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김동연 지사, (양평고속도로) 현장에 온 적 없다’

현장 행정은 무조건 좋은 것인가. 집무실 행정 비중은 어느 정도인가. 무 자르듯 내릴 답은 아니다. 우매한 듯한 이 논쟁이 일었던 적이 있다. 김문수씨가 도지사로 취임했던 2006년 하반기다. 연일 현장을 누비는 그의 일정이 화제였다. 관선(官選) 도지사였던 이재창 의원이 국감장에서 이걸 지적했다. ‘도지사가 너무 돌아다니는 것도 안 좋다. 집무실에서 차분히 도정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김 지사가 되받았다. ‘나는 현장을 계속 뛰겠다.’ 그때도, 지금도 답은 없다. 굳이 우답(愚答)이라도 낸다면 이럴 것이다. 현안의 성격에 따라 달라진다. 여론·현장이 중요하면 가야 하고, 판단·논리가 중요하면 안 갈 수 있다. 그렇다면 양평고속도로 논란은 어느 쪽이 맞나. 김동연 도지사가 현장을 가는 게 옳은가. 아니면 가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이 화두가 난 데 없이 도의회 본회의에 등장했다. 이혜원 도의원(국민의힘·양평2)이 물었다. “김 지사는 (논란 이후) 현장을 온 적이 있는가.” 도민에게 보여진 김 지사 모습이 있다. 양평고속도로 문제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다양한 방식으로 여러 차례 의견도 개진했다. 기자회견을 열어 언론 앞에서 밝혔다. MBC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대담도 했다. 칠판에 그림까지 그려가며 설명했다. 이런 적극성 때문에 ‘양평고속도로 일타강사’라는 별칭도 생겼다. 국토부 결정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혜로 비칠 수 있는 근거를 열거했다. 당초 원안을 유일한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런데 좀 생뚱맞다. 되돌아보니 양평에서는 안 보였다. 양평 지역구인 이 의원에게 이게 서운했던 모양이다. 김 지사도 인정했다. “(양평고속도로) 현장 방문은 일정 때문에 아직 못 간 것이다.” 바빠서 못갔다는 해명으로 들린다. 조만간 가겠다는 설명으로 들린다. 글쎄다. 사안의 중대성을 낮게 본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랬다면 앞서의 많은 주장을 할 이유가 없다. 긴급 기자회견 열고, 라디오 방송국까지 찾아갈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이 의원이 지적했다. “김 지사가 인터넷 라이브 방송에서 1.6㎞ 구간만 연결하면 된다고 했는데 해당 구간은 16㎞다.” 김 지사가 ‘생방송 중 착각’이라고 해명했다. 착각할 수 있다. 그런데 ‘현장에 간 적 없다’는 전제 때문에 다르게 들린다. 현장을 모르니 1.6㎞와 16㎞를 혼동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국토부 장관부터 직원, 여야 정치권, 신문·방송, 유튜버들까지 양평에 진을 치고 있다.  당연히 가는 게 옳았다고 본다. 양평고속도로 논란의 본질은 선택이다. 선택에 대한 의견 표출은 여론이다. 그 여론이 극명히 표출되는 곳이 양평이다. 김문수 지사는 물론 갔을 것이고, 이재창 지사라도 분명히 갔을 것이다. 

[사설] 공사중단 방치된 건축물, 철거하거나 활용방안 찾아야

전국 곳곳에 짓다가 멈춘 ‘공사 중단’ 건물이 수두룩하다. 뼈대만 드러낸 채 10년, 20년 장기간 방치된 폐건물들이 흉물스럽다. 철골조가 녹슨 채 버려졌거나, 너저분하게 쌓여 있는 건축 자재들은 미관을 해칠뿐 아니라 붕괴 등 안전 문제가 우려된다. 범죄 발생 위험도 있다. 주민 통행이 빈번한 곳의 폐건물은 건축자재가 언제 떨어져 내릴지 몰라 불안하다. 주민들이 폐건물에 대한 안전 조치나 철거 등 민원을 제기하지만, 지자체에선 사유재산이라 강제 처분이 어려운 실정이다. 분기별 점검을 통해 관리를 하고 있다지만 한계가 있어 골칫거리다. 경기일보가 경기도내 장기 방치된 폐건물을 점검했다. 자금 부족으로 공사가 중단된 과천시 문원동의 공동주택은 공정이 13%에 그친 채 13년째 방치돼 있다. 양평군 청운면 삼성리의 건물은 21년 전 소송으로 인해 공정 40%에서 공사가 중단됐다. 새까만 건물은 흉물스럽고 주변엔 건축자재 쓰레기가 쌓여 있다. 남양주시 화도읍 금남리의 뼈대만 앙상한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5층 규모의 숙박시설로 계획됐지만 50%만 지어진 채 29년째 방치돼 있다. 경기도에 공사 중단으로 장기 방치된 건축물은 33곳이다. 평균 18년 이상 됐다. 이들 건축물은 자금부족(16곳), 부도(13곳), 소송(3곳), 사업성 부족(1곳) 등의 이유로 공사가 중단됐다. 정부와 지자체는 이런 건축물에 대해 3년 단위로 실태조사를 해 분쟁 조정, 자진 철거 유도, 안전조치 명령 등의 관리를 하고 있다. 붕괴 등 안전사고나 범죄 위험이 있는 곳 등은 철거 명령도 가능하지만 사유재산이라 적극 간섭할 수 없어 쉽게 강제 처분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이다. 건축주와 시행사, 시공사, 소유주 등 권리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철거 명령이나 공사 재개가 어렵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회가 건축물의 철거와 정비를 촉진하는 법안을 발의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송기헌 의원이 지난 4월 발의한 ‘공사중단 장기방치건축물 정비 특별조치법’은 공사 중단 20년 넘은 건축물은 시장·군수가 심의한 뒤 철거를 명할 수 있다. 또 10년 이상 건축물에 대해 유해성 실태조사 후 결과에 따라 건축주에게 안전조치 명령을 내리도록 했다. 20년 넘게 공사가 중단된 경우 건축물로서 사용 가치가 떨어져 철거가 바람직하다. 하지만 비교적 짧은 시간 방치된 건축물은 용도 적합성과 안전성 등을 심의해 리모델링 등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게 할 필요가 있다. 실효성 높은 다양한 해법 마련이 절실하다.

[사설] 편의점 도시락에 태운 이천쌀 완판 꿈/1천300만 도민부터 앞장서 팔아주자

이천 농민들의 소망이 담긴 도시락이 있다. ‘임금님표 10찬 반상 도시락’과 ‘임금님 비빔밥’이다. 이마트24 편의점이 만들어 8월31일 출시한 제품이다. 엄밀히 공적 개념이 없는 사기업 제품이다. 그럼에도 이 제품 판매 활성화에 이천지역 꿈이 담겼다. 이천의 임금님쌀을 사용하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이천쌀 전문 조리장의 감수도 받았다. 반찬 역시 기본적으로 이천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우선 사용한다. 이천시가 공개적으로 판촉 활동에 나섰다. 지난 1일 김경희 시장이 직접 시식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 김하식 시의회 의장과 지역 농협 관계자 등 30여명이 참석했다. 이어 4일에는 이천시의회가 주관하는 시식회도 열렸다. 김 의장을 비롯한 시의원들과 김 시장 등이 또 한 번 자리에 모였다. 시와 시의회가 한마음으로 나선 이유는 간단하다. 이천쌀 소비다. 지난해 쌀이 남은 상태에서 햅쌀을 추수하는 일이 많다. 국내 쌀 소비량 감소는 이제 새삼스럽지도 않다. 통계청의 양곡소비량조사에 관련 통계가 있다. 지난해 1인당 연간 쌀소비량은 56.7㎏이다. 지난 1992년 소비량 112.9㎏과 비교하면 절반이다. 최근 10년만 놓고 보면 연평균 2%씩 감소했다. 1982년부터 41년간 내림세가 계속되고 있다. 그만큼 판로가 쪼그라들었다는 얘기다. 오죽하면 농민들이 나서 대북 쌀 지원을 통한 소비를 촉구했겠나. 편의점 도시락이 등장했다. 젊은층이 찾는 간편식의 상징이다. 직장인들의 점심 메뉴로 자리했다. 2008년을 기점으로 업계는 본다.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도시락’은 누적 판매고가 1조원을 넘었다. 후발인 ‘△△△도시락’은 누적 판매량 4억개라고 알려졌다. 최근에 등장한 ‘□□□도시락’도 인기몰이 중이다. 쌀 생산 농가에는 전에 없던 판로가 생긴 것이다. 새로운 희망인 셈이다. 이천쌀이 그 시장에 주인공으로 뛰어들었다. 원재료 공급원에 그치지 않는다. 이천쌀 자체를 브랜드로 던졌다. 지난 1일 시식회에서 김 시장이 인사말을 했다. “올해는 햅쌀 수매 전에 작년도 쌀이 모두 판매됐다. 관계 공무원과 농협 관계자들에게 감사한다.” 오죽했으면 이런 인사말을 시장이 해야 하겠나. 그 뜻과 절박함이 도시락으로 이어졌다. 잘되길 바란다. 많이 팔려 나가길 바란다. 1천300만 경기도민의 관심과 구매를 바란다.

[사설] 교사 징계 철회, 마지막이어야 한다

모두를 위해 의미 있는 결정이라고 본다. 교사 당사자들을 위해서는 더욱 다행스럽다. 지난 4일 많은 교사들이 연가·병가를 냈다. 서울 서초구 교사를 추모하는 ‘공교육 멈춤의 날’이었다. 교육부는 당초 ‘집단행동을 하는 교사를 엄중 처벌하겠다’고 했었다. 추모 행위를 교사의 연가·병가의 사유로 볼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럼에도 집단행동은 강행됐고 처벌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었다. 이에 대해 교육부가 ‘처벌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 4일에도 징계 철회 의사를 내비쳤다. 국회 예산결산위원회에 참석해 의원 질문에 답하면서다. 이 뜻을 5일 만난 교사 단체 대표단에 공식 밝힌 것이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과 교사노동조합연맹 위원장이다. 이 부총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연가·병가를 사용한 것은 다른 선택을 생각할 수 없는 절박한 마음이었다고 생각한다”며 “선생님들을 징계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일단,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을 우려는 없어졌다. 교사 극단적 선택 이후 교사들의 분노는 극한 상황에 있다. 질서 있는 시위가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평화로운 입장 표명도 보장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언제든 과격한 상황으로 돌변할 요소가 곳곳에 있다. 연가·병가 교사들에 대한 징계가 도화선이 될 수 있었다. 그렇게 보면 앞서 선언했던 ‘엄벌 예고’가 경솔했던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자제 요청’ 등의 수위도 생각할 수 있었다. 아무튼 교육부의 이번 징계 철회는 잘한 결정이다. 다만, 이제부터 어떻게 할 것이냐는 아슬아슬한 과제가 남았다. 이날 회동에서 교원단체는 교육부에 교권 회복을 위한 숙제를 냈다. 한국교총 회장은 “교사들이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지 않도록 수업·상담·지도·평가 외의 업무를 대폭 축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사노조연맹 위원장은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아동학대 관련법 등을 개정하는 등 행정·재정적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 구체적인 부분에서 충돌이 생길 것 같다. 아동학대 관련법 개정, 학생인권선언 폐지 등이 쉽지 않은 이견이다. 어느 순간 집단 행동 또는 실력 행사가 시작될 수 있다. 지금도 그런 방향으로 꿈틀대는 모습이 있다. 이번처럼 ‘징계 없는 대화’로 넘어갈 수는 없을 것이다. 이번이 마지막 결정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 의지를 표출해야 한다. 징계와 철회를 오간 교육부 모습은 이번 한 번으로 족하다.

[사설] 정부 여당, 물가가 곧 추석 민심임을 알아라

국민의힘 지도부가 추석 민심 챙기기에 나섰다. 김기현 대표 등이 4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을 찾았다. 추석명절 대비 체불임금 대책 마련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이어 전국 곳곳의 경제 현장을 찾아 여론을 청취할 계획이다. 기본적으로 민생 챙기는 여당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구상이다. 야당의 이재명 대표 단식과 차별화하려는 전략이다. 김 대표는 “앞으로 추석까지 3주간을 민생 살피고 경제 살리기에 올인하는 기간으로 삼겠다”고 했다. 추석 민심은 언제나 정치 풍향계였다. 특히 정부 여당에는 가장 혹독한 평가의 시간이었다. 올 추석은 더구나 총선을 앞두고 있다. 이번 추석 민심이 내년 총선 방향을 좌우할 수 있다. 언제나 그랬듯이 야당은 정부 여당의 실정을 공격한다.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 야권에 대한 검찰권 남발 등을 주요 소재로 삼을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민생 현장 챙기기로 이에 맞선다는 전략이다. 틀에 박힌 공격과 방어다. 새삼 파괴력은 없을 듯하다. 정말 메가톤급 추석 민심이 있다. 바로 물가(物價)다. 코로나19 이후 물가는 서민의 목줄을 조이고 있다. 여기에 추석 물가가 더해질 상황이다. 최근 소비자 물가가 2%대 초반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농수산물과 휘발유 가격이 들썩이고 있다. 다시 3%대로 올라설 수 있다. 이러자 정부가 추석물가안정대책으로 67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지난해에도 650억원을 투입했었다. 수입 돼지고기와 닭고기에 대해서 할당관세를 적용하기로 했다. 동전의 양면 같은 문제가 내수 활성화다. 특히 올해는 수산물 시장이 직격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공포와 계절적 요인이 겹쳐 있다. 예산 640억원에 예비비 800억원을 더해 놓고 있다. 총 1천44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발표한 임시공휴일도 같은 차원이다. 숙박 할인쿠폰 60만장을 배포할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하지만 이런 내수 시장 활성화의 전제도 물가 안정이다. 치솟는 물가를 누를 수 있는 내수 활성화는 없다. 대통령 국정 운영에 대한 판단도 중요하다. 야당 대표에 대한 평가도 화두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올 추석에는 이 모든 이슈 위에 물가가 있다. 코로나19 이후 서민 생활을 파괴한 주범이 물가다. ‘모두가 가난해졌다’는 자괴감이 여론을 지배한다. 정부 여당이 해야 할 유일하고 절박한 대책도 이것이다. 물가를 한순간에 원위치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물가 상승세가 한풀 꺾였다’는 평가라도 받아야 할 것이다. 물가가 추석을 지배한다.

[사설] 외국인 임금체불 1천건... ‘어글리 코리안’ 경계해야

외국인 근로자 고용은 2004년 고용허가제를 도입하면서 시작했다. 이후 국내에서는 일할 사람을 찾지 못하는 ‘빈 일자리’를 이들이 채웠다. 이제는 그들 없이는 우리 산업생태계가 지속가능할 수 없을 정도다. 저출생, 고령화의 심화로 내국인만으로는 경제성장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부는 최근 외국인 근로자의 공급을 크게 늘리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했다. 이런데도 인천 일부 산업현장에서는 외국인 근로자에게 줄 임금을 떼먹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한다. 인천지역 외국인 근로자들의 임금체불이 해마다 1천여건에 이른다고 한다. 2021년 998건, 지난해 1천102건 등이다. 올해도 7월 말 기준 481건이다. 올해 임금체불 금액만도 49억4천만원이다. 주로 고용허가제를 악용하는 수법의 임금체불이다. 외국인 근로자는 3년간 3회 이상 사업장을 옮겨 다닐 수 없다. 퇴직 이후 3개월 이내 재취업을 해야만 한다. 이를 위반하면 사실상 국내에서 추방당한다. 이 때문에 외국인 근로자들은 사업장 변경에 부담을 느낀다. 이를 악용한 일부 사업주들은 ‘안줘도 어쩔 수 없겠지’ 하며 줄 돈을 안 주는 것이다. 약자의 약점을 악용하는 것이다. 일부 업체에서는 출퇴근 기록도 없어 체불 신고도 제대로 못한다. 임금체불 증빙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임금체불 수법도 다양하다. 적발된 한 업체는 가족들끼리 사업주 명의를 계속 바꾸는 수법을 썼다. 임금체불 주체가 사라지는 셈이다. ‘임금 꺾기’도 있다. 정해진 날짜에 임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쪼개서 찔끔찔끔 지급하는 것이다. 그러다 점점 더 미루거나 아예 주지 않는다. 회사가 부담해야 할 4대 보험료 등을 외국인 근로자가 내도록 하기도 한다. 베트남에서 온 한 외국인 근로자는 자신의 4대 보험료가 3개월째 미납 상태임을 뒤늦게 알고 신고했다. 회사가 월급에서는 보험료를 차감해 놓고 납부하지 않았던 것이다. 태국 국적의 한 근로자는 지난해 12월 퇴직하고도 퇴직금을 받지 못했다. 매번 “다음에 줄게” 하면서 여지껏 미룬 것이다. 최근 확정한 ‘외국 인력 확대 및 규제 개선 방안’은 외국인 고용을 폭 넓게 허용하는 방향이다. 1년에 1천명 안팎이던 숙련기능인력 비자를 올해 3만5천명까지 발급한다. 고용한 기업과 지자체에는 장기 체류 추천 권한도 준다. 사실상 우리 국민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이런 시대에 아직도 임금체불 구태가 남아 있다니 안타깝다. 빙과류까지 세계시장으로 진출하는 K-산업 시대다. 외국인 근로자 체불은 벼룩의 간을 탐하는 격이다. ‘어글리 코리안’의 불명예를 경계해야 할 때다.

[사설] R&D 예산 싹둑, 과학을 실업자 만들건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이렇게 말했다. “회계를 보면 기업이 보이고 예산을 보면 정부가 보인다.” 국무회의 자리였다. 또 전(前) 정부 살림살이를 ‘재정 만능주의’, ‘방만 재정’, ‘선거 매표 예산’으로 규정했다. 이와 차별화된 건전 재정 기조를 강조했다. 그렇게 편성된 윤석열 정부 2024년도 예산안이다. 657조원 규모다. 2023년보다 18조원 늘었다. 증가율 2.8%다. 문재인 정부 5년 평균치는 8.7%였다. 이걸 재정건전성 징표라고 내놓은 건지 모르겠다. 틀렸다. 단순한 예산 증감보다 훨씬 중요한 게 있다. 항목별 건전성이다. 불요불급 예산 삭감, 집중 선택 예산 배정 등이 포괄적으로 분석돼야 한다. 그렇게 보면 이번 예산은 ‘방만·매표’라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병사 월급을 135만원에서 165만원으로 인상했다. 0세 아동 부모급여를 7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인상했다. 노인 기초연금도 33만4천원씩 올렸다. 모두 대선 당시 공약이었다. ‘문재인 정부 선거 매표 예산’과 다를 것도, 나을 것도 없다. 특히 심각한 게 과학기술 연구 예산이다. ‘무슨 곡절이 있나’ 싶을 정도로 잘려 나갔다. 지난해 정부 R&D 예산에서 무려 16.6%나 삭감했다. 세수 감소로 인한 불가피한 축소로 설명 안된다. 살폈듯이 ‘보건·복지·고용’ 분야는 7.5% 늘었다. 외교·안보 분야는 19.5%나 늘었다. 두 자릿수 삭감률을 기록한 것은 R&D 예산이 유일하다. 1991년 이후 33년 만에 R&D 예산 후퇴다. 2003년 이후 21년 만에 총 예산 대비 3%대 추락이다. 더 섬뜩한 것은 향후 계획이다. 내년 예산안과 함께 중기재정운용계획을 발표했다. 2023~2027년 총지출 연평균 증가율을 3.6%로 제시했다. R&D가 12대 분야 가운데 가장 낮은 0.7% 증가율로 책정됐다. 향후 5년간 R&D 예산을 동결할 것을 분명히 했다. 윤석열 정부 내내 정부 R&D는 자취를 감출 것이라는 얘기다. 정부투자 연구기관의 연구원 채용 계획도 큰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이런 불길한 소문은 이미 청년 과학도들에게 번졌다. 앞서 윤 대통령이 과학기술예산을 언급을 한 바 있다. ‘나눠먹기, 갈라먹기’, ‘R&D 카르텔’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백 번 이해해 그런 문제점에 대한 개선 필요성을 반영했다고 치자. 그래도 이건 말이 안 된다. 문제된 부분은 도려내는 것이다. 효율성 기하고 투명성 확보하면 되는 것이다. 어쩌자고 백년대계, 과학의 떡잎을 잘라 버리나. 첨단 과학 시대 5년 뒤처진 기술이 어떤 재앙을 초래할지 몰라서 이러나. 윤 정부를 위해서라도 다시 살펴봐야 한다.

[사설] 국회, 강대강 대치로는 민생문제 해결 못한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국회가 100일간의 정기국회 일정에 지난 1일부터 돌입했다. 제21대 국회 후반기 제401회 정기국회는 국정감사, 새해 예산과 결산 심사 등을 하는 중요한 회기다. 그러나 이번 정기국회는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개회되는 회기이기 때문에 여야 간 총선을 겨냥한 치열한 주도권 싸움이 예상된다. 노란봉투법, 방송3법 등 쟁점 법안은 물론 지난 8월3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한 ‘이태원 특별법’도 여야 간 격돌이 예상된다. 이들 법안에 대해 여당인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를 통해서라도 저지하겠다는 입장이며,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단독 국회를 강행해서라도 회기 내에 통과시키겠다는 방침이다. 이 외에도 이균용 대법원장 인사청문회, 라임 펀드 의혹,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 해병대의 고 채수근 상병 사망사건 수사 외압 의혹, 국방부·육사 내 홍범도 흉상 이전 문제 등 정기국회 곳곳에 뇌관이 놓여 있어 여야 간 치열한 공방이 이미 시작됐다. 국회는 지난 1일 오후 2시부터 제401회 정기국회 제1차 전체회의 개회식을 개최했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정기국회 개회사에서 “국민의 삶이 말할 수 없이 팍팍하다”며 민생 문제 해결을 위한 여야 간은 물론 정부와도 대화와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 여야 양당은 지난달 28~29일 양일 간 각각 연찬회를 통해 정기국회에 임하는 전략과 목표, 의지를 다질 뿐만 아니라 민생 문제 해결에 앞장서겠다고 했다. 그러나 최근 국회의 상황을 보면 과연 정기국회에서 주어진 일정을 파행 없이 제대로 운영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미 이런 조짐이 발생하고 있다. 즉, 양당의 소속 의원 연찬회 결의와는 달리 정기국회 기간 중 가장 관심이 집중되는 사안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여부로 인한 여야의 대치 상태다. 특히 이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에게 ‘민생 파괴·민주주의 훼손에 대한 대국민 사죄’, ‘일본 핵 오염수 방류에 반대 입장 천명 및 국제해양재판소 제소’, ‘전면적 국정 쇄신 및 개각 단행’ 등 3개항을 요구하면서 지난 8월31일부터 무기한 단식에 들어감으로써 정기국회 자체가 파행으로 운영되지 않을까에 대한 국민적 우려가 크다. 최근 국회 운영은 물론 정치권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고조되고 있다. 21대 국회 마지막인 정기국회까지 여야 간 정쟁과 강 대 강 대치로 인해 민생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국회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

[사설] 대처는 신속하게, 판단은 신중하게/중부국세청 조치가 옳고 정확했다

국세청이 민원실 직원 보호 대책을 마련했다. 세무 업무는 기본적으로 강제 징수 업무다. 납세자의 거부, 항변 등이 상존한다. 그만큼 민원 현장에서의 충돌이 잦다. 여타 행정기관보다 강화된 경비 시스템이 요구된다. 이런 특수성이 불거진 사건이 경기도에서 있었다. 동화성세무서 민원팀장의 순직 사건이다. 민원인을 응대하는 과정에서 쓰러졌다. 잠재됐던 위험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사건 이후 한 달 만에 나온 대책이다. 내용을 보면 적극적이고 과감하다. 외주 경비 인력을 배치하기로 했다. 우선 수도권 내 6개 세무서부터 시행한다. 주요 지점을 순회 근무하는 전자순찰시스템도 도입했다. 방검조끼, 호신용 스프레이, 삼단봉도 지급된다. 직원들에게 상시적으로 지급되는 장비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신분증 녹음기’다. 민원인과의 모든 대화를 녹취할 수 있게 됐다. 사무실 내 CCTV 확대 설치로 촬영 사각지대도 없앤다. 국세청이 공식 발표했다. 동화성세무서 사건이 조직 내에 준 충격이 컸다. 민원인을 응대하는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동료 직원들이 그 참담한 현장을 그대로 지켜봤다. 근본적인 보호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불거졌다. 충격은 일반 국민에게도 컸다. 민원 요구 과정이 초래할 수 있는 비극을 깨달았다. 다양한 목소리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그 한 달여간 주목받게 된 것이 중부지방국세청(청장 오호선)이다. 대단히 중요했다. 우리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사건 직후 대처가 신속하고 단호했다. 사고 발생 상황을 중부청이 직접 챙겼다. 동화성세무서 직원 보호 대책도 우선 시행했다. 전국적인 절차에 앞서 우선적으로 발표하고 조치했다. 중부청 책임자가 직접 피해자 유족과 대화에 나섰다. 여기서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역할이 있다. 실체적 진실 파악이다. 냉정하고 신중한 조사를 진행했다. 추후 소송 등으로 번질 가능성이 컸다. 이에 대비한 조치였다. 국세청 내부 통신망 등에서 가해자 처벌에 관한 요청이 쇄도했다. 동화성세무서 측이 늑장 대응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사법 절차 진입은 신중했다. 이게 옳았다. 사법 절차는 지금 분위기와 다르다. 증거와 법률로 진행된다. 실체적 진실에 대한 냉정한 검토가 필요하다. ‘악성민원’의 판단도 다시 따져질 것이다. 인과 관계에 대한 증거, 증언도 조사될 것이다. 사건의 출발이 된 ‘민원 서류’도 다시 판단 받게 된다. 이 모든 가능성을 점치고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중부국세청이 보여준 비상시 상급기관의 역할과 지휘다. 향후 사법 절차에서 이런 노력이 새삼 평가될 것이다.

[사설] ‘살인예고’ 폭주하는데 처벌 애매, 법 정비 시급하다

온라인 공간에 ‘살인예고 글’이 폭주하고 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지난달 30일 오전까지 살인예고 글 총 485건을 수사해 이 중 235건(240명)을 검거하고 이 가운데 23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살인예고 글은 7월21일 서울 신림역 흉기난동 이후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오기 시작해 지난달 3일 분당 서현역 흉기난동을 기점으로 크게 증가했다. 경찰은 살인예고 행위가 국민 안전을 위협해 형법상 협박, 위계공무집행방해 등의 처벌 규정을 적용할 방침이다. 촉법소년이라도 범죄 혐의가 인정되면 관할 법원 소년부에 직접 송치해 소년보호처분을 받도록 할 예정이다. 살인예고 글 범람에 경찰이 작성자를 속속 잡아들이고 있지만, 실제 처벌까지는 장애물이 적지 않다. 현행법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범죄를 예고한 행위를 처벌하는 규정을 따로 두고 있지 않다. 경찰이 글 작성자들에게 협박죄, 살인예비죄, 위계공무집행방해죄 등을 적용하려 하지만 처벌까지는 쉽지 않다. 법원도 처벌 규정을 둘러싼 딜레마에 빠져 있다. 지난달 25일 서울중앙지법에선 신림동에서 여성 20명을 죽이겠다는 글을 올리고 흉기까지 주문한 이모씨의 첫 공판이 열렸다. 담당 판사는 “협박죄가 성립하려면 협박성 표현이 도달하는 상대방이 있어야 하는데 신림역 인근 상인 등은 살인예고 글이 아닌 기사로 알게 됐을 것”이라며 검찰에 의견서 제출을 요청했다. 시작부터 법리 적용이 난관에 부딪친 것이다. 살인예비죄는 구체적인 살인 계획 등이 입증돼야 해서 적용이 더 어렵다. “장난이었다”고 주장하면 무죄로 풀려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수사기관은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 적용에 기대를 걸고 있다. 허위 사실로 공무원을 속여 직무를 방해한 경우에 해당된다. 법무부는 행정력 낭비에 따른 민사상 손해배상청구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이 또한 실질적인 손해배상청구가 이뤄지기엔 법리 구성 요건이 쉽지 않다. 섬뜩한 살인을 예고하고도 장난삼아 했다고 주장해 무죄로 풀려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독일은 온라인 살인예고를 혐오범죄로 규정,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벌금형에 처한다. 미국에선 ‘허위 협박’ 행위에 대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벌금형에 처한다. 우리 정부도 ‘공중협박죄’ 신설을 위해 의원 입법을 통해 정보통신망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불특정 다수의 생명과 신체에 위해를 가하려는 내용을 정보통신망에 유포하거나 게시해 공중의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유발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법 정비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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