 건강한 시민적 상식인이면 족하다. 4년간 평균임금 수준만 받고 일한 뒤 본래의 생업으로 돌아가는 국회의원. 그나저나 칼자루를 온통 저들이 쥐고 있으니, 시름만 깊은 화두다.

[사설] 경기도내 상습 침수 지하차도, 전수조사 후 대책 세워야

지하차도 침수로 시민들이 목숨을 잃는 참사가 반복되고 있다. 지난 15일 내린 극단적 폭우에 충북 청주의 오송 지하차도에서만 14명이 사망했다. 예고된 폭우였는데도 대비가 허술해 인명피해를 키워 안타깝고 황망하다. 오송 참사는 재난·재해 대응 기관들의 총체적 부실이 부른 인재(人災)라는 지적이다. 지하차도 침수는 수해 때마다 반복됐다. 2014년 부산 동래구 우장춘로 지하차도, 2020년 부산 동구 초량 제1지하차도 침수로 시민들이 어이없게 숨졌다. 지난해 9월에도 태풍으로 경북 포항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침수돼 주민 7명이 사망했다. 모두 쏟아지는 비에 순식간에 거대한 저수지로 돌변한 지하공간에서 일어났다. 경기도에도 상습적으로 잠기는 지하차도가 여러군데 있다. 수원의 화산 지하차도는 폭우 때마다 침수된다. 지하차도에 물이 들어찰 때를 대비해 8개의 배수펌프를 설치했지만 배수펌프 집수정의 용량이 작다. 여기에 인근 서호천으로 배수가 이뤄져 집중호우 시 하천 수위가 오르면 제대로 배수 기능을 하지 못 한다. 안산의 신길 지하차도도 큰비가 내리면 금방 물웅덩이가 생기고, 빗물받이와 하수구에 부유물이 쌓인다. 지하차도가 신길천 수위보다 낮게 설계돼 우수 유입량이 과다하면 배수펌프가 제 구실을 못 하게 된다. 경기도내 지하차도는 모두 288곳이다. 비교적 지대가 높은 일부 지하차도를 제외하고는 지하차도의 물을 배출시키는 배수펌프가 설치돼 있다. 배수펌프는 각 지자체에서 관리하며, 수위 변동에 따라 자동으로 작동된다. 문제는 단기간 내 지하차도 수위가 오르면 펌프가 배수할 수 있는 양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하천 가까이에 위치한 지하차도는 배수를 하천으로 하게 되는데 폭우로 하천 수위가 높아지면 배수 자체가 원활하지 않다. 기계식 배수펌프가 있는 곳은 침수로 인한 배전선 고장 위험에 노출돼 있다. 각 지자체에선 폭우 때 실시간 모니터링과 현장 통제 등으로 지하차도 침수를 예방한다고 하는데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배수펌프 처리 용량을 늘려야 한다. 일정량의 비가 내릴 경우 이를 알리는 전광판과 자동차단시설도 설치하는 등 다각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안양시는 도내 처음으로 6개의 지하차도 입구에 행정안전부 재난대응 시스템과 연계되는 차량 차단봉과 전광판을 설치했다. 도로가 20cm 이상 침수돼 차량 운행이 어려울 경우 차단봉을 내려 차량 진입을 차단하고, 전광판에 안내 문구를 띄우는 방식이다. 집중호우로 인한 자연재해를 완전히 피해갈 수는 없지만, 철저히 대비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게 국가와 지자체의 책무다. 도내 상습 침수 지하차도를 전수조사해, 대책을 세워야 한다. 오송 참사가 남의 일이 아니다.

[사설] 이천시립 화장장, 위법∙부당 행정이었다

경기도가 의미 있는 감사 결과를 밝혔다. 이천 시립 화장장 건립 과정을 살펴본 감사다. 당초 2010년부터 추진됐던 사업이다. 주민 갈등으로 무산된 뒤 2019년 재추진됐다. 공모를 통해 2020년 8월 후보지를 선정했다. 이천시 부발읍 수정리를 후보지로 선정했다. 17만9천㎡ 부지에 화장로 4기를 갖춘 시설이다. 350억원을 들여 2024년 12월 준공 예정이었다. 이 사업 추진이 위법과 부당행위 투성이였다. 모든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할 정도다. 행정안전부가 2021년 11월 투자 심사 결과를 시에 통보한다. ‘재검토’다. 관련 예산을 편성하면 안된다. 그런데 이천시는 2022년 예산에 시설비 45억원을 편성한다. 2022년 6월3일 다시 ‘재검토’가 통보된다. 역시 편성한 관련 예산을 감액 처리해야 한다. 하지만 이천시는 또다시 예산을 살렸고 2023년 예산으로 이월한다. 실무투자심사위원회를 구성해 투자 사업을 심사해야 하는 절차도 위반했다. 행안부 지시 위반과 자체 절차 무시였다. 무엇보다 중요하고 질 나쁜 위법 행정이 있다. 화장장은 현실적으로 대표적인 주민기피시설이다. 그래서 주민 의견 수렴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이천시는 이걸 하지 않았다. 최소한 소홀히 다루고 넘어갔다. 화장시설 건립 관련 전략환경영향평가 수행 과정에서 전략환경영향평가서 초안의 공고 시 게시물 첨부파일에서 초안의 내용을 누락했다. 사업지는 이천시와 여주시 경계 지역이다. 그런데 이천시 주민만 대상으로 설명회를 개최했다. 지난 4월 여주시 매화리 주민들이 삭발식을 했다. 이천시의 화장장 사업을 강력 규탄했다. 여주시민은 모르게 진행됐다고 주장했다. 100억원의 토지 보상금 문제도 거론됐다. 이때만 해도 통상적인 화장장 건립 갈등 정도로 봤다. 이천시장도 “화장장 입지 변경은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여기서 등장한 것이 주민감사청구다. 166명의 시민이 연대해 법률적 요건을 구비한 감사를 청구했다. 경기도가 감사했고 심각한 실태가 드러났다. 행안부 지시도 ‘무 잘라 먹듯이’ 무시했다. 없애야 할 예산 세우고, 이월시켰다. 주민 설명회는 귀찮았는지 생략해 버렸다. 이천시민과 여주시민을 차별까지 했다. 이렇게 해서 편하고 빨리 가려고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최종 결과가 어떤가. 경기도 감사 책임자가 설명했다. “이 사업 추진을 위해선 다시 행정절차를 밟아야 한다.” 사실상 백지화라는 것이다. 이천시 행정에 대한 신뢰는 이미 무너졌다. 다시 추진한들 동의를 얻을 수 있겠나. 화장장 행정의 어려움은 안다. 그렇더라도 이렇게 해선 안 됐다. 장사(葬事) 행정의 나쁜 예가 됐다.

[사설] 서울 광역버스 하루 6천원, 정부 ‘요금인상’ 뒷짐만 질건가

서울시가 대중교통 요금을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경기·인천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의 시름이 깊어졌다. 서울과 수도권 주요 도시를 직접 연결하는 광역버스 비용 부담이 30% 늘어나기 때문이다. 서울시의 ‘대중교통 요금조정안’에 따르면 8월12일부터 광역버스 기본요금이 기존 2천300원에서 3천원으로 700원 오른다. 무려 30.4% 인상이다. 순환·차등버스(1천100→1천400원, 27.3% 인상), 간·지선버스(1천200→1천500원, 25.0%), 심야버스(2천150→2천500원, 16.3%)보다 높은 인상률이다. 서울 지하철 요금도 10월7일부터 1천250원에서 1천400원으로 150원 오른다. 내년 하반기 150원을 추가로 올릴 예정이다. 2차 인상분까지 고려, 1천550원을 적용하면 지하철 요금 인상률은 24.0%다. 광역버스 요금만 30% 넘게 올라 수도권 승객들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더 커졌다. 매일 광역버스를 타고 출퇴근하는 사람들은 하루 왕복 6천원이 든다. 서울시가 대중교통 요금 인상을 추진하자, 다른 지자체에서도 줄줄이 인상 계획을 내놓고 있다. 앞서 인천·광주시가 지하철 요금을 이달 1일부터 올렸다. 서울과 교통망이 이어져 있는 경기도도 수도권 전철 통합요금제에 따라 지하철 요금을 인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울산시도 시내버스 요금을 다음 달 최대 19.6% 인상하며, 대구·부산시도 하반기 지하철·시내버스 요금 인상을 계획하고 있다. 서울시의 대중교통 요금 인상은 지난해 말부터 예고돼 왔다. 서울시는 운송원가 상승에다 65세 이상 노인 무임승차 등으로 지하철 및 버스 운영기관의 적자를 감당할 수 없다며 기획재정부에 예산 지원을 요구했다. 기재부는 지하철 요금 및 무임승차 허용 여부 등은 지자체 고유 사무라며, 이에 따른 손실보전도 지자체가 결정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기재부는 한국전력공사의 적자를 만회하기 위한 전기요금 인상을 제어했고, 라면·제과 등의 가격 인하를 위해 민간기업을 압박하는 등 물가를 낮추기 위해 적극적이었다. 이에 반해 서울시 교통요금 인상에 대해선 나 몰라라 하고 있다. 고물가시대를 맞아 서민들의 삶은 고달프고 불안하다. ‘시민의 발’인 버스와 지하철 요금까지 오른다니 여기저기서 한숨소리가 크다. 가계소득은 정체 또는 퇴보 상태인데, 대중교통 요금까지 오르면 살림살이는 더 피폐해진다. 대중교통 요금 인상은 최대한 신중하고 보수적으로 결정돼야 한다. 정부는 남의 일처럼 팔장만 끼고 있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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