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신판 ‘노예(奴隸)로 가는 길’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프리드리히 하이에크(1899~1992)의 역사적 고전 ‘노예로 가는 길(The Road to Serfdom)이란 책이 있다. 번역에 따라 ‘노예(奴隸)로의 길’이니 ‘예종(隸從)의 길’로 번역되기도 한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국가가 시장을 통제하는 관리경제는 소수 정책결정자에 의해 독재화하고, 국민은 자유와 번영은커녕 모든 것을 정부에 매달려야 하는 노예 신세를 면치 못한다는 내용이다. 발간된 지 70년도 더 된 이 책이 요즘 가슴을 친다. 약자를 위한다는 선의의 정책이 시장 원리를 무시하면 약자를 괴롭히고 결국은 파멸로 몰아넣게 된다는 예언이 섬뜩하다. 하이에크는 ‘인간은 구조적으로 무지하다’라고 주장한다. 자신이 가진 불완전한 인지 구조에 따라 세계를 해석하고 지식을 획득하기 때문에 오류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요즘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기확증편향이다. 대통령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의 심각성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국민경제 자문위 김광두 부의장은 현재 우리 경제는 투자가 죽어가고 있고 잠재력과 산업경쟁력이 악화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지금 정부는 약자를 위한다는 이념과 명분으로 ‘나눠주는 시혜(施惠)’를 담보로 시장원리를 무시하고 소득, 연금 등 모든 것을 정부에 의존하는 노예로 만들고 있다. 보통 일이 아니다. 하이에크의 경고가 현실로 되고 있다. 특정한 이념에 사로잡힌 경제정책은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 분배의 원천이 되는 생산과 투자 없이 무엇을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IMF(국제통화기금)는 9일 우리나라 올해 경제성장률을 2.8%로 전망했다. 내년에는 더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세계 경제성장률이 3.7%인 것에 비해 급속한 하강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진단이 정확해야 해결책이 나오는데 이념·통계 논쟁만 반복하고 있다. 몇 달만 기다리면 좋아진다는데 양치기 소년도 아니고 답답할 뿐이다. 경제 곳곳에 요란한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실업자가 8개월째 100만 명을 넘고 취업자 수 증가 폭이 두 달 연속 5천 명 이하로 떨어지는 고용참사가 빚어지고 있다. 청와대 김수현 사회수석의 주도로 보유세 인상과 다주택자 금융규제를 주 내용으로 하는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으나 효과는 미지수다. 이미 서울 집값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급한 불을 끄고 보자는 정책도 너무 많다. 여덟번째 내놓는 부동산 정책, 일자리 안정자금 증액, 근로 장려금 지원 확대, 차등 적용이 빠진 최저 임금 대책 등 정신을 못 차릴 정도다. 국민의 생존을 검증되지 않은 실험에 맡겨선 안 된다. 현장의 위기에서 해법을 찾기 바란다. 하이에크가 경고한 노예로 가는 길에 우리의 미래를 맡길 수는 없다.

[사설] 민선 7기 100일 박남춘 시장에 바란다

지난해 5월 대선에 이어 올해 6·13 지방선거로 중앙과 지방의 권력이 전면 교체됐다. 더불어민주당은 대선 승리의 여세를 몰아 ‘지방 권력 교체와 지방 적폐 청산’을 구호로 내세워 지방선거에서 압승했다. 인천시도 친문의 핵심인 박남춘 시장이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당선됐고, 시의원 1명을 제외한 32명이 민주당에서 당선됐다. 이렇게 출범한 박남춘 인천시 지방정부가 100일이 지났지만,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곳곳에 시정의 잡음만 노출돼 실망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겨우 출범 100일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 불과해 섣부른 평가라고 치부하기엔 그 진상이 녹록지 않다. 공무원 승진 인사와 공기업 등 산하 기관장 인사 잡음, 그리고 지역 현안에 대해 또렷한 원칙과 구체적인 대안이 제시되지 않아 새로운 시 정부의 교체 의미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자칭 최고의 인사전문가라며 소통하는 인사를 강조했으나 취임 후 단행한 인사부터 잡음에 시달리며 공무원사회에 급기야 ‘인사 농단’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적재적소’가 아니라 ‘적소적재’를 외치며 시행한 인사는 과거 전임시장의 전철을 답습하거나 모호한 원칙으로 인천시청을 혼란에 빠지게 하고 있다. 기대에 실망한 직원들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인사팀장을 공모하고 직원들의 인기투표로 결정하는 전대미문의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인천의 주요한 현안을 현장에서 진두지휘하는 산하기관장과 씽크탱크인 인천연구원의 수장도 모호한 원칙과 학연 및 측근 배려로 차일피일 미뤄지는 등 인사전문가로서의 역량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기대에 부응하는 신선함과 과감한 추진력을 보여주지 못함으로써 실망을 넘어 포기로 발전하는 것 같다. 17개 광역단체장의 직무수행 지지도 여론조사에서 꼴찌를 기록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10월8일 조직개편과 더불어 단행한 인사에서도 적소적재의 원칙은 고사하고 단지 보직의 재발령에 그치고 있어 또 다른 실망을 낳게 했다. 인천경제청에 버금가는 원도심재생기구를 후보 시절부터 약속하였으나 그 모습은 기존의 2국을 관할하는 본부를 두고 이를 관장하는 개방형 전문가를 공모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원도심 현장에 필요한 조직과 인력의 확대 없이 국과 과의 이름만 새로 작명한 것이다. ‘시민이 반응하지 않는 소통은 의미가 없다’라고 강조했듯이 박남춘표 소통과 과감한 결단과 추진력이 필요한 때다. 인천시민은 그렇게 인내심이 강하지 않다. 격의 없이 시민에게 다가가고 의전을 파괴하는 신선함이 진정성으로 연결되어 시정의 모티브로 작동해야 한다. 매사 지나친 신중함과 우유부단이 무책임과 결정 장애로 고착되는 우려를 깊이 되새겨야 한다. 충분히 준비된 시장으로서 100일의 시정은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다. 이제 다시 한번 새로 출범하는 각오로 초심을 조속히 재점검하고 결연히 나갈 때다.

[사설] 누구를 위한 주택 공급정책인가

연일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주택가격이 급등하는 뉴스로 떠들썩하지만 정작 일반 시민들은 남의 얘기로 여기며 허탈감과 위화감을 느끼고 있다. 정부가 강남 일대의 주택가격 급등에 대한 부동산 정책으로 투기수요를 억제하는 고강도 대책을 9월 13일 발표했다. 이어서 같은 달 21일 과감한 공급정책으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신도시 4~5곳을 건설하는 등 추가로 30만 호를 공급하는 대책을 발표했다. 이러한 정부의 수도권 주택 공급정책은 우선 수도권 과밀화 현상을 심화시켜 지방의 주택시장과 형평성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물론 수도권 서민의 주거안정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중론이다. 오히려 신도가 새로운 투기 대상이 될 위험이 있다. 따라서 서울을 비롯한 일부 지방자치단체와 시민들도 과거 이러한 실패경험을 바탕으로 정부의 공급정책에 반대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2016년 전국의 주택보급률은 102.6%이며 서울도 96.3%로 100%에 근접하고 있다. 하지만 자기 집을 보유한 비율은 전국의 경우 2010년 60.3%에서 2016년 59.9%로 낮아졌고 서울은 50.4%에서 45.7%로 더 낮아져 내 집을 마련한 가구가 절반에 못 미친다. 서울에서 2채 이상 보유한 다주택자가 2012년 30만명에서 2016년 37만4천명으로 24.7%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또한, 2012년 이후 수도권의 저소득층 자가보유율은 낮아졌지만 중고소득층은 높아졌다. 새로 공급된 주택을 족족 집 부자들이 가져갔다는 결과다. 문재인 대통령도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을 임명하는 자리에서 “가격도 중요하지만 자가보유율이 더 중요하다”며 “주택보급률은 100%가 넘지만 자가보유율은 그 절반 정도”라고 지적했다. 그런데도 일부 지역과 계층의 개발 논리에 밀려 재건축 규제를 완화하거나 그린벨트 풀어 공급을 늘리는 것은 투기세력에 좋은 먹잇감을 던져주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규제 완화나 그린벨트를 해제한 공급정책은 이미 과거 정부에서 충분히 경험한 시행착오였다. 이명박 정부가 그린벨트를 해제해서 만든 보금자리주택 지구의 세곡동 아파트는 초고가 아파트가 됐고, 2017년 그린벨트에서 해제된 성남시 금토동 땅값도 3배가 뛰었다. 서울 강남에 집중된 고가 주택의 급등 문제를 방관할 수는 없지만 이를 빙자한 주택공급정책의 우매한 시행착오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집 없는 서민들은 투기와는 거리가 멀고 고가의 주택이 필요하지도 않다. 막대한 자금과 한정된 토지자원을 동원하는 정부 정책이 투기세력의 먹잇감이 되지 않고 진정한 실수요자인 서민 주택으로 공급되도록 공공정책의 본질적 책임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사설] 아베 일본총리 최장수 집권의 진짜 이유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집권 자민당 총재 경선에서 압승을 거두며 역대 최장수 총리를 예약했다. 사학 스캔들 등으로 한때 낙마 위기를 맞았던 아베가 전후(戰後) 최장수 총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한마디로 경제 살리기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소위 ‘아베노믹스’라고 불리는 아베의 경제정책 덕분이다. 아베는 기업인 우대, 대담한 금융 완화, 재빠른 재정 정책으로 20년간의 침체한 일본 경제 분위기를 바꿨다. 완전고용(실업률 3%) 상태를 넘어서는 낮은 실업률, 올해 대학생 취업률 98%, 기업의 연구·개발 투자비 사상 최고, 900만 명에 머물던 외국인 관광객 3배 증가 등 국민이 체감하는 통계가 그 증거다. 일본을 보면서 느낀 점은 스캔들도 경제적 성공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는 역설적 사실이다. 부인이 연루된 사학 스캔들은 공무원들의 공문서 조작도 곁들인 가공할 범죄행위였다. 우리 같았으면 촛불집회에 이어 정권의 붕괴를 자초했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 성공은 쓰나미처럼 이런 스캔들을 모두 묻어버렸다. ‘친기업, 친시장’으로 요약되는 아베의 성장전략은 우리하고는 정반대다. 노동시장 개혁, 법인세율 인하, 수도권 규제 완화, 규제개혁특구 확대 등 우리 정부가 싫어하는 것만 골라서 했다. 기시 전 총리의 외손자, 외상이었던 아버지 밑에서 금수저로 태어나 다소 유약한 이미지를 가진 정치인 아베는 사실 우리에게 비호감이었다. 박근혜 정권에 이어 문재인 정권하고도 별로 궁합이 맞지 않았다. 하지만, 놓인 현실이 이러니 어쩔 수 없다. 오히려 아베에게 경제적 성공의 조언을 들어야 할 판이다. 실업자가 8개월째 100만 명을 돌파했고, 소득 격차도 최악의 상태인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일자리 정부’를 자처한 정부가 취약계층을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 평양에 간 문 대통령의 시청률이 처음보다 반 토막 이하로 떨어졌다. 백두산에서 물을 떠오고 송이버섯 2t을 받아와도 약발이 다한 느낌이다. 문제는 경제다. 우리가 잘 돼야 그렇게 정부가 소망하는 북한도 도와줄 수 있다. 아베가 가장 강조하는 신념은 지성(至誠)이라고 한다. 최선을 다해 목표한 바를 이룬다는 뜻이다. 그는 이런 신념을 정책에 접목시켜 일본경제를 화려하게 되살렸다. 그는 감동적인 수사와 현란한 말장난도 별로 없다. 측근의 어설픈 시적(詩的)표현이나 치기어린 이벤트도 없다. 하지만 결과로 증명했다. 현상의 정확한 진단과 올바른 해법만이 있을 뿐이다. 아베의 연임은 우리 정부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사마천은 ‘최악의 정치는 백성과 싸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우리 정부는 먹고사는 문제를 가지고 국민과 싸우고 있다.

[사설] 대통령 비서실장다운 언행이 아쉽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여야 대표들에게 ‘꽃할배’라는 표현을 쓰면서 평양행 동행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야당으로부터는 ‘오만방자’하다는 말을 들었고 이낙연 총리는 국회 답변에서 ‘적절한 표현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임 실장은 좋은 뜻으로 ‘꽃할배’라는 표현을 썼는지 몰라도 듣는 사람은 기분이 좋을 리 없다. 야당 대표나 국회의장이 가지 않을 것을 알면서 그냥 던진 의도가 보인다. 임 실장은 지난 아랍에미리트(UAE) 특사 파견 때도 여러 번 말을 바꾸고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를 무시하는듯한 발언도 여러 차례 했다. 얼마 전에는 탁현민 행정관의 사의를 반려하면서 ‘첫눈이 오면 놓아주겠다’는 어설픈 시적인 표현을 썼다가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재기가 번득이고 상황 판단이 빠르다고 알려졌다. 정치적 야심도 대단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임 실장은 비서실장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 두 번의 미국 국방장관과 포드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던 도널드 럼즈펠드는 대통령 비서실장의 임무는 ‘대통령에게 나쁜 소식을 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대통령에게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임무 태만이고 세상을 ‘그들’과 ‘우리’로 나누지 말라고도 했다. 지금 대통령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인간 문재인은 겸손함이나 진실성만큼은 접고 들어간다. 다만, 측근에 얹혀서 자신의 결정 권한을 너무 위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있다. 자신의 정치적 대부였던 노무현 대통령도 회의나 토론은 많이 했어도 한미 FTA나 이라크 파병, 제주 해군기지 건설 같은 국가의 안위를 결정하는 문제에는 결기를 보여줬다. 임 실장은 대통령 비서실장 본연의 임무를 넘어서 정치적 문제에 너무 나서고 대통령의 올바른 판단에 조언하기보다는 본인의 목소리를 강조해 정치인으로서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가뜩이나 먹고사는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 대통령에게 고언(苦言)하고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해야 하는 게 그가 당면한 임무다. 혹여 비서실장이란 자리가 자신의 정치적 야심을 위한 디딤돌로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사람은 자신이 센 자리에 있으면 모든 것을 컨트롤 할 수 있다는 오만에 빠진다. 아무리 겸손하고 신중한 척 위장을 해도 대다수 사람을 속일 수는 없다. 그래서 권력은 사람을 눈멀게 한다. 대통령의 멘토라고 불리는 정해구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장이 8년 전에 이명박 정권을 비난하면서 쓴 글이 있다. ‘정권이 막무가내로 밀어붙일 때 국민의 피로감은 증대되고 권력의 오만이 극에 달한다. 사태판단의 균형감각을 회복하고 과도한 욕심에 대한 자기 절제만이 살길이다.’ 임종석 실장이 명심해야 할 말이다.

[사설] 꼴찌로 추락한 박남춘 시장 직무수행지지도

박남춘 인천시장이 광역단체장 8월 직무수행 지지도 여론조사에서 긍정평가가 33%에 불과해 꼴찌인 17위로 추락했다. 지난달에 비해 1단계 내려왔지만, 경기도지사보다 낮은 꼴찌라는 오명을 안게 됐다. 산뜻하고 참신한 출발을 기대한 것에 비해 실망과 우려를 낳게 하는 결과다. 시정 초반이지만 간과할 수 없는 결과로 그 원인의 냉철한 분석과 대처가 필요하다. 지난 6·13 전국동시 지방선거에서 박남춘 시장은 득표율 57.7%였다. 반면 이번 조사에서 직무수행지지도는 33%로 추락해 득표율 대비 8월 광역자치단체장 직무수행 지지율의 증감 정도를 나타내는 ‘주민지지확대지수’는 57.2점으로 16위에 머물고 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지지한 시민의 57.2%만이 박남춘 시장 직무수행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것으로 인천시민의 높은 평가 기준만을 탓할 수만은 없는 결과다. 시민이 시장임을 강조하면서 소통을 외치며 야심차게 출범한 박남춘 호가 왜 이런 냉혹한 평가를 받는지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 부재와 정책의 혼선 및 우유부단한 추진력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시민과 소통한다고 하지만 그 중간 매개체인 지역의 언론과 거리를 두면서 마이웨이를 가고 있으며, 지역 여론의 주도층인 전문가들과의 만남을 의도적으로 회피하면서 선거캠프 핵심인사로 구성된 이너서클을 강화하고 있다. 원도심의 불균형 문제에 대해서는 원론적인 구호만 난무하고 지역 전문가들과 고심한 흔적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난해한 지역 현안에 대해서도 원칙과 민주적 절차를 강조하면서 그 실행은 뒷전으로 밀려나 제대로 추진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 이러한 현실을 시민들이 냉혹하고 현실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것을 직시하면 초기에 추스르는 적극적인 대처가 요구된다. 아무리 고귀한 이상을 설정해 목표를 제시하고 노력해도 주인인 시민이 동참하지 않고 지지하지 않으면 그 추진 동력은 허공에 머물게 된다. 박남춘 시장은 과거 노무현 대통령의 고귀한 실험을 옆에서 지켜본 당사자이기에 더욱더 안타깝다. 풍부한 행정경륜과 정치 경험은 인천시민이 충분히 평가하고 기대하고 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낡은 속담이 자꾸 떠오르는 것이 기우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이제 겨우 3개월이 지나는 시점이기에 더욱더 초심을 강조하는 것은 큰 실망을 조기에 예방하는 의미가 있다. 다음 달에 조직개편이 완성되고 인사가 이루어지면서 시민과 소통하고 결단력 있게 추진하는 새로운 모습을 기대한다. 측근에 둘러싸여 그들만의 소통에 머무르는 구습을 타파하기를 바란다.

[사설] 이럴 거면 인사청문회는 뭐 하러 하나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리고 있다. 이은애·김기영 재판관 후보는 자녀 학교 배정 등을 이유로 각각 7번, 3번 위장전입을 한 의혹을 받고 있다. 이석태 후보는 아파트 다운계약서 작성 의혹이 있다. 앞으로 열릴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딸의 위장전입과 아들의 병역 기피, 지역구 사무실 특혜 임차 등의 비리 의혹을 받고 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이런 청문회는 더 이상 할 필요도 없고, 한다면 근본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병역 기피, 세금 탈루, 부동산·주식 투기, 위장 전입, 논문 표절 등 5대 비리 관련자를 고위 공직에서 배제하겠다는 원칙을 내세웠으나 자신의 내각에서 많은 후보자가 비리의 온상임을 알게 됐다. 할 수 없이 5대 비리에 음주운전과 성범죄를 더해 확대하면서 기존 5대 항목의 세부기준을 낮췄다. 그래도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제대로 한다면 인사 청문회를 통과할 후보자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무엇보다 국민이 관심도 없고 냉소적이고 청와대에 대해 분노만 쌓이는 형국이다. 인사 청문회에서 야당이 반대한들 대통령이 임명할 거면 뭐 하러 그런 제도를 운영하느냐는 것이 정확한 민심이다. 2000년에 도입된 이 제도는 이제 의미 없는 존속이냐 아니면 환골탈태(換骨奪胎)의 개혁이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존속을 전제로 말한다면 첫째, 국회 사전 검증절차를 통해 비 자격자가 청문회에 오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지금 정부뿐 아니라 역대 정권을 봐도 청와대의 자체 검증 시스템은 믿을 수 없다. 청와대에서 추천하면 신상과 도덕성에 관한 비공개 1차 검증을 통해 후보를 거른 후 인사 청문회에서는 정책검증만 한다. 청문회에서 부동산 투기니 논문 표절이니 하는 후보들을 원천적으로 봉쇄해 국민이 꼴사나운 광경을 안 보도록 하는 것이다. 둘째, 청와대의 인사 검증 시스템을 다원화해야 한다. 인사는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는 인식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다. 국회나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 청와대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셋째, 대통령의 결단이다. 지금의 청문회는 능력과 자질을 검증하는 게 아니라 일종의 정치적 쇼다. 장관 한 번 해보려다 패가망신하는 꼴이며 자격 미달자들도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대법관도 되고 헌법재판관들도 된다. 인사 청문회는 국회의 사전 검증절차를 통과한 후보를 상대로 사상이나 직무 관련 전문성을 철저히 파헤치는 자리가 돼야 한다. 안경환 법무부 장관 낙마자처럼 국민적 공분을 사야 마지못해 대통령이 포기하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사설] 서울 집값 폭등, 잡지 못하면 전 국민의 공분 산다

최근 폭등하는 서울 집값은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과 박원순 서울시장의 철없는 작품이다. 여의도와 용산을 통째 개발하겠다는 ‘싱가포르 구상’이 서울 집값에 불을 질렀다. 박 시장은 비난 속에 ‘개발 유보’를 선언했으나 투기 광풍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확산했다. 어설픈 구상이 얼마나 큰 참화를 불러일으키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정부도 이 비난을 벗어날 수 없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주 “등록된 임대 주택에 주는 세제혜택을 줄여 신규 투기세력을 규제하겠다”고 밝혔다. 임대사업자 활성화 방안을 내놓은 지 8개월여 만에 정부 스스로 바꿨다. 차제에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청와대와 정부, 여당은 지난 4일 서울 상업지역·그린벨트에 아파트 공급을 확대하고 부동산 보유세를 높이는 대신 거래세를 낮추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했다. 부동산 정책 방향이 규제에서 공급으로 선회한 것은 일단 바람직하다. 경제학의 가장 기초인 ‘공급보다 수요가 많으면 가격이 오른다’는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주택도 이 원칙에서 예외일 수 없다. 서울은 주택소유율이 49.3%로 몹시 낮아 내 집 마련에 대한 불안감이 높을 수밖에 없다. 정부와 박원순 시장은 강남 집값을 잡기 위해 재건축을 막고 양도세와 종부세로 응징하려 했으나 결과는 정반대다. 서울 아파트 값은 더 지을 땅이 없으므로 정부가 아무리 누른다 해도 잠시 주춤할 뿐 다시 오를 수밖에 없다. 직장이 서울인 상당수 수도권 주민은 서울시의 소아병적인 진입제한으로 출퇴근에 평균 3시간이 걸린다. 집값도 서울과 비교하면 평당 5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다가 국민적 공분(公憤)이 고조돼 계층 간 갈등이 극에 달하면 보통 일이 아니다. 서울 집값 문제의 해답은 있다. 주택 공급을 늘리고 수요를 분산시키는 것이다. 자고로 시장을 이기는 정부는 없다. 서울은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완화해 공급을 늘리고 수도권은 양질의 공공주택과 임대주택을 많이 공급해야 한다. 그리고 가칭 ‘수도권광역교통행정청’을 설치해 서울의 편협한 교통정책을 바꿔야 수도권 분산이 쉬워진다. GTX같은 첨단 교통시스템을 더 빨리 건설해야 하는데 자꾸 늦어지는 것도 문제다. M버스나 광역버스도 늘리고 준공영제 예산을 중앙 정부에서 지원해야 한다. 지금의 집값 급등을 일부 투기세력의 농간으로만 보고 대책을 세웠다간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할 수 있다. 2500년 전에 사마천은 사기 ‘화식열전’에서 “인간은 이기적 존재이고 부와 명예를 추구하는 본성이 있기에 이러한 인간들과 싸우는 정부가 가장 어리석다”고 말했다. 지금 정부 당국자들이 명심해야 할 말이다.

[사설] 내실 있고 지속가능한 도시재생

우리 주변에 바야흐로 도시재생이 하나의 큰 물결로 다가오고 있다. 서울을 비롯한 전국 광역자치단체 행정의 블랙홀처럼 도시재생이 집중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역점을 두고 도시재생 뉴딜 사업을 추진하면서 5년간 10조에 달하는 자금을 지원하기 때문이다. 지자체들은 한 곳이라도 더 선정되고자 총력을 기울이고 있어 그 열기는 대단한 상황이다. 지난달 31일 2018년 전국 99개 도시재생 뉴딜사업이 최종 선정 발표됐고 인천시는 그중에 5개 사업이 포함됐다. 인천시 5개 사업에 총사업비 3천600억 원이 투입되고 이중 국비는 450억 원이 지원되는 비교적 대규모 사업으로 인천시 도시재생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외형적인 규모에 비해 사업의 내실적인 성과에 대해 여러 우려가 노출되고 있다. 도시재생사업은 열악한 주거지와 상업지역에 그동안 추진했던 도시개발 사업타당성이 미흡해 새로운 방향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주민과 활동가, 그리고 상인과 민간 기업이 함께해 물리적 환경개선과 더불어 사회문화적으로 살만한 도시로 활성화하는 것이다. 단기간 철거에 의한 과거방식의 정비성과보다는 장기 지속가능한 활력을 심어줘 자생적으로 매력적인 주거 및 경제활동 공간을 도모하는 것이 또 다른 특징이다. 이를 위해 열악한 사업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최소 필요한 마중물을 정부가 지원해 메말랐던 도심에 지속가능한 우물을 만드는 것이다. 뉴딜사업으로 선정된 사업지구가 지속가능한 우물로 다시 태어나려면 도시재생 주체의 형성이 가장 중요하다. 기본적으로 마을 주민과 상인, 그리고 이들의 의견과 의지를 이끌어가는 활동가를 비롯한 전문가 그룹들이다. 그리고 이들을 하나의 실체로 엮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거버넌스 구축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선결요건이다. 인천시는 도시재생지원센터를 올해 초에 설립 운영하고 있으나 가장 우선해야 하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엮어 거버넌스를 구축해 도시재생 방향을 설정하고 우선순위를 매기는 것에는 손도 못 대는 실정이다. 도시공사에 부속한 한계 탓에 자율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아 도시공사와 시정부의 행정지원에 급급한 실정이다. 인천시 관내에 다양한 활동가와 전문가들을 활용하는 창구 역할도 미미한 수준이다. 그러다 보니 인천의 실정도 잘 모르는 총괄계획가들이 중요한 사업에 투입되어 주민과 소통하지 못하는 등의 잡음이 발생하고 있다. 진정한 도시재생 뉴딜은 사업지구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주인의식을 발휘해 정부가 지원하는 마중물을 활용, 오랫동안 공유할 수 있는 깨끗하고 맛나는 우물을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다. 정부 지원의 마중물을 코앞의 갈증을 일시적으로 잠시 해결하는 데 소진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사설] 남북 연락사무소 개설은 신중해야 한다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방북이 취소되면서 이번주로 예정했던 개성공단 남북 연락사무소 설치가 연기될 전망이다. 청와대는 27일 “새로운 상황에 맞춰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국회에서 남북 연락사무소는 유엔 제재사항이 아니라고 했고, 외무부는 연락사무소의 대북제재 면제와 관련해 미국과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마뜩잖은 듯 보인다. 청와대는 지금까지 남북 연락사무소 개설은 역사적인 판문점 회담의 합의사항이라며 대북제재 위반이 아니라는 입장을 보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현재 북한의 비핵화 문제가 제자리걸음인 상황에서 남북 연락사무소 개설은 성급히 서두를 사안이 아니다. 차제에 우리의 대외 전략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가 필요하다. 문 대통령이 김정은과 포옹하고 민족을 외쳤을 때만 해도 우리는 장밋빛 미래를 꿈꿨다. 일부에서는 다 죽게 된 김정은을 왜 도와주냐는 여론도 있었으나 대세에 묻혔다. 잔뜩 기대했던 트럼프-김정은의 싱가포르 회담에서 이상한 조짐을 보이더니, 시진핑이 끼어들면서 사실상 교착상태에 빠졌다. 청와대는 남북 연락사무소가 북한 비핵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하나 여론은 시큰둥하다. 얼마 전 존 볼턴 미국 안보 보좌관은 미국이 문 대통령의 말을 믿고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했으며, 북한 비핵화를 1년 내에 하기로 한 것도 남북정상회담에서 나왔다고 밝혔다. 북한 비핵화가 안 되면 우리가 책임지라는 말이다. 북한 비핵화가 진전을 보이지 못한다면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상황과 겹쳐 심각한 상황에 빠질 수밖에 없다. 정부와 국제 정치학자들의 현란한 용어 구사와 설명에도 국민은 이제 냉정한 국제현실에서 살아남아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남북 연락사무소 개설문제도 이러한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한반도 평화라는 대명제에 사로잡혀 각론이 없는 길을 가는 형국이다. 시진핑은 미중 간 무역전쟁에서 북한을 지렛대로 사용하려 하고 있고 북한을 어떻게든 자신의 세력권에 묶어 두려 한다. 북한은 영악하게도 이러한 시진핑의 의도를 이용하면서 체제 유지를 꾀하고 있다. 가히 구한말의 상황과 다름없다. 좀 다르다면 우리가 어느 정도 힘이 있고 미국과 같은 우방이 곁에 있다는 점이다. 섣부른 종전선언 추구나 북한의 주적(主敵) 명시 폐기 같은 사안들은 상황을 지켜보면서 해도 늦지 않다. 우리의 역할로 북한의 비핵화를 이루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도 지혜롭게 대처하는 뜻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상주의자란 ‘장미가 양배추보다 향이 좋으므로 더 맛있는 수프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사람’이란 말이 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은 실로 엄중하다. 목표는 좋지만, 현실감을 가지고 임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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